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고 신하린은 그의 뒤를 따라 병실을 나섰다.그런데 이때 박유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신하린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거의 부딪힐 뻔했지만 간신히 걸음을 멈추고 숨을 들이쉬며 빠르게 감정을 가라앉힌 후 그를 쳐다보았다.“박유진 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오늘 밤 일은 제가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연이 곁에 제 사람을 붙여 놨으니 무슨 일이 생기면 소리 지르세요. 바로 도와줄 겁니다.”박유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오늘 심미연이 무사해서 다행이지, 만약 무슨 일이라도 있었으면 자책감에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신하린은 순간 모든 것을 이해했다.아마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을 시켜 심미연을 몰래 보호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그렇지 않고서야 오늘 이렇게 빨리 여기에 나타날 수 있었겠는가.하지만 이 사실을 심미연이 알게 된다면 그녀는 좋아하지 않을 게 뻔했다.“미연은 2년 동안 변호사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만큼 원한도 많이 샀어요. 그녀를 노리는 사람이 많으니 항상 조심하라고 전해주세요.”박유진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일 때문에 척을 진 사람들 외에도 강 씨 가문의 큰 사모님 역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네, 전해줄게요.”신하린의 얼굴도 심각해졌다.“다만 미연의 동서랑 시어머니도 문제예요. 그들도 미연을 해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나마 박유진 씨가 사람을 붙여주신 덕분에 마음이 좀 놓이네요!”“그럼, 병실로 돌아가서 미연의 곁에 있어 주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저에게 바로 전화하시고요. 시 정부의 조경 설계 건은 제가 방법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이달 말쯤 결과가 나올 것 같으니, 그때 알려드릴게요.”박유진은 말을 마치고 떠났다.신하린은 그의 뒷모습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후 주변을 살폈다.하지만 몰래 심미연을 보호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미르 파크, 침실에서.강지한은 소파에 앉아 있었고 그의
“안녕하세요. 고객님이 전화하신 번호는 전원이 꺼져 있어...”수화기 너머로 기계적인 안내 음성이 들려오자 강지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심미연 이 여자는 전화를 꺼놓으면 자기를 못 찾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잠시 후, 강지한은 드레스 룸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 휴대폰을 들고 침실을 나섰다.막 잠자리에 들려던 참에 전화를 받은 성무진은 하는 수 없이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차에 오른 그는 일부러 심미연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여전히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 음성만 들려왔다.그의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왠지 오늘 밤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병실 안에서 심미연의 손에는 수액 성분 분석 결과지가 들려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고 차가운 눈빛은 강지한과 똑 닮아 있었다.역시 부부는 부부였다.신하린은 분을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욕을 퍼부었다.“대체 어떤 파렴치한 놈이 뒤에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너무 비열하잖아!”심미연은 숨을 들이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일단 소문내지 마. 내가 사람을 시켜서 알아볼게.”만약 온지유의 짓이라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신하린은 그녀를 달랬다.“천만다행이야. 빨리 알아채서 바늘을 뽑았으니.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 걱정하지 마, 이 일은 절대 입 밖에 안 낼게.”심미연은 배를 쓰다듬으며 끔찍한 생각에 몸서리쳤다.빨리 발견해서 정말 다행이었다.조금만 늦었더라면 지금쯤 그녀는 수술대에 누워 있었을지도 모른다.“미연아, 얼른 자. 시간도 늦었어.”신하린은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새벽 1시 반이었다“임산부는 밤샘하면 태아에게 안 좋아.”심미연은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강지한이 전에 했던 말이 생각나 급히 덧붙였다.“맞다, 지한 씨가 네 작업실은 더 이상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어.”신하린은 잠시 놀라며 물었다.“어떻게 알았어?”사실 그녀도 이 일에 대해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냈는데 그쪽에서는 경성의 어떤 거물이 직접 명령을 내렸다며 어쩔
