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군형은 집에 며칠 있나 싶더니 급히 강주로 돌아갔다. 돌아가자마자 그는 보물을 바치는 것처럼 그 팔찌를 강소아에게 전해주었다.“이건 뭐예요?”강소아가 놀라운 목소리로 물었다.최군형은 가기 전 장난치는 듯한 어투로 오성에서 선물을 사 오겠다고 했다. 설사 그게 열쇠고리 하나일지라도 사 왔다는 것 자체로 의미 있다고 했다.그런데, 이렇게 귀한 팔찌를 사 올 줄은 몰랐다... 이 팔찌는 정교한 공예로 만들어졌다. 액세서리에 대해서 잘 모르는 강소아조차도 고가의 팔찌라는 걸 쉽게 보아낼 수 있었다.강소아가 주저하는데 최군형이 작게 웃고는 팔찌를 그녀의 팔에 끼워주었다.“우리 집 대대로 내려오는 거예요. 엄마가 그러는데, 며느리에게 주겠대요!”“정말요?”“네! 며느리 보고 싶어서 난리예요.”“그게 아니라요!”“네?”“앞의 말이요... 당신 집 대대로 내려오는 거예요?”최군형이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그 정도로 귀한 건 아닌데... 안 비싼 거예요, 마음껏 껴요! 이걸 가져온 건, 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예요.”“어떤 마음이요?”강소아는 알면서도 물었다. 입을 열자마자 얼굴이 빨개졌다.최군형은 이 틈을 타 강소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그는 드디어 당당하게 그녀의 방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모든 게 완벽했다. 강소준은 학원에 갔고, 강소아의 부모는 가게에 있었기에 집에는 그들 둘뿐이었다.최군형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그녀의 체취를 맡았다. 마음이 간질거렸다. 그는 약간의 웃음기를 띠고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소아 씨... 이게 뭘 의미하는지 정말 모르는 거예요?”“몰라요, 저한테 설명해 줘요!”“네, 좋아요.”최군형은 짓궂게 웃으며 허리를 숙여 입을 맞추려 했다. 한 번 입 맞춘 뒤로 그는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강소아가 뭐라 하든, 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에는 다른 방법을 쓰고 싶지 않았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강소아의 손이 그의 가슴을 약하게 밀쳤다. 최군형은 그녀의 손목을
하수영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건 강소아와 친해진 후로 그녀가 처음 거절한 일이었다.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최군형의 눈에는 놀라움과 기쁨이 가득 찼다. 당연히 하수영이 먼저라 하수영에게 팔찌를 끼워줄 줄 알았다. 강소아의 대답은 그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그의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하수영이 작게 웃었다. 두 사람이 일심동체가 된 모습을 보고 있는 그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귀한 물건인 거 알아. 내가 가지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 그럼... 그럼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가자, 그건 되지?”하수영이 기대 어린 눈빛으로 강소아를 바라보았다. 강소아는 마음이 약했다. 이렇게 불쌍한 척하고 있으면 강소아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었다.게다가 그저 팔찌 하나일 뿐인데, 사진 찍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하수영은 강렬한 직감에 사로잡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팔찌는 분명 일반 팔찌가 아니었다.‘육 선생님이 이걸 알아야 하는데...’하수영은 작게 웃으며 강소아의 팔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강소아는 미소를 지으며 옆으로 피하더니 팔찌를 빼 최군형에게 쥐어주었다.“군형 씨, 이렇게 귀한 건 넣어두는 게 좋겠어요. 이러다 망가뜨리면 큰일 나요.”최군형은 어리둥절하게 있다가는 이내 웃음을 지으며 계단을 올라갔다.하수영이 놀란 듯 입을 열었다.“소아야, 너...”최군형이 방에 들어간 뒤에야 강소아는 머쓱하게 웃으며 하수영의 팔을 잡아끌었다.“미안해!”하수영은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뿌리쳤다.“수영아! 그거... 군형 씨가 준 거라서 다른 사람이 끼는 것도, 사진 찍는 것도 싫어. 이해해 줘.”“사랑 얻은 지 얼마나 됐다고 우정을 잃은 거야? 팔찌 하나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그래! 나도 남친 생기면 한가득 사달라고 할 거야!”“응! 군형 씨 말 들어보니 그 팔찌 별로 비싼 것도 아니래. 지금도 충분히 살 수 있어!”강소아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하수영에게 미안했기에 듣기 좋은 말만 골라 하는 것이었다
