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들짝 놀란 곽보미가 강서연을 붙들었다.“흥분하지 말아요. 애가 놀라면 어떡해요.”강서연은 웃으며 곧장 회의실로 돌아가 디자이너들과 어떻게 디자인을 수정하면 좋을지 상의했다.구멍 난 부분이 그리 크지 않아 조금만 수정하고 동양의 요소를 가미한다면 생각지도 못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디자이너들도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수정본을 확인한 그들의 두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동양 요소들의 고귀함과 신비함이 드레스를 더욱 남다르게 만들어주었다.“그림으로 보면 효과는 아주 좋아요.”한 디자이너가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하지만 이렇게 만든다는 건 아마 어려울 것 같아요.”회의실이 삽시간에 조용해졌고 다른 디자이너들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이 드레스들은 전부 수작업으로 제작한 거예요. 이 부분도 예외는 아니고요.”“여기에 동양 요소가 담긴 무늬를 새긴다는 아이디어는 좋지만 우리는 자수를 수놓을 줄 몰라요. 지금부터 배운다면 시간이 될까요?”강서연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구멍 난 곳에 자수를 수놓는 건 물론이고 바느질까지 해야 했다. 그리고 무늬가 옷감과도 잘 어울려야 하고 터진 자리가 절대 보여선 안 되었다. 그야말로 난도가 높은 작업이었다.문제는 그들도 자수할 줄 몰랐고 맨체스터를 다 뒤져도 자수 장인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일 것이다. 지금부터 배운다고 해도 여전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한참 고민하던 강서연은 오성에서 사람을 데려와야 하나 망설였다. 그런데 그때 한 가지 생각이 갑자기 뇌리를 스쳤다. 나석진이 서지현을 처음 만났을 때 그 혼혈 소녀가 외투를 그에게 팔려고 했었다.그때 나석진이 이런 평가를 했다.“서연아, 걔가 그 외투를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몰라. 바느질이 어찌나 꼼꼼한지 나까지 하마터면 속을 뻔했다니까. 허, 정말 감쪽같았어.”어릴 적부터 호의호식하며 지낸 나석진은 항상 좋은 것만 보면서 자랐다.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얘기를 한다는 건 손재간이 엄청나다는 게 분명했다.강서연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새어 나왔다.지
“대체 무슨 배짱으로 여길 활보하고 다니는 거예요? 이렇게 다니면 당신이 저 사람들의 타깃이 된다는 거 몰라요? 아마 몸에 지닌 걸 다 뺏겨서 팬티 바람으로 도망쳐야 할걸요?”나석진은 잠깐 흠칫하다가 이내 가볍게 웃었다.“그 정도로 심각해?”서지현이 진지하게 말했다.“찬혁 오빠가 당한 걸 보고도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그때는 저녁에 사고가 났잖아...”“아저씨.”서지현이 팔짱을 끼고 말했다.“이 거리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밤낮을 가리지 않아요.”“뭐?”나석진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범죄라는 소리에 놀란 게 아니라 아저씨라는 호칭에 충격을 받았다.‘아저씨? 아까 찬혁 씨는 오빠라고 불렀잖아! 내가 아저씨라고 불릴 정도로 늙어 보여? ’나석진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고 주먹까지 불끈 쥐었다. 그의 안색을 조심스럽게 살피던 서지현은 기분이 별로라는 걸 눈치챘다.‘하긴, 귀한 사람이 이런 곳에 왔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서지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다정하게 물었다.“아저씨는 절 찾으러 왔어요? 찬혁 오빠는 인제 괜찮죠? 제... 제가 잘못했어요. 찬혁 오빠를 지하실에 며칠이나 가둬놓는 게 아닌데... 그래도 제가 찬혁 오빠의 목숨을 살려줬는데 용서해 주면 안 돼요?”서지현이 작은 입을 삐죽거리며 가여운 표정을 지었다.“아저씨... 전 정말 배상할 돈이 없어요... 하지만 힘은 있어서 하라는 건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제발 경찰에 신고하지만 말아줘요. 저... 강제적으로 추방되면 진짜 갈 곳이 없어요.”나석진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서지현은 마음이 움찔했다.‘망했다! 그날 병원에서도 참 괴상했어. 아저씨처럼 잘난 사람은 당연히 나 같은 사람을 얕잡아보겠지. 인제... 정말로 나에게 뭐 어쩌려는 거 아니야?’“아저씨...”서지현이 그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아저씨? 지금 제 말 듣고 있어요?”고개를 돌린 나석진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워졌고 당장이
