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저 두 사람 진짜 뭐 있는 거야? 우리도 좀 알려주라.”두 명의 여학생이 임규리를 붙잡고 캐물으며 서현우와 도아영에 관한 가장 솔직한 소문을 알고 싶어 했다.임규리는 조금 난처해 보였다.왜냐하면 임규리는 유정연과 친척 관계이긴 했어도 도씨 가문과는 전혀 접점이 없었다. 더구나 도아영은 그녀를 사촌 동생으로 여기지도 않는 분위기였다.임규리가 대답을 못 하자 한 여학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임규리, 너 설마 허풍 떤 거 아니지?”“맞아, 진짜로 도아영 사촌 동생이면 언니 이야기를 모를 리 없잖아? 너 예전에 이수호 대표가 너를 도와줘서 한성대에 들어올 수 있었다고 했는데, 그 말도 허세야?”사람들은 임규리가 한 말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자 임규리는 허둥지둥 변명했다.“아, 아니야. 나, 나 거짓말한 거 아니라고!”“그래? 그럼 말해 봐. 도아영이 서현우하고 대체 무슨 사이길래 이런 소문이 나왔는지. 혹시 진짜 바람이라도 피운 거야?”그 말을 듣고 임규리 머릿속에 문득 이수호가 떠올랐다.며칠 전 이수호가 사무실에서 도아영이 아니어도 대체할 사람은 있다고 말했던 그 장면을 말이다.‘혹시 도아영 스캔들이 터지면 형부가 나를 선택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그렇게 생각하니 임규리는 괜히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쪽 바닥이 얼마나 복잡한지는 다 알잖아. 너무 깊이 말할 필요는 없지. 서로 마음속으로만 아는 게 좋을걸?”임규리의 이 애매한 말 한마디에 주변이 발칵 뒤집혔다.“그, 진짜로 도아영이 서현우랑 뭔가 있다는 거야?”그러자 임규리는 더 용기를 내서 말했다.“아니면 뭐겠어?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서현우가 아침 일찍 학교까지 오겠어? 너희도 봤잖아. 아까 내 언니가 서현우랑 꽤 진하게 얘기하던 걸.”임규리의 말을 다들 완전히 믿는 듯했다.상류층 사람끼리는 각자 상대를 두고도 바람을 피우는 게 흔한 일이니 도아영도 별로 안 조심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한 것이다.“임규리, 네가 진짜로 도아영 사촌 동생이면 이수호도
주변 사람들이 전부 부추기자, 임규리는 마지못해 이수호에게 다가가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며칠 전 학교에 처음 올 때, 임규리는 사람들 앞에서 이수호 약혼녀의 사촌이라고 호언장담했었다.하지만 동기들도 명문가 자제들이라 이수호나 도씨 가문 급에는 못 미쳐도 충분히 부유한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시골에서 올라온 촌스러운 임규리를 은근히 무시하는 분위기가 강했다.만약 지금 이수호에게 인사조차 못 한다면 그동안의 말이 전부 거짓말이었음이 들통날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임규리는 얼떨결에 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마침 이수호가 이쪽을 보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잠시 뒤, 안지원이 임규리 앞에 다가왔다.“임규리 씨 맞죠? 대표님이 잠깐 뵙자고 하십니다.”뜻밖의 초대에 임규리는 깜짝 놀랐다.뒤쪽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잔뜩 놀란 기색이었다. 정말 임규리의 말대로 이수호가 그녀를 이 학교에 보낸 게 아니냐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혹시 임규리가 정말 이수호 덕분에 학교에 들어온 거라면...?’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그녀는 괜스레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의기양양해졌다.“네, 지금 바로 갈게요.”임규리는 안지원을 따라 이수호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 사이에서는 술렁임이 일었다.임규리의 차림새가 강이나를 살짝 닮았다는 말에, 사람들은 도대체 그녀가 어떤 신분이기에 이수호가 직접 나섰는지 궁금해졌다.“형부...”임규리는 이수호를 바라보며 다소 긴장된 기색이었다. 얼굴이 살짝 붉어졌지만 이수호는 전혀 안부나 추억을 나눌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는 곧바로 물었다.“도아영은 어디 있어?”이수호가 자신을 불러놓고서는 도아영의 행방만 묻자 임규리는 잠시 실망이 스쳤다.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곧바로 마음을 다잡고 이수호 쪽으로 몸을 가까이 대며 말했다.“형부,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괜히 학교 명성에 영향을 줄까 봐 걱정돼요. 그러니... 조용한 데로 가서 말씀 나누면 어때요?”임규리는 간절한 표정을 지
