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는 온다연의 얼굴은 만지며, 온다연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아저씨. 여기는 안전해요.”확실히 안전하다. 요 며칠 동안 유하량과 유민준도 나타나지 않고, 온다연이 싫어하는 사람들, 일도 나타나지 않았다.모든 게 유강후의 생각대로이다.유강후는 고개를 돌려 이권에게 말했다.“데려다주고 와.”이권은 고개를 끄덕이며 온다연을 바라보았다.“온다연 씨, 가시죠.”사실 이권은 데려다주는 게 너무 오버라고 생각했다. 유강후가 너무 소중히 여기는 게 아니냐고 생각했다.이 호텔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그냥 몇 걸음만 가면 도착하는데, 굳이 데려다줘야 하나 생각했다.하지만 이권은 자기의 생각을 말할 엄두도 없고, 온다연의 뒤를 따랐다.거의 도착할 때쯤 온다연이 갑자기 멈추었다.온다연은 앞에 있는 작은 정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움직이지도 않고, 표정도 멍해졌다.이권은 온다연이 무슨 이상한 것을 본 줄 알고 그녀의 시선을 따라 보았다.온다연의 시선을 따라 보더니, 이다 하루코가 정자에 서서 그들을 보고 있었다.이권은 하루코의 눈빛을 보고 이상하고 불편했다.이권이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온다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매니저님. 이 하루코라는 여자가 아저씨의 외국에 있는 여자 친구인가요?”이권은 고개를 저었다.“그건 잘 모르겠네요. 대표님을 2년 동안 모셨지만, 저는 주로 한국에 있는 일들을 담당해서요.”온다연은 하루코를 보며 그녀가 마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 어떤 영화배우보다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온다연이 본 가장 아름다운 여자이다.온다연이 혼자 중얼거렸다.“정말 예쁘네요. 아저씨는 왜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요?”하루코가 이렇게 아름다운데 유강후에게 찬밥 신세이니, 자기는 더욱 심할 거로 생각했다.유강후도 방금 나은별과 혼약했다고 인정했다.그러기에 지금 온다연의 신분은 유강후의 애완동물과 같다. 다들 자기를 첩이라고 부를 거고, 하루코보다 못한다.이권은 온다연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하루코가 아마 일
온다연은 고개를 저으며 하루코를 찬찬히 바라보았다.가까이 보니까 온다연은 하루코가 더욱 아름답다고 느꼈다. 달빛에 비춰서 아주 비인간적으로 예뻤다.“혹시 아저씨 좋아하세요?”하루코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제가 열다섯 살 되던 해에, 강후 씨를 처음 만났어요. 그때 작심했어요. 이 사람이 아니면 절대 시집가지 않겠다고. 하지만 강후 씨는 저를 좋아하지 않아요. 십 년을 기다렸지만, 여전히 저한테 눈길도 주지 않았어요.”“나중에 한국에 약혼녀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내연녀의 신분으로 강후 씨를 평생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기회조차 주지 않았어요.”하루코의 목소리는 매우 씁쓸했다.“알아요. 강후 씨가 일본인을 좋아하지 않다는 거. 하지만 이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저는 일본인으로 태어났고, 바꿀 수 없잖아요.”하루코는 유강후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온다연은 하루코의 눈빛이 전혀 화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온다연이 당황해서 말하려는데, 하루코가 입을 열었다. “강후 씨, 좋아해요?”온다연은 멍해졌다.유강후를 좋아하는가.온다연은 감히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하루코는 또 말했다.“좋아하지 마세요. 매우 고통스러울 거예요. 당신은 아직 너무 어리고, 나중에 더 많은 남자를 만날 수 있어요. 당신한테 마음이 없는 사람을 좋아하지 마세요. 그거 알아요? 강후 씨가 우리 학교에서 유학할 때,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강후 씨를 좋아했지만 아무도 강후 씨의 마음을 잡은 사람이 없었어요.”“강후 씨의 마음은 나은별 씨한테 있어요. 나은별이 아닌 이상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에요.”하루코가 중얼거렸다.“하지만 전 그가 저를 기억하길 원해요. 평생 저를 기억하게 하고 싶어요.”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을 이길 수 없어요.”하루코는 천천히 유강후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갔다.하루코는 옷을 얇게 입고 외투도 입지 않아 찬바람 속에 아주 가냘프게 보였다.온다연은 하루코의 뒷모습을 보며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온
