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한 온몸의 기세가 갑자기 어두워졌다.“낭자, 정말 명정대군과 결혼할 것이오?”나지막한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다.김단은 그 선홍색의 눈동자를 마주 보고 말투는 차분했다. “그래요.”“그 사람이 불구자라도?”김단은 소한의 말을 듣고 침묵했다.이 상황을 보더니, 소한은 그녀가 모르는 줄 알고, 바로 또 말했다.“혹시 알고 있는가? 그가...”“알아요.”김단은 소한의 말을 끊었다. 그녀는 소한이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다.방금 전에 길을 안내하는 나인은 바로 류 나인이다. 류 나인은 그녀가 예전에 알지 못했던 비밀스러운 얘기들을 모두 조용히 그녀에게 말했다.소한은 멍했다.그녀는 알면서도 여전히 시집가겠다고 고집하는 건가?뭔가 생각난 듯 그의 목소리는 약간 쉬었다.“만약 낭자가 내가 전에 했던 그 말 때문이라면, 내가 임씨 부인을 찾아갈 수 있소...”그는 그녀가 먼저 시집가야 임원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김단이 다시 한번 그의 말을 끊었다.“장군 때문이 아닙니다. 제가 명정대군에게 시집가고 싶은 것이옵니다.”조모의 몸이 더는 오래 버틸 수 없었고, 진산군댁이 더 이상 그녀의 미래를 맡길 곳이 아니었으며, 이제 그녀 스스로를 위해 새로운 출로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많은 원인이 있지만 유독 그 사람 때문은 아니었다.“단이...”소한의 말투가 영문도 모르게 부드러워졌다. 김단은 그의 입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투로 그녀를 부르는 것을 들었다.그래서 그녀의 마음도 무의식적으로 따라 뛰었다.그녀는 자신이 예전에 소한을 그렇게 깊이 사랑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든 것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그를 위해 목숨을 내걸 수 있을 정도로 사랑했다.하지만 그녀는 지금 자기가 사랑해야 할 사람은 자기뿐이라는 것을 더욱 잘 알고 있다.“소 장군.”그녀는 소외감이 있는 호칭으로 대답했다.“장군과 임낭자야말로 좋은 짝입니다.”그래서 지금, 소한은 이렇게 큰 궁궐에서 그녀를 이 작은 동
임학의 마음도 따라서 덜컹했다, 임씨 부인도 이제야 황급히 달려와 임원의 손을 잡고 비할 데 없이 마음이 아팠다.“아이고, 빨리, 빨리 이 어미와 가서 약 바르자!”말하고는 임원을 끌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그러나 임원은 가려 하지 않고 눈물만 뚝뚝 떨어뜨렸다.“안 갈래요. 아버지께서 딱 보아하니 틀림없이 오라버니에게 벌을 주실 것 같아요. 저는 남아서 오라버니를 보호해야 합니다.”진산군은 임원의 서럽게 우는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다.임학은 더욱 미간을 찌푸렸다.머릿속은 모두 김단이 많은 사람 앞에서 그가 3년 전에 이미 죽었다고 말하는 화면뿐이다.그는 어떻게 이렇게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금치 못했다.같은 동생인데 한 명은 그를 위해 상처가 있어도 불구하고, 한 명은 그렇게 모질게 대할 수 있다니...그러나 진산군은 갑자기 낮은 소리로 성질을 냈다.“이놈이 벌을 받을 짓을 하지 않았더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여동생을 그 지경으로 때렸는데, 이놈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하는 놈이야!”오늘 임학의 행동이 어디 김단을 교훈하는 것이냐, 분명히 진산군댁의 체면을 땅에 밟아 버리는 것이다.지금 한양 사람들은 모두 진산군댁에서 15년간 키운 딸이 그들과 원수를 지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 중의 시비는 여러 사람의 말로 전해지다 보면 또 얼마나 많은 좋은 말이 남아돌겠는가?임학도 자기가 도리 없다고 생각했다.“저도 너무 화가 나서 어리석었습니다.”“아무리 어리석어도 사람을 저 지경으로 때릴 수는 없어!”임씨 부인은 임원을 껴안고 김단의 등에 피가 스며드는 모습을 생각하니 결국 참지 못했다.임원은 오히려 말했다.“하지만 오라버니도 이미 잘못을 알았고, 대군자가도 오라버니를 이렇게 때렸어요. 아버지, 어머니도 더 이상 오라버니를 탓하지 말아요.”임원의 말은 진산군댁부부의 주의를 마침내 임학의 등에 돌리게 했다.임학이 집에 보내왔을 때의 모습을 생각하니 두 사람 역시 마음이 약해졌다.진산군은
김단은 진산군댁으로 돌아간 후 조모께 문안드리러 가려고 하였으나, 조모께서 이미 주무셨다는 말을 들었다.그녀는 조모가 잠을 잘 수 있는 것은 오늘 법화사에서 발생한 일을 듣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많이 안심했다.별땅으로 돌아왔을 때 숙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는 모습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단은 임학이 전에 숙희를 찬 것을 생각하고는 마음이 아팠다.숙희는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계속 다가와 김단이 옷을 갈아입도록 시중을 들었다.그러나 김단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숙희야, 너는 다른 가고 싶은 곳이 있니?”말을 듣고, 숙희가 어리둥절해지더니, 가뜩이나 창백한 얼굴에 더욱 핏기가 없어졌다.“아씨께서 지금 소인을 쫓아내려는 것입니까?”