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은 회복 후 다시 별당에서 사람을 피하며 지냈다.큰 마님을 뵈러 가는 걸 제외하고는 거의 방을 나서지 않았다.첫째는 그녀의 상처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조용히 안정을 취하는 것이 필요했고, 둘째는 그녀도 이 집안의 다른 사람들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기 때문이었다.그 중에서 임원이 가장 그러했다.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녀가 눈에 밟혔고, 무슨 이상한 짓을 벌일지 알 수 없으니 조마조마했다.실제로 최근 몇 일 동안 임원은 몇 번이나 찾아왔다.매화당에 있는 가장 큰 매화 나무에 꽃이 피었다며 그 모습이 매우 화려하고 향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김단이 매화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직접 와 그녀를 초대하려고 했다.하지만 김단에게 소식을 전하기는커녕, 숙희는 임원에게 별당의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다. 그녀는 아씨가 아직 침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어 밖으로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임원이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다친 사람을 억지로 끌고 나와 매화 구경을 가려 하지 않았기에, 이 일은 이렇게 끝이 났다.이후 김단은 다른 하인을 통해 이 일을 듣게 되었고, 숙희에게 예쁜 발찌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그런 불쾌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은 문 밖에서 거절하는 것이 마땅했다.어느덧 정월대보름이 다가왔고, 아침 일찍 숙희가 잔뜩 들떠서 편지를 가져왔다. “아씨, 명정 대군의 편지입니다!”김단은 화장을 하고 있었고, 숙희의 말을 듣고는 미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진산군 댁 사람들을 제외하고 명정 대군까지 만나는 것을 별로 원하지 않았다.주변에서 그녀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원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명정 대군과의 혼사는 이미 결정된 일이기에, 앞으로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원치 않아도, 이 편지는 읽어야 했다.그녀는 손을 뻗어 편지를 건네 받았고, 편지 봉투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옆에 있던 숙희가 매우 궁금해하며 물었다. “아씨, 명정 대군께서 뭐라고 쓰셨을
길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춘산 거리가 나온다.김단이 앞을 보니 길이 정말 사람들로 꽉 막혀 있다는 걸 알았다. 이에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알았네.”그녀는 숙희와 함께 마차에서 내렸고, 마차 기사는 나중에 그들을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이내 그들은 인파 속으로 들어가 춘산 거리를 향해 걸어갔다.춘산 거리에는 아직 다다르지는 않았지만 길가에는 많은 노점들이 늘어서 있었고, 각종 재미있고 신기한 물건들이 팔리고 있었다.숙희는 아직 나이가 어려 그런 것들을 보고는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아씨, 저기 보세요. 저 가면 정말 예쁘지 않습니까?”숙희는 재빠르게 한 가게 앞으로 다가가 그곳에 진열된 전통 연극에 쓰이는 가면을 들었다. “아씨, 이거 쓰시면 정말 예쁘실 거예요!”김단은 별로 관심이 없어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숙희는 벌써 가면을 사버렸다.숙희는 기쁜 표정으로 김단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씨, 한번 써보세요!”숙희가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김단도 거절할 수 없어 가면을 들고 얼굴에 써보았다.그런데 가면을 쓰는 순간, 그녀의 시야에서 숙희의 모습이 사라졌다.김단은 깜짝 놀랐다. 인파 속에서 숙희의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아씨, 이 인형 좀 보세요! 너무 귀여워요!”하지만 사람들로 너무 북적였기에 김단은 숙희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 숙희를 찾아보았지만, 여전히 숙희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알 수 없는 불안감이 김단의 마음을 채웠다.이유는 알 수 없는 서늘한 기운이 발 끝에서부터 올라오는 듯했고, 이는 그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그녀는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숙희야! 어디 있니?”“아씨! 여기요!”숙희의 목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김단은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람들 속에서 손을 흔드는 작은 여인을 발견했다.그제야 안심이 된 그녀는 다급히 숙희 쪽으로 걸어갔다.그런데 그때, 지나가는 사람
