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령이 차갑게 웃으며 비꼬았다.“온다연, 네 이모도 네가 밀었다고 말하잖아. 그런데도 아니라고? 그럼 설마 네 이모가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거니?”온다연은 유하령을 보지 않았다. 그저 심미진만 빤히 보고 있었다.그녀는 심장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것처럼 피가 콸콸 흘러나오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손으로 막아도 피는 계속 흘러나왔다.갈라진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이모, 그러면 좋은 거예요?”심미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온다연의 두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허리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일어날 수가 없었고 그저 배만 감싸 안은 채 고통 속에서 구급차만 기다렸다.구급차가 오고 도우미가 그녀를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그녀의 다리 사이에선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구급차로 가는 도중에도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온다연은 그녀가 흘린 피를 보며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모, 나한테 뒤집어씌우는 거로 이모가 편해질 수 있다면 내가 한 거로 할게요. 이 일로 앞으로 더는 이모한테 빚진 거 없는 거예요. 앞으로 이 집안에서 이모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길 바랄게요.”말을 마치자마자 강해숙이 분노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역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었어. 이런 일을 벌이고 자기 이모한테 더 이상 빚진 거 없다고? 하, 넌 우리 집안이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굶어 죽었을 애야!”강해숙은 지팡이로 바닥을 쾅쾅 치면서 화를 냈다.“자기 친이모마저 계단에서 밀어버리는 악랄한 인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다. 당장 경찰에 신고해!”“미진이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넌 바로 감방에 가는 거야!”“다들 뭐해, 얼른 쟤 잡아!”말을 마치자마자 도우미 두 명이 다가오며 온다연을 잡으려 했다.장화연은 온다연을 자신의 뒤로 숨기며 말했다.“세 사람의 말로만 다연 씨가 밀었다고 확신하는 거예요? 증거도 없이요?”강해숙은 분노에 휩싸여 온다연을 손가락질하며 욕했다.“쟤 이모가 직접 말했잖아, 쟤가 밀었다고. 설마 우리가 누명을
장화연의 안색이 변했다. 입을 열려던 순간 이미 도착해버린 경찰이 대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빨간색과 파란색 등이 번쩍번쩍 빛나면서 온다연은 눈이 따가워 저도 모르게 찌풀 했다.그녀의 머릿속은 하얀 백지장이 되었다. 귀에서는 알 수 없는 이명이 들려오고 눈앞에 있는 사람들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손바닥과 이마엔 식은땀이 났다.빠르게 제복을 입은 경찰이 다가오며 현장은 시끄러워지게 되었다.온다연은 제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꼭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말이다. 여러 사람들의 의심의 눈초리와 따져 묻는 말을 듣고 있으니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그녀를 죽여버릴 것 같았다.다만 그녀는 여전히 멍한 상태였고 주위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제자리에 서 있은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장화연은 눈앞에 벌어진 상황과 그녀의 모습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얼른 그녀의 손을 잡았다.“걱정하지 말아요. 저도 있잖아요. 도련님께선 절대 다연 씨를 감방에 보내지 않을 거고 저도 지금 다연 씨랑 함께 갈 거예요.”온다연은 그제야 정신이 좀 들었다. 장화연의 그녀의 손을 얼마나 세게 잡고 있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온다연은 경찰차 옆까지 끌려오게 되었고 장화연도 다른 차량에 올라탔다.이때 유민준이 달려 나오며 온다연의 팔을 잡고 다급하게 말했다.“다연아, 왜 밀었어? 네 친이모잖아!”온다연은 고개를 들어 유민준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오빠는 제가 그러지 않았다는 거 알잖아요, 맞죠?”그녀는 이토록 유민준이 미웠던 적이 없었다. 그가 너무도 미워 당장이라도 이 자리에서 죽어버리기를 바랐다.그를 빤히 보는 그녀의 두 눈엔 원망이 가득했다.“민준 오빠는 이모 아기가 태어나지 않길 바랐잖아요. 이모가 유산하면 제일 큰 이익을 얻게 될 사람은 누굴까요? 사실은 제가 밀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잖아요. 하지만 모든 걸 제가 뒤집어쓰길 바라는 거죠, 그렇죠?”유민준은 온다연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지 다소 놀란 표정을 지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충격에 빠졌다. 그중에서 유재성이 더욱 그러했다.