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한은 어두운 얼굴로 서류를 넘겨받고 자세히 읽어보더니 다시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우리 사모님께서 아주 욕심이 지나치시네요. 이노 하이브의 주식이랑 구연궁도 다 넘기라고? 너무 간절하게 이혼을 요구해서 난 홀몸으로 나가는 줄 알았는데.”심미연은 목을 어루만지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그에게 말했다.“난 변호사야. 이혼은 당연히 자기 권익부터 보장하고 봐야지. 더구나 이혼 사유가 당신인데 이만한 위자료는 당연히 내놔야지 않겠어?”심서연이 그에게 뭐라고 나불댔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그녀의 말을 듣고 지금 여기까지 와서 화를 내고 있다.하여 심미연은 아까 전화를 끊자마자 재빨리 이혼 서류를 작성해서 일부러 강지한의 주의력이 박유진이 아닌 이혼 서류에 쏠리게 했다.위험해 보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고 꽤 괜찮은 방법인 것 같기도 했다.“나 때문에 이혼한다고? 내가 뭘 했는데?”강지한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며 물었다.“지유 씨는 시험관 임신인 거야? 혹시 상상임신은 아니지?”심미연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그녀는 반드시 강지한이 박유진한테 주의를 돌리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했다.그런 강지한은 눈살을 찌푸리고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변호사라 그런지 상황 파악이 빠르고 또 감정 조절도 잘하는 것 같았다.이런 식으로 대화의 주제를 돌리려 하다니.“이혼 서류를 들고 온지유의 임신에 대해 묻는 걸 보면 지금 너랑 박유진과의 사이에 대해 말하기 싫은 것 같은데 심미연, 대체 뭐가 두려워서 이러는 거야?”강지한은 단호하게 물었다.심미연은 그의 입에 들리는 박유진이라는 단어에 또다시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표정을 보아하니 진짜 그 인간이랑 뭔가 있었네? 하, 네 입으로 지금 불래, 아니면 내가 가서 알아볼까?”강지한은 더욱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가 직접 알아보다가 뭔가 찾아내기라도 하면 그 후과에 대해 감당할 수 있겠어?”심미연은 눈앞의 남자가 한 모든 말을 가만히 듣자니 가슴이
임현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심미연이 바닥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재빨리 문을 닫고 그녀에게 달려갔다.방금 사장님이 화가 잔뜩 난 채 사무실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고 급히 들어온 건데 역시나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치고 간 것 같았다.설마 사장이 주먹을 휘둘러 심 변호사가 다친 건가?신고라도 해야 할까?임현은 한껏 복잡해 보이는 얼굴로 심미연을 바라보자 그녀는 눈치채고 어렵게 한마디를 꺼냈다.“저 좀 일으켜줘요.”다리에 힘이 풀려 스스로 일어서기 힘들었다.임현은 그녀를 소파까지 부축해 준 뒤 물 한 잔을 따라주었다.“여기요.”심미연이 먼저 말하지 않으니 임현의 입장에서 대놓고 묻기도 힘들었다.어디까지나 이건 심미연의 사생활이기 때문이다. 심미연은 물컵을 건네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물을 마시자 심미연도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그리고 방금 벌어진 일들에 대해 해결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임현은 골똘히 생각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저 말없이 옆에 앉아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미연은 컵에 든 물을 한꺼번에 입으로 털어 넣은 뒤 말했다.“내일 열리는 재판 자료는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주세요. 저는 다른 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네요.”그리고 다급히 사무실을 나섰다.임현은 한껏 어두운 얼굴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심미연이 뭔가 사장한테 잘못한 것 같은데 혹시 이대로 잘리는 건 아니겠지?바로 이때, 심미연은 1층 로비에 내려오자마자 신하린에게 전화를 걸었고 곧바로 수화기 너머에서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미연아, 무슨 일이야?”“지금 바빠?”순간 수화기 너머에서 몇 초간의 침묵이 흘렀는데 심미연은 단번에 이상한 점을 느끼고 당황해서 되물었다.“하린아, 무슨 일이 있는 거지?”강지한이 시킨 일이라면 성무진은 아주 빠르게 실행할 것이다.하여 신하린의 사무실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건 시간문제였다.“미연아, 내가 지금 좀 바빠서 이따 저녁에 전화할게.”신하린은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듯 매우 조급해 보였다
