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은 정유이의 질문에 당황했다.그동안 의산적으로 무시해왔던 불안감이 순식간에 폭발했다.김단의 얼굴은 더 이상 평온하지 못했고, 이마를 찌푸리며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뭔가를 알고 있는 것이오?”만약 정유이가 정씨 부부처럼 아무것도 몰랐다면, 지금처럼 그녀에게 묻지 않을 것이다.김단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본 정유이는 자신의 어금니를 꽉 물었다. 마음 속 외침이 입안 머물다 겨우 입을 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은, 오라버니는 낭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간 것이라는 것이오!”김단은 정유이의 말을 듣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세히 묻기도 전에 정유이가 이어서 말했다. “오라버니는 낭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소. 낭자를 괴롭히는 사람을 없애기 위해 군 공을 세워 낭자를 지키려는 것이오! 낭자가 없었다면 오라버니는 이번에 산적떼 토벌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오.”그 말에 김단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그녀가 생각했던 대로였다.정암이 갑자기 토벌에 나간 것이 그녀와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소매 속에 있던 두 주먹을 꽉 쥐며, 김단은 마음이 흔들렸다.정유이도 두 손을 꼭 쥐었다. 너무 세게 쥔 나머지 손이 하얗게 될 정도였다.마음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김단의 붉어진 눈을 보고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마지막으로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오라버니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 좋을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낭자를 용서하지 않을테니!”정유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섰다.문을 나서던 와중, 숙희와 부딪혔다.하지만 정유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금세 모습을 감추었다.숙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가씨, 정씨 아가씨께서 왜 우시는 겁니까?”운다고?김단은 흠칫 놀랐다. 오늘 정유이가 할 말이 더 있었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정유이는 분명 무언가를 더 알고 있는 것이다!정암이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아직 당우리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부터 울
김단은 미간을 찌푸렸고, 직감적으로 이상함을 느꼈다. “그럼 지금 어디 계시지?”그런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2층 방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그 순간, 한 남자가 방에서 밖으로 밀려 나와 복도에 나뒹굴었다.서화청이었다!정유이의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왔고, 매우 거칠고 화가 난 듯했다. “너 같은 놈이 감히 나에게 시비를 걸어? 밥값이 아깝다고 음식에 벌레가 있다고 하질 않나, 쳐다도 보질 못할 새언니를 욕하질 않나, 너야말로 몹쓸 놈이고 집안 전체가 문제다!”말이 끝나자마자 의자가 방에서 날아와 서화청에게 적중했다.서화청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나왔다.정유이는 허리에 손을 짚고 방에서 나와 서화청을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 다시 한번 우리 새언니 욕하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서화청은 며칠 전 우연히 정암의 여동생이 부엌에서 일한다는 소식을 듣고, 예전에 겪었던 굴욕을 떠올리며 정유이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했다.그래서 음식에 벌레가 있다고 거짓말하며 주방에 항의했고, 정유이를 불러냈다.하지만 정유이는 예상외로 강하고 씩씩했다. 게다가 무술까지 갖추고 있었기에 그는 조금도 이득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낭패를 당한 것이다!화가 난 서화청은 소리쳤다. “네, 네가 감히 나를 때려? 두고 보거라, 내 사람을 시켜 네놈을 잡아들일 테니!”서화청은 호조판서의 서자였기 때문에 평범한 백성 한 명 괴롭히는 것쯤은 쉬운 일이었다.그런데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습니다. 호조판서께서 이 일을 아시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한번 지켜보지요.”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서화청은 고개를 돌렸고, 김단은 2층 계단에서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 종사관님은 나라의 명령을 받고 산적떼를 토벌하러 가셨는데, 도련님은 여기서 그 분의 가족들을 괴롭히고 계시니, 이는 호조판서님께서 교육하신 것인지 여쭤보고 싶군요. 듣자하니, 호조판서님께서 요즘 좋은 물건을 많이 받으셨다지요?”호조판서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자리