온다연은 누군가의 팔을 움켜쥐고 중얼거렸다.“아저씨. 아저씨.”그 사람은 호텔 직원인데 온다연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고 눈도 초점 없는 것처럼 보여서 당황했다.“아가씨. 괜찮으세요? 병원에 데려다줄까요?”온다연은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도 않고 귓가에 인기척만 들리고 눈앞은 선홍빛 핏물이 가득했다.온다연은 다리에 힘이 풀려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한다. 의도치 않게 그 사람에게 기댔다. 그 호텔 직원분 역시 놀라서 황급히 부추겼다.“이보세요. 아가씨, 괜찮아요?”온다연은 눈을 뜨고 있었지만, 의식이 없는 듯 손을 뻗어 호텔 직원을 끌어안았다.호텔 직원은 온다연이 땅에 쓰러질까 봐 어쩔 수 없이 몸을 기대게 했는데, 온다연이 무의식적으로 자기 품속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온다연의 그런 모습에 호텔 직원이 막 위로하려는 찰나, 등 뒤에서 매서운 한기가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돌리자, 키 크고 듬직한 남자가 서 있었다.그 남자는 호텔 직원을 노려보고 있었고, 그 압박감이 호텔 직원의 심장을 쥐어짜고 있는 듯했다.호텔 직원이 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대... 대표님?”유강후는 다가가서 호텔 직원 품에 있는 온다연을 안았다.“제가 안을게요.”호텔 직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황급히 한쪽으로 물러섰다.유강후는 온다연을 품에 안고, 얼굴을 만지며 나지막이 그녀를 불렀다.“다연아.”온다연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유강후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가 온다연의 주위를 감쌌고, 온다연은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 유강후의 옷을 꼭 잡았다.온다연은 유강후의 품에서 몸을 심하게 떨며 계속 그를 불렀다.“아저씨. 안아주세요.”“아저씨. 안아...안아주세요...”유강후는 이상하다고 느껴서 온다연의 이마를 만졌다. 분명히 손은 얼음처럼 차지만, 이마에는 온통 촘촘한 땀투성이였다.유강후는 순간 눈에서 살기가 나더니, 경찰이 와서 처리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시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리고
유강후의 눈에는 악기가 가득했다. “이거 놓으세요!”이치로는 당연히 순순히 놓지 않았다.두 사람은 잠시 대치하다가, 결국 이치로는 이권에게 강제로 끌려갔다.이권도 말을 곱게 하지 않았다.“이치로 씨, 말조심하세요. 그리고 여기가 어디인지 생각 좀 해보세요.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은 건드리지 마세요. 살아서 돌아가고 싶으면요.”이치로는 매서운 눈으로 유강후를 노려보았다.“어디에 있든 법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온다연 씨는 제 여동생을 죽게 한 용의자입니다. 이대로 갈 수는 없습니다!”유강후는 차갑게 말했다.“첫째. 당신 여동생이 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제 연인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컨디션이 보다시피 매우 좋지 않습니다. 이 일도 제가 책임을 물을 예정이니 각오하세요. 미래 그룹 수백 명의 법무팀이 끝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둘째. 당신 여동생의 죽음은 제 호텔에 명예와 경제적 손실을 입혔으니, 이치로 씨가 저랑은 무관한 일이라고 사과하고 경제적 손실을 배상해야 합니다.”“셋째. 여기는 총기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계속 법 법 거리시는데, 당신이 좋아하는 법으로 해결합시다. 저는 선량한 시민으로서 이러한 불법 행위를 용납하지 않습니다!”유강후는 이권을 바라보며 화난 듯 말했다.“이 매니저님. 당장 경찰에 다시 신고하고 이이다 가문과의 모든 계약을 중단하세요!”“알겠습니다!”이치로는 얼떨떨해하다가 정신을 차린 듯 하루코의 시신을 보니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하지만 말투는 매우 평온했다.“유 대표님, 죄송합니다. 방금 제가 실수했습니다.”“하지만 미래 그룹과 이다 가문은 오랜 세월 동안 서로 윈윈하고 있는데, 이대로 계약을 중단할 수 없습니다. 부디 명령을 철회해 주십시오.”미래 그룹은 세계 최고의 대형 그룹으로 산업 사슬이 매우 다양하다. 이다 가문이 동남아시아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이다. 이번에 미래 그룹과의 계약이 잘못되면 이치로의 후계자 자리도 사라지게 된다.그러나 유강후는 그를 안중에도