그의 막내아들 유강후는 어릴 때부터 감정을 잘 드러낸 적 없었다. 무슨 일을 하든 이성적으로 완벽하게 해냈으며 자제력도 대단해 실태를 부린 적 단 한 번도 없었다.그는 유강후가 아주 자랑스럽고 만족스러웠다. 자식 중에서도 유강후에게 거는 기대가 아주 컸다.그런데 그 자랑스럽던 막내아들이 갈 곳도 없는 여자아이 때문에 이런 실태를 부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지어 그의 친손녀인 유하령의 뺨까지 때렸다.유강후는 어릴 때부터 유하령을 아꼈고 유하령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전부 들어주었다.온다연이 유강후의 마음속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바로 알렸다. 조금 전 서재에서 온다연이 불쌍해서 거둬주고 있다는 말과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다.가슴 속 깊이 불안감이 피어오른 그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강후야, 하령이는 네 조카잖니. 무슨 일이 있으면 말로 해결해야지 다짜고짜 뺨을 때리면 되겠니? 고작 그 아이 때문에 조카를 때려야겠니?”이때 유하령도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그녀는 유강후에게 처음 맞아 보았다. 그것도 집안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는 앞에서 말이다.유강후의 한방이 얼마나 센지 그녀는 바닥에 철퍼덕 넘어지기까지 했다.맞은 뺨은 얼얼해졌고 빨갛게 부어올랐다. 너무도 아팠다.그녀는 얼얼하고도 빨갛게 부어오른 뺨에 손을 올리고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질렀다.“작은 아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왜 남을 위해 날 때렸냐고요! 왜!”강해숙도 충격 속에서 그제야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울며 소리를 지르는 유하령에 가슴이 아픈 듯 얼른 자신의 뒤로 숨기곤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유강후에게 말했다.“강후야, 지금 남을 위해 가족을 때린 거니? 네 마음속에 그 오갈 곳 없는 고아가 네 친조카보다 더 소중한 거니?”유자성과 유민준은 여전히 충격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가족들의 질책하는 시선에 유강후는 몸을 돌려 유자성을 보며 냉담하게 말했다.“형, 형수가 지금 병원으로 이송
유강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다연이가 심미진을 계단에서 밀어버리지 않았을 거야. 다연이는 내가 제일 잘 알아.”그는 고개를 돌려 취조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들어간 지 얼마나 되었지? 아직도 안 나온 거야?”장화연은 고개를 저었다.“취조실에 함께 있는 사람은 전서후 서장님이십니다. 이미 부드럽게 묻고 있는데도 다연 씨의 상태가 좋지 않아 진술을 써 내려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연 씨는 여기로 온 뒤부터 입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비록 경찰서로 온 지 2시간 정도 지나긴 했지만, 취조실에 들어간 시간은 반 시간이 되지 않습니다.”그녀는 이내 뜸을 들이며 말했다.“하지만 다연 씨는 조금 전 본인이 심미진 씨를 민 것이 맞는다고 인정했습니다. 만약 심미진 씨가 고소라도 하면 일이 더 복잡하게 될 겁니다.”유강후의 표정이 점점 더 굳어졌다. 취조실로 다가가 노크했다.작고 압박감이 느껴지는 취조실 안에서 온다연은 가만히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상하리만큼 말이 없었다.누군가 취조실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그런 그녀의 모습은 꼭 이미 세상을 포기한 듯한 모습이었다.설령 유강후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이름을 불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전서후가 말했다.“전혀 협조하고 있지 않습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다만 제가 심미진을 계단에서 민 것이 맞냐고 물었을 때만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곤 입을 열지 않더군요.”유강후가 나직하게 말했다.“둘이서 얘기를 나눠도 될까요?”전서후는 얼굴을 구기긴 했어도 동의했다.“10분 만입니다. 시간을 더 길게 드릴 순 없습니다.”유강후는 감사 인사를 했다.전서후가 나간 뒤 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자신의 몸에 기댈 수 있게 끌어당겼다.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나직하게 말했다.“다연아, 난 네가 그랬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그는 뜸을 들이다가 아주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설령 네가 밀었다고 해
