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 언니, 어떻게 할 거야?"오이연이 물었다."그들은 지금 언니한테 온갖 구정물을 퍼붇고 있다고. 언니 동창들이 모두 나서서 언니를 모욕하는 것도 봤어. 정말 이해할 수 없어, 모두 같은 친구인데, 친구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눈을 뜨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지!”“눈을 뜨고 거짓말을 하는 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어. 어쨌든 그때 나는 그 애들이랑 가까이 지내지 않았고, 너랑 노형원이 사귀는 걸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을 거야.”한소은은 담담히 말했다. 이 일은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했고, 게다가 잘 계산해 보면 아마 졸업을 한 뒤에 그녀가 첫 상을 받자 노형원이 진지하게 고백을 했고, 그 후에야 그들은 정식으로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후에 그녀에게 그 '사고'가 일어났을 때, 그는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감동을 한 건지, 아니면 또 다른 감정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빠르게 감정이 고조되었고, 한소은은 기꺼이 그의 뒷바라지를 하며 밤낮없이 실험실에 박혀서 그와 향료 외에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당시 그녀는 정신이 나가 있었고, 게다가 그 일이 있고 난 후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지금 다시 진정하고 뒤돌아보면 그녀가 내딛는 한 걸음마다 구덩이었고 함정이었다. "그랬구나......”오이연은 눈썹을 찡그리며 숟가락을 살며시 물었다.“그럼, 언니랑 노형원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거야? 나랑 세 사람 말고, 다른 친구는 없는 거야?”소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설령 있닥 해도 다른 사람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어. 이 일은 애초부터 해명을 할수록 의심만 받는 일이니까.”"그럼 그 사람들이 이렇게 계속해서 언니한테 다 뒤집어 씌우게 만들 거야? 정말 아무런 방법이 없는 건가?”오이연은 그녀를 대신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정말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남에게 모욕을 당하고도 아직 결백을 주장하지 못하다니, 얼마나 답답한가!"사실, 지금 방향
한소은은 오이연과 만난 후에 바로 돌아가려 했지만, 뜻밖에도 조현아의 전화가 걸려왔다.그녀는 조현아의 휴대폰 번호가 없었기에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잠시 멍해있다가, 이내 반응을 해왔다. "1차와 2차 시험은 준비가 되었는데, 한소은 씨도 준비가 다 되셨나요?"조현아는 단도직입적으로 그녀에게 물었다.한소은은 생각을 한 뒤 말했다.“언제를 말씀하시는 거죠?”한소은 씨는 급한 게 아니었나요? 오늘 안 되나요?”조현아의 말투에는 도발의 의도가 묻어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도발에 두려워하지 않았고, 도전에 직면하는 건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가장 무서운 건 뒤에서 내리꽃는 칼이었다. "네, 바로 회사로 갈게요, 20분 안에 갈 수 있습니다.”그녀는 시간을 확인한 뒤 대답했다.그녀가 시간에 대해 물었던 이유는 단지 다음 주 재판 시간과 겹칠까 봐 걱정돼서였고, 조현이가 이렇게 서두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속전속결로 한 사람을 골라 실력을 따지려고 한다면 그녀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었다. 조현아는 그녀에게 주소를 보냈고, 회사에 돌아가지 말고 바로 이 주소로 가라고 했으며 자세한 곳은 말하지 않고 그냥 가면 알 수 있다고만 했다.그 주소를 보고 있자니 위치가 조금 멀리 떨어진 듯했고, 생각을 한 뒤 위치를 바로 김서진에게 보냈다.김서진은 회의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던 도중 휴대폰 액정이 밝아지는 걸 발견했고, 이름을 힐끗 보고는 휴대폰을 들고 재빨리 그녀에게 답했다.‘무슨 일이죠?’“이 주소를 알고 있어요?”한소은은 그가 회의 중인지 모르고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음성 메시지인 것을 본 김서진은 회의를 계속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힐끗 쳐다보고는, 손에 든 펜으로 테이블을 툭툭 치며 옆에 있던 부사장에게 말했다."먼저 회의를 진행하고 계세요.”말을 마친 그는 일어나 곧장 회의실을 나왔다. 비어 있는 사무실에 도착해서야 그는 음성 메시지를 들었고, 목소리를 들으니 그녀가밖에 있는 것 같았다.한소은이 준 주