김단과 정유이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무슨 헛소리야!” 정유이는 화가 나서 서화청을 다시 발로 차고 싶었지만, 이성을 유지하고 참았다.서화청은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저런 말을 하는 것이다!김단도 미간을 찌푸리고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힌 채 나즈막하게 물었다. “그건 어떻게 아는 것입니까?”“우리 아버지가 얘기해 주신 것이오!” 두 여인이 모두 당황하자 서화청은 기세등등한 표정을 보였다. “주상 전하께서 어제 소식을 받기를, 정암이 사람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다가 크게 패하고 전멸했다지 않소!"서화청은 마지막에 '전멸'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 두 글자는 김단의 가슴에 큰 돌덩이가 되어 떨어진 듯,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김단은 그 말에 너무 놀라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정유이는 참다못해 서화청에게 달려들었다. “헛소리하지 마! 감히 우리 오라버니를 저주하다니!”정유이의 작은 주먹은 매우 강력했고, 서화청은 두 차례 맞고 어지러워하더니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정유이가 다시 서화청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김단은 숙희를 불러 정유이를 말리라고 했다. “숙희야, 정씨 낭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거라!”그리고 그녀는 정유이에게 말했다. “조급해 하지 마시오. 내가 군대에 가서 소식을 알아보겠소.”숙희가 정유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고, 김단도 곧바로 뒤따라 나갔다.김단은 말을 빌려 서둘러 군영으로 향했다.비록 그녀는 소한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소한에게서만 진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당우리의 산적들이 포악하긴 하다만, 전멸했다는 것은…믿기 어렵지 않은가?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김단의 머릿속에는 정암이 피투성이가 된 모습이 떠올랐고, 마음이 불안해졌다.간신히 군영 앞에 도착했다.문을 지키는 병사는 김단을 알아보고 인사하며 말했다. “김씨 아가씨, 장군님은 어젯밤에 떠나셨습니다.”“떠나셨다고요?” 김단은 당황한 나머지 대답을 알면서도 되물었다. “어디로 가셨죠?”“당우
여만안은 소한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방 안에는 피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침대에는 단 한 사람, 노상이 누워 있었다. 노상은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고, 소한을 보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흐릿했던 그의 눈동자가 빛을 냈다.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침대에서 일어나 거의 기어가다시피 하며 소한 앞으로 갔다. “소인 장군님을 뵙습니다!”목소리가 떨렸고, 슬픔이 묻어났다.소한은 노상의 왼쪽 팔을 바라봤다.노상이 격하게 움직이자 옷소매가 흔들렸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그의 왼팔은 어깨뼈 부근에서 잘려 나가 있었다. 소한의 안색은 흙빛으로 변했고, 주변의 공기가 차가워졌다. 소한은 노상을 일으켜 세우고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설명해.”노상은 오랫동안 소한을 따라다녔기 때문에 소한의 말 뜻을 알고 있었다. “저희는 10일 전에 당우리에 도착하여 육맥산 지형을 파악한 후 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산적들이 마치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지형을 이용해 저희를 기습했습니다. 왕여 종사관은 현장에서 전사했고, 정암 종사관이 목숨을 걸고 저를 지켜주지 않았다면 저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것입니다!”소한의 차가웠던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옆에 있던 여만안은 겁에 질려 몸을 움츠렸지만, 소한에게 아부를 떨기 위해 입을 열었다. “산적들이 이틀 전에 편지를 보내와서 정 종사관님을 살려주는 대신 금 1만 냥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장군님, 걱정 마십시오. 저희 분당현이 돈이 부족하긴 하지만, 백성들에게 돈을 모으라고 하여 정 종사관님을 구해낼 것입니다!”말이 떨어지자 마자 싸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소한은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여만안의 어깨를 찔렀다. “여 현령, 잘도 백성들의 돈을 빼앗는구려.”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왕여는 전사했고, 노상은 팔을 잃었으며, 정암은 생사가 불확실하다.여만안은 이런 일을 조정에 보고하지 않고, 오히려 산적들에게 돈을 대주려 하고 있다!여만안은 고통스러워하며 얼굴을 찌푸리고는 변명
