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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4화

작가: 기향난
그녀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까 봐 레시피를 일부러 적어놓기까지 했다.

며칠 전에 이 레시피들 전부 휴지통에 버렸는데 유정연이 다시 주워왔다.

“어때요? 맛있어요?”

임규리는 자신의 요리 솜씨에 나름 자부심이 있었다. 고생 한 번 못 해본 도아영보단 훨씬 나을 거라 장담하는 그녀였다.

이번만큼은 이수호의 입맛을 확 사로잡을 거로 여겼는데 이 남자가 대뜸 수저를 내려놓고 차갑게 쏘아붙였다.

“음식들 다 가져가.”

임규리는 멍하니 넋을 놓았다.

“왜요? 맛없나요?”

그럴 리가.

이건 전부 도아영이 레시피까지 써놓은 요리인데 잘못될 리가 있을까?

‘내가 심지어 플레이팅까지 도아영 따라 했는데 뭐가 문제라는 건데?’

설마 도아영이 비법은 숨긴 걸까?

“나가라는 말 안 들려?”

이때 이수호가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째려봤다.

화들짝 놀란 임규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기꺼이 한다는 게 남 흉내 내는 거야? 너 대체 무슨 수작이니?”

“그게... 저는...”

“아영이가 이나 따라 하던 것처럼 똑같이 해서 내 환심 사려고? 아니면 더 많은 걸 바라는 거야?”

“아니요... 그런 거 아니에요.”

그에게 속내를 들켜버린 임규리는 안색이 점점 일그러졌다.

“꺼져!”

이수호가 음침한 얼굴로 말했다.

이에 임규리는 허겁지겁 음식을 들고 밖에 나갔다.

줄행랑을 치는 그녀의 모습에 이수호는 저도 몰래 도아영이 떠올랐다.

애초에 그녀가 얼마나 조심스러웠던지 전부 지켜봐 온 이수호이니까.

다만 그땐 도아영이 분명 다른 의도를 품은 거라고, 그녀의 순수한 마음을 믿어주지 않았다.

오직 그에게서 이익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거라고 굳게 믿었으니까.

심지어 그는 좀 전까지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임규리가 해온 음식을 먹은 순간 머릿속에 온통 도아영으로 도배되었다.

전에 도아영이 해줬던 음식과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왜 이렇게 맛이 이상한 걸까?

이건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음식을 만든 사람이 달라서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이수호는 소파에 앉아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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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아영은 수중의 펜을 내려놓았다.“포기하라고 말할 거면 관둘게요. 나한테 포기란 없어요. 차라리 혼자 배우고 말지.”말을 마친 그녀가 자리를 떠나려 하자 서현우가 뒤에서 말했다.“그 졸업장이 그렇게 중요해?”“네.”그녀는 여느 때보다 진지하게 대답했다.“대표님한텐 아무 의미 없을지 몰라도 나한텐 엄청 중요해요. 이번 시험을 무조건 통과해야 해요.”그녀의 단호한 눈빛을 바라보더니 서현우가 끝내 태도를 바꿨다.“앉아. 가르쳐줄게.”도아영은 어안이 벙벙했다.“방금 몸의 조화가 엉망진창이라면서요?”“시험이 고작 사흘이라며? 오른손처럼 완벽한 글씨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줄게.”그는 소파를 툭툭 내리치며 그녀더러 앉으라고 했다.도아영은 마지못해 서현우의 맞은편에 앉았다.“옆에 앉으라고.”“...”서현우의 말에 그녀는 말문이 턱 막혔다.몹시 갈등했지만 도아영은 끝내 우물쭈물하면서 그의 옆에 앉았다.서현우는 먼저 오른손으로 도를 쓴 후 왼손으로도 똑같이 도를 썼는데 글씨체가 거의 비슷했다.이를 본 도아영은 멍하니 넋을 놓았다.“어떻게 했어요?”“어렵지 않아. 너도 할 수 있어. 고도의 집중력과 몸의 조화를 이루면 돼.”그는 도아영의 손에 펜을 쥐여줬다.“마음을 가다듬고 왼손에만 집중해. 그리고 힘 조절을 잘하면서 연습하면 하루 이내로 기본적인 글씨체는 나올 거야. 7일 뒤엔 왼손잡이가 적응될 테고. 속도는 보장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많이 연습하는 게 상책이겠지.”“그저 연습만 하면 돼요?”“무언가를 배우려면 가장 먼저 손에 익혀야 해. 이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9일이란 시간이 있으니까 가장 미련한 방법으로 왼손잡이를 터득하는 게 너한테 딱이야.”이 남자가 자신을 얕잡아보는 걸 알지만 그녀는 여전히 연습에 몰입했다.시간이 일분일초 흐르고 밖에 있던 변윤재는 졸음이 몰려와 하품을 해댔다.도저히 못 참겠던지 그가 방 문을 두드리면서 물었다.“두 사람 언제 끝나?”도아영은 방금 글씨 연습에 몰입

