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은 작게 대답했다. 그리고 손을 만지작거리며 이어 말했다.“아저씨. 너무 멀리 가지 마세요. 바로 옆에 있어야 해요.”잠시 후. 온다연은 볼 일 다 보고 스스로 세면대로 가서 손을 씻었다.이날 땀을 많이 흘려서 온다연은 자기 머리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온몸이 쉰내가 나는 것 같아 생각하다가 옆에 있는 욕실로 더듬어 갔다.막 두 걸음 가는데, 꽃병 같은 것에 부딪혀서 유리병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온다연은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깨진 유리 조각을 만지려고 했다.그때, 문이 열리고 유강후가 들어왔다. 온다연이 주저앉아 깨진 꽃병을 만지고 있는 걸 보았다.유강후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끌어올렸다.“왜 나 안 불렀어.”온다연은 깨진 유리 조각에 찔려 얼른 손을 뒤로 숨겼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고개를 숙였다.“아저씨. 저 이런 모습 보기 귀찮죠? 하찮고.”온다연은 어려서부터 조금만 잘못해도 온갖 미움을 받고 심하면 매를 맞기도 했었다. 이번에 꽃병을 깨뜨리자 온다연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다.온다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제가 꽃병을 깨뜨려서 벌을 줄 거예요?”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온다연의 손을 잡고 보기 시작했다. 작고 하얀 손에 작은 상처가 났고, 피가 줄줄 흘렀다.유강후는 손을 입술에 대고 뽀뽀를 하며 물었다.“아파?”온다연은 황급히 손을 움츠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더러워요. 입에 대지 마요.”유강후는 강제로 온다연의 손을 다시 끌어당겨 핏물을 빨았다.“온다연. 앞으로 꽃병 하나 깨뜨려서 이렇게 조심할 필요 없어. 너만 좋다면 이 병원을 팔아도 돼.”온다연은 멈칫하다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벌은… 안 줘요?”온다연의 소심하고 두려운 모습이 유강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유강후가 말하려 하자 온다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더 받는 줄 알았어요…”온다연은 고개를 들고 초점 없는 눈으로 유강후를 바라보았다.“유하령 그들은 잘못
“아저씨. 화났어요?”온다연이 잡고 있던 손을 떼는 일은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다.몇 년 전 기억이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온다연은 유강후가 자기를 버리고 갈까 봐 두려웠다.온다연은 보이지 않았고, 유강후가 이때 온다연을 버리면 누구에게 도움을 청했는지도 모른다.온다연은 창백해서 입술까지 파르르 떨렸다.“아저씨. 제 눈이 좋아질 때까지 같이 있어 주시면 안 돼요?”그렇다고 해서 유강후가 간다고 해서 온다연도 어떻게 할 수 없다. 잘못했는데 이 정도는 감당해야 한다.유하령은 유씨 가문의 아가씨로 모두의 보살핌을 받는 공주인데 당연히 잘못을 저질렀어도 벌을 받지 않아도 된다.그날처럼 유하령이 온다연의 고양이 다리를 부러뜨려도 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하령을 내보냈다.만약 온다연이 그렇게 한다면 어떤 결과인지 모른다.온다연 같은 사람이 어떻게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유하령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유강후가 자기를 버리고 갈 것으로 생각하는 찰나, 유강후가 온다연을 안고 침대로 돌아갔다.또 반창고를 찾아 유리에 찔린 온다연의 손가락에 붙였다.반창고를 붙이면서 침착하게 얘기했다.“온다연. 그 누구든 잘못을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 해. 유하령도 마찬가지야.”유강후는 진지하게 얘기했다.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비록 유강후의 얼굴을 볼 수 없어도, 온다연은 지금 유강후의 표정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 차갑고 침착했을 것이다.유강후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다. 침착하고 점잖고, 말하기 전에 심사숙고하고 내뱉는다. 유씨 가문에 십 년간 있었는데 온다연도 잘 안다.온다연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유강후의 옷을 잡고 머리를 어깨에 기댔다.유강후에게 많이 의지하는 모양이다.유강후도 확실히 온다연의 이런 모습을 좋아한다. 착하고, 온순하고, 자기가 컨트롤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그렇게 한참을 끌어안고, 온다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저 샤워하고 싶어요.”온다연은 자기가 냄새에 찌들어있는 것만 같았는데, 유강후
