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의 표정만으로도 주성원은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만약 그런 거라면 최대한 마음속의 얘기를 꺼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그는 온다연의 목에 있는 붉은 흔적을 힐끗 보돈 한참 망설이다가 말했다.“이 아가씨의 몸 상태는 아주 나쁩니다. 그러니 도련님께서는 욕구를 참아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 아가씨 몸 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하기 전까지는 절대 임신해서는 안 됩니다. 임신하면 오히려 이 아가씨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유강후는 품에 있는 온다연을 보더니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했다.“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몸이 빠르게 나을 수 있는 보약 같은 거 말이에요.”주성원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있긴 합니다만 약재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요. 그리고 그 약은 너무도 써서 이 아가씨가 먹기 힘들 겁니다.”유강후가 말했다.“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그냥 어떤 약재가 필요한지 전부 적어주세요.”주성원은 고개를 끄덕인 뒤 종이에 필요한 약재를 전부 적어두고 해열제를 가져왔다. 떠나기 전까지 제때 약을 먹여야 한다며 당부도 했다.해열제를 먹인 후 온다연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해가 뜨기 전까지 온다연은 앓는 소리를 내었고 그제야 열이 내려갔다.유강후는 밤을 새웠다. 직접 그녀의 곁을 지키면서 약을 먹인 후 땀에 젖은 옷을 갈아 입혔다.아침이 되자 조금 눈을 붙인 후 점심도 되기 전에 온다연은 다시 열이 나기 시작했다.이번에는 덥다고 하지 않았다. 춥다고 하면서 이불을 잔뜩 끌어다 덮었다.유강후는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 분명 뜨거운 몸이었지만 그녀는 추위를 느끼며 잇몸을 달달 떨고 있었다.난방을 틀어도 소용이 없어 결국 따듯한 온천에 한참 몸을 담그고 나서야 조금 나아졌다.저녁이 되자 그녀는 더는 춥다거나 덥다고 하지 않았다. 침대 위를 뒹굴며 잠을 자려 하지도 않았고 약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유강후가 숟가락으로 약을 떠서 그녀의 입가에 가져다 대도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
온다연은 그 상자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유강후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고마워요, 아저씨.”상자는 아주 컸기에 온다연은 겨우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결국 그녀는 옆에 있던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유강후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직하게 말했다.“어서 열어 봐.”온다연은 예쁜 상자를 보며 다소 의아한 듯 물었다.“오늘 무슨 날이에요? 왜 갑자기 저한테 선물을 주는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일단 열어 봐.”포장이 예쁘고 큰 선물을 처음 받아보는지라 온다연은 상자를 여는 모습도 아주 조심스러웠다. 천천히 리본을 푼 뒤 상자를 열어보았다.예쁜 하얀 상자 안에는 순백의 하얀 장미가 가득했다. 매 한 송이 전부 정성스럽게 손질 한 것이었고 가운데 있는 장미꽃들엔 반짝이는 보석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꽃들 중간에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작은 고양이가 있었다. 그 고양이는 호기심 가득한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온다연은 멍해졌다. 고양이를 보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한참 지나서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유강후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선물 선택이 현명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비록 비슷한 고양이를 찾는 것은 힘들었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았다.유강후는 고양이를 꺼내 그녀의 손바닥 위에 올려주었다.“갓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아이야. 조심히 키워.”온다연은 고양을 조심스럽게 안으면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정말로 선물로 주시는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고작 며칠 사이에 더 홀쭉해진 느낌에 눈빛이 어두워졌다.“내가 말했잖아. 네가 원하는 거 뭐든 전부 주겠다고.”온다연은 고개를 떨군 채 나직하게 말했다.“하지만 전 드릴 것이 없어요.”유강후는 그녀를 안아 올려 의자에 앉힌 뒤 물끄러미 보았다.“네가 나한텐 선물이야.”온다연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작은 머리를 푹 숙인 채 손가락으로 고양이의 작고 분홍빛이 도는 발을 톡
