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님, 근데 사장님은 왜 또 오셨어요? 할 일이 그렇게도 없으신지.”임현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심미연은 그녀의 모습에 싱긋 미소를 짓더니 그녀에게 말했다.“그만 나가서 일 봐요.”강지한이 그녀를 찾는 원인은 아까 병원에서 그를 못 본척했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다가도 혹시나 온지유를 달래주기 위해 온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근데 표정이 너무 무섭던데 혹시 변호사님께 손을 대는 건 아니겠죠?”임현은 살기 어린 모습으로 들어오던 강지한을 발견하고 걱정되어 냉큼 달려왔다.들어보니 명문가에는 비뚤어진 마음가짐을 가진 남자들이 많다고 하던데 보통 가정 폭력이나 바람피우는 방법으로 여자들을 괴롭힌다고 했다.근데 자기 회사의 잘생긴 사장님이 이런 변태적인 성격을 가진 사실은 생각지도 못했다.심미연은 왠지 모르게 이 상황이 매우 웃겼다.“빨리 가요. 사장님께 들켰다가는 이대로 해고당할지도 모르니까.”임현도 참 대담한 것 같다.혹시나 강지한이 듣게 되면 바로 그녀를 해고할 텐데.“그럼 이만 나가볼게요. 혹시나 사장님께서 손찌검이라도 하면 바로 저를 부르세요.”임현은 그래도 심미연이 걱정되었다.“그래요.”그렇게 임현은 빠르게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그녀가 황급히 뛰어가는 모습을 본 심미연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그러자 강지한이 그녀에게 다가와 차갑게 물었다.“뭐가 웃겨?”심미연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아니야.”그를 보자마자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이때, 갑자기 강지한이 그녀를 품에 안으면서 물었다.“미연아, 오늘 왜 병원에 간 거야?”충분히 사람을 보내 알아낼 수 있었지만 그는 심미연이 하는 말을 직접 듣고 싶었다.얼굴이 남자의 가슴팍에 부딪혔는데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심미연은 고개를 들고 그에게 되물었다.“유진 씨 보러 갔어. 나도 묻고 싶은데 왜 유진 씨랑 술 마시게 된 거야?”강지한은 심미연 입에서 박유진의 이름이 들리자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박유진이 너한테 뭐라고 했어?”설마 박유진이 심미연한테 모든 걸
강지한은 욕망에 사로잡혀 그녀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었다.심미연은 마음속의 불안을 억누르며 다급하게 말했다.“지한 씨, 여기는 로펌이고 내 사무실이야. 언제 누가 들어올지 모른다고! 우리 관계를 공개하고 싶다면 난 상관없어. 다만 온지유가 로펌에서 웃음거리가 될까 봐 걱정이지!”온지유를 향한 강지한의 사랑은 맹목적이었으니 그녀가 조롱당하는 꼴은 절대 못 볼 터였다.강지한의 손길이 멈췄다. 그는 심미연의 귓불을 물며 낮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미연아, 너 사실 무서워하고 있는 거지?”만약 이 여자가 정말로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관계를 아는 걸 개의치 않는다면 지금쯤 온갖 방법으로 그를 유혹해야 할 것이다.그런데 지금 그녀는 그를 막기 위해 급하게 애쓰고 있다.이혼을 제기한 후 이 여자의 행동은 완전히 달라졌다.예전에는 그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이것은 그녀가 정말로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는 원래 그녀와 마음을 나누고 싶은 생각 따윈 없었다. 그러나 심미연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마음속에 허전함을 느꼈다.심미연은 그의 말을 듣고는 우습다는 듯이 말했다.“맞아, 무서워. 나는 온지유가 내연녀라고 욕먹고 되려 내가 그녀의 사랑하는 남자를 빼앗았다고 거짓말을 퍼뜨릴까 봐 두려워!”온지유는 거짓말과 피해자 코스프레에 능숙해서 결국에는 온갖 거짓말로 그녀를 모함할 것이었다.그럼 로펌 전체에 또 뒷말이 무성할 테고 바닥이 좁은 업계 특성상 소문은 순식간에 퍼질 것이다.심미연은 절대 남들이 자신과 강지한이 부부라는 사실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의 눈은 맑고 투명했고 말투는 당당했다. 이에 강지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여자가 소송에서 이기는 이유는 말을 잘하는 것 외에 연기까지 잘하기 때문이군... 저런 청순한 얼굴로 거짓말을 하면 누가 의심이나 하겠는가.’강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말에 끓어오르던 욕정은 가라앉았지만 이상하게도 키스하고 싶은 욕망이 솟구