“그럼 그 여자가 일을 벌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할아버지께서 감싸주는 건가요?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어요?”옆에 있던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여자도 같이 화를 냈다.“지유 씨가 너무 착해 빠져서 그래요. 그러니까 자꾸 다른 사람에게 당하는 거라고요!”이때, 포니테일을 한 여자가 허리를 짚고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기다려요. 우리가 아주 본때를 보여줄 테니까.”옆에서 듣고 있던 박인우가 더는 참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지유 씨가 당신들처럼 악독한 사람인 줄 알아요? 그런 결정을 한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겠죠!”“인우 씨, 혹시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니에요? 심미연은 사람을 시켜서 지유 씨를 차에 치여 죽이려 했는데 아직도 그 여자 편을 들고 싶어요? 그럼 받아들일 만한 이유였다면 차에 치여 지유 씨가 죽어도 상관없겠네요?”아까 그 베이지 코드를 입은 여자가 못마땅한 듯 반박했다.박인우가 다시 그 여자를 빤히 보며 물었다. “보아하니 그쪽은 지한이 형을 마음에 두고 있네요.”그의 말투는 확신에 차 있었다.순간 그 여자는 정곡이 찔린 나머지 얼굴은 새빨개진 채 버벅거리며 소리쳤다.“당, 당신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그의 말이 헛소리인지 아닌지, 그녀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순간 온지유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감히 강지한을 마음에 두고 있다니!육현성은 온지유의 어두워진 얼굴을 발견하고 박인우에게 눈치 줬다.“그만 돌아가!”모두가 심미연의 흉을 보고 있는 와중에 박인우 혼자만 그녀를 두둔해 말하니 여기에 더 남아있어봤자 사람들에게는 눈엣가시처럼 느껴질 것이다.박인우는 그의 말에 재빨리 일어났다.“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갈게요.”두 사람은 원래 사이가 좋았고 육현성은 자주 박인우 앞에서 심미연의 흉을 봐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박인우도 자연스레 심미연이 별로라고 느껴졌다.하지만 온지유의 교통사고는 경찰 쪽에도 아직 심미연이 범인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는데 저 사람들은 대
심미연은 한 바퀴를 다 돈 뒤 강지한에게 넥타이를 선물해 주기로 다짐했다.3년이라는 결혼 생활 동안 매일 강지한의 옷을 직접 골라줬기에 이미 어떤 색의 타이를 사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가게에 들어서니 매점 직원이 활짝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다.“어떤 넥타이를 골라드릴까요? 원하는 스타일이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심미연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혼자서 둘러보고 결정되면 부를게요!”그러자 점원은 냉큼 답했다.“네. 알겠습니다.”심미연은 둘러보다가 와인색 넥타이를 골랐다.강지한의 양복은 대부분 검은색, 하얀색, 회색으로 나뉘어있어 와인색이면 어떤 색의 정장이든지 다 잘 어울릴 것 같았다.결제하려고 핸드폰을 꺼내보니 강지한한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찢기에는 너무 적은데?]노골적인 그의 답장에 심미연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지더니 재빨리 결제하고 서둘러 가게에서 나왔다.하지만 너무 급히 빠져나온 관계로 웬 여자가 자신을 지나쳐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그리고 그 여자는 점원에게 말했다.“방금 저 여자가 샀던 넥타이랑 똑같은 걸로 주세요.”백화점에서 나온 뒤 심미연은 시장으로 향했다.3년이라는 결혼 생활을 하면서 그녀가 가장 많이 찾은 곳이 바로 시장이었다.그렇게 장을 다 본 뒤 심미연은 집으로 돌아와 침실을 꾸미기 시작했다.그리고 정원에 나가 한 바구니가 되는 꽃을 따와서 잘 다듬은 뒤 이쁜 물병에 꽂아 식탁 위에 올려다 놓고 주방에서 저녁을 하기 시작했다.도우미인 임혜자도 조용히 옆에서 거들었다.한 시간 후, 네 가지 맛있는 요리가 식탁 위에 올려졌다.그리고 그녀는 와인 한 병을 꺼내 잔에 부었다.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서야 심미연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강지한에게 전화하려는데 갑자기 박유진한테서 먼저 전화가 걸려 왔다.심미연은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오빠.” “미연아, 미안해. 괜히 네가 오해를 받게 했네.”박유진은 한껏 다정한 말투로 사과했다.