퉁퉁 부은 팔을 보며 온지유는 기절할 뻔했다.‘뱀에 물린 건가? 설마 죽는 건 아니겠지?’온지유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재빨리 강지한에게 전화를 걸었다.한 번, 두 번, 세 번...열 번 넘게 전화를 걸었다.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잠들었다가는 영영 깨어나지 못할까 봐 온지유는 계속해서 전화를 걸며 속으로 외쳤다. ‘강지한, 제발 전화 좀 받아! 더 이상 안 받으면 나 죽는다고!’마침내, 수화기 너머로 남자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인데 그래!”“지한 씨, 사람들이 날 때리고 황야에 버렸어. 방금 손이 뭔가에 물렸는지 모르겠는데, 팔 전체가 부어올랐어. 빨리 와서 날 구해줘!”말이 끝날 무렵, 온지유는 혀가 마비된 듯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전화기 너머에서 2초간 침묵이 흐른 후,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위치 보내. 지금 바로 데리러 갈게!”온지유는 서둘러 그의 카톡을 찾아 위치를 보냈다.위치를 보낸 후, 그녀는 눈앞이 캄캄해지며 뒤로 쓰러졌다.강지한은 전화를 끊자마자 성무진에게 차를 돌리라고 지시하고 위치를 전송했다.성무진은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어보고는 백미러를 슬쩍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교외인데, 정말 가시려고요?”사실 그는 온지유를 믿지 않았다.혹시 함정일지도 모르니 이렇게 가면 위험할 수 있었다.“출발해!”강지한은 차갑게 말했다.성무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액셀을 밟아 차를 출발시켰다.가는 내내 강지한은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성무진은 그의 속마음을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온지유를 걱정한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때때로 그는 대표님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사모님은 미모와 능력을 겸비하고 회장님께도 잘하지만, 왜 좋아하지 않는 걸까?반대로 온지유는 내세울 것이라고는 가식뿐이고 마음씨도 고약하며 사모님처럼 능력도 없는데 도대체 뭐가 마음에 들어서 좋아하는 건지 말이다.물론, 이 모든 것은 대표님의 개인적인 일이니 그가 왈가왈부할 건 아니었다.강지한이 도착했을 때, 온지유는 이미
병실에는 싸움이나 몸부림의 흔적이 없었다. 온지유가 아는 사람이라서 순순히 따라갔거나 전문 경호원 같은 사람들이 재빠르게 제압했을 가능성이 높았다.강지한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같은 시각, 다른 병실에서는 신하린이 안절부절못하며 휴대폰을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왜 아직 연락이 없지! 설마 들킨 건가?'바로 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신하린은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조금 후에 계약금을 돌려드리겠습니다.”“그녀가 어디 있는지 말씀드렸잖아요? 근데 왜 못 찾았다는 거죠?”“말씀하신 병실에 갔지만 아무도 없어서 그냥 나왔습니다.”“아, 알겠습니다.”신하린은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설마 온지유가 퇴원이라도 한 건가?'상대방은 전화를 끊고 바로 돈을 돌려보냈다.신하린은 휴대폰에 찍힌 돈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그녀는 온지유를 혼내주려고 사람을 고용했는데, 상대방은 온지유를 찾지도 못했다.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하지만 신하린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휴대폰을 내려놓고 소파에 누워 잠들었다.눈을 떠보니 다음 날 아침이었다.눈을 뜨자마자 그녀는 심미연의 미소 띤 눈과 마주쳤다.“일어났어?”심미연이 부드럽게 물었다.“응, 일어났어. 배고파? 뭐 먹고 싶어?”신하린은 앉아서 옷매무새를 정리했다.“오늘 재판이 있어서 지금 로펌에 가봐야 해.”신하린은 그제야 심미연이 제복을 입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늘씬한 몸매는 임산부처럼 안 보였다.“의사가 말하길, 약간의 출혈이 있으니 며칠 동안 입원해서 관찰해야 한대. 법정에 가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려고 그래?”신하린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지금은 아기가 최우선이야! 일 중독처럼 일만 하면 안 된다고!”심미연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오늘은 꼭 가야 해!”그녀는 의뢰인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했다.“일단 누워 있어. 내가 의사한테 가서 물어볼게.”신하린은 일어나 급히 밖으로 나갔다.심미연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