여자들 사이의 기 싸움은 최군형에게는 작은 일이었다. 전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었다.하지만 강소아에게는 달랐다. 그는 차분하게 앉아 강소아의 말을 듣고 싶었고, 상황을 완벽하게 분석해 주고 싶었고, 어떤 문제든 해결해 주고 싶었다.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일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당사자가 중요한 것이다.강소아가 인상을 쓰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최근에요. 그 애 집이 부자가 되고 나서부터 저랑 점점 멀어지는 느낌... 군형 씨, 수영이도 돈에 눈이 먼 사람일까요? 전에는 이런 적 없었는데요.”최군형이 입꼬리를 올렸다.‘바보 같은 사람.’돈을 좋아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었다. 돈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상한 사람은 얼마 없었다.소정애도 강소아에게 하수영과 함께 놀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지만 장모님의 눈은 틀릴 수 없었다.“됐어요.”최군형은 한참을 생각한 후 세 음절을 토해냈다.“소아 씨, 진정한 친구는 이렇게 멀어지지 않을 거예요. 하수영 씨와 점점 멀어진다면, 두 사람의 결이 안 맞다는 거예요. 신경 쓰지 마요.”강소아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정말 이런 일이 닥치고 보니 실망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최군형은 강소아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고는 웃으며 말했다.“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죠. 그리고... 그렇게 맹목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마요.”“네?”“모든 친구에게 다 진심을 드러낼 필요는 없잖아요. 한 사람을 완전히 알기 전까지는 그렇게 마음을 다하지 마요.”최군형이 강소아의 눈을 쳐다보며 정중하게 말했다. 강소아가 귀엽게 고개를 갸웃했다.“그래요? 그럼 당신은요? 우리도 언젠가는 헤어질 텐데, 그럼 당신한테도 진심을 내보이면 안 돼요.”“저는 다르죠.”최군형이 그녀에게 다가가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저흰 안 헤어져요.”“군형 씨...”“그리고, 저한텐 마음뿐만 아니라 당신의 모든 걸 다 줘도 돼요!”최군형이 강소아를 와락
최군형의 귀가 윙 하고 울리더니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흥분하는 마음을 최대한 감추려고 했지만 입꼬리는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그가 여기 있어서?최군형이 활짝 웃었다. 그의 눈은 온 세상을 가진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웃지 마요!”강소아는 부끄러운 듯 도망가려 했지만 금세 최군형에게 잡혀 그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너무 기뻐서요. 바보, 어차피 2주인데요.”“2주... 너무 길어요.”강소아가 그의 가슴에 기댔다. 그녀는 최군형에게 점점 더 의지하고 있었다. 2주가 아니라 하루만 보이지 않아도 신경 쓰였다.“소아 씨, 어렵게 온 기회잖아요.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최군형이 강소아의 얼굴을 감싸고 진지하게 말했다. 강소아가 자신에게 기대는 것은 물론 좋았지만, 그로 인해 자아를 잃는 건 싫었다.“건축과 학생 모두가 남양의 건축을 배워야 하는 거라면,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아요.”“내가 떠나도 괜찮다는 거예요?”“안 괜찮아요, 하지만 소아 씨가 저를 위해 자기 자신을 잃는 게 더 안 괜찮아요. 소아 씨, 언제나 자신만의 세계가 있어야 해요. 좋아하는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완전한 인생이에요.”이건...강소아는 조금 멍해졌다. 어릴 적부터 보호받으며 잘 큰 탓일까, 강우재 부부의 가방끈이 짧은 탓일까. 그들은 절대로 강소아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이 한 건 그녀를 이 귀족 학교에 보내 ‘시야를 넓히는’것뿐이었다. 정확히 어떤 시야가 넓어지는지는 그들 자신도 몰랐다.하지만 최군형이 말하니 금세 알 것만 같았다.그녀가 봐야 하는 건 독립적인 여성의 자신감이었다. 세상에 맞서 싸우는 대담함과 침착함이었다.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었다.강소아는 최군형을 보며 생긋 웃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최군형의 얼굴을 쭉 늘이고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군형 씨 말이 맞아요! 누구한테 배운 거예요? 감옥 교도관이 이런 것도 가르쳐요?”최군형이 흠칫하고는 머쓱하게 웃었다.교도
“하, 봤지?” 남자가 갑자기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하수영은 깜짝 놀라며 등 뒤가 써늘해졌다. “정말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면 죽음뿐이야! 하수영, 너는 왜 그렇게 운이 없니? 남의 양부모가 너의 친부모보다 더 딸을 사랑해!”“너는 학교에서 재벌 2세를 낚으려고 온갖 노력을 했지만 결과는 어땠어?”남자는 불난 집에 부채질 하듯 말했다.“남들은 거기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최씨 가문 큰 도련님이 달려와서 챙기잖아.”“그만해!”남자의 한 마디 한 마디가 하수영의 민감하고 연약한 신경을 건드렸다.하수영은 번쩍 고개를 들어 그를 노려보았지만 결국 두려워서 천천히 물러나며 어깨를 떨며 한과 분노를 억누르려 애썼다.남자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어깨를 다시 한 번 두드리고 휘파람을 불며 멀리 갔다.그는 이미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보아하니 육선생이 말한 것이 맞다, 하수영처럼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사람은 그들의 가장 유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오성.육연우는 겨우 모든 경호원들을 따돌리고 병원으로 달려갔다.지난번의 교훈을 얻어, 이번에는 큰길로 병원에 들어가지 않고 작은 길을 택했다.