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은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빛이 없는 방 안은 죽은 듯 고요했다.‘그냥 꿈이어서 정말 다행이야...’그러나 그녀는 바다에서 금방 올라온 듯, 숨을 벌컥벌컥 들이쉬며,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은 절박함을 억누를 수 없었다.“땡-”밤바람이 스치자, 현관에 걸린 윈드차임벨이 맑은소리를 냈다. 정은은 밖을 내다보았는데, 조용한 밤이어서 파도 소리가 무척 선명하게 들려왔다.악몽을 꾸었기 때문에 공포가 좀처럼 가시지 않았고, 정은은 누운 뒤 아무리 뒤척여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아예 외투를 걸치고 밖에 나갔다.늦은 밤, 부드러운 바닷바람은 낮은 온도에 많이 차가워졌다.정은은 숄로 몸을 꽁꽁 감싼 다음, 모래사장을 밟았다.오늘 밤은 별이 없었고, 오직 해안의 몇 개의 작은 등불만이 조명을 담당했다.낮의 아슬아슬한 장면을 떠올리자, 정은은 자꾸만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지금 중요한 디테일을 소홀히 한 것 같아.’그 일 하나하나가 모두 뜻밖에 일어난 것 같아 보이지만, 동시에 일어나서 무척 이상했던 것이다.‘구조 대원은 자신이 화장실 갔기 때문에, 구조 시간을 놓친 거라고 했어. 그러나 너무 당당하게 나오니, 오히려 거짓 같아.’정은은 눈을 들었고, 그 순간 제자리에 멈추었다. 해변에서, 현빈은 그녀를 등진 채 전화를 하고 있었다.“진 변호사, 내 친구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사적인 자리에서 합의를 보라고? 그건 절대 불가능해. 국제재판에 고소하는 건 확실히 번거롭지만, 난 그런 일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될수록 빨리 수속 밟아.”현빈은 호텔이 왜 이렇게 날뛰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이곳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7성급 호텔로서, 몰디브의 지리적 위치가 가장 좋은 작은 섬을 독차지하고 있는 데다, 왕실 멤버들조차 이곳에 와서 휴가를 보냈으니, 그들은 확실히 건방을 떨 자격이 있었다.애석하게도 그들은 오늘 사람을 잘못 건드렸다.통화를 마치고 돌아가려던 참에, 현빈은 몸을 돌리자마자 정은의 검고 맑은 두 눈과 마
정은은 그 명함을 살펴보았다.[진성법률사무소 시니어 파트너 변호사, 장민수.]장민수는 전문적으로 심씨 가문을 위해 변호하는 스타 변호사다.정은은 입술을 오므리며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김 후,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고마워요.”진성법률사무소는 국내 최고의 변호사팀이었기에, 그들이 나선다면 정은을 위해 많은 불필요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정은에게 있어, 이번 일은 이미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현빈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웃음기를 머금은 검은 눈동자는 무척 진지했다.“난 선량한 사람도, 심지어 좋은 사람도 아니야. 그 피해자가 정은 씨이기 때문에 이렇게 선뜻 나선 것인데...”밤바람이 불어오자, 정은은 현빈의 시선을 피해 바다를 바라보았다.“방금 뭐라고 했어요? 잘 못 들었어요.”현빈은 웃으며 대답했다.“아, 잘 안 들려도 괜찮아. 내가 다시 말해줄게, 응?”정은은 말문이 막혔다.‘그럴 필요는 정말 없는데...’...이와 동시, 호텔 안에서.연희는 거울을 마주하며 열심히 팩을 하고 있었다.‘역시 비싼 물건은 다르다니깐. 예전에 돈이 없어서 살 수 없었던 팩이나 에센스, 지금은 원하는 만큼 살 수 있어. 도겸 오빠는 가족 카드를 나한테 준 데다가 내가 마음대로 긁어도 절대 상관하지 않잖아. 이런 고급 화장품을 쓰니 역시 피부가 좋아질 것 같아.’강도겸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옆에 있던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자, 그는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연희야, 네 핸드폰이 진동하고 있잖아.”“아, 오빠가 대신 끊어줘요. 교수님이 전화한 게 분명해요. 귀찮아 죽겠네요! 날마다 날 못살게 굴다니...”“교수님?”“네, 제가 떠나기 전에 휴가 신청서를 이미 제출했어요. 그런데도 계속 전화해서 물어보다니. 아 정말...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여기까지 말하자, 연희는 참지 못하고 눈을 부라렸다.“그럼 네 교수님은 이미 허락을 한 거야?”“아마도요. 하지만 허락하지 않아도