하지만 온다연은 예전처럼 버티지 못하고 손을 떼고 더듬더듬 단추를 움켜쥐었다.온다연은 환자복을 입지 않고 하늘색 잠옷을 입고 있었다. 재질도 엄청 좋고, 단추마저 진주로 만들었다.진주를 쥐고 있는 온다연의 손가락은 사랑스러워 보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약간 매력적이기까지 했다.의도적인지 모르게 눈을 감고 하나씩 천천히 단추를 풀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의 움직임에 따라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온다연이 유강후 앞에서 처음으로 주동적으로 움직였다. 동작은 매우 서툴지만, 아무 느낌 있었다.마지막 단추가 풀리고 하늘색 잠옷이 땅에 떨어졌다.그리고 옅은 파란색의 작은 나시를 입고 있었다. 온다연은 몸을 떨며 자신을 둘러싸고, 얼굴은 터질 듯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목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아저씨. 저 추워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의 품속으로 끌려 들어갔다.유강후는 온다연의 턱을 들어 올리고 입을 맞추었다. 손은 온다연의 허리를 감싸고 힘껏 끌어안았다.유강후는 목소리가 심하게 쉬었다.“온다연. 네가 지금 나를 꼬셔?”온다연과 유강후 사이에 옷이 있었지만 온다연은 유강후의 생리적인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온다연은 유강후처럼 차가운 사람이 이렇게 쉽게 반응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분명히 온다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온다연이 유강휴를 꼬셨다고 말했다.유강후같은 신분이면 손가락만 까닥해도 어떤 여자든 만날 수 있다.그런데 왜 온다연을 붙잡고 놓지 않는가?하지만 이번이 온다연에게 마지막 유일한 기회인 것 같았다.온다연은 몸을 떨면서 천천히 유강후의 옷으로 들어갔다.부드럽고 여린 손이 유강후의 몸에 대자 유강후는 거칠게 숨을 쉬기 시작했다.“다연아. 일부러 이러는 거지!”온다연의 이런 생소한 모습이 유강후를 미치게 만든다. 최고의 집중력으로 자제해야만 온다연의 몸에 손을 대는 걸 참을 수 있다.온다연은 사실 몸이 떨릴 정도로 무서웠지만,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온다연은 떨면서 유강후의 마른 허리를 감싸며 손을 내밀었다
유강후는 고개를 숙이고 온다연의 부드러운 입술을 만졌다.“아무도 내 사람을 괴롭힐 수 없어. 그러니까 내가 널 돕는 게 아니야. 알았어?”온다연은 눈을 내리깔았다.당연히 알고 있었다. 유강후가 아직 온다연에게 관심이 있어서 당연히 누군가가 온다연을 괴롭히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유강후가 온다연에게 관심이 사라진다면 하루코와 같은 결말이다.유강후는 마음이 가는 대로 사람에게 관심을 준다.모든 것은 유강후의 기분에 달려 있다.유씨 가문에 있는 요 몇 년 동안, 온다연은 너무나도 많은 걸 보고 경험했다.온다연은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물었고, 주먹을 꽉 쥐었다.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 반드시 나은별과 결혼하기 전에 유강후를 가져야 한다.온다연은 힘을 너무 많이 들였는지 입술이 파래졌다. 유강후는 그걸 보고 온다연의 입술을 만졌다.“말했잖아. 입술 깨물지 말라고.”유강후는 온다연의 입술을 벌리고 입술 안에 새빨간 혀가 살짝 드러나면서 유혹적이었다.유강후는 한 눈 보았을 뿐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온다연이 시도 때도 없이 유강후를 꼬시고 있다.그녀가 아프지만 않았어도 바로 온다연과 뜨밤을 보냈을 거다.유강후는 온다연이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언제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다.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숙여 온다연의 입술을 깨물었다.입술이 혀를 휘감고, 온다연의 입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온다연을 삼킬 것만 같았다.온다연은 유강후가 오늘 그 어느 때보다 힘을 주는 걸 느꼈다.그녀는 긴장해서 몸을 떨고 있었지만, 손은 그의 목을 조르고, 유강후에게 바짝 달라붙었다.유강후는 한 손으로 온다연의 허리를 감싸고, 한 손으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토끼를 잡았다.온다연은 몸집이 작고 전체적으로 앙증맞아 보이지만 몸매는 아주 훌륭하다.온다연의 몸매에 유강후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분위기도 다시 달아올랐다. 온다연을 자기 몸에 올려놓은 탓에 온다연 전혀 빠져나갈 수 없었다.유강후의 손은 온다연의 허리를 따라 점점
유강후는 헤어드라이어를 가지고 와서 천천히 온다연의 머리를 말려주었다.온다연의 머리카락은 검고 윤기가 났다. 머릿결이 좋아서 손가락은 매끄럽게 머리카락 사이를 지나다녔다.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다만, 온다연의 귀 뒤쪽, 작게 뜯긴 곳을 말려줄 때 유강후의 눈빛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유강후는 손가락으로 그곳의 피부를 살짝 눌러 보았다.온다연은 그의 손길이 간지러워 작은 목소리로 툴툴거렸다.“아저씨, 간지러워요. 아직 안 됐어요?”유강후는 냉랭하게 대답했다.“아직 덜 말랐어. 머리가 젖은 채 잠들면 두통이 올 수 있어.”온다연은 작은 소리로 네 하고 대답하고는 손을 담요에서 꺼내 몰래 유강후의 소매를 감고 잡아당겼다. 그리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는 귀 끝을 살짝 붉히더니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아저씨...”유강후는 헤어드라이어를 거두고는 온다연을 안아 자기 무릎 위에 앉힌 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할 말 있어? 한 글자라도 함부로 말했다가는 혼날 각오해.”온다연의 귀 끝은 더욱 빨개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아저씨, 저기 조금만... 조금만 자제해 주시면 안 돼요...”시간이 너무 길었다. 