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금융 회사는 연말에 가장 바쁘지 않아요?”“꼭 그런 건 아니야.”현빈은 웃으며 말했다.“사람에 따라 일정이 바뀌는 법이야. 중요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바빠도 시간이 있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한가해도 상대하기 귀찮거든.”현빈의 말은 분명히 다른 뜻이 있었지만, 정은은 자세히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불빛이 반짝이더니, 이제 파트너를 교환해야 했다.불빛이 희미한 가운데, 한 사람이 이쪽으로 던져졌다.두 사람이 바뀌는 순간, 정은은 연희가 충격에 휩싸인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꽉 잡았고, 남자의 다른 한 손은 정은의 허리를 세게 쥐고 있었다.도겸은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현빈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려 정은과 눈을 마주치자, 그의 눈빛은 또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정은아, 아직도 삐져있는 거야?”“내가 며칠 전에 네 집에 찾아갔는데, 왜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난 거야?”도겸은 좀 억울해하고 있었다.“심현빈이 일부러 네 항공편의 정보를 바꾸지 않았더라면, 나도 진작에 널 찾았을 텐데.”정은은 눈을 드리우며,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내가 늦게 와서 화난 거야?”도겸은 고개를 숙이고 정은을 바라보았는데,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온화해졌다.방금 팔로 스폿이 그들을 비출 때, 도겸은 단번에 그 두 사람이 바로 정은과 현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두 사람은 심지어 무도장에 들어가서 나풀나풀 춤을 추었다.현빈은 정은의 가녀린 허리에 손을 얹었고, 매력적이면서도 다정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가끔 귓속말을 했고, 또 시선까지 주고받았는데, 이를 본 도겸은 하마터면 화를 낼 뻔했다.‘심현빈, 넌 무슨 자격으로 정은을 껴안고 있는 거지? 난 정은과 6년을 사귀었는데도, 같이 춤을 춘 적이 없는데...’그래서 파트너를 교환할 때, 그는 망설임 없이 연희를 내팽개쳤다.이번에 정은이 정말 화가 났다는 것을 알고, 도겸은 부드러운 말투로 그녀를 달랬다.전에 그들이 무수히 다퉜던 것처
두 사람이 불쾌하게 헤어진 것을 보고, 현빈은 기분이 좋았다.‘강도겸, 이제 네 수단도 쓸모가 없는 것 같군.’지금은 비록 사이가 틀어졌지만, 전에 두 사람은 사이가 엄청 좋은 친구였다.도겸이 여자를 달래는 그런 수단들에 대해, 현빈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비싼 선물을 사주거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부드럽게 여자를 달래는 것뿐이었다.아쉽게도 그런 수법은 더 이상 정은에게 먹히지 않았다.“현빈 도련님, 기분이 좋으신 거예요?” 이때, 연희가 갑자기 입을 열었고, 표정은 애꿎으면서도 단순했다.“당연하지.”“도겸 오빠가 정은 언니에게 거절당해서요?”현빈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처음으로 연희를 자세히 바라보았다.“이것도 네가 보고 싶은 결과잖아?”연희는 대범하게 인정했다.“그래요, 전 평생 도겸 오빠와 함께 하고 싶거든요.”“그럼, 두 사람 행복했으면 좋겠어.”말을 마치자, 현빈은 연희를 놓아주며 뒤로 물러섰다.연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현빈 도련님도 하루 빨리 정은 언니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면 좋겠네요.”‘쯧쯧!’현빈은 몸을 돌렸다. 동시에 그는 도겸을 동정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악독한 뱀이었다니. 그것도 독이 있는 코브라.’두 남자가 어깨를 스친 순간, 도겸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여전히 그 말이지만, 정은에게서 떨어져.”현빈은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나도 여전히 그 말이야, 넌 이 말을 할 자격이 없어.”“적어도 난 명실상부한 남자친구였지. 그러는 넌 뭔데?”도겸은 현빈을 바라보더니, 속이 좀 통쾌했다.“만약 내가 아니었다면, 넌 절대로 정은을 알지 못했을 거야. 정은도 너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고.”“이 말을 하기 전에, 너도 지금 나와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마. 넌 전 남자친구, 난 정은 씨에게 구애하고 있는 사람.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남이잖아.”도겸은 차가운 눈으로 현빈을 바라보았지만, 현빈은 더 이상 말하
