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다가간 강지한은 여자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허리를 굽혀 침대에 앉아 그녀의 이마를 만져보았다.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열은 없었다.“미연아, 왜 그래? 어디가 안 좋아?”강지한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방금 아래층으로 내려갈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잠깐 사이에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까.심미연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본능적으로 남자의 품으로 파고들며 나긋나긋하게 말했다.“지한 씨, 배가 아파.”정말 너무 아팠다!병원에 가고 싶었다.“병원에 데려다줄게!”강지한은 말과 동시에 그녀를 안아 올리고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려 했다.이때 심미연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을 크게 뜨고 강지한을 바라보며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내려줘, 병원에 안 갈 거야!”병원에 가면 임신 사실이 들통날 것이다.그러면 아이를 지킬 수 없게 된다.그럴 순 없었다!강지한은 그녀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병원에 가기를 거부하자 얼굴이 굳어지며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죽고 싶어도 내 집에서는 안 돼! 밖에 나가서 죽어!”아파도 병원에 안 가다니, 이 여자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건가!심미연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화를 냈다.“살살 하라고 했잖아! 꼭 그렇게 힘을 줘야 했어? 지금 내 배가 아픈 게 누구 때문인데! 왜 나한테 화를 내!”다 그가 저지른 일인데 이제 와서 밖에 나가 죽으라니, 정말 너무했다.강지한의 얼굴에 잠시 어색한 기색이 스쳤지만 금방 평정심을 되찾고 말했다.“병원에 가서 검사받아 보자.”‘부부끼리 조금 친밀한 행동을 했다고 병원에 가야 할 정도라니, 정말 유난스러운 여자야.’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그렇게 말하는 사이, 두 사람은 이미 아래층에 도착했다.심미연은 초조해졌다.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바로 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강지한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심미연에게 말했다.“내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 좀 꺼내 줘.”심미연은 알았다고 대답하고 마지못해 남자의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
심미연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응, 안 아파.”지금 그녀는 어떻게든 남자를 보내고 싶었다. 그러니 배가 아파도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강지한은 입술을 깨물더니 허리를 굽혀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고 말했다.“혼자 방으로 돌아가. 난 간다.”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가버렸다.심미연은 남자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재빨리 배에 손을 얹었다.“아가야, 얌전히 있어. 엄마가 금방 병원에 데려가 줄게!”이때 임혜자가 방에서 나와 심미연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다급하게 물었다.“사모님, 괜찮으세요?”심미연은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임혜자는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사모님, 정말 괜찮겠어요?”심미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그런데 지금 잠깐 나갔다 올게요. 만약 내가 돌아오기 전에 지한 씨가 먼저 오면, 거짓말 좀 해 주세요.”임혜자는 이유를 묻지 않았지만, 속으로 무슨 일인지 몹시 궁금했다.임혜자와 작별 인사를 한 후, 심미연은 서둘러 신하린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하린은 전화를 곧바로 받았다.“미연아,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급한 일이야?”보통, 그들은 늦은 시간에 통화하지 않았다.그러니 분명 심미연에게 무슨 일이 있다고 짐작했던 것이다.“하린아, 빨리 나 좀 데리러 와 줘. 방금 너한테 위치 보냈어!”심미연은 다급한 목소리로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배가 너무 아파. 빨리 병원에 가야 해. 안 그러면, 아기가 위험할지도 몰라!”아이가 이런 때에 오기로 했다면 그건 인연이 있다는 뜻일 테니, 그녀는 당연히 아이를 잘 보살펴야 했다.“강지한은 집에 없어? 이렇게 늦었는데 아직 안 들어왔어?”신하린은 연달아 물었다.심미연은 매정하게 떠나버린 강지한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이 씁쓸해졌다.“방금 온지유한테서 전화가 와서 가버렸어.”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신하린이 수화기 너머로 욕을 퍼붓는 소리가 들렸다.“개자식, 진짜 머리가 돌았나! 자기 마누
