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국제선 비행기 한 대가 한성 국제공항에 착륙했다.몇몇 제자들이 몰려든 가운데 구양지가 공항을 빠져나오고, 마중 나온 우영민은 들고 있던 피켓을 힘차게 흔들며 빠른 걸음으로 구양지를 향해 달려갔다.“대사님, 드디어 오셨군요, 민군 형이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요.”우영민이 얼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구양지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배와 차의 피로가 구양지를 약간 피곤하게 했다.“일단 병원에 가보자. 민군이 지금 어떻게 됐어?”“첫 수술은 했고, 회복된 후에 휠체어에 앉아야 합니다. 이쪽 선생님 말로는 무릎관절을 바꾼 수술을 한 다음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하지만 격렬한 운동은 할 수 없다고 하네요.”우영민은 권민군의 병세를 이야기했다. 구양지는 이를 듣고 더욱 안색이 나빠졌다.“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구양지가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말하자면 제 탓입니다, 제가 좋은 별장 하나를 마련해 드렸는데 제 조카가 갑자기 사람을 데리고 가서 굳이 그 별장을 얻으려고 하니 충돌이 일어난 것 아닙니까, 민군 형은 성질이 급해서 그 자리에서 상대방과 싸웠다가 한 주먹에 무릎이 부러진 거예요.”“한 주먹이라고?”구양지가 의아해하며 말했다.구양지를 10년 넘게 따라다닌 오랜 제자로서 권민군 실력이 어떤지는 누구보다 구양지가 잘 알고 있었다.구양지가 보기에 권민군의 능력은 세계 최고는 아니더라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한 번에 무릎이 부러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이강현이라는 그 자식 정말 주먹 한 번만 날렸습니다. 우리 다 그 자리에서 보고 있었어요.”구양지가 미간이 찌푸려졌다.우영민은 구양지가 생각에 잠기는 것을 보고 묵묵히 앞장서서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일행은 차에 올라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구양지가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권민군의 구슬픈 울부짖음이 들렸다.“사부님! 꼭 복수해주세요.”“복수해 줄 테니 무슨 일인지 먼저 말해 봐. 그 자식 어떻게 한 번 만에 네 무릎을 부러뜨렸어?”구양지의 마음은 의심으로 가
우지민이 약간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강현의 실력을 몇 번이나 목격하고 우지민의 마음속에서 이강현은 이미 세계무적 같은 존재이다.‘그렇게 대단한 브루스도 사부님 발에 맞아 죽었잖아.’오늘 밤 경기가 끝나면 이강현은 세계 킥복싱 대회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계 종합 챔피언이 될 것이다.“무슨 결판을 내려, 민군 형 사부님이 이강현이랑 얘기해 보겠다고 해, 그러니까 지금 와, 구양지 선생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우지민은 망설였다.“이 일 제가 정할 수 없고, 전해줄 수는 있어요, 근데 갈 건지는 사부님 의견에 따를 겁니다.”“안 돼, 꼭 와야 해, 30분 줄게, 30분에 도착 안 하면 후회할 줄 알아!”우영민은 말하고 나서 화내며 전화를 끊었다.우지민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문을 밀고 이강현을 찾아갔다.고운란의 사무실에 도착한 우지민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사부님, 숙부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다리를 부러뜨린 그 분의 사부님이 도착하셔서 병원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는데 어떻게 하실 건가요?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아, 병원에 갈 시간 없어, 얘기하려면 이쪽으로 오라고 해, 회사 앞 식당에서 얘기하자.”이강현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말했다.“네, 그럼 제가 숙부님한테 전화할게요.”우지민이 핸드폰을 가지고 우영민에게 전화했다.고운란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별일 없지? 상대 세력이 센 거야?”“세긴 뭘 세, 그저 늙은 사기꾼일 뿐이야, 인터넷에 검색해 봐, 최근에 멍 맞은 태극대사처럼 모두 속임수로 먹고 사는 거야.”이강현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몇 마디 내뱉고 고운란의 마음을 달랬다.구윈란은 머뭇거리다가 이강현의 말을 믿기로 했다.“사기꾼이든 아니든 조심해,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돼, 지금 사람들은 왠지 사납단 말이야, 무슨 극단적인 일을 할까 봐 두려워.”“괜찮아, 아무리 어째도 날 해칠 수는 없어.”이강현이 웃으며 말했다.고운란은 눈을 부릅뜨고 이강현에게 물었다.“진효영 그 계집애 어