매번 온다연이 손을 들어 올릴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야 유강후는 그녀를 놓아주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이 수줍어하면서 말을 꺼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은근히 기뻐했다. 그는 머리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일부러 물었다.“뭘 자제해?”온다연의 얼굴은 확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하필 아무것도 안 보였고 얼굴을 어느 쪽으로 돌려야 할지도 몰라 그저 머리를 유강후의 가슴에 대고 뽀얀 손을 주물럭거리다가 한참 후에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조금 전과 같은 시간을 살짝 자제해 주세요...”유강후의 눈 밑에는 일말의 웃음기가 드러났지만, 여전히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방금과 같은 시간이 뭔데? 제대로 얘기해 줘야지.”온다연의 귀 끝은 이미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말을 이
온다연은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얼굴이 빨개졌다. 손바닥에도 땀이 가득 고였다.새로운 인식이고 뭐고 감히 말할 수 없었지만, 온다연은 그저 지금 유강후가 하는 행동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졌다. 예전에 그의 행동이 아무리 지나쳐도 다 은밀한 공간에서 했었기에 그녀는 그나마 자신을 설득할 수 있었다.그런데 지금은 큰 병실에 있는 데다가 가끔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실에 들어오곤 했다. 이렇게 대놓고 막 나가는 유강후 때문에 온다연은 초조하고 화가 났지만, 감히 그를 거역할 수 없었다. 잠깐 사이에, 초조함 때문에 흘린 땀은 그녀 이마의 자잘한 머리카락을 흠뻑 젖혔다.한편, 온다연은 손을 빼내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유강후가 꽉 잡고 있어서 결국 실패했다. 다른 한편, 그녀는 갑자기 사람이 들이닥칠까 봐 겁이 나서, 하는 수 없이 머리를 그의 어깨에 파묻고 간절하게 부탁했다.“사람, 사람이 들어올 수도 있어요... 아저씨, 하지 마세요...”유강후는 온다연이 확실히 조급해하는 것을 보고, 또 그녀의 손에 땀이 가득 찬 것을 보고 그녀를 놓아주었다.유강후도 사실 이곳에서 할 생각이 없었다. 만약 누군가가 그녀의 이런 나긋나긋한 모습을 보기라도 한다면, 그는 그 사람의 눈동자를 떼버릴지도 모른다.유강후는 온다연을 다시 침대 위에 올려놓고 그녀의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머리카락을 넘길 때 몇 가닥의 머릿결을 건드려 은은한 장미 향이 풍겼다.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뽀뽀하고는 여전히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이 샴푸는 집에서 키운 백장미의 원액을 추출해서 만든 거야. 어때, 맘에 들어?”백장미 얘기가 나오자, 온다연은 몸이 살짝 굳어졌다. 그녀는 눈을 드리운 채, 촘촘한 눈초리를 가볍게 떨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겨울에도 백장미가 있어요?”유강후는 온다연의 말랑말랑한 손가락을 주물럭거리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일년내내 백장미를 키울 수 있는 온실을 하나 만들었어. 네가 좋아한다니 다행이야.”온다연은 고개를 들어 초점 없는 눈길
유강후는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이 사건 진술은 무조건 해야 하는 거야. 오늘 안 한다 해도 내일에 해야 하는 거라 어쩔 수 없어.”온다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고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그녀는 경찰서에 가서 이런 진술을 하는 것이 제일 두려웠다. 전에 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두 번 했었는데 한 번은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었고 다른 한 번은 주한의 죽음 때문이었다.온다연은 이 세상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의 죽음을 모두 목격하였는데 하필 두 사람의 사인도 똑같았다. 안 그래도 현실을 감당하기 힘든 그녀는 경찰관의 핍박 하에 그들의 죽음을 반복적으로 진술해야 했었다.그녀는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더군다나 상처를 다시 한번 들추어내어 꼭두각시처럼 가장 중요한 사람의 죽음을 진술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뼈에 사무치는 아픔을 그녀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또 진술을 작성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온다연은 기나긴 침묵에 빠졌다.유강후는 아무 말 없이 온다연의 곁을 한 발짝도 떠나지 않고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기도 하고 심지어 그녀를 재워보기도 했다.유강후는 원래 과묵한 사람이었고 냉철하고 감정 표현이 적은 사람이었다.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환경에서, 줄곧 다른 사람이 유강후에게 애원하고 그를 달래주었다. 유강후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사람들은 앞다투어 그의 눈앞에 가져다 바쳤다. 지금처럼 유강후가 인내심을 갖고 한 사람 곁을 지키는 모습은 그에게 있어서 난생처음이었다.또한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한 번이기도 했다.게다가, 유강후가 볼 때, 한 사람 곁을 지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비록 온다연은 진술이 그토록 싫었지만, 저녁이 되어서 전서후는 여전히 찾아왔다.경찰복을 입은 전서후는 동료 두 명을 데리고 왔다. 그들은 휴게실의 의자에 앉아 느리지만 엄숙한 말투로 진술을 땄다. 마치 맞은 쪽에 앉아 있는 여자애의 반응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를 해온 듯했다.온다연은 거의 절반 동안은