‘지한이 녀석, 어떻게 엄마보다 남을 더 챙겨!’하지만 그녀는 온지유에게 이 말을 할 수 없었다.“어머니, 지한 씨가 진짜 그렇게 말했어요?”온지유는 눈이 번쩍 뜨이며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안 돼! 지한 씨는 심미연을 사랑할 리가 없어! 설령 사랑한다고 해도, 난 두 사람이 함께하게 둘 수 없어. 축복해 준다고? 절대 못 해!’“어. 그렇게 말했어! 자, 이제 시간이 늦었으니 넌 어서 자!”문소영은 온지유와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온지유, 이 여자는 강지한에게 너무 관심이 많은 것 같아. 뭔가 이상해! 설마...’문소영은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그만두었다.온지유는 전화를 끊자마자 화를 냈다.이때 간병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하마터면 그녀가 던진 재떨이에 맞을 뻔했다. 간병인은 혼비백산하여 벌벌 떨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온지유의 더러운 성질머리에 돌보던 사람들은 거의 다 떠나고 없었다.다만 그녀는 아버지 병원비 때문에 온지유가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참고 견디고 있었다.그녀가 한창 눈물을 훔치고 있는데 남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온지유 씨 주무세요?”“온지유 씨는... 지금 화내고 계세요!”간병인은 말을 마치고 어깨를 움츠렸다. “방금 던진 재떨이에 하마터면 이마에 맞을 뻔했어요!”그녀는 고자질하고 있었다.강지한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쉬러 가세요. 다른 사람이 올 거예요.”그의 기억 속 온지유는 상냥한 여자였다. 말투도 나긋나긋하고 큰 소리로 말하는 법이 없었다.그런 그녀가 화를 낸다고?간병인이 헛소리하는 게 틀림없다.“네!”간병인은 황급히 자리를 떴다.온지유의 간병인은 여러 명이라 교대로 돌봤는데, 금방 다른 간병인이 왔다.강지한을 보자마자 간병인은 인사했다.“오셨어요.”간병인은 강지한과 온지유가 약혼한 사이라고 생각했고 그의 비싼 옷차림을 보고 부자인 것을 눈치채고는 아주 공손하게 대했다.강지한은 간병인을 흘끗 보고 병실 문을 열었다.온지유는
바로 그때, 신하린은 갑자기 잠에서 깼다. 살기 가득한 눈과 마주치자 순간 정신이 번쩍 든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사람 살려!”그녀가 갑자기 깨어날 줄 몰랐던 남자는 입을 막으려고 달려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상황을 판단하고 재빨리 문밖으로 도망쳤다.너무 급한 나머지, 주사기와 바늘이 그의 몸에서 떨어졌다.바닥에 떨어진 주사기와 바늘을 본 신하린은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심미연의 손에 꽂힌 바늘을 뽑았다.방금 깨어난 심미연은 그녀의 행동을 보고 어리둥절했다.“하린아, 무슨 일이야?”신하린은 주사기와 바늘을 주워들고 심미연에게 말했다.“방금 누가 들어와서 네 링거병에 뭔가를 주입했어. 어쨌든 링거는 빼자. 이 안에 든 걸 검사해 봐야겠어.”신하린은 어려서부터 부잣집에서 벌어지는 온갖 추악한 일들을 많이 봐 왔고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죽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쓰는 사람들도 보았다.비록 심미연의 임신 사실은 외부에 비밀로 하고 있었지만 다른 누군가 알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심미연은 순간 잠이 확 달아나 벌떡 일어나 앉으며 물었다.“방금 그 사람, 어떻게 생겼는지 봤어?”그녀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온지유였고 오직 온지유만이 이처럼 악독한 짓을 할 수 있었다.“흰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못 봤고 눈만 봤어.”신하린은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심미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하린아. 뭔가 이상해. 링거병이랑 주사기, 바늘 잘 챙겨 놔. 내가 아는 사람한테 검사를 맡겨야겠어.”신하린은 알겠다고 대답하고 링거병과 주사기, 바늘을 봉투에 담아 보관했다.바로 그때, 의료진이 들어왔다.신하린은 간호사에게 서둘러 말했다.“손등에서 피가 나니까 지혈 좀 해 주세요.”방금 바늘을 너무 급하게 뽑다 보니 손등에서 피가 났다.심미연은 의사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혈액 검사를 해 주세요.”만약 그 사람이 링거병에 낙태약을 넣었다면, 방금
박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고 신하린은 그의 뒤를 따라 병실을 나섰다.그런데 이때 박유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신하린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거의 부딪힐 뻔했지만 간신히 걸음을 멈추고 숨을 들이쉬며 빠르게 감정을 가라앉힌 후 그를 쳐다보았다.“박유진 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오늘 밤 일은 제가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연이 곁에 제 사람을 붙여 놨으니 무슨 일이 생기면 소리 지르세요. 바로 도와줄 겁니다.”