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황후가 자기에게 싫증을 느끼거나 다른 사람으로 바꾸려 한다면 권무영은 다시 아무것도 없는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다.법지 스님은 온몸의 피가 뜨거워지며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고, 머리속으로 가장 숭경하는 한 스님을 떠올렸다.그 스님은 예전에 한 공주의 막료였었다.법지 스님은 권무영의 눈빛에 담긴 위협을 무시한 채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는 황후를 빤히 쳐다봤다.“할말이 무엇이든 기꺼이 들어드리겠습니다.”“흥!”권무영은 콧방귀를 뀌며 내키지 않는 마음을 참고 돌아섰다.방을 나와 문을 닫고, 권무영은 문에 기대여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방안에서 권무영의 낯익은 가냘픈 숨소리가 들려왔다.권무영은 짜증을 내며 담배꽁초를 내던지고,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먼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하지만 황후의 거친 숨소리는 마치 마성의 목소리처럼 권무영의 머릿속을 맴돌았다.“이거 내 손으로 내 발등을 찍은 셈인가? 상대를 만들다니, 황후는 분명 나를 견제하기 위해 사람을 찾은 거야!”권무영은 이미 황후의 뜻을 꿰뚫었다. 최근 잇따른 일처리에 황후가 불만을 품고 집사를 바꾸려는 생각인 것 같았다.위기감을 느낀 권무영은 생각을 하면 할수록 당황하여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지 궁리했다.……이강현 핸드폰이 울렸다.핸드폰을 들어 보니 진효영이 보낸 메시지였다. 이강현에게 영산사를 떠났다는 보고이다. 거기에 법지 스님에 대한 험담까지 하였다.진효영의 설명을 듣고, 이강현은 이 법지 스님이 왠지 이상하다고 느껴졌다.그러나 도대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이강현도 말할 수 없었다. 현장에 있은 것도 아니고 진효영의 말만 듣고 판단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그러나 이강현은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이강현에게 고운란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지민아, 돌아가자.”이강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네.”우지민이 시동을 걸고 나서 말했다.“사모님 그쪽 끝난 건가요?”“그래, 내가 너무 걱정했나 봐.”이강현이 웃었다.“허허,
“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시간이 되는지 보고, 시간이 나면 참가해도 돼.”이강현이 담담하게 말했다.우지민은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시간은 조율할 수 있기 때문에 이건 승낙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강현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기면 우지민은 자신이 책임지고 처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네, 어차피 시간이 있으니 괜찮아요.”기쁜 마음에 우지민의 차속은 저도 모르게 점점 빨라졌다.이때 핸드폰 벨이 울리렸다. 이강현은 핸드폰을 집어들고 한 번 쳐다본 뒤 전화를 받았다.“이 선생님, 오늘 저녁 8시 인질교환 장소는 교외 선대산으로 정했습니다.”정중천이 큰소리로 말했다.정중천의 아들 정대성의 목숨이 달린 일이라 정중천은 긴장한 나머지 목소리를 높였다.이강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네, 알았어요, 저녁에 선대산에 갈 테니까 그쪽에서는 준비만 하면 돼요, 절대 방심하지 마세요.”“걱정 마세요, 이미 사람을 선대산에 보내 그곳을 비웠습니다. 아무도 함부로 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그럼 됐어요, 그쪽이랑 확인해서 정하면 됩니다, 그럼 저녁에 보시죠.”전화를 끊고 정중천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이강현이 있으니 정중천의 마음이 많이 놓였다.곧 직면하게 될 것은 바다 건너의 세력이다. 세계 킥복싱 대회는 그들의 한 수에 불과하다. 그런 세력에 비해 정중천의 압력은 이만저만이 아니다.부하들에게 신중하도록 주의를 준 뒤 정중천은 비로소 손을 흔들며 부하들로 하여금 각자의 곳에서 대기하게 하였다.부하들은 정중천의 명에 따라 움직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정중천은 굳은 얼굴로 톰슨에게 다가갔다.“오늘 저녁 인질 교환하는데 그쪽한테 장소를 알려주었어?”부하들이 톰슨의 핸드폰을 가져왔다. 정중천이 핸드폰을 톰슨에게 건넸다.“꼼수 부리지 말아.”“내가 무슨 수작을 부리겠어? 내 목숨이 달린 일인데, 사실대로 라우드에게 말할게, 걱정하지 마.”톰슨은 그렇게 말하고 라우드에게 전화를 걸었다.“어, 라우드, 출발했어? 장소 정했어, 한성 밖에 있는 선대산이래
