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으면 말해, 빨리.”우지민이 초조하게 재촉했다.“내가 듣기로 이강현은 삼류 가문 고씨 집안의 데릴사위인데 한성에서 무능하기로 유명해요, 근데 요즘은 다들 이강현이 변했다고, 그때 그 와이너리 연회에서 임시현을 크게 엿 먹었다고 했어요.”“임시현?”우지민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방금 본 사고현장을 떠올리고 무뜩 현장에서 임시현을 닮은 시체를 본 것 같았다.‘이강현이 임시현을 죽였어?’우지민은 등이 싸늘해지더니 자기가 큰 사건에 빠진 것 같았다. 이런 일은 모르면 몰랐지 알면 절대 좋을 수 없었다.“헉, 어쩌지, 아까 임시현이 이강현 손에 죽은 것 같은데, 나 임시현 시체 봤어.”우지민은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을 몰랐다.“잘못 본 거 아니에요? 임시현 곁이면 다 고수들이 지켜줄 텐데, 죽고 싶어도 쉽게 못 죽어요, 근데 이강현에 관해서는…… 다시 잘 알아보고 움직여요, 진짜 실력이 대단한 분이면 그때 다시 찾아가도 되잖아요.”“그래요, 복인지 화인지는 아직 잘 몰라요, 어쩌면 우리의 선택에 따라 좋은 일일 수도 있어요.”재벌2세들은 너도나도 자기 의견을 말했다. 우지민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오늘 일 다 잊어버려, 입밖에도 뻥끗하지 마, 아니면 다 같이 죽는 거야.”“걱정 마요, 다 알아요, 절대 말하 않을 게요.”“다 돌아가, 어떻게 할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어.”우지민은 길 옆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꺼내 시무룩하게 피우고 있었다. 아예 이강현 집 아래에서 기다리려는 생각이었다.담배를 피우고 난 후 우지민은 옆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사서 차에 싣고 이강현의 집으로 향해 달렸다.……강민국은 벤츠 밴에 죽은 척하고 한참을 있다가 아무 기척이 없어지자 조심스럽게 벤츠 밴을 빠져나왔다.머리를 차 밖으로 내밀어 사방을 둘러보다가 사방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강민국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차 밖으로 나와 임시현과 우관의 시신 쪽으로 걸어가 이미 식어버린 두 사람을 보며 강민국은 두려웠
무연국은 분노에 소리를 질렀다. 임시현의 죽음에 대해 무연국은 바로 경쟁자에게 당한 것이라고 단정했다. 임씨 가문 주인을 선택한 중요한 시기만큼 경쟁자로부터 암살을 당하는 건 아주 흔한 일이다.“저희들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도련님이 건드린 사람 보통 인간이 아니에요, 우관 아저씨도 상대하지 못해 후배 전일금도 모셔왔는데 아무 소용도 없어요.”“누구야! 누가 도련님을 죽였는데!”무연국은 호통을 치며 물었다.“현장으로는 우관 아저씨와 임시현이 서로 죽인 걸로 보이는데, 그때 나도 죽은 척 숨어있어서 보지는 못했지만 우관 아저씨가 살기 위해 도련님을 죽이려는 것 같아요, 이강현이 우관 아저씨한테 도련님을 죽이면 놓아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 그래서 마지막 두 사람 다 죽은 거예요.”전화 저편에서 무연국은 멍하니 있었다. 그게 어떤 장면인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임씨 가문 도련님이 경호원한테 죽음을 당하다니 말도 안되는 스토리이다.“현장 사진 보내와, 그리고 사건 전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잘 보고하고, 이 일 윗분한테도 알려야 해.”“네, 지금 보낼 게요, 빨리 사람 보내주세요, 저 혼자 무서워요.”“쓸모없는 놈! 위치 보내, 사람 보낼 게.”강민국은 전화를 끊고 위치를 무연국에게 보냈다. 이어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사건의 전후 경과를 적었다.무연국은 사진과 사건 경위를 보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모든 것이 음모로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임시현이 자랑질하다가 사람 잘못 건드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이런 건 누구한테 따져야 되는 거야, 아니야, 일단 보고부터 해야겠어.”무연국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걸어 임시현의 죽음을 윗분들에게 알렸다.임씨 집안 어르신들은 모두 침상에서 일어나 한밤중에 깨어난 분노를 억누르고 정당으로 달려가 상황을 상의했다.임씨 집안의 주인 임정남은 주석에 앉아 음침한 표정으로 말했다.“셋째가 죽었어, 무연국 넌 어떻게 생각해.”“상황을 보아 누구의 음모는 아닌 것 같고, 그 이강현이라는
