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병원, VIP 병실.병실 침대에 창백한 얼굴로 핸드폰을 꼭 쥐고 있는 온지유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심미연, 그 여자가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강지한이 집을 그리 헐레벌떡 뛰어가나 싶었다.‘고약한 계집애!’그리고 하루빨리 방법을 찾아 심미연을 없애버려야 했다.바로 이때, 누군가가 병실 문을 두드리자 온지유는 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들어오세요.”문이 열리자마자 육현성의 얼굴이 보였다.“현성 오빠, 여긴 웬일이에요?”온지유가 의아해서 물었다.밤도 늦었는데 갑자기 여기엔 무슨 일인가 싶었다.그러자 육현성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갑자기 온지유를 품에 안았다.“지유 씨, 잠깐만 안고 있을게요.”심상치 않은 그의 목소리에 온지유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여태껏 큰형수라고 부르던 육현성이 갑자기 호칭도 바꾸고 이런 행동을 하니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다.그것도 아주 큰 일.“아니요. 그저 안고 싶어서요.”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온지유는 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그녀도 같이 안아줬다.“무슨 일이 있으면 저한테 말해요. 어쩌면 제가 해결 방법을 알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육현성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녀로서는 받아 줄 수도, 또 거절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조금이라도 여지를 주면 바로 달려드는 사람인데 지금은 무슨 일인지부터 알아야 했다.“진짜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저 한번 안아주고 금방 가려고 했거든요.”온지유를 안고 있으니 또 가기 싫어졌다.하지만 고민 끝에 재빨리 팔을 풀고 다시 일어섰다.“오늘 많은 실례를 범했네요. 화내지 말아 주세요. 큰형수님.”육현성은 마치 잘못을 저지른 어린애처럼 침대 옆에 고개를 떨구고 서 있었다.그 모습에 온지유는 그의 손을 다시 다정하게 잡아주면서 싱긋 미소를 지었다.“화 안 내요. 그러니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줘요.”육현성한테 무슨 일이 터진 게 분명했다.아니면 이 정도로
육현성은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파 또다시 그녀를 품에 안았다.“제가 진성 쪽에 집이 한 채 있는데 리우까지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요. 만약 진짜 갈 곳이 없으면 거기서 지내도 되고 거기에 가사 도우미도 두 분 정도 붙여드릴게요. 지유 씨, 이제 더 이상 당신이 힘든 일은 없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그의 말은 매우 감동적이었고 온통 온지유를 배려한 말들이었다.육현성은 가능하다면 자신의 모든 걸 온지유에게 주고 싶었다.그의 고백처럼 들리는 말에 온지유는 육현성이 보지 않는 틈을 타 싱긋 미소를 지었다.그러다가 다시 그에게 조심스레 말했다.“저랑 심미연 씨 관계는 이제 벌어질 대로 벌어졌어요. 저번에 제가 인터넷에서 된통 욕먹게 된 일도 아마 들었을 텐데 만약 제가 오빠네 집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날에는 또다시 네티즌들을 이용해서 저를 공격할 거예요. 저는 지금 그저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싶어요. 그리고 혹시나 이 소식이 육씨 가문 사람들의 귀에까지 들어가면 오빠도 곤란하게 될 텐데 괜히 저 때문에 그럴 필요 없어요.”육현성은 그녀의 말에 더욱 가슴이 아파 팔에 힘을 꽉 주면서 답했다.“그렇다고 지유 씨가 고생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잖아요. 심미연은 제가 반드시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온지유는 진심으로 자신을 위해 화를 내는 육현성이 너무 고마웠다.예전부터 그는 온지유가 무얼 먹고 싶다고 하면 아무리 한밤중이라고 해도 나가서 사다 주곤 했었다.나중에 강지성에게 시집을 갔어도 그녀에 대한 다정함은 여전했다.그저 예전보다 분수에 맞게 거리를 살짝 뒀었지만 오늘만큼은 예전의 육현성으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현성 오빠, 괜히 저 때문에 바보 같은 짓 하지 말아요. 아무리 그래도 심미연은 지금 강지한의 아내이고 그 여자한테 무슨 짓을 하는 날에는 강지한 씨부터 분명 오빠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괜히 그 사람이랑 사이가 벌어질 필요는 없잖아요.”온지유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말리자 육현성