또 시작됐네.이 순간, 김단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그 말이었다.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건 바로 임원의 이런 모습이었다.김단이 자신을 쳐다본다는 걸 깨달은 임원은 그제야 억울한 표정으로 다가와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낭자께 인사 드리오.”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인 듯 했지만 그녀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고, 오히려 그런 모습이 사람들을 더 안타깝게 했다.소정원이 먼저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임원 낭자는 어찌 이토록 심성이 고울 수 있단 말이오? 저 자가 분명히 낭자의 약혼자를 유혹하려 했는데 오히려 인사를 건네다니! 나였으면 따귀를 날렸을 거요!”주위에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지만, 소정원의 말에 적지 않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다소 느려졌다.두 여자가 한 남자를 두고 싸우는 장면을 놓치는 건 아까운 일이니 말이다.임원은 두려움에 떨며 김단을 한 번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소한은 눈살을 찌푸리며 싸늘한 눈빛으로 소정원을 바라본 채 말했다.“문제를 일으키고 싶은 거면 먼저 돌아가거라.”소한이 김단 편을 드는 걸 본 소정원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오라버니는 왜 항상 김단 낭자의 편만 드는 거죠? 예전엔 김단 낭자를 아예 신경도 안 썼잖아요! 설마 3년 만에 다시 만났다고 이제야 저 낭자가 마음에 든 건가요?”그녀는 끝으로 갈수록 말을 흐렸고, 자신도 말이 지나쳤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런 그녀의 말에도 소한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사람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소음이 들렸지만, 네 사람 사이에는 기묘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그 침묵은 마치 그날 동굴에서 그녀가 애써 그와 결혼하겠다고 말한 후, 그가 침묵했던 순간과 비슷했다.김단은 눈살을 찌푸리며 무의식 중에 임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아니나 다를까, 임원은 오랫동안 참았던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러자 소정원도 반응해오며 눈을 부릅뜨고 소한을 쳐다본 채 말했다.“오라버니 정신 차리세요! 임원 낭자가 아직 여기 있지 않습니까!”그러자 소한은 눈
“낭자의 몸종은 어디 갔소?” 소한이 다시 입을 열며 차갑게 물었다.김단은 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어디로 도망 갔는지 모르겠사옵니다.”소정원은 믿지 못하겠는지 입을 손으로 가리며 냉소를 터뜨렸다.“흥!”소한은 말을 이었다. “오늘은 사람들이 많으니 낭자가 혼자 다니는 것은 위험하겠소. 같이 가도록 하지요.”그 말을 듣고 김단은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지금 꽃등놀이를 같이 하자는 건가?’옆에 있던 임원은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눈물을 더 쏟아냈다.소정원 또한 더 이상 입을 막을 수 없었는지 큰 소리로 외쳤다. “오라버니!”하지만 방금 경고를 받은 터라 더 이상 말은 덧붙이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바로 그때 숙희가 김단 옆으로 달려왔다. “아씨!”김단이 뒤를 돌아보니 숙희는 손에 온갖 것들을 들고 있었다. 엿이 꽂힌 사탕, 계화떡, 그리고 작은 나무 인형까지. 그녀가 아까 말했던 재미난 물건이 바로 그것인 듯했다.김단은 어이없다는 듯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요즘 며칠간 상을 너무 많이 받았더니 그런 게냐?”오자마자 그녀가 사 온 물건들을 보니 놀라울 뿐이었다.이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많이 사다니...숙희는 머쓱하게 웃으며 소한 일행에게 예를 갖춰 인사한 뒤 김단 곁으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씨, 제가 왜 한참 동안 못 따라오나 했더니, 길 막는 호랑이를 만났던 거였군요.”김단은 순간 소한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그의 얼굴을 살폈다.숙희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소한은 무예를 익힌 무장답게 귀가 밝아 분명 그 말을 들었을 터였다.다행히도 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차갑고 무심한 얼굴이었지만, 어딘가 그의 눈빛만은 평소보다 깊어 보였다.김단은 숙희를 향해 눈을 흘기며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후 소한 일행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저는 명정 대군과 약속이 있사옵니다. 그러니 소 장군님과는 함께하지 못하겠나이다.”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소한의 반
