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는 심호흡을 했다. 속에서 피어오르는 욕구를 억누른 채 잠겨버린 목소리로 말했다.“움직이지 마!”하지만 온다연은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시원함이 너무도 좋았다. 팔을 뻗어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면서 바로 몸을 붙였다.손은 다시 제멋대로 그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뜨거운 몸이 그의 몸에 닿으니 유강후는 마지막 이성의 끈이 끊어져 버렸다.손으로 그녀의 팔을 떼어내면서 바로 안아 올렸다.침대에 앉은 뒤 그녀의 가느다란 다리를 벌려 자신의 허리에 감게 했다.그리고 이어진 그의 거친 키스, 시원한 것을 찾은 그녀의 혀는 바로 그의 혀에 감아왔다.유강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손을 타올 속으로 넣어 그녀의 몸을 더듬었다.보드라운 그녀의 살결을 따라 움직이면서 풍만하고 말랑한 그곳을 움켜쥐었다.어쩌면 그의 몸이 정말로 시원하고 편안했는지 그녀는 또 연약한 소리를 내었다.나른하면서도 유혹적인 그런 소리였다.그의 머릿속엔 저도 모르게 그녀가 황홀한 표정과 목소리가 무한 반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숨소리가 거칠어지고 그녀의 입술을 살짝 깨 무면서 무섭도록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말을 마친 뒤 그대로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시원한 감각을 잃은 그녀는 바로 허공에 손을 휘적이며 안아달라는 행동을 했다.유강후는 단추를 풀면서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다음 순간 그의 몸을 더듬던 그녀의 손은 제압당해 버렸고 커다란 덩치가 그녀의 몸 위로 다가왔다. 그녀는 꼼짝할 수도 없었다.울먹이는 듯한 소리와 애원하는 듯한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순간 분위기를 깨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도련님, 의사를 불러 왔습니다. 방으로 안내할까요, 아니면 거실에서 조금 더 기다리라고 할까요?”유강후의 몸이 멈추었다. 몇 번 심호흡을 한 뒤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전까지 느끼던 흥분이 사라진 것이다.“거실에서 기다리라고 해.”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을 때 흥분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그윽함만 남아 있었다.
빠르게 유강후가 걸어왔다.그는 온다연은 소파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몸이 불덩이였던 온다연은 힘없이 스르륵 넘어가고 있었고 유강후는 다시 그녀를 안아 올리더니 자신의 무릎에 앉혀 기대게 하면서 주성원에게 상태를 보였다.가까이에 있었던지라 주성원은 여자의 목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셔츠 밖으로 나온 다리에도 전부 붉은 자국들로 가득했다.불쌍해 보일 정도로 가녀린 그녀의 손목 또한 무언가에 압박당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것을 보아 힘이 꽤나 들어간 것으로 보였다.게다가 유강후에게 안긴 자세도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있어 그가 거의 품 안에 가두고 있었다.소유욕과 집착이 강해 보는 사람마저 놀랄 정도였다.주성원은 속으로 혀를 찼지만 프로답게 온다연의 맥을 짚어 보았다.그리곤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이렇게 상태가 나쁜 몸은 처음이군요.”유강후도 미간을 구겼다. 눈빛이 한없이 차가워졌다.“무슨 뜻이죠?”주성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닌가 싶어 다시 자세히 온다연의 맥을 짚어 보았다.“지난번에는 충격 한 번으로 마음이 감당하지 못해 고열에 시달리게 되었었죠. 하지만 이번은 아닙니다. 이번은 육체도 병든 겁니다. 진짜로 병에 걸려 몸이 견디지 못해 고열에 시달리게 된 겁니다. 지난번에도 말했다시피 몸이 너무도 허약해 조리가 필요합니다. 제가 처방해준 약은 꼬박꼬박 먹이고 계신 겁니까?”유강후는 대답 대신 표정을 구기고 있었다.집사가 서둘러 대꾸했다.“먹였습니다. 양도 시간도 제때 맞춰서 드렸습니다.”주성원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럼 끼니는요. 혹시 먹기 힘들다거나 아주 적게 먹은 건 아니겠지요?”집사가 답했다.“식사량은 적은 건 맞으나 자주 다른 음식을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총체적으로 보면 정상인의 식사량이었습니다.”주성원이 말했다.“그럼 이럴 수가 없는데요. 지금 이 모습은 병원에서 검진을 받으면 무조건 빈혈과 영양실조 진단을 받을 겁