온지유의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육현성은 또다시 그 주범이 심미연이라고 생각했고 날 잡아서 심미연과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았다.만약 말로 통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무력을 쓸 수밖에.“지유 씨,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무조건 도울게요. 그런데 지금은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요. 전 이만 갈 테니까 푹 쉬어요.”육현성은 말을 마친 뒤 바로 자리를 떴다.병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서야 온지유는 침대에서 일어나 손에 감은 붕대를 풀었다.사실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고 거즈에 묻은 피도 그녀가 일부러 묻혀놓은 것이다.자살 시도도 당연히 쇼였고 상처는 살짝 났지만 빠르게 아물었다.이제 자살 쇼로도 강지한을 못 붙잡았으니 무조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한창 달게 자고 있던 심미연은 갑자기 누가 몸을 누르고 있는 듯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잠에서 깼다.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강지한의 얼굴이었는데 무드등의 따뜻한 빛이 남자의 얼굴에 드리워지니 한층 다정해 보이기도 했다.그러다가 문득 뱃속의 아이가 생각나면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지한 씨, 왜 그래요?”잠에서 금방 깨어난 탓에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웠는데 괜히 어두운 불빛 때문에 더욱 야하게 들렸다.“방금까지 계속 나랑 하자고 애원하길래 난 또 시작해도 되는 줄 알았지.”강지한의 말에 심미연은 어리둥절했다.그와 3년 동안 같은 침대를 쓰면서 매일 그의 품 안에서 잤던 건 사실이다.하여 잠결에 자연스레 또 그의 품에 기어들어 갔나 싶었다.‘그렇다고 해도 아까 분명 자기 전에 이불을 각자 덮을 수 있도록 두 개로 나눴는데 왜 지금 내가 저 사람의 품에 안겨 있는 걸까?’“우리 사모님께서 원한다고 하시는데 제가 어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강지한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한껏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의 귀를 간지럽혔다.방금 진짜로 심미연이 그의 이불 안으로 파고들면서 자기 품에 안기는 바람에 그도 잠에서 깼다.그리고 쌕쌕거리면서 세상모르
심미연은 짜릿함에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지한 씨, 하지 마요!”“끝까지 안 하고 그저 기분이 좋아지게만 해줄게. 그래도 싫어?”“싫어. 난 잘 거야!”심미연은 한껏 단호하게 답했지만 남자가 억지로 강요하면 어쩌나 걱정되었다.“내가 이렇게나 열심히 서비스해 주는데도 싫다고? 사모님, 거짓말 좀 그만하시죠.”남자는 부드럽게 심미연의 몸을 훑으며 또 끊임없이 그녀의 귀에 입김을 내뿜었다.더는 참을 수 없었던 심미연은 그를 힘껏 밀쳐내고 침대에서 한 바퀴 구른 뒤 조심스레 배를 움켜쥐고 침대 한쪽에 앉았다.그제야 강지한과 거리를 둘 수 있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는 순간 낯빛이 어두워졌다.눈앞의 여자는 지금 명백히 자신과의 잠자리를 거부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박유진 때문이야?’‘아까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심미연은 그가 아무런 말도 없이 빤히 바라보자 괜히 마음에 찔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그러자 강지한은 단번에 다시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몸 아래에 깔고 그녀의 잠옷을 열어젖혔다.“넌 아직 내 아내야. 그러니까 부부의 임무를 다하는 건 당연하고 날 거부할 권리가 없다는 소리야!”분명 심미연과 박유진 사이에 자기가 모르는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한 강지한은 오늘 무조건 그녀와 잠자리를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빠르게 그녀의 잠옷이 활짝 열렸는데 아직 실내 온도가 차가운 탓에 심미연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지한 씨, 이건 부부로서의 임무가 아니라 명백한 성폭행에 해당해서 내가 고소할 수도 있어!”심미연은 죽을힘을 다해 반항했지만 남자는 끄떡도 없었다.“네 실력만 믿고 지금 우리 쪽 법률팀과 싸우겠다는 거야? 심미연 씨, 꿈도 참 야무지네요.”여자의 하얀 피부를 보고 있으니 강지한은 또다시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순간 남자는 끓어오르는 욕망을 참지 못해 한껏 거칠게 움직였다.심미연은 긴장되고 두려운 마음에 침대 머리맡에 손을 뻗다가 손에 집히는 핸드폰으로 그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심미연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으면 그녀가 지난달 생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너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고 지금 나를 탓하는 거야?”강지한은 자기도 모르게 이마를 짚다가 계속 흐르는 피를 보고 다시 얼굴이 어두워졌다.아내랑 한번 잠자리를 가지려다가 맞아서 머리가 깨졌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어디 얼굴을 들고 다닐 수나 있을까 싶었다.심미연은 그의 이마를 보고 더 이상 입씨름하기 싫어 곧바로 옷방으로 향했다.그리고 빠르게 캐주얼한 차림으로 나오면서 강지한에게 욕실 가운 하나를 건넸다.