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예전에 유강후가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만났는지 모른다. 지금도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고 왔을 수도 있고, 그가 다른 여자를 어떻게 대하였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녀는 유강후가 자신을 아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주한이 세상을 떠난 뒤로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온다연은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작게 말했다.“아저씨, 유씨 가문 본가에 내 물건이 있어요. 그걸 가져오고 싶어요.”유강후는 자신에게 안겨 붙은 그녀의 모습을 아주 좋아했다.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으며 다른 한 손으로는 가느다란 발목을 만지작거렸다.“그래, 오늘 저녁에 마침 본가에 갈 일이 있었거든.”온다연은 그의 목에 얼굴을 파묻으며 비비적거렸다.“고마워요, 아저씨.”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던 그의 팔에 힘이 들어가고 어투가 다소 차가워졌다.“이번엔 유강후 씨라고 안 부르는 거야?”느껴지는 고통에 온다연은 숨을 들이쉬면서 작게 말했다.“예의가 없어 보이면 안 되잖아요.”유강후가 코웃음을 쳤다.“흥, 이제 와서 예의를 찾는다고?”“아저씨,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사이를 숨기면 안 될까요?”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접었다. 아주 담담한 표정이었다.“우리가 어떤 사이인데?”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그는 애초에 그녀를 대중들 앞에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심지어 그녀의 이름을 바꿔버릴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면 그녀가 완전히 과거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온다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다소 당황스러웠다.‘그렇네, 우리가 무슨 사이이지?'‘연인? 내연 관계? 둘 다 아니잖아!'두 사람은 오히려 서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더 맞았다. 그녀는 그의 힘을 이용해 복수할 생각이었고 그는 그녀의 젊음과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새로움을 느끼려 하고 있었다.서로를 이용하는 관계였으니 당연히 사람들에게 두 사람의 사이를 공개해서는 안 되었다.더구나 유강후에겐 약혼녀가 있었다.온다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유강후는 그녀의 허리에서 손을 떼며 작은 그녀의 턱을 잡았다.
온다연은 대문 앞에 멍하니 서서 유강후가 내민 손을 보았다.그는 검은색 양털 코트를 입고 있었음에도 기품이 흘러넘쳤다. 눈이 내려도 그는 우산을 들고 있지 않아 어깨에 눈꽃이 그대로 내려앉았다. 고귀하던 그에게도 인간미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그 순간, 그녀의 귓가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다연아, 이리와.”몇 년 전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했던 남자도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었다.그녀는 유강후를 빤히 보았다. 갑자기 가슴이 빠르게 뛰면서 아프기도 했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에게로 다가갔다.온다연은 그의 옷깃을 잡더니 그대로 얼굴을 그의 코트에 파묻으며 중얼거렸다.“보고 싶었어요.”‘너무도!'차가운 눈꽃이 그녀의 얼굴에 떨어져 녹아버렸다. 그 탓에 눈가가 촉촉해져 꼭 그녀가 울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입술을 달싹였다.‘주한아, 보여? 첫눈이 내리고 있어.'유강후는 고분고분한 그녀의 모습에 아주 흡족해하고 있었다.그녀가 입고 나온 옷도 검은색 양털 코트였다. 머리를 올려 묶은 탓에 하얀 그녀의 목선이 그대로 드러났다.연약하면서도 활력이 있는 모습이었다.유강후는 그녀를 안고 있다가 몸을 돌려 차 안에서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쇼핑백을 꺼내 안에서 두 개의 체크 무늬 목도리를 꺼냈다.그중 조금 짧은 것은 그녀의 목에 따듯하게 둘러주었고, 남은 하나는 자신의 목에 둘렀다.두 사람은 분명 체형 차이가 있었지만, 나란히 서 있으니 이상하게도 어울렸다.꼭 다른 사람은 끼어들 수가 없는 그런 분위기도 흘러 운전석에 앉아 있던 이권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미 서로에게 얽히고 얽혀 다른 사람이 끼어들 틈이 없었을 뿐 아니라 나중에 더 깊이 얽혀들 것이 분명했다.온다연은 부드러운 목도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아저씨, 왜 자꾸 나한테 이렇게 좋은 걸 줘요. 난 아저씨한테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유강후는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나한테 선물 아니었어?