“누가 네 물건을 훔치려 한다고? 이게 무슨 일이야.”구윈란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사진을 찍고 있던 진효영은 가볍게 혀를 내밀었다. 도둑질을 하려던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만약 이강현이 이 사실을 말한다면 고운란은 어떻게 생각할까? 바로 내쫓는 거 아니야?’진효영은 순간 안절부절못하며 용서를 비는 눈빛으로 이강현을 바라보았다.이강현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웃었다.“누가 지난번에 장인어른 생신 축하 선물로 드린 옥용벽을 훔치려고 하는가 봐, 그래서 가짜를 보내려고 궁리했지.”고운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아, 그래, 근데 그 도둑이랑 효영사이에…….”진효영을 보고 구윈란은 뒷말을 하지 않았다.진효영의 신분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고운란이 진효영을 집으로 데려온 이유는 진효영이 무슨 꿍꿍인지 가까이에서 지켜보기 위한 것이다.그런데 지금 진효영이 자신의 코앞에서 이강현과 비밀을 갖게 되어 고운란의 질투를 끌어냈다.진효영은 마음이 심란하였다. 뇌가 죽은 듯 평소 약삭빠르게 굴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냥 멍하니 눈앞의 옥용벽을 보면서 감히 머리를 들 수가 없었다.이강현은 고운란에게 눈짓을 하고는 웃으며 말했다.“정중천이 상황을 말해준 뒤 진효영과 우지민에게 접촉을 부탁했는데 마침 연락이 닿았어.”이강현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강현의 눈빛이 전하는 뜻에 고운란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아, 그래, 너 참 겁도 없어, 어떻게 이런 일 시켜, 들통이 나면 어쩌려고.”고운란은 원망하듯 말했다.이강현은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고운란을 껴안고 듣기 좋은 말을 몇 마디 하여 고운란의 마음속의 질투심을 달래 주었다.진효영은 마침내 정상으로 돌아와 꼼꼼하게 사진을 찍은 후 사진을 권무영에게 보냈다.진효영의 소식을 기다리던 권무영은 핸드폰 진동 소리를 듣고 책상 위의 핸드폰을 바로 가져갔다.핸드폰을 열어보니 진효영이 보낸 사진이 보였다. 권무영은 이내 호흡을 가다듬고 사진을 확대해 자세히 보기
황후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권무영은 침대 앞으로 다가가 핸드폰을 두 손에 들고 황후에게 건넸다. 황후는 권무영의 핸드폰을 집어 들고 옥용벽 사진을 자세히 보았다.잠시 후, 황후는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렸다.“그럴듯한데, 진짜인지 우리도 모르니 그냥 먼저 가져와.”“네, 그럼 진효영에게 직접 물건을 가져오라고 할게요.”“바보야? 이것 때문에 진효영이 폭로되면 어떻게 해, 아니면 네가 진효영을 보고 싶어 오라고 한 거야?”황후의 말투는 좀 음산하였다.권무영은 온몸을 오싹해지더니 부들부들 떨며 황송한 표정으로 말했다.“절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절 믿으셔야 해요, 잠시 머리가 돌지 않아서 그렇게 말한 겁니다. 지금 바로 사람을 시켜 물건을 훔쳐오겠습니다.”“허허, 알았으면 됐어, 일 똑바로 해, 또 일을 망치면 나도 옛정 봐주지 않을 거야.”“네, 잘 처리하겠습니다. 안심하세요.”황후가 나른하게 손을 흔들었다. 권무영은 몸을 사리고 물러났다.황후의 방을 나선 권무영은 천천히 허리를 펴고,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쥔 채 힘껏 흔들며 불만을 터뜨렸다.“언젠가, 반드시…….”말이 끝나기도 전에 권무영은 경계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은 일단 조용하게 있어야 했다.응접실로 들어간 다음 권무영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유노적을 불러와.”“네.”권무영도 한 무리 부하들을 키웠는데 평소에는 할 일이 없고 필요할 때만 이자들을 불렀다.유노적은 오랜 세월 떠돌아다니며 도둑질을 했지만, 한 번도 잡히지 않아 도둑들 사이에서 유명한 도둑의 왕이 되었다.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온라인 결제가 보편화되면서 지갑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줄어들어 유노적의 생업도 어려워졌다.그리하여 권무영이 손을 내밀자 유노적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권무영에게 귀순해 권무영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곧 깡마른 체격에 약간 노루 같은 눈초리를 가진 유노적이 종종걸음으로 응접실에 들어섰다.“분부가 있으십니까?”“그래, 진효영 쪽에서 물건을 하나 찾았는데 꺼내기가 불편해서
우영민이 화내며 전화를 거두었다.우지민이 방금 이강현이 병원에 오지 않겠다는 소식과 구양지보고 직접 이강현을 만나러 가라는 소식을 우영민에게 전했다. 이 소식을 들은 강연간은 이강현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병실에 들어선 후 구양지의 눈빛도 따라 우영민을 쳐다보았다.우영민은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이강현이 오지 않겠다고 합니다. 만나고 싶으면 직접 오라고 하네요.”구양지의 제자들도 모두 분노하여 이강현을 호되게 꾸짖었다.“이 자식 무슨 배짱으로 사부님을 오라 가라 하는 거야!”“감이 이런 말을 해? 사부님, 제가 가서 혼내 주겠습니다!”“맞아, 아니면 사부님 체면이 아니잖아.”소매를 걷어 올리고 손찌검하려는 제자들을 보며 구양지는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두 번 지었다.“좀 진정해, 너희들 중 민군이보다 실력 좋은 사람 있어?”제자들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였다.