유강후는 손을 뻗어 그녀가 소중히 안고 있던 고양이를 빼냈다. 그러자 그녀는 눈을 번쩍 뜨면서 몸을 일으켰다.“말씀하셨잖아요. 저한테 주는 선물이라고요.”말을 마치자마자 자신의 목소리가 컸다는 것을 눈치챈 그녀는 바로 고개를 푹 숙였다.유강후는 고양이를 집사가 가져온 케이지 안에 넣으면서 말했다.“일단 고양이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 몸이 나아지면 구월이도 좀 커져 있을 거야. 그때 가서 곁에 두고 키워.”온다연은 집사를 보면서 입술을 달싹였다.집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이 고양이는 천 마리의 새끼 고양이 중에서 반나절을 골라 데리고 온 겁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전문가에게 맡겨 문제없이 잘 키우고 있겠습니다.”온다연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유강후는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올려 안방으로 걸어갔다.온다연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면서 멀어져 가는 집사의 뒷모습을 빤히 보았다. 안방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저한테 주는 선물이라면서요.”목소리는 아주 나긋하여 유강후는 방금 들은 고양이 구월이의 울음소리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로 손이 올라갔다.“맞아. 구월이는 네 거야.”온다연은 사실 그가 고양이를 다시 가져갈까 봐 두려웠지만, 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방으로 돌아온 뒤 약을 먹었다. 분명 피곤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유강후 쪽을 보고 있었다.뭔가 할 말이 있는 모습이었다.유강후가 물건을 정리하고 외출하려던 때 그녀는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아저씨!”유강후는 몸을 돌렸다. 속을 알 수 없는 눈길로 그녀를 보았다.“할 말이 있으면 해도 돼. 난 널 잡아먹지 않으니까.”온다연은 입술을 짓이기며 이불을 꽉 잡았다.“구월이 다시 데려가면 안 돼요. 구월이는 이젠 내 고양이란 말이에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다소 긴장한 얼굴로 유강후의 표정을 살폈다.유강후는 부드러워진 눈길과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안 데려가.”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를 보고 있었다
장화연의 목소리는 예전과 다름없이 차가웠다.“하령 아가씨, 도련님께서 외부인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그러자 유하령은 화가 났는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외부인이야? 장화연, 네가 뭔데? 지금 당장 너를 해고할까?”장화연은 침착하게 대답했다.“하령 아가씨, 아가씨는 저를 해고할 수 없습니다. 저는 유씨 가문의 월급도 받지 않고 아가씨가 시키는 걸 할 의무도 없어요. 저는 오직 도련님과 사모님의 명령만 따를 뿐입니다. 아가씨의 말은 저에게 아무 소용이 없어요.”온다연은 창가 쪽으로 걸어가 잘 닫히지 않은 커튼 사이로 묵묵히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유하령은 거실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장화연은 그녀를 잡아끌어 당기며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이런 대우를 처음 받아 본 유하령은 화가 나서 얼굴이 일그러졌다.“네가 뭔데? 내 눈에 넌 그냥 집 지키는 개에 불과해. 호텔은 우리 삼촌 거야. 내가 왜 못 들어가? 오늘 무조건 들어갈 거야. 삼촌이 도대체 어떤 여우 같은 계집애를 숨겼는지 한번 볼 거야.”유하령은 욕을 하면서 장화연의 뺨을 후려쳤다. 장화연은 무덤덤하게 그녀의 손을 잡고 뒤로 잡아당겼다.“아가씨, 말씀을 조심하세요. 저는 우리 집 큰 아가씨가 데려온 사람입니다. 저는 오직 도련님만 모시고 도련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고 있습니다. 도련님이 가기 전에 누구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기에 아가씨도 당연히 안 됩니다. 저는 단지 명령을 따를 뿐이니 서로 난처하게 굴지 맙시다.”유하령은 계단 쪽으로 밀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더니 또다시 장화연을 때리려고 했다.“이 노처녀야! 어쩐지 너를 원하는 남자가 없더라니. 마흔이 넘었는데 시집도 못 가고.”“그만!”유강후는 갑자기 유하령 뒤에 나타났다. 그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유하령은 유강후의 목소리를 듣자 갑자기 표정을 바꾸더니 억울한 척 울먹이며 돌아서서 유강후의 팔을 껴안았다.“삼촌, 장 집사가 저는 외부인이라고 들어가지 말라고 했어요.”유강후는 어
두 걸음 뛰자마자 장화연은 유하령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유강후는 차갑게 유하령을 쳐다보며 경고했다.“하령아, 내가 말했지. 넌 내 일에 관여할 자격이 없다고. 그러니 당장 장 집사에게 사과해.”“싫어요!”유하령은 화가 나서 몸을 떨며 사과를 거부했다. 그녀의 기억에 유강후는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예뻐했고 모든 부탁을 다 들어주고 설령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그녀를 벌한 적 없는 착한 삼촌이었다. 하지만 오늘 방에도 못 들어오게 하고 심지어 하인에게 사과하라고 하다니.유하령은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이다.“사과해!”유강후는 더 차갑게 유하령을 쳐다봤고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하령아, 왜 이렇게 점점 버릇이 없어. 자성 형이 예의를 배워 줄 선생님을 구해주지 않았어?”손목의 통증을 느낀 유하령은 몸부림치면서 울었다.“삼촌, 왜 겁을 줘요. 하인 때문에 지금 나를 때린 거예요?”“닥쳐! 하인? 넌 그저 가족을 등에 업고 날뛰고 있는 것뿐이야. 이러다가는 조만간 유씨 가문에 큰 화를 일으킬 거야.”