도겸은 자신을 필요로 하고, 또 자신의 모든 것을 중시하는 그런 느낌이 정말 좋았지만, 정은은 그런 감정을 가져다줄 수 없었다.연희와 만난 후에도, 도겸은 여전히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도겸 자신도 몰랐다.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해변에 도착한 도겸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차가운 눈빛을 띠기 시작하며, 얼굴빛도 점점 어두워졌다.멀지 않은 벤치에서 정은과 현빈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었다. 두 사람은 술잔을 들고 있었다.연희는 팩을 한 후 에센스를 대충 바랐고 바로 따라 나왔다. 하지만 굽이 있는 신발을 신었기 때문에 모래사장에서 걷기가 유난히 힘들다. 한참이 지나서야 도겸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자기야, 무슨...”말을 끝나기도 전에 연희는 도겸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았다.“정은 언니와 심현빈 도련님이... 둘이 사이가 꽤 좋은 것 같은데요?”그녀는 웃으며 단순한 척했다.“함께 술을 마시다니.”도겸은 표정이 차가웠다.“아까 멀리서 봤을 때, 두 사람 커플인 줄 알았어요. 그나저나 잘 어울리긴 하네요. 도겸 오빠, 이건 너무 우연인 거 아니죠? 정은 언니와 심현빈 도련님이 모두 몰디브에 와서 휴가를 보냈다니. 두 사람 설마 미리 약속한 건 아니겠죠? 에이, 그냥 우연이겠죠? 저도 그냥 해본 말이에요...”말하면서 연희는 도겸의 팔을 안았다.“밤이 돼서 그런지, 해변에 바람이 너무 세네요. 너무 추워요. 에취-”연희는 방금 나시 원피스만 입고 나왔는데, 숄을 챙기는 것을 잊었다.‘이렇게 추울 줄은 정말 몰랐는데.’그러나 도겸은 자신의 외투를 벗어 연희에게 걸쳐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제자리에 서 있었고, 옆에 있던 연희마저 그 차가운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질투를 하며 주먹을 꽉 쥐었지만 여전히 연약한 척 연기를 했다.“도겸 오빠, 저 너무 추워요. 우리 얼른 돌아가요, 네?”도겸은 자신의 손을 빼내며 몸을 돌려 떠났다.제자리에 남은 연희는 당황해 하다가 곧장
연희는 몇 번이나 먼저 도겸에게 다가갔지만, 그는 태연하게 연희를 밀어냈다.‘정말 이해가 안 돼. 도겸 오빠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설마 아직도 소정은을 잊지 못해서 이러는 건 아니겠지?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방 안에서 도겸은 불을 끄고 자려고 했지만, 눈을 감기만 하면 머릿속에는 온통 정은과 현빈이 해변에서 술을 마시며 바람을 쐬고 얘기하는 장면이 떠올랐다.결국 밤새 뒤척이다가 잠도 제대로 못 잤다.이튿날 아침, 도겸은 다크서클이 진한 얼굴로 아침을 먹으러 갔다. 연희는 그의 손을 잡으며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폈다.마침 현빈이 다른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그들과 마주쳤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붙였다.“정은 씨, 수민 씨, 좋은 아침. 어젯밤 잘 잤어?”현빈은 말투가 자연스럽고 대범하게 인사를 건넸지만, 도겸은 오히려 그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네.”정은도 입을 열었다.“모기가 좀 많은 거 빼면, 다른 건 다 괜찮았어요.”현빈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럼 같이 아침 먹으러 갈까?”수민이 말했다.“좋아요.”세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면서 도겸을 완전히 무시했다. 그는 표정이 어두워졌고 바로 쫓아가려 했지만, 이때 현빈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아, 내가 뭐 하나 깜박했네. 너희들 먼저 가서 먹어. 이따 내가 다시 찾아갈게.”수민은 상관없단 듯이 손을 흔들었다.“그래요, 가봐요.”현빈은 돌아섰지만,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도겸 앞으로 걸어갔다.“뭐 하고 싶은 건데?” 도겸은 눈살을 찌푸렸다.“따라와, 할 말이 있으니까.” 현빈은 이 한마디만 남기며 먼저 비상통로로 걸어갔다.도겸은 현빈의 태도에 은근히 불쾌함을 느꼈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일이 정은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잠시 생각하며 도겸도 즉시 따라갔다.레스토랑에서.수민은 정은이 오늘 현빈에 대한 태도가 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도겸은 멍청하지 않았기에 정은에게 사고가 난 후, 바로 남이 일부러 그런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가장 먼저 CCTV를 확인했다.그러나 아무런 수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상어든 산소통이 고장이 났든 모두 우연이었던 것이다.현빈은 눈살을 찌푸렸다.“내 말 좀 들어봐...”도겸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경고하는데, 정은에게서 좀 떨어져. 그렇지 않으면, 난 절대로 널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현빈은 매정하게 떠나는 도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세웠다.