권민군은 비록 구양지 첫 번째 제자는 아니나 그자와 실력차이가 거이 없고, 기본적으로 같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이런 권민군도 이강현의 적수 아닌데 나머지 제자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권민군은 두 손에 주먹을 쥐고 병상을 세게 내리쳤다.“이 망할 놈의 이강현, 도대체 정체가 뭐야?”“다들 조급해 하지 마, 찾아오라고 했으니 가보면 돼.”구양지는 속으로 불만을 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이강현의 정체를 확실히 알기 전에 구양지는 무모한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만약 이강현 혼자라면 구양지는 어떻게든 이강현을 죽일 것이다.구양지는 이강현에게 스승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만약 잘못 건드렸다가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없게 될까 봐 걱정하였다.그래서 우유부단하였다.“사부님, 배권 한세영도 현지에 있으니 한세영을 불러 이강현을 처리하세요.”권민군도 구양지의 걱정을 짐작하고 조언을 해주었다.구양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차 대기해, 한세영부터 만나봐야겠어.”우영민 등은 즉시 구양지를 둘러싸고 병실을 나갔다. 그리고 차를
한창 앉아서 마음을 다스리고 있던 한세영은 제자의 발소리에 놀라 다소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뭘 그렇게 놀래? 하늘이 무너졌어?”“하늘이 무너진 게 아니라 구양지 대사님이 오셨습니다.”“뭐? 외국에서 무술을 배우주고 제자들을 많이 받으셨다는 그 구양지 말이야?”한세영은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네, 그 분입니다. 사부님 만나러 왔는데 악의는 보이지 않았습니다.”“어서 가자.”한세영은 옷을 가다듬고 제자를 데리고 방을 나와 곧장 앞마당으로 향했다.앞마당에 이르러 의자에 앉아 있던 구양지를 보자 한세영은 황급히 인사하며 말했다.“구양지 대사님께서 오셨는데 제가 마중을 나가지 못했네요.”“하하하, 뭘 그런 말씀을, 갑자기 찾아온 제 잘못인데요.”구양지도 한세영에게 인사를 하였다.“이젠 한성에 돌아오신 겁니까?”한세영은 궁금한 듯 물었다.“그럴려고요, 근데 오늘 찾아온 건 이것과 무관한 일입니다. 사람 하나를 알아보려고요.”“네?”한세영은 의아해하며 웃었다.“그 사람 한성에 있나요? 그럼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한성 사람인데 고씨 집안의 사위 이강현이라고 합니다. 혹시 들어보셨나요?” 한세영의 얼굴에 웃음이 갑자기 굳어졌다.이강현의 이름은 한세영에게 트라우마 같은 존재이다. 이강현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느낌이었다. 구양지는 한세영이 못마땅한 표정을 눈치채고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이 사람을 알고 있는 모양이네요.”“하하.”한세영은 헛웃음을 지었다.“당연히 알죠, 이강현은 2년 동안 한성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무능한 자로 꽤 유명했거든요, 근데…….”“근데 뭐죠? 그냥 말해주세요.”구양지가 직설적으로 물었다.“근데 헛소문이예요, 아니면 이강현 그자의 속임수라고도 할 수 있죠, 체면을 깎이는 일이지만 저 방금 이강현 손에 크게 당하고 물려받은 처방까지 내놓아서야 일을 해결했어요.”체면을 구긴 일이지만 한세영은 숨길 생각이 없었다. 정말 체면치레로 일을 숨기면 구양지가 자신
“힘든 부탁이면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체면이 깎이지만 저도 솔직하게 말한 이유가 이강현의 일에 참견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한세영의 직설적인 거절은 구양지의 체면을 구겼다.“무술을 배우는 동지 입장에서 서로 보살펴야 하는 게 아닙니까? 너무 칼같이 거절하시네요.”“죄송하지만 제가 겪어보아서 참견하고 싶지 않아요, 제 말 믿으시면 이강현한테 용서를 비는 게 나을 거예요, 체면이고 뭐고 목숨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에요.”한세영은 구양지가 알아주길 바랐다.속으로 몹시 화가 난 구양지는 콧방귀를 뀌며 일어섰다.“그렇다면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앞으로 만나게 될 그날 제가 그쪽 명성을 더럽혔다고 탓하지 마세요.”“하하하, 전 그런 거 없습니다. 마음대로 하세요.”한세영은 구양지 말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어쩔 수 없는 구양지는 제자들을 데리고 그곳을 떠나 바로 차를 몰고 이강현을 찾아갔다.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구양지는 이미 모든 걱정을 깨끗이 떨쳐버렸다. 자신의 명성으로 이강현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강현이 정말 스승이 있어 그를 위해 나서게 된다면 일을 크게 키워 모든 사람들과 함께 이강현한테 따지겠다고 마음먹었다.어쨌든 이강현이 제자의 다리를 부러뜨렸으니, 그것은 불합리하다!우영민은 내비게이션을 열고 차량 행렬을 지휘하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곧 이강현이 말한 식당에 도착했다.크지 않은 한식 식당이라 사람들이 몰려 들어간 후 식당은 사람으로 시끌벅적하였다.“식당 주인은 당황한 표정으로 구양지 등을 바라보며 소란을 피우는 게 아닌가 하고 궁리했다.”“뭘 드시고 싶은 가요?”사장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냥 물 한 잔 따라주세요, 여기서 얘기 좀 할게요.”우영민이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근데…… 저희들도 장사하는 입장이라…….”“장사는 개뿔, 여기 내가 다 맡을게, 200이면 돼?”우영민은 핸드백에서 새 돈다발을 꺼내 사장의 손에 직접 쥐어주었다.그러자 사장이 웃음을 터