김단은 고개를 저었다.“내가 지금 너를 쫓아내려는 것이 아니고, 다만..., 너에게 피해를 줄까 봐 두려워서 그래.”오늘 자기 때문이 아니라면, 숙희가 어찌 이런 불의의 재난을 당할 수 있겠는가?그러나 숙희는 갑자기 격동되었다.“소인은 두렵지 않습니다! 아씨, 제발 소인을 쫓아내지 마세요. 소인은 아씨 곁에 남아 아씨를 보호할 것입니다!”그녀가 감정이 너무 격해진 탓인지 말소리가 떨어지자마자 기침하더니, 몇 번 후에 피를 토해냈다.김단은 깜짝 놀라 빠르게 앞으로 나가 그녀를 부축해서 앉았다.“어떻게 된 일이야? 의원을 불러 보지 않았니?”숙희가 가까스로 기침을 멈추자 그제야 말했다.“봤어요, 의원은 소인이 내상을 입었으니, 감정이 격해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어요.”그러나 만약 김단이 그녀를 쫓아낸다면, 그녀의 감정은 바로 격해져 조금 전처럼 기침이 그치지 않고 피를 토할 것이다.김단은 숙희의 뜻을 알아들었다. 비록 그녀도 아직 왜 숙희가 이렇게 고집스럽게 꼭 자신의 곁에 남아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그녀가 전에 아무것도 돌보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모습을 생각하면, 그녀의 그 마음은 한없이 약해졌다.입가에도 웃음을 자아냈다.
이런 반응은 방금 전 그녀가 했던 말에 비교하면 정말 우스꽝스러웠다.김단은 참지 못하고 살짝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임씨 부인 역시 방금 전 임원이 한 말이 부적절했음을 깨닫고 다급히 말을 가로막았다. “명정 대군께서 요 며칠 치료 중이시란다. 사람을 보내 말씀하시길, 며칠 뒤에 함께 약속했던 곳으로 다시 데려가겠다고 하시더구나.”함께 약속했던 곳?김단은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그제서야 어제 명정대군이 일이 끝난 후 그녀를 데리고 가겠다고 했던 장소가 떠올랐다.하지만 그건 약속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는 그녀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떠나버렸으니 말이다.생각에 잠긴 김단에게 임원이 다시 다가와 물었다.“명정 대군과 함께 어디를 가시기로 하셨소? 어디 재미있는 곳이오?”“…”한껏 기뻐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던 김단은 문득 한 가지 기억을 떠올렸다.김단은 임원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제 누이께서 명정대군에게 내가 법화사에 간다고 말하신 것이오?”그녀는 임원이 그렇게 말한 것으로 얼핏 기억했다.이 말을 들은 임원은 잠시 얼이 빠진 듯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김단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왜 그러셨소?”만약 그녀가 초대하지 않았더라면 김단은 성절을 잊었을 것이고, 당연히 법화사에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만약 명정대군이 절 밖에서 그녀를 도와주지 않고 절 안으로 끌고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그 이후 소정원이 그녀 앞에서 그렇게 모욕적인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니…어제 김단이 겪은 수모를 따져보면, 모두 임원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임원은 김단이 화를 낸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지금 김단의 표정을 보고 단번에 그녀가 화가 났음을 알 수 있었다.순간 임원은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김단이 손을 쓸까 두려워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나, 나는 그저 형님과 명정대군의 이야기를 듣고... 그, 그냥 좀 도와주려고, 두 사람을 잘 되게 하려고 했을 뿐이오...”“그렇게 하면, 내가 고마
언제부터인지 김단은 임학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진절머리가 났다.그녀는 몸을 돌려 그를 쳐다보았고, 그는 자기 뒤에서 부축을 하던 하인을 밀쳐내 발을 절뚝이며 빠르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머니에게 사과해!”김단은 그를 한번 쓱 훑어보았다. 등 뒤의 상처 때문인지 임학은 제대로 서 있지 못했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분명 아까 서둘러 걸어올 때 통증이 극심했을 것이다.그런데도 그는 그런 아픔을 무릅쓰고 자신에게 다가와 면박을 주었다!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임학은 어렸을 때부터 이런 성격이었다. 그때 임학이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했던 이유는 그녀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임원이 돌아온 후, 그는 이제 그녀를 없는 사람 취급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김단은 마음속으로 씁쓸함을 느껴졌지만, 오히려 차분하게 말했다. “도련님께서는 어제 저에게 사과하라고 하셨다가 된통 변을 당하셨으면서, 오늘 또 이러시는 거면 당최 어떤 벌을 받으시려는 겁니까?”