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로 돌아오자 장명원의 표정이 의미심장하자 간미연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왜, 체력이 모자래서 헛것을 본 거야? 헛된 기쁨이었나?”명원은 핸드폰을 뚫어져라 보며, 미간을 찌푸리고는 핸드폰을 미연에게 건넸다.“보스가 직접 맡은 임무야, 한번 봐!”미연이 핸드폰을 받아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더니 눈빛이 심각하게 변하며, 핸드폰을 탁자 위에 던진 후 옷을 찾기 시작했다.“빨리 찾으러 가자!”명원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옷을 빠르게 입고 자동차 열쇠를 들고 문밖으로 나갔다.초겨울의 찬 밤, 명원은 차를 몰고 강성의 거리를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가로질러 나갔다. 경원주택단지에 도착한 후, 미연이 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희는 전화를 받고도 별로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올라와!”둘이 건물에 도착하자, 소희는 엘리베이터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집 안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둘을 이웃집으로 이끌며 검은색 스크린이 붙어 있는 문을 두드렸다.“자, 일어나! 빨리 나와!”지니가 툴툴거리며 나왔고, 하품하면서 말했다.“소희, 날 부른 거야?”소희는 웃으면서 미연에게 말했다.“친구를 소개할게! 이 녀석의 시스템은 임구택이랑 연결되어 있어. 내 상황을 언제든지 볼 수 있지. 네가 오늘 밤 여기 재워서, 너희들이 온 걸 잊게 해줘!”미연의 눈빛이 번뜩이며 지니를 바라보자 지니가 크게 소리쳤다.“싫어, 싫어!”소희가 눈살을 찌푸리며 재촉했다.“빨리 좀 해!”미연은 즉시 행동에 옮겼다.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화면 상단에 4차원 키보드가 튀어나오고, 지니의 시스템에 몰래 침투해 최근 5분간의 기록을 삭제하고, 잠재웠다.지니가 구택에게 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눈을 감았고, 통통한 몸이 바닥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져 쿨쿨 잠이 들었다.그리고 미연은 평온하게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다 됐어!”명원이 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구택이 형도 속이려고?”소희는 자기 집으로 걸어가며 대답했
장명원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곳에 가면 네 맘대로 될 일이 아니야!”그러자 간미연은 화가 난 듯 명원을 노려보며 말했다. “좀 좋은 말 할 수 없어? 재수 없게 자꾸 그런 말 할래?”명원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눈썹을 찌푸리며 일어나 발코니로 가서 신선한 공기를 마셨다.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다면, 매일 임무가 생기기를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미연이 물었다. “네가 전에 진언의 밑에서 일했잖아. 지금 가도 들키지 않을까?”소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괜찮아, 나를 본 사람이 별로 없어. 불곰 쪽에서 나를 본 사람은 내가 거의 다 처리했으니까.”“언제 움직일 거야?”“성연희의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야. 지난번에는 나 때문에 결혼식을 취소했으니, 이번에는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 없어.”미연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나한테 필요한 거 있어?”“있어! 내일 나 운성에 다녀올 건데, 너도 같이 가자. 이틀 정도 머물 예정이야.”미연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좋아.”“내일 아침 9시에 출발해.”“그래.”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 할 일이 그것뿐이야. 늦었으니 명원을 데리고 가서 쉬어.”그러자 명원이 갑자기 다가와 말했다. “나도 같이 갈래, 어떻게 해서든 갈 거야.”“매곡리에 들어올 때 서명한 계약을 기억하지?”무심한 표정으로 묻는 소희의 질문에 명원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이를 악물었다. “나는 하얀 독수리를 대표하는 게 아니야, 구택이 형을 대신해서 널 보호하러 가는 거지!”“내가 말했듯이, 거기엔 이미 나를 도울 사람이 있어. 네가 가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킬 거야.”소희의 눈빛은 단호했다. “명령을 따르고, 매곡리를 무조건 신뢰하며, 함부로 움직이지 마!”명원이 더 말하려 했지만, 미연이 명원을 향해 눈을 흘겼다. “보스의 계획을 따라!”“가자, 너희를 배웅해 줄게.”소희가 일어나자 명원은 이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돌아오는 길에 명원이 운전을 했는데,