“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옷 갈아입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대충 이거라도 먼저 걸쳐.”강지한이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그녀에게 되물었다.“지금 나더러 알몸으로 병원에 가라고? 사모님, 괜찮으시겠어요?”순간 심미연은 얼굴이 화끈거려 재빨리 속옷 한 장을 그에게 다시 건네줬다.“빨리 입어!”“날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스스로 입으란 거야?”강지한은 코웃음을 치며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결혼한 지도 이제 3년이 넘어가지만 심미연은 여전히 이런 게 많이 쑥스러운 것 같았다.고민 끝에 심미연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허리를 굽혀 손을 뻗었다.“발 들어.”그의 알몸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지만 막상 이런 상황에 부딪히니 너무 부끄러웠다.“피가 눈에 들어가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어디로 다리를 뻗으면 될까?”강지한은 순간 그녀를 놀리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담담하게 말했다.“지한 씨!”심미연도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의 뻔뻔함에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그럼 안 입을래. 그냥 이대로 병원에 가자.”강지한은 말을 마친 뒤 곧바로 일어서서 알몸 그대로 자리를 뜨려 했다.그 모습에 순간 당황한 심미연이 다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잠깐만. 내가 입혀줄게!”강지한은 그제야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짓더니 침대에 다시 앉아 두 다리를 벌렸다.“지금 내가 과다 출혈로 죽는 걸 보고 싶어서 일부러 느릿느릿 움직이는 거지? 내가 죽으면 내
“지한 씨, 먼저 올라가. 난 주차해 놓고 바로 따라갈게.”심미연은 최대한 자연스레 말했지만 역시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강지한이 눈썹을 들썩이며 물었다.“날 이렇게 만들어놓고 지금 그냥 튀려는 건 아니지?”“아니야!”심미연은 그저 너무 부끄러울 뿐이었다.“그럼 나도 같이 갈래.”강지한은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지 덤덤하게 말했다.심미연은 점점 조급해진 마음에 입술을 꽉 깨물고 그를 다시 설득했다.“빨리 내려. 오늘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왜 자꾸 따라오겠다고 고집부리는 거야!’“심미연, 솔직하게 말해. 이대로 가려고?”왠지 불안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분명 도망칠 것 같았다.‘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알겠으니까 빨리 내려.”심미연은 어쩔 수 없이 시동을 끈 뒤 차에서 내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모자 달린 후드라도 입을걸, 그러면 얼굴이라도 조금 가릴 수 있었을 텐데.’하지만 남자는 차에서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심미연은 깊은 한숨을 한 번 내쉰 뒤 반대쪽 차 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내려.”그러자 강지한이 한껏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부축해 줘.”“...”어리광 부리는 그의 모습에 심미연은 할 말을 잃었지만 문득 가운에 묻은 피를 보고는 재빨리 팔을 뻗어 부축해 줬다.“머리 부딪히지 않게 조심해.”작은 소리로 속삭이는 그녀에게 고개를 돌리자 어슴푸레한 불빛이 그녀의 반쪽 얼굴만 비쳐 유난히 신비롭고 아름답게 느껴져 한참 동안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이따 어떻게 다쳤는지 물어보면 무조건 실수로 넘어졌다고 해. 헛소리하지 말고!”심미연은 얼굴이 빨개진 채 다시 그에게 당부했다.혹시나 사실이 밝혀지면 이제부터 제대로 얼굴을 들고 밖에 나갈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강지한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더니 그녀에게 되물었다.“날 때린 게 부끄럽긴 한가 봐?”사실 아까 처음 맞았을 때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심미연의 목을 당장에라도 졸라
강지한이 거의 그녀에게 눕다시피 기댄 바람에 엘리베이터에 오르니 심미연은 이미 온몸이 땀범벅이었다.강지한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벽에 기대어 한참 동안 바라보았는데 어디 극한 훈련이라도 하고 온 사람처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사실 심미연의 얼굴은 보고만 있어도 사람을 기분 좋아지게 만들었다.위층으로 올라간 뒤 강지한은 곧바로 응급실로 향했다.솔직히...응급실에 갈 만큼 심하게 다친 건 아니다.하지만 병원 관계자들은 혹시나 강지한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되어 재빨리 응급실로 안내했다.응급실 문이 닫힌 뒤에야 심미연은 의자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오는 길 내내 강지한은 마치 뼈가 없는 사람처럼 그녀에게 기댔는데 힘들어 죽을 뻔했다.