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석진과 윤정재는 각자 한쪽에 앉아 조용했고 무슨 말을 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듯 한 모습을 보였다. 바로 그들 둘도 최군형의 “지시”를 받아 함께 황궁에 들어갔는데 여기서 또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세 명은 침묵하며 앉아 있었고 큰 전당 안에는 차를 끓이는 소리만 울렸다. 송혁준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물었다. “작은 백작님이 또 무슨 말을 했니?”충심껏 성의 있는 요섭이 웃으며 대답했다. “작은 백작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이 일이 성사되지 않는다면 그는 아버지께 영원히 남양에 오지 말라고 말씀하신다고 하셨습니다!”“콜콜콜......”송혁준은 한 모금 차를 마시더니 사레가 들릴 뻔했다. “이, 이놈!” 그는 화가 나면서도 웃었다가 그 두 사람을 보고는 무력한 표정을 지었다. 나석진은 웃음을 참느라 힘든 듯했고 윤정재는 서둘러 일어나 사과했다. “천하의 주인님,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작은 백작님은 아직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그래, 여전히 어린 아이야!” 나석진은 세상이 망해야만 하는 듯이 말했다. “그러니 천하의 주인님은 백작님을 절대 놓아서는 안 됩니다! 하하......”“너...” 나석진은 그를 노려보았다.나석진은 송혁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우리 집 군형은 진짜 높이 있어요!”송혁준은 다시 충격을 받아 웃는다. “누가 어린애 앞에서 헛소리를 했어?!”“아마도 아무도 못 할 것 같아요.” 나석진은 턱을 쓸며 말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모두 똑똑하니까요, 분명히 군형이 자신에게서 깨달은 거예요!”“......” 송혁준은 눈쌀을 찌푸렸다. “작은 백작님이 언제 결혼하셨나?”“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윤정재는 생각에 잠겼다.“하지만 한 번 그는 윤문희의 그림을 원했어요, 아마도 이 소녀와 관련이 있을 거예요!”“아직 정식으로 결혼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나석진이 분석하더니 말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연애만 해도 남편, 아내라고 부르잖아요! 하지만 보아하니 이 소녀가 우리 군형을 꽤 단단히 붙잡고
이때 모든 시선이 강소아에게 쏠렸다. 마치 바늘처럼 그녀를 찔러 아프게 했다. “왜요?” 그녀는 약간 화가 났다. 한리는 눈을 굴리며 그녀에게 설명할 가치도 없다는 듯 무시했다. 그러나 구자영이 다가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왜냐고? 너의 이 초라한 꼴 때문이지!”“강소아, 방으로 돌아가서 거울이나 한번 봐! 네가 입고 있는 것이 어떤지? 제발, 우리가 견학할 곳은 대황궁이야! 남양에서 가장 고귀한 곳이라고! 네 꼴을 하고 황궁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비웃지 않겠어?”“너......” 강소아의 손이 갑자기 꽉 쥐어져서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변했다. 구자영은 막 산 LV 가방을 흔들며 선글라스를 쓰고 입꼬리에 비웃음을 띄운 채 돌아섰다. “소아야.” 이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소아는 놀랐다, 여정 중 처음으로 하수영이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을 보았다. “수영아, 나......”“소아야, 나는 구자영의 말이 맞다고 생각해, 그리고 한 선생님의 걱정도 일리가 있어.”“뭐라고?” 강소아는 마치 발을 헛디딘 듯 한 느낌을 받으며 마음이 아팠다. “하수영, 너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거야?”“내가 널 어떻게 도와줘?” 하수영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너 이 꼴로 대황궁에 가면 정말 창피해! 우리 학교의 명성을 망치지 마!”강소아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오직 강렬한 무력감만 느꼈다. 그녀들 사이의 우정은 마치 지금의 하수영의 뒷모습처럼 점점 멀어지다가 결국 시야에서 사라졌다.이번 대황궁 방문 기회는 드문 것이었지만 한리가 정말 그녀를 못 가게 한다면 그녀는 할 말이 없었다. 만약 하수영이 나서서 그녀의 편에서 한 마디만 해주었다면 비록 가지 못하더라도 마음이 조금은 편했을 텐데... 강소아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억울함을 억누르고 침울한 상태로 위층 방으로 걸어갔다.“강소아.” 박나연이 그녀를 붙잡고 말했다, “내가 옷을 많이 가져왔는데 내가 한 벌 빌려줄까? 내 옷도 다 명품이
