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시언은 강아심을 데리고 도경수의 집으로 돌아왔다. 정원을 지나던 중, 아심은 마당의 풍경을 바라보며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낯익은 감정이 가슴 속 깊이 몰려왔다. 아주 오래전, 마치 전생의 기억처럼, 그녀는 이곳에 와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왜 그래?” 시언이 멈춰 선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에 아심은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본가에 돌아오니 긴장됐나? 그 용감한 강아심도 이런 상황은 무섭나 보네?”시언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다시 그녀의 손을 잡고는 부드럽게 이끌며 앞으로 나아갔다.집 안으로 들어서자, 거실에는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나타나자 도경수가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다급하게 물었다.“결과가 나왔어?”“나왔어요.”시언은 결과지를 세 부로 나누어 도경수, 도도희, 그리고 강재석에게 각각 건넸다. 도경수는 떨리는 손으로 결과지를 받아 들고 급히 훑어 내려갔다. 거실 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했고, 모두의 시선이 결과지를 쥔 세 사람에게 집중되었다.가장 먼저 결과를 확인한 것은 도도희였다. 그녀는 결과를 본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이내 아심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도도희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 놀라움은 곧 기쁨으로 바뀌었고,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심아, 정말, 우리가...”도도희는 이 모든 것이 믿기지 않았다.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무려 이십 년. 그 모든 세월이 그녀에게는 과거를 묻어버린 긴 시간이었지만, 이제 그 모든 기억이 한순간에 되살아나는 듯했다. 마치 긴 꿈을 꾼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도경수 역시 보고서를 들고 손을 떨며 아심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반응만 보고도 이미 결과를 짐작하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아심을 향했고, 다들 눈에는 믿을 수 없는 감격과 놀라움이 가득했다.아심은 시언의 손을 꼭 잡으며 도도희를 향해 천천히 고개
임구택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결과야말로 모두가 바라는 결말이네요!”처음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진석은 강솔과 도경수에게 휴지를 건네며 강솔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그만 울어. 네가 이렇게 울면 스승님도 마음을 가라앉히기 어려워.”강솔은 휴지를 받아 도경수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스승님, 이제 울지 마세요. 울지 말아요!”강재석 역시 소희가 건넨 휴지를 받아 눈가를 훔쳤다. 그는 강시언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손자, 잘했구나!’시언은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아심에게 돌렸다.아심은 울지 않았지만 그녀가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어딘가 불안하고 복잡해 보였다.이런 기분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자신의 기억 속 마지막으로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은 온두리에서 시언에게 끌려가던 날이었다.그때 아심은 시언의 차 안에서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어떤 일을 마주하게 될지 몰라 불안에 떨었다.지금의 감정도 그때와 비슷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경하면서도 따뜻한 감정이 스며들었다.‘이제 나에게도 가족이 생겼어.’도도희는 고개를 들어 눈물을 흘리며 아심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깊은 애틋함과 따스함이 가득했다. 도도희는 울면서도 웃고 있었고, 목소리는 떨렸다.“내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딸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어. 우리가 조금만 더 서로를 알았더라면, 진작에 만날 수 있었을 텐데...”아심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미소 지었다.“지금도 충분히 좋아요.”“맞아, 놓치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해.”도도희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누가 너를 데려간 거니?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었어?”아심은 기억을 더듬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요. 그때 저는 자주 맞았고, 기억이 흐릿해요. 조금 더 자랐을 때의 기억은 양부모님 댁에서예요.”“그분들은 제가 친딸이 아니라고 했어요. 강가에서 주웠다며,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하더군요.”“널