이제 숨 좀 돌리려고 하는데 마침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인을 확인해 보니 신하린이었는데 그제야 오늘 병원에 안 간 사실을 깨닫고 재빨리 통화버튼을 눌렀다.“하린아, 내가 다 설명할게...”“심미연, 너 진짜 강지한 씨를 때려서 그 사람이 지금 병원에 입원했어?”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신하린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심미연이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설마 자기 핸드폰에 도청 장치라도 달았나 싶었다.“네가 강지한 씨를 폭행했다는 사실이 지금 실검에 떴어. 그리고 강지한 씨가 가운만 입고 너한테 기댄 채 병원에 온 사진이 인터넷에서 마구 퍼지고 있거든.”신하린은 말하다가 갑자기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미연아, 잘했어! 강지한 같은 인간은 좀 맞아야 해.”“나 때문에 다친 건 맞는데 일부러 때린 건 아니야. 억지로 잠자리를 요구해서 내가 핸드폰으로 머리를 찍어버렸어.”심미연은 억울한 얼굴로 신하린에게 해명했다.그나저나 이 일이 실검에 올랐다는 건 모든 사람이 다 알게 되었다는 소리다.‘할아버지께서 듣고 또 쓰러지는 건 아니겠지?’또한 시어머니인 문소영은 원래부터 심미연을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이번 일까지 더해지면 분명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하여 혹시나
얼굴이 뜨겁게 화끈거렸다. 심미연은 고개를 들어 온지유의 살기 어린 눈빛을 마주했다. 이어 얼굴을 매만지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키는 온지유보다 살짝 컸기에 내려다보며 차갑게 웃었다. “나랑 지한 씨가 부부 사이에서 하는 장난일 뿐인데 네가 뭔 상관이야!” “이 뻔뻔한 년이!” 온지유가 손을 들고 다시 그녀를 때리려 했지만 심미연은 눈빛이 차갑게 변하더니 단번에 그녀의 손목을 잡고는 재빨리 반대 손으로 얼굴을 거세게 내리쳤다. “내가 뻔뻔하다고? 강지한이 아직 내 합법적인 남편인 거 잊지 마! 너무 오래 남의 남편한테 들러붙어 있더니 환각까지 생긴 거야?” 평소 강지한과 온지유에 대한 실시간 검색어를 볼 때마다 그녀는 애써 외면하려 하며 자기 소모를 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인생은 자기 것이니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저 가치 없는 사람 때문에 자신을 망쳐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지금 온지유는 당당히 여기 와서 그녀를 때리며 따지고 있었다. 진짜 자신을 만만하게 보고 마음대로 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온지유는 얼굴에 화끈거리는 통증을 느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심미연을 바라보았다. “네가 감히 나한테 손을 대?” ‘지금까지 강지한을 위해 참아왔던 온지유가 아무리 도발해도 반응하지 않더니 오늘은 대체 무슨 일이야? 감히 반격해?’ “네가 먼저 친 거잖아. 나랑 무슨 상관이야?” 온지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분명히 말하는데 앞으로 또 날 자극하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어떻게든 되갚아줄 테니까 각오해!” 원래는 강지한과 빨리 이혼해서 온지유와 잘되도록 해주려 했었다. 지금은 외할머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아야 하지만 앞으로 온지유와의 갈등은 끊이질 않을 것이며 그녀가 참을수록 온지유는 점점 더 나아갈 것이다. ‘이제 남자의 사랑도 받지 못하는데 왜 그런 뻔뻔한 불륜녀까지 참아줘야 해?’ 심미연은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온지유
온지유는 그의 가슴에 귀를 대고 그의 심장박동을 들으며 순간 마음 한편에서 감동이 살짝 밀려왔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만약 그녀가 강지한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육현성이 이런 말을 한 순간 그녀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다! 온지유의 침묵은 육현성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그는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조금의 희망을 품고 있었고 어쩌면 그녀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자신과 함께 하기로 결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결국 그것은 그의 착각일 뿐이었다. “현성 오빠, 저는...” 온지유는 육현성이 괴로워하는 것을 느꼈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말하지 않아도 돼요! 나도 알아요. 지유 씨, 자기 자신을 강요하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살아요.” 결과를 알게 된 육현성은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앞으로 자주 만날 수는 없을 거예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면 당연히 그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 “현성 오빠, 나랑 이제 아예 연락고 안 해줄 건가요?” “지유 씨, 미안해요. 