남자는 역광 때문에 얼굴 표정을 분간할 수 없었지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는 느낄 수 있었다.심미연은 강지한이 갑자기 나타난 게 예상 밖이라 놀라서 멍해졌다.신하린은 본능적으로 그녀의 손을 꼭 쥐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미연아, 너 먼저 가. 내가 저 사람이랑 이야기해볼게!”심미연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하린아, 너 먼저 가. 걱정하지 말고.”강지한이 신하린의 작업실을 봐주는 조건으로 그녀는 자신의 몸을 희생했다. 이렇게 큰 대가를 치렀는데, 신하린의 작업실에 무슨 일이 생기는 꼴은 볼 수 없었다.신하린은 심미연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저었다.자신이 가고나면 심미연이 괴롭힘당할까 봐 걱정됐던 것이다.그녀는 여기 남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심미연은 갑자기 신하린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주차장에 가서 유진 오빠한테 먼저 가라고 전해줘. 내가 시간이 되면 연락드린다고 해.”강지한이 갑자기 나타난 이상 짧게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심미연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박유진을 오래 기다리게 할 순 없었다.신하린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눈이 빨개져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안 가! 너랑 같이 있을 거야!”심미연은 힘껏 그녀를 밀었다.“빨리 가!”신하린이 걱정하고 있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두 사람이 같이 엮일 필요는 없었다.한 사람이라도 갈 수 있으면 가야 했다.“생이별하는 것처럼 구네. 내가 너희 죽이러 온 줄 알겠어.”남자는 차가운 입술을 살짝 열며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심미연은 신하린을 돌아보며 말했다.“빨리 가!”신하린은 어쩔 수 없이 눈물을 글썽이며 병실을 나갔다.그녀는 늘 심미연에게 짐만 되는 것 같았다.정말 너무 쓸모없었다.병실을 나서며 신하린은 뒤를 돌아보고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당신의 애인이 돼줄게요.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그녀는 말하며 휴대폰을 꽉 쥐었다.“좋아,
“미연아, 왜 또 토해? 임신했어?”강지한의 날카로운 눈빛이 심미연의 얼굴에 꽂혔다.심미연은 애써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한테 온지유의 냄새가 나서 그래. 속이 메스꺼워.”직접 보진 못했어도 강지한이 온지유와 함께 있었다는 건 뻔했다.그러니 하룻밤 사이에 그녀 냄새가 배는 것도 당연지사 아니겠는가.강지한은 비웃듯 말했다.“네가 뭔 자격으로 날 나무라!”어젯밤에 박유진이랑 같이 있었으면서 뻔뻔하게 그를 말하다니.“지한 씨, 도대체 무슨 일이야? 용건만 간단히 말해. 나 출근해야 돼. 오전에 재판 있어.”심미연은 일부러 말을 돌렸다. 계속 이야기하면 임신 사실이 들킬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강지한은 입술을 깨물었다.“왜 입원했어?”어젯밤에는 분명 배가 아프지 않다고 했었다.심미연은 애써 태연한 척하며 말했다. “당신이 너무 심하게 해서 많이 찢어졌어. 나중에 너무 아파서 병원에 왔는데, 의사가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보자고 해서 하룻밤 입원했어. 오후에 퇴원 수속하려고 했는데 그냥 며칠 더 있을까?”다행히 미리 강지한에게 할 말을 생각해 둔 덕분에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강지한은 어젯밤의 거친 행동을 떠올리며 귀가 붉어졌다.“그럼 이틀 더 입원하고 퇴원해.”목소리가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그럼 지금 나 좀 로펌에 데려다줄래? 시간이 많이 지체돼서 늦을 거 같아”심미연은 그의 말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가 믿기만 하면 됐다.“약은? 가져와. 내가 발라 줄게.”강지한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약을 발라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이미 발랐어! 다시 바를 필요 없어!”심미연은 황급히 거절했다.“어디 보여줘 봐.”심미연의 얼굴은 삶은 새우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안 돼. 보여 줄 수 없어!”강지한은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가로로 안아 침대로 향했다.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는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치마를 걷어