온다연과 심미진은 피를 나눈 가족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이이면서도 심미진은 그녀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버렸다.지금 그녀는 백치처럼 유강후에게 쓸데없는 질문만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그녀가 생각해도 가소로웠다.그녀와 유강후 사이엔 혈연관계가 없었을 뿐 아니라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다. 그저 서로에게 이용가치가 있을 뿐이었다.그러니 그의 말이 진심일 리가 있겠는가?더구나 두 사람은 원래부터 다른 사람들 눈에 떳떳하지 못한 사이였다. 유강후에겐 약혼녀가 있었다.“다연아, 난 절대 널 버리지 않아.”유강후는 아주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간단한 몇 글자였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니 이상하게도 맹세하는 것처럼 웅장하게 들렸다.온다연의 눈빛이 흔들렸다.지금 이 순간 그녀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유강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로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녀가 중얼거렸다.“하지만... 이모는 이미 절 버렸는걸요. 제 친이모도 절 버리고, 감방에 가길 바라고, 죽길 바라는데... 아저씨도 언젠가 제가 질리면 버리게 될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직하게 말했다.“다연아, 내가 어떻게 해야 네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까?”‘어떻게 해야 내 마음이 편해지겠냐고?'온다연의 머릿속은 하얀 백지장이었다.피로 이어진 가족마저 그녀를 버렸는데 어떻게 유강후를 믿고 안심할 수 있겠는가.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옷자락만 꽉 잡은 채 놓지 않았다.유강후는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을 보다가 손을 들어 혈색이라곤 하나도 없는 그녀의 입술을 만졌다.이내 나직하게 말했다.“다연아, 결혼하고 싶어?”온다연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여전히 그의 옷자락만 잡고 있었다.결혼이란 무엇일까?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 같은 관계를 말하는 것일까?그렇게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몸이 살짝 떨려왔고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결혼은 무서운 것이에요. 전 결혼
유강후는 지금 그녀가 얼마나 무서워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고, 그녀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아니, 고개를 돌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멈칫하던 그는 잠겨버린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괜찮아. 난 바로 문 앞에 있을 거야.”“아니야, 싫어요!”온다연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세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그에게 달려가려고 했지만 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강제로 다시 의자에 앉게 되었다.유강후의 손끝이 떨렸다. 그는 빠르게 문을 열고 나갔다.나가자마자 바로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어디까지 왔어요?”핸드폰 너머로 공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대표님. 30분 뒤에 경찰서로 도착할 것 같습니다. 길이 많이 막혀서요.”유강후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당장 어떻게든 15분 내로 오세요.”남자는 망설이다가 대답했다.“네, 대표님.”전화를 끊은 후 유강후는 바깥으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몇 모금 만에 담배꽁초가 되어버렸다.장화연도 따라 나왔다. 그녀는 유강후가 검은색 셔츠만 입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들어가 계세요, 도련님. 밖은 추워서 감기 걸리실 거예요.”그러나 유강후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길가의 가로등을 보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한참 지나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화연아,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력이 안 되는구나. 난 지금 당장 다연이 괴롭힌 그놈들을 족치고 싶어.”그놈들이 누구인지 장화연은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나직하게 말했다.“하지만 그분들은 도련님 가족인걸요.”유강후의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고 분위기도 살얼음판이었다.“그놈들이 다연이를 괴롭힌 방식대로 하나씩 전부 다 똑같이 돌려줄 거야. 우리 아버지 제외하곤 난 그 사람들을 내 가족이라고 생각한 적 없거든.”“괴롭힘을 당하는 공포와 치욕을 받는 기분이 어떤 기분인지 전부 다 알려줄 거야.”장화연은 침묵하다가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유민준은 일찍이 온다연의 피곤에 찌든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다연아, 네가 고생했어.”온다연은 머리도 들지 않고 물었다.“이모는 어떻게 됐어요?”유민준은 온다연의 창백한 얼굴을 응시하면서 대답했다.“아이는 지키지 못했어. 지금 수술 중이야.”온다연은 시선을 숙이더니 옷자락을 꽉 잡았다.“아이가 없으면 또 집안에서 괴롭히는 거 아니에요?”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초췌한 모습에 유민준은 더욱 가슴이 떨렸다. 