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비서를 바꿔야겠다. “우연히 식사 자리에서 만났는데 술 한 잔 하기로 했어. 근데 내가 주량이 너무 약해서 마시다가 병원에 입원하게 된 거고.”박유진은 아주 가볍게 설명했다.심미연도 왠지 그가 말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 더는 묻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지금은 좀 어때? 괜찮아?”사실 아까 이미자가 박유진이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리를 듣고 난 뒤로부터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분명 자기 때문에 강지한이 박유진에게 그런 짓을 했을 텐데 강지한한테 화나는 것보다 박유진에게 드는 죄책감이 더 컸다.“난 멀쩡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말을 마친 뒤 박유진은 싱긋 미소를 짓더니 음료수 뚜껑을 따서 그녀에게 건넸다.“입이 너무 말라 보이니까 이거라도 먼저 마셔.”심미연은 건네받은 뒤 한 모금 마셨다.“얼굴이 많이 핼쑥해졌어. 아직도 입덧이 심해?”박유진은 그제야 가까운 거리에서 심미연의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예전보다 많이 야윈 그녀에게 걱정스레 물었다.그러자 심미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입덧이 아니라 그냥 요즘 일이 너무 바빠서 못 먹고 못 자서 그래.”“넌 지금 임산부야. 아무리 그래도 뱃속의 아이를 먼저 생각해야지.”박유진은 원래 그녀더러 힘들면 일을 전부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어차피 자기 말은 듣지 않을 것 같았다.지금 젊은 사람들은 삶에서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하지만 만약 심미연이 자기 여자였다면 절대 그녀를 힘들게 일 시키지 않을 것이다. 일보다 사람 목숨이 더욱 중요하니까.“알아.”심미연은 자기 배를 어루만지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매번 아이에 대해 말할 때마다 그녀는 반짝이는 눈빛과 모성애가 가득한 모습을 보였는데 박유진도 그런 모습이 너무 좋아 한참 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만약 그들이 헤어지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유진 씨, 유진 씨가 입원했다는 소리를 듣고 내가 돌봐주러 왔어!”귀청을 찢을 듯한 목소리가 들리자 심미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박유진은 재빨리 핸드폰
박유진은 단번에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품에 안더니 심서연을 향해 차갑게 경고했다.“넌 닥쳐! 만약 일을 크게 만들면 너랑 바로 파혼이야!”그 말에 심서연이 고개를 들고 그에게 물었다.“유진 씨, 지금 이딴 계집애를 돕기 위해서 우리 결혼으로 나를 협박하는 거야?”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심서연은 당장 어딘가에 분풀이해야 할 것 같았다. 어렸을 때 그녀는 심미연에게 버려진 뒤 어느 한 시골로 팔려 가 10년 동안 힘들게 살아왔다.그녀가 고생하고 있을 때 심미연은 심씨 가문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잘 먹고 잘살았는데 이게 평생 심서연한테는 뼈에 사무치는 한으로 남았다.박유진은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이고 또 곧 자기 남편이 될 사람이다. 박유진이 심미연을 얼마나 아끼는지 두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없는데도 질투 나 미칠 지경이었는데 그 모습을 오늘 눈앞에서 보게 되자 당장에라도 달려가 그녀의 목을 졸라 죽여버리고 싶었다.박유진은 살기가 돋친 심서연의 눈빛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심미연과 두 사람을 비교하게 되었다.심미연의 눈빛은 티 없이 맑고 깨끗했지만 심서연은 포악하고 험상궂어 보였다.“유진 씨, 아직도 심미연 그 빌어먹을 계집애를 생각하는 거야?”남자의 시선은 분명히 심서연한테로 향하고 있지만 얼굴을 보면 분명 다른 생각하고 있었다.고민할 필요도 없이 그 사람은 심미연이라고 생각하니 짜증 나 미칠 것 같았다.박유진은 심미연에게 욕설을 퍼붓는 심서연 때문에 가슴이 아팠고 또 그녀의 저속함이 치가 떨리게 싫었던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한 번만 더 미연이를 욕하면 당장 쫓아내 버릴 거야!”그래도 자기 친언니인데 걸핏하면 욕하는 심서연의 인성이 참 못돼 보였다.“유진 씨, 저 여자가 그렇게 좋아? 이미 유부녀란 사실은 알고 있는 거지?”심서연은 자기 가슴을 남자 쪽으로 바짝 붙인 뒤 그의 반응을 살폈다.오랫동안 박유진을 사랑하면서 둘이 잠자리를 갖는 건 고사하고 손도 매번 그녀가 먼저 잡았다.박유진은 그녀의 말을 들