강지한의 가슴에 심미연은 토사물을 쏟아냈다. 시큼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미연아...”강지한은 이를 악물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그가 키스하는 게 이렇게 싫단 말인가? 토하기까지 하다니!심미연은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휴지를 뽑아 그의 옷을 닦아주었다.“미안해.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옷을 닦자마자 속이 다시 메스꺼워졌다. 그녀는 강지한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사무실을 뛰쳐나가 화장실로 달려갔다.다행히 점심을 시어머니와 함께 먹어 많이 먹진 않아서 한 번 토하고 나니 속이 편해졌다.심미연이 세면대 앞에 서서 수도꼭지를 틀자마자 뒤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정말 고고한 줄 알았더니! 뒤로는 남자한테 배까지 불리셨군요! 가식 좀 그만하시지.”심미연은 물을 받아 입을 헹구고 세수를 한 후 천천히 돌아서 백현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내 사생활에 관심이 많네요. 설마 나 좋아하세요?”“미연 씨, 임신했네요!”백현지는 심미연을 훑어보며 비꼬듯 웃었다. “어떤 늙은 남자 거예요?”심미연은 고고한 척했지만 임신 사실을 퍼뜨리기만 하면 그녀는 바로 나락으로 떨어져 영원히 재기 불능이 될 것이다.심미연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백현지가 임신 사실을 알아차리다니.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임신했다고? 증거 있어요? 증거도 없이 함부로 말하지 마시죠!”백현지는 코웃음을 쳤다.“지금 나랑 병원 가서 피검사 하면 30분 안에 임신 여부를 알 수 있어요. 감히 할 수 있겠어요?”전에 두 번 임신했을 때 입덧이 굉장히 심했기 때문에 방금 심미연이 화장실에서 토하는 소리를 듣고 바로 임신을 떠올렸다.심미연은 손을 닦으며 말했다.“지원 씨가 본가로 돌아간다던데 현지 씨나 잘하세요. 내 일에 신경 끄시고.”휴지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그녀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버렸다.심미연이 나가자마자 백현지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온 팀장님, 방금 미연 씨가 임신한 걸 발견했어요...”온지유는 그 말에 저도 모르
강지한은 눈꺼풀을 들어 올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심미연은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마음이 불안했다.“미연아, 왜 자꾸 토해? 혹시 임신한 거 아니야?”온지유도 임신했을 때 자주 토하고 입맛도 없었다.심미연은 눈꺼풀이 심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마음속 불안을 억누르며 태연한 척 말했다. “아까 키스할 때 혀를 깨물어서 입안 가득 피 맛이 났거든. 그게 너무 역해서 토할 수밖에 없었어. 왜 자꾸 임신 얘기를 꺼내는 거야? 설마 나한테 애 낳아달라는 건 아니겠지?”그녀는 강지한을 속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만약 속이지 못하면 그는 분명 병원에 가라고 할 것이다.피검사 한 번이면 모든 게 다 들통날 테니까.일단 강지한이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 낙태는 불 보듯 뻔했다.이런 생각에 심미연은 불안한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며 머리를 급히 굴렸다.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강지한은 손을 뻗어 심미연의 턱을 들어 올렸다.심미연은 바로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었다.분홍빛의 작은 혀에는 상처가 나 있었고 피가 배어 나와 혀끝을 붉게 물들였다.“깨문 자국 보이지?”심미연이 물었다.강지한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손으로 그녀의 혀끝을 꼬집으며 코웃음 쳤다.“유난은.”여자의 피부는 약해서 조금만 세게 힘을 줘도 멍이 들고 며칠씩 가는 법이었다.아까는 너무 화가 나서 힘 조절을 못 했더니 혀를 깨문 줄도 몰랐다.그의 말에 심미연은 안도하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나 깨물랬어!”이제 그는 임신에 대해 캐묻지는 않을 것 같았다.강지한은 그녀의 귀엽고 순진한 모습에 마음이 좀 누그러졌다.“박유진하고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마. 좋은 사람이 아니야!”심미연은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오랜 시간 박유진과 함께해 온 그녀는 강지한보다 그를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다.박유진은 마음이 착하고 여려서 심서연과 이렇게 된 것도 다 자기 때문이었다. 평생 갚아도 모자랄 만큼 그에게 큰 빚을 진 심미
소리를 듣고 백현지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강지한을 본 순간, 그녀의 심장은 목구멍까지 튀어나올 것처럼 빨리 뛰었다.‘잘생겼다! 목소리도 좋아! 몸매도 짱이네! 이 사람이 대표님이라고?’심미연은 빠른 걸음으로 강지한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회사로 돌아간다며? 빨리 가!”지금 문이 열려 있는데 백현지가 큰소리로 외치기라도 하면 로펌 사람들이 모두 구경하러 몰려들 게 분명했다.그녀는 강지한과의 관계를 공개적으로 알릴 생각이 없었다.어차피 곧 그와 이혼할 텐데 애초에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필요는 없었다.강지한은 초조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심기가 불편해졌다.이 여자는 자신과 엮이는 게 그렇게 싫은 건가?“미연아, 너...”강지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심미연은 그를 밖으로 밀어내고 이어서 백현지까지 밀쳐낸 후 문을 쾅 닫았다.하마터면 문에 코끝을 부딪칠 뻔한 강지한은 반사적으로 코를 만지며 눈빛이 차가워졌다.이 여자가 감히 그를 내쫓다니.