진효영은 입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그럼 우지민은 왜 갈수 있는 거예요, 걔도 인질로 잡힐 수 있잖아요.”“그냥 얼굴을 보이는 거야, 걔네 숙부랑 몇 마디하고 갈 거야.”이강현은 사무실 문을 닫고 우지민을 데리고 나갔다.진효영은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지만 감히 이강현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고운란 곁으로 가서 고운란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운란 언니, 우리도 같이 가보지 않을래요?”“너는 그냥 가만히 있어, 뭘 생각을 하지 말고, 정말 가서 이강현에게 폐를 끼치면 너를 쫓아낼지도 몰라.”고운란은 담담하게 말했다.“내쫓지 마세요.”진효영은 슬프게 소리쳤다.“운란 언니는, 날 쫓아내지 않을 거죠, 그렇죠?”“네가 말을 잘 들으면 쫓아내지 않을 거야, 근데 네가 혼자 미움을 산다면 나도 너를 지킬 수 없어.”“말 잘 들을게요, 안 가면 되잖아요.”진효영은 의자에 앉아 마음속으로 이강현을 원망하였다.이강현과 우지민이 식당에 들어섰다.구양지의 제자들은 이강현이 오자 모두 일어나 소매를 걷어붙이고 주먹을 흔들며 이강현을 노려보았다.우지민은 그런 태도에 놀라서 이내 이강현의 뒤로 몸을 움츠렸다.“사부님, 조심하세요.”우영민은 우지민을 노려보았다.“지민 너! 빨리 이 개뿔 사부님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해!”“숙부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제가 보기에 그쪽도 빨리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제 사부님이 화를 내실 때에는 저도 놀라요.”우지민이 입술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하하하하.”우영민 등은 분분히 웃음을 터뜨렸다. 우지민의 말이 너무 웃기기 때문이다.“너 지금 웃기려고 일부러 그렇게 말한 거야? 네가 놀라든 말든 우리와 무슨 상관이야, 우리는 놀라지 않아.”“그래, 네 사부가 아무리 무서워도 우리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할 걸.”“우지민은 순간 얼굴을 붉히면서 목을 꼿꼿이 세우고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어떻게 변명을 해야 할지 몰랐다.”“콜록콜록.”구양지는 심한 기침을 이어서 하고 이강현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무슨 소리야! 이강현 그 자식 내 손자 발 뒤꿈치에도 못 가! 딴 소리 말고 그냥 할 건지 말 건지나 말해.”어르신은 말을 마친 후 분노에 찬 눈으로 이강현을 노려보았다. 고운란이 이강현의 감언이설에 속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저 역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강현이 한 말이 바로 제 뜻이예요.”“너 정말! 나 너 같은 손녀 없어, 너희들 우리 고씨 집안 자식 아니야!”어르신이 소리를 지른 뒤 휴대전화를 떨어뜨리고 화가 나서 고건민에게 더 심한 말을 하려고 할 때 고건강은 어르신을 힘껏 잡아당겼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화내면 몸이 상해요, 진정하세요.”고건강은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만약 고씨 집안이 무너지면 고운란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기회를 잡아 잘 보이려고 하였다.어르신은 고건강을 노려보며 고건강까지 욕하려고 하였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형님한테 끌려가면 안 돼요. 큰 형이 둘째 형한테 원한이 많은 거 아시잖아요. 우리 사이가 틀어지면 그게 큰 형이 바라는 거예요.”“근데 지금 둘째 형 쪽이 대세인데 앞으로 그쪽한테 기대할 지도 모르니까 사이가 틀어지면 우리도 득 볼 게 없어요. 일단 넘어가세요.”이득 외에 고건강 눈에는 도덕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충분한 이득만 얻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다 팔아먹을 수 있었다.그래서 지금 고건강은 자기 먹거리를 챙기기 위해 고민국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르신도 늙은 여우라 고건강 말을 듣고 속으로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방금 화가 난 김에 하마터면 일을 그를 칠 번 했다. 지금 고운란의 위세든, 이강현이 말한 진성택과의 관계든 두 사람의 세력이 강해짐을 보여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나서 어르신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고건강의 말이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셋째야, 네 말이 맞아, 방금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어.”“잘 생각했어요. 이럴 때 강력하게 나가면 두 쪽 다 다치게 돼요.”어르신 표정이 느긋해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현의 손에서 득을 못 보게 될 것을 알아차리고 어르신은 즉시 전략을 바꿔 고운란을 찾기로 하였다.