어제 일을 떠올리며 임학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모든 일이 김단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설마 나에게 맞은 것이 분해 어머니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냐?” “도련님께선 제가 화를 내는 걸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김단은 되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임씨 부인에게 물었던 말투가 조금 비꼬는 듯했음을 인정하지만, 이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그런 것이지 결코 화를 낸 것은 아니었다.오히려 임학 본인이 그녀에게 시도때도 없이 화를 내고 있지 않은가?옆에 있던 임씨 부인은 임학과 김단이 다시 언쟁을 벌이는 것을 보고 다급히 다가가 말렸다. “됐다, 됐어.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지 않니. 학아, 넌 상처가 다 여물지 않았으면 안에서 쉬지 뭐하러 여기까지 나온 것이냐?”그 말과 함께 임씨 부인의 시선은 임학 임학의 손가락에 감겨 있는 하얀 붕대로 향했다. 이내 그녀는 깜짝 놀라며 다시 되물었다. “손에 또 무슨 일
그녀 등 뒤의 상처는 아직도 고통스러웠다!임학이 어제 맞다 기절하긴 했지만 그가 맞은 빗자루는 하나도 부러지지 않았고, 심지어 등에는 큰 상처조차 없었기 때문에 오늘 바로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어떘는가?몇 번 맞았을 뿐인데 빗자루가 부러졌고, 그 힘 때문에 부러진 빗자루의 단면이 그녀의 등에 깊숙이 박혔다.이것만 보아도 어제 임학이 그녀의 목숨을 노린 것임을 알 수 있다!김단은 그 말을 그대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그 모욕감을 임학은 분명하게 느꼈을 것이다.임학은 곧장 김단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 했다. “그렇게 맞고도 입을 놀려대는 걸 보니,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구나!”그때, 임씨 부인이 급히 임학을 붙잡으며 말했다. “학아! 진정해라!”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김단은 오히려 임학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도련님께선 아직도 저를 때리고 싶으신 겁니까? 오늘은 어디를 때리실 건가요? 왼쪽 뺨, 아니면 오른쪽 뺨? 제가 친히 얼굴을 내러 드려야 합니까?”그녀가 이렇게 대담하게 나서자, 임학은 분노가 더욱 치밀어 올라 하마터면 임씨 부인을 밀치고 달려들 뻔했다.그러나 그때 숙희가 갑자기 김단의 앞으로 뛰어들어 와 임학을 향해 소리쳤다. “전하께서 막 혼례를 명하셨습니다. 도련님께서 지금 아씨를 때리시면 이는 전하의 명을 무시하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임학은 순간 멈칫하더니 숙희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젠 감히 하인까지 나를 건드는 것이냐?”“건들지 않고 베기겠습니까?” 김단은 숙희를 밀어내고 임학을 향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그게 아니라면 왜 지금 마님께서 이렇게 도련님을 붙잡고 전전긍긍하시겠습니까?”임학이 그녀를 해 할까 두려운 걸까?하하, 그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그녀가 과거 여러 차례 상처받고 모함을 받았을 때, 임씨 부인은 ‘어머니’로써 단 한 번도 그녀를 지켜주지 않았다.그러니 지금 임씨 부인은 그저 임학이 왕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김단!” 임학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 그러나 두 여인이 그를 붙잡고 있었기에 뿌리치고 달려들 수 없었다.김단은 더 이상 임학과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임씨 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의 상은 전하와 덕빈 마마께서 제게 내리신 것이니, 저의 별당으로 보내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상은 왕과 덕빈이 김단에게 내린 것임에도 원래대로라면 진산군댁의 창고로 들어가야 했다.하지만 김단이 이렇게 말하자 임씨 부인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오히려 김단이 지난 3년 동안 겪은 일에 대한 보상처럼 여겨지기도 했다.이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 그럼 네 별당으로 보내마.”임씨 부인의 말을 듣고 김단은 비로소 진심어린 웃음을 띄웠다. 그녀는 임씨 부인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하고는 숙희를 데리고 몸을 돌려 떠났다.그녀가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떠나는 것을 본 임학은 분노가 치솟아 눈에서 불이 나올 것 같았다. 그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머니! 그걸 왜 저 애에게 주시는 겁니까?”임씨 부인은 그제야 임학을 놓아주며 코를 훌쩍이고 말했다. “집에 재산이 부족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 게다가 그 상은 원래 저 애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는 너는! 