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가 우유를 들고 꽃방으로 오고 있었다. 손잡이에 손을 올리자마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문이 꽉 닫히지 않았던지라 벌어진 문틈으로 꽃방 안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온다연의 몸은 작은 쪽배가 파도를 만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고 가느다란 목을 뒤로 젖히고 있었다. 그녀는 다소 고통스러워 보였고 파도 같은 그를 감당하기 벅차 보였다.흐느끼는 소리와 애원하는 소리가 섞여 거친 숨소리와 함께 방안 가득 울려 퍼졌다. 듣는 사람마저 마음 아프게 말이다.집사는 일관된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곤 조용히 문을 닫아주었다.얼마나 지났을까, 유강후는 자신의 옷으로 온다연을 꽁꽁 감싼 뒤 안아 올려 안방으로 갔다.끝내 끓어오르는 욕구를 억누르지 못하고 심하게 대해버린 것이다.지난번에 방문했었던 의사가 온다연의 상태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지난번에 분명 말씀드렸잖아요. 조심해야 한다고요. 그런데 왜 또 이런 상태가 된 거죠?”그녀는 엄숙한 표정으로 유강후를 보았다.“아무리 연인 사이라고 해도 절제할 줄 알아야죠. 온다연 씨 몸이 이렇게나 허약한데 번마다 과하게 이러시면 매일 통증을 달고 살지 않겠어요?”유강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앞으론 조심하죠.”이 말을 끝으로 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사는 연고를 남겨두고 떠나버렸다.유강후가 온다연에게 연고를 발라주려 할 때 온다연은 거칠게 반항했다. 아마 다시 그가 두려워진 듯했다.하지만 이번에 유강후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를 제압한 뒤 강제로 약을 발라주었다.빨갛게 부어버린 그곳과 온몸 가득한 키스 마크에 유강후는 다소 후회되었다.그러나 그 후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사라지고 당연하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다.그녀는 반드시 그에게 적응해야 한다. 그에겐 매일 자신을 피하는 그녀를 기다려줄 인내심이 없으니까.약을 바른 뒤 그는 온다연을 살살 달래며 알약과 우유를 마시게 한 뒤 재웠다. 그는 그제야 안방에서 나와 서재로 왔다.서
온다연은 시선을 내리깔고 한참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난 나은별 씨 것을 빼앗을 생각해 본 적 없어. 내 목적만 이루면 알아서 떠날 거야.”임혜린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유강후가 널 놓아줄 것 같아?”온다연이 말했다.“응, 놓아줄 거야. 내가 질리면 당연히 버릴 거야. 나은별 씨와 아저씨는 서로 운명의 상대니까 무조건 결혼할 거고.”이 말을 꺼냈을 때 온다연은 가슴이 저리면서 답답해졌다.그녀는 꼭 혼잣말하는 것처럼 말을 이었다.“아저씨는 그냥 내가 재밌으니까, 궁금하니까 호기심 때문에 날 곁에 두는 거야. 시간이 지나면 날 버리게 될 거야.”임혜린은 미련이 가득 남은 그녀의 모습을 보곤 고개를 저었다.“뭐가 어찌 되었든 나은별을 조심해. 그 여자는 지금 유강후가 그저 널 데려다 키우는 거로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아직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던 거야. 그 여자가 만약 너랑 유강후 사이를 알게 된다면 그땐 무슨 짓을 할지도 몰라.”그녀는 이내 온다연의 손을 잡았다.“다연아, 난 네가 너무 걱정돼. 차라리 여기서 벗어나. 내가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줄게. 다연아, 주한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온다연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아니, 주한을 괴롭혔던 사람 전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고 복수할 거야!”그녀의 모습에 임혜린은 자신이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한숨을 내쉬었다.“어휴, 원한이 가득하네. 유강후가 네가 주한의 복수를 위해 이용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어쩌려고 그래. 그때가 되면 유강후가 널 죽일까 봐 무섭단 말이야!”온다연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시선을 내리깔며 나직하게 말했다.“괜찮아, 난 상관 안 해. 복수만 할 수 있다면 아저씨가 날 죽여도 괜찮아.”두 사람을 침묵했다.한참 후 온다연이 입을 열었다.“혜린아, 나 대신 주희를 잘 챙겨줘. 난 앞으로 주희를 챙겨줄 수 없을 것 같으니까.”임혜린이 말했다.“알았어.”온다연은 뭔가 떠오른