만약 온지유를 얻을 수 있다면 심미진에게 잘해주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괜찮아. 내가 잘해줄게. 남도 아닌 네 이모인데 당연히 챙겨야지. 아버지한테도 잘 얘기할 거야.”온다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저는 이모가 유씨 집안에서 원하는 걸 이루기를 바라요.”그러면 그녀도 더 이상 심미진에게 마음의 빚을 지지 않아도 되었다.몽롱한 조명 아래에서 온다연의 얼굴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유민준은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넌 당분간 밖에서 지내고 있어. 작은아버지네서 지내는 게 너한테도 좋을 거야. 이제 시간이 조금 지나고 잠잠해진 다음, 내가 다시 데리러 갈게. 집도 준비해 놨어. 때가 되면 우리 둘이 같이 살자.”혹시라도 거절당할까 봐 그는 황급히 말을 보탰다.“효진이는 내가 정리할게. 네가 싫다면 절대 건드리지 않을 거야. 나한테는 너밖에 없어. 이대로 몇 년만 참아. 우리한테 애가 생긴다면... 아들이 생긴다면 집안에서도 널 인정할 거야. 다연아, 내가 잘해줄게.”온다연의 눈빛에는 선명한 혐오가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손을 빼내면서 여전히 머리를 숙인 채 말했다.“이효진은 유하령이랑 같이 저를 괴롭혔어요. 오빠는 이효진의 약혼자이자 유하령의 오빠예요. 저는 오빠랑 만날 수 없어요.”유민준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어떻게 해야 허락해 주겠어?”온다연은 머리를 들어 평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곧 유민준과 이효진에게 닥칠 일을 떠올리자 삶도 마냥 답답한
온다연은 시선을 피하며 머리를 흔들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그녀는 옷에 손을 있는 힘껏 닦았다. 마치 더러운 것이라도 만진 것처럼 말이다.이때 유민준이 그녀를 따라와서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유강후의 눈치가 보여서 그냥 멈춰 섰다.“다연아, 작은 아버지랑 돌아가. 내가 내일 만나러 갈게.”그는 온다연을 데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유강후가 지켜보는 데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유강후는 그가 아버지보다도 무서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온다연은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뻗어 유강후와 팔짱을 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아저씨, 저 힘들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누가 봐도 유민준을 피하려는 말이었다. 유민준은 당황한 표정으로 만류했다.“다연아, 아직도 내가 미워?”유강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끼어들었다.“그게 무슨 말이지? 유민준, 넌 이미 약혼했어. 다른 말 나오지 않게 똑바로 행동해.”유강후의 시선만으로도 유민준은 단단히 쫄았다. 더 이상 입을 열면 안 될 것 같은 경고의 눈빛이었다. 등골이 오싹해져서 소름이 다 났다.본가에서 일어난 일은 유민준도 알았다. 유강후는 유하령의 뺨을 때렸을 뿐만 아니라, 회사 투자 계획도 철수했다. 그날 유자성과 크게 싸웠다는 말도 들렸다.유민준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유강후가 유하령을 얼마나 아끼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유하령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줬다. 심지어 한 번은 비행기까지 선물했다.유강후와 유자성은 사이가 좋았다. 유민준이 알기로 두 사람은 한 번도 싸운 적 없었다. 유민준에게도 엄하기는 했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지원해 줬다.그런 유강후가 온다연 때문에 집안과 척을 진 것이다.유민준의 기억 속에서 유강후는 좋은 작은아버지였다. 그런데도 거리감은 언제나 유지했다. 그는 어떤 사람과도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이었다.타고 난 냉혈한인 그는 유재성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유하령을 그렇게 아끼면서도 자기 방에는 한 발짝도 못 들어가게 했다.
집에 들어선 후, 유강후는 시원한 연고를 가져와 온다연에게 발라주었다.그런데 장화연이 어쩌다 이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온다연은 한순간 얼굴을 들 수가 없었고, 밥도 먹지 않고 숨어 있었다.유강후도 너무 후회되어 그녀를 끌어안고 한참을 달랬다.저녁에 아기 보러 병원에 갈 때까지 이 상황은 계속됐다. 아이의 상태가 좋아진 것을 보고 온다연은 그제야 겨우 화를 풀었다.이튿날 아침 유강후가 침실에서 나오니 이권이 벌써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셋째 도련님, 인터넷을 좀 보세요. 온다연 씨가 인터넷 스타가 됐어요.”유강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인터넷 스타라니, 무슨 소리야?”이권은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건넸다.“일단 보세요. 제가 처리하고 있긴 하지만, 실검을 세 번이나 눌렀는데도 상황이 정리가 안 돼요.”‘상간녀가 보석 가게에서 본처를 때렸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가 있었고, 그 아래에 비슷한 댓글이 가득 달렸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동영상을 열었다.