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쳐!”프레드가 갑자기 분노에 찬 표정으로 문 앞에 나타났다.“이 교활한 여자야!”여왕도 깜짝 놀랐다.“프레드?!”“여왕 폐하,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를 못 믿으시는 건가요?”빠른 걸음으로 들어와 여왕 앞에 반쯤 주저앉은 프레드의 얼굴에는 노여움이 가시지 않았다.“그런 게 아니라 난...”멍해 있던 여왕은 뜻밖에도 잘못한 아이 같았다.여왕은 마치 몰래 무슨 못된 짓을 하다가 붙잡힌 것처럼 당황했다.“여왕 폐하, 저는 항상 폐하께 충성을 다했습니다. 폐하의 생명을 위해, 폐하의 영생을 위해 제가 얼마나 많은 실험을 했고,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였으며, 얼마나 큰 노력을 했었지 폐하께서는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폐하께선 지금... 제 충성심을 의심하시는 건가요?”프레드는 배신이라도 당한 듯 마음 아픈 모습이었다.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여왕은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만졌다.“아, 당연히 아니지! 나는 당연히 프레드의 충성을 알고 있고 의심한 적도 없다. 단지 몇 마디 묻고 싶은 말이 있어서...”“그런데 왜 제가 없을 때 물어봐요? 왜 일부러 저를 피하세요? 설마, 제가 못 들을 거라도 있는 거예요?”반쯤 웅크리고 앉아 있지만 여왕이 숨 막힐 정도로 기세가 등등했다.그들을 보고 있던 한소은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그녀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이렇게 딱딱하고 격렬한 분위기가 그녀의 웃음으로 깨졌고, 두 사람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특히 프레드는 더욱 분노하며 물었다.“왜 웃어?!”“당신들 Y 나라가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었어. 신하가 여왕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건 당신들 나라의 특색인가 봐? 아니면... 당신들 나라는 충성심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가?”비웃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담긴 뜻을 알아듣지 못할 그들이 아니었다.프레드의 얼굴이 갑자기 변했다. 분노가 수그러들었고 얼굴빛도 빨갛게 변한 채 한마디 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난 그냥...
“알겠습니다, 여왕 폐하! 이 일은 반드시 속전속결 할 것을 약속합니다!”프레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폐하께서 자신의 몸을 잘 돌보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버티시면 곧 새롭고, 젊고 건강한 몸을 갖게 될 것이고, 폐하께서는 계속해서 완성되지 않은 위대한 일을 할 것입니다!”“그 전에 폐하께서 해야 할 일은 저를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프레드가 다시 한번 강조하자 여왕은 고개를 끄덕였다.“물론 프레드를 믿는다고 하지만... 지금 좀 피곤하구나.”“네, 알겠습니다! 여왕 폐하께서는 쉬셔야 합니다, 정말 여기에 오시면 안 됩니다!”말을 마친 프레드가 밖을 향해 소리쳤다.“여봐라! 여왕 폐하께서 쉬도록 모셔다드려.”곧 누군가가 들어와서 여왕의 휠체어를 밀고 나갔다.방에는 다시 프레드와 한소은만 남았다. 프레드는 여왕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천천히 몸을 돌려 한소은을 바라보았는데 눈에는 원망이 가득했다.“이 교활한 H 국 여자야!”그러던 중 갑자기 손을 들어 손바닥을 바로 날렸다.하지만 한소은이 무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었다. 프레드의 손바닥이 날아왔을 때 미리 준비하고 있던 한소은은 직접 손을 들어 프레드의 손목을 잡은 후 훌쩍 뒤집어 제압해 버렸다.“아아아!”통증을 느낀 프레드가 소리를 지르자 밖에서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뛰어들어 일제히 총을 겨누었다.한소은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힐끗 둘러보더니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프레드, 당신 손이 먼저 부러질까, 아니면 내가 먼저 쓰러질까 궁금하지 않아?”“한소은, 네가 감히!”말을 마친 프레드는 곧 표정이 더 일그러지더니 아파하며 이를 악물었다.한소은이 손에 조금만 힘을 줘도 손목이 이상한 각도로 뒤틀려 이러다가 부러질까 봐 걱정했다.주위에 둘러선 사람들은 손에 총을 들고 있었지만 실제로 총을 쏘지는 못했는데 그들은 프레드의 명령 없이는 누구도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한소은은 손에 프레드가 있으면 그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을 바로 파악했다.“정