뭐라해도 자기 친 손녀인데 할아버지가 부탁하면 아무리 싫어도 자기 말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강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어르신이 좀 지나치시다고 생각했다. 할말 못할 말 다 했는데 늙은 티를 내면서 덕 좀 보려고 하니 어이없었다.“할아버지, 상황은 다 얘기했고, 계속 고집부리시겠다면 운란에게 전화하세요.”“보자 보자하니, 네가 누구인 줄 알아! 너는 그냥 이 집안의 데릴사위일 뿐이야!”고민국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허허.”이강현은 가볍게 웃으며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다.“너 무슨 태도야! 거기 서!”고민국은 앞으로 나가 이강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이강현을 혼내려고 하였다.고건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형님, 말로 하시죠, 화내지 마시구요.”“흥! 쟤 말 잘하는 거 좀 봐? 너무 건방지잖아!”어르신이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입 다 다물어, 운란이한테 전화할 거야!”고민국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강현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이강현은 차가운 눈으로 구민국을 바라보았다. 고민국은 뒷머리가 섬뜩한 것을 느끼며 이강현의 눈빛에 완전히 겁을 먹고 손을 놓아버렸다.“너 여기 가만히 있어, 내 명령없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고민국은 겁을 누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전화가 연결되었고, 전화 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 할아버지.”“빨리 돌아와, 할 말이 있어.”고운란이 어리둥절했다. 지금은 손님을 접대해야 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할아버지, 아빠랑 이강현이 돌아가지 않았나요? 무슨 일 있으세요?”“이강현 그 새끼 얘기 꺼내지도 마! 그 자식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 있어. 너 지금 원일그룹 사장 아니야? 집안 사업 망하게 생겼어, 원일그룹이 사라고 해.”고운란이 듣던 중 자기 할아버지 상업도덕에 어긋하는 말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할아버지, 지금 손님을 접대해
어르신은 전혀 놀라지 않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강현을 보고 있는데 마치 금덩어리를 발견한 눈빛이었다.“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어르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고민국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황급히 몸을 숙이고 어르신 귀에 대고 말했다.“아버지, 이 쓰레기랑…….”“흥!”건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은 사람을 잡아먹는 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고민국을 노려보았다.“쓰레기는 네가 아니야?! 회사를 너한테 맡기고 나서 지금 무슨 꼴이야!”“아버지,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아무 쓸모 짝도 없어, 이강현을 봐봐, 이게 진정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어르신은 말하면서 고민국에게 눈짓을 했다.이강현 때문에 들어온 오더이니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이때 좋은 말 몇 마디로 이강현을 안정시키면 잃어버린 오더를 모두 찾아올 수 있고, 고씨 집안 사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아, 네네, 이강현 너 얼른 할아버지 옆에 앉아, 내가 의자 가져다 줄게.”고민국은 의자를 들고 어르신의 옆에 놓았다. 의도적인 호의였다. 이강현은 의자에 앉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큰 아버지가 들어온 의자 제가 감히 어떻게 앉겠어요. 할아버지의 뜻도 이해합니다. 근데 고씨 집안 제품을 사면 진성택도 돈을 내면서 받는 거니까 저도 진성택이 계속 손해보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어르신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이강현이 한 마디로 그가 곧 꺼낼 말을 막아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색하게 웃고 나서 어르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진성택이 어떻게 손해를 봐, 그 사람 돈 많잫아.”“돈은 많는데 손해보면서 우리를 돕는 건 사실이잖아요. 전에 저를 도와준 건 갚을 게 있어서 그랬고, 지금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니 거두어들여도 당연한 거죠.”이강현은 그들을 돕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지금 이 상황에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심술궂게 굴어 이강현으로 하여금 그들을 도울 생각을 단념하게 했다.만약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했다면 도와줄 수도 있었다. 고씨
