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연은 여전히 무표정으로 말했다.“그건 아닙니다. 저는 모든 것을 셋째 도련님의 뜻에 따릅니다.”나은별은 말을 하지 않고 억울한 표정으로 유강후를 쳐다봤다.유강후는 낯빛이 어두웠다.온다연이 헤어지자고 한 말이 바늘로 심장을 찌르는 듯 했다.비록 온다연이 아직도 자신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저 화가 나서 한 말일 거라는 것을 알지만 불쾌했다.이렇게 오래 접촉을 하면서 온다연의 성격이 겉으로 보이는 듯이 고분고분 말을 잘 듣고 나른한 성격이 아니라 실제로는 고집이 세다.여러 번 달아나는 건 물론이고 오늘 임혜린을 위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으니 이제 다른 일을 겪으면 어떤 사람을 놀라게 할 행동을 할지 모른다.여기까지 생각하고는 유강후의 눈에는 냉기가 가득했다.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장화연, 그 학교에 대해서 알아봐.”장화연이 무표정으로 대답했다.“평판이 몹시 나쁩니다.”유강후가 말을 하기 전에 나은별이 눈을 붉힌 채로 유강후를 쳐다봤다. 그 모습은 아주 불쌍해 보였다.“강후 씨, 다연 씨가 어려 보여도 20살이야. 아저씨라고 부른다고 해도 진짜 혈연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어떤 일은 강후 씨가 직접 관리하기도 불편하잖아. 여자 학교에 보내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으면 나를 따르게 하면 되잖아. 내가 얼마 동안은 강후 씨 대신 봐줄게. 제대로 가르치면서.”유강후는 대답하지 않았다.유강후는 낯빛이 어두운 채로 가만히 있다가 냉정한 어투로 말했다.“이 일은 후에 다시 말하는 거로 하자.”이건 유강후의 기분이 아주 더럽다는 뜻이다.나은별은 유강후를 오래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그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나은별의 눈에는 유강후는 자제력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화낼 때가 극소수였고 언제나 늘 차가운 모습이었다.하지만 이번엔 그 고아 여자애를 위해 화를 냈다.그뿐만 아니라 온다연을 지키려고 가족들하고 모순이 생겼다는 것도 들었다. 몹시 아끼고 있었다.나은별은 원래 믿지 않았다. 도저히 항상 냉정하고 차
나은별의 눈에 혐오감이 스쳐 지나갔다.부모님도 없는 사람이 감히 이 집에 들어오다니.진짜 자신이 본가 사람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나은별이 앞으로 걸어가 온다연을 찼으나 온다연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나은별은 불쾌해 또 세게 온다연을 두 번 찼다.여전히 반응이 없었다.방안은 불 정상적으로 너무 조용했다.나은별은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앉아서 온다연의 얼굴을 쳐다봤다.너무 예뻐서 모든 여자들이 질투를 할 만한 얼굴이었다.나은별은 눈빛이 삽시에 차가워졌다.사실 전에 온다연을 한두 번 본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어리고 출생이 비천해 거의 아무런 인상이 없었다. 그래서 며칠 전 온다연을 처음 봤을 때 알아보지 못했다.그때는 그저 여자애가 예쁘게 자랐다고만 생각을 했지 오늘 이렇게 자세히 보니 이 얼굴은 분명히 남자를 꼬시는 무기였다.피부는 하얗고 고와 나은별이 얼마를 줘도 사 올 수 없는 것이다.이 까만 머리카락은 머리숱도 많고 머릿결도 좋아 삭발을 밀어버리고 싶었다.나은별이 손을 뻗어 온다연의 얼굴을 살짝 다쳤더니 물이 묻었다.나은별은 그제야 온다연의 몸이 젖은 것을 발견했다.하지만 이 겨울에 유강후가 아무리 온다연을 싫어한다 한들 이렇게 젖은 옷을 입고 혼자 있게 할 리가 없다. 심지어 정신을 잃게 말이다.이건 분명히 땀에 젖은 것이다.나은별은 빨리 온다연의 상황을 검사해 봤다.손을 볼때 온다연의 새끼 손가락은 계란만큼 부어 있었다.나은별은 아무 말 없이 온다연의 손가락을 쳐다봤다.좀 시간이 흐르고 시선은 다시 온다연의 얼굴에 향했다.그 예쁜 얼굴이 너무 짜증이 났다. 나은별은 온다연의 얼굴을 때리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이렇게 이뻐서 무슨 쓸모가 있어. 그냥 천한 년이잖아.”이때 온다연의 눈초리가 움직이고는 살짝 눈을 떴다.누구인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나은별은 핸드폰 플래시를 껐다.나은별이 일어서며 온다연을 차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당신 아저씨가 잘못을 승인해도 쓸모없으니까 여기서 잘 반성하라고 말했어