속옷이 비치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진이경은 재빨리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면서 그녀에게 말했다.“그럼 실례하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재빨리 그녀를 소파에서 안아 올렸다.그러자 심서연은 깜짝 놀랐다가 곧바로 진이경의 뺨을 한 대 때렸다.“이게 무슨 짓이에요! 당장 내려줘요!”진이경은 방금 맞은 게 귀까지 윙윙 울리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를 악물고 그녀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유진 씨, 난 유진 씨 여자인데 어떻게 다른 남자가 이러는 걸 가만히 내버려둘 수 있어! 내 남자가 맞긴 해?”심서연은 욕설을 퍼부었지만 박유진은 그저 눈살을 찌푸린 채 담담하게 노트북을 켰다.설령 심서연과 결혼한다고 해도 어차피 그녀와 잠자리도 가지지 않을 것이기에 다른 남자가 그녀를 안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못 본척하는 그의 모습에 심서연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유진 씨, 날 이따위 취급했다가 내가 심미연한테 가서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그제야 박유진이 시선을 심서연에게 돌리더니 차갑게 말했다.“일단 내려줘.”심서연은 내리자마자 진이경을 발로 세게 걷어찼다.“다시 한번 내 몸에 손을 댔다가는 사람을 시켜서 당신을 매장해 버릴 거야!”그리고 매서운 얼굴로 진이경을 쏘아보았다.하지만 진이경은 본 체도 하지 않고 그대로 병실 밖을 떠났다.심서연은 한껏 짜증이 섞인 얼굴로 몸을 탈탈 털더니 입으로 중얼거렸다.“비서인 주제에 감히 나한테 손을 대다니, 역겨워 죽겠어!”박유진은 입술을 달싹거리면서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어디 봐서 이런 사람이 대갓집 규수란 말인가, 시장 바닥에서 막말을 퍼붓는 아줌마들이랑 전혀 다를 게 없는데!인성이 참,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근데 남은 인생을 이런 여자와 함께해야 한다니...“유진 씨, 방금 저 인간 당장 해고해.”심서연은 그의 앞에 다가가 짜증을 냈다.이때, 박유진은 단번에 그녀의 목을 힘껏 졸랐다.삶의 철칙이 죽어도 여자한테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이었지만 오늘 심서연이 그
심서연은 그의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유진 씨, 심미연이 그렇게 좋아?”그 여자는 그저 자기보다 얼굴만 더 예쁘장하게 태어났을 뿐인데 박유진이 이토록 죽자 살자 매달리는 게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녀는 심미연도 밉고 박유진도 미웠다.“심서연, 네가 했던 말을 잊지 마!”박유진은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지금 심미연을 사랑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중요한 건 자신이 심미연에게 무얼 해줄 수 있냐는 것이다.“절대 심미연을 괴롭히지 않을게. 그러니까 저녁에 식사 자리고 뭐고, 그냥 다음 주에 결혼하자!”심서연은 어느새 눈가가 빨개진 채 그에게 말했다.박유진이 심미연을 위해 이 결혼을 하는 거라면 어디 해보자고!앞으로 평생 서로가 괴로워하면서 살아가 보자!“그래.”박유진이 그제야 손에 힘을 풀었다.“심서연, 다시 한번 말하는데 그 약속 꼭 지켜.”말을 마친 뒤 그대로 화장실에 가서 마치 불결한 물건을 만지기라도 한 듯 손을 빡빡 씻기 시작했다.심서연은 그의 행동을 보더니 또다시 화가 올라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박유진은 지금 그녀와 살이 닿는 것조차 혐오스러워할 정도였다.손을 닦으며 나오다가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는 심서연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왜 아직도 안 갔어?”그는 심서연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싫었다.“지금 당장 우리 부모님께 다음 주에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려야겠어. 근데 유진 씨, 우리 결혼식에 심미연도 꼭 데려와!”심서연의 말에 박유진이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불행하게 살아가는 심미연에게 자신이 행복한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하지만 박유진은 그대로 심서연을 지나쳐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우리 결혼식에 어떤 분들을 초대할지는 우리 어머니가 결정할 거야.”당연히 심미연은 초대하지 않을 것이고 오는 걸 바라지도 않는다.“왜? 심미연이 보고 속상해할까 봐 걱정돼?”그러다가 호탕하게 웃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어쩌면 홀가분해할지도? 애초에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으
박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들었다.이때 심서연이 허리를 숙이고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됐다. 이제 갈게. 저녁에 봐.”역시나 남자는 물티슈를 급히 뽑아내더니 불쾌하다는 듯이 얼굴을 벅벅 닦았지만 어차피 이제 곧 자기 남편이 될 사람이라 상관없었다.결혼하기만 하면 이런 스킨십은 할 기회가 많으니까.박유진은 얼굴을 닦은 뒤 티슈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시 일에 집중했다.이런 갑작스러운 행동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하지만 너무 덤덤한 그의 반응에 심서연은 또다시 짜증이 슬슬 몰려왔다.그렇게 한참 동안 박유진을 쏘아보다가 결국 병실 밖으로 나갔다.그녀가 떠나간 뒤 박유진은 곧바로 진이경에게 전화를 걸었고 얼마 안 돼서 그는 병실 안으로 쭈뼛거리면서 들어왔다.“대표님... 저는...”“말해. 왜 그 소식을 퍼뜨렸는지.”