유강후는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손을 뒤로 젖히자 유하령은 순식간에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예뻐해 주던 삼촌이 이렇게 행동하자 믿기지 않아 두 눈을 부릅뜨고 유강후를 바라보았다.그리고 갑자기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방을 쳐다봤다.“전에는 이러지 않았어요. 이게 다 저 여자 때문이죠? 누군데요? 혹시 저 여자가 제 험담을 했어요? 그래서 저를 이렇게 대하는 거예요? 삼촌!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내연녀를...”“여봐라! 얘를 끌어내!”유강후는 유하령의 말을 자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사람을 불렀다.그러자 곧 경호원이 밖에서 뛰어 들어와 유하령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유강후가 이렇게까지 나오자 유하령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경호원의 손을 뿌리치고 책상 쪽으로 달려가 책상 위에 있던 모든 물건을 모두 바닥에 쓰러뜨렸다.그중에는 고양이가 자고 있는 바구니도 포함되었다.고양이는
유하령은 유강후를 잘 알고 있다. 유강후는 어려서부터 냉정하고 누구한테도 다정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과 친하지도 않았던 그가 여자를 달래다니. 유하령은 유강후가 그 여자한테 단단히 홀렸다고 생각했다.총애를 잃을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유하령은 다시 문을 두드리려고 했지만 두 경호원은 그녀를 호텔에서 끌고 나왔다.온다연은 바닥에 있는 고양이를 주워 안았다. 새끼 고양이는 너무 어렸고 넘어져서 아픈지 계속 야옹거리며 울었다.온다연은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고양이를 안고 묻은 먼지를 깨끗이 닦아낸 후 다시 바구니에 넣었다. 하지만 놓자마자 고양이는 다시 넘어지면서 더 크게 울었댔다.온다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양이를 안고 다시 한번 검사했다. 그리고 오른쪽 뒷다리가 좀 이상한 것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리에는 힘이 전혀 없었고 온다연이 살짝 다치기만 해도 고양이는 처량하게 울었다.그녀는 이내 고양이의 다리가 부러졌다고 판단하였다. 너무 슬픈 나머지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온다연은 아무 말도 없이 유강후를 바라보았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고 손을 뻗어 그녀를 품으로 끌어당긴 후 고양이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온다연은 고양이를 자기 뒤로 숨기며 경계했다. 유강후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갑자기 사나워졌다.몹시 화가 난 것처럼 말이다.유강후는 눈살을 찌푸리고 싸늘하게 물었다.“혹시 나를 탓하는 거야?”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강후를 싸늘하게 쳐다봤다. 평소 나긋나긋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두 사람 모두 말수가 적은 편이라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마주 보자 분위기는 너무 싸늘했다.특히 유강후의 눈빛은 어둡고 차가웠다. 턱선마저 팽팽해지면서 이를 가는 것 같았다. 이것은 그가 곧 화를 낼 거라는 징조이다.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장화연은 입을 열었다.“다연 씨, 고양이가 다쳤나 봐요. 이렇게 작은 고양이는 전문 의사에게 맡겨야 해요.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온다연은 주먹을 더 꽉 쥐었다. 그녀는 분명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유하령이다. 유하령이 갑자기 뛰어 들어오면서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고양이가 다치게 되었다. 유강후를 화나게 한 사람은 유하령이다.하지만 왜 온다연이 벌을 받아야 할까?유강후는 온다연이 원하는 것을 모두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지금 온다연이 원한는건 오직 그 고양이인데 유강후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고양이를 가져갈 뿐만 아니라 유하령의 잘못까지 그녀에게 뒤집어씌우려 한다.이런 행동은 지극히 잔인하고 지독한 유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쩌면 온다연을 애완동물보다 못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 애완동물은 주인에게 상을 받으면 돌려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온다연은 주먹을 꽉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잘못한 게 없어요. 고양이를 가져가면 안 돼요.”유강후는 온다연의 하얀 작은 발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시선을 점점 위로 옮겼다. 점점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을 보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처음부터 지금까지 잘못한 일이 적다고 생각해?”온다연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긴장한 나머지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또 옛날 일을 꺼내는 거야? 그럼 왜 고양이를 그때 나에게 줬는데? 정이 생기니 또다시 가차 없이 빼앗아 가려는 거야?’온다연은 유강후가 일과 사람을 대하는 것도 이렇게 잔인하다고 생각했다.나은별과 결혼할 거면서 계속 자기를 괴롭히는 모습은 유하령과 유민준과 다를 바가 없었다.