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은 말하지 않았지만, 몸은 여전히 떨고 있었다.한참 뒤에야 작은 소리로 말했다.“저는 그냥 몇 마디만 얘기했을 뿐인데, 그녀가 죽을 줄은…”유강후는 온다연을 안아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무슨 말 했는데?”온다연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를 좋아하는 사람은 다 죽어야 마땅하다고요.”온다연은 고개를 들고 초점 없는 눈으로 유강후를 바라보았다.“아저씨. 저도 나중에 그런 결과인가요?”유강후는 잠시 멈칫하다가 천천히 손을 움직여 온다연의 가느다란 턱을 움켜쥐었다.“온다연, 지금 무슨 소리하고 있는 거야?”유강후는 차갑고 경고하는 듯한 말투였다.온다연은 무의식적으로 뒤로 몸을 움츠리고 손을 더듬어 유강후의 옷을 움켜쥐었다.“아저씨. 이제 갈 거예요?”온다연의 목소리는 매우 긴장되고 떨리는 것처럼 들렸다.온다연은 땀에 머리가 젖었고, 하얗고 여린 얼굴을 들고 유강후를 쳐다보았다. 온다연의 모습은 마치 비 맞은 강아지처럼 안쓰럽고 가여웠다.유강후는 조금 전까지 만해도 화가 났었는데, 온다연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약해졌다.그러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안가.”온다연은 유강후의 옷을 잡고 놓지 않았다.“화났잖아요.”“내가 화난 줄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해?”온다연은 머리를 유강후의 어깨에 기댔다.잠시 후. 유강후의 전화가 울렸다. 유강후가 일어나 전화를 받으려고 하자, 온다연도 따라서 일어나 초점 잃은 눈동자로 바라보았다.“아저씨. 갈 거예요?”유강후는 걸려 온 전화를 보니 유재성이었다. 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잠깐 여기 있어봐. 나가서 전화만 받고 올게.”온다연은 유강후를 볼 수 없었지만, 목소리에서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아저씨. 빨리 돌아와야 해요.”유강후는 온다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휴대폰을 들고 방을 나갔다.시간은 빠르고도 느리게 흘러갔다. 온다연은 혼자서 덩그러니 방에 앉아 있는데, 마치 몇 년 전 그 외
차가운 손이 온다연의 얼굴을 쓰다듬기 전까지, 누가 들어오는 줄도 몰랐다. 온다연은 무의식적으로 그 손을 잡았고, 다급하게 소리쳤다.“하니!”그런데 바로 정신을 차렸다. 어떻게 주한일 수 있겠는가.이 사람은 유강후이다.온다연은 순간 놀라서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유강후의 손을 떼고 몸을 뒤로 움츠렸다.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아… 아저씨…”유강후는 온다연이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온다연의 눈물이 유강후를 마음 약해지게 한다.유강후는 온다연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그녀의 당황하고 초점 잃은 눈빛을 보고 고개를 숙여 온다연의 입술을 맞췄다.유강후는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울지 마. 다시는 그런 억울한 일 없게 해줄게.”온다연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반응도, 표정도 없었다. 그저 유강후에게 자신을 맡겼다.유강후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온다연을 놓아주고, 선홍빛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구월이 있잖아. 왜 아직도 하니를 찾아.”하니라는 두 글자를 들은 온다연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유강후의 옷을 움켜쥐었다. 기대고 싶은 마음에 다급하게 유강후에게 다가갔다.유강후의 몸에 기댈 때 아주 낮은 목소리로 다시 한번 불렀다.“하니.”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유강후는 잘 들렸다. 마치 벌을 주는 듯 온다연의 이마에 가볍게 딱밤을 때렸다.“난 그 하니가 아니거든. 구월이도 있으니까, 하니 좀 그만 찾아.”온다연은 대답하고 유강후의 어깨에 기대어 몸을 비비었다. 그리고 머리를 유강후의 팔 안으로 파묻고, 또 소리 없이 조용히 말했다.“하니.”유강후는 온다연이 이렇게 자신에게 기대는 것을 즐겼고, 아예 그녀를 자신의 다리에 앉아 품에 안겼다.온다연은 손을 유강후의 목을 감싸고 그를 안았다. 그 모습은 마치 온다연이 유강후의 다정하고 사랑하는 연인 같았다.그렇게 한참을 껴안고 있다가 온다연이 움직이더니 머리를 들고 유강후의 옷을 만지작거렸다.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저 화장실 가고
온다연은 작게 대답했다. 그리고 손을 만지작거리며 이어 말했다.“아저씨. 너무 멀리 가지 마세요. 바로 옆에 있어야 해요.”잠시 후. 온다연은 볼 일 다 보고 스스로 세면대로 가서 손을 씻었다.이날 땀을 많이 흘려서 온다연은 자기 머리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온몸이 쉰내가 나는 것 같아 생각하다가 옆에 있는 욕실로 더듬어 갔다.막 두 걸음 가는데, 꽃병 같은 것에 부딪혀서 유리병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온다연은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깨진 유리 조각을 만지려고 했다.그때, 문이 열리고 유강후가 들어왔다. 온다연이 주저앉아 깨진 꽃병을 만지고 있는 걸 보았다.유강후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끌어올렸다.