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는 확실히 찬호를 불쌍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도와주실 수 있어요?"구택은 눈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별일 아니라서요. 내가 도와주길 원한다면 이따 시원한테 전화해 볼게요."소희는 그의 깊고 까만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며 무의식적으로 눈을 피했다. 그리고 부드럽게 대답했다."그럼 부탁할게요, 고마워요."구택은 까만 눈동자로 그녀를 보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계속 밥을 먹었다.식사 후 소희가 떠날 때 주방의 하인은 오리탕이 담긴 보온병을 건네주며 당부했다."면을 먹고 싶으면 오리탕을 끓인 뒤 면을 넣고 3~5분 정도 끓이면 돼요."소희는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자신이 국수를 끓일 줄 모르는 일은 임 씨네 집안 전체가 다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감사를 시한 뒤 보온병을 안고 떠났다.위층에서 구택은 시원에게 전화를 걸어 시연을 풀라고 말하고 있었다.시원은 매우 궁금해했다."누가 너한테 사정했니?"구택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건 네가 알 바 아니고 빨리 사람 풀어."시원은 웃으며 말했다."내 여자친구가 얻어맞았고 지금까지도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나보고 쉽게 소 씨 집안사람을 풀어주라고?"구택은 담배 한 대 피우며 코웃음쳤다."허연이 맞았는데, 넌 아직도 밖에서 딴 여자랑 놀고 있잖아. 그런데도 그녀가 네 여자 친구라고?"시원은 히죽거리며 웃었다."적어도 지금은."구택은 정원을 힐끗 쳐다보았며 마침 소희가 떠난 것을 보았다. 그녀는 오늘 허리를 수정한 치마를 입었는데 그녀의 허리를 아주 가늘게, 그리고 다리를 하얗고 길게 만들었다.그는 건성 하게 나지막이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나 지금 일이 좀 있어서. 넌 변호사한테 전화해서 고소를 취하하라고 하고."전화를 끊고 그는 고개를 돌려 소희가 차에 올라타며 정원을 떠난 것을 보았다.......그날 저녁 무렵, 시연은 집으로 돌아왔다.정민은 한 가족을 데리고 귀중한 물건들을 사서 첫째네 집안에 가서 설아
"그럼." 소희는 맑은 눈빛으로 진지하게 말했다."내가 면 끓여줄게요. 어때요? 마침 오리탕도 반이나 남았거든요."남자는 이마를 그녀의 뒷머리에 대고 가볍게 웃었다. "소희 씨, 일부러 이러는 거죠?"일부러 이렇게 귀엽게 행동하다니!소희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중얼거렸다."나도 이제 면을 끓일 줄 안다고요. 믿지 않으면 내가 지금……"그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남자는 그녀를 침대로 넘어뜨리며 짙은 키스를 했다.......이튿날 오전, 구택은 소희를 데리고 함께 임가에 돌아갔다.유민의 방에 들어가자 소희는 그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소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테이블 앞으로 걸어갔다."우리 둘째 삼촌과 함께 오는 거 봤는데, 두 사람같이 있었어?"유민은 무심결에 물었다.소희는 고개를 숙이고 책을 정리하며 태연하게 말했다."구택 씨 마침 강성대를 지나는 길이었거든.""응!" 유민은 의심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어젯밤 우리 둘째 삼촌은 또 집에 안 돌아왔어. 맨날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니는지."소희는 얼굴이 살짝 빨개지며 웃었다."너 이제 간도 커. 네 둘째 삼촌 뒷담 하는 거야!"유민은 콧방귀를 뀌었다."설마 샘 고자질할 거야?"소희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그럴 리가, 내가 네 덕에 돈 버는데 어찌 감히 너의 미움을 사겠니!"유민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소희는 답안지 하나를 꺼냈다."오늘 우리 작은 테스트를 해볼까.""어?" 유민의 작은 얼굴은 갑자기 어두워졌다."어는 무슨 어야. 내가 너보다 더 떨려. 이 답안지를 네 둘째 삼촌한테 보여줘야 하거든. 네가 시험 잘 못 보면 내가 잘 못 가르쳤다는 뜻이야." 소희가 말했다."누가 시험을 보고 싶겠어?" 유민은 가볍게 흥얼거리며 머리를 굴렸다."만약 내가 시험 잘 봐서 둘째 삼촌 앞에서 샘 체면 세워줬으면 나한테 뭐 해줄 건데?""뭘 원하는데?" 소희가 물었다."만약 내가 95점 이상 맞았다면 한 가지 일 좀 도