정신을 차린 백현지는 달려들어 심미연을 잡아끌었다.“비켜요! 대표님을 만나야겠어요!”대표님이 심미연과 잘 수 있다면, 분명 그녀와도 잘 수 있을 것이다.그녀가 심미연보다 더 예쁘고 몸매도 더 좋으니까.백현지는 속으로 계속해서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고 되뇌었다.심미연은 그녀를 밀치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대표님과 온 팀장이 무슨 사이인지 잊었어요? 감히 온 팀장님 남자를 건드렸다간 가만 안 둘 텐데?”백현지는 굳어버렸다.조금 전까지 그녀는 그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어때요? 정신이 좀 들어요?”심미연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겁먹었다는 것을 알았다.온지유에게 잘 보이려고 하면서 어떻게 온지유를 화나게 할 수 있겠는가.백현지는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누가 온 팀장의 남자를 빼앗겠다고 했어요! 미연 씨, 그쪽이야말로 대표님과 단둘이 뭐 하는 거예요? 온 팀장님에게 다 이를 거예요!”온지유에게 비밀을 많이 알려줄수록, 그녀는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
정말 무서웠다.백현지가 가고 심미연과 강지한 두 사람만 남았다.“방금 둘이 무슨 얘기 했어? 미연아,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강지한은 심미연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졌다.그런데 뭐가 이상한지는 딱 짚어 말할 수 없었다.심미연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곧 태연한 척 웃으며 말했다.“내 일은 당신이 원하면 다 알아낼 수 있는데 뭘 숨기겠어?”역시 이 남자는 의심이 많기에 그녀의 비밀은 언젠가 들키고 말 것이다.그러니 비밀이 밝혀지기 전에 강지한을 떠나서 배 속의 아이를 지켜야 한다.심미연의 미소는 어딘가 어색해 보였고 강지한의 의심은 더욱 깊어졌다.‘이 여자는 도대체 무엇을 숨기고 있는 걸까?’그가 심미연의 팔을 잡으려는 순간, 뒤에서 여자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지한 씨, 내가 병원에 있는 거 뻔히 알면서 여기까지 나 찾으러 온 거야, 참!”심미연은 목까지 차올랐던 긴장이 순식간에 풀렸다.온지유가 있으면 강지한은 그녀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으니 마침 그의 추궁을 피할 수 있었다.“두 분 얘기 나눠. 나는 바빠서 이만!”심미연은 말을 마치고 문을 닫았고 강지한은 또다시 문밖에 내버려 졌다.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숯처럼 검게 변했다.온지유는 다가와 그의 팔에 매달렸다.“지한 씨, 내 사무실로 가자!”백현지의 전화를 받자마자 온지유는 심미연의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급히 로펌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강지한이 여기에 있을 줄이야.강지한은 자연스럽게 팔을 빼내며 그녀의 부은 얼굴을 보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여기 왜 왔어?”온지유는 팔짱을 끼려다 실패하자 얼굴이 굳었지만 금세 표정을 바꾸고 나긋나긋하게 말했다.“급한 일이 있어서 왔어. 지한 씨, 내 사무실로 가서 얘기하자. 여긴 사람들이 많아서 이상한 소문이 날지도 몰라! 미연 씨에게 할 얘기가 있다면 내 사무실로 부르도록 할게. 내가 너희를 도와 감싸줄 테니까.”온지유는 마치 본처인 양 굴었다.마치 심미연이야말로 떳떳하지 못한 내연녀인 것처럼 말이다.강지한은 그녀를
온지유는 속으로 이리저리 생각해 봤지만 도대체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마음을 굳게 먹고 이를 악물며 나지막이 말했다.“지한 씨, 나 토할 것 같아. 나 좀 부축해 줄래?”온지유가 토할 것 같다고 하자 강지한은 전에 심미연이 자신에게 토했던 일을 떠올렸다.온지유는 임신하고 나서 자주 토했다.그런데 심미연도 영문도 모르게 토했다.혹시 심미연이 정말 임신한 건 아닐까.강지한은 갑자기 침묵했고 온지유는 불안한 마음에 안절부절못했다.전에 그는 그녀 앞에서 이런 적이 없었다.오늘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직도 토할 것 같아?”온지유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으음 하는 소리를 냈다.강지한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부축해서 화장실로 데려갔다.온지유는 깜짝 놀랐다.화장실에 데려와서 뭘 하려는 거지?“토할 것 같다며? 왜 안 가?”정신이 번쩍 든 온지유는 황급히 화장실로 들어갔다.강지한은 흡연 구역으로 가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심미연은 토할 때 조금도 참지 못하고 바로 토해버렸다.하지만 온지유는 참을 수 있었다.왠지 심미연이 보였던 증상이 더 임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온지유는 화장실에서 백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온 팀장님, 무슨 일이세요?”백현지는 알랑거리는 목소리였다.온지유에게 잘 보여 한 자리 차지하려고 백현지는 갖은 아양을 떨었다.“지금 당장 심미연한테 가서 이렇게 말해...”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이듯 말했다.“이래도 괜찮을까요?”백현지는 망설였다.“하라는 대로 해! 뭐가 문제야!”온지유는 싸늘한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백현지는 잔뜩 겁먹은 채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갈게요!”“병원에서 나가면 바로 승진시켜 줄게!”온지유는 미끼를 던졌고 백현지는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했다.“네! 금방 갔다 올게요!”전화를 끊고 온지유는 차갑게 웃으며 속으로 욕했다.“바보 같은 년!”그러고는 휴대폰
