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흉악한 기세에 불륜녀는 겁에 질려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의 두 눈에는 남자를 향한 공포만이 가득했다. 아마 남자가 모든 죄를 자신에게 뒤집어씌울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나한테 시집왔으면 얌전히 굴어. 안 그랬다간 내가 어떻게 너를 처리하는지 똑똑히 보게 될 거야.” 남자는 가장 잔인한 본성을 드러냈다. 어차피 이제 가면을 쓸 필요도 없었다.영상을 다 본 심미연은 미간을 주무르며 말했다. “나머지 증거들은 이미 다 정리했어요. 내일 내가 직접 법정에 나가서 이 사건을 맡을 겁니다.” 그 남자는 원래 아내와 이혼할 수 있었지만 재산을 독차지하려고 끝까지 이혼하지 않았고 결국 아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불륜녀는 나이도 어리고 얼마든지 자기 또래와 결혼해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도 뻔뻔하게 다른 사람의 가정에 끼어들어 그 남자와 손잡고 원래 아내를 죽이는 데 가담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감히 세상에 살아갈 자격이 있을까?’ ‘두 사람은 반드시 내 손으로 감옥에 보내버릴 거야.’ ‘평생 다시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만들 거야.’임현은 심미연이 매우 피곤해 보이는 모습을 보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세요? 몸이 안 좋으신가요?” “머리가 좀 아파요.” 심미연을 아이를 낳고 나서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자주 몸살이나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잠깐 쉬시는 게 어때요?” “괜찮아요. 계속 진행합시다. 어제 말했던 친모가 아들을 죽인 사건 자료 보여주세요.”임현은 빠르게 자료를 가져와 심미연 앞에 놓으며 말했다. “이 어머니는 오늘로 70세가 되셨어요. 하지만 아들은 술을 마시고 오랫동안 어르신을 폭행했죠. 그날 밤 아들은 술에 취해 의자까지 어르신에게 던졌어요.” “어르신은 계속 피했지만 나이가 많아 반응이 빠르지 않았고 손발도 예전 같지 않아서 결국 의자에 맞고 허벅지를 다쳤습니다. 화가 난 어르신은 옆에 있던 술병을 집어 들어 아
심미연은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먼저 사무실로 가서 얘기합시다.” 그녀의 말투에서 강한 기세가 느껴졌고 마치 여왕님처럼 당당했다. “심 대표님, 이쪽입니다.” 도진혁은 정중하게 손을 내밀어 그녀를 초대하는 제스처를 했다. 심미연은 아무 말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도진혁은 그녀 뒤에서 걸으며 의도적으로 걸음을 천천히 하여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 그는 손을 뻗어 버튼을 눌렀다. 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는 왜 신하린이 이 비서를 추천했는지 알 것 같았다. 확실히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한 심미연은 도진혁이 이미 서류를 깔끔하게 분류해 놓은 것을 발견했다. 어떤 서류는 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라며 따로 분류되어 있었고 심지어 중요한 내용은 메모지에 적어 놓고 바로 보일 수 있도록 서류 속에 끼워 놓았다. 심미연은 두 개의 급한 서류에 서명을 마친 뒤 펜을 천천히 내려놓고 도진혁을 바라보았다. “혹시 원하는 게 있나요? 예를 들면 연봉 인상이나 주택 문제 같은 거. 당신이 요구하는 건 뭐든지 내가 해결해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뛰어난 인재는 반드시 회사에 붙잡아 두고 싶었다. 연봉, 집, 차 모두 문제될 게 없었다. 도진혁 한 명이 여러 명의 효율을 낼 수 있으니 그녀는 완전히 큰 이득을 본 셈이었다. “감사합니다. 심 대표님. 지금은 특별히 도와주실 일이 없습니다.” 도진혁은 매우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는 이 두 해 동안 회사에서 번 돈으로 이미 차와 집을 모두 구입했으며 연봉도 경성에서 꽤 높은 수준이라 추가로 월급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알았어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심미연은 속으로 연말이 되면 그에게 연말 보너스를 좀 더 줄 생각을 하며 평소에도 간간히 보너스를 챙겨줄 계획을 세웠다.돈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을 충성스럽게 오래도록 회사에 묶어둘 수 있다. 매번 새로운