  • 대표님, 미워도 상처는 주지 마세요   제272화

    “프린트해서 아영이 보여줘, 사인하게.”“네.”김한빈은 곧장 계약서를 프린트했다.몇 글자도 안 되는 조항인데 서현우는 행여나 그녀가 못 알아볼까 봐 일목요연하게 계약서까지 작성했다.특히 도아영에게 유리한 조항은 폰트까지 강조했다.도아영은 계약서가 문제없는 걸 확인하고 그 위에 서명했다.김한빈이 다시 계약서를 서현우에게 건네자 그는 보지도 않고 바로 사인했다.“대표님,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가볼게요.”“왼손으로 글쓰기 연습한다고 하지 않았어?”서현우가 담담하게 물었다.“안 할 거야?”“해도 윤재 씨가 재활 훈련 도와주는 거죠. 설마 대표님도 왼손잡이예요?”“말했잖아. 외상 치료는 나보다 현우가 낫다고. 배우고 싶으면 현우한테 부탁해봐.”옆에서 변윤재가 눈치껏 서현우를 도와주었다.아쉽게도 도아영은 서현우에게 아무런 호감이 없어 단호하게 거절했다.“됐어요. 그건 별로네요.”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 김한빈이 어느새 문 앞까지 다가가서 방 문을 닫아버렸다.이 광경에 도아영은 어안이 벙벙해졌다.‘뭐야? 나 무조건 배워야 하는 거니?’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서현우를 째려봤다. 이때 서현우가 차분하게 말했다.“혼자 앉을래 내가 앉혀줄까?”“...”“현우야, 여자한테는 좀 자상하게!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올 거야?”변윤재는 말은 이렇게 해도 몸은 어느덧 문 앞까지 다가갔다.떠나기 전에 그는 도아영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순간 도아영은 안색이 어두워졌다.변윤재가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결국 서현우와 한패였다.“그럼 어떻게 가르쳐줄 건데요?”그녀는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손 내놔.”서현우가 무덤덤하게 말하자 그녀는 얌전하게 손을 내밀었다.“네.”오른쪽 손목과 손등에 죄다 상처투성이라 펜을 들기도 힘들고 지금처럼 손을 내미는 것도 극한의 고통이었다.서현우는 그녀의 오른손에 펜을 꽂아주었다.“글씨 써봐.”그녀는 비록 속으론 구시렁댔지만 순순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하지만 반나절이 지나서야 겨우 삐뚤삐뚤하게

