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놀라며 서로 얼굴을 마주쳤다. ‘뭐라고? 이 여자가 정말 사람을 구했다고?’ ‘하지만 그 펜이 몸속에 박힌 채로 있는데 사람이 안 죽는 게 말이 되나?’ 의사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몇 명의 남자들에게 고함쳤다. “왜 멍하니 서 있는 거예요? 얼른 손을 풀어주세요.” ‘이런 무지한 사람들, 어떻게 생명을 구하는 의사를 이렇게 대하는 거지?’ 심미연은 여유 있게 돌아서며 그들을 쳐다봤다. “무식하면 책이나 더 많이 읽고 배워요. 하루 종일 쓸데없는 동영상이나 보며 시간 낭비하지 말고요.”상황은 순식간에 반전되었고 군중들은 자신들이 방금 그 여자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모두가 심서연을 찾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이미 조용히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심미연은 어떻게 의술을 익혔고 게다가 왜 그 기술이 상당히 뛰어난 것처럼 보였는지. 이번에 심미연을 죽이지 못했으니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었다.“환자분은 이제 괜찮은 것 같으니 저도 이만 가겠습니다. 다들 이쪽에서 떠나 주세요. 여기 계속 있으면 교통에 방해가 될 겁니다.” 심미연은 말을 마친 후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 여자는 정신을 차리더니 ‘쿵’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 “방금 정말 오해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 남편을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연락처 좀 남겨 주세요. 남편이 다 나으면 꼭 찾아뵙고 고맙다고 인사드리겠습니다.” 심미연은 뒤를 돌아보며 그 여자를 한 번 쳐다봤다. “괜찮습니다.” 방금 그 남자는 그 자리에 누워 있었고 주변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여자는 남편이 다쳤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녀는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다. 관심조차 없는 듯했다. ‘생각해 보면 그 남자도 참 불쌍한 사람일지도.’ 심미연은 그런 생각을 하며 차로 돌아갔다. 차에서 마스크와 장갑을 벗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옷을 정리한 뒤 안전벨트를 채웠다. 그
남자의 흉악한 기세에 불륜녀는 겁에 질려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의 두 눈에는 남자를 향한 공포만이 가득했다. 아마 남자가 모든 죄를 자신에게 뒤집어씌울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나한테 시집왔으면 얌전히 굴어. 안 그랬다간 내가 어떻게 너를 처리하는지 똑똑히 보게 될 거야.” 남자는 가장 잔인한 본성을 드러냈다. 어차피 이제 가면을 쓸 필요도 없었다.영상을 다 본 심미연은 미간을 주무르며 말했다. “나머지 증거들은 이미 다 정리했어요. 내일 내가 직접 법정에 나가서 이 사건을 맡을 겁니다.” 그 남자는 원래 아내와 이혼할 수 있었지만 재산을 독차지하려고 끝까지 이혼하지 않았고 결국 아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불륜녀는 나이도 어리고 얼마든지 자기 또래와 결혼해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도 뻔뻔하게 다른 사람의 가정에 끼어들어 그 남자와 손잡고 원래 아내를 죽이는 데 가담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감히 세상에 살아갈 자격이 있을까?’ ‘두 사람은 반드시 내 손으로 감옥에 보내버릴 거야.’ ‘평생 다시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만들 거야.’임현은 심미연이 매우 피곤해 보이는 모습을 보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세요? 몸이 안 좋으신가요?” “머리가 좀 아파요.” 심미연을 아이를 낳고 나서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자주 몸살이나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잠깐 쉬시는 게 어때요?” “괜찮아요. 계속 진행합시다. 어제 말했던 친모가 아들을 죽인 사건 자료 보여주세요.”임현은 빠르게 자료를 가져와 심미연 앞에 놓으며 말했다. “이 어머니는 오늘로 70세가 되셨어요. 하지만 아들은 술을 마시고 오랫동안 어르신을 폭행했죠. 그날 밤 아들은 술에 취해 의자까지 어르신에게 던졌어요.” “어르신은 계속 피했지만 나이가 많아 반응이 빠르지 않았고 손발도 예전 같지 않아서 결국 의자에 맞고 허벅지를 다쳤습니다. 화가 난 어르신은 옆에 있던 술병을 집어 들어 아