유강후의 표정만으로도 주성원은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만약 그런 거라면 최대한 마음속의 얘기를 꺼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그는 온다연의 목에 있는 붉은 흔적을 힐끗 보돈 한참 망설이다가 말했다.“이 아가씨의 몸 상태는 아주 나쁩니다. 그러니 도련님께서는 욕구를 참아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 아가씨 몸 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하기 전까지는 절대 임신해서는 안 됩니다. 임신하면 오히려 이 아가씨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유강후는 품에 있는 온다연을 보더니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했다.“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몸이 빠르게 나을 수 있는 보약 같은 거 말이에요.”주성원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있긴 합니다만 약재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요. 그리고 그 약은 너무도 써서 이 아가씨가 먹기 힘들 겁니다.”유강후가 말했다.“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그냥 어떤 약재가 필요한지 전부 적어주세요.”주성원은 고개를 끄덕인 뒤 종이에 필요한 약재를 전부 적어두고 해열제를 가져왔다. 떠나기 전까지 제때 약을 먹여야 한다며 당부도 했다.해열제를 먹인 후 온다연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해가 뜨기 전까지 온다연은 앓는 소리를 내었고 그제야 열이 내려갔다.유강후는 밤을 새웠다. 직접 그녀의 곁을 지키면서 약을 먹인 후 땀에 젖은 옷을 갈아 입혔다.아침이 되자 조금 눈을 붙인 후 점심도 되기 전에 온다연은 다시 열이 나기 시작했다.이번에는 덥다고 하지 않았다. 춥다고 하면서 이불을 잔뜩 끌어다 덮었다.유강후는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 분명 뜨거운 몸이었지만 그녀는 추위를 느끼며 잇몸을 달달 떨고 있었다.난방을 틀어도 소용이 없어 결국 따듯한 온천에 한참 몸을 담그고 나서야 조금 나아졌다.저녁이 되자 그녀는 더는 춥다거나 덥다고 하지 않았다. 침대 위를 뒹굴며 잠을 자려 하지도 않았고 약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유강후가 숟가락으로 약을 떠서 그녀의 입가에 가져다 대도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
온다연은 그 상자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유강후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고마워요, 아저씨.”상자는 아주 컸기에 온다연은 겨우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결국 그녀는 옆에 있던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유강후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직하게 말했다.“어서 열어 봐.”온다연은 예쁜 상자를 보며 다소 의아한 듯 물었다.“오늘 무슨 날이에요? 왜 갑자기 저한테 선물을 주는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일단 열어 봐.”포장이 예쁘고 큰 선물을 처음 받아보는지라 온다연은 상자를 여는 모습도 아주 조심스러웠다. 천천히 리본을 푼 뒤 상자를 열어보았다.예쁜 하얀 상자 안에는 순백의 하얀 장미가 가득했다. 매 한 송이 전부 정성스럽게 손질 한 것이었고 가운데 있는 장미꽃들엔 반짝이는 보석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꽃들 중간에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작은 고양이가 있었다. 그 고양이는 호기심 가득한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온다연은 멍해졌다. 고양이를 보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한참 지나서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유강후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선물 선택이 현명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비록 비슷한 고양이를 찾는 것은 힘들었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았다.유강후는 고양이를 꺼내 그녀의 손바닥 위에 올려주었다.“갓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아이야. 조심히 키워.”온다연은 고양을 조심스럽게 안으면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정말로 선물로 주시는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고작 며칠 사이에 더 홀쭉해진 느낌에 눈빛이 어두워졌다.“내가 말했잖아. 네가 원하는 거 뭐든 전부 주겠다고.”온다연은 고개를 떨군 채 나직하게 말했다.“하지만 전 드릴 것이 없어요.”유강후는 그녀를 안아 올려 의자에 앉힌 뒤 물끄러미 보았다.“네가 나한텐 선물이야.”온다연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작은 머리를 푹 숙인 채 손가락으로 고양이의 작고 분홍빛이 도는 발을 톡