강소아는 이 모든 게 꿈만 같았다.꿈에는 황실의 차량 행렬, 황실의장, 그리고 천천히 가까워지는 장엄하고 고귀한 황궁이 있었다. 그녀는 모든 사람들이 애지중지 해주는 공주로 변한 듯했고 그녀를 모두 공손한 눈빛과 따뜻한 웃음으로 맞아주고 있었다. 그녀가 타고 있는 차는 공간이 넓었고 시트도 푹신했지만 왠지 바늘방석에 앉은 듯 불편했다. 강소아는 몰래 핸드폰을 꺼내 최군형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뭐 하고 있어요?”남양과 강주는 시차가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으며 시간을 보니 아마 최군형은 슈퍼마켓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나 지금 계산하고 있어요! 오늘 손님이 많은 편이에요.”“아...그러면 됐어요.”“잠깐만!”최군형은 재빨리 전화기를 꽉 잡은 채 무서운 눈빛으로 손님들을 쫓아낸 다음 다시 나지막이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그게...”강소아는 말끝을 흐렸다. “그냥 당신이랑 얘기하고 싶어서요. 지금 여기 모든 게 진실하지 않고 꿈만 같아요!”최군형은 잠깐 멈칫하다 이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마 그녀는 이미 국빈급 예우를 받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순간에, 아빠의 이 절친한 친구는 정말 믿을 만하네!“그럼 당신은 이 꿈이 마음에 들어요?”최군형이 물었다. 강소아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꿈은 마음에 드는 데 당신이 없어서 별로예요.”상품 코드를 스캔하고 있던 최군형은 갑자기 가슴이 떨려와 손에 힘이 들어갔고 손에 쥐고 있던 과자 포장이 하마터면 터질 뻔했다. 그 순간 꽃밭이 그의 눈앞에서 활짝 꽃망울을 터뜨린 것 같았다. 핸드폰 너머로 요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소아 학생, 다 왔어요!”강소아는 대답한 후 작은 목소리로 최군형에게 말했다. “군형 씨, 나 내려야 해요. 우리 이따 저녁에도 그 시간에 영상통화 하는 거 있지 마요!”“아...알았어요.”최군형은 아쉬운 듯 전화를 끊고 이미 어두워진 핸드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
학생들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고 의아한 눈으로 강소아를 바라보았다. “이건...너무 귀합니다!”강소아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내가 어떻게 이걸...”“하지만 황궁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긴 셔츠와 치마를 입고 팔다리를 가려야 해요. 이건 황실의 규정입니다!”“선생님, 그 평범한 걸로 찾아주시면 될 것 같아요.”강소아는 자신들의 학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쟤들과 같은 걸로...”“아.”요섭은 잠시 망설이다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둘러댔다. “저분들이 입고 있는 옷은 황실에서 귀빈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으로 일괄 제작됐습니다. 하지만 조금 늦게 오셨네요, 옷은 이미 다 나눠줘서 남는 옷이 없습니다. 이걸 입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강소아는 약간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요섭의 말대로 황궁에 들어가려면 그들의 규정을 따라야 했다. 그녀가 입고 있는 티셔츠와 청바지는 그녀가 생각해도 확실히 예의에 어긋나는 거였다. 강소아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시녀의 안내를 받아 순례하는 듯한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그 옷을 들고 옆 라커룸으로 들어갔다.나머지 사람들은 얼굴을 마주 보며 의심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요섭이 먼저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여러 학우들은 강주에서 먼 길을 왔기 때문에 우리 남양의 규정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대황궁은 금지 구역이라 아무나 참관할 수 없으며, 오늘 인원수와 명단이 맞지 않으면 폐하께서는 우리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고 탓하실 것입니다!”“그리고 차량 행렬을 보내 강소아 학생을 마중하는 것도 우리 황실의 손님 접대 방법이자 폐하의 호의입니다. 폐하께서 참관하시는 인원은 한 명도 빠트릴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학우들이 분분히 미소를 지었다. 이 설명은 오히려 그럴듯했기 때문이다.남양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이긴 하지만 열정적이고 손님을 환대하는 곳이어서 마침 황실의 아량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해된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몇몇 사람들은