심미연이 백현지가 부르는 소리에 나가보니 마침 남자가 온지유을 안고 서둘러 떠나는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자기라는 본처가 있는데도 저렇게 스스럼없이 껴안고 가다니.정말 자기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사진 두 장을 빠르게 찍고 돌아서니 백현지가 얄밉게 웃고 있었다.심미연은 백현지가 한심하게 느껴졌다.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고 저렇게 좋아하다니.“심 변, 대표님과 온 팀장의 다정한 모습을 보니 많이 힘들죠?”백현지는 눈이 가늘어지도록 웃었다. ‘심미연은 이젠 포기하겠지?’“멍청하다고 하는 것도 칭찬인 줄 알아요!”심미연은 그 말을 던지고 백현지를 지나쳐 걸어갔다.백현지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화를 냈다.“심미연, 당신이 뭔데 날 욕해요!”그녀의 인식 속에서 심미연은 내연녀였다.내연녀는 그녀에게 욕할 자격이 없었다.심미연은 백현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곧장 사무실로 돌아갔다.임현은 막 타온 차를 들고나오다가 백현지의 옆을 지나가면서 작게 말했다.“누가 내연녀인지도 모르면서. 그쪽은 멍청한 게 아니라 바보예요! 변호사님이 아주 참아주신 거지!”그러잖아도 화가 잔뜩 나 있던 백현지는 그 말을 듣고 더욱 분노하여 손을 들어 그녀를 때리려 했다. 임현은 일부러 피하는 척하다가 차를 백현지에게 쏟아버렸다.옷을 입고 있었지만 백현지는 뜨거움을 느끼고 비명을 질렀다.“앗... 뜨거워!”임현은 짐짓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화났으면 나한테 화내면 되잖아요. 왜 내 차를 엎어서 날 데우려고 하는 건데요? 정말 못됐어요!”봉변을 당하고도 되려 누명을 쓰자 백현지는 임현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임현, 너...”욕을 다 하기도 전에 심미연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세게 때려요! 나 지금 동영상 찍고 있으니까!”백현지는 깜짝 놀라서 손을 얼른 내렸다.직장 동료를 폭행했다가는 감당할 수 없는 죄가 될 터였다.임현은 백현지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우린 서로 잘 알지도 않잖아요. 그러니까 박시훈 씨, 이런 농담은 삼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좋은 소리는 안 나올 거예요.” 심미연의 말은 단호했고 표정에는 조금의 여지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 사람에게 결코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박시훈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화내지 마요. 농담 안 할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 살짝 겁이 났다. 정색한 심미연의 얼굴은 꽤 무서웠다. 강지한이랑 맞먹는 수준이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심미연은 노골적으로 그를 내보내려는 기색을 멈추지 않았다. “저... 진짜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에요. 한 번 생각해보는 건 어때요?” 박시훈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연애도 해본 적 없고 야자 마음을 얻는 방법도 몰랐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속 생각을 그대로 내뱉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심미연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리고 곧장 소파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제 가세요.”그녀는 주저함 하나 없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박시훈은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진심이었고 말 그대로 사실이였다. ‘난 능력도 있고 괜찮은 사람인데 서로 마음만 맞으면 잘될 수 있는 거 아닌가?’그렇게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심미연은 이미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박시훈 씨, 조심히 가세요. 멀리는 안 갈게요.”그녀는 박시훈이 불쾌해하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가 무슨 감정을 느끼든 어떤 생각을 하든 그건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방금 전 그의 자기중심적인 말투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박시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이대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뭔가 씁쓸하고 아쉽고 괜히 찬물 끼얹힌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는 마음속으로