그 ‘빠직’ 소리와 함께 프레드는 아파서 소리 질렀다.주위에 총을 든 사람들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그녀를 겹겹이 에워싸 촘촘한 포위망을 형성했지만, 그런데도 경거망동하는 사람은 없었다.“프레드 씨를 풀어.”누군가 소리쳤다.한소은은 그들을 경멸하듯 바라보았다.“프레드가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당장 내 아이를 데려와!”“아무도 움직이지 마!”뜻밖에도,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의 고통을 느끼고 있는 프레드가 소리쳤다.“난 죽어도 상관없어. 죽으면 여왕 폐하를 위해 죽는 거니 가치가 있거든. 그리고 너의 두 아이, 심지어 가족도 함께할 건데 꽤 수지가 맞아!”“내 명령을 들어라.”그는 갑자기 이를 악물고 큰소리로 외쳤다.“아무도, 이 여자를 놓아주지 마. 필요하다면 그녀의 아이를 죽여도 돼!”“너희들이 감히!”프레드가 이렇게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한소은은 안색이 변하며 프레드의 손목에 더 힘을 줬다. 프레드의 팔은 거의 곡선으로 비틀어졌다.“아악.”얼굴에 땀이 날 정도로 아파도 프레드는 여전히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죽을지라도 여왕 폐하의 대업은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한소은, 네가 나를 죽여도 넌 여기서 나갈 수 없어!”그는 흘끗 한소은을 바라보며 여전히 명령하지 않았다.한소은은 할 말을 잃었다.순간 이도 저도 할 수 없게 된 한소은은 프레드가 도박을 하는 건지 자신이 도박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한소은은 정말 프레드를 죽일 수 없었다. 프레드를 죽인다 해도 자신이 이곳을 나갈 수 없는데 하물며 두 아이도 여기에 있으니 말이다.그리고 그들도 당연히 한소은을 죽이지 않을 이다. 그녀의 몸을 써야 하기에 절대 이 몸에 손상을 입히지 않을 것이다.팽팽하던 분위기가 화살이 날아갈 듯 묘하게 바뀌었다.“프레드 씨!”밖에서 누가 뛰어 들어왔다. 아마도 조금 먼 거리를 달려서인지 헐떡거리다가 들어서는 순간 아수라장이 된 상황을 보고 얼떨떨해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무슨 일이야?”이런 상황에서도 프레드는 냉정하
마음속으로는 그의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었다. 굳이 손을 놓지 않아도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프레드의 손은 이미 그녀에 의해 비틀릴 대로 비틀어졌지만 프레드는 조금도 타협할 뜻이 없었다.이래서는 대사관에 있는 다른 사람이 기회를 봐 손으 써도 자신들도 별 볼 일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쉽게 놓지 않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내가 네 손을 비틀어 부러뜨렸는데 네가 가만히 있겠어? 넌 내 아이들을 다치게 할 수 있어!”“꼭 하고 싶었어!”고개를 끄덕이며 프레드가 말했다. 프레드는 고통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었고 눈빛도 적개심으로 가득 찼다.“하지만 H 국 사람들이 즐기는 말이 있지. 두 가지 이익이 모순될 때 중요한 걸 택하라고 말이야. 나도 그 도리는 알거든.”“내가 네 아이를 건드리면 넌 반드시 내 몸에 상처를 주는 방법으로 복수할 것이고, 이는 우리에게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을 거야.”프레드는 표정이 일그러진 채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절대 네 아이에게 복수하지 않을 거야. 오늘 이 일은 나중에 너와 따로 결판을 낼 거지만 지금은 아니야. 이제 됐어?”한소은도 프레드가 한 말을 믿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프레드는 정인군자도 아니니 말을 번복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잠시 생각에 잠기던 한소은은 갑자기 손에 힘을 줘 프레드를 자기 옆으로 잡아당기더나고, 이어서 다른 손으로 볼을 꽉 쥐어 프레드가 입을 벌리도록 강요했다.“뭐 하는 거야...”뒤에 있는 그 글자는 아직 뱉지도 못했는데 프레드는 입안에 뭔가 들어왔다는 걸 느꼈다. 이어서 목구멍이 미끄러지면서 ‘꿀꺽’ 하는 소리와 함께 그 물건은 이미 그의 식도를 따라 내려갔다.프레드가 삼키는 것을 보고 난 한소은은 그제야 손을 떼고 힘을 주더니 프레드를 앞으로 밀었다.프레드가 풀려나자 다른 사람들은 바로 앞으로 가서 그녀를 제압했다.한소은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목구멍을 후비며 무언가를 토해내려고 하는 프레드를 차갑게 바라보기만 했다.“나한테