한이준과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사이였기에 유강후의 성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유강후는 감정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만약 심사가 조금이라도 뒤틀린다면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그가 서재에 발을 들인 뒤로 유강후의 손에선 담배가 끊이질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한이준도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리곤 눈썹을 꿈틀대며 물었다.“말해 봐, 무슨 일인데. 왜 네 손에서 담배가 끊이지 않는 거지?”유강후의 표정은 아주 담담해 속을 알 수 없었다.“그냥 사소한 일이야.”한이준은 그의 소매를 보았다.소매 사이로 전에 온다연이 깨물었던 흔적이 보였다. 상처가 아직 완전히 낫지 않는 듯했지만 유강후는 마치 전리품이라도 되듯 대놓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있었다.한이준은 이내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놀려댔다.“온다연 성격이 만만치 않은가 보네. 네 팔을 흉이 날 때까지 깨물다니 말이야. 혼내기는 했어?”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모금 빨고 나니 담배는 어느새 꽁초만 남아 버렸다.꽁초를 재떨이에 버린 뒤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랑 임혜린 체격 차이가 아주 크던데. 궁합이 맞긴 하냐?”한이준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귀를 의심하기도 했다.예전부터 과묵하고 남녀 사이의 일에 관심이라곤 하나도 없던 냉담한 친구가 지금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으니 말이다.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그는 꾹 참았다.“꽤 괜찮아. 왜, 너랑 온다연은 궁합이 잘 안 맞나 봐?”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방금보다 더 싸늘해졌고 또 담배를 꺼내 피워댔다.한이준은 특수 부대에서 그와 함께 훈련하던 때가 떠올랐다. 유강후와 함께 샤워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그의 것을 본 적이 있었다.그때 그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유씨 가문의 셋째 아들은 엘리트였을 뿐 아니라 몸도 아주 훌륭했다.그의 시선은 어느새 유강후의 바지로 내려갔다. 그러더니 웃음을 터뜨렸다.한이준은 웃으며 말했
유강후는 싸늘한 눈빛으로 임혜린을 보았다.그는 매일 도망만 치는 임혜린이 온다연의 곁에 오래 붙어 있으면 온다연에게 안 좋은 것을 알려주리라 생각했다.온다연의 친구이지 않았다면, 한이준의 여자친구이지 않았다면 임혜린을 이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을 것이다.그의 목소리는 아주 싸늘했다.“한이준, 네 여자나 잘 관리해.”한이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말을 하려던 순간 온다연이 왔다.온다연은 임혜린의 팔을 꼬옥 잡으며 말했다.“혜린아, 이러지 마. 난 괜찮아. 아저씨는 나한테 아주 잘해줘.”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임혜린은 그녀의 말이 들릴 리가 없었다.온다연의 팔을 뿌리치며 바로 서재 안으로 달려갔다.그러나 두어 걸음 만에 바닥에 넘어진 온다연을 발견했다. 온다연은 어딘가에 부딪힌 듯 이마를 붙잡고 있었다.유강후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얼른 성큼성큼 다다다 온다연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물었다.“부딪혔어?”말을 마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내리며 확인했다.온다연의 하얀 이마에 빨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심지어 조금 까진 것 같기도 했다.그의 눈빛이 차가워지며 서서히 고개를 돌려 임혜린을 보았다.한기가 느껴지는 유강후의 시선을 받은 임혜린은 등골이 서늘해졌다.그렇다고 해서 두려워하며 주저앉을 사람이 아니었다. 마음속 가득 들어찬 공포를 억누르며 걸음을 옮겼다.발을 뻗은 순간 한이준이 그녀를 붙잡았다.“가자, 집에.”임혜린은 유강후를 노려보았다.“왜 다연이를 그렇게 대하는 건데! 왜 범죄자 취급하면서 집안에 가둬두느냐고! 넌 꼭 천벌을 받을 거야!”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접었다. 그의 눈동자엔 한기가 서려 있었다.한이준은 정말로 화가 난 듯한 친구의 모습에 얼른 임혜린은 둘러업고 나가버렸다.임혜린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다. 자신을 둘러업은 한이준을 때렸지만 건장한 한이준에게 그녀의 주먹은 그저 솜방망이 수준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점차 멀어져 갔다.온다연은 임혜린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다시 고개를 돌려 유
온다연의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살짝 떨렸다. 그녀는 시선을 내리깔며 두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가려버렸다.유강후의 옷을 꽉 잡고 있던 그녀는 다소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저 피곤해요. 몸도 아프고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작은 얼굴을 그의 어깨에 비비적거리며 애교를 부렸다.“오늘은 너무 무서웠다고요!”다소 서러움이 묻어난 그녀의 목소리에 유강후의 마음이 누그러졌다.아침에 그는 결국 이성의 끈을 놓고 끓어오르는 욕구대로 그녀를 다뤘기에 결국 다치게 했다. 그 탓에 그는 지금까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게다가 자꾸만 두 사람의 궁합이 좋지 않다는 의사에 말이 떠올라 자꾸만 화가 치밀었다.