[강지한, 내 아들을 유치원에서 데려간 건 무슨 뜻이야?] 심미연은 참지 못하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강지한의 이런 행동은 단번에 그녀의 화를 폭발시키기 충분했다. [내 아들이기도 해. 내가 그 아이를 데려가는 게 왜 안 되는 거지?] 강지한은 마치 아무 일 없는 듯 여유롭고 담담하게 되물었다.유치원에서 병원으로 가는 길 그는 이미 확신을 했다. 이 아이가 바로 그의 아들이라는 걸. 너무 똑똑하고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그와 너무 닮았다. 강지한을 결정을 내렸다. 우선 아들을 자신 곁에 데려다 키운다면 심미연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일은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내가 말했잖아. 태하는 네 아들이 아니라고.]심미연은 마음이 점점 더 가라앉았다. 강지한의 아들이 맞는지 확인하려면 친자 검사를 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만약 강지한이 지금 애를 데리고 친자 검사를 한다면...’그 생각에 심미연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태하가 나한테 한마디라도 할 수 있게 해줘. 그래야 내가 마음이 놓일 거야.]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심미연이 강지한이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을 때 아들의 부드럽고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어디 있어요? 빨리 나 데리러 와요. 금방 병원에 도착했어요.] 병원이라는 두 글자를 듣는 순간 심미연의 온몸은 얼어붙은 듯 굳어졌고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다. 정말 아무리 대비하고 대비해도 강지한이 아들을 빼앗아간 이 한 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엄마, 빨리 데리러 와요. 무서워요.] 심미연은 본능적으로 주먹을 꽉 쥐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뭐라고 해도 절대 따라가지 마. 꼭 기억해.] 그녀는 아들의 머리가 충분히 똑똑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 말라는 걸 하면 그는 반드시 그것을 피하려고 할 것이다. [엄마, 알겠어요. 빨리 데리러 오세요.] 심태하는 말을 마친 후 바로 전화를 끊었다. 심미연은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서둘러
강지한과 심태하는 혈연 관계가 있긴 했지만 사실상 그들의 첫 번째 공식적인 만남이었다. 강지한은 여전히 심태하에게 낯선 존재였고 심태하는 그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동생 만나러 데려가줄게. 이제 우리랑 같이 살자. 우리 집은 네 집이기도 해.” 강지한은 그를 안아 올리며 그가 반응하기 전에 말을 이었다. “심태하, 아빠랑 엄마 그리고 동생이랑 같이 사는 거 싫어?” 심태하는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제가 만약 싫다고 말하면 저를 집에 돌려보내줄 거예요?” 강지한은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안 돼.” “그럼 당신은 독재자잖아요.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데 왜 물어보는 거예요?” 심태하의 작은 얼굴에는 불쾌함이 가득했다. 강지한은 눈을 좁히며 그를 쳐다봤다. ‘이 녀석, 반응도 빠르고 말도 잘하네.’ ‘정말 신기하게도 심미연과 똑같아.’심태하는 강지한의 침묵이 길어지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첫 만남인데 혹시라도 그가 자신에게 손을 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렇게 강하게 반박하면 결국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속으로 겁이 났다. 심태하는 무서운 마음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강지한은 심태하를 안고 계단을 올라 강상미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강상미는 작은 토끼 인형을 품에 안고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강지한이 병실에 들어갔지만 강상미는 전혀 깨지 않았다. 심태하는 병상 옆으로 다가가 침대에 누워 있는 소녀를 보았고 그제야 그날 만났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굴에 있던 불쾌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져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제가 동생을 아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묻어 있었다. 강지한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를 바라봤다. “너희가 아는 사이였어?” 심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알아요.”“그럼 이제 너와 상미는 남매가 된 거야. 상미랑 같이 살면 재미있지 않겠어?”