박유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오늘 심미연이 무사해서 다행이지, 만약 무슨 일이라도 있었으면 자책감에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신하린은 순간 모든 것을 이해했다.아마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을 시켜 심미연을 몰래 보호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그렇지 않고서야 오늘 이렇게 빨리 여기에 나타날 수 있었겠는가.하지만 이 사실을 심미연이 알게 된다면 그녀는 좋아하지 않을 게 뻔했다.“미연은 2년 동안 변호사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만큼 원한도 많이 샀어요. 그녀를 노리는 사람이 많으니 항상 조심하라고 전해주세요.”박유진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일 때문에 척을 진 사람들 외에도 강 씨 가문의 큰 사모님 역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네, 전해줄게요.”신하린의 얼굴도 심각해졌다.“다만 미연의 동서랑 시어머니도 문제예요. 그들도 미연을 해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나마 박유진 씨가 사람을 붙여주신 덕분에 마음이 좀 놓이네요!”“그럼, 병실로 돌아가서 미연의 곁에 있어 주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저에게 바로 전화하시고요. 시 정부의 조경 설계 건은 제가 방법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이달 말쯤 결과가 나올 것 같으니, 그때 알려드릴게요.”박유진은 말을 마치고 떠났다.신하린은 그의 뒷모습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후 주변을 살폈다.하지만 몰래 심미연을 보호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미르 파크, 침실에서.강지한은 소파에 앉아 있었고 그의
“안녕하세요. 고객님이 전화하신 번호는 전원이 꺼져 있어...”수화기 너머로 기계적인 안내 음성이 들려오자 강지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심미연 이 여자는 전화를 꺼놓으면 자기를 못 찾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잠시 후, 강지한은 드레스 룸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 휴대폰을 들고 침실을 나섰다.막 잠자리에 들려던 참에 전화를 받은 성무진은 하는 수 없이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차에 오른 그는 일부러 심미연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여전히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 음성만 들려왔다.그의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왠지 오늘 밤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병실 안에서 심미연의 손에는 수액 성분 분석 결과지가 들려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고 차가운 눈빛은 강지한과 똑 닮아 있었다.역시 부부는 부부였다.신하린은 분을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욕을 퍼부었다.“대체 어떤 파렴치한 놈이 뒤에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너무 비열하잖아!”심미연은 숨을 들이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일단 소문내지 마. 내가 사람을 시켜서 알아볼게.”만약 온지유의 짓이라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신하린은 그녀를 달랬다.“천만다행이야. 빨리 알아채서 바늘을 뽑았으니.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 걱정하지 마, 이 일은 절대 입 밖에 안 낼게.”심미연은 배를 쓰다듬으며 끔찍한 생각에 몸서리쳤다.빨리 발견해서 정말 다행이었다.조금만 늦었더라면 지금쯤 그녀는 수술대에 누워 있었을지도 모른다.“미연아, 얼른 자. 시간도 늦었어.”신하린은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새벽 1시 반이었다“임산부는 밤샘하면 태아에게 안 좋아.”심미연은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강지한이 전에 했던 말이 생각나 급히 덧붙였다.“맞다, 지한 씨가 네 작업실은 더 이상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어.”신하린은 잠시 놀라며 물었다.“어떻게 알았어?”사실 그녀도 이 일에 대해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냈는데 그쪽에서는 경성의 어떤 거물이 직접 명령을 내렸다며 어쩔
