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는 애써 감춰왔던 살기를 조금씩 드러냈다.“너한테 주는 마지막 경고야. 내 인내심은 여기까지야.”염지훈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차분하게 말했다.“권씨 가문에 대한 통제를 취소해요. 안 그러면 계속 옆에 맴돌면서 괴롭힐 거예요.”유강후는 몹시 단호했다.“네가 우리 사이에서 사라진다면 못 할 건 없지.”염지훈은 답답했다.“아직도 모르겠어요? 난 강 대표님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다연이가 괴로워하는 게 싫어서 물러나는 거예요. 혹시나 또 안 좋은 생각을 할까 봐 걱정되어서.”“다연이가 그동안 어떻게 버텨왔는지 알긴 해요?”“아무도 믿지 못하고 매번 자신을 부정하면서 힘든 나날을 보냈어요. 자기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고, 좋은 것들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며 수천 번 자책하면서요. 심지어 이중인격 증상도 보였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모든 기억을 잊게 해주기로 선택했어요.”“이 모든게 그쪽이랑 유씨 가문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다시 찾아올 낯짝이 있다는 게 참 대단하네요. 비련의 남주인공 행세 좀 그만해요. 그럴 자격조차 없잖아요. 다연은 강 대표님한테 과분한 사람이에요.”말을 이어가던 염지훈은 눈시울을 붉혔다.“그럼에도 다연은 강 대표님을 선택했네요. 참 운 좋은 사람이야. 좋은 일들은 강 대표님한테만 일어나잖아요. 그렇게 상처를 줬는데도 잊지 못했다는 게 나로서 얼마나 비참한지 알아요?”“난 이 싸움에서 진 게 아니라 다연이가 괴로워하는 게 싫어서 물러나는 거예요. 우리 두 사람 때문에 이리저리 치이는 다연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거든요.”“나중에라도 강 대표님이 다연을 힘들게 하면 바로 찾아와서 데려갈 거예요.”감정이 격해지자 움직임도 커졌고 어느새 상처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하고 싶은 말은 여기까지예요. 앞으로 행동 똑바로 하세요.”“상처가 터진 것 같네요. 의사 좀 불러와요.”유강후가 일어나자마자 문이 열렸다.온다연은 긴장한 채로 달려와 염지훈에게 물렀다.“괜찮아요?”시선은 어느새 피로 물든 거즈에 향했고 순간
유강후는 온다연이 진정될 때까지 말없이 한참 동안 뒤에 서 있었다.“정말 안 싸웠어요. 때린 건 더더욱 아니고요. 믿거나 말거나.”온다연은 핸드폰을 거두고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지훈 씨는 지금 환자예요. 이제 막 중환자실에서 나왔는데, 아무리 큰 일이라고 해도 회복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얘기할 수는 있잖아요. 강후 씨가 이럴수록 나는 더 많은 빚을 지게 된다고요.”“미안해요. 내가 생각이 짧았어요.”유강후는 주춤하다가 말을 이었다.“쇼핑몰에서 있었던 일은 지금 사람 시켜서 처리 중이에요. 마크 그룹에서 강씨 가문과 협력하는 프로젝트가 많기는 한데, 대체할 사람이 있어서 쉽게 정리될 거예요.”온다연은 차갑게 말했다.“그 여자 비서가 임청하였어요. 강후 씨가 예전에 후원했던 여학생 기억하죠? 가만히 보면 안목이 참 뛰어나다니까? 여우 같은 사람들만 쏙쏙 뽑아내잖아요. 강후 씨 때문에 날 죽이지 못해 안달한 여자가 몇명인지...”유강후는 표정이 어두워졌다.“나한테 맡기고 신경 쓰지 마요. 예전에는 우리 엄마를 4년 동안 보살펴준 고마움 때문에 그냥 넘어갔는데 더 이상 안되겠네요. 사고를 쳤으면 스스로 감당해야죠.”이때 권예진이 옆에서 입을 열었다.“마크 사모님이 얼마나 무례했는지 아세요? 듣기 거북한 말을 쉴 틈 없이 했다니까요?”“그런데 한편으로는 궁금하네요. 항상 이런 식으로 문제를 일으켰다면 마크 가문에서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지금까지 사모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갑자기 저희를 공격하는 게 이상했어요. 인종차별 하면서 모욕하는 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온다연이 차갑게 말했다.“이유가 뭐겠어요. 임청하가 뒤에서 수작 부린 거지.”온다연은 유강후를 쳐다보며 비꼬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마음 착한 강 대표님이 항상 모든 사람에게 여지를 남겨주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죠. 안 그래요?”말을 마친 그녀는 줄곧 유강후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염지훈이 수술실에서 나올 때까지 자리를 지키다
