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의 표정만으로도 주성원은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만약 그런 거라면 최대한 마음속의 얘기를 꺼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그는 온다연의 목에 있는 붉은 흔적을 힐끗 보돈 한참 망설이다가 말했다.“이 아가씨의 몸 상태는 아주 나쁩니다. 그러니 도련님께서는 욕구를 참아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 아가씨 몸 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하기 전까지는 절대 임신해서는 안 됩니다. 임신하면 오히려 이 아가씨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유강후는 품에 있는 온다연을 보더니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했다.“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몸이 빠르게 나을 수 있는 보약 같은 거 말이에요.”주성원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있긴 합니다만 약재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요. 그리고 그 약은 너무도 써서 이 아가씨가 먹기 힘들 겁니다.”유강후가 말했다.“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그냥 어떤 약재가 필요한지 전부 적어주세요.”주성원은 고개를 끄덕인 뒤 종이에 필요한 약재를 전부 적어두고 해열제를 가져왔다. 떠나기 전까지 제때 약을 먹여야 한다며 당부도 했다.해열제를 먹인 후 온다연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해가 뜨기 전까지 온다연은 앓는 소리를 내었고 그제야 열이 내려갔다.유강후는 밤을 새웠다. 직접 그녀의 곁을 지키면서 약을 먹인 후 땀에 젖은 옷을 갈아 입혔다.아침이 되자 조금 눈을 붙인 후 점심도 되기 전에 온다연은 다시 열이 나기 시작했다.이번에는 덥다고 하지 않았다. 춥다고 하면서 이불을 잔뜩 끌어다 덮었다.유강후는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 분명 뜨거운 몸이었지만 그녀는 추위를 느끼며 잇몸을 달달 떨고 있었다.난방을 틀어도 소용이 없어 결국 따듯한 온천에 한참 몸을 담그고 나서야 조금 나아졌다.저녁이 되자 그녀는 더는 춥다거나 덥다고 하지 않았다. 침대 위를 뒹굴며 잠을 자려 하지도 않았고 약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유강후가 숟가락으로 약을 떠서 그녀의 입가에 가져다 대도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
온다연은 그 상자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유강후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고마워요, 아저씨.”상자는 아주 컸기에 온다연은 겨우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결국 그녀는 옆에 있던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유강후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직하게 말했다.“어서 열어 봐.”온다연은 예쁜 상자를 보며 다소 의아한 듯 물었다.“오늘 무슨 날이에요? 왜 갑자기 저한테 선물을 주는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일단 열어 봐.”포장이 예쁘고 큰 선물을 처음 받아보는지라 온다연은 상자를 여는 모습도 아주 조심스러웠다. 천천히 리본을 푼 뒤 상자를 열어보았다.예쁜 하얀 상자 안에는 순백의 하얀 장미가 가득했다. 매 한 송이 전부 정성스럽게 손질 한 것이었고 가운데 있는 장미꽃들엔 반짝이는 보석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꽃들 중간에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작은 고양이가 있었다. 그 고양이는 호기심 가득한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온다연은 멍해졌다. 고양이를 보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한참 지나서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유강후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선물 선택이 현명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비록 비슷한 고양이를 찾는 것은 힘들었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았다.유강후는 고양이를 꺼내 그녀의 손바닥 위에 올려주었다.“갓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아이야. 조심히 키워.”온다연은 고양을 조심스럽게 안으면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정말로 선물로 주시는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고작 며칠 사이에 더 홀쭉해진 느낌에 눈빛이 어두워졌다.“내가 말했잖아. 네가 원하는 거 뭐든 전부 주겠다고.”온다연은 고개를 떨군 채 나직하게 말했다.“하지만 전 드릴 것이 없어요.”유강후는 그녀를 안아 올려 의자에 앉힌 뒤 물끄러미 보았다.“네가 나한텐 선물이야.”온다연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작은 머리를 푹 숙인 채 손가락으로 고양이의 작고 분홍빛이 도는 발을 톡