심미연은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먼저 사무실로 가서 얘기합시다.” 그녀의 말투에서 강한 기세가 느껴졌고 마치 여왕님처럼 당당했다. “심 대표님, 이쪽입니다.” 도진혁은 정중하게 손을 내밀어 그녀를 초대하는 제스처를 했다. 심미연은 아무 말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도진혁은 그녀 뒤에서 걸으며 의도적으로 걸음을 천천히 하여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 그는 손을 뻗어 버튼을 눌렀다. 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는 왜 신하린이 이 비서를 추천했는지 알 것 같았다. 확실히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한 심미연은 도진혁이 이미 서류를 깔끔하게 분류해 놓은 것을 발견했다. 어떤 서류는 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라며 따로 분류되어 있었고 심지어 중요한 내용은 메모지에 적어 놓고 바로 보일 수 있도록 서류 속에 끼워 놓았다. 심미연은 두 개의 급한 서류에 서명을 마친 뒤 펜을 천천히 내려놓고 도진혁을 바라보았다. “혹시 원하는 게 있나요? 예를 들면 연봉 인상이나 주택 문제 같은 거. 당신이 요구하는 건 뭐든지 내가 해결해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뛰어난 인재는 반드시 회사에 붙잡아 두고 싶었다. 연봉, 집, 차 모두 문제될 게 없었다. 도진혁 한 명이 여러 명의 효율을 낼 수 있으니 그녀는 완전히 큰 이득을 본 셈이었다. “감사합니다. 심 대표님. 지금은 특별히 도와주실 일이 없습니다.” 도진혁은 매우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는 이 두 해 동안 회사에서 번 돈으로 이미 차와 집을 모두 구입했으며 연봉도 경성에서 꽤 높은 수준이라 추가로 월급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알았어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심미연은 속으로 연말이 되면 그에게 연말 보너스를 좀 더 줄 생각을 하며 평소에도 간간히 보너스를 챙겨줄 계획을 세웠다.돈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을 충성스럽게 오래도록 회사에 묶어둘 수 있다. 매번 새로운
[강지한, 내 아들을 유치원에서 데려간 건 무슨 뜻이야?] 심미연은 참지 못하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강지한의 이런 행동은 단번에 그녀의 화를 폭발시키기 충분했다. [내 아들이기도 해. 내가 그 아이를 데려가는 게 왜 안 되는 거지?] 강지한은 마치 아무 일 없는 듯 여유롭고 담담하게 되물었다.유치원에서 병원으로 가는 길 그는 이미 확신을 했다. 이 아이가 바로 그의 아들이라는 걸. 너무 똑똑하고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그와 너무 닮았다. 강지한을 결정을 내렸다. 우선 아들을 자신 곁에 데려다 키운다면 심미연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일은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내가 말했잖아. 태하는 네 아들이 아니라고.]심미연은 마음이 점점 더 가라앉았다. 강지한의 아들이 맞는지 확인하려면 친자 검사를 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만약 강지한이 지금 애를 데리고 친자 검사를 한다면...’그 생각에 심미연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태하가 나한테 한마디라도 할 수 있게 해줘. 그래야 내가 마음이 놓일 거야.]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심미연이 강지한이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을 때 아들의 부드럽고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어디 있어요? 빨리 나 데리러 와요. 금방 병원에 도착했어요.] 병원이라는 두 글자를 듣는 순간 심미연의 온몸은 얼어붙은 듯 굳어졌고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다. 정말 아무리 대비하고 대비해도 강지한이 아들을 빼앗아간 이 한 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엄마, 빨리 데리러 와요. 무서워요.] 심미연은 본능적으로 주먹을 꽉 쥐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뭐라고 해도 절대 따라가지 마. 꼭 기억해.] 그녀는 아들의 머리가 충분히 똑똑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 말라는 걸 하면 그는 반드시 그것을 피하려고 할 것이다. [엄마, 알겠어요. 빨리 데리러 오세요.] 심태하는 말을 마친 후 바로 전화를 끊었다. 심미연은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서둘러