한의사는 심각한 표정이었다.“셋째 도련님. 어서 병원을 가시는 게 좋겠어요. 온다연 씨가 충격에 임시로 청력을 잃은 것 같아요. 그리고 잘 보이지도 않은 것 같아요.”말하는 그 시각에도 온다연은 유강후에게 더욱 깊이 안겼다. 마치 이 세상에서 오직 유강후만이 안전하고, 유강후 곁에 있어야만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그때, 장화연이 밖에서 들어오고, 뒤에 또 한 사람이 따라왔다.경찰 제복에 30대 초반 정도였고, 매우 엄숙한 표정이었다.“유 대표님. 목격자와 사망자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대표님 곁에 있는 아가씨라고 들었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유강후는 일어나 온다연을 다시 품에 안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전 서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 아가씨가 놀라서 지금 협조하지 못하는 상황일 것 같습니다.”전서후가 다가가 온다연의 상태를 살펴보니 알던 얼굴 같았다.“혹시 이 여자분 성이 온씨 입니까?”유강후와 전서후는 친분이 있는 사이인데, 유강후는 이 말을 듣자마자 대답했다.“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전서후는 눈살을 찌푸리며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다.“10년 전, 제가 직장에 처음 부임할 때, 그때는 파출소에서 순찰하는 경찰이었습니다. 부임한 다음 날 밤, 누군가가 그 구역에서 자살했다고 신고가 왔고 가서 알았죠. 한 여자분이 옥상에서 뛰어내려 중간에 나무에 걸려서 흉하게 죽었습니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는 딸아이가 있었는데, 울지도 않고 아주 이상해 보였습니다.”전서후는 또 참지 못하고 온다연을 쳐다봤다.“제가 맡은 첫 사건이라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렇게 큰일이 일어났는데도 집에 어른 한 명도 와서 도와주지 않고 이웃이 와서 처리해 주었죠.”“당시 이 아가씨가 경찰서에서 녹취록을 작성하는데도 울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아 바보처럼 보였는데, 나중에는 이상해서 의사를 찾아가 보니 일시적인 실명과 청력을 잃었다고 했습니다.”전서후는 고개를 저으며 안타까워했다.“됐습니다. 보니 오늘은 녹취록을 작성하지 못할 것 같네요. 어서 병원
유강후는 살갑게 말했다.“주디 선생님. 우리 아가씨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주디는 미소를 지으며 유창한 한국어로 대답했다.“유 대표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여기에 발을 붙일 수 있는 것도 다 대표님 덕분입니다.”주디의 시선은 다시 온다연의 작고 창백한 얼굴에 떨어졌다.“이 여자가 대표님이 서둘러 귀국한 이유인가요?”유강후는 대답하지 않고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이 여자가 왜 이러는지 말해 보세요.”주디가 말했다.“이분은 심리적 문제가 아주 심각해요. 제가 정신과 의사를 오랫동안 해왔는데, 이렇게까지 청력을 잃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은 드물어요. 아까 최면하는 것으로 봐서 유년 시기에 큰 충격을 받았는데, 그때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아서, 지금 상황이 더욱 악화된 거 같습니다.”주디는 잠시 말을 더듬다가 다시 온다연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이상한 것은, 제가 묻는 질문에 온다연 씨는 열두 살 이전의 일에만 대답하고 열두 살 이후의 일은 입 밖으로 내뱉지도 않았습니다. 이 정도로 심리적 방비가 심각한 사람은 처음이네요.”유강후의 눈빛이 갈수록 차가워져서, 주디는 눈치를 보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아직 확실하지 않으니, 깨어나서 다시 테스트해야 합니다.”이날 밤 온다연은 잠을 매우 설쳤다. 밤중에 열이 나기 시작했고, 침대 위에서 계속 뒤척거렸다. 땀이 시트를 적시고, 무언가가 온다연의 몸에 힘껏 부딪히는 것처럼 답답하고 견딜 수 없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이 계속 그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물수건으로 몸을 식혔다가 네 번째 옷을 갈아입히는데,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살을 만지는데 델 정도로 뜨거워서, 순간 놀라서 주치의와 간호사를 불러왔다.유강후는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서서 그들을 차갑게 쳐다보았는데, 눈에는 살기가 가득해서 사람을 잡아먹는 듯했다.그들도 유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이 병원을 인수하는데, 반나절 만에 시중가의 세 배에 사들였다.일주일 동안
그렇게 주치의와 간호사들은 한밤중까지 서 있었다.새벽이 돼서야 온다연의 열이 좀 떨어지고 조용해졌다.가끔 한두 마디 앓는 것을 제외하고 점심시간까지 조용히 잠을 잤다.온다연이 깨어났을 때 눈앞이 캄캄하고 순간적으로 공포에 사로잡혀 당황해 침대를 더듬으며 목소리를 떨었다.“아저씨! 아저씨!”유강후는 옆에서 유다연의 손을 꼭 잡았다.“다연아, 나 여기 있어. 무서워하지 마.”온다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유강후의 팔을 꽉 잡고 목소리는 덜덜 떨렸다.“아저씨. 아무것도 안 보여요.”유강후는 한 손으로 온다연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로 온다연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가능한 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내 말이 들려?”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초점이 전혀 안 잡혀서 당황했다.