육맥산은 당우리 동쪽에 위치한 산으로, 겹겹이 쌓인 봉우리가 마치 여섯 개의 봉우리처럼 보여 육맥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산세가 험준하여 방어하기 쉽고 공격하기 어려운 데다, 산맥이 연결되어 있어 산적들이 다른 산으로 쉽게 도망칠 수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산적들이 활개를 칠 수 있었다. 물론 이에는 관아와 산적간의 결탁이 있다는 이유도 있었다.깊은 밤.산채 안은 유난히 시끌벅적했다.산적들은 모닥불을 피우고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때 한 산적이 물었다. “두목, 여만안이 약속한 만 냥을 정말 가져올까요?”산적 두목은 한 손에 양다리를 들고 다른 한 손에 술병을 든 채 흐릿한 눈빛으로 감옥에 갇힌 남자를 바라보며 비웃었다.“여만안이 말하길, 이번에 온 놈들은 모두 소한의 부하들이라고 했다. 특히 심장에 화살을 맞은 놈, 팔이 잘린 놈, 그리고 감옥에 있는 놈, 이 셋 모두 소한의 부하 장수들이라고 했어.”이 말에 다른 산적이 놀라며 물었다. “소한? 돌궐족의 진형을 깨고 우두머리를 죽였다는 그 젊은 장군 말이십니까?”산적 두목의 표정이 굳어졌다.다른 산적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너무 미화시키는 거 아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면 그 사람 부하가 우리에게 잡혔겠어?”이 말을 들은 산적 두목은 다시 기분이 풀렸다.그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소 씨 놈 부하 장수 셋 모두 우리에게 당했다. 우리가 이 세 명 중 한 명을 인질로 잡고 있는데, 네가 보기에 소한이 돈을 안 가져올 것 같으냐?”산적들은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소한이 똑똑한 사람이라면 돈을 주고 사람을 데려가겠죠! 하지만 후환이 두렵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을 데리고 복수하러 오면 어떡합니까?!”“겁낼 것 없어. 그 놈이 온다면 여만안이 우리에게 알려줄 테니까. 그때 가서 똑같이 놈을 붙잡아 오면 돼!”“맞아! 그때가 되면 놈을 산채로 잡아 왕에게서 돈을 뜯어 내는 거야!”“하하, 그 말이 맞네! 왕에게서 돈을 받아내자! 원래 우리 몫이
공격!순간, 어둠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 칼날을 번쩍이며 산적들을 향해 공격했다.산적들은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다.하지만 오랜 시간 싸움을 해온 산적들은 두목의 명령에 따라 곧장 정신을 차리고 무기를 꺼내 들고 맞섰다.전투는 순식간에 격렬해졌다.소한은 재빨리 갇혀 있는 정암에게 다가가 칼로 쇠사슬을 끊어버렸다.그때 산적 두목이 이 상황을 눈치채었고, 옆에 있던 칼을 들고 소한을 향해 공격해 왔다.소한은 뒤에서 다가오는 살기를 느끼고 몸을 피하며 장칼을 휘둘러 산적 두목을 공격했다.그런데 놀랍게도, 산적 두목의 무술 실력은 소한과 비슷하였다.두 사람은 팽팽하게 맞서 싸우며 쉽게 승부를 내지 못했다.소한은 순간 정암이 우리에서 나오자마자 다른 산적이 정암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았다.다행히도, 정암에게는 칼이 있었고, 공격을 겨우 막아낼 수 있었다.하지만 정암은 7일 동안 감옥에 갇혀 있으며 심한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몸이 매우 약해져있었다. 그는 한 번의 공격을 막아내고 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정암에게 다시 위협이 가해지자, 소한은 얼굴을 찌푸리고 산적 두목을 발로 차 버리고 정암에게 달려갔다.소한은 칼로 산적 두목의 가슴을 찔렀고, 눈빛에 힘이 없는 정암을 보고 말했다. “안전한 곳으로 피해라!”소한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산적 두목이 다시 공격해 왔다.소한은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 없이 맞서 싸웠다.주변에는 불길이 치솟았다.산적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했지만, 몇몇 강한 산적들은 소한의 부하들을 죽인 뒤 소한을 향해 공격해 왔다.잠시 뒤, 소한은 네 명의 산적들에게 포위되었다.산적 두목은 소한을 쏘아보며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하, 네놈이 그 영웅이라고? 이런 수준을 가지고?”그들은 진정한 영웅은 과거 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소한은 왜 이들이 자신에게 분노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세 명의 부하 장군이 이곳에서 죽은 것을 떠올리면 자신의 분노가
조선의 어느 음력 12월 28일.차가운 겨울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오전에 시작했던 빨래를 간신히 마친 김단은, 얼어붙어 감각을 잃은 파랗게 질린 손을 닦을 틈도 없이 세답방의 나인에게 불려갔다.“어서 가보게. 진산군댁에서 자네를 데리러 왔네.”나인의 말에 김단은 자리에 얼어붙었다.진산군댁, 그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단어였다.한때 그녀도 그 댁의 귀한 여식으로 15년을 자랐었다. 3년 전, 자기가 진짜 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정2품 진산군댁의 안주인인 정부인 임씨와 같은 해에 출산했던 유모는 임종 직전, 죄책감이라도 들었는지 자기가 두 아이를 바꿨다는 진실을 털어놓았다. 