그냥 내가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요즘 육씨 가문이 엉망진창이라 육현성도 정신없이 바빴기에 온지유를 위로할 여유가 없었다. 온지유는 입술을 꽉 깨물며 갑자기 눈가가 붉어졌고 이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알겠어요!” 그녀는 육현성 같은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육현성이 떠나자마자 강지한이 도착했다. 온지유의 붉어진 눈을 보고 또 혼자서 온갖 상상을 하며 울었다고 생각했다. “유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눈에 안 좋다고 울지 말랬잖아.” 강지한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달래야 했다. 온지유는 육현성의 다정함이 떠오르며 울음을 참지 못하고 더 크게 오열하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지고 강씨 가문의 저택에서. 심미연은 단정한 원피스를
‘차라리 돌아와서 직접 아는 게 낫겠어.’ “성 비서, 말해! 도대체 무슨 일이야?”강지한의 목소리가 예리해졌다. 성무진은 한숨을 내쉬며 결국 알게 된 사실을 모두 전했다. 강지한의 심미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잠시 멈칫했다. 그날 전화로 심미연에게 온지유에게 사과하라고 했을 때 그녀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했었지만 그때 그는 뭐라고 말했지? 그는 심미연이 거짓말을 한다고 했었다. 그 후 며칠 동안 심미연은 전화하지 않았고 그는 그저 그녀가 사과하고 싶지 않아서 그를 피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심미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토록 큰 일이 있었는데 그녀는 그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아마 슬픔에 잠겨 있었겠지.’‘그래서 내게 그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거야.’ “대표님.” 성무진은 전화기 속에 아무 말도 들리지 않자 조심스럽게 부르며 물었다. “알았어. 그럼 여기까지 하자.” 강지한은 전화를 끊고 창밖의 차들이 가득한 거리를 바라보며 심미연이 혼자서 외할머니의 영정 앞에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 모습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 그는 남편이었지만 아무것도 몰랐으며 이상하게 코끝이 찡해졌다. 그때 할아버지의 전화를 다시 떠올리니 아마 할아버지도 심미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화가 너무 나서 전화를 끊어버렸던 거다. ‘할아버지는 나한테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강지한은 창가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그러다 온지유의 전화가 다시 울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 “또 무슨 일이야?”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한 씨, 나 무서워.”온지유는 반쯤 진심이고 반쯤 아닌 듯 말하였다.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강지한은 신속하게 응답했다. “지한 씨, 내가 일 방해한 건 아니야?” 온지유는 조심스럽게
생각을 정리하던 강지한은 결국 그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전화기에서 울려 퍼지는 건 차가운 신호음뿐이었다. 강지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바쁜 신호음만이 들려왔다. 강지한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심미연이라는 여자는 진짜 단 한 번도 그를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다. 잘못한 것도 그렇게 당당할 수가 있다니. 그녀가 그의 번호를 차단했다면 그 역시 그녀를 찾을 필요 없이 돌아가서 처리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강지한은 화면을 확인하고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 여자가 또 할아버지에게 고자질이라도 한 건가?’ ‘이젠 할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그를 혼내려는 걸까?’ 지난번에 매를 맞은 뒤로 최근 너무 바빠서 상처도 신경 못 썼더니 이제 염증이 나서 며칠째 고통스러웠다. 한참 후 강지한은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강지한! 너 요즘 어디에 가 있었냐? 왜 전화는 한 번도 받지 않는 거냐?”할아버지의 목소리는 거의 울부짖는 듯 분노가 그대로 드러났다. “저 요즘 진성에 출장 갔었어요. 핸드폰을 계속 켜놓고 있었는데 왜 안 받았겠어요?” 강지한은 늘 그렇듯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고 그는 정말로 전화를 꺼본 적이 없었다. “그럼 그쪽에 계속 있어! 평생 돌아오지 마!” 강준형은 화가 나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출장을 갔을 뿐인데 전화가 계속 안 된다니. 그게 단순한 우연일까?강지한처럼 예리한 사람이 왜 이 정도는 생각하지 못한 걸까? 강지한은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생각하고 있을 때 온지유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자 그의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무슨 일이야?” “지한 씨, 지금 어디야? 나 혼자 병실에 있으니까 너무 무서워. 와서 좀 같이 있어 줄래?” 온지유의 목소리엔 떨림이 섞여 있었고 그 공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알았어. 금