“왜 나 안 불렀어.”온다연은 깨진 유리 조각에 찔려 얼른 손을 뒤로 숨겼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고개를 숙였다.“아저씨. 저 이런 모습 보기 귀찮죠? 하찮고.”온다연은 어려서부터 조금만 잘못해도 온갖 미움을 받고 심하면 매를 맞기도 했었다. 이번에 꽃병을 깨뜨리자 온다연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다.온다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제가 꽃병을 깨뜨려서 벌을 줄 거예요?”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온다연의 손을 잡고 보기 시작했다. 작고 하얀 손에 작은 상처가 났고, 피가 줄줄 흘렀다.유강후는 손을 입술에 대고 뽀뽀를 하며 물었다.“아파?”온다연은 황급히 손을 움츠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더러워요. 입에 대지 마요.”유강후는 강제로 온다연의 손을 다시 끌어당겨 핏물을 빨았다.“온다연. 앞으로 꽃병 하나 깨뜨려서 이렇게 조심할 필요 없어. 너만 좋다면 이 병원을 팔아도 돼.”온다연은 멈칫하다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벌은… 안 줘요?”온다연의 소심하고 두려운 모습이 유강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유강후가 말하려 하자 온다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더 받는 줄 알았어요…”온다연은 고개를 들고 초점 없는 눈으로 유강후를 바라보았다.“유하령 그들은 잘못
“아저씨. 화났어요?”온다연이 잡고 있던 손을 떼는 일은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다.몇 년 전 기억이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온다연은 유강후가 자기를 버리고 갈까 봐 두려웠다.온다연은 보이지 않았고, 유강후가 이때 온다연을 버리면 누구에게 도움을 청했는지도 모른다.온다연은 창백해서 입술까지 파르르 떨렸다.“아저씨. 제 눈이 좋아질 때까지 같이 있어 주시면 안 돼요?”그렇다고 해서 유강후가 간다고 해서 온다연도 어떻게 할 수 없다. 잘못했는데 이 정도는 감당해야 한다.유하령은 유씨 가문의 아가씨로 모두의 보살핌을 받는 공주인데 당연히 잘못을 저질렀어도 벌을 받지 않아도 된다.그날처럼 유하령이 온다연의 고양이 다리를 부러뜨려도 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하령을 내보냈다.만약 온다연이 그렇게 한다면 어떤 결과인지 모른다.온다연 같은 사람이 어떻게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유하령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유강후가 자기를 버리고 갈 것으로 생각하는 찰나, 유강후가 온다연을 안고 침대로 돌아갔다.또 반창고를 찾아 유리에 찔린 온다연의 손가락에 붙였다.반창고를 붙이면서 침착하게 얘기했다.“온다연. 그 누구든 잘못을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 해. 유하령도 마찬가지야.”유강후는 진지하게 얘기했다.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비록 유강후의 얼굴을 볼 수 없어도, 온다연은 지금 유강후의 표정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 차갑고 침착했을 것이다.유강후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다. 침착하고 점잖고, 말하기 전에 심사숙고하고 내뱉는다. 유씨 가문에 십 년간 있었는데 온다연도 잘 안다.온다연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유강후의 옷을 잡고 머리를 어깨에 기댔다.유강후에게 많이 의지하는 모양이다.유강후도 확실히 온다연의 이런 모습을 좋아한다. 착하고, 온순하고, 자기가 컨트롤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그렇게 한참을 끌어안고, 온다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저 샤워하고 싶어요.”온다연은 자기가 냄새에 찌들어있는 것만 같았는데, 유강후
하지만 온다연은 예전처럼 버티지 못하고 손을 떼고 더듬더듬 단추를 움켜쥐었다.온다연은 환자복을 입지 않고 하늘색 잠옷을 입고 있었다. 재질도 엄청 좋고, 단추마저 진주로 만들었다.진주를 쥐고 있는 온다연의 손가락은 사랑스러워 보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약간 매력적이기까지 했다.의도적인지 모르게 눈을 감고 하나씩 천천히 단추를 풀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의 움직임에 따라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온다연이 유강후 앞에서 처음으로 주동적으로 움직였다. 동작은 매우 서툴지만, 아무 느낌 있었다.마지막 단추가 풀리고 하늘색 잠옷이 땅에 떨어졌다.그리고 옅은 파란색의 작은 나시를 입고 있었다. 온다연은 몸을 떨며 자신을 둘러싸고, 얼굴은 터질 듯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목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아저씨. 저 추워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의 품속으로 끌려 들어갔다.유강후는 온다연의 턱을 들어 올리고 입을 맞추었다. 손은 온다연의 허리를 감싸고 힘껏 끌어안았다.유강후는 목소리가 심하게 쉬었다.“온다연. 네가 지금 나를 꼬셔?”