험상궂게 변한 정대성의 얼굴을 보며 늙은 백인의 얼굴에 득의만면한 미소가 떠올랐다.심리적 암시는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다. 정대성의 잠재의식 속에서 그는 신이 인간 세상에 보내 악마 이강현을 무찌르는 첩자가 될 것이다.앞으로 사람을 보내서 암호로 하느님 사자의 이름을 대면 정대성의 잠재의식을 깨우고, 정대성을 지휘하고 조종할 수 있다.잠재의식이 풀리기 전까지 정대성은 한 치의 허점도 드러내지 않는 정상인처럼 행동할 것이다.이 모든 것을 마친 늙은 백인은 물컵을 들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 정대성의 표정이 차츰 진정되자 비로소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탁!손가락 울리는 소리에 정대성은 잠에서 깨어났다. 정대성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당황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사방의 훈훈한 정경이 보이자 정대성은 비로소 소파에 천천히 기대어 오른손으로 양미간을 힘껏 비볐다.“너는 좋은 아이야, 근대 최근에 정신적 자극을 받아서 마음을 가라앉혀야 해. 어둠이 곧 지나가고 이제 너는 빛을 보게 될 거야.”늙은 늙은 백인이 정대성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정대성은 양미간을 문지르던 손을 떼고 애써 웃음을 보였다.“그럴게요, 고마워요, 의사 선생님. 선생님의 도움 없이는 편안한 잠도 잘 수 없었을 거예요.”“하하하.”늙은 백인이 초방의 머리를 부드럽게 문질렀다.“그래, 과거는 잊고 앞을 내다봐, 라우드가 오늘 널 보내주겠다고 나랑 약속했어. 집에 가서 앞으로의 인생 아버지와 함께 잘 살아.”정대성의 감정이 격해졌다. 갇혀 있는 동안 늘 겁에 시달렸는데 이제야 좋은 소식을 듣게 되었으니 말이다.“고마워요, 의사 선생님, 정말 집이 너무 그리웠어요, 아버지도 보고 싶고, 오늘 밤에 만날 수 있는 거죠? 꿈이 아니라 현실적인 만남이요.”오래 갇혀 있어서 아직도 늙은 백인의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다.그동안 정대성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망가려고 했지만 결코 뜻대로 되지 않았다.하여 갑작스러운 소식에 아직도 믿을 수가 없었다.“하하하, 트라우마가 좀 있는
정대성은 감격에 겨워 펄쩍펄쩍 뛰었다.“아, 아니요, 저 집에 갈래요, 여기에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아요.”라우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넌 정말 뭘 몰라도 너무 몰라, 여기에 있는 게 거기보다 좋지 않아? 훨씬 앞서 있잖아. 아니야, 됐어, 말하지 말자. 이젠 공항으로 갈 시간이야.”“네네, 근데 제 물건은요? 아직 치우지 않아서.”“치울 게 뭐가 있어? 그 쓰레기들은 다 태워버렸어, 뭐 돌아가지 않아도 되고.”라우드는 차가운 눈빛으로 정대성을 바라보았다.정대성은 깜짝 놀라며 황급히 손을 저었다.“아, 아니예요, 그 물건들 안 가질래요, 저 집에 갈 거예요!”라우드는 큰 손을 들어 정대성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힘에 정대성이 몸을 비틀거렸다.“그렇지, 빨리 따라와, 아니면 늦어.”라우드는 정대성을 끌고 차에 탄 뒤 공항을 향해 질주했다.저녁 7시 전에 한성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했다.최신형 걸프스트림 비행기를 탄다고 해도 6시간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라우드에게는 시간이 정말 촉박했다.제11전투팀은 이미 공항에 집결했다. 달려온 라우드를 보자 전투팀 팀장인 월리스가 다가와 라우드와 악수를 했다.“저는 제11전투팀 팀장 월리스입니다. 위의 지시에 따라 임시로 이쪽에 파견되었는데 현명한 지휘자이기를 바랍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그쪽 지휘권을 박탈할 거예요.”월리스가 매우 무례하게 말했다. 월리스가 보기에 라우드 같은 놈은 전투를 지휘할 줄도 모르기 때문에 믿음이 가지 않았다.라우드는 어깨를 으쓱하고 웃으며 말했다.“구체적인 전투지휘는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 언제, 누구를 상대할 지만 알려드릴게요, 나머지는 그쪽에서 알아서 하세요.”“그러길 바라네요.”그렇게 말하고 월리스는 몸을 돌려 살벌한 부하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11전투팀 팀원들 모두 가지런한 발걸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옆에서 계속 보고 있던 정대성은 겁에 질려 두 다리를 떨었다.“저를 데려다 주는 거 아니었어요? 왜 전투팀도