소희는 문을 밀고 들어갔다. 서재는 아주 컸다. 들어오자마자 넓고 긴 창문이 있었고 정원의 잔디밭을 볼 수 있었다. 구택의 테이블은 창문의 옆에 있었고 맞은편에는 천장높이의 마호가니 책꽂이가 줄줄이 세워져 있었다.이때 구택은 책상 뒤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소희인 것을 보고 그는 살짝 의아해했다. 아마도 소희가 그를 찾으러 올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 같았다.그는 아침에 그녀와 함께 외출할 때 입은 검은색 셔츠를 입고 있었고 옷깃에 단추 두 개를 풀었다. 도도한 분위기 가운데 약간의 나른함을 띠고 있었다."구택 씨." 소희는 문을 닫고 앞으로 나아가 답안지를 책상 위에 놓았다. "이건 이번 달 유민이의 지식점 측험 답안지에요. 한번 보시죠."구택은 답안지를 들고 앞뒷면 모두 체크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괜찮네요. 유민이는 잘 배웠고 소희 씨도 잘 가르쳐 줬네요.""칭찬해 주셔서 고마워요." 소희는 살짝 웃으며 시계함을 건네주었다. "이건 유민이가 구택 씨 드리라고 부탁했어요.""뭐죠?" 구택은 받자마자 시계함을 열었다.나무함이 열리는 순간 소희는 검은색의 무언가가 튀어나오며 구택의 얼굴을 향해 덮치는 것을 보았다. 피로 가득한 입에 튀어나온 이빨, 그리고 수상한 소리를 내는 인형이었다. 어젯밤 그녀가 본 공포영화 속의 도깨비보다 더 무서웠다.그녀는 놀라며 생각지도 않고 달려가서 그것을 빼앗으려 했다.구택도 깜짝 놀라며 손을 들어 나무상자를 던지려고 했지만 그 검은 얼굴의 괴물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표정이 약간 변하며 나무상자를 던지고 손을 뻗어 소희를 품에 안았다.소희는 남자의 가슴에 엎드려 가슴이 두근거리며 고개를 돌려 나무상자를 바라보았다. 그 검은 얼굴의 괴물은 아직 웃고 있었지만 검은 연기는 이미 흩어졌다.방안에는 3초 동안 침묵이 흘렀고 검은 얼굴 인형의 이상한 웃음소리만 울렸다.이때 인형의 소리는 무섭지 않고 도리어 좀 웃겼다.소희는 아직도 남자의 품 안에 있었다. 두 사람
소희는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갑자기 나타난 남자의 모습을 보고 멍하니 서있었다. 그녀는 유민이를 피해야 하는 것까지 잊으며 그가 던진 쿠션에 곧바로 머리를 맞았다."까불지 마!" 구택은 눈빛이 변하더니 낮은 소리로 유민을 꾸짖었다.유민은 쿠션이 정말 소희를 칠 줄은 몰랐다. 그는 즉시 소파에서 달려왔다."너 바보야? 피할 줄 몰라?"소희는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괜찮아, 안 아파."유민은 구택을 바라보았다."둘째 삼촌, 샘이 삼촌을 좋아한다고 말했어요!"소희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 정말 관둘 가봐.구택은 소희를 보고 웃는 듯 마는 듯 입을 열었다."그래요?"소희는 상냥하게 웃으며 침착하게 말했다."네, 그리고 유민이와 유림이도 좋아해요. 여기서 알바하게 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모두 맘씨가 착한 사람들이네요."유민은 싫은 기색이 역력하며 어깨를 떨었다."소름이 돋을 것 같아!"소희는 부드럽게 웃었다."이번 시험의 답안지는 좀 편면적이라 다음 주에 유민에게 전면적인 답안지를 내주고 싶네요."유민은 순간 눈을 크게 떴다.구택은 가볍게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나도 이 일을 위해서 이렇게 찾아왔네요. 이번 문제는 너무 간단한 거 같아요. 다음에 소희 샘은 문제를 좀 어렵게 내셔도 돼요. 그래야 유민의 진실한 수준을 알 수 있죠."그는 또 한마디 덧붙였다."다음 시험 성적을 유민이 아버지께 보여줄 거예요."유민은 침묵에 빠졌다."......"그는 마치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돛배가 동시에 두 척의 큰 배에 부딪힌 듯 막막했다.......2교시를 마치고 내려갔을 때 소희는 소율이 뜻밖에도 거실에 혼자 있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일부러 소희를 무시하고 유민만 바라보며 부드럽고 열정적이게 웃었다."유민아, 내가 오늘 백화점에 갔는데 레고 스타워즈가 새롭게 나온 것을 보고 특별히 널 위해 샀어. 얼른 봐봐."유민은 탁자 위에 놓인 레고를 담담하게 보며 입을 뗐다."필요 없어요, 며칠 전에 둘째 삼촌이
하지만 소율은 줄곧 짝사랑이었다.소율은 냉랭하게 말했다."과외 샘으로서의 본분을 주의해요. 주인과 거리를 두라고요. 당신이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생각하지 마요. 구택 씨는 절대로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거니까요."소희가 물었다. "그럼 당신을 좋아하는 건가요?"소율의 눈빛에는 슬픔이 스쳤다. 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아니요,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아요."소희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소율도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소율은 계속 말했다."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그가 좋아하는 사람은……""소희 선생님."하인은 갑자기 소율의 말을 끊으며 공손하게 말했다."둘째 도련님이 소희 선생님이 단 음식을 좋아한다고 하셨어요. 주방에서 케이크를 만들었는데 소희 선생님은 어떤 케이크가 드시고 싶으세요?"소율은 안색이 어두워졌다.소희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초콜릿 무스면 돼요. 고마워요.""네." 하인이 공손하게 대답했다.소희는 소율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와 어깨를 스치며 화장실을 떠났다.소율은 소희의 뒷모습을 차갑게 쳐다보며 마음속의 증오가 더욱 짙어졌다.