소한이 이 말을 할 때, 눈빛 속의 감정이 너무나도 선명하고 격렬하게 드러났다. 바로 곁에 서 있던 임원조차 그의 눈을 마주하지 못했음에도, 그가 속으로 얼마나 간절한지를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그 간절함은 바로 김단을 향한 것이었다!임원은 그제야 정말로 소한의 마음속에 김단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렇다면, 자신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가슴 깊은 곳에서 억울함이 치솟아 올랐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눈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바닥에 떨어지게 내버려 두었다.그때, 그녀의 눈앞에 느닷없이 손수건이 나타났다.그것은 바로 소한의 손수건이었다.임원의 가슴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아들었다.소한은 담담히 한마디를 건넸다. “이만 가자.”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를 기다리지도 않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임원은 손수건을 손에 쥔 채 그대로 멈춰 서서, 그가 멀어져 가는 크고 우직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 모습을 보며 그녀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남자는 삼처사첩이 당연한 일 아니던가? 소한과 김단은 오래전 혼약을 맺었던 사이였다. 그의 마음속에 아직도 김단이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그렇지 않다면 그는 오히려 무정하고 냉혈한 사내일 것이다.하지만 소한과 김단은 이미 과거의 일이다. 이제 황제께서 직접 명을 내리셨으니, 소한이 아무리 큰 담력을 가졌다고 해도 황제의 아들과 여인을 두고 다툴 수는 없을 것이다.결국, 소한이 맞이할 여인은 자신임이 분명했다.지금 그녀가 손에 쥔 이 손수건처럼, 결국 소한의 모든 것은 자신이 쥐게 될 터였다.그렇게 생각하니, 임원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음을 추슬렀다.임원은 코를 훌쩍이며 손수건을 소매 속에 고이 넣었다. 그리고 발걸음을 재촉하며 소한을 따라갔다. “오라버니, 잠시만요. 저도 함께 가겠나이다.”그녀는 여전히 한결같은 나긋한 목소리였다.그러나 소한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늘 그랬듯,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임원
임원의 얼굴에서 방금 전의 억울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기쁨 가득한 표정이 드러나는 것을 보며 김단은 속으로 냉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임원의 저런 모습이 단지 자신을 의식해 일부러 꾸민 건지, 아니면 소한이 짧은 시간 안에 무슨 수를 써서 달랜 건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었다.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방 문이 갑자기 열렸다.숙희는 급히 김단의 뒤로 물러섰고, 김단 또한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예를 갖추려 했다.그러나 문 앞에 선 사람을 본 순간, 김단의 행동은 멈추고 말았다.명정대군이 아니었다.대신, 다부진 체격의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그들의 체형으로 보아 무예를 익힌 자들임이 분명했다.김단은 즉시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당신들은 누구시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이러는 것이오?”“진산군의 큰 아씨 아니시오?”상대방 중 한 명이 갑자기 말을 받아쳤다.김단의 마음은 한층 더 무거워졌다.처음에는 단순히 방을 잘못 찾아온 무례한 자들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분명 자신을 노리고 온 것임을 깨달았다.하지만, 분명 명정대군이 이곳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던 장소였다.“그대들은 명정대군의 사람이오?”김단은 마지막 남은 희망을 안고 물었다.그러나 두 남자는 서로를 쳐다보며 웃더니, 김단을 향해 말했다.“아씨께서 오해하셨소. 우리 형제는 단지 돈을 받고 남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뿐이오.”두 사람은 명정대군이 보낸 사람이 아니었다.김단의 마음은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그 순간, 김단의 뒤에 있던 숙희가 갑자기 앞으로 뛰쳐나가 한 남자에게 달려들며 외쳤다.“아씨, 어서 도망치십시오!”김단은 깜짝 놀랐으나, 어떤 행동을 취할 새도 없이 숙희는 남자의 손에 힘없이 밀려나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너무나도 간단했다.숙희는 마치 사람이 아니라 자그마한 토끼처럼 힘없이 밀려났고, 그 과정에서 벽에 머리를 부딪히며 정신을 잃게 되었다.찻집 밖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이 작은 방 안에서 벌