장화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방으로 갔다.조금 뒤 주방에서 새로운 요리를 내어왔다.새우 고수 볶음이었다.장화연은 여전히 무표정으로 말했다.“오늘 새우 고수 볶음이 맛이 괜찮습니다. 아가씨 많이 드세요.”새우와 고수는 아주 나은별이 싫어하는 것이다. 나은별의 얼굴색이 변하더니 눈시울을 붉히고 낮은 소리로 울었다.“강후 씨, 나 손 아파. 병원 가자.”나른한 목소리는 억울한 감정을 제대로 발휘했다.유강후의 낯빛도 좋지 않았다. 차가운 눈빛으로 장화연을 보며 말했다.“장화연, 이번 연말 보너스는 없는 걸로 알아. 요즘 일을 어떻게 했는지 제대로 생각해 봐.”장화연은 여전히 무표정인 모습이었고 눈꺼풀도 움직이지 않았다.나은별이 일어섰다. 울어서 코끝이 빨개진 모습이 아주 억울해 보였다.“나 병원 좀 데려다줘. 강후 씨, 사람이 물어도 아파.”유강후는 일어나서 외투를 가지고 나은별과 함께 나갔다.두 사람이 나간 후, 장화연은 방문 앞에 왔다.노크를 하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아가씨, 셋째 도련님께서 나가셨는데 뭐 좀 드실래요?”온다연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장화연이 또 말했다.“배고프시면 문을 두드려보세요. 제가 먹을 걸 들여다 드릴게요.”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장화연이 한숨을 쉬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셋째 도련님 성격이 원래 이러세요. 고집부리지 마시고 좀만 고분고분 말 들으시면 고생 덜하실 수 있으세요.”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장화연이 머리를 젓고는 문 앞에서 좀 서 있다가 돌아갔다.온다연과 그동안 접촉을 하면서 어떤 성격인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생각보다 고집이 세고 화가 나면 말을 안 하고 사람을 물기도 한다.오늘 방에 갇혔으니 화가 더 나서 얼마 동안 가라앉지 않는 것도 정상이다.장화연은 밖으로 나가 아까 밖에 내놓은 해바라기꽃과 붓꽃을 다시 가지고 들어와 꽂기 시작했다.붓꽃을 다칠 때 아주 조심스러웠다. 마치 아주 귀중한 물건을 다루는 듯 했다.그러고 장화연은 공기청정기를 켜 공기를 정화
장화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상후는 이미 방안에 들어왔다.어두운 광선아래, 장화연이 바닥에 무릎을 절반 꿇은 채로 온다연을 자기 무릎에 기대게 하고 얼굴을 쳤다.“온다연 씨, 온다연 씨. 정신 차려보세요...”유강후의 심장은 덜컹했다. 앞으로 가서 온다연을 안았다.손을 온다연의 이마에 대니 열은 나지 않았지만 땀범벅이었다.유강후는 가슴이 아파왔다. 후회가 밀려왔다.몸을 보니 아침에 입은 흰색 티는 이미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이때, 장화연은 온다연이 누워있었던 바닥을 만져보더니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시더니 말했다.“땀이 많이 나서 바닥도 젖었습니다.”유강후의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뉘우침과 노여움이 뒤섞여 복잡한 마음이었다.뉘우침은 이렇게 오래 가둬웠으면 안 됐었다는 것이고 노여움은 온다연의 고집이 점점 더 세진다는 것이다. 온다연은 이 방안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인가.잘못했다는 말 한마디에 목숨도 앗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유강후는 온다연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온다연을 침대에 눕히고 온다연의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을 봤다.눈같이 하얀 얼굴이었다. 몸에 흐른 것이 땀이 아니라 피인 것 같았다.부끄러워하던 눈은 꾹 닫혀 있었고 평소에 흔들리던 눈초리는 움직이지 않았다.유강후는 온다연의 모습을 보고 말했다.“따뜻한 우유 갖고 오고 주 의사님 모셔 와.”말을 하고는 온다연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낮은 소리로 불렀다.“다연아.”온다연은 장소가 바뀐 것을 느꼈는지 눈을 천히 떴다. 눈에는 초점이 없어 보였고 그저 한 눈 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그 모습은 허약해 눈을 뜰 힘도 없어 보였다.유강후는 침대 끝에 앉아 온다연을 안아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이렇게 고집을 부려야겠어? 나랑 꼭 이럴 거야?”온다연은 대답이 없이 힘없이 머리를 유강후의 어깨에 기댔다. 다친 손가락은 더 부었고 이미 보랏빛이 돌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장화연이 따뜻한 우유를 갖고 왔다.유강후는
유강후는 당시 문이 무언가에 막혀 제대로 닫히지 않았던 것 같았다.그게 바로 온다연의 손가락이었다.그렇게 나른한 손이 원래도 작은 손이 문에 끼여 부러졌다는 것인가?극심한 고통에 그렇게 많은 땀을 흘린 것인가?아파서 정신을 잃은 것인가? 그 방안에서 하루를 누워있었던 것인가? 얼마나 아프면 그렇게 많은 땀을 흘린 것인가?얼마나 고집이 셌으면 아파 죽을 거 같아도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를 하지 않은 것인가.극단적인 감정이 유강후의 가슴을 치고 있었다.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M 국에서 몇십, 몇백조의 투자가 눈앞에서 물 건너가려고 해 안씨 가문이 상대편에게 넘어가기 직전에도 당황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인생에서 처음으로 잃을지도 모르는 당황감을 느꼈다.안된다.절대 안 된다. 온다연은 자신이 지배할 수밖에 없고 자신의 손아귀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여기까지 생각을 하고 유강후의 눈에는 냉기가 흘렀다. 집착적이었고 무서웠다.유강후는 온다연을 침대에 눞히고 잠옷을 꺼내 갈아입히고는 담요로 온다연을 감싸고 안고 나갔다.이권은 유강후가 온다연을 안고 나오는 것을 봤다. 유강후의 얼굴에는 얼음장마냥 차가웠다.술을 마신 원인으로 유강후의 걸음은 안정하지 않았다. 이권이 앞으로 가서 온다연을 받으려고 했다.“셋째 도련님, 제가 할게요.”“다치지 마. 당장 운전하고 병원으로 가.”유강후의 말투는 아주 냉철했다.이권은 깜짝 놀랐다.유강후를 오랫동안 따르면서 처음으로 유강후가 이토록 냉철한 어투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즉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하지만 이권은 더 묻지 않고 차를 몰고 왔다.병원에 간 후, 의사가 이 상황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뼈가 끼여 끊어진 시간이 너무 오래됐고 분쇄성 골절이라 부분적 조직이 이미 다 파괴돼 잘라내는 것을 권유했다.유강후는 화를 내지 않고 그저 과실의 모든 사람에게 한마디 했다.“만약 온다연의 손가락을 고치지 못하면 모든 과실에 모든 사람들의 손가락이 있지 못할거예요.”지난번 온다연이 찬바람