장 팀장은 탁자 위의 커피를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윤해동이라는 정비공을 사칭한 사람을 추적하느라 장 팀장은 이미 밤을 새웠다.부어오른 눈시울에 검푸른 빛이 가득했다. 밤을 새운 장 팀장은 바쁜 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조사 결과 아직 없어?”“조금은 나왔어요. 그쪽 동네에 가서 알아봤는데 사건 당일 오후에 윤해동을 사칭한 사람이 숙소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옆집 말로는 집에 들어간 후 얼마 되지 않아 검은 옷과 모자를 쓴 사람이 거기에서 나왔다고 하네요.”“이 단서에 따라 CCTV를 확보해 추적한 결과, 검은 옷 입은 사람이 시내로 간 것이 발견되고, 마지막 흔적이 사라진 곳은 한 클럽입니다. 지금 사람을 보내 그 클럽을 조사해보려고요.”장 팀장은 미간을 찌푸리고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피운 뒤 말했다. “윤해동 방에서 나온 사람의 외모와 특징을 비교해 봤어?”“비교해봤는데 검은 옷 그자와 윤해동 체형 차이가 컸고, 얼굴은 찍히지 않아 위장에 능한 역정찰 베테랑일 것으로 추정됩니다.”들으면 들을수록 장 팀장의 마음은 더욱 섬뜩해졌다. 들어보니 베테랑 고수인 것 같고, 보통 인물이 아니다.그리고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면 그 사람 결코 평범한 지원군이 아닐 것이다. 아마 다른 중요한 사명을 짊어진 것 같았다.흔적을 드러낸 다음 도망치기는커녕 시내로 되돌아간 것을 보아 이강현이 타켓일 수도 있다.잠시 망설이다가 장 팀장은 핸드폰을 들고 이강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 선생님, 접니다.”“네, 장 팀장님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세요?”장 팀장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정비공으로 사칭한 놈이 시내로 도망쳤는데 한 클럽에서 행방을 잃었어요.”“아마 다른 임무가 있는 것 같은데 이 선생을 노려볼 가능성이 커요,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밀착경호해 드리려고요.”이강현이 담담한 웃음을 보였다.“호의는 고맙지만 그렇게 번거로울 필요 없어요, 제가 조심하겠습니다.”밤에 또 정중천 아들을 교환하러 가야 하는데 그런 곳에 경찰이 따라갈 수는
관인당에 도착한 이강현은 맛 좋은 음식 몇 가지를 주문하고 포장하여 차에 실었다.우지민이 웃으며 이강현을 바라보았다.“사부님, 이래도 되는 거예요?”“왜 안 돼, 진효영 그 계집애만 넘어오면 돼.”이강현이 괜찮다는 듯이 말했다.진효영에 관해서 과정만 있으면 되니까 그 이상이면 선을 넘기가 쉽다.우지민이 이강현을 차로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이강현은 차에서 내리면서 우지민에게 저녁 7시에 다시 자기를 데리러 오라고 하였다.저녁 선대산에 가서 톰슨과 정대성을 교환하는 중요한 일이 아직 남아있다.사실 교환 건은 이강현이 가도 되고 안 가도 되지만 이강현은 톰슨의 배후를 더 깊이 알려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그 밖에 정중천의 실력도 걱정되었다. 만일 정중천 팀 전체가 죽음을 당한다면 정말 큰일이다.이강현이 포장한 요리를 들고 집에 돌아오자 진효영은 볼을 부풀리고 이강현을 노려보았다.“운란 언니, 봐봐요, 오빠 사기꾼이에요, 말만 예쁘게 하고, 맛있는 거 해준다면서…… 흥!”고운란은 웃으며 진효영을 껴안고 달랬다.“있으면 됐지 뭘 그렇게 까다롭게 굴어?”“내가 언제 까다롭게 굴었다고, 오빠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거잖아요. 말도 없이 밖에 나가고, 무슨 짓 했는지 누가 알아요.”진효영이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이강현은 어이가 없는 눈길로 진효영을 바라보았다.‘이 녀석 정말 시비의 환생이야.’“관인당에 가서 포장한 거야, 맛있는 걸로만 골랐어, 얼른 와서 먹어.”이강현이 식탁에 음식을 올려놓자 향기가 퍼졌다.진효영은 목구멍을 굴리며 참지 못하고 침을 삼켰다.아침에 고운란과 같이 영산사에 다녀왔는데 진효영의 체력이 많이 소모되어 돌아가는 길에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하지만 방금 이상한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바로 가서 먹기에는 체면이 서지 않아 그냥 배고픔을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이강현은 젓가락을 꺼내 해삼 한 조각을 집어 빙그레 웃으며 고운란의 입에 갖다 주었다.“여보, 입 좀 벌려봐.”