“동생아, 일어났어?” 강상미의 목소리를 들은 심태하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강지한을 밀어내며 말했다. “빨리 내려줘요.” 심태하는 강지한이 과거에 심미연에게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로 인해 강지한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었고 자연스럽게 그에게 더 차갑고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 강지한은 허리를 굽혀 심태하를 병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둘이 잠깐 놀아. 나 잠깐 나갔다 올게.” 그 말을 끝내고 그는 돌아서서 방 밖으로 나갔다. 강지한은 일부러 두 아이를 남겨두고 혼자 나갔다. 그가 생각하기에 두 아이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될 것이고 그때부터는 서로 끊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워질 거라고 믿었다. 강지한은 두 아이가 친남매처럼 서로 의지하며 지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관계라면 두 아이가 싸우거나 갈등을 일으킬 걱정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밖으로 나온 강지한은 곧바로 의사 사무실로 향했다.병실 안에서 두 아이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디가 아픈 거야? 왜 병원에 있어?” 심태하는 고개를 갸웃하며 궁금한 마음을 그대로 물었다. ‘전에 두 번 만났을 때는 괜찮아 보였는데 왜 갑자기 병원에 있는 거지?’“난 아주 심한 병에 걸렸어. 엄마가 말했어. 아마 죽을 수도 있다고...” 강상미는 심태하의 손을 꽉 잡고 슬픔이 묻어나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난 죽고 싶지 않아...” 심태하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곧바로 자세를 고쳐 세우며 말했다. “너 아프면 우리 엄마가 치료해줄 거야. 내가 엄마한테 말해서 널 꼭 치료하게 할 거야.” 그의 목소리엔 자랑이 묻어 있었다. “앞으로 우리 엄마의 사랑을 반으로 나눠줄게. 괜찮지?” 강상미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좋아.”“혹시 핸드폰 있어?” 심태하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있어. 왜?” 강상미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엄마한테 전화하려고. 잠깐만 빌려줘.”
그녀는 강지한과 원수가 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이미 그들은 적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아직 서로 날을 세우며 정면으로 맞서고 있지 않을 뿐이었다. [그냥 다음에 고소해요. 오늘은 빨리 와서 저 집에 데려가요. 저 정말 그 사람이랑 조금도 같이 있고 싶지 않아요. 너무 싫어요.] 심태하는 강지한이 항상 굳은 얼굴을 하고 있고 말투도 딱딱해서 조금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싫었다. ‘엄마가 그 사람을 싫어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었어.’ [태하야, 버릇없이 굴지 마.] 심미연의 목소리가 단호해지며 눈에 띄게 불쾌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엄마, 난 정말 그 사람이 싫어요.] 심태하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그가 강지한을 싫어하는 건 어쩌면 그동안 조사한 자료 때문일지도 몰랐다. 강지한과 직접 만나기 전부터 이미 선입견이 있었고 여기에 강지한의 차가운 태도가 더해지자 더욱 싫어지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세계는 단순했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다. 거짓말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싫어도 겉으로 티를 내면 안 돼. 더군다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건 더더욱 안 돼. 알겠지?] 심미연은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 [알았어요. 엄마, 그럼 빨리 와요. 운전은 천천히 하시고요. 안전이 제일 중요해요.] 심태하는 마치 어른인 양 당부했다. 심미연은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전화를 끊은 심태하는 핸드폰을 강상미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우리 엄마 곧 올 거야. 핸드폰 돌려줄게. 고마워.” 강상미는 핸드폰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심태하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오빠는 엄마가 있어서 좋겠다...” 그녀도 오빠의 엄마처럼 따뜻하고 다정한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심미연은 낮게 스포츠카를 몰고 마치 사냥감을 쫓는 날렵한 맹수처럼 밤의 어둠을 뚫고 질주해왔다. 타이어가 도로와 마찰을 일으키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자 그 소리가 적막했던 밤의 공기를 단숨에 갈라놓았다.