어제 온다연이 보석 가게에서 나은별과 싸우는 장면이었다.동영상만 보면, 확실히 온다연이 먼저 때렸다. 게다가 온다연은 날뛰고 있고, 나은별은 한 번도 반격하지 않은 채 처참하게 맞는 모습이었다.동영상은 온다연이 나은별을 때리는 데서부터 시작돼 조아영이 그녀를 끌어낼 때까지 1분여 동안 지속됐다.중간에 편집 흔적이 전혀 없어 딱 봐도 원본 영상이었다.‘좋아요’가 600만 개 이상, 리트윗이 300만 개 이상에 달하고, 댓글 창은 온통 욕하는 말들로 도배됐다.[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상간녀가 이렇게 대놓고 날뛰어도 되는 거야?][이건 너무 심하잖아. 상간녀가 누군지 신상 털어!][진짜 뻔뻔스럽군. 유부남을 꼬신 주제에 감히 이렇게 날뛰다니. 이 여자와 부모의 신상을 털어 온 가족이 고개를 쳐들고 다니지 못하게 해야 해.][본처가 진짜 나약하네. 내가 저 여자라면 그 자리에서 상간녀 머리를 부숴버렸을 거야.][상간녀가 어려 보이는
유강후는 좀 세게 때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심한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고작 몇 번 때린 것이 이렇게 빨갛게 부어오를 줄은 몰랐다.“많이 아파? 집에 가서 약을 바르자.”‘당연히 아프죠.’온다연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지 못할 정도로 아프고 몹시 서러웠다.“화를 내도 된다면서요... 아저씨는 말한 대로 하지 않고 전혀 신용을 지키지 않아요.”유강후는 어이없었다.“화를 내도 된다고 했지, 반지를 던져도 된다고는 하지 않았어. 오늘은 세게 때린 것도 아니야. 또 한 번 반지를 던지고 나랑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때는 아예 의자에 앉지 못하게 엉덩이를 부숴버릴 거야.”온다연도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기에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한참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아저씨도 저를 때렸으니 맞비긴 셈이에요. 만약 아이를 보지 못하게 하면, 저도 아저씨의 점수를 깎아버리고 영원히 보지 않을 거예요.”유강후는 걸어가면서 말했다.“이렇게 말을 잘 듣는데 왜 아기를 못 보게 하겠어? 오늘 나한테 순순히 반지를 끼워준 것을 봐서 벌을 취소할게.”“하지만 그 점수라는 게 뭔지 나한테 알려줘.”온다연은 그의 어깨에 엎드려 통증을 참으며 시큰둥하게 말했다.“아저씨만 저를 벌할 수 있는 줄 알아요? 저도 아저씨를 벌할 수 있어요.”유강후는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무슨 벌인데?”온다연이 코웃음을 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저한테 점수를 적는 공책이 있어요. 모두 100점인데, 아저씨가 잘하면 가산점이 붙고 잘못하면 감점이 돼요.”그녀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원래 70점이었는데, 20점 깎여서 지금 50점이에요. 0점 혹은 마이너스 점수가 되면 저는 아저씨를 버릴 거예요.”유강후는 웃음을 참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 하면 가산점이 붙고, 어떻게 하면 감점이 되는지 말해봐.”온다연이 정색하며 말했다.“예를 들면, 그웬을 데려다 아기를 살린 것은 589점, 주희를 구한 것은 50점, 저에게 불고기를 만들어준 것은
그는 손을 내밀고 반지를 보며 느릿느릿 말했다.“네가 자발적으로 나한테 반지를 끼워줬잖아. 반지를 끼워준 건 프러포즈한 것과 같으니, 앞으로 네가 나를 책임져야 해.”온다연은 그의 말을 들으며 어딘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그의 강요에 못 이겨 끼워준 것인데, 어떻게 그녀가 프러포즈한 것이 되는지?그녀는 눈을 비비며 울먹거렸다.“아저씨가 끼워달라고 했잖아요.”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살짝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그게 그거지. 별 차이 없어. 내가 끼워달라고 말했더니 네가 바로 끼워줬잖아. 이게 자발적인 것이 아니고 뭐니?”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알지만, 아이를 못 보게 할까 봐 걱정인 온다연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유강후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반지도 꼈으니 결혼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온다연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혼인신고를 해야 결혼했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결혼반지를 나눠 껴도 결혼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부부가 된 거니까.그녀가 말을 하지 않자, 유강후는 눈빛이 흔들리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네가 프러포즈했고 내가 받아줬으면 결혼한 것이나 다름없어. 결혼했으면 영원히 서로의 곁에 있어야 하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 안 돼. 알았지?”온다연은 뭔가 잘못된 것 같으면서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결혼했으면 둘이 같이 잘 지내야 한다.그녀는 눈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약간 서러웠다.