전에 그녀가 진 이유는 그 여자보다 못하기 때문이었지만, 지금 그녀는 절대로 과외나 하는 가난한 학생에게 질 수 없을 것이다!식사할 때 하인은 소희에게 5인분 정도 하는 케이크를 가져왔다.소희는 유민이 케이크를 쳐다보길래 그에게 물었다."절반 줄까?"유민은 즉시 고개를 저었다."여자들만 이런 거 좋아할걸요."소율은 우아하게 나이프와 포크로 치즈 연어를 먹고 있었다. 유민의 말을 듣자 그녀는 가볍게 웃었다."유민아, 모든 여자들이 다 케이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야.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들만이 그런 거 좋아하는 거라고. 왜냐하면 그들은 진정하게 맛 좋은 것을 먹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케이크만 먹으면 행복해하거든."말을 마치자 그녀는 소희를 향해 웃었다."사실을 말하는 거지 소희 씨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요."소희
소희는 이미 현관에 가서 신발을 갈아 신으며 몸을 돌려 인사를 했다."구택 씨, 먼저 갈게요. 유민아, 다음에 보자."유민은 소희가 문을 나서는 것을 지켜보고는 고개를 돌려 입을 뗐다."둘째 삼촌, 우리 아빠 생일이라서 선물 좀 골라 봤어요. 삼촌한테 먼저 보여주고 싶어요."구택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너 먼저 올라가. 이따가 내가 찾으러 갈게.""빨리 와요!" 유민은 소율을 한번 흘기더니 위층으로 올라갔다.구택은 거실로 가서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소율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구택 씨, 넌 소희 씨가 유민이랑 너무 가깝게 지낸다고 생각하지 않아?"구택은 소파에 앉아 표정이 싸늘했다."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물론이지!" 소율은 그의 맞은편에 앉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우리 셋째 삼촌이 전에 청한 과외 샘이 일부러 한예를 끌어들여서 가족들과 다투며 그녀의 월급을 올려주라고 그렇게 떼를 썼잖아. 결국 우리 셋째 삼촌한테 해고당했어. 그리고 일반 정규 과외 회사에도 규정이 있어. 주인집 아이와 너무 가까이하지 못하게 말이야. 모두 이유가 있는 거라고!"구택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소희 씨는 분수를 아는 사람이에요."소율은 코웃음쳤다."유민이가 그녀 편을 되게 들더라. 두 사람도 그녀의 단순한 외모에 속지 마. 내가 보기에 그녀는 그렇게 간단한 사람이 아니야!"구택은 눈빛이 어두워졌다."너랑 무슨 상관인데?"소율은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스스로 비웃었다."그래, 나랑 상관없지. 나도 그냥 일방적으로 이러는 것뿐이고! 너 설마 그 여학생을 좋아하니? 그럼 구은서는 어떡하고?"구택의 안색은 점점 차가워졌고 눈빛은 빙설로 뒤덮인 듯 싸늘하며 의미심장했다. 그는 일어나서 소율을 차갑게 쳐다보았다."너무 한가하면 길거리에 가서 쓰레기라도 주워. 네가 걱정하지 말아야 할 것을 걱정하지 말고! 그리고, 앞으로 내 허락 없인 내 집에 오지 마!"말을 마치고 그는 몸을 돌려
"응, 생긴 것도 예쁘고 성격도 좋아서 네가 쟤 남자친구 뺏으려면 난도가 좀 있을 거야."하나가 갑자기 분석했다.소희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너 대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하나는 헤헤 웃었다."네 생각!"소희는 담담하게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난 너한테 관심 없는데.""누구한테 관심 있는데? 주민?" 하나는 농담하며 쫓아왔다."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내가 대신 알아봐 줄게. 주민이라는 사람이 어떤지."소희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문득 좋은 생각이라 느끼며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래."하나는 놀라며 말했다."너 정말 걔 좋아하는 거야?"소희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네가 똑똑히 알아봐 주면 그때 내가 알려줄게."하나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소희가 일부러 그녀를 애태우는 것에 대해 화가 났다.밤.구택이 어정에 돌아왔을 때 이미 밤 11시였다. 그는 소희가 이미 잠든 줄 알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실 텔레비전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다.그가 다가갔을 때 마침 머리가 절반인 사람이 여주인공의 침대 밑에서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고 남은 한쪽 눈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시원이 오늘 저녁 국내로 돌아왔기에 두 사람은 술을 좀 마셨다. 그는 방금까지만 해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술기운이 이따금 솟구쳤다.그는 소희의 뒤로 가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무슨 영화 보는 거죠?"소희는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입가에 딸기잼이 조금 묻은 채 그를 멍하니 쳐다보며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언제 돌아왔어요?"구택은 할 말을 잃었다."......"그는 손을 들어 눈썹을 살짝 만지며 담담하게 말했다."나 먼저 샤워하러 갈게요.""그래요!" 소희는 대답을 하고는 계속 영화를 보았다.영화 후반부에 이르렀을 때 구택은 안방에서 나와 천천히 소희의 곁으로 가서 앉고 소파에 기대어 소희와 함께 영화를 보았다.소희는 남자를 한 번 보았다. 그는 나른하게 소파에 기대어 있는 것을 보았다. 몇 가닥의 약간 젖은 검