강씨 가문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집에 도착한 온다연은 뭔가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오진숙은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도우미 두 명이 카펫 위의 먼지를 빨아들이고 있었다.거실 현관 입구에는 사람 키만큼 큰 해바라기가 꽂힌 하얀 꽃병이 놓여 있었다.테이블 위에는 작은 해바라기가 가득했고 창가 자리에는 아이리스가 담긴 크리스털 꽃병이 놓여있었다.이상한 기분이 밀려온 온다연은 곧장 주방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러자 큰 쟁반을 손에 든 채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장화연이 보였다.깔끔한 정장 차림에 무표정한 모습은 예전과 똑같았다.온다연을 발견한 장화연은 늘 그랬듯이 허리 숙여 인사했다.“사모님, 오셨어요.”온다연은 눈시울을 붉히며 재빨리 다가가 그녀를 껴안았다.“장 집사님...”장화연은 쟁반을 도우미에게 건네고 온다연의 등을 토닥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많이 변하셨네요. 지난 몇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온다연은 그녀를 안고 있다가 한참이 나서야 풀었다.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온다연은 감정을 추스르며 물었다.“언제 오셨어요?”장화연이 답했다.“오늘 아침에 도착했어요.”“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폭풍이 내렸잖아요. 태풍도 있었는데...”“방법은 다 있죠. 전 사모님을 빨리 뵙고 싶었어요.”공기를 가득 채운 익숙한 쿠키의 향을 맡으며 온다연은 코를 킁킁거렸다.“쿠키 만들었어요?”장화연은 쟁반을 넘겨받았다.“다섯 가지 맛으로 만들었어요. 다연 씨가 좋아하는 호두, 크랜베리, 건포도, 로즈. 그리고 이건 새로 만든 리치 맛인데 아주 상큼해요. 한번 드셔보세요.”온다연은 작은 쿠키를 집어 입에 넣었다. 익숙하고 달콤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우자 행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맛있어요. 예전이랑 똑같아요.”장화연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서 있지 말고 저쪽으로 가서 먹어요.”온다연은 쿠키를 접시에 옮겨 담은 후 다른 한 손으로 장화연의 팔짱을 꼈다.“역시 장 집사님밖에 없네요. 내가 뭘 좋아하
장화연이 이렇게 환하게 웃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당연히 잘해줘야죠. 하지만 강씨 가문은 강씨 가문만의 규칙이 있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는 못할 거예요.”온다연은 장화연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전 강씨 가문에서 우리 아이들을 안 키울 거예요. 강후 씨처럼 가족의 따뜻함을 경험해 보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건 싫어요. 내 곁에 두고 직접 키워야죠.”“만약 내 자식을 강후 씨와 똑같은 성격으로 키운다면, 난 고민도 없이 강후 씨를 버리고 아이를 택할 거예요.”장화연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성격이 많이 변하셨네요.”온다연은 소파에 앉아 쿠키를 먹으며 말했다.“저녁은 언제쯤 될까요? 갑자기 배가 고프네요.”그러자 장화연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머리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금방 만들어 드릴게요. 쿠키 드시면서 배 좀 채우고 있어요. 간식용이지 밥은 아니니까 너무 많이 드시지는 말고요.”장화연이 주방으로 걸어가자 온다연은 접시를 손에 든 채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장 집사님, 도와드릴까요? 생선죽은 뜨끈한 게 제맛이거든요.”장화연은 옅은 미소를 보였다.“괜찮아요. 쉬고 계세요.”온다연은 마침내 평범한 소녀가 되었다.모든 게 점차 제자리로 돌아왔고 아직 되돌릴 여지가 남아있었다.앞으로 꽃길만 펼쳐질지 모른다는 희망이 느껴졌다.유강후가 돌아왔을 때 여전히 비가 엄청나게 내리고 있었다.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장화연은 곧바로 마른 수건을 그에게 건넸다.“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다 젖었네요. 얼른 옷부터 갈아입으세요.”유강후는 옷에 묻은 빗방울을 튕기며 물었다.“다연은?”장화연은 창가 옆의 리클라이너로 시선을 돌렸다.“잠들었어요. 식사는 하셨어요? 배고픈 게 아니라면 다연 씨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저녁 드시는 게 어때요?”유강후는 그녀가 준비한 옷을 받아들며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다연한테 완전히 매수당했네. 장 집사, 이렇게 쉬운 사람이었어? 달콤한 말 몇 마디에 홀랑 넘어간 거야?”말을 마친 그
유강후는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고선 온다연에게 다시 얇은 이불을 덮어주었다.그러나 아이는 생각 없이 제멋대로 뛰어왔다.“아, 부끄러워. 몰래 엄마한테 뽀뽀했잖아요.”“나도 엄마한테 뽀뽀할 거예요.”우림은 우유로 얼룩진 작은 입술로 온다연의 볼에 뽀뽀했고 어찌나 힘을 줬는지 온다연의 얼굴이 찌그러졌다.이를 본 유강후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옆에 앉혔다.“강우림, 혼나고 싶어?”우림은 결코 참지 않았다.“아빠는 마음대로 엄마한테 뽀뽀하면서 왜 저는 안 돼요? 나랑 엄마는 혈연관계가 있는데 아빠는 없잖아요. 아빠는 그냥 남이예요.”화가 난 유강후는 그의 엉덩이를 두 번 때렸다. 그러자 젖병은 바닥에 굴러떨어졌고 우림은 입을 삐죽거리며 금방이라도 울 기세였다.