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야?”석지훈은 섬세하게도 방금 내 손목이 젖지 않게 일부러 감싸줬다.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밥 먹자고요.”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네가 밥할 줄 알아?”“당연하죠.”내가 대답했다.“그럼 예전에 내 별장에 있을 때는 왜 내가 해주는 밥을 기다렸지?”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뭔가 생각난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꼭 작은 고양이처럼 불쌍하게 나만 쳐다보면서 밥 달라고 기다렸잖아.”그때는 고현성 때문에 상처받아서 요리하기 싫었고 무의식적으로 내가 요리를 못 한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모든 과거를 내려놓고 나니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직접 요리하고 싶고 그의 칭찬을 받고 싶어졌다.요리 안 했던 진짜 이유는 말할 수 없어서 좀 궁색한 변명을 했다.“그건 내가 게을러서 그랬던 거죠. 설마 나 걱정돼서 요리해 준 거였어요?”석지훈은 나를 흘끗 보더니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네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길래 일부러 태웅한테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네가 내가 밥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안 해주면 너 진짜 굶을 작정이었나 싶었지.”나는 웃으며 말했다.“불쌍하게 여겨줘서 정말 고마웠네요.”석지훈은 내 손을 놓고 곧장 일어섰다.나는 욕조에서 허둥지둥 기어 나왔고 석지훈은 내게 깨끗한 목욕가운을 입혀 주었다.나는 여러 가지 요리를 푸짐하게 했고 석지훈도 꽤 많이 먹었다. 다 먹고 나서 그는 설거지를 하려고 했다.내가 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나에게 쉬라고 했다.그는 원래 말하면 하는 사람이라 나는 주방을 그에게 맡기고 침실로 돌아왔다. 손목 상처를 조심하며 씻고 침대에 누웠을 때, 오랜만에 윤다은에게서 문자가 왔다.[수아 언니, 어떤 남자가 영화 보자고 하는데요.]나는 생각하다가 물었다.[거절할 거야?]윤다은이 고정재에 대한 마음을 접는 것도 좋은 일이었다.그녀가 고정재와는 인연이 아니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윤다은 스스로도 타이밍이 좋지 않았고
그날 밤 석지훈은 별장에서 자지 않고 윤승민이 가져온 헬리콥터를 타고 한밤중에 동성을 떠났다.떠나기 전에 내가 물었다.“어디 가요?”그는 간단하게 대답했다.“핀란드.”또 핀란드에 간다고...나는 망설이며 물었다.“언제 돌아와요?”“월말에.”그런데 지금은 12월 초였다.매번 며칠 함께 있지도 못하고 그는 떠났다.나는 입술을 깨물며 아쉬운 듯 그를 바라봤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헬리콥터 옆에 서 있던 그는 윤승민이 보는 앞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팔을 벌렸다.내가 영문을 몰라 그 자리에 서서 그를 바라보자,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리 와. 안아보자.”다른 사람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석지훈은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나는 달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그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집에서 기다리고 무슨 일 있으면 승민이한테 연락해.”나는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조심해서 다녀오세요.”“그래. 무슨 선물 받고 싶어?”석지훈이 선물을 묻다니... 처음이었다.나는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오빠요.”그는 눈썹을 치켜올렸다.“어?”“오빠가 빨리 돌아오는 게 내겐 선물이에요.”그 말을 들은 석지훈은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알았어.”나는 하늘에서 한 바퀴 돌고 떠나는 헬리콥터를 계속 바라봤다. 이때 윤승민이 갑자기 내 옆에서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연수아 씨, 저는 석 대표님의 저런 모습은 처음 봐요.”나는 웃으며 물었다.“내가 알던 그 사람과도 달라요! 윤 비서님, 오빠는 저랑 진심으로 만나고 있어요.”윤승민이 대답했다.“네. 대표님은 진심이세요.”윤승민과 나는 잔디밭에서 한참 동안 감상에 젖어 있다가 그와 함께 산에서 내려와 동성 시내로 돌아왔다.아파트로 돌아온 나는 한약을 마시고 나서 강해온에게 문자를 보냈다.[집사님 건강은 어때요?]강해온은 곧바로 답장했다.[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한 달 정도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보면 퇴원할 수 있을 것 같답니