현빈은 오히려 웃었다.“그건 내 마음이니까 상관하지 마. 시도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 결과를 알 수 있겠어?”정은이 물었다.“그 결과가 당신을 크게 실망시키더라도?”현빈은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럼 나도 받아들여야지.”정은은 그의 고집이 이렇게 셀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현빈은 정은의 감정을 알아채며, 말을 잇지 않고, 조용히 그녀와 함께 파도 소리를 감상했다.한밤중이 되어서야 현빈은 이곳을 떠났다.정은은 방금 그가 소리 없이 고집을 부리며, 꿋꿋이 버티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사실 현빈은 분수가 있고 또한 남들과 거리를 두는 사람이었다. 그는 정은을 강요하지 않았고, 경솔하게 움직이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될수록 그녀에게 번거로움을 안겨다 주려 하지 않았다.도겸과 전혀 달랐다. 전에는 정은의 뒤를 맹렬하게 쫓아다녔는데, 지금은 걸핏하면 성질을 부리곤 했다. 정은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 내가 남이 뭘 하려는지를 상관할 필요가 어딨겠어.’‘나 자신만 처신을 잘하면 돼.’정은이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문득 검은 그림자 하나가 소리 없이 어두운 곳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귀신이야 뭐야...’정은은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어두운 그림자가 어두운 곳에서 나오자,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고, 정은도 점차 그 사람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강도겸,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한밤중에 여기 서 있으면서 소리조차 내지 않으니, 정말 무섭단 말이야!’정은이 중도에 퇴장하자, 도겸은 무도회가 재미없다고 느꼈다.줄곧 쫓아 나왔지만, 또 줄곧 사람을 찾지 못했다.연희는 거머리처럼 매달리며, 배가 고프니까 뭐 좀 먹고 싶다고 했다. 도겸은 인내심이 순식간에 바닥나더니 짜증이 났다. 그는 웨이터를 불러 연희를 데리고 레스토랑으로 가라고 했다.호텔의 비밀유지 조치가 엄격했기 때문에, 도겸은 엄청난 시간을 들여서야, 정은의 룸 번호를 알 수 있었다.그리고 즉시 그녀를
이 말을 듣자, 도겸의 안색은 약간 누그러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정은의 목소리가 또다시 울렸다.“너도 마찬가지야.”“지금 시간도 이미 늦었으니, 만약 계속 여기서 발광을 하고 싶다면, 난 지금 바로 집사에게 연락해서 경호원을 부를 거야.”도겸은 계속 말하고 싶었다.“정은아-”“셋까지 세겠어. 하나, 둘...”정은은 핸드폰을 꺼내, 키패드를 클릭했다. 이제 1만 누르면, 집사가 바로 나타날 것이다.도겸은 달갑지 않았지만, 또 다른 방법이 없었다.“내일 다시 찾아올게.” 이 말만 남기고, 그는 성큼성큼 떠났다.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연희는 조용히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 숨겨진 그녀의 표정과 눈빛은 잘 보이지 않았다.다음 날, 날이 밝자, 수민은 마침내 돌아왔다.정은은 우유 한 잔을 마시며, 손에 빵까지 들고 있었다. 금방 먹자마자, 누군가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소리가 울렸다.수민은 이미 다른 치마로 갈아입었고, 기분이 좋은 듯 콧노래를 흥얼거렸다.탁자 위의 샌드위치를 보자, 그녀는 걸어와서 입에 넣었는데, 빵이 고소하고 바삭바삭하게 잘 구워졌기에, 수민은 또 한 입 먹었다.정은은 맞은편에 앉아 기분이 상쾌한 수민을 바라보며, 웃으며 입을 열었다.“어제 아주 즐거운 밤을 보냈구나?”“그럼. 