강지한과 심태하는 혈연 관계가 있긴 했지만 사실상 그들의 첫 번째 공식적인 만남이었다. 강지한은 여전히 심태하에게 낯선 존재였고 심태하는 그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동생 만나러 데려가줄게. 이제 우리랑 같이 살자. 우리 집은 네 집이기도 해.” 강지한은 그를 안아 올리며 그가 반응하기 전에 말을 이었다. “심태하, 아빠랑 엄마 그리고 동생이랑 같이 사는 거 싫어?” 심태하는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제가 만약 싫다고 말하면 저를 집에 돌려보내줄 거예요?” 강지한은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안 돼.” “그럼 당신은 독재자잖아요.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데 왜 물어보는 거예요?” 심태하의 작은 얼굴에는 불쾌함이 가득했다. 강지한은 눈을 좁히며 그를 쳐다봤다. ‘이 녀석, 반응도 빠르고 말도 잘하네.’ ‘정말 신기하게도 심미연과 똑같아.’심태하는 강지한의 침묵이 길어지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첫 만남인데 혹시라도 그가 자신에게 손을 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렇게 강하게 반박하면 결국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속으로 겁이 났다. 심태하는 무서운 마음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강지한은 심태하를 안고 계단을 올라 강상미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강상미는 작은 토끼 인형을 품에 안고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강지한이 병실에 들어갔지만 강상미는 전혀 깨지 않았다. 심태하는 병상 옆으로 다가가 침대에 누워 있는 소녀를 보았고 그제야 그날 만났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굴에 있던 불쾌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져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제가 동생을 아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묻어 있었다. 강지한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를 바라봤다. “너희가 아는 사이였어?” 심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알아요.”“그럼 이제 너와 상미는 남매가 된 거야. 상미랑 같이 살면 재미있지 않겠어?”
“동생아, 일어났어?” 강상미의 목소리를 들은 심태하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강지한을 밀어내며 말했다. “빨리 내려줘요.” 심태하는 강지한이 과거에 심미연에게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로 인해 강지한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었고 자연스럽게 그에게 더 차갑고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 강지한은 허리를 굽혀 심태하를 병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둘이 잠깐 놀아. 나 잠깐 나갔다 올게.” 그 말을 끝내고 그는 돌아서서 방 밖으로 나갔다. 강지한은 일부러 두 아이를 남겨두고 혼자 나갔다. 그가 생각하기에 두 아이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될 것이고 그때부터는 서로 끊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워질 거라고 믿었다. 강지한은 두 아이가 친남매처럼 서로 의지하며 지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관계라면 두 아이가 싸우거나 갈등을 일으킬 걱정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밖으로 나온 강지한은 곧바로 의사 사무실로 향했다.병실 안에서 두 아이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디가 아픈 거야? 왜 병원에 있어?” 심태하는 고개를 갸웃하며 궁금한 마음을 그대로 물었다. ‘전에 두 번 만났을 때는 괜찮아 보였는데 왜 갑자기 병원에 있는 거지?’“난 아주 심한 병에 걸렸어. 엄마가 말했어. 아마 죽을 수도 있다고...” 강상미는 심태하의 손을 꽉 잡고 슬픔이 묻어나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난 죽고 싶지 않아...” 심태하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곧바로 자세를 고쳐 세우며 말했다. “너 아프면 우리 엄마가 치료해줄 거야. 내가 엄마한테 말해서 널 꼭 치료하게 할 거야.” 그의 목소리엔 자랑이 묻어 있었다. “앞으로 우리 엄마의 사랑을 반으로 나눠줄게. 괜찮지?” 강상미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좋아.”“혹시 핸드폰 있어?” 심태하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있어. 왜?” 강상미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엄마한테 전화하려고. 잠깐만 빌려줘.”