조민수는 이번 협력에 참여하기를 꺼리는 듯하더니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했다.“수아야, 반년 전쯤 나와 고현성이 상의해서 그런 결정을 내렸어. 그 결과로 네가 고현성을 미워하게 된 거고. 이건 내가 고현성에게 미안해. 난 고현성과 적으로 지내고 싶지 않지만, 정말 네가 나의 도움을 원한다면 충분히 고민한 뒤에 알려줘. 난 네 편에 설 거야.”조민수가 말한 일은 예전에 오혜원을 위해 나를 치료해 주겠다는 조건으로 나에게 사실을 숨기고 고현성이 유서정과 결혼하는 것을 도왔던 일이다.그 일은 이미 지나갔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기에 나는 더 이상 과거의 일을 따지고 싶지 않았다. 이미 복잡하게 얽혀서 풀 수 없는 문제였다.조민수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니 나도 더 이상 그를 내 편으르 끌어드릴 방법이 없었다. 대신 담현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담현우는 슬픈 표정의 이모티콘을 보내더니 난감해하며 설명했다.[미안해요. 내가 담씨 가문의 후계자인 건 맞지만 지금은 우리 큰누나가 담씨 가문을 관리하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 누나는 석지훈을 좋아해서 수아 씨를 돕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현아한테 한번 부탁해 봐요. 우리 누나는 항상 현아를 두려워하거든요.]‘담현우의 큰누나? 그리고 그 누나가 담현아를 두려워한다고?’그제야 나는 며칠 전 만났던 담유미가 떠올랐다.‘담유미가 석지훈을 좋아한다고? 그래서 나를 계속 방해했던 거야?’담씨 가문과의 협력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고민 끝에 담현아아게 메시지를 보냈다.[지금 어디야?]담현아에게서 답장이 바로 오지 않아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창가로 걸어갔다. 그러자 나는 고현성과의 과거가 떠올랐다. 나도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솔직히 나는 고현성과 적대적인 관계로 지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것은 단지 나의 바람일 뿐이었고 지금 내가 가장 두려운 사람은 고현성이었다. 그는 절대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마음이 복잡해진 나는 핸드폰을 들어 석지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빠
나는 석지훈에게서 전화를 받지 못했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저녁이 될 무렵 담현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지금 운성에 있어요.]나는 의아해서 물었다.[운성에는 무슨 일로?]담현아에게서 답장이 왔다.[여기서 열리는 만화 전시회에 초대받아서 왔어요. 아마 내일 동성으로 돌아갈 거예요.]나는 꽤 오랜 시간 고민했지만 결국 담현아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기로 했다.별일 아니라는 메시지를 보낸 순간 담현아에게서 영상 통화가 결려왔다.통화를 연결하니 담현아는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핑크색으로 염색한 채 굵은 웨이브로 스타일링 되어 있었다. 담현아의 정교한 얼굴 덕분에 정말 만화에서 튀어나온 소녀 같아 보였다.담현아가 예전에 기모노를 입었던 모습과 나시를 입고 시크한 스타일을 소화했던 모습을 다시 떠올리니 그녀는 어떤 스타일이든 완벽히 소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특히 지금 모습은 정말 매력적이었다.나는 진심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정말 예쁘다.”담현아는 웃으며 말했다.“친구가 억지로 끌고 와서 만화 전시회에 참여하게 됐어요. 조금 있다가 고정재의 개인 음악회가 있다고 해서 표를 사서 가볼 생각이에요. 아침 일찍 동성으로 돌아가려고요.”나는 웃으며 물었다.“너 고정재를 싫어하지 않았어?”담현아는 단호한 태도로 대답했다.“맞아요. 난 고정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자질한 일을 엄청 심각하게 만들고 사고 방식도 너무 구식이라 고리타분해요.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지만 고정재는 고정재고 고정재의 피아노 연주는 감상할 가치가 있죠.”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고정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야. 고정재의 연주는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지.”담현아는 나의 말에 동의했다. 이때 담현아의 옆에서 누군가 인사를 건네자 그녀는 고개를 돌려 열정적으로 인사했다.“너희 먼저 가. 나는 친구랑 몇 마디만 더 하고 갈게.”다시 나를 바라본 담현아가 물었다.“그래서 무슨 일이에요?”나는 무의식적으로 부인했다.“별일 아니야.”“수아