이렇게 아름다운 남자는 정말 오랜만이었어.”어젯밤을 언급하자, 수민의 표정은 좀 이상해졌다. 감탄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또 음미하는 것 같기도 했다.“든든한 허리, 복근도 탄탄해서 정말 명품 몸매였지.”연하남은 H국의 사람이었기에, 그 얼굴은 확실히 잘생겼다. 게다가 그 나라는 헬스에 깊은 중시를 돌리고 있어, 수민은 어젯밤에 만진 복근이 단련으로 만들어진 것이란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이렇게 잘 맞는 파트너는 정말 오랜만인데.’특히 아침에 깨어났을 때, 남자는 뜻밖에도 아직 떠나지 않았다. 새하얀 피부에는 모두 수민이 남긴 키스 자국이었고, 촉촉한 눈동자는 강아지처럼 초롱초롱했다. 그 순간, 그녀는
정은은 머리를 갸웃거리며 상상해 보았다. 척박한 상상력으로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은 아주 적었지만, 코치의 말을 듣고, 그녀는 확실히 그렇게 긴장하지 않았다.오후에 온도가 조금 높아질 때, 정식으로 물에 들어갈 수 있었다.잠수복은 투피스 잠수복과 전신 잠수복이 있어,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었다. 수민은 자연히 섹시하고 아름다운 투피스 잠수복을 선택했고, 정은은 노출이 심하지 않은 전신 잠수복을 골랐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의실에서 나올 때, 사람들은 정은을 향해 휘파람을 부르며, 전부 그녀를 주목했다.물에 들어가기 전에, 코치는 두 사람에게 먼저 물의 온도에 익숙해지라고 했다.“물에 들어가면, 너무 긴장할 필요가 없어요. 난 먼저 아가씨를 잠수 구역으로 데려갈 거예요.”“그리고 우리의 구조 대원들이 바로 이 근처에 있으니까, 무슨 사고가 발생하면, 구조를 요청하는 손짓만 하면 돼요. 그럼 그들도 얼른 다가갈 거예요.”“그래요.” 정은은 앞을 바라보며, 은근히 기대를 했다.“자, 바다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정은도 코치의 미소에 감염되어 입술을 구부렸다. 다만 산소통을 메고 물에 들어가려 할 때, 그녀는 여전히 긴장을 했다.수민은 정은의 손을 꼭 잡으며,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자신이 곁에 있으니 절대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위로였다.정은은 마음을 진정시켰고, 수민이 시원스럽게 뛰어내리는 것을 보고, 그녀도 따라서 물에 들어갔다.몸이 가라앉자, 그녀는 빛이 희미해진 것을 발견했고. 몸도 해안에 있을 때보다 훨씬 무거워졌다.수민은 정은보다 좀 더 빨리 가라앉았는데, 물살의 압력에, 정은은 거의 수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바로 이때, 코치는 정은에게 손짓을 했는데, 그들은 지금 이미 50미터 내려갔다.정은은 가볍게 숨을 쉬며, 주변 세계를 감지하기 시작했다.물고기떼는 정은의 좌우를 지나갔고, 투명한 해파리 한 마리가 헤엄쳐 오더니, 마치 끊임없이 펴고 닫는 것을 반복하는 작은 우산 같았
여기까지 생각하자, 정은은 고개를 돌려 필사적으로 물 위로 헤엄쳤다.주변의 물고기떼는 그녀의 당황함을 감지했는지,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정은은 이를 악물고 뒤돌아보니, 상어가 이미 아주 빠른 속도로 쫓아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정은은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근처는 모두 산호군이었지만, 멀지 않은 곳에 숨을 수 있는 검은 동굴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방향을 바꾸어, 몸을 흔들며 아래로 헤엄쳐 내려갔다.도중에 정은은 상어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감히 고개를 돌리지 못했고,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마침내 몸을 돌려 동굴 속으로 숨었다.펑!상어의 거대한 몸집이 동굴을 부딪치자, 주위의 산호군도 따라서 흔들렸다. 큰 충격으로, 정은은 팔이 뒤로 꺾이더니, 심한 통증이 전해왔다.그녀는 팔을 움직여 보았는데, 다행히 움직일 수 있었다. 정은은 상어가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위로 올라갈 생각이었다.그러나 몇 분 지나지 않았을 때, 산소가 점점 희박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뭔가 이상해! 