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자는 강지한이 심미연을 안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둘의 관계가 좋아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이젠 사모님이 떠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심미연은 얼굴을 강지한의 가슴에 묻고 머리를 급히 굴렸다.그녀가 아직 딴생각을 하고 있는데 강지한은 벌써 그녀를 안고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몸에 스며드는 한기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는 이미 욕실 거울 앞에 서 있었고 옷은 이미 반쯤 벗겨진 상태였다.심미연은 마음이 다급해져서 말했다.“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강지한은 눈을 가늘게 떴다.“음?”높아지는 말꼬리에는 위험한 기운이 담겨있었다.심미연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며 짙은 욕망으로 불타오르는 그의 눈을 마주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떨렸다.“금... 금방 다녀올게.”강지한은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에 큰 손을 올려놓았다.“나 가지고 노는 거야?”“부끄러워서 그래!”심미연은 수줍은 듯 얼굴을 돌렸다.강지한은 그녀의 말에 기분이 좋아져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3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내 몸에 뭐 볼 게 남았다고 부끄러워해?”하지만 수줍어하는 여자의 모습은 꽤나 매혹적이었다. 그의 마음이 간질거렸다.그의 말을 들은 심미연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내가 언제!”사실 막 결혼했을 때는 그의 몸을 몰래 자주 훔쳐보곤 해서 그의 몸에 있는 점의 위치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물론 이 사실은 강지한에게 말할 수 없었다.강지한은 손을 뻗어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참을 수 없어. 일단 한 번 하자.”두 사람은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기에 심미연은 그의 몸의 변화를 확실히 느꼈다. 그가 막무가내로 나올까 봐 그녀는 심호흡하고 작은 손으로 거기를 잡았다.그녀가 이렇게 적극적인 적은 없었다.매번 강지한이 그녀를 이리저리 뒤집으며 괴롭혔을 뿐이었다.하지만 배 속의 아기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었다.강지한은 순간 멍해졌다.여자의 작은 손은 너무 부드러웠다.그가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촉이었
심미연은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은 멀쩡했다. 그의 말을 듣고 그녀는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나 너무 힘들어. 손목도 아프고.”강지한은 그녀의 나른한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다.“누가 그렇게 열심히 하랬어?”3년이나 결혼했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아마 그녀가 처음으로 그에게 이렇게 적극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내가 열심히 안 했으면, 네가 좋았겠어?”피곤했지만 심미연은 마음속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가 다시 달려들까 봐 걱정되었던 것이다.강지한은 목울대를 움직이며 낮게 웃었다.그는 꽤 좋았다.하지만 여자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한 이유가 자신에게 부탁할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심미연은 미소 짓는 그의 얼굴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지한 씨, 지금... 기분 좋아?”그녀가 열심히 그를 섬긴 데에는 목적이 있었다. 강지한은 그녀의 목적을 짐작했지만 모르는 척했다.“왜? 한 번 더 해 주려고?”그는 일부러 노골적으로 말하며 마디가 뚜렷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을 휘감았다.심미연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강지한, 이 자식, 날로 먹으려고 하네! 정말 너무했어!’하지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심미연은 울상을 지으며 허리를 곧추세우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한 씨, 내가 잘못했어. 제발 하린의 작업실은 좀 봐줘.”“네가 뭘 잘못했는데?”강지한은 일부러 물었다. 사실 심미연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신하린의 작업실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 줘. 당장 고칠게! 제발 하린이 좀 봐줘. 응?”그녀는 다급하게 말했다.강지한의 비위를 거스를까 봐 그녀는 전전긍긍했다.“이제 겨우 한 번만 했는데 벌써 요구를 하는 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강지한은 일부러 굳은 얼굴로 낮은 목소리를 냈다.심미연은 당황한 얼굴로 입술만 달싹거렸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남자는 멍하니 있는 그녀를 샤워기 아래로 끌고 가서 수도꼭지를 틀었다.차가운 물이 머리 위로 쏟아
