온다연은 긴장한 나머지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고 말도 못 하고 고개도 들지 못했다. 그녀의 속셈이 들통나자 수치심을 느꼈다.차 안의 분위기는 갈수록 숨이 막혔고 1분 1초가 고통스럽게 느껴졌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단독주택 별장 앞에 멈춰 섰다.중앙 광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땅값이 비싼 지역에서 이 별장은 심지어 150평이 넘었다. 유씨 가문의 부유함은 다시 한번 온다연의 상상을 벗어났다.정원은 비교적 소박하게 꾸며져 있었고 중앙에는 서너 명이 껴안을 수 있는 커다란 오동나무가 있었다. 큰 오동나무 때문에 정원 전체를 자연스럽게 빛과 그림자로 보이게 하여 아름다운 느낌을 주었다.온다연은 나무 밑에 서서 유강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함께 따라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온다연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눈치채자 유강후는 잠시 몸을 돌려 말했다.“안아 줘?”그렇게 말하고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바로 가던 길을 다시 갔다.온다연은 입술을 깨물고 어쩔 수 없이 유강후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문에 들어서자마자 온다연은 이곳이 바로 유강후가 자주 살고 있는 곳이라는 걸 알아차렸다.개인 스타일이 너무 뚜렷한 인테리어였다. 평범해 보이지만 고급스러움을 잃지 않는 가구는 하나하나가 은은한 진주처럼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차갑고 고급스러운 유강후를 연상케 했다.장화연은 입구에 서서 유강후를 향해 허리를 굽히면서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없이 인사했다.“도련님!”그러자 유강후는 담담하게 말했다.“야식은 준비가 다 되었어?”“네. 준비되었어요. 온다연 씨의 방도 준비되었어요.”유강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옷방도 정리 좀 해줘. 다연이가 쓸 생활용품도 추가하고. 내가 자주 쓰는 브랜드로 준비해 줘. 그리고 내일 내 옷을 만들어주었든 그 사람보고 한 번 오라고 해.”장화연은 공손하게 대답했다.“네. 도련님.”뭔가 생각났는지 유강호는 계속하여 말했다.“내일 그 옷 브랜드 책임자들을 불러줘. 올 때 지금 시즌 신상품을 가지고
온다연은 깜짝 놀라 막 말을 하려는데 마침 유강후의 전화가 울렸다.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손을 거두고 휴대 전화를 들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나은별이었다.유강후는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다 먹었으면 자기 방으로 돌아가.”온다연이 묵을 방은 유강후 침실의 왼쪽에 있었다. 그리 크지 않았고 마치 유강후 침실에 달린 작은 방 같았다. 방에는 화장실과 작은 베란다가 있었다.방 전체의 가구는 바깥쪽과 마찬가지로 고급스러웠고 진주처럼 은은한 빛이 났다. 나무로 된 창문이 열리자 아주 은은한 계수나무 향기가 흘러들어왔다.온다연은 신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두툼한 원목 바닥을 맨발로 밟으니 시원하고 편했다.비록 이곳이 유강후의 집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온다연은 방안의 인테리어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그녀가 어렸을 때 살던 방 같았다.방 안을 한 바퀴 돌고 온다연은 베란다로 나왔다.베란다는 크지는 않았으나 큰 천당조화가 있었고 모처럼 꽃까지 피었다. 이 꽃을 기르는 사람이 얼마나 세심하게 보살핀다는 걸 알 수 있었다.그 옆에는 부드러운 덩굴로 만든 흰색 책걸상이 있었고 책상 위에는 잡지 몇 권과 다기 세트가 있었다.온다연은 걸상에 앉으려 하자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고개를 들어 보니 유강후는 옆의 베란다에 앉아서 전화하고 있었다.그는 한 손으로 전화를 들고 한 손으로는 난간을 쥐고 있었고 시선은 온다연을 쭉 지켜보고 있었다.그리고 천천히 신발을 신지 않은 그녀의 발을 쳐다보았다.작고 하얀 발은 사이즈가 225mm 신도 못 신을 것 같았다.유강후의 시선을 눈치챈 온다연은 저도 모르게 발을 뒤로 움츠렸지만 그녀는 지금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기에 아무리 작은 발을 숨기려고 해도 여전히 유강후의 눈에 보였다.온다연은 불현듯 수치심을 느꼈고 조심스럽게 삼촌이라고 부르며 도망치듯 방으로 돌아갔다.방안은 깔끔하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고 유씨 가문에 있던 그 방보다 몇 배나 더 나은지 몰랐다. 침대에서 사용하는 실크 베개