강지한은 성큼성큼 거실로 들어오더니 한껏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쏘아봤다.순간 심미연은 등줄기에서 땀이 흐르는 것 같았고 재빨리 핸드폰을 뒤로 감추면서 떨리는 목소리 맞이했다.“왔어?”하지만 강지한은 그녀 앞에 가만히 서서 그녀를 말없이 뚫어져라 바라만 보았다.심미연은 신하린의 회사만 생각해서 모른 척하고 다시 물었다.“아니면 먼저 올라가서 옷부터 갈아입어. 국만 뜨면 밥 먹을 수 있어.”순간 강지한은 그녀의 턱을 잡고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금 박유진이랑 통화하는 것 같은데 왜 내가 오는 소리를 듣고 바로 끊었어? 뭔가 찔리는 게 있나 봐?”심서연이 아까 심미연과 박유진은 죽마고우이고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온 사이인지라 박씨 가문에서는 심미연을 거의 며느리로 생각했고 심미연도 박유진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정도라고 알려줬다.또한 3년 전, 박씨 가문에 재정위기가 닥치고 박유진이 행방불명이었을 때도 심미연은 박씨 가문에 가서 반드시 가문을 다시 살려내고 박유진을 찾아오겠다고 약속까지 했다고 심서연이 말했다.원래 강지한은 굳이 심미연을 뒷조사할 마음이 없었는데 최근 그녀의 행동을 고려해 봤을 때 무조건 알아봐야 했다.그러나 진실은 더욱 놀라웠다.알고 보니, 3년 전 심미연과 박유진은 혼인 신고했고 당일에 강준형이 박씨 가문에 돈 200억을 넘겼다.그렇게 박씨 가문은 다시 일어섰고 지금 이노하이브의 유일한 적수로 되었다.또한 박유진이 다시 경성으로 돌아오면서 심서연이 했던 모든 말이 사실로 증명되었다.당연히 이 모든 게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분명 다 계획되었으리라 생각했다.예전에 그는 심미연이 이토록 사모님 자리에 앉으려는 목적이 그저 허영심과 명예 때문이라고 여겼다.하여 심미연과 혼인 신고를 한 뒤, 일부러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외부에도 알리지 않아 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극소수였다.그래도 3년 동안 심미연은 이 일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 않았고 또 줄곧 이게 그녀에 대한 벌이라고
그녀와 박유진 사이...한두 마디로 해명할 수 없다.그러다가 강지한은 배를 어루만지고 있는 심미연을 보더니 차갑게 물었다.“배는 왜 쓰다듬고 있어, 임신이라도 했어?”순간 심미연은 심장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애써 차분하게 해명했다.“그저 위가 불편할 뿐이야. 그리고 매번 조심했는데 임신했을 리가 없잖아!”어딘가 많이 당황해 보이는 모습에 강지한은 눈살을 찌푸리고 다시 말했다.“좋기는 임신이 아니어야 할 거야. 아니면 진짜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심미연의 말대로 두 사람은 매번 열심히 피임했고 어쩌다 너무 급해서 콘돔을 사용하지 못한 날에도 이튿날 꼭 약을 먹었다.그런데도 만약 심미연이 임신한다면 그 아이의 아빠는 누구일까?심미연은 그런 강지한의 마음도 모른 채 그저 어떻게 하면 임신 사실을 속일까만 고민하고 있었다.혹시나 들키기라도 하면 분명 병원에 데려가 애를 지워버리라 할 것이다.이 아이는 오직 심미연의 아이였고 누구도 뱃속의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다.임혜자가 국을 들고 왔는데도 심미연은 여전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사모님, 식사하세요.”그녀의 작은 속삭임에 심미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강지한의 팔을 끌며 말했다.“같이 올라가서 옷부터 갈아입자.”심미연은 일부러 그의 비위를 맞춰주는 척, 고분고분한 모습이었는데 강지한은 입맛을 다시다가 그녀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두 사람이 떠나고 나서야 임혜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강지한의 성질은 날이 갈수록 살벌해지는 것 같았는데 다행히 심미연이 마음이 넓어서 그나마 그의 화를 받아준다고 생각했다.만약 온지유였다면 진작에 집에서 뛰쳐나갔을 것이다.이토록 살가운 사모님이면 소중히 받들어 모셔도 모자랄 판에 왜 저리도 냉정하게 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강지한이 위층에 올라가자마자 침실 문을 열어보니 은은한 장미향이 코를 간지럽혔고 침대 위에도 장미꽃으로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심미연은 강지한을 힐끔 쳐다보더니 그에게 물었다.“우리 정원에서 잘
깜짝 놀란 심미연이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았다.남자는 한껏 어두운 얼굴로 그녀를 쏘아보고 있었는데 심미연은 숨을 한번 깊게 들이쉬고 낮은 소리로 해명했다.“배고파서 그러는데 먼저 먹고 하면 안 될까?”“예전에는 안 그러더니 대체 왜 그래? 설마 박유진 때문이야?”강지한은 그녀에게 따져 물었다.그의 말대로 예전에는 남자가 신호만 보내면 심미연은 순순히 협조했다.그리고 두 사람은 유달리 속궁합이 잘 맞았다.하지만 며칠 전, 그녀가 이혼 얘기를 꺼낸 후로부터 계속 남자와의 잠자리를 거절했다.이러면서 딴마음이 없다고 하니 믿을 수가 있나!강지한이 의심의 눈초리로 심미연을 빤히 쳐다보자 그녀는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워낙 의심도 많고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바로 알아차린다.