심미연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이혼하고 그 여자가 세운 회사의 수익을 분할 받고 싶으신 거죠?”“네! 남편이 투자한 돈으로 그 회사가 번 돈을 나눠 받고 싶어요!”그녀에게 그 돈은 혼인 기간 동안 형성된 공동 재산이었으니 분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였다.“지금은 좀 늦었으니 내일 저희 사무실로 오시면 자세히 상담해 드리겠습니다.”전화로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우니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네,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몇 시쯤 편하신가요?”“내일 일정이 아직 확정되지 않아서요. 오전 중에 전화 주시면 시간을 정하도록 할게요.”내일 재판이 예정되어 있어 시간이 빠듯한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연락드릴게요. 안녕히 계세요.”여자가 전화를 끊자 심미연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드레스룸으로 향했다.두 벌의 섹시한 시스루 잠옷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그녀의 입가에 차가운 조소가 스쳐 지나갔다.돈도 아깝고 공들인 시간과 정성도 아까웠다.결국, 그녀는 면 소재 잠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 노트북을 켜고 일을 시작했다.내일 재판을 위해서는 좀 더 꼼꼼하게 준비해야 했다.소송은 이겨야 할 뿐만 아니라 멋지게 이겨야 했다.남자는 샤워를 마치고 수건을 두른 채 나왔다가 노트를 보고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꽤 보기 좋았다.하지만 그의 표정은 굳어졌다.‘이젠 내 앞에서 가식조차 떨지 않겠다는 거야? 오후에 분명 섹시한 잠옷을 두 장이나 샀잖아? 근데 왜 안 입어?’그는 머리를 닦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그녀의 노트를 빼앗았다.심미연은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노트를 빼앗기자 순간 멍해졌다.그녀는 곧 정신을 차리고 남자의 손에 들린 노트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빨리 노트 돌려줘! 나 일해야 한다고!”다른 작전을 막 떠올린 참이라 빨리 메모해야 했다.강지한은 노트를 닫으며 물었다.“네 잠옷은?”심미연은 자신도 모르게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심미연은 그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하린이 말고 내 친구가 또 누가 있는데?”‘나는 지금 분명 하린이 문제를 얘기하고 있는데 이 인간은 또 누구를 끌어들이려는 거야? 유진인가?’“네가 나보다 더 잘 알잖아?”강지한은 그녀와 박유진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었다.하지만 그녀는 박유진에 관한 이야기를 피하며 그의 말을 못 알아들은 척했다.이 여자는 분명 뭔가 숨기고 있었다.심미연은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나와 유진은 예전에 이웃이었고 지금은 그냥 아는 사이일 뿐이야. 지금은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그녀의 이런 설명이 강지한을 만족시킬지는 알 수 없었다.강지한은 웃으며 말했다.“듣자 하니, 박씨 가문에서 널 며느리로 점찍었다던데?”심미연은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그의 속마음을 읽어 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능숙하게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있어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생각하다가 진지하게 물었다.“남들이 하는 농담에도 그렇게 신경 쓰여?”그녀와 박유진 사이의 농담은 아주 오래전 이야기였고 지금은 다시 꺼낼 만한 가치도 없었다.게다가 열다섯 살에 처음 강지한을 본 이후로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직 그만이 자리하고 있어 다른 누구도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그녀에게 박유진은 오빠 같은 존재일 뿐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었어?”강지한은 그녀의 눈을 보며 비웃듯이 말했다.심미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난 당신이랑 결혼했잖아?”만약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박유진이었다면 어떻게든 그와 함께하려고 했을 것이다.그런데 중요한 건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은 강지한이었으니 박유진과 결혼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는 것이다.강지한이 오늘따라 이 얘기를 꺼내는 건 혹시 그녀가 쓴 이혼 서류 때문인가?그녀는 이혼 서류에 강지한을 유책 배우자로 명시하고 재산분할을 요구했다.만약 그녀가 외도해서 유책 배우자가 된다면 재산분할을 요구할 자격이 없어진다. 이런 생각에 심미연은 웃음이