박유진은 단호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사모님께서 협박하셨어요...”진이경은 한껏 낮은 소리로 답했다.그 소식은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자기 회사 대표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어머니한테는 당연히 말해줘야 하지 않나?“당장 인수인계 시작하고 넌 내일부터 해고야.”한번이 쉽지, 나중에는 계속 이런 실수가 반복될 게 뻔한데 그의 곁에는 이런 사람을 두면 안 된다.“대표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진이경은 회사에서 붙여준 비서인데 같이 일한 시간이 짧다 보니 박유진의 성격이 어떤지 잘 모르고 있었다. 하여 이미자가 그를 협박했을 때도 솔직하게 다 말해줬다.박유진은 단호하게 다시 그에게 말했다.“그만 돌아가.”그는 한번 결정한 일은 쉽게 번복하지 않는 사람이다.하여 진이경은 어쩔 수 없이 돌아서야 했다.“대표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진이경마저 떠난 뒤 박유진은 다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내일부터 네가 내 비서로 일해.”전화를 끊고 다시 일에 집중했다....심미연이 로펌에 도착해보니 회사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이때 임현이 다급히 다가오면서 그
“변호사님, 근데 사장님은 왜 또 오셨어요? 할 일이 그렇게도 없으신지.”임현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심미연은 그녀의 모습에 싱긋 미소를 짓더니 그녀에게 말했다.“그만 나가서 일 봐요.”강지한이 그녀를 찾는 원인은 아까 병원에서 그를 못 본척했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다가도 혹시나 온지유를 달래주기 위해 온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근데 표정이 너무 무섭던데 혹시 변호사님께 손을 대는 건 아니겠죠?”임현은 살기 어린 모습으로 들어오던 강지한을 발견하고 걱정되어 냉큼 달려왔다.들어보니 명문가에는 비뚤어진 마음가짐을 가진 남자들이 많다고 하던데 보통 가정 폭력이나 바람피우는 방법으로 여자들을 괴롭힌다고 했다.근데 자기 회사의 잘생긴 사장님이 이런 변태적인 성격을 가진 사실은 생각지도 못했다.심미연은 왠지 모르게 이 상황이 매우 웃겼다.“빨리 가요. 사장님께 들켰다가는 이대로 해고당할지도 모르니까.”임현도 참 대담한 것 같다.혹시나 강지한이 듣게 되면 바로 그녀를 해고할 텐데.“그럼 이만 나가볼게요. 혹시나 사장님께서 손찌검이라도 하면 바로 저를 부르세요.”임현은 그래도 심미연이 걱정되었다.“그래요.”그렇게 임현은 빠르게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그녀가 황급히 뛰어가는 모습을 본 심미연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그러자 강지한이 그녀에게 다가와 차갑게 물었다.“뭐가 웃겨?”심미연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아니야.”그를 보자마자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이때, 갑자기 강지한이 그녀를 품에 안으면서 물었다.“미연아, 오늘 왜 병원에 간 거야?”충분히 사람을 보내 알아낼 수 있었지만 그는 심미연이 하는 말을 직접 듣고 싶었다.얼굴이 남자의 가슴팍에 부딪혔는데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심미연은 고개를 들고 그에게 되물었다.“유진 씨 보러 갔어. 나도 묻고 싶은데 왜 유진 씨랑 술 마시게 된 거야?”강지한은 심미연 입에서 박유진의 이름이 들리자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박유진이 너한테 뭐라고 했어?”설마 박유진이 심미연한테 모든 걸
강지한은 욕망에 사로잡혀 그녀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었다.심미연은 마음속의 불안을 억누르며 다급하게 말했다.“지한 씨, 여기는 로펌이고 내 사무실이야. 언제 누가 들어올지 모른다고! 우리 관계를 공개하고 싶다면 난 상관없어. 다만 온지유가 로펌에서 웃음거리가 될까 봐 걱정이지!”온지유를 향한 강지한의 사랑은 맹목적이었으니 그녀가 조롱당하는 꼴은 절대 못 볼 터였다.강지한의 손길이 멈췄다. 그는 심미연의 귓불을 물며 낮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미연아, 너 사실 무서워하고 있는 거지?”만약 이 여자가 정말로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관계를 아는 걸 개의치 않는다면 지금쯤 온갖 방법으로 그를 유혹해야 할 것이다.그런데 지금 그녀는 그를 막기 위해 급하게 애쓰고 있다.이혼을 제기한 후 이 여자의 행동은 완전히 달라졌다.예전에는 그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이것은 그녀가 정말로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는 원래 그녀와 마음을 나누고 싶은 생각 따윈 없었다. 그러나 심미연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마음속에 허전함을 느꼈다.심미연은 그의 말을 듣고는 우습다는 듯이 말했다.“맞아, 무서워. 나는 온지유가 내연녀라고 욕먹고 되려 내가 그녀의 사랑하는 남자를 빼앗았다고 거짓말을 퍼뜨릴까 봐 두려워!”온지유는 거짓말과 피해자 코스프레에 능숙해서 결국에는 온갖 거짓말로 그녀를 모함할 것이었다.그럼 로펌 전체에 또 뒷말이 무성할 테고 바닥이 좁은 업계 특성상 소문은 순식간에 퍼질 것이다.심미연은 절대 남들이 자신과 강지한이 부부라는 사실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의 눈은 맑고 투명했고 말투는 당당했다. 이에 강지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여자가 소송에서 이기는 이유는 말을 잘하는 것 외에 연기까지 잘하기 때문이군... 저런 청순한 얼굴로 거짓말을 하면 누가 의심이나 하겠는가.’강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말에 끓어오르던 욕정은 가라앉았지만 이상하게도 키스하고 싶은 욕망이 솟구