평소의 옷차림도 하지 않고 오늘은 큰 상의와 청바지를 입고 넓은 챙 모자로 작은 얼굴을 가렸다.혹시나 해서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비상계단을 통해 18층까지 올라가 입원부 복도 끝에 있는 병실에 도착하자 그녀의 팽팽하게 긴장된 신경이 조금이나마 풀렸다.“엄마, 저 왔어요.” 육연우가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병상에 누운 여인은 창백하고 연약했으며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그녀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오직 그 차가운 관들뿐인 듯했다.“엄마...”육연우는 다가가서 면봉에 물을 묻혀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두 번 발랐다.여인은 눈꺼풀을 움직였지만 눈을 뜨지는 않았다.육연우는 한숨을 쉬었다, 엄마의 현재 상태는 하루의 대부분을 혼수상태로 보내고 깨어 있을 때도 그녀를 조용히 바라볼 뿐, 두어 마디 말도 못하고 계속 기침만 했다.“엄마.” 그녀는 엄
최군형은 저쪽에서 사진을 보며 웃고 있었다.이 풍경들은 그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었고 그녀가 타고 있는 버스가 지나가는 경로를 보니 다음 목적지는 윤상 빌라일 것 같았다.그녀는 자신이 한때 모사했던 쌍날개 반딧불 그림의 작가가 바로 그 빌라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강소아는 매우 흥분한 상태였고 그녀 옆에 앉아 있던 박나연이 다가와서 사진을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남편에게 보내는 거야?”강소아는 얼굴이 약간 붉어지며 부끄러운 듯 웃었다.박나연은 고개를 들어 짐칸을 바라보았다.다른 학생들은 두세 개의 큰 여행가방을 가지고 왔고 어떤 사람들은 집 전체를 다 옮겨올 듯 한 짐을 부치기도 했다.하지만 강소아만은 작은 기내용 가방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한 듯했다.박나연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짐 다 챙겼어?”“아마도... 다 챙겼을 거야!”“아마도?” 박나연은 놀라며 친절하게 말했다. “소아야, 우리 여기서 한 달이나 지낼 거야! 이곳의 생활 방식은 우리와 다르니까 만약 네가 필요한 걸 빠뜨렸다면 현지에서 사기가 쉽지 않을 거야.”“사실 나도 뭘 챙겼는지 잘 몰라.” 강소아는 웃었다. “내 남편이 내 짐을 싸줬거든, 그가 말하길 이 정도면 충분하대, 가볍게 다니래!”“너...,” 박나연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정말 남편 말을 잘 듣는구나.”“그가 내 남편인데 왜 말을 안 듣겠어!”“그가 남양에 와본 적 있어?” 박나연은 강소아가 너무 순진해 보여 웃음이 나왔다. “네가 이렇게 마음 놓고 그가 짐을 싸게 했단 말이야!”이 질문에 강소아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래, 최군형이 어떻게 남양에 와본 적이 있을까?하지만 그가 짐을 싸줄 때, 최군형은 굉장히 확신에 찬 어조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했다.강소아도 자연스럽게 남편의 말은 항상 옳다고 믿었다.게다가 그녀는 한 번도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어서 뭘 챙겨야 할지 몰랐기에 누군가가 짐을 싸준다면 편하기만 했다.그러나 박나연의 말을 듣고 보니 자신이 좀 경솔했다는
버스 안은 엄청나게 조용해졌고 엔진 소리만이 들렸다.모두가 한리가 강소아를 비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강소아는 침묵을 지켰고 손으로 옷자락을 꽉 쥐었다가 천천히 풀었다.사실 그녀는 약한 것이 아니었고 반박할 수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출발하기 전에 최군형이 그녀에게 당부했다, 밖에서는 일 더 만들지 말고 참을 수 있는 건 참아 넘겨라고 했다.“군자는 복수를 십 년 뒤에라도 한다잖아요.” 그때 최군형은 그녀에게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누가 널 괴롭히면 돌아와서 나한테 다 말해, 내가 꼭 복수해 줄게!”강소아는 그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다.그러나 지금 최군형이 앞에서 말한 것은 옳다고 생각했다.밖에 나와서는 일 더 만들지 말고 참는 게 낫다.그래서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창밖을 바라보며 못 들은 척했다.하지만 옆에 있던 박나연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 “한 선생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한리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라고?”박나연은 사실을 말했다. “모두 처음 남양에 왔으니 새로움을 느끼는 건 당연하잖아요. 게다가 사진을 찍는 게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 기쁜 일을 좋아하는 사람과 나누는 게 당연한 거죠.”“선생님, 좋아하는 사람이 없으셔서 그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거 아닌가요?”“너...”한리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화가 나서 박나연을 노려보았다.그녀는 나이가 적지 않았지만 젊었을 때 결혼 상대의 기준이 매우 높아서 결국 어느 연애도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도에 끝나고 말았다.개인적인 문제를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했기에 그녀를 싫어하는 학생들은 그녀 뒤에서 수많은 별명을 지어주곤 했다.한리의 약점을 건드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강소아는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박나연을 데리고 풍경을 보러 갔다.차 안의 다른 학생들도 잡담을 시작하며 이 어색한 분위기는 결