‘이게 재벌의 삶인가?’임규리가 여전히 도아영이 어디 있는지 말하지 않자 이수호의 표정에는 벌써 약간의 짜증이 스쳤다.“그래서 도아영은 어디 있는데?”이수호의 기색을 눈치챈 임규리는 얼른 말했다.“마, 말할게요. 근데 형부 제 말 듣고 너무 화내지 말아 주세요.”“말해.”“방금 전에 제가 봤는데... 언니가 서현우 대표님이랑 같이 떠났어요.”임규리는 여기서 한술 더 떠서 덧붙였다.“언니도 참... 학교에서 서현우 대표님이랑 그렇게 붙어 다니면 보기 안 좋다는 것도 모르나 봐요. 아까도 사람들이 말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괜히 형부가 불쾌할까 봐 조용히 말하려고 했던 거예요... 형부, 언니한테 너무 화내지 마요. 언니도 그저 상황 파악을 잘 못 해서 그래요. 어찌 됐든 언니는 형부를 진심으로 좋아하잖아요.”임규리의 말을 들은 이수호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진심으로 좋아한다고?’진심이었다면 왜 한마디도 없이 서현우랑 가버렸을까. 게다가 대낮에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렇게 붙어 있었을까.그 장면을 상상만 해도 이수호는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자기 주제도 모르는 주제에.’이수호의 안색이 안 좋아지자 임규리는 속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했다.임규리가 말했다.“형부... 저는 그냥 형부랑 언니가 괜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해요. 너무 화내지 마세요. 서현우 대표님도 뭐 볼일이 있어서 언니를 부른 걸 수도 있잖아요?”서현우가 강주에 온 뒤 별다른 스캔들 없이 혼자 지내 왔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 서현우가 여자를 찾아 학교에까지 왔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도아영이 특별하다는 뜻이었다.이수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내려.”“형부...”임규리는 뭔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안지원이 이미 뒷좌석 문을 열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임규리는 입술을 깨물고 차에서 내려야 했다.안지원이 다시 차에 오르며 거울 너머 이수호의 굳은 표정을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찾아.”이수호의 눈동자
“한빈아, 몸수색해.”“...”도아영은 그 자리에 서 있었고 김한빈이 갑자기 그녀의 몸을 수색하려고 다가왔다.그러자 도아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래도 제가 이수호 씨 약혼자인데 다른 사람으로 바꾸면 안 돼요?”“맞는 말이네.”서현우는 별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도아영은 당연히 여직원 같은 사람을 부르려나 싶었다.그런데 서현우는 직접 그녀 쪽으로 걸어오며 말했다.“내가 직접 수색하지.”“서 대표님...”도아영이 말끝을 맺기도 전에 서현우는 이미 그녀 몸을 훑듯 확인을 끝마쳤다.그렇게 도아영이 의심스러운 물건을 전혀 지니지 않았다는 게 드러나자, 서현우는 비로소 자신의 스위트룸으로 그녀를 들여보냈다.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도아영은 호화로운 스위트룸의 구조를 둘러봤다. 강주에서 가장 형편없는 수준의 스위트룸인지 안은 쓸데없이 넓기만 하고 시설은 단순했다.침대도 그냥 나무판자 같아 보였다. 서현우는 물론 일반 직장인조차 지내고 싶지 않을 만한 곳이었다. 낡고 허술한 이곳의 값은 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비쌌다.“한번 봐.”서현우는 군말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다.그가 들고 있던 서류 뭉치를 책상 위에 던지자 도아영은 몸을 숙여 종이를 집어 들었다. 표지를 보니 남해로 120번지에 대한 온갖 자료가 잔뜩 적혀 있었다.이 땅은 강이나네 집안의 땅이었다.원래 서현우는 이 땅을 사들여 강주에 서강 그룹 지사를 새로 세울 예정이었다. 물론 지사는 서현우가 해외에서 굴리던 자금을 국내로 합법 이관하기 위한 이른바 자금 세탁을 위한 조직이었다.도아영이 물었다.“이걸 저한테 보여 주시는 이유가 뭔가요?”도아영이 모르는 척하자 서현우는 소파에 기대며 말했다.“내가 강주에 온 목적은 아무도 몰라. 네가 어떻게 내가 남해로 땅을 살 계획이라는 걸 알았는지 묻는 거야.”이 일은 김한빈조차 모르는 비밀이었다.사실 도아영이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건 전생의 기억 때문이었다.과거 서현우는 강이나를 보고 첫눈에 반해 원래 싸게 매입할 남해로