“진성택과 제 관계는 말할 필요 없고, 말 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아시면 돼요.”이강현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들어 상위권의 기세를 보여주었다.이강현의 도도한 모습에 고민국과 고건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진성택이 왜 네 말을 들어, 네가 뭐라고!”고건강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강현은 고건강을 상대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어르신만 바라보았다.어르신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굳은 얼굴로 고민국에게 말했다.“전화해서 진성택 지시 맞는지 확인해봐.”“아버지! 그걸 왜 물어봐요. 순전히 허튼소리예요! 믿을 필요 없어요!”“하라면 하지, 쓸데없는 말이 왜 그렇게 많아.”어르신의 표정이 더욱 언짢아졌다.고민국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어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꺼내 바이어들의 전화를 뒤지기 시작했다.고건민은 그 틈을 타 이강현을 끌어당기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솔직히 말해 봐, 진성택이랑 무슨 관계야?”“제가 진성택 손자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운란이 힘들어 하니까 그냥 도움을 요청한 거예요.”고건민은 눈알을 굴리더니 이강현을 깊이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고건민의 속으로 이강현의 해명을 믿지는 않았지만 진성택이 이강현의 지시를 따른 다른 말은 믿었다.예전에 왕씨 어르신 생신 때 진성택이 이강현을 데리러 차를 몰고온 장면이 떠올리고 고건민은 이강현과 진성택 사이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더욱 깊이 믿었다.그러나 지금 고건민은 깊이 따질 마음은 없고, 오히려 고민국과 고건강이 망신을 당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였다.몇 년 동안 고건민은 고민국과 고건강으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았으며 많은 고통을 겪었으니, 지금 그들이 좌절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당연히 더없이 기쁜 일이다.고민국이 건넨 전화는 이미 상대방에게 연결되었고, 연결된 후 상대방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열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형님, 저 민국이예요.”“어 그래, 나 지금 회의 들어가봐야
“운란이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도우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도움을 수 있죠.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가족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이강현이 말을 마치자 그들 모두 가슴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체면이 깎인 어르신은 고민국을 매섭게 노려보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를 원망했다.고민국은 이를 악물고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네가 뭘 안다고 나서?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래도 운란이 우리 회사 제품 독점판매해서 도와줄 수 있잖아!”“그건 돕는 게 아니라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거죠, 그럼 한 달도 못 버티고 쫓겨날 건데 그걸 바라세요?”이강현이 되물었다.할 말을 잃은 고민국은 이강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뭘 그렇게 말해, 우리 제품 사다가 중간에서 가격을 올려 팔면 되잖아, 실적도 올리고!”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국의 말에 동의하였다.“민국이 말이 맞아, 회사 제품을 사가서 다시 팔면 문제없어.”“허허.”이강현은 약간 경멸하는 눈빛으로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왜 오더가 빠지는지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기술, 생산라인, 원가 아무 것도 경쟁력이 없는 제품 누가 사겠어요?”“전에 장사가 잘 됐다는 얘기하지 마시구요, 그건 제가 받아온 오더예요! 운란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제가 진성택에게 사람을 시켜 오더 내리라고 부탁했어요!”이강현의 말이 나오자 방 안의 사람들 모두 놀라하며 눈을 크게 떴다.사실 그들도 회사 제품이 가격이 높지만 그에 비해 품질이 뒤떨어 시장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운란이 오더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자신의 미모로 고객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강현이 한 말은 그들의 생각을 뒤엎었다.이강현의 말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너, 너 여기서 무슨 헛소리야!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진성택을 찾아? 진성택이 무슨 사람인데 네가 부탁해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 거 같아?!”고민국은 이강현에게 손가락질하며
