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하수영을 떠올렸다. 엉망이 된 우정을 생각하니 저절로 슬퍼졌다.박나연은 강소아의 표정 변화를 알아차리고는 걱정스럽게 울었다.“왜 그래? 맛없어?”“아니야... 진짜 맛있어. 나연아, 고마워. 마침 우울했는데 네 덕분에 많이 나아졌어...”강소아가 억지로 웃으며 답했다. 박나연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헤헤, 다행이다. 소아야, 난 너랑 친구가 되고 싶어. 오늘 일로 너와 더 가까워진 것 같아 너무 좋아!”“우린 계속 친구 아니었어?”“아니... 너랑 수영이 같은 친구 말이야.”하수영을 언급하자 강소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소아야, 넌 너무 좋은 사람이야. 너처럼 우수한 사람은 친구들도 우수해야 할 거야. 난... 너무 평범해서 그럴 자격이 안 돼.”박나연이 머쓱하게 웃었다. 그녀의 웃음은 단순하고 부드러웠다. 박나연에게는 강소아가 가까이할 수 없는 존재였다.강소아는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박나연이 그녀에게 준 따뜻함은 하수영이 그녀에게 안겨준 실망을 점차 밀어내고 있었다.따뜻한 사람은 따뜻한 사람을 끌어당기기 마련이다.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나연아, 정말 고마워.”“괜찮아, 괜찮아!”박나연이 환하게 웃었다.“소아야, 기분 안 좋은 거야?”“그렇지...”“구자영 때문이야? 걱정하지 마, 경찰에 잡혀간 건 하수영이지 네가 아니잖아. 넌 편하게 있어.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에 마음고생할 필요 없어.”“그 때문이 아니야. 우리 남편이 전화를 안 받아서...”“응?”박나연은 연애 경험이 없었기에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축 처져 있는 강소아가 안쓰러워서 속으로 그녀의 남편을 한참 욕했다.박나연은 조심스럽게 강소아를 쳐다보며 즐거운 일을 얘기하려고 노력했다.“맞다, 소아야! 내가 검색해 봤는데, 남양의 별은 소원을 들어준대?”“그래? 우리 남편도 그렇게 얘기했어.”“어떻게든 네 남편 얘기로 돌아가는구나...”박나연이 씁쓸하게 말했다. 강소아가 풉 하고 웃었다.박나연이 호
강소아는 화면을 살짝 훔쳐보다가 다시 얼굴을 돌렸다. 최군형이 어디 있는지는 자세히 보지 못했다.“하루 종일 전화했는데도 안 받다니... 핸드폰은 장식이에요? 아니면 내 전화를 받기 싫은 거예요? 거기 더 좋은 게 있나 봐요?”누가 봐도 질투하는 모습이었다. 최군형이 웃으며 그녀를 놀렸다.“네, 오늘 일이 좀 생겨서요.”강소아는 입술을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군형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소아 씨, 하늘을 봐요. 오늘 별이 참 예뻐요.”강소아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멀지 않은 곳의 나무 뒤에서 그 익숙한 사람이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그녀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최군형의 등 뒤에는 어둠만이 가득했다.강소아가 가볍게 물었다.“그쪽은요? 그쪽은 별이 있어요?”“네, 방금 별 하나와 상의해서, 그 별더러 남양으로 날아가 소아 씨 곁에 있어 주라고 했어요.”강소아가 그제야 웃었다.“그런 느끼한 대사는 언제 배운 거예요?”“아닌데, 진짠데.”최군형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소아가 오리무중에 빠져있는데, 최군형이 다시 물었다.“호텔 정원에 있죠?”“네...”“전에 영상 통화할 때 보니, 정원 안에 큰 나무가 있던 것 같은데.”강소아가 고개를 돌렸다. 확실히 큰 나무가 있었다.“그쪽으로 가봐요. 별에 거기 떨어지라고 얘기해 뒀어요.”“군형 씨!”강소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느끼할 뿐만 아니라 유치하기까지!“네, 지금 가요! 별이 안 보이면 아주 혼을 내 줄 거...”말이 끝나기도 전에 풍선 하나가 나무 뒤에서 날아왔다. 강소아는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풍선을 잡자 반짝이는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별 장식이 달린 목걸이였다.강소아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핸드폰 화면을 쳐다보았다.“군형 씨, 이건...”“별을 잡았으니, 소원 하나만 빌어요!”강소아는 말문이 막혔다. 최군형이 입꼬리를 올리고 매력적인 저음으로 말했다.“아니면 제가 대신 빌어줄까요? 지금 나 엄청나