이강현은 아침 일찍 일어나 부엌에서 아침밥을 하느라 바쁘고 있었다.최순은 진효영을 소파에 끌어당겨 앉히고 어제 최종현과 만난 일을 물었다.진효영은 난처해하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고운란을 바라보았다.“쓸데없는 참견 그만하고, 생각 접으세요, 두 사람 안 어울려요.”고운란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내가 왜 쓸데없는 참견이야, 요즘 네 사촌 오빠는 잘 나가, 며칠 후 티비에도 나온다고 들었어.”최순은 자기 조카가 정말 괜찮은 것 같았다. 적어도 눈앞의 누추한 사위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효영아, 아주머니 말 듣고 종현이랑 잘 만나봐, 젊은이들끼리 자주 만나다보면 서로를 잘 알게 될 거야.”진효영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네, 아주머니, 저 이강현 오빠 도와주러 갈게요, 운란 언니하고 먼저 얘기하고 있으세요.”핑계를 대고 황급히 떠난 진효영은 그대로 몸을 주방에 처박았다.계란을 부치고 있던 이강현은 진효영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너 왜 그래. 밖에서 기다려. 여긴 네 도움이 필요 없어.”진효영은 가엾은 모습을 드러내며 두 손으로 이강현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절 쫓아내지 마세요, 아주머니 정말 끔찍해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저 세탁하고 요리도 잘해요, 침대도 따뜻하게 해드릴 수 있으니까 저를 받아주세요.”“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널 받아준 탓으로 난 거실에서 자야 해, 내 기분이면 그냥 널 쫓아내고 싶어.”이강현은 약간 불만스러운 듯이 말했다.진효영은 입을 삐죽 내밀고 가슴을 쑥 내밀어 아름다운 몸매를 드러냈다.“나도 운람 언니보다 못지 않아요, 아니면 밤에 몰래 나와서 이불 따뜻하게 해줄까요?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거예요.”진효영은 기회를 틈타 반 진실로 이강현을 떠보고 있었다.다른 남자였다면 벌써 침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을 텐데도 이강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뒤집개를 들고 이강현은 후라이를 접시에 담고는 진효영의 손에 넘겼다.“얼른 먹어, 너 너무 시끄러워.”진효영은 멍하
“응, 아까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어?”고운란이 편하게 물었다.진효영도 미녀인데다 고운란은 진효영이 이강현을 좋아하는 것 같아 진효영과 이강현이 혼자 있는 것을 경계했다.“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이강현 오빠 내 말 안 들어요, 화나 죽겠어요.”진효영은 말로 투덜대고, 마음속으로도 정말 화가 났다.고운란은 진효영을 자리에 눌러 앉히고는 부엌으로 들어갔다.이강현은 고운란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빙그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갓 구운 햄을 집으며 말했다.“여보, 이거 먹어봐, 방금 부쳐놨는데 맛이 아주 좋아.”“내가 보기엔 네가 좀 찔린 게 있는 것 같은데, 아까 나쁜 짓 한 건 아니겠지?”고운란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너무 억울해, 여보, 내가 어떻게 나쁜 짓을 해.”“진효영 많이 기뻐하던데, 아까 걔한테도 햄을 이렇게 먹여줬어?”고운란은 속으로 질투심이 가득했다. 자신이 이렇게 하는 것이 좀 억지스럽다는 것을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이렇게 했다.“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그 계집애가 마음에 안 들어, 아니면 오늘 바로 병원에 가라고 해, 내 햄이 얼마나 귀한데 절대 걔한테 줄 수 없어.”“흥, 난 안 내보낼 거야, 남겨두고 널 시험해 볼 거야, 네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어.”고운란은 코를 찡그리며, 앵두같은 작은 입을 벌려 이강현에게 먹여달라고 부탁했다.이강현은 햄 조각을 집어서 고운란의 입술에 살짝 갖다댔다. 고운란은 작은 혀를 날렵하게 움직여 햄 조각을 입에 말아 넣었다.“음, 확실히 맛있어, 국내 햄은 아니지?”먹어보고 나서 고운란이 물었다.“역시 내 와이프, 이건 스페인 햄이야, 30년 넘게 보관해 왔는데, 와인과 로즈마리에 담가 부쳐놨더니 맛이 남달랐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와이프 말고는 아무도 못 먹어.”고운란은 애교의 눈길을 이강현에게주었다. 마음속에는 달콤함이 가득했다. 그리고는 순간 하얀 손을 뻗어 이강현의 목을 감싸고 발끝을 세우고 서서 이강현에게 입술을 바쳤다.“냄새가 좋아, 뭘 만들었어요
진효영은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만약 병원으로 옮겨진 후 이강현과 고운란이 자신을 상대하지 않는다면 그건 공로상실에 불과하다.이강현은 우유와 샌드위치 한 접시를 들고 부엌을 나서며 고운란의 곁에 앉았다.“오후에 일이 좀 있을 것 같은데, 그때 나가봐야겠어.”“무슨 일?”고운란이 궁금한 듯 물었다.“정중천 그쪽에 일이 좀 있어서 내가 가서 좀 도와줘야겠어, 전에 정중천도 날 많이 도와줬잖아.”이강현은 얼버무리며 말했다.세계 킥 복싱 대회에 나간다는 것은 고운란에게 절대 알려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강현은 그럴듯한 핑계를 댔다.진효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강현을 바라보았다. 진효영 보기에 이번이 좋은 기회인 것 같았다.‘오후에 이강현 같이 나가야겠어, 그럼 이강현이랑 함께 할 시간이 많아지고 이강현도 내 공격에 참지 못할 거야.’‘흥!’‘나한테 넘어오지 않는 남자 절대 없어!’샤오퉁은 오른손 주먹을 꽉 쥐고 속으로 은근히 자신을 응원했다. 고운란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강현도 자신만의 공간이 있어야지 항상 이강현을 곁에 둘 수는 없는 일이다.“그래, 조심하고, 너무 위험한 일에는 참견하지 마.”