“뭐...뭐라고요?!”한리는 눈을 크게 뜨고 그 자리에 굳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하지만 전...”“한 선생님!”요섭은 그녀에게 명단을 보여 주며 냉소를 지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명단에 선생님의 이름이 없네요!”“그럴 리가요!”“그건 모르겠습니다. 저는 단지 폐하의 요구에 따라 반드시 명단을 하나하나 대조해야만 사람들을 들여보낼 수 있습니다!”한리의 얼굴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쨍쨍한 햇빛 아래서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구자영 학생.”요섭은 그녀의 이름을 길게 부르며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학생의 이름도 명단에서 빠졌네요!’“네?”구자영은 놀래서 소리 질렀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 초대장 있어요. 저...”“죄송해요. 구자영 학생, 황실의 규정에 따라 초대장은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최종적으로 명단에 따라야 합니다.”“그게...”“하지만 제 생각엔 구자영 학생이 들어갔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을 거예요. 우리 남양의 황궁은 학생 같은 사람을 별로 반기지 않거든요.”구자영은 이를 악물고 그를 바라봤으며 두 눈에서 불꽃이 떨어지는 듯했다.하지만 주위에는 모두 호위대였으며 요섭도 지위가 높아서 그녀는 함부로 무례하게 굴지 못했다. 한참 후 그녀는 화를 억누르고 물었다. “왜죠?”“제가 방금 구자영 학생이 한 말을 똑똑히 들었거든요.”요섭은 소리를 조금 더 높였다. “우리 남양은 민풍이 순박한 곳이며, 폐하께서 줄곧 평등우호와 단합을 힘써 제창해 오셨습니다. 방금 구자영 학생의 방금 언행은 우리의 평등, 우애와 반하는 것 같은데요!”구자영은 온몸이 뻣뻣해져 옆에 있는 한리와 같이 태양 아래서 돌처럼 굳어졌다. 박나연은 강소아를 한 번 쳐다보고는 가만히 키득거리면서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속이 다 시원하네!”“응?”“그렇지 않아?”박나연은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말했다. “흥,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더니, 우리 조상님 말 하나도 틀린
모두가 들어가자 굳어있던 두 사람은 그제야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경우야! 여기까지 왔는데 들어가지 못한다니?”“이 낡은 황궁이 뭐가 그리 귀하다고. 와달라고 빌어도 이젠 안 와!”“이딴 곳을...내가 꼭 사진으로 찍어서...”황궁의 호위대는 즉시 두 사람을 에워쌌다. 호위대는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으며 손에 든 긴창은 햇빛 아래서 차가운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구자영은 순간 겁이나 입을 다물고 있었으며 한리는 그녀에게 연루될까 봐 서둘러 핸드폰을 호위대에 제출했다. 호위대는 구자영을 한 번 쓱 쳐다보고 바로 그녀의 핸드폰도 압수했다. 두 사람은 어떤 궁전도 들어갈 수 없었고 호위대에 둘러싸여 아무런 가림막도 없는 이 광장에서 천천히 군 고구마처럼 구워지고 있었다. 하수영도 얼굴이 굳은 채 서 있었다. 그녀는 남자가 한 말을 떠올렸다. “강소아 옆에 있는 남자가 누군지 알아?”“오성의 큰도련님 최군형이야, 지금은 오성에 없지.”“하, 양부모님도 예뻐하시고, 최씨 가문에 큰 도련님도 그녀를 아끼니 강소아의 팔자는 왜 그렇게 좋을까?”하수영의 손끝이 떨려왔다. 그녀는 오성의 최씨 가문과 남양의 윤씨 가문이 혼인을 약속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녀의 생각이 맞다면 오늘 이 모든 일은 최군형이 꾸민 일일 것이다.하수영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으며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그 남자 말이 맞아...’강소아를 하루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육명진에게도 시한 폭탁일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도 좋을 게 하나 없었다. “소아야, 날 탓하지 마.”하수영은 한글자씩 내뱉었다. “네가 먼저 날 건드린거야...네가 그렇게 만든 거라고!”*저녁 시간, 강소아는 호텔로 돌아와 약속한 시간에 맞춰 최군형과 영상통화를 했다. 오늘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모두 드라마틱해서 그녀는 지금까지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군형 씨, 오늘 비록 국왕 폐하를 뵙지는 못했지만 그분이 이렇게 친절