고운란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이강현 세 사람이 즐겁게 점심을 먹는 동안 우영민은 한숨을 쉬며 점심을 먹고 있었다.손에 든 환자식을 보고 우영민은 두 입만 먹고는 맛이 없어 더 이상 입에 대지 않았다.옆에 있던 한 남자가 우영민을 쳐다보고는 비웃으며 말했다.“아직도 도련님 티를 내는 거야? 빨리 먹어, 오늘 다 먹지 않으면 맞을 각오해.”우영민이 애처롭게 말했다.“병원 환자식 기름기가 없고, 아무 맛도 없어요. 건강하지만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요.”하루 종일 맛있는 것만 먹다가 이런 걸 먹으려고 하니 도저히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홍세영이 웃으며 말했다.“허허, 나가고 싶어? 아침에 몰래 도망친 일 생각 안나? 그것 땜에 내가 얼마나 혼났는지 알아?”“그럼 시켜먹어도 될까요? 제가 시킬게요, 같이 먹어요.”우영민은 비위를 맞추며 말했다.아침에 이강현을 만나고 돌아와서 우영민은 구양지 제자들에게 붙잡혀 한바탕 심문을 당했다. 그러나 우영민은 다른 이유로 둘러댔다.잠시 얼렁뚱땅 넘어가긴 했지만 감시도 따라 강화되어 홍세영의 24시간 감시를 받아야 했다.“배달? 꿈 깨, 안 먹으면 앞으로도 먹을 생각하지 마.”홍세영은 독살스럽게 말했다.강연간은 바로 생각을 접고 다시는 꺼내지 못했다. 조금 맛없을 뿐 참고 먹으면 그만이다.개를 숙이고 힘껏 밥을 긁어모으면서 우영민은 밥을 거칠게 깨끗이 먹어 치웠다. “다 먹었어요, 이번 일 어떻게 된 건지 안시잖아요, 저 정말 억울해요.”우영민은 배불리 먹은 후에 계속 자기가 억울하다고 하소연하였다.“억울하다는 게 중요해? 그런 말 말고 빨리 돈이나 꺼내, 그럼 바로 풀어줄게.”“너무 많이 요구하잖아요, 좋은 마음인데 사고가 좀 있다고 하여 어떻게 제 책임일 수 있어요.”“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우리 사람이 몇인데, 2000억이라고 해도 한 사람당 몇 십 밖에 안.”우영민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비록 우씨 가문이 돈이 풍족하다 해도, 사람이 많아 강연간에게 주어진 돈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현재 강연간이 소유한 자산은 기껏
홍세영은 족발을 다 먹고 나서 나머지 뼈다귀를 접시에 던졌다.“죽고 싶으면 가던지, 민지 형 지금 기분이 별로야, 가면…… 허허.”우영민은 목을 쳐들고 겁 없이 말했다.“민지 형 꼭 만나야 돼요, 여기에서 죽던 거기에서 죽던 어차피 다 죽는 거잖아요!”홍세영은 눈을 흘기고 우영민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우영민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우영민은 홍세영을 따라 병원 건너편에 있는 호텔로 갔다. 호텔은 이미 구양지의 제자들에 의해 세 층 전체가 예약되며 전 세계에서 몰려든 구양지의 제자들이 묵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해외에서 구양지의 이름을 빌려 무관을 차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구양지가 죽으면 그들의 무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만약 무관의 학생 수가 격감하면 수입도 큰 영향을 받게 된다.그래서 다들 무관을 제쳐두고 서둘러 각지에서 몰려왔다.호텔 회의실 안, 서민지가 매서운 눈빛으로 단상에 앉아 구양지 제자들을 훑어보았다.“사부님 목숨이 위태로울 지금에 우리가 제가로서 할 도리를 해야 하는데 너희들 요 며칠 뭘 했어? 사부님 복수에 힘을 보태기나 한 거야?!”백여명의 제자들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서민지가 한숨을 쉬었다. 서민지는 이들이 여기에 온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 구양지가 죽기 전 마지막 한 입 뜯어먹기 위해 달려온 것이다.“우리가 힘을 쓰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기다리고 있었어요.”“네, 민지 형의 말에 따르겠습니다. 시켜만 주세요.”“사부님 복수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거예요.”몇 명의 겁 없는 제자들이 저마다 말을 건넸다. 서민지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이내 냉소를 지었다.“그렇게 말한 이상 나도 서슴치 않을 거야. 나 중요한 소식 하나 받았어. 지금 계획 중이야.” “말만 하세요, 제대로 따르겠습니다.”서민지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아래 구양지 제자들을 둘러보고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소식에 의하면 이강현과 사이가 괜찮은 정중천이 오늘 밤 외국인과 거래를 한다고 해.
