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한이 거의 그녀에게 눕다시피 기댄 바람에 엘리베이터에 오르니 심미연은 이미 온몸이 땀범벅이었다.강지한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벽에 기대어 한참 동안 바라보았는데 어디 극한 훈련이라도 하고 온 사람처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사실 심미연의 얼굴은 보고만 있어도 사람을 기분 좋아지게 만들었다.위층으로 올라간 뒤 강지한은 곧바로 응급실로 향했다.솔직히...응급실에 갈 만큼 심하게 다친 건 아니다.하지만 병원 관계자들은 혹시나 강지한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되어 재빨리 응급실로 안내했다.응급실 문이 닫힌 뒤에야 심미연은 의자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오는 길 내내 강지한은 마치 뼈가 없는 사람처럼 그녀에게 기댔는데 힘들어 죽을 뻔했다.이제 숨 좀 돌리려고 하는데 마침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인을 확인해 보니 신하린이었는데 그제야 오늘 병원에 안 간 사실을 깨닫고 재빨리 통화버튼을 눌렀다.“하린아, 내가 다 설명할게...”“심미연, 너 진짜 강지한 씨를 때려서 그 사람이 지금 병원에 입원했어?”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신하린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심미연이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설마 자기 핸드폰에 도청 장치라도 달았나 싶었다.“네가 강지한 씨를 폭행했다는 사실이 지금 실검에 떴어. 그리고 강지한 씨가 가운만 입고 너한테 기댄 채 병원에 온 사진이 인터넷에서 마구 퍼지고 있거든.”신하린은 말하다가 갑자기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미연아, 잘했어! 강지한 같은 인간은 좀 맞아야 해.”“나 때문에 다친 건 맞는데 일부러 때린 건 아니야. 억지로 잠자리를 요구해서 내가 핸드폰으로 머리를 찍어버렸어.”심미연은 억울한 얼굴로 신하린에게 해명했다.그나저나 이 일이 실검에 올랐다는 건 모든 사람이 다 알게 되었다는 소리다.‘할아버지께서 듣고 또 쓰러지는 건 아니겠지?’또한 시어머니인 문소영은 원래부터 심미연을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이번 일까지 더해지면 분명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하여 혹시나
얼굴이 뜨겁게 화끈거렸다. 심미연은 고개를 들어 온지유의 살기 어린 눈빛을 마주했다. 이어 얼굴을 매만지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키는 온지유보다 살짝 컸기에 내려다보며 차갑게 웃었다. “나랑 지한 씨가 부부 사이에서 하는 장난일 뿐인데 네가 뭔 상관이야!” “이 뻔뻔한 년이!” 온지유가 손을 들고 다시 그녀를 때리려 했지만 심미연은 눈빛이 차갑게 변하더니 단번에 그녀의 손목을 잡고는 재빨리 반대 손으로 얼굴을 거세게 내리쳤다. “내가 뻔뻔하다고? 강지한이 아직 내 합법적인 남편인 거 잊지 마! 너무 오래 남의 남편한테 들러붙어 있더니 환각까지 생긴 거야?” 평소 강지한과 온지유에 대한 실시간 검색어를 볼 때마다 그녀는 애써 외면하려 하며 자기 소모를 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인생은 자기 것이니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저 가치 없는 사람 때문에 자신을 망쳐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지금 온지유는 당당히 여기 와서 그녀를 때리며 따지고 있었다. 진짜 자신을 만만하게 보고 마음대로 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온지유는 얼굴에 화끈거리는 통증을 느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심미연을 바라보았다. “네가 감히 나한테 손을 대?” ‘지금까지 강지한을 위해 참아왔던 온지유가 아무리 도발해도 반응하지 않더니 오늘은 대체 무슨 일이야? 감히 반격해?’ “네가 먼저 친 거잖아. 나랑 무슨 상관이야?” 온지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분명히 말하는데 앞으로 또 날 자극하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어떻게든 되갚아줄 테니까 각오해!” 원래는 강지한과 빨리 이혼해서 온지유와 잘되도록 해주려 했었다. 지금은 외할머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아야 하지만 앞으로 온지유와의 갈등은 끊이질 않을 것이며 그녀가 참을수록 온지유는 점점 더 나아갈 것이다. ‘이제 남자의 사랑도 받지 못하는데 왜 그런 뻔뻔한 불륜녀까지 참아줘야 해?’ 심미연은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온지유