온다연은 깜짝 놀라 고개를 확 들었다. 그리고 겁에 질린 눈으로 그를 보았다.유강후의 눈빛도 부드러워졌다. 그녀의 손을 잡으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이따가 내 옆에 앉아. 다른 데 앉지 말고. 그리고 저녁 식사가 끝나고 나면 너랑 함께 물건 가지러 가줄게.”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은 지나가는 사람의 눈에는 그저 유강후가 갈 곳이 없는 온다연을 불쌍히 여겨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이라 여겼을 것이었고 온다연과 나이가 비슷한 여자들은 질투에 휩싸였다.다만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유강후의 관심과 편애를 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특히 유하령은 질투에 휩싸여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원래 오늘 그녀는 유강후와 오해를 풀고 다시 전처럼 친하게 지낼 생각이었고 그 김에 유강후에게 온다연을 내쫓으라고 설득할 생각이었다.그녀는 유강후가 온다연을 본가로 데리고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뿐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다정하게 대하며 온다연을 챙겨주고 있었다.유강후가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챙겨주고 아껴주는 모습을 본 적 없었다. 심지어 나은별한테도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었다.그녀가 어릴 때부터 우러러보던 작은 아빠는 의자를 빼내며 온다연에게 앉으라고 했다. 그 모습과 태도는 너무나도 다정했고 그녀조차도 받지 못한 대우였다.그런데 그 대우를 온다연 같은 천박한 사람이 받고 있다고 하니 어떻게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한참 지켜보던 유하령의 안색이 점차 보기 흉하게 구겨졌다. 더는 참지 못하고 화를 내려던 순간 옆에 있던 사람이 그녀의 팔을 잡으며 작게 말했다.“하령아, 참아.”말을 꺼낸 사람은 이화평의 손녀 이효진이었다. 지금은 유민준의 약혼 상대이기도 했다.그녀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온다연을 힐끗 보곤 소곤거렸다.“저런 사람 하나 때문에 네 작은 아빠랑 사이가 틀어질 필요는 없잖아. 그럴 가치가 없으니까 참아. 나한테 좋은 방법이 있어. 이따가 우리 함께 시도해보자.”비록 유하령과 이효진은 온다연의 사선 방
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온다연의 머리만 쓰다듬고 서재로 갔다.유강후가 가버리자 장화연이 온다연에게 말했다.“다연 씨, 우리 가요.”온다연이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유민준이 다가오며 말했다.“다연아, 눈이 많이 안 좋았다며. 지금은 괜찮아?”온다연은 시선을 내리깐 채 고개를 끄덕였다.“네, 괜찮아요.”말을 마친 뒤 장화연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유민준은 그녀가 나가려 하자 다소 마음이 급해졌다.온다연이 집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그는 온다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오늘 그녀가 입은 옷 때문인지, 아니면 유강후의 곁에서 오래 머물고 있었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더 많이 예뻐진 것 같았고 보면 볼수록 그녀가 더 좋았다.하지만 가족들과 이효진이 곁에 있었기에 아무리 온다연이 좋아도 그 마음을 억누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온다연과 장화연이 계단을 내려가고 있을 때 그는 더는 참지 못하고 따라갔다.“다연아!”유민준은 온다연의 옷깃을 잡았다.“다연아, 나 너한테 따로 할 말이 있어.”유민준은 다소 급박한 얼굴로 말했다.왜인지 모르겠으나 그는 온다연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졌는지도 모르지만, 그의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온다연이 그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말이다.예전에 온다연은 심하게 다친 적도 있고 사라진 적도, 며칠 동안 본가로 돌아오지 않은 적도 있었지만, 그때는 그가 찾으려고 하면 그녀를 찾아낼 수 있었다.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그녀가 사라졌었던 동안 그는 그녀의 소식 하나도 알아내지 못했다.그리고 지금, 그는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온다연을 좋아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그녀를 너무도 좋아해 그녀의 소식을 듣지 못했을 때 마음이 불안해졌고 쉽게 잠을 이루지도 못했고, 그녀를 너무도 좋아해 가족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그녀를 찾아가 함께 있고 싶었다.온다연의 출신이 아직 문제였던지라 지금의 그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몸을 돌린 온다연은 담담하게 말했다.“할 말이