퉁퉁 부은 팔을 보며 온지유는 기절할 뻔했다.‘뱀에 물린 건가? 설마 죽는 건 아니겠지?’온지유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재빨리 강지한에게 전화를 걸었다.한 번, 두 번, 세 번...열 번 넘게 전화를 걸었다.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잠들었다가는 영영 깨어나지 못할까 봐 온지유는 계속해서 전화를 걸며 속으로 외쳤다. ‘강지한, 제발 전화 좀 받아! 더 이상 안 받으면 나 죽는다고!’마침내, 수화기 너머로 남자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인데 그래!”“지한 씨, 사람들이 날 때리고 황야에 버렸어. 방금 손이 뭔가에 물렸는지 모르겠는데, 팔 전체가 부어올랐어. 빨리 와서 날 구해줘!”말이 끝날 무렵, 온지유는 혀가 마비된 듯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전화기 너머에서 2초간 침묵이 흐른 후,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위치 보내. 지금 바로 데리러 갈게!”온지유는 서둘러 그의 카톡을 찾아 위치를 보냈다.위치를 보낸 후, 그녀는 눈앞이 캄캄해지며 뒤로 쓰러졌다.강지한은 전화를 끊자마자 성무진에게 차를 돌리라고 지시하고 위치를 전송했다.성무진은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어보고는 백미러를 슬쩍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교외인데, 정말 가시려고요?”사실 그는 온지유를 믿지 않았다.혹시 함정일지도 모르니 이렇게 가면 위험할 수 있었다.“출발해!”강지한은 차갑게 말했다.성무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액셀을 밟아 차를 출발시켰다.가는 내내 강지한은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성무진은 그의 속마음을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온지유를 걱정한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때때로 그는 대표님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사모님은 미모와 능력을 겸비하고 회장님께도 잘하지만, 왜 좋아하지 않는 걸까?반대로 온지유는 내세울 것이라고는 가식뿐이고 마음씨도 고약하며 사모님처럼 능력도 없는데 도대체 뭐가 마음에 들어서 좋아하는 건지 말이다.물론, 이 모든 것은 대표님의 개인적인 일이니 그가 왈가왈부할 건 아니었다.강지한이 도착했을 때, 온지유는 이미
병실에는 싸움이나 몸부림의 흔적이 없었다. 온지유가 아는 사람이라서 순순히 따라갔거나 전문 경호원 같은 사람들이 재빠르게 제압했을 가능성이 높았다.강지한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같은 시각, 다른 병실에서는 신하린이 안절부절못하며 휴대폰을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왜 아직 연락이 없지! 설마 들킨 건가?'바로 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신하린은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조금 후에 계약금을 돌려드리겠습니다.”“그녀가 어디 있는지 말씀드렸잖아요? 근데 왜 못 찾았다는 거죠?”“말씀하신 병실에 갔지만 아무도 없어서 그냥 나왔습니다.”“아, 알겠습니다.”신하린은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설마 온지유가 퇴원이라도 한 건가?'상대방은 전화를 끊고 바로 돈을 돌려보냈다.신하린은 휴대폰에 찍힌 돈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그녀는 온지유를 혼내주려고 사람을 고용했는데, 상대방은 온지유를 찾지도 못했다.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하지만 신하린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휴대폰을 내려놓고 소파에 누워 잠들었다.눈을 떠보니 다음 날 아침이었다.눈을 뜨자마자 그녀는 심미연의 미소 띤 눈과 마주쳤다.“일어났어?”심미연이 부드럽게 물었다.“응, 일어났어. 배고파? 뭐 먹고 싶어?”신하린은 앉아서 옷매무새를 정리했다.“오늘 재판이 있어서 지금 로펌에 가봐야 해.”신하린은 그제야 심미연이 제복을 입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늘씬한 몸매는 임산부처럼 안 보였다.“의사가 말하길, 약간의 출혈이 있으니 며칠 동안 입원해서 관찰해야 한대. 법정에 가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려고 그래?”신하린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지금은 아기가 최우선이야! 일 중독처럼 일만 하면 안 된다고!”심미연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오늘은 꼭 가야 해!”그녀는 의뢰인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했다.“일단 누워 있어. 내가 의사한테 가서 물어볼게.”신하린은 일어나 급히 밖으로 나갔다.심미연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
온지유는 그의 가슴에 귀를 대고 그의 심장박동을 들으며 순간 마음 한편에서 감동이 살짝 밀려왔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만약 그녀가 강지한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육현성이 이런 말을 한 순간 그녀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다! 온지유의 침묵은 육현성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그는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조금의 희망을 품고 있었고 어쩌면 그녀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자신과 함께 하기로 결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결국 그것은 그의 착각일 뿐이었다. “현성 오빠, 저는...” 온지유는 육현성이 괴로워하는 것을 느꼈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말하지 않아도 돼요! 나도 알아요. 지유 씨, 자기 자신을 강요하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살아요.” 