소희는 바로 눈을 감으며 속눈썹을 살짝 떨었다.남자의 차가운 입술이 그녀의 미간을 따라 그녀의 연분홍색 입술에 한참 머물고서야 그는 그녀를 다리에 안고 짙게 키스했다.그는 그녀의 입술 깊숙한 곳의 딸기맛을 맛보았고 소희는 술의 향기를 빨아들였다. 독하고 진한 술은 사람을 매혹시켰다.의식이 모호해질 때 소희는 갑자기 오늘 소율이 임 씨네 집에서 못다 한 말이 생각났다. 구택 마음속에 있는 그 사람은 누구 일가?그처럼 모든 것을 가진 남자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갑자기 소희는 혀끝이 아팠다. 남자는 그녀가 지금 집중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일부러 그녀를 깨물며 벌을 줬다.소희는 남자의 목을 두 팔로 감으며 비위를 맞추는 듯 그의 응답을 기다렸다.이 밤, 구택은 유난히 부드러웠다. 가끔 참지 못하고 그녀를 거칠게 대했어도 그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달래주는 말을 많이 했다.영화는 이미 끝났다. 초여름의 부드러운 바람은 반쯤 열린 창문으로 불어들어오며 커튼을 살짝 날렸고 소희의 부드러운 검은 머릿결을 불며 어두운 밤 속에 흩날리게 했다.무더운 날씨에 갑자기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은 것 같았다. 상큼한 느낌이 입술 사이로 번져 목을 따라 내려가며 쾌감이 몸에서 서서히 퍼져갔다.......월요일, 강성대 의과 부속병원.VIP 병실 안, 우청아는 소파에 앉아 책을 보다가 안에서 허연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청아야, 나 사과 먹을래. 사과 좀 깎아줘.""알았어!" 청아는 담담하게 대답하고는 사과 하나를 들고 껍질을 깎기 시작했다.허연은 청아 외삼촌댁의 사촌 언니였고 장사를 하는 외삼촌댁은 부유하여 청아네 집안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이번에 허연이 다치자 그녀의 어머니는 기어코 허연을 돌보겠다고 나섰다. 청아는 그런 그녀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는 믿을 수 없었으니 외삼촌이 앞으로 그녀와 그녀 오빠를 도와줄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그녀는 조금도 내키지 않았지만 허연이 자신의 어머니를 이리저리 심부
유진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방으로 돌아가 휴대폰을 챙겼다. 왜냐하면 유진이 가져온 것은 오직 휴대전화뿐이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계단을 내려갔다. 어둑한 복도에서, 유진은 무의식적으로 서인의 손을 잡았다.그리고 이번에는 서인이 그녀를 밀어내지 않았다. 유진은 조금씩 용기를 내어 손가락을 더 깊이 엮었고, 결국 그의 손 전체를 단단히 쥐었다.서인의 손은 크고 뼈마디가 굵었으며, 손바닥에는 거칠지만 단단한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유진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촉감이 이상하게도 더 마음에 들었다.깊은 밤, 조용한 복도에서, 유진은 자기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쿵, 쿵. 긴장과 부끄러움, 그리고 묘한 설렘이 섞여 있었다.민박집을 떠난 뒤, 서인은 차를 몰아 유진과 함께 산을 내려가 도시로 향했다. 그는 자기 외투를 벗어 유진의 어깨 위에 걸쳤다. 어둠 속에서 서인의 날렵한 얼굴선이 더욱 차갑고 도도해 보였다.“잠깐 눈 붙여. 도착하면 깨울게.”하지만 깊은 밤 도로를 달리는 이 순간이, 유진에게는 너무나도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유진은 전혀 졸리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반짝이며 전방을 바라보며 서인과 대화를 나눴다.“그 쥐덫, 아무 소용도 없을 거예요. 쥐는 계속 나올 거라고요.”그곳의 쥐들은 너무 대담했다. 사람을 무서워하기는커녕, 창가에 올라와 그녀와 눈을 마주치기까지 했다.서인은 물었다.“그러면 왜 날 안 불렀어?”유진은 서인을 바라보며 말했다.“입을 막고 있었거든요!”유진은 서인이 피곤할까 봐 일부러 참고 있었다. 하루 종일 운전했으니, 이미 녹초가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침대 속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냥 밤새도록 그렇게 버틸 생각이었다가 그 소리를 들었다. 바로 맞은편 방에서 들려오는 민망한 소리.그 순간, 유진은 차라리 쥐랑 함께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 그때, 서인이 문을 두드렸다. 그 순간이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유진은 본능적