“제가 동영상을 조금 봤는데 애가 참 안 됐더라고요. 일반적으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사람한테 괴롭힘을 당했다면 아마 진작에 목숨을 끊었을 거예요.”“그러니까요. 10여 년 동안 학폭을 어떻게 버텨왔는지 상상이 안 가요.”“근데 저 애 유씨 가문의 사람이 맞아요? 왜 저는 유씨 가문에 아가씨 한 분이 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죠?”“유씨 가문의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고 오히려 유강후 대표님의 애인 같아요.”“쯧쯧. 고등학생 같아 보이는 여자애가 유강후 대표님을 아저씨라고 부르던데 역시 돈 많은 사람들이 잘 놀아요...”“근데 그 사건들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진짜 다시 수사할 수 있나요?”“최선을 다해서 수사해 봐야죠. 어쩌겠어요. 근데 유강후 대표님은 그냥 여자애를 달래려고 이 일을 맡겼을 것 같아요. 그 사건들 다 엄청 골칫거리인 데다가 너무 많은 사람이 연관되어 있어요. 게다가 저 여자애가 다니는 학교에 잘사는 집안 자녀들이 대부분이어서 분명 여러 사람한테 밉보일 거예요. 그래서 그냥 여자애를 달래 주려고 겉치레만 하는 것 같아요.”“그나저나 그 동영상 속의 가해자들 정말 사람도 아니던데요. 그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이에요!”“누가 내 딸을 그렇게 건드렸다면 그놈들을 바로 죽여버렸을 거예요!”...비록 두 사람은 아주 낮은 소리로 대화했지만 온다연은 그들의 대화를 한 글자도 빠지지 않고 다 들었다.그 끔찍한 기억들, 애써 지워버렸던 기억들,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개처럼 비천한 순간들, 알고 보니 유강후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온다연은 다른 사람이 자기 일을 모르길 바랐고 더욱이는 유강후가 모르길 바랐다. 그녀는 유강후 앞에서 이미 자신의 자세를 바닥까지 낮추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불쌍하기 그지없는 마지막 한 가닥의 자존심도 잃게 되었다.그녀는 복수하고 싶었었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를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펼쳐 보이는 이런 방법으로 복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온다연의 얼굴은 무서울 정
봉현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너도 요즘 아이랑 마누라 돌봐야 하니 시간도 없을 거잖아. 내가 알아서 방법 구해볼게.”말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송지원도 뒤따라 나와 봉현수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에 지예솔 씨가 진짜 큰맘 먹고 멀리 가버린 거 같은데 현수는 아직도 경원시 근처에서만 찾고 있어. 어쩌면 출국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을 해줄 수가 없네.”“현수 지금 상태가 매우 위험해. 마치 밧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정도로 한계에 도달한 거 같아. 저러다 큰일이 일어날까 봐 두렵네.”두 사람은 한마디씩 하고는 침묵하였다.한참 지나 유강후가 먼저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이 일은 우리도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어. 본인이 스스로 해결하게 해야 해. 요 며칠은 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돌봐야 하니 네가 옆에서 좀 더 신경 써줘.”송지원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한이준은 며칠 동안 보이지도 않고 전화도 안 통하던데. 내가 사무실에 전화했더니 비서가 그러는데 걔가 섬에 집을 사서 지금 장식을 하고 있고 외부 사람들과 거의 연락도 하지 않는다 하더라고. 이 자식 또 무슨 미친 짓을 벌이는지 모르겠어.”이때 방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유강후는 곧바로 방으로 향했다.“들어가. 현수랑 이준의 일은 네가 좀 더 신경 써줘. 내 쪽에 사람들은 필요하면 네가 알아서 조정해서 데리고 가면 돼.”들어가 보니 동생이 울면서 손발을 자꾸 흔들어 옆에 자고 있던 오빠도 깨웠다.오빠는 오히려 깜깜한 눈을 뜨고 조용하게 누워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 있는듯 하였다.유강후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간호사가 아이를 안으며 말했다.“아이들이 배가 고픈가 봐요. 나와서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말하면서 침대에 누워있는 온다연을 한 번 보고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장화연은 간호사의 뜻을 눈치채고 말했다.“분유로 먹여요. 사모님은 지금 몸이 편찮으셔서요.”이때 온다연도 놀라 잠에서 깼다.