하지만 문을 몇 번 두드렸으나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유강후는 얼굴을 찌푸리며 문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열렸다.유강후는 상자를 침대에 내려놓고 막 욕실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땅에 쓰러진 온다연을 발견했다.가냘픈 몸이 바닥에 웅크린 채 생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유강후의 마음은 무섭게 졸여왔고 재빨리 그녀를 안아 올려 침대에 눕혔다.“온다연!”유강후는 가볍게 그녀의 얼굴을 두드렸다.하지만 온다연은 아직 혼수상태라 당연히 대답하지 않았다.그녀의 작은 얼굴은 끔찍할 정도로 하얗게 질렸고 입술에도 핏기가 전혀 없었다.유강후는 그녀가 왜 욕실에 쓰러져 있는지 몰랐고 어쩔 수 없이 재빨리 전화 한 통 걸었다.“주 의사, 지금 제가 사는 곳으로 오세요. 빨리요.”주 의사는 이 근처에 살고 있는 한의사였고 거의 유강후의 개인 의사였다.의사를 기다릴 때 유강후는 따뜻한 수건을 가져와 온다연의 얼굴을 닦았다.온다연은 계속 식은땀을 흘렸다. 심지어 머리카락도, 목덜미와 옷까지 전부 흠뻑 젖었다.식은땀을 이렇게 많이 흘리는 사람을 처음 보았기에 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온다연은 몸이 너무 안 좋았기에 일주일에 심지어 두 번이라 탈이 났다. 정말 몸조리를 잘 해야 했다.유강후는 온다연의 얼굴과 목을 따라 조금씩 그녀의 식은땀을 닦아 주었다.팔을 닦아주려고 하자 방금 그가 싼 붕대가 좀 더러워진 것을 보고 먼저 붕대를 떼어냈다.방금 궤짝 문에 맞힌 곳은 이미 퉁퉁 부었고 보기에 섬뜩했다.만약 다른 여자가 이런 상처를 입었다고 하면 진작에 아파서 견딜 수 없었을 텐데 온다연은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유강후는 입술을 오므리면서 눈에는 냉기가 더욱 독해졌다.‘왜 이렇게 고집이 센 걸까? 내 앞에서는 조금도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걸까?’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들고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했지만 곁눈으로 손등에 있는 반창고를 발견했다.이건 아까 차에 있을 때 그 반창고가 아니었다. 언제 새것으로 바꿨는지는 모르겠지만 변두리에서 핏자국이 쭈뼛쭈
유씨 가문에서 이제 누군가는 큰 봉변을 당하게 될 것이다.유강후는 어려서부터 중국과 서양의 사상교육을 전부 받았고 뼛속까지 지극히 전통적이지만 가족에 대한 애정이 아주 담담했다.말하자면 유강후는 도덕적인 속박감이 별로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장화연은 유강후가 친부모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한테 별 신경을 쓰지 않으리라 생각했다.장화연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자 유강후는 화가 아직 채 가시지 않았기에 더욱 무서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당장!”그러자 장화연은 이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바로 가져오겠습니다.”유강후의 시선은 줄곧 온다연의 손등 상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온다연의 팔을 살짝 잡아당겨 자세히 살펴보니 그녀의 교복 소매 변두리에 검푸른 자국이 조금 있었다.그의 눈빛은 매섭게 변했고 손은 나무 침대 머리를 꽉 잡았고 손등의 핏줄이 툭툭 튀었다.잠시 후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손을 온다연의 교복 단추 쪽으로 가져갔다.교복 단추가 풀렸다.온다연의 예쁘고 사랑스러운 몸매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몸매는 완벽한 각선미를 자랑했다.잘록한 허리에 긴 다리, 풍만한 가슴과 우유푸딩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온다연은 어떤 남자라도 유혹시킬 정도로 매력이 넘쳤다.하지만 이렇게 매력적인 몸의 곳곳에 멍이 들었다. 다리, 쇄골, 허리까지 합치면 최소 열 군데가 있어서 보기만 해도 끔찍했다.그중 가장 심한 대여섯 군데는 바로 가장 부드럽고 상처받기 쉬운 가슴과 배에 있었다. 당시 가해자의 악랄하고 지독한 심정을 알 수 있었다.유강후는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고, 풀었다가 또 쥐었다. 눈 속의 분노는 거의 사람을 죽여버릴 정도로 가득했다. 심지어 목의 핏줄까지 선명하게 보였다.그는 원래 온다연이 유씨 가문에서 단지 대접을 잘 받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리 크지 않은 유씨 저택에서 이렇게 많은 나쁜 자식들이 숨어있을 줄은 몰랐다.‘유씨 가문, 이젠 청소할 때도 됐어.’이때 밖에서 장화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도련님, 주 의사가