어제 너희 아버님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는 것이냐? 이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 성격은 언제쯤 차분해지는 것이냐?”임학은 미간을 찌푸릴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임원이 다급히 임학을 변호했다. “어머니, 오라버니께서는 저와 어머니께서 이렇게 울고 있는 걸 보시고 다급하셔서 그러신 걸 거예요. 그러니 그만 다그치세요...”이 말을 들은 임씨 부인은 가슴이 저릿하였다.그렇다, 어쨌든 자식은 자식아니겠나. 어찌하여도 자신의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다.하지만 김단은 어떠한가?비록 친딸은 아니지만 십 년 넘게 키워왔고, 자신을 '어머니'라고 불러온 딸이지 않나?그 말들이 어떻게 이렇게 칼날처럼 그녀의 마음을 찌를 수 있단 말인가?생
이제 김단은 이 집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하지만 조모에게는 왠지 모르게 조금 죄책감을 느꼈다.그녀는 큰 마님이 자신이 왕과 덕빈이 내려주는 상을 모두 받아왔다는 것을 알고서 예의를 모른다고 꾸짖을까 봐 걱정이었다.이 시간이라면 큰 마님은 아마 깨어 있을 것이다.역시나, 김단이 도착했을 때 큰 마님은 약을 드시고 있었다.김단은 깊이 숨을 들이쉬고 자세를 고쳐잡은 후, 조심스럽게 인사를 드리러 들어갔다. 그녀가 다친 것이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다.큰 마님은 김단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손을 흔들었다. “내 다 들었다. 혼인에 대한 상이 벌써 내려왔다지?”김단은 큰 마님 옆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내려왔어요. 전화와 마마께서 많은 상을 내리셨고, 저는… 저는 그 상들을 다 받아왔습니다.”김단은 조금 죄책감을 느꼈다. 그녀는 조모께서 욕심이 많다고 꾸짖을까 봐 걱정했다.이 세상 속 그녀의 유일한 가족은 오직 조모뿐이었다!그런데 예상과 달리, 큰 마님은 웃기 시작했다. “그래! 잘했다! 우리 단이가 드디어 똑부러지게 행동했구나!”김단은 어안이 벙벙했다. “제가 예의를 모른다고 꾸짖지 않으십니까?”“예의를 아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겠느냐?” 큰 마님이 웃으며 말했다. “예의를 안다고 좋은 점이 몇이나 있을 것 같으냐? 이제 명정 대군과 함께 탐라성에 갈 텐데, 두 사람이 잘 지낼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네가 조금이라도 돈을 갖고 있어야 이 할머니가 안심할 수 있단다!”말을 마친 큰 마님은 김단에게 조금 더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비밀을 하나 말해주마. 이 할머니가 너를 위해 많은 혼수를 준비했단다. 너는 분명 화려하게 시집을 가게 될 게다. 그러면 그 뒤에도 명정 대군이 너를 절대 무시하지 못할 거란다!”그녀를 화려하게 시집보낼 수 있는 정도의 혼수라면 김단은 그 대략적인 금액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명정 대군마저 그녀를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혼수라면
5일 후.김단은 허약해 보이는 안색을 숨기기 위해 가볍게 치장을 하고 외출하려 했다.그녀는 이미 십여 일 동안 조모께 문안드리지 않았다. 비록 수 나인께서 돌보고 계시지만, 조모는 틀림없이 그녀를 매우 걱정하실 것이다. 그녀는 조모께 안부를 드려야 한다.조모를 만난 후에 그녀는 정암을 찾아가려 한다.그녀는 정암도 틀림없이 자기를 매우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문을 나서자마자, 마당에 서 있는 임씨 부인을 보았다.김단을 보자 임씨 부인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다가서려 했으나 김단이 밀어낼까 봐 걱정되어 그 자리에 서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김단은 살짝 한숨을 쉬고 나서야 임씨 부인을 향해 걸어갔다.그녀는 인사를 올렸다.“마님께서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김단의 부드러운 말투를 듣자, 임씨 부인의 웃음은 그제야 어색하지 않았지만, 눈에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김단을 보고 말했다.“원이가 오늘 침대에서 내려온 것을 보고서야 너를 보러 왔다. 지금 네가 이렇게 잘 회복되는 것을 보니 나도 안심할 수 있다.”김단은 고개를 숙이고 말하지 않았다.분위기가 어색해하자, 임씨 부인은 다시 물었다.“이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외출하려는 것이냐?”김단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네, 정암한테 가려고 합니다.”“뭐?”임씨 부인은 좀 놀랐고,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단이야, 잘 생각했어? 정말 정암과 함께 할 셈이야?”김단은 대답은 하지 않고 단지 조용히 임씨 부인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임씨 부인은 그녀 눈에 담겨있는 확고함을 똑똑히 보았다.이 상황을 본 임씨 부인의 마음은 매우 아팠다.“나는 네 결심을 알고 있지만..., 이번에는 정암의 아버지께 일이 생기고, 그럼 다음은? 앞으로 정암의 가족에게 문제가 생기면 너는 계속 이렇게 너와 원이의 몸을 망가트릴 것이냐?”이 말을 듣고서야 김단은 참지 못하고 비웃었다.임씨 부인이 걱정하는 것은 자기가 아니라,