“다시는 나은별을 만지면 안 돼요. 저는 그 여자가 싫어요.”그녀는 또 한마디 덧붙였다.“살짝 닿는 것도 안 돼요.”“만나도 3m 거리를 유지해야 해요.”유강후는 그녀가 덫에 걸린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화제를 돌렸다.“아까 나은별이 너한테 어쨌길래 머리가 터질 정도로 쳤어? 온통 유리 조각이던데, 손은 다치지 않았어?”유강후는 말하면서 온다연의 손을 당겨다 자세히 검사했다.그는 그녀의 희고 보드라운 손에 상처가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유강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앞으로 아무리 화가 나도 반지를 버리거나 결혼 문제를 가지고 장난치면 안 돼. 알았어?”온다연은 일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그가 허리를 꽉 잡고 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제가 아니라 아저씨가 장난쳤잖아요. 아직도 나은별을 마음에 담고 있어요?”그녀는 너무 서러웠다.“아직도 그 여자가 좋으면, 아기를 데리고 떠날 테니 그 여자랑 사세요!”유강후는 화가 나면서도 웃겼다.“내가 언제 나은별을 생각했다고 그래? 뭘 보고 이러는 거야? 내가 나은별을 잡아당긴 것 때문에?”온다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은별이 유강후의 품에 기대어 있던 것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 여자를 안고 있었잖아요. 가슴에 기대고 있던데요.”유강후는 웃음이 나왔다. 알고 보니, 질투하는 것이었다.어린 것이 질투심은 왜 이렇게 강한지?“질투 났어?”온다연은 몹시 화가 났다.“누가 질투해요? 놔요. 저는 갈래요.”유강후는 그녀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으며 이를 악물었다.“내가 언제 나은별을 안았고, 언제 내 몸에 기대게 했는데? 똑똑히 말해봐.”그는 나은별을 바닥에서 잡아당겨 일으킨 후 온다연이 바로 폭발했던 기억밖에 없다.이 말을 들은 온다연은 더욱 화가 나서 얼굴까지 빨개졌다.“아저씨가 그 여자를 안았고, 그 여자가 아저씨 품에 기대어 있는 것을 똑똑히 봤는데도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 아저씨는 이제 불합격이에요. 미워요. 이거 놔요.”발버둥 치다가 방금 맞은 곳을 건드렸다. 얼얼한 통증에 그녀는 눈물이 핑 돌았고, 엉겁결에 손으로 맞은 곳을 가렸다.유강후는 그녀의 동작을 보고 방금 너무 세게 때려서 부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그녀의 몸을 뒤집은 후, 치마를 올리고 살펴보려 했다.온다연은 그가 또 엉덩이를 때리려는 줄 알고 놀라서 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그만 때려요. 아파요.”“반지를 주워 왔잖아요. 또 때리면 다시는 당신을 안 볼 거예요.”유강후는 손을 빼며 말했다.“붓지 않았는지 보려고
유강후는 괴로워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10일.”“온다연, 너 계속 이러면 아기 퇴원하는 날에도 못 볼 줄 알아.”그 말을 듣고 얼어붙은 온다연은 재빨리 그의 손을 놓았다.유강후가 어떤 사람인지 온다연은 알고 있다. 정말 그를 화가게 한다면 아마 한 달 동안 아기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온다연은 어쩔 수 없이 분노를 꾹 참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고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울해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심하게 때려서 그런지 유강후는 온다연의 걷는 자세가 살짝 잘못된 걸 발견했다.하지만 결혼반지를 던지고 걷어찼던 행동을 생각하면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했다.온다연은 울며 겨자 먹기로 문을 열었는데 밖에는 수많은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이권도 그곳에 있었지만 감히 나서서 말을 건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엉덩이를 맞은 걸 모든 사람이 들었다고 생각하니 분하면서도 수치스러웠다그러나 반지를 주워 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유강후가 아기로 협박을 하니 그의 장단에 맞춰주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다.온다연은 유강후에 대한 호감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전에는 70점이었다면 이제는 50점밖에 되지 않았다.온다연은 씩씩거리며 눈물을 닦고선 마지못해 바닥에 있는 반지를 주웠다.온다연이 휴게실로 돌아오자 유강후는 자연스레 손을 내밀었다.“끼워줘.”그 모습은 어찌나 무자비하고 싸늘한지 마치 인정머리 없는 제왕 같았다.온다연은 화가 나서 반지를 다시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아기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울분을 참으며 유강후에게 반지를 끼웠다.유강후는 반지를 한번 꼼꼼히 확인하더니 스크래치가 없는 걸 보고선 마음속의 분노가 절반 가라앉았다.그는 자리에 앉아 온다연을 품에 끌어안았다.“뭘 잘못했는지 알겠어?”온다연은 대답하기 싫은 듯 고개를 숙이고 계속 눈물을 닦았다.온다연의 빨갛게 부은 눈과 눈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보니 유강후도 마음이 반쯤 풀렸다. 그는 손을 뻗어 온다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네가 말해봐.