유강후는 손을 뻗어 그녀가 소중히 안고 있던 고양이를 빼냈다. 그러자 그녀는 눈을 번쩍 뜨면서 몸을 일으켰다.“말씀하셨잖아요. 저한테 주는 선물이라고요.”말을 마치자마자 자신의 목소리가 컸다는 것을 눈치챈 그녀는 바로 고개를 푹 숙였다.유강후는 고양이를 집사가 가져온 케이지 안에 넣으면서 말했다.“일단 고양이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 몸이 나아지면 구월이도 좀 커져 있을 거야. 그때 가서 곁에 두고 키워.”온다연은 집사를 보면서 입술을 달싹였다.집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이 고양이는 천 마리의 새끼 고양이 중에서 반나절을 골라 데리고 온 겁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전문가에게 맡겨 문제없이 잘 키우고 있겠습니다.”온다연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유강후는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올려 안방으로 걸어갔다.온다연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면서 멀어져 가는 집사의 뒷모습을 빤히 보았다. 안방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저한테 주는 선물이라면서요.”목소리는 아주 나긋하여 유강후는 방금 들은 고양이 구월이의 울음소리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로 손이 올라갔다.“맞아. 구월이는 네 거야.”온다연은 사실 그가 고양이를 다시 가져갈까 봐 두려웠지만, 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방으로 돌아온 뒤 약을 먹었다. 분명 피곤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유강후 쪽을 보고 있었다.뭔가 할 말이 있는 모습이었다.유강후가 물건을 정리하고 외출하려던 때 그녀는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아저씨!”유강후는 몸을 돌렸다. 속을 알 수 없는 눈길로 그녀를 보았다.“할 말이 있으면 해도 돼. 난 널 잡아먹지 않으니까.”온다연은 입술을 짓이기며 이불을 꽉 잡았다.“구월이 다시 데려가면 안 돼요. 구월이는 이젠 내 고양이란 말이에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다소 긴장한 얼굴로 유강후의 표정을 살폈다.유강후는 부드러워진 눈길과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안 데려가.”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를 보고 있었다
장화연의 목소리는 예전과 다름없이 차가웠다.“하령 아가씨, 도련님께서 외부인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그러자 유하령은 화가 났는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외부인이야? 장화연, 네가 뭔데? 지금 당장 너를 해고할까?”장화연은 침착하게 대답했다.“하령 아가씨, 아가씨는 저를 해고할 수 없습니다. 저는 유씨 가문의 월급도 받지 않고 아가씨가 시키는 걸 할 의무도 없어요. 저는 오직 도련님과 사모님의 명령만 따를 뿐입니다. 아가씨의 말은 저에게 아무 소용이 없어요.”온다연은 창가 쪽으로 걸어가 잘 닫히지 않은 커튼 사이로 묵묵히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유하령은 거실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장화연은 그녀를 잡아끌어 당기며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이런 대우를 처음 받아 본 유하령은 화가 나서 얼굴이 일그러졌다.“네가 뭔데? 내 눈에 넌 그냥 집 지키는 개에 불과해. 호텔은 우리 삼촌 거야. 내가 왜 못 들어가? 오늘 무조건 들어갈 거야. 삼촌이 도대체 어떤 여우 같은 계집애를 숨겼는지 한번 볼 거야.”유하령은 욕을 하면서 장화연의 뺨을 후려쳤다. 장화연은 무덤덤하게 그녀의 손을 잡고 뒤로 잡아당겼다.“아가씨, 말씀을 조심하세요. 저는 우리 집 큰 아가씨가 데려온 사람입니다. 저는 오직 도련님만 모시고 도련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고 있습니다. 도련님이 가기 전에 누구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기에 아가씨도 당연히 안 됩니다. 저는 단지 명령을 따를 뿐이니 서로 난처하게 굴지 맙시다.”유하령은 계단 쪽으로 밀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더니 또다시 장화연을 때리려고 했다.“이 노처녀야! 어쩐지 너를 원하는 남자가 없더라니. 마흔이 넘었는데 시집도 못 가고.”“그만!”유강후는 갑자기 유하령 뒤에 나타났다. 그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유하령은 유강후의 목소리를 듣자 갑자기 표정을 바꾸더니 억울한 척 울먹이며 돌아서서 유강후의 팔을 껴안았다.“삼촌, 장 집사가 저는 외부인이라고 들어가지 말라고 했어요.”유강후는 어
두 걸음 뛰자마자 장화연은 유하령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유강후는 차갑게 유하령을 쳐다보며 경고했다.“하령아, 내가 말했지. 넌 내 일에 관여할 자격이 없다고. 그러니 당장 장 집사에게 사과해.”“싫어요!”유하령은 화가 나서 몸을 떨며 사과를 거부했다. 그녀의 기억에 유강후는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예뻐했고 모든 부탁을 다 들어주고 설령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그녀를 벌한 적 없는 착한 삼촌이었다. 하지만 오늘 방에도 못 들어오게 하고 심지어 하인에게 사과하라고 하다니.유하령은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이다.“사과해!”유강후는 더 차갑게 유하령을 쳐다봤고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하령아, 왜 이렇게 점점 버릇이 없어. 