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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3화

작가: 적매화
이틀 후, 큰 마님의 장례가 치러졌다.

김단은 이틀 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조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임씨 가문 사람들이 자신이 잠든 사이에 임원을 데려와 조모를 괴롭힐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울다가 기절해서 임원에게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다.

임원이 조모를 죽게 만든 것도 모자라, 그녀의 장례를 이용해 자신의 효심을 과시하게 둔다?

그녀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김단은 그렇게 조모의 곁을 떠나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임씨 가문 사람들은 김단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큰 마님의 마지막을 편안하게 보내드리고 싶었고, 집안의 추악한 일을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임원은 영정은 물론 그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김단은 임원이 영정 앞에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건 물론, 큰 마님의 장례 행렬에 따라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임씨 가문 사람들은 임원이 슬픔에 잠긴 나머지 몸이 아파서 내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몇 명이나 믿을지 김단은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조모가 편안하게 저세상으로 가시기를 바랄 뿐이었다.

김단은 장례 행렬을 따라 산에 올라가 조모의 무덤에 흙을 덮고 나서야 힘이 빠져 쓰러졌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3일 뒤였다.

김단은 눈을 뜨고 익숙한 방을 둘러보았지만,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머리가 멍하고 오늘이 몇일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것이 마치 큰 병을 앓고 난 것처럼 느껴졌다.

목이 너무 말랐다.

그녀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물을 한잔 마시려 했다. 두 발이 아직 땅에 떨어지기 전, 그녀의 눈에 침대 옆에 놓인 나무 상자가 들어왔다.

작고 아름다운 금색 상자로, 사방이 금으로 둘려져였다.

김단의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문득 조모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를 가장 아끼고 보호해주었던, 모든 것을 그녀에게 주었던 조모가, 떠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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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진산군 관저를 떠났다.높은 대문 앞에 서서 흰 천이 걸린 현판을 올려다보며 김단은 씁쓸하면서도 기쁜 마음이 교차했다.드디어 이곳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임씨 가문 사람들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조모께서도 기뻐하실 것이다.숙희는 뒤돌아보는 김단의 모습을 보고 그녀가 아쉬워하는 듯하여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가씨, 이틀만 더 있다 가면 어떨까요?”임 부인의 말처럼 큰 마님의 5일장이 이틀 후에 끝나기 때문에, 그때까지 있다가 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하지만 김단은 고개를 저으며 숙희의 손을 잡고 성큼 성큼 나섰다.진산군 저택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저택, 정씨 가문의 내외는 그녀가 보내 놓은 많은 귀중품들을 보며 당황해하고 있었다.김단이 오자 두 사람은 서둘러 인사를 올리고 물었다. “큰 아가씨, 무슨 일이십니까?”김단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이제 진산군 댁과 관계없습니다. 큰 아버님, 큰 어머니께서도 앞으로 큰 아가씨라 부르지 마시고 단이라고 불러주시지요.”“관계가 없다?” 멀리 서 있던 정유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김단을 보고 물었다. “왜 갑자기 연을 끊으셨단 말입니까?”정유이의 말투가 불손하다고 생각한 정씨 가문 어르신은 딸을 흘겨보고 김단에게 물었다. “큰 마님께서 돌아가신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연을 끊으셨습니까? 그들이 괴롭히기라도 하셨습니까?”둘째 어르신은 말을 하며 김단 쪽 편을 들어주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정유이는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았다.김단은 크게 감동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네, 그들이 저를 괴롭혀서 연을 끊었습니다. 잠시 갈 곳이 없어져 두 분께 잠시 머물 수 있도록 부탁드리고 싶습니다.”하지만, 그녀와 정암은 아직 정식으로 부부가 아니기 때문에 같은 집에 살면 말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갑자기 정씨 부인이 김단의 손을 잡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이곳이 네 집인데 무슨 말이니?”그리고 그녀는 무언가를 눈치 챈 듯 김단의 손을 보며 안타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304화