담현아가 과연 누구와 결혼하고 싶어 할지 궁금했다.마치 많은 사람들이 석지훈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나는 담현아가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 기대되기까지 했다.나는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다.“고마워, 현아야.”담현아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더니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별일 아니에요. 우리는 친구고 언니는 아직 나한테 스포츠카도 사줘야 하잖아요.”담현아가 스포츠카 얘기를 꺼내자 나는 예전에 담현아를 위해 석지훈에게 물어보겠다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일은 석지훈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며칠 동안 미뤘다가 완전히 잊고 있었다.만약 담현아가 방금 말하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나는 다시 담현아에게 말했다.“며칠 안에 차 가져다줄게.”“고마워요, 수아 언니.”담현아는 바쁜 일이 있다며 몇 마디만 더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나는 담현아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사실 담유미가 그렇게 큰돈이 걸린 도박까지 즐길 정도라면 담현아가 돈이 부족할 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담현아는 늘 스스로 가난하다고 말했다.나는 의문이 들어 윤승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윤승민은 내가 담현아라는 이름을 꺼내자 설명했다.“담현아 아가씨라면 조사할 필요 없습니다. 저도 담현아 아가씨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까요.”나는 궁금해서 물었다.“뭘 알고 있는데요? 말해주세요.”“동성에서 석씨 가문과 장기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곳은 오직 담씨 가문 뿐입니다. 이유가 궁금하세요?”윤승민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설명을 이어갔다.“석 대표님께서 석씨 가문으로 돌아오신 해부터 매년 영재반을 개설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천재 아이들을 찾아와 선발했는데 그중 담현아 아가씨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선발된 아이였습니다. 게다가 담현아 아가씨는 당시 영재반에서 가장 어린 나이였고 10세도 채 되지 않았었습니다.”석씨 가문에서 영재반을 운영했다니 정말 놀라웠다. 석씨 가문의 기술력이 이렇게 강력하고 업계의 모든
내가 윤승민에게 담현아가 왜 담씨 가문에 이 사실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지 물었더니 윤승민은 이렇게 대답했다.“담현아 아가씨는 비밀이 많은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이 알기를 원하지 않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지켜보는 것뿐입니다.”나는 존경심을 가득 품은 채 전화를 끊었다. 침대에 혼자 누워있으니 갑자기 석지훈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겨우 하루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앞으로 한 달을 어떻게 견딜지 막막했다.이번 석지훈의 부재를 통해 내가 그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항상 석지훈의 곁에서 조금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침대에서 아무리 뒤척여도 잠이 오지 않았다. 시차를 계산해 보니 석지훈이 있는 곳은 새벽 3시쯤이었다.결국 나는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아 한참을 망설이다가 핸드폰을 들어 석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런데 계속 신호음만 들릴 뿐 석지훈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실망하며 전화를 끊은 뒤 통화 기록을 아래로 넘겼다. 그러다 한 기록이 눈에 들어왔다.‘나의 친어머니.’내가 그녀에 대해 궁금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그녀가 내 친어머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나의 친어머니는 자기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를 국내에서 멀리 떨어진 프랑으로 보내버렸다.나는 친어머니와의 통화 기록을 삭제한 뒤 비서에게 연락해 지금 석씨 가문 부모님의 연락처를 알아봐 달라고 했다.때를 기다렸다가 내가 직접 석지훈의 부모님을 데리러 가기로 했다.맞다, 바로 운성시로 갈 것이다. 비에 젖어 음울한 그 도시로 말이다.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침대에 누웠지만 머릿속은 온통 석지훈의 모습으로 가득했고 그와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그렇게 그리움으로 마음이 무거워질 때쯤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황급히 화면을 확인했더니 전화를 건 사람은 연시혁이었다.나는 창밖의 별들을 바라보며 전화를 받았다. 연시혁은 어쩔 줄 몰라 하는 목소리로 말했다.“도저히 그 여자를 찾을 수 없어.”연시혁이 찾고 있는 그