  • 대표님, 미워도 상처는 주지 마세요   제271화

    도아영은 감정이 격해지더니 손을 들다가 상처를 스쳤다.서현우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와 알고 지낸 지도 꽤 됐는데 변윤재는 이렇게 웃는 서현우가 너무 낯설어서 저도 몰래 도아영에게 시선이 꽂혔다.‘나름 괜찮은 여자인 것 같네.’변윤재는 마치 서현우의 약점이라도 잡은 듯 씩 웃었다.“이미 널 위해서 복수했잖아. 아직도 화나?”“두들겨 맞은 건 나예요, 현우 씨가 아니라! 반항 한 번 못하고 얻어터지기만 하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알아요?”그 당시 반박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여죄수가 여러 명이고 도아영은 손목까지 다쳐서 감당하기 어려웠다.다시 한번 맞닥뜨린다면 절대 이토록 비참하게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윤재야, 얘 상처는 좀 어때?”이에 변윤재가 답했다.“여자애치고 꽤 심각한 편이야. 다른 건 다 찰과상이지만 손등과 손목을 심하게 다쳤어. 상대가 조금만 더 공격했더라면 아마 평생 손을 못 쓸 수도 있어.”“이리 봐봐.”서현우가 손을 내밀자 도아영은 본능적으로 피하려 했다. 다만 이 남자는 아주 가뿐히 그녀를 제 앞으로 잡아당겨 왔다.검푸른 멍 자국이 난 손등은 실로 섬뜩할 따름이었다. 그녀는 너무 긴장한 탓인지 손을 파르르 떨었다.“근골을 다쳤네. 다 나으려면 3개월은 걸리겠어.”“현우 씨가 의사예요? 오지랖도 넓지.”말을 마친 도아영이 손을 빼냈다.그녀는 이제 서현우에 대한 호감이 뚝 떨어졌다.아무리 잘생겨도 정떨어질 판이었다.“현우 말이 맞아. 외상을 놓고 볼 땐 얘가 나보다 한 수 위거든.”도아영은 변윤재의 말을 들으면서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해외에서 명성이 자자한 서강 그룹 오너가 의학까지 능통했단 말인가?이에 변윤재가 계속 말을 이었다.“현우 전공이 의학이잖아. 너 몰랐어?”“장난도 정도껏 해야죠. 현우 씨 학교도 제대로 안 다녔잖아요.”사실 도아영은 일찌감치 서현우에 관해 철저한 조사를 마쳤다.그는 어릴 때 학교에 다니지 않았고 나중에 오직 두 주먹으로 서강 그룹을 설립했다.거

  • 대표님, 미워도 상처는 주지 마세요   제270화

    서현우의 시선에 도아영은 온몸이 불편했다.그는 당최 좋은 인간이 아니다. 뼛속까지 장사꾼이라 간 떠보는 음침한 기운이 감돌았다.애초에 서현우에게 접근한 이유는 단지 미래의 자신에게 살길을 하나 마련해주려던 것뿐인데 이 남자가 이렇게까지 상대하기 힘들 줄은 몰랐다.대체 이런 사람이 왜 강이나 때문에 죽지 못해 안달이었을까? 도아영은 도통 이해가 안 됐다.“알겠어요. 대표님 호의는 받을게요. 대신 각서 써요 우리.”“말해봐, 뭔데?”“앞으로 서강 그룹에 어떠한 일이 생기든 나랑 일체 상관없다고요.”“그건 좀 아니지. 너무 감정 상하잖아.”“난 대표님한테 아무 감정 없어요.”그녀가 말을 이었다.“사인하면 주식 양도 계약서 받을게요. 만약 사인 안 하면...”서현우는 그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잠자코 지켜봤다.이때 도아영이 숨을 깊게 들이쉬고 말을 이어갔다.“안 하겠다면 나 경찰서 가서 자수할래요. 기껏해야 이판사판 다 죽는 거죠 뭐.”그녀의 말을 들은 서현우가 실소를 터트렸고 옆에 있던 변윤재도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아영아, 네가 뭔가 착각하나 본데 자수하러 가봤자 망하는 건 너뿐이야.”도아영도 물론 서현우의 해외 세력을 잘 안다. 강주에 있다고 해도 그의 인맥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할 것이다.다만 그가 상대해야 할 사람은 일반인이 아닌 이수호였다.강자와 강자의 맞대결이라, 이수호가 작정하고 서현우와 맞서 싸운다면 둘 중에서 누가 이길지 정말 미지수이다.앞으로 이 사건에 휘말릴 바엔 차라리 자수하고 서현우와 깔끔하게 관계를 정리하는 게 나을 듯싶었다.“오케이, 사인할게.”서현우가 대답했다.옆에 있던 변윤재도 입을 열었다.“이제부턴 신용에 관한 문제야, 아영아. 현우는 계약서대로 움직이는 애가 아니야. 사인했다고 해도, 법적 효력이 있다고 해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널 버리게 돼 있어.”그가 의미심장하게 말할 때 서현우가 싸늘한 눈길로 째려봤다.이에 변윤재는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그건 해외에 있을 때고 여긴 강주예