물에 들어가기 전에, 코치는 산소통 하나가 적어도 세 시간을 버틸 수 있다고 했어, 이제 겨우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다 쓸 수가 있지?’산소는 점점 바닥이 나고 있었지만, 상어는 여전히 가지 않았다.정은은 이마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을 때, 상어가 마침내 떠났다. 그녀는 산소통을 메고 최선을 다해 위로 헤엄치며, 지정된 방위를 향해 구조 손짓을 했다.이 외에도 구조 대원에게 가장 먼저 알리기 위해, 정은은 몸에 휴대하고 있던 구조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이 신호들은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했다.정은은 제자리에서 기다릴 수가 없었기에, 필사적으로 위로 헤엄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산소가 바닥나면, 그녀는 바닷속에서 죽을지도 모른다.그렇게 얼마나 헤엄쳤는지, 정은의 동작은 갈수록 느려졌다. 질식감이 임박하자, 그녀는 사지가 나른해지기 시작했고, 몸도 통제할 수 없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가장 최악
“이 아가씨는 안색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은데, 병원에 데려다줄까요?” 두 사람의 무시를 당하던 코치가 갑자기 소리를 냈다.정은은 그제야 자신의 곁에 많은 사람들이 에워싸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하나하나 한숨을 돌렸다.수민도 이때에야 기억이 났다.“아까 난 이미 구급 서비스를 불렀어. 너 어디 불편한 데 없어?”“나 손 다친 것 같아.” 정은은 손을 간단하게 움직였다. 아까 물속에서 조금 움직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가라앉은 거지?”정은은 잠시 침묵했다.“내 산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수민은 무슨 생각이 나더니, 즉시 옆에 던져진 산소통을 가져왔다.‘이렇게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밑바닥은... 구멍이 있다니!’비록 바늘 크기만 했지만, 확실히 구멍이 있었다!수민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잠수 코치를 쏘아붙였다.“이건 불가능해요!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요! 우리의 장비는 해마다 새것으로 바꾸는 데다, 사용하기 전에 줄곧 엄격한 검사를 진행했다고요. 그동안 문제가 생긴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코치는 엄숙한 표정으로 바로 설명했다.“게다가 정말 위험이 있더라도, 우리는 안전 구역에 처해 있어, 재빠르게 고객을 구조할 수 있어요. 그러니 익사 같은 사건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요.”수민은 이 말을 듣고 더욱 화가 났다.“그래서, 내 친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만약 내가 제때에 요트를 몰고 오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지 누가 알아요?”정은은 줄곧 설명을 하고 있는 코치를 힐끗 쳐다보았다. 긴장과 초조함은 연기 같지 않았다. 지금 코치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게 분명했다.다투는 사이, 정은이 갑자기 소리를 냈다.“상어가 날 쫓고 있었어요.”수민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코치는 더욱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그럴 리가 없어요!”“안전 구역 밖에는 확실히 암초 상어가 있지만, 그들은 보통 200미터 이하의
정은은 추위를 느끼기 시작했다. 바닷바람이 불어오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에취!”수민은 또 어떻게 그들이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겠는가? 원래 끝까지 따지려고 했지만, 정은이 기침을 하다 또 재채기를 하는 것을 보고, 이런 일에 신경 쓸 새가 없었다. 그녀는 정은을 먼저 구급헬기에 태웠다.병원에 도착하자, 간호사는 정은의 몸이 축축한 것을 보고, 마른 옷 한 벌을 가지고 와서 그녀에게 갈아입혔다.수민은 정은의 손에 무슨 문제라도 생길까 봐, 특별히 의사에게 잘 검사하라고 부탁했다.검사 결과가 나오자, 다행히 큰 문제가 없었다. 뼈를 다치지 않았지만, 약간 삐었을 뿐이니, 며칠 휴양하면 괜찮아질 것이다.