유강후는 재빨리 우림의 입을 가렸다.“울지마. 엄마 뱃속에 동생들이 있는 건 알지? 피곤해서 자는 거니까 방해하면 안 돼.”우림은 두 눈을 반짝였다.“여동생도 있어요?”유강후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자신의 자그마한 소망을 표현했다.“당연히 여동생이 있어야지. 무조건 있을 거야.”그 말에 흥분한 우림은 재빨리 온다연의 배에 얼굴을 댔다.“여기에 정말 여동생이 있는 거예요? 거짓말하는 건 아니죠?”“거짓말이면 앞으로 다시는 아빠랑 얘기 안 할 거예요.”유강후는 급히 그를 끌어냈다.“엄마 깨우지 마.”이때 온다연이 천천히 눈을 떴다.눈에 들어온 건 바로 앞에 서 있는 우림과 유강후의 모습이었다.“우림이?”우림은 그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엄마, 오늘 밤 나랑 같이 있어 주러 온 거예요? 약속했잖아요. 나랑 잔다고.”유강후는 정색하며 우림을 떼어냈다.“강우림, 아빠가 어떻게 가르쳤어? 남자라면 혼자 있는 법을 배워야지. 계속 엄마만 따라다니면 나중에 쓸모없는 어른이 되는 거야.”우림은 온다연 앞에서 아빠한테 혼나는 게 체면이 깎이는 듯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졌다.“쓸모없는 어른은 아빠겠죠. 아빠도 하루 종일 엄마한테 매달리며 따라다니잖아요. 왜
다양한 요리가 정교한 도자기 접시에 담겨 있었고 음식의 전반적인 색상과 데코레이션은 사람의 식욕을 자극했다.온다연이 먹고 싶어 했던 생선죽은 아름다운 작은 그릇에 담겨 나왔고 숟가락마저도 매우 예뻤다.게다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 완벽했다.온다연은 한 숟갈 맛보더니 입안 가득 채운 감칠맛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장 집사님, 요리 솜씨가 더 좋아졌네요. 예전에 만든 것보다 훨씬 맛있어요.”장화연은 유강후를 힐끗 쳐다보고선 차분하게 말했다.“어떤 분이 3년 동안 생선죽을 드셨어요. 매일 똑같은 음식을 만들다보니 실력이 늘었나 봐요. 그래도 오늘 만든 건 더 맛있을 거예요. 전복 즙으로 푹 끓였거든요.”온다연은 자연스레 그 말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챘다.그녀는 죽 한입을 먹고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왜 이걸 3년이나 먹은 거죠? 질릴 텐데.”장화연은 담담하게 말했다.“매일 생선죽을 끓이면 간절히 기다리던 그 사람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코끝이 찡해진 온다연은 고개를 숙였다.“농담도 참... 하나도 안 웃긴데요?”어느새 식탁에는 침묵이 흘렀고 아이조차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유강후가 발라준 게를 먹었다.늦은 시간이 되었는데도 우림은 온다연 곁에서 떨어질 줄 몰랐고 이야기를 해달라며 졸랐다.그렇게 열한 시가 다 되어서야 방안이 조용해졌다.유강후는 잠든 아이를 안아 올려 도우미에게 건네며 어르신한테 데려가라고 부탁했다.다시 돌아왔을 때, 온다연은 침실에서 나와 다른 방으로 걸어가고 있었다.유강후는 그녀에게 다가가 뒤에서 끌어안았다.“같이 자면 안 돼요?”순간 온몸이 굳어진 온다연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이 손 놔요.”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녀는 오늘따라 몸이 굉장히 예민했다.방금 아이가 놀아달라고 졸라대던 그때 유강후는 옆에 앉아서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분명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가까이 느껴지는 그의 숨결이 온다연의 마음을 간질거렸다.아이를 안을 때 그의 손이 우연히 몸에 닿기라도 하면 욕구의
그러자 여러 가지 답변이 쏟아졌다.어떤 사람은 호르몬 문제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불안한 마음 때문이라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뱃속의 아이가 아빠에게 안기고 싶어서 그런 기분이 든다고 했다.어느 것이든 온다연에게는 좋을 게 하나 없었다. 이는 그녀가 임신기간 동안 점점 더 유강후에게 의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하지만 이렇게 빨리 유강후와 화해할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염지훈과의 관계를 정리한 후 H국으로 돌아가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을 손볼 계획이었고 이 모든 일이 끝난 후에 유강후와 화해할지 말지 고민해 볼 생각이었다.유강후가 아이의 아빠인 건 변함없는 사실이기에 아이와의 만남을 가로막지는 않겠지만 악몽 같은 10년은 용서라는 단어를 쉽게 말할 수 없게 만들었다.머릿속이 복잡해진 온다연은 눈을 감고 잠을 청했지만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결국 아예 일어나 앉아 핸드폰으로 검색을 이어갔다.[임신했는데 남편이 집에 없어서 잠이 안 와요. 남편을 안고 싶은데 어떡하죠?]쏟아진 수십 개의 글 중 하나가 온다연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남편이 입었던 옷을 안으면 분명히 잠들 수 있을 거예요.]온다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시간을 봤다. 