심미연은 입가에 조용히 웃음을 띠며 눈꼬리를 올렸다. “그 사람 너 사랑한다면서 결혼은 안 해주고 불륜녀로 만들어? 완전 쓰레기네!”예전에 온지유가 그녀 앞에서 이런 말을 하면 그녀는 오랫동안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에게 강지한은 평생의 연인이 아니라 그저 파트너일 뿐이다. 파트너에게 끝까지 변치 않기를 바란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물론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온지유가 그런 말을 해도 이제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너 그때 뻔뻔하게 그 사람 침대에 올라가지 않았으면 너랑 결혼까지 했겠냐!” 3년 전, 강지한이 심미연과 결혼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가슴 찢어질 듯한 아픔은 아직도 뚜렷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강지한이 평생 그녀만 기다리고 지켜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런 예고도 없이 결혼한다는 폭탄이 그녀에게 떨어졌다. 그녀가 심미연을 증오한 지 벌써 3년! 심미연을 몇 번이고 죽여버리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너도 뻔뻔하게 그 사람 침대에 올라갔는데 왜 널 아내로 안 받아들이는 걸까? 내가 더 예쁘거나 내가 더 괜찮아서? 스스로 반성해 봐!”복도에는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고 심미연은 온지유와 크게 싸우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그녀는 마치 별것 아닌 일을 얘기하듯 얼굴에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심미연의 말은 칼날처럼 온지유의 마음을 파고들었고 그 고통에 이성을 잃은 그녀는 미친 듯이 심미연에게 달려들며 얼굴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심미연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고 등은 벽에 부딪혀 아프게 쑤셨다. 온지유는 허공을 잡고 말았고 몸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바로 그때 응급실 문이 열리며 이마에 붕대를 감은 남자가 안에서 나왔다. 온지유가 분명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떠넘길 거라 심미연은 속으로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본능적으로 머리 위의 CCTV를 잠깐 살폈고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지한 씨, 나 배가 너무 아파...” 온지유의 목소리는 울먹임이 섞여 있었고 얼굴에는 눈물
“됐어. 말은 그만하고 바로 응급실로 가자.” 강지한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 뒤 옆에 서 있는 심미연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여기서 얌전히 기다려. 책임 회피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심미연은 ‘우리 아이’라는 말이 들리자 가슴이 순간 저릿하게 아파졌지만 잠시 숨을 고르며 차분히 말했다. “지한 씨, 내가 밀지 않았어. 여기 CCTV도 있으니까 당신이 직접 확인해 봐!” “굳이 볼 필요 없어. 난 내가 본 걸 믿어! 심미연, 만약 그 여자 뱃속의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넌 각오해야 할 거야!” 강지한의 목소리는 뼛속까지 서늘해질 정도로 차가워져 있었고 그 날카로운 눈빛은 마치 두 자루의 칼처럼 심미연을 베어낼 듯했다. 심미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약 온지유 뱃속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녀도 마음이 무거울 것이다. 결국 그날 그녀가 한 말이 온지유를 자극해 넘어지게 했으니까. 곧 의사가 도착했고 심미연은 닫힌 응급실 문을 한 번 보고서는 조용히 몸을 돌려 떠났다. 그녀의 뒷모습은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1층 로비에 내려와서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한참을 앉아 있었다. 기운을 차리고 나서야 천천히 밖으로 나섰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곧장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푹 자고 나니 아침이 되어 있었다. 눈을 떴을 때 옆자리엔 아무도 없었고 손을 뻗어보니 차갑기만 할 뿐 한 점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밤새 돌아오지 않은 게 분명했다. 온지유가 그렇게 되었으니 병원에 있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미 익숙해졌잖아. 안 그래?” 그녀는 감정을 추스르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신하린과 병원에 가기로 했으니 씻고 서둘러 내려가 아침을 먹었다. 임신하고 나서 그녀는 쉽게 배가 고파졌다. 어제 밤새 정신이 없었더니 아침에 참지 못하고 죽 한 그릇을 더 먹었다. 그 모습을 본 도우미 아줌마 임혜자는 웃으며 말했다. “사모님, 요즘 정말 잘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바로 죄를 덮어씌우려 했다. 물론 그가 그녀에게 이렇게 나온 건 처음이 아니었지만 여전히 마음이 아팠다. “난 내 눈으로 직접 본 것만 믿는다고 했어. 가서 온지유 돌봐.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강지한의 얼굴은 점점 더 싸늘해졌고 목소리는 한층 더 차갑고 딱딱해졌다. “그리고 어젯밤 실검 오른 일은 아직 따지지도 않았으니 알아둬.” 심미연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그걸 내가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 일은 너랑 나만 알고 있어. 근데 왜 실검에 올랐을까? 