김단은 그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부부가 자신의 친딸, 임원을 상봉한 것에 감격스러워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했다.서로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녀와 부녀의 모습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15년간,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을 한 번도 친부모가 아니라고 의심한 적 없었다.진산군은 안색이 어두워진 김단에게 앞으로도 이 집안의 여식으로 남아 임원의 언니로서 살아가도 좋다고 했다. 임씨도 그녀를 친딸처럼 대하겠다고 약조했다.하나, 궁궐에 들어 공주자가의 유리그릇을 깨트린 임원을 발견한 부부는, 임원의 몸종이 김단을 모함할 때조차 임씨 부부는 망설임 없이 수양딸이었던 김단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웠다. 공주는 분에 겨워 그녀를 세답방의 무수리로 쫓아냈으나, 한때 부모님이었던 그들은 임원의 옆에 서서 멀뚱히 지켜보기만 했다.그날, 김단은 그들이 자신의 부모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멍하니 서서 뭐 하시오? 그 댁 도련님께서 기다리고 계시오.”나인의 독촉 소리에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세답방의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엔 한 사내가 서 있었다.희미한 햇살이 비친 문 쪽에서 홀로 고고히 서 있는 사내의 얼굴을 마주한 김단의 눈빛이 흔들렸다. 오랫동안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던 가슴이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은
그 목소리에 김단은 걸음을 멈추었다. 오래전 무감각해진 줄 알았던 그녀의 심장은 익숙한 목소리에 활력을 얻은 듯 천천히 뛰었다.그녀는 천천히 마차 안의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린 나이에 호국 장군이 된 그녀의 옛 정혼자, 소한이다. 그녀는 얼른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장군님이시군요.”미간을 살짝 찌푸린 소한의 시선이 다시 그녀의 발목을 향했다. “낭자, 진산군댁에 가는 길이었소?”고개를 숙인 그녀는 자신의 무릎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한동안 침묵이 흘렀다.소한은 그녀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그가 알고 있던 그녀는 항상 곁에서 재잘재잘 떠드는 여인이었다.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는 집안에서 정해준 혼사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인내심을 가지고 견뎠었다. 가끔은 지치지 않고 떠드는 그녀의 입을 막기 위해 떡을 집어넣기도 했지만, 그 순간조차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었던 그녀였다. 떡으로 입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이 반 시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활달했던 여인이었다. 못 본 사이, 김단의 입은 굳게 닫혀있었고 전처럼 떠들지 않았다. 마차에서 내린 소한은 그녀를 부축하는 대신 냉랭하게 말했다. “마침, 궐에 들던 길이었소. 이 마차를 타고 돌아가시오.”그녀가 거절하기도 전에 그가 한마디 더 했다. “다쳤으면 무리하지 마시오. 본인은 몰라도, 그 댁 큰 마님께서 속상해할 것이오.”그의 목소리에는 반박할 수 없는 위엄이 담겨 있었다. 조모님은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가 무수리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조모님께서 중전마마께 간청했기 때문이다. 만약 다리를 절뚝거리며 힘겹게 돌아온 그녀를 보게 되면, 조모님의 마음도 편치 않을 것이라 여긴 김단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쇤네, 장군님께 감읍할 따름입니다.”말을 마친 김단은 천천히 마차로 다가갔다.가까이선 본 소한은 3년 전과 달리 키가 훌쩍 커져 있었고 체격도 다부져졌다.최근 전쟁에서 승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직도 전
공격!순간, 어둠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 칼날을 번쩍이며 산적들을 향해 공격했다.산적들은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다.하지만 오랜 시간 싸움을 해온 산적들은 두목의 명령에 따라 곧장 정신을 차리고 무기를 꺼내 들고 맞섰다.전투는 순식간에 격렬해졌다.소한은 재빨리 갇혀 있는 정암에게 다가가 칼로 쇠사슬을 끊어버렸다.그때 산적 두목이 이 상황을 눈치채었고, 옆에 있던 칼을 들고 소한을 향해 공격해 왔다.소한은 뒤에서 다가오는 살기를 느끼고 몸을 피하며 장칼을 휘둘러 산적 두목을 공격했다.그런데 놀랍게도, 산적 두목의 무술 실력은 소한과 비슷하였다.두 사람은 팽팽하게 맞서 싸우며 쉽게 승부를 내지 못했다.소한은 순간 정암이 우리에서 나오자마자 다른 산적이 정암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았다.다행히도, 정암에게는 칼이 있었고, 공격을 겨우 막아낼 수 있었다.하지만 정암은 7일 동안 감옥에 갇혀 있으며 심한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몸이 매우 약해져있었다. 