도아영은 말했다.“땅의 가치는 고작 200억 정도예요. 그 땅을 사고 싶으면 제가 직접 강이나 씨한테 연결해 드릴게요, 어때요?”어차피 서현우는 언젠가 강이나를 좋아하게 될 텐데 차라리 먼저 두 사람을 이어 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서현우와 이수호가 강이나를 놓고 어떻게 경쟁하든 그녀는 방관자일 뿐이었다. 오히려 그렇게 되면 이수호가 그녀의 일에 간섭할 시간이 줄어들 거라고 봤다.그 말을 듣고 서현우는 흥미를 느낀 듯 물었다.“네가 어떻게 나 대신 다리를 놓아 준다는 거지?”“제가 먼저 강이나 씨랑 약속을 잡고 이수호 씨 곁에서 물러날 거라는 조건을 제시해 볼게요. 그러면 대표님이 그 땅을 얼마에 사든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을 거예요.”“그래?”서현우가 말했다.“너 스스로 희생해서 나를 도와주겠다는 건가? 난 그런 고결한 인격을 잘 모르는데.”“농담하지 마요. 대표님이 좋다고만 말하면, 제가 바로 강이나 씨한테 연락해서 단둘이 만날 자리를 만들어 줄게요. 서로 알아갈 기회가 되잖아요. 어때요?”도아영의 눈에는 어딘가 약삭빠른 계산이 스쳤다. 서현우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말했다.“네가 이수호를 엄청 좋아해서 온갖 수모까지 견딘다고 하던데, 이제 와서 포기하겠다는 거야?”“물론 전 이수호 씨를 좋아해요. 하지만 대표님께 제 진심을 보여 드리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죠. 게다가 이수호 씨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저도 잘 알아요. 괜히 바보같이 붙잡고 있을 필요 있나요?”도아영의 말은 분명 그럴듯했지만 서현우는 어딘가 미심쩍다는 듯 느꼈다.“입담이 좋네, 도아영. 영업 사원 해도 되겠어.”서현우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내가 보기엔 네가 파혼을 위해 날 끌어들인 것 같은데.”“...”도아영은 뭐라고 해명하려 했지만 서현우가 말을 이어 갔다.“도와주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야.”그러고는 서현우가 갑작스럽게 통 크게 나서서 도아영이 반응할 틈도 없이 덧붙였다.“지금 당장 강이나한테 연락해. 셋이 자리 잡고
“대표님...”“운전이나 해!”“...네.”안지원은 감히 다른 말을 더 붙이지 못했다.차가 강주호텔 앞으로 도착하자 이수호는 곧바로 차에서 내렸다.호텔 직원들은 이수호를 보고 깜짝 놀라며 다가왔다.“이 대표님, 갑자기 무슨 일이신지...?”“비켜.”직원은 이수호의 날 선 기세에 움찔했다.안지원은 얼른 이수호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3층의 8302호에 있다고 합니다.”이수호는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8302호 문 앞에 섰다. 그러나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잠시 망설였다.안지원이 먼저 카드키로 문을 열려 했지만 이수호는 그 카드를 빼앗듯 받아들었다. 한참을 문 앞에서 서성이던 이수호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나서야 카드키를 꽂았다.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깨끗하게 텅 비어 있는 방이 보였다.“사람은?”이수호는 심기가 불편한 듯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안지원도 당황한 기색이었다.“어, 여기 맞는데요? 아까 조사해 보니까 이 방이라던데...”“다시 찾아내.”“네.”안지원은 곧장 아래층으로 내려가 직원들에게 더 알아보라 지시했다.그 시각, 도아영은 강이나와 연락이 되지 않자 문자를 보내 만나자고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복도 밖에서 수많은 발소리가 들려왔다.도아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밖에 시끄럽네요. 무슨 일이에요?”“아마 네 약혼자가 사람을 몰고 쳐들어온 모양이야. 현장에서 잡겠다고.”“뭐라고요?”도아영은 순간 당혹스러웠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늘은 그녀의 이름으로 체크인을 했으니 이수호가 찾기 쉬울 터였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 도아영은 서현우에게 물었다.“대표님 방을 두 개 잡았어요?”강주에서 이수호만큼 발이 넓은 사람이 여기까지 찾아오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러니 서현우가 예상하고 각자의 이름으로 방을 두 개 잡았을 가능성이 컸다.“합의가 끝났으니 난 먼저 가볼게.”“대표님, 그럼 전 어쩌라고요?”“내가 왜 그걸 신경 써야 하지?”서현우는 미소를 머금은 채 방을 나갔다. 문이 닫