뻔하잖아! 심미연, 내 앞에서 잔머리 굴리지 마. 그러다 진짜 크게 다친다!” 강지한은 모든 걸 꿰뚫어 보고 있으며 단단히 확신하고 있었다. 심미연이 여론을 조작해 실검에 띄웠고 그것으로 두 사람의 부부 관계를 인정하도록 자신을 몰아붙이려고 한다고. 딱 3년 전 그녀가 똑같은 수단으로 자신에게 결혼을 강요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심미연의 그런 비열한 수법이 끔찍하도록 싫었다. 심미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가슴속으로 밀려오는 쓰라림을 억눌렀다. 무의식적으로 등을 꼿꼿이 세운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도 똑똑히 말했다. “실검은 내가 띄운 게 아니야. 나도 나중에 봤고 믿든 말든 네 맘대로 해.” 그가 믿지 않는다는 건 심미연도 알고 있었다. 믿었다면 애초에 이런 말을 꺼낼 리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억울하게 누명을 쓸 순 없었다. 강지한은 냉소를 지으며 비웃었다. “3년 전에 기자들이 침실까지 들이닥쳤을 때도 넌 똑같은 소리 했었지. 내가 책임질 필요 없다고 하더니 뒤에서는 몰래 할아버지 찾아가 억지로 결혼을 밀어붙인 게 누구였더라? 심미연! 네 말이 언제 믿을만했던 적이 있긴 해?” 심미연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내 말은 믿을 거 없어! 그럼 아예 말 안 할게! 네가 맞다면 그게 다야!”그녀는 더는 자기를 변호할 힘도 없었다.
“미연아, 생일 축하해!” 할아버지 강준형의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목소리엔 기쁨과 행복이 가득 담겨 있었다. 심미연은 잠시 멈칫하다가 오늘이 자기 생일인 걸 떠올렸다. 어제 박유진이 일부러 밖으로 불러내 브로치를 선물해 줬지만 강지한에 의해 쓰레기통에 버려진 일이 머릿속을 스쳤다. “할아버지가 생일 선물만 준비한 게 아니고 생일 만찬도 준비했으니까 오늘 시간 되면 일찍 와서 나랑 얘기라도 하자.” 강준형은 며칠째 그녀를 못 봐서 보고 싶어서 몹시 그리워하고 있었다. 나이가 드니 옆에 자식이나 손주가 있어야 외로움이 덜해지는 거 같았다. 심미연은 마음이 따뜻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네! 고마워요. 할아버지.” 강씨 가문에서는 할아버지 강준형만이 그녀에게 가장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그녀는 거절할 말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이제 시간도 늦었으니 어서 출근해! 난 이만 네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마.” 강준형은 그렇게 말하고는 스스로 전화를 끊었다. 그는 진심으로 심미연을 아꼈고 그녀가 점점 더 잘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강지한이 심미연과 함께하는 이유는 심미연이 아주 훌륭했고 남자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물론 예쁜 외모도 한몫했다. 심미연은 핸드폰을 쥔 채 마음이 복잡해졌다. 신하린은 금방 도착했다. 심미연이 차에 올르자 신하린은 곧바로 쇼핑백을 건넸다. “미연아, 생일 축하해!” 심미연은 쇼핑백에서 보석 상자를 꺼내 열었고 그 안에는 MK 브랜드의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가격은 8자리 숫자의 고가였고 심미연은 신하린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이렇게 비싼 걸 왜 나한테 줘! 네 작업실도 자금이 필요하잖아.” “그 사람이 나한테 카드를 주었어. 돈 필요하면 그 카드 쓰면 돼.” 신하린은 밝게 웃고 있었다. 심미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네가 그 사람의 돈에 욕심낸 게 아니란 거 알아. 너 나
“하린아, 뒤에 있는 차가 우리 따라오는 거 같지 않아?”심미연은 소리를 낮춰 신하린에게 말했다. 고속도로에서 겪었던 불쾌한 기억 때문에 그녀는 고속도로만 오면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또 사고라도 날까 봐 걱정되었다. “손잡이 꽉 잡아. 속도 낼 거야.” 신하린은 백미러를 바라보며 그 차도 똑같이 속도를 높이는 걸 확인했다. 그녀가 속도를 줄이면 그 차도 똑같이 속도를 줄였고 방향을 틀면 그 차도 그대로 따라 틀었다. 그 차는 마치 그녀들이 지나온 길을 그대로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두 사람은 그 차가 자신들을 쫓고 있다는 걸 확실히 알았다. “미연아, 가방 안에 있는 내 핸드폰 좀 꺼내줘. 그 사람한테 전화해야 해!” 신하린은 애써 침착하려 했지만 떨리는 목소리가 긴장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저 사람 신경 쓰지 말고 운전만 잘해.” 심미연은 그녀의 가방을 열어 핸드폰을 꺼냈고 전화를 걸기 전에 전화가 걸려 왔다. “진영 도련님이야. 받을까?”“받아!” 신하린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착용하고 급히 전화를 받았다. “다 자고 나서는 그냥 도망치네. 심하린! 나한테 도발하는 거야?”남자의 목소리는 저음으로 울려 퍼졌고 전화기 너머로도 그의 분노가 느껴졌다. 신하린은 급히 해명했다. “오늘 아침에 미연이랑 병원 검진 가기로 약속했다고 어젯밤에 말했잖아요.”“점심은 같이 먹어. 네가 해 줘!”남자의 목소리 속 분노가 확실히 조금 가라앉은 게 보였다. “점심은 미연이랑 밖에서 먹을 거예요. 오늘 미연이 생일이에요.”신하린은 자신과 남자 사이가 어떤 관계인지 잘 알고 있었다. 늘 그와 거리를 두려고 했고 자신이 더 깊게 빠지지 않도록 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고통받는 건 그녀였다. “신하린, 나 놀리는 거야?”남자는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 “내일은 어때요? 부탁이에요.” 남자가 미친 듯이 발광하며 점심에 집에 돌아와 밥을 해달라는 고집을 막기 위해 신하린은 그를 달래야만 했다. “저녁까