“심미연, 나를 화나게 하는 결과가 어떤지 너도 잘 알 텐데.” 강지한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심태하가 그의 곁에 있다면 심미연은 결국 그를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 관계가 깊어지면 그녀는 그에게 서서히 끌리게 될 것이고 결국 그에게 다시 완전히 빠져들 거라고 확신했다. 심미연은 그의 얼굴을 차갑게 바라보며 냉소를 흘렸다. “결과가 어떻든. 내 아들은 내가 데려가.” “강지한, 내가 태하를 데려가는 걸 계속 막으면 지금 바로 경찰에 신고할 거야.” 그 말과 함께 심미연은 망설임 없이 핸드폰을 꺼내 112를 눌렀다.떠난 이 3년 동안 심미연은 많은 것을 깨달았다.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과거처럼 강지한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그녀는 그의 적이 될 수도 있었다. 강지한은 그녀의 핸드폰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신고하지 마. 내 딸이 놀라면 어떻게 할 거야?” 그 말에 심미연은 고개를 들어 그를 노려보았다. 그 입가엔 냉소 어린 웃음이 번졌다. “자기 딸이 놀랄까 봐 걱정한다고? 그럼 네가 갑자기 내 아들을 데려가려고 할 때 그 애가 무서워하지 않을까 생각해본 적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심미연은 핸드폰을 다시 넣었다.결국 강지한은 여전히 이기적이었다. 강지한에게는 강상미가 딸이고 심태하는 심미연의 아들로 두 사람을 확실히 구분 짓고 있었다. 그가 심태하를 강제로 데려간다면 그 아이는 절대로 제대로 자라지 못할 것이다. 강지한은 눈을 좁히며 말했다. “그 애가 겁을 먹을까? 나한테 반항할 때 그 입이 얼마나 빠른지 알아?” ‘그 녀석, 겁도 없이 큰소리만 치는데 어떻게 겁을 먹겠어.’ 심미연은 그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씩 웃었다. ‘태하 그 입, 변호사로 딱이겠어.’바로 그때 방 문이 갑자기 열렸다. “엄마, 드디어 왔어요.” 심태하가 병실에서 뛰쳐나와 빠르게 심미연의 품에 안겼다. “엄마, 너무 보
“엄마, 만약 동생을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들어서 그런거면 제가 그 돈 다 낼 수 있어요. 저 돈 진짜 많거든요.” 심태하는 손으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과장스럽게 말했다. 심미연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말해.” 만약 강지한이 자신이 사백억을 날린 게 세 살짜리 꼬맹이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아마 피가 거꾸로 솟아 기절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심태하에게 그 돈을 다시 토해내라고 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강지한은 결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니까. “아! 깜빡했어요.” 심태하는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었다. 그는 정말로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그 나쁜 아빠는 이 말을 듣지 못했다.강지한은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의 대화는 작은 목소리로 오갔기에 정확히 들리진 없었지만 어쩐지 자기 흉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심태하는 심미연의 손을 끌고 병상 앞으로 다가갔다. 강상미는 커다란 눈망울로 점점 가까워지는 심미연을 바라봤다. ‘응?’ ‘이 아줌아... 왠지 낯이 익은 것 같아...’“상미야, 이리 와. 우리 엄마 소개해줄게.” 심태하가 강상미의 손을 잡아 심미연의 손바닥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우리 엄마 진짜 대단한 변호사야. 의술도 할 줄 알아. 엄청 멋지지?” “상미야, 어서 엄마라고 불러봐.” 심미연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이 꼬맹이가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엄마...” 강상미는 조심스럽게 불렀다.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순진하게 반짝이는 눈망울. ‘엄마의 눈이 그 예쁜 언니랑 너무 닮았어.’ ‘하지만 이 아줌마는 그 언니가 아니야.’ 그 생각이 떠오르자 강상미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나도 예쁜 언니가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는데...’ 조금 서운했지만 금세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눈앞의 엄마가 더 좋을 것 같았다. ‘오빠 엄마니까... 분명 나도 많이 사랑해
“우린 서로 잘 알지도 않잖아요. 그러니까 박시훈 씨, 이런 농담은 삼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좋은 소리는 안 나올 거예요.” 심미연의 말은 단호했고 표정에는 조금의 여지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 사람에게 결코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박시훈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화내지 마요. 농담 안 할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 살짝 겁이 났다. 정색한 심미연의 얼굴은 꽤 무서웠다. 강지한이랑 맞먹는 수준이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심미연은 노골적으로 그를 내보내려는 기색을 멈추지 않았다. “저... 진짜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에요. 