강지한의 가슴에 심미연은 토사물을 쏟아냈다. 시큼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미연아...”강지한은 이를 악물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그가 키스하는 게 이렇게 싫단 말인가? 토하기까지 하다니!심미연은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휴지를 뽑아 그의 옷을 닦아주었다.“미안해.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옷을 닦자마자 속이 다시 메스꺼워졌다. 그녀는 강지한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사무실을 뛰쳐나가 화장실로 달려갔다.다행히 점심을 시어머니와 함께 먹어 많이 먹진 않아서 한 번 토하고 나니 속이 편해졌다.심미연이 세면대 앞에 서서 수도꼭지를 틀자마자 뒤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정말 고고한 줄 알았더니! 뒤로는 남자한테 배까지 불리셨군요! 가식 좀 그만하시지.”심미연은 물을 받아 입을 헹구고 세수를 한 후 천천히 돌아서 백현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내 사생활에 관심이 많네요. 설마 나 좋아하세요?”“미연 씨, 임신했네요!”백현지는 심미연을 훑어보며 비꼬듯 웃었다. “어떤 늙은 남자 거예요?”심미연은 고고한 척했지만 임신 사실을 퍼뜨리기만 하면 그녀는 바로 나락으로 떨어져 영원히 재기 불능이 될 것이다.심미연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백현지가 임신 사실을 알아차리다니.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임신했다고? 증거 있어요? 증거도 없이 함부로 말하지 마시죠!”백현지는 코웃음을 쳤다.“지금 나랑 병원 가서 피검사 하면 30분 안에 임신 여부를 알 수 있어요. 감히 할 수 있겠어요?”전에 두 번 임신했을 때 입덧이 굉장히 심했기 때문에 방금 심미연이 화장실에서 토하는 소리를 듣고 바로 임신을 떠올렸다.심미연은 손을 닦으며 말했다.“지원 씨가 본가로 돌아간다던데 현지 씨나 잘하세요. 내 일에 신경 끄시고.”휴지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그녀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버렸다.심미연이 나가자마자 백현지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온 팀장님, 방금 미연 씨가 임신한 걸 발견했어요...”온지유는 그 말에 저도 모르
“우린 서로 잘 알지도 않잖아요. 그러니까 박시훈 씨, 이런 농담은 삼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좋은 소리는 안 나올 거예요.” 심미연의 말은 단호했고 표정에는 조금의 여지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 사람에게 결코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박시훈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화내지 마요. 농담 안 할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 살짝 겁이 났다. 정색한 심미연의 얼굴은 꽤 무서웠다. 강지한이랑 맞먹는 수준이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심미연은 노골적으로 그를 내보내려는 기색을 멈추지 않았다. “저... 진짜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에요. 한 번 생각해보는 건 어때요?” 박시훈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연애도 해본 적 없고 야자 마음을 얻는 방법도 몰랐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속 생각을 그대로 내뱉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심미연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리고 곧장 소파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제 가세요.”그녀는 주저함 하나 없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박시훈은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진심이었고 말 그대로 사실이였다. ‘난 능력도 있고 괜찮은 사람인데 서로 마음만 맞으면 잘될 수 있는 거 아닌가?’그렇게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심미연은 이미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박시훈 씨, 조심히 가세요. 멀리는 안 갈게요.”그녀는 박시훈이 불쾌해하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가 무슨 감정을 느끼든 어떤 생각을 하든 그건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방금 전 그의 자기중심적인 말투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박시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이대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뭔가 씁쓸하고 아쉽고 괜히 찬물 끼얹힌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는 마음속으로