강소아는 잠시 멈칫했다. “보답?”“맞아요.” 최군형은 점점 더 의기양양해졌다. “내가 당신을 도와주는 걸 그냥 공짜로 하라고?”“뭐예요, 이제 나를 도와주는 것도 보답을 바라면서 하는 거예요?”최군형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화면 너머 그녀의 표정은 진지했다. “좋아요, 군형 씨, 원래 당신은 다 목적이 있었던 거군요! 예전에는 당신이 나를 도와줄 때 당신이 원해서 그런다고 항상 말했잖아요! 하, 남자의 말은 정말 믿을 수가 없구나...”“믿어요! 믿어요!” 호군위는 순간 당황했다. “내가 방금 장난으로 한 말이예요. 나는 당신 보답을 바라지 않아요!”강소아는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최군형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자신이 그녀에게 놀림을 당했다는 걸 깨닫고 그 순간 작은 고양이 발톱이 가슴을 할퀴는 듯 한 느낌이 다시 몸 전체로 퍼졌다.“그럼... 어떻게 나를 도와줄 건데요?”화면 속 작은 사슴 같은 눈은 장난기가 가득했다.그녀의 머리 위로는 별빛이 반짝였고 그녀 뒤로는 높은 야자나무가 서 있었다.남양의 저녁바람은 따뜻하고 습한 기운을 머금고 그녀의 긴 머리를 흩날렸다.최군형은 잠시 멍해져서 그녀의 말을 잊고 있었다.“빨리 말해요!” 최군형은 달콤하게 웃었다.그녀는 그가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았다.그곳은 황궁이다,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녀는 단지 그를 놀리고 그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최군형은 정신을 차리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들어봐요.”최군형은 고개를 들었다, 짙은 파란색 밤하늘은 마치 고급스러운 백조 천 같았고 별빛은 반짝이며 마치 화려한 보석들로 가득 찬 것 같았다.“어때요, 아름답죠?”그녀는 이렇게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본 적이 드물었고 자연의 장엄함에 무심코 빠져들었다. “네... 정말 아름다워요.”“내가 인터넷에서 봤는데, 남양의 별은 특별한 힘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최군형은 웃으며 말했다. “별을 보면서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대요.”“또 나를 속이네
병원 응급실 밖.배경원은 의자에 주저앉아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충혈된 눈으로 응급실 문을 응시하며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한때 당당했던 그의 어깨는 지금 축 처져 있었다. 뒷모습만으로도 절망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배경원은 주먹을 단단히 쥐었지만, 온몸은 떨리고 있었다.적막이 흐르는 복도는 불길한 정적마저 감돌았다.결국,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와 눈물이 조용히 뺨을 적셨다.“경원아!”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배경원이 고개를 들자, 최연준과 강서연이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질 뻔한 배경원을 최연준이 재빨리 부축했다.강서연은 응급실 문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치료는 연희 씨와 신석훈 씨의 제자들이 맡고 있어요. 모두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에요. 수정 씨는 평소 건강을 잘 관리하셨으니 금방 회복될 겁니다.”“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최연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갑자기 병세가 심각해진 거야? 그리고 윤아는...”배경원은 떨리는 손으로 최연준의 팔을 붙잡으며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셋째 형님, 제발 윤아를 찾아주세요. 딸은 사라지고 아내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둘 다 잃으면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그런 바보 같은 말 하지 마세요. 둘 다 무사할 겁니다.”강서연이 단호히 말했다.“윤아는 우리 집안의 며느리예요. 누가 윤아를 해치려 한다면 최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어요. 그 결과가 어떤 건지 모를 리도 없고요. 그리고...”강서연은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을 이어가려다 복도 끝에서 배현진이 소피아와 함께 급히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는 말을 삼키고 배현진을 노려보았다.“연준 아저씨, 서연 이모...”배현진은 어딘가 죄책감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배현진은 배경원에게 다가가 팔을 살며시 부축하며 조심스레 말했다.“아버지...”그 순간, 배경원이 배현진의 뺨을 내려쳤다.배경원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배현진을 노려보며