정암은 진산군댁에 들어서자마자, 별당으로 곧장 달려갔지만, 김단을 만나지 못했다.숙희가 방문 밖에 서서 정암을 향해 인사하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정암 종사관님의 아버지께서 괜찮으시다니 첨만 다행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아씨께서 휴침 중이시라 아마도 종사관님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오시지요!” 정암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혹시 아씨께서 날 만나고 싶지 않은 건지?”숙희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가 다시 말했다.“종사관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씨께서는 최근 며칠간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종사관님 아버님께서 풀려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겨우 안심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제가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정암은 심장이 갑자기 쪼여지더니, 바삐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방해하지 말고, 푹 쉬게 해야지. 그럼, 그럼 내일 다시 오겠네.”그는 말하고는 돌아가려 했다그러나 숙희가 급하게 그를 불렀다.“종사관님!”정암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쳐다보았다.숙희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미간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아씨는 종사관님 아버지께서 감옥에서 고생하셨을 거라 생각하셨고, 종사관님께서 요 며칠 동안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시며 아버님의 마음을 달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지나서 저희 아씨께서 종사관님을 보러 갈 것입니다.”며칠 지나서 김단이 그를 보러 갈 테니, 그는 다시 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정암은 여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다.그녀는 며칠 동안 단식을 했으니, 지금은 분명히 매우 허약할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허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그가 걱정하고 자책할까 봐, 그녀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다만,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파서 그의 두 눈마저 시뻘게졌다.그는 무능한 자신이 너무 밉다.숙희는 정암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바삐 입을 열었다.“종사과님, 아씨의 마음속에는 종사관님이 있어요.”이 말을 듣고 정암이 멍하니 있다가, 계속 고개만 끄덕였다.
정암은 멍해졌다.단식? 찌꺼기를 먹는다고?요즘, 그는 아버지의 일 때문에 바쁘게 뛰어다녔고, 가끔 한가해질 때면 항상 그녀를 그리워했다.그는 그녀가 자기 아버지가 걱정되어 먹지 못하고 잠도 잘 이루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래서 그는 쉬지 않고 달려왔다.진산군댁의 호위가 그를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 하지만 그도 감히 담을 넘지 못한다. 자신의 경솔한 행동이 그녀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할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그는 그녀가 이렇게 큰 희생을 할 줄 몰랐다.그는 그가 찾은 증거가 충분해서 아버지가 석방된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지금은 아버지가 경조부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단식하고, 찌꺼기까지 먹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가슴이 무언가에 찢기는 것 같았다. 정암은 지금처럼 자신을 미워한 적이 없다.무능한 자신이 너무 미웠고, 그녀를 보호해 주겠다고 해놓고, 결국 그녀는 자신을 위해 이 지경까지 괴롭힘을 당했다!임학은 이 틈을 타서 정암의 제한 속에서 벗어났고 정암의 얼굴을 향해 두 주먹을 날렸다.“너 때문이야! 이 썩을 놈아! 네가 뭔데 내 여동생이라 혼인하겠다는 거야!”정암은 비틀거리며 두 발짝 뒤로 물러섰지만, 정신을 차리고 갑자기 임학을 향해 돌진했다. 주먹이 사정없이 임학의 얼굴로 향했다.“당신들은 왜 계속 그녀를 괴롭힙니까? 그녀는 진산군댁의 친딸이 아니더라도 당신 집에서 15년 동안 키운 딸이지 않습니까?”임학은 몇 대 맞고 피를 토했지만, 여전히 물러서지 않고 정암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네가 분수도 모르고 나대지만 않았어도 단이는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정암은 피하지 않았고, 피하고 싶지도 않았다.그는 자신이 맞아도 싸다고 느꼈다.자신의 무능함에 주는 벌이라 생각했다.그러나 그는 임학이 자기보다 더 못났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다시 주먹을 휘두르고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이 그녀의 살갗을 벗기고 피를 마시고 있습니다!”임학은 쓰러지더니, 발버둥 치며 일어나 바닥에 앉아 거