그녀는 강지한과 원수가 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이미 그들은 적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아직 서로 날을 세우며 정면으로 맞서고 있지 않을 뿐이었다. [그냥 다음에 고소해요. 오늘은 빨리 와서 저 집에 데려가요. 저 정말 그 사람이랑 조금도 같이 있고 싶지 않아요. 너무 싫어요.] 심태하는 강지한이 항상 굳은 얼굴을 하고 있고 말투도 딱딱해서 조금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싫었다. ‘엄마가 그 사람을 싫어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었어.’ [태하야, 버릇없이 굴지 마.] 심미연의 목소리가 단호해지며 눈에 띄게 불쾌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엄마, 난 정말 그 사람이 싫어요.] 심태하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그가 강지한을 싫어하는 건 어쩌면 그동안 조사한 자료 때문일지도 몰랐다. 강지한과 직접 만나기 전부터 이미 선입견이 있었고 여기에 강지한의 차가운 태도가 더해지자 더욱 싫어지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세계는 단순했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다. 거짓말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싫어도 겉으로 티를 내면 안 돼. 더군다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건 더더욱 안 돼. 알겠지?] 심미연은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 [알았어요. 엄마, 그럼 빨리 와요. 운전은 천천히 하시고요. 안전이 제일 중요해요.] 심태하는 마치 어른인 양 당부했다. 심미연은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전화를 끊은 심태하는 핸드폰을 강상미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우리 엄마 곧 올 거야. 핸드폰 돌려줄게. 고마워.” 강상미는 핸드폰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심태하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오빠는 엄마가 있어서 좋겠다...” 그녀도 오빠의 엄마처럼 따뜻하고 다정한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심미연은 낮게 스포츠카를 몰고 마치 사냥감을 쫓는 날렵한 맹수처럼 밤의 어둠을 뚫고 질주해왔다. 타이어가 도로와 마찰을 일으키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자 그 소리가 적막했던 밤의 공기를 단숨에 갈라놓았다.
수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심미연, 나 임신했어. 지한 씨랑 빨리 이혼해. 우리 아이가 아빠도 없이 태어나는 걸 원하는 거야? 아이는 죄가 없잖아... 얼마나 불쌍하겠어!”심미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나 감정이 묻어나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로 응수했다.“더 하고 싶은 말 있어? 어차피 녹음 중이니까 지금 다 말해. 나중에 이혼 소송할 때 도움 될 테니까.”“심미연, 너 진짜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거야? 나쁜 년, 녹음까지 하다니...”욕설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들려오는 삐 소리를 들으며, 심미연은 천천히 손에 든 임신 테스트기를 내려다보았다.[임신 4주 차]또렷한 글자가 눈에 박혔다. 원래는 오늘 밤 강지한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려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이 아이는 나에게 찾아온 구원이야...’...퇴근 후 집에 들어서자, 도우미 임혜자가 반갑게 다가왔다.“사모님, 아침에 알려주신 레시피대로 요리 준비 다 해놨어요. 옷 갈아입고 내려오시면 바로 시작하시면 됩니다.”심미연은 신발을 벗으며 무심히 답했다.“아주머니가 해주세요. 저는 목욕 좀 할게요.”임혜자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아, 네. 알겠습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사모님이 평소에는 몸이 안 좋아도 도련님 밥은 꼭 직접 준비하셨는데... 무슨 일이 있으신 건가?’심미연은 피곤한 몸을 욕조에 담그며 눈을 감았다. 차가운 물소리가 하루의 무게를 씻어내는 듯했지만, 깊은 피로는 그녀를 그대로 잠들게 했다.깨어난 것은 갑작스러운 움직임 때문이었다. 몸이 들어 올려지는 느낌에 눈을 떠보니 강지한의 깊고 날카로운 눈동자와 마주쳤다.“아주머니한테 식사 준비를 부탁했다고 했다던데, 어디 안 좋은 거야?”강지한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심미연은 온지유의 전화가 떠올라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형님... 임신하셨다면서? 아이를 낳으실 생각인가 봐?”강지한은
그녀는 강지한과 원수가 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이미 그들은 적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아직 서로 날을 세우며 정면으로 맞서고 있지 않을 뿐이었다. [그냥 다음에 고소해요. 오늘은 빨리 와서 저 집에 데려가요. 저 정말 그 사람이랑 조금도 같이 있고 싶지 않아요. 너무 싫어요.] 심태하는 강지한이 항상 굳은 얼굴을 하고 있고 말투도 딱딱해서 조금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싫었다. ‘엄마가 그 사람을 싫어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었어.’ [태하야, 버릇없이 굴지 마.] 심미연의 목소리가 단호해지며 눈에 띄게 불쾌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엄마, 난 정말 그 사람이 싫어요.] 심태하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그가 강지한을 싫어하는 건 어쩌면 그동안 조사한 자료 때문일지도 몰랐다. 강지한과 직접 만나기 전부터 이미 선입견이 있었고 여기에 강지한의 차가운 태도가 더해지자 더욱 싫어지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세계는 단순했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다. 거짓말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싫어도 겉으로 티를 내면 안 돼. 더군다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건 더더욱 안 돼. 알겠지?] 심미연은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 [알았어요. 엄마, 그럼 빨리 와요. 운전은 천천히 하시고요. 안전이 제일 중요해요.] 심태하는 마치 어른인 양 당부했다. 심미연은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전화를 끊은 심태하는 핸드폰을 강상미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우리 엄마 곧 올 거야. 핸드폰 돌려줄게. 고마워.” 강상미는 핸드폰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심태하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오빠는 엄마가 있어서 좋겠다...” 그녀도 오빠의 엄마처럼 따뜻하고 다정한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심미연은 낮게 스포츠카를 몰고 마치 사냥감을 쫓는 날렵한 맹수처럼 밤의 어둠을 뚫고 질주해왔다. 타이어가 도로와 마찰을 일으키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자 그 소리가 적막했던 밤의 공기를 단숨에 갈라놓았다.