심미연은 그가 심태하까지 조사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순간적으로 본능처럼 눈앞의 남자를 다시 보게 됐다. 겉보기엔 멋대로 굴고 책임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한량 같았지만 그의 눈빛만은 달랐다. 지나치게 날카롭고 마치 사람의 속까지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그건 결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눈이었다. ‘이 남자, 뭐지... 정말 이상한 사람인데.’겉모습만 보면 철없어 보이다가도 또 어떤 순간에는 의외로 능력 있어 보였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게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건 그가 왜 굳이 자신을 찾아와 이런 말을 꺼내는가였따. ‘설마 진심으로 그냥... 내 정체가 궁금해서?’“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저 진짜 악의는 없어요.” 박시훈은 양손을 번쩍 들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하늘에 맹세할게요.”심미연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래서 당신이 날 찾아온 목적이 뭐죠?”박시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진짜 이유를 말해도 돼요?” 그의 갈색 눈동자가 살짝 번쩍였고 그의 얼굴엔 순진해 보일 정도로 천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심미연은 속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돈 뜯어내려는 건가? 내가 그런 일에 쉽게 넘어갈 만큼 만만해 보였나.’“좋아합니다.”그가 느닷없이 말했다. “그 말 하려고 온 거예요. 좋아해도 될까요?” 심미연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박시훈의 얼굴엔 서서히 불안한 기색이 떠올랐다. 결국 그는 숨겨왔던 속마음을 한 번에 쏟아냈다. 망설일 시간 따윈 없었다. 그보다 먼저 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강지한이 그녀를 데려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컸다. 심미연은 그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또박또박 물었다. “당신 지금 자기가 무슨 말 하고 있는지는 알아요?”그녀는 그가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웠다. 서너 번 얼굴을 마주친 게 전부였고 제대로 된 인사조차 나눈 적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나타
심미연은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심, 심 대표님... 아까 어떤 남자분이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대표님을 찾으러 올라가셨어요.”프런트 직원의 목소리는 떨렸고 말도 더듬었다. “누구라고요?” 심미연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장미를 들고 자신을 찾아올 만한 사람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확실히 저를 찾은 거 맞아요?” “네... 확실합니다. 제가 막으려고 했는데 그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올라가셨어요...” 잘릴까 봐 겁이 난 프런트 직원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얼버무렸다. 그녀는 심미연이 이 거짓말을 영원히 눈치채지 않길 바랐다.심미연은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장미를 들고... 누굴까?’그때 사무실 문 밖에서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났다. 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조용히 말했다. “알겠어요. 일 보세요.”말을 마치기도 전에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갔다. ‘설마... 강지한? 다시 만날 일 없다고 말했는데 또 온 건가?’ 전화를 끊은 심미연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당신...?” 며칠 전, 하늘 하우스 앞에서 명함을 건넸던 그 남자였다.심미연은 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전화 달라고 했었는데... 내가 깜빡했네. 근데 사무실까지 찾아올 정도면 꽤 급한 일이 있나?’ ‘자, 받아요. 이거 당신한테 주는 거예요.” 박시훈은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는 듯 장미꽃을 밀어넣으며 말했다. “할 말 있어서 왔어요.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심미연은 그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할 말이 뭔데요?” “앉아서 얘기해요. 당신이 힘들면 안 되니까.” 박시훈은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 옆을 지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깔끔하고 단정한 분위기의 공간. 묘하게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박시훈은