온다연과 유강후 사이에 옷이 있었지만 온다연은 유강후의 생리적인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온다연은 유강후처럼 차가운 사람이 이렇게 쉽게 반응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분명히 온다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온다연이 유강휴를 꼬셨다고 말했다.유강후같은 신분이면 손가락만 까닥해도 어떤 여자든 만날 수 있다.그런데 왜 온다연을 붙잡고 놓지 않는가?하지만 이번이 온다연에게 마지막 유일한 기회인 것 같았다.온다연은 몸을 떨면서 천천히 유강후의 옷으로 들어갔다.부드럽고 여린 손이 유강후의 몸에 대자 유강후는 거칠게 숨을 쉬기 시작했다.“다연아. 일부러 이러는 거지!”온다연의 이런 생소한 모습이 유강후를 미치게 만든다. 최고의 집중력으로 자제해야만 온다연의 몸에 손을 대는 걸 참을 수 있다.온다연은 사실 몸이 떨릴 정도로 무서웠지만,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온다연은 떨면서 유강후의 마른 허리를 감싸며 손을 내밀었다
유강후는 고개를 숙이고 온다연의 부드러운 입술을 만졌다.“아무도 내 사람을 괴롭힐 수 없어. 그러니까 내가 널 돕는 게 아니야. 알았어?”온다연은 눈을 내리깔았다.당연히 알고 있었다. 유강후가 아직 온다연에게 관심이 있어서 당연히 누군가가 온다연을 괴롭히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유강후가 온다연에게 관심이 사라진다면 하루코와 같은 결말이다.유강후는 마음이 가는 대로 사람에게 관심을 준다.모든 것은 유강후의 기분에 달려 있다.유씨 가문에 있는 요 몇 년 동안, 온다연은 너무나도 많은 걸 보고 경험했다.온다연은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물었고, 주먹을 꽉 쥐었다.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 반드시 나은별과 결혼하기 전에 유강후를 가져야 한다.온다연은 힘을 너무 많이 들였는지 입술이 파래졌다. 유강후는 그걸 보고 온다연의 입술을 만졌다.“말했잖아. 입술 깨물지 말라고.”유강후는 온다연의 입술을 벌리고 입술 안에 새빨간 혀가 살짝 드러나면서 유혹적이었다.유강후는 한 눈 보았을 뿐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온다연이 시도 때도 없이 유강후를 꼬시고 있다.그녀가 아프지만 않았어도 바로 온다연과 뜨밤을 보냈을 거다.유강후는 온다연이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언제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다.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숙여 온다연의 입술을 깨물었다.입술이 혀를 휘감고, 온다연의 입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온다연을 삼킬 것만 같았다.온다연은 유강후가 오늘 그 어느 때보다 힘을 주는 걸 느꼈다.그녀는 긴장해서 몸을 떨고 있었지만, 손은 그의 목을 조르고, 유강후에게 바짝 달라붙었다.유강후는 한 손으로 온다연의 허리를 감싸고, 한 손으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토끼를 잡았다.온다연은 몸집이 작고 전체적으로 앙증맞아 보이지만 몸매는 아주 훌륭하다.온다연의 몸매에 유강후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분위기도 다시 달아올랐다. 온다연을 자기 몸에 올려놓은 탓에 온다연 전혀 빠져나갈 수 없었다.유강후의 손은 온다연의 허리를 따라 점점
유강후는 헤어드라이어를 가지고 와서 천천히 온다연의 머리를 말려주었다.온다연의 머리카락은 검고 윤기가 났다. 머릿결이 좋아서 손가락은 매끄럽게 머리카락 사이를 지나다녔다.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다만, 온다연의 귀 뒤쪽, 작게 뜯긴 곳을 말려줄 때 유강후의 눈빛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유강후는 손가락으로 그곳의 피부를 살짝 눌러 보았다.온다연은 그의 손길이 간지러워 작은 목소리로 툴툴거렸다.“아저씨, 간지러워요. 아직 안 됐어요?”유강후는 냉랭하게 대답했다.“아직 덜 말랐어. 머리가 젖은 채 잠들면 두통이 올 수 있어.”온다연은 작은 소리로 네 하고 대답하고는 손을 담요에서 꺼내 몰래 유강후의 소매를 감고 잡아당겼다. 그리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는 귀 끝을 살짝 붉히더니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아저씨...”유강후는 헤어드라이어를 거두고는 온다연을 안아 자기 무릎 위에 앉힌 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할 말 있어? 한 글자라도 함부로 말했다가는 혼날 각오해.”온다연의 귀 끝은 더욱 빨개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아저씨, 저기 조금만... 조금만 자제해 주시면 안 돼요...”시간이 너무 길었다. 매번 온다연이 손을 들어 올릴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야 유강후는 그녀를 놓아주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이 수줍어하면서 말을 꺼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은근히 기뻐했다. 그는 머리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일부러 물었다.“뭘 자제해?”온다연의 얼굴은 확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하필 아무것도 안 보였고 얼굴을 어느 쪽으로 돌려야 할지도 몰라 그저 머리를 유강후의 가슴에 대고 뽀얀 손을 주물럭거리다가 한참 후에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조금 전과 같은 시간을 살짝 자제해 주세요...”유강후의 눈 밑에는 일말의 웃음기가 드러났지만, 여전히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방금과 같은 시간이 뭔데? 제대로 얘기해 줘야지.”온다연의 귀 끝은 이미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말을 이