그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유강후와 눈이 마주쳤고 유강후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못처럼 깊고 차가운 눈동자를 보았다.쉰 살이 넘는 한의사는 깜짝 놀랐다. 살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한 사람의 눈에 이렇게 심한 분노가 있는 것을 본 적은 처음이었다.그는 유강후가 너무 걱정할까 봐 부드러운 어조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비록 심각하지만 치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죠. 한약을 먹고 몸조리를 하면 돼요. 우선 이 여성분 마음속의 울분을 풀어줘야 해요. 서양 의학에서는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이 있잖아요. 그쪽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좋죠.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한의학과 서양 의학을 조합해서 치료를 받으면 놀라운 효과가 있을 거예요.”그는 말하며 다른 한 손을 꺼내 온다연의 다른 손의 맥을 짚으려다 그녀의 손등에 난 상처를 발견했다.늙은 한의사는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이건 어떻게 된 거죠?”그는 온다연의 손을 천천히 잡아당겨 상처를 자세히 살펴보았다.“이건 뾰족한 것에 찔린 게 아니라 꽤 둔탁한 물건에 의해 손등이 관통된 것 같네요. 마치 여자의 하이힐 같은 그런 물건일까요?”말이 떨어지자마자 주위의 공기가 더욱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보니 유강후의 눈빛은 사람을 잡아먹을 듯 무서웠고 목에 핏줄이 불거져 나왔다.그러자 늙은 한의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도 어느 정도 눈치가 있었다. 유씨 가문의 일은 그와 같은 사람이 상관할 수가 없었다.늙은 한의사는 온다연의 손등 상처를 간단하게 처리하고 처방을 써서 유강후에게 건네주었다.“잠시 후에 사람을 보내 약을 가져다드릴게요. 물 세 그릇에 약재를 넣고 한 그릇이 될 때까지 달여서 복용하세요. 하루에 세 번 드시고, 일단 한 달 동안 먹여 보십시오.”그는 또 약상자에서 이미 달인 약 한 봉지를 꺼내 건네주었다.“뜨거운 물에 데워서 마시게 하면 일시적으로 통증을 완화할 수 있어요.”유강후는 약을 받아서 집사에게 건네주었다.떠나기 전에 늙은 한의사는 참지 못하고 고개
여전히 흰색 줄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던 그는 깔끔하고 고귀해 보였다. 어렴풋한 밤빛에 보이는 뒷모습만으로도 사람에게 압박감을 주었다.그의 얼굴을 볼 수 없어도 온다연은 지금 그의 표정을 상상할 수 있었다.냉담하고 감정 기복이 없고 감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눈빛일 것이다.온다연는 조금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그녀의 기억네는 화장실에서 쓰러졌는데 지금은 침대에 있었다.‘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온다연는 무의식적으로 자기 옷을 바라보았고 그러자 작은 얼굴은 금방 하얗게 변했다.입고 있었던 교복 치마는 사라졌고 그 대신 베이지색 실크 잠옷을 입고 있었다. 촉감이 매우 부드럽고 매끄러웠지만 온다연은 이 옷이 유강후가 자신에게 바꿔 입혔다고 생각하자 온몸이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게다가 위에서도 은은한 통증이 전해졌다.두 가지 느낌이 뒤섞이면서 온다연은 또 긴장한 나머지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이때 유강후가 전화를 끊고 방으로 들어갔다.온다연이 깬 것을 보고 침대로 걸어갔다.“깼어?”변함없이 잔잔하고 차가운 목소리였다.온다연은 감히 머리를 들어 그를 쳐다보지도 못한 채 침대 시트를 손에 꼭 쥐고 말했다.“네.”그사이에 온다 연은 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고 심지어 이마의 머리카락도 흠뻑 젖었다.유강후는 그녀의 축 처진 눈썹과 젖은 귀밑머리를 바라보다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지금은 좀 어때? 아직도 많이 아파?”그러자 온다연은 고개를 저었다.“삼촌, 저 안 아파요.”온화하고 부드러운 조명이 두 사람을 감싸고 있어 화기애애할 법도 한데 온다연은 지금 유강후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고 주변 공기마저 압박감이 가득한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몸에 있던 이불을 꽉 조이면서 자신을 단단히 감싸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제 옷은...”그녀는 방금 누가 자기에게 옷을 갈아입혔는지 알고 싶었지만 감히 직접 물어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말을 빙빙 돌려서 물어봤다.유강후는 당연히 온다연이
온다연은 눈이 반짝였고 찌푸렸던 미간이 살짝 펴졌다.그녀의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린 유강후의 눈빛은 많이 부드러워졌고 그는 온다연에게 한약을 건네며 말했다.“먼저 이 약을 먹어.”사실 온다연은 먼저 디저트를 먹은 다음 한약을 먹고 싶었다. 그래야 위가 덜 아프지만 지금 유강후가 이미 손에 약을 들고 있었으니 그녀는 먹을 수밖에 없었다.쓰고 매운 약 즙이 위로 흘러 들어가자 온다연은 곧 속이 메스껍고 토할 것 같았다.온다연은 구토하는 느낌을 억누르고 싶었지만 이런 생리적인 고통은 도저히 억누를 수 없었다.그녀는 혹시 침대에 토할 것 같아 얼른 입을 가리고 화장실로 쏜살같이 뛰어갔다.토하고 나니 온다연은 한결 편안해졌고 입을 헹구고 돌아서니 유강후가 문 앞에 서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이 방은 원래 크지 않았기에 화장실도 작은 편이었다. 