온다연은 갑자기 경원시에서 떠돌던 소문이 생각났다.유씨 가문 셋째 도련님 유강후는 성격이 예민하고 도도해서 몇 년 동안 나은별 외에는 그의 눈에 들어오는 여자가 없었다. 유강후와 스캔들이 났던 여자들은 모두 사라졌다.정말 사라졌을까? 아니면 죽었을까?어떤 결과라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유강후는 생각에 잠긴 온다연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손을 내밀면서 차갑게 말했다.“이리 와!”온다연은 뒷걸음치더니 갑자기 돌아서서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온다연은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무작정 화를 내는 유강후를 째려보았다.얼마나 지났을까, 유강후는 온다연을 놓아주고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의자 위에 앉혔다.그는 숨을 헐떡이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나를 화나게 하지 마. 너한테 좋을 게 없어.”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강후는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치켜들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대답해!”그러자 온다연은 눈을 깜빡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유강후는 만족스러운 듯 그녀 곁에 앉아 책상 위의 물티슈를 꺼내 흙이 묻지도 않은 그녀의 발을 닦았다.그리고 하얗고 보드라운 발에 두 가닥의 핏자국이 생긴 것을 보자 유강후는 눈썹을 약간 찡그리며 말했다.“앞으로 맨발로 정원에서 뛰어다니지 마.”이때 장화연은 잘 다린 한약을 들고나왔다. 검은 한약은 하얀 도자기 그릇에 담겨있었고 보기만 해도 엄청 쓸 것 같았다.“너무 뜨겁지 않습니다. 다연 씨 지금 먹어요.”온다연은 그 약을 보자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몸도 저절로 움츠러들었다.유강후는 사탕 한 알을 그녀에게 건네면서 말했다.“입에 넣고 있으면 안 쓸 거야.”온다연은 고분고분 그의 말을 듣고 사탕을 깨물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약의 맛을 덮을 수 없었다. 게다가 왜 갑자기 한 그릇이 더 많아졌는지 모른다. 예전보다 더 쓰고 토하고 싶게 만드는 맛이었다.유강후 옆에 있는 매 순간순간 모두 고통스러웠다. 온다연이 약을 다 먹자 유강후는 만족스러운 듯 그녀를 자기 무릎 위에 앉히고 그녀의 앙증맞은 발을 몇 번 주무르더니 장화연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가져와.”그러자 장화연은 이내 방에서 예쁜 상자를 들고나왔다.심플한 검은색 디자인의 상자였지만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상자 위에는 블루 다이아몬드가 박혔고 가치가 상당했다.온다연은 상자를 받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저는 필요 없어요.”그러자 장화연은 상자를 들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다연
유강후는 괴로워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10일.”“온다연, 너 계속 이러면 아기 퇴원하는 날에도 못 볼 줄 알아.”그 말을 듣고 얼어붙은 온다연은 재빨리 그의 손을 놓았다.유강후가 어떤 사람인지 온다연은 알고 있다. 정말 그를 화가게 한다면 아마 한 달 동안 아기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온다연은 어쩔 수 없이 분노를 꾹 참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고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울해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심하게 때려서 그런지 유강후는 온다연의 걷는 자세가 살짝 잘못된 걸 발견했다.하지만 결혼반지를 던지고 걷어찼던 행동을 생각하면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했다.온다연은 울며 겨자 먹기로 문을 열었는데 밖에는 수많은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이권도 그곳에 있었지만 감히 나서서 말을 건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엉덩이를 맞은 걸 모든 사람이 들었다고 생각하니 분하면서도 수치스러웠다그러나 반지를 주워 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유강후가 아기로 협박을 하니 그의 장단에 맞춰주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다.온다연은 유강후에 대한 호감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전에는 70점이었다면 이제는 50점밖에 되지 않았다.온다연은 씩씩거리며 눈물을 닦고선 마지못해 바닥에 있는 반지를 주웠다.온다연이 휴게실로 돌아오자 유강후는 자연스레 손을 내밀었다.“끼워줘.”그 모습은 어찌나 무자비하고 싸늘한지 마치 인정머리 없는 제왕 같았다.온다연은 화가 나서 반지를 다시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아기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울분을 참으며 유강후에게 반지를 끼웠다.유강후는 반지를 한번 꼼꼼히 확인하더니 스크래치가 없는 걸 보고선 마음속의 분노가 절반 가라앉았다.그는 자리에 앉아 온다연을 품에 끌어안았다.“뭘 잘못했는지 알겠어?”온다연은 대답하기 싫은 듯 고개를 숙이고 계속 눈물을 닦았다.온다연의 빨갛게 부은 눈과 눈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보니 유강후도 마음이 반쯤 풀렸다. 그는 손을 뻗어 온다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네가 말해봐.