남자의 차가운 숨결이 코끝으로 스며들었다.심미연은 의사의 말이 떠올라 깜짝 놀라 그를 밀어내며 소리쳤다.“지한 씨, 배 누르지 마! 아파!”어제 강지한 때문에 배가 아팠던 기억이 떠올랐다.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강지한은 인상을 찌푸리며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분명 자신에게도 호감이 있는 것 같은데 자꾸만 거부하는 모습이었다.아까도 그랬다. 차라리 손으로 해결해 줄지언정 그와 잠자리를 하려 하지 않았다.그러니 이 여자가 다른 마음이 없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강지한의 시선에 심미연은 등골이 오싹해져 다급하게 말했다. “나... 배 아파.”“어제도 배 아프다더니 오늘 또 아프다고? 내일 무진에게 연락해서 병원 검진 예약해 놓으라고 할게.”강지한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당연히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잠자리할 때마다 배가 아플 리가 없었다.분명 거짓말을 하거나, 아니면 그와의 관계를 거부하기 위한 핑계였다.심미연은 반사적으로 즉시 거절했다.“아니... 괜찮아!”성무진이 병원 검진을 예약하면 임신 사실을 숨길 수 없었다.만약 강지한이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 낙태를 강요할 것이 뻔했다.이 아이는 그녀의 아이이니 그녀는 반드시 낳을 것이다.강지한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미연아, 너 나한테 숨기는 게 있지?”이 여자의 반응은 너무 이상했다.심미연은 몰래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말했다.“요즘 재판이 몇 건이나 잡혀 있어서 자료 준비에 현장 조사까지 해야 돼. 너무 바빠서 병원 갈 시간도 없는데 일 끝나고 검사받으면 안 될까?”그녀는 어떻게든 빨리 강지한과 이혼해야 했다.임신 초기 3개월 동안은 관계를 하면 안 되는데 그는 그쪽으로 워낙 혈기왕성한 사람이라 한두 번 거절하는 건 가능해도 여러 번 거절하기는 힘들었다.자칫 잘못하면 아이를 유산할 수도 있었다.설사 3개월 동안 강지한과의 관계를 피한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배가 불러오기 시작할 것이고 그때는 임신
“지한 씨, 나 피곤해. 자자.”심미연은 예쁜 눈을 깜빡이며 이불 속에서 웅얼거렸다. 마치 어린아이가 애교를 부리는 듯 나른하고 달콤했다.하지만 속으로는 온지유가 빨리 강지한에게 전화해 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강지한은 잠옷을 들고 침대에 올라 이불을 잡아당겨 심미연을 앞으로 밀었다.그 바람에 그녀는 침대 위에서 굴렀고 이불은 풀어졌다.그녀는 황급히 잠옷을 움켜쥐었다.끝났다!더는 버틸 수 없었다.온지유는 정말 도움이 안 돼!“지...”심미연이 입을 열자 남자는 그녀의 팔을 잡아끌어 품에 안았다.“내가 갈아입혀 줄까, 아니면 네가 갈아입을래?”그는 꼭 보겠다는 심산이었다.심미연은 입술을 깨물고 그를 유혹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안 갈아입으면 안 돼?”아까 그녀는 강지한을 유혹해서 신하린을 봐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근데 열심히 유혹했더니 결국 손만 더럽히고 신하린도 구해내지도 못했다.만약 이제 와서 이 잠옷을 입는다면 강지한은 순식간에 짐승으로 돌변할 것이다.그녀는 그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배 속의 아기를 위해서라도 절대 입을 수 없었다.강지한은 그녀와 길게 말하기 귀찮아 그녀의 옷을 벗기고 빨간색 잠옷을 억지로 입혔다.심미연은 어쩔 수 없이 잠옷을 입었다.그러자 남자는 그녀를 안은 채 화장대 거울 앞으로 데려가 뒤에서 껴안고 그녀의 귓불을 깨물며 속삭였다.“오늘 밤, 거울 속에 비친 네 모습을 보면서 널 괴롭혀 줄게!”야한 빨간 잠옷은 그녀의 차갑고 도도한 분위기와 묘하게 어우러져 남자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심미연은 부끄럽고 분해서 미칠 지경이었다.함정을 판 결과, 강지한에게 묻히게 생겼으니 말이다.강지한은 말을 마치고 그녀의 상체를 화장대에 밀어붙였다.심미연의 몸이 순식간에 뻣뻣하게 굳었다.그는 인상을 찌푸리고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미연아, 긴장 풀어.”심미연은 배 속의 아기를 생각하며 몸을 더 웅크렸다.강지한은 아픔에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는
“지유가 교통사고를 당한 사실을 왜 집안에 숨겼어? 그 애가 지금 임신 중인 거 몰라! 그것도 네 형의 아이를! 잘못되기라도 하면 미연은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라!”문소영은 따지듯이 물었다.강지한은 인상을 찌푸렸다.“별일 없었는데 왜 호들갑이에요?”그는 성무진에게 온지유의 교통사고 소식을 막으라고 지시했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네가 숨긴 건 미연을 감싸주려는 거잖아! 네 속셈을 내가 모를 줄 알아?”심미연 이야기만 나오면 문소영의 기분은 나빠졌다.강지한은 차분하게 말했다.“내 일에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렇게 지유가 걱정되면 사람을 많이 붙여서 돌보던가요.”그는 온지유의 교통사고를 조사하고 있었다.심미연의 행동을 보면 그녀가 사고를 낸 것 같지는 않았다.