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를 빤히 보았다.그녀의 두 눈은 원래부터 예뻤다. 머루알 같은 두 눈으로 유민준을 빤히 보고 있었다.그 눈빛엔 감정이 담겨 있었다. 꼭 오래전부터 그를 원망하고 있는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유민준은 멍한 얼굴로 그녀를 보며 중얼거렸다.“다연아, 너 사실은 날 좋아하고 있는 거지? 방금 한 말은 홧김에 일부러 한 말이지, 그렇지? 내가 다른 여자랑 약혼한다니까, 내 약혼자가 계속 널 괴롭히니까 화가 나서 그런 거지?”어두운 불빛이 유민준의 잘생긴 얼굴에 내려앉았다.사실 그와 유강후는 조금 닮아 있었다. 두 사람 전부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유민준에게선 유강후와 같은 범접할 수 없는 기세는 느껴지지 않았고 상위 포식자 같은 위압감도 없었다.간단히 말해 유민준은 유강후의 질 낮은 버전이었다.그의 얼굴을 빤히 보던 온다연은 아이러니했다.유강후와 유민준은 외모가 닮았을 뿐만 아니라 욕심이 많은 성격도 닮아 있었다.분명 약혼자가 있음에도 두 사람 모두 그녀를 붙잡고 늘어졌다.그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 비뚤어진 감정이 생겨났다. 그 감정은 빠르게 그녀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렸다.그녀는 자신을 좋아하는 그의 마음을 이용해 그에게 상처를 줄 생각이다.‘그래, 마음껏 좋아하고 있어. 네가 날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넌 깊은 심연에 빠지게 될 테니까!'온다연은 고개를 떨구었다. 앞머리가 그녀의 두 눈을 가려버린 탓에 유민준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은은한 불빛 아래 고개를 숙이며 드러난 그녀의 하얀 목선을 보니 유난히도 예쁘고 가늘어 보였다.유민준의 시선에서 마침 그녀의 예쁜 목선과 살짝 흔들리는 속눈썹을 볼 수 있었다.하얗고 예뻐 그의 소유욕을 자극했고 당장이라도 괴롭혀 울려주고 싶었다.유민준은 손을 뻗어 그녀를 만지려고 했지만, 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좋아하는 마음은 세상에서 제일 가치가 없는 것이에요. 나를 좋아한다면서 어릴 때부터 괴롭히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
온다연은 두 눈을 꼭 감고 괴롭고 힘들었던 기억을 꺼냈다.이렇게 해야 그녀는 더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고, 더 괴로워해야 더 많은 힘을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방금 한 말이 진실 반 거짓 반이었다면 지금부터 하는 말은 전부 그녀의 상처이자 괴로운 악몽일 것이다.“이효진은 사람을 시켜 절 골목으로 끌고 가 남자 세 명이 내 옷을 찢어버렸어요. 만약 지나가던 사람이 우연히 발견해 신고하지 않았더라면 그날, 그 골목에서 그 사람들에서 치욕스러운 짓을 몇 번이나 당했을지 모르죠.” “어디 그뿐일까요? 전교생이 있는 앞에서 한겨울에 얼음물을 저한테 부었어요. 그 덕에 전 고열에 시달렸고 폐렴도 걸려 3개월 동안 치료해서야 나을 수 있었어요.”“사람을 시켜 때리고 배를 걷어찬 탓에 전 지금도 자주 피를 토해내요. 전부 이효진이 한 짓 때문에요!”그녀가 말을 하면 할수록 유민준은 괴로웠고 결국 입을 열었다.“그만해, 다연아. 제발 그만 말해.”온다연의 눈빛은 너무도 냉랭한 나머지 꽁꽁 얼어버린 얼음 같았다.그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혔을 뿐 아니라 주한까지 건드려 죽게 했다.가해자들이 잘살고 있는 꼴을 어떻게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란 말인가. 그녀에게 유일하게 잘해주었던 사람마저 죽여버렸는데...그녀에게 치욕을 안겨준 사람과 주한을 죽게 만든 사람 전부 한 명도 놓치지 않고 복수할 생각이다.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유민준은 다시 불안해져 그녀를 돌려 자신을 보게 했다.“다연아, 난 전혀 몰랐어. 널 괴롭히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그렇게 심하게 괴롭힐 줄은 정말로...”온다연은 나직하게 웃으며 말했다.“괴롭히는 줄은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심한 줄은 몰랐다니요.”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촉촉해 꼭 울고 있는 것 같았다.“민준 오빠, 전 오빠를 이해할 수 있어요. 오빠는 제 이모가 오빠 어머니를 죽게만 든 것 같아 저한테 화풀이하고 있었던 거잖아요. 전 이해해요. 시간이 흐르면 오빠를 용서해줄 수 있을
“온다연, 대체 왜 네 이모를 밀어버린 거야? 네 이모는 임신 중이었잖아. 꼭 그렇게 밀었어야 했어?”온다연은 고개를 확 들어 이효진을 보았다.“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이효진은 기세등등한 얼굴로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온다연, 너 어떻게 그렇게 악랄할 수가 있어? 그분은 네 친이모잖아!”그녀의 웃음에 온다연은 이효진이 악마처럼 느껴졌다.예전에도 그들은 오늘처럼 그녀를 괴롭히고 치욕을 안겨주었고 옆에서 그녀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즐겁게 웃었다.꼭 다른 사람의 목숨은 그들의 눈에 별것 아닌 장난감처럼 여기고 있었다.이때 심미진이 소리를 내었다.“피, 피가 나. 어떡해 내 아기...”온다연은 고개를 숙여 보았다. 심미진은 고통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다리 사이엔 붉은 피가 새어 나와 바닥을 적셨다.“배, 내 배!”“내 아기, 내 아기 살려줘!”깜짝 놀란 온다연은 바로 몸을 굽혀 심미진의 배를 만지며 다급하게 말했다.“이모, 괜찮을 거예요! 제가 지금 바로 구급차 부를게요!”심미진의 이마엔 식은땀이 가득했고 아주 고통스러워 보였다.온다연은 다급하면서도 행여나 심미진의 아기에게 문제가 생길까 봐 두려웠다. 핸드폰을 잡은 그녀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이때 유하령과 이효진이 내려왔다.유하령은 온다연이 들고 있던 핸드폰을 빼앗아 바닥에 확 던지며 차갑게 웃었다.“온다연, 만약 네 이모가 유산하게 되면 우리 아빠가 절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네 이모의 아기는 우리 아빠의 아들이거든!”온다연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핸드폰을 다시 주운 뒤 구급차를 부르려 했지만, 액정이 망가져 작동되지 않았다.소란을 들은 사람들이 전부 거실로 나왔다.유민준도 달려 나왔다.강해숙도 눈 앞에 펼쳐진 장면에 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언성을 높였다.“다들 뭐 하고 있는 거야. 얼른 병원에 보내야지 멍청하게 서서 뭣들 하는 거니? 얼른 구급차 불러!”장화연이 온다연을 자신의 곁으로 끌어당기며 작게 물었다.“다