한 번 생각해보는 건 어때요?” 박시훈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연애도 해본 적 없고 야자 마음을 얻는 방법도 몰랐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속 생각을 그대로 내뱉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심미연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리고 곧장 소파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제 가세요.”그녀는 주저함 하나 없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박시훈은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진심이었고 말 그대로 사실이였다. ‘난 능력도 있고 괜찮은 사람인데 서로 마음만 맞으면 잘될 수 있는 거 아닌가?’그렇게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심미연은 이미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박시훈 씨, 조심히 가세요. 멀리는 안 갈게요.”그녀는 박시훈이 불쾌해하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가 무슨 감정을 느끼든 어떤 생각을 하든 그건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방금 전 그의 자기중심적인 말투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박시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이대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뭔가 씁쓸하고 아쉽고 괜히 찬물 끼얹힌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는 마음속으로
심미연은 그가 심태하까지 조사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순간적으로 본능처럼 눈앞의 남자를 다시 보게 됐다. 겉보기엔 멋대로 굴고 책임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한량 같았지만 그의 눈빛만은 달랐다. 지나치게 날카롭고 마치 사람의 속까지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그건 결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눈이었다. ‘이 남자, 뭐지... 정말 이상한 사람인데.’겉모습만 보면 철없어 보이다가도 또 어떤 순간에는 의외로 능력 있어 보였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게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건 그가 왜 굳이 자신을 찾아와 이런 말을 꺼내는가였따. ‘설마 진심으로 그냥... 내 정체가 궁금해서?’“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저 진짜 악의는 없어요.” 박시훈은 양손을 번쩍 들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하늘에 맹세할게요.”심미연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래서 당신이 날 찾아온 목적이 뭐죠?”박시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진짜 이유를 말해도 돼요?” 그의 갈색 눈동자가 살짝 번쩍였고 그의 얼굴엔 순진해 보일 정도로 천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심미연은 속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돈 뜯어내려는 건가? 내가 그런 일에 쉽게 넘어갈 만큼 만만해 보였나.’“좋아합니다.”그가 느닷없이 말했다. “그 말 하려고 온 거예요. 좋아해도 될까요?” 심미연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박시훈의 얼굴엔 서서히 불안한 기색이 떠올랐다. 결국 그는 숨겨왔던 속마음을 한 번에 쏟아냈다. 망설일 시간 따윈 없었다. 그보다 먼저 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강지한이 그녀를 데려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컸다. 심미연은 그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또박또박 물었다. “당신 지금 자기가 무슨 말 하고 있는지는 알아요?”그녀는 그가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웠다. 서너 번 얼굴을 마주친 게 전부였고 제대로 된 인사조차 나눈 적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나타
심미연은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심, 심 대표님... 아까 어떤 남자분이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대표님을 찾으러 올라가셨어요.”프런트 직원의 목소리는 떨렸고 말도 더듬었다. “누구라고요?” 심미연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장미를 들고 자신을 찾아올 만한 사람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확실히 저를 찾은 거 맞아요?” “네... 확실합니다. 제가 막으려고 했는데 그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올라가셨어요...” 잘릴까 봐 겁이 난 프런트 직원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얼버무렸다. 그녀는 심미연이 이 거짓말을 영원히 눈치채지 않길 바랐다.심미연은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장미를 들고... 누굴까?’그때 사무실 문 밖에서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났다. 