온다연은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얼굴이 빨개졌다. 손바닥에도 땀이 가득 고였다.새로운 인식이고 뭐고 감히 말할 수 없었지만, 온다연은 그저 지금 유강후가 하는 행동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졌다. 예전에 그의 행동이 아무리 지나쳐도 다 은밀한 공간에서 했었기에 그녀는 그나마 자신을 설득할 수 있었다.그런데 지금은 큰 병실에 있는 데다가 가끔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실에 들어오곤 했다. 이렇게 대놓고 막 나가는 유강후 때문에 온다연은 초조하고 화가 났지만, 감히 그를 거역할 수 없었다. 잠깐 사이에, 초조함 때문에 흘린 땀은 그녀 이마의 자잘한 머리카락을 흠뻑 젖혔다.한편, 온다연은 손을 빼내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유강후가 꽉 잡고 있어서 결국 실패했다. 다른 한편, 그녀는 갑자기 사람이 들이닥칠까 봐 겁이 나서, 하는 수 없이 머리를 그의 어깨에 파묻고 간절하게 부탁했다.“사람, 사람이 들어올 수도 있어요... 아저씨, 하지 마세요...”유강후는 온다연이 확실히 조급해하는 것을 보고, 또 그녀의 손에 땀이 가득 찬 것을 보고 그녀를 놓아주었다.유강후도 사실 이곳에서 할 생각이 없었다. 만약 누군가가 그녀의 이런 나긋나긋한 모습을 보기라도 한다면, 그는 그 사람의 눈동자를 떼버릴지도 모른다.유강후는 온다연을 다시 침대 위에 올려놓고 그녀의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머리카락을 넘길 때 몇 가닥의 머릿결을 건드려 은은한 장미 향이 풍겼다.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뽀뽀하고는 여전히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이 샴푸는 집에서 키운 백장미의 원액을 추출해서 만든 거야. 어때, 맘에 들어?”백장미 얘기가 나오자, 온다연은 몸이 살짝 굳어졌다. 그녀는 눈을 드리운 채, 촘촘한 눈초리를 가볍게 떨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겨울에도 백장미가 있어요?”유강후는 온다연의 말랑말랑한 손가락을 주물럭거리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일년내내 백장미를 키울 수 있는 온실을 하나 만들었어. 네가 좋아한다니 다행이야.”온다연은 고개를 들어 초점 없는 눈길
유강후는 괴로워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10일.”“온다연, 너 계속 이러면 아기 퇴원하는 날에도 못 볼 줄 알아.”그 말을 듣고 얼어붙은 온다연은 재빨리 그의 손을 놓았다.유강후가 어떤 사람인지 온다연은 알고 있다. 정말 그를 화가게 한다면 아마 한 달 동안 아기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온다연은 어쩔 수 없이 분노를 꾹 참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고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울해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심하게 때려서 그런지 유강후는 온다연의 걷는 자세가 살짝 잘못된 걸 발견했다.하지만 결혼반지를 던지고 걷어찼던 행동을 생각하면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했다.온다연은 울며 겨자 먹기로 문을 열었는데 밖에는 수많은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이권도 그곳에 있었지만 감히 나서서 말을 건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엉덩이를 맞은 걸 모든 사람이 들었다고 생각하니 분하면서도 수치스러웠다그러나 반지를 주워 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유강후가 아기로 협박을 하니 그의 장단에 맞춰주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다.온다연은 유강후에 대한 호감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전에는 70점이었다면 이제는 50점밖에 되지 않았다.온다연은 씩씩거리며 눈물을 닦고선 마지못해 바닥에 있는 반지를 주웠다.온다연이 휴게실로 돌아오자 유강후는 자연스레 손을 내밀었다.“끼워줘.”그 모습은 어찌나 무자비하고 싸늘한지 마치 인정머리 없는 제왕 같았다.온다연은 화가 나서 반지를 다시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아기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울분을 참으며 유강후에게 반지를 끼웠다.유강후는 반지를 한번 꼼꼼히 확인하더니 스크래치가 없는 걸 보고선 마음속의 분노가 절반 가라앉았다.그는 자리에 앉아 온다연을 품에 끌어안았다.“뭘 잘못했는지 알겠어?”온다연은 대답하기 싫은 듯 고개를 숙이고 계속 눈물을 닦았다.온다연의 빨갛게 부은 눈과 눈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보니 유강후도 마음이 반쯤 풀렸다. 그는 손을 뻗어 온다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네가 말해봐.