유하령이 차갑게 웃으며 비꼬았다.“온다연, 네 이모도 네가 밀었다고 말하잖아. 그런데도 아니라고? 그럼 설마 네 이모가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거니?”온다연은 유하령을 보지 않았다. 그저 심미진만 빤히 보고 있었다.그녀는 심장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것처럼 피가 콸콸 흘러나오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손으로 막아도 피는 계속 흘러나왔다.갈라진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이모, 그러면 좋은 거예요?”심미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온다연의 두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허리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일어날 수가 없었고 그저 배만 감싸 안은 채 고통 속에서 구급차만 기다렸다.구급차가 오고 도우미가 그녀를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그녀의 다리 사이에선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구급차로 가는 도중에도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온다연은 그녀가 흘린 피를 보며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모, 나한테 뒤집어씌우는 거로 이모가 편해질 수 있다면 내가 한 거로 할게요. 이 일로 앞으로 더는 이모한테 빚진 거 없는 거예요. 앞으로 이 집안에서 이모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길 바랄게요.”말을 마치자마자 강해숙이 분노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역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었어. 이런 일을 벌이고 자기 이모한테 더 이상 빚진 거 없다고? 하, 넌 우리 집안이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굶어 죽었을 애야!”강해숙은 지팡이로 바닥을 쾅쾅 치면서 화를 냈다.“자기 친이모마저 계단에서 밀어버리는 악랄한 인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다. 당장 경찰에 신고해!”“미진이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넌 바로 감방에 가는 거야!”“다들 뭐해, 얼른 쟤 잡아!”말을 마치자마자 도우미 두 명이 다가오며 온다연을 잡으려 했다.장화연은 온다연을 자신의 뒤로 숨기며 말했다.“세 사람의 말로만 다연 씨가 밀었다고 확신하는 거예요? 증거도 없이요?”강해숙은 분노에 휩싸여 온다연을 손가락질하며 욕했다.“쟤 이모가 직접 말했잖아, 쟤가 밀었다고. 설마 우리가 누명을
봉현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너도 요즘 아이랑 마누라 돌봐야 하니 시간도 없을 거잖아. 내가 알아서 방법 구해볼게.”말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송지원도 뒤따라 나와 봉현수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에 지예솔 씨가 진짜 큰맘 먹고 멀리 가버린 거 같은데 현수는 아직도 경원시 근처에서만 찾고 있어. 어쩌면 출국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을 해줄 수가 없네.”“현수 지금 상태가 매우 위험해. 마치 밧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정도로 한계에 도달한 거 같아. 저러다 큰일이 일어날까 봐 두렵네.”두 사람은 한마디씩 하고는 침묵하였다.한참 지나 유강후가 먼저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이 일은 우리도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어. 본인이 스스로 해결하게 해야 해. 요 며칠은 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돌봐야 하니 네가 옆에서 좀 더 신경 써줘.”송지원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한이준은 며칠 동안 보이지도 않고 전화도 안 통하던데. 내가 사무실에 전화했더니 비서가 그러는데 걔가 섬에 집을 사서 지금 장식을 하고 있고 외부 사람들과 거의 연락도 하지 않는다 하더라고. 이 자식 또 무슨 미친 짓을 벌이는지 모르겠어.”이때 방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유강후는 곧바로 방으로 향했다.“들어가. 현수랑 이준의 일은 네가 좀 더 신경 써줘. 내 쪽에 사람들은 필요하면 네가 알아서 조정해서 데리고 가면 돼.”들어가 보니 동생이 울면서 손발을 자꾸 흔들어 옆에 자고 있던 오빠도 깨웠다.오빠는 오히려 깜깜한 눈을 뜨고 조용하게 누워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 있는듯 하였다.유강후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간호사가 아이를 안으며 말했다.“아이들이 배가 고픈가 봐요. 나와서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말하면서 침대에 누워있는 온다연을 한 번 보고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장화연은 간호사의 뜻을 눈치채고 말했다.“분유로 먹여요. 사모님은 지금 몸이 편찮으셔서요.”이때 온다연도 놀라 잠에서 깼다.