유강후는 존재감이 워낙 컸기에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온다연에게 큰 압박감을 주었다.그녀는 유강후의 차갑고 어두운 눈동자를 보고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세면대에 몸을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일부러 토한 게 아니에요. 공복에 약을 먹는 건 너무 힘들어요.”유강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녀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온다연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입을 열었다.“그러면 먼저 가서 뭐 좀 먹어. 위가 좀 나아지면 다시 약을 먹으면 돼.”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다연아, 방금 네가 공복에 약을 먹으면 토한다고 나한테 미리 말했으면 나도 널 강요하지 않았을 거야.”온다연은 고개를 숙인 채 눈시울이 붉어졌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계화 디저트는 매우 달고 설탕에 절인 계란은 온다연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유강후가 바로 곁에서 있으니 온다연은 조금씩 먹어야 했다.온다연이 다 먹자 유강후는 그녀에게 휴지를 건네주며 말했다.“30분 후에 약을 먹어.”온다연은 유강후가 자신에게 휴지를 건네줄 줄은 몰랐기에 재빨리 휴지를 받으며 말했다.“삼촌, 고마워요.”
온다연은 유강후가 손등에 있는 붕대를 벗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는 궤짝 문에 부딪힌 곳을 살펴본 후 침대 머리맡에서 연고를 집어 들어 그녀에게 발라주었다.그러자 온다연은 부은 곳이 시원하고 편안해졌다.온다연이 미처 손을 움츠리기도 전에 유강후는 갑자기 그녀를 허공에 안아 올렸다.온다연은 깜짝 놀라서 그의 품에서 발버둥 치면서 살짝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삼촌...”유강후는 그녀를 안고 밖으로 걸어 나가면서 말했다.“움직이지 마.”그의 목소리에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온다연은 원래 그를 두려워했고 지금은 그의 품에 안겨있으니 긴장해서 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보이지 않는 족쇄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마치 맨땅에서 끝없는 촉수가 자라서 솟아올라 그녀의 팔다리를 감쌌고 감을수록 더욱 조여들고 점점 온몸을 휘감아 피와 살 속으로 들어가서 그녀가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느낌이 들었다.숨을 들이쉬자 온통 유강후의 몸에서 나는 냄새였다. 조금씩 그녀의 오장육부에 스며들어 마치 그녀의 유전자에 새겨질 듯이 짙고 강렬했다.온다연은 너무 놀라서 몸을 떨었고 필사적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이 치명적인 기운을 물리치려고 했다.유강후는 그녀를 안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온다연은 깃털처럼 가벼웠고 딱딱한 뼈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말랐다.유강후는 온다연을 안고 안방 욕실로 들어갔다.넓은 욕실 중앙에는 타원형 욕조가 놓여 있었고 이미 뜨거운 물이 놓여 있었다. 파란 물 위에는 부드러운 거품이 떠 있었고 공기 중에는 은은한 장미향이 났다.유강후는 허리를 굽혀 온다연을 욕조 안에 넣은 다음 그녀의 다친 손을 끌어내어 욕조 바깥에 걸쳤다.고개를 들고 나서야 온다연의 작은 얼굴이 붉게 질려 당황한 채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그는 눈살을 찌푸리고 그녀의 작은 턱을 움켜쥐고 강제로 입을 열게 했다.“숨을 들이쉬어.”온다연은 왜 숨을 들이쉬어야 하는지 몰랐다. 이곳은 수영장도 아닌데 굳이 숨을 참을 필요는 없었다.비록 이상하기는
하지만 이번엔 이미 늦었다. 유강후가 너무 강력한 나머지 온다연이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어떤 수를 써도 먹히지 않았다.그러나 온다연은 절대 그를 아저씨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단지 부끄러운 것뿐만이 아니라 촌수도 망가뜨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온다연의 대답을 듣지 못한 안심은 다시 한번 물었다.“다연아?”온다연은 허겁지겁 대답했다.“금방 나가요!”말을 마친 온다연은 유강후의 손을 꽉 깨물며 낮게 말했다.“비켜요, 나가야 하니까. 엄마가 진짜 들어와서 강 대표님이 여기 있는 걸 보기라도 한다면 그땐 강 대표님이 저희 아빠한테 맞아 죽을 거예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또 한 번 입맞춤으로 온다연의 입을 막았다.휘몰아치는 폭풍 같은 키스는 온다연의 속이 뒤틀리게 했고 그 소름 끼치는 감각은 몸으로 전해져 덜덜 떨기까지 했다.온다연은 쉴 새 없이 반항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고 유강후의 속박만이 더 심해질 뿐이었다.온다연이 대답이 없자 문밖에서는 안심이 다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다연아, 문 열어! 