어느새 새벽 두 시가 되었다.지금 잠들지 않으면 뜬눈으로 날을 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살며시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로 들어갔다.다행히 유강후가 저녁에 벗어 던진 셔츠는 아직 세탁 전이라 빨래 바구니에 그대로 놓여있었다.그녀는 도둑처럼 셔츠를 집어 들고 재빨리 방으로 돌아갔다.침대로 돌아온 후 그녀는 셔츠를 껴안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코끝을 감싸는 유강후의 향기에 편안함이 밀려왔고 몸도 마음도 어느새 안정을 되찾았다.그렇게 온다연은 유강후의 셔츠를 껴안고 천천히 잠이 들었다.얼마 후 문이 살짝 열렸고 침대 위의 작은 불도 켜졌다.침대 가장자리에 앉은 유강후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무언가를 안은 채 잠이든 온다연을 바라봤다.늘 그렇듯 불안한지 깊게 잠들지 못했고 미간을 찌푸린 채 뒤척였다.‘안 좋은 꿈
그날 밤 온다연은 매우 깊이 잠들었고, 다음 날 정오가 되어서야 깨어났다.깨어났을 땐 약간 어리둥절한 상태였다.‘셔츠를 안아도 이렇게 효과가 좋단 말이야?’그녀가 씻고 방에서 나오자 장화연이 다가왔다.“다연 씨, 부모님들이 도착하셨어요. 지금 거실에서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세요.”온다연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벌써요? 분명히 내일 도착한다고 들었는데요?”“회장님께서 서프라이즈를 주고 싶다고 하셔서 차마 말씀드릴 수 없었어요.”온다연은 잔뜩 신이 난 채로 달려갔다.그러다가 뭔가 생각난 듯 다시 걸음을 돌렸다.“예쁜 옷으로 준비해 줘요. 아빠가 괜히 강씨 가문이 저한테 못 해주는 줄 알고 오해하면 안 되잖아요.”수백 평에 달하는 옷방에는 옷이 가득 걸려있었고, 전부 맞춤 제작이나 시즌 신제품으로 TV 속 연예인보다 고급스러운 옷들이 훨씬 더 많았다.선반에는 작은 쥬얼리 샵에 견줄만한 눈부신 보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이곳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강현미가 보낸 컬렉션만으로도 개인 쥬얼리 샵을 열기에 충분했다.온다연은 청순한 흰색 원피스로 갈아입은 후 어울릴만한 액세서리를 골라 장화연에게 건네며 부탁했다.장화연은 목걸이를 걸어주며 차분하게 말했다.“도련님이 회장님한테 밉보일까 봐 걱정되세요?”온다연은 콧방귀를 뀌었다.“아니거든요? 우리 엄마랑 아빠가 걱정할까 봐 이러는 거예요.”장화연은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옷을 갈아입은 온다연은 서둘러 밖으로 달려갔고 장화연은 외투 하나를 챙겨 그녀의 뒤를 쫓았다.“천천히 가세요. 날이 추워져서 원피스만 입기에는 추워요.”온다연은 그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아랑곳없이 달려갔다.밖으로 나오자 천천히 착륙하는 두 대의 헬기가 보였고 그녀는 의아해하며 물었다.“다른 손님도 있어요?”“아니요. 헬기 두 대에는 진씨 가문에서 가져온 선물이 실렸다고 합니다.”온다연은 걸음을 멈췄다.“아빠가 가져온 거예요? 뭘 사왔길래 헬기까지 동원한 거죠?”“그건 잘 모르
봉현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너도 요즘 아이랑 마누라 돌봐야 하니 시간도 없을 거잖아. 내가 알아서 방법 구해볼게.”말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송지원도 뒤따라 나와 봉현수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에 지예솔 씨가 진짜 큰맘 먹고 멀리 가버린 거 같은데 현수는 아직도 경원시 근처에서만 찾고 있어. 어쩌면 출국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을 해줄 수가 없네.”“현수 지금 상태가 매우 위험해. 마치 밧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정도로 한계에 도달한 거 같아. 저러다 큰일이 일어날까 봐 두렵네.”두 사람은 한마디씩 하고는 침묵하였다.한참 지나 유강후가 먼저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이 일은 우리도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어. 본인이 스스로 해결하게 해야 해. 요 며칠은 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돌봐야 하니 네가 옆에서 좀 더 신경 써줘.”송지원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한이준은 며칠 동안 보이지도 않고 전화도 안 통하던데. 내가 사무실에 전화했더니 비서가 그러는데 걔가 섬에 집을 사서 지금 장식을 하고 있고 외부 사람들과 거의 연락도 하지 않는다 하더라고. 이 자식 또 무슨 미친 짓을 벌이는지 모르겠어.”이때 방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유강후는 곧바로 방으로 향했다.“들어가. 현수랑 이준의 일은 네가 좀 더 신경 써줘. 내 쪽에 사람들은 필요하면 네가 알아서 조정해서 데리고 가면 돼.”들어가 보니 동생이 울면서 손발을 자꾸 흔들어 옆에 자고 있던 오빠도 깨웠다.오빠는 오히려 깜깜한 눈을 뜨고 조용하게 누워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 있는듯 하였다.유강후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간호사가 아이를 안으며 말했다.“아이들이 배가 고픈가 봐요. 나와서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말하면서 침대에 누워있는 온다연을 한 번 보고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장화연은 간호사의 뜻을 눈치채고 말했다.“분유로 먹여요. 사모님은 지금 몸이 편찮으셔서요.”이때 온다연도 놀라 잠에서 깼다.