순간,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자기 배를 또다시 어루만졌다.설마 임신한 사실을 눈치챈 건 아니겠지?“왜 말이 없어? 내 말이 맞다는 건가?”강지한은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올라 당장에라도 그녀의 목을 조르고 싶었으나 겨우 참았다.심미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그게 아니라 난 진짜 배가 고픈 것뿐이야. 그 사람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지금 절대로 강지한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 아니면 신하린의 회사가 한순간에 없어지는 건 물론이고 박유진한테까지 피해가 갈 수 있다.강지한은 또다시 그녀의 얼굴을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심미연은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고 다시 변명하려던 순간, 강지한의 핸드폰이 울렸다.불구덩이 속에서 겨우 빠져나온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급히 강지한에게 말했다.“핸드폰!”그러자 강지한은 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차갑게 경고했다.“심미연, 좋기는 방금 했던 말들이 거짓이 아니어야 할 거야. 아니면 진짜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온지유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아까까지 살벌하던 그의 눈빛이 순간 핑크색 하트로 변했다.심미연이 다른 남자랑 통화만 했는데도
심미연 이 여자, 설마 지금 강지한한테 꼬리치려는 건 아니겠지?어림도 없어!“저녁에 회사로 또 나가봐야 해서 시간이 없어.”“아니면 내 옆에서 회사 일 보면 안 될까? 지한 씨, 나 너무 무서워...”온지유는 말하다가 눈물을 글썽거렸다.“이따 저녁에 다시 보자. 지금 밥 먹어야 해서 끊을게.”강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이렇게 시도때도 없이 우는 온지유가 가끔은 짜증났다.하지만 이 시각, 수화기 너머의 온지유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 핸드폰을 꽉 쥐었다.심미연, 그 여우같은 계집애가 강지한 앞에서 무슨 험담을 늘어놨기에 여기로 오지도 않겠다고 하지?간병인 안현자는 밥을 배달해 오다가 그녀의 어두워진 낯빛을 보고 순간 깜짝 놀라 물었다.“지유 씨...”이때 온지유가 갑자기 옆에 있던 물컵을 그녀에게 던지며 불같은 화를 냈다.“전 사모님이지 지유 씨가 아니에요!”안현자는 어깨를 맞고 그만 손에 힘이 풀려 들고 있던 쟁반 위의 음식들을 바닥에 쏟으면서 순간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쟁반 하나를 못 들어서 이 난장판을 만들어요? 이런 쓸모도 없는 사람을 간병인이라고, 그냥 꺼져요!”온지유는 신경질적으로 안현자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강지한에게 받은 설욕을 전부 그녀에게 풀었다.그렇게 안현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쫓기듯 병실 밖으로 뛰쳐나왔다.더 있었다가는 목숨마저 위험할지도 모른다.정말 이상한 여자라니까.안현자가 떠나간 뒤에도 온지유는 분이 안 풀려 병실안의 물건들을 집히는 대로 다 깨부셨다.심미연 저 빌어먹을 계집애, 감히 온지유가 입원해 있는 틈에 강지한한테 꼬리치려 들다니!...박씨 가문의 식사자리.식탁에는 박유진의 부모님과 심서연의 부모님이 앉아 있었다.박유진이 파혼하겠다는 소식을 듣고 심서연의 부모는 재빨리 자기 딸을 데리고 여기까지 쫓아왔다. 하여 식사 분위기는 다소 어두웠다.박지훈은 박유진을 한번 힐끔 보더니 먼저 입을 뗐다.“저희쪽에서 먼저 파혼을 제기했던 원인은 확실히 제가 점쟁이한테 여쭤보고 두
온지유는 그의 가슴에 귀를 대고 그의 심장박동을 들으며 순간 마음 한편에서 감동이 살짝 밀려왔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만약 그녀가 강지한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육현성이 이런 말을 한 순간 그녀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다! 온지유의 침묵은 육현성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그는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조금의 희망을 품고 있었고 어쩌면 그녀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자신과 함께 하기로 결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결국 그것은 그의 착각일 뿐이었다. “현성 오빠, 저는...” 온지유는 육현성이 괴로워하는 것을 느꼈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말하지 않아도 돼요! 나도 알아요. 지유 씨, 자기 자신을 강요하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살아요.” 결과를 알게 된 육현성은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앞으로 자주 만날 수는 없을 거예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면 당연히 그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 “현성 오빠, 나랑 이제 아예 연락고 안 해줄 건가요?” “지유 씨, 미안해요. 