호텔 룸 밖에 서 있는 강서연은 안의 상황이 걱정되었다.그 룸은 나석진의 스위트 룸이었는데 서지현이 안에 들어간 지 벌써 이틀이 지났다. 이틀 동안 나석진은 방에 들어가지 않고 거실에서만 지냈다. 굳게 닫힌 방 안에는 서지현이 갇혀있었다.그는 경호원까지 데려다가 방문을 지키게 하면서 정작 자신은 여유롭게 밖으로 돌아다녔다. 호텔로 돌아오면 거실 소파에 축 늘어져 긴 다리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술잔을 흔들며 그윽한 눈빛으로 방문을 쳐다보면서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곤 했다.강서연은 경호원에게서 나석진이 서지현을 잡아 온 그날 딱 두 마디만 했다고 들었다.“들어가 있어!”이게 첫마디였다고 한다. 그러고는 모든 드레스와 설계도를 그녀에게 던지고 퉁명스럽게 두 번째 말을 내뱉었다.“자수를 완성하지 못하면 밥도 없어!”강서연이 실소를 터트렸다. 물론 나석진이 진짜로 서지현을 굶길 리가 없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평소 매우 점잖고 팬들에게도 다정한 나석진이 왜 서지현을 만난 후에 이성을 잃은 것일까?“서연이 왔어?”나석진은 그제야 문 앞에서 왔다 갔다 망설이는 강서연을 보고는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그녀의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가려야 하는 음식도 많았다. 아무거나 마실 수 없어 그냥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주었다. 강서연은 웃으며 컵을 건네받고는 안방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지현 씨는...”“걱정하지 마.”나석진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솜씨가 재빠르고 능숙해서 하루만 더 주면 다 완성할 거야.”그가 손을 흔들자 경호원이 옷장에서 서지현이 자수를 마친 몇 벌을 꺼냈다. 옷을 보자마자 강서연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이 세상에 이런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 정말로 있구나!’“어때? 괜찮지?”나석진이 말을 이었다.“저 녀석 다른 재주는 없어도 손재간은 아주 훌륭해. 허, 예전에 남양 집에도 자수를 놓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는데 다들 고수였어. 그런데 다 얘보다 못해.”“오빠가 이렇게까지 칭찬
서지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눈을 떠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너무도 아쉬웠다.조급해진 나석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서지현이 아무 반응이 없자 얼굴을 톡톡 치려던 그때 의사가 말렸다.“아가씨가 그동안 너무 과로해서 이런 거니까 푹 자게 내버려둬요. 한잠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겁니다.”“한잠이요? 벌써 12시간이나 잤다고요.”시계를 내려다보는 나석진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너무 오래 자서 바보가 되는 건 아니겠죠?”의사는 헛웃음을 짓더니 별다른 말 없이 그저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석진은 모든 화를 문 앞의 경호원에게 쏟아냈다.“거기 서서 뭐 해? 다시 가서 의사 선생님을 모셔 와!”“도련님, 그건...”경호원도 어이가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방금 나간 의사는 벌써 다섯 번째 의사였다. 물론 의사마다 전부 똑같은 말만 했다.서지현이 이틀 밤낮을 자지 않고 꼬박 새웠으니 당연히 충분한 수면이 필요했다. 너무나도 정상적인 일인데 왜 도련님은 이토록 긴장하는 걸까?경호원들은 또 혹시라도 불똥이 튈까 두려워 의사를 찾으러 가는 척했다.나석진은 문을 쾅 닫고 들어와 서지현의 옆에 앉았다.소녀의 눈 밑에 짙은 다크서클이 있긴 하지만 안색은 그래도 괜찮았다. 발그스름한 두 볼이 마치 봄날의 벚꽃 같았고 눈을 감고 누워있는 모습은 동화 속의 잠자는 공주 같았다.나석진은 그런 그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그녀에게 바느질하라고 할 때 제대로 하지 못하면 밥도 먹지 말고 잠도 자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서지현이 진짜로 그렇게 할 줄은 몰랐다. 이틀 밤낮을 꼬박 새우면서 아주 훌륭한 무늬를 드레스에 수놓았다. 그러다가 결국 과로로 쓰러지고 말았다.‘왜 이렇게 말을 잘 듣는 거야? 설마 바보는 아니겠지?’나석진은 후회막심했고 자신을 자책했다.‘고작 호칭 때문에 어린애에게 왜 그랬을까? 품위나 잃게...’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손을 내밀어 그녀의 갈색 곱슬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숱이 많고 촘촘하여 아주 예뻤다.