유강후는 손을 뻗어 그녀가 소중히 안고 있던 고양이를 빼냈다. 그러자 그녀는 눈을 번쩍 뜨면서 몸을 일으켰다.“말씀하셨잖아요. 저한테 주는 선물이라고요.”말을 마치자마자 자신의 목소리가 컸다는 것을 눈치챈 그녀는 바로 고개를 푹 숙였다.유강후는 고양이를 집사가 가져온 케이지 안에 넣으면서 말했다.“일단 고양이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 몸이 나아지면 구월이도 좀 커져 있을 거야. 그때 가서 곁에 두고 키워.”온다연은 집사를 보면서 입술을 달싹였다.집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이 고양이는 천 마리의 새끼 고양이 중에서 반나절을 골라 데리고 온 겁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전문가에게 맡겨 문제없이 잘 키우고 있겠습니다.”온다연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유강후는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올려 안방으로 걸어갔다.온다연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면서 멀어져 가는 집사의 뒷모습을 빤히 보았다. 안방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저한테 주는 선물이라면서요.”목소리는 아주 나긋하여 유강후는 방금 들은 고양이 구월이의 울음소리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로 손이 올라갔다.“맞아. 구월이는 네 거야.”온다연은 사실 그가 고양이를 다시 가져갈까 봐 두려웠지만, 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방으로 돌아온 뒤 약을 먹었다. 분명 피곤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유강후 쪽을 보고 있었다.뭔가 할 말이 있는 모습이었다.유강후가 물건을 정리하고 외출하려던 때 그녀는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아저씨!”유강후는 몸을 돌렸다. 속을 알 수 없는 눈길로 그녀를 보았다.“할 말이 있으면 해도 돼. 난 널 잡아먹지 않으니까.”온다연은 입술을 짓이기며 이불을 꽉 잡았다.“구월이 다시 데려가면 안 돼요. 구월이는 이젠 내 고양이란 말이에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다소 긴장한 얼굴로 유강후의 표정을 살폈다.유강후는 부드러워진 눈길과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안 데려가.”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를 보고 있었다
장화연의 목소리는 예전과 다름없이 차가웠다.“하령 아가씨, 도련님께서 외부인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그러자 유하령은 화가 났는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외부인이야? 장화연, 네가 뭔데? 지금 당장 너를 해고할까?”장화연은 침착하게 대답했다.“하령 아가씨, 아가씨는 저를 해고할 수 없습니다. 저는 유씨 가문의 월급도 받지 않고 아가씨가 시키는 걸 할 의무도 없어요. 저는 오직 도련님과 사모님의 명령만 따를 뿐입니다. 아가씨의 말은 저에게 아무 소용이 없어요.”온다연은 창가 쪽으로 걸어가 잘 닫히지 않은 커튼 사이로 묵묵히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유하령은 거실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장화연은 그녀를 잡아끌어 당기며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이런 대우를 처음 받아 본 유하령은 화가 나서 얼굴이 일그러졌다.“네가 뭔데? 내 눈에 넌 그냥 집 지키는 개에 불과해. 호텔은 우리 삼촌 거야. 내가 왜 못 들어가? 오늘 무조건 들어갈 거야. 삼촌이 도대체 어떤 여우 같은 계집애를 숨겼는지 한번 볼 거야.”유하령은 욕을 하면서 장화연의 뺨을 후려쳤다. 장화연은 무덤덤하게 그녀의 손을 잡고 뒤로 잡아당겼다.“아가씨, 말씀을 조심하세요. 저는 우리 집 큰 아가씨가 데려온 사람입니다. 저는 오직 도련님만 모시고 도련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고 있습니다. 도련님이 가기 전에 누구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기에 아가씨도 당연히 안 됩니다. 저는 단지 명령을 따를 뿐이니 서로 난처하게 굴지 맙시다.”유하령은 계단 쪽으로 밀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더니 또다시 장화연을 때리려고 했다.“이 노처녀야! 어쩐지 너를 원하는 남자가 없더라니. 마흔이 넘었는데 시집도 못 가고.”“그만!”유강후는 갑자기 유하령 뒤에 나타났다. 그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유하령은 유강후의 목소리를 듣자 갑자기 표정을 바꾸더니 억울한 척 울먹이며 돌아서서 유강후의 팔을 껴안았다.“삼촌, 장 집사가 저는 외부인이라고 들어가지 말라고 했어요.”유강후는 어