두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순간, 김단은 마침내 크게 외쳤다.“멈추시오!”그녀의 가슴은 격렬히 요동치고 있었다. 두려움은 최고조에 달했지만 여전히 스스로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다.그 두 남자는 잠시 그녀의 기세에 눌린 듯 걸음을 멈추었다.김단은 말했다.“방금 내가 이미 말했다시피, 전하께서 나를 명정대군과 혼인하도록 하사하셨소. 나는 이제 명정대군의 약혼자요. 나를 건드리는 것은 단순히 진산군과 대립하는 것만이 아니라, 명정대군과 대립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당금 전하와 적대하는 것이오!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시오. 당신들을 이곳에 보낸 자가 과연 당신들을 지킬 수 있겠소?”그 말을 들은 두 남자는 서로를 쳐다보며 뭔가 생각하는 듯했다. 김단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그러자 두 남자는 김단에게 공손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 말투와 태도도 이전보다 부드러워졌다.“우리 둘은 강호를 떠도는 무사라, 당신들 고관대작들의 원한 관계는 알지 못하오. 우리는 단지 받은 돈에 따라 일을 하는 것뿐이오. 하지만 아씨께선 안심하시오. 우리 둘은 당신을 해칠 생각은 없소. 다만, 아씨께서는 우리와 함께 가주셔야겠소.”그들의 말을 들은 김단은 비로소 숨을 한 번 고를 수 있었다.적어도 지금까지는 이 두 사람이 강호의 의리는 지키는 듯 보였다.그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면, 목숨만은 지킬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당신들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것이오?”김단은 다시 물으며, 그들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얻고자 했다.그러나 두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더는 말씀드릴 수 없으니, 아씨께서 용서하시오.”그 말을 끝으로 두 남자는 다시 다가오려 했다.“잠깐!”김단이 또다시 외쳤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냉혹한 기운이 서려 있지는 않았다.그녀는 더 이상 냉정을 유지할 힘도 없었다.예전에 세답방에서 상대하던 이들은 모두 여자였지만, 이렇게 건장한 남자 두 명과 맞서는 것은 처음이었다.그녀는 남녀 간의 힘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낭자가 마음에 드십니까?”장터 상인이 눈썰미가 좋았던지라, 임원을 발견하고는 바로 그 토끼 모양의 등을 떼어 건네며 말했다.“다섯 냥이면 됩니다.”소한은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은화를 꺼내 상인에게 건넸다.상인은 은화를 받아들고 미소 지으며 등을 소한에게 넘겼다. 하지만 소한이 등을 임원에게 건네기도 전에, 뒤쪽 군중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무언가 큰일이 벌어진 듯했다.임원과 소한 역시 그 소란에 이끌려 시선을 돌렸다.소한은 키가 크기에 임원보다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군중 너머로 그는 얼굴에 피투성이가 된 한 몸종을 발견했다.어딘가 낯익은 얼굴이었다.그녀는...김단의 몸종이었다!순간 놀란 소한은 서둘러 숙희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임원은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소한이 들고 있던 토끼 등이 땅에 떨어져 불길이 일었다.불길은 점점 그녀의 치맛자락을 향해 타오르기 시작했다. 임원은 겁에 질렸지만, 다행히도 상인이 재빠르게 물 한 바가지를 가져와 불을 꺼뜨렸다.그러나 임원은 아직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멍한 눈으로 소한이 달려간 방향을 바라보았다.소한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지 못한 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뒤를 따라갔다.그 사이 소한은 이미 숙희 앞으로 도착해 있었다.“무슨 일이냐? 네 아씨는 어디 있느냐?”숙희는 피투성이 얼굴로 찻집에서 뛰쳐나와 자신의 아씨를 찾고 있었다.그동안 울지도 않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람들 사이를 샅샅이 훑던 그녀는, 소한을 보자마자 그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흑흑! 장군님, 제발 제 아씨를 구해주세요!”숙희는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 자신들의 아씨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소한뿐이라고 생각했다.소한은 눈빛을 매섭게 빛내며 숙희를 번쩍 들어 올렸다.“울지 말고 말해 보거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숙희는 울음을 멈추고 훌쩍이며 찻집에서 있었던 일을 소한에게 전했다.그제야 소한은 김단이 납치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임씨 부인도 얼른 나서 구슬렀다.“대감, 원이가 좋은 뜻으로 한 일인데 결과가 나빴던 거죠. 보세요, 단이가 얘를 때려서 이 지경을 만들어 놨는데, 그런 원이를 어떻게 매정하게 또 벌하실 수가 있어요?”