그냥 내가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요즘 육씨 가문이 엉망진창이라 육현성도 정신없이 바빴기에 온지유를 위로할 여유가 없었다. 온지유는 입술을 꽉 깨물며 갑자기 눈가가 붉어졌고 이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알겠어요!” 그녀는 육현성 같은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육현성이 떠나자마자 강지한이 도착했다. 온지유의 붉어진 눈을 보고 또 혼자서 온갖 상상을 하며 울었다고 생각했다. “유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눈에 안 좋다고 울지 말랬잖아.” 강지한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달래야 했다. 온지유는 육현성의 다정함이 떠오르며 울음을 참지 못하고 더 크게 오열하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지고 강씨 가문의 저택에서. 심미연은 단정한 원피스를
‘차라리 돌아와서 직접 아는 게 낫겠어.’ “성 비서, 말해! 도대체 무슨 일이야?”강지한의 목소리가 예리해졌다. 성무진은 한숨을 내쉬며 결국 알게 된 사실을 모두 전했다. 강지한의 심미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잠시 멈칫했다. 그날 전화로 심미연에게 온지유에게 사과하라고 했을 때 그녀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했었지만 그때 그는 뭐라고 말했지? 그는 심미연이 거짓말을 한다고 했었다. 그 후 며칠 동안 심미연은 전화하지 않았고 그는 그저 그녀가 사과하고 싶지 않아서 그를 피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심미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토록 큰 일이 있었는데 그녀는 그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아마 슬픔에 잠겨 있었겠지.’‘그래서 내게 그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거야.’ “대표님.” 성무진은 전화기 속에 아무 말도 들리지 않자 조심스럽게 부르며 물었다. “알았어. 그럼 여기까지 하자.” 강지한은 전화를 끊고 창밖의 차들이 가득한 거리를 바라보며 심미연이 혼자서 외할머니의 영정 앞에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 모습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 그는 남편이었지만 아무것도 몰랐으며 이상하게 코끝이 찡해졌다. 그때 할아버지의 전화를 다시 떠올리니 아마 할아버지도 심미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화가 너무 나서 전화를 끊어버렸던 거다. ‘할아버지는 나한테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강지한은 창가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그러다 온지유의 전화가 다시 울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 “또 무슨 일이야?”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한 씨, 나 무서워.”온지유는 반쯤 진심이고 반쯤 아닌 듯 말하였다.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강지한은 신속하게 응답했다. “지한 씨, 내가 일 방해한 건 아니야?” 온지유는 조심스럽게
생각을 정리하던 강지한은 결국 그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전화기에서 울려 퍼지는 건 차가운 신호음뿐이었다. 강지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바쁜 신호음만이 들려왔다. 강지한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심미연이라는 여자는 진짜 단 한 번도 그를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다. 잘못한 것도 그렇게 당당할 수가 있다니. 그녀가 그의 번호를 차단했다면 그 역시 그녀를 찾을 필요 없이 돌아가서 처리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강지한은 화면을 확인하고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 여자가 또 할아버지에게 고자질이라도 한 건가?’ ‘이젠 할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그를 혼내려는 걸까?’ 지난번에 매를 맞은 뒤로 최근 너무 바빠서 상처도 신경 못 썼더니 이제 염증이 나서 며칠째 고통스러웠다. 한참 후 강지한은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강지한! 너 요즘 어디에 가 있었냐? 왜 전화는 한 번도 받지 않는 거냐?”할아버지의 목소리는 거의 울부짖는 듯 분노가 그대로 드러났다. “저 요즘 진성에 출장 갔었어요. 핸드폰을 계속 켜놓고 있었는데 왜 안 받았겠어요?” 강지한은 늘 그렇듯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고 그는 정말로 전화를 꺼본 적이 없었다. “그럼 그쪽에 계속 있어! 평생 돌아오지 마!” 강준형은 화가 나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출장을 갔을 뿐인데 전화가 계속 안 된다니. 그게 단순한 우연일까?강지한처럼 예리한 사람이 왜 이 정도는 생각하지 못한 걸까? 강지한은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생각하고 있을 때 온지유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자 그의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무슨 일이야?” “지한 씨, 지금 어디야? 나 혼자 병실에 있으니까 너무 무서워. 와서 좀 같이 있어 줄래?” 온지유의 목소리엔 떨림이 섞여 있었고 그 공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알았어. 금