두 걸음 뛰자마자 장화연은 유하령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유강후는 차갑게 유하령을 쳐다보며 경고했다.“하령아, 내가 말했지. 넌 내 일에 관여할 자격이 없다고. 그러니 당장 장 집사에게 사과해.”“싫어요!”유하령은 화가 나서 몸을 떨며 사과를 거부했다. 그녀의 기억에 유강후는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예뻐했고 모든 부탁을 다 들어주고 설령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그녀를 벌한 적 없는 착한 삼촌이었다. 하지만 오늘 방에도 못 들어오게 하고 심지어 하인에게 사과하라고 하다니.유하령은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이다.“사과해!”유강후는 더 차갑게 유하령을 쳐다봤고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하령아, 왜 이렇게 점점 버릇이 없어. 자성 형이 예의를 배워 줄 선생님을 구해주지 않았어?”손목의 통증을 느낀 유하령은 몸부림치면서 울었다.“삼촌, 왜 겁을 줘요. 하인 때문에 지금 나를 때린 거예요?”“닥쳐! 하인? 넌 그저 가족을 등에 업고 날뛰고 있는 것뿐이야. 이러다가는 조만간 유씨 가문에 큰 화를 일으킬 거야.”유강후는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손을 뒤로 젖히자 유하령은 순식간에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예뻐해 주던 삼촌이 이렇게 행동하자 믿기지 않아 두 눈을 부릅뜨고 유강후를 바라보았다.그리고 갑자기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방을 쳐다봤다.“전에는 이러지 않았어요. 이게 다 저 여자 때문이죠? 누군데요? 혹시 저 여자가 제 험담을 했어요? 그래서 저를 이렇게 대하는 거예요? 삼촌!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내연녀를...”“여봐라! 얘를 끌어내!”유강후는 유하령의 말을 자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사람을 불렀다.그러자 곧 경호원이 밖에서 뛰어 들어와 유하령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유강후가 이렇게까지 나오자 유하령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경호원의 손을 뿌리치고 책상 쪽으로 달려가 책상 위에 있던 모든 물건을 모두 바닥에 쓰러뜨렸다.그중에는 고양이가 자고 있는 바구니도 포함되었다.고양이는
유하령은 유강후를 잘 알고 있다. 유강후는 어려서부터 냉정하고 누구한테도 다정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과 친하지도 않았던 그가 여자를 달래다니. 유하령은 유강후가 그 여자한테 단단히 홀렸다고 생각했다.총애를 잃을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유하령은 다시 문을 두드리려고 했지만 두 경호원은 그녀를 호텔에서 끌고 나왔다.온다연은 바닥에 있는 고양이를 주워 안았다. 새끼 고양이는 너무 어렸고 넘어져서 아픈지 계속 야옹거리며 울었다.온다연은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고양이를 안고 묻은 먼지를 깨끗이 닦아낸 후 다시 바구니에 넣었다. 하지만 놓자마자 고양이는 다시 넘어지면서 더 크게 울었댔다.온다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양이를 안고 다시 한번 검사했다. 그리고 오른쪽 뒷다리가 좀 이상한 것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리에는 힘이 전혀 없었고 온다연이 살짝 다치기만 해도 고양이는 처량하게 울었다.그녀는 이내 고양이의 다리가 부러졌다고 판단하였다. 너무 슬픈 나머지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온다연은 아무 말도 없이 유강후를 바라보았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고 손을 뻗어 그녀를 품으로 끌어당긴 후 고양이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온다연은 고양이를 자기 뒤로 숨기며 경계했다. 유강후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갑자기 사나워졌다.몹시 화가 난 것처럼 말이다.유강후는 눈살을 찌푸리고 싸늘하게 물었다.“혹시 나를 탓하는 거야?”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강후를 싸늘하게 쳐다봤다. 평소 나긋나긋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두 사람 모두 말수가 적은 편이라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마주 보자 분위기는 너무 싸늘했다.특히 유강후의 눈빛은 어둡고 차가웠다. 턱선마저 팽팽해지면서 이를 가는 것 같았다. 이것은 그가 곧 화를 낼 거라는 징조이다.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장화연은 입을 열었다.“다연 씨, 고양이가 다쳤나 봐요. 이렇게 작은 고양이는 전문 의사에게 맡겨야 해요.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온다연은 주먹을 더 꽉 쥐었다. 그녀는 분명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유하령이다. 유하령이 갑자기 뛰어 들어오면서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고양이가 다치게 되었다. 유강후를 화나게 한 사람은 유하령이다.하지만 왜 온다연이 벌을 받아야 할까?