자성 형이 예의를 배워 줄 선생님을 구해주지 않았어?”손목의 통증을 느낀 유하령은 몸부림치면서 울었다.“삼촌, 왜 겁을 줘요. 하인 때문에 지금 나를 때린 거예요?”“닥쳐! 하인? 넌 그저 가족을 등에 업고 날뛰고 있는 것뿐이야. 이러다가는 조만간 유씨 가문에 큰 화를 일으킬 거야.”유강후는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손을 뒤로 젖히자 유하령은 순식간에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예뻐해 주던 삼촌이 이렇게 행동하자 믿기지 않아 두 눈을 부릅뜨고 유강후를 바라보았다.그리고 갑자기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방을 쳐다봤다.“전에는 이러지 않았어요. 이게 다 저 여자 때문이죠? 누군데요? 혹시 저 여자가 제 험담을 했어요? 그래서 저를 이렇게 대하는 거예요? 삼촌!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내연녀를...”“여봐라! 얘를 끌어내!”유강후는 유하령의 말을 자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사람을 불렀다.그러자 곧 경호원이 밖에서 뛰어 들어와 유하령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유강후가 이렇게까지 나오자 유하령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경호원의 손을 뿌리치고 책상 쪽으로 달려가 책상 위에 있던 모든 물건을 모두 바닥에 쓰러뜨렸다.그중에는 고양이가 자고 있는 바구니도 포함되었다.고양이는
유하령은 유강후를 잘 알고 있다. 유강후는 어려서부터 냉정하고 누구한테도 다정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과 친하지도 않았던 그가 여자를 달래다니. 유하령은 유강후가 그 여자한테 단단히 홀렸다고 생각했다.총애를 잃을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유하령은 다시 문을 두드리려고 했지만 두 경호원은 그녀를 호텔에서 끌고 나왔다.온다연은 바닥에 있는 고양이를 주워 안았다. 새끼 고양이는 너무 어렸고 넘어져서 아픈지 계속 야옹거리며 울었다.온다연은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고양이를 안고 묻은 먼지를 깨끗이 닦아낸 후 다시 바구니에 넣었다. 하지만 놓자마자 고양이는 다시 넘어지면서 더 크게 울었댔다.온다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양이를 안고 다시 한번 검사했다. 그리고 오른쪽 뒷다리가 좀 이상한 것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리에는 힘이 전혀 없었고 온다연이 살짝 다치기만 해도 고양이는 처량하게 울었다.그녀는 이내 고양이의 다리가 부러졌다고 판단하였다. 너무 슬픈 나머지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온다연은 아무 말도 없이 유강후를 바라보았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고 손을 뻗어 그녀를 품으로 끌어당긴 후 고양이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온다연은 고양이를 자기 뒤로 숨기며 경계했다. 유강후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갑자기 사나워졌다.몹시 화가 난 것처럼 말이다.유강후는 눈살을 찌푸리고 싸늘하게 물었다.“혹시 나를 탓하는 거야?”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강후를 싸늘하게 쳐다봤다. 평소 나긋나긋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두 사람 모두 말수가 적은 편이라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마주 보자 분위기는 너무 싸늘했다.특히 유강후의 눈빛은 어둡고 차가웠다. 턱선마저 팽팽해지면서 이를 가는 것 같았다. 이것은 그가 곧 화를 낼 거라는 징조이다.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장화연은 입을 열었다.“다연 씨, 고양이가 다쳤나 봐요. 이렇게 작은 고양이는 전문 의사에게 맡겨야 해요.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염지훈이 수도관을 고치고 욕실에서 나올 때쯤 바이크 슈트를 입은 사람 몇 명이 들어왔다.“유강후 그 사람 정말 미쳤습니다. 경원의 중요한 교차로마다 검사대를 설치했다니까요? 바이크를 탄 사람은 전부 다 면허증을 제공해야 된대요. 우리를 잡으려고 눈이 완전히 뒤집힌 모양이에요.”염지훈은 젖은 옷을 벗어 소파에 내팽개치더니 캐주얼한 옷으로 갈아입었다.“찾으라고 해. 어차피 타 지역 번호판이랑 면허증이라서 못 찾을 거야.”곧이어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하지만 정체가 이미 탄로된 것 같습니다. 유강후가 알아챈 게 틀림없어요. 지호 형님이 저한테 연락이 왔더라고요.”염지훈은 대수롭지 않은 듯 콧방귀를 뀌었다.“여신 그룹 지분은 이미 진작에 포기했어. 이제 염씨 가문이랑 엮인 게 없으니까 어차피 형이 날 찾아도 달라질 건 없어.”“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유강후는 워낙 경원에서 세력이 큰 사람이잖아요. 저희가 아직 맞서 싸울만한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아직 서른도 안 됐는데 어떻게 저 자리까지 올라갔을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경원에서 그나마 이름을 알린 가문이라면 다 유강후의 투자를 받으려고 목을 매지 않습니까. 