심미연은 무의식적으로 발끝을 세우고 그의 넥타이를 풀어 다시 매 주었다.강지한과 결혼했던 초에는 넥타이 매는 법을 배우는 데 한참 걸렸었다.그러고 나서 한동안은 매일 아침 그의 넥타이를 매 주곤 했다.하지만 강지한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더 이상 넥타이를 매 주지 않았다.지금 이 순간, 다시 그의 앞에서 넥타이를 매주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이제는 정말 사랑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그를 마주하고 있어도 아무렇지 않았다.강지한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작고 예쁜 얼굴, 오뚝한 콧날, 순진한 눈망울은 영락없는 현모양처였다.하지만 침대에선 이 청순한 얼굴 뒤에 숨겨진 요염함으로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요물!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두 사람의 몸이 밀착되었다. “지금 나를 유혹하는 거야? 어?”강지한의 목소리는 낮고 탁했다.심미연은 재빨리 넥타이를 매고 옷매무새를 정돈한 후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넥타이 다 맸어. 이제 가자.”그녀는 일부러 그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그를 살짝 밀어냈다. 자세히 보면 그녀의 귓불이 살짝 붉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이 남자는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발정하는 것 같았다.분명 어젯밤 온지유와 잤을 텐데.설마 온지유가 그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걸까?생각해 보니, 그녀는 지금 임신 중이고 임신 주수도 자신과 비슷하니 관계를 가질 때 배를 신경 써야 할 것이었다.강지한처럼 욕구가 강한 남자는 마음껏 몇 번 하지 않고서는 만족하기가 어려웠다.강지한은 심미연을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그녀가 자신의 앞에 서 있지만,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할 텐데 왠지 모르게 불안감이 그의 마음속에 솟아올랐다.심미연은 그의 시선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가자.”그녀는 강지한을 사랑하지 않게 된 후로 그에게
“그와 결혼하지 않은 거 후회해? 아직도 아쉬워?”남자의 손아귀 힘이 너무 세서 심미연은 얼굴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결국 그녀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지한 씨, 놔! 아파!”말하는 것조차 어눌했다.‘이 남자가 갑자기 미쳤나? 왜 이렇게 힘을 주는 거야!’강지한은 그녀의 눈물을 보자 가슴 속 분노가 더욱 거세졌다.“누굴 위해 우는 거야? 어?”결혼 3년 동안, 심미연은 그의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은 거의 없었다.한동안 그는 그녀가 눈물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그런데...그녀는 단지 자신을 위해서 울지 않는 것뿐이었다.“강지한, 아프다고!”심미연은 다급하게 말했다.그녀의 눈물은 순전히 아픔 때문에 흐르는 생리적인 눈물이었을 뿐 누군가를 위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나랑 사는 게 그렇게 괴로워? 그래서 그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 난 거야?”강지한의 눈빛은 음산했고 얼굴에는 살기가 가득했다.최근 심미연의 변화는 그로 하여금 온갖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그는 자기 여자는 절대로 다른 남자에게 넘겨주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비록 두 사람이 안타깝게 엇갈렸더라도 그는 심미연을 평생 곁에 묶어들 것이었다.“나와 유진 오빠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냥 우연히 마주친 것뿐이야!”심미연은 다급하게 해명했다.강지한의 성격은 불같아서 더 이상 해명하지 않으면 여기서 죽일지도 몰랐다.“우연히 봤는데 그렇게 깊은 눈빛을 주고받은 거야?”박유진의 눈에 가득한 애정을 그가 못 봤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박유진은 심미연을 사랑하고 있었다.그 사실에 그는 심란해졌다.심미연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순식간에 서리가 내려앉았다.“지한 씨, 당신이 온지유랑 눈빛 교환하고 알콩달콩 잘 지내도 내가 뭐라고 했어? 난 그냥 유진 오빠를 우연히 만난 것뿐인데 왜 이렇게 트집을 잡고 난리야! 뭐가 그렇게 불만인데?”이 남자는 정말 전형적인 내로남불이었다.강지한은 차갑게 웃었다.“나와 지유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네가
“지한아, 너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온지유를 놓아줄 수 있는 거야?”육현성은 그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또 한마디 물었다.강지한은 눈빛을 그의 얼굴에 떨어뜨렸다.“이것이 바로 온지유의 결말이야. 아무도 바꿀 수 없어. 너는 그만 가봐.”강지한이 내쫓자 육현성의 안색은 극도로 나빠졌다.“너는 왜 이렇게 정이 없는 거야!”강지한은 그의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예전에 심미연도 같은 말을 했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세계에는 냉랭한 사람만 존재했고 감정은 없었다.육현성은 그곳에 앉아 그의 모습이 2층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눈을 감은 채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마음속의 모든 감정을 누르고 천천히 일어섰다.