“누군가 막아서 더는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육현성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누군데?” “이씨 가문입니다.” 육현성은 손에 들고 있던 만년필을 힘껏 쥐었다. 펜촉이 손가락을 깊게 파고들며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차갑게 말했다. “일단 접어둬! 내가 알아보라고 한 건? 결과 나왔어?” “28년 전에 회장님이 어촌 마을에 가셨던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육씨 가문에 매입되어 휴양지로 개발됐습니다. 다만 그 사람이 정말 회장님의 자식인지 확인하려면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확보해 DNA 검사를 해봐야 합니다.” “계속 조사해. DNA 검사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육현성은 전화를 끊었고 얼굴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때 사무실 문이 갑자기 열렸다. “육현성, 내가 그 자식 당장 없애버리라고 했잖아! 왜 아직도 안 움직인 거야!” 분노에 찬 목소리가 귀에 울려 퍼졌다. 육현성은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바라봤고 그곳에서 어머니가 화가 잔뜩 난 모습으로 다가오는 걸 보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어머니, 여긴 어쩐 일로 왔어요?”“내가 몇 번이나 전화해도 받지 않길래 회사까지 찾아왔잖아!” 오미경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현성아, 지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말이라도 해줘! 네가 아무 말도 안 하니 집에 있는 내내 이런저런 생각만 하다가 머리가 터질 것 같다고!” 육현성은 손으로 미간을 문질렀다. “제가 진정하시라고 그랬잖아요. 그냥 예전처럼 쇼핑도 하시고 마사지도 받으시고 고스톱도 치시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생활에 영향 받지 말라고요.” “그렇게 밤낮으로 경계하며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나타난 내연녀와 그 자식에 게다가 그 자식이 벌써 스물일곱이라잖아! 너랑 겨우 두 살 차이야! 지금 나보고 진정하라고? 내가 어떻게 진정할 수 있겠어!”비록 재벌가에서 내연녀를 두는 일은
“우린 서로 잘 알지도 않잖아요. 그러니까 박시훈 씨, 이런 농담은 삼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좋은 소리는 안 나올 거예요.” 심미연의 말은 단호했고 표정에는 조금의 여지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 사람에게 결코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박시훈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화내지 마요. 농담 안 할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 살짝 겁이 났다. 정색한 심미연의 얼굴은 꽤 무서웠다. 강지한이랑 맞먹는 수준이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심미연은 노골적으로 그를 내보내려는 기색을 멈추지 않았다. “저... 진짜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에요. 한 번 생각해보는 건 어때요?” 박시훈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연애도 해본 적 없고 야자 마음을 얻는 방법도 몰랐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속 생각을 그대로 내뱉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심미연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리고 곧장 소파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제 가세요.”그녀는 주저함 하나 없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박시훈은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진심이었고 말 그대로 사실이였다. ‘난 능력도 있고 괜찮은 사람인데 서로 마음만 맞으면 잘될 수 있는 거 아닌가?’그렇게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심미연은 이미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박시훈 씨, 조심히 가세요. 멀리는 안 갈게요.”그녀는 박시훈이 불쾌해하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가 무슨 감정을 느끼든 어떤 생각을 하든 그건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방금 전 그의 자기중심적인 말투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박시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이대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뭔가 씁쓸하고 아쉽고 괜히 찬물 끼얹힌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는 마음속으로