  • 대표님, 미워도 상처는 주지 마세요   제269화

    그 시각 서현우는 2층에 있었다. 허름한 집이라 엘리베이터도 장착되지 않았다.안 그래도 거동이 불편한 도아영은 변윤재의 부축을 받으면서 겨우 2층에 올라왔다.두 사람이 서재 앞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현우 씨 일부러 이러는 거죠? 할 말 있으면 거실에서 하면 되잖아요.”이에 변윤재가 한숨을 내쉬었다.“걔 그런 사람 아니야. 그냥 단순히... 널 괴롭히고 싶었나 봐.”앞에서 둘의 얘기를 듣던 김한빈은 저도 몰래 눈꺼풀이 떨렸다.이때 서재 문이 벌컥 열렸다.서현우는 소파에 앉아서 두 사람을 안으로 모셨다.그의 서재는 다른 사람들의 서재와는 달랐다. 책상과 의자는 없고 그저 소파에 탁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며칠 전 서현우가 금방 강주에 왔을 때까지만 해도 강주호텔에 묵었는데 집까지 사고 강주에서 지내려나 보다.“계속 서 있을 거야?”서현우가 머리를 들고 도아영을 쳐다봤다.“앉아, 얼른.”변윤재가 그녀를 부축해서 소파에 앉혔다.다리를 절뚝거리는 도아영은 왠지 좀 익살스러워 보였다.“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그냥 톡으로 말하시지 번거롭게 뭐예요 이게?”만약 여기 온 걸 이수호에게 들킨다면 또 그녀를 귀찮게 굴 게 뻔하다.“이미 도원 그룹으로 계좌 이체했어. 이건 내가 도원 그룹에 기부하는 지분이야.”그는 말하면서 서류를 한 부 건넸다.‘서강 그룹 주식 양도 약관?’그녀는 처음 접한 계약서라 감히 펼치지 못하고 떠보듯이 물었다.“얼마 주실 건데요?”“많진 않아. 10퍼센트.”도아영은 숨을 깊게 몰아쉬었다.‘10퍼센트가 적은 돈이야?’“정말 대단하네요! 주식의 10퍼센트면 서강 그룹에서 대주주에 속할 텐데 나중에 현우 씨가 잘못되면 나까지 봉변당하는 거 아니에요?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요?”“아영아, 진정해.”변윤재가 그녀를 다시 소파에 앉히면서 질책하는 눈길로 서현우를 바라봤다.“현우야, 이건 네가 잘못한 것 같아. 아영이가 선심 써서 땅을 네게 팔았는

  • 대표님, 미워도 상처는 주지 마세요   제268화

    “...”변윤재는 차 문을 열고 도아영을 안에 태웠다.“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다른 업계 사람들과 거의 접촉이 없어. 다들 경제 조건이 비슷하다 보니 끼리끼리 어울리게 돼 있어. 내가 나쁜 의도를 품었을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단 뜻이야.”“그런 게 아니라 단순히 궁금해서요. 현우 씨가 대체 왜 윤재 씨를 나한테 보낸 거죠?”“그건 현우한테 직접 물어봐야지.”“두 사람 아주 친해요?”“그럭저럭. 친구 정도.”“현우 씨 같은 사람도 친구가 있었네요?”도아영은 가히 상상되지 않았다.서현우 같은 사람과 함께 지낸다는 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넌 여전히 현우에 대해서 잘 모르네. 걔가 겉보기엔 험악해 보여도 잘 알고 나면 틀려. 네가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포악한 놈이거든.”“...”변윤재의 썰렁한 개그에 도아영은 억지 미소를 지었다.‘안 웃겨. 하나도 안 웃긴다고!’그녀는 지금도 충분히 서현우의 험악함을 느끼고 있으니까.도아영은 그가 운전한 지 반나절이 지나서야 이상한 낌새를 알아챘다.“이거 우리 집 가는 방향이 아니잖아요.”“참 빨리도 알아챘네.”변윤재는 방금 세 바퀴나 빙빙 돌면서 일부러 도아영의 아파트까지 에돌아왔는데 그녀가 이제야 발견할 줄이야.“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현우한테 방금 문자 왔어. 무조건 널 데리고 오래.”변윤재는 의미심장한 말투로 계속 말했다.“목석같던 우리 현우한테도 드디어 봄날이 오나 봐?”“이봐요, 변윤재 씨, 하나도 안 웃기거든요.”“알았어. 그만할게.”변윤재가 대답했다.“진지하게 할 얘기가 있대. 너한테 호감 있는 게 아니라. 나도 현우가 여자 만나는 거 본 적이 없어서 그래.”“그렇다면 혹시... 남자 좋아해요?”그녀의 물음에 변윤재가 잠시 뜸 들이다가 쉿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난 아무 말도 안 했다.”그녀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전생에 서현우가 강이나를 미친 듯이 사랑한 걸 지켜보지 않았다면 도아영도 변윤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을 것이다.잠시 후