“그럼 어머니가 계획한 대로 하세요.” 이진영은 어머니와 대립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의 모든 결정은 이씨 가문을 위해서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말한 대로 그들은 이씨 가문의 명예를 누렸으니 개인적인 행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선택할 수 없었던 일이니까. “넌 먼저 한유나 씨와 연락하고 다시 전화해 줘. 저녁 식사는 취소할게.” “알았어요!” 이진영은 전화를 끊고 담배 한 개비를 피웠다. 그 연기 속에는 그 여자의 눈부시고 매혹적인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담배 한 개비를 마저 피우고 나자 여자의 얼굴도 사라졌다. 그는 살짝 웃으며 비서에게 한유나의 번호를 찾게 한 후 바로 전화를 걸었다. 곧이어 전화기에서 여자의 자만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당신의 소개팅 상대 이진영이에요.” “무슨 일이죠?”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냉담했다. 이진영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무슨 태도지?’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건가?’ “별일 없으면 그냥 끊을게요. 바빠요.” “소개팅 상대로 만나려면 점심에 얼굴 한 번 봐야죠. 어디죠? 데리러 갈게요.” 이진영의 말투는 여전히 평온했고 아무 감정이 없었다. “연구소로 와요.” 그녀는 빠르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진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생각했다. ‘역시 대가문의 따님답게 감히 나를 명령하네.’ “제가 일이 있어서 그럼 이만.” 그녀는 말을 끝내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바쁜 신호음이 들려오자 이진영은 코웃음을 치며 미소를 흘렸다. ‘잘난 척은 끝내주네.’ 그때 강지한의 전화가 걸려 왔고 이진영은 잠시 응급실에 있는 심미연을 떠올리며 망설인 뒤 전화를 받았다. “구도심 사람들 다 동의했어. 지금 와서 계약서에 사인해.” 강지한은 매우 지친 목소리였다. “내일은 안 돼?”그는 오늘 일정이 꽉 찬 상태였다. “오늘 밤에는 경성으로 돌아가야 해!” 강지한은 무의식
이진영은 신하린의 얼굴이 금세 빨개지는 것을 보고 살짝 눈을 좁혔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신하린,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이 여자가 혹시 자기가 여기서 뭔가 하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 이 병원이 자기가 소유하는 곳이라 해도 그런 식으로 무모하게 행동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하는 건 비밀스러움이 주는 그 자극적인 느낌이 있어 확실히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오늘 밤 당신 집에 가야 되나요? 아니면 우리 집으로 올래요?” 신하린은 이제 거짓말도 입을 열자마자 술술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사실 남자도 그녀가 진심을 말하지 않기를 원한다고 생각했다. 진짜 속마음을 말하면 상처가 될 테니까. “내가 네 집 하나 샀어. 일이 끝나면 같이 가서 보여줄게.”이진영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고 목소리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내가 사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신하린은 그가 주는 걸 원하지 않았고 그에게 뭔가를 받는다는 건 자존심이 상할 뿐이었다. “너 그곳 너무 좁아. 할 때 별로야.” 이진영은 손을 뻗어 신하린을 품으로 끌어안으며 그녀의 매혹적인 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비서한테 큰 소파랑 넓은 침대로 바꾸라고 했으니까 오늘 밤 한 번 써보자.” 조금 조롱이 섞인 말투였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은근히 기대가 치솟았다. 신하린의 얼굴은 금세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 남자가 정말 끝까지! 하루 종일 그런 생각만 하는 거냐고.’ “너 밥 해줄 거라고 말하지 않았어? 거기는 부엌도 넓고 기계도 다 새것으로 준비됐어...” 마지막 말은 그녀의 귀에 가까이 다가오며 속삭이듯 말했고 신하린의 얼굴을 빨갛게 물들었고 귀까지 붉어졌다. ‘이 남자는 정말 너무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바로 그때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고 신하린을 잠시나마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이진영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보며 번호를 확인