한소은은 계속 침착하게 말했다.“이 독은 바로 발작하지 않을 거니 걱정하지 마! 아직 일주일의 시간이 있으니, 이 기간에 다른 사람이 네 몸의 독을 해독할 수 있도록 시도해봐, 그러면 나를 신경 쓰지 않아도 돼.”담담한 한소은의 표정은 마치 모든 것은 손안에 꽉 쥐고 있는 것 같았다.프레드는 사실 반신반의했다. 이 환경에서, 그리고 바로 눈앞에서, 한소은이 어떻게 독을 얻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장소를 옮긴 후 생산해내기엔 몸에 뭔가를 숨길 기회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만약 독이 아니라면, 그녀가 자신에게 먹인 것은 무엇이고, 독이라면 그녀는 어디에서 얻었단 말인가?이런 생각에 프레드는 두려움이 밀려왔다.프레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간파한 듯 한소은은 빙긋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여기서 이렇게 많은 날을 지내면서 적지 않은 의사와 간호사와 접촉했고 약과 주사도 많이 썼어. 정말 내가 조금도 남겨두지 않았다고 생각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없을 것 같아?”프레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이 이미 그의 마음을 보여줬다. 그는 분명히 믿고 있었다.한소은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프레드는 한소은의 실력을 보았고, 또한 한소은이 이 방면에 조예가 확실히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번에는 정말 방심한 것 같았다.“공작 전하!”밖에서 사람들이 다급하게 재촉하자 프레드는 짜증스럽게 소리쳤다.“꺼져!”이어 다시 고개를 돌려 한소은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한소은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만큼 독했지만 그렇게 매섭게 쏘아보기만 할 뿐이었다.“이 여자를 가둬. 어떤 음식도 주지 말고 잘 지켜봐!”“하지만 공작님, 음식을 주지 않으면 여왕 폐하께서...”옆에 있던 누군가 이의를 제기했다.“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말을 마친 프레드는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가 옆 사람에게 총을 내던졌다.사람들은 그렇게 황급히 나갔고, 방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소은은 비로소 조용히 안도의 한숨
발걸음을 멈춘 프레드는 목을 움직이더니 한 손으로 목구멍을 누르고, 가볍게 기침을 하다가 다시 삼키는 듯했다. 아무래도 위가 매우 불편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그 자리에 서 있는 프레드는 자신의 몸이 이미 이상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온몸이 따끔거리고 저린 것 같았으며, 손발에 힘이 빠진 것 같았고, 눈도 침침하고,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머리를 힘껏 흔들고 난 프레드는 모든 것이 환각이라고 자신에게 말했다. 한소은 그 여자가 틀림없이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독이 없을 거야. 저 여자가 거짓말을 하는 거야!’하지만 몸이 정말 안 좋은 것 같고, 그녀가 말한 것도 전혀 불가능하지도 않았다.‘빌어먹을!’주먹을 날려 벽을 힘껏 쳤다. 프레드는 방심한 자신에게 화가 났다.원래 모든 것이 자신의 통제하에 있다고 생각했고, 한소은은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하고 손쓸 기회도 없을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프레드는 한소은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가두고 의지를 잃게 했는데 한소은이 뜻밖에도 반격할 수 있고, 몰래 독약을 만들 수 있을 줄은 몰랐다.더 무서운 건...고개를 돌려 누더기처럼 축 늘어뜨린 자신의 한 손을 바라보던 프레드의 눈빛이 무섭게 변했다.그 손은 이미 마비될 정도로 아팠다. 방금 극도의 분노와 공포로 잠시 손이 부러진 사실을 잊고 있었다.방금 한 주먹이 벽에 부딪히는 순간 다른 한 손이 떠올랐다. 그 손을 바라보니 모든 신경이 몸속으로 되돌아온 듯 비명을 지르며 숨이 막힐 정도로 아팠다.“악.”나지막한 울부짖음과 함께 프레드는 천천히 몸을 웅크리고 앉아 고통스러운 손으로 다른 한쪽의 부러진 팔을 감쌌다.“누구 없어?”주변 사람들이 당황하며 둘러쌌다.방금 공작이 빨리 걷는 것을 보고 손이 괜찮은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사태가 심각한 것 같았다.“의사 불러!”이를 악물며 프레드가 또박또박 말했다.“의사가 곧 도착합니다!”경호원이 머뭇거리다가 한마디 보탰다.“하지만, H국에서 보낸 사람이...”“그들