이 순간 그는 갑자기 어머니의 심정을 깨달았다.원래 강하지 못하면 발밑에 밟힐 수밖에 없다.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그는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어디 갔어?”오미경은 분노로 날카로운 목소리를 냈다.“이다은과 결혼할게요.”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었다.만약 그가 이다은과 결혼할 수 있다면 이씨 가문의 세력이 생길 것이고 그는 서서히 강해질 것이다....신하린은 흐리멍덩하게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운 채 공허한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멀쩡하던 심미연이 왜 이렇게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그리고 그녀의 배 속에 있는 두 아이도...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얼마나 울었을까, 그녀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꿈속에서만 그녀는 심미연을 볼 수 있다.얼마나 지났는지 그녀의 침대 옆에 그림자 하나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신하린, 넌 왜 나에게 사랑을 좀 나누어 줄 수 없는 거야? 젠장, 넌 양심이 없는 년이야!”이진영의 목소리는 침대 위의 여자를 깨우기라도 할까 봐 조심스럽게 들려왔다.욕을 한 후 그는 옷을 벗고 이불을 젖히더니 이불 속에 누웠다.그가 눕자마자 여자의 몸은 습관적으로 그에게 다가와 두 손으로 그를 껴안고
성무진은 신미연이 정말 바다에 빠졌다면 어떻게 찾을 수 있었을까 생각했지만 이런 말을 그는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다.그렇지 않으면 강 대표님이 틀림없이 화를 낼 것이니 말이다.“빨리 가서 이 일을 처리해. 난 기사를 불러 집에 갈 거야.”성무진은 서둘러 갈 수밖에 없었다.강 대표님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했다.강지한은 이불을 들치고 일어나 욕실로 갔다.손으로 얼굴의 손자국을 어루만지며 신하린의 당시 슬프고 분노하던 모습을 떠올렸는데 연기하는 것 같지 않았다.만약 심미연이 죽지 않았다면 신하린에게 알리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심미연이 죽었다면...강지한은 감히 더는 생각하지 못하고 재빨리 수도꼭지를 틀고 물로 얼굴을 씼었다.차가운 물이 얼굴에 닿자 정신이 확 들었다.씻고 옷 갈아입고 나니 기사도 도착했다.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침실은 이미 깨끗이 청소되어 공기 중에 은은한 향기가 났다.강지한은 또 그 넥타이를 보고 마음이 뒤숭숭해졌다.심이연이 그리웠고 그가 전에 했던 일도 떠올라 알 수 없는 괴로움이 밀려왔다.오후가 되자 육현성이 찾아왔는데 얼굴이 초췌하고 수염도 깎지 않아 의기소침해 보였다.강지한은 소파에 앉아 눈앞의 육현성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눈썹을 치켜세우고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온지유는 이미 체포되었으니 절차가 끝나면 모든 것이 마무리된다.육현성이 온지유의 도주를 도운 일에 대해 그는 결코 추궁할 생각이 없었다.“넌 분명히 이미 모든 것을 안배했는데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육현성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따져 물었다.온지유가 체포된 일에 대해 그는 사람을 찾아 경위를 똑똑히 묻고 나서야 자신이 철두철미한 바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강지한의 눈에는 그가 아마 우스운 꼬락서니였을 것이다.집에서 며칠을 지내다가 그는 강지한을 찾아 분명히 묻기로 했다.“내가 너에게 말했으면 너는 온지유를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어?”강지한은 찻잔
그는 후회했다.몹시 후회하다.하지만 이 세상에 후회 약은 없다!신하린은 몸을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입가에 풍자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마치 여름 오후에 갑자기 들이닥친 소나기처럼 차갑고 격렬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곧바로 쳤다.“미연이는 이미 한 줌의 흙이 되었는데 강지한 씨의 이런 능청스러운 태도는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거예요?”그녀의 목소리는 높지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어 주위의 공기를 굳힌 것 같다.강지한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는 입술을 감빨며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감정을 억누르려 했으니 그 강렬한 통증은 조수처럼 세차게 밀려와 그를 삼킬 것 같았다.그는 두 손을 주먹으로 꽉 쥐었다. 핏줄이 불끈 솟아올랐고 손끝은 너무 힘을 주어 하얗게 질렸지만 마치 이렇게 해야만 심장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는 것 같았다.신하린은 강지한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더니 시큰둥하고 비참함으로 가득 찬 어투로 말했다.