“동생아, 일어났어?” 강상미의 목소리를 들은 심태하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강지한을 밀어내며 말했다. “빨리 내려줘요.” 심태하는 강지한이 과거에 심미연에게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로 인해 강지한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었고 자연스럽게 그에게 더 차갑고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 강지한은 허리를 굽혀 심태하를 병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둘이 잠깐 놀아. 나 잠깐 나갔다 올게.” 그 말을 끝내고 그는 돌아서서 방 밖으로 나갔다. 강지한은 일부러 두 아이를 남겨두고 혼자 나갔다. 그가 생각하기에 두 아이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될 것이고 그때부터는 서로 끊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워질 거라고 믿었다. 강지한은 두 아이가 친남매처럼 서로 의지하며 지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관계라면 두 아이가 싸우거나 갈등을 일으킬 걱정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밖으로 나온 강지한은 곧바로 의사 사무실로 향했다.병실 안에서 두 아이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디가 아픈 거야? 왜 병원에 있어?” 심태하는 고개를 갸웃하며 궁금한 마음을 그대로 물었다. ‘전에 두 번 만났을 때는 괜찮아 보였는데 왜 갑자기 병원에 있는 거지?’“난 아주 심한 병에 걸렸어. 엄마가 말했어. 아마 죽을 수도 있다고...” 강상미는 심태하의 손을 꽉 잡고 슬픔이 묻어나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난 죽고 싶지 않아...” 심태하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곧바로 자세를 고쳐 세우며 말했다. “너 아프면 우리 엄마가 치료해줄 거야. 내가 엄마한테 말해서 널 꼭 치료하게 할 거야.” 그의 목소리엔 자랑이 묻어 있었다. “앞으로 우리 엄마의 사랑을 반으로 나눠줄게. 괜찮지?” 강상미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좋아.”“혹시 핸드폰 있어?” 심태하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있어. 왜?” 강상미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엄마한테 전화하려고. 잠깐만 빌려줘.”
강지한과 심태하는 혈연 관계가 있긴 했지만 사실상 그들의 첫 번째 공식적인 만남이었다. 강지한은 여전히 심태하에게 낯선 존재였고 심태하는 그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동생 만나러 데려가줄게. 이제 우리랑 같이 살자. 우리 집은 네 집이기도 해.” 강지한은 그를 안아 올리며 그가 반응하기 전에 말을 이었다. “심태하, 아빠랑 엄마 그리고 동생이랑 같이 사는 거 싫어?” 심태하는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제가 만약 싫다고 말하면 저를 집에 돌려보내줄 거예요?” 강지한은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안 돼.” “그럼 당신은 독재자잖아요.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데 왜 물어보는 거예요?” 심태하의 작은 얼굴에는 불쾌함이 가득했다. 강지한은 눈을 좁히며 그를 쳐다봤다. ‘이 녀석, 반응도 빠르고 말도 잘하네.’ ‘정말 신기하게도 심미연과 똑같아.’심태하는 강지한의 침묵이 길어지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첫 만남인데 혹시라도 그가 자신에게 손을 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렇게 강하게 반박하면 결국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속으로 겁이 났다. 심태하는 무서운 마음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강지한은 심태하를 안고 계단을 올라 강상미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강상미는 작은 토끼 인형을 품에 안고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강지한이 병실에 들어갔지만 강상미는 전혀 깨지 않았다. 심태하는 병상 옆으로 다가가 침대에 누워 있는 소녀를 보았고 그제야 그날 만났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굴에 있던 불쾌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져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제가 동생을 아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묻어 있었다. 강지한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를 바라봤다. “너희가 아는 사이였어?” 심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알아요.”“그럼 이제 너와 상미는 남매가 된 거야. 상미랑 같이 살면 재미있지 않겠어?”