유강후는 당황했던 마음이 그제야 풀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예전에 그 아이는 힘들게 임신했고 유강후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지켜내지 못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안전하게 출산까지 했고 아이도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가장 걱정되는 건 바로 온다연의 건강 상태였다.“주 선생님, 앞으로 제 아내의 건강을 잘 부탁드릴게요. 두 아이도 만약 두통이나 열이 있다 해도 많이 신경 써주셔야 해요.”주 선생님은 급하게 대답했다.“괜찮아요, 큰일은 아니에요. 두 아이도 지금 봐선 건강 상태가 아주 좋으니 잘 키우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유 대표님.”주 선생님을 보낸 후 유강후는 정성스럽게 온다연을 보살피며 약도 먹이고 재우기도 하였다.한참 뒤에 송지원과 봉현수가 아이들 보러 병원에 찾아왔다.송지원은 작업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시정 쪽에서 방금 온 것이 분명했다.봉현수는 비록 깔끔하게 차려입었지만 이전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유강후는 보자마자 그의 정신이 극도로 쇠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봉현수는 아이들의 선물을 유강후에게 건네고 나서 소파에 앉아 넋 놓고 있었다.반면 송지원은 두 아이에게 관심을 쏠리며 간호사에게 아이를 안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송지원은 아이를 안고 웃으며 말했다.“넌 아들딸을 한꺼번에 얻었지만 우리 몇 명에서 한재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독한 사람들이네. 이 아이의 행운을 빌어 나도 나중에 쌍둥이가 생길 거야.”유강후는 얼른 아이를 뺏어 안고는 말했다.“저리 비켜, 누가 너더러 내 아들의 행운을 빌라 했어. 그렇게 행운을 갖고 싶으면 너 절로 절에 가서 빌던지.”송지원은 두 녀석을 매우 귀하게 여기며 또 손을 뻗어 여동생을 안았다.“핑크 팔찌를 차고 있는 걸 보니 여자아이겠지? 너무 귀여워, 나도 딸이 욕심나네.”송지원은 여동생의 작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난 이 두 아이의 양 아빠가 될 거야. 앞으로 날 송 아빠라고 부르라고 해.”유강후는 송지원이 딸을 안고 놓지 않는 것을 보고
유강후는 온다연의 상처가 아플까 봐 번갈아 가며 아이를 안아 보여줬다.조용하고 작은 아이의 얼굴을 보자 온다연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다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이번에는 보온 실에 들어갈 필요가 없네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유강후는 속상한 마음으로 온다연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말했다.“보온 실은 필요 없어. 의사가 아이들이 모두 정상이라고 말해줬어. 하지만 그래도 그웬을 와서 산후조리가 끝날 때까지만 우리 집에 있으라 했어.”“우리 아들을 데리고 와봐요, 한번 보게요.”유강후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온다연의 옆에 눕혔다.온다연은 감히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머리만 옆으로 돌려 쳐다보면서 이 아이가 꿈속의 그 아이를 닮았는지 궁금했다.안타깝게도 아이는 아직 너무 작아 이목구비가 모두 주름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온다연이 실망하는 모습을 본 유강후는 웃으며 말했다.“아들은 날 닮았고 딸은 널 닮았어.”온다연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아이가 이목구비도 잘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알 수 있어요?”유강후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난 보이거든.”유강후는 몇 시간 동안 작은 침대 옆에 붙어 서서 아이의 이목구비와 윤곽을 수없이 분석한 결과 아들은 그를 닮았고 딸은 온다연을 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유강후는 희망컨대 두 아이가 모두 온다연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더니 남자아이는 좀 강하게 생기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두 아이를 모두 온다연의 곁에 눕혀두고 팔을 뻗어 그들 세 모녀를 품에 안으며 아주 정성스럽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다연아, 이젠 너희들은 내 인생의 전부야.”유강후는 앞으로 약점이지만 보호막이 될, 그한테는 세상 전부인 이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분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온다연은 유강후의 턱에 나온 수염을 만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당신 요즘 많이 피곤했죠? 안색이 너무 안 좋으니 이제 좀 쉬어