“임유진!”서인의 목소리는 다급하고 거칠게 떨렸다. 그는 급히 옆방 문을 두드렸고, 문이 열리는 순간, 임유진이 그대로 서인의 품에 뛰어들었다.서인은 방 안을 빠르게 둘러봤으나 별다른 이상은 없는 듯했다. 그제야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어지며 조용히 물었다.“무슨 일 있었어?”유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저, 저기 쥐가 있어요!”서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반쯤 설명하고 반쯤 달래듯 말했다.“이런 곳에서는 쥐가 나오는 게 당연해. 그냥 네 방을 지나간 거야. 널 물지는 않아. 오히려 네가 더 무서울걸?”하지만 유진은 서인의 품 안에서 겁에 질린 듯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제야 서인은 유진의 모습을 제대로 보았다.커다란 티셔츠 한 장만 걸친 채, 하얀 다리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창백할 정도로 희고 매끈한 피부가 시각을 자극했다.반면, 서인은 방금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있다가 나왔기에, 바지만 입고 상의는 벗은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 서인은 목이 바짝 타는 듯했고,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얼굴이 굳어버렸다.손을 뻗어 유진을 떼어내려 했지만, 유진은 겁에 질려 서인의 허리를 더 꼭 붙잡았다. 두 사람은 문 앞에서 그렇게 서 있었다.혹시라도 누가 지나갈까 걱정된 서인은 유진을 가볍게 안아 방 안으로 들어간 뒤, 문을 닫았다. 그러나 유진의 티셔츠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녀의 부드러운 체온이 서인의 맨가슴에 고스란히 닿았다.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 들자, 서인은 서둘러 그녀를 침대에 내려놓고 이불로 감싸주었다.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유진은 얼굴이 불타오르듯 붉어졌다.그녀는 이불을 꼭 움켜쥔 채 눈을 피했고, 서인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안토니한테 가서 쥐 잡을 도구가 있는지 물어볼게.”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이자, 서인은 곧장 방을 나섰다. 유진은 그의 넓은 어깨와 탄탄한 허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길이 미묘하게 흔들렸다가, 황급히 창밖으로 시
안토니는 서인에게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부모님이 여기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모든 절차는 다 정식으로 등록된 거예요. 게다가 이 땅은 호텔 부지에 포함되지도 않고요.”“그런데도 그 사람들이 철거하라고 명령할 수 있어요? 보상금도 터무니없이 적고, 우리 부모님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라는 거죠?”“하지만 호텔 뒤에는 권력과 돈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무도 우리 편에 서지 않아요.”임유진은 분통이 터져 소리쳤다.“이건 완전히 강도질이잖아요! 소송이라도 걸어야 하죠!”토니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소용없어요.”“사실, 보상금이 충분하다면 철거를 고려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그 옆에서 안주설이 조용히 말하자, 토니는 즉시 그녀의 말을 끊었다.“얼마를 준다 해도 안 돼. 우리 고향 집도 이미 팔아버렸어. 부모님께 남은 건 이 민박집뿐이야. 여기가 없어지면 어디로 가란 말이야?”주설은 난처한 표정으로 웃으며 변명했다.“그냥 의견을 낸 것뿐이야.”서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상황은 알겠으니까 방법을 찾아볼게.”토니는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정말 어쩔 수 없어서 서인 형한테 전화한 거예요. 형이 강성에 있는 거 알지만, 흥성 일에는 개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잖아요.”토니는 분노에 휩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서인에게 연락을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서인은 그날 바로 달려와 주었다.서인은 단호하게 말했다.“토니 형과 나는 형제나 다름없어요. 걔의 일은 내 일이나 마찬가지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해결할 테니까요.”토니의 부모는 연신 감사를 표했다.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밤 11시가 되었다. 토니는 2층에 서인과 유진을 위한 방 두 개를 준비해 주었다. 계단을 올라가며, 유진은 서인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나 아무것도 안 가져왔어요.”서인은 고개를 돌려 토니에게 물었다.“새 세면도구 있어? 갑자기 오느라 아무것도 못 챙겼어.”“당연하죠! 다른 건 몰라도 세면도구는 넉넉