안 열면 사람 불러서 문 딸 거니까 그렇게 알아!”온다연은 너무 급해 난 나머지 땀까지 삐질삐질 새 나왔으나 유강후는 여전히 놓아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온다연은 그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밖에서 문손잡이를 돌리는 것을 발견한 온다연은 타오를 것 같은 얼굴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는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처럼 가냘픈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아저씨.”유강후는 그제야 온다연을 놓아주었다.온다연은 얼른 세면대에서 내려와 머리를 정리하고는 문을 열었다.문밖에 있던 안심은 한눈에 온다연이 어딘가 다름을 알아챘고 막 입을 열려던 찰나에 에어컨 아래에 걸려 있는 남자 셔츠와 정장 바지를 발견했다.그 순간, 안심은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안심의 눈빛은 딸의 묘하게 흐트러진 머리와 살짝 부은듯한 입술에 몇 초간 머물렀다. 그리고는 작게 한숨을 내뱉고 나긋나긋하게 말했다.“별일 없으면 됐어. 어서 가서 씻어, 엄마는
하지만 유강후를 화장실 안으로 밀어 넣기 전에 온다연은 그의 품속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유강후는 자신의 품으로 넘어진 온다연과 함께 화장실로 들어갔다.그때,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고 안심이 도착한 게 틀림없었다.온다연은 급한 마음에 짜증을 내며 말했다.“이거 놔요!”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온다연의 손을 잡고는 화장실 문을 발로 차 닫아버렸다.그리고는 온다연을 벽에 세우고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온다연은 먹혀들어 가는 소리를 내며 유강후에게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쳐 보았지만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이거 놔요, 읍...”유강후는 숨이 딸린 듯 온다연을 놓아주고는 잔뜩 불퉁해진 말투로 물었다.“아까 말하던 거 계속 말해봐요, 저번에 염 뭐라고요? 염지훈이 유나 씨 방에 왔다 갔나요?”온다연은 온 신경이 문밖에 쏠린 채 작게 말했다.“놔요, 엄마가 왔다니까요!”하지만 쉽게 놔줄 유강후가 아니었다. 유강후는 온다연은 번쩍 들어 올려 세면대 위에 앉히고는 망설임 없이 다시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그때, 이미 병실 안으로 들어온 안심은 딸이 보이지 않자 화장실로 향했다.“다연아?”온다연은 급해 나서 훌쩍이며 애를 써보았지만 손과 허리가 모두 유강후에 꽉 잡힌 상태라 움직이려야 움직일 수 없었다.안심은 걱정되어 다가와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다연아?”유강후는 그제야 온다연을 놓아주었다.온다연은 안심이 당장이라도 들어올까 봐 겁에 질려 얼굴이 빨개진 채로 작게 속삭이기 바빴다.“엄마, 저 안에 있어요.”안심은 걱정된다는 듯이 물었다.“다연아 어디가 불편한 거니?”온다연은 황급히 둘러댔다.“아니요, 저 괜찮아요.”안심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원래 비가 금방 내리기 시작할 때 오려고 했는데 네 사촌 언니한테 일이 좀 생겨서 지금에야 왔어. 아까 천둥소리에 놀랐지?”온다연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대답했다.“아니요... 읍...”유강후가 이번에는 더 격렬하게 입을 맞춰왔다.온다연은 숨이 딸려 기를 쓰고 유강후를 밀어
비바람이 열린 창문으로 불어 들어왔고 온다연은 갑자기 들이닥친 비바람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진짜 가려고요?”유강후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작게 대답했다.“저더러 가라면서요?”온다연은 말문이 막혔다.유강후 더러 가라고 한 건 맞지만 아직은 비바람이 거센 데다가 저기로 나갔다가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온다연은 다시 중얼거렸다.“안 가도 되고요...”유강후의 입꼬리가 매끈하게 휘어졌고 애써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아까는 저보고 가라더니, 자금은 또 가지 말라고 그러네요? 그래서 저 가요, 가지 말아요?”온다연은 귀가 빨개진 채 이를 깨물고는 말했다.“선 넘지 마세요. 전 이미 강 대표님을 가지 말라고 말렸어요. 그래도 가고 싶으면 가도 되고요.”말을 끝낸 온다연은 침대에 돌아누운 채 다시는 유강후를 보지 않았다.유강후는 옅은 미소를 머금고는 일부러 창문을 굳게 잠갔다.그 소리를 들은 온다연은 유강후가 정말 가버린 줄 알고 섬찟해서 얼른 몸을 돌려 정말 그가 가버렸는지 확인했다.하지만 유강후는 창가에 서서 온다연을 바라보고 있었다.온다연은 순간 유강후에 놀아난 것 같은 기분에 화가 나 고개를 홱 돌려 다시 누워버렸다.유강후는 그런 온다연에게 다가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유나 씨가 가지 말라고 한 거예요. 나중에 또 절 쫓아내면 그땐 유나 씨 말을 듣지 않고 혼낼 거예요!”온다연은 유강후의 젖은 옷이 떠올라 볼멘소리로 말했다.“젖은 옷이나 갈아입어요!”유강후는 작게 대답했다.“하지만 전 수건 말고는 다른 옷이 없는걸요. 나중에 또 제 행색 보고 뭐라고 하려고요?”온다연은 이를 꽉 깨물고는 귀까지 홧홧하게 달아오른 채로 말했다.“일단 갈아입어요. 젖은 옷을 어떻게 입고 있어요?”유강후는 재빠르게 아까의 차림으로 돌아왔다.고작 수건 하나를 걸친 채로 아무렇지 않게 온다연의 침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온다연은 눈썹을 꿈틀하고는 뭐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본인이 가지 말라고 잡은 것이니 더 옆으로 가서 앉으라고