임원의 빨갛게 부어오른 반쪽 얼굴을 보자 진산군은 문득 3년 전 임원이 돌아왔을 때가 떠올랐다. 말라서 거의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임원은 그들이 15년간이나 헤어져 지낸 딸로, 헤어져 있던 15년간 그녀는 내내 고생만 했구나!그래, 그런 아이한테 진산군이 어떻게 매정하게 굴 수 있겠어?심호흡을 하고 진산군은 결국 임학에게 눈을 돌렸다.그러고는 다짜고짜 발로 찼다.“전부 이 못난 놈이 저지른 짓이야!”하지만 이번엔 임학도 벌써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어서 낼름 피했다.진산군은 발길질을 해도 차이는 게 없자 다시 걷어 차려고 하는데, 임학이 임씨 부인 뒤로 쏙 숨을 줄 몰랐다.“어머니, 아들이 어제 발길질을 당해서 지금도 가슴이 이렇게 아픈데! 또 차였다가는 죽을 거예요!”임씨 부인에게 막혀 진산군은 발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임씨 부인은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 분위기로, 그 말은 바로 임학을 용서해 달라는 것이었다.바로 그때 진산군이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부인! 이 못난 놈을 좀 보라고, 당신이 오냐오냐해서 어떻게 됐는지? 당신이 저 놈을 계속 감싸고 돌면 그야말로 수 나인이 말한 대로 우리 가문에 큰 화가 미치고 말 거야!”임씨 부인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없지만, 임학은 오히려 입을 삐죽거렸다.“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세요? 그저 단이와 명정 대군의 혼사를 망치려던 것 뿐이잖아요! 누가 걔더러 황제께 사혼을 명 받고 그렇게 기고만장하래요? 걔가 먼저 어머니와 원이를 울리지 않았으면, 제가 뭘 그렇게까지 했겠어요?”임씨 부인도 맞장구를 쳤다.“단이가 사혼을 받고 확실히 좀 방자하게 굴었죠. 학이가 잘못했지만 저와 원이를 아껴서 그런건데,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는 법 아니겠어요. 대감,
임학의 말에 아픈 곳을 찔렸는지, 임씨 부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임학을 가리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내가 언제 단이를 죽이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고 그래? 내 손으로 걔를 키웠어!”울먹이느라 마지막 말은 제대로 맺지도 못했다.임씨 부인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임학도 당황해서 얼른 잘못했다고 했다.“제가 말 실수를 했습니다. 어머니, 화내지 마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임학이 용서를 구해도 임씨 부인은 듣기 싫다는 듯 임학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어머니의 태도에 임학은 미간을 꿈틀거렸다.그의 눈이 임원에게 향하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사실 똑바로 말하면 단이 자신을 탓해야지, 어떻게 이렇게 모질 수가 있어. 어떻게 원이한테 이렇게 심한 짓을 할 수가 있냐고!”멀쩡한 얼굴을 때려서 이 지경이 되다니!그때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옆방에서 들려왔다.“둘째 아가씨께서 이말 저말 옮기지만 않으셨어도 큰 마님께서 쓰러지실 일은 없었습니다. 큰 아가씨께서 큰 마님을 대신해 둘째 아가씨께 가르침을 줬을 뿐이라, 큰 마님이 깨어나신 뒤에 큰 아가씨 행동을 칭찬하실 거라 생각합니다.”수 나인의 목소리였다.그녀는 이 말을 하며 네 사람 앞으로 오더니, 진산군에게 허리를 굽혀 예를 올렸다.수 나인은 나이가 지긋한 사람으로, 큰 마님이 진산군댁으로 시집올 때 따라와서 진산군이 자라는 것을 쭈욱 지켜봤다. 비록 명목 상은 하인에 불과하나 진산군에게 있어 수 나인은 어른 중 하나였다. 따라서 그도 바로 손을 모아 읍하며 답례했다.이윽고 수 나인이 말을 이었다.“최근 집안에 벌어진 일은 둘째 아가씨 덕분에 쇤네도 큰 마님과 함께 들어 알고 있습니다.”이 말을 듣고 진산군은 뒤를 돌아 임원를 째려봤다.임원이 여전히 불쌍하고 가련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진산군 마음 속에는 울컥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자리에 모두가 오늘 큰 마님이 쓰러진 이유를 알기 때문이었다.진산군이 입을 열가도 전에 수 나인이 말을 계속했
수 나인은 차가운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임씨 부인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게 보였다.‘구원병이라도 청하러 가는 건가?’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임씨 부인이 금방 다시 달려왔으나, 손에 매우 큰 돌멩이를 들고 있었다.수 나인이 너무 놀란 나머지 채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진산군이 소리쳤다.“부인, 안 돼!”하지만 한 발 늦었다.커다란 돌멩이가 세차게 김단의 머리를 내리쳤다.김단은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끼고 귀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더니 예리하게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핏방울이 눈가를 타고 한방울 뚝 떨어지더니 이어서 두방울 세방울….