“그걸 누가 봤대요?”서현우가 흥미진진하게 물었다.“그 사람 한번 만나봐야겠네.”그의 눈가에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해외든 강주든 서현우를 안 두려워할 사람은 없으니까.이수호도 물론 잘 알고 있다. 이 타이밍에 임규리를 불러온다고 해도 그녀가 감히 서현우 앞에서 도아영과 서현우가 함께 호텔에 들어갔다고 말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이때 안지원이 가까이 다가왔다.“대표님, 다 찾아봤는데 도아영 씨는 안 보입니다.”“그럼 계속 찾아. 보일 때까지 찾으란 말이야.”이수호가 싸늘하게 답했다.“호텔이 고작 이만큼인데 걔가 어디 날아갔을까 봐?”“네.”안지원은 곧바로 인력을 추가하여 도아영을 찾아 나섰다.한편 서현우는 이 일에 그다지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그럼 천천히 찾으세요. 저는 이만.”그는 카드를 긁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 시각 도아영은 뭇사람들이 방심한 틈을 타서 모자를 꾹 눌러쓰고 강주 호텔을 벗어났다.이수호는 또다시 그녀에게 전화했다.도아영은 휴대폰 화면에 뜬 그의 이름을 보더니 곧장 꺼버렸다.지금 전화를 받는 것이야말로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니까.20분 후, 도아영은 한성대로 돌아왔다.주민서는 어느덧 수업을 두 개나 듣고 교실에서 코를 골면서 자다가 그녀가 돌아오자 정신을 번쩍 차렸다.“헐, 왜 이렇게 빨리 왔어?”“너 나한테 문자해서 임규리랑 이수호가 함께 있다고 했잖아! 임규리 지금 어디 있어?”“임규리? 나야 모르지. 걔 금융학과라고 하지 않았나? 1학년생이니 지금쯤 아마 수업 중이겠지. 수업 일정표 보면 알잖아.”“가자, 임규리 찾으러!”“지금? 이제 곧 수업 시작인데?”“하나쯤 땡땡이쳐도 괜찮아.”주민서는 늘 전교 10등 안이라 성적도 우수하고 또한 학생 간부라서 땡땡이를 쳐도 아무도 간섭할 자가 없다.그녀는 재빨리 도아영을 따라갔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무슨 일이냐고? 혹시 임규리가 이수호한테 이간질했어? 하여튼 유정연 그 여자도 참 나빠. 그 집안엔 멀쩡한 사람이라곤 없다니까!”주민
도아영은 아예 그녀에게 거절할 기회조차 안 줬다.뭇사람들은 도아영이 임규리를 끌고 가는 걸 보더니 쉬쉬거리기 시작했다.“쟤 설마 임규리랑 이수호가 부쩍 가까워졌다고 질투한 거야?”“잘잘못을 따지러 온 거지. 아까 표정 봤잖아.”“도아영도 참! 본인 뭐라도 된 줄 아나 봐? 이수호가 임규리 좋아하는데 쟤가 뭐라고 질투해? 어차피 쇼윈도 부부일 거잖아.”...몇 사람들이 도아영의 험담을 해대자 주민서가 곧바로 두 눈을 부릅떴다.“방금 뭐라고 한 거야? 다시 한번 말해줄래?!”다들 주민서가 신문사 대표 딸인 걸 알고 황급히 고개 숙여 사과했다.“죄송해요, 선배. 저희 그냥 헛소리한 거예요!”“맞아요. 헛소리한 거니 너무 새겨듣지 마세요.”“잘 들어. 앞으로 누가 감히 도아영 험담 한 번만 더 했다가는 내 손에 아작나는 수가 있어.”주민서가 싸늘하게 경고장을 날리자 뭇사람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그녀는 감히 건드릴 상대가 아니니까. 부모님이 다 계시는 주민서와 달리 도아영은 가족이라곤 계모뿐이라 아무도 뒷받침해줄 수가 없다.한편 도아영은 임규리를 이끌고 아무도 없는 교실로 들어왔다.질질 끌려온 임규리는 가여운 눈길로 도아영을 쳐다봤다.“언니... 아파요.”“이수호 앞에서 무슨 얘기를 한 거야?”“그게...”임규리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아무 말 안 했는데요.”그녀의 가여운 눈빛을 바라보며 도아영이 피식 웃었다.“내가 폭력을 참 싫어하거든. 근데... 상대가 자꾸 내 마지노선을 건드린다면 손을 댈 수밖에 없어.”“언니... 저, 저 진짜 언니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요.”임규리가 울먹거리면서 답했다.“대체 누구한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대표님 앞에서 허튼 소리한 적 없어요, 저.”“닥쳐. 오늘 네 친구들도 봤고 나도 다 봤으니 발뺌할 생각 마. 아니면 그냥 네 친구 한 명 불러와서 물어볼까? 다들 네가 아침에 이수호랑 뭔 짓거리를 했는지 알던데?”갑작스러운 주민서의 등장에 임규리의 안색이 잔뜩 일그러졌다.이때
장내에 있는 사람들도 이 광경을 지켜봤다.그는 전에 도아영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인데 오늘은 이토록 긴장한 모습으로 그녀를 부축하다니.도아영은 진작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한 듯 손을 빼냈다.“고마워요.”그제야 이수호는 방금 그녀에게 이용당했다는 걸 알아챘다.전에 이경 그룹에서 도원 그룹을 대하는 태도를 볼 때 다들 이 두 집안이 사이가 안 좋은 거로 여기며 선뜻 도원 그룹과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이제 이수호와 도아영의 사이가 조금은 나아졌으니 도원 그룹에 손 내밀 협력사도 슬슬 많아질 것이다.“감히 날 이용해?”예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이렇게까지 계략이 많은 줄은 몰랐다.