심미연은 그가 심태하까지 조사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순간적으로 본능처럼 눈앞의 남자를 다시 보게 됐다. 겉보기엔 멋대로 굴고 책임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한량 같았지만 그의 눈빛만은 달랐다. 지나치게 날카롭고 마치 사람의 속까지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그건 결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눈이었다. ‘이 남자, 뭐지... 정말 이상한 사람인데.’겉모습만 보면 철없어 보이다가도 또 어떤 순간에는 의외로 능력 있어 보였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게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건 그가 왜 굳이 자신을 찾아와 이런 말을 꺼내는가였따. ‘설마 진심으로 그냥... 내 정체가 궁금해서?’“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저 진짜 악의는 없어요.” 박시훈은 양손을 번쩍 들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하늘에 맹세할게요.”심미연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래서 당신이 날 찾아온 목적이 뭐죠?”박시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진짜 이유를 말해도 돼요?” 그의 갈색 눈동자가 살짝 번쩍였고 그의 얼굴엔 순진해 보일 정도로 천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심미연은 속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돈 뜯어내려는 건가? 내가 그런 일에 쉽게 넘어갈 만큼 만만해 보였나.’“좋아합니다.”그가 느닷없이 말했다. “그 말 하려고 온 거예요. 좋아해도 될까요?” 심미연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박시훈의 얼굴엔 서서히 불안한 기색이 떠올랐다. 결국 그는 숨겨왔던 속마음을 한 번에 쏟아냈다. 망설일 시간 따윈 없었다. 그보다 먼저 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강지한이 그녀를 데려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컸다. 심미연은 그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또박또박 물었다. “당신 지금 자기가 무슨 말 하고 있는지는 알아요?”그녀는 그가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웠다. 서너 번 얼굴을 마주친 게 전부였고 제대로 된 인사조차 나눈 적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나타
심미연은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심, 심 대표님... 아까 어떤 남자분이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대표님을 찾으러 올라가셨어요.”프런트 직원의 목소리는 떨렸고 말도 더듬었다. “누구라고요?” 심미연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장미를 들고 자신을 찾아올 만한 사람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확실히 저를 찾은 거 맞아요?” “네... 확실합니다. 제가 막으려고 했는데 그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올라가셨어요...” 잘릴까 봐 겁이 난 프런트 직원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얼버무렸다. 그녀는 심미연이 이 거짓말을 영원히 눈치채지 않길 바랐다.심미연은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장미를 들고... 누굴까?’그때 사무실 문 밖에서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났다. 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조용히 말했다. “알겠어요. 일 보세요.”말을 마치기도 전에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갔다. ‘설마... 강지한? 다시 만날 일 없다고 말했는데 또 온 건가?’ 전화를 끊은 심미연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당신...?” 며칠 전, 하늘 하우스 앞에서 명함을 건넸던 그 남자였다.심미연은 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전화 달라고 했었는데... 내가 깜빡했네. 근데 사무실까지 찾아올 정도면 꽤 급한 일이 있나?’ ‘자, 받아요. 이거 당신한테 주는 거예요.” 박시훈은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는 듯 장미꽃을 밀어넣으며 말했다. “할 말 있어서 왔어요.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심미연은 그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할 말이 뭔데요?” “앉아서 얘기해요. 당신이 힘들면 안 되니까.” 박시훈은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 옆을 지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깔끔하고 단정한 분위기의 공간. 묘하게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박시훈은