유강후는 온다연이 원하는 것을 모두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지금 온다연이 원한는건 오직 그 고양이인데 유강후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고양이를 가져갈 뿐만 아니라 유하령의 잘못까지 그녀에게 뒤집어씌우려 한다.이런 행동은 지극히 잔인하고 지독한 유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쩌면 온다연을 애완동물보다 못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 애완동물은 주인에게 상을 받으면 돌려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온다연은 주먹을 꽉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잘못한 게 없어요. 고양이를 가져가면 안 돼요.”유강후는 온다연의 하얀 작은 발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시선을 점점 위로 옮겼다. 점점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을 보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처음부터 지금까지 잘못한 일이 적다고 생각해?”온다연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긴장한 나머지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또 옛날 일을 꺼내는 거야? 그럼 왜 고양이를 그때 나에게 줬는데? 정이 생기니 또다시 가차 없이 빼앗아 가려는 거야?’온다연은 유강후가 일과 사람을 대하는 것도 이렇게 잔인하다고 생각했다.나은별과 결혼할 거면서 계속 자기를 괴롭히는 모습은 유하령과 유민준과 다를 바가 없었다.온다연은 갑자기 경원시에서 떠돌던 소문이 생각났다.유씨 가문 셋째 도련님 유강후는 성격이 예민하고 도도해서 몇 년 동안 나은별 외에는 그의 눈에 들어오는 여자가 없었다. 유강후와 스캔들이 났던 여자들은 모두 사라졌다.정말 사라졌을까? 아니면 죽었을까?어떤 결과라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유강후는 생각에 잠긴 온다연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손을 내밀면서 차갑게 말했다.“이리 와!”온다연은 뒷걸음치더니 갑자기 돌아서서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온다연은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무작정 화를 내는 유강후를 째려보았다.얼마나 지났을까, 유강후는 온다연을 놓아주고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의자 위에 앉혔다.그는 숨을 헐떡이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나를 화나게 하지 마. 너한테 좋을 게 없어.”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강후는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치켜들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대답해!”그러자 온다연은 눈을 깜빡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유강후는 만족스러운 듯 그녀 곁에 앉아 책상 위의 물티슈를 꺼내 흙이 묻지도 않은 그녀의 발을 닦았다.그리고 하얗고 보드라운 발에 두 가닥의 핏자국이 생긴 것을 보자 유강후는 눈썹을 약간 찡그리며 말했다.“앞으로 맨발로 정원에서 뛰어다니지 마.”이때 장화연은 잘 다린 한약을 들고나왔다. 검은 한약은 하얀 도자기 그릇에 담겨있었고 보기만 해도 엄청 쓸 것 같았다.“너무 뜨겁지 않습니다. 다연 씨 지금 먹어요.”온다연은 그 약을 보자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몸도 저절로 움츠러들었다.유강후는 사탕 한 알을 그녀에게 건네면서 말했다.“입에 넣고 있으면 안 쓸 거야.”온다연은 고분고분 그의 말을 듣고 사탕을 깨물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약의 맛을 덮을 수 없었다. 게다가 왜 갑자기 한 그릇이 더 많아졌는지 모른다. 예전보다 더 쓰고 토하고 싶게 만드는 맛이었다.유강후 옆에 있는 매 순간순간 모두 고통스러웠다. 온다연이 약을 다 먹자 유강후는 만족스러운 듯 그녀를 자기 무릎 위에 앉히고 그녀의 앙증맞은 발을 몇 번 주무르더니 장화연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가져와.”그러자 장화연은 이내 방에서 예쁜 상자를 들고나왔다.심플한 검은색 디자인의 상자였지만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상자 위에는 블루 다이아몬드가 박혔고 가치가 상당했다.온다연은 상자를 받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저는 필요 없어요.”그러자 장화연은 상자를 들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다연