강소아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고개를 돌리고 화면을 외면했다.“그게 무슨 소리예요!”“같이 씻자고요!”최군형은 더욱 환하게 웃으며 웃옷을 벗었다. 그의 탄탄한 상반신이 드러났다.“왜 나 안 봐요?”“최군형 씨...”강소아는 보기 싫은 척하면서도 몰래 화면을 훔쳐보았다. 그의 탄탄한 가슴, 선명한 복근, 잘 다져진 팔...강소아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최군형이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볼 거예요, 안 볼 거예요? 안 볼 거면 전화 끊어요.”“당신...”“안 끊으면, 같이 씻고 싶다는 뜻으로 알게요.”최군형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소아 씨는 옷 입고 샤워하나 봐요?”“최군형 씨!”강소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대놓고 웃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은 달콤해졌다.물론 부끄럽기도 했다. 진지한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이런 얘기를 할 때조차 진지할 줄은 몰랐다.최군형은 핸드폰을 한쪽에 놓고는 자기 허리 쪽을 비추더니 덤덤하게 반바지를 벗기 시작했다.“씻을게요.”최군형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가볍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강소아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화면을 보지 못했다.그런데 이때, 핸드폰에서 놀란 비명이 들려왔다.강소아는 깜짝 놀랐다. 화면 속의 최군형이 눈을 크게 뜨고 깜짝 놀란 눈빛으로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분위기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얼마 뒤 화면 속에 강소준의 난처한 얼굴이 나타났다.“수호신 형...”최군형은 강소준과 핸드폰을 번갈아 보며 애써 진정하려 했다.“그... 소아 씨, 오늘은 이만 끊죠, 일찍 자요!”“네?”강소아가 뭐라 하기도 전에 이미 통화가 끊겼다.그녀는 집 화장실 구조를 생각했다. 화장실은 작은 편이 아니었다. 밤이 돼 어두워졌고, 그 안의 사람이 문을 잠그지 않았다면...최군형은 화장실에 있는 강소준을 발견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강소아는 웃음을 참으며 이불을 뒤집어썼다.한편, 최군형은 귀신이라도
남양.강소아는 뒤척거리며 쉽게 잠들지 못했다. 전화라도 걸어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최군형과 강소준이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이때 누군가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깜짝 놀라 조심스레 문밖을 보았다. 하수영이었다.“소아야, 자?”강소아는 망설이다가 문을 열어주었다. 하수영은 강소아의 눈을 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소아야, 얘기 좀 할 수 있어?”강소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수영이 변한 것 같았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고, 이게 하수영의 탓은 아니지만 그 이유 정도는 알고 싶었다.하수영이 계속해서 물었다.“소아야, 조용한 곳에 가서 잘 얘기해 보자, 응?”“그냥 여기서 해.”강소아는 문에 기대섰다. 하수영을 들여보내고 싶지도, 그녀를 따라가고 싶지도 않았다. 몇 마디 말로 끝낼 일이었다.하수영이 난처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하지만 여긴...”“왜, 조용하고 좋잖아. 복도에서 사람은 없으니 누구도 우리 대화를 듣진 않을 거야. 자려고 하던 참이라 멀리 나가고 싶지 않아.”“이 시간에 잔다고? 우리 반 애들은 아직도 쇼핑 중이야!”“하, 나한텐 그럴 돈이 없어. 가방도 일부러 작은 거로 챙겼는데.”“소아야...”“더 할 말 있어?”“해명하고 싶은 게 있어. 오늘 일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하수영이 불쌍한 눈빛으로 강소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강소아의 입꼬리가 가늘게 떨렸다.“무슨 일?”“소아야, 내가 무슨 말 하려는지 너도 알잖아... 오늘 선생님이 널 참관하지 못하게 하셨을 때 말이야. 다른 친구들이 다 가만히 있는데, 내가 뭐라고 나서겠어? 소아야, 나 좀 이해해 주면 안 돼? 나도 내 사정이 있었어, 나도 힘들었다고...”“응, 이해해. 너도 네 사정이 있으니까, 우리 우정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소아야...”하수영이 강소아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소아가 그녀를 힘껏 뿌리쳤다. 그녀는 실망한 눈빛으로 하수영을 쳐다보며 소리쳤다.“너 전엔 안 이랬어!