유강후는 당황했던 마음이 그제야 풀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예전에 그 아이는 힘들게 임신했고 유강후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지켜내지 못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안전하게 출산까지 했고 아이도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가장 걱정되는 건 바로 온다연의 건강 상태였다.“주 선생님, 앞으로 제 아내의 건강을 잘 부탁드릴게요. 두 아이도 만약 두통이나 열이 있다 해도 많이 신경 써주셔야 해요.”주 선생님은 급하게 대답했다.“괜찮아요, 큰일은 아니에요. 두 아이도 지금 봐선 건강 상태가 아주 좋으니 잘 키우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유 대표님.”주 선생님을 보낸 후 유강후는 정성스럽게 온다연을 보살피며 약도 먹이고 재우기도 하였다.한참 뒤에 송지원과 봉현수가 아이들 보러 병원에 찾아왔다.송지원은 작업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시정 쪽에서 방금 온 것이 분명했다.봉현수는 비록 깔끔하게 차려입었지만 이전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유강후는 보자마자 그의 정신이 극도로 쇠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봉현수는 아이들의 선물을 유강후에게 건네고 나서 소파에 앉아 넋 놓고 있었다.반면 송지원은 두 아이에게 관심을 쏠리며 간호사에게 아이를 안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송지원은 아이를 안고 웃으며 말했다.“넌 아들딸을 한꺼번에 얻었지만 우리 몇 명에서 한재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독한 사람들이네. 이 아이의 행운을 빌어 나도 나중에 쌍둥이가 생길 거야.”유강후는 얼른 아이를 뺏어 안고는 말했다.“저리 비켜, 누가 너더러 내 아들의 행운을 빌라 했어. 그렇게 행운을 갖고 싶으면 너 절로 절에 가서 빌던지.”송지원은 두 녀석을 매우 귀하게 여기며 또 손을 뻗어 여동생을 안았다.“핑크 팔찌를 차고 있는 걸 보니 여자아이겠지? 너무 귀여워, 나도 딸이 욕심나네.”송지원은 여동생의 작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난 이 두 아이의 양 아빠가 될 거야. 앞으로 날 송 아빠라고 부르라고 해.”유강후는 송지원이 딸을 안고 놓지 않는 것을 보고
유강후는 온다연의 상처가 아플까 봐 번갈아 가며 아이를 안아 보여줬다.조용하고 작은 아이의 얼굴을 보자 온다연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다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이번에는 보온 실에 들어갈 필요가 없네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유강후는 속상한 마음으로 온다연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말했다.“보온 실은 필요 없어. 의사가 아이들이 모두 정상이라고 말해줬어. 하지만 그래도 그웬을 와서 산후조리가 끝날 때까지만 우리 집에 있으라 했어.”“우리 아들을 데리고 와봐요, 한번 보게요.”유강후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온다연의 옆에 눕혔다.온다연은 감히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머리만 옆으로 돌려 쳐다보면서 이 아이가 꿈속의 그 아이를 닮았는지 궁금했다.안타깝게도 아이는 아직 너무 작아 이목구비가 모두 주름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온다연이 실망하는 모습을 본 유강후는 웃으며 말했다.“아들은 날 닮았고 딸은 널 닮았어.”온다연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아이가 이목구비도 잘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알 수 있어요?”유강후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난 보이거든.”유강후는 몇 시간 동안 작은 침대 옆에 붙어 서서 아이의 이목구비와 윤곽을 수없이 분석한 결과 아들은 그를 닮았고 딸은 온다연을 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유강후는 희망컨대 두 아이가 모두 온다연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더니 남자아이는 좀 강하게 생기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두 아이를 모두 온다연의 곁에 눕혀두고 팔을 뻗어 그들 세 모녀를 품에 안으며 아주 정성스럽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다연아, 이젠 너희들은 내 인생의 전부야.”유강후는 앞으로 약점이지만 보호막이 될, 그한테는 세상 전부인 이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분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온다연은 유강후의 턱에 나온 수염을 만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당신 요즘 많이 피곤했죠? 안색이 너무 안 좋으니 이제 좀 쉬어