유강후는 당황했던 마음이 그제야 풀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예전에 그 아이는 힘들게 임신했고 유강후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지켜내지 못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안전하게 출산까지 했고 아이도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가장 걱정되는 건 바로 온다연의 건강 상태였다.“주 선생님, 앞으로 제 아내의 건강을 잘 부탁드릴게요. 두 아이도 만약 두통이나 열이 있다 해도 많이 신경 써주셔야 해요.”주 선생님은 급하게 대답했다.“괜찮아요, 큰일은 아니에요. 두 아이도 지금 봐선 건강 상태가 아주 좋으니 잘 키우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유 대표님.”주 선생님을 보낸 후 유강후는 정성스럽게 온다연을 보살피며 약도 먹이고 재우기도 하였다.한참 뒤에 송지원과 봉현수가 아이들 보러 병원에 찾아왔다.송지원은 작업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시정 쪽에서 방금 온 것이 분명했다.봉현수는 비록 깔끔하게 차려입었지만 이전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유강후는 보자마자 그의 정신이 극도로 쇠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봉현수는 아이들의 선물을 유강후에게 건네고 나서 소파에 앉아 넋 놓고 있었다.반면 송지원은 두 아이에게 관심을 쏠리며 간호사에게 아이를 안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송지원은 아이를 안고 웃으며 말했다.“넌 아들딸을 한꺼번에 얻었지만 우리 몇 명에서 한재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독한 사람들이네. 이 아이의 행운을 빌어 나도 나중에 쌍둥이가 생길 거야.”유강후는 얼른 아이를 뺏어 안고는 말했다.“저리 비켜, 누가 너더러 내 아들의 행운을 빌라 했어. 그렇게 행운을 갖고 싶으면 너 절로 절에 가서 빌던지.”송지원은 두 녀석을 매우 귀하게 여기며 또 손을 뻗어 여동생을 안았다.“핑크 팔찌를 차고 있는 걸 보니 여자아이겠지? 너무 귀여워, 나도 딸이 욕심나네.”송지원은 여동생의 작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난 이 두 아이의 양 아빠가 될 거야. 앞으로 날 송 아빠라고 부르라고 해.”유강후는 송지원이 딸을 안고 놓지 않는 것을 보고
유강후는 온다연의 상처가 아플까 봐 번갈아 가며 아이를 안아 보여줬다.조용하고 작은 아이의 얼굴을 보자 온다연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다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이번에는 보온 실에 들어갈 필요가 없네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유강후는 속상한 마음으로 온다연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말했다.“보온 실은 필요 없어. 의사가 아이들이 모두 정상이라고 말해줬어. 하지만 그래도 그웬을 와서 산후조리가 끝날 때까지만 우리 집에 있으라 했어.”“우리 아들을 데리고 와봐요, 한번 보게요.”유강후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온다연의 옆에 눕혔다.온다연은 감히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머리만 옆으로 돌려 쳐다보면서 이 아이가 꿈속의 그 아이를 닮았는지 궁금했다.안타깝게도 아이는 아직 너무 작아 이목구비가 모두 주름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온다연이 실망하는 모습을 본 유강후는 웃으며 말했다.“아들은 날 닮았고 딸은 널 닮았어.”온다연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아이가 이목구비도 잘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알 수 있어요?”유강후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난 보이거든.”유강후는 몇 시간 동안 작은 침대 옆에 붙어 서서 아이의 이목구비와 윤곽을 수없이 분석한 결과 아들은 그를 닮았고 딸은 온다연을 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유강후는 희망컨대 두 아이가 모두 온다연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더니 남자아이는 좀 강하게 생기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두 아이를 모두 온다연의 곁에 눕혀두고 팔을 뻗어 그들 세 모녀를 품에 안으며 아주 정성스럽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다연아, 이젠 너희들은 내 인생의 전부야.”유강후는 앞으로 약점이지만 보호막이 될, 그한테는 세상 전부인 이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분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온다연은 유강후의 턱에 나온 수염을 만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당신 요즘 많이 피곤했죠? 안색이 너무 안 좋으니 이제 좀 쉬어