밤 12시, 온다연에게 미열 정상이 나타났다. 이건 감염의 징조다.유강후의 눈빛은 더욱 음울해졌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나 그 차가운 눈빛만 봐도 한 과실의 사람들을 소름 돋게 한다.새벽 3, 4시쯤 되어 신구시에서 의학교류회에 참석하고 있던 국제에서 유명한 정형외과 전문가가 경원시에 도착했다.수술은 그제야 정상적으로 진행됐다.극히 복잡하고 세밀한 수술 후, 전문가는 유강후에게 손가락은 지켰지만 쓰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그리고 불구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 온다연의 새끼손가락이 전처럼 영활하게 움직일 수 없다고 기본 상 확정할 수 있었다.유강후는 이 말을 듣고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온다연이 수술 후 얼마 동안 자고 있었다면 유강후는 얼마 동안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운 것이다.온다연이 깨어나 장화연이 유강후에게 알리러 갔을 때 테라스에는 담배꽁초가 가득했다.장화연은 침묵을 하다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셋째 도련님, 온다연 씨 깨어나셨습니다. 들어가 보실 겁니까?”유강후는 즉시 온다연을 보러 가지 않고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직접 온다연이 좋아하는 계화 디저트를 만들었다.유강후는 거의 주방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인들은 유강후가 주방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잘리는 게 아닌가 하고 긴장하고 있었다.병원에 도착했을 때 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디저트가 식고 나서야 들어갔다.들어가 보니 온다연은 이미 깨어있었다. 손에는 붕대를 감고 있었고 얼굴은 창백한 채로 침대 머리에 기대있었다.유강후가 들어온 것을 보고도 온다연은 다른 반응 없이 아이패드에 나오고 있는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하룻밤 사이에 유강후는 온다연이 더 마른 것 같았다.얼굴에 겨우 살이 조금 오른 살이 하룻밤 사이에 다 빠지고 턱이 뾰족해 진듯했다.유강후가 입을 열기 전에 온다연은 아이패드를 치우고 유강후가 가져온 도시락통을 받고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저씨, 감사합니다.”다친 손은 왼손이어서 오른손은 정상적으로 쓸 수 있었다.유강후는 도시락을 들고 있었고 온다연은 숟가락을
유강후가 화를 낼까 봐 무서웠는지 온다연이 말했다.“다음에는 꼭 도움을 청할게요.”온다연의 말소리는 아주 작았다. 마치 이번 일이 별로 큰일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유강후의 마음을 찔렀다.유강후는 마음이 아팠으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유강후는 온다연을 보며 물었다.“계속 정신을 잃고 자고 있었어?”온다연은 창밖을 쳐다보고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잘 모르겠어요. 중간에 누군가 들어왔던 거 같아요.”온다연이 고개를 돌려 유강후를 쳐다봤다.“아저씨가 저 보러 들어오셨어요?”눈동자는 까맸고 아주 맑아 아주 무고해 보였다.유강후가 온다연을 보며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은별이가 들어갔는데 네가 물었어.”온다연의 눈에 이상한 빛이 스쳐 갔으나 금세 평정심을 되돌아왔다.온다연이 고개를 떨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다 제가 못나서 그래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당시 정신이 흐릿해서 누가 들어왔는지도 기억이 안 나고 제가 누굴 물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요.”온다연이 유강후를 바라봤다. 자신이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을 알아챈 듯했다.“나은별 씨는 어떠신가요? 많이 엄중해요? 아저씨, 전 진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왜 제가 물었는지도 모르겠고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유강후는 온다연을 보며 마음은 점점 무거워 났다.유강후가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의사 선생님이 괜찮대.”온다연은 계속 유강후를 쳐다봤다.“아저씨가 병원에 데리고 가셨어요? 엄중하대요?”유강후가 말했다.“봤어. 의사 선생님이 괜찮대. 그냥 파상풍 주사 맞았어.”온다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으면 다행이에요.”귀하신 나은별 아가씨께서 자기절로 자신을 물고 파상풍 주사를 맞다니. 자신은 손가락이 끊어지고 하루 동안 갖춰있었는데 끊어진 손가락을 밟히다니.이게 바로 대비다.운명은 참 불공평하다.온다연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아저씨 나은별 씨하고 결혼하실 거예요?”유강후의 손이 멈칫하더니 손끝으로 온다연