    숙희는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소인 지금 당장 짐을 싸겠습니다!”김단은 만족스럽게 웃었고, 숙희는 문득 물었다. “그럼 아가씨,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일단 정암이 있는 곳으로 가 며칠 지내며 갈 곳을 정하자구나!” 김단은 앞으로 한양을 떠날지, 아니면 남아 있을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다만 정암과 함께 하기로 결정했으니, 남아 있을지 떠날지는 정암과 상의해야 했다.일단 지금 당장 그녀는 진산군 관저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그녀의 말에 숙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소인이 가서 준비하겠습니다. 창고에 있는 하사품은 왕철 아저씨에게 말해 정 종사관님 집으로 보내라고 할까요?”“그래, 보내거라.” 김단이 대답했다. 그것은 왕와 중전이 그녀에게 하사한 것이었다. 혼인 문제로 인해 그 난리를 겪으며 하마터면 목숨이 위험 했기 때문에, 하사품은 당연히 가져가야 했다.숙희는 알겠다고 말한 뒤 서둘러 일을 처리하러 갔다. 숙희가 너무 서둘러 일을 처리하며 물건을 옮기는 소리가 들렸는지, 임씨 부인이 왔다. 김단이 짐을 싸고 나가려는 모습을 본 임씨 부인은 눈물을 글썽였다. “단아, 너, 너 어디를 가려고 하는 게냐?”임씨 부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김단이 무엇을 하려는지 어찌 모를 수 있겠나?그녀는 그저 마음을 돌리게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김단은 임씨 부인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마음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이미 대감 마님과 가족의 연을 끊은 이상, 제가 이곳에 머물 이유는 없습니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신세를 졌다니.그 말이 임씨 부인의 가슴을 찔렀다.임씨 부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단아, 어찌 이리 무정하니, 어찌...”“저는 조모님 앞에서 대감 마님과의 연을 끊었습니다.”김단은 차가운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임씨 부인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답답해져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조모가 돌아가시기 전에 김단과 진산군의 관계가 끊어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303화

    이틀 후, 큰 마님의 장례가 치러졌다.김단은 이틀 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조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임씨 가문 사람들이 자신이 잠든 사이에 임원을 데려와 조모를 괴롭힐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녀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울다가 기절해서 임원에게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다.임원이 조모를 죽게 만든 것도 모자라, 그녀의 장례를 이용해 자신의 효심을 과시하게 둔다?그녀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김단은 그렇게 조모의 곁을 떠나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임씨 가문 사람들은 김단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큰 마님의 마지막을 편안하게 보내드리고 싶었고, 집안의 추악한 일을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임원은 영정은 물론 그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김단은 임원이 영정 앞에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건 물론, 큰 마님의 장례 행렬에 따라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임씨 가문 사람들은 임원이 슬픔에 잠긴 나머지 몸이 아파서 내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 것이라고 말했다.그 말을 몇 명이나 믿을지 김단은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그녀는 조모가 편안하게 저세상으로 가시기를 바랄 뿐이었다.김단은 장례 행렬을 따라 산에 올라가 조모의 무덤에 흙을 덮고 나서야 힘이 빠져 쓰러졌다.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3일 뒤였다.김단은 눈을 뜨고 익숙한 방을 둘러보았지만,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았다.머리가 멍하고 오늘이 몇일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것이 마치 큰 병을 앓고 난 것처럼 느껴졌다.목이 너무 말랐다.그녀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물을 한잔 마시려 했다. 두 발이 아직 땅에 떨어지기 전, 그녀의 눈에 침대 옆에 놓인 나무 상자가 들어왔다.작고 아름다운 금색 상자로, 사방이 금으로 둘려져였다.김단의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문득 조모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녀를 가장 아끼고 보호해주었던, 모든 것을 그녀에게 주었던 조모가, 떠났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302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영정 앞으로 향했다.조모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는 마치 심장을 잃어버린 망자와 같았다. 가슴속 텅 빈 공허함 외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그녀는 그들과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가족의 연이 끊어졌으니, 일단 지금은 조모를 잘 보내드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만약 임학이 제정신이라면, 오늘 임원을 영정 앞에 오게 하지 않을 것이다.그렇지 않다면, 그녀는 바로 사람을 불러 임원을 내쫓아 버릴 것이다!김단의 힘 없는 뒷모습을 보며, 임학의 마음도 저절로 아파왔다.품 안의 누이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은 임학은 정신을 차리고 임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원아, 몸에 상처도 생겼으니 일단 돌아가서 쉬거라.”그는 남들이 들을까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임원의 상처로 화제를 돌렸다.그래야 임원이 조모를 화나게 해 죽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을 터였다.하지만 임원은 초조해하며 임학의 팔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오라버니...”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임학에게 가기 싫다고 말하고 싶었다.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임씨 부인 옆에 앉아 사람들에게 자신이 임씨 집안의 딸임을 보여주고 싶었다.하지만 임학은 인상을 찌푸리며 더욱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몸이 중요하다.”말투는 걱정하는 듯했지만, 임원은 그가 다른 것을 걱정하고 있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그는 김단이 했던 말을 더 신경 쓰고 있었다.조모가 그녀를 원하지 않는다!임원은 포기하지 않고 두 손으로 임학의 팔을 꽉 붙잡았다.하지만 임학은 이미 마음을 굳혔고, 옆에 있던 하인에게 명령했다. “어서 아씨를 방으로 데려가 쉬게 하거라.”그의 말에는 반박할 수 없는 강한 어조가 담겨 있었다.임학이 임원 앞에서 이렇게 단호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임원은 가슴이 답답해지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오늘 영정 앞에 갈 수 없다.그녀는 이내 하인의 부축을 받고 천천히 일어섰고, 일부러 다리를 후들거리며 비틀거렸다.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301화