  • 대표님, 미워도 상처는 주지 마세요   제267화

    안지원은 어쩔 바를 몰랐다.‘대체 보고해 말아?’“그래도 저한테 너무 중요한 시험이라 혹시 왼손 사용은 가능할까요?”도아영이 물었다.“의사 선생님들은 다들 대단해서 오른손, 왼손 모두 자유롭게 사용한다던데 저 왼손으로 글 쓰는 법 가르쳐줄 수 있어요?”“배우고 싶어요?”“네!”그녀가 진지한 눈길로 변윤재를 쳐다봤다.“이건 단지 습관 문제예요. 아영 씨 왼손은 큰 문제가 없어서 글을 쓸 수도 있지만 9일 내로 왼손잡이가 되는 건 조금 어려울 것 같네요.”“그런 문제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무조건 순조롭게 졸업해야 하거든요.”한성대 졸업장을 받으면 신세계의 대문을 여는 열쇠를 얻는 거나 다름없다.이 바닥에서 고학력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특히 한성대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이씨 일가 같은 신분이라면 한성대가 성에 차지 않겠지만 곧 무너질 도씨 일가인지라 그녀가 한성대 졸업장까지 놓친다면 앞으로 더는 도원 그룹을 경영할 수가 없다.“알았어요. 가르쳐드리죠. 나보다 어린 것 같은데 편하게 말 놔도 되지?”“네, 물론이죠.”변윤재는 씩 웃으면서 속으로 구시렁댔다.‘현우야, 해외지원 비용, 교통비용, 식비, 숙박에 지금 또 하나 더 늘었다. 왼손잡이 교육비까지 말이야.’이 정도면 서현우한테서 제대로 한몫 챙길 수 있을 듯싶었다.이건 나름 쏠쏠한 거래였다.이때 안지원의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도아영과 간단하게 얘기를 마친 후 밖에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전화기 너머로 이수호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대체 병원에서 언제 나올 거야?”“대표님, 그게 실은... 아영 씨가...”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수호가 가차 없이 잘랐다.“네 임무는 병원까지 데려다주는 거야. 쭉 옆에 있으라고는 안 했어.”“네, 알겠습니다.”“기사 시켜서 집에 보내면 돼.”“네.”안지원은 대표님의 속내를 점점 가늠하기 어려웠다.하지만 이미 분부를 받았으니 자리를 떠나야만 한다.“아영 씨, 저는 회사에 볼일이 있어서 먼저