유강후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심장이 당기는 듯한 고통이 깊은 곳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유강후는 침묵하다가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네 손인지 몰랐어...”한 번도 사과를 해본 적이 없는 경원시 도련님이 또 침묵하다가 난생처음으로 사과를 했다.“다 내 잘못이야.”온다연이 가볍게 웃었다. 눈빛은 붕대를 감고 있는 손을 스쳐 지나갔다.그 위에는 아직도 피가 나고 있었다.그런 뼈를 가르는 듯한 고통은 이번 생에 제일 고통스러운 경험이 아닐 수도 있다.하지만 온다연에게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게 했다.하는 말마다 다 거짓말이다. 자기한테 모든 걸 주겠다고 하고 아껴주겠다고 하고 자기한테 미래를 함께하겠다고 한 사람이다.유강후는 당시 그런 친밀한 자세로 다정한 애정 행위를 했었다.한번, 또 한 번 온다연에게 키스를 하며 꼭 껴안고 흥분했을 때는 몸이 떨리고 힘이 세 유강후의 품에서 으스러질 거 같았다.당시 온다연은 유강후가 자신에게 어느 정도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온다연의 마음은 다시 깊은 늪으로 빠졌다.온다연의 운명이 원래 하천했지만 유강후가 직접 칼을 쥐고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더러 온다연에게 칼을 꽂게 해서는 안 됐다.그리고 그 한 발을 나은별이 밟은 것이지만 유강후가 눈감아 준 것이다.유강후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렇게 온다연을 마음대로 짓밟아도 된다는 것인가?유강후는 나은별보다 더 나빴다.온다연은 도대체 뭐인 건가?그냥 하천한 애완견? 기분이 나쁘면 손가락을 끊여도 되고 좋아하는 사람은 온다연의 손가락을 세게 밟아도 된다는 것인가?이 일들이 유강후가 허락한 것이 아니면 누가 감히 할 수 있겠는가?이제 와서 왜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는 건가?온다연의 눈에는 차가움이 스쳐 지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온다연이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아저씨. 안 아파요.”유강후는 온다연이 아래를 쳐다보는 눈과 입가에 연한 웃음이 아주 눈부셨다.안 아
온다연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가느다란 두 다리를 꽉 조였다.그러자 유강후는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타일렀다.“남편한테 보여주는 게 뭐가 부끄러워요.”온다연은 목소리마저 떨렸다.“못생겼어요. 보지 마요.”“예뻐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예뻐요.”말하면서 유강후는 손에 힘을 주고 그녀의 다리를 벌렸다.분홍빛을 띄며 부드러워야 할 그곳은 이미 빨갛게 부어있었고 찢겨진 흔적도 보였다.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느껴졌다.후회가 밀려온 유강후는 가슴이 미어졌다.“약 가지러 갈게요.”이미 수없는 애정 행각을 했음에도 온다연은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부끄러워서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그만 봐요. 아까 의사 선생님이 약 발라줬어요. 그리고 이제는 많이 안 아파요.”유강후는 몸을 일으키더니 밖으로 나갔다.다시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에는 작은 연고가 들려있었다.“지난번에 상처에 쓰고 남은 건데, 다른 약보다 효과가 좋을 거예요.”유강후가 직접 약을 발라주려고 하자 온다연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혼자 할게요.”그걸 두고 볼 리가 없었던 유강후는 그녀를 달래며 침대에 눕혔고 직접 약을 발라줬다.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나자 나쁜 손은 또 이리저리 만져대기 시작했다.거친 손길에 온다연은 얼굴이 상기된 채로 그를 세게 걷어찼다.그렇게 꽁냥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새벽이 되고서야 유강후는 그녀를 껴안고 잠이 들었다.다음날 온다연이 눈을 떴을 땐 이미 점심이 되었고 그녀는 깨어나자마자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예전에는 아무리 늦게 잠들어도 유강후는 꼭 정해진 시간에 일어났기에 늘 늦잠 자는 건 그녀뿐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일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보다 더 깊이 잠들었다.옆에서 툭툭 밀었지만 유강후는 좀처럼 눈을 뜨지 않았다.게다가 손에 느껴지는 그의 열기에 깜짝 놀랐고 유강후는 고열인 게 틀림없었다.온다연은 다급하게 집사를 불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와 강현미가 부리나케 달려왔다.강현미는 아들의