신하린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박유진에게 말했다. “잠깐 다녀올게요. 먼저 여기서 미연이 기다리고 있어요.” 이진영은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라 조금이라도 더 기다리게 하면 화를 낼 게 분명했다. 박유진은 그저 응답했을 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일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신하린은 그를 그윽하게 한 번 쳐다보고 그제야 돌아서서 떠났다. 박유진과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가능성이 없었다! 사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을 접고 있었다.안전 통로에서 이진영은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물고 있었다. 연기가 퍼져 나가면서 그의 잘생긴 얼굴이 그 속에서 아련하게 비쳤다. 신하린은 문 앞에서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얼굴은 참으로 잘생겼다. 그때 남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하며 인상을 조금 찌푸리며 말했다. “왜 안 와? 내가 널 잡아먹니?” 신하린은 시선을 떼고 한 발짝씩 그에게 다가갔고 마음속은 불안하고 떨렸다. 남자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나랑 있는 게 그렇게 싫은 건가?’ 신하린은 그의 앞에 다가가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미연이가 쓰러져서 박유진 씨와 함께 병원에 데려왔어요.” 이진영은 자연스레 그날 밤 강씨 가문에서 봤던 그 여자가 떠올랐다. 정말 독특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분위기 또한 차분하고 목소리는 매우 부드럽고 온화했다. 경성에서 그녀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는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토록 아름다웠음에도 강지한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마 그런 남자들은 결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는 걸지도 모른다.“미연이의 외할머니가 사흘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동안 혼자서 지키며 사흘을 보냈고 오늘 아침에 외할머니 장례식을 마친 후 쓰러졌어요.” 박유진과 자신 사이에 무언가 있다고 오해받길 원치 않았기에 그녀는 스스로 설명했다. 이진영은 눈을
신하린은 깜짝 놀라 손을 급히 떼었고 다시 돌아섰을 때 남자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다. 최근 며칠 동안 그의 전화를 피했던 신하린은 마음속에서 불안이 밀려왔다. 여기서 이 남자가 자신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 박유진도 있는데 말이다. 이진영은 신하린의 창백한 얼굴을 보자 속에서 폭발할 듯한 분노가 일렀다. ‘이렇게 겁을 먹은 정도로 내가 무서운 거야?’ 신하린은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이 곧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급히 그 앞에 다가가 애교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 “여긴 내 병원이야. 점검하러 왔는데 무슨 문제 있어?” 남자의 말투는 거칠었고 이미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신하린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그를 끌어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녁에 제가 직접 요리할게요. 함께 와서 먹을래요?” 심미연의 임신 사실이 절대 누설되지 않도록 이진영이 이미 말해둔 상태여서 신하린은 심미연을 이곳으로 데려왔지만 여기서 이진영을 만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정말 예상 밖이었다. “나한테는 수석 셰프가 요리해 주는데 넌 셰프 자격증은 있어? 나한테 밥 해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이진영은 차갑게 웃으며 날카로운 말투로 말했다. 며칠 동안 이 여자는 전화도 받지 않았고 문자도 답장하지 않았으며 영상통화는 아예 무시했었다. 그는 매우 화가 난 상태였다. 이제 와서 한 끼 식사로 그를 달래려고 한다니 그건 어림도 없었다. “그럼 됐어요!” 신하린은 약간 당황한 채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이 남자가 살짝 꼬리를 내리면 풀릴 줄 알았지만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 셰프 수준은 아니지만 요리를 꽤 잘하는 그녀였고 남자의 말은 그녀를 정말 난처하게 했다. 박유진은 이진영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그와 신하린 사이의 관계가 그리 단순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심미연은 알고 있을까?’ ‘모르고 있다면 알려야 할까?’