유강후는 그저 말없이 가만히 온다연을 쳐다봤고 온다연은 그의 손에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물고서야 힘을 풀었다.유강후는 곧바로 다시 그녀의 부드러운 엉덩이를 내리쳤다.심지어 전보다 더 무자비해졌다.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온다연은 목 놓아 울부짖었다.“미워요. 이거 놓으란 말이에요.”“날 때릴 자격이 없잖아요.”유강후는 얼굴빛 변한 온다연을 보고선 가슴이 아픈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또 함부로 버릴 거야?”온다연은 유강후가 미워 죽을 것 같았다. 울분이 치밀어 올라 더욱이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버릴 거예요. 평생 찾지 못하게 바다에 던질 거라고요. 때려죽이든 마음대로 해요.”일말의 작은 연민은 온다연의 말에 순식간에 사라졌다.유강후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손까지 떨었다.결혼반지라는 중요하고 소중한 물건을 함부로 버렸으면서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온다연이 이해되지 않았다.유강후는 손을 들어 세게 두 번 정도 내리쳤다.전보다 훨씬 힘을 주어서 그런지 온다연은 괴로움에 손발을 마구 휘저으며 숨이 넘어갈 지경으로 울었다.울면서도 잊지 않고 유강후를 비난했다.“분명히 은별 씨 편을 들었으면서...”“차라리 때려죽여요. 그러면 은별 씨랑 결혼해도 되잖아요.”“우리 이제 그만해요.”...온다연이 말할수록 유강후의 분노는 더욱 커져갔고 끝내 또 세게 때렸다.분노와 두려움, 공포와 고통의 감정이 뒤섞이자 저도 모르게 주한의 이름이 튀어나왔다.“너무 아파... 주한아, 나 좀 도와줘.”“그만 때려요.... 아픈단 말이에요.”...유강후의 손은 허공에 굳어버렸다.주한... 온다연은 주한에게 도움을 청했다.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유강후는 숨이 멎을듯한 고통이 찾아왔다.“방금 뭐라고 했어?”온다연은 심하게 울부짖은 탓에 목소리가 잔뜩 쉬었다.“뭐라 하든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요. 아저씨는 나 괴롭히고 때릴 줄밖에 모르잖아요. 싫어요. 아저씨같은 사람이랑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거 놔요.”유강후는 이마에 핏줄이 솟을
온다연은 유강후에게 안긴 방금 전의 상황이 왠지 모르게 민망했다.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으니 마치 유강후가 키우는 고양이나 심심할 때 가지고 노는 장난감과 별반 다를게 없는 느낌이었다. 수치심과 분노가 한꺼번에 몰려온 온다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싫어요. 필요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유강후는 고집불통인 온다연의 모습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눈앞에 있는 반지는 그가 이 생에 받은 것 중에 가장 소중하고 아끼는 물건이다. 이런 마음도 모른 채 온다연은 필요 없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바닥에 내팽개쳤다.마치 누군가가 그의 심장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발로 여러 번 짓밟는 격이다.유강후는 머리가 피가 쏠릴 정도로 화가 나서 소리쳤다.“주우라고.”온다연은 유강후가 화난 걸 알았지만 그녀도 같은 상황이기에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다.분명히 나은별을 밀어낼 수 있었음에도 유강후는 기댈 수 있게 팔을 내어주었다.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 거면 차라리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온하랑은 얼굴을 붉히며 몸을 떨었다.“싫어요. 그리고 제가 나은별 씨를 먼저 때렸어요. 아저씨가 아끼는 사람을 때려서 가슴이 아파요? 그럼 다시 날 때리면 되겠네.”유강후는 점점 더 화가 치밀었다.“네가 언제 가슴 아프다고 했어?”욕하고 때리는 건 얼마든지 해도 되지만, 유독 이 반지를 떨어뜨린 건 용납할 수 없었다.이건 그의 마음과 진심을 짓밟는 것과 다름없는 해동이다.“주워서 깨끗하게 닦아.”유강후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온다연 마음속의 작은 화산이 완전히 폭발하였고 곧바로 눈앞의 반지를 발로 차버렸다.“주울 생각 없어요. 그리고 이렇게 싼 반지는 아저씨한테 어울리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나은별 씨한테 더 비싼 거로 사달라고 하세요.”온다연의 발차기에 반지는 더 멀리 날아갔다.유강후는 너무 화가 나서 목의 핏줄이 터져 나올 정도로 으르릉거렸다.“온다연, 넌 오늘 혼 좀 나야겠다.”그