실험 기지의 위치는 일반적으로 도심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데, 첫 번째 이유는 부지면적이 작지 않으며 교외에서 이런 곳을 찾기가 비교적 쉽고 가격도 매우 적당해서였고, 두 번째로는 실험을 할 때는 원래 다른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아야 하며, 게다가 교외에서는 재배를 하기 쉽고 향료의 원자재도 매우 풍부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시원 웨이브에서도 실험실이 교외에 있었지만, 노형원은 경제력이 부족해서 낡은 공장을 절반만 임대를 했으며, 매번 향료를 구입할 때마다 그는 한동안 쉬지 않고 생색을 내기 바빴다. 물론 완제품이 나왔을 때 그는 매우 기뻐했고, 그러고 나서 그녀와 미래를 자유롭게 생각했다.그렇다, 그저 생각만 할 뿐이었다.장소가 조금 많이 벗어났지만 다행히 태기로 바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차에서 내렸을 때 보인 것은 공장 건물이 아니라......빌딩이 보였다.평지에서 높이 솟아오른 건물 외관은 매우 깔끔해 보였고, 이 지역에 이런 빌딩이 있다는 건 매우 의외였다. "조 팀장님, 도착했습니다.”그녀는 조현아에게 전화를 걸었고, 건물 입구 앞에 서서 굳게 닫힌 문을 보았다.건물 안에는 경비원이 빈틈 없이 지키고 있었으며 출입 금지 장비도 있는 걸로 보아실험 기지는 틀림없이 여기였다. "5분만 기다려요.”조현아는 짧게 말하고 곧 전화를 끊었고, 한소은은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주변은 매우 넓으며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도 많지 않아 보였고, 신생 실험기지가 이런 곳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현재 환아를 등에 업고 기세가 등등하니, 예전의 자신처럼 허름한 공장일 리는 없었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부품을 생산하는 건 줄 알 것이다. 5분 뒤 조현아는 문 앞으로 나왔고, 이전과 달리 흰 가운을 입고 머리를 뒤로 묶은 채 모자를 쓴 모습을 했고, 완전히 달라 보였다. 출입 카드를 찍은 뒤 그녀는 서늘한 얼굴로 한소은에게 말했다.“들어와요! 하지만 명심하세요, 아무것도 묻지 말고, 적게 말하고 적게 보고 많이
하지만 이번에 한소은은 그녀의 눈에서 재밌는 구경거리를 기다리는 마음을 찾지 못했고 오히려 약간의 격려를 받았다.그녀는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왜 무서워해야 하죠?”조향사로서 조향 업계에서 향을 만드는 것 외에 향을 억제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모든 향신료가 향기로운 것은 아니며 일부는 악취가 나고 심지어 메스꺼움을 느끼게 할 수 있으며 조향사가 해야 하는 것은 향료 간의 다른 특성을 사용하여 탈취하고 향을 남기는 것이었다.그런데 이렇게 깊은 악취가 나는데, 여기는 각종 악취 실험을 전문으로 하는 실험실인가 보군, 하긴......!조현아가 반드시 자신을 괴롭힐 거라는 걸 알았지만, 뜻밖에도 이런 방법을 쓸 줄은 몰랐다.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향 제조와 관련된 모든 것은 그녀가 관심을 갖는 것이고, 이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의 안색이 여유로워지자 조현아는 그래도 만족한 듯 말했다. "너무 일찍 기뻐하지 마세요, 단지 냄새를 억제하고 향을 남기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줄 아는 건 아니죠? 이건 초보 조향사가 갖춰야 할 수준입니다."“지금 당신에게 시킬 일은 각각 다른 냄새의 검출 데이터를 기록하고 다른 특성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총 48가지 다른 냄새가 있어요. 당신은 3일 이내에 이 작업을 완료해야 합니다. 할 수 있습니까?”"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아요."한소은은 그녀를 담담히 바라본 뒤 말했다."하루, 전 하루면 충분합니다.”조현아는 흠칫 놀라고는 이내 평상시처럼 무표정을 유지했다."그래요, 당신이 분명 하루라고 했습니다! 그때 가서 내가 일부러 당신을 괴롭힌다고 탓하지 마세요. 당신 스스로 허풍을 떤 것이니 성공하든 실패하든, 스스로 인정을 해야 합니다.”"물론이죠!”한소은은 이미 서둘러 일에 뛰어들고 있었다.조현아는 그녀가 흥분한 듯 팔팔 거리는 모습을 보며 왠지 마지막 결과가 기다려졌다.솔직히 말해서, 처음부터 그녀에게 거부감을 느꼈고, 첫인상이 좋지 않아 그 후