성연희는 강재석이 아픈 줄 알고, 소희와 영상 통화를 했는데 할아버지를 직접 보고 나서야 안심이 됐다. 연희는 전화하면서 애교를 부렸다. “할아버지, 저 결혼하는데 오실 거예요?”강재석은 다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갈게, 내가 네 결혼식에 안 갈 수 있겠니? 축하 선물도 다 준비했어!”“정말이에요?” 연희는 이미 강재석에게 청첩장을 보냈지만, 운성을 떠나고 싶지 않아 할까 봐 전화로 재촉하지는 않았다. 근데 이제 강재석이 온다고 하니, 기쁜 마음에 웃음꽃이 만개했다.“물론이지, 네 결혼식에 내가 어떻게 안 오니? 네 축하 선물도 다 준비했단다.” 강재석은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축하 선물은 필요 없어요, 할아버지가 오시기만 해도 제 결혼식은 완벽해질 거예요!”연희와 강재석은 몇 마디 더 나누고, 연희는 소희에게 서둘러 돌아오라고 했다. 가급적이면 강재석과 함께.전화를 끊은 후, 연희는 들뜬 마음으로 노명성에게 말했다. “강재석 할아버지도 오신다는데, 너무 좋아!”“그래?” 연희의 말에 명성도 다소 놀랐다. “강재석이 쉽게 운성을 떠나지 않고, 보통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정말 대단한 결정을 하셨네!”“당연하지, 나도 할아버지의 손녀니까!” 연희는 자랑스럽게 눈을 반짝이자 명성이 연희를 무릎에 앉히며 물었다. “구택 씨 아직 안 돌아왔어?”“소희에게 물어봤는데 결혼식 전에는 돌아온다고 해!”명성의 표정은 굉장히 차가웠다. “소희는 구택이 M 국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어?”“지사에 문제가 생겨서 직접 해결하러 갔다고 들었어.”“이거 봐!” 명성은 휴대폰을 열어 연희에게 보여주었다. 외국의 경제 뉴스 사이트에 실린 기사였는데, 구택이 뉴욕에서의 일정을 몰래 찍은 사진과 함께 실려 있었다. 연희는 호텔에서 구택과 함께 나오는 여자를 보며 웃음을 잃었다. “강아심?”명성은 호기심이 가득했다.“저 사람이 왜 구택과 함께 있지?”사진 속 두 사람은 매우 가까이 붙어 있었고, 현지 시각으로 아침 8시에
임유민은 다시 휴대폰을 켜고 임구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삼촌, 거기 문제 아직 해결 안 됐어요? 이틀 후면 연희 누나 결혼식인데!]메시지를 보낸 후에야 유민은 이 시간에 삼촌이 잠을 자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유민은 임유진이 보낸 사진을 다시 찾아 구택의 행동과 표정을 자세히 살펴보며, 구택과 저 여자가 단지 우연히 만났다는 증거를 찾아보려 했다. 그래서, 신문에 실린 원나잇 스탠드가 아니었다는 것을 입증하려 했다. 유민이 사진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바로 휴대폰을 뒤집어 놓고, 크게 외쳤다.“들어와요!”소희가 문을 밀고 들어와, 소파에 앉아 있는 유민이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왜 나를 그렇게 쳐다봐?”유민은 소희를 훑어보며 말했다.“할머니가 뭔가 이상한 거 안 해줬는지 보는 거예요.”소희는 책상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좀 유용한 걱정을 하면 안 될까?”유민은 일어나 소희에게 다가가며 물었다.“유용한 것이라. 그러면 숙모와 삼촌은 언제 결혼식을 올릴 건데요?”그러자 소희는 가방을 놓는 동작을 멈추며 물었다.“우리가 결혼식을 올리든 말든 차이가 있나?”“물론 차이가 있죠. 결혼식을 올리면,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숙모가 제 숙모라고 말할 수 있죠!”다른 여자가 삼촌을 유혹한다면, 유민은 직접 그 사람을 찾아가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었다. “지금도 네 입 막고 있는 거 아니야!”소희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유민이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둘의 관계를 공개해도 된다는 거야?”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부터 비밀이 아니었어!”그러자 유민이 기뻐하며 말했다. “그러면 다행이네.”소희는 유민의 반응이 다소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책을 꺼내며 말했다. “하루 종일 이런 거 생각하지 말고, 수업 들어!”수업은 45분 동안 진행되었고, 쉬는 시간에 소희는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 “너 이번에 국내 수학 경시대회 참가하려고 했지?