진산군은 몸을 돌려 시녀들을 향해 화냈다.“다들 멍청이느냐? 빨리 의원을 불러 큰 아씨한테 오라고 해! 어서 제비집 죽 가져와!”이렇게 소리쳤지만 몸을 돌려 김단을 쳐다보지는 못했다.숙희도 그제야 김단 곁으로 다가가 손수건을 꺼내 그의 다른 손을 살며시 닦아주었다.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렸다.“아씨, 흑흑흑, 방에 들어가요...”그러나 김단은 그저 평온하게 임학을 바라보며 목이 멘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도련님께서는 말한 대로 하시기를 바랍니다.”오늘 이후로, 진산군댁은 더 이상 정암 가족을 괴롭히지 못한다!이 말은 마침내 임학을 자극했다.임학은 김단을 보고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정암이 그렇게 좋아?”얼마나 좋았으면, 정암을 위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한 통의 찌꺼기를 다 먹을 수 있겠어?정암이 도대체 무슨 능력이 있어서 그녀를 이 지경까지 만드는 건가?김단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숙희랑 방 안으로 걸어갔다.그녀는 과연 정암을 그렇게 많이 좋아하나?그녀도 잘 모른다.그녀의 진산군댁 생활은 마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듯했다. 거대한 파도가 밀려올 때면,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그러나 정암은 마치 바다에 떠 있는 쪽배처럼 그녀가 익사할 때 나타나 그녀를 배에 태워서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모든 사람이 정암은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고 한다. 작은 쪽배도 바다 위에서는 물결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거센 파도가 밀려올 때면 쪽배도 부서지고 새고 결국 그녀와 함께 바다에 가라앉을 것이다...하지만 그들은 이 쪽배가 그녀의 생명을 구했었다는 것을 모른다.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정암이 그녀를 버리지 않는 한 그녀는 정암을 포기할 수 없다!임씨 부인은 눈물을 훔치며 김단을 따라 방에 들어가려 했지만, 방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김단이 막았다.“숙희만 있으면 돼요, 마님은 돌아가세요!”말이 떨어지자, 김단은 방에 들어가 담담하게
임학은 김단을 노려보았다. 마치 김단이 먹지 않을까 봐 걱정된 듯 또 입을 열었다.“만약 네가 이 통 안의 것을 먹는다면 진산군댁에서 더는 정암을 귀찮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마.”임학의 말을 듣고, 임씨 부인은 마음이 쪼여졌다.“학아, 네가 어떻게 단이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느냐? 단이는 벌써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네가 어떻게 단이에게 찌꺼기를 먹이느냐?”임학은 몸을 돌려 임씨 부인을 바라보았다.“어머님! 제가 독한 것이 아니라, 정말 김단이 너무 교활해서 그래요! 이번에 원이를 단식하게 하고, 다음에 또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겠어요? 두 분은 정말 더 이상 김단을 믿어서는 안...”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방에서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임학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임원마저 삼키는 동작을 멈추고 모든 사람과 함께 놀라서 그의 뒤를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그제야 임학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온몸이 뻣뻣해져 천천히 몸을 돌렸다.김단은 어느새 찌꺼기 통 옆에 엎드려 두 손을 통에 넣고 통 안의 물건을 잡고 먹고 있었다.임원처럼 게걸스럽게 먹는 것과 달리, 그녀는 천천히 먹고 있었다.그녀는 그저 조용히 먹고 있었다.마치 평범한 음식을 먹는 것 같았다.그런데, 그것은 어젯밤에 남겨진 찌꺼기다!모든 사람이 먹다 남은 것이다!먹기는커녕, 한쪽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찌꺼기 통에서 가끔 풍기는 이상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냄새만 맡아도 속이 쓰리다.그런데, 그녀는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지?임원의 눈이 심하게 떨고 있었다.3년 전에 그녀가 김단을 해쳤지만, 그녀가 도대체 김단을 어느 지경까지 만들었는지 잘 몰랐다.지금, 이 순간, 한때 구슬처럼 눈부시게 빛났던 사람이 지금에 와서 길가의 거지처럼 찌꺼기 통을 안고 먹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마침내 자기가 도대체 김단을 어느 지경까지 헤쳤는지 깨달았다!이렇게 생각하자,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려 무의식적으로 진산군과 임씨 부인을 바라보았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놀