“자, 먼저 밥부터 먹자고! 밥 먹자!” 도경수는 너무 기쁜 나머지 목소리마저 떨렸다.식사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고, 모두 함께 식탁으로 향했다. 도도희는 여전히 강아심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고, 감정을 좀처럼 가라앉히지 못했다.“그러니까, 세상에 이유 없는 호감은 없는 거야. 우리 첫 만남에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도 다 피가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어.”아심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정말 신기해요.”도도희는 그녀를 식탁에 앉히며 말했다.“일단 밥부터 먹자. 밥 먹고 나서 천천히 이야기하자.”모두가 둘러앉아 분위기가 조용히 가라앉은 그때, 도경수는 갑작스럽게 한쪽에 서 있던 가정부를 향해 입을 열었다.“양재아는 어디 갔지? 아침부터 보이지 않던데.”그러자 도우미가 대답했다.“아가씨께서 회사에 일이 있다고 하셔서 아침 일찍 나가셨습니다.”그 말을 듣자 강시언은 아침에 유전자 검사기관에서 만난 권수영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의 눈빛은 차갑게 얼어붙었다.도도희는 무심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아가씨라고요? 아심은 나의 유일한 딸이고, 우리 아버지의 유일한 외손녀예요. 그런데 집에서 다른 사람이 아가씨라고 불린다면, 아심은 뭐가 되는 거죠?”그 말에 도우미는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도경수가 급히 분위기를 수습하며 말했다.“예전에 습관적으로 그렇게 부른 거야. 이제부터 고치면 되지 않겠느냐.”하지만 도도희는 여전히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처음부터 양재아를 이 집에 들이지 말았어야 해요. 재아가 마치 이 집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잖아요.”“아심이 내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아이가 얼마나 불만을 가질지 모르겠네요.”소희가 나서서 말했다.“도도희 이모, 그건 제 불찰이에요. 저를 탓하세요. 스승님께서는 아무 잘못도 없어요.”임구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네 잘못은 아니야. 네 의도는 선의였으니까. 애초에 양재아가 유전자 검사를 하기 전에 도경수 어르신을 먼저 찾아간 게 문제였지
도도희는 강시언에게 물었다.“아심이 어렸을 때 사진은 없어?”시언은 아심을 한 번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있을 거예요. 돌아가서 찾아보도록 할게요.”“꼭 찾아줘.” 도도희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아심이 지난 20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녀에게는 모두가 공백이었다. 딸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마음이 조급했다.식탁은 오래된 황화리 목재로 만들어져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 아심은 창가를 마주하고 앉아 있었고, 창밖에는 꽃이 만개한 목련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도경수와 도도희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그녀는 다시금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익숙한 감정이 가슴 속에서 차오르는 걸 느꼈다.아심은 창가를 바라보며 말했다.“저기요. 예전에 그 자리에 꽃받침대가 있었고, 그 위에 꽃병이 놓여 있지 않았나요?”도경수와 도도희는 순간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도경수는 놀라 눈물을 머금은 채 물었다.“그걸 기억하고 있어?”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냥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도도희는 흥분하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맞아, 맞아! 거기에 분채 꽃병이 있었어. 할아버지가 그 안에 사탕을 숨겨두고는 널 안아 그 안에서 꺼내보라고 했잖니.”“너는 사탕을 집어 들 때마다 그렇게 행복하게 웃었어.”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서 기억에 남았나 봐요.”익숙함의 원인을 알게 된 아심의 마음에는 조금 더 따뜻한 친근함이 스며들었다....식사를 마치고 모두가 거실로 돌아왔다. 곧 도도희는 강아심에게 물었다.“또 기억나는 게 있니?”아심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다른 건 생각나지 않아요.”“그럼 내가 너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물건들을 보여줄게. 그러면 뭔가 떠오를 수도 있지.”도도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아심을 데리고 뒷마당으로 향했다.이에 이반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도도희가 정말 행복해 보이네요.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강솔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오늘은 모두가 행복한 날이니까요!”그녀는 소희를