    곧 많은 사람들이 추모를 위해 진산군 댁으로 모여들었고, 임원의 울음소리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임씨 가문의 친딸이 양녀에게 무릎을 꿇고 애절하게 통곡하는 모습을 보자 사람들은 순식간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친척 중 한 명이 다가와 김단을 꾸짖었다. “김단, 너는 어릴 적부터 성격이 거칠어서 원이를 괴롭히곤 했었지. 오늘은 큰 마님께서 하늘에서 보고 계실 거다!”김단이 어려서부터 성격이 급하고 예민했기 때문에 모두 김단이 임원을 괴롭혔다고 생각했다.허, 정말 기가 찼다!김단의 얼굴은 여전히 평온했지만, 핏발 선 눈에는 증오가 가득했다.김단은 임원을 죽일 듯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들으셨소? 큰 마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는 군!”임원이 바로 큰 마님을 죽인 살인범인데, 어떻게 감히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을까?!임원은 그 말을 듣고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그녀 역시 두려웠다!지금 이 순간 큰 마님이 어딘가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그녀는 진산군 댁의 친딸이었다. 그런 그녀가 큰 마님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수군거리겠나?그렇기에 두려웠음에도 와야 했다.가슴이 죽을 듯이 아파와도, 오래 못 버티고 기절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는 큰 마님의 장례식에서 쓰러져야 했다!그런 생각을 하자 임원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고, 가슴의 압박이 더욱 아프게 조여왔다. 창백했던 얼굴은 더욱 초췌해 보였다. “김씨 낭자, 비록 내가 큰 마님과 겨우 3년밖에 살지 못했고 낭자만큼 큰 마님과 정이 깊지는 않지만, 나는 큰 마님의 친손녀이오. 큰 마님을 보내드리게 해주시오!”'친손녀'라는 말에 힘을 주어 강조했다.주변 사람들은 이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암, 그렇지. 임원이야말로 큰 마님의 친손녀이지. 너는 양녀인 주제에게 왜 저 아이를 막는 거냐?”“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오늘처럼 중요한 날, 양녀인 네가 어떻게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게냐?”김단은 다른 사람들의 말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이지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 300화

    그가 15년 동안 키운 여식이다…비통함이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진산군의 눈가가 붉어졌다.하지만 사람들 앞이라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는 앞으로 계속 걸었다.어디까지 왔을까.비통한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정신을 차려 주위를 살폈다.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등불 하나, 빛 하나조차 없었다.진산군은 그제야 힘이 다 풀린 듯 바닥에 엎드렸다.곧이어 마치 거대한 바위가 깨질 것 같은 고함을 질렀다.비통함이 어느새 통곡으로 변했다.날이 밝기도 전에 조모의 부고가 사가의 종친들에게 전해졌다.소한은 부고 소식을 받고 서둘러 진산군 관저로 향했다.빈소 안.흰 비단이 높게 걸려 있다.임학은 임 씨 부인과 나란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소한이 향을 피우러 들어오고 그들에게 예의를 갖추었다.하지만 그는 빈소를 둘러보기 바빴다.임학은 소한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다.임 씨 부인에게 몇 마디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곧이어 소한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임학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한이 물었다.“단이는 어딨소?”임학은 짜증이 밀려왔다.“울다가 몇 번이나 기절했는지 모르네, 지금은 의원이 준 약을 먹고 쉬는 중이오.”그는 말하는 도중에도 소한을 노려 보았다.하지만 소한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임학은 분노를 억누르며 물었다.“소한, 원이는 궁금하지 않은 것이오?자네는 누구의 약혼자인지 인지하시오!”그의 말에 소한은 눈을 내리 깔았다.하지만 눈썹은 움찔거렸다.당연하다는 듯 임원의 안위는 묻지 않았다.임학은 그의 이러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하지만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곧이어 소한의 뒤를 한 번 보고 물었다.“정암은 어디갔소?”정암은 무조건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그를 만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김단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정암뿐이다.소한이 입을 열었다.“갔소.”“어디를?”임학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이 물었다.“어디를 갔단 말이오?”“당우리의 산적이 촌 사람을 죽였소, 전하께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 299화