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부잣집 딸로만 여겼는데 알고 보니 본인만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대표님이 그러셨잖아요? 서로 이용하는 게 우리 모두에게 좋은 거라면서요?”도아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를 들썩거렸다.전에 이수호가 바로 이런 식으로 그녀를 이용했고 이제 와서 전세가 역전됐을 뿐이다.“오늘 파티에 왜 날 초대했는지 모를까 봐요? 도원 그룹을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수작이잖아요. 썩 쉽지만은 않을걸요.”도아영이 완전히 오해하자 이수호의 안색이 확 돌변했다.“뭐라고? 집어삼켜?”생각도 참 야무진 그녀였다.할머니는 확실히 그런 생각을 지녔지만 이수호는 절대 아니다.옆에 있던 안지원이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그건 정말 오해예요, 아영 씨. 대표님은...”“대표님은 뭐요? 도원 그룹을 넘본 게 아니라고요? 말도 안 돼!”오늘 이경 그룹에서 초대한 사람들은 죄다 강주의 유명 인사들이다. 게다가 언론사까지 불러왔는데 도아영과 이수호의 관계를 널리 떠벌릴 목적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믿을까?도아영은 그저 헛웃음만 새어 나왔다.이수호까지 남현숙과 같은 생각일 줄이야.“잘 들어! 난 절대 너희 집안까지 통째로 집어삼킬 생각 따위 없어!”이수호가 그녀에게 바짝 다가섰다.요즘 그는 줄곧 도아영을 향한 솔직한 감정을 마주했다. 그가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자 도아영이 뒤로
도아영도 거절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다니는 모습을 외부인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도원 그룹에 유리한 일이니까.“의외네요, 대표님. 할머니 말 한마디에 선뜻 저를 만나주시네요?”도아영이 야유 조로 쏘아붙였다.그녀는 이수호가 마냥 귀찮을 따름이었다.꼭 마치 이전에 이수호가 그녀를 대했던 것처럼 말이다.이제 둘의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다.“할머니가 널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게 좋은 일인 것 같아?”다들 눈치챈 상황을 도아영이 모를 리가 있을까?그는 도아영을 물끄러미 쳐다봤다.오늘 그녀는 금빛 롱드레스를 입고 풀메이크업을 장착하여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옆모습을 본 순간 이수호가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그녀의 모습과 전에 봤던 제니의 모습이 완전히 똑같으니까.그의 따가운 시선에 도아영이 미간을 구겼다.“다들 지켜보는데 뭐 하는 거예요?”“조용히 해.”이수호는 그녀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봤다.한시라도 빨리 본인의 추측을 인증받고 싶은 모양이다.제니는 차갑고 도도한 미인상이라 섣불리 다가설 수 없는 매력을 내뿜는다.외모도 강주에서 손꼽히는 수준이다.어여쁜 도화안은 강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비쥬얼이었다.제니를 처음 볼 때부터 도아영과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제니의 모든 제스처가 도아영과 달랐으니까.이수호도 딱히 의심하지 않았지만 한성대 졸업시험에서 도아영의 성적 때문에 또다시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반년 가까이 휴학한 학생이 기말고사에서 이토록 높은 성적을 따낼 수 있을까?그녀가 적은 답안은 명확한 사고와 충분한 이론을 지녔다. 이건 비즈니스 베테랑만이 작성할 수 있는 답안이었다.제니의 학력까지 떠올리자 이수호는 눈앞의 도아영을 더더욱 의심하게 됐다. 그녀가 바로 명성이 자자한 위너 그룹 CEO 제니가 아닐까?“다 봤어요?”도아영이 두 눈을 깜빡거렸다.반짝이는 눈동자는 차갑고 도도한 제니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내가 괜한 생각을 했나?’이수호는 미간을 구겼다.“왜 그렇게 봐요
...주위에 온통 쉬쉬거리는 소리뿐이었다.도아영이 오늘 왜 이 파티에 참석했는지 다들 너무 궁금했다.로열 호텔 안, 안지원이 2층 휴식실 문을 두드렸다.“대표님, 손님들 다 도착하셨습니다. 이제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아요.”“알았어.”이수호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눈만 감으면 어제 도아영이 했던 말만 떠올랐으니까.할머니가 이 파티를 열지만 않았어도 두 번 다시 도아영을 마주 하고 싶지 않았다.아래층.도아영은 등장하자마자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화려한 드레스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이제 도원 그룹의 유일한 상속자가 됐기 때문이다. 