결과를 알게 된 육현성은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앞으로 자주 만날 수는 없을 거예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면 당연히 그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 “현성 오빠, 나랑 이제 아예 연락고 안 해줄 건가요?” “지유 씨, 미안해요. 그냥 내가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요즘 육씨 가문이 엉망진창이라 육현성도 정신없이 바빴기에 온지유를 위로할 여유가 없었다. 온지유는 입술을 꽉 깨물며 갑자기 눈가가 붉어졌고 이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알겠어요!” 그녀는 육현성 같은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육현성이 떠나자마자 강지한이 도착했다. 온지유의 붉어진 눈을 보고 또 혼자서 온갖 상상을 하며 울었다고 생각했다. “유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눈에 안 좋다고 울지 말랬잖아.” 강지한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달래야 했다. 온지유는 육현성의 다정함이 떠오르며 울음을 참지 못하고 더 크게 오열하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지고 강씨 가문의 저택에서. 심미연은 단정한 원피스를
‘차라리 돌아와서 직접 아는 게 낫겠어.’ “성 비서, 말해! 도대체 무슨 일이야?”강지한의 목소리가 예리해졌다. 성무진은 한숨을 내쉬며 결국 알게 된 사실을 모두 전했다. 강지한의 심미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잠시 멈칫했다. 그날 전화로 심미연에게 온지유에게 사과하라고 했을 때 그녀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했었지만 그때 그는 뭐라고 말했지? 그는 심미연이 거짓말을 한다고 했었다. 그 후 며칠 동안 심미연은 전화하지 않았고 그는 그저 그녀가 사과하고 싶지 않아서 그를 피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심미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토록 큰 일이 있었는데 그녀는 그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아마 슬픔에 잠겨 있었겠지.’‘그래서 내게 그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거야.’ “대표님.” 성무진은 전화기 속에 아무 말도 들리지 않자 조심스럽게 부르며 물었다. “알았어. 그럼 여기까지 하자.” 강지한은 전화를 끊고 창밖의 차들이 가득한 거리를 바라보며 심미연이 혼자서 외할머니의 영정 앞에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 모습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 그는 남편이었지만 아무것도 몰랐으며 이상하게 코끝이 찡해졌다. 그때 할아버지의 전화를 다시 떠올리니 아마 할아버지도 심미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화가 너무 나서 전화를 끊어버렸던 거다. ‘할아버지는 나한테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강지한은 창가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그러다 온지유의 전화가 다시 울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 “또 무슨 일이야?”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한 씨, 나 무서워.”온지유는 반쯤 진심이고 반쯤 아닌 듯 말하였다.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강지한은 신속하게 응답했다. “지한 씨, 내가 일 방해한 건 아니야?” 온지유는 조심스럽게
생각을 정리하던 강지한은 결국 그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전화기에서 울려 퍼지는 건 차가운 신호음뿐이었다. 강지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바쁜 신호음만이 들려왔다. 강지한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심미연이라는 여자는 진짜 단 한 번도 그를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다. 잘못한 것도 그렇게 당당할 수가 있다니. 그녀가 그의 번호를 차단했다면 그 역시 그녀를 찾을 필요 없이 돌아가서 처리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강지한은 화면을 확인하고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 여자가 또 할아버지에게 고자질이라도 한 건가?’ ‘이젠 할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그를 혼내려는 걸까?’ 지난번에 매를 맞은 뒤로 최근 너무 바빠서 상처도 신경 못 썼더니 이제 염증이 나서 며칠째 고통스러웠다. 한참 후 강지한은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강지한! 너 요즘 어디에 가 있었냐? 왜 전화는 한 번도 받지 않는 거냐?”할아버지의 목소리는 거의 울부짖는 듯 분노가 그대로 드러났다. “저 요즘 진성에 출장 갔었어요. 핸드폰을 계속 켜놓고 있었는데 왜 안 받았겠어요?” 강지한은 늘 그렇듯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고 그는 정말로 전화를 꺼본 적이 없었다. “그럼 그쪽에 계속 있어! 