돈과 권력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유강후한테 굽신거리니 참...”“심지어 잘나가는 기업에는 무조건 유강후의 지분이 있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유강후를 따라서 투자한다잖아요. 참 빈틈이 없네요.”염지훈은 여전히 신경 쓰지 않았다.“금융 천재? 능력이 좋으면 뭐 해. 온다연은 아직도 벗어나려고 도망치고 있잖아. 유강후는 온다연을 소중히 여길 줄 몰라. 그러니까 애초에 가질 자격이 없는 인간이야.”남자는 온다연이 있는 방을 힐끔 쳐다봤다.“아직 식사 안 하셨죠? 저희도 배고파서 밖에 바비큐 그릴을 설치하는 중인데, 나중에 내려와서 좀 드세요.”그 말을 끝으로 하나둘씩 밖으로 나갔다.염지훈은 소파에 잠시 앉아 있다가 여러 차례 통화를 마치고 온다연이
염지훈을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나중에 개발하려고 여기 동네를 내가 다 샀어. 지금은 내 구역이니까 당분간 안전해.”“그런데 나도 여기 온 지 꽤 되어서 준비한 게 아무것도 없어. 오늘 밤만 버티고 내일은 다른 곳으로 가자.”염지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주머니 하나를 건네주며 부드럽게 말했다.“얼른 가서 씻어. 온몸이 흙투성이네.”보아하니 이곳은 정말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고 욕실도 임시로 청소한 듯 남루하기 그지없었다.낡은 인테리어에 바디워시와 기타 생활용품도 급하게 구입한 듯 모두 익숙한 브랜드였다.친근한 느낌이 밀려온 온다연은 자취방에서 살았던 날들이 떠올랐다.비록 그 시절에는 돈이 없었지만 오히려 지금보다는 마음이 편했다.온다연은 추억 여행을 마치고 온수기를 켰다.어찌나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온수기의 수도관이 터져 온몸에 뜨거운 물이 튀었다.그 소리를 들은 염지훈은 부랴부랴 달려와 문을 두드렸다.“왜 그래?”삐걱거리던 낡은 문은 염지훈의 힘센 주먹질에 저절로 열렸다.문이 열리자 홀딱 젖은 채로 욕실에 서 있는 온다연이 보였는데 얇은 옷이 물에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날렵한 각선미, 잘록한 허리, 늘씬한 다리가 더해진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워낙 얇고 부드러운 소재의 옷이라 젖으면서 반투명해졌고 보일듯말듯한 하얀 피부는 매혹적이었다.어안이 벙벙해진 염지훈은 이내 고개를 휙 돌렸다.온다연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기에 재빨리 타올로 몸을 감쌌다.온수기가 터질 줄도 몰랐지만 문이 이렇게 쉽게 열릴 줄은 더더욱 몰랐다.“미안해요. 저도 갑자기 터질 줄은 몰랐어요.”염지훈은 태연하게 답했다.“너무 오래돼서 그런가 봐. 밖에 나가 있어. 내가 할게.”온다연은 민망함을 무릅쓰고 타올을 몸에 걸린 채 재빠르게 나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염지훈도 온몸이 홀딱 젖은 채로 욕실에서 나왔다.그는 방에서 공구함을 챙겨 안으로 들어가더니 수도관을 고치기 시작했다.온다연은 명문가 도련님이 이런 일을 하
빛의 속도로 할리데이비슨 바이크가 질주해 왔다.바닥에 있던 낙엽과 먼지는 사방으로 흩날렸고 그들은 조금도 물러설 의사가 없는 듯 유강후와 경호원을 향해 돌진했다.특히 선두에 선 사람은 검은색의 바이크 슈트를 입고 있었는데 강풍에 부풀어 올라 왠지 모를 공포감을 조성했다.경호원들은 유강후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나섰다.정말 순식간에 바이크가 다가왔고 온다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이크를 향해 돌진했다.유강후도 표정이 돌변했다.“빨리 잡아.”하지만 이미 늦었다. 선두에 선 남자는 재빨리 달려와 한 손으로 온다연을 붙잡고 끌어당기며 바이크에 앉혔다.곧이어 바이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급커브를 돌며 방향을 틀었다.속도가 워낙 빠른 탓에 경호원이 돌진했을 땐 이미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유강후는 주저 없이 차에 올라탔다.유턴하고 액셀을 밟은 차는 쏜살같이 치고 나갔다.염지훈은 돌진해 오는 제네시스를 돌아보고선 동료가 던진 헬멧을 잡아 온다연에게 넘겼다.“이거 쓰고 날 꽉 잡아.”바이크가 처음이었던 온다연은 모든 게 낯설고 경험이 없었기에 염지훈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고삐 풀린 야생마가 질주하듯 바이크는 멈출 줄 몰랐고 순식간에 제네시스를 한참이나 따돌렸다.유강후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경호원이 건네준 총을 잡고 총구를 바이크에 겨눴다.두 차례의 굉음과 함께 바이크 한 대가 펑크나면서 날카로운 소리를 냈고 90도 급선회한 뒤 옆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뒤를 돌아온 온다연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어떡해요. 타이어를 맞았나 봐요.”염지훈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큰 소리로 말했다.“신경 쓰지 마. 알아서 잘할 거야. 속도 올릴거니까 꽉 잡아.”거센 바람 소리를 더불어 바이크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이내 제네시스는 시야에서 사라졌다.아무도 쫓아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바이크는 오래된 단지로 들어갔다.염지훈은 바이크에서 내리며 여유롭게 온다연을 바라봤다.“놀라서 운 건 아니지?”온다연은 헬멧을