이진영은 핸드폰을 쥔 채 반쯤 감긴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아무리 뒤져도 끝내 밝혀내지 못한 아버지의 비밀. ‘설마... 한석훈이 정말 뭔가 알고 있는 건가?’‘아니면 그냥 떠보는 소리일까?’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머릿속을 뒤엉켰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찾고 싶은 충동이 다시 치밀었지만 이진영은 고개를 돌려 이다은의 병실로 향했다. ...이노하이브 대표실. 강지한은 막 성무진에게서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문소영이 한 무리의 남자들에게 쫓기다 결국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은 심하게 어질러졌고 문이 잠겨 있어 그녀는 도망칠 틈조차 없었다. 결국 팔과 다리가 부러진 채 119에 실려 갔다. 강지한은 메시지를 닫고 입술을 천천히 매만졌다.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가벼운 경고’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음에도 제멋대로 날뛰면 그땐 진짜로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막 서류를 집어 들려는 순간,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자 박시훈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한아, 큰일 났어!” 강지한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해.” “온지유가... 나왔어.” 박시훈은 말끝을 떨며 믿기지 않는 듯 말을 이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 어떻게...?’ 믿기 힘든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무슨 수로 온지유를 꺼낸 거지?’ 강지한의 눈빛이 서서히 싸늘하게 식어갔다. “어떻게 된 거냐.” 그 말을 뱉는 순간, 심미연과 심태하가 본능처럼 떠올랐다. ‘온지유가 풀려났다고? 그럼 미연이랑 태하가 위험할 수도 있어.’‘도대체 어떤 놈이 감히 이런 짓을 벌인 거지?’ “나도 방금 들었어. 지금은 육현성 별장에 있다는 것 같아.” 박시훈은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알기에 곧장 강지한에게 알린 것이었다. “확실해?” 강지한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는 성무진을 시켜 교도소 내부를 철저히 관리하게 했었다. 온지유가 아무리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아이가 축복받지 못한 존재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고 싶지 않았다. “안 돼.” 이진영은 단호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하더니 곧장 의자에 앉아 이다은의 창백한 손끝을 조심스레 감쌌다. 그리곤 한 톤 낮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육현성 그 자식은 아버지 자격 없어. 네가 그 인간 아이를 낳으면 평생 끌려다닐 거야. 정말 그걸 바라는 거야?” 이다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결국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육현성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순간, 이진영의 말처럼 그 인연은 평생 끊어낼 수 없었다. 반면 아이가 없다면 그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다은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곧 마음을 다잡은 듯 결심이 담긴 목소리가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알았어. 오빠, 지금 바로 수술 예약해줘.”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언젠가는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그래. 병실에 얌전히 있어. 어디 가지 말고. 알았지?” 이진영은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는 이미 진운혁과 연락을 마친 상태였다. 진운혁은 이다은이 재판에서 반드시 승소할 수 있도록 돕겠다 했고 육현성의 재산 절반은 가져올 수 있을 거라 자신 있게 말했다. 이진영은 믿고 있었다. 동생이 건강만 회복하고 이혼만 잘 마무리된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육현성 같은 쓰레기는 다은이 앞에 다시는 나타나선 안 돼.’ “알겠어. 오빠, 이제 가봐.” 결정을 내린 이다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음 한쪽이 가볍게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언젠가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만날 테니까. 이진영은 병원 접수처로 향해 곧바로 수술 일정