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나석진은 깜짝 놀랐다. 다른 요구라도 얘기할 줄 알았는데 단지 맛있는 밥 한 끼뿐이었다.그의 뇌리에 범죄자가 득실거리던 그 길거리가 또다시 떠올랐다. 더럽고 협소한 지하실, 그리고 광장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여행객의 시선을 끄는 집시들... 이 세상에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미안한 마음이 밀려온 나석진은 고개를 들어 기대 가득한 소녀의 두 눈을 쳐다보았다.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힘겹게 대답했다.“알았어.”서지현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잠도 푹 잤겠다, 이따가 맛있는 음식까지 배불리 먹을 수 있다니, 이게 바로 천국인 건가?잠시 후 누군가 밥을 가져왔다. 전부 이 호텔의 최고 요리사가 만든 음식이었는데 일하는 이틀 동안 먹었던 것보다 더 맛있어 보였다.서지현의 두 눈이 별처럼 반짝였고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먹으려다가 갑자기 다시 멈추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침대를 깔끔하게 정리한 후 음식을 탁자 위로 옮겼다.나석진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침대 옆까지 가져다줬으면 침대에서 먹으면 되지, 왜 내려와?”“먹다가 흘리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이렇게나 좋은 침대를 더럽힐 수는 없죠.”서지현은 연어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더니 흥분한 목소리로 감탄했다.“너무 맛있어요! 너무!”나석진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서지현이 이깟 침대를 왜 이렇게나 아끼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더러워지면 청소부에게 맡겨 깨끗이 빨라고 하면 되는데.서지현도 나석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무슨 물건이든 그에게는 별거 아니었고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할라.”나석진은 옆에 서서 물과 휴지를 챙겨주었다.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후춧가루를 뿌리는 것조차 도우미가 옆에서 뿌려줬었는데 이젠 그가 어린 소녀를 챙겨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최연준은 나석진에게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나석진은 처음에는 사양하는 척하다가 이내 캐리어를 들고 그의 별장으로 들어왔다.두 남자는 카펫 위에 앉아서 한잔했고 강서연은 소파에 기대어 앉아 태교 음악을 들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이었는데 선율이 웅장하면서도 고상하고 역동적이었다.하지만 나석진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의 머리에는 온통 그 광장밖에 떠오르지 않았다.집시들은 제대로 된 악기가 없어 교향곡 같은 걸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단지 탬버린 하나와 건반 하나로 커다란 광장을 파티 현장으로 만들었고 주변에 놀라움을 선사했다.‘그 계집애가 롱 원피스를 입고 하늘하늘 춤추는 모습은 어떨까? 목소리가 밤꾀꼬리 같아 노래를 부르면 아주 듣기 좋겠지? 그러면 주변에 보는 남자들도 많을 텐데...’그 생각에 마음이 움찔한 나석진은 저도 모르게 술잔을 꽉 쥐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가락 마디가 하얘질 정도였다.“뭐 해요?”최연준이 귀띔했다.“형님 차례예요.”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나석진은 최연준이 조롱 섞인 미소를 짓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 카드를 내지 않아도 이미 진 상황이었다.“그만 놀아요.”그는 카드를 휙 던지며 툴툴거렸다. 최연준은 웃으며 강서연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 모두 나석진이 누굴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그렇게 걱정되면 가서 보면 되잖아요.”강서연이 피식 웃었다.“손발이 멀쩡하고 잡는 사람도 없는데 왜 안 가요?”“서연이 너 지금 날 내쫓는 거야?”나석진은 그녀를 째려보고는 최연준에게 시선을 옮겼다.“와이프 좀 단속해요.”하지만 최연준은 아예 강서연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와이프 말이 맞아요.”“당신...”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모습에 외로운 건 솔로뿐이다. 나석진은 약이 바싹 올랐다.“매제는 정말 도움이 안 돼요.”최연준은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석진은 술잔을 내려놓더니 피식 웃었다.“아내 바보가 따로 없다니까요.”“네...”최연준은 진지한 척했다