“절 만난 게 싫은가 봐요?”“당신...”강소아는 코끝이 찡해졌다. 그녀는 오만 가지 감정이 밀려들어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최군형을 끌어안았다. 눈물 한 방울이 그녀의 눈에서 흘러나왔다.최군형도 강소아를 꽉 끌어안았다. 급히 가느라 수염을 못 밀어서 뾰족한 수염들이 강소아를 콕콕 찔렀다. 하지만 강소아는 신경 쓰지 않고 최군형의 품에 안겼다. 이 모든 게 꿈인 것처럼, 금방이라도 꿈에서 깰 것처럼.최군형은 품속의 사람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몸을 떠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치 우는 것 같았다.“소아 씨, 미안해요. 얘기도 없이 와버려서. 혼자 외로울 것 같아서 빨리 옆에 있어 주고 싶었어요. 다른 건 생각할 시간이 없었어요.”그는 구자영이 하수영이 산 크림을 바르고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 마음이 급해졌다. 강소아가 그 위험한 여자와 함께 있을 것을 생각하니 이성을 잃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가장 빠른 항공편으로 남양에 도착했다.그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집 쪽은 걱정 마요. 내가 다 말해뒀어요. 가게도 다 정리했고요. 그리고 며칠밖에 안 있을 거라 괜찮을 거예요. 소준이도 가게 일을 도울 수 있고요. 구자영이 남양에서 사고를 당했으니 구 씨 집안은 이미 난리가 났을 거예요. 당분간은 잠잠할 테니 걱정 마요. 내가 여기 있잖아요. 다 괜찮아질 거예요. 소아 씨, 어디 아픈 건 아니죠?”최군형이 강소아의 차가운 두 손을 잡고 물었다. 강소아는 그제야 웃음을 터뜨리며 작은 주먹으로 최군형을 두어 번 쳐놓았다.“진짜 나빠요! 어떻게 얘기 한마디 안 하고 와요?”“먼저 얘기하면 소아 씨를 놀라게 해 줄 수 없잖아요.”최군형은 웃으며 목걸이를 그녀의 목에 걸어주었다. 목걸이에 박힌 보석은 아주 비싼 것은 아니었다. 더 비싼 걸 사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신분이 들통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이 목걸이를 준비한 것이다.하지만 설사 최군형이 유리를 선물했다 하더라도 강소아는
강소아는 웃으며 최군형의 팔짱을 끼고는 머리를 그에게 기댔다. 그만 있다면 반딧불 따위 안 봐도 괜찮았다.“금방 도착했는데, 푹 쉬어야죠. 어... 방 하나 잡아줄게요.”“아뇨! 여긴 너무 비싸요.”최군형이 강소아의 손을 잡고 그녀와 이마를 맞댔다.“설마 빈손으로 여기까지 온 건 아니죠?”“당연히 아니죠. 여기 옷들이 있잖아요.”“당신... 설마 나랑 같은 방에서 자려고요?”강소아가 그제야 알아차린 듯 물었다. 최군형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오, 괜찮은 생각이네요.”“군형 씨!”“왜요, 날 내치려고요? 내가 노숙했으면 좋겠어요?”최군형이 낮은 소리로 강소아에게 귓속말했다. 강소아가 최군형을 째려보았다. 최군형이 모르는 척 억지를 썼다.“이미 왔잖아요. 전에 모은 돈은 비행기표에 다 써버려서, 소아 씨 아니면 전 정말 노숙밖에는...”“됐어요, 따라와요.”강소아가 얼굴이 빨개진 채 말했다. 최군형이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따로 떨어져서 가요. 사람들 눈에 띄면 어쩌려고요.”“네. 그럼 빨리 따라와요. 엘리베이터로 바로 와야 해요!”“알겠어요.”“군형 씨, 모자 푹 눌러써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최군형이 웃으며 모자를 눌렀다. 강소아의 말은 뭐든지 따를 준비가 되어있었다.강소아가 앞장서 걸었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호텔 로비를 지나며 어서 따라오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최군형은 일부러 느리게 걸었다. 강소아가 급해하는 모습을 더 보고 싶었다.호텔 직원과 지배인들은 최군형을 보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윤제 그룹 도련님이 확실하다는 걸 뒤늦게 확인하고는 모두 깜짝 놀랐다. 윤제 그룹이 호텔의 대주주이긴 했지만 윤씨 집안 사람을 접대한 적은 없었다. 그들은 남양에 올 때면 윤상 빌라, 장군부, 대황궁에 묵었지 이런 호텔에서는 절대 묵지 않았다.그런데 오늘은...호텔 경리는 세차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눈을 반짝였다. 환하게 웃으며 꼿꼿하게 서서 인사하려는데, 최군형이 매서운 눈길로 그를 제지했다.강소아