온다연은 한숨을 쉬며 조용히 말했다.“왜 이렇게 속이 좁은지 이해가 안 되네요. 두 사람이 싸울 때 들었어요. 예전에 우리가 안 좋은 일로 헤어졌다면서요?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줘요.”유강후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목소리마저 가라앉았다.“염 대표가 질투심에 눈이 멀어 헛소리 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요. 우린 헤어진 적 없어요. 그 사람이 우리 사이를 이간질해서 유나 씨를 빼앗아 가려고 했어요. 지금까지 살려둔 건 자비를 베푼 거죠.”온다연은 생각에 잠겼다.“우리 두 사람 사이에 꽤 많은 일이 있었나 봐요? 끼어들 기회가 엿보여서 이간질했던 게 아닐까요?”유강후가 답했다.“어차피 앞으로는 기회가 없을 거예요.”“아니, 예전에도 기회를 준 적은 없어요. 내가 잠깐 방심한 틈을 타서 유나 씨를 데려갔거든요. 이제는 우리 사이에 끼어들 그 어떤 기회도 주지 않을 거예요.”“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걸 알면서 뻔뻔하게 끼어든 파렴치하고 비열한 놈이죠.”이때 온다연이 말했다.“예전의 기억을 되찾고 싶어요. 강 대표님이 실력 있는 최면사를 소개해주면 안 돼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유강후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많이 고통스러울 거예요. 그래서 유나 씨가 기억을 되찾는 걸 원치 않아요.”그러나 온다연의 태도는 확고했다.“아니요.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다해도 내가 직접 겪은 그때만의 추억이잖아요. 강 대표님과 관련된 일이라면 좋든 나쁘든 놓치고 싶지 않아요.”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가볍게 입을 맞췄다.“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아이가 태어나고 건강을 회복한 후에 기억을 되찾아도 늦지 않아요. 이런 일로 아이한테 영향을 미치면 안 되잖아요.”유강후는 아이를 좋아하는 온다연의 성격을 고려해 일부러 이런 얘기를 꺼냈다. 아이가 생긴다면 과거의 안 좋은 일이 생각나도 결국 아이를 지키기 위해야 곁에 머물 테니까.그 말을 들은 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렸다.“차라리 아이가 없을 때 기억을 되찾는 게 좋지
강현미를 불러오려던 집사를 온다연이 나서서 말렸다.“별일 아니니까 얘기하지 마요.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약만 잘 바르면 금방 나을 거예요. 늦은 시간에 찾아가는 건 괜히 실례일 수도 있어요.”온다연은 도우미들을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기에 있는 사람들만 알았으면 좋겠어요. 누가 물어보면 그냥 넘어져서 다친 거라고 얘기해요. 무슨 뜻인지 알겠죠?”아무도 감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었다.온다연은 이제 의심할 여지 없이 강씨 가문의 안주인이다. 더군다나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 유강후의 태도를 지켜봐 왔기에 온다연의 명령을 거역하는 건 불가능했다.다만 겉보기에 연약해 보이는 온다연이 일 처리할 때만은 매우 냉정하고 단호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게 한편으로는 신기했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온다연은 유강후에게 약을 발라주려고 다가갔다. 그러나 유강후는 고민도 없이 그녀를 안아 올려 침대로 내던졌다.부드러운 애무나 키스는 건너뛰고 유강후는 매우 거칠게 그녀를 다뤘다.그들은 신체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었기에 아무런 준비동작 없이 이어진 갑작스러운 행동에 온다연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러나 평소와 달리 유난히 확고한 유강후는 거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온다연은 유강후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하여 예전처럼 아프다고 소리치는 게 아닌 오히려 힘을 풀고 자신의 몸을 열어 그를 꽉 껴안았다.전혀 자제하지 않는 유강후 때문에 온다연은 끝내 피를 보고 말았다.어쩔 수 없이 한밤중에 여의사를 불러왔다.의사는 침대에 묻은 피를 보고 놀란 기색이 역력했으나 감히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온다연에게 조심스럽게 약을 발라주며 최근 며칠 동안은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충고했다.온다연은 아파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유강후를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그제서야 유강후도 정신을 차렸다.3년 전 온다연을 잃었던 두려움과 무력감이 염지훈이 그녀를 데려간 순간 다시 솟구쳐