“네가 정치일에 개입도 하지 않았고 나도 이제 곧 은퇴할 것인데 만약 본가에서 나쁜 기사라도 터지면 우린 경원시에서 설 자리도 없게 돼. 그럼 우주 그룹이나 본가나 다 영향받을 수 있잖아.”유강후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그럼 유연서는요? 연서의 일은 어떻게 말씀하실 건데요? 은혜를 갚고 싶으면 알아서 갚으세요. 아무도 당신을 막지 않겠지만 누나의 목숨으로, 또 저의 행복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답하려 하지 마세요.”“그리고 제 아이들은 유씨 성을 안 가질 거고 본적에도 넣지 않을 거예요. 아이들은 이미 이름이 있어요. 하나는 강 씨 이고 하나는 진 씨 에요. 본가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 괜히 여기 와서 다연이의 휴식을 방해하지 마세요. 다연이는 본가 사람이라면 이제 치를 떨어요.”유재성은 급해하며 말했다.“괜찮아, 나 그렇게 보수적이지 않아. 아이들이 유 씨가 아니라도 내 손 군들이야. 다연이가 날 싫다 그러면 앞에 나타나지 않고 아이들만 잠깐 만나볼게. 그래도 할아버지인데 아이들에게 선물도 준비하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통화를 끊어버렸다.이때 이권이 걸어오더니 말했다.“대표님, 아이들의 출생증명서에 이름을 써야 하는데 작은 도련님이랑 아가씨 이름은 준비하셨죠?”유강후는 이권의 손에 쥐어져 있던 종이를 받아 그 위에 아이들의 이름을 적었다.그러자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역시 이미 생각해 놓으셨군요.”“남자아이는 다연이랑 같은 성씨로 진 강남으로 했고 이건 다연의 아버지가 지어주신 거고 여자아이는 강아름으로 나랑 어르신이 같이 지은 거야.”이권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작은 도련님이 진씨 가문의 성을 따르게 되면 어르신이 화 안 내실까요?”유강후는 종잇장을 건네주며 말했다.“어르신은 해외에서 평생을 살아 이런 일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실 거야. 그럼 아이의 성이 둘 다 진 씨라면 강씨 가문의 자손이 아닌 거야? 다연이가 목숨을 걸고 낳은 아이들인데 하나는 진 씨 성을 가지면 또 어때? 둘 다 진 씨 성을 따른
유강후가 가장 세게 흔들고 있는 작은 손을 건드렸더니 녀석은 바로 그의 엄지손가락을 잡았다.이상하게도 녀석은 곧 칭얼거리지 않았고 작은 입을 쩝쩝대더니 조용해졌다.유강후는 갑자기 멍해지며 신기하면서도 행복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이것이 내 아이와 실제로 접촉하는 느낌인 건가?’분명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얼굴인데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유강후가 막 아이를 안으려 할 때 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입원실에 가서 안아봐요. 산모도 곧 나올 테니 여기 막아서면 안 돼요.”유강후는 몹시 아쉬워하며 장화연과 이권 더러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고 자신은 문 앞에서 온다연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온다연도 나왔다.마취가 아직 풀리지 않은 온다연은 아직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녀를 받아 입원실로 옮겼다.입원실은 예전 온다연이 쓰던 큰 방으로 이미 모두 정리정돈이 되어 있었고 두 꼬마 녀석은 침대 옆의 작은 침대에 두었다.두 아이와 온다연은 모두 조용히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들 모자 셋을 옆에서 지켜보았다.잠깐 사이에 유강후는 많은 사진을 찍었고 한장 한장 들여다보면서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모멘트도 일 년에 한 번쯤 업데이트하는 유강후가 오늘은 연속으로 세 개의 게시물을 올렸다.그것도 모자라 다시 작은 그룹 채팅을 만들어 잘 아는 몇몇 친구들을 그룹에 끌어들이고 그중에는 염지훈도 포함되어 있었다.그러고는 제목에 쌍둥이 남매가 부럽지 않냐고 그래도 소용없다고 계속 부러워하라는 글을 덧붙여 20장이 넘는 아기의 사진을 연이어 보냈다.얼마 안 되자 답글들이 올라왔다.송지원: 아이들이 태어난 거야? 축하해, 내일 보러 갈게.봉현수: 금방 태어난 거야? 난 선물까지 미리 준비해 뒀어. 내일 지원이랑 같이 갈게.그 밑에는 붉은색으로 된 부동산 증명서 두 권의 사진이 첨부되었다.한재민: 축하해. 선물은 지금 오는 길에 있어. 설쯤에 제수와 아이들 보러 갈게.그웬: 벌써? 내가 아직 가지도 않