비록 그녀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 싶지도 않았다.“내가 네 엄마인데 어떻게 네 일에 신경을 안 써! 그리고 너 미연이랑 언제 이혼할 거야? 그날 백화점에서 이씨 가문 사모님을 만났는데, 그 집 막내딸이 돌아왔대. 지금 그 애한테 어울릴 만한 집안 아들을 찾고 있다던데, 예전에 걔가 너 쫓아다녔던 거 기억나? 차라리 너희 둘이 잘해 보는 건 어떻겠니?”문소영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강지한은 코웃음을 쳤다.“내 가정을 박살 내고 나를 다른 여자에게 넘기려고 이 밤중에 여기까지 온 거예요?”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밤중에 찾아오다니, 정말 어이없었다.“넌 미연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가정은 무슨 가정이야!”강지한은 짜증을 냈다.“늦었으니까 가보세요. 나 잘 거예요!”“미연은? 내가 왔는데 인사도 안 해? 꼭 거지 같은 집안에서 자란 티를 낸다니까. 예의도 모르고!”문소영은 위층을 보면서 빈정거렸다.그녀의 말에 강지한은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미연은 내 마누라인데 그녀를 무례하다고 하는 건 나를 무례하다고 욕하는 거랑 마찬가지예요. 한밤중에 와서 왜 미연에게 시비예요? 걔가 뭘 잘못했다고?”그의 면전에서 아내를 욕하다니, 정말 어처
가까이 다가간 강지한은 여자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허리를 굽혀 침대에 앉아 그녀의 이마를 만져보았다.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열은 없었다.“미연아, 왜 그래? 어디가 안 좋아?”강지한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방금 아래층으로 내려갈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잠깐 사이에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까.심미연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본능적으로 남자의 품으로 파고들며 나긋나긋하게 말했다.“지한 씨, 배가 아파.”정말 너무 아팠다!병원에 가고 싶었다.“병원에 데려다줄게!”강지한은 말과 동시에 그녀를 안아 올리고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려 했다.이때 심미연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을 크게 뜨고 강지한을 바라보며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내려줘, 병원에 안 갈 거야!”병원에 가면 임신 사실이 들통날 것이다.그러면 아이를 지킬 수 없게 된다.그럴 순 없었다!강지한은 그녀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병원에 가기를 거부하자 얼굴이 굳어지며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죽고 싶어도 내 집에서는 안 돼! 밖에 나가서 죽어!”아파도 병원에 안 가다니, 이 여자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건가!심미연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화를 냈다.“살살 하라고 했잖아! 꼭 그렇게 힘을 줘야 했어? 지금 내 배가 아픈 게 누구 때문인데! 왜 나한테 화를 내!”다 그가 저지른 일인데 이제 와서 밖에 나가 죽으라니, 정말 너무했다.강지한의 얼굴에 잠시 어색한 기색이 스쳤지만 금방 평정심을 되찾고 말했다.“병원에 가서 검사받아 보자.”‘부부끼리 조금 친밀한 행동을 했다고 병원에 가야 할 정도라니, 정말 유난스러운 여자야.’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그렇게 말하는 사이, 두 사람은 이미 아래층에 도착했다.심미연은 초조해졌다.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바로 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강지한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심미연에게 말했다.“내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 좀 꺼내 줘.”심미연은 알았다고 대답하고 마지못해 남자의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
“지한아, 너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온지유를 놓아줄 수 있는 거야?”육현성은 그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또 한마디 물었다.강지한은 눈빛을 그의 얼굴에 떨어뜨렸다.“이것이 바로 온지유의 결말이야. 아무도 바꿀 수 없어. 너는 그만 가봐.”강지한이 내쫓자 육현성의 안색은 극도로 나빠졌다.“너는 왜 이렇게 정이 없는 거야!”강지한은 그의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예전에 심미연도 같은 말을 했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세계에는 냉랭한 사람만 존재했고 감정은 없었다.육현성은 그곳에 앉아 그의 모습이 2층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눈을 감은 채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마음속의 모든 감정을 누르고 천천히 일어섰다.이 순간 그는 갑자기 어머니의 심정을 깨달았다.원래 강하지 못하면 발밑에 밟힐 수밖에 없다.