“뒤늦은 정은 길가의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들풀보다 더 비천해요.”강지한의 마음은 이 순간 유난히 무거웠다.신하린은 그런 그를 보고 또 계속 말을 이었다.“온지유의 일에 더는 끼어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그녀의 목소리는 높지 않지만 우레와 같이 그의 귓가에 폭발했고, 글자마다 천근 무게로 대처할 수 없는 힘을 띠고 있었다.그녀의 눈빛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고, 단지 확고함과 냉혹함만이 있었는데 마치 이미 온지유의 비참한 미래를 예견한 것 같았다.“난 끼어든 적 없어요. 온지유가 지금 감당하고 있는 모든 것은 자업자득이에요. 신하린 씨가 어떻게 상대하든 상관없어요.”강지한은 차가운 눈빛으로 쌀쌀하게 말했다.신하린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에 분노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는데 그것은 심미연을 향한 끝없는 그리움과 슬픔이 만들어낸 불꽃이었다.“말한 대로 하기를 바라요!”또박또박 말하고 난 그녀는 몸을 돌려 떠나갔다.신하린이 문을 나서자마자 성무진이 초조한
신하린의 눈빛은 마치 두 개의 날카로운 얼음 조각처럼 조금의 온도도 없이 이진영의 깊은 눈동자를 찔렀다. 그 눈빛에는 의외와 분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처가 가득했다.“무슨 일이 있어요?”그녀의 말은 나지막하고 힘차서 한 글자 한 글자가 마치 이 사이로 비집고 나온 듯 거부할 수 없는 무거움을 띠고 있었다.이진영은 몸을 살짝 움직였다. 그녀가 이 한마디를 뱉는 순간 그의 눈빛은 순간적으로 암울하게 변했고 마음속에 복잡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이 피어올랐다.그는 한 걸음 천천히 앞으로 내디디며 꿈에도 그리지만 아득히 먼 이 그림자에 접근하려 했지만 신하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담함과 거부감은 보이지 않는 장벽처럼 그를 격리했다.“괜찮으시다면 먼저 나가서 기다렸다가 나중에 들어오세요!”그녀가 계속 말했다. 말투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확고함과 결단만이 있었다.그녀의 두 손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는데 핏줄이 하얀 손등에 내비쳐 그녀의 마음속 거친 정서를 드러냈다.이 순간, 그녀는 더는 그 온화하고 사랑스러운 여자가 아니라 복수의 사신으로 변신하여, 죽은 절친을 위해 따지려는 듯했다.이진영의 마음이 아프게 조여왔다. 그는 신하린의 증오로 가득 찬 두 눈을 바라보며 전례 없는 무력함과 고통을 느꼈다.그는 앞으로 나가 그녀를 안으려고 했다.위로해주고 싶고그녀와 얘기도 하고 싶었지만 신하린의 눈빛은 너무 차가웠다.두 사람은 이렇게 대치하고 있었고, 공기 중에는 긴장과 억압이 가득 차 있어 마치 시간조차 이 순간에 정체된 것 같았다.“왜 아직도 안 가?”신하린이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는데 목소리에는 귀찮음이 느껴졌다. 그녀는 더는 이 남자와 아무런 관계도 맺고 싶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 마음속에는 복수의 불길만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이진영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속의 충격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이왕 만났으니 우리 얘기 좀 할까?”신하린은 가슴이 아파지는 걸 느끼며 입을 벌리고 그를 불렀다.“진영 씨.”그녀의
짝! 짝!맑은 따귀 소리가 고요한 공간에서 터져 마치 여름에 갑자기 닥친 천둥소리처럼 사람의 마음을 떨리게 했다.신하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물을 머금은 두 눈엔 억울함과 한이 반짝이였다.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고 흐느낌을 참으며 마치 모든 억울함과 고통을 이 간단한 동작을 통해 털어놓으려는 것 같았다.강지한은 눈앞에 별이 보이도록 얻어맞았지만 그 따가운 통증이 뺨에 번지도록 내버려 두었다.그는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쉬며 마음의 파도를 가라앉히려 했다. 머릿속에는 꽃처럼 예쁘게 웃고 있는 심미연의 모습이 떠올랐고 심미연의 부드러운 말투, 그리고 함께 보낸 따스한 시간이 조수처럼 밀려와 그를 파묻었다.“만약 심미연이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런 한마디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낮고 잠긴 목소리에는 끝없는 슬픔과 후회를 품고 있었다.그는 천천히 눈을 뜨고 멍한 눈빛으로.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치 많은 장애물을 뚫을 수 있는 것처럼 이미 멀어졌지만 영원히 그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그 모습을 보았다.그런 그의 모습에도 신하린의 마음속 분노는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용솟음쳤다.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서 두 손을 주먹으로 꼭 쥐었다. 손끝은 너무 힘을 주어 하얗게 질렸지만 목소리는 떨리면서도 확고했다.“강지한 씨, 무슨 자격으로 미연이를 언급해요? 강지한 씨가 뱉는 모든 글자가 미연이에 대한 가장 큰 모독이에요!”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그 순간 더 격렬한 충돌이 일어날 것처럼 극도로 팽팽해졌다.그러나 바로 이 긴장된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강지한이 갑자기 웃었다. 그것은 일종의 씁쓸하고 자조적인 웃음이었다.“그래요. 내가 무슨 자격으로... 내가 미연이를 죽였어요. 하늘에서 보고 있다면 반드시 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신하린은 모든 슬픔을 삼킨 것 같은 강지한의 얼굴을 보고 입가에 시큰둥한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 속에는 풍자와 경멸이 숨어 있었는데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졸렬한 연기를 비웃는 것 같았다.“허, 정말 가소롭네