유진은 뭔가 떠오른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생각하니까 정말 비싼 건 아니네요!”서인의 품에 안겼으니, 20만원이라도 아깝지 않았다. 서인은 본래 유진을 위로하려 했는데, 그녀의 표정을 보자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순간 서인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유진은 기분이 좋아진 듯 미소를 지었다.“이미 산 거니까, 그냥 먹어요. 버리긴 아깝잖아요!”그녀는 티슈로 사과를 닦아내고 서인에게 하나 건넸지만, 서인은 거절하며 고개를 저었다.“난 안 먹어.”“그럼 저 혼자 먹을게요!”유진은 사과를 입에 가져가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사과가 신선해서 아삭하게 씹히며 입안 가득 달콤한 과즙이 퍼졌다.이윽고 차 안에 오직 사과를 씹는 소리만 울렸다. 서인은 앞을 주시하며 운전을 계속했지만, 무심결에 목젖이 한 번 움찔거렸다. 유진은 연달아 몇 입을 베어 물다가 반쯤 먹은 사과를 들고 서인을 바라봤다.“정말 안 먹어요? 진짜 맛있어요!”2만원으로 이 정도 퀄리티라면 완전 대박이었다. 그러나 서인은 도로를 응시한 채 담담하게 말했다.“보통 과수원에서는 사람들이 몰래 따 먹는 걸 방지하려고 사과에 농약을 뿌려 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에 든 사과를 바라봤다가 곧 얼굴이 새파래졌다.“왜 이제야 말하는 거예요?”서인은 태연하게 대답했다.“방금 떠올랐어.”“어떡하죠? 나 중독되는 거 아니에요?”유진은 볼을 불룩하게 부풀리며 억울한 얼굴로 그를 노려봤다.“내가 만약 중독돼서 장애라도 생기거나, 바보가 되면, 사장님이 평생 책임져야 해요!”서인은 웃음을 터뜨렸다.“그게 왜 내 탓이지?”“사장님이 산 사과잖아요!”당당한 유진의 태도에 서인은 말문이 막혔다. 물론, 사과에 농약 따위는 없었다. 결국 유진은 바보가 되지도, 장애가 생기지도 않았고, 심지어 배 아픈 일조차 없었다.두 사람이 안토니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였다. 토니네 민박집은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주변에는 몇 개의 민박집이 듬
산길 위로 가끔 여행객들의 차가 지나갔다. 멀리 보이는 민박집의 불빛이 어둠 속에서도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이게 무슨 냄새지? 사과 향 같은데?”임유진은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기쁜 표정으로 돌아보며 말했다.“저기 사과나무가 있어요!”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만 가자. 이제 출발해야 해.”“딱 하나만 따면 돼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성큼성큼 사과나무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무에 열린 사과를 봤다. 달빛을 받아 가장 크고 탐스러운 사과를 골라 따냈다. 그리고 서인에게 줄 사과도 하나 더 따려 했다.사과를 막 손에 쥐려던 찰나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가 내 사과를 훔쳐 가지? 거기 서요!”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이 깜박였고,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멀리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유진은 얼어붙었다. 사과나무가 야생인 줄 알았는데, 주인이 있는 나무였다니!유진은 처음에는 자리에 서서 주인을 기다려 설명하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의 고함과 함께 거친 숨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개 한 마리가 보였다. 커다란 개가 사나운 기세로 유진을 향해 돌진했다.유진은 등골이 오싹해지며 온몸의 털이 곤두서, 본능적으로 뒤돌아 도망쳤다.“사장님!”멍! 멍멍멍! 사람 허리까지 올 법한 덩치 큰 검은 개가 빠르게 움직였다. 유진이 달아나는 것을 보자 더욱 거칠게 그녀를 향해 뛰어들었다. 유진은 손에 사과 두 개를 꼭 쥔 채, 있는 힘껏 서인을 향해 달렸다.서인도 상황을 보고 얼굴이 굳어졌고, 유진을 향해 달려갔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자, 유진은 순식간에 뛰어올라 그의 품에 안겼다. 유진은 겁에 질린 채 서인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 순간, 개가 가까이 다가왔고, 서인은 한쪽 다리를 들어 강하게 개를 걷어찼다. 50킬로그램은 나갈 듯한 큰 개가 힘껏 날아가 땅에 쾅 하고 떨어졌다.개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몇 번 뒤틀다가 겨우 일어났지만, 아까의 사나운 기세는 사라지고 멀찍이서