심미연은 그가 심태하까지 조사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순간적으로 본능처럼 눈앞의 남자를 다시 보게 됐다. 겉보기엔 멋대로 굴고 책임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한량 같았지만 그의 눈빛만은 달랐다. 지나치게 날카롭고 마치 사람의 속까지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그건 결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눈이었다. ‘이 남자, 뭐지... 정말 이상한 사람인데.’겉모습만 보면 철없어 보이다가도 또 어떤 순간에는 의외로 능력 있어 보였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게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건 그가 왜 굳이 자신을 찾아와 이런 말을 꺼내는가였따. ‘설마 진심으로 그냥... 내 정체가 궁금해서?’“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저 진짜 악의는 없어요.” 박시훈은 양손을 번쩍 들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하늘에 맹세할게요.”심미연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래서 당신이 날 찾아온 목적이 뭐죠?”박시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진짜 이유를 말해도 돼요?” 그의 갈색 눈동자가 살짝 번쩍였고 그의 얼굴엔 순진해 보일 정도로 천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심미연은 속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돈 뜯어내려는 건가? 내가 그런 일에 쉽게 넘어갈 만큼 만만해 보였나.’“좋아합니다.”그가 느닷없이 말했다. “그 말 하려고 온 거예요. 좋아해도 될까요?” 심미연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박시훈의 얼굴엔 서서히 불안한 기색이 떠올랐다. 결국 그는 숨겨왔던 속마음을 한 번에 쏟아냈다. 망설일 시간 따윈 없었다. 그보다 먼저 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강지한이 그녀를 데려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컸다. 심미연은 그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또박또박 물었다. “당신 지금 자기가 무슨 말 하고 있는지는 알아요?”그녀는 그가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웠다. 서너 번 얼굴을 마주친 게 전부였고 제대로 된 인사조차 나눈 적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나타
심미연은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심, 심 대표님... 아까 어떤 남자분이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대표님을 찾으러 올라가셨어요.”프런트 직원의 목소리는 떨렸고 말도 더듬었다. “누구라고요?” 심미연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장미를 들고 자신을 찾아올 만한 사람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확실히 저를 찾은 거 맞아요?” “네... 확실합니다. 제가 막으려고 했는데 그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올라가셨어요...” 잘릴까 봐 겁이 난 프런트 직원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얼버무렸다. 그녀는 심미연이 이 거짓말을 영원히 눈치채지 않길 바랐다.심미연은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장미를 들고... 누굴까?’그때 사무실 문 밖에서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났다. 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조용히 말했다. “알겠어요. 일 보세요.”말을 마치기도 전에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갔다. ‘설마... 강지한? 다시 만날 일 없다고 말했는데 또 온 건가?’ 전화를 끊은 심미연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당신...?” 며칠 전, 하늘 하우스 앞에서 명함을 건넸던 그 남자였다.심미연은 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전화 달라고 했었는데... 내가 깜빡했네. 근데 사무실까지 찾아올 정도면 꽤 급한 일이 있나?’ ‘자, 받아요. 이거 당신한테 주는 거예요.” 박시훈은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는 듯 장미꽃을 밀어넣으며 말했다. “할 말 있어서 왔어요.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심미연은 그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할 말이 뭔데요?” “앉아서 얘기해요. 당신이 힘들면 안 되니까.” 박시훈은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 옆을 지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깔끔하고 단정한 분위기의 공간. 묘하게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박시훈은