“네가 정치일에 개입도 하지 않았고 나도 이제 곧 은퇴할 것인데 만약 본가에서 나쁜 기사라도 터지면 우린 경원시에서 설 자리도 없게 돼. 그럼 우주 그룹이나 본가나 다 영향받을 수 있잖아.”유강후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그럼 유연서는요? 연서의 일은 어떻게 말씀하실 건데요? 은혜를 갚고 싶으면 알아서 갚으세요. 아무도 당신을 막지 않겠지만 누나의 목숨으로, 또 저의 행복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답하려 하지 마세요.”“그리고 제 아이들은 유씨 성을 안 가질 거고 본적에도 넣지 않을 거예요. 아이들은 이미 이름이 있어요. 하나는 강 씨 이고 하나는 진 씨 에요. 본가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 괜히 여기 와서 다연이의 휴식을 방해하지 마세요. 다연이는 본가 사람이라면 이제 치를 떨어요.”유재성은 급해하며 말했다.“괜찮아, 나 그렇게 보수적이지 않아. 아이들이 유 씨가 아니라도 내 손 군들이야. 다연이가 날 싫다 그러면 앞에 나타나지 않고 아이들만 잠깐 만나볼게. 그래도 할아버지인데 아이들에게 선물도 준비하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통화를 끊어버렸다.이때 이권이 걸어오더니 말했다.“대표님, 아이들의 출생증명서에 이름을 써야 하는데 작은 도련님이랑 아가씨 이름은 준비하셨죠?”유강후는 이권의 손에 쥐어져 있던 종이를 받아 그 위에 아이들의 이름을 적었다.그러자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역시 이미 생각해 놓으셨군요.”“남자아이는 다연이랑 같은 성씨로 진 강남으로 했고 이건 다연의 아버지가 지어주신 거고 여자아이는 강아름으로 나랑 어르신이 같이 지은 거야.”이권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작은 도련님이 진씨 가문의 성을 따르게 되면 어르신이 화 안 내실까요?”유강후는 종잇장을 건네주며 말했다.“어르신은 해외에서 평생을 살아 이런 일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실 거야. 그럼 아이의 성이 둘 다 진 씨라면 강씨 가문의 자손이 아닌 거야? 다연이가 목숨을 걸고 낳은 아이들인데 하나는 진 씨 성을 가지면 또 어때? 둘 다 진 씨 성을 따른
유강후가 가장 세게 흔들고 있는 작은 손을 건드렸더니 녀석은 바로 그의 엄지손가락을 잡았다.이상하게도 녀석은 곧 칭얼거리지 않았고 작은 입을 쩝쩝대더니 조용해졌다.유강후는 갑자기 멍해지며 신기하면서도 행복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이것이 내 아이와 실제로 접촉하는 느낌인 건가?’분명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얼굴인데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유강후가 막 아이를 안으려 할 때 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입원실에 가서 안아봐요. 산모도 곧 나올 테니 여기 막아서면 안 돼요.”유강후는 몹시 아쉬워하며 장화연과 이권 더러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고 자신은 문 앞에서 온다연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온다연도 나왔다.마취가 아직 풀리지 않은 온다연은 아직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녀를 받아 입원실로 옮겼다.입원실은 예전 온다연이 쓰던 큰 방으로 이미 모두 정리정돈이 되어 있었고 두 꼬마 녀석은 침대 옆의 작은 침대에 두었다.두 아이와 온다연은 모두 조용히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들 모자 셋을 옆에서 지켜보았다.잠깐 사이에 유강후는 많은 사진을 찍었고 한장 한장 들여다보면서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모멘트도 일 년에 한 번쯤 업데이트하는 유강후가 오늘은 연속으로 세 개의 게시물을 올렸다.그것도 모자라 다시 작은 그룹 채팅을 만들어 잘 아는 몇몇 친구들을 그룹에 끌어들이고 그중에는 염지훈도 포함되어 있었다.그러고는 제목에 쌍둥이 남매가 부럽지 않냐고 그래도 소용없다고 계속 부러워하라는 글을 덧붙여 20장이 넘는 아기의 사진을 연이어 보냈다.얼마 안 되자 답글들이 올라왔다.송지원: 아이들이 태어난 거야? 축하해, 내일 보러 갈게.봉현수: 금방 태어난 거야? 난 선물까지 미리 준비해 뒀어. 내일 지원이랑 같이 갈게.그 밑에는 붉은색으로 된 부동산 증명서 두 권의 사진이 첨부되었다.한재민: 축하해. 선물은 지금 오는 길에 있어. 설쯤에 제수와 아이들 보러 갈게.그웬: 벌써? 내가 아직 가지도 않