‘줄곧 서연희를 언급하지 않다니, 정말 생각한 적이 없는 거야 아니면 일부로 숨기고 있는 거야?’연희는 안절부절못하며 제자리에 서 있었는데, 도겸이 어두운 얼굴로 다가오는 것을 보자, 즉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자기야, 왜 이제야 왔어요? 우리 같이 아침 먹으러 가요. 지금 배가 너무 고프단 말이에요...”말을 마친 다음, 연희는 또 일부러 깜찍한 척 입을 삐죽 내밀었다.도겸은 가볍게 응답하고는 자신의 손을 빼지 않았다.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니, 정은은 이미 이곳을 떠났다. 도겸은 초조하게 다른 한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심현빈 그 여우 같은 자식, 날 찾아서 얘기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어...’...섬에서 며칠을 지내는 동안, 정은은 이 섬의 풍경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분위기 또한 더없이 개방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각국의 관광객들이 이곳에 모여들어, 피부색도 언어도 각기 다르지만 여전히 자유롭게 소통하고 있었다.이른 아침, 정은은 레스토랑에서 나오자마자 한 흑인 미인과 부딪쳤다.화끈한 드레드 헤어에 형광 그린 비키니를 입은 그녀는 그야말로 야성미가 넘쳤다.정은의 시선을 느낀 그녀는 열정적으로 손키스를 보내며 인사했다.정은은 그녀의 아름다움과 화끈한 몸매에 얼굴이 빨개졌고, 하마터면 사레가 들릴 뻔했다.수민이 고개를 돌렸다.“괜찮아? 감기 걸렸어?”“아니, 그냥 좀 궁금해서. 오늘 섬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키니를 입은 거야?
그리고 정은으로 하여금 정말 야하다고 생각하게 한 것은 간신히 가슴을 가릴 수 있는 그 ‘천 조각’이었다.‘이렇게 입고 나가기엔 좀...’“이건 아닌 것 같아, 나 다른 옷으로 바꿀래.”“뭐!” 수민은 재빨리 정은을 잡아당겼다.“뭘 바꿔? 이게 얼마나 보기 좋은데. 아무것도 입지 않은 사람들은 지금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넌 뭐가 그렇게 쑥스러워?”“수민아, 이거 좀 놔, 나 진짜 못 입겠어.”“에이, 그러지 말고...” 이때 수민의 핸드폰이 울렸다.정은은 이 기회를 틈타 필사적으로 벗어났다.“날 신경 쓰지 말고 먼저 가서 그 잘생긴 연하남이나 챙겨!”어쩔 수 없었던 수민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도겸 오빠, 저 이거 입을까요?”“음.” 남자는 머리도 들지 않았다.연희는 또 다른 비키니 한 벌을 들었다.“이건요? 색깔이 너무 수수하지 않을까요?”“아니.”“그럼 이건요? 이게 좀 더 섹시한 것 같은데...”전신거울을 보며 비키니를 고르고 있던 연희는 그제야 도겸이 계속 핸드폰을 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날 보지도 않았어!’그녀는 눈썹을 찡그리더니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화를 내려는 순간, 무슨 생각이 났는지 연희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도겸 오빠.” 연희는 나비처럼 날아가서 도겸의 품에 안겼다.“이 세 벌에서 하나 골라주실래요?”도겸은 손을 들어 아무나 하나 가리켰다.“그럼 이걸로 해.”“어머! 저도 이게 마음에 들었는데, 우리 정말 마음이 잘 통하나 봐요, 그럼...”연희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제가 한 번 입어볼까요?”“음.”연희는 일어나더니 도겸의 앞에서 치마를 벗기 시작했다.그녀가 속옷의 단추를 다 풀자, 도겸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지만, 눈앞의 광경에 마음이 흔들리긴커녕 오히려 눈살을 찌푸렸다.“지금 뭐 하는 거야?”연희는 어색하게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도겸은 계속해서 말했다.“안에 드레스 룸이 있잖아?”‘뭐야, 왜 이렇게 싸늘한 건데!’“그럼 지금 들어가
그러나 도겸은 마치 피곤함이 극에 달한 것처럼 눈을 감고 잠을 잤는데, 주위의 모든 일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와우!” 이때, 잘생긴 외국 남자가 엄청난 감탄을 했다.“너무 예쁜데!”그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니, 연희는 검은색 비키니를 입은 정은이 한쪽의 비치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목에 두른 흰색 스카프는 바닷바람에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었다.“어머 세상에! 샤넬 그 자체야! 너무 예쁘잖아!”연희는 차갑게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여자가 예뻐요?”외국 남자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샤넬 브랜드의 창시자 가브리엘 샤넬 여사를 아세요? 검은 치마에 하얀 베일을 두르며 프랑스의 샹젤리제 거리를 걸었죠. 그리고 바람이 치맛자락을 날리며, 그 베일도 하늘하늘 바람에 흩날렸죠...”