평생 돌아오지 마!” 강준형은 화가 나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출장을 갔을 뿐인데 전화가 계속 안 된다니. 그게 단순한 우연일까?강지한처럼 예리한 사람이 왜 이 정도는 생각하지 못한 걸까? 강지한은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생각하고 있을 때 온지유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자 그의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무슨 일이야?” “지한 씨, 지금 어디야? 나 혼자 병실에 있으니까 너무 무서워. 와서 좀 같이 있어 줄래?” 온지유의 목소리엔 떨림이 섞여 있었고 그 공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알았어. 금
“그럼 어머니가 계획한 대로 하세요.” 이진영은 어머니와 대립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의 모든 결정은 이씨 가문을 위해서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말한 대로 그들은 이씨 가문의 명예를 누렸으니 개인적인 행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선택할 수 없었던 일이니까. “넌 먼저 한유나 씨와 연락하고 다시 전화해 줘. 저녁 식사는 취소할게.” “알았어요!” 이진영은 전화를 끊고 담배 한 개비를 피웠다. 그 연기 속에는 그 여자의 눈부시고 매혹적인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담배 한 개비를 마저 피우고 나자 여자의 얼굴도 사라졌다. 그는 살짝 웃으며 비서에게 한유나의 번호를 찾게 한 후 바로 전화를 걸었다. 곧이어 전화기에서 여자의 자만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당신의 소개팅 상대 이진영이에요.” “무슨 일이죠?”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냉담했다. 이진영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무슨 태도지?’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건가?’ “별일 없으면 그냥 끊을게요. 바빠요.” “소개팅 상대로 만나려면 점심에 얼굴 한 번 봐야죠. 어디죠? 데리러 갈게요.” 이진영의 말투는 여전히 평온했고 아무 감정이 없었다. “연구소로 와요.” 그녀는 빠르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진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생각했다. ‘역시 대가문의 따님답게 감히 나를 명령하네.’ “제가 일이 있어서 그럼 이만.” 그녀는 말을 끝내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바쁜 신호음이 들려오자 이진영은 코웃음을 치며 미소를 흘렸다. ‘잘난 척은 끝내주네.’ 그때 강지한의 전화가 걸려 왔고 이진영은 잠시 응급실에 있는 심미연을 떠올리며 망설인 뒤 전화를 받았다. “구도심 사람들 다 동의했어. 지금 와서 계약서에 사인해.” 강지한은 매우 지친 목소리였다. “내일은 안 돼?”그는 오늘 일정이 꽉 찬 상태였다. “오늘 밤에는 경성으로 돌아가야 해!” 강지한은 무의식
이진영은 신하린의 얼굴이 금세 빨개지는 것을 보고 살짝 눈을 좁혔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신하린,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이 여자가 혹시 자기가 여기서 뭔가 하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 이 병원이 자기가 소유하는 곳이라 해도 그런 식으로 무모하게 행동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하는 건 비밀스러움이 주는 그 자극적인 느낌이 있어 확실히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오늘 밤 당신 집에 가야 되나요? 아니면 우리 집으로 올래요?” 신하린은 이제 거짓말도 입을 열자마자 술술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사실 남자도 그녀가 진심을 말하지 않기를 원한다고 생각했다. 진짜 속마음을 말하면 상처가 될 테니까. “내가 네 집 하나 샀어. 일이 끝나면 같이 가서 보여줄게.”이진영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고 목소리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내가 사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신하린은 그가 주는 걸 원하지 않았고 그에게 뭔가를 받는다는 건 자존심이 상할 뿐이었다. “너 그곳 너무 좁아. 할 때 별로야.” 이진영은 손을 뻗어 신하린을 품으로 끌어안으며 그녀의 매혹적인 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비서한테 큰 소파랑 넓은 침대로 바꾸라고 했으니까 오늘 밤 한 번 써보자.” 조금 조롱이 섞인 말투였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은근히 기대가 치솟았다. 신하린의 얼굴은 금세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 남자가 정말 끝까지! 하루 종일 그런 생각만 하는 거냐고.’ “너 밥 해줄 거라고 말하지 않았어? 거기는 부엌도 넓고 기계도 다 새것으로 준비됐어...” 마지막 말은 그녀의 귀에 가까이 다가오며 속삭이듯 말했고 신하린의 얼굴을 빨갛게 물들었고 귀까지 붉어졌다. ‘이 남자는 정말 너무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바로 그때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고 신하린을 잠시나마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이진영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보며 번호를 확인