    “조모!”“어머니!”김단과 진산군이 그녀를 불렀다.하지만 조모는 눈을 뜨지 않았다.김단이 다급하게 의원을 불렀다.“의원! 어서 의원을 부르거라!”말하는 도중에도 조모의 손을 놓지 않았다.조모의 손을 자신의 얼굴에 붙였다.“조모, 눈을 뜨시옵소서. 제발, 제발!”김단과 진산군이 아무리 불러도 조모는 눈을 뜨지 않았다.미소를 지은 체 움직이지 않았다.의원이 문밖에 있다가 그들의 고함 소리에 서둘러 안으로 들어왔다.그가 손을 뻗어 조모의 코에 갖다 댔다.그리고 목의 맥을 짚고는 손을 걷었다.얕은 탄식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대감마님, 아씨. 큰 마님께서 숨을 거두셨습니다...”“그럴 리가 없다!”진산군이 다급하게 부인했다.“방금 전까지 아무렇지도 않으셨단 말이다!”김단도 믿을 수 없었다.“열흘은 버틸 수 있다고 하셨지 않으셨습니까? 하루도 지나지 않았소!”의원이 눈살을 찌푸렸다.그들에게 예의를 갖추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남아있는 힘을 다 쓰셨을 거라고 추측되옵니다.”마치 해가 지기 전에 햇살이 있는 힘을 다해 비추는 것과 같다.하지만 의원도 정확하게 알 도리가 없었다.며칠 더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수 나인은 알고 있었다.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훌쩍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큰 마님께서는 큰 아씨께서 다시 수모를 겪을까 두려워하시었을 것이옵니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큰 아씨를 도우려 하신 것이지요.”그녀의 말에 의원이 깨달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큰 마님이 깨어난 것은 다름 아닌 집념, 때문이었다.집념 때문에 흐려진 의식에도 깨어 날 수 있었던 것이다.수 나인의 말에 김단은 미친 것처럼 울기 시작했다.“다 제 탓입니다, 조모...”조모를 벼랑 끝까지 내민 것은 자신이다,남아있는 힘을 쓰게 한 것도 자신이다.결국 자신의 자유를 쓰기 위해 조모가 희생 한 것이다.자신이 아무 힘이 없기에, 조모가 걱정을 하고, 조모가 마지막 힘을 내뱉었다.모두 자신의 탓이다.김단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 298화

    김단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도중에도 여러번 고개를 돌려 조모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그러고는 서둘러 매화당으로 달려갔다.나무 상자를 방 안에 놓고, 다급하게 세수를 했다.옷도 갈아입지 않은 체 다시 안채로 향했다.김단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진산군이 조모의 침상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하지만 두 사람의 기류가 이상했다.김단에게 보였던 미소는 온데간데 없고,조모는 그저 어두운 위엄 있는 표정을 짓고 있다.김단이 돌아오자 조모가 입을 열었다.“단아, 이리 오거라.”그녀의 말에 서둘러 다가갔다.진산군의 옆으로 다가가자 조모가 말했다.“꿇거라.”김단은 조모의 말에 의도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조모가 다시 말을 이었다.“김단, 넌 임 씨 가문에서 열여덟 해를 보내었다. 혈연의 관계는 없다, 허나 네 아비와 어미는 어렸을 때부터 널 지키고 아껴주며, 친자식처럼 대해주었다. 그 점은 인정하느냐?”15년 동안 김단을 지키고, 아껴준 것은 사실이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였다.“인정하는 바옵니다.”“그리하면 네 아비께 머리를 조아리거라.”조모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김단은 감히 원망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곧이어 몸을 돌려 진산군에게 머리를 조아렸다.조모가 다시 말을 이었다.“네 친 여식이 돌아오고 나서, 넌 양녀를 엄격하게 대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다치게 한 점에 대해 인정하느냐?”진산군의 어깨가 떨렸다.그저 고개를 떨구어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하지만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조모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리하면 부녀의 정은 다 하였다. 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결정하겠노라, 내 앞에서 세 번 손뼉을 치거라.”손뼉을 세 번 치는 것은 절연을 의미한다.진산군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어머니!”그는 조모가 이러한 결정을 내릴 줄은 몰랐다.김단은 심장이 떨려왔다.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라 한 것은 임 씨 가문에게 길러준 은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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