“흥성.”흥성은 강성의 옆도시로, 관광 도시였다. 이에 임유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결정을 내렸다.“나도 같이 갈게요!”꽤 발랄하게 말하는 유진에 서인은 코웃음을 쳤다.“내가 뭘 하러 가는지도 모르면서 따라가겠다고?”유진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사장님이 뭘 하든 상관없어요. 어쨌든 나도 갈 거니까요!”서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안 돼.”“왜 안 돼요?”“오늘 돌아오지 못할 거야. 거기서 이틀은 머물러야 하는데, 네가 따라오면 불편해.”“그냥 여행 가는 셈 치면 되잖아요!”서인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다음 사거리에서 임씨 저택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이에 유진은 여유롭게 말했다.“그러면 집에 데려다줘요. 집에 가서 짐 챙기고 내 차로 흥성으로 갈게요. 어쩌면 거기서 우연히 만날 수도 있겠는데요?”“임유진.”서인은 얼굴을 굳히자, 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그를 바라봤다.“우리 동료들은 다 놀러 갔는데, 난 너 때문에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사장님은 나를 두고 혼자 나가겠다고요? 그게 맞는 거예요?”서인은 설명했다.“나는 노는 게 아니라, 일이 생겨서 가는 거야.”“몰라요. 어쨌든 따라갈 거예요. 나 어린애 아니니까 방해 안 할게요. 그냥 나 없는 셈 치면 되잖아요!”유진은 애타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사장님은 일 보러 다니고, 난 혼자 놀러 다닐게요. 절대 방해 안 할 거예요. 됐죠?”서인은 시간을 확인했는데, 더 미루면 해 지기 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았다.“그럼 말 잘 들어야 해.”서인이 신신당부했다.“약속할게요!”유진은 신나서 손까지 들며 맹세할 기세였다.서인은 고속도로에 올라탄 뒤 오현빈에게 전화를 걸어 가게를 잘 봐달라고 당부했다. 자신은 이틀 동안 자리를 비울 거라고 했다.유진도 노정순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 설명 없이 친구들과 여행을 가겠다고만 말했다. 노정순은 오전에 여진구가 찾아와 회사 워크숍을 언급했던 걸 기억하고, 그녀가 회사 동료들과 함께 나가는 줄 알고는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당부했다.전화를 끊
강성의 한 묘지.홍복과 표용을 비롯한 전우들의 묘가 모두 이곳으로 옮겨졌다. 전우들은 이제 백랑의 곁에서 다시 함께할 수 있었다.서인은 묘비 앞에 담배 한 개비씩 놓았고, 임유진도 묘지 밖에서 사 온 꽃을 하나하나 올려놓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돌계단에 앉아, 멀리 보이는 산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유진도 서인의 곁에서 한동안 조용히 앉아 있었다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이야기 좀 더 해 주세요!”서인은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다 얘기했잖아.”유진은 묘지를 찾을 때마다 늘 삼각주에서의 과거를 이야기해 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서인이 기억하는 건 이미 다 말해 준 상태였다. 그러나 유진은 질세라 다시 말했다.“이번에 전우들 묘지가 새로 생겼잖아요. 분명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텐데요!”“없어.”서인은 한쪽 다리를 굽힌 채 느슨하게 앉아 있었고, 말투 역시 어딘가 귀찮아 보였다.이에 유진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그러면 다음에 소희한테 물어봐야겠네!”그제야 서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유진을 노려봤다.“진짜 듣고 싶어?”“당연하죠!”유진은 활짝 웃으며 턱을 괴고, 이야기 들을 준비를 했다. 유진은 과거가 늘 궁금했다.서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가 맨날 말하는 내 229명의 여자친구들 얘기, 하나씩 다 해 줄까?”유진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곧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고는 곧장 옆에 있던 꽃을 집어 들어 서인에게 던졌다.서인은 피식 웃으며, 거친 목소리 속에 장난기가 묻어났다.“이야기 듣고 싶다며? 229개의 이야기가 있지. 아마 내년까지도 다 못 들을걸.”“아직도 그 말을 해요?”유진은 씩씩거리며 서인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서인은 가볍게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는 별다른 힘을 쓰지도 않았지만, 유진은 아무리 버둥거려도 밀어낼 수 없었다.마치 큰 회색 늑대 앞에 선 어린 토끼처럼,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채 버둥거릴 뿐이었다.잠시 후, 유진은 숨을 몰아쉬며 결국 포기했다. 