김단의 움푹 들어간 검은 눈언저리를 본 숙희는 마음이 깨질 것만 같았다.김단이 힘없이 입을 여는 것을 보았다.“사람을 보내서 경조부에 가서 확인해 봐.”숙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제가 바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말을 마치자, 숙희는 즉시 사람을 경조부로 보냈다.진산군은 조급했다.“너도 사람을 보냈으니, 내가 속일 수는 없지 않느냐? 빨리 네 여동생에게 좀 먹어라 해!”말하는 사이에 임씨 부인도 왔다. 그녀의 뒤를 바짝 따르던 시녀 두 명이 제비집을 넣고 끓인 죽을 한 그릇씩 들고 있었다.김단과 임원을 보고 임씨 부인은 마음이 아팠고 바삐 시녀에게 말했다.“빨리 두 아씨에게 죽을 먹여라!”그러자 두 시녀는 김단과 임원 앞에 무릎을 꿇고 제비집 죽 한 숟가락을 떠서 두 사람의 입으로 떠넣었다.그러나 김단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김단은 위협하는 눈빛으로 임원을 바라보았다.김단의 시선을 감지한 임원은 가슴이 조여와, 이미 벌린 입을 재빨리 다물고 다시 누웠다.임원은 눈을 감고 어깨를 계속 떨며 우는 것 같았다.그러나 5일 동안 물을 마시지 않아서, 그녀는 지금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못했다.이 장면을 보고 진산군과 임학은 분노했다.임학은 심지어 욕설을 퍼부었다.“양심 없는 년! 아버지께서 이미 사람을 풀어주셨는데, 또 뭐 어쩌려고? 정말 원이를 죽게 만들 셈이야? 정암 때문에 네 눈에는 네 여동생의 목숨도 보이지 않니?”임학은 화가 나서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았다.그러나 김단은 천천히 눈을 감고 그를 보지 않았다.5일 동안 먹고 마시지 않았는데, 그녀는 지금 정말 그와 다툴 힘도 없었다.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꼭 한마디 했을 것이다. 임원은 자기의 여동생이 아니라고!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숙희가 보낸 머슴애가 황급히 돌아왔다.이 머슴애는 별당 사람이다. 김단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떨려 말하는 소리에는 슬픔이 묻어났다. “아씨, 소인은 정암 종사관이 그의 아버지를 데리고 가는 것을 똑똑히 봤습니다.”이
예전에 김단을 위해 별도 달도 따다 주겠다는 사람이 지금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다. 참!김단은 소리 내며 웃더니, 몸을 돌려 계속 풀을 뽑았다. 땅을 바라보는 눈빛 속에는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슬픔이 숨어 있었다.“대감마님께서 정말 임 낭자를 아끼신다면 빨리 무고한 사람들을 풀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임 낭자는 굶어 죽어도 전 계속 살아 있을 것입니다.”이렇게 말하자, 김단은 무언가가 생각난 듯 고개를 들어 진산군을 바라보았다.눈빛에 담긴 슬픔은 이미 사라졌고, 오직 비웃음만이 남아 있었다. “임 낭자는 대감마님의 유일한 딸이십니다. 그녀를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진산군은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김단의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고, 마음속의 분노는 더욱 솟구쳤다.“좋아! 좋아! 정말 이것으로 나를 쥐락펴락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니? 너는 정말 이 아버지를 우습게 보는구나! 내가 전쟁터에 나갔을 때, 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어!” 진산군은 김단에게 자기도 고집불통이라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고 알려주고 싶었다.그러나 김단은 가볍게 말을 내뱉었다. “제 아버지의 성은 김씨 입니다. 벌써 죽었다고 들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진산군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손가락으로 김단을 가리키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소매를 뿌리치고 가버렸다.커다란 별당이 다시 썰렁해졌다.김단은 그제야 동작을 멈추고 다시 굳게 닫힌 정원 문을 보면서 오랫동안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정원 문이 다시 열릴 때는 3일 후였다.이때 김단은 정원의 흔들의자에 누워 힘이 조금도 없었다.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입구를 바라보니 진산군이 한 무리의 사람을 이끌고 화내며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배고픔이 극에 달했는지, 김단은 눈앞이 흐릿해져도 진산군이 오는 쪽을 힘겹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마침내 진산군의 뒤를 따르는 임학과, 뒤에서 누군가에게 이끌려 오는 임원의 모습을 뚜렷이 알아보았다.그녀는 그제야 입꼬리를 올렸다.보