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조용히 말했다. “알겠어요. 일 보세요.”말을 마치기도 전에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갔다. ‘설마... 강지한? 다시 만날 일 없다고 말했는데 또 온 건가?’ 전화를 끊은 심미연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당신...?” 며칠 전, 하늘 하우스 앞에서 명함을 건넸던 그 남자였다.심미연은 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전화 달라고 했었는데... 내가 깜빡했네. 근데 사무실까지 찾아올 정도면 꽤 급한 일이 있나?’ ‘자, 받아요. 이거 당신한테 주는 거예요.” 박시훈은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는 듯 장미꽃을 밀어넣으며 말했다. “할 말 있어서 왔어요.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심미연은 그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할 말이 뭔데요?” “앉아서 얘기해요. 당신이 힘들면 안 되니까.” 박시훈은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 옆을 지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깔끔하고 단정한 분위기의 공간. 묘하게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박시훈은
이진영은 핸드폰을 쥔 채 반쯤 감긴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아무리 뒤져도 끝내 밝혀내지 못한 아버지의 비밀. ‘설마... 한석훈이 정말 뭔가 알고 있는 건가?’‘아니면 그냥 떠보는 소리일까?’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머릿속을 뒤엉켰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찾고 싶은 충동이 다시 치밀었지만 이진영은 고개를 돌려 이다은의 병실로 향했다. ...이노하이브 대표실. 강지한은 막 성무진에게서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문소영이 한 무리의 남자들에게 쫓기다 결국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은 심하게 어질러졌고 문이 잠겨 있어 그녀는 도망칠 틈조차 없었다. 결국 팔과 다리가 부러진 채 119에 실려 갔다. 강지한은 메시지를 닫고 입술을 천천히 매만졌다.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가벼운 경고’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음에도 제멋대로 날뛰면 그땐 진짜로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막 서류를 집어 들려는 순간,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자 박시훈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한아, 큰일 났어!” 강지한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해.” “온지유가... 나왔어.” 박시훈은 말끝을 떨며 믿기지 않는 듯 말을 이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 어떻게...?’ 믿기 힘든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무슨 수로 온지유를 꺼낸 거지?’ 강지한의 눈빛이 서서히 싸늘하게 식어갔다. “어떻게 된 거냐.” 그 말을 뱉는 순간, 심미연과 심태하가 본능처럼 떠올랐다. ‘온지유가 풀려났다고? 그럼 미연이랑 태하가 위험할 수도 있어.’‘도대체 어떤 놈이 감히 이런 짓을 벌인 거지?’ “나도 방금 들었어. 지금은 육현성 별장에 있다는 것 같아.” 박시훈은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알기에 곧장 강지한에게 알린 것이었다. “확실해?” 강지한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는 성무진을 시켜 교도소 내부를 철저히 관리하게 했었다. 온지유가 아무리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아이가 축복받지 못한 존재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고 싶지 않았다. “안 돼.” 이진영은 단호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하더니 곧장 의자에 앉아 이다은의 창백한 손끝을 조심스레 감쌌다. 그리곤 한 톤 낮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육현성 그 자식은 아버지 자격 없어. 네가 그 인간 아이를 낳으면 평생 끌려다닐 거야. 정말 그걸 바라는 거야?” 이다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결국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육현성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순간, 이진영의 말처럼 그 인연은 평생 끊어낼 수 없었다. 반면 아이가 없다면 그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다은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곧 마음을 다잡은 듯 결심이 담긴 목소리가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알았어. 오빠, 지금 바로 수술 예약해줘.”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언젠가는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그래. 병실에 얌전히 있어. 어디 가지 말고. 알았지?” 이진영은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는 이미 진운혁과 연락을 마친 상태였다. 진운혁은 이다은이 재판에서 반드시 승소할 수 있도록 돕겠다 했고 육현성의 재산 절반은 가져올 수 있을 거라 자신 있게 말했다. 이진영은 믿고 있었다. 동생이 건강만 회복하고 이혼만 잘 마무리된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육현성 같은 쓰레기는 다은이 앞에 다시는 나타나선 안 돼.’ “알겠어. 오빠, 이제 가봐.” 결정을 내린 이다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음 한쪽이 가볍게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언젠가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만날 테니까. 이진영은 병원 접수처로 향해 곧바로 수술 일정