이진영은 핸드폰을 쥔 채 반쯤 감긴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아무리 뒤져도 끝내 밝혀내지 못한 아버지의 비밀. ‘설마... 한석훈이 정말 뭔가 알고 있는 건가?’‘아니면 그냥 떠보는 소리일까?’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머릿속을 뒤엉켰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찾고 싶은 충동이 다시 치밀었지만 이진영은 고개를 돌려 이다은의 병실로 향했다. ...이노하이브 대표실. 강지한은 막 성무진에게서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문소영이 한 무리의 남자들에게 쫓기다 결국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은 심하게 어질러졌고 문이 잠겨 있어 그녀는 도망칠 틈조차 없었다. 결국 팔과 다리가 부러진 채 119에 실려 갔다. 강지한은 메시지를 닫고 입술을 천천히 매만졌다.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가벼운 경고’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음에도 제멋대로 날뛰면 그땐 진짜로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막 서류를 집어 들려는 순간,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자 박시훈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한아, 큰일 났어!” 강지한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해.” “온지유가... 나왔어.” 박시훈은 말끝을 떨며 믿기지 않는 듯 말을 이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 어떻게...?’ 믿기 힘든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무슨 수로 온지유를 꺼낸 거지?’ 강지한의 눈빛이 서서히 싸늘하게 식어갔다. “어떻게 된 거냐.” 그 말을 뱉는 순간, 심미연과 심태하가 본능처럼 떠올랐다. ‘온지유가 풀려났다고? 그럼 미연이랑 태하가 위험할 수도 있어.’‘도대체 어떤 놈이 감히 이런 짓을 벌인 거지?’ “나도 방금 들었어. 지금은 육현성 별장에 있다는 것 같아.” 박시훈은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알기에 곧장 강지한에게 알린 것이었다. “확실해?” 강지한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는 성무진을 시켜 교도소 내부를 철저히 관리하게 했었다. 온지유가 아무리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아이가 축복받지 못한 존재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고 싶지 않았다. “안 돼.” 이진영은 단호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하더니 곧장 의자에 앉아 이다은의 창백한 손끝을 조심스레 감쌌다. 그리곤 한 톤 낮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육현성 그 자식은 아버지 자격 없어. 네가 그 인간 아이를 낳으면 평생 끌려다닐 거야. 정말 그걸 바라는 거야?” 이다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결국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육현성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순간, 이진영의 말처럼 그 인연은 평생 끊어낼 수 없었다. 반면 아이가 없다면 그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다은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곧 마음을 다잡은 듯 결심이 담긴 목소리가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알았어. 오빠, 지금 바로 수술 예약해줘.”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언젠가는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그래. 병실에 얌전히 있어. 어디 가지 말고. 알았지?” 이진영은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는 이미 진운혁과 연락을 마친 상태였다. 진운혁은 이다은이 재판에서 반드시 승소할 수 있도록 돕겠다 했고 육현성의 재산 절반은 가져올 수 있을 거라 자신 있게 말했다. 이진영은 믿고 있었다. 동생이 건강만 회복하고 이혼만 잘 마무리된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육현성 같은 쓰레기는 다은이 앞에 다시는 나타나선 안 돼.’ “알겠어. 오빠, 이제 가봐.” 결정을 내린 이다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음 한쪽이 가볍게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언젠가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만날 테니까. 이진영은 병원 접수처로 향해 곧바로 수술 일정