“알았어, 위험한 일은 안 할 거야. 너를 위해서라도 안 해.”이강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아침 한 끼를 다 먹고 이강현 세 사람은 집을 나섰다.건물 문을 나서자마자 한 사람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고운란과 진효영은 모두 깜짝 놀랐다.기름기 가득하고 초췌한 얼굴의 우지민이 이강현에게 달려와 멈추었다. 그리고 고운란과 진효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두 사람의 미모에 끌려 표정이 굳어졌다.“뭐 하는 거야, 길 막지 마.”이강현은 불쾌한 듯이 말했다. 우지민은 정신을 차리고 인사를 하며 말했다.“이 선생님 안녕하세요, 두 형수님 안녕하세요, 저, 저 일이 좀 있어요.”두 형수님 한 마디에 고운란과 진효영의 마음이 파란을 일으켰다.달콤함으로 가득한 진효영은 정말 당장이라도 우지민에게 상을 내리고 싶었다.고운란은 진효영을 더욱
이강현은 운람이 오해할까 봐 내색하지 않고 팔을 뺐다.고운란은 진효영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아당겨 진효영이 계속 자기 남자에게 손찌검하지 않도록 했다.“이분은 누구?”고운란이 의심스러운 듯 물었다.“저는 우지민입니다, 빈해 우씨 가문 사람이예요, 제가 이 선생의 운전 기술을 마음에 두고 있어 스승으로 모시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언제라도 무릎을 꿇을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우지민을 보며 이강현은 머리 아팠다.“길 막지 마, 우리 출근해야 해, 너한테 차 기술 같은 거 가르쳐 줄 시간 없어, 그러니까 포기해.”“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저 정말 진심이예요, 저를 제자로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냥 여기에서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고운란은 이강현을 끌어당기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잘 말해 봐, 걔도 진심인 것 같아, 운전을 가르치는 게 뭐라고, 어차피 너도 한가하잖아.”고운란이 보기에 이강현은 시간이 많아 조금 시간 내서 우지민을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강현에게 우지민을 가르치라고 하면 진효영과 둘이 붙어있을 시간도 없고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우지민은 기쁜 마음에 입은 하늘 끝까지 찢어질 지경이다.“감사합니다, 형수님. 형수님은 진짜 저의 구세주세요.”이강현은 우지민을 어이없게 바라보았다.‘이놈 정말 운도 좋아.’“됐어. 너 내일 다시 찾아와. 오늘은 가르쳐 줄 시간이 없어.”“네, 사부님 어디 가세요, 제가 차로 모셔다 드릴게요.”우지민은 먼저 차 옆으로 달려가 차문을 열었다.우지민이 열어준 벤츠 S600 도어를 보며 이강현은 고운란과 진효영에게 뒷좌석에 앉으라고 지시하고 스스로 조수석으로 가서 앉았다.“너 차가 참 많구나.”이강현은 한마디 감개했다.“그냥 차가 좋아요, 여자보다 차가 더 마음에 들어요, 어…… 그냥 제 생각이 이렇다는 거예요.”우지민은 아까 한 말 자랑질인 것 같아 황급히 입을 다물고 열심히 차를 몰았다.세 사람을 회사에 데려다주고, 우지민은 멀지 않은 길가에 차를 세워 수시로 이강현을 위해 나
이강현이 떠난 지 30분 만에 고운란 책상 위의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운란은 황급히 사무실을 떠났다. 진효영에게는 공장에 다녀올 테니 사무실에 있어라고 분부하였다.고운란이 떠나자 진효영도 몰래 사무실을 나와 사옥을 빠져나간 후 길가로 질주했다.이때 이강현의 그림자는커녕 고운란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입을 삐죽 내밀고 발을 동동 구르며 진효영의 가슴은 허탈함으로 가득 찼다. 좋은 기회를 이렇게 놓쳤으니 지금 이강현을 쫓아가고 싶어도 어디로 갈지 몰랐다.벤츠는 천천히 진효영 곁에 멈추었다. 조수석 유리창이 열리자 우지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어디 가는 거예요? 제가 도와드릴까요?”“지금 사모님에게 작업 거는 거야?”진효영은 퉁명스럽게 말했다.“예? 사, 사모님…… 제 사모님은 고운란인데요, 그쪽은 사부님이 주어온…….”우지민의 말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진효영의 분노한 눈을 보고 아예 입을 다물었다.이 순간 우지민은 자신이 감성 지능이 정말 낮다고 느꼈다.이렇게 예쁜 요정 같은 여자가 이강현의 몸을 탐내지 않으면 그렇게 주워졌을 이유가 없었다.‘주었다는 건 그냥 한 말일 거야, 사부님과 분명 숨겨진 관계가 있을 거야.’“어, 작은 사모님, 얼른 차에 타세요, 제 사부님을 찾으러 가실 건가요, 사부님이 택시를 타고 동쪽으로 가신 것 같은데, 속도가 빠르면 따라잡을 수 있을 거예요.”우지민은 자신만만했다. 자기 솜씨로 택시를 쫓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다.진효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차문을 당겨 벤츠 조수석에 앉았다.“경고하는데 나한테 나쁜 짓 하면 너의 사부한테 가서 일러바칠 거야.”진효영이 험악한 척하며 말했다. 우지민은 웃으며 말했다.“그런 짓 안 해요, 그러니까 안심하세요, 저는 차가 더 좋아요.”‘미쳤나 봐, 미녀를 앞에 두고 생각이 없어? 그건 시치미를 떼거나 병이 있는 게 분명해.’우지민은 가속페달을 밟고 쏜살같이 달려나가 이강현이 택시를 타고 떠나는 방향으로 질주했다.맹렬한