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그는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어디 갔어?”오미경은 분노로 날카로운 목소리를 냈다.“이다은과 결혼할게요.”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었다.만약 그가 이다은과 결혼할 수 있다면 이씨 가문의 세력이 생길 것이고 그는 서서히 강해질 것이다....신하린은 흐리멍덩하게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운 채 공허한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멀쩡하던 심미연이 왜 이렇게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그리고 그녀의 배 속에 있는 두 아이도...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얼마나 울었을까, 그녀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꿈속에서만 그녀는 심미연을 볼 수 있다.얼마나 지났는지 그녀의 침대 옆에 그림자 하나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신하린, 넌 왜 나에게 사랑을 좀 나누어 줄 수 없는 거야? 젠장, 넌 양심이 없는 년이야!”이진영의 목소리는 침대 위의 여자를 깨우기라도 할까 봐 조심스럽게 들려왔다.욕을 한 후 그는 옷을 벗고 이불을 젖히더니 이불 속에 누웠다.그가 눕자마자 여자의 몸은 습관적으로 그에게 다가와 두 손으로 그를 껴안고
성무진은 신미연이 정말 바다에 빠졌다면 어떻게 찾을 수 있었을까 생각했지만 이런 말을 그는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다.그렇지 않으면 강 대표님이 틀림없이 화를 낼 것이니 말이다.“빨리 가서 이 일을 처리해. 난 기사를 불러 집에 갈 거야.”성무진은 서둘러 갈 수밖에 없었다.강 대표님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했다.강지한은 이불을 들치고 일어나 욕실로 갔다.손으로 얼굴의 손자국을 어루만지며 신하린의 당시 슬프고 분노하던 모습을 떠올렸는데 연기하는 것 같지 않았다.만약 심미연이 죽지 않았다면 신하린에게 알리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심미연이 죽었다면...강지한은 감히 더는 생각하지 못하고 재빨리 수도꼭지를 틀고 물로 얼굴을 씼었다.차가운 물이 얼굴에 닿자 정신이 확 들었다.씻고 옷 갈아입고 나니 기사도 도착했다.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침실은 이미 깨끗이 청소되어 공기 중에 은은한 향기가 났다.강지한은 또 그 넥타이를 보고 마음이 뒤숭숭해졌다.심이연이 그리웠고 그가 전에 했던 일도 떠올라 알 수 없는 괴로움이 밀려왔다.오후가 되자 육현성이 찾아왔는데 얼굴이 초췌하고 수염도 깎지 않아 의기소침해 보였다.강지한은 소파에 앉아 눈앞의 육현성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눈썹을 치켜세우고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온지유는 이미 체포되었으니 절차가 끝나면 모든 것이 마무리된다.육현성이 온지유의 도주를 도운 일에 대해 그는 결코 추궁할 생각이 없었다.“넌 분명히 이미 모든 것을 안배했는데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육현성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따져 물었다.온지유가 체포된 일에 대해 그는 사람을 찾아 경위를 똑똑히 묻고 나서야 자신이 철두철미한 바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강지한의 눈에는 그가 아마 우스운 꼬락서니였을 것이다.집에서 며칠을 지내다가 그는 강지한을 찾아 분명히 묻기로 했다.“내가 너에게 말했으면 너는 온지유를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어?”강지한은 찻잔
그는 후회했다.몹시 후회하다.하지만 이 세상에 후회 약은 없다!신하린은 몸을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입가에 풍자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마치 여름 오후에 갑자기 들이닥친 소나기처럼 차갑고 격렬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곧바로 쳤다.“미연이는 이미 한 줌의 흙이 되었는데 강지한 씨의 이런 능청스러운 태도는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거예요?”그녀의 목소리는 높지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어 주위의 공기를 굳힌 것 같다.강지한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는 입술을 감빨며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감정을 억누르려 했으니 그 강렬한 통증은 조수처럼 세차게 밀려와 그를 삼킬 것 같았다.그는 두 손을 주먹으로 꽉 쥐었다. 핏줄이 불끈 솟아올랐고 손끝은 너무 힘을 주어 하얗게 질렸지만 마치 이렇게 해야만 심장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는 것 같았다.신하린은 강지한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더니 시큰둥하고 비참함으로 가득 찬 어투로 말했다.“뒤늦은 정은 길가의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들풀보다 더 비천해요.”