“무슨 소리야! 이강현 그 자식 내 손자 발 뒤꿈치에도 못 가! 딴 소리 말고 그냥 할 건지 말 건지나 말해.”어르신은 말을 마친 후 분노에 찬 눈으로 이강현을 노려보았다. 고운란이 이강현의 감언이설에 속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저 역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강현이 한 말이 바로 제 뜻이예요.”“너 정말! 나 너 같은 손녀 없어, 너희들 우리 고씨 집안 자식 아니야!”어르신이 소리를 지른 뒤 휴대전화를 떨어뜨리고 화가 나서 고건민에게 더 심한 말을 하려고 할 때 고건강은 어르신을 힘껏 잡아당겼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화내면 몸이 상해요, 진정하세요.”고건강은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만약 고씨 집안이 무너지면 고운란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기회를 잡아 잘 보이려고 하였다.어르신은 고건강을 노려보며 고건강까지 욕하려고 하였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형님한테 끌려가면 안 돼요. 큰 형이 둘째 형한테 원한이 많은 거 아시잖아요. 우리 사이가 틀어지면 그게 큰 형이 바라는 거예요.”“근데 지금 둘째 형 쪽이 대세인데 앞으로 그쪽한테 기대할 지도 모르니까 사이가 틀어지면 우리도 득 볼 게 없어요. 일단 넘어가세요.”이득 외에 고건강 눈에는 도덕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충분한 이득만 얻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다 팔아먹을 수 있었다.그래서 지금 고건강은 자기 먹거리를 챙기기 위해 고민국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르신도 늙은 여우라 고건강 말을 듣고 속으로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방금 화가 난 김에 하마터면 일을 그를 칠 번 했다. 지금 고운란의 위세든, 이강현이 말한 진성택과의 관계든 두 사람의 세력이 강해짐을 보여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나서 어르신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고건강의 말이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셋째야, 네 말이 맞아, 방금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어.”“잘 생각했어요. 이럴 때 강력하게 나가면 두 쪽 다 다치게 돼요.”어르신 표정이 느긋해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현의 손에서 득을 못 보게 될 것을 알아차리고 어르신은 즉시 전략을 바꿔 고운란을 찾기로 하였다.뭐라해도 자기 친 손녀인데 할아버지가 부탁하면 아무리 싫어도 자기 말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강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어르신이 좀 지나치시다고 생각했다. 할말 못할 말 다 했는데 늙은 티를 내면서 덕 좀 보려고 하니 어이없었다.“할아버지, 상황은 다 얘기했고, 계속 고집부리시겠다면 운란에게 전화하세요.”“보자 보자하니, 네가 누구인 줄 알아! 너는 그냥 이 집안의 데릴사위일 뿐이야!”고민국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허허.”이강현은 가볍게 웃으며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다.“너 무슨 태도야! 거기 서!”고민국은 앞으로 나가 이강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이강현을 혼내려고 하였다.고건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형님, 말로 하시죠, 화내지 마시구요.”“흥! 쟤 말 잘하는 거 좀 봐? 너무 건방지잖아!”어르신이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입 다 다물어, 운란이한테 전화할 거야!”고민국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강현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이강현은 차가운 눈으로 구민국을 바라보았다. 고민국은 뒷머리가 섬뜩한 것을 느끼며 이강현의 눈빛에 완전히 겁을 먹고 손을 놓아버렸다.“너 여기 가만히 있어, 내 명령없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고민국은 겁을 누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전화가 연결되었고, 전화 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 할아버지.”“빨리 돌아와, 할 말이 있어.”고운란이 어리둥절했다. 지금은 손님을 접대해야 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할아버지, 아빠랑 이강현이 돌아가지 않았나요? 무슨 일 있으세요?”“이강현 그 새끼 얘기 꺼내지도 마! 그 자식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 있어. 너 지금 원일그룹 사장 아니야? 집안 사업 망하게 생겼어, 원일그룹이 사라고 해.”고운란이 듣던 중 자기 할아버지 상업도덕에 어긋하는 말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할아버지, 지금 손님을 접대해