연희는 이를 악물었다.“그럼 당신은 제가 예쁘다고 생각하나요?”“당연히 예쁘죠.” 남자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그 여자와 비교하면요?“아, 신사로서 이 문제를 대답하기가 많이 어렵네요. 하지만 정말 비교하고 싶다면, 저는 그 아가씨가 더 예쁘다고 생각해요.”연희는 안색이 어두워졌다.사실 그녀는 늘씬한 몸매에 하얀 피부, 그리고 곱슬머리를 뒤로 넘겨 매우 섹시해 보였다.반면 정은은 비교적 노출이 적은 비키니를 입고 있었다. 치맛자락은 절반쯤 허벅지를 가렸고, 색깔도 눈에 띄지 않는 검은색이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하얀 피부 덕분에 오히려 검은색이 정은을 더욱 반짝이게 만들었다.하얀 스카프 사이로 은근히 드러나는 몸매는 이 외국인조차도 그 함축적이고 우아한 매력에 매료되게 만들었다.흔치 않은 것이 귀한 법이다. 알록달록한 비키니 미녀들 사이에서 정은은 독특하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을 선보였다.하지만 연희를 더욱 화나게 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원래 눈을 감고 잠들어 있던 도겸이 마치 텔레파시라도 받은 듯 벌떡 일어나 앉은 것이다.정은에게 시선이 닿는 순간, 경악, 놀라움, 찬탄, 괴로움, 후회 등 온갖 감정이 도겸의 눈 속에서 소용돌이쳤
그 결과, 장미꽃은 점점 많아졌다.수민은 영문을 몰랐다.“왜 내가 생각한 것과 많이 다른 거지?”정은도 마찬가지였다.“나 좀 살려줘! 이것도 내가 생각한 것과 완전히 다르잖아!”군중 속의 도겸은 놀라움에 눈이 휘둥그레졌다.연희는 손에 들려 있는 몇 송이의 장미를 보며 화가 나 눈시울이 붉어졌다.‘이 사람들, 눈이 없는 거야 뭐야?’정은은 지금 심지어 방금 전의 그 검은색 비키니도 입지 않았고, 도중에 전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는데, 연희가 보기에 그 모습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그러나 바로 그런 정은의 모습에 도겸은 넋을 잃고 말았다.정은은 넓고 큰 밀짚 모자를 쓰고 있었고, 옅은 색의 리본이 모자를 따라 나비 매듭으로 묶여 있었다. 아주 심플한 스타일이었지만, 정은이 쓰니 오히려 대범하고 존귀한 느낌을 자아냈다.정은이 나타나자 모든 남자들이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그러나 정작 본인은 이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수민과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끔 미소를 지을 때마다 사람들은 더욱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답답하지?” 현빈은 어느새 도겸의 곁에 나타나더니, 분노로 붉어진 그의 두 눈을 보고 웃으며 먼 곳으로 눈을 돌렸다.“정은 씨는 결코 네가 독차지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야.”도겸은 주먹을 꽉 쥐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은 씨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눈부셔서, 넌 그런 정은 씨를 몰래 숨겨둘 수 없어.”현빈은 감탄과 애모의 눈빛을 거두며 고개를 돌리더니 담담하게 웃었다.“자신의 장미를 잃었으니 지금 후회하는 거야? 그러나 정은 씨는 이미 네 여자가 아니야.”이때 갑자기 무언가가 날아왔다. 현빈은 자신의 코앞에 멈춘 주먹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매번 너에게 만회할 기회가 있는 건 아니잖아.”도겸은 차갑게 입을 열었다.“네 말이 맞지만, 너 지금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정은은 내가 정성껏 키운 장미야. 난 정은이 오늘처럼 눈부시게 변한 것을 줄곧 지켜보았다고. 정은의 아
“도겸 씨, 왜 그래요?” 경혜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도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더니, 질문과 답답함을 억눌렀다. 그는 여기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동안 연기를 해왔으니 지금도 계속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면, 정은은 또 도겸을 피할 것이고, 이렇게 가끔 만나서 인사를 건네는 것도 불가능해질 것이다.경혜는 느낄 수 있었다. 방금 정은의 말을 들은 후부터, 남자는 정신이 반쯤 나갔다는 것을.정은은 고개를 돌려 민지와 서준을 보았다.“시간도 늦었으니 우리 이제 돌아갈까?”“네!” 민지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곧 9시가 다 되어 가네요. 빨리 가요. 너무 추워요...”말하면서 손을 비비며 입김을 불었다.그녀는 사실 도겸이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겨울, 영하의 온도에 스포츠카를 운전하며 멋을 부릴 수 있다니.‘사람을 기다린다고 해도 그냥 차에 들어가서 기다리면 되잖아? 굳이 차에 기대서 멋을 부릴 필요가 있을까? 안 추워? 쯧쯧... 