“오빠,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서 정말 고마워.”온지유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눈을 반쯤 감은 채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하면서도 애교가 섞여 있었다. 지금의 온지유에게 육현성은 유일한 의지처였다. 그를 잃는다면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육현성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됐다. ‘심미연, 기다려. 복수할 기회는 반드시 만들 거야.’“세상에 이렇게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온지유는 그의 품에 몸을 기댄 채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유야, 그런데 만약 네가 날 배신한다면 그때는 나도 내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겠어.”육현성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경고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이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걸 수 있었다. 그 사랑은 너무 깊어서 그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그래서 더더욱 만약 온지유가 그를 배신한다면 그는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팔이 점점 더 세게 조여오는 걸 느낀 온지유는 잠시 두려움이 스쳤다. 그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강지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을 죽음보다 더 끔찍하게 대할 것이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그 상상만으로도 차가운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오빠, 걱정하지 마. 난 절대 오빠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이번 생엔 오빠만 사랑할 거고 영원히 오빠 곁에 있을 거야.” 온지유는 속마음을 감추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은 여전히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앞으로 육현성 앞에선 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의심을 품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날 거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네가 날 사랑한다면 나도 너를 끝까지 사랑할 거야.” 그의 말은 무엇보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지유야, 이제 좀 쉬어. 나는 아래층 좀 보고 올게. 밥 먹을 때 부를게
보통이라면 그녀가 화를 내면 강지한은 한 발 물러섰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양보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성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무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소영은 성무진을 보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며 공포에 휩싸였다. 이번엔 정말 끝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강지한에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이렇게까지 몰리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의 차갑고 무표정한 시선만이 머릿속에 반복되었다. 성무진은 그녀 앞에 서서 공손히 손짓하며 말했다. “큰 사모님, 모시겠습니다.”문소영은 강지한을 향해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눈빛을 보냈다. “강지한! 너 계속 이렇게 나를 몰아붙인다면 정말 당장 죽어버릴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책상 쪽으로 달려가 머리를 책상 모서리에 부딪히려 했다. 그러나 강지한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며 어두운 표정으로 단호하게 명령했다. “성 비서, 데려가.”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그는 문소영의 모습이 점점 더 불쾌하게 느껴졌다. 성무진은 빠르게 다가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실례하겠습니다. 큰 사모님.” 그 말과 함께 그는 차가운 손길로 문소영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 “놔! 당장 놔!” “손 떼! 지금 당장!” 문소영은 크게 외치며 저항했지만 성무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거칠게 차에 태웠다. 차에 태운 후 성무진은 팔을 놓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문소영은 재빨리 차 문을 열려 손을 뻗었다. “큰 사모님, 죄송합니다.”성무진은 고개를 숙이며 손을 들어 그녀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리쳤다. 문소영은 그대로 기절했다. 성무진은 그녀를 차 안에 눕히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차 밖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역시 대표님을 화나게 하면 끝이 좋을 리가 없지.’‘어쩔 수 없군.’ 그 순간, 성무진은 갑자기 떠오른