헤드라이트다.익숙한 차의 헤드라이트!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를 보니 유강후의 제네시스가 틀림없다.소스라치게 놀란 온다연은 재빨리 등을 돌려 옆 광고판에 몸을 찰싹 붙였다.때마침 제네시스 한 대가 그녀의 뒤쪽에 있는 도로를 쏜살같이 지나갔다.온다연은 행여나 유강후에게 들킬까 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그래서 차가 멀리 가기도 전에 발을 빼며 도망쳤다.그런데 이때 차에 있던 이권이 길가에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차 속도가 워낙 빨라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낯익은 듯한 그림자가 순식간에 스쳐지났다.“밤길에 사람이 거의 없는 곳인데 웬 여자가 돌아다니고 있네요.”이권의 백미러에는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비쳤고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듯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저 사람... 다연 씨 아니에요?”유강후의 표정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차 돌려. 얼른 따라가.”그 시각 활짝 열린 별장에서 경호원 7,8 명이 달려왔다.유강후의 차를 본 그들은 죄책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대표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한눈판 틈을 타 사모님이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렸습니다.”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호통쳤다.“쓸모없는 것들. 이런 일도 제대로 못 해? 얼른 쫓아가지 않고 뭐 하는 거야.”경호원 몇 명이 서둘러 쫓아갔다.그 시각 온다연은 여전히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불과 몇 분 만에 차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강에 가까워지자 온다연은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러자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는 경호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그들의 뒤에 있는 건 유강후의 제네시스였다.다리를 지나 강 건너편으로 넘어가 차에 오르기까지 적어도 10분은 걸린다.그러나 유강후는 불과 200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다.절망이 밀물처럼 밀려들었고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질식감이 온몸을 뒤덮였다.도망칠 당시 슬리퍼 한 켤레만 신고 있었는데 그것마저도 벗겨져 맨발인 상태였다.하얗고 부드러운 한 쌍의 발은 어느새 잔뜩 닳아 핏자
전부 임정아에 관한 기사였다.온다연은 재빨리 연예계 카테고리를 눌렀고 순식간에 임정아에 관한 기사가 쏟아져나왔다.[대세 여배우 임정아, 영화 오디션 탈락이라니?][임정아, 앰버서더에서 물러나다? L사와 B사에서 돌연 계약 해지한 이유는?][드라마 대박 난 임정아, 정말 촬영장에서 텃세 부리며 조연을 괴롭혔나? 여주인공 전격 교체?][유명 여배우 임정아가 열애설에 휩싸인 내연녀라는 목격자의 증언이 잇달아...][사실 임씨 가문의 딸이 아니다? 임정아의 신분은...][임정아, 그동안 숨겨왔던 추악한 면모가 드러나자 팬들도 등을 돌려...]...기사를 본 온다연은 손발이 차가워졌다.임정아는 집안 배경이 탄탄하고 스스로 프로듀서와 감독할 만큼 능력이 뛰어났기에 아무리 구설수에 휩싸인다 한들 이렇게 한순간에 나락가지는 않을 것이다.이렇게 하루아침에 무너진 이유는 단 하나,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에게 미움을 샀기 때문이다.온다연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유강후뿐이었다.유선전화기로 걸어간 온다연은 유강후에게 왜 그랬는지 따지고 싶었지만 수화기를 들자마자 다시 내려놓았다. 왜냐하면 유강후와의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니까.한참을 생각한 그녀는 부엌으로 들어갔다.그곳에는 저녁 식사 재료를 준비하는 도우미 여러 명이 있었다.온다연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모두들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멀지 않은 테이블 위에 핸드폰 여러 대가 놓여있는 걸 발견한 온다연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메뉴가 뭔지 궁금해서 온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할 일 하세요.”잠시 후, 부엌에서 나온 온다연의 손에는 핸드폰 하나가 들려있었다.다행히 비밀번호가 설정되어 있지 않았다.온다연은 재빨리 방으로 돌아가 임정아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온다연의 전화를 받은 임정아는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가득 담겨있었다.그녀의 말투에서는 유강후에 대한 원망이 느껴졌다.온다연은 이 일이 자신 때문에 일어난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직접 끝내고 싶었다.그러