간호사가 수술실 문을 빼꼼히 열고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한 명은 태어났고 지금 다른 한 명도 나오는 중이니 가족들 진정하고 조용히 해주세요.”말을 하고 있는데 반쯤 열린 문에서 또 다른 한 명의 나긋나긋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안에 있는 의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2.6킬로가 되는 여자아기예요. 아기 상태도 아주 좋아요.”“산모 상태도 좋아요. 이제 봉합 수술을 시작하죠.”유강후는 기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 제 자리에서 굳어 있는 채로 꼼짝도 못 했다.간호사는 그 표정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들으셨죠? 동생도 나왔다네요. 산모와 아이 모두 무사합니다.”“유 대표님, 수술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협조해 주시고 더는 문을 잡아당기지 말아주세요.”유강후는 바로 손을 놓고 부들부들 떨며 담배를 가지려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는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었다.옆에 서 있던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축하해요. 작은 아가씨가 2.6킬로나 되는 걸 보니 도련님은 더 건장할 거예요.”유강후는 기쁜 나머지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수 없었고 신이 나서 말했다.“다연이가 무사히 수술실에서 나오면 바로 통지해. 우리 회사 직원들 전부 3일 동안 휴가를 내줄 것이고 이번 달은 두 배의 급여를 발급할 거야.”그 말에 이권은 너무 좋아 웃으며 말했다.“그럼 직원들은 아마 좋아 죽을걸요? 대표님은 참 통쾌하시다니까요.”장화연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가득했다.“도련님, 제가 가서 작은 도련님과 아가씨의 옷을 가져올게요. 방금 급하게 나서다 보니 챙기는 걸 까먹었어요.”그러자 유강후가 바로 말했다.“다른 사람 보낼 테니 장 집사는 가지 말고 여기서 다연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내가 혼자서 서툴까 봐 그래.”“그리고 앞으로 날 도련님이라 부르지 말고 회장님이라 불러. 나도 이제 아버지가 되었으니 좀 무게감 있는 호칭으로 바꿔야지.”장화연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선생님이라 부를게요. 무게감 있고 더 뜻깊어 보이잖아요?”“집안의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된 온다연은 의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왜 이렇게 빨리 수술해야 해요? 혹시 아이가 어떻게 된 건가요?”지난번의 임신 사건 후 온다연은 이제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두려웠고 지금은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되는 것이 당연했다.그러자 의사는 긴장을 풀어주려고 급해하며 말했다.“아이를 낳는 일은 누구도 장담 못 해요. 앞당겨 수술해야 하는 상황은 종종 많이 생겨요. 지금은 양수가 터져서 자궁 상태가 안전하지 못하니 빨리 수술해야 해요. 아직 만삭이 안 되었지만 이 두 아이는 온다연 씨의 몸에 비해 작지 않은 편이라 일찍 출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에요.”온다연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이들이 무사히 태어난다면 저는 괜찮아요.”온다연은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수술을 집도한 사람은 비록 그웬은 아니지만 경원시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이며 심지어 옆에서 수술에 도움을 주는 사람도 국내 유명한 산부인과 전문의였다.그런데도 유강후는 긴장한 나머지 수술실 밖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마저 바닥에 열 번 넘게 떨어뜨렸다.30분이 넘게 지났는데도 수술실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자 유강후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말했다.“장화연, 혹시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나도 수술실에 들어가 봐야겠어.”그렇게 말하고 바로 수술실 문을 잡아당기자 옆에 있던 간호사들이 그를 가로막으며 말했다.“유 대표님, 지금은 수술 중이라 여기서 이렇게 소란 피우시면 안 됩니다.”장화연도 재빨리 달려가 그를 잡아당기며 말했다.“도련님, 아이를 낳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은 건강 상태가 아주 좋고 아기도 뱃속에서 건강한 상태였어요. 게다가 많은 전문가가 수술실에 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니 내심이 기다려요.”유강후는 처음으로 초조하고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수술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되어가는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거야?”그러자 호사가 황급히 대답했