도경수는 차를 마시며 여유롭게 말했다.“내가 그런 말을 했었다고 치자. 그런데 그때 너는 동의 안 했잖아? 뭐라 그랬더라, 젊은 사람들은 자유롭게 연애해야 한다고 했었지?”“요즘은 맞선이 유행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내가 손녀를 찾으니까 이제 와서 네가 자유연애를 반대하는 건가?”강재석은 시언을 향해 물으며 말했다.“누가 맞선이 유행하지 않는다고 했어?”시언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기억이 안 나요.”이에 도경수는 비웃으며 말했다.“너희 할아버지와 손자가 둘이 함께 일부러 얼버무리는 거야? 내가 한 말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고!”강재석은 웃으며 시언에게 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냐?”시언은 태연하게 대답했다.“자유롭게 연애하는 걸로 할게요. 그것도 문제없거든요.”그 말에 강재석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모든 걸 예상하였다는 듯했다. 그러나 도경수는 곧바로 반대했다.“안 돼! 안 된다고! 우리 손녀를 건드리려 하지 마. 나와 도도희는 절대 그렇게 서둘러 재희를 시집보낼 생각이 없어. 최소 몇 년은 집에 두고 보고 싶단 말이야.”강재석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아까까지는 강시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감사를 표하더니, 이게 그에 대한 보답이야?”도경수는 서둘러 말했다.“시언아, 내가 너한테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 네가 원하는 게 뭐든 말해봐라. 내 수집품 중에 골라.”“골동품이든 진품 그림이든 상관없어. 너희 할아버지가 평생 탐내던 서화도 내줄게. 원하는 건 뭐든 가져가!”그러나 시언은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도경수 할아버지, 제가 원하는 건 단 하나, 강아심뿐이예요.”당당한 시언에 도경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강재석은 흐뭇하게 웃으며 도경수를 바라보았다.“들었지? 우리 시언이 널 대신해 손녀를 찾아줬잖아?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으면 그것에 걸맞은 보답을 해야지.”도경수는 화가 난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너희 집안은 이걸 빌미로 우리 손녀를 빼앗아 가려고 하는 거야? 정말
수요일 저녁 7시 정각 소희는 전위 호텔 앞에 나타났다.핸드폰 알림 소리가 울리자 소희는 카카오톡을 확인했다. 아빠 소정인이었다. [소희야, 아빠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차가 좀 막히네. 먼저 들어가있어.]소희는 발걸음을 늦추며 이따 임구택을 만나면 어떻게 인사할까 생각하고 있었다.결혼 3년 동안 그들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임구택이 이 결혼을 동의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심지어 거부한다는 것은 안 봐도 뻔했다.그렇다고 임구택을 탓할 일도 아니었다. 과거 소씨 가문의 회사가 위기를 맞자 뻔뻔하게 임씨 가문을 찾아가 혼인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하였고, 당시 임씨 가문의 장남은 이미 결혼을 한 터라 자연스레 그 약속은 차남 임구택이 이행하게 되었다. 그가 내키지 않아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임씨 가문은 당연히 소씨 가문에 좌지우지 당하지만은 않았다. 예물로 50억 원을 건네어 소씨 가문이 난관을 이겨내게 도우면서도 조건을 제시했다. 3년 뒤에 이 혼사가 자동 해지되는 것으로.3년 전, 그녀는 아직 법정 결혼 연령이 되지 않아, 두 사람은 라스베가스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두 사람이 아니라 각자의 대리인이 가서 혼인신고를 마쳤다. 결혼하자마자 임구택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결혼 해지를 석 달 앞두고 돌아왔다. 결혼을 거부한다는 태도가 너무나도 뚜렷했다.하필이면 오늘, 그녀의 아버지가 회사 때문에 그녀를 앞세워 다시 한번 그를 찾아가 부탁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소희는 스스로를 비웃으며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지 생각하였다. “임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당신 아내에요!”그가 그녀를 거들떠보기나 할까?듣건대 임구택은 미국으로 떠나기 전 강성의 유명한 악질이었다고 한다. 강성의 흑과 백을 모두 통솔하며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매섭고 결단력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지만 며칠 전 TV의 경제 채널에서 임구택을 본 적이 있는데 그녀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명품 양복을 입고, 거만하면서도 우아하고 듬직해 보였다.그녀는