“안 보여요. 아저씨, 저 안 보여요.”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하고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괜찮아.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의사가 일시적인 실명이라고 곧 회복할 거라고 얘기했어.”온다연은 유강후의 손을 꼭 잡아당겨 가슴이 심하게 요동치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정말 며칠이면 좋아지는 거예요?”유강후도 온다연의 손을 잡았는데, 온다연의 손에 땀이 흥건한 것을 보고 찬찬히 위로해 줬다.“기껏해야 이틀이야. 잘 쉬고 하면 오늘 저녁에 보일지도 몰라.”온다연은 말하지 않았다.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는데 귀 밑머리를 적셨다.그런 온다연의 모습을 지켜보던 유강후는 그녀가 매우 긴장한 것을 알고 휴지를 가져와 꼼꼼히 닦아주며 장화연에게 말했다.“아까 한 따뜻한 죽 좀 가져오세요.”온다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안 먹고 싶어요.”유강후는 온다연을 찬찬히 달래며 말했다.“조금이라도 먹어야 빨리 낫지. 말 듣자.”온다연은 한 손으로 유강후의 소매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침대에 부추기고 머리를 숙였다.“입맛 없어요. 맛도 없을 것 같아요.”유강후는 장화연이 가져온 죽을 받아 온다연에게 먹여줬다.“조금이라도 먹어. 네가 좋
온다연은 말하지 않았지만, 몸은 여전히 떨고 있었다.한참 뒤에야 작은 소리로 말했다.“저는 그냥 몇 마디만 얘기했을 뿐인데, 그녀가 죽을 줄은…”유강후는 온다연을 안아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무슨 말 했는데?”온다연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를 좋아하는 사람은 다 죽어야 마땅하다고요.”온다연은 고개를 들고 초점 없는 눈으로 유강후를 바라보았다.“아저씨. 저도 나중에 그런 결과인가요?”유강후는 잠시 멈칫하다가 천천히 손을 움직여 온다연의 가느다란 턱을 움켜쥐었다.“온다연, 지금 무슨 소리하고 있는 거야?”유강후는 차갑고 경고하는 듯한 말투였다.온다연은 무의식적으로 뒤로 몸을 움츠리고 손을 더듬어 유강후의 옷을 움켜쥐었다.“아저씨. 이제 갈 거예요?”온다연의 목소리는 매우 긴장되고 떨리는 것처럼 들렸다.온다연은 땀에 머리가 젖었고, 하얗고 여린 얼굴을 들고 유강후를 쳐다보았다. 온다연의 모습은 마치 비 맞은 강아지처럼 안쓰럽고 가여웠다.유강후는 조금 전까지 만해도 화가 났었는데, 온다연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약해졌다.그러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안가.”온다연은 유강후의 옷을 잡고 놓지 않았다.“화났잖아요.”“내가 화난 줄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해?”온다연은 머리를 유강후의 어깨에 기댔다.잠시 후. 유강후의 전화가 울렸다. 유강후가 일어나 전화를 받으려고 하자, 온다연도 따라서 일어나 초점 잃은 눈동자로 바라보았다.“아저씨. 갈 거예요?”유강후는 걸려 온 전화를 보니 유재성이었다. 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잠깐 여기 있어봐. 나가서 전화만 받고 올게.”온다연은 유강후를 볼 수 없었지만, 목소리에서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아저씨. 빨리 돌아와야 해요.”유강후는 온다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휴대폰을 들고 방을 나갔다.시간은 빠르고도 느리게 흘러갔다. 온다연은 혼자서 덩그러니 방에 앉아 있는데, 마치 몇 년 전 그 외
온다연은 옆에서 모든 장면을 보고 있었고 겁에 잔뜩 질려 얼어붙은 채로 유강후의 팔을 붙잡으며 외쳤다.“그만해요! 제발 그만두세요!”하지만 그녀는 곧 경호원에게 제지당하고 말았다.염지훈은 눈이 붉게 충혈된 채 유강후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혹시 당신이 신이라도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다른 사람의 생사까지 결정할 수 있는 줄 아시나 본데 그건 틀렸습니다. 유강후 씨가 이럴수록 온다연은 당신을 더 증오할 겁니다. 다연이를 보세요. 당신을 쳐다보는 것조차 싫어하지 않나요?”“유강후 씨가 아무리 다연이를 억지로 데려가도 쟤는 어떻게든 당신을 떠날 방법만 찾을 겁니다!”“당신 같은 사람은 절대 사람의 진심 어린 마음을 얻을 자격이 없거든요.”그 말에 유강후의 눈빛은 더욱 살기를 띠었고 그는 발을 들어 다시 염지훈을 거세게 찼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더 무자비했다.염지훈은 거친 기침을 하며 피를 미친 듯이 뱉어냈고 온다연은 깜짝 놀라 경호원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철저히 제압당해 꼼짝도 할 수 없었다.이 순간, 유강후는 온다연의 눈에 핏빛으로 물든 악마처럼 보였다. 그의 통제 불가능한 모습은 마치 염지훈을 죽일 작정인 것 같았다.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반드시 막아야 했다. 순간, 온다연의 시야에 방금 테이블 위에 놓였던 과도가 들어왔다.