“네?”최군형의 품에 안긴 강소아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결혼하면 신혼여행은 남양으로 와요. 나 여기가 꽤 마음에 들어요.”“진짜요?”“네! 왠지 모르게 좋아요.”최군형이 눈웃음치며 강소아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갑자기 먼 옛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작디작은 그는 저보다 더 작은 사람과 손을 잡고 있었다. 인형 같은 그 아이는 막 걸음마를 떼고 있었다. 그는 아이에게 나중에 꼭 함께 남양에 가 반딧불을 보자고 약속했다...거기까지 생각이 마친 그의 마음이 저릿해졌다.......오성, 육씨 가문.육연우가 옷을 갈아입고 계단을 내려왔다. 육경섭 부부는 이미 식탁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임우정이 고용인에게 물었다.“음식은 다 준비됐어? 아가씨는 뭘 좋아하셔?”고용인은 우물쭈물하며 대답하지 못했다. 육연우는 본래 많이 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빵 한 조각으로도 끼니를 때울 수 있었다.임우정은 조금 화난 듯 인상을 쓰며 주방으로 가 직접 음식을 준비하려 했다. 육연우가 급히 그녀를 불러세웠다.“괘, 괜찮아요! 전 다 좋아요...”임우정이 멈칫하며 고개를 돌리더니 육연우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소유야, 괜찮아. 엄마가 샌드위치 해줄까? 담백한 게 좋으면 드레싱은 적게 넣어줄게... 너도 참, 네 아빠랑 하나도 안 닮았다. 이 사람은 매운 거 엄청나게 좋아해!”육연우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임우정이 불쌍했다. 임우정은 최대한 육연우에게 잘 보이려 했다. 말 한마디라도 더 섞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습이었다.한 번 웃어주기라도 하면 임우정은 한참을 기뻐했다.부모 마음은 다 그런 것이다. 그녀는 엄마가 없었지만 임우정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우정이 딸에 대한 마음을 실감할수록 그녀를 마주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 진실이 드러날 때 이들 부부가 받을 충격이 두려웠다.그러니 그녀는 어서 빨리 진짜 육소유를 찾아 육경섭 부부 앞에 데려다 놔야 했다. 그것으로 속죄하는 수밖에 없었다.임우정이 관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최씨 가문 둘째 도련님은 어딜 가나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철이 일찍 들어 어른스러운 형과는 반대로 그는 아무 걱정도 없는 듯 천진하고 해맑았다.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다.최군성이 안으로 들어오자 육소유의 시선은 그에게 가 고정되었다. 그녀는 최군성을 향해 살짝 웃어 보였다.육경섭과 임우정은 그런 딸의 모습이 놀라워 서로를 쳐다보고는 얼른 최군성을 자리에 앉혔다. 육경섭이 최군성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껏 먹어! 더 튼튼해진 것 같은데?”“큼큼... 경섭 삼촌, 그럴 나이는 지났어요!”최군성은 헤헤 웃으며 음식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임우정이 그에게 따뜻한 우유를 따라주었다. 최군성은 우유컵을 들고는 큰 소리로 얘기했다.“감사합니다! 삼촌네 집 식탁에는 정말 없는 게 없어요! 최고예요!”“너희 집도 그렇잖아! 이제 부모님이 밥 안 해 주시는 거야?”육경섭이 웃으며 물었다. 최군형은 입안에 음식을 가득 넣은 채 다 뭉개진 발음으로 웅얼거렸다.육경섭과 임우정이 웃음을 터뜨렸다. 최군성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임우정이 최후의 한 방을 날렸다.“됐어, 너희 둘은 사고였어! 네 형이 너보다 그걸 빨리 깨달았나 보네. 강주로 도망갔잖아!”“큼큼...”“헛기침해도 소용없어, 사실은 사실이니까. 넌 왜 여자 친구가 없어? 이제 어린 나이도 아닌데.”최군성이 불쌍한 표정으로 그들 둘을 바라보았다. 입가의 음식 부스러기가 후드득 떨어졌다.“군성 오빠 그렇게 말하지 마요...”이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식탁의 모든 사람들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육연우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토스트를 조금씩 떼먹고 있었다.육경섭과 임우정은 서로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최군성과 육소유에게서 젊은 날의 자신들이 보였다.젊은이들의 사랑은 단순하고, 단순하기에 아름답다. 처음에는 딸과 최군형을 이어주려 했으나 보아하니 그는 임자가 있는 몸이었다.