그러나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임유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그러면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겠네요!”문신 남자는 점점 짜증이 났다.“겨우 서빙하는 주제에 뭘 그렇게 잘난 척이야? 내가 맞팔 달라는 것도 네 급을 봐준 거라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한층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사장님! 여기서 행패 부리는 사람이 있어요!”얼마 지나지 않아 서인이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다부진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기운은 주변 공기마저도 서늘하게 만들었다.서인의 싸늘한 눈빛이 문신 남자를 향하자, 그는 마치 얼음장 같은 시선에 찔린 듯 등골이 서늘해져, 본능적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유진은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사람이 돈을 내기 전에 제 SNS 맞팔하라고 요구했어요.”그제야 문신 남자의 일행이 이쪽 상황을 알아차리고 하나둘 일어나 힐끗거리며 지켜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험상궂은 인상이었고, 분위기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그때, 오현빈과 이문이 후원에서 걸어 나왔다.현빈은 본래 덩치가 크고 험악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이문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손에 주방칼까지 들고 있었다.문신 남자의 일행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슬그머니 자리에 다시 앉았다.그때, 서인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며 문신 남자를 향해 말했다.“좋아. 내꺼를 추가해요. 나랑 얘기 좀 하자고요.”문신 남자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얼굴이 창백해지며 허둥지둥 휴대폰을 꺼내 결제를 마쳤다. 그러고는 재빨리 동료들을 불러 가게를 빠져나갔다.사람들이 나가자, 현빈이 비웃으며 말했다.“이런 겁쟁이 녀석들. 다음에 또 이런 쓰레기들이 나타나면 말도 필요 없어. 바로 나를 불러.”유진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알겠어요!”서인은 유진을 한 번 쓱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이문은 그를 따라가며 넌지시 물었다.“아무 일도 없었는데, 왜 그렇게
임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 찻주전자를 훔쳐 가겠어요? 안심하세요!”서인은 유진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네 손님이 너 찾으러 왔으면, 할 얘기 끝났으면 나가라. 가게 바쁘다.”유진은 서인의 표정이 더 이상 좋지 않자, 정말로 화를 낼까 봐 서둘러 대답했다.“별거 아니에요. 내가 그냥 먼저 보낼게요!”그렇게 말한 뒤, 유진은 황급히 돌아서서 여진구를 향했다. 그런데 그 순간, 진구가 서인의 찻주전자를 들고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그거 내려놔요!”유진은 깜짝 놀라 뛰어가며 소리쳤다. 놀란 진구는 손을 헛디뎌 찻주전자를 떨어뜨릴 뻔했다.“왜 그래?”유진은 재빨리 찻주전자를 낚아채듯 빼앗았다.“이거 사장님이 2,000만 원 주고 산 거예요. 깨지면 감당할 수 있어요?”“뭐? 2,000만 원?”진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게 2,000만 원짜리 골동품 같지는 않은데?”유진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되물었다.“선배 골동품에 대해 알아요?”“아니?”“그럼 됐죠!”유진은 찻주전자를 소중하게 끌어안으며 말했다.“2,000만 원인데 한 푼도 깎지 않고 샀어요. 그만큼 애착이 있다는 거죠. 깨지면 당연히 화내겠죠!”진구는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듯 말했다.“난 잘 모르지만, 우리 작은아버지는 골동품 전문가야. 가져가서 감정받아 볼까?”그리고 그는 서둘러 덧붙였다.“오해하지 마. 혹시라도 바가지를 썼을까 봐 걱정돼서 그래.”이 찻주전자가 아무리 봐도 2,000만 원짜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유진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찻주전자를 내려놓더니, 진구를 밖으로 밀어냈다.“무슨 바가지요? 마음에 들면 2,000만 원이든 2억이든 가치가 있는 거고, 마음에 안들면 2천원도 아까운 거죠.”“그러니까 선배도 선배 할 일 하러 가요! 내 일 방해하지 말고요!”진구는 서인에게 간단히 인사를 한 후, 마지못해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나가기 직전,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유진아,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