“네가 정치일에 개입도 하지 않았고 나도 이제 곧 은퇴할 것인데 만약 본가에서 나쁜 기사라도 터지면 우린 경원시에서 설 자리도 없게 돼. 그럼 우주 그룹이나 본가나 다 영향받을 수 있잖아.”유강후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그럼 유연서는요? 연서의 일은 어떻게 말씀하실 건데요? 은혜를 갚고 싶으면 알아서 갚으세요. 아무도 당신을 막지 않겠지만 누나의 목숨으로, 또 저의 행복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답하려 하지 마세요.”“그리고 제 아이들은 유씨 성을 안 가질 거고 본적에도 넣지 않을 거예요. 아이들은 이미 이름이 있어요. 하나는 강 씨 이고 하나는 진 씨 에요. 본가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 괜히 여기 와서 다연이의 휴식을 방해하지 마세요. 다연이는 본가 사람이라면 이제 치를 떨어요.”유재성은 급해하며 말했다.“괜찮아, 나 그렇게 보수적이지 않아. 아이들이 유 씨가 아니라도 내 손 군들이야. 다연이가 날 싫다 그러면 앞에 나타나지 않고 아이들만 잠깐 만나볼게. 그래도 할아버지인데 아이들에게 선물도 준비하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통화를 끊어버렸다.이때 이권이 걸어오더니 말했다.“대표님, 아이들의 출생증명서에 이름을 써야 하는데 작은 도련님이랑 아가씨 이름은 준비하셨죠?”유강후는 이권의 손에 쥐어져 있던 종이를 받아 그 위에 아이들의 이름을 적었다.그러자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역시 이미 생각해 놓으셨군요.”“남자아이는 다연이랑 같은 성씨로 진 강남으로 했고 이건 다연의 아버지가 지어주신 거고 여자아이는 강아름으로 나랑 어르신이 같이 지은 거야.”이권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작은 도련님이 진씨 가문의 성을 따르게 되면 어르신이 화 안 내실까요?”유강후는 종잇장을 건네주며 말했다.“어르신은 해외에서 평생을 살아 이런 일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실 거야. 그럼 아이의 성이 둘 다 진 씨라면 강씨 가문의 자손이 아닌 거야? 다연이가 목숨을 걸고 낳은 아이들인데 하나는 진 씨 성을 가지면 또 어때? 둘 다 진 씨 성을 따른
유강후가 가장 세게 흔들고 있는 작은 손을 건드렸더니 녀석은 바로 그의 엄지손가락을 잡았다.이상하게도 녀석은 곧 칭얼거리지 않았고 작은 입을 쩝쩝대더니 조용해졌다.유강후는 갑자기 멍해지며 신기하면서도 행복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이것이 내 아이와 실제로 접촉하는 느낌인 건가?’분명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얼굴인데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유강후가 막 아이를 안으려 할 때 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입원실에 가서 안아봐요. 산모도 곧 나올 테니 여기 막아서면 안 돼요.”유강후는 몹시 아쉬워하며 장화연과 이권 더러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고 자신은 문 앞에서 온다연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온다연도 나왔다.마취가 아직 풀리지 않은 온다연은 아직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녀를 받아 입원실로 옮겼다.입원실은 예전 온다연이 쓰던 큰 방으로 이미 모두 정리정돈이 되어 있었고 두 꼬마 녀석은 침대 옆의 작은 침대에 두었다.두 아이와 온다연은 모두 조용히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들 모자 셋을 옆에서 지켜보았다.잠깐 사이에 유강후는 많은 사진을 찍었고 한장 한장 들여다보면서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모멘트도 일 년에 한 번쯤 업데이트하는 유강후가 오늘은 연속으로 세 개의 게시물을 올렸다.그것도 모자라 다시 작은 그룹 채팅을 만들어 잘 아는 몇몇 친구들을 그룹에 끌어들이고 그중에는 염지훈도 포함되어 있었다.그러고는 제목에 쌍둥이 남매가 부럽지 않냐고 그래도 소용없다고 계속 부러워하라는 글을 덧붙여 20장이 넘는 아기의 사진을 연이어 보냈다.얼마 안 되자 답글들이 올라왔다.송지원: 아이들이 태어난 거야? 축하해, 내일 보러 갈게.봉현수: 금방 태어난 거야? 난 선물까지 미리 준비해 뒀어. 내일 지원이랑 같이 갈게.그 밑에는 붉은색으로 된 부동산 증명서 두 권의 사진이 첨부되었다.한재민: 축하해. 선물은 지금 오는 길에 있어. 설쯤에 제수와 아이들 보러 갈게.그웬: 벌써? 내가 아직 가지도 않