예상치 못하게 회사에서 갓 소문을 접한 매니저들과 직원들은 이번엔 눈앞에서 직접 드라마틱한 ‘현실 연애’를 목격하게 되었다. 비서는 유강후가 온다연을 안고 사무실을 나서는 것을 보더니 매니저들에게 손짓했다.“오늘의 회의와 보고는 다 끝났으니까 해산하세요. 대표님은 이만 퇴근하셨습니다.”레스토랑은 회사에서 멀지 않아 금방 도착했다.두 사람이 들어서자, 레스토랑의 매니저가 직접 나와 서툰 한국어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맞이했다.이른 저녁이라 식당은 한산했고 매니저는 두 사람을 전망이 가장 좋은 프라이빗 룸으로 안내했다.그 방은 크지 않았지만 로맨틱하게 꾸며져 있었고, 연인들이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기에 딱 좋은 분위기였다. 창문 너머로는 금성의 CBD 광장 중심부가 보였고 도시의 절반 정도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곧이어 디저트가 나왔다. 화려하고 유혹적인 디저트들이 투명한 크리스탈 접시에 담겨 있었고 그 위에 금빛 설탕 시럽이 흐르며 몇몇 디저트 위에는 반짝이는 금박이 장식되어 있었다.크리스탈이 빛을 굴절시키면서 모든 것이 환상적으로 보였고 이곳이 지상 낙원처럼 느껴졌다.온다연은 조심스럽게 한 입을 먹어보더니 눈이 반짝였다. 그녀가 너무나 행복하게 먹는 모습을 보자 유강후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입에 맞나 보네요. 이 집은 디저트를 잘 만들어요...”온다연은 나이프로 크림 한 덩이를 퍼서 그의 입가로 가져갔다.“강 대표님도 드셔보세요.”하지만 유강후는 크림 대신 그녀의 입술 가장자리에 묻은 크림을 보고 눈빛이 어두워졌다. 갑자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으로 테이블을 짚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잡아 끌어당기더니 입을 맞췄다.오랫동안 이어진 키스가 끝나자, 그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맛있네요. 아주 달콤해요.”온다연은 얼굴이 새빨개지며 작게 말했다.“여기 밖이에요. 밖에서 함부로 키스하다가 사람들이 보면 어떡해요...”유강후는 그녀의 키스로 붉어진 입술을 보며 아쉬운 듯 미소 지었지만, 더 다가가려는 순간
곧 새로 산 얇은 담요가 배달되었다.유강후가 온다연에게 담요를 덮어주자마자 그녀가 눈을 떴다. 조금 어둑한 조명 아래에서 그녀는 두어 초 동안 낯선 환경에 당황하다가 상황을 파악했다.유강후는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맞추며 말했다.“깼어요? 더 잘래요?”온다연은 머리를 비비며 나직하게 말했다.“더 자고 싶지 않아요. 계속 악몽을 꿔서 너무 피곤해요.”유강후는 눈빛이 잠시 흔들렸지만 그녀를 들어 올려 자기 무릎 위에 앉히고 낮게 속삭였다.“무슨 꿈을 꿨어요?”온다연은 그의 가슴에 기대어 강하게 뛰는 심장 소리를 조용히 들었다. 그 소리에 마음이 조금 진정된 후 그녀가 말했다.“누군가가 저를 괴롭히는 꿈을 꿨어요. 그런데 한 소년이 나타나 저를 구해줬어요. 하지만 그 소년이 결국 죽었어요...”그녀는 꿈속에서 너무나도 무력하고 마치 온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았다.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고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오직 그 소년만이 그녀에게 따뜻하게 대했지만 그 소년마저도 자신을 구하려다 4층에서 떨어져 죽었다.꿈속에서 그녀는 심장이 찢어지듯 울었고 그 모든 감정이 너무나 생생하여 마치 꿈이 아니라 실제로 겪었던 기억처럼 느껴졌다.온다연은 그의 옷을 꼭 쥐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강 대표님, 꿈이 아닌 것 같을 정도로 생생해요. 정말로 있었던 일이 꿈에 나타나는 거 아닐까요?”유강후의 눈 속에 어둠이 스쳤지만,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며 그녀를 꼭 안았다.“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요. 그저 꿈일 뿐일 테니까...”온다연은 멍하니 말했다.“하지만 요즘 들어 자주 이런 꿈을 꿔요. 그리고 정말 현실처럼 느껴져요. 가짜 같지 않아요.”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덧붙였다.“그 소년도 기억나요. 그 소년이...”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잡고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그건 단지 꿈이라니까요...”잠시 침묵한 후 그가 덧붙였다.“설령 그게 사실이었다 해도, 유나 씨를 괴롭혔던 사람들은 반드시 벌을 받았을 거예요. 아무
“원래는 이 원단을 몸에 두르고 무대 위에서 시연하는 방식으로 소개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제가 이 원단을 구매해 치파오로 완성품을 만들기로 하면서, 저 대신 어머님께서 무대에서 입어주실 수 있는지 부탁드리고 싶어 하더라고요.”온다연은 강현미의 반응을 살피며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물론 이 부탁이 무리인 건 알아요. 어머님의 신분이 워낙 귀하시다 보니 런웨이 무대와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제 친구 말로는 이 원단의 공예적 가치는 정말 대단해서 세상에 제대로 알리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다고 해요...”“좋아. 그 부탁은 내가 들어줄 수 있을 것 같구나.”강현미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온다연은 잠시 멍해졌다.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지, 이렇게 쉽게 승낙할 줄은 몰랐다.강현미가 이어서 말했다.“이렇게 훌륭한 원단이라면 전 세계에 우리가 가진 럭셔리의 진짜 가치를 보여줄 필요가 있지. 