성무진은 깜짝 놀라 얼른 손을 뻗어 신하린을 붙잡았다.“신하린 씨,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신하린은 갑자기 입을 벌리더니 성무진의 손을 한입 물었다.“놔요!”성무진이 아파서 손을 놓자 신하린은 또 강지한을 덮쳤다.순간 강지한이 갑자기 그녀를 노려보았다.그 눈빛이 너무 매서워서 신하린은 바로 걸음을 멈추었다.“신하린 씨, 지금 하린 씨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 일은 우리 강 대표님과 무관해요.”성무진은 황급히 입을 열어 강지한을 대신해서 설명했다.신하린은 몸을 곧게 펴고 머리카락이 국에 젖은 강지한을 매섭게 노려보았다.“강지한 씨가 온지유를 밑도 끝도 없는 포용하지 않았다면 온지유가 어떻게 감히 미연이 앞에서 그렇게 날뛰고 방자할 수 있겠어요? 강지한 씨가 미연이를 믿지 않은 게 아니었다면 미연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억울함을 당할 수 있었을까요!”“강지한 씨, 그거 알아요? 미연이는 강지한 씨를 꼬박 10년 동안 사랑했어요!”심미연은 26번째 생일을 맞았다. 그러니 계산해 보면 심미연은 정말 강지한을 10년 동안 사랑했다.결국 그녀는 10년 동안 자신을 다른 세계로 보내버렸는데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강지한의 차가운 표정이 마침내 흔들렸다.심미연이 그를 10년 동안 사랑했다니, 이것은 그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성무진도 놀란 표정이었다.강 대표님의 부인이 강 대표님을 10년 동안 사랑했다니.10년이란 시간은 참 긴 세월인데 말이다.“강지한 씨, 나도 알아봤어요. 온지유가 안에서 맛있는 걸 먹으며 잘 지낸다는데 이렇게 하면 미연이게게 미안하지 않아요?”신하린은 화가 난 나머지 눈물이 흘러 내렸다.그 악독한 여자가 미연이와 외할머니를 죽였는데 어떻게 멀쩡하게 살아있단 말인가! 빌어먹을!강지한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그는 3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기에 온지유의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성무진은 그제야 반응하고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 없어요.”그는 온지유를 잘 모시라고 당부했었다.설마...그들이
임혜자는 필사적으로 감정을 억누르고 다시 말했다.“성 비서님께서 아까 사모님 유품을 가져왔더라고요. 그리고 둘째 도련님께서는 지금 응급실에서 나와 일반 병실로 옮겨졌습니다.”임혜자는 강지한이 너무 걱정되었고 혹시나 그에게 일이 생기면 아무것도 모르는 강준형이 그들을 탓하지는 않을지도 걱정되었다.“네...”강준형을 말을 마치자마자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순간 본가 쪽도 아수라장이 되어 집사들은 그를 곧바로 병원으로 데려갔다.의사와 간호사의 필사적인 노력 끝에 강준형은 깨어날 수 있었지만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김준혁은 그가 깨어난 모습을 보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어르신, 드디어 깨어나셨네요. ”강준형은 겨우 침상에서 일어나 앉더니 온 힘을 다해 집사에게 말했다.“지금 당장 성 비서한테 전화해서 그 팔찌를... 가져오라고 해.”성무진도 마침 병원에 있었기에 빠르게 그의 병실로 오게 되었고 오자마자 주머니에서 그 팔찌를 그에게 넘겨줬는데 조명 아래 비치니 더욱 반짝거리는 모습이 보는 사람을 가슴 아프게 했다.강준형은 떨리는 손으로 팔찌를 건네받고 만져보다가 익숙한 촉감에 결국에는 눈물을 흘렸다.그리고 문득 심미연의 해맑은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그녀의 것임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강준형은 마음이 바스라지는 것 같았다. 두 손으로 팔찌를 움켜쥐고 몸을 잘게 떨었는데 마치 누군가가 그의 심장을 칼로 찌르기라도 한 듯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순간 그는 마치 온 세상을 잃은 듯 끝없는 공허함과 절망에 빠져버렸다.김준혁은 그의 모습을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어르신, 아직 몸도 성치 않으신데 너무 흥분하시면 심장에 또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잠깐 눈 좀 붙이시는 게 어떠세요?”그러나 강준형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그가 그토록 아끼던 심미연이 이렇게 떠나버렸다.시신도 남기지 않고 가버린 사실을 강지한이 깨어나 알게 되면 얼마나 절망적일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3일 후, 강지한이 드디어