그의 손에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일을 마친 후 돈을 지불하다니. 그녀는 그를 무엇으로 생각하는 걸까?남자가 냉담한 얼굴을 하고 발코니로 성큼성큼 걸어가니 과연 창문이 열려 있었다.여기는 층고가 높아서 3층이 4층 높이일 텐데 그녀는 어떻게 뛰어내렸을까?그가 그렇게 무서웠나?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칠 만큼?창문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물을 끼얹은 듯 청량한 바람이지만 남자의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화는 식히지 못하였다. 이 여인은 만 원으로 그를 모욕했을 뿐만 아니라, 일이 끝난 후에 창문으로 뛰어내려 도망쳤다... 잡히기만 해봐! ......택시에 앉은 소희가 재채기를 하자 운전기사가 백미러를 보며 물었다. “아가씨, 괜찮아요?”이렇게 예쁘게 생겨서 홀딱 젖어있다니, 딱 봐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소희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기사는 웃으며 말했다. “아직 학생이죠? 밖에 혼자 다닐 때 각별히 조심해야 되요.”“네, 감사합니다. 기사님.”소희는 대답하고 휴대폰을 꺼내 재빨리 문자를 보냈다. “천위 호텔의 7시와 9시경에 내가 찍힌 CCTV 기록은 모두 없애!”“ok!” 상대방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지시에 따랐다.남자의 귀에 거슬리는 말이 다시 귓가에 울려 퍼졌다. 소희는 오늘 임구택과 만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따위 고민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다만 임구택이 그녀가 왔었다는 사실을 모르게만 하고 싶었다.운해로에서 내리면서 소희는 뒷좌석을 적신 대가로 택시비를 두 배로 지불했다.별장으로 돌아오자 하인은 소희의 젖은 옷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작은 아가씨, 무슨 일이에요?”“일이 좀 있었어요, 일단 올라가서 샤워부터 할게요.”소희는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목욕물 준비해 드릴게요.”하녀는 더 묻지 못한 채 위층으로 올라가 준비했다.몇 분 후 소희는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긴장했던 몸이 점차 풀리기 시작했다.머릿속이 복잡해서 머리까지 물속에 파묻고 오늘 밤에 있
소희는 멍해졌다.남자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 “왜 절 따라오시는 거예요? 강성대 학생이신가요?”그는 오는 길에서부터 이 여자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멈추면 그녀도 무슨 일이 있는 척 멈추더니 엘리베이터까지 따라왔다.소희는 얼굴이 빨개졌지만 이내 다시 냉정을 되찾고 반문했다. “여기가 당신 집으로 가는 길인가요? 모든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을 왜 제가 따라다닌다고 하는 거죠?”남자의 눈동자의 싸늘한 빛이 스치더니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소희에게 올라오라고 눈짓했다.소희는 입술을 실룩거리며 비꼬듯 말했다. “됐어요, 오해받을 만한 행동 안할게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돌아서서 계단으로 걸어갔다.그녀 뒤로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히며 남자의 가늘게 뜬 눈을 가렸다.소희는 임구택과 다시 마주칠까 봐 아예 계단으로 9층까지 올라갔다.회의실에 도착하니 조교가 학과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교는 그녀를 보자 잠시 기다리라고 눈짓했다.그 옆에는 몇몇 학생들도 자료를 제출하러 왔는데, 그중 한 명은 따가운 눈빛으로 소희를 노려보았다. 소희는 못 본 척 휴대폰을 꺼내 스도쿠를 했다.5분도 안 돼 한 판을 풀고 나니 밖에서 점점 가까워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돌아온 지 얼마 안 됐죠? 출국한지 오래됐으니 돌아올 때 됐구나 싶었는데”교장선생님의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한 사람은 교장선생님이고, 다른 한 사람은...소희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공교로운 일이...?임구택도 소희를 보았다. 그의 눈빛은 그녀에게 머물지 않고 바로 지나갔다.학과장은 급히 마중 나가 교장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다.방 교장은 그에게 소개하였다. “이 분은 LS그룹의 대표이사님이십니다. 예전에 우리 학교 학생이었지요. 참, 우리 학교 여러 항목의 장학금도 임 회장님이 후원한 것입니다.”그러자 학과장은 냉큼 공손한 표정을 지으며 임구택과 악수를 나누었다. “오늘 마침 학생들에게 장학금 신청 서류를 제출
도경수는 차를 마시며 여유롭게 말했다.“내가 그런 말을 했었다고 치자. 그런데 그때 너는 동의 안 했잖아? 뭐라 그랬더라, 젊은 사람들은 자유롭게 연애해야 한다고 했었지?”“요즘은 맞선이 유행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내가 손녀를 찾으니까 이제 와서 네가 자유연애를 반대하는 건가?”강재석은 시언을 향해 물으며 말했다.“누가 맞선이 유행하지 않는다고 했어?”시언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기억이 안 나요.”이에 도경수는 비웃으며 말했다.“너희 할아버지와 손자가 둘이 함께 일부러 얼버무리는 거야? 내가 한 말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고!”강재석은 웃으며 시언에게 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냐?”시언은 태연하게 대답했다.“자유롭게 연애하는 걸로 할게요. 그것도 문제없거든요.”그 말에 강재석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모든 걸 예상하였다는 듯했다. 그러나 도경수는 곧바로 반대했다.“안 돼! 안 된다고! 우리 손녀를 건드리려 하지 마. 나와 도도희는 절대 그렇게 서둘러 재희를 시집보낼 생각이 없어. 최소 몇 년은 집에 두고 보고 싶단 말이야.”강재석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아까까지는 강시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감사를 표하더니, 이게 그에 대한 보답이야?”도경수는 서둘러 말했다.