  • 대표님, 미워도 상처는 주지 마세요   제266화

    “해외는 현우 구역이지 이수호 씨랑 상관없어요. 날 그 멀리에서 데려올 수 있는 것도 현우뿐이죠.”변윤재는 눈썹을 치키면서 말을 이어갔다.“왜요? 현우 이 자식이 아영 씨한테 아무 말 안 하던가요?”“네... 처음 들었어요.”그녀가 다친 이후로 서현우는 얼굴 한번 비추지 않았는데 친히 그녀를 위해 전문 의료진까지 모셔오다니?“자, 이제 그만 CT 찍어요.”변윤재는 나름 본업에 충실한 사람이다. 그는 도아영과 함께 CT 사진을 다 찍은 후 밖으로 나왔다.잠시 후 그는 또 의료진과 함께 심층적인 연구에 나섰다.한편 도아영은 묵묵히 휴대폰을 꺼내 서현우와의 대화창을 열었다.듬성듬성 나눈 대화를 보고 있자니 그녀는 또다시 망설여졌다.서현우가 강씨 일가를 박살 내라고 지시한 것 때문에 이수호가 도아영을 오해해서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이번 일에 서현우도 반은 책임이 있다.그도 당연히 이렇게 생각해서 특별히 변윤재까지 모셔왔을 것이다.생각을 마친 도아영은 다시 휴대폰을 넣었다.전생의 비통한 교훈이 말해주듯이 인간은 자기애가 차 넘치면 안 된다.전생에 이수호가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한 순간 도아영은 이 남자가 분명 본인에게 호감이 있을 거로 여겼다. 자기애가 차 넘쳤던 거지.그래서 끝내 그토록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이번에 제대로 교훈을 섭취한 도아영은 절대 먼저 그 누군가에게도 다가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서현우가 먼저 언급하지 않는 한 그녀도 끝까지 모른 척하면 그만이다.도아영이 알고 있는 소식이 들통나거든 그때 다시 서현우에게 사죄하면 된다.옆에 있던 안지원은 그녀가 대체 뭘 이렇게 고민하는지 몰라서 또다시 의아한 눈길을 보내왔다.‘아영 씨 요즘 참 이상하단 말이야.’전에는 그녀가 일부러 이수호를 싫어하고 쌀쌀맞게 대하는 거라고 여겼지만 요 며칠 함께 지내본 결과 도아영은 진심으로 이수호를 증오하고 있었다.사랑이 변하는 건 정말 한 순간이었다.“논의가 거의 끝났어요. 아영 씨 손 부상이 심각하긴 하나 안정을 취하고 재

  • 대표님, 미워도 상처는 주지 마세요   제265화

    “수호 씨는 안 왔어요?”그녀가 문득 경계에 찬 눈길로 질문을 건넸다.“대표님은 앞으로 아영 씨가 검진을 받는 사소한 일에는 안 오시겠다고 합니다.”“다행이네요.”도아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네?”이에 안지원이 놀란 듯 되물었다.‘이렇게까지 대표님을 만나기 싫은 걸까? 전에 아영 씨는 절대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안지원이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자 도아영이 그제야 말을 이었다.“대표님 워낙 바쁘시니 나한테 공들일 필요가 없다고요. 병원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그녀는 하루빨리 재활 훈련을 받고 싶었다.9일 뒤에 수능이라 그때까지도 오른손으로 펜을 들지 못한다면 왼손으로 시험을 보는 수밖에 없다.안지원은 궁금증이 해소되진 않았지만 더 말하지 않고 그녀와 함께 집 밖을 나섰다.센트럴 병원은 이른 아침 모든 준비를 마쳤다.전문 장비와 해외에서 모셔온 전문가팀까지 전부 세팅 완료였다.병원에 도착한 도아영은 바로 회진실에 들어갔다.그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잘생긴 남자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뭔가 혼혈인 같은 짙은 눈매에 하늘색 눈동자를 지닌 그 남자는 자체발광 훈남이었다.도아영의 시선이 느껴졌던지 그 남자도 이리로 고개를 돌렸다.그녀의 옆에 있던 안지원은 뛰어난 통찰력으로 이 광경을 캐치하고는 대표님께 보고드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도아영이 불쑥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저 의사분 꽤 젊으신데 나 회진하러 온 거예요? 정체가 뭐래요?”“해외에 있는 가장 젊고 유능한 전문의 변윤재예요. 꽤 어려 보이지만 서른쯤 됐을 겁니다.”“서른도 무척 젊죠!”도아영은 감탄을 연발했다.의사 업계도 경쟁이 이토록 치열할 줄이야.앞으로 도씨 일가를 더 번창하게 하려면 그녀는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었다.도아영이 사색에 잠겨있을 때 변윤재가 이리로 다가왔다.그는 안지원을 향해 가볍게 웃더니 도아영에게 시선을 옮겼다.“도아영 씨? 손 좀 살펴봐도 될까요?”“물론이죠.”도아영이 넙죽 손을 건넸다.변윤재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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