강지한은 심미연이 이제 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 같았고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는데 도저히 이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는 뭔가를 말하려고 입을 살짝 벌렸지만 너무 떨려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그저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뜨거운 피가 용솟음쳐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 뒤 낮은 신음을 내뱉더니 곧바로 입에서 피를 쏟아내면서 픽 하고 몸이 뒤로 넘어갔다.그리고 마치 온몸의 모든 공기가 다 빠져나간 것처럼 힘없이 차가운 바닥에 그대로 떨어지면서 정신을 잃었다.성무진은 갑자기 들리는 둔탁한 소리에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그러나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떨리는 손으로 임혜자에게 전화를 걸었다.“아주머니, 혹시 지금 위층 안방에 가서 강 대표님이 괜찮은지 확인 할 수 있으실까요?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너무 걱정돼서요.”전화 받은 임혜자도 그의 말에 심장이 덜컥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그러나 다년간의 경험으로 그녀는 빠르게 마음을 진정시킨 뒤 성무진을 위로하며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침착할 수 없었다.강지한은 창백한 얼굴로 피를 토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방안에는 이미 피비린내가 가득 퍼져있었다.임혜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119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가능한 빨리 차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그러나 기다리는 1분 1초가 너무 괴로웠다.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집 앞에 도착했고 의료진들은 신속하고 질서 있게 방에 들어가 강지한을 조심스럽게 들것에 옮겨 데리고 나갔다.임혜자는 구급차가 떠나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며 강지한이 이 고비를 빨리 넘길 수 있도록 기도했다.그렇게 강지한은 빠르게 응급실로 옮겨졌다.응급처치가 끝난 뒤 그는 일반 병실로 옮겨졌는데 여전히 깨나지 못한 채 긴 꿈을 꾸게 되었다.꿈속은 마치 길고 인상 깊었던 영화와 같았는데 프레임마다 그가 심미연과 함께한 3
“미연 씨랑 완전히 깨진 거야? 그럼 찾으면 이제 내 차례네?”박시훈은 어차피 이제 강지한이 심미연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박시훈, 지금 너랑 농담할 기분이 아니니까 빨리 사람 풀어서 찾아봐.”강지한의 마음속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만약 박시훈도 못 찾는 거라면 심미연은 완전히 실종되었다고 봐야 한다.“강지한,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줘. 미연 씨를 아직 사랑하지?”박시훈은 만약 그가 여전히 심미연을 좋아하는 거라면 여기서 깔끔하게 포기하겠다고 다짐했다.친구의 여자를 뺏는 건 도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그러나 강지한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큰 소리로 답했다.“전혀!”그는 여전히 자존심을 부렸다.강지한의 말에 박시훈은 또다시 히죽거리며 말했다.“그럼 미연 씨를 찾아도 나만 볼 수 있게 어디 숨겨둬야겠다.”강지한은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박시훈, 싫다는 사람을 왜 억지로 데려가려고 해. 그리고 어디까지나 내 전 아내였던 사람인데 들이대고 싶어?”“난 미연 씨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거야. 그게 네 전 아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인데?”박시훈도 살짝 격앙된 목소리로 답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됐어. 난 그만 사람 찾으러 가야겠다.”박시훈과의 통화 뒤에 강지한의 가슴은 더욱 답답해졌다.모태 솔로인 박시훈이 심미연에게 관심을 보이는 게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러다가 그는 모든 잡생각을 다 집어치운 뒤 강준형에게 전화를 걸었고 곧바로 수화기 너머에서 그의 중저음 목소리가 들려왔다.“미연이한테 사과했어? 용서는 받았어?”“혹시 오늘 미연이 만나셨어요?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어요?”강지한은 다짜고짜 그녀가 사라졌다고 할 수 없었기에 에둘러 물었다.“미연이가 사라졌어?”강준형의 물음에 강지한은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그에게 거짓말했다.“혹시 할아버지한테 찾아가서 무슨 이야기 나눴나 궁금해서요.”보아하니 강준형을 만나러 가지도 않은 것 같았다.“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 그런데 너한테는 비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