“사부님이 경기장에 들어갔는데 따라갈까요?”“당연한 거 아니야.”진효영은 이강현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강현이 여기 와서 무엇을 하는지 궁리하고 있었다.‘설마 복싱하러?’벤츠 차가 경기장 입구에 들어서자 보안복을 입은 늠름한 사나이가 가로막았다.우지민은 차창을 내리고 물었다.“안에 주차가 안 돼?”“주차는 가능한데 초대장이 있어야 됩니다. 카드 가지고 있나요? 없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경비원은 공손한 편으로 말했다.“초대카드라니, 내가 들어가서 놀면 안 돼?”우지민이 모르는 척 물었다.“허허, 오늘 중요한 경기가 있어서 카드가 없으면 못 들어가니까 다른 데 가서 놀아요.”“그럼 초대장은 어떡하면 받을 수 있어? 한 장 줘, 돈은 얼마든지 낼 수 있으니까.”경비원은 망설이다가 우지민에게 보안관실 문 앞에 차를 세우라고 손짓했다.“사모님, 차에 앉아 계세요, 제가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볼게요.”우지민은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 경비원을 따라 경비실로 들어갔다.“세계 킥복싱 대회 초청장을 들고 경비원이 말했다. 제가 어렵게 손에 넣은 것입니다, 원래는 어느 윗분을 위해 남겨둔 건데 상대방에게 바람맞히고 이렇게 드리는 겁니다. 2천만이면 됩니다.”“2천?”우지민 눈알이 동그래졌다. 이게 무슨 물건인지, 어떻게 2천만의 가치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오늘 여기서 뭘 할지 정말 모르는군요, 곧 세계 킥복싱 대회가 열릴 겁니다. 가장 강력한 권투 시합이죠, 방금 들어간 사람이 한성 대표로 참가한 선수인데 실력 하나 죽여줍니다.”“그리고 이 초대장으로 대회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어요, 오늘은 와일드카드, 내일은 본선, 모레는 결승전이예요.”“경기는 갈수록 짜릿해질 거예요.”경비원은 말할수록 흥이 났다. 완전 사기 같았다.경비원의 말에 우지민은 등이 싸늘한 것을 느꼈다. 비록 세계 킥복싱 대회에 관심이 없지만 소식은 들은 적이 있었다.특히 경비원이 이강현이 시합에 참가하러 온 선수라고 할 때 우지민은 온몸의 피가 차가워지는
“무슨 소리야! 이강현 그 자식 내 손자 발 뒤꿈치에도 못 가! 딴 소리 말고 그냥 할 건지 말 건지나 말해.”어르신은 말을 마친 후 분노에 찬 눈으로 이강현을 노려보았다. 고운란이 이강현의 감언이설에 속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저 역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강현이 한 말이 바로 제 뜻이예요.”“너 정말! 나 너 같은 손녀 없어, 너희들 우리 고씨 집안 자식 아니야!”어르신이 소리를 지른 뒤 휴대전화를 떨어뜨리고 화가 나서 고건민에게 더 심한 말을 하려고 할 때 고건강은 어르신을 힘껏 잡아당겼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화내면 몸이 상해요, 진정하세요.”고건강은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만약 고씨 집안이 무너지면 고운란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기회를 잡아 잘 보이려고 하였다.어르신은 고건강을 노려보며 고건강까지 욕하려고 하였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형님한테 끌려가면 안 돼요. 큰 형이 둘째 형한테 원한이 많은 거 아시잖아요. 우리 사이가 틀어지면 그게 큰 형이 바라는 거예요.”“근데 지금 둘째 형 쪽이 대세인데 앞으로 그쪽한테 기대할 지도 모르니까 사이가 틀어지면 우리도 득 볼 게 없어요. 일단 넘어가세요.”이득 외에 고건강 눈에는 도덕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충분한 이득만 얻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다 팔아먹을 수 있었다.그래서 지금 고건강은 자기 먹거리를 챙기기 위해 고민국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르신도 늙은 여우라 고건강 말을 듣고 속으로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방금 화가 난 김에 하마터면 일을 그를 칠 번 했다. 지금 고운란의 위세든, 이강현이 말한 진성택과의 관계든 두 사람의 세력이 강해짐을 보여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나서 어르신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고건강의 말이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셋째야, 네 말이 맞아, 방금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어.”“잘 생각했어요. 이럴 때 강력하게 나가면 두 쪽 다 다치게 돼요.”어르신 표정이 느긋해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현의 손에서 득을 못 보게 될 것을 알아차리고 어르신은 즉시 전략을 바꿔 고운란을 찾기로 하였다.뭐라해도 자기 친 손녀인데 할아버지가 부탁하면 아무리 싫어도 자기 말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강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어르신이 좀 지나치시다고 생각했다. 할말 못할 말 다 했는데 늙은 티를 내면서 덕 좀 보려고 하니 어이없었다.“할아버지, 상황은 다 얘기했고, 계속 고집부리시겠다면 운란에게 전화하세요.”