어혈을 치료하는 연고를 들고, 두 사람은 다시 헬리콥터를 타고 섬의 호텔로 돌아갔다.수민은 아직도 화가 났고, 잠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 책임자를 찾아갔다.책임자의 태도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줄곧 호텔의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다투는 사이, 도겸이 마침 돌아왔다. 두 사람이 정은을 언급하는 것을 듣고, 또 사건의 경과를 들은 후, 그는 정은이 잠수하다가 의외의 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비록 현장에 없었지만, 그들의 대화에서 그때의 장면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상상할 수 있었고, 도겸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정은은 겁이 참 많았는데. 혼자 집에 있을 때, 늘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잠들곤 했지. 지금 또 이런 일을 당했으니 속으로 얼마나 놀랐을까?’도겸은 정은을 위로해 주려 했지만, 현빈이 먼저 도착한 것을 발견했다. 지금 그는 정은의 곁을 에워싸며, 그녀를 관심하고 있었다.도겸은 화가 났지만, 이내 표정관리를 한 다음, 방에 들어갔다.“정은아, 이 일은 나도 다 전해 들었어. 바다가 얼마나 위험한데, 만약 몸에 미세한 상처라도 있다면, 정말 큰일 날지도 몰라. 마침 우리 회사가 몰디브에 개인병원을 하나 설립했는데, 나랑 같이 가서 전신검사 좀 하지 않을래
남자는 이 상황을 보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동건에게 시선을 돌렸다. “수민아, 이분은...?”분명히 수민이 직접 소개해주길 바라는 눈치였다.동건도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지 궁금했다. 표정은 변함없었지만, 이미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눈빛 속에 심지어 작은 기대가 어렴풋이 비쳤다.“아, 이분은 고씨 가문의 큰아들, 고동건이야.” 수민은 담담하게 말했다.이 대답은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두 남자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그런데, 이분은 수민과 무슨 사이지?” 남자가 다시 물었다.이번에 동건은 수민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말했다. “남자친구예요.”말을 마치며 동건은 다시 한번 강조했다.“난 수민의 남자친구라고요.”동료는 수민을 바라보며, 그녀가 고개를 젓길 바라는 눈길을 보냈다.이에 동건은 화가 나더니 오히려 웃음이 나왔고, 수민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자신의 강한 소유욕을 과시했다.수민도 뭐라 하지 않았고, 부드럽게 그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남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남자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수민은 즉시 똑바로 서더니, 자신의 어깨에 놓은 동건의 손을 털어냈다. “이제 됐어. 그 사람 이미 떠났잖아.”동건은 손을 호호 불며 아픈 표정을 지었다. “아야! 좀 살살 해!”수민은 대꾸했다. “싫어.”“너 정말... 전화해도 안 내려오고, 전화도 안 받고. 대단하네.”“누가 그렇게 전화를 했는지 궁금했는데, 너였구나. 배불리 먹고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거야?”동건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제시간에 내려왔으면 내가 전화를 그렇게 했겠어?”“제시간? 내가 너랑 약속했던가?” 수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동건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네가 오늘 야근 안 한다고 했잖아!”“그렇게 말했지만, 데리러 오라고 한 적은 없어.”수민은 야근을 하지 않아도, 바로 퇴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아있었고, 동건이 데리러 올 필요