“오빠,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서 정말 고마워.”온지유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눈을 반쯤 감은 채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하면서도 애교가 섞여 있었다. 지금의 온지유에게 육현성은 유일한 의지처였다. 그를 잃는다면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육현성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됐다. ‘심미연, 기다려. 복수할 기회는 반드시 만들 거야.’“세상에 이렇게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온지유는 그의 품에 몸을 기댄 채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유야, 그런데 만약 네가 날 배신한다면 그때는 나도 내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겠어.”육현성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경고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이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걸 수 있었다. 그 사랑은 너무 깊어서 그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그래서 더더욱 만약 온지유가 그를 배신한다면 그는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팔이 점점 더 세게 조여오는 걸 느낀 온지유는 잠시 두려움이 스쳤다. 그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강지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을 죽음보다 더 끔찍하게 대할 것이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그 상상만으로도 차가운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오빠, 걱정하지 마. 난 절대 오빠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이번 생엔 오빠만 사랑할 거고 영원히 오빠 곁에 있을 거야.” 온지유는 속마음을 감추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은 여전히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앞으로 육현성 앞에선 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의심을 품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날 거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네가 날 사랑한다면 나도 너를 끝까지 사랑할 거야.” 그의 말은 무엇보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지유야, 이제 좀 쉬어. 나는 아래층 좀 보고 올게. 밥 먹을 때 부를게
보통이라면 그녀가 화를 내면 강지한은 한 발 물러섰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양보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성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무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소영은 성무진을 보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며 공포에 휩싸였다. 이번엔 정말 끝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강지한에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이렇게까지 몰리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의 차갑고 무표정한 시선만이 머릿속에 반복되었다. 성무진은 그녀 앞에 서서 공손히 손짓하며 말했다. “큰 사모님, 모시겠습니다.”문소영은 강지한을 향해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눈빛을 보냈다. “강지한! 너 계속 이렇게 나를 몰아붙인다면 정말 당장 죽어버릴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책상 쪽으로 달려가 머리를 책상 모서리에 부딪히려 했다. 그러나 강지한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며 어두운 표정으로 단호하게 명령했다. “성 비서, 데려가.”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그는 문소영의 모습이 점점 더 불쾌하게 느껴졌다. 성무진은 빠르게 다가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실례하겠습니다. 큰 사모님.” 그 말과 함께 그는 차가운 손길로 문소영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 “놔! 당장 놔!” “손 떼! 지금 당장!” 문소영은 크게 외치며 저항했지만 성무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거칠게 차에 태웠다. 차에 태운 후 성무진은 팔을 놓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문소영은 재빨리 차 문을 열려 손을 뻗었다. “큰 사모님, 죄송합니다.”성무진은 고개를 숙이며 손을 들어 그녀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리쳤다. 문소영은 그대로 기절했다. 성무진은 그녀를 차 안에 눕히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차 밖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역시 대표님을 화나게 하면 끝이 좋을 리가 없지.’‘어쩔 수 없군.’ 그 순간, 성무진은 갑자기 떠오른