“보자 보자하니, 네가 누구인 줄 알아! 너는 그냥 이 집안의 데릴사위일 뿐이야!”고민국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허허.”이강현은 가볍게 웃으며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다.“너 무슨 태도야! 거기 서!”고민국은 앞으로 나가 이강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이강현을 혼내려고 하였다.고건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형님, 말로 하시죠, 화내지 마시구요.”“흥! 쟤 말 잘하는 거 좀 봐? 너무 건방지잖아!”어르신이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입 다 다물어, 운란이한테 전화할 거야!”고민국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강현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이강현은 차가운 눈으로 구민국을 바라보았다. 고민국은 뒷머리가 섬뜩한 것을 느끼며 이강현의 눈빛에 완전히 겁을 먹고 손을 놓아버렸다.“너 여기 가만히 있어, 내 명령없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고민국은 겁을 누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전화가 연결되었고, 전화 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 할아버지.”“빨리 돌아와, 할 말이 있어.”고운란이 어리둥절했다. 지금은 손님을 접대해야 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할아버지, 아빠랑 이강현이 돌아가지 않았나요? 무슨 일 있으세요?”“이강현 그 새끼 얘기 꺼내지도 마! 그 자식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 있어. 너 지금 원일그룹 사장 아니야? 집안 사업 망하게 생겼어, 원일그룹이 사라고 해.”고운란이 듣던 중 자기 할아버지 상업도덕에 어긋하는 말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할아버지, 지금 손님을 접대해
어르신은 전혀 놀라지 않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강현을 보고 있는데 마치 금덩어리를 발견한 눈빛이었다.“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어르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고민국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황급히 몸을 숙이고 어르신 귀에 대고 말했다.“아버지, 이 쓰레기랑…….”“흥!”건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은 사람을 잡아먹는 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고민국을 노려보았다.“쓰레기는 네가 아니야?! 회사를 너한테 맡기고 나서 지금 무슨 꼴이야!”“아버지,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아무 쓸모 짝도 없어, 이강현을 봐봐, 이게 진정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어르신은 말하면서 고민국에게 눈짓을 했다.이강현 때문에 들어온 오더이니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이때 좋은 말 몇 마디로 이강현을 안정시키면 잃어버린 오더를 모두 찾아올 수 있고, 고씨 집안 사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아, 네네, 이강현 너 얼른 할아버지 옆에 앉아, 내가 의자 가져다 줄게.”고민국은 의자를 들고 어르신의 옆에 놓았다. 의도적인 호의였다. 이강현은 의자에 앉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큰 아버지가 들어온 의자 제가 감히 어떻게 앉겠어요. 할아버지의 뜻도 이해합니다. 근데 고씨 집안 제품을 사면 진성택도 돈을 내면서 받는 거니까 저도 진성택이 계속 손해보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어르신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이강현이 한 마디로 그가 곧 꺼낼 말을 막아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색하게 웃고 나서 어르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진성택이 어떻게 손해를 봐, 그 사람 돈 많잫아.”“돈은 많는데 손해보면서 우리를 돕는 건 사실이잖아요. 전에 저를 도와준 건 갚을 게 있어서 그랬고, 지금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니 거두어들여도 당연한 거죠.”이강현은 그들을 돕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지금 이 상황에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심술궂게 굴어 이강현으로 하여금 그들을 도울 생각을 단념하게 했다.만약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했다면 도와줄 수도 있었다. 고씨