어르신의 엄격한 말투에 고건민의 마음은 두려웠다.“그래요 아버지, 운란이 사장이라도 아버지 손녀딸이에요.”“흥!”어르신이 콧방귀를 뀌며 눈을 지긋이 감고 말했다.“사장이라고 집 장사도 잊은 게야?! 있는 지분을 다 팔았다고 연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해?!”“그게…… 일도 그만뒀는데 그럴 명분이 안 되죠.”고건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둘째 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운란이 나가고 나서 오더 크게 줄었다고 들었어, 네 딸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별말 없이 지분 팔 때 알아봤다니까, 갈 곳을 찾아두고 가족 사업 망치려고 작성한 거 맞죠.”고건강이 따라 말했다.그들의 비난에 고건민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다.이미 마음속 선입견을 두어 고건민이 뭐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고건민도 지금 말하고 있는 이유 모두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왜 말이 없어? 인정 못하겠어? 너희들 정말 이렇게까지 비열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족 사업 망치고 나서 우리한테 미안하지도 않아?!”고민국이 노호했다.얼굴이 하얗게 변한 고건민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아니요, 집안에 해가 되는 일 정말 한 적이 없어요. 아버지 믿어주세요.”“다른 말은 필요 없고, 원일그룹도 의약업을 하고 있지, 운란이 집안 사업에 도움을 보태라고 말해, 오더도 주고, 지금 그만한 능력이 있는 거 아니야?”어르신이 이제서야 용건을 말했다. 고건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목이 쉬어 말했다.“운란이 사장이지만 아직 막 부임해서 너무 티 내서 하면 안 돼요, 그보다 지금 회사일 운란이 한 마디로 움직이는 거 아니잖아요.”“그래서 안 하겠다는 거야? 눈뜨고 집안 사업이 망하는 거 보고싶어? 너 그러고도 내 자식이야?!”어르신은 눈을 부릅뜨고 고건민을 노려보며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고건민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이강현을 바라보며 이강현이 빨리 와서 도와주기를 바랐다.“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건민은 이런 대우에 푹 빠졌다. 마치 제왕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다리를 꼬이고 흔들면서 고건민 머리를 쳐들고 말했다.“여보세요, 누구세요?”“누구겠어! 네 형이지!”고민국이 화 내며 소리쳤다.고건민은 귓가에 있는 전화를 내려 발신자를 확인하였다. 고민국 번호이다.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에 고민국 전화를 받은 고건민은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은 기분이었다.“아, 제가 지금 바빠서 누구 전화인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어요. 무슨 일이예요?”“아버지가 널 찾아, 빨리 돌아와.”고민국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요? 아버지가 왜요? 혹시 몸이…….”“닥쳐! 아직 건강해, 돌아오라고 하면 빨리 돌아와!”고건민의 마음이 비로소 놓였다. ‘몸이 안 좋은 줄 알았잖아.’‘근데 이때 왜 날 불러, 왠지 수상해.’“네, 곧 돌아가겠습니다.”전화를 끊고 고건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강현을 향해 걸어갔다.지금 고운란은 한성 거물들을 모시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이강현을 찾아갔다.“아까 본가에서 연락이 왔어, 나보고 어르신 만나러 가래.”고건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할아버지도 뵐 겸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그게…….”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고건민은 이강현이 따라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강현이 따라가면 번거로운 부분도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 그럼 지금 출발하자.”“네.”이강현은 고건민과 함께 차를 몰고 어르신의 집으로 향했다.곧 두 사람은 어르신의 집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어르신의 싸늘한 눈빛에 고건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건민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방금 밖에서 산 과일과 영양제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어르신 앞으로 걸어갔다.“아버지, 저 왔어요.”“흥! 날 잊은 건 아니고?”어르신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제가…….”“뭘 말하고 싶은데?! 네 딸이 사장이 됐다며, 이제 고씨 집안과도 인연을 끊을 거야?!”고건민의 이마에 식은