나은별은 손톱이 살을 피고들 정도로 주먹을 불끈 쥐며 나지막하게 말했다.“강후 씨, 이제 내 말은 믿지도 않는 거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연 씨가 먼저 손쓴 걸 봤는데도 여전히 내 문제라는 거야?”유강후는 그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싸늘한 시선으로 조아영을 바라봤다.“조세진이 그쪽 아버지?”조아영은 극심한 고통에 식은땀을 흘렸지만 차마 유강후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맞아요.”유강후의 말투는 단호했다.“아버지한테 전해. 파산할 거니까 미리 마음 준비하라고.”조아영은 너무 놀라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울부짖었다.“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유강후는 무자비했다.“들리는 그대로야. 오늘부터 조씨 가문은 너 때문에 파산하게 될 거야. 기대해.”조아영은 고개를 번쩍 들고 마지막으로 발악했다.“분명히 저 여자가 먼저 때렸는데 왜 우리가 이런 불이익을 받아야 하죠?”유강후의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먼저 때렸다고? 그래서 뭐? 내가 있는 한 다연이가 사람을 때려죽여도 잘했다고 칭찬할 거야. 너 같은 인간을 수없이 많이 봤어. 내가 너보다 지위가 낮았다면 그런 표정이랑 행동으로 말했을까?”이런 사람에게 더 이상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유강후는 곧바로 경호원에게 말했다.“은별이는 병원으로 데려가고, 다른 사람 전부 다 내보내. 당장.”나은별은 씩씩거리며 말했다.“강후 씨,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아.”유강후는 못 들은 척 무시하고선 뒤를 돌아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며 경호원에게 말했다.“내가 왔을 때 여기에 사람이 남아있으면 너희들도 끝장인 줄 알아.”경호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답했다.“네, 도련님.”나은별은 멀어지는 유강후의 훤칠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고 눈에서는 악의가 번쩍였다.‘유강후, 날 이렇게 대한다는 거지? 두고 봐, 나도 더는 안 참아.’경호원들은 나은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의무적으로 그녀를 부축했다.“얼른 가시죠. 도련님이 분부했으니 저희는
유강후는 밀어내고 싶었지만 나은별을 중심을 잡지 못하는 듯 계속 비틀거렸다.밀어내려고 할수록 나은별은 그의 옷을 한사코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온다연의 눈에 비친 이 장면은 마치 서로에게 감정이 남아있는 연인 같았다.순간 어려서부터 각별한 사이로 자라온 소꿉친구 사이에 제3자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고 생각했다.나은별의 말대로 유강후는 어쩌면 일시적인 감정 때문에 지금처럼 행동하는 걸 수도 있다.온다연은 주먹을 불끈 쥐며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봤다.“내가 때렸어요. 왜요? 가슴 아파요?”그 말에 화가 난 유강후는 목소리마저 가라앉았다.“온다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온다연은 싸늘하게 웃었다.“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당사자가 제일 잘 알겠죠.”이때 반지를 수정하려고 자리를 잠깐 비운 직원이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수정된 반지와 함께 걸어왔다.“다연 씨, 요청하신 대로 수정이 완료되었습니다.”온다연은 번쩍 돌리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이제 필요 없으니까 환불해 줘요.”유강후는 화가 치밀어 몸을 떨었다.“그러기만 해봐.”온다연은 시선은 여전히 그의 팔에 기대어있는 나은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두 사람 결혼해요. 아주 천생연분이네.”그 말을 한 뒤 직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환불해 줘요. 이제 필요 없어졌거든요.”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 직원은 정석대로 안내했다.“죄송합니다. 이니셜이 새겨진 특별 제작한 반지라 환불이 불가합니다.”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온다연은 앞으로 걸어가더니 반지를 집고 땅바닥에 내던졌다.“그럼 버릴게요.”단단한 반지가 바닥에 닿자 몇 미터 높이로 튕겨 나갔다가 다시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유강후는 자신이 더없이 아끼고 사랑하는 물건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몸을 떨었다.그는 단호하게 말했다.“온다연, 당장 주워.”온다연은 차가운 표정으로 힐끗 보고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분노로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유강후는 단번에 나은별을 밀어내고 앞으로 걸어갔다