최군형은 그녀를 벽에 몰아세웠다. 그의 온몸에서 위험하지만 유혹적인 향기가 나고 있었다.“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약간 쉬어버린 그의 목소리에는 슬픔마저 담겨있었다. 강소아가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10시간 32분 56초나 기다렸다고요!”“그렇게 정확해요?”“당연하죠. 내게 상이라도 줘야 하지 않아요?”최군형이 강소아의 턱을 끌어올리고는 서서히 고개를 숙였다. 곧 키스하려 할 때, 강소아가 한 손가락으로 그의 입술을 막으며 신비하게 말했다.“상 줄게요, 같이 반딧불 보러 가요!”“네?”“어제 말한 거기 말이에요!”최군형이 어리둥절해졌다. 강소아가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고?강소아는 두 손으로 최군형의 목을 끌어안은 채 그의 귀에 대고 말했다.“동기가 말해줬는데, 사유지이긴 해도 뒤로 돌아가는 오솔길이 하나 있대요! 거기고 가면 들어갈 수 있어요!”“뭐... 뭐요?”최군형이 놀란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강소아는 그가 흥분한 줄 알고는 그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어때요? 괜찮죠? 사실 처음 그 얘기를 들을 때는 안 믿었는데, 검색해 보니까 정말 있더라고요. 이거 봐요. 제가 약도를 그렸어요. 먼저 이쪽으로 가고, 거기서 다시 이쪽으로... 이렇게 가면 사바 우림이 나온대요. 세계에서 유일한 쌍날개 반딧불이 여기 있어요!”강소아는 가방 안에서 약도를 꺼내 열심히 설명했다. 최군형은 한없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이 모든 게 이목을 끌기 위한 거짓말인지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윤상 빌라의 보안은 그렇게 허술할 리 없었다.최군형은 강소아의 약도를 들여다보았다. 그 오솔길은 멀리 돌아가는 길이었다. 경비원은 없었지만 선진적인 적외선 장비와 위치추적 시스템까지 있었다. 사람은 물론이고 벌레 한 마리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하지만...강소아가 가고 싶어 한다면 당연히 그 소원을 만족시켜 줘야 했다.강소아가 최군형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군형 씨! 듣고 있어요?”“네, 듣고 있어요.”“무슨 일 있어요
윤정재는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윤문희에게 꿀밤을 맞았다.“바보예요? 군형이가 그렇게 부탁할 정도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대로 해주면 되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요?”“그런데... 얘 좀 이상해!”“이상하긴 뭐가 이상해요! 군형이가 당신을 해치기라도 할까 봐요?”윤문희는 환멸이 난다는 듯 윤정재에게 쏘아붙이고는 핸드폰을 빼앗아 말했다.“군형아! 응, 응. 걱정하지 마, 할머니가 알아서 할게. 지금 당장 꺼줄게.”“네, 감사합니다!”“경비원도 없는 게 좋겠지?”“네, 역시 할머니가 저와 잘 맞아요!”윤문희는 웃으며 집사에게 당부했다.“오늘 밤 누구도 정원 뒤에 가지 마. 군형 도련님 방해하면 안 돼!”최군형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가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최군성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형!”최군형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너 어딘데 그렇게 시끄러워?”“나 강주에 도착했어.”“뭐? 너도 강주에 갔어? 부모님은 어떻게 하고, 너 왜 거기에 간 거야?”전엔 항상 최군성이 최군형에게 물어보는 처지였는데, 오늘은 그 처지가 바뀌게 되었다.전화 저편의 최군성은 평소처럼 그를 놀리지 않은 채 두어 번 헛기침하고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형, 이건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나 소유랑 같이 왔어.”최군형은 눈을 크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최군성이 말을 이었다.“그런데 이상해,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나한테 뭔가 말하고 싶은 눈치인데, 입을 열지 않아.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널 그 정도로 믿지는 않거나, 뭔가 사정이 있겠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일 수도 있어. 잘 관찰해. 뭔가 알아내면 얼른 나한테 연락하고.”“그럼 형은? 언제 와?”“여기 일이 마무리되면 금방 갈게.”“대체 뭐 하러 간 거야? 공부하러 간 건 아닐 거 아냐.”“나... 할머니 할아버지 뵈러 왔지. 삼촌도 보고.”“그래서? 만났어?”“최군성! 한마디라도 더 한다면 강주에 가자마자 너부터 없애버
회의실은 단숨에 고요 속에 잠겼다. 강렬한 존재감의 인물이 문턱을 넘어서자, 방 안은 서늘하면서도 압도적인 기운으로 가득 찼다.원장은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단숨에 그의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툭 치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왜 이제야 온 거야?”임지강의 눈가에는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그러나 그의 시선이 허운주에게 닿는 순간, 그 미소는 천천히 사라지고 대신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이 자리 잡았다.“으흠!”원장은 자세를 가다듬으며 목소리를 높였다.“오늘 이 자리에서는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것뿐만 아니라 매우 중요한 소식을 전하려고 합니다.”원장은 한 장의 서류를 꺼내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유치원의 공식 도장과 함께 임지강의 힘찬 서명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임 대표님께서 우리 유치원에 10억을 투자해 주셨고 국제 유치원의 최대 주주가 되셨습니다. 