최연준은 순간 흠칫하며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무엇인가?남의 음모 때문에 항공기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고 어릴 적부터 남이 해칠까 늘 경계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옆에 똑똑한 아내가 있다는 것이다...그녀가 매번 이런 목숨이 달린 문제를 낼 때마다 최연준은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얼른 대답해요.”강서연은 작은 얼굴을 그에게 들이밀고 눈을 깜빡이며 웃을 듯 말 듯 했다.“그런 생각 해본 적 있어요, 없어요?”잠깐 생각하던 최연준은 적절히 대처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강서연의 손을 덥석 잡고 물끄러미 바라보며 매력적인 중저음으로 말했다.“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었지만 바로 사라졌어. 왜냐하면... 당신을 사랑하게 된 속도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거든. 그때 내 머릿속에 군대가 들어있었는지 그 생각이 들자마자 군대들이 바로 진압해 버렸어.”최연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러다가 나중에 그 군대가 왜 그리 강했는지 알게 되었어. 군대의 이름이 바로 ‘사랑해’ 였거든.”강서연의 두 볼이 발그스름해졌고 쑥스러워하며 그에게 기댔다. 전에는 한 손으로도 강서연을 안을 수 있었지만 배가 불러오면서 이젠 두 손으로 안아야 했다.최연준이 그녀를 끌어안자 아이가 갑자기 움직였다. 너무나도 신기한 태동에 최연준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여보, 아들이 방금 나에게 인사한 거야?”“네.”갑자기 마음이 울컥하고 코끝이 찡한 강서연은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아들이 그러는데 나중에 태어난 후에도 당신의 군대를 영원히 머릿속에 남겨둬야 한대요.”“당연하지.”최연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볼을 어루만졌다. 임신한 후로 살이 많이 올라서 볼도 통통해졌다.“여보, 아들이 태어나면 세 식구가 돼.”최연준의 한마디 한마디에 그녀에 대한 사랑이 넘쳐흘렀다.“나중에 아이가 더 생기면 네 식구, 다섯 식구가 될 수도 있어... 하지만 아이가 몇 명이든 당신과의 세상을 따로 남겨둘 거야. 그 세상에는
강서연이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지 알 리가 없었던 서지현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서지현이 멋쩍게 웃으며 떠보듯 물었다.“언니, 왜 그래요?”강서연은 대답할 새도 없이 그녀를 덥석 잡아당겼다. 곧바로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스타일리스트들이 일제히 그녀를 둘러쌌다.“저 짧은 치마를 가져와요.”강서연은 서지현을 자세히 살펴보며 지휘했다.“음... 키가 좀 작네요. 하이힐을 신어도 모델보다 작아요. 그럼 런웨이에 서지 말고 꽃마차에 앉아서 현장을 한 바퀴 돌게 하죠.”“좋은 생각이에요, 사모님.”“그리고 메이크업은 너무 진하게 하지 말아요.”서지현의 미모 자체가 한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 얼굴이라 메이크업이 진하면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덮어버릴 수 있다.메이크업 아티스트는 강서연의 분부대로 바로 움직였다. 스타일리스트도 옷을 가져와 서지현의 몸에 대고 어림잡아 보더니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서지현의 키가 크진 않았지만 몸매는 좋았다. 글래머한 가슴에 가느다란 허리, 그리고 다리가 길어서 비율이 아주 완벽했다. 심지어 전문 모델보다도 더 나은 것 같았다.디자이너의 눈에 그녀는 걸어 다니는 옷걸이와도 같았다. 다만 사이즈가 좀 작을 뿐.“사모님, 이분이 일어서지만 않는다면 런칭쇼는 계속할 수 있어요. 이 짧은 드레스를 원래는 다른 모델에게 입히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모델이 입으면 너무 노출이 심해서 런칭쇼 주제와 어울리지 않을까 봐 망설였었는데 지금 그 문제가 해결됐네요.”강서연이 웃음을 지어 보였다.이번 런칭쇼의 주제는 낭만과 감미로움이기에 노출이 너무 심해선 안 된다. 서지현이 꽃마차에 앉아 맨 마지막에 등장했다가 현장을 한 바퀴 돌면 완벽하게 막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강서연과 달리 서지현이 긴장해 하기 시작했다.“언... 언니, 대체 뭘 어쩌려는 거예요? 저...”“뭘 어쩌려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강서연이 가볍게 웃으며 그녀를 거울 앞으로 데려가 앉히고는 거울 속의 그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