도아영과 결혼할 사람은 자연스럽게 도원 그룹도 차지하게 된다.그녀에게 불의의 사고라도 생기면 도씨 일가의 전 재산이 남편에게 돌아갈 것이다.장내에 있는 남성들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아영아, 얼른 할미 곁으로 와.”남현숙이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혐오에 찬 표정이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었다.도아영도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남현숙에게 다가갔다.남현숙은 그녀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우리 아영이 점점 이뻐지네. 수호랑 오랜만이지? 금방 내려올 테니 함께 얘기도 나누고 오붓한 시간 보내. 젊은 사람들끼리 춤도 추고 와인도 마시고 얼마나 좋아?”남현숙은 지금 사람들에게 보여주기식으로 연기하고 있었다.도아영은 이씨 일가 사람이란 걸 이 자리에서 선포하는 거나 다름없다.아무도 감히 도아영을 넘보지 말라는 의도였다.이에 도아영이 가볍게 웃었다.“아니요, 대표님을 어제도 만난 걸요. 왠지 나랑 함께하기 싫은 눈치였어요.”마침 위층에서 내려오던 이수호가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어제 일을 되새기자 그는 또다시 사색이 되었다.“허튼소리! 수호는 내가 제일 잘 알아. 전에 파혼하려던 건 홧김에 그랬어. 젊은 애들이 그렇지 뭐. 누가 뭐래도 수호는 널 아주 많이 좋아해. 오늘도 너한테 사과하려고 하던데?”남현숙은 웃으면서 이수호를 불러왔다.뭇사람들은 이 광경을 빤히 지켜봤
이수호는 할머니의 말뜻을 너무 잘 이해한다.전에는 단지 도아영의 신분이 적합해서 그녀와 약혼하려던 거라면 지금은 도씨 일가 전체를 거머쥘 기회가 생겼다.그는 또다시 오늘 낮에 도아영이 했던 말이 떠올랐고 자존심에 큰 타격을 입었다.“할머니는 이번 일에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린 이미 파혼했으니 절대 결혼할 리 없어요.”말을 마친 이수호가 위층으로 올라갔다.남현숙은 손주 녀석의 성격을 잘 알기에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래, 네가 굽히지 못하겠다면 이 할미가 직접 나서야지 어쩌겠어.’다음날, 유정연이 감방에 갇히고 도지호가 집에서 쫓겨난 소식이 이 바닥에 쫙 퍼졌다.도아영은 도씨 일가의 유일한 상속자로서 이번에 매우 순조롭게 도원 그룹을 이어받았다.학교에 관한 일도 일단락되었으니 그녀는 한창 도원 그룹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아영 씨, 아침에 이씨 일가에서 찾아왔습니다. 오늘 저녁에 아영 씨더러 로열 호텔 파티에 참석하라고 하시네요.”“이씨 일가에서요?”‘이수호가 또 찾아온 거야?’도아영은 잠시 의심했지만 곧이어 남현숙임을 알아챘다.그 어르신은 능구렁이와도 같은 분이니까.도아영이 도원 그룹을 상속받자마자 파티에 초대하다니, 이건 절대 호의일 리가 없다.“아영 씨는 이제 도원 그룹 오너가 됐으니 이번 파티에 당연히 참석하셔야 해요. 게다가 앞서 이씨 일가와 도씨 일가가 사이가 나쁘다는 소문이 떠돌다 보니 많은 협력사에서 감히 우리와 협력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경 그룹 눈 밖에 날까 봐 두려운 거죠. 이번에 이씨 일가에서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하면 많은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을 테고 도원 그룹 상황도 훨씬 나아질 겁니다.”주연우가 하는 말을 도아영도 물론 잘 알고 있다.다만 이경 그룹의 파티에 참석하기에 앞서 그녀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남현숙에게 득이 돼선 안 되고, 이씨 일가와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게 아니라고 외부에 알려야 하니까.하지만...오늘 밤에 이수호를 만날 걸 생각하면 그녀는 머리가 지끈거렸다.“드레스 한 벌
“가시죠, 규리 씨.”“아니요! 대표님 좋은 사람인 거 알아요. 예전에 쌓아온 정을 봐서 우리 이모 한 번만 구해주세요!”“더는 우리 집에 나타나지 말라고 분명 말했을 텐데?”이수호가 싸늘한 눈길로 쳐다보자 임규리는 등골이 오싹했다.며칠 전에 강이나가 찾아와서 그와 임규리에 관한 스캔들을 일러바쳤는데 고작 여자들의 수작인지라 이수호는 딱히 간섭하지 않았다.어차피 임규리와 아무 사이도 아니니 똑똑한 사람이라면 둘이 불가능하단 걸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수호와 임규리는 신분 격차가 너무 크니까.그 소문들은 임규리가 지어낸 거로밖에 결론이 나지 않는다.이수호는 이렇게 꼼수가 많은 여자가 딱 질색이다.한편 임규리는 아직 본인이 한 일을 이수호에게 들킨 줄 모르고 계속 유정연을 위해 사정했다.“이모도 도씨 일가 사람인데 대표님 정말 안 도와주실 거예요?”“안 비서! 내 말 안 들려?”“알겠습니다, 대표님.”