그리고 도겸은, 상대방의 이런 모습을 보며 현빈이 묵인했다고 느꼈다.화가 난 그는 핸들을 내리치더니 고요한 밤에 갑자기 경적 소리가 울렸다.위층에서 직접 욕을 하기 시작했다.“한밤중에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 거야?! 죽으려고 작정을 한 건가!”말을 마치자 물 한 대야가 쏟아졌다.마침 도겸의 차 꼭대기에 뿌렸다.현빈은 이미 쿨하게 몸을 돌려 성큼성큼 떠났다.두 사람 사이에 발생한 모든 것, 앞서 현빈이 정은을 위층으로 데려다 준 장면까지, 베란다에 서 있던 재석은 똑똑히 보았다.찬바람이 쌩쌩 불며 눈까지 그의 얼굴에 떨어졌지만, 재석은 마치 추위를 모르는 듯 30분 넘게 이렇게 서 있었다.그는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잘 몰랐는데, 그저 가슴이 심하게 답답하고 숨조차 잘 쉬지 못했다.머릿속은 많은 생각을 했지만 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지난번 정은을 떠보며, 그녀가 연애 대신 학업에만 전념하고 싶다는 대답을 받은 재석은 자신이 마음속의 감정을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리고 다시 친구로 되어 이렇게 정은의 곁에 있으면서 그녀의 성장을 목격하는 것도 좋았다.그러나 지금, 그는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재석은 자신의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다.그는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정은의 곁에 남자라곤 오직 자신뿐이었으면 좋겠다고.그녀의 눈빛은 영원히 자신에게 떨어졌으면 좋겠다고.정은의 미소도, 그녀의 기쁨도 오직 자신 때문이었으면 좋겠다고.만약 가능하다면, 재석은 심지어 자신이 정은을 생각하는 것처럼 그녀가 자신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랐다.이런 미친 생각들은 정은이 현빈의 차에서 내려 두 사람이 나란히 올라오는 것을 보았을 때 들끓기 시작했다.재석은 쓴웃음을 지었고, 자신도 이렇게 이성을 잃을 줄은 몰랐다.더 슬픈 것은 감정에 빠져 나오지 못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하나뿐이라는 것이다....같은 밤, 매서운 찬바람 속에서, 동건도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수민의 전화를
눈에 거슬리는 동시에 도겸은 두 눈이 붉어졌고, 현빈의 뒷모습을 보며, 펑하고 핸들을 내리쳤다.도겸은 내려가서 현빈의 멱살을 잡고 그를 호되게 한 대 때리고 싶었다.하지만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남에게 손을 대는 것일까?단념하지 않는 전 남자친구? 아니면, 예전의 절친?그는 입가를 실룩거리더니 결국 두 사람이 위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물건을 올려준 뒤, 현빈은 떠날 준비를 했다.정은은 거실에서 물을 따르며 건네주었다.“고마워요, 오빠, 물 좀 마시고 가요.”현빈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더니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좋아.”정은은 물건을 간단히 정리하고 내일 다시 차츰차츰 치우려 했다.바로 이때, 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은은 낮에 베란다 문을 닫지 않았는데, 이때 바람이 세게 불어왔다.화분이 아직 베란다에 있었기에, 만약 바람에 날려 가서 사람이라도 다치게 한다면 큰일이었다.그래서 정은은 하던 일을 멈추고 서둘러 화분을 실내로 옮겼다.그중 하나가 비교적 무거워서 그녀는 몇 번 시도했지만 조금도 들지 못했다.이때 두 손이 나타나더니, 화분을 받으며 듬직하게 들어올렸다.현빈이 말했다.“내가 할게.”정은은 한숨을 돌렸다.“고마워요, 오빠.”손을 거둬들일 때, 부주의로 현빈의 손을 부딪혔지만, 정은은 별다른 생각하지 않았다.남자의 눈빛은 조여졌고, 그다지 많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현빈이 그 잘 자란 코코넛을 쉽게 실내로 옮기는 것을 보고, 정은은 또 손을 들어 다른 몇 개를 가리키며 어색하게 말했다.“이거, 그리고 이거도 다 옮겨야 하는데...”현빈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내가 짐꾼처럼 보여?”정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하지만 내 오빠잖아요. 전에 어려움이 있으면 오빠를 찾으라고 했고요.”이번에 현빈이 말문이 막혔다.‘오빠, 오빠, 그놈의 오빠!’그는 자신이 정말 정신이 나갔다고 느꼈다. 어떤 호칭이든 정은의 입에서 나오면 이유 없