프레드는 한차례의 고통 속에서 깨어났다.비명을 지르며 눈을 번쩍 뜬 프레드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개를 돌리자 한쪽 팔이 고정된 것이 보였고, 옆에는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각자 프레드의 손발을 누르고 있었다.잠에서 깬 프레드를 본 누군가 한마디 했다.“죄송합니다. 공작님! 당신의 팔을 위해서 무례할 수밖에 없습니다.”팔의 통증에 정신이 번쩍 든 프레드는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끗 보다가 의사를 향해 물었다.“얼마나 더 걸릴 것 같아?”“30분 정도요.”조심스럽게 부목을 대면서 의사가 말했다.“내 손이 부러질까? 다시는 못 쓰는 거 아니야?”이건 지금 프레드의 최대 관심사다.의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검사 결과 공작 전하께서는 팔이 부러진 곳이 이상해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러진 게 아니라... 탈골한 거예요.”“탈골?!”“H 국 사람들의 각도에서 보면 그래요. 당신의 팔은 맞춤한 힘으로 관절의 접합부가 외력으로 빠졌어요. 뼈는 다치지 않았지만 부목으로 고정해야 해요. 잘 싸맨 후, 이 팔을 최대한 적게 움직여야 합니다.”의사는 눈살을 찌푸린 채 말을 하면서 부목을 댔다.“뼈도 안 다쳤는데 부목은 무슨!”프레드는 짜증이 났다.“30분 남았어! 내 일을 그르치지 마!”다급하게 침대에서 내려오려던 프레드는 다른 사람에게 눌린 채 화를 냈다.“다 꺼져!”“공작 전하, 건강을 위해 움직이지 마십시오!”옆에 있는 사람은 손을 떼지 않았다.”“중요한 일이 있으니 이걸 풀어, 그렇지 않으면 모두 명령을 거역한 죄로 처벌할 거야!”날카롭게 말하는 프레드의 표정은 농담 같지 않았다. 겁을 먹은 사람들은 안색이 변한 채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프레드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다리를 움직이고 팔을 움직여 보았지만 여전히 아프고 자유롭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예전만큼 아프지는 않았다.큰 문제가 없다고 느낀 프레드는 침대에서 일어나 신발을 밟다가 뭔가 생각난 듯 의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체내에 독이
프레드는 앞서 한소은이 했던 실험과, 그녀를 감시하고 미행하던 중 알게 된 일을 떠올리며 물었다.“사람 손목을 만져서 중독됐는지 판단할 수 없어?”의사는 담담했다.“공작 전하께서 말씀하신 그런 것은 아마도 H 국의 한의사가 진맥을 보는 것이겠죠. 미안하지만, 우리 서양 의학은 이런 신기한 학과를 배운 적이 없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가 있어서 일찍이 연구하려고 했었죠.”“그런데 아직 배우지 못해 죄송합니다.”그 의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프레드는 그 모습에 화가 나 돌아서서 침을 뱉었다.채혈이 끝난 뒤 팔에 달린 면봉을 누르며 프레드는 그제야 몸을 일으켜 의사를 향해 말했다.“얼마나 걸리면 결과가 나올까?”“약 30분 정도요.”“또 삼십 분!”이를 악물고 프레드가 그를 노려보았다.“좋아! 30분만 줄게. 결과 나오면 바로 보고해!”만약 결과가 나왔지만 자신이 중독되지 않았다면 한소은은...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프레드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누군가가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공작님, 공작 전하, H 국 사람들이 이미 소독작업을 시작했습니다.”“뭐?!”프레드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귀를 의심했다.“난 아직 안 나갔어. 허락한 적 없는데 감히 먼저 시작했다고?”“위의 명령이고 우리에게 통지서를 보냈다고 했어요. 그 이유가 너무 정당해서 거절할 수 없었어요.”무엇보다 프레드가 없으니 아랫사람들은 거절할 자격도 배짱도 없었다.“너무하네.”한기 가득한 얼굴을 한 프레드는 피 묻은 면봉을 내동댕이쳤다.“어디야!”프레드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 약물을 뿌리고 있는 중무장한 사람과 마주쳤다.“멈춰!”프레드가 호통을 쳤다.‘누가 당신들이 여기에 소독수를 뿌리는 것을 허락했어? 여기는 대사관이야, 내가 허락하지 않았는데 감히 함부로 침입하다니!’밀폐된 방호복을 입은 그 사람은 손에 든 분무 도구를 멈추고 프레드를 바라보며 대답했다.“여기가 대사관인 것은 맞지만, 여기는 H 국이라는 것도 잊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