“지예솔이 며칠 전에 갑자기 사라졌대. 봉현수가 경원시의 땅 전체를 파헤칠 정도로 찾았지만 사람은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 게다가 봉현수의 회사에 일이 좀 생겨 그걸 도와 처리하느라 좀 늦었어.”유강후의 말에 온다연은 당황했지만 일부러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예솔 씨가 또 집 나갔어요? 이런 일도 이젠 한두 번이 아닌데, 며칠 더 찾아보면 찾을 수 있겠죠.”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엔 좀 다른 거 같아. 지예솔이 봉현수와 함께 썼던 물건들을 모두 불태우고 사진이랑 다 삭제했어. 십여 년 전의 편지조차 다 버려버린 걸 보니 아주 철저하게 돌아선 거 같아. 이번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온다연은 냉정하게 말했다.“봉현수가 예솔 씨를 그렇게 대하는데 어떤 여자가 옆에 남아 있겠어요? 찾지 못한다 해도 자업자득이죠 뭐.”“봉현수가 지금 미친 사람처럼 날뛰고 있어. 게다가 쓰레기 처리 센터까지 가서 뒤지면서 몇 통의 편지와 망가진 장난감 몇 개를 되찾아왔어.”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지예솔이 너랑은 좀 친해 보이던데 혹시 너한테 메시지라도 보낸 건 없어?”온다연은 다시 냉정하게 말했다.“그렇게 친한 정도도 아닌데 저한테 뭐 하러 연락하겠어요? 이미 떠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니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았을 거예요.”그러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근데 저는 지예솔 씨의 소식을 들었다 하더라도 말 안 해줄 거예요.”“됐어요. 남의 집안일은 집에서까지 논하지 말아요. 장 집사님이 맛있는 걸 해놨어요.”말을 마친 후 온다연은 유강후를 밀며 주방 쪽으로 향했다.겨우 두 걸음을 걷던 온다연은 배가 처지는 느낌을 받아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저는 배가 너무 무거워서 걷기도 힘드니 강후 씨 혼자 내려가서 먹어요.”유강후는 갑자기 긴장해 하며 말했다.“낳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온다연은 그가 긴장해 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아직도 이틀 더 있어야 겨우 8개월이
또 어느 큰 눈이 내린 날, 날씨도 엄청 추웠다.온다연은 오후에 잠깐 집을 나서 좀 먼 곳에 있는 작은 여관에 갔다.여관방에서 온다연은 주머니 하나를 지예솔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사람 찾아 만든 새 등록증이에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만든 거니 일단 받아요.”“참, 그리고 안에 카드 한 장 있어요. 천만 원이 들어 있으니 저의 성의라 생각하고 그쪽에 가서 잘 살아요.”온다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어 말했다.“확인해 보니 라현쪽에 유강후의 지사가 있었어요. 제가 이미 이유를 대서 그 지사를 대진 그룹 명의로 옮겼어요. 그쪽 사람들한테도 이미 인사를 했고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지금 예솔 씨의 이름으로 경리를 찾아가면 돼요. 이름은 임진혁이라 해요. 하지만 그쪽은 외진 곳이라 제가 많은 도움은 줄 수 없을 거 같으니 이후의 일은 예솔 씨가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지예솔은 등록증과 은행 카드를 번갈아 보더니 결국 받아들이고 자그마한 짐가방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온다연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저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물건이니 이거라도 받아주세요.”그녀가 건넨 물건은 너무 투명하여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옥팔찌로 비록 최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천만은 되는 듯해 보였다.온다연이 거절하려고 하기 전에 지예솔이 한마디 덧붙였다.“이거라도 받지 않으면 제 마음이 안 편해서 그래요. 다연 씨가 갖고 있는 액세서리 하나도 이것보다 더 비싸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제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물건이에요.”온다연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옥팔찌를 받아들였다.“차가 도착했어요. 우리도 이제 내려가요.”지예솔은 남성복으로 갈아입고 자그마한 짐가방을 메고 온다연과 함께 내려갔다.밖에는 검은색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고 지예솔은 바로 그 차에 타고 창문을 내리며 온다연에게 손을 흔들었다.차가 떠나간 후 온다연도 옆에 있던 차량에 탔고 기사는 유강후가 제일 믿는 장 아저씨였다.온다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장 아저씨, 아드님이 경대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