회의실은 단숨에 고요 속에 잠겼다. 강렬한 존재감의 인물이 문턱을 넘어서자, 방 안은 서늘하면서도 압도적인 기운으로 가득 찼다.원장은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단숨에 그의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툭 치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왜 이제야 온 거야?”임지강의 눈가에는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그러나 그의 시선이 허운주에게 닿는 순간, 그 미소는 천천히 사라지고 대신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이 자리 잡았다.“으흠!”원장은 자세를 가다듬으며 목소리를 높였다.“오늘 이 자리에서는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것뿐만 아니라 매우 중요한 소식을 전하려고 합니다.”원장은 한 장의 서류를 꺼내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유치원의 공식 도장과 함께 임지강의 힘찬 서명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임 대표님께서 우리 유치원에 10억을 투자해 주셨고 국제 유치원의 최대 주주가 되셨습니다. 유아 교육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초심을 잃지 않고 임 대표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내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송윤지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얼굴에 붉은 기운이 번지자 뜨거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입가에 번진 미소는 감추기 어려웠다.임지강은 잔잔한 미소를 띤 채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제가 이 유치원의 주주가 된 이상, 앞으로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 국제 유치원의 이익을 위해서일 것입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허운주를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래서 오늘, 교사 팀을 정비하려고 합니다.”허운주는 본능적으로 두 걸음 물러나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이곳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임지강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자신의 가치관조차 바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아이들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겠습니까?”허운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가요?”“여기 있는 사람 중
원장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졌다.“허 선생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오늘 표 집계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투명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조작이라니, 그 말은 제가 개입했다는 뜻인가요?”“원장님, 제가 어떻게 감히 원장님을 의심하겠습니까?”허운주는 억지 미소를 띠며 비꼬듯 말했다.“하지만 표 차이가 이렇게 크게 나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설령 원장님께서 관여하지 않으셨더라도, 누군가 뒤에서 무슨 일을 꾸몄을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겠습니까?”“허 선생님...”원장은 화나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 막무가내인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익숙하지 않았다.“허 선생님, 하신 말씀에 대해 책임지셔야 합니다.”송윤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윤지는 허운주를 담담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저는 단 한 번도 허 선생님께 폐를 끼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우수 교사 선발 역시 모든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정말 무슨 일을 꾸몄다면, 이렇게 공개적으로 표를 집계했겠습니까?”허운주는 송윤지를 노려보며 속으로 분노를 억눌렀다.평소 조용하고 소극적인 송윤지를 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의 송윤지는 논리 정연한 주장으로 상대의 도발에도 굴하지 않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송윤지를 새롭게 보게 되었고 문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임지강의 입가에는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임지강은 회의실 밖에서 모든 상황을 눈여겨보고 있었다.특히 송윤지의 표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임지강은 마치 자신이 상을 받은 것처럼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곁에 있던 부하 직원조차 그의 변화를 놀라워하며 말했다.“송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전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었다. 송윤지는 변하지 않았다. 그저 예전에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너무 조심스러워 본래의 자신을 숨겼을 뿐이었다.“임 대표님, 허 선생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지난번에 내가 해외 시장을 축소하라고 했지만, 당신 아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임수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결국 문제는 그 여자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거야... 