그러자 온다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칼을 집어 자신의 목에 갖다 댔고 경호원들은 깜짝 놀라 달려들며 외쳤다.“사모님, 안 됩니다!”“사모님, 칼 내려놓으세요!”온다연은 한 발짝 물러섰고 손에 힘을 주어 칼끝을 목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다가오지 마세요!”유강후는 갑작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온다연을 보고는 충격에 몸이 굳었다.하지만 온다연의 목에는 이미 날카로운 칼날이 깊이 박혀 선혈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온다연의 목에서 흐르는 피를 본 유강후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칼 내려놔. 온다연.”그러나 온다연은 벽 쪽으로 물러서며 단호하게 말했다.“다가오지 마
온다연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뒤에 있는 소파 천을 손으로 꽉 움켜잡았다.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그녀는 입술을 부르르 떨며 간신히 유강후에게 물었다.“어...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오셨어요?”유강후의 시선은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더 말랐네. 잠을 못 잤는지 눈 밑도 시커멓군.’ 그의 시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고 이내 유강후는 온다연이 입고 있는 헐렁한 티셔츠를 보았다. 그 셔츠는 마치 마트에서 2만 원도 안 하는 싼 물건 같았다.그걸 본 유강후의 눈에는 분노의 감정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온다연이 이런 곳에서 살면서도 자신과 함께 돌아가길 거부하다니?자신을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건가?이런저런 의문이 든 유강후는 손을 쭉 뻗어 그녀의 허리를 거칠게 붙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또 도망갈 거야? 왜 안 도망치지?”유강후의 힘은 상당했고 온다연은 허리가 부러질 것 같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외쳤다.“전 당신과 가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그 순간, 부엌에서 소란을 들은 염지훈이 급히 달려 나왔다.이내 유강후를 발견한 염지훈은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유강후 씨, 당장 그 손 치우시죠!”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던 그가 앞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유강후의 경호원들이 곧바로 그를 가로막았다.염지훈 또한 싸움실력이 강한 편이었지만 오늘 유강후가 데려온 사람들은 모두 최정예 경호원들이었다.몇 명이 그를 꽉 붙들자 그는 도저히 그 사람들을 뚫고 나갈 수 없었다.분노와 무력감에 사로잡힌 염지훈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유강후 씨, 어린 여자를 억지로 끌고 가는 게 그렇게 잘난 짓입니까!”하지만 유강후는 염지훈을 쳐다도 보지도 않고 여전히 온다연을 주시한 채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염지훈, 이건 우리 부부 사이의 문제야. 네가 낄 자리는 없어.”그 말을 들은 염지훈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더 크게 외쳤다.“헛소리하지 마세요. 유강후 씨가 저지른 비열한 짓들을 다들 모를 줄 아세요? 당신이 바깥에서...”“그만. 이제
두 사람이 먹을 저녁은 간단하게 준비되었다.하지만 온다연이 직접 만든 음식은 솔직히 말해 맛이 있는 게 아니었다.소금을 과하게 넣어 음식이 너무 짜거나 아니면 반찬이 다 타버려 먹을 수가 없었다.그러나 온다연은 그런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너무 짠 반찬을 뜨거운 물에 헹궈가면서까지 입에 넣었다.염지훈은 그런 그녀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더니 물었다.“예전에 혼자 있을 때도 이렇게 먹었어?”온다연은 젓가락으로 채소를 집어 뜨거운 물에 헹군 뒤 대답했다.“그런 좋은 반찬을 먹었다고 생각하세요? 꿈도 크시네요. 전부 마트에서 세일해서 남은 것들이었어요. 정말 맛이 없었죠.”그녀는 담담히 웃으며 계속 말했다.“지훈 씨는 귀공자처럼 살아온 사람이니까 이런 걸 이해 못 하겠죠. 제가 만든 게 마음에 안 들면 직접 하세요. 전 이 정도밖에 못 하니까.”염지훈은 그녀의 손등에 뜨거운 기름에 데어 생긴 물집들을 보며 다시금 미간을 찌푸렸다.“정말 괜찮아? 약이라도 바를래?”온다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괜찮아요. 그럴 필요 없어요.”그러자 염지훈은 한숨을 푹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잠시 후 색깔과 향, 그리고 맛까지 모두 완벽한 세 가지 반찬과 국 한 그릇이 테이블에 올려졌다.그걸 본 온다연의 눈이 반짝이더니 신이 난 듯 말했다.“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여요.”염지훈은 그런 온다연을 보며 미소 짓더니 반찬을 그녀 앞으로 밀어놓으며 말했다.“먹어. 아니면 차라리 가정부라도 부를까?”“필요 없어요. 여기 며칠밖에 안 있을 거니까. 게다가 가정부 부를 돈도 없고요.”그녀의 대답에 염지훈은 낮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온다연, 하여간 참 고집도 세다니까.”며칠 동안 함께 지내면서 지켜본 온다연의 학습 능력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며칠간 밀렸던 수업도 다 따라잡고 앞으로 한 달 동안 배워야 할 내용까지 스스로 공부했다.심지어 학교 사이트에서 시험지를 다운로드해 풀었는데도 점수는 매우 높았다.하지만 생활 능력은 정말 최악