유아 교육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초심을 잃지 않고 임 대표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내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송윤지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얼굴에 붉은 기운이 번지자 뜨거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입가에 번진 미소는 감추기 어려웠다.임지강은 잔잔한 미소를 띤 채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제가 이 유치원의 주주가 된 이상, 앞으로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 국제 유치원의 이익을 위해서일 것입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허운주를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래서 오늘, 교사 팀을 정비하려고 합니다.”허운주는 본능적으로 두 걸음 물러나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이곳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임지강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자신의 가치관조차 바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아이들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겠습니까?”허운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가요?”“여기 있는 사람 중
원장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졌다.“허 선생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오늘 표 집계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투명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조작이라니, 그 말은 제가 개입했다는 뜻인가요?”“원장님, 제가 어떻게 감히 원장님을 의심하겠습니까?”허운주는 억지 미소를 띠며 비꼬듯 말했다.“하지만 표 차이가 이렇게 크게 나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설령 원장님께서 관여하지 않으셨더라도, 누군가 뒤에서 무슨 일을 꾸몄을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겠습니까?”“허 선생님...”원장은 화나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 막무가내인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익숙하지 않았다.“허 선생님, 하신 말씀에 대해 책임지셔야 합니다.”송윤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윤지는 허운주를 담담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저는 단 한 번도 허 선생님께 폐를 끼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우수 교사 선발 역시 모든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정말 무슨 일을 꾸몄다면, 이렇게 공개적으로 표를 집계했겠습니까?”허운주는 송윤지를 노려보며 속으로 분노를 억눌렀다.평소 조용하고 소극적인 송윤지를 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의 송윤지는 논리 정연한 주장으로 상대의 도발에도 굴하지 않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송윤지를 새롭게 보게 되었고 문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임지강의 입가에는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임지강은 회의실 밖에서 모든 상황을 눈여겨보고 있었다.특히 송윤지의 표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임지강은 마치 자신이 상을 받은 것처럼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곁에 있던 부하 직원조차 그의 변화를 놀라워하며 말했다.“송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전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었다. 송윤지는 변하지 않았다. 그저 예전에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너무 조심스러워 본래의 자신을 숨겼을 뿐이었다.“임 대표님, 허 선생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지난번에 내가 해외 시장을 축소하라고 했지만, 당신 아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임수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결국 문제는 그 여자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거야... 그 여자는 현진이를 부추겨 또 다른 일을 꾸밀 거고 현진이는 분명히 그 여자의 말을 들을 거야.”“그러니까 그들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임수정은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윤아야, 네가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회사들을 꽉 잡고 있어야 해! 너 혼자 힘들면 군성이랑 의논해도 되고 군형이나 소유의 도움을 받아도 돼. 네가 동의하지 않는 한, 네 오빠는 너한테서 단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어. 이해했지?”“윤아야.”