그 여자는 현진이를 부추겨 또 다른 일을 꾸밀 거고 현진이는 분명히 그 여자의 말을 들을 거야.”“그러니까 그들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임수정은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윤아야, 네가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회사들을 꽉 잡고 있어야 해! 너 혼자 힘들면 군성이랑 의논해도 되고 군형이나 소유의 도움을 받아도 돼. 네가 동의하지 않는 한, 네 오빠는 너한테서 단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어. 이해했지?”“윤아야.”임수정은 딸의 손을 꼭 잡았다.“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이 모든 재산은 우리 조상들이 쌓아온 거야. 절대 우리 세대에서 무너져선 안 된다!”“네, 저 이해했어요.”배윤아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말했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가 하루빨리 제정신을 차려서 우리가 예전처럼 가족으로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임수정은 힘없이 눈을 감았다. 기침하며 숨을 고르는 임수정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했다.그러나 그 순간, 문밖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소피아가 복도 모퉁이에 숨어 임수정의 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벽을 짚고 있던 소피아는 주먹을 꽉 쥐었고 마치 벽을 뚫을 듯 힘을 주고 있었다.방 안에서 나눈 대화는 모두 소피아의 귀에 생생히 들렸다.오늘 소피아가 임수정을 찾아온 건, 회사 본사에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려는 목적이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은행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지금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재산 전부가 이 어린 소녀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여보세요, 소피아!”그때, 배현진이 전화를 걸어왔다.“지금 엄마 집에 있어? 나 일이 아직 안 끝나서 조금 있다가 가려고. 엄마한테 전해줘.”“그럴 필요 없어.”소피아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임수정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배경원은 막 씻은 딸기를 가져왔다.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딸기의 끝부분을 잘라 임수정의 입에 넣어주었다.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두 사람의 애정과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여전히 처음과 같았다. 그들의 관계는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배윤아는 방으로 들어오기 전에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엄마를 위해 영양제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새로 그린 그림도 품에 안고 있었다.“엄마, 아빠, 저랑 군성이가 이번에 현실적인 내용을 담은 만화를 하나 출간하려고 해요. 내용은 한 부부가 젊었을 때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다룬 거예요... 사실 주인공 부부가 바로 엄마, 아빠예요! 보세요, 이렇게 그렸는데 괜찮죠?”임수정과 배경원은 딸이 그린 그림을 보며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했다.부부는 원래 대부분의 기대를 아들에게 걸고 있었다. 이는 남녀 차별 때문이 아니라 배윤아의 성격이 어릴 적부터 세상일에 무심하고 경쟁을 피하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문의 계승자로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딸이 오히려 아들보다 더 믿음직스럽다.“윤아야.”임수정은 딸의 손을 잡으며 눈빛에 깊은 의미를 담아 말했다.“엄마가 너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게 있어.”“뭔데요?”배윤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임수정은 베개 밑에서 갈색 서류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는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핵심 자료들이 들어 있었다.“이것뿐만 아니라, 본사의 도장도 있어.”배경원은 도장까지 꺼내 배윤아에게 건넸다. 배윤아는 깜짝 놀라 귀중한 물건들을 손에 들고 어찌할 줄 몰라 하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아빠, 엄마, 이건 도대체...”“우리도 이제 나이가 들었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아. 요양원에 머무는 동안은 회사로 돌아가 직접 관리할 수도 없을 거야.”배경원은 평소 장난스러웠던 모습을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배윤아를 바라보았다.“윤아야, 엄마, 아빠는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맡기기로 했다. 네가 책임을 져야 해.”배윤아의