“그럼 어머니가 계획한 대로 하세요.” 이진영은 어머니와 대립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의 모든 결정은 이씨 가문을 위해서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말한 대로 그들은 이씨 가문의 명예를 누렸으니 개인적인 행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선택할 수 없었던 일이니까. “넌 먼저 한유나 씨와 연락하고 다시 전화해 줘. 저녁 식사는 취소할게.” “알았어요!” 이진영은 전화를 끊고 담배 한 개비를 피웠다. 그 연기 속에는 그 여자의 눈부시고 매혹적인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담배 한 개비를 마저 피우고 나자 여자의 얼굴도 사라졌다. 그는 살짝 웃으며 비서에게 한유나의 번호를 찾게 한 후 바로 전화를 걸었다. 곧이어 전화기에서 여자의 자만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당신의 소개팅 상대 이진영이에요.” “무슨 일이죠?”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냉담했다. 이진영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무슨 태도지?’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건가?’ “별일 없으면 그냥 끊을게요. 바빠요.” “소개팅 상대로 만나려면 점심에 얼굴 한 번 봐야죠. 어디죠? 데리러 갈게요.” 이진영의 말투는 여전히 평온했고 아무 감정이 없었다. “연구소로 와요.” 그녀는 빠르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진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생각했다. ‘역시 대가문의 따님답게 감히 나를 명령하네.’ “제가 일이 있어서 그럼 이만.” 그녀는 말을 끝내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바쁜 신호음이 들려오자 이진영은 코웃음을 치며 미소를 흘렸다. ‘잘난 척은 끝내주네.’ 그때 강지한의 전화가 걸려 왔고 이진영은 잠시 응급실에 있는 심미연을 떠올리며 망설인 뒤 전화를 받았다. “구도심 사람들 다 동의했어. 지금 와서 계약서에 사인해.” 강지한은 매우 지친 목소리였다. “내일은 안 돼?”그는 오늘 일정이 꽉 찬 상태였다. “오늘 밤에는 경성으로 돌아가야 해!” 강지한은 무의식
이진영은 신하린의 얼굴이 금세 빨개지는 것을 보고 살짝 눈을 좁혔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신하린,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이 여자가 혹시 자기가 여기서 뭔가 하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 이 병원이 자기가 소유하는 곳이라 해도 그런 식으로 무모하게 행동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하는 건 비밀스러움이 주는 그 자극적인 느낌이 있어 확실히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오늘 밤 당신 집에 가야 되나요? 아니면 우리 집으로 올래요?” 신하린은 이제 거짓말도 입을 열자마자 술술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사실 남자도 그녀가 진심을 말하지 않기를 원한다고 생각했다. 진짜 속마음을 말하면 상처가 될 테니까. “내가 네 집 하나 샀어. 일이 끝나면 같이 가서 보여줄게.”이진영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고 목소리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내가 사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신하린은 그가 주는 걸 원하지 않았고 그에게 뭔가를 받는다는 건 자존심이 상할 뿐이었다. “너 그곳 너무 좁아. 할 때 별로야.” 이진영은 손을 뻗어 신하린을 품으로 끌어안으며 그녀의 매혹적인 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비서한테 큰 소파랑 넓은 침대로 바꾸라고 했으니까 오늘 밤 한 번 써보자.” 조금 조롱이 섞인 말투였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은근히 기대가 치솟았다. 신하린의 얼굴은 금세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 남자가 정말 끝까지! 하루 종일 그런 생각만 하는 거냐고.’ “너 밥 해줄 거라고 말하지 않았어? 거기는 부엌도 넓고 기계도 다 새것으로 준비됐어...” 마지막 말은 그녀의 귀에 가까이 다가오며 속삭이듯 말했고 신하린의 얼굴을 빨갛게 물들었고 귀까지 붉어졌다. ‘이 남자는 정말 너무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바로 그때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고 신하린을 잠시나마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이진영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보며 번호를 확인