[강지한, 내 아들을 유치원에서 데려간 건 무슨 뜻이야?] 심미연은 참지 못하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강지한의 이런 행동은 단번에 그녀의 화를 폭발시키기 충분했다. [내 아들이기도 해. 내가 그 아이를 데려가는 게 왜 안 되는 거지?] 강지한은 마치 아무 일 없는 듯 여유롭고 담담하게 되물었다.유치원에서 병원으로 가는 길 그는 이미 확신을 했다. 이 아이가 바로 그의 아들이라는 걸. 너무 똑똑하고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그와 너무 닮았다. 강지한을 결정을 내렸다. 우선 아들을 자신 곁에 데려다 키운다면 심미연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일은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내가 말했잖아. 태하는 네 아들이 아니라고.]심미연은 마음이 점점 더 가라앉았다. 강지한의 아들이 맞는지 확인하려면 친자 검사를 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만약 강지한이 지금 애를 데리고 친자 검사를 한다면...’그 생각에 심미연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태하가 나한테 한마디라도 할 수 있게 해줘. 그래야 내가 마음이 놓일 거야.]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심미연이 강지한이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을 때 아들의 부드럽고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어디 있어요? 빨리 나 데리러 와요. 금방 병원에 도착했어요.] 병원이라는 두 글자를 듣는 순간 심미연의 온몸은 얼어붙은 듯 굳어졌고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다. 정말 아무리 대비하고 대비해도 강지한이 아들을 빼앗아간 이 한 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엄마, 빨리 데리러 와요. 무서워요.] 심미연은 본능적으로 주먹을 꽉 쥐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뭐라고 해도 절대 따라가지 마. 꼭 기억해.] 그녀는 아들의 머리가 충분히 똑똑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 말라는 걸 하면 그는 반드시 그것을 피하려고 할 것이다. [엄마, 알겠어요. 빨리 데리러 오세요.] 심태하는 말을 마친 후 바로 전화를 끊었다. 심미연은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서둘러
심미연은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먼저 사무실로 가서 얘기합시다.” 그녀의 말투에서 강한 기세가 느껴졌고 마치 여왕님처럼 당당했다. “심 대표님, 이쪽입니다.” 도진혁은 정중하게 손을 내밀어 그녀를 초대하는 제스처를 했다. 심미연은 아무 말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도진혁은 그녀 뒤에서 걸으며 의도적으로 걸음을 천천히 하여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 그는 손을 뻗어 버튼을 눌렀다. 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는 왜 신하린이 이 비서를 추천했는지 알 것 같았다. 확실히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한 심미연은 도진혁이 이미 서류를 깔끔하게 분류해 놓은 것을 발견했다. 어떤 서류는 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라며 따로 분류되어 있었고 심지어 중요한 내용은 메모지에 적어 놓고 바로 보일 수 있도록 서류 속에 끼워 놓았다. 심미연은 두 개의 급한 서류에 서명을 마친 뒤 펜을 천천히 내려놓고 도진혁을 바라보았다. “혹시 원하는 게 있나요? 예를 들면 연봉 인상이나 주택 문제 같은 거. 당신이 요구하는 건 뭐든지 내가 해결해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뛰어난 인재는 반드시 회사에 붙잡아 두고 싶었다. 연봉, 집, 차 모두 문제될 게 없었다. 도진혁 한 명이 여러 명의 효율을 낼 수 있으니 그녀는 완전히 큰 이득을 본 셈이었다. “감사합니다. 심 대표님. 지금은 특별히 도와주실 일이 없습니다.” 도진혁은 매우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는 이 두 해 동안 회사에서 번 돈으로 이미 차와 집을 모두 구입했으며 연봉도 경성에서 꽤 높은 수준이라 추가로 월급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알았어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심미연은 속으로 연말이 되면 그에게 연말 보너스를 좀 더 줄 생각을 하며 평소에도 간간히 보너스를 챙겨줄 계획을 세웠다.돈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을 충성스럽게 오래도록 회사에 묶어둘 수 있다. 매번 새로운