이런 재벌 집 도련님들은 도대체 매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우리 먼저 갈게. 넌 네 남자친구와 천천히 데이트해. 안녕.”민지는 도겸의 정곡을 쿡쿡 찔렀다.정은이 택시에 탄 것을 지켜보다가 차가 사라질 때에야 도겸은 시선을 거두었고, 동시에 경혜의 허리를 안고 있던 손도 거두었다.경혜는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비록 마음속은 이미 씁쓸할 정도로 괴로웠지만, 여전히 웃음을 유지했다.아파도 웃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경혜가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처음에 두 사람의 거래가 바로 도겸이 돈을 내고 경혜가 여자친구인 척 연기하는 것이었다.그러니 그녀는 도겸 앞에서 질투하는 감정을 조금도 감히 드러내지 못했다.경혜는 도겸이 정은을 속인 것처럼 도겸을 속여야 했다.정말 아이러니하고 우스운 일이었다.정은이 떠나자, 도겸도 계속 여기에 남을 필요가 없었다.그는 차를 타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난 특별히 화
민지가 대답했다.“잘 아는 편도 아니야. 하지만 재운이는 사람이 꽤 착하잖아. 지난번에 식물 기지에서도 남들이 수수방관하고 있을 때, 유일하게 나서서 우릴 도와주었고. 난 다 기억하고 있다고!”“기억력이 좋아서 좋겠다.”“뭐?”“넌 남을 칭찬할 때, 항상 ‘좋은 사람’이란 말을 쓰더라? 그게 무슨 칭찬이지?”“아니... 너 뭐 잘못 먹었어?”맞은편의 도겸은 차 옆에 기대어 손목 시계를 확인했다.마치 사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경혜도 그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고 곧 나왔다.종종걸음으로 달려왔기에, 경혜의 볼이 빨갰고 숨이 가빴다.도겸을 만나기 위해 그녀는 일부러 통통해 보이는 패딩을 입지 않고, 몸매가 돋보이는 코트로 갈아입었다.뿐만 아니라, 경혜는 평소에 머리를 묶지 않았는데, 오늘은 머리를 걷어 올려 똥머리로 묶은 뒤, 진주 머리핀을 장식했다. 시원시원하고 대범해 보이며, 귀엽고 깜찍했다.“오래 기다렸어요? 미안해요. 나올 때 스카프를 잊어버려서 다시 기숙사에 돌아갔거든요.”도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얼굴에 아무런 정서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는 것 같았다.눈길도 자꾸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경혜는 주위를 힐끗 훑어보더니, 정은을 본 순간에야 깨달았다.그렇지 않으면 도겸은 늦은 밤에 그녀에게 전화를 할 리가 없었다.‘그곳도 학교 앞에서 만나자니? 내가 보고 싶어서 찾아올 리가. 허... 지금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먼저 시작하지.’경혜는 주먹을 꽉 쥐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다가 곧 다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정은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공교롭게 여기서 만나네, 정은아.”정은은 웃으며 말했다.“여기에 나만 있는 게 아니잖아.”경혜는 멈칫하더니 마치 그제야 서준과 민지를 본 것 같았다.“너희들도 있었구나, 정말 반가워.”민지가 말했다.“이렇게 말하니 마치 우리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 같잖아? 나와 서준이는 바로 정은 언니 옆에 서 있는데, 그런데도 보이지 않은 거야?”“미안해, 정말,
민지는 세입자들에게서 인간성을 엿볼 수 있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쟁과 갈등에도 익숙해졌다.외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서준이 말했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절대적으로 심플한 일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고, 또 다른 요소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사상처럼, 세계는 전체이고, 개체 간에 서로 영향을 미치는 거지...”민지는 머리가 아팠다.“넌 생물 대신 철학을 연구해야 했어.”“네 닭다리나 먹어!”“흥, 원래 먹으려 했어! 그리고, 이건 네가 허락한 거야!”‘아싸, 이제 실컷 먹을 수 있겠어.’서준은 말문이 막혔다....다 먹고 정은은 계산을 했다.세 사람은 직접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산책을 하며 소화했다.“우리 같은 방향에 살아서 다행이야. 그리 멀지도 않고. 조금 있다가 학교 앞에서 택시 잡고 돌아갈까? 어차피 너도 가는 길이니 우릴 태워다 줄 수 있잖아! 헤헤!”“너 돈 많잖아? 왜 택시비가 아까운 거야?”전에 수억 원짜리 차를 선물로 준다고 한 사람이, 지금은 몇 천원 안 되는 택시비를 절약하려 했다.“돈 많으면 왜? 내 돈도 다 돈이야! 우리 아빠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돈을 벌 줄 알고 돈을 절약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어. 