온다연의 말투는 한없이 싸늘했다.“그래요? 전 그냥 감시 같은데요? 사람을 가두고 내보내지 않는 게 사랑이라면 차라리 큰 새장을 만들어서 언제든지 옮기며 곁에 두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요? 항상 감시할 수 있잖아요.”집사는 발끈한 온다연의 모습을 보고선 감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온다연은 유강후가 무슨 말을 하든 개의치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만 골라서 먹었다.유강후 쪽에서 점심이 배달되었다.매우 단출한 식사여서 그런지 지금 온다연이 먹고 있는 음식과 매우 대비되었다.예전이라면 가슴이 미어졌을 텐데 이제는 그를 쳐다보고 싶은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그들 사이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가로막혔고 이제는 돌이킬 방법이 남아있지 않았다.유씨 가문, 아이, 나은별, 바깥의 여자들까지 모두 넘을 수 없는 큰 장벽이다. 유강후가 이유를 대며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 한들 깨진 그릇을 다시 붙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온준휘의 죽음과 허한의 부러진 손은 깨진 그릇을 붙이려는 희망마저 잃게 만들었다.게다가 유강후는 온다연의 기분과 생각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유강후의 강요로부터 시작된 관계는 유강후로 인해 끝나게 되었다.물론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그동안 받은 상처를 회복하기에는 쉽지 않다.겉모습이 아무리 좋아도 천성적으로 악한 사람은 강탈과 협박에 익숙해져 있다.온다연은 유강후가 그런 사람일 거라는 의심이 들었다.어쩌면 연민의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모를 수도 있다.이제는 모든 걸 끝내야만 한다.식사를 마친 온다연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곧바로 유강후의 목소리가 들려왓다.“오후에 붙임머리 해주는 사람이 올 거야. 말 잘 들어.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네가 예전의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온다연은 사방에서 옥죄는 느낌에 숨이 턱턱 막혔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차가운 어조로 답했다.“내 머리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거네요? 우리 사이에 더 이상 희망이란 없잖아요. 제발 강후 씨에 대한 좋은 기억 좀 남겨줄 수는 없어요?”유강
집사는 솔직하게 답했다.“대표님께서 핸드폰은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통화하려면 거실에 있는 유선전화기로 하면 됩니다.”역시나 예상대로다.온다연의 숨을 들이쉬며 마음속의 분노를 억눌렀다.“강후 씨는요?”집사는 정중하게 말했다.“대표님은 급한 일이 있으셔서 아침 일찍 회사로 나가셨습니다. 저녁쯤에 돌아온다고 하셨고 보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연락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이 별장 안에서는 사모님이 하고 싶으신 대로 자유롭게 행동해도 됩니다. 아참, 그림 그리고 싶으시면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도구는 준비되었으니 원하시면 바로 화실을 정리하겠습니다.”“괜찮아요.”누가 봐도 감금하는 상황인데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았으니 어이가 없었다.‘이딴 것도 자유라고 하는 거야? 지하실에 갇혀있어야 감금이라고 생각하나 보네.’“컴퓨터는 있어요?”온다연의 질문에 집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했다.“대표님 서재에 있기는 한데 다만...”“다만 뭐요?”온다연의 집사의 말을 잘랐다.“인터넷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하던가요?”집사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그건 아닙니다.”집사는 이곳에 온 지 하루 만에 온다연이 유강후의 목숨과도 같은 존재라는 걸 눈치챘다.말은 감시라고 했지만 오늘 아침 회사로 가기 전 유강후는 아주 작은 세부 사항까지 명확하게 지시하며 신신당부했다.회사에 급한 일이 없었다면 하루 종일 곁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기세였다.유강후는 별장을 나설 때 핸드폰을 사용하면 안 되고 외부와 연락을 하면 안 된다고만 지시했지, 컴퓨터를 사용하지 말라고 강조하지는 않았다.게다가 온다연이 컴퓨터를 사용할 때 옆에서 어떤 걸 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한참을 생각하다가 답했다.“외부와 연락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는 없었으니 다른 도우미분들에게 서재에서 뭘 하려는 건지 말씀 안 하신다면 별일 없을 것 같습니다.”말을 마친 집사는 고개를 들어 온다연을 바라봤다.표정이 전보다 조금 풀린 듯한