“시언아, 내가 너한테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 네가 원하는 게 뭐든 말해봐라. 내 수집품 중에 골라.”“골동품이든 진품 그림이든 상관없어. 너희 할아버지가 평생 탐내던 서화도 내줄게. 원하는 건 뭐든 가져가!”그러나 시언은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도경수 할아버지, 제가 원하는 건 단 하나, 강아심뿐이예요.”당당한 시언에 도경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강재석은 흐뭇하게 웃으며 도경수를 바라보았다.“들었지? 우리 시언이 널 대신해 손녀를 찾아줬잖아?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으면 그것에 걸맞은 보답을 해야지.”도경수는 화가 난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너희 집안은 이걸 빌미로 우리 손녀를 빼앗아 가려고 하는 거야? 정말
도도희는 강시언에게 물었다.“아심이 어렸을 때 사진은 없어?”시언은 아심을 한 번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있을 거예요. 돌아가서 찾아보도록 할게요.”“꼭 찾아줘.” 도도희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아심이 지난 20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녀에게는 모두가 공백이었다. 딸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마음이 조급했다.식탁은 오래된 황화리 목재로 만들어져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 아심은 창가를 마주하고 앉아 있었고, 창밖에는 꽃이 만개한 목련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도경수와 도도희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그녀는 다시금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익숙한 감정이 가슴 속에서 차오르는 걸 느꼈다.아심은 창가를 바라보며 말했다.“저기요. 예전에 그 자리에 꽃받침대가 있었고, 그 위에 꽃병이 놓여 있지 않았나요?”도경수와 도도희는 순간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도경수는 놀라 눈물을 머금은 채 물었다.“그걸 기억하고 있어?”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냥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도도희는 흥분하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맞아, 맞아! 거기에 분채 꽃병이 있었어. 할아버지가 그 안에 사탕을 숨겨두고는 널 안아 그 안에서 꺼내보라고 했잖니.”“너는 사탕을 집어 들 때마다 그렇게 행복하게 웃었어.”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서 기억에 남았나 봐요.”익숙함의 원인을 알게 된 아심의 마음에는 조금 더 따뜻한 친근함이 스며들었다....식사를 마치고 모두가 거실로 돌아왔다. 곧 도도희는 강아심에게 물었다.“또 기억나는 게 있니?”아심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다른 건 생각나지 않아요.”“그럼 내가 너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물건들을 보여줄게. 그러면 뭔가 떠오를 수도 있지.”도도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아심을 데리고 뒷마당으로 향했다.이에 이반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도도희가 정말 행복해 보이네요.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강솔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오늘은 모두가 행복한 날이니까요!”그녀는 소희를
“자, 먼저 밥부터 먹자고! 밥 먹자!” 도경수는 너무 기쁜 나머지 목소리마저 떨렸다.식사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고, 모두 함께 식탁으로 향했다. 도도희는 여전히 강아심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고, 감정을 좀처럼 가라앉히지 못했다.“그러니까, 세상에 이유 없는 호감은 없는 거야. 우리 첫 만남에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도 다 피가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어.”아심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정말 신기해요.”도도희는 그녀를 식탁에 앉히며 말했다.“일단 밥부터 먹자. 밥 먹고 나서 천천히 이야기하자.”모두가 둘러앉아 분위기가 조용히 가라앉은 그때, 도경수는 갑작스럽게 한쪽에 서 있던 가정부를 향해 입을 열었다.“양재아는 어디 갔지? 아침부터 보이지 않던데.”그러자 도우미가 대답했다.“아가씨께서 회사에 일이 있다고 하셔서 아침 일찍 나가셨습니다.”그 말을 듣자 강시언은 아침에 유전자 검사기관에서 만난 권수영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의 눈빛은 차갑게 얼어붙었다.도도희는 무심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아가씨라고요? 아심은 나의 유일한 딸이고, 우리 아버지의 유일한 외손녀예요. 그런데 집에서 다른 사람이 아가씨라고 불린다면, 아심은 뭐가 되는 거죠?”그 말에 도우미는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도경수가 급히 분위기를 수습하며 말했다.“예전에 습관적으로 그렇게 부른 거야. 이제부터 고치면 되지 않겠느냐.”하지만 도도희는 여전히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처음부터 양재아를 이 집에 들이지 말았어야 해요. 재아가 마치 이 집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잖아요.”“아심이 내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아이가 얼마나 불만을 가질지 모르겠네요.”소희가 나서서 말했다.“도도희 이모, 그건 제 불찰이에요. 저를 탓하세요. 스승님께서는 아무 잘못도 없어요.”임구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네 잘못은 아니야. 네 의도는 선의였으니까. 애초에 양재아가 유전자 검사를 하기 전에 도경수 어르신을 먼저 찾아간 게 문제였지