외국의 명품보다 더 희귀하고 소중하다는 걸 알려야지. 네 친구에게 가서 내가 참여한다고 전해.”그녀는 온다연을 한 번 바라보더니 말했다.“나는 네가 국풍 패션 브랜드에 투자하고 싶다고 이야기할 줄 알았어.”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사실 저도 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시장 가능성이 정말 크다고 느껴지거든요.”“좋은 판단이야. 나는 네 결정을 지지해. 만약 네가 브랜드를 런칭하면 내가 경영 쪽으로 지원해 줄게.”온다연은 기쁨에 강현미를 살짝 끌어안으며 말했다.“어머님, 정말 감사합니다!”강현미는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고맙긴... 이제 나는 그만 가봐야겠다.”온다연이 몇 번이나 식사까지 하고 가라고 붙잡았지만, 강현미는 끝내 점심을 함께하지 않고 떠났다.점심 식사 후, 온다연은 갑자기 생각이 나서 미래 그룹 본사로 향했다. 유강후는 아직 회의 중이라 그녀는 그의 사무실에서 기다리기로 했다.미래 그룹의 크기와 유강후의 바쁜 일정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그녀가 사무실에서 잠깐 기다리는 동안에도 비서가 서류를 한가득 안
몇 개의 고풍스러운 상자 안에는 정교하게 제작된 중식 개량 치파오가 담겨 있었다.온다연이 입고 있는 치파오와는 다르게, 이 치파오들은 색상이 더욱 우아하고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다.온다연이 상자에 놓인 치파오들을 짚으며 말했다.“이건 어제 제 친구가 디자인한 치파오들이에요. 이 디자인을 보고 나서 어머님께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급히 보내달라고 했어요. 시간이 촉박했지만 이미 어머님 치수에 맞게 수정해 두었어요. 그리고 제가 친구에게 주문해 둔 두 가지 특별한 원단도 있어요. 분명히 마음에 드실 거예요.”그녀는 상자에서 원단 샘플을 꺼내 강현미에게 건넸다.“이건 샘플이에요. 이런 원단은 비록 귀하지만 비교적 구하기 쉬워요. 하지만 이 원단은 정말 희귀해요. 제 친구가 연구를 거듭했지만 겨우 네 가지 색상을 재현했어요. 하늘색, 브라운색, 은빛을 곁들인 붉은색과 옅은 그린이에요. 만져보세요.”강현미는 원단을 만지며 감탄했다.“정말 이 원단이 아직 있었네.”하늘색 원단은 마치 안개가 피어오르듯 은은하고 신비로운 색감을 띠고 있었으며 촉감은 가장 얇은 비단보다도 부드러웠다.그녀는 옛 기억을 떠올렸다. 예전에 동남아에서 왕비가 이 원단으로 만든 옷을 입은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멀리서 봤을 때도 마치 강가의 안개비처럼 아련하고 우아했었다. 그 원단이 세계에 남은 마지막 원단이었고 이미 다시 복구하기 어렵다고 들었는데, 오늘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이 원단을 만드는 기술은 이미 사라진 줄로 알았는데?”온다연이 설명했다.“저도 이 원단이 있다는 건 책에서나 보는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제 제 친구가 샘플을 가져와 보여주더라고요. 전설 속 이야기처럼 들렸던 게 진짜였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 원단이 너무 복잡해서 실패율이 높대요. 경력이 많은 장인들이 몇 달 동안 작업해도 한 필을 얻기가 어렵다고 해요. 지금 제가 주문한 이 네 가지 원단도 친구가 2년 동안 공들여 겨우 얻은 모든 것이에요. 어머님께서는 치파오의 디자인을 먼
“내 앞에서 가릴 필요 없어. 너희가 아이를 가지려고 한다면 자연스러운 일이잖니...”온다연은 얼굴이 더 붉어지더니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아이를 가지겠다고 했다면 그건 강 대표님의 농담이에요. 아직 저희는 아이를 가질 계획이 없어요.”강현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 위에 놓인 큰 나무 상자를 가리켰다.“네가 왔으니 간단하게 준비한 선물이야. 어제 네가 치파오 입은 걸 보니 빈티지한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것 같더구나. 이건 내가 젊을 때 수집한 보석들이야. 네가 새로 맞춘 치파오와 잘 어울릴 거야. 한번 꺼내서 봐.”그녀는 나무 상자를 열었다.온다연이 안을 들여다보자마자 숨을 들이쉬며 속으로 감탄했다.‘너무 화려한데...’상자 안에는 온통 비취 장신구로 가득했고 적어도 백여 점은 되어 보였다.한눈에 보기에도 모든 품질이 완벽했지만, 마치 시장에서 산 물건처럼 하나의 평범한 상자에 마구 담겨 있었다.온다연은 손에 닿는 대로 비취 팔찌 하나를 꺼내 보며 감탄했다.“정말 대단하네요. 이렇게 투명한 팔찌는 요즘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죠. 작년에 저희 어머니도 비슷한 걸 구입하셨는데, 그게 16억 정도 하더라고요.”강현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예전에 내가 동남아에 갔을 때 비취 시장에서 구입한 것들이야. 그땐 원석 도박이 유행이었는데, 운이 좋아서 귀한 품종을 꽤 많이 얻었지. 네가 비취를 좋아하면, 내 방에 아직 가공하지 않은 큰 비취 원석들이 몇 개 더 있어.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골라서 가공해도 돼.”그녀는 상자 속을 한 번 훑어보며 덧붙였다.“사실 이건 그 원석들에 비하면 별거 아니야.”온다연은 급히 말했다.“괜찮아요.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게다가 이 모든 게 너무 값비싸서 다 받을 순 없어요.”그녀는 몇 가지 장신구를 손에 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이 정도면 제가 가진 옷들과 매치하기에 충분해요. 나머지는 다시 가져가 주세요. 너무 부담돼요.”강현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사를 손짓으로 불렀다.“이걸