그는 한 번의 공격을 막아내고 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정암에게 다시 위협이 가해지자, 소한은 얼굴을 찌푸리고 산적 두목을 발로 차 버리고 정암에게 달려갔다.소한은 칼로 산적 두목의 가슴을 찔렀고, 눈빛에 힘이 없는 정암을 보고 말했다. “안전한 곳으로 피해라!”소한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산적 두목이 다시 공격해 왔다.소한은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 없이 맞서 싸웠다.주변에는 불길이 치솟았다.산적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했지만, 몇몇 강한 산적들은 소한의 부하들을 죽인 뒤 소한을 향해 공격해 왔다.잠시 뒤, 소한은 네 명의 산적들에게 포위되었다.산적 두목은 소한을 쏘아보며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하, 네놈이 그 영웅이라고? 이런 수준을 가지고?”그들은 진정한 영웅은 과거 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소한은 왜 이들이 자신에게 분노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세 명의 부하 장군이 이곳에서 죽은 것을 떠올리면 자신의 분노가
육맥산은 당우리 동쪽에 위치한 산으로, 겹겹이 쌓인 봉우리가 마치 여섯 개의 봉우리처럼 보여 육맥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산세가 험준하여 방어하기 쉽고 공격하기 어려운 데다, 산맥이 연결되어 있어 산적들이 다른 산으로 쉽게 도망칠 수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산적들이 활개를 칠 수 있었다. 물론 이에는 관아와 산적간의 결탁이 있다는 이유도 있었다.깊은 밤.산채 안은 유난히 시끌벅적했다.산적들은 모닥불을 피우고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때 한 산적이 물었다. “두목, 여만안이 약속한 만 냥을 정말 가져올까요?”산적 두목은 한 손에 양다리를 들고 다른 한 손에 술병을 든 채 흐릿한 눈빛으로 감옥에 갇힌 남자를 바라보며 비웃었다.“여만안이 말하길, 이번에 온 놈들은 모두 소한의 부하들이라고 했다. 특히 심장에 화살을 맞은 놈, 팔이 잘린 놈, 그리고 감옥에 있는 놈, 이 셋 모두 소한의 부하 장수들이라고 했어.”이 말에 다른 산적이 놀라며 물었다. “소한? 돌궐족의 진형을 깨고 우두머리를 죽였다는 그 젊은 장군 말이십니까?”산적 두목의 표정이 굳어졌다.다른 산적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너무 미화시키는 거 아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면 그 사람 부하가 우리에게 잡혔겠어?”이 말을 들은 산적 두목은 다시 기분이 풀렸다.그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소 씨 놈 부하 장수 셋 모두 우리에게 당했다. 우리가 이 세 명 중 한 명을 인질로 잡고 있는데, 네가 보기에 소한이 돈을 안 가져올 것 같으냐?”산적들은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소한이 똑똑한 사람이라면 돈을 주고 사람을 데려가겠죠! 하지만 후환이 두렵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을 데리고 복수하러 오면 어떡합니까?!”“겁낼 것 없어. 그 놈이 온다면 여만안이 우리에게 알려줄 테니까. 그때 가서 똑같이 놈을 붙잡아 오면 돼!”“맞아! 그때가 되면 놈을 산채로 잡아 왕에게서 돈을 뜯어 내는 거야!”“하하, 그 말이 맞네! 왕에게서 돈을 받아내자! 원래 우리 몫이
여만안은 소한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방 안에는 피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침대에는 단 한 사람, 노상이 누워 있었다. 노상은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고, 소한을 보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흐릿했던 그의 눈동자가 빛을 냈다.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침대에서 일어나 거의 기어가다시피 하며 소한 앞으로 갔다. “소인 장군님을 뵙습니다!”목소리가 떨렸고, 슬픔이 묻어났다.소한은 노상의 왼쪽 팔을 바라봤다.노상이 격하게 움직이자 옷소매가 흔들렸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그의 왼팔은 어깨뼈 부근에서 잘려 나가 있었다. 소한의 안색은 흙빛으로 변했고, 주변의 공기가 차가워졌다. 소한은 노상을 일으켜 세우고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설명해.”노상은 오랫동안 소한을 따라다녔기 때문에 소한의 말 뜻을 알고 있었다. “저희는 10일 전에 당우리에 도착하여 육맥산 지형을 파악한 후 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산적들이 마치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지형을 이용해 저희를 기습했습니다. 왕여 종사관은 현장에서 전사했고, 정암 종사관이 목숨을 걸고 저를 지켜주지 않았다면 저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것입니다!”소한의 차가웠던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옆에 있던 여만안은 겁에 질려 몸을 움츠렸지만, 소한에게 아부를 떨기 위해 입을 열었다. “산적들이 이틀 전에 편지를 보내와서 정 종사관님을 살려주는 대신 금 1만 냥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장군님, 걱정 마십시오. 저희 분당현이 돈이 부족하긴 하지만, 백성들에게 돈을 모으라고 하여 정 종사관님을 구해낼 것입니다!”말이 떨어지자 마자 싸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소한은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여만안의 어깨를 찔렀다. “여 현령, 잘도 백성들의 돈을 빼앗는구려.”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왕여는 전사했고, 노상은 팔을 잃었으며, 정암은 생사가 불확실하다.여만안은 이런 일을 조정에 보고하지 않고, 오히려 산적들에게 돈을 대주려 하고 있다!여만안은 고통스러워하며 얼굴을 찌푸리고는 변명