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경호원이 건넨 약상자를 받아들며 그에게 다가갔다.“여긴 너무 어두워요. 차에서 발라줄게요.”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여기서 해줘요.”사실 그는 별장의 큰 유리창을 통해 온다연이 염지훈에게 약을 발라주는 걸 목격했다.그는 질투심으로 이미 미쳐가고 있었다.‘염지훈... 분명히 일부러 그런 거야. 보기에는 심각해도 솔직히 얼마 다치지도 않았잖아? 하여튼 꾀병은.’경호원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려는 유강후를 말리지 않았다면 염지훈은 지금쯤 이미 병원에 누워있었을 것이다.그는 입가에 묻은 피를 만지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아파요.”온다연은 쪼그리고 앉아 다친 부위를 주의 깊게 살폈다.염지훈이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여러 군데가 파랗게 멍들었고 피부가 벗겨진 곳은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었다.다친 걸 보니 가슴이 미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아픈 걸 잘 참는 유강후가 고작 이런 작은 상처에 아프다고 호소하니 온다연은 어이가 없었다.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얼굴에 난 상처를 조심스럽게 치료해 줬다.“이제 됐으니까 가요. 남은 건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서 의사 선생님한테 처리해 달라고 해요.”유강후가 손을 뻗어 힘을 가하자 온다연은 그의 다리 위에 주저앉았다.곧바로 턱을 잡더니 격렬한 키스가 이어졌다.그는 마치 분노를 표출하듯 온다연을 물어뜯었고 피비린내를 맛보고 나서야 그녀를 풀어주었다.온다연은 찢긴 자신의입술을 만지며 차갑게 말했다.“미쳤어요?”그러자 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안고 주차장으로 걸어갔다.도착하자마자 온다연을 차에 앉히더니 문을 닫은 후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화들짝 놀란 그녀는 재빨리 유강후의 손을 붙잡았다.“정말 미쳤어요? 밖이잖아요.”유강후는 전혀 멈추지 않고 계속하여 옷을 찢었다.불과 몇 초 만에 입고 있던 옷이 전부 벗겨졌다.온다연은 너무 화가 나서 그를 두 번이나 걷어찼지만 유강후는 이를 무시하고 셔츠를 벗어 그녀에게 입혔다.“나이도 많은 사람이 왜 이렇
재회가 됐든 다시 사랑에 빠지든, 온다연에게는 돌아갈 길이 없다.마음은 하나뿐이기에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도 단 한 명뿐이다.“감정이 격해진 것 같네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봐요. 지금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으니까 생각이 정리되면 다시 얘기해요.”온다연은 붕대를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이만 가볼게요. 푹 쉬어요.”염지훈은 고통스럽게 눈을 감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유강후가 그렇게 좋아?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다 믿을 정도로? 두 사람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긴 해?”온다연은 잠시 생각한 후 그에게 답했다.“지금은 믿고 싶어요. 과거에 안 좋은 일이 있었다해도 피할 생각은 없어요. 만약 우리 둘 사이에 많은 오해가 있었다면 하나씩 풀어갈 거예요. 용서할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때가서 고민해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요.”그녀는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하지만 우리 둘 사이가 어떻게 되든 제 마음에는 지훈 씨가 없어요.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지훈 씨랑 결혼하는 건 너무 파렴치한 행동이잖아요. 지훈 씨는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날 자격이 있어요.”온다연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레스토랑에서 어떤 여자랑 밥 먹는 걸 봤어요. 그 여자분은 지훈 씨를 많이 좋아해요.”염지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온다연의 손을 잡았다.“뭘 들은 거야?”온다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무것도 듣지 못했어요. 다만 지훈 씨를 바라보는 눈빛에 담긴 애정과 존경은 정확하게 봤어요. 그분은 지훈 씨를 좋아하고 있어요.”염지훈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무 사이 아니야. 좋아하는 감정도 없고. 다연아, 내 마음속에는 오직 너뿐이야.”온다연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계속 이러면 더 이상 지훈 씨랑 얘기하기는 힘들 것 같네요. 저도 많이 혼란스러운 상태예요. 당분간 진정하고 괜찮아지면 다시 만나서 얘기해요.”염지훈은 그녀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유강후한테 가고 싶어? 난 동의 못 해. 강씨 가문으로