임유민이 흥분해서 말했다. “우리 반에 숨고 팬인 여학생들이 꽤 많거든요. 만약 내 숙모라는 걸 알게 된다면, 아마 정말 부러워 죽을 거예요!”“아, 그래서 나를 부르고 싶었던 것이네.” 소희는 깨달았다. “그 여학생 중에 네가 좋아하는 애 있어?”“흥!” 유민은 귀찮다는 듯 말했다. “나는 어린애 같은 여학생들을 좋아하질 않아요. 나는 엄청난 포부를 가진 사람이니까.”“어떤 포부인데?”“임구택 삼촌처럼 되는 거요!”이에 소희는 할 말을 잃었고 그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할 게 있는데 드라마 촬영이 끝났어. 성연희 결혼하고 나면 운성에 가서 할아버지와 좀 지낼 거니까 혼자서 공부 잘해.”유민은 사실 과외선생님이 없이도 성적이 괜찮았다. 소희가 매주 와서 함께 숙제하며 대화를 나누어 주는 것은 그저 유민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기 위함이었다.“얼마나 걸리는데요?”소희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아마 한 달 정도?”“기말고사 전에 돌아올 수 있어요?”“거의 맞춰서 돌아올 거야.”“그럼 최대한 빨리 와요!”소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왜, 내가 없으면 자신 없어?”그러자 유민의 얼굴이 붉어졌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말했다. “그냥 삼촌이 보고 싶어 할까 봐서 그러거든요!”유민의 말에 소희가 책장을 넘기다가 멈추었다. “그럼 네가 가끔 삼촌이랑 대화도 나눠.”“나랑 대화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삼촌이 보고 싶어 하는 건 내가 아니잖아요.”이에 소희는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둘은 잠시 장난을 치다가 두 번째 수업을 계속했다.점심때, 소희가 남아서 함께 밥을 먹었다. 노정순이 소희의 손을 잡고 이야기할 때, 임유진이 유민에게 눈짓했다. “소희는 모르겠지?”유민은 비웃듯 말했다. “우리 선생님을 얕보지 마. 그렇게 소심한 사람이 아니니까.”그러자 유진은 눈을 크게 떴다. “무슨 말이야, 네가 사진을 소희에게 보여줬어?”“내 말은, 선생님은 삼촌을 매우 믿어. 그러니까 사진 하나쯤이야
성연희가 다가와 물었다. “임구택 아직 안 돌아왔어?”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좀 있어서 아직 못 끝냈대.”연희는 뉴스 보도를 떠올리자 눈빛이 어둡게 변했다. 그래서 구택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강재석 할아버지는 내일 몇 시에 도착해?”“할아버지는 아침 8시 비행기로, 대략 10시쯤 강성에 도착할 거야. 명우가 마중 나가서 할아버지 먼저 제 스승님 댁으로 모셔다 드리고 두 분이 같이 오실 거야.”“그래, 명우 씨가 수고가 많네, 고맙다고 전해줘!” 연희가 웃음을 터트리더니 갑자기 돌아서며 말했다. “아, 그리고 내일 너한테 줄 깜짝선물도 있어!”소희는 눈썹을 한 번 치켜올리며 물었다. “무슨 깜짝선물?”“내일 알게 될 거야!”소희는 연희가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넌 친구들하고 있어. 여기는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으니까!”“친구들도 나 신경 안 써. 나는 그냥 너랑 같이 있고 싶어!” 연희가 말을 마치고는 와인 한 병을 들고 소희의 손을 잡았다. “딴 데 가서 술이나 마시자. 오늘 밤엔 어차피 잠도 안 올 거 같아.”소희는 연희에게 끌려 방을 나와 복도를 지나 밖에 있는 옥상 정원으로 갔다. 두 사람은 나무 바닥에 앉았고 연희가 소희에게 술을 따랐다. “마셔도 돼?”“응!” 소희가 술잔을 받아 입술에 가져다 대고 한 모금 마셨다. 연희는 한 번에 잔을 비우고, 큰 눈동자가 불빛 아래에서 더욱 반짝이며 말했다. “노명성을 처음 만난 건 내가 16살 때였어. 노한명 아저씨랑 같이 우리 집에 왔을 때야. 명성은 공부 잘하는 학생이고 나는 공부를 못 했지.”“바로 그날 수학 시험에서 14점을 받았거든. 부모님이 내 시험지를 좀 봐달라고 해서 내 시험지를 보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더라고.”“모든 방정식의 답을 1로 계산한 내가 참 인재라고!”“사실 처음으로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칭찬해 준 거야. 그때부터 나는 명성이 앞으로 내 사람이 되게 만들 거라고 결심했지!”