오후가 되자 온다연의 열은 다행히 떨어졌지만 여전히 기운이 없어 보였고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손에 든 핸드폰을 계속 뒤적이며 무언가를 찾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저녁 무렵, 염지훈이 밖에서 돌아왔지만 그의 표정은 다소 무거워 보였다. “우리는 지금 경원시로 돌아가야 해. 유강후 그 미친놈이 내가 소유한 모든 부동산을 뒤지고 있어. 아마 곧 평진 쪽까지 알아냈을 거야. 지금 상황에서는 경원시가 오히려 가장 안전해.” 온다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지금 바로 떠나는 거예요?” 염지훈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며 망설였지만 결국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차로 이끌었다. 그렇게 차가 한참을 달린 뒤, 침묵하던 온다연이 입을 열었다. “아까 무슨 말 하려고 했어요?” 염지훈은 대답 대신 핸드폰을 그녀에게 건넸다. 핸드폰 화면에는 염지훈의 비서가 보낸 사진과 정보가 담겨 있었고 사진 속에는 유강후와 한 여자의 모습이 있었다.여자의 얼굴은 멀리서 찍혀 흐릿했지만 유강후만큼은 온다연이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둘의 모습은 지나치게 다정했고 게다가 유강후가 병원에서 나은별을 방문하는 사진도 몇 장 포함되어 있었다. 온다연은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지만 두 손은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그러자 옆에 있던 염지훈이 먼저 말을 꺼냈다. “최근 3~4일 사이에 찍힌 사진이야. 그런데도 그 아이는 한 번도 찍히지 않았어. 유강후 씨가 그 아이를 너무 철저히 보호하고 있어서 거의 데리고 나오질 않아.”그는 잠시 말을 망설이다가 말을 덧붙였다.“그리고 유강후 씨는 요즘 거의 매일 밤 그 집에서 머물고 있어. 어젯밤도 포함해서.” 그 말을 들은 온다연의 가슴 깊은 곳에서 서서히 묵직한 고통이 밀려왔다. 마치 마음 한구석이 커다랗게 도려내진 듯 아픔이 반복되었고 무감각해지려고 애를 썼지만 쉽지 않았다. 온다연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핸드폰을 염지훈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기다리다 보면 언젠간 되겠죠.” 경원시에 도착한
그 말에 염지훈은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생각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네. 좋아! 네 말대로 해보자.” 그는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지시를 내렸다.“준철아, 놈들을 다른 길로 유인해. 최대한 멀리 끌고 가.”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준철의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좋습니다! 운전은 제 전문이니까요!” 잠시 후, 흰색 차량은 천천히 출발했다.온다연의 예상대로 검문은 철수되어 있었고 두 사람이 탄 차는 순조롭게 경원시를 빠져나왔다.그렇게 깊은 밤이 지나고 차는 한 저택 앞에 멈췄는데 문 앞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그들이 내리자 한 사람이 급히 나와 인사했다. “도련님, 도착하셨군요!” 이 저택은 전통적인 중식 건축 양식을 띠고 있었으며 유강후의 전통 한옥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마당에는 커다란 파초 나무와 연못이 조화를 이루며 운치 있는 풍경을 자랑했다. 그러나 온다연은 이 모든 것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고 방 한쪽에 기대어 휴대폰 화면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화면에는 임정아와 관련된 더 많은 부정적인 소식이 떠오르고 있었다.‘아저씨는 내 주변 사람들까지 가만두지 않는데 내가 그 사람한테 잡히면 정말 감옥처럼 갇혀 살다 쓸쓸히 죽게 되는 걸까?’ ‘내 아들은 지금 그 여자 품에서 편히 잠들어 있을까? 그녀는 아이를 잘 보살피고 있는 걸까?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걸까?’ 온다연은 순간적으로 우림도 떠올랐다. 비록 친아들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 아이에게서 많은 정을 느꼈었다.이런저런 생각이 들자 온다연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였다. 천천히 흘러내리는 눈물은 밤이 깊어질수록 멈출 줄 몰랐다. 동이 틀 무렵, 온다연은 탁자에 엎드린 채 잠들었다.염지훈이 방에 들어섰을 때 이미 온다연은 창가의 탁자에 엎드린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가가 그녀를 침대로 옮기려 했지만 손끝에 느껴지는 온도가 이상하리만치 뜨거웠다. 이상한 느낌에 염지훈은 온다연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고