한소은은 오후 내내 실험실에 일하면서 거의 물도 마시지 않았다.그녀는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며 한번 일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흥분되어 주변 환경을 완전히 잊어버린다.어느새 날이 저물어 누군가가 실험실 문을 두드리며 떠나라고 재촉했을 때, 그녀는 업무의 난이도가 예상보다 조금 더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시간을 잘 못 계산했다.조현아는 그녀에게 3일의 시간을 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예전에 자신이 실험실에서 일할 때 적용했던 절차와 습관에 따라 시간을 계산하였으며 여기 있다는 것을 잊었다. 그녀가 있고 싶을 때까지 있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시간이 되면 반드시 나가야 한다. 회사에는 당직자 외에는 아무도 남아 있으면 안 된다. 암튼 기밀 자료들이 있기 때문에 그녀도 마찬가지로 실험실에만 있을 수밖에 없다.외투와 모자, 그리고 장갑을 벗고 손을 여러 번 씻고나니 8시가 넘었고 밖은 이미 어두워졌다.조현아는 당연히 일찍 떠났고, 여기서 그녀를 기다릴 일이 없을 것이며 업무가 발표되면 그녀는 단지 결과만 기다리면 된다.한소은은 건물 입구에 서서 건물 안을 보니 대부분 불이 꺼져 있었고 주변의 가로등도 그다지 밝은 편이 아니어서 길이 캄캄해 보여 지나가는 차도 얼마 되지 않았다. 아마 택시를 잡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깊은 한숨을 내쉬며 휴대전화를 꺼내 콜택시를 부르려고 했다.역시 주문을 받는 사람이 없어서 택시를 부르기 힘들었지만 지도를 보니 앞으로 2km 정도 나가면 작은 마을로 갈 수 있어서 그쪽은 교통이 좀 편리할 수도 있겠다.어쩔 수 없이 일단 앞으로 나가봐야 한다.시멘트 길은 그나마 걷기 좋은 편인데, 날이 어두운데다 사람이 별로 없어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얼마 나가지 않아 뒤에서 차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서 한소은은 무의식적으로 뒤돌아보았다. 희뿌연 자가용 차 한 대를 보고 옆으로 비켜주었다.생각 밖에 그 차는 그녀를 향해 달려온 것 같았고, 바로 그녀의 옆을 지나가더니 "삐익" 하고 멈추었다!!!한소은은 무의식적으로 옆으로 뛰
이 작은 움직임도 그의 눈에 들어갔다.김서진은 재빨리 버튼을 눌러 앞좌석과 뒷좌석 칸막이를 올린 다음 다짜고짜로 다친 그녀의 발을 번쩍 들어 자신의 다리 위에 올려 놓았다.차 안의 조명을 좀 밝게 하고나서 발목이 붉어지고 약간 부어오른 것을 보고 그는 바로 눈을 찡그렸다. "당신은 왜 항상 쉽게 다치곤 해요."제가 언제요." 한소은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사실 발을 삐었을 뿐인데 그녀를 마치 도자기 인형처럼 취급했다. 말하자면, 그 사람이…그가 차를 잘못 운전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 아닌가.“근육과 뼈를 안 다쳤으니 집에 가서 연고를 바르고, 가급적이면 며칠간 이동을 삼가해요.” 그는 그녀의 발목을 주물러 주더니 곧 판단을 내렸다.한소은은 놀라워서 "진료도 볼 줄 알아요?"라고 물었다.“보통 타박상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김서진은 그녀를 쳐다보면서 눈썹을 더욱 찡그렸다.콧방울이 실룩거리면서 그는 머뭇거렸다. “당신 몸에서 …”말을 다 하지 못했지만 미간에 의심이 가득한게 분명했다."내 몸에요?" 잠시 멍하니 있다가 한소은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말했다. "아, 내 몸에서 나는 이 지독한 냄새를 말하는 거죠?"김서진은 말이 없었다. "….""내가 실험실에서 일할 때 묻은 것 같아요." 그녀는 옷을 좀 정리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지독한 냄새는 한번 몸에 묻으면 제거하기 어렵고 설령 여러 번 손을 씻어도 계속 몸에서 냄새가 난다.그녀는 이런 냄새를 오랫동안 맡으면서 일했기 때문에 후각이 무감각해졌는데, 다른 사람들이 맡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가봐요.어쩐지 방금 차에 탔을 때, 서한이 그녀를 보는 눈빛이 분명히 무엇을 말하려다 멈추는 것 같았지만 아마 참고 묻지 않은 것 같다."실험실이요?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당신은 향을 만드는 사람이지 악취를 만드는 사람 아니잖아요?" 김서진은 놀라서 물었다.그의 표정을 보고 소은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고, 그의 눈에는 분명히 "당신 나를 속