하지만 겉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참아야 했다.특히 온다연이 자신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이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그는 지금까지 살면서 원하는 것이 있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가져다주었다. 무엇을 원하든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산처럼 쌓아주면서 선물했고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온다연은 아니었다. 온다연은 원해도 가질 수 없었고 잡아먹으려고 해도 잡아먹을 수 없었다.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이었고 겨우 그녀를 잡아먹었건마는 결국 다치게 하고 말았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다행히 그녀는 얌전했다. 아프면 그에게 찾아와 응석을 부리기도 했다.이렇게 생각하니 그의 어투도 다소 부드러워졌다.“앞으로 임혜린과는 친하게 지내지 마. 임혜린은 널 나쁘게 물들일 거야.”온다연은 그의 목에 얼굴을 파묻으며 나긋하게 말했다.“가끔 만나는 것도 안 돼요? 혼자 집에 있으면 엄청 답답하다고요.”유강후가 코웃음을 쳤다.“내가 매일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거야?”온다연의 목소리가 작아졌다.“하지만 저한테 친구도 필요한걸요.”유강후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구월이가 있잖아. 구월이로 부족하면 한 마리 더 키워도 돼.”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품에서 벗어나 몸을 틀어 가버리려 했
꼭 맹수가 자신의 영역에 영역 표시를 하는 것처럼 낙인만 찍으면 그가 좋아하는 것이든 아니든 다른 사람은 절대 가질 수 없고, 그가 버리기 전까지 절대 다른 사람의 손을 타서도 안 되었다.그랬기에 온다연의 말은 유강후의 역린을 건드린 것과 마찬가지였다.그는 온다연의 턱을 꽉 잡으며 찬 바람이 쌩쌩 부는 목소리로 말했다.“날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당장 네가 방금 한 말 취소해!”온다연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하얀 손은 이미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마침 손바닥에 있던 상처를 자극하게 되어 피가 새어 나왔다.유강후는 이런 그녀의 모습에 목에 핏대를 세울 정도로 화가 났다.그는 이미 화를 참고 있었다. 최대한 그녀의 목을 조르지 않도록 말이다.가느다란 그녀의 목은 그가 조금만 힘을 주어도 부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싸늘한 얼굴로 그녀를 보며 턱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곤 한 글자씩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온다연, 방금 한 말을 취소하라고 했어.”온다연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며 입술에 이가 박힐 정도로 앙다물고 있었다.유강후는 그녀를 빤히 보았다. 숨소리가 거칠어진 것을 보아 분노를 억누르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다.이때 온다연이 작게 말했다.“아저씨는 약속을 안 지키잖아요. 안 아프게 할 거라면서 아프게 하고, 친구도 못 만나게 하고. 그럴 거면 아저씨랑 안 사귈 거예요! 우리 헤어져요!”작고 나른한 목소리엔 뾰족뾰족한 가시도 있었다.기죽은 목소리지만 온다연의 고집은 아주 셌다.유강후는 핏대를 세우며 눈을 가늘게 접은 채 그녀를 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호리호리한 허리를 확 잡더니 어깨에 대롱대롱 둘러업었다.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온다연, 내가 그동안 너무 오냐오냐해줬더니 아주 그냥 기어오를 생각만 하지? 감히 내 앞에서 그딴 말을 지껄여?!”온다연은 그의 어깨에서 부단히 발버둥을 쳤다.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에 그녀는
방은 크지 않았지만, 조명을 켜지 않아 아주 어두웠다.온다연은 그날 밤이 떠올랐다. 번개가 내리치며 비가 세차게 내리던 그날 밤, 그는 그녀를 온천방에 가두어 버렸다.그녀의 눈빛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아저씨는 나한테 벌줄 자격 없어요! 자격 없다고요!”유강후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 그녀를 들어 방 한가운데 놓아주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잘못했어, 안 했어.”온다연은 울먹였다.“아저씨는 나한테 벌을 내릴 자격이 없다고요! 아저씨를 미워할 거예요!”유강후는 더욱 화가 났다. 그의 목소리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어느새 떨리고 있었다.“또 내 앞에서 헤어지자는 말을 할 거야?”온다연은 두려우면서도 화가 났다. 머릿속이 하얘진 그녀는 생각도 해보지 않고 말을 내뱉었다.“아저씨랑 함께 있고 싶지 않아요.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에요!”“다들 나만 괴롭히는 나쁜 사람들이에요!”뒷걸음질을 치던 그녀는 문을 잡고 바로 도망치려 했다.그런데 도망치기도 전에 유강후에게 또 잡혀버렸다.