이진영은 핸드폰을 쥔 채 반쯤 감긴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아무리 뒤져도 끝내 밝혀내지 못한 아버지의 비밀. ‘설마... 한석훈이 정말 뭔가 알고 있는 건가?’‘아니면 그냥 떠보는 소리일까?’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머릿속을 뒤엉켰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찾고 싶은 충동이 다시 치밀었지만 이진영은 고개를 돌려 이다은의 병실로 향했다. ...이노하이브 대표실. 강지한은 막 성무진에게서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문소영이 한 무리의 남자들에게 쫓기다 결국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은 심하게 어질러졌고 문이 잠겨 있어 그녀는 도망칠 틈조차 없었다. 결국 팔과 다리가 부러진 채 119에 실려 갔다. 강지한은 메시지를 닫고 입술을 천천히 매만졌다.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가벼운 경고’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음에도 제멋대로 날뛰면 그땐 진짜로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막 서류를 집어 들려는 순간,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자 박시훈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한아, 큰일 났어!” 강지한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해.” “온지유가... 나왔어.” 박시훈은 말끝을 떨며 믿기지 않는 듯 말을 이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 어떻게...?’ 믿기 힘든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무슨 수로 온지유를 꺼낸 거지?’ 강지한의 눈빛이 서서히 싸늘하게 식어갔다. “어떻게 된 거냐.” 그 말을 뱉는 순간, 심미연과 심태하가 본능처럼 떠올랐다. ‘온지유가 풀려났다고? 그럼 미연이랑 태하가 위험할 수도 있어.’‘도대체 어떤 놈이 감히 이런 짓을 벌인 거지?’ “나도 방금 들었어. 지금은 육현성 별장에 있다는 것 같아.” 박시훈은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알기에 곧장 강지한에게 알린 것이었다. “확실해?” 강지한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는 성무진을 시켜 교도소 내부를 철저히 관리하게 했었다. 온지유가 아무리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아이가 축복받지 못한 존재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고 싶지 않았다. “안 돼.” 이진영은 단호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하더니 곧장 의자에 앉아 이다은의 창백한 손끝을 조심스레 감쌌다. 그리곤 한 톤 낮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육현성 그 자식은 아버지 자격 없어. 네가 그 인간 아이를 낳으면 평생 끌려다닐 거야. 정말 그걸 바라는 거야?” 이다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결국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육현성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순간, 이진영의 말처럼 그 인연은 평생 끊어낼 수 없었다. 반면 아이가 없다면 그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다은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곧 마음을 다잡은 듯 결심이 담긴 목소리가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알았어. 오빠, 지금 바로 수술 예약해줘.”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언젠가는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그래. 병실에 얌전히 있어. 어디 가지 말고. 알았지?” 이진영은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는 이미 진운혁과 연락을 마친 상태였다. 진운혁은 이다은이 재판에서 반드시 승소할 수 있도록 돕겠다 했고 육현성의 재산 절반은 가져올 수 있을 거라 자신 있게 말했다. 이진영은 믿고 있었다. 동생이 건강만 회복하고 이혼만 잘 마무리된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육현성 같은 쓰레기는 다은이 앞에 다시는 나타나선 안 돼.’ “알겠어. 오빠, 이제 가봐.” 결정을 내린 이다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음 한쪽이 가볍게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언젠가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만날 테니까. 이진영은 병원 접수처로 향해 곧바로 수술 일정