임구택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결과야말로 모두가 바라는 결말이네요!”처음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진석은 강솔과 도경수에게 휴지를 건네며 강솔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그만 울어. 네가 이렇게 울면 스승님도 마음을 가라앉히기 어려워.”강솔은 휴지를 받아 도경수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스승님, 이제 울지 마세요. 울지 말아요!”강재석 역시 소희가 건넨 휴지를 받아 눈가를 훔쳤다. 그는 강시언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손자, 잘했구나!’시언은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아심에게 돌렸다.아심은 울지 않았지만 그녀가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어딘가 불안하고 복잡해 보였다.이런 기분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자신의 기억 속 마지막으로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은 온두리에서 시언에게 끌려가던 날이었다.그때 아심은 시언의 차 안에서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어떤 일을 마주하게 될지 몰라 불안에 떨었다.지금의 감정도 그때와 비슷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경하면서도 따뜻한 감정이 스며들었다.‘이제 나에게도 가족이 생겼어.’도도희는 고개를 들어 눈물을 흘리며 아심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깊은 애틋함과 따스함이 가득했다. 도도희는 울면서도 웃고 있었고, 목소리는 떨렸다.“내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딸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어. 우리가 조금만 더 서로를 알았더라면, 진작에 만날 수 있었을 텐데...”아심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미소 지었다.“지금도 충분히 좋아요.”“맞아, 놓치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해.”도도희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누가 너를 데려간 거니?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었어?”아심은 기억을 더듬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요. 그때 저는 자주 맞았고, 기억이 흐릿해요. 조금 더 자랐을 때의 기억은 양부모님 댁에서예요.”“그분들은 제가 친딸이 아니라고 했어요. 강가에서 주웠다며,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하더군요.”“널
강시언은 강아심을 데리고 도경수의 집으로 돌아왔다. 정원을 지나던 중, 아심은 마당의 풍경을 바라보며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낯익은 감정이 가슴 속 깊이 몰려왔다. 아주 오래전, 마치 전생의 기억처럼, 그녀는 이곳에 와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왜 그래?” 시언이 멈춰 선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에 아심은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본가에 돌아오니 긴장됐나? 그 용감한 강아심도 이런 상황은 무섭나 보네?”시언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다시 그녀의 손을 잡고는 부드럽게 이끌며 앞으로 나아갔다.집 안으로 들어서자, 거실에는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나타나자 도경수가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다급하게 물었다.“결과가 나왔어?”“나왔어요.”시언은 결과지를 세 부로 나누어 도경수, 도도희, 그리고 강재석에게 각각 건넸다. 도경수는 떨리는 손으로 결과지를 받아 들고 급히 훑어 내려갔다. 거실 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했고, 모두의 시선이 결과지를 쥔 세 사람에게 집중되었다.가장 먼저 결과를 확인한 것은 도도희였다. 그녀는 결과를 본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이내 아심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도도희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 놀라움은 곧 기쁨으로 바뀌었고,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심아, 정말, 우리가...”도도희는 이 모든 것이 믿기지 않았다.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무려 이십 년. 그 모든 세월이 그녀에게는 과거를 묻어버린 긴 시간이었지만, 이제 그 모든 기억이 한순간에 되살아나는 듯했다. 마치 긴 꿈을 꾼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도경수 역시 보고서를 들고 손을 떨며 아심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반응만 보고도 이미 결과를 짐작하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아심을 향했고, 다들 눈에는 믿을 수 없는 감격과 놀라움이 가득했다.아심은 시언의 손을 꼭 잡으며 도도희를 향해 천천히 고개