“진성택과 제 관계는 말할 필요 없고, 말 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아시면 돼요.”이강현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들어 상위권의 기세를 보여주었다.이강현의 도도한 모습에 고민국과 고건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진성택이 왜 네 말을 들어, 네가 뭐라고!”고건강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강현은 고건강을 상대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어르신만 바라보았다.어르신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굳은 얼굴로 고민국에게 말했다.“전화해서 진성택 지시 맞는지 확인해봐.”“아버지! 그걸 왜 물어봐요. 순전히 허튼소리예요! 믿을 필요 없어요!”“하라면 하지, 쓸데없는 말이 왜 그렇게 많아.”어르신의 표정이 더욱 언짢아졌다.고민국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어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꺼내 바이어들의 전화를 뒤지기 시작했다.고건민은 그 틈을 타 이강현을 끌어당기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솔직히 말해 봐, 진성택이랑 무슨 관계야?”“제가 진성택 손자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운란이 힘들어 하니까 그냥 도움을 요청한 거예요.”고건민은 눈알을 굴리더니 이강현을 깊이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고건민의 속으로 이강현의 해명을 믿지는 않았지만 진성택이 이강현의 지시를 따른 다른 말은 믿었다.예전에 왕씨 어르신 생신 때 진성택이 이강현을 데리러 차를 몰고온 장면이 떠올리고 고건민은 이강현과 진성택 사이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더욱 깊이 믿었다.그러나 지금 고건민은 깊이 따질 마음은 없고, 오히려 고민국과 고건강이 망신을 당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였다.몇 년 동안 고건민은 고민국과 고건강으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았으며 많은 고통을 겪었으니, 지금 그들이 좌절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당연히 더없이 기쁜 일이다.고민국이 건넨 전화는 이미 상대방에게 연결되었고, 연결된 후 상대방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열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형님, 저 민국이예요.”“어 그래, 나 지금 회의 들어가봐야
“운란이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도우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도움을 수 있죠.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가족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이강현이 말을 마치자 그들 모두 가슴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체면이 깎인 어르신은 고민국을 매섭게 노려보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를 원망했다.고민국은 이를 악물고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네가 뭘 안다고 나서?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래도 운란이 우리 회사 제품 독점판매해서 도와줄 수 있잖아!”“그건 돕는 게 아니라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거죠, 그럼 한 달도 못 버티고 쫓겨날 건데 그걸 바라세요?”이강현이 되물었다.할 말을 잃은 고민국은 이강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뭘 그렇게 말해, 우리 제품 사다가 중간에서 가격을 올려 팔면 되잖아, 실적도 올리고!”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국의 말에 동의하였다.“민국이 말이 맞아, 회사 제품을 사가서 다시 팔면 문제없어.”“허허.”이강현은 약간 경멸하는 눈빛으로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왜 오더가 빠지는지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기술, 생산라인, 원가 아무 것도 경쟁력이 없는 제품 누가 사겠어요?”“전에 장사가 잘 됐다는 얘기하지 마시구요, 그건 제가 받아온 오더예요! 운란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제가 진성택에게 사람을 시켜 오더 내리라고 부탁했어요!”이강현의 말이 나오자 방 안의 사람들 모두 놀라하며 눈을 크게 떴다.사실 그들도 회사 제품이 가격이 높지만 그에 비해 품질이 뒤떨어 시장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운란이 오더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자신의 미모로 고객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강현이 한 말은 그들의 생각을 뒤엎었다.이강현의 말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너, 너 여기서 무슨 헛소리야!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진성택을 찾아? 진성택이 무슨 사람인데 네가 부탁해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 거 같아?!”고민국은 이강현에게 손가락질하며