간호사가 수술실 문을 빼꼼히 열고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한 명은 태어났고 지금 다른 한 명도 나오는 중이니 가족들 진정하고 조용히 해주세요.”말을 하고 있는데 반쯤 열린 문에서 또 다른 한 명의 나긋나긋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안에 있는 의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2.6킬로가 되는 여자아기예요. 아기 상태도 아주 좋아요.”“산모 상태도 좋아요. 이제 봉합 수술을 시작하죠.”유강후는 기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 제 자리에서 굳어 있는 채로 꼼짝도 못 했다.간호사는 그 표정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들으셨죠? 동생도 나왔다네요. 산모와 아이 모두 무사합니다.”“유 대표님, 수술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협조해 주시고 더는 문을 잡아당기지 말아주세요.”유강후는 바로 손을 놓고 부들부들 떨며 담배를 가지려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는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었다.옆에 서 있던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축하해요. 작은 아가씨가 2.6킬로나 되는 걸 보니 도련님은 더 건장할 거예요.”유강후는 기쁜 나머지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수 없었고 신이 나서 말했다.“다연이가 무사히 수술실에서 나오면 바로 통지해. 우리 회사 직원들 전부 3일 동안 휴가를 내줄 것이고 이번 달은 두 배의 급여를 발급할 거야.”그 말에 이권은 너무 좋아 웃으며 말했다.“그럼 직원들은 아마 좋아 죽을걸요? 대표님은 참 통쾌하시다니까요.”장화연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가득했다.“도련님, 제가 가서 작은 도련님과 아가씨의 옷을 가져올게요. 방금 급하게 나서다 보니 챙기는 걸 까먹었어요.”그러자 유강후가 바로 말했다.“다른 사람 보낼 테니 장 집사는 가지 말고 여기서 다연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내가 혼자서 서툴까 봐 그래.”“그리고 앞으로 날 도련님이라 부르지 말고 회장님이라 불러. 나도 이제 아버지가 되었으니 좀 무게감 있는 호칭으로 바꿔야지.”장화연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선생님이라 부를게요. 무게감 있고 더 뜻깊어 보이잖아요?”“집안의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된 온다연은 의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왜 이렇게 빨리 수술해야 해요? 혹시 아이가 어떻게 된 건가요?”지난번의 임신 사건 후 온다연은 이제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두려웠고 지금은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되는 것이 당연했다.그러자 의사는 긴장을 풀어주려고 급해하며 말했다.“아이를 낳는 일은 누구도 장담 못 해요. 앞당겨 수술해야 하는 상황은 종종 많이 생겨요. 지금은 양수가 터져서 자궁 상태가 안전하지 못하니 빨리 수술해야 해요. 아직 만삭이 안 되었지만 이 두 아이는 온다연 씨의 몸에 비해 작지 않은 편이라 일찍 출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에요.”온다연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이들이 무사히 태어난다면 저는 괜찮아요.”온다연은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수술을 집도한 사람은 비록 그웬은 아니지만 경원시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이며 심지어 옆에서 수술에 도움을 주는 사람도 국내 유명한 산부인과 전문의였다.그런데도 유강후는 긴장한 나머지 수술실 밖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마저 바닥에 열 번 넘게 떨어뜨렸다.30분이 넘게 지났는데도 수술실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자 유강후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말했다.“장화연, 혹시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나도 수술실에 들어가 봐야겠어.”그렇게 말하고 바로 수술실 문을 잡아당기자 옆에 있던 간호사들이 그를 가로막으며 말했다.“유 대표님, 지금은 수술 중이라 여기서 이렇게 소란 피우시면 안 됩니다.”장화연도 재빨리 달려가 그를 잡아당기며 말했다.“도련님, 아이를 낳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은 건강 상태가 아주 좋고 아기도 뱃속에서 건강한 상태였어요. 게다가 많은 전문가가 수술실에 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니 내심이 기다려요.”유강후는 처음으로 초조하고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수술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되어가는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거야?”그러자 호사가 황급히 대답했