석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에 빠졌다. 나는 내가 그를 방해한 것 같아 정적을 깨고 먼저 입을 열었다.“그럼 이만 끊을게요.”그런데 갑자기 석지훈이 나를 불렀다.“윤아야.”나는 의아해서 물었다.“네?”석지훈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핀란드에 놀러 오고 싶어?”석지훈은 내가 그와 떨어지기 싫어한다는 걸 눈치채고 이렇게 물은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 달콤한 목소리로 물었다.“정말 가도 돼요? 내가 가면 방해되는 거 아니에요?”석지훈은 내 질문에 답하지 않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잠시 후에 윤 비서가 널 공항까지 직접 데려다줄 거야.”이 말을 끝으로 석지훈이 전화를 끊자 나는 기쁜 마음으로 일어나 욕실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침실로 돌아가 큰 캐리어를 꺼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화장품이며 스킨케어 제품 같은 것도 전부 챙겼다.핀란드의 추운 날씨가 떠올라 두꺼운 패딩도 몇 벌 넣었더니 캐리어는 금세 가득 찼다. 나는 캐리어를 다 챙긴 뒤 가방을 골랐다.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결국 분홍색 실퍼 체인이 달린 루이비통의 숄더백을 선택했다.지금 시간은 대략 아침 8시였다. 핀란드 공항까지 가는 데 4시간이 걸리니 출발 시간을 포함하면 도착하면 새벽 2시쯤 될 것이다. 핀란드 시간으로는 밤 9시쯤이다.나는 윤승민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계산을 해봤다. 오늘 석지훈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속에서 설렘이 멈추지 않았다.내가 석지훈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나는 이제 석지훈과 단 1분 1초도 떨어지기 싫었고 그와의 모든 만남이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마치 첫사랑처럼 두근두근 떨렸다.윤승민은 금세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내가 아래로 내려가자 윤승민은 이미 예약해 둔 비행기 티켓을 내게 건넸다.내가 티켓을 받아 들자 윤승민이 물었다.“여권 챙기셨어요?”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가져왔어요.”윤승민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긴급 비자를 대신 처리하려고 했는데 이미 비자가 있으시더군
눈앞의 사람은 한 번 만난 적 있는 한민수였다. 그는 노란색 긴 패딩을 걸치고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봤다.“어머, 내가 지훈이보다 수아 씨를 먼저 찾게 됐네요.”한민수가 석지훈을 언급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지훈 오빠는 어디 있어요?”한민수는 손으로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석지훈이 곧고 단정한 모습으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석지훈은 끝자락이 무릎까지 오는 검은색 롱코트에 목에는 짙은 색의 머플러를 둘렀고 코트 안에는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나는 석지훈이 이렇게 편안한 차림을 한 모습을 처음 봤다.내가 석지훈을 계속 바라보자 한민수는 농담을 던졌다.“눈이 빠지겠어요. 수아 씨, 남자 친구와 고작 하루 떨어져 있었는데 이렇게 따라오다니. 나중에 헤어지게 되면 어쩌려고 그래요?”나는 한민수를 흘겨보며 말했다.“절대 헤어지지 않을 거예요.”“아주 확신에 차 있네요.”나는 한민수의 농담을 무시하고 눈앞에 석지훈을 계속 바라봤다. 석지훈이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억울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오빠, 나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요.”석지훈은 한민수가 보는 앞에서 나의 차가운 뺨을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감싸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왜 이렇게 차가워?”석지훈은 손을 들어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풀더니 내 목에 둘러주었고 내 손에서 백을 받아 자기 어깨에 걸었다. 그러고는 내 캐리어를 끌며 떠나려 했다.한민수는 석지훈이 능숙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며 말했다.“세상에. 이거 우리가 알던 냉혹하고 무정한 석지훈 맞아?”분홍색 숄더백이 석지훈의 어깨에 걸려 있으니 조금 어색해 보이긴 했지만 석지훈은 한민수를 흘겨보며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닥쳐.”석지훈은 자신이 한 행동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앞서 걸어갔고 나도 한민수를 흘겨보며 얼른 석지훈을 따라갔다.한민수는 몇 걸음 뒤따라오더니 내 손목을 잡아 멈춰 세웠다. 나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왜 이래요?”“연수아 씨, 어떻게 지