유강후는 그저 말없이 가만히 온다연을 쳐다봤고 온다연은 그의 손에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물고서야 힘을 풀었다.유강후는 곧바로 다시 그녀의 부드러운 엉덩이를 내리쳤다.심지어 전보다 더 무자비해졌다.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온다연은 목 놓아 울부짖었다.“미워요. 이거 놓으란 말이에요.”“날 때릴 자격이 없잖아요.”유강후는 얼굴빛 변한 온다연을 보고선 가슴이 아픈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또 함부로 버릴 거야?”온다연은 유강후가 미워 죽을 것 같았다. 울분이 치밀어 올라 더욱이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버릴 거예요. 평생 찾지 못하게 바다에 던질 거라고요. 때려죽이든 마음대로 해요.”일말의 작은 연민은 온다연의 말에 순식간에 사라졌다.유강후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손까지 떨었다.결혼반지라는 중요하고 소중한 물건을 함부로 버렸으면서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온다연이 이해되지 않았다.유강후는 손을 들어 세게 두 번 정도 내리쳤다.전보다 훨씬 힘을 주어서 그런지 온다연은 괴로움에 손발을 마구 휘저으며 숨이 넘어갈 지경으로 울었다.울면서도 잊지 않고 유강후를 비난했다.“분명히 은별 씨 편을 들었으면서...”“차라리 때려죽여요. 그러면 은별 씨랑 결혼해도 되잖아요.”“우리 이제 그만해요.”...온다연이 말할수록 유강후의 분노는 더욱 커져갔고 끝내 또 세게 때렸다.분노와 두려움, 공포와 고통의 감정이 뒤섞이자 저도 모르게 주한의 이름이 튀어나왔다.“너무 아파... 주한아, 나 좀 도와줘.”“그만 때려요.... 아픈단 말이에요.”...유강후의 손은 허공에 굳어버렸다.주한... 온다연은 주한에게 도움을 청했다.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유강후는 숨이 멎을듯한 고통이 찾아왔다.“방금 뭐라고 했어?”온다연은 심하게 울부짖은 탓에 목소리가 잔뜩 쉬었다.“뭐라 하든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요. 아저씨는 나 괴롭히고 때릴 줄밖에 모르잖아요. 싫어요. 아저씨같은 사람이랑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거 놔요.”유강후는 이마에 핏줄이 솟을
온다연은 유강후에게 안긴 방금 전의 상황이 왠지 모르게 민망했다.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으니 마치 유강후가 키우는 고양이나 심심할 때 가지고 노는 장난감과 별반 다를게 없는 느낌이었다. 수치심과 분노가 한꺼번에 몰려온 온다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싫어요. 필요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유강후는 고집불통인 온다연의 모습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눈앞에 있는 반지는 그가 이 생에 받은 것 중에 가장 소중하고 아끼는 물건이다. 이런 마음도 모른 채 온다연은 필요 없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바닥에 내팽개쳤다.마치 누군가가 그의 심장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발로 여러 번 짓밟는 격이다.유강후는 머리가 피가 쏠릴 정도로 화가 나서 소리쳤다.“주우라고.”온다연은 유강후가 화난 걸 알았지만 그녀도 같은 상황이기에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다.분명히 나은별을 밀어낼 수 있었음에도 유강후는 기댈 수 있게 팔을 내어주었다.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 거면 차라리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온하랑은 얼굴을 붉히며 몸을 떨었다.“싫어요. 그리고 제가 나은별 씨를 먼저 때렸어요. 아저씨가 아끼는 사람을 때려서 가슴이 아파요? 그럼 다시 날 때리면 되겠네.”유강후는 점점 더 화가 치밀었다.“네가 언제 가슴 아프다고 했어?”욕하고 때리는 건 얼마든지 해도 되지만, 유독 이 반지를 떨어뜨린 건 용납할 수 없었다.이건 그의 마음과 진심을 짓밟는 것과 다름없는 해동이다.“주워서 깨끗하게 닦아.”유강후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온다연 마음속의 작은 화산이 완전히 폭발하였고 곧바로 눈앞의 반지를 발로 차버렸다.“주울 생각 없어요. 그리고 이렇게 싼 반지는 아저씨한테 어울리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나은별 씨한테 더 비싼 거로 사달라고 하세요.”온다연의 발차기에 반지는 더 멀리 날아갔다.유강후는 너무 화가 나서 목의 핏줄이 터져 나올 정도로 으르릉거렸다.“온다연, 넌 오늘 혼 좀 나야겠다.”그