배현진은 업무 능력이 뛰어났지만, 인간관계나 처세술은 부족했다.예를 들어, 송윤지가 그의 약혼녀였던 시절에도, 배현진은 한 번도 진심으로 송윤지를 존중한 적이 없었다.송윤지와의 결혼을 결정한 이유도 그녀의 친정에 배경이 없어서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나중에 자신이 바람을 피우더라도, 송윤지가 아무런 반발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그렇다면 배현진은 전형적인 고지능, 저감성의 사례일까?사람들은 흔히 아이들의 첫 번째 선생님이 그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배현진의 첫 선생님은 그저 성적을 잘 받는 법만 가르쳤을 뿐, 학업과 일 외에도 중요한 삶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이 생각이 하자, 송윤지는 갑자기 모든 게 명확해졌다. 송윤지는 배현진을 떠올리며 안타까움을 느꼈고 어딘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송윤지의 미소는 허운주의 눈에 더 거슬리게 보였다.“뭐 하는 거죠?”허운주는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뭐가 그렇게 웃긴 데요?”“아무것도 아닙니다.”송윤지는 미소를 거두고 냉정한 눈빛으로 말했다.“다만 허 선생님의 교육 철학은 이제 바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더 많은 아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말이에요.”“뭐라고요?”“저는 아이들과 놀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송윤지는 차분히 말했다.“저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세상을 느끼고 책에만 얽매이지 않도록 돕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저 아이들이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가지길 바랐습니다. 결국, 아이들의 성장 시기는 단 한 번뿐이니까요. 제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건, 인생은 멋진 여정이고 그것을 온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성적에만 집착한다면, 아이들의 앞길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허운주는 숨을 헐떡이며 입술을 떨었다.허운주는 20년 넘게 이 일을 해온 베테랑 교사로 수많은 명문가의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런 허운주가 이제 한 젊은 교사에게 권위를 도전받고 있었다.자존심이 상해서 도저히 견
송윤지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날 선 목소리가 송윤지의 귓가를 스쳤다.“우수 교사라니? 참, 그런 상 따위는 다 가짜야. 아무 의미도 없는걸.”잠시 걸음을 멈춘 송윤지는 그 말에 반응하지 않고 곧장 자신의 책상으로 걸어갔다.허운주의 자리는 송윤지의 자리와 가까웠다. 송윤지는 허운주의 눈빛에서 질투와 증오가 서린 눈길을 느꼈다.며칠 전, 원장이 송윤지를 오성시 우수 교사 후보로 추천하겠다고 발표한 이후로 허운주는 완전히 송윤지를 적대하기 시작했다.겉으로는 그런 상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원장을 찾아가 분노를 터뜨렸다.“송윤지는 경력도 짧고 교직 생활을 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왜 우수 교사 후보로 추천되는 겁니까? 저는 이렇게 오랫동안 가르쳤는데, 이번에는 제 차례여야 하지 않나요?”그날, 원장실 밖에서는 여러 교사가 웅성거리며 허운주의 불만을 엿들었다.이후로 사무실의 분위기는 눈에 띄게 바뀌었다.건강을 회복하고 복귀한 송윤지는 동료들의 태도가 예전과는 전혀 달라졌음을 느꼈다.과거에는 송윤지가 배씨 가문의 도련님과 약혼한 사실만으로도 모두가 존중하고 떠받들었다. 하지만 이제 송윤지는 배씨 가문의 도련님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있었고 아이가 있는 이혼녀와의 경쟁에서도 패배했다는 소문까지 퍼지며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를 받게 되었다.이런 변화가 언젠가는 찾아올 거라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그리고 이렇게 노골적인 태도로 찾아올 줄은 몰랐다.“그러게요, 정말 불공평한 것 같아요.”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허 선생님이 훨씬 자격이 있는데 경력도 없는 신입이 후보라니, 말이 안 되죠.”송윤지는 아무 말 없이 컴퓨터를 켜고 수업 준비를 시작했다.그때, 문 앞에 원장이 나타나 환한 미소를 지으며 휴대전화를 흔들었다.“송 선생님! 송 선생님! 보세요, 선생님께서 이미 최종 라운드에 진출했어요!”사무실 안은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송윤지도 당황한 듯 잠시 멈칫했다. 유독 허운주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원장은 가볍
배현진은 잠시 멍해졌다. 배현진의 입술이 떨렸다.1조?배현진이 운영하는 자회사는 지금 당장 천억의 유동 자금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1조가 필요하다면 반드시 본사에 지원을 요청해야 하고, 이는 이사회에서 논의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이사들은 모두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의 보수적인 사람들이었다. 이 금액을 승인해 줄 리가 없었다.“배 도련님?”조 회장은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듯 말했다.“배씨 가문의 대단한 도련님도 이런 돈 때문에 고민하시네요?”소피아는 급히 팔꿈치로 배현진을 찔러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 조 회장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럴 리가 있겠어요! 조 회장님께서 이미 최저 가격을 제시하셨으니 우리 현진 씨가 반드시 잘 처리할 겁니다.”“그렇습니까?”조 회장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제가 최저 가격을 제시한 건 제 진심의 표현인데 두 분의 진심은 아직 보이지 않네요.”“조 회장님...”소피아가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배현진이 그녀를 제지했다.배현진은 깊은숨을 내쉬며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하고 입을 열었다.“조 회장님, 저도 진심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제가 운영하는 자회사의 상황이 좋지 않아서... 1조는 저의 아버지를 놀라게 할 금액입니다. 그분이 아시면...”“아, 그게 걱정이었군요?”