내가 간신히 화를 참고 있는데 누군가 말했다.“고현성은 이제 끝났어. 잘나가던 인생이 재앙 덩어리를 아내로 맞는 바람에 망한 거잖아!”재앙 덩어리...나는 눈을 감고 화를 가라앉혔다. 그때 고현성이 갑자기 고개를 들고 그 사람을 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수아는 재앙 덩어리가 아니야!”그는 모든 것을 잊었지만 수아는 기억하고 있었다.그리고 지금 그는 오직 그의 수아만을 옹호하고 있었다.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저도 모르게 침묵하는 석지훈을 바라봤다. 그 사람은 내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때 오히려 담유미가 물었다.“그럼 넌 바보야?”바보에게 바보냐고 묻다니.나는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입 다물어요!”“왜? 부끄러워서 화내는 거야?”한성범은 이때다 싶어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그럼 고현성이 바보가 아니라는 거야? 연수아, 난 널 초대 안 했으니 나가. 곧 ‘바보극' 공연이 있거든!”한성범은 석지훈의 앞에서도 거침이 없었다.내가 정말 아무것도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나는 눈앞의 술잔을 집어 그에게 던졌다. 하지만 석지훈은 그를 위해 막아냈다. 마음속에서 갑자기 분노가 치솟았다.그때 고현성이 황급히 일어나 나를 진정시켰다.“저 사람들 때문에 화내지 마. 수아는 재앙 덩어리가 아니야. 수아는 그냥 내 아내일 뿐이야!”나는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차가운 눈빛으로 석지훈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당신은 저 사람을 감쌀 건가요?”석지훈은 차가운 침묵으로 나에게 답했다.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테이블 위의 술잔을 다시 한성범에게 던졌다. 하지만 남자는 가볍게 받아 바닥에 던져버렸다.유리 조각들이 순식간에 바닥에 흩어졌다.그때 담유미가 차갑게 말했다“연수아 씨, 너무 건방지네요.”그러자 담현아가 차갑게 꾸짖었다.“입 닥쳐!”담유미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원태웅은 황급히 나를 껴안으며 말했다.“윤아야, 화내지 마. 우리 여기서 나가자!”나는 눈
석지훈은 당연히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래에서 위로 그를 올려다보며 비판했다.“오후에 그 일은 당신이 잘못했어요!”그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음?”“나는 그 사람들과 친분이 있어요. 친구처럼. 그들이 나를 유람선에 초대한 건 내가 그들과 어울릴 만한 사람이기 때문이지, 당신 때문이 아니에요! 석지훈 씨라고 했죠? 설마 내가 당신을 좋아해서 당신 주변에 자주 나타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근데 내가 당신의 무엇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당신이 우리 석씨 가문을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요?”내 말은 다소 따끔했고 석지훈의 얼굴은 차가워졌다. 나는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웃었다.“어떤 사람들은 가끔 자기 생각에 빠져 착각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혹시 당신 마음속으로는 나를 좋아하는데 인정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나를 피하고 당신 앞에 나타나지 못하게 하는 거죠? 설마 마음이 흔들릴까 봐 두려운 건가요?”석지훈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나는 눈치껏 말을 돌렸다.“물론. 나는 당신이 아니니까 당신 속마음을 알 수는 없죠. 됐어요, 당신이랑 말싸움하기 귀찮아요!”그는 차갑게 말했다.“허튼소리.”나는 웃으며 말했다.“그럼 평소에 나한테 신경 끄세요!”석지훈은 돌아서서 가버렸다. 나는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못 참네. 그 성격에 어떻게 여자 없이 지금까지 버텼을까? 아마도 내가 운이 좋은가 봐. 안 그러면 당신을 어떻게 얻었겠어!”‘지훈 씨,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해. 신앙처럼. 당신 말대로 이 길을 따라갈게! 당신이 나에게 아무리 차갑게 굴어도 상관없어! 어차피 다 기억해둘 테니까! 나중에 똑같이 갚아줄 거야!’담현아는 몇 분 동안 통화를 하고 돌아왔다. 나는 놀리듯 물었다.“부부끼리 무슨 달콤한 얘기를 그렇게 오래 해?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네. 이제 푹 빠진 거야?”담현아는 웃으며 물었다.“푹 빠졌다는 게 사랑한다는 뜻이에요?”내가 되물었다.“그럼 아니야?
담현아는 의리가 있었다. 그녀는 나와 함께 홀을 나와 뒤뜰을 찾아갔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갑자기 고현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담현아가 먼저 그를 언급했던 것이다.그녀는 머뭇거리며 말했다.“나 아저씨한테 고현성의 현재 상황을 들었어요. 그의 지금 상황이... 아저씨는 아주 괴로워하더라고요. 결국 하나뿐인 동생이니까. 수아 언니는 어때요?”담현아는 내 마음이 아픈지 묻고 싶어 했다내 마음이 안 아플 리가 있겠는가?그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내 전남편인데.아무렇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게다가 지금의 고현성은 변하고 있었다.그는 예전의 그 남자와는 완전히 달랐다.