간호사가 수술실 문을 빼꼼히 열고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한 명은 태어났고 지금 다른 한 명도 나오는 중이니 가족들 진정하고 조용히 해주세요.”말을 하고 있는데 반쯤 열린 문에서 또 다른 한 명의 나긋나긋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안에 있는 의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2.6킬로가 되는 여자아기예요. 아기 상태도 아주 좋아요.”“산모 상태도 좋아요. 이제 봉합 수술을 시작하죠.”유강후는 기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 제 자리에서 굳어 있는 채로 꼼짝도 못 했다.간호사는 그 표정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들으셨죠? 동생도 나왔다네요. 산모와 아이 모두 무사합니다.”“유 대표님, 수술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협조해 주시고 더는 문을 잡아당기지 말아주세요.”유강후는 바로 손을 놓고 부들부들 떨며 담배를 가지려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는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었다.옆에 서 있던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축하해요. 작은 아가씨가 2.6킬로나 되는 걸 보니 도련님은 더 건장할 거예요.”유강후는 기쁜 나머지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수 없었고 신이 나서 말했다.“다연이가 무사히 수술실에서 나오면 바로 통지해. 우리 회사 직원들 전부 3일 동안 휴가를 내줄 것이고 이번 달은 두 배의 급여를 발급할 거야.”그 말에 이권은 너무 좋아 웃으며 말했다.“그럼 직원들은 아마 좋아 죽을걸요? 대표님은 참 통쾌하시다니까요.”장화연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가득했다.“도련님, 제가 가서 작은 도련님과 아가씨의 옷을 가져올게요. 방금 급하게 나서다 보니 챙기는 걸 까먹었어요.”그러자 유강후가 바로 말했다.“다른 사람 보낼 테니 장 집사는 가지 말고 여기서 다연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내가 혼자서 서툴까 봐 그래.”“그리고 앞으로 날 도련님이라 부르지 말고 회장님이라 불러. 나도 이제 아버지가 되었으니 좀 무게감 있는 호칭으로 바꿔야지.”장화연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선생님이라 부를게요. 무게감 있고 더 뜻깊어 보이잖아요?”“집안의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된 온다연은 의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왜 이렇게 빨리 수술해야 해요? 혹시 아이가 어떻게 된 건가요?”지난번의 임신 사건 후 온다연은 이제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두려웠고 지금은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되는 것이 당연했다.그러자 의사는 긴장을 풀어주려고 급해하며 말했다.“아이를 낳는 일은 누구도 장담 못 해요. 앞당겨 수술해야 하는 상황은 종종 많이 생겨요. 지금은 양수가 터져서 자궁 상태가 안전하지 못하니 빨리 수술해야 해요. 아직 만삭이 안 되었지만 이 두 아이는 온다연 씨의 몸에 비해 작지 않은 편이라 일찍 출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에요.”온다연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이들이 무사히 태어난다면 저는 괜찮아요.”온다연은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수술을 집도한 사람은 비록 그웬은 아니지만 경원시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이며 심지어 옆에서 수술에 도움을 주는 사람도 국내 유명한 산부인과 전문의였다.그런데도 유강후는 긴장한 나머지 수술실 밖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마저 바닥에 열 번 넘게 떨어뜨렸다.30분이 넘게 지났는데도 수술실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자 유강후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말했다.“장화연, 혹시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나도 수술실에 들어가 봐야겠어.”그렇게 말하고 바로 수술실 문을 잡아당기자 옆에 있던 간호사들이 그를 가로막으며 말했다.“유 대표님, 지금은 수술 중이라 여기서 이렇게 소란 피우시면 안 됩니다.”장화연도 재빨리 달려가 그를 잡아당기며 말했다.“도련님, 아이를 낳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은 건강 상태가 아주 좋고 아기도 뱃속에서 건강한 상태였어요. 게다가 많은 전문가가 수술실에 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니 내심이 기다려요.”유강후는 처음으로 초조하고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수술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되어가는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거야?”그러자 호사가 황급히 대답했