“오빠,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서 정말 고마워.”온지유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눈을 반쯤 감은 채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하면서도 애교가 섞여 있었다. 지금의 온지유에게 육현성은 유일한 의지처였다. 그를 잃는다면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육현성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됐다. ‘심미연, 기다려. 복수할 기회는 반드시 만들 거야.’“세상에 이렇게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온지유는 그의 품에 몸을 기댄 채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유야, 그런데 만약 네가 날 배신한다면 그때는 나도 내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겠어.”육현성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경고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이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걸 수 있었다. 그 사랑은 너무 깊어서 그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그래서 더더욱 만약 온지유가 그를 배신한다면 그는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팔이 점점 더 세게 조여오는 걸 느낀 온지유는 잠시 두려움이 스쳤다. 그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강지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을 죽음보다 더 끔찍하게 대할 것이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그 상상만으로도 차가운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오빠, 걱정하지 마. 난 절대 오빠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이번 생엔 오빠만 사랑할 거고 영원히 오빠 곁에 있을 거야.” 온지유는 속마음을 감추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은 여전히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앞으로 육현성 앞에선 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의심을 품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날 거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네가 날 사랑한다면 나도 너를 끝까지 사랑할 거야.” 그의 말은 무엇보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지유야, 이제 좀 쉬어. 나는 아래층 좀 보고 올게. 밥 먹을 때 부를게
보통이라면 그녀가 화를 내면 강지한은 한 발 물러섰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양보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성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무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소영은 성무진을 보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며 공포에 휩싸였다. 이번엔 정말 끝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강지한에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이렇게까지 몰리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의 차갑고 무표정한 시선만이 머릿속에 반복되었다. 성무진은 그녀 앞에 서서 공손히 손짓하며 말했다. “큰 사모님, 모시겠습니다.”문소영은 강지한을 향해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눈빛을 보냈다. “강지한! 너 계속 이렇게 나를 몰아붙인다면 정말 당장 죽어버릴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책상 쪽으로 달려가 머리를 책상 모서리에 부딪히려 했다. 그러나 강지한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며 어두운 표정으로 단호하게 명령했다. “성 비서, 데려가.”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그는 문소영의 모습이 점점 더 불쾌하게 느껴졌다. 성무진은 빠르게 다가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실례하겠습니다. 큰 사모님.” 그 말과 함께 그는 차가운 손길로 문소영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 “놔! 당장 놔!” “손 떼! 지금 당장!” 문소영은 크게 외치며 저항했지만 성무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거칠게 차에 태웠다. 차에 태운 후 성무진은 팔을 놓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문소영은 재빨리 차 문을 열려 손을 뻗었다. “큰 사모님, 죄송합니다.”성무진은 고개를 숙이며 손을 들어 그녀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리쳤다. 문소영은 그대로 기절했다. 성무진은 그녀를 차 안에 눕히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차 밖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역시 대표님을 화나게 하면 끝이 좋을 리가 없지.’‘어쩔 수 없군.’ 그 순간, 성무진은 갑자기 떠오른