“나는 조금 화가 나서 한 달 동안 말을 섞지 않았어. 그런데 그날 오후 수업이 끝나고 나오니까, 학교 건물 밑에서 기다리고 있더라.”“그리고 나를 보자마자, 그날 밤 내가 원하면 책임지겠다고 물었어.”“나는 일부러 필요 없다고 말했지. 그러자 되게 진지한 얼굴로, 그게 자기 첫 경험이라고 말하더라고.”“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어. 그게 무슨 뜻이냐고, 첫 경험이 자랑스러운 거냐고.”“그러니까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어. 그리고 난 그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명성에게 달려가서 저돌적으로 키스했지.”“그때부터 우리는 관계를 확인하고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왔어.”“명성은 졸업한 후 바로 가족 사업을 이어받았지. 회사에는 예쁜 여자 연예인이 수두룩했고, 주위에는 명성을 노리는 여자들이 많았어.”“지위를 노리는 사람, 외모를 노리는 사람 등등. 하지만 명성은 자신이 한 번 당했기 때문에, 이번 생에는 그 한 번으로 충분하다고 그렇다고.”“올해 명성은 서른, 나는 스물일곱. 드디어 우리 결혼할 거야!”성연희는 눈빛이 반짝이며 소희를 바라봤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서로를 알고 있었고 마음이 식거나,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간 적도 없어.”“내가 말했듯이, 첫 만남부터 나는 명성이 내 사람이 될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소희와 연희가 만났을 때, 연희는 이미 명성과 사귀고 있을 때였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소희는 연희와 명성이 겪는 고난을 더 많이 목격했다. 그래서 연희가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 말하자, 둘 사이의 남다른 애정을 이해하게 됐다.아마도, 수많은 여자들이 명성을 좋아하고 연희가 막아서면서, 그것이 두 사람 사이의 일종의 암묵적인 약속이자 재미가 된 것일지도 몰랐다.소희는 가슴이 따뜻해지며 부드럽게 웃었다. “결혼은 새로운 여정의 시작일 뿐이야. 앞으로 동화에서 나오는 해피엔딩처럼 둘이 평생 행복하게 살아.”그러자 연희는 소희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서로의 사랑을 지켜봤고, 앞으로 서로의 결혼과 자녀의 성장도 목격할 거
두 사람이 방으로 올라가 각자 샤워를 하고 난 후, 침대에 누워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잠시 후, 차미란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빨리 자, 내일 다크서클 달고 화장하려고?”그 말에 성연희는 소희를 이끌고 누웠고, 차미란은 불을 끄며 연희에게 소희의 이불을 끌어안고 굴러다니며 걷어차지 말라고 당부했다.이에 연희는 웃으며 대답했다. “음,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소희의 능력으로 볼 때 내가 이불을 뺏으려고 발버둥을 쳐도 안 될 것 같은데.”연희 엄마는 연희를 한 번 쏘아보고는 방문을 닫고 나갔다.별장 정원의 불빛이 들어와 방 안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연희는 이불을 들추며 소희와 눈을 마주쳤고, 두 사람의 눈에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어렸다. 어쩌면 내일 결혼식 때문일까, 소희는 오늘 밤 연희가 유난히 어린 애 같다고 느꼈다. 소희는 베개 아래에서 휴대폰을 꺼내 잠깐 확인했지만 임구택의 메시지는 없었다. 오늘 아침에만 비디오 하나를 보냈을 뿐, 하루 종일 소식이 없었다.‘내일이 연희의 결혼식인데, 돌아올 수 있을까?’잠시 후, 연희가 말을 꺼냈다. “소희야, 잠들었어?”소희가 고개를 돌려 연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로 잠 못 들었어?”연희는 이불을 껴안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조금.”그러자 소희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럼 5분만 더 이야기하자.”연희는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 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 이불을 끌어안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명성에 대해, 구택에 대해, 앞으로의 삶에 대해, 떠오르는 것마다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밤이 점점 깊어졌고, 어느덧 두 사람은 졸음이 몰려와 서서히 잠이 들었다.새벽, 차미란이 들어와 두 사람의 이불이 발치로 미끄러진 것을 보고는 조용히 다가가 이불을 덮어주었다. 연희는 깊이 잠들었지만, 소희는 차미란이 들어오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소희는 눈을 뜨지 않은 채, 차미란이 이불을 덮어주는 것을 느끼고, 연희의 곁에 앉아 잠깐 연희를 바라보