그는 그녀의 팔을 잡은 뒤 방 안에 있던 작은 소파에 던지듯 앉혔고 거칠어진 숨소리를 내면서 말했다.“그래, 그러면 여기에서 잘 반성하고 있어. 네가 뭘 잘못했는지 반성하고 나면 꺼내줄 거야!”말을 마친 뒤 바로 밖으로 나갔다.온다연도 따라 나가려고 얼른 일어나 뛰어갔다.유강후는 다시 그녀를 잡아 소파에 앉혔다.“잘 생각해. 네가 뭘 잘못했는지. 반성하고 나면 내가 풀어줄 거야.”그는 바로 나가버렸다.온다연은 문이 닫히기 전에 어떻게든 나가보려고 달렸다. 그런데 유강후는 쾅 소리를 내며 매정하게 닫아버렸다.그녀의 손사락이 끼어버리고 말았다.엄청난 통증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뭐든 참고 보는 성격이었던지라 그녀는 끙 소리를 내며 이번에도 참아버렸다.문밖에 있었던 유강후는 자신이 평생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문이 잘 닫히지 않았다는 생각에 열어 다시 닫을 생각이었다.그가 문을 연 순간
말을 마친 유강후는 바로 거실로 발을 옮겼다.그는 가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절대 문 열어주지 마! 사람 시켜서 문 앞을 지키고 있으라고 해. 온다연의 입에서 잘못했다는 말이 나오면 나한테 보고해!”장화연은 고개를 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점심이 되어서도 온다연은 문을 두드리거나 말을 하지 않았다.그녀가 가만히 있을수록 유강후의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집안에 감도는 분위기도 싸늘해져 도우미들은 숨을 쉬는 것조차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이때 나은별이 왔다.집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집안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후 웃는 얼굴로 장화연에게 물었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왜 집안의 분위기가 이렇게나 싸늘하고, 집안에 웃는 사람 한 명도 없는 거예요?”장화연은 나은별에게 기본적인 예의만 지켰다. 다만 그녀의 얼굴엔 한결같이 표정이 없었다.“도련님께서 기분이 많이 안 좋으십니다.”나은별은 서재 쪽을 힐끗 보았다. 그리고 이내 시선을 돌려 현관에 있던 귀여운 실내화를 보았다.신발장 위엔 분홍색의 가방도 있었다.그녀의 안색이 변했다.고개를 돌려 얼른 집안을 둘러보았다.집안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현관 쪽엔 유강후가 아끼던 도자기가 있었고 벽에 걸린 것은 전부 가치가 몇십억 하는 그림이었다.집안에 배치된 가구도 장인이 직접 만든 가구였다.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지만, 그녀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손을 뻗어 현관 쪽에 있던 도자기를 만지면서 벽에 걸려있는 유명한 작가의 그림을 보았다.그러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이 그림은 어디서 가져온 거죠? 색상이 너무 튀잖아요. 이 집안이랑 하나도 어울리지 않으니까 당장 가서 버려요!”“그리고 이건 또 무슨 꽃이죠? 붓꽃인가요? 냄새가 역겨우니까 이것도 가서 버려요!”그녀는 자신이 꼭 이 집안의 안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했다.장화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이 그림과 꽃은 전부 도련님께서 사 오신 겁니다. 매일 꽃을 갈지요. 그리고 붓꽃 냄새는 역겹지
온다연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가느다란 두 다리를 꽉 조였다.그러자 유강후는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타일렀다.“남편한테 보여주는 게 뭐가 부끄러워요.”온다연은 목소리마저 떨렸다.“못생겼어요. 보지 마요.”“예뻐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예뻐요.”말하면서 유강후는 손에 힘을 주고 그녀의 다리를 벌렸다.분홍빛을 띄며 부드러워야 할 그곳은 이미 빨갛게 부어있었고 찢겨진 흔적도 보였다.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느껴졌다.후회가 밀려온 유강후는 가슴이 미어졌다.“약 가지러 갈게요.”이미 수없는 애정 행각을 했음에도 온다연은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부끄러워서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그만 봐요. 아까 의사 선생님이 약 발라줬어요. 그리고 이제는 많이 안 아파요.”유강후는 몸을 일으키더니 밖으로 나갔다.다시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에는 작은 연고가 들려있었다.“지난번에 상처에 쓰고 남은 건데, 다른 약보다 효과가 좋을 거예요.”유강후가 직접 약을 발라주려고 하자 온다연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혼자 할게요.”그걸 두고 볼 리가 없었던 유강후는 그녀를 달래며 침대에 눕혔고 직접 약을 발라줬다.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나자 나쁜 손은 또 이리저리 만져대기 시작했다.거친 손길에 온다연은 얼굴이 상기된 채로 그를 세게 걷어찼다.그렇게 꽁냥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새벽이 되고서야 유강후는 그녀를 껴안고 잠이 들었다.다음날 온다연이 눈을 떴을 땐 이미 점심이 되었고 그녀는 깨어나자마자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예전에는 아무리 늦게 잠들어도 유강후는 꼭 정해진 시간에 일어났기에 늘 늦잠 자는 건 그녀뿐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일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보다 더 깊이 잠들었다.옆에서 툭툭 밀었지만 유강후는 좀처럼 눈을 뜨지 않았다.게다가 손에 느껴지는 그의 열기에 깜짝 놀랐고 유강후는 고열인 게 틀림없었다.온다연은 다급하게 집사를 불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와 강현미가 부리나케 달려왔다.강현미는 아들의