도진혁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바로 대답했다. “물론이죠. 저는 진지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신하린 곁에 이렇게 오랜 시간 머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어제 하린이를 하늘 하우스로 데려갔어요. 한 번 들러보세요. 하린이 곁에 조금 있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심미연은 서류봉투를 흘깃 바라본 뒤 덧붙였다. “이 서류는 제가 꼼꼼히 검토하고 나서 다시 연락드릴게요.”도진혁이 직접 합작 제안서를 들고 찾아온 이상 함부로 거절할 수는 없었다. 수익이 보장된 일이라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 이상 놓쳐선 안 되는 법이었다. “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도진혁은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그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갔다. 심미연은 그가 사라진 문 쪽을 한참 바라보다 방금 전 그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쪽에서 조용한 불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린이 목에 남은 상처가 아직 그대로일 텐데...’‘진혁 씨가 그걸 보면... 혹시 이진영 씨에게 따지러 가는 건 아닐까?’강지한 사무실.성무진은 문소영을 데려다주고 서둘러 떠났다. 강지한의 얼굴엔 냉기가 서려 있었고 성무진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사무실 안에서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문소영은 익숙하다는 듯 안으로 들어섰고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느긋하게 쏘파에 앉았다. “비서한테 차 좀 가져오라 해. 괜찮은 차로.” 그녀는 비서부가 꽤 유능하단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웬만한 건 다 알아서 해줄 정도로. 하지만 강지한은 말없이 서랍을 열어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와 그 봉투를 그녀의 무릎 위에 떨어뜨렸다. “직접 보시죠.”“뭘 보라는 거야?” 문소영은 그를 향해 냉정하게 시선을 던졌다. “보면 알아요.” 강지한은 담담하게 말하고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뭐가 들어있길래...?” 문소영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봉투를 들었다. 무
심미연은 박유진이 수년 동안 마음을 다해 사랑해온 여자였다. 그런 여자를 박유진이 쉽게 놓을 리 없었다. 조용히 그의 뒤를 따르던 비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표님, 정말 모든 걸 걸고 계시는군요... 제발 심미연 씨가 그 진심을 외면하지 않기를...”한편, 심미연은 전화를 끊자마자 문 쪽을 향해 말했다. “들어오세요.”조심스레 열린 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도진혁이었다. 그는 마치 급히 돌아온 듯 피곤하고 바쁜 기색이 역력했다. “도 비서님...?” 심미연은 예상치 못한 사람을 보고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 휴가를 낸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왜 지금... 여기 있는 거지?’그의 뒤에서 따라 들어온 비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조용히 말했다. “심 대표님, 실례하겠습니다. 이분은 저희 도강홀딩스의 대표, 도진혁 대표님이십니다.”비서는 서류봉투를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말없이 한 걸음 물러섰다. “이 서류는 도강홀딩스와 은성 그룹이 합작할 프로젝트에 관한 제안서입니다. 먼저 검토 부탁드립니다.”심미연은 비서가 놓고 간 서류를 잠시 바라보다가 도진혁을 천천히 되돌아보며 눈썹을 살짝 올렸다. ‘도진혁 대표님...?’ ‘그렇다면 도진혁 씨가 휴가를 낸 이유는... 회사를 물려받기 위한 준비였던 건가?”그때 도진혁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최 비서, 잠깐 나가 있어. 심 대표님과 단둘이 얘기할 게 있어.” 도진혁은 정장을 완벽하게 차려입고 평소보다 더 단정하고 신경 쓴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말투와 행동은 여유롭고 예의 바르며 그에게서 흐르는 것은 전형적인 사회 엘리트의 품위였다. “네. 대표님.” 최세라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문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떠나기 전에 조심스럽게 심미연을 한 번 쳐다봤다. ‘이분이 대표님이 좋아하는 여자분인가... 정말 예쁘다. 대표님이 회사를 물려받은 이유가 이분 때문이라면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