연회가 끝났을 때는 이미 새벽에 가까웠다.유강후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소파에서 잠든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다가가 몸을 굽히려는 순간 온다연이 눈을 떴다.“끝났어요?”유강후는 그녀의 얼굴에 가볍게 입맞추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왜 방에 가서 자지 않았어요?”그에게서 은은한 술 냄새가 풍기자, 온다연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그를 밀어냈다.“술 드셨잖아요.”유강후는 분명 몇 잔 마셨고, 약간 취해 있었다. 그는 술기운에 그녀의 가냘픈 허리를 강하게 잡고 다시 입을 맞췄다.“저를 싫다고 밀어내는 거예요? 유나 씨...”온다연은 고개를 홱 돌리며 두 손으로 그를 막았다.“제가 가서 해장국 끓여올게요.”유강후는 코웃음을 치며 한 손으로 그녀를 마치 작은 고양이를 들듯 번쩍 들어 욕실로 데려갔다.얼마 후, 집사가 해장국을 준비하고 문을 두드리려던 찰나 욕실 안에서 민망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를 들은 집사는 급히 발길을 돌렸다.‘대표님과 유나 씨의 관계가 정말 좋은가 보네...’집사는 지금 이 흐름대로라면 이 집에 작은 도련님이 생기는 것도 그리 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얼른 어르신께 넌지시 알려드리고 미리 아기방 준비를 해야 할지 상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다음 날, 정오가 가까워서야 온다연은 겨우 잠에서 깼다. 눈을 뜨자마자 온몸이 마치 차에 치인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어젯밤의 일이 떠오르자,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강 대표님은 진짜 너무해. 그제도 폭풍 같은 시간이었는데... 어제는 더 심했어. 술기운에 밤새 몇 번이고 나를 덮쳤어...’어젯밤의 부끄러운 장면들이 떠오르자, 온다연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저주하듯 말했다.“진짜 말도 안 돼요. 쉬지도 않고 밤새...”‘참! 어젯밤에도 콘돔을 안 꼈던 것 같은데...’그녀는 이마를 짚으며 침대에 다시 쓰러졌다. 유강후는 원래 이런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녀에게 늘 다정하고 세심하게 대해주었는데, 최근 몇 번은
‘다연이가 과거를 잊은 후 새롭게 시작하는 거니까 새로운 여자로 봐도 되겠지...’염지훈이 비꼬는 듯한 웃음과 함께 도발적으로 말했다.“그래서 이렇게 초대도 받지 못한 자리에 왔습니다. 미래 그룹 총수의 새 부인이 얼마나 미인인지 직접 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미스코리아를 나갈만한 미인인가요?”유강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냉기가 서려 있었다.“안타깝게도 그 사람은 몸이 안 좋아서 이미 잠자리에 들었어. 조만간 내가 아내를 데리고 직접 염 대표님의 회사를 방문하지.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그의 눈빛이 순간 묘한 빛을 띠며 덧붙였다.“가까운 시일 내에 볼 수 있을 테니 그때 어떤 사람인지 직접 확인하면 되잖아.”염지훈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옛날엔 다연이에게 목숨까지 바칠 것처럼 굴더니, 겨우 3년 만에 새 여자와 결혼했다는 거네요? 결국 그때도 전부 연극이었다는 거잖아요.”유강후의 손이 서서히 주먹으로 쥐어지며 목소리가 낮아졌다.“듣기로는 아직도 다연이를 찾고 있다던데, 몇 년을 찾아 헤맸다던데 무슨 소식이라도 있어?”염지훈은 잠시 흥분한 듯 쏘아붙였다.“소식이 있다고 해도 너 같은 놈에게는 절대 한마디도 해주지 않아! 넌 온다연과 관련된 어떤 정보도 가질 자격이 없어! 설령 다연이가 살아 있다 해도 널 절대 만나주지 않을 거야. 넌 그럴 가치가 없으니까!”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물었다.“그렇다면 소식을 듣긴 한 것처럼 보이네?”염지훈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비웃었다.“없다고 했잖아!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거야!”유강후는 듣자마자 단호하게 말했다.“염 대표님, 온다연이 살아 있든 죽어 있든 중요하지 않죠. 중요한 건 온다연은 내 아내라는 겁니다. 온다연은 저와 법적으로 결혼했고 우리에겐 함께 키우는 아이도 있어요. 설령 온다연이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그녀의 묘비엔 우리 가문의 성씨가 새겨질 거고 염 대표님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걸 명심하세요.”염지훈의 얼굴이 굳어지며 분노가 치밀었다.“그래서? 네까짓