임수정은 갑작스러운 기침을 하며 침대 옆 경보 벨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소피아에 의해 단호히 막혔다.“사모님, 제 말을 듣는 게 좋으실 겁니다.”소피아는 부드럽지만 섬뜩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제가 만든 음식이 그렇게 형편없지도 않고 독을 넣을 만큼 제가 어리석지도 않아요. 안심하세요. 이 모든 재료는 사모님의 건강을 생각하며 준비한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진심으로 사모님을 돌보고 싶어서예요.”임수정은 가슴을 움켜쥔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임수정의 눈엔 불신과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요즘 배경원은 외출이 잦아졌고 이유를 묻자, 회사 일 때문이라며 안심하라는 대답뿐이었다.그럼에도 임수정의 마음속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깊게 숨을 들이마신 임수정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겉으론 소피아의 말을 따르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사모님, 잘 생각하셨어요.”소피아는 임수정에게 쿠션을 건네며 은은하게 웃었다.“우리 결국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될 사이잖아요. 지금부터 제 존재에 익숙해지시는 게 좋을 겁니다.”“흥! 내 아들이 눈이 먼 게 분명해.”임수정은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떻게 너 같은 사람에게 속을 수 있는지...”“저를 깔보지 마세요. 저는 이혼하고 아이도 데리고 있지만, 현진 씨를 향한 제 진심은 변하지 않아요. 저는 현진 씨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누구와는 달리 겉으론 순수한 척하면서 남자를 유혹하는 짓은 안 한다는 건 알아주셨으면 해요.”“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임수정은 언성을 높이며 노려보았다.소피아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더욱 날카롭게 말했다.“사모님, 제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사모님의 그 옛날 며느리가 될 뻔했던 그 사람이에요.”“헛소리하지 마!”임수정은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그 일은 우리 배씨 가문이 송윤지에게 잘못한 일이야. 그 애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사모님,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 법이에요.”소피아는 태연한
“너와 상관없다고?”임우정은 다급하게 외쳤다.“네 형부가 이미 윤아의 통화 기록을 조사했어. 윤아가 실종되기 전에 조 회장이랑 통화했던 게 드러났다고! 지강아, 너와 조 회장이 어떤 관계인지 나한테도 숨길 작정이었어?”임지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건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그래요. 저와 조 회장이 가까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와 배윤아 사이엔 원한이라곤 없잖아요... 누나, 왜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지강아!”임우정의 목소리가 더욱 절박해졌다.“너, 송윤지 일 때문에 배현진을 미워하는 건 알아.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윤아한테까지 증오를 전가하면 안 되잖아!”“누나, 정신 좀 차리세요!”임지강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어둠이 깃든 그의 얼굴은 단호함을 더했다.“무슨 근거로 저를 의심하시는 건데요?”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임지강의 강경한 태도에 임우정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한참 후, 임우정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렇다면... 배씨 가문을 좀 도와줄 순 없겠니?”임지강은 코웃음을 치며 전화를 끊었다.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리자 맑고 투명한 송윤지의 눈빛과 마주쳤다.“배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요양원 병실 문 앞.소피아의 하이힐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리며 퍼져 나갔다. 소피아의 손엔 보온 도시락이 들려 있었고 문 앞을 지키는 경호원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제가 사모님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경호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이건 도련님께서 지시하신 거예요.”소피아는 휴대전화를 꺼내 그들에게 일부러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실래요? 아시다시피 사모님 건강이 좋지 않으세요. 세 끼 제대로 챙겨 드시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책임지실 겁니까?”경호원들은 난처한 얼굴로 머뭇거리다 결국 길을 내주었다.“이제야 말이 통하네.”소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앞으로