“오빠,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서 정말 고마워.”온지유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눈을 반쯤 감은 채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하면서도 애교가 섞여 있었다. 지금의 온지유에게 육현성은 유일한 의지처였다. 그를 잃는다면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육현성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됐다. ‘심미연, 기다려. 복수할 기회는 반드시 만들 거야.’“세상에 이렇게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온지유는 그의 품에 몸을 기댄 채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유야, 그런데 만약 네가 날 배신한다면 그때는 나도 내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겠어.”육현성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경고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이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걸 수 있었다. 그 사랑은 너무 깊어서 그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그래서 더더욱 만약 온지유가 그를 배신한다면 그는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팔이 점점 더 세게 조여오는 걸 느낀 온지유는 잠시 두려움이 스쳤다. 그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강지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을 죽음보다 더 끔찍하게 대할 것이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그 상상만으로도 차가운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오빠, 걱정하지 마. 난 절대 오빠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이번 생엔 오빠만 사랑할 거고 영원히 오빠 곁에 있을 거야.” 온지유는 속마음을 감추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은 여전히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앞으로 육현성 앞에선 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의심을 품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날 거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네가 날 사랑한다면 나도 너를 끝까지 사랑할 거야.” 그의 말은 무엇보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지유야, 이제 좀 쉬어. 나는 아래층 좀 보고 올게. 밥 먹을 때 부를게
보통이라면 그녀가 화를 내면 강지한은 한 발 물러섰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양보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성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무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소영은 성무진을 보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며 공포에 휩싸였다. 이번엔 정말 끝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강지한에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이렇게까지 몰리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의 차갑고 무표정한 시선만이 머릿속에 반복되었다. 성무진은 그녀 앞에 서서 공손히 손짓하며 말했다. “큰 사모님, 모시겠습니다.”문소영은 강지한을 향해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눈빛을 보냈다. “강지한! 너 계속 이렇게 나를 몰아붙인다면 정말 당장 죽어버릴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책상 쪽으로 달려가 머리를 책상 모서리에 부딪히려 했다. 그러나 강지한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며 어두운 표정으로 단호하게 명령했다. “성 비서, 데려가.”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그는 문소영의 모습이 점점 더 불쾌하게 느껴졌다. 성무진은 빠르게 다가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실례하겠습니다. 큰 사모님.” 그 말과 함께 그는 차가운 손길로 문소영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 “놔! 당장 놔!” “손 떼! 지금 당장!” 문소영은 크게 외치며 저항했지만 성무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거칠게 차에 태웠다. 차에 태운 후 성무진은 팔을 놓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문소영은 재빨리 차 문을 열려 손을 뻗었다. “큰 사모님, 죄송합니다.”성무진은 고개를 숙이며 손을 들어 그녀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리쳤다. 문소영은 그대로 기절했다. 성무진은 그녀를 차 안에 눕히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차 밖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역시 대표님을 화나게 하면 끝이 좋을 리가 없지.’‘어쩔 수 없군.’ 그 순간, 성무진은 갑자기 떠오른