그는 심지어 아이를 나의 생일선물로 돌려주기까지 했었다.나는 담현아 앞에서 고현성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괜히 기분이 다운될 것 같았던 것이다. 그래서 다른 얘기를 꺼냈다.“아무렇지도 않아. 근데 희연이가 요즘 연락 오던?”“네. 흉터 제거 수술을 받아서 아이스랜드에서 한동안 머물러야 한대요. 왕자현 씨가 옆에서 계속 돌봐주고 있다고 하더라고요.”담현아가 왕자현을 언급하자 나는 흥미가 생겨 말했다.“왕자현 씨 집안이 엄청 부자라며?”담현아는 뭔가 아는 듯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왕씨 가문은 세력은 없어도 돈은 엄청 많죠.”돈이면 다 되지. 돈이 곧 힘인데.담현아가 뭔가 더 말하려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는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급히 일어서며 고정재의 전화라고 했다.담현아가 남편 전화를 받으러 뒤뜰을 나가자 앉아서 할 일이 없던 나는 일어나려고 했다. 바로 그때 나는 2층 발코니에서 고독한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나는 미소를 짓고 떠나려 했다.그런데 그가 뜻밖에도 나를 불러 세웠다.“연수아 씨.”나는 걸음을 멈췄다. 석지훈이 나를 부른다는 사실에 내심 놀라웠다.오후에 자기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경고하지 않았던가?그가 그렇게 차가우니 나도 굳이 아부할 필요는 없었다.나는 작은 소리로 물었다.“우리가 그렇게 친했나요?”그는 내 질문
담현아는 옷을 갈아입고 싶어 했다. 내 차에도 여벌 옷은 있었지만 우린 키 차이가 있었고 예지한도 여기 살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녀를 근처 쇼핑몰에 데려갔다.담현아는 쇼핑이 빨랐다. 핑크색 롱드레스를 입으니 정말 예쁘고 귀여웠다. 그녀는 또 반지 몇 개를 손가락에 끼고는 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어때요? 예뻐요?”담현아는 워낙 예뻤기에 뭘 입어도 예뻤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심으로 말했다.“아주 예뻐.”담현아는 바보같이 웃으며 말했다.“저는 꾸미는 걸 잘 안 해서...”그녀는 쇼핑몰 화장대에서 가볍게 화장을 하고 나서야 나와 함께 한씨 가문으로 갔다. 그리고 경호원을 많이 데려오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다.오늘 한씨 가문에는 일부러 트집 잡으러 가는 거라 나도 준비를 해뒀다. 휴가가 방금 끝난 비서에게 문자를 해두었던 것이다.한씨 가문에 도착하니 비서는 이미 와 있었다. 내 옆에 있는 23명 외에도 비서는 꽤 많은 사람들을 데려왔다.비서는 우리 뒤를 따라 들어가고 나머지는 입구를 지켰다. 담현아는 초대장을 내고 들어가자마자 담유미를 발견했다.흰색 이브닝드레스에 진한 화장을 한 담유미는 큰 키 덕분에 드레스가 참 잘 어울렸다. 담현아는 그녀를 불러 세우며 물었다.“담유미, 너 엄마 아빠 앞에서 무슨 말을 했어?”담유미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너 지금 언니한테 따지는 거야?”“미안하지만, 난 오빠밖에 없어.”담현아의 말은 너무 매몰찼다.담유미의 얼굴은 굳어졌지만 곧 설명했다.“난 네 일에 관심 없어. 부모님은 오빠한테 네 남자친구 얘기 들으신 거야.”담현아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럼 너랑 상관없는 일이네!”담현아의 말투는 꽤나 퉁명스러웠지만 담유미는 별말 없이 얼굴만 굳힌 채 가버렸다.그녀가 가고 나서야 담현아가 말했다.“우리 집의 골칫거리는 바로 저 여자인데 집안 사업까지 쥐고 흔들고 있죠. 하지만 뭐, 나쁘진 않아요. 어차피 나랑 오빠는 담씨 가문의 사업에는 관심 없으니까!”담유미에게 그렇게 대단한 능력이 있다니.
석지훈을 이렇게 놀리는 건 한민수밖에 없을 것이다.석지훈은 침묵으로 한민수에게 답했다.한민수는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수아 씨는 동성에서 잘나가는 집 딸이잖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줄 서는지 알아? 게다가 예쁘기도 하지!”크루즈선 위라서 석지훈은 평소처럼 정장을 입지 않고 얇은 흰색 셔츠와 검은색 실크 바지만 입고 있었다. 평소 차가운 이미지에 뭔가 좀 자유로운 느낌이 더해져 꽤 매력적으로 보였다.한민수가 계속 석지훈의 앞에서 나를 칭찬하자 옆에 있던 원태웅도 참지 못하고 말했다.“윤아는 확실히 예쁘지.”석지훈은 원태웅을 홱 쳐다보며 물었다.“너 뭐라고 불렀어?”“윤아. 애칭이야!”석지훈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너희 둘, 앞으로 얘 내 앞에 데려오지 마.”그는 한민수와 원태웅의 속셈을 눈치챘던 것이다.그는 분명 내가 자신을 좋아하는 다른 평범한 아가씨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래서 그들 두 사람에게 나를 자기 앞에 데려오지 못하게 한 것이 분명했다.이런 그를...지금 이 순간 나는 석지훈이 정말 어이가 없었다.하지만 나는 착하게만 굴면 석지훈의 눈에 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나는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내가 가죠. 뭐.”나는 한민수의 손을 뿌리치고 크루즈선에서 내려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이다. 차에 타니 원태웅의 문자가 왔다.[형님이 마누라 잡다가 나중에 엄청 후회할 것 같은데!]나는 입술을 깨물고 답장했다.[다 적어둘 거예요.]나는 휴대폰 메모장을 켜서 몇 년 몇 월 며칟날에 석지훈이 나에게 한 일을 적었다. 나중에 그의 병이 나으면 모조리 계산할 생각이었다.나는 쪼잔하게 하나하나 다 적어둘 것이다.나는 차를 몰고 카페로 돌아왔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니 피곤해져서 나는 카운터에 엎드려 7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담현아를 깨우러 안으로 들어갔다.담현아는 이미 깨어 있었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가서 그녀의 뺨