송윤지는 겨우 한 모금을 마시고 사레가 들어 술을 뱉을 뻔했다. 마신 술이 얼굴에 스며든 듯 송윤지의 뽀얀 볼은 어느새 매혹적인 와인빛으로 물들었다.임지강은 그런 송윤지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강은 송윤지에게 다가가 가볍게 등을 두드리며 입가에 묻은 술자국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임 대표님...”송윤지는 조심스럽게 임지강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하지만 임지강은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아 통유리창 앞까지 데려갔다.송윤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 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깊고 짙은 밤하늘에 수많은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잘게 부서진 불빛들이 반짝거렸다.불꽃은 색과 모양을 끊임없이 바꾸며 꿈같은 광경을 만들어냈다.송윤지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마음에 들어요?”임지강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송윤지의 귀에 스며들었다.“잠깐 눈 좀 감아 봐요.”“네?”임지강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제가 별을 따다 줄게요.”마지막 불꽃이 빛의 궤적을 남기며 밤하늘로 사라지고 다시 평온한 고요가 찾아왔다.송윤지는 미소를 지으며 임지강의 말을 따라 눈을 감았다. 그러자 따뜻하면서도 약간 서늘한 남자의 손길이 송윤지의 손을 잡더니 손바닥 위에 무언가가 놓이는 느낌이 들었다.송윤지는 깜짝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손에는 정말로 ‘별’이 있었다.“이건...”그것은 목걸이였다. 펜던트는 별 모양으로 깎아낸 다이아몬드로, 완벽하게 다듬어져 찬란한 빛이 퍼지고 있었다.“제가 해줄게요.”임지강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이건 너무 비싼 거라서 제가...”“받아줘요.”임지강의 눈빛은 따스하고도 단호했다.“그리고...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송윤지는 고개를 숙였다. 귀 끝까지 붉어진 송윤지의 얼굴은 마치 열이 오른 듯했다.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의 귓가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짝 정리해 주었다.“사실,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 윤지 씨 좋아
소피아는 약속한 시간에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창가에 앉아 있는 낚시 모자를 쓴 중년 여성을 발견했다.소피아는 조용히 걸어가 밝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 혹시... 허운주 선생님이신가요?”허운주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초췌한 기색이 역력했다.소피아는 직원에게 뜨거운 우유 한 잔을 주문하고 허운주 앞에 놓인 진한 커피를 치우며 부드럽게 말했다.“허 선생님, 이 나이에 이렇게 진한 커피는 드시면 안 돼요. 건강을 꼭 챙기셔야죠.”“고맙습니다...”허운주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절 찾아오신 이유가 뭘까요?”허운주는 천천히 눈을 들어 소피아를 바라봤다.소문에 따르면, 소피아는 현재 배현진의 연인이며 이혼 후에 아이를 키우면서도 배현진의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사람이었다.허운주는 소피아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직감했고 소피아가 도움을 준다면 송윤지 같은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쉬운 일이라고 확신했다.“제가...”허운주는 입술을 핥으며 머뭇거렸다.“어떻게 말씀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네요.”소피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곧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허 선생님은 현진 씨의 선생님이시잖아요. 그 특별한 인연은 현진 씨도 평생 기억할 거고 저 또한 마찬가지예요. 저희는 모두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어요. 그러니 무슨 일이든 편하게 말씀하세요.”“저는 국제 유치원에서 어쩔 수 없이 사직하게 됐어요.”허운주는 이마를 짚으며 미간을 깊이 찡그렸다.소피아는 놀란 듯했지만, 최근 일어난 상황을 대략 알고는 있었다. 우수 교사 선발에서 허운주가 송윤지에게 패했다는 소식은 소피아에게도 전해졌다. 자존심 강한 허운주로서는 그 일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소피라는 눈을 굴리며 허운주를 어떻게 이용할지 계획하고 있었다.“허 선생님,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소피아는 부드럽게 허운주의 손등을 토닥이며 말했다.“저를 딸이라고 생각하시고 속상한 일 있으면 다 털어놓으세요. 제가 도울 수 있