온다연은 너무 머쓱한 나머지 유강후를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럼 사람을 시켜서 옷을 한 벌 가져오라고 하세요!”유강후는 창밖을 한번 보고는 말했다.“비가 이렇게나 많이 오는데 누구한테 부탁할까요? 문 앞으로 가져오라고 할까요?’온다연은 말문이 막혔다.문 앞에는 온통 아버지가 보낸 경호원들이었고 유강후가 창문을 통해 들어온 걸 알기라도 하면 유강후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온다연은 유강후의 옷을 가져올 방법만 생각했을 뿐, 유강후를 당장 방에서 내보낼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고민하는 온다연의 모습을 본 유강후가 말했다.“그만 해요. 전 단지 유나 씨와 함께 있어 주려고 온 것뿐이에요. 비가 그치면 바로 나갈게요. 그러니까 더 고민하지 않아도 돼요.”온다연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갈 때도 그런 꼴로 갈 수는 없잖아요. 옷을 에어컨 밑에 놔두는 건 어때요. 그럼 갈 때쯤이면 마를지도 모르잖아요.”유강후는 온다연의 말을 따랐다.온다연은 옷을 걸어두는 유강후를 보며 작게 말했다.“방금 엄청 이상한 꿈을 꿨어요. 꿈에서 강 대표님을 아저씨라고 불렀어요...”유강후는 순간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 같았고 가슴 한편이 시려왔다.아저씨...온다연이 그렇게 자신을 부르는 것을 들은 지도 너무 오래전 일이었다.“꿈에서 절 아저씨라고 불렀다고요?”“네, 꿈은 정말 이상한 곳 같아요. 온갖 일들이 다 일어나서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에요...”온다연은 얼굴을 붉히고는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전통 한옥이 있었는데 중간에 엄청나게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었어요. 한옥을 거의 다 가릴 정도로 엄청나게 큰 나무였어요. 그리고 집사 한 명이 있었는데 늘 얼굴을 찡그리고...”유강후는 온다연의 말에 몸을 돌렸다.“옛날 일이 생각난 거예요?”“옛날 일이요?”온다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썹을 찌푸렸다.“그곳이 제가 살던 곳인가요? 그럴 리가 없어요, 제 양부모님께서는 모두 평범한 분들이세요. 경원시의 전통 한옥을 찾아봤었는데 엄청 비싸던데요? 얼핏
“제, 제 침대에 오지 마세요...”온다연은 유강후가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겁에 질려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유강후는 온다연이 이불로 자신을 꽁꽁 싸맨 모습이 애벌레 같아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질 뻔했다.그 순간, 유강후는 그해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온다연은 유강후를 무서워했고 그가 욕실에서 나왔을 때 놀라서 밤새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었다.유강후는 지나간 날을 떠올리고는 씁쓸해졌다.비로소 시간이 흘렀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유강후는 턱 끝까지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운 얼굴로 조심스레 이불을 잡아당겼다.“이러고 있으면 숨 막히니까 이불 좀 걷어봐요.”온다연은 여전히 이불을 꽉 움켜쥔 채 볼멘소리를 하였다.“제 침대에 있지 말고 옆으로 가주세요!”유강후가 온다연의 이불을 걷으려고 이불에 손을 갖다 댄 순간 온다연이 말했다.“강 대표님, 계속 이러시면 앞으로는 강 대표님 안 볼 거에요!”유강후는 작게 웃고 침대에서 일어나 의자를 당겨다 온다연의 침대 옆에 앉았다.그가 침대에서 일어난 것을 느낀 온다연은 그제야 천천히 앉았다.하지만 이불을 걷은 순간, 온다연은 후회와 함께 재빨리 두 눈을 가려버렸다.“왜, 왜 옷을 안 입고 계세요?” 눈앞의 남자가 걸친 거라곤 허리에 두른 수건 하나가 전부였다. 탄탄하게 잘 빠진 역삼각형 몸매와 길게 쭉 뻗은 다리를 보고 있으려니 정말 가면 갈수록 가관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평소에 봐왔던 절제적이고 냉철한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지금의 모습은 누가 봐도 온다연을 유혹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온다연은 얼굴을 붉혔지만 역시나 참지 못하고 손가락 틈새로 유강후를 훔쳐보았다.아름다운 역삼각형 몸매와 자기주장이 강한 근육들은 정말이지 장관이었다.특히나 쩍쩍 갈라진 복근은 만지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할 정도였다.