온다연은 한숨을 쉬며 조용히 말했다.“왜 이렇게 속이 좁은지 이해가 안 되네요. 두 사람이 싸울 때 들었어요. 예전에 우리가 안 좋은 일로 헤어졌다면서요?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줘요.”유강후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목소리마저 가라앉았다.“염 대표가 질투심에 눈이 멀어 헛소리 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요. 우린 헤어진 적 없어요. 그 사람이 우리 사이를 이간질해서 유나 씨를 빼앗아 가려고 했어요. 지금까지 살려둔 건 자비를 베푼 거죠.”온다연은 생각에 잠겼다.“우리 두 사람 사이에 꽤 많은 일이 있었나 봐요? 끼어들 기회가 엿보여서 이간질했던 게 아닐까요?”유강후가 답했다.“어차피 앞으로는 기회가 없을 거예요.”“아니, 예전에도 기회를 준 적은 없어요. 내가 잠깐 방심한 틈을 타서 유나 씨를 데려갔거든요. 이제는 우리 사이에 끼어들 그 어떤 기회도 주지 않을 거예요.”“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걸 알면서 뻔뻔하게 끼어든 파렴치하고 비열한 놈이죠.”이때 온다연이 말했다.“예전의 기억을 되찾고 싶어요. 강 대표님이 실력 있는 최면사를 소개해주면 안 돼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유강후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많이 고통스러울 거예요. 그래서 유나 씨가 기억을 되찾는 걸 원치 않아요.”그러나 온다연의 태도는 확고했다.“아니요.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다해도 내가 직접 겪은 그때만의 추억이잖아요. 강 대표님과 관련된 일이라면 좋든 나쁘든 놓치고 싶지 않아요.”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가볍게 입을 맞췄다.“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아이가 태어나고 건강을 회복한 후에 기억을 되찾아도 늦지 않아요. 이런 일로 아이한테 영향을 미치면 안 되잖아요.”유강후는 아이를 좋아하는 온다연의 성격을 고려해 일부러 이런 얘기를 꺼냈다. 아이가 생긴다면 과거의 안 좋은 일이 생각나도 결국 아이를 지키기 위해야 곁에 머물 테니까.그 말을 들은 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렸다.“차라리 아이가 없을 때 기억을 되찾는 게 좋지
강현미를 불러오려던 집사를 온다연이 나서서 말렸다.“별일 아니니까 얘기하지 마요.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약만 잘 바르면 금방 나을 거예요. 늦은 시간에 찾아가는 건 괜히 실례일 수도 있어요.”온다연은 도우미들을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기에 있는 사람들만 알았으면 좋겠어요. 누가 물어보면 그냥 넘어져서 다친 거라고 얘기해요. 무슨 뜻인지 알겠죠?”아무도 감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었다.온다연은 이제 의심할 여지 없이 강씨 가문의 안주인이다. 더군다나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 유강후의 태도를 지켜봐 왔기에 온다연의 명령을 거역하는 건 불가능했다.다만 겉보기에 연약해 보이는 온다연이 일 처리할 때만은 매우 냉정하고 단호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게 한편으로는 신기했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온다연은 유강후에게 약을 발라주려고 다가갔다. 그러나 유강후는 고민도 없이 그녀를 안아 올려 침대로 내던졌다.부드러운 애무나 키스는 건너뛰고 유강후는 매우 거칠게 그녀를 다뤘다.그들은 신체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었기에 아무런 준비동작 없이 이어진 갑작스러운 행동에 온다연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러나 평소와 달리 유난히 확고한 유강후는 거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온다연은 유강후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하여 예전처럼 아프다고 소리치는 게 아닌 오히려 힘을 풀고 자신의 몸을 열어 그를 꽉 껴안았다.전혀 자제하지 않는 유강후 때문에 온다연은 끝내 피를 보고 말았다.어쩔 수 없이 한밤중에 여의사를 불러왔다.의사는 침대에 묻은 피를 보고 놀란 기색이 역력했으나 감히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온다연에게 조심스럽게 약을 발라주며 최근 며칠 동안은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충고했다.온다연은 아파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유강후를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그제서야 유강후도 정신을 차렸다.3년 전 온다연을 잃었던 두려움과 무력감이 염지훈이 그녀를 데려간 순간 다시 솟구쳐