어르신의 엄격한 말투에 고건민의 마음은 두려웠다.“그래요 아버지, 운란이 사장이라도 아버지 손녀딸이에요.”“흥!”어르신이 콧방귀를 뀌며 눈을 지긋이 감고 말했다.“사장이라고 집 장사도 잊은 게야?! 있는 지분을 다 팔았다고 연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해?!”“그게…… 일도 그만뒀는데 그럴 명분이 안 되죠.”고건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둘째 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운란이 나가고 나서 오더 크게 줄었다고 들었어, 네 딸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별말 없이 지분 팔 때 알아봤다니까, 갈 곳을 찾아두고 가족 사업 망치려고 작성한 거 맞죠.”고건강이 따라 말했다.그들의 비난에 고건민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다.이미 마음속 선입견을 두어 고건민이 뭐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고건민도 지금 말하고 있는 이유 모두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왜 말이 없어? 인정 못하겠어? 너희들 정말 이렇게까지 비열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족 사업 망치고 나서 우리한테 미안하지도 않아?!”고민국이 노호했다.얼굴이 하얗게 변한 고건민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아니요, 집안에 해가 되는 일 정말 한 적이 없어요. 아버지 믿어주세요.”“다른 말은 필요 없고, 원일그룹도 의약업을 하고 있지, 운란이 집안 사업에 도움을 보태라고 말해, 오더도 주고, 지금 그만한 능력이 있는 거 아니야?”어르신이 이제서야 용건을 말했다. 고건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목이 쉬어 말했다.“운란이 사장이지만 아직 막 부임해서 너무 티 내서 하면 안 돼요, 그보다 지금 회사일 운란이 한 마디로 움직이는 거 아니잖아요.”“그래서 안 하겠다는 거야? 눈뜨고 집안 사업이 망하는 거 보고싶어? 너 그러고도 내 자식이야?!”어르신은 눈을 부릅뜨고 고건민을 노려보며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고건민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이강현을 바라보며 이강현이 빨리 와서 도와주기를 바랐다.“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건민은 이런 대우에 푹 빠졌다. 마치 제왕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다리를 꼬이고 흔들면서 고건민 머리를 쳐들고 말했다.“여보세요, 누구세요?”“누구겠어! 네 형이지!”고민국이 화 내며 소리쳤다.고건민은 귓가에 있는 전화를 내려 발신자를 확인하였다. 고민국 번호이다.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에 고민국 전화를 받은 고건민은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은 기분이었다.“아, 제가 지금 바빠서 누구 전화인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어요. 무슨 일이예요?”“아버지가 널 찾아, 빨리 돌아와.”고민국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요? 아버지가 왜요? 혹시 몸이…….”“닥쳐! 아직 건강해, 돌아오라고 하면 빨리 돌아와!”고건민의 마음이 비로소 놓였다. ‘몸이 안 좋은 줄 알았잖아.’‘근데 이때 왜 날 불러, 왠지 수상해.’“네, 곧 돌아가겠습니다.”전화를 끊고 고건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강현을 향해 걸어갔다.지금 고운란은 한성 거물들을 모시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이강현을 찾아갔다.“아까 본가에서 연락이 왔어, 나보고 어르신 만나러 가래.”고건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할아버지도 뵐 겸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그게…….”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고건민은 이강현이 따라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강현이 따라가면 번거로운 부분도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 그럼 지금 출발하자.”“네.”이강현은 고건민과 함께 차를 몰고 어르신의 집으로 향했다.곧 두 사람은 어르신의 집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어르신의 싸늘한 눈빛에 고건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건민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방금 밖에서 산 과일과 영양제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어르신 앞으로 걸어갔다.“아버지, 저 왔어요.”“흥! 날 잊은 건 아니고?”어르신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제가…….”“뭘 말하고 싶은데?! 네 딸이 사장이 됐다며, 이제 고씨 집안과도 인연을 끊을 거야?!”고건민의 이마에 식은