수건을 묶어 고정한 부분에는 조각해낸 듯한 장골과 잔뜩 성난 핏줄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채 마르지 않은 물방울이 이따금 수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때면 온다연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녀는 무려 임산부였다.게다가 그 남자의 품에 안겨 가냘픈 목소리로 아저씨를 찾기도 했다.남자는 그녀가 숨이 딸릴 정도로 입을 맞춘 것도 모자라 그녀에게 손을 쓰라고 강요하기까지 했다...그 꿈은 꽤 오랫동안 지속하였다. 바람이 사납게 불고 엄청난 천둥소리와 함께 내린 폭우가 쉼 없이 창문을 거세게 두드릴 때야 온다연은 몽롱한 상태로 잠에서 깨어났다.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본 광경은 키 큰 남자가 창가에서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었다.온다연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사람을 부르려던 찰나 그 남자가 다급히 제지했다.“부르지 말아요, 저예요!”낮은 목소리는 익숙했다.온다연은 잠시 멈칫한 끝에 남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그는 다름 아닌 꿈속의 그 남자였다!창문을 통해 들어온 것인지 의문이 가득하던 찰나 온다연의 인기척을 느낀 경호원이 밖에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아가씨,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 겁니까?”온다연은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아무 일도 아니에요!”경호원들은 여전히 걱정되어 물었다.“아가씨, 천둥소리에 놀라셨습니까? 같이 있어 줄 사람이라도 필요하십니까?”“필요 없다니까요!”“아가씨,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거셉니다. 문을 열어주시면 창문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는지 저희가 검사해드리겠습니다!”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필요 없다고 말했잖아요. 귀찮으니까 더 말 시키지 말아요!”온다연이 언성을 높이자 그제야 경호원들도 잠잠해졌다.유강후의 옷과 바지는 모두 반쯤 젖어있었고 머리카락에서도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유강후의 기세만큼은 가려지지 않았다.게다가 옷이 젖은 탓에 거의 보일락 말락 한 그의 탄탄한 몸매에 온다연은 얼굴이 붉어졌다.“강 대표님이 왜 창문으로 들어오는 거죠?”유강후는 창문을 닫고 몸을 돌려 온다연을 바라보며 물었다.“깼어요?”온다연은 여전히 유강후가 창문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다는 듯 말했다.“여긴 2층이라고요!”유강후는 여
남자는 안윤희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잡아채며 그녀의 뺨을 세게 때렸다.“평범한 사람이라고?”“안 아가씨, 10년 전 금우역에서 불을 지른 일을 기억하나? 내 얼굴 좀 봐. 이 흉터, 네놈들이 지른 불 때문에 생긴 거야!”남자의 눈에는 증오가 가득했다.“우리 부모님은 그저 평범한 농민이었어. 그들의 가장 큰 소원은 나를 잘 키워 공부를 시켜 성공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그분들은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부모였어. 아무 잘못도 없었는데, 너희는 지나가다가 웃는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그분들을 악의 화신이라 규정했지! 그러고는 우리를 집 안에 가둔 채 불을 질러 집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어. 우리 부모님은 필사적으로 날 품에 안으셨고, 덕분에 나는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어. 하지만 부모님은 그만 온몸이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았지.”“그분들이 무슨 죄가 있었지? 단지 못생겼다는 이유로, 살아갈 자격조차 없었다는 거야? 몇 년 동안 너희를 찾아 헤맸어. 그렇게 한 명씩 제거했지. 너희가 세상을 정화한다고? 난 너희 같은 악마들을 정화할 거다!”남자는 안윤희의 목을 세게 움켜쥐었고 두려움으로 일그러진 안윤희의 얼굴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너희들 정말 잘 숨어 있더구나. 한 놈을 찾는 데 꼬박 반년에서 일 년이 걸렸어. 그런데 오늘은 누가 너를 직접 내게 데려다주고 돈까지 준 거야.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이 있을 줄이야!”그는 안윤희를 거칠게 바닥에 내던지며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짓했다.“형님들, 배 위에서 고기 구경 못한 지 오래됐지? 오늘 마음껏 즐겨보자!”“저기요, 이 아가씨는 신국 안씨 가문의 큰 아가씨입니다.”“걱정하지 마. 방금 뉴스에서 이 아가씨가 이미 죽었다고 나왔어. 심지어 시신도 확인됐다고 하더라고. 그러니 이 여자는 그저 안씨 가문의 아가씨를 닮은 여자일 뿐이야.”사람들이 크게 웃으며 허리띠를 풀기 시작했다.안윤희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안 돼! 나는 안씨 가문의 큰딸이야! 너희가 날 건드리면 우리 이모부가