도진혁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바로 대답했다. “물론이죠. 저는 진지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신하린 곁에 이렇게 오랜 시간 머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어제 하린이를 하늘 하우스로 데려갔어요. 한 번 들러보세요. 하린이 곁에 조금 있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심미연은 서류봉투를 흘깃 바라본 뒤 덧붙였다. “이 서류는 제가 꼼꼼히 검토하고 나서 다시 연락드릴게요.”도진혁이 직접 합작 제안서를 들고 찾아온 이상 함부로 거절할 수는 없었다. 수익이 보장된 일이라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 이상 놓쳐선 안 되는 법이었다. “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도진혁은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그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갔다. 심미연은 그가 사라진 문 쪽을 한참 바라보다 방금 전 그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쪽에서 조용한 불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린이 목에 남은 상처가 아직 그대로일 텐데...’‘진혁 씨가 그걸 보면... 혹시 이진영 씨에게 따지러 가는 건 아닐까?’강지한 사무실.성무진은 문소영을 데려다주고 서둘러 떠났다. 강지한의 얼굴엔 냉기가 서려 있었고 성무진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사무실 안에서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문소영은 익숙하다는 듯 안으로 들어섰고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느긋하게 쏘파에 앉았다. “비서한테 차 좀 가져오라 해. 괜찮은 차로.” 그녀는 비서부가 꽤 유능하단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웬만한 건 다 알아서 해줄 정도로. 하지만 강지한은 말없이 서랍을 열어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와 그 봉투를 그녀의 무릎 위에 떨어뜨렸다. “직접 보시죠.”“뭘 보라는 거야?” 문소영은 그를 향해 냉정하게 시선을 던졌다. “보면 알아요.” 강지한은 담담하게 말하고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뭐가 들어있길래...?” 문소영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봉투를 들었다. 무
심미연은 박유진이 수년 동안 마음을 다해 사랑해온 여자였다. 그런 여자를 박유진이 쉽게 놓을 리 없었다. 조용히 그의 뒤를 따르던 비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표님, 정말 모든 걸 걸고 계시는군요... 제발 심미연 씨가 그 진심을 외면하지 않기를...”한편, 심미연은 전화를 끊자마자 문 쪽을 향해 말했다. “들어오세요.”조심스레 열린 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도진혁이었다. 그는 마치 급히 돌아온 듯 피곤하고 바쁜 기색이 역력했다. “도 비서님...?” 심미연은 예상치 못한 사람을 보고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 휴가를 낸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왜 지금... 여기 있는 거지?’그의 뒤에서 따라 들어온 비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조용히 말했다. “심 대표님, 실례하겠습니다. 이분은 저희 도강홀딩스의 대표, 도진혁 대표님이십니다.”비서는 서류봉투를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말없이 한 걸음 물러섰다. “이 서류는 도강홀딩스와 은성 그룹이 합작할 프로젝트에 관한 제안서입니다. 먼저 검토 부탁드립니다.”심미연은 비서가 놓고 간 서류를 잠시 바라보다가 도진혁을 천천히 되돌아보며 눈썹을 살짝 올렸다. ‘도진혁 대표님...?’ ‘그렇다면 도진혁 씨가 휴가를 낸 이유는... 회사를 물려받기 위한 준비였던 건가?”그때 도진혁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최 비서, 잠깐 나가 있어. 심 대표님과 단둘이 얘기할 게 있어.” 도진혁은 정장을 완벽하게 차려입고 평소보다 더 단정하고 신경 쓴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말투와 행동은 여유롭고 예의 바르며 그에게서 흐르는 것은 전형적인 사회 엘리트의 품위였다. “네. 대표님.” 최세라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문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떠나기 전에 조심스럽게 심미연을 한 번 쳐다봤다. ‘이분이 대표님이 좋아하는 여자분인가... 정말 예쁘다. 대표님이 회사를 물려받은 이유가 이분 때문이라면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