임수정은 딸의 손을 꼭 잡았다.“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이 모든 재산은 우리 조상들이 쌓아온 거야. 절대 우리 세대에서 무너져선 안 된다!”“네, 저 이해했어요.”배윤아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말했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가 하루빨리 제정신을 차려서 우리가 예전처럼 가족으로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임수정은 힘없이 눈을 감았다. 기침하며 숨을 고르는 임수정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했다.그러나 그 순간, 문밖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소피아가 복도 모퉁이에 숨어 임수정의 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벽을 짚고 있던 소피아는 주먹을 꽉 쥐었고 마치 벽을 뚫을 듯 힘을 주고 있었다.방 안에서 나눈 대화는 모두 소피아의 귀에 생생히 들렸다.오늘 소피아가 임수정을 찾아온 건, 회사 본사에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려는 목적이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은행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지금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재산 전부가 이 어린 소녀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여보세요, 소피아!”그때, 배현진이 전화를 걸어왔다.“지금 엄마 집에 있어? 나 일이 아직 안 끝나서 조금 있다가 가려고. 엄마한테 전해줘.”“그럴 필요 없어.”소피아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임수정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배경원은 막 씻은 딸기를 가져왔다.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딸기의 끝부분을 잘라 임수정의 입에 넣어주었다.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두 사람의 애정과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여전히 처음과 같았다. 그들의 관계는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배윤아는 방으로 들어오기 전에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엄마를 위해 영양제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새로 그린 그림도 품에 안고 있었다.“엄마, 아빠, 저랑 군성이가 이번에 현실적인 내용을 담은 만화를 하나 출간하려고 해요. 내용은 한 부부가 젊었을 때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다룬 거예요... 사실 주인공 부부가 바로 엄마, 아빠예요! 보세요, 이렇게 그렸는데 괜찮죠?”임수정과 배경원은 딸이 그린 그림을 보며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했다.부부는 원래 대부분의 기대를 아들에게 걸고 있었다. 이는 남녀 차별 때문이 아니라 배윤아의 성격이 어릴 적부터 세상일에 무심하고 경쟁을 피하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문의 계승자로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딸이 오히려 아들보다 더 믿음직스럽다.“윤아야.”임수정은 딸의 손을 잡으며 눈빛에 깊은 의미를 담아 말했다.“엄마가 너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게 있어.”“뭔데요?”배윤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임수정은 베개 밑에서 갈색 서류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는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핵심 자료들이 들어 있었다.“이것뿐만 아니라, 본사의 도장도 있어.”배경원은 도장까지 꺼내 배윤아에게 건넸다. 배윤아는 깜짝 놀라 귀중한 물건들을 손에 들고 어찌할 줄 몰라 하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아빠, 엄마, 이건 도대체...”“우리도 이제 나이가 들었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아. 요양원에 머무는 동안은 회사로 돌아가 직접 관리할 수도 없을 거야.”배경원은 평소 장난스러웠던 모습을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배윤아를 바라보았다.“윤아야, 엄마, 아빠는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맡기기로 했다. 네가 책임을 져야 해.”배윤아의
배현진은 업무 능력이 뛰어났지만, 인간관계나 처세술은 부족했다.예를 들어, 송윤지가 그의 약혼녀였던 시절에도, 배현진은 한 번도 진심으로 송윤지를 존중한 적이 없었다.송윤지와의 결혼을 결정한 이유도 그녀의 친정에 배경이 없어서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나중에 자신이 바람을 피우더라도, 송윤지가 아무런 반발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그렇다면 배현진은 전형적인 고지능, 저감성의 사례일까?사람들은 흔히 아이들의 첫 번째 선생님이 그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배현진의 첫 선생님은 그저 성적을 잘 받는 법만 가르쳤을 뿐, 학업과 일 외에도 중요한 삶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이 생각이 하자, 송윤지는 갑자기 모든 게 명확해졌다. 송윤지는 배현진을 떠올리며 안타까움을 느꼈고 어딘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송윤지의 미소는 허운주의 눈에 더 거슬리게 보였다.“뭐 하는 거죠?”