회의실은 단숨에 고요 속에 잠겼다. 강렬한 존재감의 인물이 문턱을 넘어서자, 방 안은 서늘하면서도 압도적인 기운으로 가득 찼다.원장은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단숨에 그의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툭 치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왜 이제야 온 거야?”임지강의 눈가에는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그러나 그의 시선이 허운주에게 닿는 순간, 그 미소는 천천히 사라지고 대신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이 자리 잡았다.“으흠!”원장은 자세를 가다듬으며 목소리를 높였다.“오늘 이 자리에서는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것뿐만 아니라 매우 중요한 소식을 전하려고 합니다.”원장은 한 장의 서류를 꺼내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유치원의 공식 도장과 함께 임지강의 힘찬 서명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임 대표님께서 우리 유치원에 10억을 투자해 주셨고 국제 유치원의 최대 주주가 되셨습니다. 유아 교육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초심을 잃지 않고 임 대표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내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송윤지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얼굴에 붉은 기운이 번지자 뜨거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입가에 번진 미소는 감추기 어려웠다.임지강은 잔잔한 미소를 띤 채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제가 이 유치원의 주주가 된 이상, 앞으로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 국제 유치원의 이익을 위해서일 것입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허운주를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래서 오늘, 교사 팀을 정비하려고 합니다.”허운주는 본능적으로 두 걸음 물러나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이곳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임지강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자신의 가치관조차 바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아이들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겠습니까?”허운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가요?”“여기 있는 사람 중
원장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졌다.“허 선생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오늘 표 집계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투명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조작이라니, 그 말은 제가 개입했다는 뜻인가요?”“원장님, 제가 어떻게 감히 원장님을 의심하겠습니까?”허운주는 억지 미소를 띠며 비꼬듯 말했다.“하지만 표 차이가 이렇게 크게 나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설령 원장님께서 관여하지 않으셨더라도, 누군가 뒤에서 무슨 일을 꾸몄을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겠습니까?”“허 선생님...”원장은 화나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 막무가내인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익숙하지 않았다.“허 선생님, 하신 말씀에 대해 책임지셔야 합니다.”송윤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윤지는 허운주를 담담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저는 단 한 번도 허 선생님께 폐를 끼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우수 교사 선발 역시 모든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정말 무슨 일을 꾸몄다면, 이렇게 공개적으로 표를 집계했겠습니까?”허운주는 송윤지를 노려보며 속으로 분노를 억눌렀다.평소 조용하고 소극적인 송윤지를 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의 송윤지는 논리 정연한 주장으로 상대의 도발에도 굴하지 않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송윤지를 새롭게 보게 되었고 문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임지강의 입가에는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임지강은 회의실 밖에서 모든 상황을 눈여겨보고 있었다.특히 송윤지의 표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임지강은 마치 자신이 상을 받은 것처럼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곁에 있던 부하 직원조차 그의 변화를 놀라워하며 말했다.“송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전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었다. 송윤지는 변하지 않았다. 그저 예전에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너무 조심스러워 본래의 자신을 숨겼을 뿐이었다.“임 대표님, 허 선생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지난번에 내가 해외 시장을 축소하라고 했지만, 당신 아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임수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결국 문제는 그 여자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거야... 