휴대폰을 내려놓은 뒤, 강아심은 인터넷으로 강성 군수 공장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관련된 내용은 거의 없었고, 유용한 정보는 전무했다.공장 뒤의 책임자에 대한 정보는 더욱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속으로 감탄했다.‘역시 철저히 감춰져 있군.’책임자에 대해 알 방법이 없으니, 결국 현장에서 상황에 따라 대처해야만 했다.아심은 다시 허형진 회사의 자료를 꺼내들고, 오후 내내 그의 회사 제품에 대해 숙지했다. 그저 자리에만 앉아 있는 장식품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완벽히 전문적이지는 못해도, 적어도 기본적인 질문에는 답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했다....퇴근 후, 허형진이 직접 아심을 데리러 왔다. 허형진은 4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중년 남성들의 모습과는 달랐다.배가 나오지도 않았고, 머리도 빠지지 않았으며, 상업적인 느끼함과 세속적인 느낌이 없었다.검은색과 회색이 조화를 이룬 스포츠웨어를 입고, 선글라스를 쓴 그의 모습은 세련되고 단정했다.아심은 그를 보자 놀란 듯 웃으며 말했다.“오늘같이 중요한 자리에서, 이 복장은 좀 너무 캐주얼한 거 아닌가요?”허형진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맑은 눈빛으로 답했다.“이런 자리에서는 제가 주인공이 아니잖아요. 너무 눈에 띄지 않는 게 더 낫죠. 낮추는 게 전략이예요.”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좋은 꿀팁이네요!”허형진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사장님, 제가 오히려 배워야 할 게 많아요. 제가 이렇게 아는 척하는 건, 고수 앞에서 재주를 부리는 거나 다름없어요.”아심은 생각하는 척하며 말했다.“이렇게 저를 띄워주시면, 오늘 저한테 맡기신 일에 오히려 긴장돼서 제대로 못 할까 봐요.”허형진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걱정 마세요. 긴장할 사람은 저죠. 제가 사장님을 모시고 가는 이유도 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예요.”그들은 몇 마디 농담을 주고받은 뒤, 함께 넘버 나인으로 향했다.넘버 나인에 도착하자, 이미 몇몇 사람들이 와 있었다.고급스럽고 우아하게
도경수는 여전히 자신의 기쁨에 취해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기대어 마치 어린 시절처럼 의지하는 도도희를 보며 순간 멍해졌다.늙은 눈동자가 붉어지더니, 그는 도도희의 어깨를 감싸안고 다정하게 등을 두드렸다. 아무 말 없이도 두 사람의 마음은 혈연으로 연결된 듯 서로의 감정을 이해했다....수요일, 강아심은 한 오래된 고객에게서 전화를 받았다.[사장님, 부탁드릴 일이 하나 있는데요.]아심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사장님, 말씀하세요.”허형진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사실 이번에 강성에서 아주 큰 규모의 군수 공장을 설립하려고 해요. 이 공장은 공사 협력 기업 형태로 시작되지만, 곧 국내 최대 군수 산업체가 될 예정이고요.][지금 투자 유치 단계에 들어가는데, 많은 공급업체의 참여가 필요해요. 그리고 우리 회사 제품이 딱 적합해요.]아심은 웃으며 말했다.“사장님의 회사는 실력과 평판이 있으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요?”그러나 허형진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제 실력은 믿지만, 문제는 군수 공장 뒤에 있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잘 모르겠다는 거죠.][다른 공급업체들도 지금 난리예요. 여기저기 이 비밀스러운 인물의 배경과 정보를 캐내고 있죠.]아심은 흥미롭게 물었다.“그럼 뭔가 알아내셨나요?”허형진은 약간 자랑스럽게 대답했다.[다행히 제 인간관계가 괜찮아서요, 몇 가지 실마리를 잡았습니다.] [오늘 저녁, 주요 군수 장비 공급업체 몇 곳이 이 인물을 모시기 위해 넘버 나인에서 저녁 자리를 마련했대요.][저도 얼굴에 철판 깔고 참석하려고 해요. 그래서 사장님께 전화 드린 거예요. 번거롭겠지만 같이 가주실 수 있을까요?]그 말에 아심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제가요? 그분을 아는 것도 아니고, 제가 가서 도울 수 있을까요?”허형진은 급히 말했다.[사장님,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바라는 건 사장님께서 그분의 성향을 파악해 주시는 거예요. 이런 부분에서 강아심 사장님은 전문가시잖아요.]그는 곧 덧붙였다.