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경호원이 건넨 약상자를 받아들며 그에게 다가갔다.“여긴 너무 어두워요. 차에서 발라줄게요.”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여기서 해줘요.”사실 그는 별장의 큰 유리창을 통해 온다연이 염지훈에게 약을 발라주는 걸 목격했다.그는 질투심으로 이미 미쳐가고 있었다.‘염지훈... 분명히 일부러 그런 거야. 보기에는 심각해도 솔직히 얼마 다치지도 않았잖아? 하여튼 꾀병은.’경호원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려는 유강후를 말리지 않았다면 염지훈은 지금쯤 이미 병원에 누워있었을 것이다.그는 입가에 묻은 피를 만지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아파요.”온다연은 쪼그리고 앉아 다친 부위를 주의 깊게 살폈다.염지훈이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여러 군데가 파랗게 멍들었고 피부가 벗겨진 곳은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었다.다친 걸 보니 가슴이 미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아픈 걸 잘 참는 유강후가 고작 이런 작은 상처에 아프다고 호소하니 온다연은 어이가 없었다.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얼굴에 난 상처를 조심스럽게 치료해 줬다.“이제 됐으니까 가요. 남은 건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서 의사 선생님한테 처리해 달라고 해요.”유강후가 손을 뻗어 힘을 가하자 온다연은 그의 다리 위에 주저앉았다.곧바로 턱을 잡더니 격렬한 키스가 이어졌다.그는 마치 분노를 표출하듯 온다연을 물어뜯었고 피비린내를 맛보고 나서야 그녀를 풀어주었다.온다연은 찢긴 자신의입술을 만지며 차갑게 말했다.“미쳤어요?”그러자 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안고 주차장으로 걸어갔다.도착하자마자 온다연을 차에 앉히더니 문을 닫은 후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화들짝 놀란 그녀는 재빨리 유강후의 손을 붙잡았다.“정말 미쳤어요? 밖이잖아요.”유강후는 전혀 멈추지 않고 계속하여 옷을 찢었다.불과 몇 초 만에 입고 있던 옷이 전부 벗겨졌다.온다연은 너무 화가 나서 그를 두 번이나 걷어찼지만 유강후는 이를 무시하고 셔츠를 벗어 그녀에게 입혔다.“나이도 많은 사람이 왜 이렇
재회가 됐든 다시 사랑에 빠지든, 온다연에게는 돌아갈 길이 없다.마음은 하나뿐이기에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도 단 한 명뿐이다.“감정이 격해진 것 같네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봐요. 지금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으니까 생각이 정리되면 다시 얘기해요.”온다연은 붕대를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이만 가볼게요. 푹 쉬어요.”염지훈은 고통스럽게 눈을 감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유강후가 그렇게 좋아?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다 믿을 정도로? 두 사람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긴 해?”온다연은 잠시 생각한 후 그에게 답했다.“지금은 믿고 싶어요. 과거에 안 좋은 일이 있었다해도 피할 생각은 없어요. 만약 우리 둘 사이에 많은 오해가 있었다면 하나씩 풀어갈 거예요. 용서할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때가서 고민해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요.”그녀는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하지만 우리 둘 사이가 어떻게 되든 제 마음에는 지훈 씨가 없어요.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지훈 씨랑 결혼하는 건 너무 파렴치한 행동이잖아요. 지훈 씨는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날 자격이 있어요.”온다연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레스토랑에서 어떤 여자랑 밥 먹는 걸 봤어요. 그 여자분은 지훈 씨를 많이 좋아해요.”염지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온다연의 손을 잡았다.“뭘 들은 거야?”온다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무것도 듣지 못했어요. 다만 지훈 씨를 바라보는 눈빛에 담긴 애정과 존경은 정확하게 봤어요. 그분은 지훈 씨를 좋아하고 있어요.”염지훈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무 사이 아니야. 좋아하는 감정도 없고. 다연아, 내 마음속에는 오직 너뿐이야.”온다연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계속 이러면 더 이상 지훈 씨랑 얘기하기는 힘들 것 같네요. 저도 많이 혼란스러운 상태예요. 당분간 진정하고 괜찮아지면 다시 만나서 얘기해요.”염지훈은 그녀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유강후한테 가고 싶어? 난 동의 못 해. 강씨 가문으로