도진혁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바로 대답했다. “물론이죠. 저는 진지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신하린 곁에 이렇게 오랜 시간 머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어제 하린이를 하늘 하우스로 데려갔어요. 한 번 들러보세요. 하린이 곁에 조금 있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심미연은 서류봉투를 흘깃 바라본 뒤 덧붙였다. “이 서류는 제가 꼼꼼히 검토하고 나서 다시 연락드릴게요.”도진혁이 직접 합작 제안서를 들고 찾아온 이상 함부로 거절할 수는 없었다. 수익이 보장된 일이라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 이상 놓쳐선 안 되는 법이었다. “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도진혁은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그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갔다. 심미연은 그가 사라진 문 쪽을 한참 바라보다 방금 전 그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쪽에서 조용한 불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린이 목에 남은 상처가 아직 그대로일 텐데...’‘진혁 씨가 그걸 보면... 혹시 이진영 씨에게 따지러 가는 건 아닐까?’강지한 사무실.성무진은 문소영을 데려다주고 서둘러 떠났다. 강지한의 얼굴엔 냉기가 서려 있었고 성무진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사무실 안에서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문소영은 익숙하다는 듯 안으로 들어섰고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느긋하게 쏘파에 앉았다. “비서한테 차 좀 가져오라 해. 괜찮은 차로.” 그녀는 비서부가 꽤 유능하단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웬만한 건 다 알아서 해줄 정도로. 하지만 강지한은 말없이 서랍을 열어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와 그 봉투를 그녀의 무릎 위에 떨어뜨렸다. “직접 보시죠.”“뭘 보라는 거야?” 문소영은 그를 향해 냉정하게 시선을 던졌다. “보면 알아요.” 강지한은 담담하게 말하고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뭐가 들어있길래...?” 문소영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봉투를 들었다. 무
심미연은 박유진이 수년 동안 마음을 다해 사랑해온 여자였다. 그런 여자를 박유진이 쉽게 놓을 리 없었다. 조용히 그의 뒤를 따르던 비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표님, 정말 모든 걸 걸고 계시는군요... 제발 심미연 씨가 그 진심을 외면하지 않기를...”한편, 심미연은 전화를 끊자마자 문 쪽을 향해 말했다. “들어오세요.”조심스레 열린 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도진혁이었다. 그는 마치 급히 돌아온 듯 피곤하고 바쁜 기색이 역력했다. “도 비서님...?” 심미연은 예상치 못한 사람을 보고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 휴가를 낸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왜 지금... 여기 있는 거지?’그의 뒤에서 따라 들어온 비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조용히 말했다. “심 대표님, 실례하겠습니다. 이분은 저희 도강홀딩스의 대표, 도진혁 대표님이십니다.”비서는 서류봉투를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말없이 한 걸음 물러섰다. “이 서류는 도강홀딩스와 은성 그룹이 합작할 프로젝트에 관한 제안서입니다. 먼저 검토 부탁드립니다.”심미연은 비서가 놓고 간 서류를 잠시 바라보다가 도진혁을 천천히 되돌아보며 눈썹을 살짝 올렸다. ‘도진혁 대표님...?’ ‘그렇다면 도진혁 씨가 휴가를 낸 이유는... 회사를 물려받기 위한 준비였던 건가?”그때 도진혁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최 비서, 잠깐 나가 있어. 심 대표님과 단둘이 얘기할 게 있어.” 도진혁은 정장을 완벽하게 차려입고 평소보다 더 단정하고 신경 쓴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말투와 행동은 여유롭고 예의 바르며 그에게서 흐르는 것은 전형적인 사회 엘리트의 품위였다. “네. 대표님.” 최세라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문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떠나기 전에 조심스럽게 심미연을 한 번 쳐다봤다. ‘이분이 대표님이 좋아하는 여자분인가... 정말 예쁘다. 대표님이 회사를 물려받은 이유가 이분 때문이라면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