그 여자는 현진이를 부추겨 또 다른 일을 꾸밀 거고 현진이는 분명히 그 여자의 말을 들을 거야.”“그러니까 그들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임수정은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윤아야, 네가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회사들을 꽉 잡고 있어야 해! 너 혼자 힘들면 군성이랑 의논해도 되고 군형이나 소유의 도움을 받아도 돼. 네가 동의하지 않는 한, 네 오빠는 너한테서 단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어. 이해했지?”“윤아야.”임수정은 딸의 손을 꼭 잡았다.“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이 모든 재산은 우리 조상들이 쌓아온 거야. 절대 우리 세대에서 무너져선 안 된다!”“네, 저 이해했어요.”배윤아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말했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가 하루빨리 제정신을 차려서 우리가 예전처럼 가족으로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임수정은 힘없이 눈을 감았다. 기침하며 숨을 고르는 임수정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했다.그러나 그 순간, 문밖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소피아가 복도 모퉁이에 숨어 임수정의 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벽을 짚고 있던 소피아는 주먹을 꽉 쥐었고 마치 벽을 뚫을 듯 힘을 주고 있었다.방 안에서 나눈 대화는 모두 소피아의 귀에 생생히 들렸다.오늘 소피아가 임수정을 찾아온 건, 회사 본사에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려는 목적이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은행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지금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재산 전부가 이 어린 소녀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여보세요, 소피아!”그때, 배현진이 전화를 걸어왔다.“지금 엄마 집에 있어? 나 일이 아직 안 끝나서 조금 있다가 가려고. 엄마한테 전해줘.”“그럴 필요 없어.”소피아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임수정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배경원은 막 씻은 딸기를 가져왔다.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딸기의 끝부분을 잘라 임수정의 입에 넣어주었다.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두 사람의 애정과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여전히 처음과 같았다. 그들의 관계는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배윤아는 방으로 들어오기 전에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엄마를 위해 영양제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새로 그린 그림도 품에 안고 있었다.“엄마, 아빠, 저랑 군성이가 이번에 현실적인 내용을 담은 만화를 하나 출간하려고 해요. 내용은 한 부부가 젊었을 때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다룬 거예요... 사실 주인공 부부가 바로 엄마, 아빠예요! 보세요, 이렇게 그렸는데 괜찮죠?”임수정과 배경원은 딸이 그린 그림을 보며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했다.부부는 원래 대부분의 기대를 아들에게 걸고 있었다. 이는 남녀 차별 때문이 아니라 배윤아의 성격이 어릴 적부터 세상일에 무심하고 경쟁을 피하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문의 계승자로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딸이 오히려 아들보다 더 믿음직스럽다.“윤아야.”임수정은 딸의 손을 잡으며 눈빛에 깊은 의미를 담아 말했다.“엄마가 너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게 있어.”“뭔데요?”배윤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임수정은 베개 밑에서 갈색 서류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는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핵심 자료들이 들어 있었다.“이것뿐만 아니라, 본사의 도장도 있어.”배경원은 도장까지 꺼내 배윤아에게 건넸다. 배윤아는 깜짝 놀라 귀중한 물건들을 손에 들고 어찌할 줄 몰라 하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아빠, 엄마, 이건 도대체...”“우리도 이제 나이가 들었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아. 요양원에 머무는 동안은 회사로 돌아가 직접 관리할 수도 없을 거야.”배경원은 평소 장난스러웠던 모습을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배윤아를 바라보았다.“윤아야, 엄마, 아빠는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맡기기로 했다. 네가 책임을 져야 해.”배윤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