조 회장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배 도련님, 솔직히 이야기해 봅시다. 지금 그 돈이 없으신 거죠?”배현진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이 일을 아버님께 들키고 싶지 않은 거고요?”“네.”“그렇다면 간단합니다!”조 회장은 담배를 입에서 뗀 뒤, 부하가 건넨 명함을 내밀었다.배현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이게... 뭔가요?”“돈이 없으시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되죠.”조 회장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이 사람은 저와 친한 사이이고 은행에서 꽤 영향력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찾아가면 당신의 자금 문제를 해결해 줄 겁니다.”소피아는 크게 기뻐하며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하지만
임지강은 약간 실망했지만, 여전히 미소를 띠고 송윤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송윤지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임지강의 눈을 보는 순간, 송윤지는 심장이 마구 뛰는 기분이 들었다. 송윤지는 급히 고개를 숙여 밀크티를 마시며 마음속의 동요를 숨기려 했다.“임 대표님, 제 뜻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고마워할 필요 없어요.”임지강은 부드럽게 말했다.“윤지 씨를 좋아하는 건 제 마음이에요, 윤지 씨가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저도 부탁이 있어요...”“무슨 부탁이죠?”“그동안은 절 거절하지 마세요.”임지강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제가 윤지 씨에게 잘할 기회는 좀 줘야죠.”송윤지는 부끄러워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공기 중에 묘한 설렘이 감돌았다.하지만, 이 남자가 자꾸 송윤지의 꿈에 나타나는 건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임 대표님.”송윤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가... 예전에 만난 적 있나요?”임지강은 잠시 멈칫했다.송윤지는 머리를 긁적이며 약간 어색하게 말했다.“임 대표님이 참 익숙하게 느껴져요... 사실 저는 예전에 큰 병을 앓은 적이 있는데 병이 나은 후로 모든 걸 잊어버렸거든요. 만약 임 대표님이 저를 알고 있었다면, 솔직히 말해 주세요. 우리 가족은 왜 그러는지 제 과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임지강은 마음이 조여드는 듯했다.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렸다오랜 침묵 이후, 임지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는 모르는 사이에요.”송윤지는 멍하니 임지강을 바라보았다.“윤지 씨가 저를 익숙하게 느끼는 건, 아마 사람들 사이의 특별한 인연 때문일 거예요.”임지강은 가볍게 쉰 목소리로 말했다.“가족이 과거를 말하지 않는 건, 정말로 특별히 말할 게 없어서일 수도 있어요.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다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렇죠?”“윤지 씨.”임지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윤지 씨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요. 제가
“하지만...”배현진은 잠시 망설였다. 소피아가 말한 두 광산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고 조건도 매우 훌륭했다. 소문에 따르면 가격도 상당히 매력적이었다.하지만 배현진은 벤처 투자의 세계에서 오랜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있었다. 매력적인 가격 뒤에는 언제나 큰 함정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자기야, 당신 나 못 믿는 거야?”소피아는 배현진의 팔을 흔들며 물었다.“미국에 있을 때 내가 당신 일을 얼마나 많이 도왔는지 알잖아. 내 능력, 못 믿어?”“그럴 리가.”배현진은 소피아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소피아는 그가 가장 신뢰하는 조력자였고 배현진이 소피아에게 매료된 것도 그녀의 업무 능력 때문이었다.“그냥... 이번 일은 금액이 너무 크기도 하고, 게다가 조 회장이라는 사람과는 거의 모르는 사이잖아.”“한 번 보면 모르는 사람이지만 두 번 보면 아는 사이가 되는 거지!”소피아는 눈을 반짝이며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이번에 우리가 큰 돈을 벌게 되면, 당신 부모님도 우릴 좋게 생각해 주실 거야.”배현진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소피아는 배현진의 옆에 더 가까이 다가가 그의 셔츠 단추를 장난스럽게 만지작거리며 말했다.“현진 씨, 당신은 나와 평생 함께하고 싶지 않아? 우리가 성과를 내야 당신 부모님도 우리를 인정하실 거고 우리에 대한 반대도 사라질 거야. 난 진심으로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서 이렇게 노력하는 거야. 당신 부모님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배현진의 마음이 움직였다. 배현진은 소피아를 안고는 부드럽게 소피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그는 소피아와 영원히 함께하고 싶었다. 소피아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의 마음은 그녀에게 있었다.소피아가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은 물론, 직장에서 보여주는 강단 있고 당당한 모습이 배현진을 매료시켰다. 그것은 송윤지가 가지고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배현진은 송윤지처럼 순진하고 조용한 ‘작은 토끼’ 같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배현진은 도전적인 여자를 좋아했고 소피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