안지원이 또다시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임규리 씨, 계속 이러시면 끌어내는 수밖에 없어요.”그녀는 사색이 되었다.유정연이 감방에 간 일이 한성대에 소문이라도 퍼지면 그녀의 인생도 끝장이다.한성대에 들어온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모든 거짓말이 들통나고 더 이상 뒷배가 없다는 게 알려지면 남은 3년은 어떻게 버텨내란 말인가?아마 학자금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대표님, 제발요! 저희 이모 한 번만 도와주세요. 할머니, 제가 요 며칠 시중만 잘 들어줬잖아요. 그러니까 제발요! 우리 이모 구해주세요.”임규리는 눈물범벅이 되었다.한편 남현숙은 이수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그녀가 한심할 따름이었다.“네 이모가 그런 짓을 저질렀으니 우리도 할 수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도씨 일가의 일이니 정 도움을 구하고 싶다면 아영이 찾아가 보거라.”도아영을 언급한 순간 이수호의 두 눈이 반짝였다.그녀가 도와줄 리 있을까?왠지 유정연이 감방에 들어간 것도 도아영과 연관이 있을 듯싶었다.다만 아직도 그녀 생각 중인 자신을 되돌아보며 이수호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넌 도씨 일가의 상속자도 아니고 우리 아빠 아들도 아니야. 법적으로 볼 때 오늘부로 너희 두 모자는 우리 집안과 아무 관련이 없어. 정신 좀 차려, 지호야!”도아영은 야유 조로 쏘아붙였다.전생에 아빠가 그녀에게 회사를 물려주셨는데 마음 약한 도아영이 유정연 모자에게 고스란히 건넸다. 결국 아빠의 회사는 3년도 안 돼서 부도났고 유정연은 도지호를 데리고 안용준과 함께 도망치려 했다.그러니 이번 생은 무슨 일이 있어도 유정연 모자와 도원 그룹을 떼어놓아야 한다.“이 자식 끌어내.”도아영이 차갑게 분부하자 도씨 일가의 경호원들이 곧장 도지호를 이 집에서 끌어냈다.그는 슬리퍼를 신은 채 반항할 여지도 없이 처참하게 집에서 쫓겨났다.“도지호랑 유정연 물건들 싹 다 정리해서 밖에 내다 버려요!”“네, 아영 씨.”주연우는 곧바로 위층에 사람을 보내서 도지호와 유정연의 물건을 싹 다 처리했다.도아영은 다 정리한 물건들을 도지호에게 내던졌다.옷과 신발, 책까지 버려진 걸 보더니 도지호는 안색이 잔뜩 일그러졌다.“다들 여기서 잘 지켜. 도지호는 이제 우리 집안과 아무 관련이 없어. 만약 얘가 우리 집에 찾아와서 소란 피우면 그 즉시 경찰에 신고해.”“네, 알겠습니다.”도아영은 그가 소란을 피울 걸 염두에 두고 일부러 경비소를 차렸다.뒤늦게 정신을 차린 도지호는 미친 듯이 철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도아영! 난 네 동생이야! 나한테 이러면 안 돼! 당장 문 열어! 나야말로 도씨 집안 아들이잖아!”도아영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게 집으로 들어갔다.유정연 모자의 흔적이 없는 이 집안은 그제야 온화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선사했다.“아영 씨, 다음 계획은?”“유정연 전 재산을 회사 계좌로 입금했어요. 그동안 모자랐던 금액을 채운 셈이죠. 이제 드디어 도원 그룹 협력 프로젝트를 운행하게 됐으니 당분간은 위기를 벗어났다고 보면 돼요.”‘이수호만 잠자코 있다면...’도아영은 이렇게 생각했다.그녀는 오늘 이수호를 가
저녁 무렵, 도지호는 집에서 줄곧 도아영의 연락만 기다렸다.도원 그룹의 차가 집 앞에 도착하자 그는 부리나케 달려나갔다.차에서 내리는 도아영을 보더니 도지호가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었다.“너 뭐야? 왜 전화를 안 받아? 집에 무슨 일 생긴 줄 알아? 당장 나랑 경찰서 가서 엄마 모셔와야지!”도지호가 명령 조로 쏘아붙이며 도아영의 손목을 붙잡고 경찰서로 갈 기세였다.이에 도아영이 그를 힘껏 내팽개쳤다.도지호는 못 믿겠다는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너 미쳤어? 감히 날 밀쳐?”이 집에서 줄곧 거만을 떨던 도지호였기에 그녀가 매정하게 밀쳐버릴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이제 막 그녀에게 손을 대려고 할 때 주연우가 덥석 막아서더니 가볍게 도지호를 제압했다.“너도 미친 거야? 우리 집안 따까리 주제에! 확 잘리고 싶어?”도지호는 힘으로 안 되니 고래고래 소리만 질렀다.이에 도아영이 차분하게 말했다.“잘 들어. 넌 이제 우리 집안 사람이 아니야. 회사에서도 아무런 직급이 없으니 주 비서는 제쳐두고 이 집안 가정부도 네 멋대로 자를 순 없어.”“이년이 지금 뭐라는 거야? 나 도지호야! 왜 이 집안 사람이 아닌 건데? 엄마가 잡혀간 틈에 내 자리를 빼앗으려고? 꿈 깨! 미친X아!”그는 기세등등한 눈빛으로 도아영을 째려봤다.하지만 도아영은 시큰둥하게 쓴웃음만 지었다.“네가 우리 아빠 아들이야? 쥐뿔도 아닌 게 무슨 자리까지 빼앗는다고 그래? 너희 엄마 안용준이랑 바람피운 건 알지? 안용준은 내가 직접 처리했고 너희 엄만 너그럽게 용서했어. 그런데 여태껏 회사 공금을 횡령하고 끊임없이 회사 자산에 손댔더라? 대체 언제까지 우리 집안 재산을 노릴 건데? 너희 두 모자 좀 너무하단 생각은 안 들어?”“개소리 치지 마! 우리 엄마가 어떻게 딴 남자랑 바람을 피워?”도지호의 안색이 확 일그러졌다.“네가 아직 어리니 그동안 나한테 무례하게 굴었던 건 그냥 눈감아줄게. 하지만 너희 엄마는 우리 아빠랑 도원 그룹에 미안한 짓을 너무 많이 저질렀어. 그건