“누가 네 아버지를 파티에 초대했는데, 굳이 재희를 데리고 간 거야. 내 생각엔 재희를 자랑하려고 데리고 간 게 분명해!”강재석은 투덜거리며 말했다.“재희는 워낙 착해서, 네 아버지 뜻에 다 맞춰주고 있잖아!”도도희는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재희를 데리고 가서 뭘 하시려고 그러는지.”강재석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 양반 말이, 재희가 청년 인재들을 많이 알아둬야 한다더군. 이게 다 나를 약 올리려고 하는 거라니까!”도도희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우리 아버지, 생각이 점점 더 많아지시네.”그러다 갑자기 표정이 누그러지며 말했다.“오늘 재희 아빠를 만났어요.”강재석은 그녀의 얼굴을 살피며 부드럽게 웃었다.“결국 만나러 갔구나.”도도희는 고개를 숙이며 가볍게 끄덕였다.“재희를 걱정하실까 봐, 만나서 얘기하고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그리고 오늘 알게 됐는데, 그 사람이 유학 갈 때 썼던 돈이 사실 우리 아버지가 준 거였어요.”강재석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사실 그 일, 나도 알고 있었어. 그때 네 아버지가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해서 너한테 이야기하지 못했을 뿐이지.”“아저씨도 알고 계셨어요?”도도희는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강재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그때 네가 재희를 낳고 나서, 네 아버지도 마음이 흔들렸었지. 너와 재희 아빠를 강하게 반대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 양반도 고집이 꽤 세잖아.”“그때 네 아버지는 그 남자가 너를 좋아하는 게 정말 진심인지 의심했어. 그래서 찾아가 돈을 주며 시험해 본 거야.”강재석은 말을 이어갔다.“네 아버지의 생각은 그랬어.”“만약 돈을 거절하고 너와 함께하는 걸 택한다면, 비록 아이가 태어난 상태라 해도 네 아버지는 너희 관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지.”“그런데 안타깝게도 돈을 받고 떠났고, 그 일로 네 아버지는 크게 실망했지.”“네가 계속 그 남자를 그리워하니 더 화가 났던 거
이도하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은 듯 도도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차분하고 냉정했으며,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안감이 치솟았다.한때 자신만 바라보던 도도희를 결국 스스로 놓쳐버렸다는 뼈아픈 자각이 가슴을 후벼 팠다.후회와 고통이 이도하의 마음을 가득 채우며, 그는 그 시절의 선택을 다시금 의심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침묵하던 이도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우리 딸을 찾았다고 들었어. 맞아?”이도하가 말을 마치자, 도도희의 표정에 경계심이 스쳤고, 이를 알아챈 그는 즉시 덧붙였다.“걱정하지 마. 절대 딸을 빼앗으려는 게 아니야. 솔직히 너무 궁금하긴 하지만, 내가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단 한 번도 다하지 않았다는 걸 잘 알아.”“그러니 네 곁에서 데려가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도도희는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그 아이는 당신에 대해 물어본 적도 없고, 아버지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않아. 그러니 굳이 만남을 주선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이도하는 순간적으로 희미한 기대를 품었지만, 도도희의 말에 완전히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는 말했다.“그 아이에게 내 이야기는 하지 마. 난 만날 자격조차 없으니까.”그는 잠시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이번에 귀국한 건 부모님을 해외로 모시러 온 거야. 아마 이번이 마지막 귀국일지도 몰라.”“그런데 떠나기 전에 네게 꼭 말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이렇게 연락했어.”도도희는 말했다.“무슨 얘긴데?”이도하는 두 손을 맞잡고,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하듯 고개를 숙였다.“도도희, 20년 전 내가 갑자기 떠난 건 네 아버지가 날 찾아왔기 때문이야.”도도희는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네 아버지가 날 찾아와서, 해외로 떠나라고 돈을 줬어.”이도하는 고개를 떨구며, 미안함에 목소리가 낮아졌다.“그 당시 나는 전액 장학금을 받지 못해서 집안 형편으론 해외 유학을 갈 수 없었어.”“결국 그 돈의 유혹에 넘어갔지. 미안해. 이건 20년간 내 마음을 짓누
이도하는 말했다.[며칠 전 강성대학을 지나가다, 우리가 자주 가던 대학교 맞은편 식당이 사라졌더라고.][지금은 카페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그곳이 그립더라. 내가 거기 예약했어. 기다릴게. 너 안 오면 난 안 가!”도도희는 이도하에게 확답을 주지 않았다.잠시 후, 이도하는 침묵 속에서 전화를 끊었다.아침 식사를 마친 도도희는 고민 끝에 이도하를 만나기로 결심했다. 20년 전 그는 갑작스럽게 떠났고, 둘의 관계는 그렇게 끝났다. 그래서 이번 만남은 20년 후에 과거를 정리하는 마침표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도도희가 집을 나서려 할 때, 이반스가 뒤에서 다가왔다. 그는 손에 우산을 들고 있었고, 깊은 갈색 눈동자에는 온화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도경수 어르신 말씀에 따르면, 정원에 개미가 이사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오늘 비가 올지도 모르니 우산을 가져가.”