신하린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박유진에게 말했다. “잠깐 다녀올게요. 먼저 여기서 미연이 기다리고 있어요.” 이진영은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라 조금이라도 더 기다리게 하면 화를 낼 게 분명했다. 박유진은 그저 응답했을 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일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신하린은 그를 그윽하게 한 번 쳐다보고 그제야 돌아서서 떠났다. 박유진과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가능성이 없었다! 사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을 접고 있었다.안전 통로에서 이진영은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물고 있었다. 연기가 퍼져 나가면서 그의 잘생긴 얼굴이 그 속에서 아련하게 비쳤다. 신하린은 문 앞에서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얼굴은 참으로 잘생겼다. 그때 남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하며 인상을 조금 찌푸리며 말했다. “왜 안 와? 내가 널 잡아먹니?” 신하린은 시선을 떼고 한 발짝씩 그에게 다가갔고 마음속은 불안하고 떨렸다. 남자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나랑 있는 게 그렇게 싫은 건가?’ 신하린은 그의 앞에 다가가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미연이가 쓰러져서 박유진 씨와 함께 병원에 데려왔어요.” 이진영은 자연스레 그날 밤 강씨 가문에서 봤던 그 여자가 떠올랐다. 정말 독특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분위기 또한 차분하고 목소리는 매우 부드럽고 온화했다. 경성에서 그녀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는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토록 아름다웠음에도 강지한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마 그런 남자들은 결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는 걸지도 모른다.“미연이의 외할머니가 사흘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동안 혼자서 지키며 사흘을 보냈고 오늘 아침에 외할머니 장례식을 마친 후 쓰러졌어요.” 박유진과 자신 사이에 무언가 있다고 오해받길 원치 않았기에 그녀는 스스로 설명했다. 이진영은 눈을
신하린은 깜짝 놀라 손을 급히 떼었고 다시 돌아섰을 때 남자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다. 최근 며칠 동안 그의 전화를 피했던 신하린은 마음속에서 불안이 밀려왔다. 여기서 이 남자가 자신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 박유진도 있는데 말이다. 이진영은 신하린의 창백한 얼굴을 보자 속에서 폭발할 듯한 분노가 일렀다. ‘이렇게 겁을 먹은 정도로 내가 무서운 거야?’ 신하린은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이 곧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급히 그 앞에 다가가 애교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 “여긴 내 병원이야. 점검하러 왔는데 무슨 문제 있어?” 남자의 말투는 거칠었고 이미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신하린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그를 끌어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녁에 제가 직접 요리할게요. 함께 와서 먹을래요?” 심미연의 임신 사실이 절대 누설되지 않도록 이진영이 이미 말해둔 상태여서 신하린은 심미연을 이곳으로 데려왔지만 여기서 이진영을 만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정말 예상 밖이었다. “나한테는 수석 셰프가 요리해 주는데 넌 셰프 자격증은 있어? 나한테 밥 해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이진영은 차갑게 웃으며 날카로운 말투로 말했다. 며칠 동안 이 여자는 전화도 받지 않았고 문자도 답장하지 않았으며 영상통화는 아예 무시했었다. 그는 매우 화가 난 상태였다. 이제 와서 한 끼 식사로 그를 달래려고 한다니 그건 어림도 없었다. “그럼 됐어요!” 신하린은 약간 당황한 채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이 남자가 살짝 꼬리를 내리면 풀릴 줄 알았지만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 셰프 수준은 아니지만 요리를 꽤 잘하는 그녀였고 남자의 말은 그녀를 정말 난처하게 했다. 박유진은 이진영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그와 신하린 사이의 관계가 그리 단순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심미연은 알고 있을까?’ ‘모르고 있다면 알려야 할까?’