염지훈은 뒤돌아 온다연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 여자 너랑 정말 많이 닮았어. 놀랄 만큼.” 그 말은 마치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온다연의 가슴을 깊숙이 찌르는 것 같았다.이미 무뎌져 버렸다고 생각한 마음이 다시금 은은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은 이미 자신의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그 여자를 그렇게까지 아끼면서 왜 자신에게 이토록 집착하는지 말이다. 그냥 놔주는 게 낫지 않은가? 왜 굳이 자신이어야 하는가? 그가 그런 얼굴을 가진 여자를 그렇게 좋아한다면 또 다른 비슷한 사람을 찾으면 될 텐데 왜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걸까? 심지어 헬기까지 동원해 사람을 찾는 꼴이 우스웠다. 마치 깊은 애정을 가장이라도 하는 듯 보였으니. 온다연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고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가고 있었지만 아예 신경 쓰지도 않았다.빛은 아주 어두웠지만 염지훈은 온다연의 눈에 서린 깊은 슬픔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한참을 어두워진 안색을 한 채 서 있던 염지훈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마음 아파할 가치 없어. 정말로.” 온다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발걸음을 더 빨리 옮겼다. 그 후로 두 사람은 각자 마음속에 무거운 생각을 안고 있었는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길을 걸었다.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작은 길의 끝에 다다랐고 그곳에는 검은색 지프 랭글러가 이미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올라탄 후에도 두 사람은 말없이 침묵을 유지했다. 도로의 불빛이 점점 많아지고 이내 교차로에 도착했을 때 운전 기사가 입을 열었다. “이 구역의 검문은 철수했지만 대신 호텔과 여관을 다시 검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온다연은 대답하지 않고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호텔 근처에 이르렀다. 호텔을 지나칠 때, 익숙한 붉은 깃발이 걸린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곧이어 차문이 열리
염지훈은 그 말에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낮은 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누군가 우리가 있는 곳을 누설했을 거야. 아니면 이렇게 빨리 찾을 수 없었을 거야.” 염지훈의 말에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유강후가 이곳을 정확히 찾아낸 것도 아닙니다.” 그는 잠든 온다연을 한 번 쓱 쳐다봤다. “유강후는 온다연 씨를 유독 주시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온다연 씨 몸에 위치 추적 장치가 붙어 있는 건 아닐까요?” 염지훈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그는 잔뜩 어두워진 안색을 하고는 밑으로 내려왔다. 그는 온다연 앞으로 다가가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그 위에는 터키석으로 만든 단추가 하나 있었는데 아주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걸 본 온다연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이게... 위치 추적 장치인가요?” 염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군사용 최신 장치야. 다른 단추들은 진짜 터키석인데 이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어.” 그는 손에 힘을 주어 단추를 두 동강 냈고 그제야 안쪽에 숨어있던 작은 공간이 드러났다. 정밀하게 제작된 위치 추적 장치에는 작고 복잡한 부품들이 들어 있었는데 은밀하면서도 강력해 보였다. 염지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나 말했다.“유강후가 정말 돈을 아끼지 않는군. 이렇게 작은 장치 하나가 수백만 달러짜리야. 막 개발된 신형 기술인데 군에도 몇 개 없대, 그걸 네 몸에 달아놨다니.” 온다연은 고개를 뚝 떨군 채 낮게 말했다. “저희 여기서 나가요.” 염지훈은 장치를 다시 맞춰 덮고는 옆 사람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멀리 던져버려. 사람 많은 곳이면 더 좋겠어. 유강후가 애타게 찾게.”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사람은 재빨리 장치를 들고 나갔고 염지훈은 나머지 사람들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린 뒤, 온다연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섰다. “가자. 유강후가 곧 도착할 거야. 여기서는 더 이상 있을 수