유강후는 그저 말없이 가만히 온다연을 쳐다봤고 온다연은 그의 손에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물고서야 힘을 풀었다.유강후는 곧바로 다시 그녀의 부드러운 엉덩이를 내리쳤다.심지어 전보다 더 무자비해졌다.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온다연은 목 놓아 울부짖었다.“미워요. 이거 놓으란 말이에요.”“날 때릴 자격이 없잖아요.”유강후는 얼굴빛 변한 온다연을 보고선 가슴이 아픈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또 함부로 버릴 거야?”온다연은 유강후가 미워 죽을 것 같았다. 울분이 치밀어 올라 더욱이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버릴 거예요. 평생 찾지 못하게 바다에 던질 거라고요. 때려죽이든 마음대로 해요.”일말의 작은 연민은 온다연의 말에 순식간에 사라졌다.유강후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손까지 떨었다.결혼반지라는 중요하고 소중한 물건을 함부로 버렸으면서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온다연이 이해되지 않았다.유강후는 손을 들어 세게 두 번 정도 내리쳤다.전보다 훨씬 힘을 주어서 그런지 온다연은 괴로움에 손발을 마구 휘저으며 숨이 넘어갈 지경으로 울었다.울면서도 잊지 않고 유강후를 비난했다.“분명히 은별 씨 편을 들었으면서...”“차라리 때려죽여요. 그러면 은별 씨랑 결혼해도 되잖아요.”“우리 이제 그만해요.”...온다연이 말할수록 유강후의 분노는 더욱 커져갔고 끝내 또 세게 때렸다.분노와 두려움, 공포와 고통의 감정이 뒤섞이자 저도 모르게 주한의 이름이 튀어나왔다.“너무 아파... 주한아, 나 좀 도와줘.”“그만 때려요.... 아픈단 말이에요.”...유강후의 손은 허공에 굳어버렸다.주한... 온다연은 주한에게 도움을 청했다.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유강후는 숨이 멎을듯한 고통이 찾아왔다.“방금 뭐라고 했어?”온다연은 심하게 울부짖은 탓에 목소리가 잔뜩 쉬었다.“뭐라 하든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요. 아저씨는 나 괴롭히고 때릴 줄밖에 모르잖아요. 싫어요. 아저씨같은 사람이랑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거 놔요.”유강후는 이마에 핏줄이 솟을
온다연은 유강후에게 안긴 방금 전의 상황이 왠지 모르게 민망했다.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으니 마치 유강후가 키우는 고양이나 심심할 때 가지고 노는 장난감과 별반 다를게 없는 느낌이었다. 수치심과 분노가 한꺼번에 몰려온 온다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싫어요. 필요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유강후는 고집불통인 온다연의 모습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눈앞에 있는 반지는 그가 이 생에 받은 것 중에 가장 소중하고 아끼는 물건이다. 이런 마음도 모른 채 온다연은 필요 없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바닥에 내팽개쳤다.마치 누군가가 그의 심장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발로 여러 번 짓밟는 격이다.유강후는 머리가 피가 쏠릴 정도로 화가 나서 소리쳤다.“주우라고.”온다연은 유강후가 화난 걸 알았지만 그녀도 같은 상황이기에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다.분명히 나은별을 밀어낼 수 있었음에도 유강후는 기댈 수 있게 팔을 내어주었다.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 거면 차라리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온하랑은 얼굴을 붉히며 몸을 떨었다.“싫어요. 그리고 제가 나은별 씨를 먼저 때렸어요. 아저씨가 아끼는 사람을 때려서 가슴이 아파요? 그럼 다시 날 때리면 되겠네.”유강후는 점점 더 화가 치밀었다.“네가 언제 가슴 아프다고 했어?”욕하고 때리는 건 얼마든지 해도 되지만, 유독 이 반지를 떨어뜨린 건 용납할 수 없었다.이건 그의 마음과 진심을 짓밟는 것과 다름없는 해동이다.“주워서 깨끗하게 닦아.”유강후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온다연 마음속의 작은 화산이 완전히 폭발하였고 곧바로 눈앞의 반지를 발로 차버렸다.“주울 생각 없어요. 그리고 이렇게 싼 반지는 아저씨한테 어울리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나은별 씨한테 더 비싼 거로 사달라고 하세요.”온다연의 발차기에 반지는 더 멀리 날아갔다.유강후는 너무 화가 나서 목의 핏줄이 터져 나올 정도로 으르릉거렸다.“온다연, 넌 오늘 혼 좀 나야겠다.”그