온다연의 눈에 비친 살기는 두피를 저리게 했고, 손에 칼이 있었다면 주저 없이 나은별을 찔렀을 것이라고 모두가 확신했다.사람들은 온다연처럼 몸집이 작은 여자가 어디서 폭발적인 힘이 나왔는지 몰랐고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큰 악의를 품고 있는데 이해되지 않았다.조아영은 체면을 잃었다는 생각에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온다연을 때릴 기세였다.“미친X. 남의 남자 친구를 뺏은 주제에 뭐가 그렇게 당당해서 사람을 때려?”“하여튼 가정 교육을 못 받으면 이렇다니까. 세컨드인 걸 아무리 즐겨도 그렇지 어떻게 당사자 여자 친구를 떄려?”“내가 오늘 너 죽여버릴 거야.”그러나 조아영의 손이 온다연에 닿기도 전에 손목이 잡혔다.우드득하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조아영은 반대편 벽에 내동댕이쳐졌다.불과 몇 초안에 일어난 일에 다들 눈을 의심하여 그대로 얼어붙었다.그들 사이에 무슨 갈등이 있는지 주위 사람들은 몰랐으나 눈앞의 이 훤칠한 남자가 마치 조아영을 잡아먹으려는 것처럼 살벌하다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누군가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끌어당겨 몸 곳곳을 확인했다.다친 곳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버럭했다.“왜 가만히 있어. 다른 사람이 때리려고 하면 소리라도 질러야지.”이때 옆에 있던 조아영이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눈 잘못됐어요? 저 여자가 은별이를 때렸다고요. 은별이가 어떻게 맞았는지 두 눈 뜨고 똑바로 봐봐요.”유강후는 그제야 바닥에 앉아 있는 나은별이 눈에 들어왔다.평소의 매력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이고 머리는 정신 나간 여자처럼 헝클어져 있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이 누군가를 때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우리 다연이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야.”이때 옆에 있던 직원이 용기 내 입을 열었다.“대표님, 저희가 봤습니다. 이 여성분이 먼저 손을 쓴 게...”“닥쳐.”유강후는 버럭 호통을 쳤다.“내가 말하라고 했어?
온다연은 망설임 없이 여자의 손목을 덥석 잡고 뒤로 힘껏 밀쳤다.힐을 신은 여자는 두어 걸음 뒷걸음질 치더니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온다연은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누구신데 남 일에 참견하는 거죠? 경고하는데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예요. 안 그러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겁니다.”넘어질 뻔하던 일행을 나은별이 부축했다.여자는 나약해 보이는 온다연이 감히 밀쳐낼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듯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그럼에도 분을 이기지 못하고 또 달려들어 온다연을 치려고 했다.이때 나은별이 팔을 붙잡았다.“조아영, 그만해. 때릴 가치조차 없는 사람이야.”나은별은 온다연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었다.“내가 화내면서 뺨 한 대 치길 바랐던 건 아니죠? 솔직히 그 모습을 강후 씨가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잖아요. 내가 유하령처럼 멍청해 보여요?”“온다연, 내가 너처럼 천한 여자를 한두 번 본 것 같아? 매달려도 소용없으니까 포기해. 유씨 가문이랑 강씨 가문에서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할까? 너처럼 가진 것 하나없는 인간이 무슨 자격으로 강후 씨랑 만나.”“유하령이 말해줬으니까 순진한 척 그만해. 너 복수하려고 강후 씨를 만나는 거잖아. 엄청 친한 친구가 있었다며? 널 구하려고 다른 사람 손에 죽었다던데 맞아? 죽기 전에 영상까지 찍혔다며? 아참, 유하령이 그 영상을 나한테 보내줬어.”온다연은 고개를 번쩍 들어 죽일 듯이 나은별을 노려봤다.나은별은 대수롭지 않은 듯 피식 웃고선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그 남자애가 너한테 소중한 존재라고 들었어. 죽은 사람의 마지막 체면을 지켜주고 싶으면 좋은 말로 할 때 강후 씨 곁에서 떨어져. 안 그러면 내가 그 영상 인터넷에 확 뿌려버릴 거야. 죽어서도 고통스럽게...”짝.온다연은 나은별의 따귀를 세게 한 대 갈겼다.눈빛에는 독기가 가득했고 당장이라도 죽여버릴 듯 살벌했다.“유하령이랑 똑같은 인간인 줄은 몰랐네요. 당신 같은 인간은 살 자격도 없어요.”나은별은 그대로 얼어붙었다.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나은별은 이권을 여러 번 찾아가 유강후가 왜 만나주지 않느냐고 물었다.이권도 처음에는 예의 바르게 대했지만 찾는 횟수가 많아짐에 따라 저도 모르게 피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더는 참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이실직고하게 되었고 온다연이 싫어해서 만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그 후로는 나은별의 전화를 아예 받지 않았다.