그는 그냥 강준형에게 더 이상 강지한의 일을 강제로 강요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었다. 강지한 같은 사람은 절대로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강준형은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미연이가 지난 3년 동안 겪은 그 모든 불공정한 대우는 다 내 잘못이야.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걸 인정하기가 싫어서 계속 모른 척하고 싶었어. 하지만 이제는 알겠어! 그만둘 거야. 미연이가 이혼을 원한다면 그건 그 자식이 감당할 문제야.” 3일 후 양경자의 장례식이 있었다. 하늘에는 잔잔한 비가 내리고 있었고 심미연은 검은 옷을 입고 우산을 쥔 채 묘비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차분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아 보였다. 마치 외할머니가 영원히 떠난 것이 아니라 잠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것처럼 말이다. 신하린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녀의 옆에 서 있었다. 3일 동안 심미연은 잠을 2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았다. 사실 심미연이 잠을 자지 않은 것보다 이 3일 동안 한 번도 울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고 지나치게 조용했던 사실이 신하린을 더 두렵게 했다. 신하린은 심미연이 극단적인 생각이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 박유진이 다가와 신하린과 짧게 눈빛을 주고받은 뒤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연아, 외할머니는 이제 편히 잠드셨어. 집에 데려다줄게.” 이 3일 동안 그는 심미연에게 휴식을 취하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그녀는 전혀 듣지 않았고 그녀가 하루하루 지쳐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외할머니는 편히 안장되었으니 그녀가 잘 수 있도록 집으로 데려가야 했다. 심미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오빠랑 하린이는 먼저 가. 난 할머니랑 좀 더 있다가 갈게.” “너 3일 내내 잠도 자지 않았잖아. 더 버티면 몸이 망가져!” 신하린은 목소리가 떨렸고 눈가는 이미 붉어져 있었다. 이 3일 동안 그녀는 심미연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신하린은 문 쪽을 바라보다가 은발을 휘날리며 걸어오는 강준형을 보고 급히 심미연을 불렀다. “미연아, 네 할아버지 오셨어.”심미연은 잠시 멈칫하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강준형은 지팡이를 짚고 그녀 쪽으로 걸어왔다.“미연아, 이렇게 큰 일이 있는데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니!” 강준형은 그녀의 너무 지친 모습에 마음이 몹시 아팠다. ‘정말 바보 같은 애구나.’ ‘어떻게 혼자서 이 모든 걸 짊어지려고 했을까.’ 심미연은 일어나려 했지만 무릎이 너무 아파 일어설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은 채 말했다. “할아버지, 어떻게 오셨어요?”그녀는 강지한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 강씨 가문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강지한에게 외할머니의 죽음을 이용해 책임을 피하려는 교활한 사람일 테니 그 이미지대로 남기로 했다. “하루 종일 연락도 안 되고 전화는 꺼져 있더라. 걱정돼서 사람을 시켜 확인해 봤더니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됐어. 미연아, 나는 네가 강지한 그 자식에게 마음이 떠난 걸 알아. 그런데 그놈은 그놈이고 나는 나야. 이런 일을 나한테까지 숨기지 말았어야지.”강준형은 빈소를 잠시 바라보며 심미연이 혼자 바쁘게 모든 걸 처리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다. ‘결국 이 모든 게 강지한 그 자식 때문이야!’ 강지한을 생각하니 강준형의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심미연도 연락이 안 됐고 강지한도 연락이 안 되었다. 고의로 잠적을 한 건지 뭔 일이라도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아내면 반드시 그 자식에게 따지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바빳어요. 핸드폰도 꺼져버려서 잊고 있었어요.”심미연의 목소리는 피곤함에 찌든 느낌이었다. “할아버지, 기사님이 데려다주신 건가요?” 그녀는 강지한에게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강준형에게 진짜 생각을 말할 리 없었다. 강준형은 심미연의 눈에 짙게 퍼져 있는 혈관과 창백한 얼굴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내가 사람을 데려왔어. 나머지 일은 그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