나은별은 손톱이 살을 피고들 정도로 주먹을 불끈 쥐며 나지막하게 말했다.“강후 씨, 이제 내 말은 믿지도 않는 거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연 씨가 먼저 손쓴 걸 봤는데도 여전히 내 문제라는 거야?”유강후는 그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싸늘한 시선으로 조아영을 바라봤다.“조세진이 그쪽 아버지?”조아영은 극심한 고통에 식은땀을 흘렸지만 차마 유강후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맞아요.”유강후의 말투는 단호했다.“아버지한테 전해. 파산할 거니까 미리 마음 준비하라고.”조아영은 너무 놀라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울부짖었다.“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유강후는 무자비했다.“들리는 그대로야. 오늘부터 조씨 가문은 너 때문에 파산하게 될 거야. 기대해.”조아영은 고개를 번쩍 들고 마지막으로 발악했다.“분명히 저 여자가 먼저 때렸는데 왜 우리가 이런 불이익을 받아야 하죠?”유강후의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먼저 때렸다고? 그래서 뭐? 내가 있는 한 다연이가 사람을 때려죽여도 잘했다고 칭찬할 거야. 너 같은 인간을 수없이 많이 봤어. 내가 너보다 지위가 낮았다면 그런 표정이랑 행동으로 말했을까?”이런 사람에게 더 이상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유강후는 곧바로 경호원에게 말했다.“은별이는 병원으로 데려가고, 다른 사람 전부 다 내보내. 당장.”나은별은 씩씩거리며 말했다.“강후 씨,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아.”유강후는 못 들은 척 무시하고선 뒤를 돌아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며 경호원에게 말했다.“내가 왔을 때 여기에 사람이 남아있으면 너희들도 끝장인 줄 알아.”경호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답했다.“네, 도련님.”나은별은 멀어지는 유강후의 훤칠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고 눈에서는 악의가 번쩍였다.‘유강후, 날 이렇게 대한다는 거지? 두고 봐, 나도 더는 안 참아.’경호원들은 나은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의무적으로 그녀를 부축했다.“얼른 가시죠. 도련님이 분부했으니 저희는
유강후는 밀어내고 싶었지만 나은별을 중심을 잡지 못하는 듯 계속 비틀거렸다.밀어내려고 할수록 나은별은 그의 옷을 한사코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온다연의 눈에 비친 이 장면은 마치 서로에게 감정이 남아있는 연인 같았다.순간 어려서부터 각별한 사이로 자라온 소꿉친구 사이에 제3자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고 생각했다.나은별의 말대로 유강후는 어쩌면 일시적인 감정 때문에 지금처럼 행동하는 걸 수도 있다.온다연은 주먹을 불끈 쥐며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봤다.“내가 때렸어요. 왜요? 가슴 아파요?”그 말에 화가 난 유강후는 목소리마저 가라앉았다.“온다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온다연은 싸늘하게 웃었다.“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당사자가 제일 잘 알겠죠.”이때 반지를 수정하려고 자리를 잠깐 비운 직원이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수정된 반지와 함께 걸어왔다.“다연 씨, 요청하신 대로 수정이 완료되었습니다.”온다연은 번쩍 돌리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이제 필요 없으니까 환불해 줘요.”유강후는 화가 치밀어 몸을 떨었다.“그러기만 해봐.”온다연은 시선은 여전히 그의 팔에 기대어있는 나은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두 사람 결혼해요. 아주 천생연분이네.”그 말을 한 뒤 직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환불해 줘요. 이제 필요 없어졌거든요.”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 직원은 정석대로 안내했다.“죄송합니다. 이니셜이 새겨진 특별 제작한 반지라 환불이 불가합니다.”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온다연은 앞으로 걸어가더니 반지를 집고 땅바닥에 내던졌다.“그럼 버릴게요.”단단한 반지가 바닥에 닿자 몇 미터 높이로 튕겨 나갔다가 다시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유강후는 자신이 더없이 아끼고 사랑하는 물건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몸을 떨었다.그는 단호하게 말했다.“온다연, 당장 주워.”온다연은 차가운 표정으로 힐끗 보고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분노로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유강후는 단번에 나은별을 밀어내고 앞으로 걸어갔다