집사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사실 이곳으로 오기 전 유강후와 온다연의 부부관계가 매우 좋으니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고 있을 땐 눈치껏 행동하며 함부로 방해하지 말라고 교육을 받았다.그런데 오자마자 온다연의 몸에 키스마크가 가득한 걸 보게 되었으니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하지만 아무리 좋아한들 피부가 찢겨질 정도로 물어뜯는 건 지나친 행동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잠깐 생각에 잠겼을 뿐인데 곧바로 유강후의 싸늘한 시선을 받았다.“이 집에서 나가지 못하게 잘 감시해. 실수하면 바로 해고야.”집사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알겠습니다. 대표님.”‘분명히 사이가 좋다고 했는데 왜 감시하라는 거지?’유강후는 말을 이었다.“음식은 장 집사가 만든 식단표에 맞춰서 하면 돼. 그리고 지금 당장 조치해서 경호원이랑 도우미를 세 배로 늘려.”“알겠습니다. 대표님.”유강후는 온다연은 안고 방으로 데려가 침대에 눕혔다.반쯤 풀린 타올 사이로 그녀의 하얗고 여린 몸이 반쯤 드러났다.단지 쳐다보기만 해도 유강후는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혹시나 열이 나는건가 싶어 온다연의 체온을 재 보았지만 열은 없었다.그런데 웬일인지 평소보다 체온이 높았고 그 덕분에 유강후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게다가 흥분했음에도 불구하고 꾹 참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괴롭히고 싶은 욕망을 최대로 끌어올려 유강후를 미치게 만들었다.이런 생각을 하자 유강후도 몸이 뜨거워져 참을 수가 없었다.그는 온다연의 타올을 벗기고선 건장한 몸으로 순식간에 덮쳤다.날을 이미 어두워졌지만 그들의 밤은 이제 시작이었다.다음날, 온다연이 잠에서 깼을 때는 이미 점심이었다.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찾던 온다연은 그제야 핸드폰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몸은 이곳저곳 쑤셨고 동시에 광란의 밤이 떠올랐다.처음에는 참을만했다. 유강후가 여보라는 호칭을 듣고 싶어 일부러 유인할 때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약기운이 점점 세졌다. 게다가 유강후는 그녀의 예민한 곳을 잘 알고 있었기
그러나 온다연이 입구에 다다르기도 전에 문이 쾅 닫혔다.문이 닫히는 둔탁한 소리는 온다연의 유일한 희망마저 닫아버렸다.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렸지만 밖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개를 돌린 온다연은 자신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오는 유강후를 보게 되었다.그녀는 겁에 질린 채 벽 모퉁이에 숨더니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마치 시간이 처음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유강후가 막 귀국했을 때 온다연은 지금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향기를 맡아도 숨이 막힐 정도였으니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이제는 괜찮겠지 싶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두려움은 마치 처음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일지도 모른다.만약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온다연은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멀리 도망칠 것이다.하지만 이 세상에 시간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어느새 유강후는 그녀의 앞에 도착했다.그는 온다연을 번쩍 안아 올려 다시 의사에 앉혔고 온다연도 더 이상 반항하지 않았다.그녀는 주삿바늘이 자신의 피부를 찌르는 것 지켜보며 차가운 액체가 몸속으로 들어가는 걸 느꼈다.아프거나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를 씁쓸함이 밀려왔다.눈앞의 이 남자는 그녀에게 희망을 주고 또 절망을 주었다.남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본인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게 어쩌면 더 현명할 방법일지도 모른다.유강후가 스스로 두 사람의 관계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으니 온다연도 마음을 독하게 먹을 수밖에 없다.안정제를 투여한 그녀는 곧바로 진정되었으나 두 눈은 초점이 없었고 공허함만 가득했다.유강후는 기운이 빠진 그녀를 바라보며 마음이 심란해졌다.예전처럼 순해졌지만 그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알 수 없는 착잡한 기분을 뒤로하고 곧바로 이성을 되찾아 정신을 차렸다.이제부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온다연의 곁을 지키리라 마음먹었다.그녀에게 나쁜 물에 물들인 임정아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아직 고민 중이다.시술은 순식간에 끝났다.입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