어르신은 전혀 놀라지 않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강현을 보고 있는데 마치 금덩어리를 발견한 눈빛이었다.“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어르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고민국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황급히 몸을 숙이고 어르신 귀에 대고 말했다.“아버지, 이 쓰레기랑…….”“흥!”건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은 사람을 잡아먹는 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고민국을 노려보았다.“쓰레기는 네가 아니야?! 회사를 너한테 맡기고 나서 지금 무슨 꼴이야!”“아버지,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아무 쓸모 짝도 없어, 이강현을 봐봐, 이게 진정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어르신은 말하면서 고민국에게 눈짓을 했다.이강현 때문에 들어온 오더이니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이때 좋은 말 몇 마디로 이강현을 안정시키면 잃어버린 오더를 모두 찾아올 수 있고, 고씨 집안 사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아, 네네, 이강현 너 얼른 할아버지 옆에 앉아, 내가 의자 가져다 줄게.”고민국은 의자를 들고 어르신의 옆에 놓았다. 의도적인 호의였다. 이강현은 의자에 앉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큰 아버지가 들어온 의자 제가 감히 어떻게 앉겠어요. 할아버지의 뜻도 이해합니다. 근데 고씨 집안 제품을 사면 진성택도 돈을 내면서 받는 거니까 저도 진성택이 계속 손해보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어르신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이강현이 한 마디로 그가 곧 꺼낼 말을 막아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색하게 웃고 나서 어르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진성택이 어떻게 손해를 봐, 그 사람 돈 많잫아.”“돈은 많는데 손해보면서 우리를 돕는 건 사실이잖아요. 전에 저를 도와준 건 갚을 게 있어서 그랬고, 지금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니 거두어들여도 당연한 거죠.”이강현은 그들을 돕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지금 이 상황에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심술궂게 굴어 이강현으로 하여금 그들을 도울 생각을 단념하게 했다.만약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했다면 도와줄 수도 있었다. 고씨
“진성택과 제 관계는 말할 필요 없고, 말 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아시면 돼요.”이강현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들어 상위권의 기세를 보여주었다.이강현의 도도한 모습에 고민국과 고건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진성택이 왜 네 말을 들어, 네가 뭐라고!”고건강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강현은 고건강을 상대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어르신만 바라보았다.어르신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굳은 얼굴로 고민국에게 말했다.“전화해서 진성택 지시 맞는지 확인해봐.”“아버지! 그걸 왜 물어봐요. 순전히 허튼소리예요! 믿을 필요 없어요!”“하라면 하지, 쓸데없는 말이 왜 그렇게 많아.”어르신의 표정이 더욱 언짢아졌다.고민국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어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꺼내 바이어들의 전화를 뒤지기 시작했다.고건민은 그 틈을 타 이강현을 끌어당기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솔직히 말해 봐, 진성택이랑 무슨 관계야?”“제가 진성택 손자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운란이 힘들어 하니까 그냥 도움을 요청한 거예요.”고건민은 눈알을 굴리더니 이강현을 깊이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고건민의 속으로 이강현의 해명을 믿지는 않았지만 진성택이 이강현의 지시를 따른 다른 말은 믿었다.예전에 왕씨 어르신 생신 때 진성택이 이강현을 데리러 차를 몰고온 장면이 떠올리고 고건민은 이강현과 진성택 사이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더욱 깊이 믿었다.그러나 지금 고건민은 깊이 따질 마음은 없고, 오히려 고민국과 고건강이 망신을 당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였다.몇 년 동안 고건민은 고민국과 고건강으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았으며 많은 고통을 겪었으니, 지금 그들이 좌절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당연히 더없이 기쁜 일이다.고민국이 건넨 전화는 이미 상대방에게 연결되었고, 연결된 후 상대방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열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형님, 저 민국이예요.”“어 그래, 나 지금 회의 들어가봐야
“운란이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도우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도움을 수 있죠.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가족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이강현이 말을 마치자 그들 모두 가슴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체면이 깎인 어르신은 고민국을 매섭게 노려보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를 원망했다.고민국은 이를 악물고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네가 뭘 안다고 나서?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래도 운란이 우리 회사 제품 독점판매해서 도와줄 수 있잖아!”“그건 돕는 게 아니라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거죠, 그럼 한 달도 못 버티고 쫓겨날 건데 그걸 바라세요?”이강현이 되물었다.