온다연은 유강후 앞에서 한 바퀴 돌며 웃었다.“이 치파오 정말 예쁘죠?”달빛처럼 은은한 화이트 톤의 개량식 치파오는 그녀가 착용한 옥 장신구와 완벽하게 어우러져 온다연 특유의 소녀다운 맑음과 온화한 매력을 한껏 살려 주었다.유강후는 그녀를 가볍게 끌어안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정말 예뻐요. 이제 만찬이 시작될 시간이네요. 가시죠.”세 사람은 곧 연회장에 도착했다.연회장에는 이미 손님들이 대부분 자리를 잡고 있었고 온다연과 유강후는 단연코 오늘 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그리고 두 사람과 함께 등장한 임혜린 역시 자연스럽게 시선을 끌었다.특히 온다연과 임혜린이 입은 중식 개량식 치파오는 우아하면서도 여성적인 매력을 뽐내 주변의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그 자리에서 임혜린의 작업실은 수많은 주문을 받으며 대성공을 거두었다.연회가 약 3분의 1쯤 진행되었을 때, 집사가 급히 유강후에게 다가와 그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유강후의 얼굴이 살짝 굳어지더니, 별안간 온다연을 번쩍 안아 올리고 곧장 휴게실로 향했다.임혜린과 즐겁게 대화 중이던 온다연은 느닷없이 공주님 안기 자세로 들어 올려지자,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사람들 앞에서 이러면 어떡해요? 손님들도 있는데...”유강후는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임혜린 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함께 하시죠. 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운전기사가 대기 중이니 편히 돌아가세요.”그의 말은 명백한 작별 통보였다.임혜린은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마침 피곤했을 뿐만 아니라 집에서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순순히 온다연과 인사를 나눈 후 자리를 떠났다.온다연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유강후를 바라보았다.“왜 갑자기 혜린이를 내보낸 거예요? 한창 재밌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단 말이에요. 조금 전 그 행동은 좀 무례했어요!”유강후는 그녀의 작은 얼굴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디자이너님의 비서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이가 아프다길래 제가 먼저 보내 드린 거예요.”온다연은 조금
임혜린은 멀지 않은 곳에서 서류를 보는 척하며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는 유강후를 흘깃 보고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온다연의 귀에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몇 마디를 속삭였다.온다연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을 찡그렸고 기분이 상한 듯 보였다.유강후는 그 모습을 보고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해 즉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곧 임혜린의 휴대폰에 낯선 계정으로부터 친구 추가 요청이 들어왔다. 귀여운 곰돌이 그림이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된 계정은 다소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였다.임혜린은 유강후를 힐끗 보더니 코웃음을 치며 휴대폰을 옆으로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계속 온다연과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유강후는 눈살을 찌푸리고 다시 한번 친구 추가 요청을 보냈다.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까지 기재해 뒀지만 곧 [상대방이 친구 추가를 거부했습니다] 라는 메시지를 받았다.유강후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무언가 말하려다가, 임혜린이 자신에게 등을 돌린 채 몰래 중지를 들어 올리는 것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 유강후는 다시 친구 추가 요청을 보내며 새로운 메모를 남겼다.[한이준은 아들이 두 살인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역시나 임혜린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결국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친구 추가 요청을 수락했다.곧바로 유강후가 메시지를 보냈다.[임혜린, 내 아내한테 무슨 말을 한 거야?]임혜린은 코웃음을 치며 바로 답장을 보냈다.[유강후 씨의 아내가 누구죠? 나은별인가요?]유강후는 속으로 임혜린을 몇 번이고 죽이고 싶었지만, 온다연이 있는 자리라 꾹 참았다. 그는 즉석에서 임혜린과 온다연이 대화하는 사진을 찍어 보냈다.[이건 또 무슨 장난이죠?][내 아내 앞에서 한 마디라도 실수하면 이 사진은 곧바로 한이준의 휴대폰으로 전송될 거란걸 알아둬.]임혜린은 바로 반응했다.[그럴 배짱이 있나요?]곧 유강후는 한이준과의 대화 일부를 캡처해 그녀에게 보냈다. 임혜린은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바로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