“지훈 씨, 미안해요. 잔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훈 씨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요. 솔직히 약혼 날짜를 미룰까도 고민해 봤는데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훈 씨는 그저 저한테 가족이나 오빠 같은 사람...”“듣기 싫으니까 그만해.”염지훈은 거칠게 말을 자르고선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갔다.“온다연, 너 진짜 잔인하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잖아. 널 위해서 헌신적으로 노력한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왜 유강후는 등장만으로도 마음을 사로잡는 건데? 왜 그 사람 말 한마디에 흔들리냐고. 도대체 왜?”온다연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박씨 가문과 진씨 가문의 약혼은 깬 건 그녀가 맞았기에 배신자라고 비난하고 질책해도 말없이 그걸 견뎌야만 했다.“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내 마음을 통제할 수가 없었어요...”“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다야?”고통을 이기지 못한 염지훈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불과 몇 초 만에 그의 손은 피투성이가 되었다.온다연은 재빨리 그를 말렸다.“지훈 씨, 이러지 마요.”그러자 염지훈은 그녀를 끌어안으며 흐느꼈다.“그냥 잠깐 자리를 비운 것뿐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어? 예전의 온다연은 어디 갔냐고. 돌려내. 돌려내라고.”“내가 아는 말 잘 듣고 착한 온다연은 다른 사람과 쉽게 사랑에 빠질 그런 여자가 아니야.”그는 힘껏 온다연을 밀쳤다.“넌 온다연이 아니야. 나가.”“나가라고.”뒤로 밀려난 온다연은 문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고 곧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새빨간 피가 그녀의 하얀 뺨을 적시고 나서야 염지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는 온다연을 안아서 소파에 앉힌 뒤 약상자를 찾아와 지혈해 주려고 애썼다.그런데 온다연이 그를 제지했다.“됐어요. 지훈 씨가 더 심하게 다쳤잖아요. 제가 해줄게요.”온다연은 연고와 붕대를 집어들고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과 몸에 난 상처에 약을 발랐다.피투성이 된 손을
유강후는 주먹으로 문을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꺼져.”가장 소중한 걸 잃은 듯한 괴로운 느낌이 또다시 밀려왔고 그는 문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경호원들은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멀지 않은 곳에서 유강후를 지키고 있었다.그들의 눈에 비친 유강후는 우리에 갇힌 짐승이 따로 없었다. 평소 단호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미래 그룹의 대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이때 유강후가 대뜸 물었다.“두 사람... 안에서 뭘 하고 있을까?”경호원이 입을 열었다.“저희가 알고 있는 사모님은 선을 지키는 분입니다. 아마 염 대표님과의 약혼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을 겁니다.”유강후의 곁에서 오랜 세월 일하면서 그들은 두 사람이 어떤 풍파를 겪었는지 전부 지켜봤다. 더욱이 지난 3년 동안 유강후가 보낸 힘든 시간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그러기에 그에게 온다연이 어떤 존재인지는 더없이 잘 알고 있다.하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으니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편하게 지내지 못할 테니까.그 시각 별장 안.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염지훈은 온다연을 덥석 끌어안았다.온다연은 몸부림치지 않고 그가 자신을 껴안도록 내버려두었다.하지만 염지훈의 힘은 점점 더 세졌고 마치 그녀를 몸속으로 밀어 넣을 듯 꽉 껴안고 놓지 않았다.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숨쉬기 힘들 정도가 되어서야 온다연은 입을 열었다.“이제 됐어요?”염지훈은 그녀를 놓아주더니 잔뜩 지쳐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다연아, 기억이 돌아온 거야?”온다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예전의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염지훈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기억이 돌아온 것도 아닌데 왜 유강후를 만나는 거야?”염지훈은 자신이 목격한 상황을 믿을 수가 없어 계속하여 현실을 부정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느껴질 정도였다.“말도 안 돼. 내가 떠난 지 얼마 됐다고 유강후를 만나는 거야? 심지어 저 사람 하나 믿고 여기까지 왔어?”온다연