남자의 흉악한 기세에 불륜녀는 겁에 질려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의 두 눈에는 남자를 향한 공포만이 가득했다. 아마 남자가 모든 죄를 자신에게 뒤집어씌울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나한테 시집왔으면 얌전히 굴어. 안 그랬다간 내가 어떻게 너를 처리하는지 똑똑히 보게 될 거야.” 남자는 가장 잔인한 본성을 드러냈다. 어차피 이제 가면을 쓸 필요도 없었다.영상을 다 본 심미연은 미간을 주무르며 말했다. “나머지 증거들은 이미 다 정리했어요. 내일 내가 직접 법정에 나가서 이 사건을 맡을 겁니다.” 그 남자는 원래 아내와 이혼할 수 있었지만 재산을 독차지하려고 끝까지 이혼하지 않았고 결국 아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불륜녀는 나이도 어리고 얼마든지 자기 또래와 결혼해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도 뻔뻔하게 다른 사람의 가정에 끼어들어 그 남자와 손잡고 원래 아내를 죽이는 데 가담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감히 세상에 살아갈 자격이 있을까?’ ‘두 사람은 반드시 내 손으로 감옥에 보내버릴 거야.’ ‘평생 다시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만들 거야.’임현은 심미연이 매우 피곤해 보이는 모습을 보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세요? 몸이 안 좋으신가요?” “머리가 좀 아파요.” 심미연을 아이를 낳고 나서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자주 몸살이나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잠깐 쉬시는 게 어때요?” “괜찮아요. 계속 진행합시다. 어제 말했던 친모가 아들을 죽인 사건 자료 보여주세요.”임현은 빠르게 자료를 가져와 심미연 앞에 놓으며 말했다. “이 어머니는 오늘로 70세가 되셨어요. 하지만 아들은 술을 마시고 오랫동안 어르신을 폭행했죠. 그날 밤 아들은 술에 취해 의자까지 어르신에게 던졌어요.” “어르신은 계속 피했지만 나이가 많아 반응이 빠르지 않았고 손발도 예전 같지 않아서 결국 의자에 맞고 허벅지를 다쳤습니다. 화가 난 어르신은 옆에 있던 술병을 집어 들어 아
그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놀라며 서로 얼굴을 마주쳤다. ‘뭐라고? 이 여자가 정말 사람을 구했다고?’ ‘하지만 그 펜이 몸속에 박힌 채로 있는데 사람이 안 죽는 게 말이 되나?’ 의사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몇 명의 남자들에게 고함쳤다. “왜 멍하니 서 있는 거예요? 얼른 손을 풀어주세요.” ‘이런 무지한 사람들, 어떻게 생명을 구하는 의사를 이렇게 대하는 거지?’ 심미연은 여유 있게 돌아서며 그들을 쳐다봤다. “무식하면 책이나 더 많이 읽고 배워요. 하루 종일 쓸데없는 동영상이나 보며 시간 낭비하지 말고요.”상황은 순식간에 반전되었고 군중들은 자신들이 방금 그 여자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모두가 심서연을 찾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이미 조용히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심미연은 어떻게 의술을 익혔고 게다가 왜 그 기술이 상당히 뛰어난 것처럼 보였는지. 이번에 심미연을 죽이지 못했으니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었다.“환자분은 이제 괜찮은 것 같으니 저도 이만 가겠습니다. 다들 이쪽에서 떠나 주세요. 여기 계속 있으면 교통에 방해가 될 겁니다.” 심미연은 말을 마친 후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 여자는 정신을 차리더니 ‘쿵’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 “방금 정말 오해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 남편을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연락처 좀 남겨 주세요. 남편이 다 나으면 꼭 찾아뵙고 고맙다고 인사드리겠습니다.” 심미연은 뒤를 돌아보며 그 여자를 한 번 쳐다봤다. “괜찮습니다.” 방금 그 남자는 그 자리에 누워 있었고 주변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여자는 남편이 다쳤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녀는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다. 관심조차 없는 듯했다. ‘생각해 보면 그 남자도 참 불쌍한 사람일지도.’ 심미연은 그런 생각을 하며 차로 돌아갔다. 차에서 마스크와 장갑을 벗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옷을 정리한 뒤 안전벨트를 채웠다. 그