고민국과 고건강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어르신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위급한 상황에서 어르신이 나서야 했다.두 사람이 상의를 마친 후 급히 어르신 거처로 달려갔다.의자에 누워 라디오를 끌어안고 듣고 있던 어르신은 두 아들이 황급히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곧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너희 둘 무슨 일로 왔어? 할말 있으면 그냥 말해.”어르신은 이미 알아차렸다는 듯이 바로 말했다.고민국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헤헤, 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니 아버님이 직접 나서서 도와주세요.”“내가? 집안일에만 손댈 수 있는 노인한테 경영은 아니지.”어르신이 눈을 감았다.“집안일 맞아요. 둘째가 경영에서 물러났잖아요. 저랑 건강이 2억으로 그 지분을 사들이고 나서 고운란도 회사에서 퇴직한 거 아버지도 알고 있죠.”“맞아, 그건 나도 알고 있어, 2억이면 은혜를 셈이지.”일찍이 고건민 집안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어르신이라 그들이 경영에서 물러난 것도 바라는 바이다.고민국은 조금 난처한 듯 고건강을 쳐다보고는 고건강에게 계속 말하라고 눈길을 주었다.“운란이가 회사 업무 쪽 일을 맡았잖아요, 그래서 걔가 퇴사한 후 원래 바이어들이 주문을 취소해서 회사 매출이 떨어지고 있어요. 근데 운란이가 원일그룹 사장이 된 거 있죠!”눈을 감고 있던 어르신이 눈을 번쩍 뜨며, 눈에 의아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뭐?! 고운란이 어떻게 원일그룹 사장이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 이제 겨우 몇 살인데, 어떻게 사장이 될 수 있어?”“정말이예요, 아까 티비에도 나왔다니까요, 한성에 이름을 댈만한 사람들이 다 참석했어요. 고운한 그 년이 분명 무슨 거래를 한 게 분명해요.”“콜록콜록.”고건강 말이 빗나간 것을 보고 고민국은 힘껏 기침을 두 번 했다.“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운란이 보고 원일그룹 오더를 우리한테 넘기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기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어르신은
“작은 좌절일 뿐이야, 이겨내야 해! 고운란이 없으면 회사가 망해? 예전에도 힘든 적이 있었잖아!”고민국은 책상을 힘껏 치며 소리내어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건강은 입을 삐죽거리며 이상한 말투로 말했다.“지난번 난국도 고운란이 해결한 거잖아요, 잊었어요?”빵!구건국의 주먹이 책상에 세게 부딪혔다.“무슨 뜻이야?”“솔직히 말해 지금 이 상황 고운란과 관련이 있는 거 분명해요. 그 바이어들은 대부분 고운란이 데려온 겁니다, 형님, 잘 생각해보세요.”고민국이 아무 말없이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앉았다.사실 고민국도 생각을 못한 바는 아니다. 바이어 주문 취소가 고운란 퇴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미 구운람을 쫓아냈고, 지분까지 헐값에 사들였는데 지금 후회하여 고운란을 모셔온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tv 속 화면은 원일그룹 정문 앞으로 옮겨졌고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되었다.센터에는 고운란과 이강현이 서 있었고, 기타 한성 거물들도 모두 테이프 커팅식 대열에 포함되었다.곧바로 원일그룹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됩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원일그룹 고운란 사장이 서 있고…….”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고민국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두 손으로 가슴을 꽉 쥐었다.고건강은 부러운 듯 질투의 눈빛으로 센터에 선 고운란을 바라보며 그 자리가 자기 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품었다.수천억의 대그룹을 손에 넣는 기분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푹!”고건강이 한창 부러워하고 있을 때 고민국이 피를 토했다.피가 멀리 뿜어져 나와 TV의 스크린에 튀어 스크린에 핏기를 보였다.“형, 형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왜 피를 토해요!”고건강이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해하였다.고민국은 입가의 피를 닦았다. 피를 토하고 나니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난 괜찮아!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고운란이 원일그룹을 사장이 될 줄은, 그러면 우리 고씨 가문에게도 얼마간 혜택을 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