“지훈 씨, 미안해요. 잔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훈 씨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요. 솔직히 약혼 날짜를 미룰까도 고민해 봤는데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훈 씨는 그저 저한테 가족이나 오빠 같은 사람...”“듣기 싫으니까 그만해.”염지훈은 거칠게 말을 자르고선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갔다.“온다연, 너 진짜 잔인하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잖아. 널 위해서 헌신적으로 노력한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왜 유강후는 등장만으로도 마음을 사로잡는 건데? 왜 그 사람 말 한마디에 흔들리냐고. 도대체 왜?”온다연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박씨 가문과 진씨 가문의 약혼은 깬 건 그녀가 맞았기에 배신자라고 비난하고 질책해도 말없이 그걸 견뎌야만 했다.“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내 마음을 통제할 수가 없었어요...”“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다야?”고통을 이기지 못한 염지훈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불과 몇 초 만에 그의 손은 피투성이가 되었다.온다연은 재빨리 그를 말렸다.“지훈 씨, 이러지 마요.”그러자 염지훈은 그녀를 끌어안으며 흐느꼈다.“그냥 잠깐 자리를 비운 것뿐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어? 예전의 온다연은 어디 갔냐고. 돌려내. 돌려내라고.”“내가 아는 말 잘 듣고 착한 온다연은 다른 사람과 쉽게 사랑에 빠질 그런 여자가 아니야.”그는 힘껏 온다연을 밀쳤다.“넌 온다연이 아니야. 나가.”“나가라고.”뒤로 밀려난 온다연은 문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고 곧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새빨간 피가 그녀의 하얀 뺨을 적시고 나서야 염지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는 온다연을 안아서 소파에 앉힌 뒤 약상자를 찾아와 지혈해 주려고 애썼다.그런데 온다연이 그를 제지했다.“됐어요. 지훈 씨가 더 심하게 다쳤잖아요. 제가 해줄게요.”온다연은 연고와 붕대를 집어들고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과 몸에 난 상처에 약을 발랐다.피투성이 된 손을
유강후는 주먹으로 문을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꺼져.”가장 소중한 걸 잃은 듯한 괴로운 느낌이 또다시 밀려왔고 그는 문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경호원들은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멀지 않은 곳에서 유강후를 지키고 있었다.그들의 눈에 비친 유강후는 우리에 갇힌 짐승이 따로 없었다. 평소 단호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미래 그룹의 대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이때 유강후가 대뜸 물었다.“두 사람... 안에서 뭘 하고 있을까?”경호원이 입을 열었다.“저희가 알고 있는 사모님은 선을 지키는 분입니다. 아마 염 대표님과의 약혼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을 겁니다.”유강후의 곁에서 오랜 세월 일하면서 그들은 두 사람이 어떤 풍파를 겪었는지 전부 지켜봤다. 더욱이 지난 3년 동안 유강후가 보낸 힘든 시간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그러기에 그에게 온다연이 어떤 존재인지는 더없이 잘 알고 있다.하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으니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편하게 지내지 못할 테니까.그 시각 별장 안.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염지훈은 온다연을 덥석 끌어안았다.온다연은 몸부림치지 않고 그가 자신을 껴안도록 내버려두었다.하지만 염지훈의 힘은 점점 더 세졌고 마치 그녀를 몸속으로 밀어 넣을 듯 꽉 껴안고 놓지 않았다.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숨쉬기 힘들 정도가 되어서야 온다연은 입을 열었다.“이제 됐어요?”염지훈은 그녀를 놓아주더니 잔뜩 지쳐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다연아, 기억이 돌아온 거야?”온다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예전의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염지훈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기억이 돌아온 것도 아닌데 왜 유강후를 만나는 거야?”염지훈은 자신이 목격한 상황을 믿을 수가 없어 계속하여 현실을 부정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느껴질 정도였다.“말도 안 돼. 내가 떠난 지 얼마 됐다고 유강후를 만나는 거야? 심지어 저 사람 하나 믿고 여기까지 왔어?”온다연