그녀는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하고 서서히 고개를 들어 임씨 부인을 쳐다봤다.선혈로 물든 김단의 두 눈을 본 임씨 부인도 뭔가 깨달았는지 얼른 손에 든 돌멩이를 던져버렸다.“아니, 그게 아니라, 단아. 어미 말 좀 들어봐.” 임씨 부인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이 어미는 그저 네가 그만 뒀으면 해서,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어…”“털썩!”김단은 눈 앞이 깜깜해지더니 바닥에 쿵하고 쓰러졌다.진산군이 제일 먼저 나섰다.“전부 뭘 멍하니 있는 게야! 의원을 불러 오너라! 어서. 아가씨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고!”마당에 시녀들도 수 나인의 지휘 하에 허둥거리긴 했지만 김단을 방 안으로 옮기는데 성공했다.수 나인도 바짝 붙어 들어갔으나,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임씨 부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이때 임씨 부인은 놀란 나머지 사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진산군의 품에 안겨 있었다.임원도 이미 사람들의 부축을 받고 일어났는데 얼굴 반쪽은 팅팅 부어올랐고 입술에는 피가 베어나왔다.그녀는 임씨 부인 곁으로 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흐느낄 뿐이었으나, 임씨 부인은 한 팔로 그녀를 품에 안고 꺼이꺼이 대성통곡했다. 세 식구가 한데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이 사건으로 제일 깊게 상처를 입은 건 바로 자기들 셋인 양 보였다.하지만 화가 치밀어 거의 죽을 뻔한 사람은 큰 마님이고, 머리가 깨져서 피를
김단은 전에 자신을 괴롭히던 무수리들에게 달려들 때처럼 맹렬하게 임원을 덮쳤다. 임씨 부인은 눈 앞에 뭐가 휙 지나갔나 싶었는데, 벌써 임원이 김단 아래 깔려 있었다.“악!”임원이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자, 곧바로 김단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할머니께서 안에서 쉬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할머니께서 쉬시는데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김단의 가슴 속에 활활 타오르는 분노의 불길은 밖으로 표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김단은 한 손으로 임원의 입을 틀어막고, 그녀를 꽉 눌러 발버둥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따귀를 때렸다.김단이 임원을 패주고 싶은지는 오래 됐지만 그동안 억지로 인내해왔다.임원이 비록 악랄하고 못됐어도 그건 전부 성격이 그런 거라 생각했다.임원에게는 임씨 집안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다들 임원을 싸고돌고 임원도 매사에 임씨 집안 사람이 먼저였을 거라고 말이다.그들이 저지른 짓 하나하나가 김단을 아주 깊이 상처입혔어도, 김단은 매번 임원에게 손찌검을 하고 싶은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더이상 참는 건 불가능한 것이, 임원이 그녀의 참을성의 한계를 건드렸기 때문이다!“찰싹!”따귀를 때리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지며 임원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놀라 멈춰서 있던 임씨 부인이 달려나와 김단을 뜯어말렸다.“단아! 이게 무슨 짓이니! 어서 동생을 풀어줘!”하지만 임씨 부인이 김단을 말리는 정도는 사실 아무 소용없었다.예전에 세답방에 있을 때 그녀가 다른 사람을 올라타서 때릴 때, 적어도 열댓명의 나인들이 달려들어 그녀를 말렸다.누구는 그녀의 목을 잡아 조르고, 누구는 그녀의 머리끄댕이를 낚아채고, 전부 그녀가 상대의 몸에서 내려오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김단은 철천지원수에게 대항하는 능력을 키워,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절대로 쉽게 놔 주는 법이 없었다!임씨 부인이 몇 번 잡아당겨봤지만 김단을 끌어내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 김단은 임원의 얼굴에
“맞아 맞아, 다들 좀 비켜봐!”하녀들이 수선을 떠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하지만 그 순간 김단은 오히려 따스함을 느꼈다. 그녀는 줄곧 이 집은 너무 차갑다고 생각했다. 빙고처럼 차가워서, 오직 할머니만 그녀의 몸을 따스하게 덥혀주며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분이셨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께서 지금 편찮으시므로, 그녀의 억울한 사정이나 고통을 할머니께 얘기해 충격받으시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오늘밤 자기 혼자 이 감정을 삭여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별당에 발을 들이자마자 마음이 벌써 차갑지 않아졌다.게다가 그녀가 다친 곳은 손인데, 숙희는 굳이 그녀를 방까지 부축하겠다고 우기기까지 했다.