사채업자들은 꽤 모아진 자산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드디어 도씨 저택을 떠났다.유정연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채에 딱 한 번 손을 댔더니 아들과 함께 전 재산을 털릴 줄이야.한편 도아영은 도원 그룹에서 사채업자의 전화를 받았다.“아영 씨, 분부하신 일은 다 해결했습니다. 모든 물건을 현금화해서 이체해드리겠습니다.”“알겠어요. 오늘 다들 수고 많으셨어요.”“별말씀을요. 서 대표님 분부대로 했을 뿐입니다.”도아영은 가볍게 웃었다. 이 모든 건 서현우의 공로이니까.그의 조언대로 유정연 모자의 전 재산을 손쉽게 챙겼고 이 또한 아빠 도석진이 받아야 할 몫이다.전화를 끊은 후 도아영은 주연우에게 분부했다.“이제 다 됐어요. 시작해볼까요?”“네, 알겠습니다.”주연우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도씨 저택에서 유정연 모자가 멍하니 넋 놓고 있을 때 문밖에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유정연은 화들짝 놀랐고 도지호도 어안이 벙벙했다.‘오늘 무슨 날이야? 경찰차는 또 뭔데?’유정연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경찰이 집안으로 들어와서 다짜고짜 그녀에게 수갑을 채웠다.“신고받고 왔습니다. 유정연 씨, 당신은 금융범죄 혐의로 체포되었으니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네? 뭐라고요? 금융범죄라니? 그게 대체 뭔 말인데요?”유정연은 몹시 당황했지만 경찰은 그녀의 변명 따위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서로 가서 조사받으시죠! 당장 끌고 가!”“당신들 뭐야? 왜 우리 엄마를 잡아가는 건데?”도지호가 쫓아가려 했지만 경찰은 아예 무시한 채 유정연을 차에 태우고 떠나가 버렸다.오늘 발생한 모든 일이 괴이할 따름이었다.도지호는 곧바로 도아영에게 연락했다.평상시에는 그렇게 연락이 잘 되던 도아영인데 오늘은 도통 받지를 않았다.“전화 좀 받아!”그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유정연이 경찰에 잡혀가니 그는 가장 먼저 도아영이 떠올랐다.그녀 말곤 엄마를 구해줄 사람이 없으니까.도원 그룹에서 도아영은 쉴 새 없이
“왜 그래요 갑자기? 무슨 일 있어요?”유정연은 사채에 손을 댄 일을 죽어도 도아영에게 고백할 순 없었다.도씨 일가의 가훈이 바로 사채에 손을 대지 않는 거니까.소문이라도 나면 체면이 바닥나고 도아영에게 쫓겨날지도 모른다.한편 도아영은 그녀가 사채를 빌린 걸 진작 알고 있어 입꼬리를 씩 올렸다.“지금 바로 연락해 계약서 보낼 테니까 거기 사인만 하면 효력이 발생할 거예요. 아줌마랑 지호가 우리 아빠 재산을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계좌이체 해드릴게요. 사인만 하면 재무팀에 바로 연락해서 돈 보낼게요.”기세등등한 남자들을 보고 있자니 유정연은 더 이상 망설일 겨를이 없었다.“알았어! 사인할게. 바로 할게!”도아영이 곧장 휴대폰으로 계약서를 보내왔다.유정연은 꼼꼼히 읽어볼 새도 없이 바로 사인했고 계좌에 거액이 들어왔지만 모든 걸 사채업자에게 털렸다. 20초도 안 되는 사이에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다만 겁에 질린 유정연은 이 과정의 수상한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이봐! 아직도 돈 있잖아! 바로 내놓으면 될 것이지 왜 이렇게 질질 끌었어? 돈 될만한 액세서리들 당장 내놔!”유정연은 허겁지겁 위층에 올라가 보물처럼 아끼던 액세서리를 모조리 꺼냈다.이것들은 전부 도석진이 생전에 그녀에게 선물한 값비싼 액세서리들이다.수년간 아까워서 제대로 착용하지도 못했고 그저 도지호의 생일날 딱 한 번 치장하고 나갔었다.“여기 있어요. 이거면 되나요?”그녀는 액세서리를 사채업자에게 건넸다.“이년이 감히 내 앞에서 꼼수를 부려? 분명 더 있을 거야! 다 내놔! 이까짓 거로 누구 입에 풀칠하겠어?”앞장선 남자가 그녀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유정연은 화들짝 놀라서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숨긴 건 맞지만 이 사람들이 대체 그것까지 어떻게 알아낸 건지 더는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그녀는 마지못해 여태껏 보관한 모든 액세서리와 명품 가방, 옷들까지 꺼냈다.“이 새끼도 있잖아! 얘 것도 싹 다 꺼내!”도지호는 평상시에 손이 커서 가격도 안 보고 물건을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