김단은 정원 문 뒤에 서서 어두운 밤 속에 가려진 연못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연못 물은 맞은편에 있는 초롱의 빛을 거꾸로 비추고 있었다. 약한 빛은 마치 언제든지 어둠에 삼켜 버릴 것만 같아 연못의 돌다리조차도 똑똑히 비추지 못했다.김단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나서야 돌다리를 향해 걸어갔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귀밑의 살쩍을 불었지만,연못은 미동도 없었다.김단은 자기가 마치 초롱의 빛이고, 부드러운 바람이라 생각했다.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망가지든 옛 가족의 마음을 흔들 수 없다고 느꼈다.이렇게 생각하자, 김단은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씁쓸하게 웃었다.이 순간, 그녀는 오히려 임원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임원이 정말 마시지 않고 먹지 않는 한 진산군은 반드시 마음이 아플 것이다!김단의 짐작이 맞았다.이틀이 지나자, 진산군은 노기등등하여 별당으로 왔는데, 마침, 김단은 정원에서 김매고 있었다.초봄이 되어 화단의 잡초가 매우 빨리 자라서 제때 뽑지 않으면 며칠이 지나지 않아 꽃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진산군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걸 본 김단은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진흙으로 더럽혀진 두 손을 진산군을 향해 내보이며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대감마님께서 오늘 오실 줄 몰랐습니다. 제대로 인사드리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망할 년!”진산군은 노발대발하더니 손을 휘젓더니 엄하게 명령했다.“뒤져라!”갑자기 두 팀의 호위가 좌우로 나뉘어 줄지어 들어왔다.김단은 그제야 눈살을 찌푸렸다.“대감마님께서 무슨 뜻입니까?”진산군은 대답 없이 김단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팀의 호위는 또 모두 나왔다.“대감마님, 어떤 음식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대감마님, 저희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그녀가 음식을 숨겨서 먹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김단은 자기도 모르게 콧방귀를 꼈다.진산군이 차갑게 소리치며 물었다.“너는 도대체 먹을 것을 어디에 숨겼느냐!”이틀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아서 임원은 침대에서 내려올 힘
진산군은 이 일을 알고 매우 화가 났다.김단이 별당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산군댁의 호위들은 벌써 별당을 포위했다.호위장은 때마침 돌아온 김단에게 인사를 올리고 나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대감마님께서 오늘부터 큰 아씨를 별당에 연금하여 외출을 금지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김단은 이미 예상해서 놀라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별당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그러자, 호위장은 또 김단을 막고, 이어서 말했다.“그리고 큰 아씨께서 단식하는 것을 좋아하시니 오늘부터 잘못을 뉘우칠 때까지 마시지 말고, 먹지도 말라고 명하셨습니다.”김단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여전히 담담한 모습으로 말했다.“알겠으니, 이제 들어가도 되겠소?”김단이 이렇게 차분한 것을 보자, 호위장은 의아했다. 김단이 무슨 방법이 있어 연금에서 빠져나갈까 봐 작은 소리로 알려줬다.“대감마님께서 우리더러 별당을 엄격히 지키라 하셨습니다. 이 기간에 별당에는 아무도 드나들지 못합니다. 명을 거역하는 자는 당장 죽이라고 하셨습니다.”이 말은 김단이 이 문을 들어서는 순간, 밖의 사람과 연락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예를 들면, 전에 몰래 그녀를 보러 왔던 정암을 말한다.하지만 지금, 김단이 걱정되는 사람은 정암이 아니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대감마님께서 벌을 내린 사람은 나뿐이오. 내 마당의 하인과는 무관하오. 나를 가둬두기 전에 내 마당에 있는 모든 사람을 나오라 해도 되겠소?”이 말을 듣자, 호위장도 난감했다.“이러면...”“모두 살자고 일하는 것인데, 그들도 집에 살려 먹여야 할 사람이 있는데, 주인인 내가 잘못했다고 그들까지 연루해야 하오?”김단은 말하면서 머리에서 비녀 하나를 뽑아서 호위장 손에 넣어 줬다.“좀 봐주시죠.”이 비녀는 전에 궐에서 하사한 것이다. 비녀 위에 있는 진주만이라도 가치가 어마어마해서 호위장은 바로 마음이 움직였다. 생각해 보면 김단의 말도 도리가 있다.더군다나, 진산군은 큰 아씨를 연금하라 했지, 미리 별당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