“지예솔이 며칠 전에 갑자기 사라졌대. 봉현수가 경원시의 땅 전체를 파헤칠 정도로 찾았지만 사람은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 게다가 봉현수의 회사에 일이 좀 생겨 그걸 도와 처리하느라 좀 늦었어.”유강후의 말에 온다연은 당황했지만 일부러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예솔 씨가 또 집 나갔어요? 이런 일도 이젠 한두 번이 아닌데, 며칠 더 찾아보면 찾을 수 있겠죠.”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엔 좀 다른 거 같아. 지예솔이 봉현수와 함께 썼던 물건들을 모두 불태우고 사진이랑 다 삭제했어. 십여 년 전의 편지조차 다 버려버린 걸 보니 아주 철저하게 돌아선 거 같아. 이번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온다연은 냉정하게 말했다.“봉현수가 예솔 씨를 그렇게 대하는데 어떤 여자가 옆에 남아 있겠어요? 찾지 못한다 해도 자업자득이죠 뭐.”“봉현수가 지금 미친 사람처럼 날뛰고 있어. 게다가 쓰레기 처리 센터까지 가서 뒤지면서 몇 통의 편지와 망가진 장난감 몇 개를 되찾아왔어.”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지예솔이 너랑은 좀 친해 보이던데 혹시 너한테 메시지라도 보낸 건 없어?”온다연은 다시 냉정하게 말했다.“그렇게 친한 정도도 아닌데 저한테 뭐 하러 연락하겠어요? 이미 떠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니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았을 거예요.”그러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근데 저는 지예솔 씨의 소식을 들었다 하더라도 말 안 해줄 거예요.”“됐어요. 남의 집안일은 집에서까지 논하지 말아요. 장 집사님이 맛있는 걸 해놨어요.”말을 마친 후 온다연은 유강후를 밀며 주방 쪽으로 향했다.겨우 두 걸음을 걷던 온다연은 배가 처지는 느낌을 받아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저는 배가 너무 무거워서 걷기도 힘드니 강후 씨 혼자 내려가서 먹어요.”유강후는 갑자기 긴장해 하며 말했다.“낳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온다연은 그가 긴장해 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아직도 이틀 더 있어야 겨우 8개월이
또 어느 큰 눈이 내린 날, 날씨도 엄청 추웠다.온다연은 오후에 잠깐 집을 나서 좀 먼 곳에 있는 작은 여관에 갔다.여관방에서 온다연은 주머니 하나를 지예솔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사람 찾아 만든 새 등록증이에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만든 거니 일단 받아요.”“참, 그리고 안에 카드 한 장 있어요. 천만 원이 들어 있으니 저의 성의라 생각하고 그쪽에 가서 잘 살아요.”온다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어 말했다.“확인해 보니 라현쪽에 유강후의 지사가 있었어요. 제가 이미 이유를 대서 그 지사를 대진 그룹 명의로 옮겼어요. 그쪽 사람들한테도 이미 인사를 했고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지금 예솔 씨의 이름으로 경리를 찾아가면 돼요. 이름은 임진혁이라 해요. 하지만 그쪽은 외진 곳이라 제가 많은 도움은 줄 수 없을 거 같으니 이후의 일은 예솔 씨가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지예솔은 등록증과 은행 카드를 번갈아 보더니 결국 받아들이고 자그마한 짐가방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온다연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저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물건이니 이거라도 받아주세요.”그녀가 건넨 물건은 너무 투명하여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옥팔찌로 비록 최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천만은 되는 듯해 보였다.온다연이 거절하려고 하기 전에 지예솔이 한마디 덧붙였다.“이거라도 받지 않으면 제 마음이 안 편해서 그래요. 다연 씨가 갖고 있는 액세서리 하나도 이것보다 더 비싸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제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물건이에요.”온다연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옥팔찌를 받아들였다.“차가 도착했어요. 우리도 이제 내려가요.”지예솔은 남성복으로 갈아입고 자그마한 짐가방을 메고 온다연과 함께 내려갔다.밖에는 검은색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고 지예솔은 바로 그 차에 타고 창문을 내리며 온다연에게 손을 흔들었다.차가 떠나간 후 온다연도 옆에 있던 차량에 탔고 기사는 유강후가 제일 믿는 장 아저씨였다.온다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장 아저씨, 아드님이 경대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