온다연의 눈에 비친 살기는 두피를 저리게 했고, 손에 칼이 있었다면 주저 없이 나은별을 찔렀을 것이라고 모두가 확신했다.사람들은 온다연처럼 몸집이 작은 여자가 어디서 폭발적인 힘이 나왔는지 몰랐고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큰 악의를 품고 있는데 이해되지 않았다.조아영은 체면을 잃었다는 생각에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온다연을 때릴 기세였다.“미친X. 남의 남자 친구를 뺏은 주제에 뭐가 그렇게 당당해서 사람을 때려?”“하여튼 가정 교육을 못 받으면 이렇다니까. 세컨드인 걸 아무리 즐겨도 그렇지 어떻게 당사자 여자 친구를 떄려?”“내가 오늘 너 죽여버릴 거야.”그러나 조아영의 손이 온다연에 닿기도 전에 손목이 잡혔다.우드득하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조아영은 반대편 벽에 내동댕이쳐졌다.불과 몇 초안에 일어난 일에 다들 눈을 의심하여 그대로 얼어붙었다.그들 사이에 무슨 갈등이 있는지 주위 사람들은 몰랐으나 눈앞의 이 훤칠한 남자가 마치 조아영을 잡아먹으려는 것처럼 살벌하다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누군가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끌어당겨 몸 곳곳을 확인했다.다친 곳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버럭했다.“왜 가만히 있어. 다른 사람이 때리려고 하면 소리라도 질러야지.”이때 옆에 있던 조아영이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눈 잘못됐어요? 저 여자가 은별이를 때렸다고요. 은별이가 어떻게 맞았는지 두 눈 뜨고 똑바로 봐봐요.”유강후는 그제야 바닥에 앉아 있는 나은별이 눈에 들어왔다.평소의 매력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이고 머리는 정신 나간 여자처럼 헝클어져 있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이 누군가를 때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우리 다연이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야.”이때 옆에 있던 직원이 용기 내 입을 열었다.“대표님, 저희가 봤습니다. 이 여성분이 먼저 손을 쓴 게...”“닥쳐.”유강후는 버럭 호통을 쳤다.“내가 말하라고 했어?
온다연은 망설임 없이 여자의 손목을 덥석 잡고 뒤로 힘껏 밀쳤다.힐을 신은 여자는 두어 걸음 뒷걸음질 치더니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온다연은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누구신데 남 일에 참견하는 거죠? 경고하는데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예요. 안 그러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겁니다.”넘어질 뻔하던 일행을 나은별이 부축했다.여자는 나약해 보이는 온다연이 감히 밀쳐낼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듯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그럼에도 분을 이기지 못하고 또 달려들어 온다연을 치려고 했다.이때 나은별이 팔을 붙잡았다.“조아영, 그만해. 때릴 가치조차 없는 사람이야.”나은별은 온다연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었다.“내가 화내면서 뺨 한 대 치길 바랐던 건 아니죠? 솔직히 그 모습을 강후 씨가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잖아요. 내가 유하령처럼 멍청해 보여요?”“온다연, 내가 너처럼 천한 여자를 한두 번 본 것 같아? 매달려도 소용없으니까 포기해. 유씨 가문이랑 강씨 가문에서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할까? 너처럼 가진 것 하나없는 인간이 무슨 자격으로 강후 씨랑 만나.”“유하령이 말해줬으니까 순진한 척 그만해. 너 복수하려고 강후 씨를 만나는 거잖아. 엄청 친한 친구가 있었다며? 널 구하려고 다른 사람 손에 죽었다던데 맞아? 죽기 전에 영상까지 찍혔다며? 아참, 유하령이 그 영상을 나한테 보내줬어.”온다연은 고개를 번쩍 들어 죽일 듯이 나은별을 노려봤다.나은별은 대수롭지 않은 듯 피식 웃고선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그 남자애가 너한테 소중한 존재라고 들었어. 죽은 사람의 마지막 체면을 지켜주고 싶으면 좋은 말로 할 때 강후 씨 곁에서 떨어져. 안 그러면 내가 그 영상 인터넷에 확 뿌려버릴 거야. 죽어서도 고통스럽게...”짝.온다연은 나은별의 따귀를 세게 한 대 갈겼다.눈빛에는 독기가 가득했고 당장이라도 죽여버릴 듯 살벌했다.“유하령이랑 똑같은 인간인 줄은 몰랐네요. 당신 같은 인간은 살 자격도 없어요.”나은별은 그대로 얼어붙었다.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나은별은 이권을 여러 번 찾아가 유강후가 왜 만나주지 않느냐고 물었다.이권도 처음에는 예의 바르게 대했지만 찾는 횟수가 많아짐에 따라 저도 모르게 피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더는 참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이실직고하게 되었고 온다연이 싫어해서 만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그 후로는 나은별의 전화를 아예 받지 않았다.