온다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염지훈은 믿기지 않았다.“기억이 떠오른 게 아니라면 유 대표랑은...”“여기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네요. 잠깐 자리를 옮겨서 얘기할까요?”그러자 염지훈이 답했다.“나 근처에 사니까 그쪽으로 가자.”염지훈이 지내는 곳은 불과 이곳에서 몇백 미터 떨어져 있었고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앞장선 염지훈의 뒤에는 온다연이 있었고 유강후는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유강후가 온다연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마다 염지훈은 돌아서서 사나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곤 했다.극도로 어색한 분위기나 한참이나 이어졌다.온다연은 어쩔 수 없이 두 사람과 비슷한 거리를 두었다.별장에 다다르자 염지훈은 유강후를 가로막았다.“그쪽은 환영받는 사람이 아니라서...”그러자 유강후는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염 대표님의 체면을 생각해서 대화를 할 수 있게 허락한 거예요. 잊지 마요. 우리 사이에 끼어든 건 그쪽이니까.”주먹을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염지훈의 손에서는 뼈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고 당장이라도 유강후를 갈기갈기 찢을 기세였다.“무슨 낯짝으로 다연이의 곁에 있는 거죠? 그럴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다연이를 어떻게 찾았는지 알려줄까요?”“강 대표님이 바꿔치기...”“닥쳐.”분노를 이기지 못한 유강후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염지훈의 손목을 잡았다.“상황을 이용한 비열한 놈이 누군데 감히 날 탓해?”“나랑 다연이 사이에 아무리 큰 문제가 있더라도 그건 우리 둘이 해결할 거야. 너 같은 제 3자가 끼어들 곳은 없어.”제 3자라는 말은 염지훈의 분노 버튼을 눌러버렸다. 결국 그는 또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렸다.“쓰레기 같은 놈. 너랑 네 가족들이 다연이한테 했던 짓을 생각해 봐. 넌 평생 용서받지 못할 거야.”온다연이 그의 팔을 잡으며 말린 덕분에 주먹은 유강후에게 떨어지지 않았다.“지훈 씨, 얘기할 생각 없으면 이만 가볼게요.”염지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차갑게 말했다.“저 인간
유강후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차갑게 입을 열었다.“염 대표?”‘염지훈이 왜 여기에 있지?’염지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비꼬는듯한 어조로 말했다.“레스토랑에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새로운 부인과 오붓한 데이트라도 하고 계셨나?”유강후의 시선은 그를 넘어 온다연에게 향했다.온다연도 염지훈을 본 게 분명하다.그녀는 일어나서 가볍게 입을 열었다.“지훈 씨.”부드러운 목소리에 염지훈은 날벼락을 맞은 듯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다가 갑자기 돌아섰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앞의 사람을 바라봤다.“다연이?”온다연은 그저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맞아요.”염지훈은 시선은 오랫동안 그녀에게 머물렀고 여전히 이곳에서 온다연을 만나게 믿기지 않은 모양이었다.“정말 다연이야?”온다연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그러자 유강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쪽으로 와요.”염지훈은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몸을 홱 돌리더니 사나운 눈빛으로 유강후를 매섭게 노려봤다.“또 그쪽이네요. 어떻게 찾았어요?”유강후는 그를 차갑게 바라보며 눈에 적의가 번쩍였다.“다연이는 처음부터 내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염 대표님이 제멋대로 숨겼잖아요. 어떻게 감히...”말이 끝나기도 전에 염지훈은 분노하며 달려들더니 유강후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쳤다.“짐승만도 못한 게 무슨 낯짝으로 다연이를 찾아와?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넌 다연이 곁에 있을 자격이 없어.”유강후는 일부러 고개를 기울여 주먹을 맞았다.그러고선 달려드는 경호원들에게 소리쳤다.“물러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절대 움직이지 마. 이건 우리 둘 사이의 원한이야.”그 말에 경호원들은 할 수 없이 뒤로 물러섰다.유강후는 외투를 벗어 차에 던지더니 곧바로 주먹을 날렸고 염지훈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냈다.두 남자는 실력이 엇비슷해서 싸우기만 하면 목숨을 걸었고 잠깐 사이에 모두 부상을 입었다.온다연은 싸움이 점점 심해지자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고 달려들었지만 곧바로 경호원에게 붙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