허운주는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뭐가 그렇게 웃긴 데요?”“아무것도 아닙니다.”송윤지는 미소를 거두고 냉정한 눈빛으로 말했다.“다만 허 선생님의 교육 철학은 이제 바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더 많은 아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말이에요.”“뭐라고요?”“저는 아이들과 놀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송윤지는 차분히 말했다.“저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세상을 느끼고 책에만 얽매이지 않도록 돕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저 아이들이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가지길 바랐습니다. 결국, 아이들의 성장 시기는 단 한 번뿐이니까요. 제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건, 인생은 멋진 여정이고 그것을 온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성적에만 집착한다면, 아이들의 앞길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허운주는 숨을 헐떡이며 입술을 떨었다.허운주는 20년 넘게 이 일을 해온 베테랑 교사로 수많은 명문가의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런 허운주가 이제 한 젊은 교사에게 권위를 도전받고 있었다.자존심이 상해서 도저히 견
송윤지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날 선 목소리가 송윤지의 귓가를 스쳤다.“우수 교사라니? 참, 그런 상 따위는 다 가짜야. 아무 의미도 없는걸.”잠시 걸음을 멈춘 송윤지는 그 말에 반응하지 않고 곧장 자신의 책상으로 걸어갔다.허운주의 자리는 송윤지의 자리와 가까웠다. 송윤지는 허운주의 눈빛에서 질투와 증오가 서린 눈길을 느꼈다.며칠 전, 원장이 송윤지를 오성시 우수 교사 후보로 추천하겠다고 발표한 이후로 허운주는 완전히 송윤지를 적대하기 시작했다.겉으로는 그런 상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원장을 찾아가 분노를 터뜨렸다.“송윤지는 경력도 짧고 교직 생활을 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왜 우수 교사 후보로 추천되는 겁니까? 저는 이렇게 오랫동안 가르쳤는데, 이번에는 제 차례여야 하지 않나요?”그날, 원장실 밖에서는 여러 교사가 웅성거리며 허운주의 불만을 엿들었다.이후로 사무실의 분위기는 눈에 띄게 바뀌었다.건강을 회복하고 복귀한 송윤지는 동료들의 태도가 예전과는 전혀 달라졌음을 느꼈다.과거에는 송윤지가 배씨 가문의 도련님과 약혼한 사실만으로도 모두가 존중하고 떠받들었다. 하지만 이제 송윤지는 배씨 가문의 도련님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있었고 아이가 있는 이혼녀와의 경쟁에서도 패배했다는 소문까지 퍼지며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를 받게 되었다.이런 변화가 언젠가는 찾아올 거라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그리고 이렇게 노골적인 태도로 찾아올 줄은 몰랐다.“그러게요, 정말 불공평한 것 같아요.”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허 선생님이 훨씬 자격이 있는데 경력도 없는 신입이 후보라니, 말이 안 되죠.”송윤지는 아무 말 없이 컴퓨터를 켜고 수업 준비를 시작했다.그때, 문 앞에 원장이 나타나 환한 미소를 지으며 휴대전화를 흔들었다.“송 선생님! 송 선생님! 보세요, 선생님께서 이미 최종 라운드에 진출했어요!”사무실 안은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송윤지도 당황한 듯 잠시 멈칫했다. 유독 허운주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원장은 가볍
배현진은 잠시 멍해졌다. 배현진의 입술이 떨렸다.1조?배현진이 운영하는 자회사는 지금 당장 천억의 유동 자금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1조가 필요하다면 반드시 본사에 지원을 요청해야 하고, 이는 이사회에서 논의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이사들은 모두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의 보수적인 사람들이었다. 이 금액을 승인해 줄 리가 없었다.“배 도련님?”조 회장은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듯 말했다.“배씨 가문의 대단한 도련님도 이런 돈 때문에 고민하시네요?”소피아는 급히 팔꿈치로 배현진을 찔러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 조 회장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럴 리가 있겠어요! 조 회장님께서 이미 최저 가격을 제시하셨으니 우리 현진 씨가 반드시 잘 처리할 겁니다.”“그렇습니까?”조 회장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제가 최저 가격을 제시한 건 제 진심의 표현인데 두 분의 진심은 아직 보이지 않네요.”“조 회장님...”소피아가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배현진이 그녀를 제지했다.배현진은 깊은숨을 내쉬며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하고 입을 열었다.“조 회장님, 저도 진심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제가 운영하는 자회사의 상황이 좋지 않아서... 1조는 저의 아버지를 놀라게 할 금액입니다. 그분이 아시면...”“아, 그게 걱정이었군요?”조 회장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배 도련님, 솔직히 이야기해 봅시다. 지금 그 돈이 없으신 거죠?”배현진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이 일을 아버님께 들키고 싶지 않은 거고요?”“네.”“그렇다면 간단합니다!”조 회장은 담배를 입에서 뗀 뒤, 부하가 건넨 명함을 내밀었다.배현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이게... 뭔가요?”“돈이 없으시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되죠.”조 회장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이 사람은 저와 친한 사이이고 은행에서 꽤 영향력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찾아가면 당신의 자금 문제를 해결해 줄 겁니다.”소피아는 크게 기뻐하며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하지만