자리에 막 앉자 하녀 하나가 뜨거운 차를 가져왔다.“아가씨, 오늘 분명 많이 놀라셨을 거예요. 이건 쇤네가 끓인 안정차로, 마시고 편히 한숨 주무시고 나면 내일 아침엔 모든 일이 다 끝나 있을 겁니다!”“쇤네 아가씨께서 세수 하시게 뜨거운 물 떠올 게요.”“아가씨, 이불 따듯하게 데워놨으니 차 드시고 머리 빗으신 뒤 푹 쉬세요.”이런 일은 전부 숙희가 하던 것인데, 숙희도 다치자 어린 하녀들이 숙희의 일을 자진해서 맡아준 것이다.아마도 어린 하녀들이 너무 열정적이기 때문일 거야. 김단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숙희에게 가서 좀 쉬라고 하고 차를 마신 뒤, 하녀들이 머리를 빗겨주는 가운데 자리에 누웠다.좋은 냄새가 나는 부드러운 이부자리에 눕자, 복잡한 머리 속까지 이불 속에 쏙 넣고 싶었다. 임씨 집안의 모든 사람을 머리 속에서 끄집어 내고, 자신은 진산군의 금지옥엽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난 임씨 집안 사람과 아무 관계도 없어!’안정차 효과가 상당히 괜찮았다.김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지만 밤새 꿈에 시달렸다.꿈 속에서 그녀는 두 명의 건장한 괴한에게 쫓기고 있었다. 막 달아나려는 순간 갑자기 임학이 나타나 그녀를 심연으로 밀어넣었다.김단은 놀라서 꿈에서 깨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사이, 방 밖에 숙희가 놀라서
이 말을 마친 뒤 김단은 임학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가득한 것을 똑똑히 봤다.아주 웃겨!김단을 망가뜨리려고 할 때는 그렇게 말발을 세우고 당당했으면서, 이제 자기가 끌려들어가니까 당황하는 꼴 좀 봐!임학뿐 아니라 임씨 집안 사람 거의 다 당황했다.오히려 계속 질질 짜던 임원이 일어서서 김단에게 말했다.“언니 오늘 큰 일을 당했으니 일찍 돌아가서 쉬어! 시간도 꽤 됐으니, 무슨 일이 있으면 내일 다시 얘기하는 게 어때?”임원의 말을 듣고 임씨 부인도 얼른 맞장구를 쳤다.“그래 그래, 단아, 봐 날이 벌써 이렇게 저물었구나. 소 장군까지 이 일에 말려들어 아직 돌아가지도 못하셨지 뭐니. 우리 내일 일찍 다시 논의하는 게 어떨까?”김단은 그제서야 대청에 아직도 소한이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를 건너다봤다.대청의 촛불이 소한의 냉담한 얼굴 위에 일렁이자, 깎은 듯 날카로운 이목구비는 전보다 더 냉정하게 보였다.소한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어두운 눈동자에 김단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용솟음치고 있었다.김단은 왠지 가슴이 시큰거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그녀도 오늘 엄청난 일을 당해, 기력이 하나도 없는 게 사실이었다.만약 임씨 집안 사람들과 말다툼을 계속해 나간다면 먼저 쓰러지는 쪽은 그녀 자신일 게 틀림없었다.하룻밤 쉬어도 그녀는 절대 임학을 가만 두지 않겠어!이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소한에게 걸어가는 것을 본 임원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김단이 모든 걸 팽개치고 소한 품에 안기기라도 할까봐, 김단과 소한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자 임원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언니!”임원의 목소리에 두려움과 당황스러움이 묻어나는 걸 모두가 느꼈으나, 김단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곧장 소한 앞으로 걸어갔다.거리가 꽤 가까워졌다.임원에게 좀 삐졌던 김단은 임원의 두려움에 찬 외침에 속이 시원했지만 결국 도를 넘는 행동은 하지 않고 소한에게 감사의 예를 표했다.“오늘 정암 종사관께서 구해
“왜냐면 절 해치는 편이 쉽기 때문이죠, 절 속이는 쪽이 쉬우니까요.”“미래의 제 행복을 위해 천 냥이란 거금을 써 가며, 장정 둘을 고용해 제 정절을 더럽히고자 했다는 건데, 본인이 생각해도 웃기지 않으세요?”“임학, 토 나올 것 같은 표정 집어치워요. 당신은 애초에 저따위한테 관심조차 없었으니까. 그저 제가 당신보다 높은 자리에 서는 게 싫었던 거잖아요! 조금도 저를 위한 게 아니라, 제가 잘 되는 꼴이 못마땅했던 거죠!”가볍게 몇 마디 던지는 것에 불과했지만, 임학의 마음 속 가장 추악학 구석을 들춰냈다.임학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네가 잘 되는 걸 내가 못마땅해할 이유가 어딨어? 명정 대군께 시집가는 게 좋은 일인 것 같아? 그리고 네가 정절 좀 잃는 게 뭐? 우리 집안이 너 하나 시집보내는 거 못 받쳐줄까봐 겁나?”말이 떨어지자 대청 안은 한동안 침묵에 잠겨, 임원이 훌쩍이는 소리 외에 모두 숨소리도 내지 않는 듯했다.김단의 주변을 쭉 둘러보고 임씨 부인에게 눈길을 주고, 다시 진산군을 쳐다보고 마지막으로 암학을 향해 낮은 소리로 비웃었다.“이제야 알겠습니다. 진산군 마님과 정부인께서는 아슬아슬 위태롭던 지위에서 진산군 가문을 지키기 위해, 제 치마폭을 선택하셨던 것이로군요.”살랑살랑 나부끼는 한마디 말이, 모든 임씨 가문 사람의 얼굴을 후려쳤다.김단의 비아냥거리는 눈빛이 한층 심해졌다.“당신처럼 머리에 든 게 없는 아들을 뒀으니, 진산군 가문이 자산몰수와 멸문을 당하는 것도 시간문제겠군요.”“김단 너 지금 뭐라는 거야!” 김단이 진산군 집안을 저주하고 있다고 생각해 임학은 분노했다.그런데 오히려 진산군이 자신을 꾸짖을 줄 생각도 못했다.“이 짐승만도 못한 놈, 닥치지 못할까!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아직도 네 동생에게 가타부타할 낯짝이 있어? 네 동생이 죄를 묻지 않기로 했으니 망정이지, 넌 벌써 감옥에 끌려가고도 남았어!”‘응?’거참 이상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임학은 진산군의 꾸중에 입을 다물고 가슴을 움켜쥔 채