이 사람들의 말을 들은 심미연은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람을 죽인 게 아니다. 사람을 살리고 있었다. “다들 뭐 하고 있는 거예요? 빨리 저 여자 잡아서 경찰서에 넘기세요.” 심서연은 군중을 부추기며 사람들에게 다가가라고 재촉했다.그녀가 태어난 순간부터 모든 이들은 그녀와 심미연을 비교했다. 심미연은 예쁘고 말도 달콤하게 잘하며 똑똑하기까지 했다. 모든 아름다운 칭찬이 심미연에게 쏟아졌고 그녀는 그 옆에서 빛을 잃은 채 서 있었다. 그녀는 화가 나고 억울했다.원래는 심미연을 팔아넘길 생각이었지만 결국 자신이 팔려버린 것이다. 그녀는 심씨 가문의 딸로서 특권을 누리며 살아야 했지만 결국 산골로 팔려가 고통의 세월을 겪었다. 겨우 도망쳐 나왔지만 심미연은 여전히 사람들 앞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였고 그녀는 산골에서 돌아온 촌스러운 소녀일 뿐이었다. 집안의 하인들조차 그녀를 몰래 비웃으며 촌스럽다고 했다. 그녀는 매일같이 심미연을 죽이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마침내 기회가 왔다.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다.그 여자가 갑자기 심미연에게 달려들며 소리쳤다. “당신이 내 남편을 죽였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심미연은 이마를 찡그리며 그녀를 붙잡았다. “당신 남편은 죽지 않았어요.” “움직이지도 않잖아요. 분명 죽었어요.” 여자는 말하며 눈물을 쏟았다. ‘그때 내가 그 사람과 다투지 않고 혼자 앞서 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이미 그 사람은 죽었고 이제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맞아요. 당신 남편은 죽었어요. 이 여자 당장 경찰서로 끌고 가요. 살인자는 대가를 치러야죠.” 심서연은 심미연의 차갑고 무심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세상이 무너져도 전혀 두려워 하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심미연은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째려보며 말했다. “입 닥쳐.” ‘도대체 심서연은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
심미연은 손을 뻗어 주머니에서 펜 하나를 꺼냈다. 방법이 이거뿐이었다. 그녀는 펜을 환자의 흉막강에 찔러 넣으려던 참이었다. 그때 누군가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심미연, 지금 뭐하는 거야!” 그 소리에 심미연은 짧게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나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곧 그곳에 서 있는 심서연과 눈이 마주쳤다. “환자 살리는 게 급해. 너랑 얘기할 시간 없어.” 심미연은 심서연을 아예 무시한 채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다.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 심서연과 논쟁할 여유는 없었다.“너가 사람을 살린다고? 너 의사야? 의사 면허는 있어? 없잖아.” 심서연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비아냥거렸다. “너는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는 거야.” “심서연, 이제 그만 떠들어.” 심미연은 냉랭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응급처치가 늦어져서 이 사람 생명이 위험해지면 너 그 책임 질 자신 있어?” 심미연이 환자에게 응급처치를 하려던 찰나 한 여자의 급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남편한테 손대지 마세요.”이때 주변 사람들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저 여자 의사도 아니고 의사 면허도 없으면서 어떻게 환자한테 응급처치 하겠다고 나서?” “세상에. 만약 저 여자가 제때 오지 않았으면 저 남자 아마 죽었을 거야. 저 여자가 죽일 뻔했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죽일 생각을 하다니 대단한 용기네. 저 남자랑 무슨 관계였던 거 아니야?” 심서연은 이 대화들을 들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심미연은 그런 말들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물론 의사 면허를 가지고 있었다. 단지 어느 병원에도 취직하지 않았을 뿐이다. 심서연의 그 우쭐한 표정은 정말 한심해 보였다. “이분이 정말 당신 남편이라면 제발 저를 믿고 맡겨주세요. 반드시 살려내겠습니다.” 심미연은 남자 곁애 무릎 꿇은 여자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환자의 상태는 더 이상 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