할 말을 잃은 고민국은 이강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뭘 그렇게 말해, 우리 제품 사다가 중간에서 가격을 올려 팔면 되잖아, 실적도 올리고!”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국의 말에 동의하였다.“민국이 말이 맞아, 회사 제품을 사가서 다시 팔면 문제없어.”“허허.”이강현은 약간 경멸하는 눈빛으로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왜 오더가 빠지는지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기술, 생산라인, 원가 아무 것도 경쟁력이 없는 제품 누가 사겠어요?”“전에 장사가 잘 됐다는 얘기하지 마시구요, 그건 제가 받아온 오더예요! 운란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제가 진성택에게 사람을 시켜 오더 내리라고 부탁했어요!”이강현의 말이 나오자 방 안의 사람들 모두 놀라하며 눈을 크게 떴다.사실 그들도 회사 제품이 가격이 높지만 그에 비해 품질이 뒤떨어 시장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운란이 오더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자신의 미모로 고객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강현이 한 말은 그들의 생각을 뒤엎었다.이강현의 말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너, 너 여기서 무슨 헛소리야!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진성택을 찾아? 진성택이 무슨 사람인데 네가 부탁해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 거 같아?!”고민국은 이강현에게 손가락질하며
어르신의 엄격한 말투에 고건민의 마음은 두려웠다.“그래요 아버지, 운란이 사장이라도 아버지 손녀딸이에요.”“흥!”어르신이 콧방귀를 뀌며 눈을 지긋이 감고 말했다.“사장이라고 집 장사도 잊은 게야?! 있는 지분을 다 팔았다고 연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해?!”“그게…… 일도 그만뒀는데 그럴 명분이 안 되죠.”고건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둘째 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운란이 나가고 나서 오더 크게 줄었다고 들었어, 네 딸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별말 없이 지분 팔 때 알아봤다니까, 갈 곳을 찾아두고 가족 사업 망치려고 작성한 거 맞죠.”고건강이 따라 말했다.그들의 비난에 고건민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다.이미 마음속 선입견을 두어 고건민이 뭐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고건민도 지금 말하고 있는 이유 모두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왜 말이 없어? 인정 못하겠어? 너희들 정말 이렇게까지 비열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족 사업 망치고 나서 우리한테 미안하지도 않아?!”고민국이 노호했다.얼굴이 하얗게 변한 고건민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아니요, 집안에 해가 되는 일 정말 한 적이 없어요. 아버지 믿어주세요.”“다른 말은 필요 없고, 원일그룹도 의약업을 하고 있지, 운란이 집안 사업에 도움을 보태라고 말해, 오더도 주고, 지금 그만한 능력이 있는 거 아니야?”어르신이 이제서야 용건을 말했다. 고건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목이 쉬어 말했다.“운란이 사장이지만 아직 막 부임해서 너무 티 내서 하면 안 돼요, 그보다 지금 회사일 운란이 한 마디로 움직이는 거 아니잖아요.”“그래서 안 하겠다는 거야? 눈뜨고 집안 사업이 망하는 거 보고싶어? 너 그러고도 내 자식이야?!”어르신은 눈을 부릅뜨고 고건민을 노려보며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고건민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이강현을 바라보며 이강현이 빨리 와서 도와주기를 바랐다.“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건민은 이런 대우에 푹 빠졌다. 마치 제왕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다리를 꼬이고 흔들면서 고건민 머리를 쳐들고 말했다.“여보세요, 누구세요?”“누구겠어! 네 형이지!”고민국이 화 내며 소리쳤다.고건민은 귓가에 있는 전화를 내려 발신자를 확인하였다. 고민국 번호이다.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에 고민국 전화를 받은 고건민은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은 기분이었다.“아, 제가 지금 바빠서 누구 전화인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어요. 무슨 일이예요?”“아버지가 널 찾아, 빨리 돌아와.”고민국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요? 아버지가 왜요? 혹시 몸이…….”“닥쳐! 아직 건강해, 돌아오라고 하면 빨리 돌아와!”고건민의 마음이 비로소 놓였다. ‘몸이 안 좋은 줄 알았잖아.’‘근데 이때 왜 날 불러, 왠지 수상해.’“네, 곧 돌아가겠습니다.”전화를 끊고 고건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강현을 향해 걸어갔다.지금 고운란은 한성 거물들을 모시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이강현을 찾아갔다.“아까 본가에서 연락이 왔어, 나보고 어르신 만나러 가래.”고건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할아버지도 뵐 겸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그게…….”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고건민은 이강현이 따라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강현이 따라가면 번거로운 부분도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 그럼 지금 출발하자.”