온다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염지훈은 믿기지 않았다.“기억이 떠오른 게 아니라면 유 대표랑은...”“여기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네요. 잠깐 자리를 옮겨서 얘기할까요?”그러자 염지훈이 답했다.“나 근처에 사니까 그쪽으로 가자.”염지훈이 지내는 곳은 불과 이곳에서 몇백 미터 떨어져 있었고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앞장선 염지훈의 뒤에는 온다연이 있었고 유강후는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유강후가 온다연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마다 염지훈은 돌아서서 사나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곤 했다.극도로 어색한 분위기나 한참이나 이어졌다.온다연은 어쩔 수 없이 두 사람과 비슷한 거리를 두었다.별장에 다다르자 염지훈은 유강후를 가로막았다.“그쪽은 환영받는 사람이 아니라서...”그러자 유강후는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염 대표님의 체면을 생각해서 대화를 할 수 있게 허락한 거예요. 잊지 마요. 우리 사이에 끼어든 건 그쪽이니까.”주먹을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염지훈의 손에서는 뼈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고 당장이라도 유강후를 갈기갈기 찢을 기세였다.“무슨 낯짝으로 다연이의 곁에 있는 거죠? 그럴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다연이를 어떻게 찾았는지 알려줄까요?”“강 대표님이 바꿔치기...”“닥쳐.”분노를 이기지 못한 유강후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염지훈의 손목을 잡았다.“상황을 이용한 비열한 놈이 누군데 감히 날 탓해?”“나랑 다연이 사이에 아무리 큰 문제가 있더라도 그건 우리 둘이 해결할 거야. 너 같은 제 3자가 끼어들 곳은 없어.”제 3자라는 말은 염지훈의 분노 버튼을 눌러버렸다. 결국 그는 또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렸다.“쓰레기 같은 놈. 너랑 네 가족들이 다연이한테 했던 짓을 생각해 봐. 넌 평생 용서받지 못할 거야.”온다연이 그의 팔을 잡으며 말린 덕분에 주먹은 유강후에게 떨어지지 않았다.“지훈 씨, 얘기할 생각 없으면 이만 가볼게요.”염지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차갑게 말했다.“저 인간
유강후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차갑게 입을 열었다.“염 대표?”‘염지훈이 왜 여기에 있지?’염지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비꼬는듯한 어조로 말했다.“레스토랑에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새로운 부인과 오붓한 데이트라도 하고 계셨나?”유강후의 시선은 그를 넘어 온다연에게 향했다.온다연도 염지훈을 본 게 분명하다.그녀는 일어나서 가볍게 입을 열었다.“지훈 씨.”부드러운 목소리에 염지훈은 날벼락을 맞은 듯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다가 갑자기 돌아섰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앞의 사람을 바라봤다.“다연이?”온다연은 그저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맞아요.”염지훈은 시선은 오랫동안 그녀에게 머물렀고 여전히 이곳에서 온다연을 만나게 믿기지 않은 모양이었다.“정말 다연이야?”온다연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그러자 유강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쪽으로 와요.”염지훈은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몸을 홱 돌리더니 사나운 눈빛으로 유강후를 매섭게 노려봤다.“또 그쪽이네요. 어떻게 찾았어요?”유강후는 그를 차갑게 바라보며 눈에 적의가 번쩍였다.“다연이는 처음부터 내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염 대표님이 제멋대로 숨겼잖아요. 어떻게 감히...”말이 끝나기도 전에 염지훈은 분노하며 달려들더니 유강후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쳤다.“짐승만도 못한 게 무슨 낯짝으로 다연이를 찾아와?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넌 다연이 곁에 있을 자격이 없어.”유강후는 일부러 고개를 기울여 주먹을 맞았다.그러고선 달려드는 경호원들에게 소리쳤다.“물러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절대 움직이지 마. 이건 우리 둘 사이의 원한이야.”그 말에 경호원들은 할 수 없이 뒤로 물러섰다.유강후는 외투를 벗어 차에 던지더니 곧바로 주먹을 날렸고 염지훈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냈다.두 남자는 실력이 엇비슷해서 싸우기만 하면 목숨을 걸었고 잠깐 사이에 모두 부상을 입었다.온다연은 싸움이 점점 심해지자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고 달려들었지만 곧바로 경호원에게 붙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