“기뻐?” 강시언이 묻자, 강아심은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요.”“멍하나 보네?” 시언이 웃었다. 그리고 아심은 그저 그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시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 천천히 받아들이면 돼. 모든 건 내가 함께할 거니까.”아심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도도희 이모를 찾아가서 이 좋은 소식을 전하자.” 시언은 미소 지으며 아심을 놓아주고 차 시동을 걸었다. 아심은 잠시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기더니 물었다.“만약 도도희 이모가 제 엄마라면 제 아빠는 누구예요?”시언은 그녀의 질문에 설명했다.“너의 아버지는 도도희 아줌마의 대학 동기였어. 나중에 유학을 떠나고는 돌아오지 않았지.”“아마도 이미 다른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을 거야. 지금 네 혈육은 도도희 아줌마와 도경수 할아버지뿐이야.”아심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그럼, 나는 버려진 게 아니었네요.”“당연히 아니지!” 시언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넌 누군가에게 납치된 거야. 네가 사라진 뒤, 도도희 이모와 도경수 할아버지는 큰 고통을 겪었어. 그들은 널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어.”아심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따스한 햇살이 창가로 비추고 있었고, 그녀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던 어둠과 상처가 서서히 풀어져 가는 듯했다.‘나는 버려진 게 아니었어. 내 가족은 나를 찾으려고 했었어.’...한편, 권수영은 아직 유전자 검사 기관을 벗어나지도 못한 상황에서 양재아의 전화를 받았다.재아는 다급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결과 가져왔어요? 나 지금 검사소 뒤쪽에 있는 작은 공원에 있어요. 빨리 결과를 가져다줘요!]권수영은 난감한 목소리로 말했다.“결과는 미리 받았는데 강시언이 그걸 가져갔어요.”[뭐라고요?] 재아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갈라졌다.분명 한 시간이나 일찍 준비했는데, 어떻게 시언이 자신보다 먼저 올 수 있었단 말인가?이에 권수영이 서둘러 말했다.“진정해요, 재아 양. 그래도 내가
“여기 결과야. 정말로 검사 의뢰인의 대리인 맞아?”그 사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이렇게 결과를 빼돌리는 건 나한테도 큰 리스크와 책임이 따른다고!”권수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맞아, 의뢰인이 부탁해서 제가 대신 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 문제 될 일 없을 거니까.”권수영은 결과지를 받아 들고는 그 사람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조용히 보고서를 펼쳤다.앞부분의 글귀들은 건너뛰고, 그녀는 바로 결과 부분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막 확인하려는 찰나, 보고서는 갑자기 누군가에게 빼앗겼다.깜짝 놀라 고개를 든 권수영은 앞에 서 있는 고고하고 냉랭한 남자를 보고 얼어붙었다. 강시언은 결과지를 한눈에 훑어본 뒤,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권수영 씨? 이 보고서가 당신과 무슨 관계죠? 검사 직원에게 돈을 주고 결과를 빼돌리다니, 이게 불법인 건 알고 있나요?”권수영은 강시언을 알아보고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변명했다.“이건 오해예요! 제가 아는 사람 대신 결과를 받으러 온 것뿐이에요. 아침에 양재아가 부탁해서요.”시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그러니까 양재아가 당신을 보낸 건가요?”권수영은 순간 아침에 재아가 혹시라도 들키게 된다면 자신의 이름은 절대 말하지 말라고 당부한 말이 떠올랐다.이에 그녀는 황급히 말을 바꾸며 웃었다.“아, 아니에요. 재아는 몰라요. 제가 여기서 검사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미리 확인하려고 온 거예요.”강시언은 더욱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은 더 따질 시간 없으니 그대로 전하세요.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요.”권수영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시언이 자리를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양재아가 검사한 게 맞는데, 왜 쓸데없는 짓이라고 한 걸까?’권수영은 생각에 잠긴 사이, 아까 결과지를 전달해 준 직원이 급하게 달려왔다.“아직 안 갔네. 정말 검사 의뢰인의 친구 맞아? 상사가 이 일에 대해 저를 추궁하고 있어. 그러니 와서 설명 좀 해줘!”“나, 나도 어떻게