“도겸이는 자기가 정말 뭐라도 된 줄 알아! 싸다 싸! 그러게 누가 그때 저런 말을 하래?”선우는 한숨을 쉬었다.“도겸이 형이 언제 단념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정은 누나는 이미 그 과거에서 벗어났는데.”“흥.” 동건은 냉소를 지었다.“도겸이가 단념을 한다고? 두고 봐. 정은 씨가 고개를 돌리지 않는 한, 저 자식 평생 이러고 있을 거야.”“이건 또 무슨 말이에요??”“그 가사가 뭐였더라? ‘얻을 수 없다면 영원히 소란을 피울 거야.’ 남자는 말이야, 정말 천박한 존재지. 됐어, 너희들 천천히 놀아, 나도 갈게.”“아니... 이제 막 왔는데 왜 가는 거예요?”동건은 헤헤 웃었다.“수민이가 갑자기 야근을 안 해도 된다고 했거든. 수민이 데리러 갈 거야.”선우의 눈빛은 더욱 이상해졌다.“그런데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고?”동건은 변명했다.“네가 뭘 알아? 나는 진지하게 연기를 하고 있는 거라고. 남자친구가 퇴근한 여자친구를 데리러 가는 것은 정상 아니야? 이것도 할 수 없다면, 양가 부모님들은 또 어떻게 우리 둘이 결혼을 전제로 진지하게 사귀고 있다는 말을 믿을 수 있겠어?”“아, 늦었으니 먼저 갈에! 안녕!” 말하면서 동건은 성큼성큼 떠났다.선우의 잘생긴 얼굴에는 엄청난 의혹이 나타났다.‘왜 다들 요즘 귀신에 홀린 것 같지... 이상해! 너무 이상해!’...겨울의 비는 마치 바늘을 숨긴 듯 했고, 쌀쌀한 바람은 뼈를 에는 듯 했다.8시도 안 되었지만,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도겸은 클럽을 떠난 후, 차를 몰고 정은의 거처로 곧장 달려갔다.도중에 그는 질투와 불쾌감을 느끼며 심지어 정은에게 어떻게 따져야 할지를 생각했다.‘심현빈이랑 안 친하다며?’‘둘이 불가능하다며?’‘그런데 왜 그 자식과 집에 가서 부모님을 만난 거야?’‘두 사람 언제 사귄 거냐고?’‘심현빈이 대체 뭐가 좋은 거야?!’‘대체 왜?!’그러나 막상 도착하자, 도겸은 위층으로 올라갈 용기조차 없었다.그저 차 안에 멍하니 앉아서 비가 유리창에
‘오늘 해가 서쪽에서 뜨지 않았고, 지구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자전하고 있는데!’선우는 또 다른 한쪽을 바라보더니 참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도겸은 한 잔 한 잔 이어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카드놀이도 하지 않고 공도 치지 않았으며 여자가 다가오면 더욱 멀리 피했다.다른 사람들은 혀를 찼다.“우리 도겸이 형 지금 정말 침울해진 것 같아. 보는 내 마음이 다 아프네!”“꺼져, 오글거려 죽겠네! 말 좀 똑바로 할 수 없어? 우리 도겸이는 사랑을 위해 이렇게 된 것이니, 이건 일편단심이라고!”“그래도 여자는 다 똑같지 않아? 돈만 있으면 어떤 여자를 살 수 없겠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선우는 그들이 갈수록 말을 심하게 하는 것을 듣고 즉시 호통을 쳤다.“이제 그만 좀 해. 그딴 말 좀 적게 하고. 너희들은 뭐 이런 상황이 없을 줄 알아!”그들 중에는 심지어 ‘소정은'이라는 이름을 언급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선우는 가슴이 떨렸다.그것은 절대로 도겸 앞에서 언급하면 안 되는 이름이었고, 도겸은 듣자마자 미쳐버릴 수도 있었다. 그때 가서 소란을 피우면 정말 수습하기 어려웠다.동건은 연속 몇 판 지자, 카드를 던졌다.“재미없네. 너 무슨 속임수 썼지? 어떻게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거야?”“형은 운이 나쁜 데다가 머리도 좋지 않잖아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에요?”“야! 전선우, 너 많이 컸다?”선우는 입을 삐죽거렸다.“칭찬으로 들을게요.”동건은 차갑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안 놀아.”그가 가자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고, 사람들도 자연히 흩어졌다.선우는 카드놀이를 놀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자 술을 마실 흥미도 없었다. 무대 아래는 분위기가 막 뜨거워졌기에, 춤을 춰도 재미가 없어 아예 소파 구석에 틀어박혀 핸드폰을 보았다.그렇게 선우는 현빈이 올린 사진을 보았다.“모임? 누구랑 가족 모임에 참가한 거야?” 선우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는 사진을 클릭하며 맛있는 것이 참 많다고 감탄하려 하다가, 갑자기 사