김단과 정유이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무슨 헛소리야!” 정유이는 화가 나서 서화청을 다시 발로 차고 싶었지만, 이성을 유지하고 참았다.서화청은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저런 말을 하는 것이다!김단도 미간을 찌푸리고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힌 채 나즈막하게 물었다. “그건 어떻게 아는 것입니까?”“우리 아버지가 얘기해 주신 것이오!” 두 여인이 모두 당황하자 서화청은 기세등등한 표정을 보였다. “주상 전하께서 어제 소식을 받기를, 정암이 사람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다가 크게 패하고 전멸했다지 않소!"서화청은 마지막에 '전멸'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 두 글자는 김단의 가슴에 큰 돌덩이가 되어 떨어진 듯,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김단은 그 말에 너무 놀라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정유이는 참다못해 서화청에게 달려들었다. “헛소리하지 마! 감히 우리 오라버니를 저주하다니!”정유이의 작은 주먹은 매우 강력했고, 서화청은 두 차례 맞고 어지러워하더니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정유이가 다시 서화청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김단은 숙희를 불러 정유이를 말리라고 했다. “숙희야, 정씨 낭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거라!”그리고 그녀는 정유이에게 말했다. “조급해 하지 마시오. 내가 군대에 가서 소식을 알아보겠소.”숙희가 정유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고, 김단도 곧바로 뒤따라 나갔다.김단은 말을 빌려 서둘러 군영으로 향했다.비록 그녀는 소한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소한에게서만 진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당우리의 산적들이 포악하긴 하다만, 전멸했다는 것은…믿기 어렵지 않은가?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김단의 머릿속에는 정암이 피투성이가 된 모습이 떠올랐고, 마음이 불안해졌다.간신히 군영 앞에 도착했다.문을 지키는 병사는 김단을 알아보고 인사하며 말했다. “김씨 아가씨, 장군님은 어젯밤에 떠나셨습니다.”“떠나셨다고요?” 김단은 당황한 나머지 대답을 알면서도 되물었다. “어디로 가셨죠?”“당우
김단은 미간을 찌푸렸고, 직감적으로 이상함을 느꼈다. “그럼 지금 어디 계시지?”그런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2층 방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그 순간, 한 남자가 방에서 밖으로 밀려 나와 복도에 나뒹굴었다.서화청이었다!정유이의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왔고, 매우 거칠고 화가 난 듯했다. “너 같은 놈이 감히 나에게 시비를 걸어? 밥값이 아깝다고 음식에 벌레가 있다고 하질 않나, 쳐다도 보질 못할 새언니를 욕하질 않나, 너야말로 몹쓸 놈이고 집안 전체가 문제다!”말이 끝나자마자 의자가 방에서 날아와 서화청에게 적중했다.서화청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나왔다.정유이는 허리에 손을 짚고 방에서 나와 서화청을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 다시 한번 우리 새언니 욕하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서화청은 며칠 전 우연히 정암의 여동생이 부엌에서 일한다는 소식을 듣고, 예전에 겪었던 굴욕을 떠올리며 정유이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했다.그래서 음식에 벌레가 있다고 거짓말하며 주방에 항의했고, 정유이를 불러냈다.하지만 정유이는 예상외로 강하고 씩씩했다. 게다가 무술까지 갖추고 있었기에 그는 조금도 이득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낭패를 당한 것이다!화가 난 서화청은 소리쳤다. “네, 네가 감히 나를 때려? 두고 보거라, 내 사람을 시켜 네놈을 잡아들일 테니!”서화청은 호조판서의 서자였기 때문에 평범한 백성 한 명 괴롭히는 것쯤은 쉬운 일이었다.그런데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습니다. 호조판서께서 이 일을 아시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한번 지켜보지요.”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서화청은 고개를 돌렸고, 김단은 2층 계단에서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 종사관님은 나라의 명령을 받고 산적떼를 토벌하러 가셨는데, 도련님은 여기서 그 분의 가족들을 괴롭히고 계시니, 이는 호조판서님께서 교육하신 것인지 여쭤보고 싶군요. 듣자하니, 호조판서님께서 요즘 좋은 물건을 많이 받으셨다지요?”호조판서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자리