신하린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박유진에게 말했다. “잠깐 다녀올게요. 먼저 여기서 미연이 기다리고 있어요.” 이진영은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라 조금이라도 더 기다리게 하면 화를 낼 게 분명했다. 박유진은 그저 응답했을 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일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신하린은 그를 그윽하게 한 번 쳐다보고 그제야 돌아서서 떠났다. 박유진과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가능성이 없었다! 사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을 접고 있었다.안전 통로에서 이진영은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물고 있었다. 연기가 퍼져 나가면서 그의 잘생긴 얼굴이 그 속에서 아련하게 비쳤다. 신하린은 문 앞에서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얼굴은 참으로 잘생겼다. 그때 남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하며 인상을 조금 찌푸리며 말했다. “왜 안 와? 내가 널 잡아먹니?” 신하린은 시선을 떼고 한 발짝씩 그에게 다가갔고 마음속은 불안하고 떨렸다. 남자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나랑 있는 게 그렇게 싫은 건가?’ 신하린은 그의 앞에 다가가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미연이가 쓰러져서 박유진 씨와 함께 병원에 데려왔어요.” 이진영은 자연스레 그날 밤 강씨 가문에서 봤던 그 여자가 떠올랐다. 정말 독특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분위기 또한 차분하고 목소리는 매우 부드럽고 온화했다. 경성에서 그녀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는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토록 아름다웠음에도 강지한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마 그런 남자들은 결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는 걸지도 모른다.“미연이의 외할머니가 사흘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동안 혼자서 지키며 사흘을 보냈고 오늘 아침에 외할머니 장례식을 마친 후 쓰러졌어요.” 박유진과 자신 사이에 무언가 있다고 오해받길 원치 않았기에 그녀는 스스로 설명했다. 이진영은 눈을
신하린은 깜짝 놀라 손을 급히 떼었고 다시 돌아섰을 때 남자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다. 최근 며칠 동안 그의 전화를 피했던 신하린은 마음속에서 불안이 밀려왔다. 여기서 이 남자가 자신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 박유진도 있는데 말이다. 이진영은 신하린의 창백한 얼굴을 보자 속에서 폭발할 듯한 분노가 일렀다. ‘이렇게 겁을 먹은 정도로 내가 무서운 거야?’ 신하린은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이 곧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급히 그 앞에 다가가 애교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 “여긴 내 병원이야. 점검하러 왔는데 무슨 문제 있어?” 남자의 말투는 거칠었고 이미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신하린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그를 끌어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녁에 제가 직접 요리할게요. 함께 와서 먹을래요?” 심미연의 임신 사실이 절대 누설되지 않도록 이진영이 이미 말해둔 상태여서 신하린은 심미연을 이곳으로 데려왔지만 여기서 이진영을 만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정말 예상 밖이었다. “나한테는 수석 셰프가 요리해 주는데 넌 셰프 자격증은 있어? 나한테 밥 해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이진영은 차갑게 웃으며 날카로운 말투로 말했다. 며칠 동안 이 여자는 전화도 받지 않았고 문자도 답장하지 않았으며 영상통화는 아예 무시했었다. 그는 매우 화가 난 상태였다. 이제 와서 한 끼 식사로 그를 달래려고 한다니 그건 어림도 없었다. “그럼 됐어요!” 신하린은 약간 당황한 채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이 남자가 살짝 꼬리를 내리면 풀릴 줄 알았지만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 셰프 수준은 아니지만 요리를 꽤 잘하는 그녀였고 남자의 말은 그녀를 정말 난처하게 했다. 박유진은 이진영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그와 신하린 사이의 관계가 그리 단순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심미연은 알고 있을까?’ ‘모르고 있다면 알려야 할까?’