유강후는 진시현의 볼록하게 나온 배를 한 번 바라보며 웃음을 띠고 말했다.“얼마나 됐어?”진시현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거의 다섯 달 됐어요.”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배를 쓰다듬으며 덧붙였다.“움직이기도 해요.”유강후의 눈에 잠시 어두운 빛이 스쳤다. 예전에 자신의 아이도 딱 이 정도였을 때...유강후는 곧 미소를 짓고 로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로운, 대단하네. 이제 아빠가 됐구나. 결혼식 때 참석 못한 게 많이 아쉬웠는데 나중에 네 아들 태어나면 큰 선물로 보답할게.”항상 무표정하던 로운의 얼굴에 드물게 미소가 번졌다.“괜찮습니다. 이미 충분히 많은 걸 받았습니다.”유강후는 말했다.“전에 준 건 모두 준구 것이었지. 지난 몇 년 동안 잘 관리해서 자산을 두 배로 늘렸더라. 하지만 이제 아내도 있고 아이도 생겼으니 너 자신을 위해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그걸 나눠서 20% 지분을 네가 가져. 내가 네 아들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라고 생각하고.”로운은 잠시 망설이다가 뒤돌아 진시현의 볼록한 배를 몇 초간 바라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 대표님.”“며칠 동안 도련님을 데리고 가서 함께 지내고 싶습니다. 조상님께 향도 한 번 올리고요.”유강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똑똑한 아이이니 지금처럼 잘 키우면 성년이 되기 전에 양씨 가문으로 돌아가 일을 맡길 수 있을 거다. 데려가는 건 좋지만 아직은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물론입니다.”유강후는 다시 물었다.“내가 찾으라고 한 자료는 확인했어?”로운은 묶어둔 자료를 꺼내 유강후에게 건넸다.“이것은 성염 조직에 대한 정보입니다. 인원은 많지 않지만 굉장히 단결되어 있습니다. 한 번 목표로 삼으면 끈적한 반창고처럼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조직은 크게 두려워할 것은 없지만 상대하기엔 매우 불쾌한 존재입니다.”유강후는 자료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안윤희는 여기서
유강후는 마치 죽은 사람을 보듯 차갑고 무심한 시선으로 안윤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성염 조직, 너랑 무슨 관계야?”안윤희는 고개를 확 들어 올리며 눈빛에 불안함을 담고 대답했다.“무, 무슨 성염이요?”성염 조직은 국제적인 테러 집단으로 극단주의자들로만 이루어진 조직이었다. 그들은 불이 모든 것을 정화한다고 믿으며 자신들이 악으로 간주한 대상은 무엇이든 태워 세계를 정화하려 했다.그들의 활동은 선과 악을 가리지 않았고 그들의 눈에 악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정화의 대상이 되었다.이로 인해 암흑가뿐만 아니라 정계에서도 성염 조직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했다.유강후는 안윤희를 똑바로 응시하며 한 글자 한 글자 분명히 말했다.“네가 어떤 조직에서 왔든 상관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아둬. 만약 네가 온다연에게 손이라도 대려 한다면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거야. 너희 안씨 가문과 성염 조직 모두 비참하게 끝날 테니까.”안윤희는 고개를 숙이며 두 손을 꽉 쥐고 말했다.“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요.”유강후는 더는 대꾸하지 않고 뒤돌아 걸어 나갔다.안윤희는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천천히 일어섰다.방금 발에 차여 바닥에 나가떨어진 그녀는 무릎이 긁혀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통증을 느끼는 기색은 없었다.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사라져가는 유강후의 뒷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난 분명히 널 선택했어. 그런데 날 거부하고 그 재수 없는 여자만 원한 대가가 뭔지 제대로 보게 될 거야. 다연이가 그렇게 좋다면 두 사람 다 함께 끝장내주지.”“이모, 이모부. 저는 다연이를 해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애가 먼저 제 선택을 빼앗았어요. 뻔뻔한 사람은 다연이지 제가 아니에요. 그러니 저를 탓하지 마세요.”안윤희의 낮은 혼잣말은 복도를 스치는 바람 속에 흩어졌다. 그러나 그중 일부가 안심의 귀에 닿았다.안심은 다친 채 서 있는 안윤희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된 거니? 왜 이렇게 엉망이야?”안윤희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제가 실수로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