임학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오히려 임씨 부인이 몸을 떨며 한걸음 한걸음 임학 곁으로 걸어가, 임학의 소매를 잡아 당겼다.“학이야, 어서 동생에게 이 모든 게 오해라고 얘기하렴.”임학은 차가운 얼굴로 침묵했다.그러나 그가 침묵하면 할수록 애가 타는 임씨 부인이 더욱 세게 임학의 옷자락을 잡아 당기다 못해 거의 밀다시피했다.“얘기 해! 어서 얘기하라니까!”목소리가 흐느끼고 있었다.임씨 부인이 이렇게 흥분한 것을 보고 임원이 얼른 다가와 임씨 부인을 끌어 안았다.“어머니, 이러시지 마세요. 앉으셔서 오라버니가 천천히 얘기하게 두세요. 전 오라버니께 반드시 무슨 이유가 있는 게 확실하다고 믿어요!”이 말을 듣고 있던 김단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임원을 바라봤다.임학은 김단의 정절을 더럽히고자 했던 진범이었다. 그런 임학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니, 이게 도대체 말이야 방귀야? 두 사람은 어떻게 돼먹은 인간들이지?임원은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그따위 말을 주워섬길 수가 있단 말인가?하지만 임학은 임원의 말에 정신을 차린 듯했다.심지어 감동의 눈빛으로 임원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김단을 노려봤다.“그래, 이 일은 확실히 내가 한 거야.”그는 떳떳하고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편지는 내가 뜯었고, 복래 차관이라고 내가 바꿨어. 그 두 명의 강호인도 내가 고용했지! 하지만 김단,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봐, 두 사람이 널 해쳤어?”그는 두 사람에게 절대로 김단을 해쳐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에 김단이 입은 상처는 스스로 밧줄을 빠져나오다 생겼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얌전히 날이 밝기만 기다리고 있었으면 아무 상처없이 돌아왔을 텐데, 괜히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들게 뭐야!임학은 사건은 전부 김단 본인이 자초한 것처럼 말했다.전에 자신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얼굴이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을 보자, 김단은 아주 세게 따귀를 갈겨 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정말 귓방망이를 날려도 시원치 않은데, 임학의 말에 기가
어쨌든 여자에게 정절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니까.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모두 그게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소한은 진산군의 인사에 화답하고 김단을 향해 말했다.“명정 대군은 연래 차관이라고 하셨는데, 어째서 복래 차관으로 바뀐 겁니까?”김단은 한 켠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는데, 손에 상처는 처치를 마쳤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여전히 아팠다. 의원 말로는 상처가 심각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볍게 여겨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적어도 한 달 간은 손에 힘을 주지 말라고 했다.이때 소한의 질문을 받고 김단은 일어나 소한에게 말했다.“제가 서신을 받았을 때 서신에 분명 복래 차관이라고 쓰여있었습니다. 그 서신은 아직 분명히 제 화장대에 들어 있습니다.”여기까지 말하고 김단은 고개를 돌려 임학을 바라봤다.임학은 별로 멀지 않은 후미진 구석에 서 있었는데, 사람들 눈에 띌까봐 몸을 사리고 있는 듯했다.하지만 임학이 들어올 때 벌써 김단은 그를 눈여겨 봐뒀다.그녀가 사뿐사뿐 임학에게 걸어갔다.“도련님께서는 오늘 아주 얌전하시네요. 어떻게 된 거죠? 무슨 일 있으셨어요?”임씨 부인은 김단이 왜 갑자기 임학에게 관심을 보이는지 어리둥절해 하며 그녀의 앞을 막아서려 했다.“네가 아주 큰 봉변을 당했는데 가만 앉아서 쉴 일이지, 오라비 일에는 신경쓰지 않아도 돼.”하지만 김단은 임씨 부인을 밀쳐냈다.손에 힘을 전혀 주지 않고 임씨 부인의 손은 뿌리친 뒤 가려던 것 뿐인데, 임씨 부인 뒤에 하필 태사의가 놓여 있어 김단에게 밀쳐진 순간 태사의에 철퍼덕 주저앉는 꼴이 되었다.이를 보고 임원이 바로 달려나왔다.“언니 이게 뭐하는 짓이야? 어머니는 언니를 걱정해서 그런 거잖아! 어떻게 이럴수가….”“닥쳐!”김단이 날카롭게 소리치며 임원을 노려봤다.“이 일에 네가 관련이 됐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네가 한마디만 더 지껄였다간 맞을 줄 알아.”임원은 무공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녀가 임원을 때리기로 마음 먹으면 식은 죽 먹기였다.그러나 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