강지한의 마음은 이 순간 유난히 무거웠다.신하린은 그런 그를 보고 또 계속 말을 이었다.“온지유의 일에 더는 끼어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그녀의 목소리는 높지 않지만 우레와 같이 그의 귓가에 폭발했고, 글자마다 천근 무게로 대처할 수 없는 힘을 띠고 있었다.그녀의 눈빛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고, 단지 확고함과 냉혹함만이 있었는데 마치 이미 온지유의 비참한 미래를 예견한 것 같았다.“난 끼어든 적 없어요. 온지유가 지금 감당하고 있는 모든 것은 자업자득이에요. 신하린 씨가 어떻게 상대하든 상관없어요.”강지한은 차가운 눈빛으로 쌀쌀하게 말했다.신하린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에 분노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는데 그것은 심미연을 향한 끝없는 그리움과 슬픔이 만들어낸 불꽃이었다.“말한 대로 하기를 바라요!”또박또박 말하고 난 그녀는 몸을 돌려 떠나갔다.신하린이 문을 나서자마자 성무진이 초조한
신하린의 눈빛은 마치 두 개의 날카로운 얼음 조각처럼 조금의 온도도 없이 이진영의 깊은 눈동자를 찔렀다. 그 눈빛에는 의외와 분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처가 가득했다.“무슨 일이 있어요?”그녀의 말은 나지막하고 힘차서 한 글자 한 글자가 마치 이 사이로 비집고 나온 듯 거부할 수 없는 무거움을 띠고 있었다.이진영은 몸을 살짝 움직였다. 그녀가 이 한마디를 뱉는 순간 그의 눈빛은 순간적으로 암울하게 변했고 마음속에 복잡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이 피어올랐다.그는 한 걸음 천천히 앞으로 내디디며 꿈에도 그리지만 아득히 먼 이 그림자에 접근하려 했지만 신하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담함과 거부감은 보이지 않는 장벽처럼 그를 격리했다.“괜찮으시다면 먼저 나가서 기다렸다가 나중에 들어오세요!”그녀가 계속 말했다. 말투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확고함과 결단만이 있었다.그녀의 두 손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는데 핏줄이 하얀 손등에 내비쳐 그녀의 마음속 거친 정서를 드러냈다.이 순간, 그녀는 더는 그 온화하고 사랑스러운 여자가 아니라 복수의 사신으로 변신하여, 죽은 절친을 위해 따지려는 듯했다.이진영의 마음이 아프게 조여왔다. 그는 신하린의 증오로 가득 찬 두 눈을 바라보며 전례 없는 무력함과 고통을 느꼈다.그는 앞으로 나가 그녀를 안으려고 했다.위로해주고 싶고그녀와 얘기도 하고 싶었지만 신하린의 눈빛은 너무 차가웠다.두 사람은 이렇게 대치하고 있었고, 공기 중에는 긴장과 억압이 가득 차 있어 마치 시간조차 이 순간에 정체된 것 같았다.“왜 아직도 안 가?”신하린이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는데 목소리에는 귀찮음이 느껴졌다. 그녀는 더는 이 남자와 아무런 관계도 맺고 싶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 마음속에는 복수의 불길만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이진영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속의 충격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이왕 만났으니 우리 얘기 좀 할까?”신하린은 가슴이 아파지는 걸 느끼며 입을 벌리고 그를 불렀다.“진영 씨.”그녀의
짝! 짝!맑은 따귀 소리가 고요한 공간에서 터져 마치 여름에 갑자기 닥친 천둥소리처럼 사람의 마음을 떨리게 했다.신하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물을 머금은 두 눈엔 억울함과 한이 반짝이였다.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고 흐느낌을 참으며 마치 모든 억울함과 고통을 이 간단한 동작을 통해 털어놓으려는 것 같았다.강지한은 눈앞에 별이 보이도록 얻어맞았지만 그 따가운 통증이 뺨에 번지도록 내버려 두었다.그는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쉬며 마음의 파도를 가라앉히려 했다. 머릿속에는 꽃처럼 예쁘게 웃고 있는 심미연의 모습이 떠올랐고 심미연의 부드러운 말투, 그리고 함께 보낸 따스한 시간이 조수처럼 밀려와 그를 파묻었다.“만약 심미연이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런 한마디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낮고 잠긴 목소리에는 끝없는 슬픔과 후회를 품고 있었다.그는 천천히 눈을 뜨고 멍한 눈빛으로.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치 많은 장애물을 뚫을 수 있는 것처럼 이미 멀어졌지만 영원히 그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그 모습을 보았다.그런 그의 모습에도 신하린의 마음속 분노는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용솟음쳤다.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서 두 손을 주먹으로 꼭 쥐었다. 손끝은 너무 힘을 주어 하얗게 질렸지만 목소리는 떨리면서도 확고했다.“강지한 씨, 무슨 자격으로 미연이를 언급해요? 강지한 씨가 뱉는 모든 글자가 미연이에 대한 가장 큰 모독이에요!”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그 순간 더 격렬한 충돌이 일어날 것처럼 극도로 팽팽해졌다.그러나 바로 이 긴장된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강지한이 갑자기 웃었다. 그것은 일종의 씁쓸하고 자조적인 웃음이었다.“그래요. 내가 무슨 자격으로... 내가 미연이를 죽였어요. 하늘에서 보고 있다면 반드시 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신하린은 모든 슬픔을 삼킨 것 같은 강지한의 얼굴을 보고 입가에 시큰둥한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 속에는 풍자와 경멸이 숨어 있었는데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졸렬한 연기를 비웃는 것 같았다.“허, 정말 가소롭네