집에 돌아오자마자, 한소은은 망설임 없이 먼저 샤워하러 들어갔다.바디워시도 엄청 많이 바르고, 직접 만든 자기만의 에센셜 오일까지 발랐다. 한 시간 넘게 몸을 담가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이 향기로운 느낌이 들 때 잠옷을 입고 나왔다.김서진은 이미 다른 화장실에서 씻고 나와서 그녀가 나오는 것을 보고 준비해 둔 큰 수건을 들고 일어나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드라이 안했어요?"그는 그녀가 샤워를 한 후 드라이하는 습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화장실에 모든 게 갖추어 있어도 그녀는 항상 젖은 머리로 나왔다.“헤어드라이기로 두피를 드라이하는 느낌이 별로에요.” 한소은은 자연스럽게 그의 손에 쥐고 있는 수건을 건네받았다.그런데 생각 밖으로 김서진은 수건으로 그녀의 머리를 감싸고 두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으면서 말했다. “앉아봐요.”"나..."그의 고집을 꺾지 못해 얌전히 앉은 후 김서진은 두 손을 수건 위에 대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비볐다.“......”그의 서비스는 정말 꼼꼼했다. 한소은은 조금 망설이다가 그가 자신의 머리를 맘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었다.처음에 적응이 잘 안 되어서 놀라기도 했지만 이젠 점점 익숙해져서 그가 잘해주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한소은은 자신이 꿀단지 속에 빠진 느낌을 받은 것 같아 너무 편안해서 눈이 거의 풀렸다.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 김서진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서 보니까 그녀는 이미 눈을 감고 머리를 살짝 들고 있었다. 그는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손동작은 더 가볍게 두피에서 머리 끝까지 조금씩 두드려 말렸다.젖은 머리로 잠이 들면 몸에 안 좋은데다가 그녀는 드라이를 싫어하니까 이렇게 마른 수건으로 조금씩 물기를 빼는 방법 밖에 없다.한소은은 거의 잠이 들 것 같더니 비몽사몽 간에 그에게 물었다. "이제... 냄새 안 나죠?""어, 그래."이 얘기를 안 해도 되는데…이 얘기를 꺼내기만 하면 김서진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그는 정말 처음으로 온몸에서 악취가 나는 조향사를 만난 것이므로
"맞아요. 제가 자청했어요.""당신 미쳤어요!”김서진이 손을 놓자 큰 수건이 그녀의 어깨에서 소파 위로 떨어졌다.이 일이 심상치 않아서 그는 서한을 시켜 신생에게 물어 보라고 지시했다. 차석진의 답변은 확실히 신제품 실험을 진행하는 동시에 또 하나의 악취 억제 향수 실험을 진행하고 있지만 10일 내에 결과가 나오도록 요구했고, 3명이 같이 이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데 3명 중 보고 올린 명단에는 한소은이 없었다.차석진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금방 알아보겠다고 했다.그런데 지금 그녀는 그에게 하루 만에 데이터 결과를 내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게다가, 그것도 그녀가 자청했다고? 그녀가 미쳤는가?한소은은 김서진이 왜 그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가 안 돼서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면서 눈을 깜박거렸다. "아니, 안 미쳤어요! 어려운 것도 아닌데요."김서진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그녀가 너무 자신만만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너무 오만하다고 해야 할까요?회사의 업무 배치는 모두 근거가 있으며 특별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많이 쉬운 것도 아니다. 10일의 업무량이라면 그만큼 완성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그럼 내일도 그 악취 속에서 하루 종일 몸 담그겠다는 거에요?" 김서진은 심호흡을 하고나서 그녀에게 물었다.내일도 악취 상태로 돌아올까봐 걱정하는건가?한소은은 잠깐 생각을 하고 대답했다. "괜찮아요. 내일 오일과 향수를 챙겨갈 거에요. 그쪽에서 다 씻고 올게요. 걱정마요!""그쪽은 길이 외지고 근무시간도 너무 길어요. 내일 가지 마요." 그는 처음으로 회사가 실험기지를 그쪽에 선택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결정인지 알았다. 저녁 8시가 넘으면 택시 잡기도 힘들고 그녀는 발목까지 다쳤다.그리고 왜 8시 넘어서까지 일할까? 업무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네!"나…" 한소은은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의 안색이 너무 안 좋아서 매우 불쾌해 보였다. 그러나 이것도 자신을 배려하고 걱정해주는 표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