절약할 수 있으면 절약하고, 쓸 수 있지만 낭비해서는 안 돼!”정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거봐, 정은 언니도 실험실을 짓는 데 그렇게 많은 돈을 썼지만, 혼자 아파트에서 살고 있잖아. 이게 뭔 줄 알아?”정은과 서준은 동시에 민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가슴을 펴며 말했다.“돈을 알뜰히 쓰는 거야. 전부 써야 할 곳에 썼으니까!”“그래, 내가 잘못했어. 오늘 정말 좋은 가르침을 받았네.”“흥! 쮼, 넌 아직 너무 어려서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아!”“내가 어리다고?”이때 서준은 갑자기 멈추었다.민지도 웃음을 거두었다.“왜 그래?” 정은은 두 사람이 주시하는 방향을 바라보며 참지 못
그 닭다리를 다 먹은 뒤, 민지는 만족스럽게 트림을 했다.“아! 너무 행복해! 흑흑... 난 소원이 이것밖에 없어. 맛있는 것만 먹을 수 있으면 되니까. 물론 미식가로 되면 더 좋고.”민지의 생각은 아주 간단했다. 그녀는 학술을 좋아하는 동시에 미식도 좋아했다. 이 두 사물을 결합하면 바로 민지가 가장하고 싶은 일이었다.“정은 언니는요?” 민지는 갑자기 정은을 쳐다보았다.“언니는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갑자기 이상과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자 정은은 멍해졌다.생각하다 천천히 대답했다.“지금 하고 있는 일이 바로 내 꿈이야.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면...'정은은 잠시 멈추었다.“오 교수님과 같은 연구학자.”“그런데...”민지는 갈등을 드러냈다.“교수님은 확실히 위대하시지만 때로는 난 교수님이 너무 외롭다고 생각해요.”오미선은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과학 연구에 바쳤다.이런 추구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혼자 병원에 외롭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민지는 가슴이 아팠다.“예전에 난 교수님께 물어본 적이 있어. 이 선택을 후회하시냐고. 교수님이 어떻게 대답하셨는지 아니?”민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얼른 말해요, 언니!”서준도 정색을 했다.“사람의 일생은 원만하기 어려우며, 항상 우왕좌왕한다고 말씀하셨어. 그것은 우리의 정력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야. 그러나 만약 제한된 정력을 끝없는 과학 연구에 투입할 수 있다면, 교수님에게 있어서 이건 또 다른 의미의 행복이기도 하지.”비록 개인의 행복을 잃었지만, 오미선은 전심전력으로 연구에 몰두했다.“그런데... 이건 너무 극단적인 선택 아닌가요?” 민지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정은은 감탄했다.“아마도. 하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또한 선택도 다르잖아. 자신의 생각을 따라 확고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만 하면, 후회도 아쉬움도 없는 삶을 살 수 있어.”“그럼 정은 언니는 결혼할 거예요?”정은은 민지가
민지는 그 말을 듣자마자 내일 2킬로미터 더 달려야 한다는 말을 뒤로 했다.그리고 정은을 안고 애완동물처럼 깡충깡충 뛰었다.“사랑해요, 정은 언니, 내가 그 가게의 닭볶음탕을 먹고 싶어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또 어떻게 알았어요?”정은은 민지가 자신을 안도록 내버려두더니 웃으며 말했다.“네가 전에 한 번 말했잖아, 그래도 기억해뒀지. 그리고 나도 그 닭볶음탕이 도대체 얼마나 맛있는지 궁금하네.”“날 믿어요, 절대로 언니를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 그 가게는 맛이 아주 좋아요!”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는 것은 아마도 먹방들의 타고난 능력일 것이다. 민지가 추천한 것이라면, 대부분 엄청 맛있는 음식이었다.이 레스토랑의 주방장은 아주 정통적인 닭볶음탕을 만들었다.또 J시 사람의 입맛을 결합하여 간단하게 개량했기에 엄청 고소하고 맛있었다.닭고기가 부드러우며 매콤한 향기까지 곁들이니, 생각만 해도 민지는 이미 침을 삼키기 시작했다.요 며칠, 조깅의 성과를 공고히 하기 위해 서준은 민지의 식단을 엄격히 통제했다. 매일 그 싱겁고 무미건조한 음식들만 먹으니 민지는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비록 저녁에 집에 돌아가면 몰래 간식을 훔쳐 먹었지만, 간식이 어떻게 맛있는 요리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정은 언니, 완전 사랑해요.”마침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자, 민지는 감동에 눈물을 글썽였다.“야, 내가 언제 널 학대했어?”“그럼 조깅 취소해.”“그래, 그럼 너도 마음의 준비를 해. 내년 건강검진 보고서에 ‘지방간’이라는 결과가 또 나올 테니까.”‘됐어, 건강을 위해서라도 말을 말자. 난 그래도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사람이니까.’서준은 민지의 다이어트를 돕기 위해 매일 날이 밝기도 전에 찾아와서 문을 두드려 그녀를 불렀다.사실 민지는 가끔 서준의 얼어붙은 볼과 코를 보고, 또 아직 이불 속에 틀어박혀 쿨쿨 자는 자신을 생각하면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건 죽을 죄야! 한겨울에 누가 더 자고 싶지 않겠어?’‘우리 아빠도 서준처럼 매일 일찍