“지예솔이 며칠 전에 갑자기 사라졌대. 봉현수가 경원시의 땅 전체를 파헤칠 정도로 찾았지만 사람은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 게다가 봉현수의 회사에 일이 좀 생겨 그걸 도와 처리하느라 좀 늦었어.”유강후의 말에 온다연은 당황했지만 일부러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예솔 씨가 또 집 나갔어요? 이런 일도 이젠 한두 번이 아닌데, 며칠 더 찾아보면 찾을 수 있겠죠.”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엔 좀 다른 거 같아. 지예솔이 봉현수와 함께 썼던 물건들을 모두 불태우고 사진이랑 다 삭제했어. 십여 년 전의 편지조차 다 버려버린 걸 보니 아주 철저하게 돌아선 거 같아. 이번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온다연은 냉정하게 말했다.“봉현수가 예솔 씨를 그렇게 대하는데 어떤 여자가 옆에 남아 있겠어요? 찾지 못한다 해도 자업자득이죠 뭐.”“봉현수가 지금 미친 사람처럼 날뛰고 있어. 게다가 쓰레기 처리 센터까지 가서 뒤지면서 몇 통의 편지와 망가진 장난감 몇 개를 되찾아왔어.”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지예솔이 너랑은 좀 친해 보이던데 혹시 너한테 메시지라도 보낸 건 없어?”온다연은 다시 냉정하게 말했다.“그렇게 친한 정도도 아닌데 저한테 뭐 하러 연락하겠어요? 이미 떠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니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았을 거예요.”그러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근데 저는 지예솔 씨의 소식을 들었다 하더라도 말 안 해줄 거예요.”“됐어요. 남의 집안일은 집에서까지 논하지 말아요. 장 집사님이 맛있는 걸 해놨어요.”말을 마친 후 온다연은 유강후를 밀며 주방 쪽으로 향했다.겨우 두 걸음을 걷던 온다연은 배가 처지는 느낌을 받아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저는 배가 너무 무거워서 걷기도 힘드니 강후 씨 혼자 내려가서 먹어요.”유강후는 갑자기 긴장해 하며 말했다.“낳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온다연은 그가 긴장해 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아직도 이틀 더 있어야 겨우 8개월이
또 어느 큰 눈이 내린 날, 날씨도 엄청 추웠다.온다연은 오후에 잠깐 집을 나서 좀 먼 곳에 있는 작은 여관에 갔다.여관방에서 온다연은 주머니 하나를 지예솔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사람 찾아 만든 새 등록증이에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만든 거니 일단 받아요.”“참, 그리고 안에 카드 한 장 있어요. 천만 원이 들어 있으니 저의 성의라 생각하고 그쪽에 가서 잘 살아요.”온다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어 말했다.“확인해 보니 라현쪽에 유강후의 지사가 있었어요. 제가 이미 이유를 대서 그 지사를 대진 그룹 명의로 옮겼어요. 그쪽 사람들한테도 이미 인사를 했고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지금 예솔 씨의 이름으로 경리를 찾아가면 돼요. 이름은 임진혁이라 해요. 하지만 그쪽은 외진 곳이라 제가 많은 도움은 줄 수 없을 거 같으니 이후의 일은 예솔 씨가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지예솔은 등록증과 은행 카드를 번갈아 보더니 결국 받아들이고 자그마한 짐가방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온다연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저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물건이니 이거라도 받아주세요.”그녀가 건넨 물건은 너무 투명하여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옥팔찌로 비록 최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천만은 되는 듯해 보였다.온다연이 거절하려고 하기 전에 지예솔이 한마디 덧붙였다.“이거라도 받지 않으면 제 마음이 안 편해서 그래요. 다연 씨가 갖고 있는 액세서리 하나도 이것보다 더 비싸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제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물건이에요.”온다연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옥팔찌를 받아들였다.“차가 도착했어요. 우리도 이제 내려가요.”지예솔은 남성복으로 갈아입고 자그마한 짐가방을 메고 온다연과 함께 내려갔다.밖에는 검은색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고 지예솔은 바로 그 차에 타고 창문을 내리며 온다연에게 손을 흔들었다.차가 떠나간 후 온다연도 옆에 있던 차량에 탔고 기사는 유강후가 제일 믿는 장 아저씨였다.온다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장 아저씨, 아드님이 경대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