성무진은 깜짝 놀라 얼른 손을 뻗어 신하린을 붙잡았다.“신하린 씨,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신하린은 갑자기 입을 벌리더니 성무진의 손을 한입 물었다.“놔요!”성무진이 아파서 손을 놓자 신하린은 또 강지한을 덮쳤다.순간 강지한이 갑자기 그녀를 노려보았다.그 눈빛이 너무 매서워서 신하린은 바로 걸음을 멈추었다.“신하린 씨, 지금 하린 씨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 일은 우리 강 대표님과 무관해요.”성무진은 황급히 입을 열어 강지한을 대신해서 설명했다.신하린은 몸을 곧게 펴고 머리카락이 국에 젖은 강지한을 매섭게 노려보았다.“강지한 씨가 온지유를 밑도 끝도 없는 포용하지 않았다면 온지유가 어떻게 감히 미연이 앞에서 그렇게 날뛰고 방자할 수 있겠어요? 강지한 씨가 미연이를 믿지 않은 게 아니었다면 미연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억울함을 당할 수 있었을까요!”“강지한 씨, 그거 알아요? 미연이는 강지한 씨를 꼬박 10년 동안 사랑했어요!”심미연은 26번째 생일을 맞았다. 그러니 계산해 보면 심미연은 정말 강지한을 10년 동안 사랑했다.결국 그녀는 10년 동안 자신을 다른 세계로 보내버렸는데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강지한의 차가운 표정이 마침내 흔들렸다.심미연이 그를 10년 동안 사랑했다니, 이것은 그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성무진도 놀란 표정이었다.강 대표님의 부인이 강 대표님을 10년 동안 사랑했다니.10년이란 시간은 참 긴 세월인데 말이다.“강지한 씨, 나도 알아봤어요. 온지유가 안에서 맛있는 걸 먹으며 잘 지낸다는데 이렇게 하면 미연이게게 미안하지 않아요?”신하린은 화가 난 나머지 눈물이 흘러 내렸다.그 악독한 여자가 미연이와 외할머니를 죽였는데 어떻게 멀쩡하게 살아있단 말인가! 빌어먹을!강지한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그는 3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기에 온지유의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성무진은 그제야 반응하고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 없어요.”그는 온지유를 잘 모시라고 당부했었다.설마...그들이
임혜자는 필사적으로 감정을 억누르고 다시 말했다.“성 비서님께서 아까 사모님 유품을 가져왔더라고요. 그리고 둘째 도련님께서는 지금 응급실에서 나와 일반 병실로 옮겨졌습니다.”임혜자는 강지한이 너무 걱정되었고 혹시나 그에게 일이 생기면 아무것도 모르는 강준형이 그들을 탓하지는 않을지도 걱정되었다.“네...”강준형을 말을 마치자마자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순간 본가 쪽도 아수라장이 되어 집사들은 그를 곧바로 병원으로 데려갔다.의사와 간호사의 필사적인 노력 끝에 강준형은 깨어날 수 있었지만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김준혁은 그가 깨어난 모습을 보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어르신, 드디어 깨어나셨네요. ”강준형은 겨우 침상에서 일어나 앉더니 온 힘을 다해 집사에게 말했다.“지금 당장 성 비서한테 전화해서 그 팔찌를... 가져오라고 해.”성무진도 마침 병원에 있었기에 빠르게 그의 병실로 오게 되었고 오자마자 주머니에서 그 팔찌를 그에게 넘겨줬는데 조명 아래 비치니 더욱 반짝거리는 모습이 보는 사람을 가슴 아프게 했다.강준형은 떨리는 손으로 팔찌를 건네받고 만져보다가 익숙한 촉감에 결국에는 눈물을 흘렸다.그리고 문득 심미연의 해맑은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그녀의 것임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강준형은 마음이 바스라지는 것 같았다. 두 손으로 팔찌를 움켜쥐고 몸을 잘게 떨었는데 마치 누군가가 그의 심장을 칼로 찌르기라도 한 듯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순간 그는 마치 온 세상을 잃은 듯 끝없는 공허함과 절망에 빠져버렸다.김준혁은 그의 모습을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어르신, 아직 몸도 성치 않으신데 너무 흥분하시면 심장에 또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잠깐 눈 좀 붙이시는 게 어떠세요?”그러나 강준형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그가 그토록 아끼던 심미연이 이렇게 떠나버렸다.시신도 남기지 않고 가버린 사실을 강지한이 깨어나 알게 되면 얼마나 절망적일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3일 후, 강지한이 드디어