민지가 대답했다.“여행 이미 마쳤어요!”“벌써?”“여긴 그리 크지 않으니,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며칠 걸릴 리가 없잖아요?”정은의 의혹스러운 눈빛은 서준에게 향했다.만약 그녀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그때 서준은 2박 3일 여행을 계획했던 것이다. 그 기간에 몇 번 더 보완되었고, 코스도 더 많아졌다.그러니 하루 만에 끝내는 건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았다.정은이 입을 열어 물어보려고 할 때, 서준은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콜록... 맞아요, 하루 만에 끝냈지만 즐거우면 됐죠.”“정은 언니, 이번에 서준이 가방이 나보다 더 큰 거 있죠!”서준은 말을 하지 않았다.“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말하지도 않고, 놀 때도 꺼내 쓰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그렇게 큰 가방을 메고 산을 올라갔는데, 엄청 대단하죠!”‘칭찬인 건가... 그건 좀...’정은은 이상한 눈빛으로 서준을 보더니, 마치 그의 가방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아맞힌 것 같다.2박 3일 동안 여행할 준비를 한 이상, 갈아입을 옷, 생활용품 따위를 챙겨야 하지 않을까?아마 민지는 원래 이것이 2박 3일 여행이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에헴, 누나!”정은은 크게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오직 민지 만이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정은 언니, 바쁜 일이 끝난 후, 하루 동안 쉬는 느낌은 정말 너무 좋아요! 그냥 점심까지 자고 나서 여러 코스를 돌아다니니...”‘그래서 2박 3일은 그렇다 쳐도, 온전한 하루조차 여행하지 못한 거야?’“서준이 줄곧 재촉했는데, 귀찮아 죽는 줄 알았어요... 사람이야 그냥 즐거움을 위해서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편한 대로 행동해야지, 누가 꼭 몇 시에 외출해야 한다고 규정했죠?”“늦잠을 잔 후에 다크서클이 바로 없어졌어요. 전에 밤을 새울 때 눈까지 작아졌는데.”서준이 말했다.“그래? 네 눈은 항상 그렇지 않았어? 이전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민지는 허리를 짚으며 눈을 부릅떴다.“임서준, 너 나한테 얻어맞고 싶은
수민은 차여 넘어진 의자를 향해 턱을 들었다.동건은 재빨리 알아차리고 즉시 의자를 들고 제자리에 놓았다.“이제 나랑 좀 더 있을 수 있지? 헤헤...”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동건은 이미 수민의 가녀린 허리를 껴안고 침대 위로 가져갔다.5분 후.“수민아...”“너 뭐 하는 거야? 잠깐 누워있겠다며? 왜 내 단추를 풀어?”“쉿, 말하지 말고 우리 한 판 더 하자.”수민은 말문이 막혔다.새벽 3시, 밖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동건은 그녀가 이곳에 밤을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차 좀 빌려줘.” 수민은 거울을 보고 체크하다가 목에 담담한 키스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앞으로 흔적 좀 남기지 말고 조심해.”동건은 침대에 기대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왜? 다른 남자가 볼까 두려워?”“또 말을 이따위로 할 거야?”동건은 긴장을 하며 침을 꿀꺽꿀꺽 삼켰다.“아니... 내가 너무 매료되어서 이런 흔적 남기는 것도 정상이잖아. 내 등 좀 봐...”말하면서 그는 돌아섰다.“다 네가 손톱으로 파낸 흔적이야, 그런데 내가 언제 뭐라고 했어?”수민은 말문이 막혔다.그러나 등에 긁힌 자국이 가득하고, 심지어 껍질이 벗겨진 것을 보니 확실히 무서웠다.“에헴!” 수민은 가볍게 기침을 했지만 지지 않으려 했다.“그 뭐야... 넌 흔적이 다 등에 있으니 옷만 입으면 누가 알겠어? 이건 목이잖아. 내일 색깔이 더 깊어질 텐데. 어떻게 동료를 만나라는 거야?”“헤헤... 그럼 만나지 말고 휴가를 내. 우리 둘이 별장에서 하루 종일 누워 있자!”“허, 네 말에 속을 것 같아? 꿈이나 깨!”동건은 마음이 찔렸다.“그게 무슨 말이야? 난 그런 뜻이 아니라고.”“그건 너 자신이 더 잘 알갰지. 차 키 가져와.”동건은 침대 머리맡에서 BMW의 키를 꺼내 던졌다.수민은 힐끗 보더니 다시 던져주었다.“난 마이바흐를 원해.”“까다롭긴!”“내일 저녁에 퇴근하면 이리 와.” 남자는 이 기