온다연이 말했다. “좋아요.” 아래 작은 정원에는 이미 두 개의 바비큐 그릴이 놓여 있었고 몇 개의 편안한 의자가 잔디 위에 아무렇게나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공기 중에는 바비큐 특유의 고소한 향이 가득했다.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염지훈과 온다연이 함께 나오는 것을 보고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고 그중 한 명이 장난스럽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형수님, 안녕하세요.” 염지훈은 그를 째려보며 대답했다. “헛소리하지 마. 아직 그럴 때 아니야.” 그 사람은 싱글벙글 웃으며 염지훈의 말에 대꾸했다. “그럴 날이 금방 올 것 같은데요?” 염지훈은 더 이상 그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온다연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저 사람들 원래 말 저렇게 해. 제멋대로라서.” 온다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더니 물었다. “괜찮으세요?” 그 사람은 다리에 감긴 붕대를 손으로 가볍게 툭툭 두드리며 웃었다. “별거 아니에요. 며칠 쉬면 나을 겁니다.” 온다연이 먼저 다가와 괜찮냐고 묻자 그는 오히려 당황하며 귀끝까지 빨개졌다. 잠시 후, 몇 술이 몇 상자나 도착하며 분위기가 한층 더 활기를 띠었다. 염지훈은 생굴 한 상자를 가져오더니 직접 굽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닭고기를 손수 뜯어 작게 자르더니 그녀에게 건넸다. 온다연은 염지훈이 건넨 고기를 받지 않고 스스로 닭 다리 한 조각을 뜯어 손에 들고는 우적우적 먹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먹은 온다연의 입가에는 기름이 번들거렸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기도 하고 지금 기분이 조금 나아진 터라 허겁지겁 먹게 된 것이다. 염지훈은 너무도 잘 먹는 그녀가 의외라는 듯 바라보다가 매운맛에 빨개진 온다연의 입술을 보고는 안색이 잠시 어두워졌다. 그러더니 이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천히 먹어. 그리고 체하지 않게 조심하고...” 염지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에서 사람들의 아주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형님이 직접 나서셨
염지훈이 수도관을 고치고 욕실에서 나올 때쯤 바이크 슈트를 입은 사람 몇 명이 들어왔다.“유강후 그 사람 정말 미쳤습니다. 경원의 중요한 교차로마다 검사대를 설치했다니까요? 바이크를 탄 사람은 전부 다 면허증을 제공해야 된대요. 우리를 잡으려고 눈이 완전히 뒤집힌 모양이에요.”염지훈은 젖은 옷을 벗어 소파에 내팽개치더니 캐주얼한 옷으로 갈아입었다.“찾으라고 해. 어차피 타 지역 번호판이랑 면허증이라서 못 찾을 거야.”곧이어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하지만 정체가 이미 탄로된 것 같습니다. 유강후가 알아챈 게 틀림없어요. 지호 형님이 저한테 연락이 왔더라고요.”염지훈은 대수롭지 않은 듯 콧방귀를 뀌었다.“여신 그룹 지분은 이미 진작에 포기했어. 이제 염씨 가문이랑 엮인 게 없으니까 어차피 형이 날 찾아도 달라질 건 없어.”“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유강후는 워낙 경원에서 세력이 큰 사람이잖아요. 저희가 아직 맞서 싸울만한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아직 서른도 안 됐는데 어떻게 저 자리까지 올라갔을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경원에서 그나마 이름을 알린 가문이라면 다 유강후의 투자를 받으려고 목을 매지 않습니까. 돈과 권력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유강후한테 굽신거리니 참...”“심지어 잘나가는 기업에는 무조건 유강후의 지분이 있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유강후를 따라서 투자한다잖아요. 참 빈틈이 없네요.”염지훈은 여전히 신경 쓰지 않았다.“금융 천재? 능력이 좋으면 뭐 해. 온다연은 아직도 벗어나려고 도망치고 있잖아. 유강후는 온다연을 소중히 여길 줄 몰라. 그러니까 애초에 가질 자격이 없는 인간이야.”남자는 온다연이 있는 방을 힐끔 쳐다봤다.“아직 식사 안 하셨죠? 저희도 배고파서 밖에 바비큐 그릴을 설치하는 중인데, 나중에 내려와서 좀 드세요.”그 말을 끝으로 하나둘씩 밖으로 나갔다.염지훈은 소파에 잠시 앉아 있다가 여러 차례 통화를 마치고 온다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