도진혁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바로 대답했다. “물론이죠. 저는 진지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신하린 곁에 이렇게 오랜 시간 머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어제 하린이를 하늘 하우스로 데려갔어요. 한 번 들러보세요. 하린이 곁에 조금 있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심미연은 서류봉투를 흘깃 바라본 뒤 덧붙였다. “이 서류는 제가 꼼꼼히 검토하고 나서 다시 연락드릴게요.”도진혁이 직접 합작 제안서를 들고 찾아온 이상 함부로 거절할 수는 없었다. 수익이 보장된 일이라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 이상 놓쳐선 안 되는 법이었다. “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도진혁은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그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갔다. 심미연은 그가 사라진 문 쪽을 한참 바라보다 방금 전 그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쪽에서 조용한 불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린이 목에 남은 상처가 아직 그대로일 텐데...’‘진혁 씨가 그걸 보면... 혹시 이진영 씨에게 따지러 가는 건 아닐까?’강지한 사무실.성무진은 문소영을 데려다주고 서둘러 떠났다. 강지한의 얼굴엔 냉기가 서려 있었고 성무진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사무실 안에서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문소영은 익숙하다는 듯 안으로 들어섰고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느긋하게 쏘파에 앉았다. “비서한테 차 좀 가져오라 해. 괜찮은 차로.” 그녀는 비서부가 꽤 유능하단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웬만한 건 다 알아서 해줄 정도로. 하지만 강지한은 말없이 서랍을 열어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와 그 봉투를 그녀의 무릎 위에 떨어뜨렸다. “직접 보시죠.”“뭘 보라는 거야?” 문소영은 그를 향해 냉정하게 시선을 던졌다. “보면 알아요.” 강지한은 담담하게 말하고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뭐가 들어있길래...?” 문소영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봉투를 들었다. 무
심미연은 박유진이 수년 동안 마음을 다해 사랑해온 여자였다. 그런 여자를 박유진이 쉽게 놓을 리 없었다. 조용히 그의 뒤를 따르던 비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표님, 정말 모든 걸 걸고 계시는군요... 제발 심미연 씨가 그 진심을 외면하지 않기를...”한편, 심미연은 전화를 끊자마자 문 쪽을 향해 말했다. “들어오세요.”조심스레 열린 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도진혁이었다. 그는 마치 급히 돌아온 듯 피곤하고 바쁜 기색이 역력했다. “도 비서님...?” 심미연은 예상치 못한 사람을 보고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 휴가를 낸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왜 지금... 여기 있는 거지?’그의 뒤에서 따라 들어온 비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조용히 말했다. “심 대표님, 실례하겠습니다. 이분은 저희 도강홀딩스의 대표, 도진혁 대표님이십니다.”비서는 서류봉투를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말없이 한 걸음 물러섰다. “이 서류는 도강홀딩스와 은성 그룹이 합작할 프로젝트에 관한 제안서입니다. 먼저 검토 부탁드립니다.”심미연은 비서가 놓고 간 서류를 잠시 바라보다가 도진혁을 천천히 되돌아보며 눈썹을 살짝 올렸다. ‘도진혁 대표님...?’ ‘그렇다면 도진혁 씨가 휴가를 낸 이유는... 회사를 물려받기 위한 준비였던 건가?”그때 도진혁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최 비서, 잠깐 나가 있어. 심 대표님과 단둘이 얘기할 게 있어.” 도진혁은 정장을 완벽하게 차려입고 평소보다 더 단정하고 신경 쓴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말투와 행동은 여유롭고 예의 바르며 그에게서 흐르는 것은 전형적인 사회 엘리트의 품위였다. “네. 대표님.” 최세라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문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떠나기 전에 조심스럽게 심미연을 한 번 쳐다봤다. ‘이분이 대표님이 좋아하는 여자분인가... 정말 예쁘다. 대표님이 회사를 물려받은 이유가 이분 때문이라면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