도도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우리 아버지가 재희를 위해 장난으로 하신 말이야.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확인할 수 있는데, 개미를 보고 날씨를 예측하다니?”그러나 이반스는 고집스러웠다.“그래도 가져가.”도도희는 결국 손을 내밀어 우산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 이반스.”이반스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천만에. 빨리 돌아오기나 해.”도도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겠어.”...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이도하는 이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를 보는 순간 도도희의 감정은 물밀듯이 몰려왔다.2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이도하는 도도희의 기억 속 모습과는 사뭇 달라졌다. 약간 체격이 커졌고, 눈빛은 예전만큼 맑지 않았다.그는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듯했으며, 얼굴에는 세월의 풍파보다는 여유가 담겨 있었다. 여전히 점잖고 잘생긴 모습이었지만, 더 이상 도도희가 알던 그 사람은 아니었다.그들과 함께했던 수많은 추억이,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물결처럼 떠올랐다.도도희는 여전히 믿고 있었다. 그 시절, 이도하는 자신을 사랑했었다
아심은 살짝 민망해하며 도도희를 속일 수 없다는 걸 알고 부드럽게 웃었다.“그냥 오해였어요.”...도도희와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눈 후, 아심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샤워하고 머리를 말린 뒤 침대에 누웠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책을 한 권 꺼내 읽어 보았으나 흥미가 생기지 않아 한쪽으로 던지고, 다시 몸을 뒤집어 침대에 엎드렸다.한참 지나 새벽이 되자, 휴대폰이 진동하며 알림이 왔다. 아심은 바로 휴대폰을 열었고, 누군가 그녀에게 음악 공유를 요청하는 화면을 보자마자 눈가가 붉어졌다.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부드럽고 잔잔한 멜로디가 흘러나오자, 그녀의 감정이 출렁이며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노래 한 곡이 끝난 뒤, 아심은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아직 화났어요?]그러자 강시언이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내가 듣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야.]아심은 다시 물었다.[그럼 뭘 듣고 싶은데요?][스스로 생각해 봐. 생각나면 알려줘.]아심은 휴대폰 화면을 이마에 댄 채 잠시 머물렀고, 이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답장은 보내지 않은 채 휴대폰을 손에 쥔 채 그대로 잠에 들었다....토요일 아침이 되자 막 잠에서 깨어난 도도희는 도경수와 아심이 정원에서 함께 꽃나무를 손질하는 모습을 멀리서 보았다.도경수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가득했고, 요즘 그의 기분은 나날이 좋아져 몸 상태까지 달라 보였다. 거실에서는 강재석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에 도도희는 다가가 인사를 건네며 웃었다.“재희가 어렸을 때랑 정말 비슷하네요. 항상 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다녔었죠.”강재석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이젠 도경수도 뭐만 해도 꼭 아심이를 데리고 하려고 하니까.”도도희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이때, 양재아가 계단을 내려와 밝게 인사했다.“할아버지, 도도희 이모.”재아는 정원에서 도경수와 아심이 함께 있는 모습을 힐끗 보며 약간의 어색함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제가 도경수 할아버지의 손녀가 아니라는 게 확정됐으니, 이
자신의 별장으로 돌아온 강시언은 넓은 거실의 어둠과 고요 속에 발을 들였다. 거실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빛이 커다란 통유리창을 통해 바닥에 옅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그는 조명을 켜고 셔츠의 단추를 풀며 담배를 들고 발코니로 나갔다. 발코니의 라탄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한쪽 팔을 의자 팔걸이에 느긋하게 걸친 채 어두운 밤 풍경을 바라보았다.시언의 손가락 끝에서 담배 불빛이 희미하게 깜빡였고, 어두운 조명 속에서 남자의 차가운 분위기는 더욱 서늘하고 날카롭게 느껴졌다.잠시 후, 휴대폰 알림 소리가 울리자, 그는 컴퓨터를 열어 화상 회의를 시작했다.시야는 온두리 지역의 몇 가지 상황을 보고했다. 그러나 시언은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히 대답만 할 뿐이었다.시야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속으로 의아해했다. 그는 최근 문제를 일으킨 노도 일행의 부하 몇 명을 체포했고, 은신처 하나를 철저히 파괴했다.이 정도면 칭찬받을 만한 일이었는데, 시언은 조금도 기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시야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진언님! 혹시 또 강아심 씨와 다투신 겁니까?]