“네.”이강현은 고건민과 함께 차를 몰고 어르신의 집으로 향했다.곧 두 사람은 어르신의 집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어르신의 싸늘한 눈빛에 고건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건민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방금 밖에서 산 과일과 영양제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어르신 앞으로 걸어갔다.“아버지, 저 왔어요.”“흥! 날 잊은 건 아니고?”어르신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제가…….”“뭘 말하고 싶은데?! 네 딸이 사장이 됐다며, 이제 고씨 집안과도 인연을 끊을 거야?!”고건민의 이마에 식은
고민국과 고건강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어르신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위급한 상황에서 어르신이 나서야 했다.두 사람이 상의를 마친 후 급히 어르신 거처로 달려갔다.의자에 누워 라디오를 끌어안고 듣고 있던 어르신은 두 아들이 황급히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곧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너희 둘 무슨 일로 왔어? 할말 있으면 그냥 말해.”어르신은 이미 알아차렸다는 듯이 바로 말했다.고민국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헤헤, 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니 아버님이 직접 나서서 도와주세요.”“내가? 집안일에만 손댈 수 있는 노인한테 경영은 아니지.”어르신이 눈을 감았다.“집안일 맞아요. 둘째가 경영에서 물러났잖아요. 저랑 건강이 2억으로 그 지분을 사들이고 나서 고운란도 회사에서 퇴직한 거 아버지도 알고 있죠.”“맞아, 그건 나도 알고 있어, 2억이면 은혜를 셈이지.”일찍이 고건민 집안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어르신이라 그들이 경영에서 물러난 것도 바라는 바이다.고민국은 조금 난처한 듯 고건강을 쳐다보고는 고건강에게 계속 말하라고 눈길을 주었다.“운란이가 회사 업무 쪽 일을 맡았잖아요, 그래서 걔가 퇴사한 후 원래 바이어들이 주문을 취소해서 회사 매출이 떨어지고 있어요. 근데 운란이가 원일그룹 사장이 된 거 있죠!”눈을 감고 있던 어르신이 눈을 번쩍 뜨며, 눈에 의아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뭐?! 고운란이 어떻게 원일그룹 사장이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 이제 겨우 몇 살인데, 어떻게 사장이 될 수 있어?”“정말이예요, 아까 티비에도 나왔다니까요, 한성에 이름을 댈만한 사람들이 다 참석했어요. 고운한 그 년이 분명 무슨 거래를 한 게 분명해요.”“콜록콜록.”고건강 말이 빗나간 것을 보고 고민국은 힘껏 기침을 두 번 했다.“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운란이 보고 원일그룹 오더를 우리한테 넘기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기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어르신은
“작은 좌절일 뿐이야, 이겨내야 해! 고운란이 없으면 회사가 망해? 예전에도 힘든 적이 있었잖아!”고민국은 책상을 힘껏 치며 소리내어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건강은 입을 삐죽거리며 이상한 말투로 말했다.“지난번 난국도 고운란이 해결한 거잖아요, 잊었어요?”빵!구건국의 주먹이 책상에 세게 부딪혔다.“무슨 뜻이야?”“솔직히 말해 지금 이 상황 고운란과 관련이 있는 거 분명해요. 그 바이어들은 대부분 고운란이 데려온 겁니다, 형님, 잘 생각해보세요.”고민국이 아무 말없이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앉았다.사실 고민국도 생각을 못한 바는 아니다. 바이어 주문 취소가 고운란 퇴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미 구운람을 쫓아냈고, 지분까지 헐값에 사들였는데 지금 후회하여 고운란을 모셔온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tv 속 화면은 원일그룹 정문 앞으로 옮겨졌고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되었다.센터에는 고운란과 이강현이 서 있었고, 기타 한성 거물들도 모두 테이프 커팅식 대열에 포함되었다.곧바로 원일그룹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됩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원일그룹 고운란 사장이 서 있고…….”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고민국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두 손으로 가슴을 꽉 쥐었다.고건강은 부러운 듯 질투의 눈빛으로 센터에 선 고운란을 바라보며 그 자리가 자기 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품었다.수천억의 대그룹을 손에 넣는 기분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푹!”고건강이 한창 부러워하고 있을 때 고민국이 피를 토했다.피가 멀리 뿜어져 나와 TV의 스크린에 튀어 스크린에 핏기를 보였다.“형, 형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왜 피를 토해요!”고건강이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해하였다.고민국은 입가의 피를 닦았다. 피를 토하고 나니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난 괜찮아!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고운란이 원일그룹을 사장이 될 줄은, 그러면 우리 고씨 가문에게도 얼마간 혜택을 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