“수민아, 정말 보고 싶었어!”말을 마치자마자 동건은 뜨거운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수민도 능숙하게 응답했다.사실 그녀도 동건이 꽤 그리웠다.동건의 손은 수민의 옷자락으로 파고들며 점점 대담해졌다.그러나 수민은 그의 손을 꽉 잡았다.“응?” 동건이 물었다.“여기서 하고 싶지 않아, 집에 가서 하자.”그 한마디에 동건은 억지로 욕구를 참으며 가속페달을 쭉 밟았고, 엔진 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원래 20분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지만, 10분 만에 동건의 집앞에 도착했다.문이 닫히자마자 두 사람은 시선이 마주치더니 곧바로 뜨거운 입맞춤이 이어졌다.그렇게 침실에 들어갔고, 옷이 여기저기 흩어졌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한 시간 후, 정은은 나른한 눈빛을 띠며 욕실로 향했다.동건은 침대에 기대어 단단한 가슴을 드러냈다.“어딜 가?”“샤워.”“씻지 말고 좀 더 누워 있어.”“땀 냄새 나서 싫어.”동건은 다정하게 속삭였다.“안 나. 네 땀은 엄청 향기로워.”“내 땀이 아니라 네 땀이잖아.”“아...”샤워를 마친 수민은 원래 입던 옷으로 갈아입고 가방을 챙겼다.동건은 점점 이상하다고 느끼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놀란 눈으로 물었다.“설마 지금 가려고?”“응.”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수민은 내일 출근해야 했기에 다른 옷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대체 나를 뭘로 생각하는 거야?”동건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수민은 고개를 돌리며 눈썹을 치켜세웠다.동건은 침대에서 내려와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갔다.“자고 바로 가다니, 내 집이 호텔이야? 내가 무슨 제비냐고?”수민은 부드럽게 설명했다.“난 그런 뜻이 아니야...”“아니긴 개뿔! 나를 심심풀이로 쓰는 거잖아?!”말을 마치자, 화를 못 참은 동건은 침대 끝에 있는 벤치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수민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그래도 설명을 하려 했는데... 이 남자는 정말 어이가 없군.’“내가 너무 오냐오냐해줬지?”“나는...”“네가 자신을 제비라 생각한다면
남자는 이 상황을 보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동건에게 시선을 돌렸다. “수민아, 이분은...?”분명히 수민이 직접 소개해주길 바라는 눈치였다.동건도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지 궁금했다. 표정은 변함없었지만, 이미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눈빛 속에 심지어 작은 기대가 어렴풋이 비쳤다.“아, 이분은 고씨 가문의 큰아들, 고동건이야.” 수민은 담담하게 말했다.이 대답은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두 남자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그런데, 이분은 수민과 무슨 사이지?” 남자가 다시 물었다.이번에 동건은 수민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말했다. “남자친구예요.”말을 마치며 동건은 다시 한번 강조했다.“난 수민의 남자친구라고요.”동료는 수민을 바라보며, 그녀가 고개를 젓길 바라는 눈길을 보냈다.이에 동건은 화가 나더니 오히려 웃음이 나왔고, 수민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자신의 강한 소유욕을 과시했다.수민도 뭐라 하지 않았고, 부드럽게 그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남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남자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수민은 즉시 똑바로 서더니, 자신의 어깨에 놓은 동건의 손을 털어냈다. “이제 됐어. 그 사람 이미 떠났잖아.”동건은 손을 호호 불며 아픈 표정을 지었다. “아야! 좀 살살 해!”수민은 대꾸했다. “싫어.”“너 정말... 전화해도 안 내려오고, 전화도 안 받고. 대단하네.”“누가 그렇게 전화를 했는지 궁금했는데, 너였구나. 배불리 먹고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거야?”동건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제시간에 내려왔으면 내가 전화를 그렇게 했겠어?”“제시간? 내가 너랑 약속했던가?” 수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동건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네가 오늘 야근 안 한다고 했잖아!”“그렇게 말했지만, 데리러 오라고 한 적은 없어.”수민은 야근을 하지 않아도, 바로 퇴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아있었고, 동건이 데리러 올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