나씨 가문과 유씨 가문의 혼담이 취소된 걸 누가 소문냈는지 유강후에게 아기가 생겼고 그 상대가 나씨 가문의 아가씨가 아니라는 것까지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다.그 이후로 나은별과 나씨 가문은 경원의 가장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온갖 조롱과 유언비어가 난무했고 유강후와 결혼하는 건 나씨 가문의 일방적인 바람이었을 뿐 유강후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은별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소문이 퍼지는 가운데 나씨 가문의 투자자들은 하나둘씩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고 회사는 지금 매우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가장 역겨운 점은 예전에 빌붙으려고 양손 가득 선물 챙겨서 찾아오던 사람들이 갑자기 증발이라도 한 듯 문전성시를 이루던 나씨 가문은 하루아침에 적막해졌다.배은망덕한 사람들의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오른 나씨 가문 어르신은 명절날에도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나은별은 이런 상황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있다.사람들이 추측하며 수군거릴 때 아무런 대처 없이 묵인한 유강후가 그 원인의 중심이다.그동안 나씨 가문을 통해 미래 그룹에 빌붙으려던 사람들까지 발걸음을 멈췄다.나은별은 그런 사람들을 미워하는 건 아니다.이익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하늘에서 땅이 아닌 지옥으로 떨어지는 케이스를 수없이 많이 봐왔기에 이런 우여곡절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이익 때문에 등을 돌린 인간이 아닌 사건의 원흉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나은별은 온다연이 유강후에게 빌붙어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초라한 자신에 비해 전보다 안색도 좋아지고 예쁜 얼굴마저 더 정교해진 온다연이 몹시 눈에 거슬렸다.게다가 입고 있는 옷의 패턴
온다연은 순순히 그의 품에 안겨 몰래 눈물을 닦았다.“보석상에서 가지러 가도 된다고 연락왔는데 아직 안 갔어요. 결혼식 며칠 전에 가려고요.”그 말을 들은 유강후는 설레는 마음에 심장이 뛰었다.“지금 가지러 가자. 어떤 건지 너무 보고 싶어.”옷 갈아입을 때 유강후는 특별히 가장 마음에 드는 슈트를 입었다.그러고는 온다연에게 넥타이를 골라달라고 부탁했다.온다연은 너무도 많은 넥타이에 흠칫하다가 다시 신중하게 골랐다.유강후는 캐비닛 앞에 서서 열심히 넥타이를 고르는 온다연이 귀여운지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온다연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을 때 유강후는 이런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외출 준비할 때 아내인 온다연이 옷과 넥타이를 골라주며 신경 써주는 이 상황을 수년동안 기다렸다.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상상이 현실로 되었고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온다연은 매우 열심히 넥타이를 골라주고 있다.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당장이라도 침대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어젯밤 너무 무리한 탓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유강후는 뒤에서 온다연을 끌어안고선 허스키한 목소리로 물었다.“골랐어?”온다연은 회색 넥타이를 꺼냈다.“오늘 입은 옷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예뻐요.”유강후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예쁜 건 딱히 중요하지 않아. 다연이가 좋아하면 그게 뭐든 나도 좋아.”온다연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아저씨, 그만해요.”빨갛게 달아오른 온다연의 귀를 본 유강후는 더 이상 참지 못했고 그녀의 머리를 잡고선 한참이나 키스를 한 후에야 놓아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보석상에 도착했다.임정아는 안목이 좋을 뿐만 아니라 여러 주얼리 브랜드의 모델이기도 하다. 온다연은 가성비가 좋고 흔치 않은 남성용 반지를 골랐다.온다연이 집 사려고 모아둔 금액이었으니 싼값은 아니었다.하지만 유강후가 마음에 안 들어 할 수 도 있으니 긴장된 마음을 늦추지 못했다. 어쨌든 지금 입고 있는 옷과 시계에 비하면 훨씬 싼 값이니까.그런데 의외로 유강후는 매우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