담현아는 지난번 일 때문에 계속 앙금을 품고 있었는데 이제 주민솔이 경찰서에서 나왔다고 하니 순순히 넘어갈 생각은 전혀 없는 듯했다. 그녀는 나에게 카페에서 30분 동안 기다리라고 했다.30분은 금방 지나갔다. 검은 라이더 재킷을 걸친 담현아가 까만 머리를 땋은 채 캐리어를 끌고 내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겨우 끝났어요!”나는 웃으며 물었다.“왜 이렇게 힘들어?”“일찍 들어오려고 며칠 밤샜어요. 일단 카페에서 좀 자고 있을게요. 이따가 7시에 깨워줘요!”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2층에 방 있어.”고양이 카페 2층은 며칠 전 내가 임대해 놓은 것이었다.담현아는 짐을 1층에 두고 2층으로 올라가 잠을 잤고 나는 그녀의 여행 가방을 끌고 그녀를 따라 올라가 방에 짐을 놓아주었다.내려와 보니 예지한이 얼굴을 찌푸리며 나에게 물었다.“사장님 가게에는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자주 와요?”이상한 사람?어디가?그냥 다 그녀가 아는 사람일 뿐이지.나는 그녀를 잠시 쳐다보며 말했다.“들켰네요!”그것도 내가 실수로 들키게 한 것이었다.이 말에 예지한은 표정 변화 없이 물었다.“내 정체를 알았어요?”“네. 방금.”내가 대답했다.“아, 여기 좀 더 있으려고 했는데.”예지한은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내가 물었다.“어떻게 할 생각이에요?”“한 달 더 있을 거예요.”그녀가 말을 이었다.“여기 떠나기 아쉬워요.”예지한은 여기서 2년을 살면서 모든 것에 정이 들었고 또 여기는 한가로워서 떠나기 아쉬울 만도 했다.하지만 한민수의 말이 맞았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책임이 있었다. 예지한이 아직도 저렇게 놀 수 있는 건 할아버지가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었다.그리고 한민수, 예유진 그리고 진유겸, 심지어 나까지도 우리 모두는 자신이 가진 것을 굳건히 지켜야 했다.예지한도 마찬가지였다.그녀에게는 지켜야 할 예 씨 가문이 있었다.예지한은 좀 시무룩해 하면서 다시 일하러 갔다. 나는 카운터를 보고
어젯밤 길바닥에서 자고 두 시간이나 걸었더니 피곤해서 그런가, 감기 기운이 있었다.내가 막 나가려는데 원태웅의 문자가 왔다. [형이 방금 운성에 도착했어. 이틀 정도 여기에 머물 거야.]그는 바쁜 남자였다.항상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기에 이틀이나 머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석지훈과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니 항상 만남은 짧고 헤어짐은 길었다. 며칠 함께 있으면 또 헤어져야 했고 헤어지면 한두 달, 길면 반년 동안 떨어져 있어야 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팠다.나는 운성으로 돌아온 후 진유겸의 결혼식이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나는 그가 왜 결혼식을 연기했는지 잘 몰랐지만 최희연이 국내에 없으니 그녀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운성에 도착한 후, 나는 고양이 카페에 가서 최희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곧 답장이 왔다.[나도 방금 알았어. 원래 일찍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제는 미룰 수밖에 없네! 수아야, 나 방금 수술을 마쳤고 얼굴의 흉터가 아직 회복 중이라 아이스랜드에 오랫동안 머물러야 할 것 같아. 하나한테서 이미 영업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네가 시간이 된다면 카페를 좀 돌봐줘!]나는 알겠다고 답장을 보낸 후 다시 물었다.[흉터는 어때?]최희연이 답장했다.[아직 회복 중이지만 왕자현 씨가 흉터가 남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어. 나는 그를 믿어. 다 나으면 귀국할게!][그래. 그때의 너는 분명 아름다울 거야.]최희연은 바로 답장하지 않고 30분 뒤, 갑자기 슬픈 어조로 말했다.[왕자현 씨가 내가 그림을 배웠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 그림을 가르쳐주고 싶어 해. 그는 그 분야에 조예가 깊거든. 근데 내 손목이... 수아야, 나는 붓을 잡을 수는 있는데 손이 떨려서 도저히 붓을 댈 수가 없어!]최희연은 그림을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정성을 쏟았다. 그 노력으로 힘들게 성과를 내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주민솔 그 여자는 정말 죽어 마땅했다.며칠 전에 진유겸은 그녀를 경찰서에서 꺼내주었다.나는 최희연에게 조심스럽게