그는 그냥 강준형에게 더 이상 강지한의 일을 강제로 강요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었다. 강지한 같은 사람은 절대로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강준형은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미연이가 지난 3년 동안 겪은 그 모든 불공정한 대우는 다 내 잘못이야.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걸 인정하기가 싫어서 계속 모른 척하고 싶었어. 하지만 이제는 알겠어! 그만둘 거야. 미연이가 이혼을 원한다면 그건 그 자식이 감당할 문제야.” 3일 후 양경자의 장례식이 있었다. 하늘에는 잔잔한 비가 내리고 있었고 심미연은 검은 옷을 입고 우산을 쥔 채 묘비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차분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아 보였다. 마치 외할머니가 영원히 떠난 것이 아니라 잠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것처럼 말이다. 신하린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녀의 옆에 서 있었다. 3일 동안 심미연은 잠을 2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았다. 사실 심미연이 잠을 자지 않은 것보다 이 3일 동안 한 번도 울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고 지나치게 조용했던 사실이 신하린을 더 두렵게 했다. 신하린은 심미연이 극단적인 생각이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 박유진이 다가와 신하린과 짧게 눈빛을 주고받은 뒤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연아, 외할머니는 이제 편히 잠드셨어. 집에 데려다줄게.” 이 3일 동안 그는 심미연에게 휴식을 취하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그녀는 전혀 듣지 않았고 그녀가 하루하루 지쳐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외할머니는 편히 안장되었으니 그녀가 잘 수 있도록 집으로 데려가야 했다. 심미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오빠랑 하린이는 먼저 가. 난 할머니랑 좀 더 있다가 갈게.” “너 3일 내내 잠도 자지 않았잖아. 더 버티면 몸이 망가져!” 신하린은 목소리가 떨렸고 눈가는 이미 붉어져 있었다. 이 3일 동안 그녀는 심미연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신하린은 문 쪽을 바라보다가 은발을 휘날리며 걸어오는 강준형을 보고 급히 심미연을 불렀다. “미연아, 네 할아버지 오셨어.”심미연은 잠시 멈칫하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강준형은 지팡이를 짚고 그녀 쪽으로 걸어왔다.“미연아, 이렇게 큰 일이 있는데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니!” 강준형은 그녀의 너무 지친 모습에 마음이 몹시 아팠다. ‘정말 바보 같은 애구나.’ ‘어떻게 혼자서 이 모든 걸 짊어지려고 했을까.’ 심미연은 일어나려 했지만 무릎이 너무 아파 일어설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은 채 말했다. “할아버지, 어떻게 오셨어요?”그녀는 강지한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 강씨 가문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강지한에게 외할머니의 죽음을 이용해 책임을 피하려는 교활한 사람일 테니 그 이미지대로 남기로 했다. “하루 종일 연락도 안 되고 전화는 꺼져 있더라. 걱정돼서 사람을 시켜 확인해 봤더니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됐어. 미연아, 나는 네가 강지한 그 자식에게 마음이 떠난 걸 알아. 그런데 그놈은 그놈이고 나는 나야. 이런 일을 나한테까지 숨기지 말았어야지.”강준형은 빈소를 잠시 바라보며 심미연이 혼자 바쁘게 모든 걸 처리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다. ‘결국 이 모든 게 강지한 그 자식 때문이야!’ 강지한을 생각하니 강준형의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심미연도 연락이 안 됐고 강지한도 연락이 안 되었다. 고의로 잠적을 한 건지 뭔 일이라도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아내면 반드시 그 자식에게 따지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바빳어요. 핸드폰도 꺼져버려서 잊고 있었어요.”심미연의 목소리는 피곤함에 찌든 느낌이었다. “할아버지, 기사님이 데려다주신 건가요?” 그녀는 강지한에게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강준형에게 진짜 생각을 말할 리 없었다. 강준형은 심미연의 눈에 짙게 퍼져 있는 혈관과 창백한 얼굴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내가 사람을 데려왔어. 나머지 일은 그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