임지강은 약간 실망했지만, 여전히 미소를 띠고 송윤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송윤지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임지강의 눈을 보는 순간, 송윤지는 심장이 마구 뛰는 기분이 들었다. 송윤지는 급히 고개를 숙여 밀크티를 마시며 마음속의 동요를 숨기려 했다.“임 대표님, 제 뜻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고마워할 필요 없어요.”임지강은 부드럽게 말했다.“윤지 씨를 좋아하는 건 제 마음이에요, 윤지 씨가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저도 부탁이 있어요...”“무슨 부탁이죠?”“그동안은 절 거절하지 마세요.”임지강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제가 윤지 씨에게 잘할 기회는 좀 줘야죠.”송윤지는 부끄러워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공기 중에 묘한 설렘이 감돌았다.하지만, 이 남자가 자꾸 송윤지의 꿈에 나타나는 건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임 대표님.”송윤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가... 예전에 만난 적 있나요?”임지강은 잠시 멈칫했다.송윤지는 머리를 긁적이며 약간 어색하게 말했다.“임 대표님이 참 익숙하게 느껴져요... 사실 저는 예전에 큰 병을 앓은 적이 있는데 병이 나은 후로 모든 걸 잊어버렸거든요. 만약 임 대표님이 저를 알고 있었다면, 솔직히 말해 주세요. 우리 가족은 왜 그러는지 제 과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임지강은 마음이 조여드는 듯했다.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렸다오랜 침묵 이후, 임지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는 모르는 사이에요.”송윤지는 멍하니 임지강을 바라보았다.“윤지 씨가 저를 익숙하게 느끼는 건, 아마 사람들 사이의 특별한 인연 때문일 거예요.”임지강은 가볍게 쉰 목소리로 말했다.“가족이 과거를 말하지 않는 건, 정말로 특별히 말할 게 없어서일 수도 있어요.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다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렇죠?”“윤지 씨.”임지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윤지 씨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요. 제가
“하지만...”배현진은 잠시 망설였다. 소피아가 말한 두 광산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고 조건도 매우 훌륭했다. 소문에 따르면 가격도 상당히 매력적이었다.하지만 배현진은 벤처 투자의 세계에서 오랜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있었다. 매력적인 가격 뒤에는 언제나 큰 함정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자기야, 당신 나 못 믿는 거야?”소피아는 배현진의 팔을 흔들며 물었다.“미국에 있을 때 내가 당신 일을 얼마나 많이 도왔는지 알잖아. 내 능력, 못 믿어?”“그럴 리가.”배현진은 소피아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소피아는 그가 가장 신뢰하는 조력자였고 배현진이 소피아에게 매료된 것도 그녀의 업무 능력 때문이었다.“그냥... 이번 일은 금액이 너무 크기도 하고, 게다가 조 회장이라는 사람과는 거의 모르는 사이잖아.”“한 번 보면 모르는 사람이지만 두 번 보면 아는 사이가 되는 거지!”소피아는 눈을 반짝이며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이번에 우리가 큰 돈을 벌게 되면, 당신 부모님도 우릴 좋게 생각해 주실 거야.”배현진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소피아는 배현진의 옆에 더 가까이 다가가 그의 셔츠 단추를 장난스럽게 만지작거리며 말했다.“현진 씨, 당신은 나와 평생 함께하고 싶지 않아? 우리가 성과를 내야 당신 부모님도 우리를 인정하실 거고 우리에 대한 반대도 사라질 거야. 난 진심으로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서 이렇게 노력하는 거야. 당신 부모님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배현진의 마음이 움직였다. 배현진은 소피아를 안고는 부드럽게 소피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그는 소피아와 영원히 함께하고 싶었다. 소피아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의 마음은 그녀에게 있었다.소피아가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은 물론, 직장에서 보여주는 강단 있고 당당한 모습이 배현진을 매료시켰다. 그것은 송윤지가 가지고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배현진은 송윤지처럼 순진하고 조용한 ‘작은 토끼’ 같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배현진은 도전적인 여자를 좋아했고 소피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