시야는 설날 무렵, 자신이 시언의 연애를 방해한 일을 뒤늦게 알고는 몹시 불안해했었다.당시 아심은 남자 친구를 만난 상태였고, 그 일로 시언이 몇 날 며칠 동안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소문을 들었다.이번에도 같은 일이 벌어진 걸까 싶었다. 그의 질문이 끝나자, 화면 속에 있던 시경과 시온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그러나 시언의 얼굴은 한층 더 차갑고 어두워졌다.“다른 보고할 내용은 없나?”그의 목소리에는 억누를 수 없는 냉기가 서려 있었다.시야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화상 통화로 안전한 거리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시경은 시야에게 조용히 입을 닫으라는 눈빛을 보내며 시언에게 보고했다.[요청하신 자료는 오늘 이미 전달했습니다.]시언은 짧게 대답했다.“알겠어.”시경은 이어서 말했다.[몇 가지 세부 사항은 직접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회의는
여준석은 바로 강아심 옆에 앉았다. 그의 눈은 순수하고 꾸밈없으면서도 젊음의 활기로 빛나고 있었다.“누나, 대학은 졸업하셨어요?”아심은 잔잔하게 웃으며 말했다.“제 모습이 아직 학생 같나요?”준석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뭐랄까,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누나는 정말 특별해 보여요!”아심의 눈은 깊고 매혹적이었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처럼 심오한 아름다움이 느껴졌고, 많은 일을 겪은 뒤의 투명함이 담겨 있었다.하지만 그녀의 이목구비는 여전히 순수하고 온화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 맑음과 매혹 사이에서 저절로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겼다.아심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나는 대학에 다니지 않았어요. 일찍부터 일을 시작했죠.”준석은 놀라움과 아쉬움이 섞인 얼굴로 말했다.“정말 아쉽네요.”준석은 아심이 도씨 집안에 돌아오기 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을 거로 생각하고는 말했다.“하지만 이제 집에 돌아왔으니, 다시 공부를 시작해 볼 수도 있잖아요.”아심은 흥미를 느낀 듯 말했다.“사실 그런 생각도 하고 있어요.”준석은 열정적으로 말했다.“어떤 전공을 공부하고 싶으신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학교를 추천해 드릴게요. 저도 요즘 해외 유학을 고민하고 있어서 자료를 많이 찾아보고 있거든요!”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우선 자료를 좀 찾아볼게요.”이때 도경수가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둘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느라 음식이 다 식겠네. 일단 밥부터 먹어라!”다른 사람들도 그의 말을 듣고 시선을 두 사람에게로 돌렸다. 아심은 대각선 맞은편에 앉아 있는 시언의 깊고 어두운 눈빛과 마주쳤다.시언은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아심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몇 마디 농담을 나눈 뒤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식사 후, 모두 거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경수는 아심이 최근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이야기를 꺼내며 여정에게 그녀의 그림 실력을 봐 달라고 부탁했다.여정은 겸손한 태도로 말
잠깐 네 눈이 마주친 뒤, 아심은 시선을 피하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말했다.“성을 바꾸는 건 급하지 않아요. 관련된 서류도 많고, 회사 법인 자료나 도장 같은 것들도 처리해야 해서 조금 번거롭거든요.”도경수는 단호하게 말했다.“어차피 바꿀 거니 걱정하지 마라. 할아버지가 다 알아서 해줄게.”강재석은 웃으며 시언에게 물었다.“시언아, 넌 어떻게 생각하니?”시언은 여전히 냉담하고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그건 아심의 일이니, 제 의견은 중요하지 않죠.”아심은 속눈썹을 살짝 떨며 정원의 꽃나무를 바라보았다. 저녁이 깊어지면서 낮 동안 화려했던 목련꽃은 저무는 빛 아래서 쓸쓸해 보였다.도도희는 두 사람의 반응을 살피며 부드럽게 웃었다.“성을 바꾸지 않아도 호적은 올릴 수 있어요. 천천히 해도 되니까요. 대신 파티는 언제 열지 정해야 하지 않을까요?”강재석은 말했다.“파티 준비도 생각보다 많아. 초대장을 몇 장 보낼지, 누구를 초대할지도 결정해야 하고.”도경수는 금세 화제를 바꾸며 말했다.“초대장은 내가 직접 쓰지!”강재석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준비 시간이 더 오래 걸리겠는데.”도도희는 달력을 살펴보며 말했다.“그러면 이달 말에 하는 게 어떨까? 그때까지 초대장을 준비해서 발송하면 되겠네.”현재는 5월 중순이었고, 말까지는 열흘 남짓 남아 있었다.도도희는 강아심을 바라보며 물었다.“재희야, 네 생각은 어때?”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와 엄마께서 알아서 정해 주세요. 저는 괜찮아요.”강재석은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그럼 그렇게 정하자. 성을 바꾸는 건 아심이 번거롭다고 하니, 파티 이후에 해도 늦지 않겠지.”도경수는 강재석의 의도를 눈치채고 반박하려 했으나, 아심이 말했다.“그럼 저는 강재석 할아버지 말씀을 따를게요.”도경수는 한마디 더 하려다 말을 삼키고 씩씩거리며 입을 다물었다.그때 도우미가 다가와 말했다.“어르신, 여정 씨 오셨어요!”도경수는 고개를 들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