그는 그냥 강준형에게 더 이상 강지한의 일을 강제로 강요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었다. 강지한 같은 사람은 절대로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강준형은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미연이가 지난 3년 동안 겪은 그 모든 불공정한 대우는 다 내 잘못이야.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걸 인정하기가 싫어서 계속 모른 척하고 싶었어. 하지만 이제는 알겠어! 그만둘 거야. 미연이가 이혼을 원한다면 그건 그 자식이 감당할 문제야.” 3일 후 양경자의 장례식이 있었다. 하늘에는 잔잔한 비가 내리고 있었고 심미연은 검은 옷을 입고 우산을 쥔 채 묘비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차분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아 보였다. 마치 외할머니가 영원히 떠난 것이 아니라 잠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것처럼 말이다. 신하린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녀의 옆에 서 있었다. 3일 동안 심미연은 잠을 2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았다. 사실 심미연이 잠을 자지 않은 것보다 이 3일 동안 한 번도 울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고 지나치게 조용했던 사실이 신하린을 더 두렵게 했다. 신하린은 심미연이 극단적인 생각이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 박유진이 다가와 신하린과 짧게 눈빛을 주고받은 뒤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연아, 외할머니는 이제 편히 잠드셨어. 집에 데려다줄게.” 이 3일 동안 그는 심미연에게 휴식을 취하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그녀는 전혀 듣지 않았고 그녀가 하루하루 지쳐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외할머니는 편히 안장되었으니 그녀가 잘 수 있도록 집으로 데려가야 했다. 심미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오빠랑 하린이는 먼저 가. 난 할머니랑 좀 더 있다가 갈게.” “너 3일 내내 잠도 자지 않았잖아. 더 버티면 몸이 망가져!” 신하린은 목소리가 떨렸고 눈가는 이미 붉어져 있었다. 이 3일 동안 그녀는 심미연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신하린은 문 쪽을 바라보다가 은발을 휘날리며 걸어오는 강준형을 보고 급히 심미연을 불렀다. “미연아, 네 할아버지 오셨어.”심미연은 잠시 멈칫하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강준형은 지팡이를 짚고 그녀 쪽으로 걸어왔다.“미연아, 이렇게 큰 일이 있는데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니!” 강준형은 그녀의 너무 지친 모습에 마음이 몹시 아팠다. ‘정말 바보 같은 애구나.’ ‘어떻게 혼자서 이 모든 걸 짊어지려고 했을까.’ 심미연은 일어나려 했지만 무릎이 너무 아파 일어설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은 채 말했다. “할아버지, 어떻게 오셨어요?”그녀는 강지한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 강씨 가문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강지한에게 외할머니의 죽음을 이용해 책임을 피하려는 교활한 사람일 테니 그 이미지대로 남기로 했다. “하루 종일 연락도 안 되고 전화는 꺼져 있더라. 걱정돼서 사람을 시켜 확인해 봤더니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됐어. 미연아, 나는 네가 강지한 그 자식에게 마음이 떠난 걸 알아. 그런데 그놈은 그놈이고 나는 나야. 이런 일을 나한테까지 숨기지 말았어야지.”강준형은 빈소를 잠시 바라보며 심미연이 혼자 바쁘게 모든 걸 처리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다. ‘결국 이 모든 게 강지한 그 자식 때문이야!’ 강지한을 생각하니 강준형의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심미연도 연락이 안 됐고 강지한도 연락이 안 되었다. 고의로 잠적을 한 건지 뭔 일이라도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아내면 반드시 그 자식에게 따지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바빳어요. 핸드폰도 꺼져버려서 잊고 있었어요.”심미연의 목소리는 피곤함에 찌든 느낌이었다. “할아버지, 기사님이 데려다주신 건가요?” 그녀는 강지한에게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강준형에게 진짜 생각을 말할 리 없었다. 강준형은 심미연의 눈에 짙게 퍼져 있는 혈관과 창백한 얼굴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내가 사람을 데려왔어. 나머지 일은 그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