강아심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중간에서 저희를 위해 고생하셨잖아요. 제가 밥 한번 대접할게요.”그 말에 강시언은 비꼬듯 말했다.“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힘을 써서 네가 밥을 사준다는 거야?”아심은 눈을 빛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수고비를 원하신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아요.”이윽고 휴대폰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얼마면 적당할까요, 강시언 씨?”그 말에 시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또 돈을 보내기만 해봐!”아심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심의 얼굴선이 빛을 받아 더욱 뚜렷하고 우아하게 빛났다. 눈가에 번진 따스한 빛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아심의 집에 도착한 후, 그녀는 말했다.“먼저 앉아 계세요. 물 좀 가져올게요.”아심은 냉장고에서 물 두 병을 꺼내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시언은 소파에 앉아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아심은 물을 내밀며 무심하게 물었다.“바빠요?”그러자 시언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물 대신 그녀의 손목을 잡고는 가볍게 끌어당기자 아심은 시언의 품에 안겼다. 그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다.“검사도 끝났으니, 이제 우리 문제를 이야기해 보자.”아심은 시언의 무릎 위에 앉은 채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우리 문제라뇨?”시언은 차갑고 또렷하게 말했다.“그날 돈을 보낸 건 무슨 뜻이었지?”그 말에 아심은 그를 바라보며 침묵했다. 시언은 얼굴을 더욱 차갑게 굳히며 그녀의 뺨을 살짝 잡았다.“돈은 보낼 줄 알면서 말은 못 해?”아심이 미간을 찌푸리며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 시언의 손은 아심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더니, 이내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키스했다.강아심은 마치 마법에 걸린 듯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고, 한참 후에야 시언의 어깨를 밀어내며 중단시켰다. 아심은 시선을 피하며 나직이 말했다.“우리 관계는 이제 예전으로 돌아가선 안 돼요.”그 말에 시언의 눈빛이 더욱 어두워졌다.“예전 관계가 어떤 관계인데?
강솔과 진석이 위층에서 내려왔다. 강솔은 기쁜 표정으로 소희를 부르며 소희에게 달려갔다.오늘은 모두가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비록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였고 불안감도 여전히 있었지만 말이다.진석과 임구택도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옆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소희는 강솔과 함께 대화를 이어갔다.소희가 강솔에게 물었다.“양재아는 어디 있어?”강솔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아침 먹을 때까지만 해도 있었어. 상태도 괜찮아 보였는데, 지금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네?”도경수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보며 말했다.“걔도 마음이 복잡할 테니 억지로 불러내지 말게. 혼자서 마음을 가라앉히게 둬.”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아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모습이 오히려 더 어색했으니, 혼자 위층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언젠가는 모든 걸 받아들이게 될 것이었다....아침 8시, 아심은 시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자 시언은 그녀에게 내려오라고 했다.몇 분 후, 아심은 차에 올라탔다.“도도희 이모는요?”“먼저 가셨어.” 시언은 도로 상황을 살피며 말했다.“우리는 먼저 아침을 먹고 나서 합류할 거야.”“저는 이미 아침을 먹었어요.”시언은 미간을 찌푸리며 아심을 돌아보자, 아심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와 눈을 마주쳤다.“왜요?”“아무것도 아니야.” 시언은 무심하게 대답하고 차를 출발시켰다.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얼마 가지 않아 조그만 아침 식당이 보였고, 아심이 말했다.“여기 아침 식사가 괜찮아요. 당신은 여기서 아침을 먹고 오세요. 저는 차에서 기다릴게요.”그러자 시언은 무심하게 말했다.“괜찮아, 안 먹어.”“안 먹으면 배고프지 않아요?” 아심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안 고파.” 시언은 무뚝뚝하게 대답하며 운전만 계속했다. 아심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가방에서 따뜻한 우유 한 병과 직접 만든 샌드위치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샌드위치는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시언은 그녀를 흘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