강지한은 심미연이 이제 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 같았고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는데 도저히 이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는 뭔가를 말하려고 입을 살짝 벌렸지만 너무 떨려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그저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뜨거운 피가 용솟음쳐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 뒤 낮은 신음을 내뱉더니 곧바로 입에서 피를 쏟아내면서 픽 하고 몸이 뒤로 넘어갔다.그리고 마치 온몸의 모든 공기가 다 빠져나간 것처럼 힘없이 차가운 바닥에 그대로 떨어지면서 정신을 잃었다.성무진은 갑자기 들리는 둔탁한 소리에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그러나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떨리는 손으로 임혜자에게 전화를 걸었다.“아주머니, 혹시 지금 위층 안방에 가서 강 대표님이 괜찮은지 확인 할 수 있으실까요?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너무 걱정돼서요.”전화 받은 임혜자도 그의 말에 심장이 덜컥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그러나 다년간의 경험으로 그녀는 빠르게 마음을 진정시킨 뒤 성무진을 위로하며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침착할 수 없었다.강지한은 창백한 얼굴로 피를 토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방안에는 이미 피비린내가 가득 퍼져있었다.임혜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119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가능한 빨리 차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그러나 기다리는 1분 1초가 너무 괴로웠다.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집 앞에 도착했고 의료진들은 신속하고 질서 있게 방에 들어가 강지한을 조심스럽게 들것에 옮겨 데리고 나갔다.임혜자는 구급차가 떠나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며 강지한이 이 고비를 빨리 넘길 수 있도록 기도했다.그렇게 강지한은 빠르게 응급실로 옮겨졌다.응급처치가 끝난 뒤 그는 일반 병실로 옮겨졌는데 여전히 깨나지 못한 채 긴 꿈을 꾸게 되었다.꿈속은 마치 길고 인상 깊었던 영화와 같았는데 프레임마다 그가 심미연과 함께한 3
“미연 씨랑 완전히 깨진 거야? 그럼 찾으면 이제 내 차례네?”박시훈은 어차피 이제 강지한이 심미연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박시훈, 지금 너랑 농담할 기분이 아니니까 빨리 사람 풀어서 찾아봐.”강지한의 마음속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만약 박시훈도 못 찾는 거라면 심미연은 완전히 실종되었다고 봐야 한다.“강지한,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줘. 미연 씨를 아직 사랑하지?”박시훈은 만약 그가 여전히 심미연을 좋아하는 거라면 여기서 깔끔하게 포기하겠다고 다짐했다.친구의 여자를 뺏는 건 도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그러나 강지한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큰 소리로 답했다.“전혀!”그는 여전히 자존심을 부렸다.강지한의 말에 박시훈은 또다시 히죽거리며 말했다.“그럼 미연 씨를 찾아도 나만 볼 수 있게 어디 숨겨둬야겠다.”강지한은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박시훈, 싫다는 사람을 왜 억지로 데려가려고 해. 그리고 어디까지나 내 전 아내였던 사람인데 들이대고 싶어?”“난 미연 씨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거야. 그게 네 전 아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인데?”박시훈도 살짝 격앙된 목소리로 답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됐어. 난 그만 사람 찾으러 가야겠다.”박시훈과의 통화 뒤에 강지한의 가슴은 더욱 답답해졌다.모태 솔로인 박시훈이 심미연에게 관심을 보이는 게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러다가 그는 모든 잡생각을 다 집어치운 뒤 강준형에게 전화를 걸었고 곧바로 수화기 너머에서 그의 중저음 목소리가 들려왔다.“미연이한테 사과했어? 용서는 받았어?”“혹시 오늘 미연이 만나셨어요?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어요?”강지한은 다짜고짜 그녀가 사라졌다고 할 수 없었기에 에둘러 물었다.“미연이가 사라졌어?”강준형의 물음에 강지한은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그에게 거짓말했다.“혹시 할아버지한테 찾아가서 무슨 이야기 나눴나 궁금해서요.”보아하니 강준형을 만나러 가지도 않은 것 같았다.“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 그런데 너한테는 비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