나씨 가문과 유씨 가문의 혼담이 취소된 걸 누가 소문냈는지 유강후에게 아기가 생겼고 그 상대가 나씨 가문의 아가씨가 아니라는 것까지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다.그 이후로 나은별과 나씨 가문은 경원의 가장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온갖 조롱과 유언비어가 난무했고 유강후와 결혼하는 건 나씨 가문의 일방적인 바람이었을 뿐 유강후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은별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소문이 퍼지는 가운데 나씨 가문의 투자자들은 하나둘씩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고 회사는 지금 매우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가장 역겨운 점은 예전에 빌붙으려고 양손 가득 선물 챙겨서 찾아오던 사람들이 갑자기 증발이라도 한 듯 문전성시를 이루던 나씨 가문은 하루아침에 적막해졌다.배은망덕한 사람들의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오른 나씨 가문 어르신은 명절날에도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나은별은 이런 상황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있다.사람들이 추측하며 수군거릴 때 아무런 대처 없이 묵인한 유강후가 그 원인의 중심이다.그동안 나씨 가문을 통해 미래 그룹에 빌붙으려던 사람들까지 발걸음을 멈췄다.나은별은 그런 사람들을 미워하는 건 아니다.이익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하늘에서 땅이 아닌 지옥으로 떨어지는 케이스를 수없이 많이 봐왔기에 이런 우여곡절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이익 때문에 등을 돌린 인간이 아닌 사건의 원흉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나은별은 온다연이 유강후에게 빌붙어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초라한 자신에 비해 전보다 안색도 좋아지고 예쁜 얼굴마저 더 정교해진 온다연이 몹시 눈에 거슬렸다.게다가 입고 있는 옷의 패턴
온다연은 순순히 그의 품에 안겨 몰래 눈물을 닦았다.“보석상에서 가지러 가도 된다고 연락왔는데 아직 안 갔어요. 결혼식 며칠 전에 가려고요.”그 말을 들은 유강후는 설레는 마음에 심장이 뛰었다.“지금 가지러 가자. 어떤 건지 너무 보고 싶어.”옷 갈아입을 때 유강후는 특별히 가장 마음에 드는 슈트를 입었다.그러고는 온다연에게 넥타이를 골라달라고 부탁했다.온다연은 너무도 많은 넥타이에 흠칫하다가 다시 신중하게 골랐다.유강후는 캐비닛 앞에 서서 열심히 넥타이를 고르는 온다연이 귀여운지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온다연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을 때 유강후는 이런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외출 준비할 때 아내인 온다연이 옷과 넥타이를 골라주며 신경 써주는 이 상황을 수년동안 기다렸다.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상상이 현실로 되었고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온다연은 매우 열심히 넥타이를 골라주고 있다.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당장이라도 침대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어젯밤 너무 무리한 탓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유강후는 뒤에서 온다연을 끌어안고선 허스키한 목소리로 물었다.“골랐어?”온다연은 회색 넥타이를 꺼냈다.“오늘 입은 옷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예뻐요.”유강후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예쁜 건 딱히 중요하지 않아. 다연이가 좋아하면 그게 뭐든 나도 좋아.”온다연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아저씨, 그만해요.”빨갛게 달아오른 온다연의 귀를 본 유강후는 더 이상 참지 못했고 그녀의 머리를 잡고선 한참이나 키스를 한 후에야 놓아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보석상에 도착했다.임정아는 안목이 좋을 뿐만 아니라 여러 주얼리 브랜드의 모델이기도 하다. 온다연은 가성비가 좋고 흔치 않은 남성용 반지를 골랐다.온다연이 집 사려고 모아둔 금액이었으니 싼값은 아니었다.하지만 유강후가 마음에 안 들어 할 수 도 있으니 긴장된 마음을 늦추지 못했다. 어쨌든 지금 입고 있는 옷과 시계에 비하면 훨씬 싼 값이니까.그런데 의외로 유강후는 매우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