김단은 정유이의 질문에 당황했다.그동안 의산적으로 무시해왔던 불안감이 순식간에 폭발했다.김단의 얼굴은 더 이상 평온하지 못했고, 이마를 찌푸리며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뭔가를 알고 있는 것이오?”만약 정유이가 정씨 부부처럼 아무것도 몰랐다면, 지금처럼 그녀에게 묻지 않을 것이다.김단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본 정유이는 자신의 어금니를 꽉 물었다. 마음 속 외침이 입안 머물다 겨우 입을 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은, 오라버니는 낭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간 것이라는 것이오!”김단은 정유이의 말을 듣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세히 묻기도 전에 정유이가 이어서 말했다. “오라버니는 낭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소. 낭자를 괴롭히는 사람을 없애기 위해 군 공을 세워 낭자를 지키려는 것이오! 낭자가 없었다면 오라버니는 이번에 산적떼 토벌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오.”그 말에 김단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그녀가 생각했던 대로였다.정암이 갑자기 토벌에 나간 것이 그녀와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소매 속에 있던 두 주먹을 꽉 쥐며, 김단은 마음이 흔들렸다.정유이도 두 손을 꼭 쥐었다. 너무 세게 쥔 나머지 손이 하얗게 될 정도였다.마음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김단의 붉어진 눈을 보고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마지막으로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오라버니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 좋을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낭자를 용서하지 않을테니!”정유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섰다.문을 나서던 와중, 숙희와 부딪혔다.하지만 정유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금세 모습을 감추었다.숙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가씨, 정씨 아가씨께서 왜 우시는 겁니까?”운다고?김단은 흠칫 놀랐다. 오늘 정유이가 할 말이 더 있었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정유이는 분명 무언가를 더 알고 있는 것이다!정암이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아직 당우리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부터 울
사실 김단은 자신이 정암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조모가 병을 얻으시고, 그 뒤로는 밤낮으로 상을 치르느라 정암을 만날 시간이 없었다.정암이 온다고 했어도 진산군 쪽에서 거절할 것이다.그래서 정암이 어디 있는지 그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그런데 김단이 이를 묻자 정유이의 표정이 굳어졌고, 정씨 부인도 인상을 찌푸릴 뿐 아무 말이 없었다.그 모습을 본 김단은 불안해하며 물었다. “무슨 일 있는 겁니까? 정 종사관님은 어디에 계시죠?”정씨 부인은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정씨 어르신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 애는 종사관 아니느냐, 나라에서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가야지! 듣자 하니 산적떼를 소탕하는 임무를 맡아 며칠 동안 자리를 비운다고 하더구나!”산적떼 소탕? 그 말을 들고 김단은 심장이 쿵 내려앉으며 산굴에서 만났던 무시무시한 산적들을 떠올렸다. 이어서 다급히 물었다. “혹시 당우리의 산적떼를 말씀하시는 겁니까?”“네가 어떻게 아는 것이냐?” 정씨 어르신이 깜짝 놀랐다. “사실 듣기로 당우리의 산적떼가 마을 사람들을 습격해, 조정이 밤새 군사를 보내 소탕하도록 했다더구나.”김단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더 이상 말함으로써 두 어르신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김단이 아무 말이 없자 정씨 부인은 김단이 걱정하는 줄 알고 그녀를 위로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 거라. 산적들이 아무리 세도 산적일 뿐이야. 정암은 8년 전부터 군에 있었고 수많은 전투를 치렀지 않니. 잔혹한 돌궐족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 애가, 고작 산적 몇 명을 두려워하겠느냐?”“그럼, 물론이지.” 정씨 어르신도 거들었다. “아무 일 없을 거다. 아마 한 달 안으로 돌아올 거야!”김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암은 아무 일 없을 거다.한 달 후, 정암은 돌아올 것이다!이 집은 크지는 않지만 방이 세 개나 되었다.정씨 부부가 한 방을 쓰고, 정암과 정유이가 각각 한 방씩 썼다.이제 김단이 왔으니, 정유이와 함께 방을 쓰게