고민국과 고건강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어르신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위급한 상황에서 어르신이 나서야 했다.두 사람이 상의를 마친 후 급히 어르신 거처로 달려갔다.의자에 누워 라디오를 끌어안고 듣고 있던 어르신은 두 아들이 황급히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곧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너희 둘 무슨 일로 왔어? 할말 있으면 그냥 말해.”어르신은 이미 알아차렸다는 듯이 바로 말했다.고민국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헤헤, 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니 아버님이 직접 나서서 도와주세요.”“내가? 집안일에만 손댈 수 있는 노인한테 경영은 아니지.”어르신이 눈을 감았다.“집안일 맞아요. 둘째가 경영에서 물러났잖아요. 저랑 건강이 2억으로 그 지분을 사들이고 나서 고운란도 회사에서 퇴직한 거 아버지도 알고 있죠.”“맞아, 그건 나도 알고 있어, 2억이면 은혜를 셈이지.”일찍이 고건민 집안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어르신이라 그들이 경영에서 물러난 것도 바라는 바이다.고민국은 조금 난처한 듯 고건강을 쳐다보고는 고건강에게 계속 말하라고 눈길을 주었다.“운란이가 회사 업무 쪽 일을 맡았잖아요, 그래서 걔가 퇴사한 후 원래 바이어들이 주문을 취소해서 회사 매출이 떨어지고 있어요. 근데 운란이가 원일그룹 사장이 된 거 있죠!”눈을 감고 있던 어르신이 눈을 번쩍 뜨며, 눈에 의아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뭐?! 고운란이 어떻게 원일그룹 사장이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 이제 겨우 몇 살인데, 어떻게 사장이 될 수 있어?”“정말이예요, 아까 티비에도 나왔다니까요, 한성에 이름을 댈만한 사람들이 다 참석했어요. 고운한 그 년이 분명 무슨 거래를 한 게 분명해요.”“콜록콜록.”고건강 말이 빗나간 것을 보고 고민국은 힘껏 기침을 두 번 했다.“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운란이 보고 원일그룹 오더를 우리한테 넘기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기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어르신은
“작은 좌절일 뿐이야, 이겨내야 해! 고운란이 없으면 회사가 망해? 예전에도 힘든 적이 있었잖아!”고민국은 책상을 힘껏 치며 소리내어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건강은 입을 삐죽거리며 이상한 말투로 말했다.“지난번 난국도 고운란이 해결한 거잖아요, 잊었어요?”빵!구건국의 주먹이 책상에 세게 부딪혔다.“무슨 뜻이야?”“솔직히 말해 지금 이 상황 고운란과 관련이 있는 거 분명해요. 그 바이어들은 대부분 고운란이 데려온 겁니다, 형님, 잘 생각해보세요.”고민국이 아무 말없이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앉았다.사실 고민국도 생각을 못한 바는 아니다. 바이어 주문 취소가 고운란 퇴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미 구운람을 쫓아냈고, 지분까지 헐값에 사들였는데 지금 후회하여 고운란을 모셔온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tv 속 화면은 원일그룹 정문 앞으로 옮겨졌고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되었다.센터에는 고운란과 이강현이 서 있었고, 기타 한성 거물들도 모두 테이프 커팅식 대열에 포함되었다.곧바로 원일그룹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됩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원일그룹 고운란 사장이 서 있고…….”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고민국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두 손으로 가슴을 꽉 쥐었다.고건강은 부러운 듯 질투의 눈빛으로 센터에 선 고운란을 바라보며 그 자리가 자기 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품었다.수천억의 대그룹을 손에 넣는 기분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푹!”고건강이 한창 부러워하고 있을 때 고민국이 피를 토했다.피가 멀리 뿜어져 나와 TV의 스크린에 튀어 스크린에 핏기를 보였다.“형, 형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왜 피를 토해요!”고건강이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해하였다.고민국은 입가의 피를 닦았다. 피를 토하고 나니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난 괜찮아!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고운란이 원일그룹을 사장이 될 줄은, 그러면 우리 고씨 가문에게도 얼마간 혜택을 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