석지훈은 내가 생떼를 부린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멈춰 섰고 그는 내가 따라오지 않자 몸을 돌려 차가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내 모습이 전혀 비치지 않았다.나는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아주 공손하고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생떼 부리지 마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석지훈: “...”이번에 석지훈은 나를 완전히 무시했다.그는 별장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바로 들어가지 않고 몸을 돌려 별장 밖으로 나가 길가에서 도라지꽃 몇 송이를 꺾었다.나는 꽃을 옆에 두고 길가에 옆으로 누워 눈을 떴다. 늘씬한 몸매, 아름다운 드레스, 그리고 꽃 한 송이. 2층에서 보면 아름다운 그림 같을 것이다.내 행동은 아주 이상했다.정상적인 사람은 이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나는 지금 술에 취한 상태였다. 비록 대부분은 연기였지만 술에 취한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석지훈은 분명 나를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여기 누워서 그를 기다릴 것이다.석지훈은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참을성이 있었다. 나는 그가 2층 방에서 나를 보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나도 몸을 돌려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렇게 나는 별장 입구에 밤새도록 누워 있었고 그러다가 먼저 잠들어 버렸다. 깨어났을 때 나는 더 이상 술에 취한 척할 수 없었다. 아무리 술에 취해서 의식이 흐릿했다고 해도 하룻밤이 지나면 알코올은 이미 다 날아가 버렸을 테니 말이다.나는 재채기를 하고 일어났다. 원래는 함승윤에게 전화해서 나를 데리러 오라고 하려고 했는데 그때야 내 가방이 석지훈의 차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초인종을 눌렀다.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내가 거의 포기하려고 할 때 정장 차림의 석지훈이 나왔다.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그런 석지훈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하지만 그리움이 더 컸다.예전처럼 차갑
이때 누군가가 나를 위해 설명해 주는 목소리가 들렸다.“형, 이분은 석씨 가문 가주, 형의 석씨 가문을 빼앗은 여자야! 방금 보니까 술에 취했더라고. 곁에 비서도 없이 말이야. 전에 날 도와준 적이 있는데 차마 그녀를 혼자 둘 수 있어야지. 그래서 집에 데려다주려고.”남자는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네가 언제부터 이렇게 친절했지?”원태웅: “...”석지훈이 지시했다.“이 여자를 네 차에 태워.”“형, 내 차 고장 났어. 우리 두 사람 좀 집까지 데려다줘! 얘는 술 취하면 얌전해. 절대 방해 안 할게.”석지훈: “...”석지훈은 결국 나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런데 원태웅은 전화를 받고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가야 했다. 정말 일이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석지훈의 운전기사가 그를 길가에 내려주자 차에는 나와 석지훈 두 사람만 남았다.나는 일부러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그의 어깨에 기댔다. 그는 신사답게 나를 밀어내지 않고 창문을 열었다. 나는 그의 팔을 껴안고 웅얼거리며 말했다.“정우 씨.”“허, 정우까지 네 손에 넘어간 거야.”남자가 갑자기 뜬금없이 말하자 나는 당황한 척 그를 바라보았다. 이때 운전기사가 물었다.“아가씨, 어디 사세요?”나는 계속 당황한 척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남자는 무관심하고 간결하게 말했다.“주소.”나는 모르는 척 물었다.“무슨 주소요?”그는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네 집 주소.”나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정말 오랫동안, 거의 돌처럼 굳어 버릴 때까지 생각하다가 석지훈의 품에 쓰러졌다.그는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운전 기사에게 지시했다.“동성으로 돌아가.”2년 전 석지훈은 동성에 살았었다.동성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보니 창밖에는 온통 도라지꽃이 피어 있었다. 여기는 석 씨 저택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석지훈은 몰래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나는 깨어난 후 계속 멍하니 차 안에 앉아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다행히 술에 취해서 그런지 그는 나를 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