드디어, 진산군 관저를 떠났다.높은 대문 앞에 서서 흰 천이 걸린 현판을 올려다보며 김단은 씁쓸하면서도 기쁜 마음이 교차했다.드디어 이곳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임씨 가문 사람들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조모께서도 기뻐하실 것이다.숙희는 뒤돌아보는 김단의 모습을 보고 그녀가 아쉬워하는 듯하여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가씨, 이틀만 더 있다 가면 어떨까요?”임 부인의 말처럼 큰 마님의 5일장이 이틀 후에 끝나기 때문에, 그때까지 있다가 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하지만 김단은 고개를 저으며 숙희의 손을 잡고 성큼 성큼 나섰다.진산군 저택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저택, 정씨 가문의 내외는 그녀가 보내 놓은 많은 귀중품들을 보며 당황해하고 있었다.김단이 오자 두 사람은 서둘러 인사를 올리고 물었다. “큰 아가씨, 무슨 일이십니까?”김단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이제 진산군 댁과 관계없습니다. 큰 아버님, 큰 어머니께서도 앞으로 큰 아가씨라 부르지 마시고 단이라고 불러주시지요.”“관계가 없다?” 멀리 서 있던 정유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김단을 보고 물었다. “왜 갑자기 연을 끊으셨단 말입니까?”정유이의 말투가 불손하다고 생각한 정씨 가문 어르신은 딸을 흘겨보고 김단에게 물었다. “큰 마님께서 돌아가신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연을 끊으셨습니까? 그들이 괴롭히기라도 하셨습니까?”둘째 어르신은 말을 하며 김단 쪽 편을 들어주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정유이는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았다.김단은 크게 감동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네, 그들이 저를 괴롭혀서 연을 끊었습니다. 잠시 갈 곳이 없어져 두 분께 잠시 머물 수 있도록 부탁드리고 싶습니다.”하지만, 그녀와 정암은 아직 정식으로 부부가 아니기 때문에 같은 집에 살면 말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갑자기 정씨 부인이 김단의 손을 잡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이곳이 네 집인데 무슨 말이니?”그리고 그녀는 무언가를 눈치 챈 듯 김단의 손을 보며 안타
숙희는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소인 지금 당장 짐을 싸겠습니다!”김단은 만족스럽게 웃었고, 숙희는 문득 물었다. “그럼 아가씨,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일단 정암이 있는 곳으로 가 며칠 지내며 갈 곳을 정하자구나!” 김단은 앞으로 한양을 떠날지, 아니면 남아 있을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다만 정암과 함께 하기로 결정했으니, 남아 있을지 떠날지는 정암과 상의해야 했다.일단 지금 당장 그녀는 진산군 관저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그녀의 말에 숙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소인이 가서 준비하겠습니다. 창고에 있는 하사품은 왕철 아저씨에게 말해 정 종사관님 집으로 보내라고 할까요?”“그래, 보내거라.” 김단이 대답했다. 그것은 왕와 중전이 그녀에게 하사한 것이었다. 혼인 문제로 인해 그 난리를 겪으며 하마터면 목숨이 위험 했기 때문에, 하사품은 당연히 가져가야 했다.숙희는 알겠다고 말한 뒤 서둘러 일을 처리하러 갔다. 숙희가 너무 서둘러 일을 처리하며 물건을 옮기는 소리가 들렸는지, 임씨 부인이 왔다. 김단이 짐을 싸고 나가려는 모습을 본 임씨 부인은 눈물을 글썽였다. “단아, 너, 너 어디를 가려고 하는 게냐?”임씨 부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김단이 무엇을 하려는지 어찌 모를 수 있겠나?그녀는 그저 마음을 돌리게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김단은 임씨 부인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마음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이미 대감 마님과 가족의 연을 끊은 이상, 제가 이곳에 머물 이유는 없습니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신세를 졌다니.그 말이 임씨 부인의 가슴을 찔렀다.임씨 부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단아, 어찌 이리 무정하니, 어찌...”“저는 조모님 앞에서 대감 마님과의 연을 끊었습니다.”김단은 차가운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임씨 부인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답답해져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조모가 돌아가시기 전에 김단과 진산군의 관계가 끊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