나은별은 손톱이 살을 피고들 정도로 주먹을 불끈 쥐며 나지막하게 말했다.“강후 씨, 이제 내 말은 믿지도 않는 거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연 씨가 먼저 손쓴 걸 봤는데도 여전히 내 문제라는 거야?”유강후는 그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싸늘한 시선으로 조아영을 바라봤다.“조세진이 그쪽 아버지?”조아영은 극심한 고통에 식은땀을 흘렸지만 차마 유강후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맞아요.”유강후의 말투는 단호했다.“아버지한테 전해. 파산할 거니까 미리 마음 준비하라고.”조아영은 너무 놀라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울부짖었다.“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유강후는 무자비했다.“들리는 그대로야. 오늘부터 조씨 가문은 너 때문에 파산하게 될 거야. 기대해.”조아영은 고개를 번쩍 들고 마지막으로 발악했다.“분명히 저 여자가 먼저 때렸는데 왜 우리가 이런 불이익을 받아야 하죠?”유강후의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먼저 때렸다고? 그래서 뭐? 내가 있는 한 다연이가 사람을 때려죽여도 잘했다고 칭찬할 거야. 너 같은 인간을 수없이 많이 봤어. 내가 너보다 지위가 낮았다면 그런 표정이랑 행동으로 말했을까?”이런 사람에게 더 이상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유강후는 곧바로 경호원에게 말했다.“은별이는 병원으로 데려가고, 다른 사람 전부 다 내보내. 당장.”나은별은 씩씩거리며 말했다.“강후 씨,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아.”유강후는 못 들은 척 무시하고선 뒤를 돌아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며 경호원에게 말했다.“내가 왔을 때 여기에 사람이 남아있으면 너희들도 끝장인 줄 알아.”경호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답했다.“네, 도련님.”나은별은 멀어지는 유강후의 훤칠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고 눈에서는 악의가 번쩍였다.‘유강후, 날 이렇게 대한다는 거지? 두고 봐, 나도 더는 안 참아.’경호원들은 나은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의무적으로 그녀를 부축했다.“얼른 가시죠. 도련님이 분부했으니 저희는
유강후는 밀어내고 싶었지만 나은별을 중심을 잡지 못하는 듯 계속 비틀거렸다.밀어내려고 할수록 나은별은 그의 옷을 한사코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온다연의 눈에 비친 이 장면은 마치 서로에게 감정이 남아있는 연인 같았다.순간 어려서부터 각별한 사이로 자라온 소꿉친구 사이에 제3자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고 생각했다.나은별의 말대로 유강후는 어쩌면 일시적인 감정 때문에 지금처럼 행동하는 걸 수도 있다.온다연은 주먹을 불끈 쥐며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봤다.“내가 때렸어요. 왜요? 가슴 아파요?”그 말에 화가 난 유강후는 목소리마저 가라앉았다.“온다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온다연은 싸늘하게 웃었다.“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당사자가 제일 잘 알겠죠.”이때 반지를 수정하려고 자리를 잠깐 비운 직원이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수정된 반지와 함께 걸어왔다.“다연 씨, 요청하신 대로 수정이 완료되었습니다.”온다연은 번쩍 돌리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이제 필요 없으니까 환불해 줘요.”유강후는 화가 치밀어 몸을 떨었다.“그러기만 해봐.”온다연은 시선은 여전히 그의 팔에 기대어있는 나은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두 사람 결혼해요. 아주 천생연분이네.”그 말을 한 뒤 직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환불해 줘요. 이제 필요 없어졌거든요.”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 직원은 정석대로 안내했다.“죄송합니다. 이니셜이 새겨진 특별 제작한 반지라 환불이 불가합니다.”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온다연은 앞으로 걸어가더니 반지를 집고 땅바닥에 내던졌다.“그럼 버릴게요.”단단한 반지가 바닥에 닿자 몇 미터 높이로 튕겨 나갔다가 다시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유강후는 자신이 더없이 아끼고 사랑하는 물건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몸을 떨었다.그는 단호하게 말했다.“온다연, 당장 주워.”온다연은 차가운 표정으로 힐끗 보고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분노로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유강후는 단번에 나은별을 밀어내고 앞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