현빈은 미소가 굳어졌다.계속 사진을 뒤지니, 다음 사진이 바로 그가 방금 찍은 음식 사진이었다.그는 마음이 움직여 SNS를 클릭해 이 사진을 올렸다.[가족 모임.]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고, 일부 사람들은 댓글을 달며 소란을 피웠다.[집잔치야?][현빈이 형 또 새 애인 생겼어!][모처럼 SNS에 사진을 올렸는데, 드디어 금융 뉴스가 아니네.][우리 형님 몰래 큰일을 해냈네요][이야, 전에 같이 솔로로 지내기로 했는데, 어떻게 여자 친구 데리고 부모님을 만나러 간 거야?][쯧쯧, 이런 사진을 올리다니, 이제 결혼하려는 거야?]현빈은 사진을 클릭하며 쳐다보다가 갑자기 멈칫했다.그는 저도 모르게 사진을 확대한 뒤, 사진의 오른쪽 구석에서 정은의 반쪽 얼굴을 발견했다.비록 턱과 입술밖에 안 보이지만, 현빈의 친구들은 저마다 홈즈로 변신하여 이 실마리를 발견했다.현빈은 눈살을 찌푸리며 설명하려 했고, 생각하다 또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아무튼 모두들 농담이었으니, 만약 특별히 해석한다면 오히려 도둑이 제 발 저린 것 같았다.이때, 현빈은 갑자기 문자 한 통을 받았다.대학 동창인데 지난번에 그 샤브샤브 가게 사장님이었다.[축하한다, 친구야.][다음에 샤브샤브 먹으러 오면 무료야!]‘됐어, 답장하기 귀찮아.’...밤의 장막이 내리자, 등불이 켜졌다.전선우는 모이자며 동건과 도겸을 불렀다.동건은 처음에 퇴근한 수민을 데리러 가야 한다며 거절했다.그러나 5분 후에 동건은 다시 전화를 했다.[지금 시간 생겼어. 곧 도착할 거야.]선우는 약간 어리둥절했다.“이게 무슨 상황이에요?”[아, 수민이가 임시로 야근을 해야 한다고 했거든.]그리고 잠시 후 다시 덧붙였다.[오늘 밤을 새워야 한데.]선우는 갑자기 어이가 없었다.‘수민, 수민, 그놈의 수민... 여자친구 생겼다고 자랑은? 진짜 여친도 아닌데.’“형 진짜 조수민에게 반한 거 아니지?”맞은편은 잠시 침묵에 잠기더니 곧 버럭 했다.[꺼져! 내가 그
현빈이 말했다.“이렇게 푸짐한 밥상에, 정은이는 또 이원이 처음이니 같이 사진 한 장 찍을까요?”이 제안에 두 노인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그들은 아직 손녀와 함께 사진을 찍은 적이 없었다.이춘재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확실히 기념할 만한 일이지.”“현빈아, 너 좀 잘 찍어. 나중에 프린트해서 앨범에 넣을 거야.”현빈은 미소를 지었다.“저 말고 이모님에게 찍어달라고 해야죠.”“허허, 나 좀 봐, 너도 들어와야 한단 걸 깜빡했네...”현빈은 가정부를 불었다.정은은 얌전하게 봉수진의 곁에 서서 웃으며 그녀의 팔을 껴안았고, 옆에는 현빈이 서 있었으며, 가장 왼쪽에는 이춘재였다.“준비되셨나요?” 가정부가 물었다.봉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찰칵.셔터를 누르면서 이 순간이 고정되었다.두 노인은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고, 정은은 방긋 웃고 있었으며, 현빈도 담담하게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가정부는 잘 못 찍었을까 봐 몇 장 더 찍었다.두 노인은 사진을 보고 나서 아주 만족스러웠다.가정부는 핸드폰을 현빈한테 돌려줬다.봉수진은 사진을 꼭 프린트해야 한다며 신신당부했다.“안심하세요. 저도 다 기억하고 있어요.”봉수진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현빈은 사진을 보며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이모님의 월급을 좀 올려도 될 것 같은데.’그리고 핸드폰으로 탁자 위의 음식을 몇 장 찍어서야 앉아서 밥을 먹었다....식사를 마친 후, 정은은 봉수진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았다.이춘재는 수십 년 된 이웃과 산책을 하러 나갔다.멀리서도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그래, 찾았어! L시에서, 이미 결혼을 했더군...”“무슨 일을 하고 있냐고? 아, 소설을 쓰는 작가야. 미스터리 소설... 참, 꼭 을 읽어봐. 내 딸이 쓴 거야... 들어봤다고? 그럼 잘 됐네! 꼭 봐야 돼!”“오늘 온 그 아이는 내 손녀인데 서비대학교의 대학원생이야. 학술 때문에 바빠서 아직 남자친구를 사귀지 않았어...”“하하... 그래, 하늘이
현빈은 정은에게 문을 열라고 표시했다.정은은 손을 들어 손잡이에 가볍게 힘을 주었다.그는 줄곧 현빈의 품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눈에 들어온 모든 것은 여전히 정은의 상상을 초월했다.청아한 디퓨저 냄새가 전해져 왔는데, 정은이 좋아하는 박하향으로 신선하고 쾌적했다.방 배치는 전체적으로 연한 색깔이었다.벽은 베이지색이었고, 나무로 된 바닥에는 부드러운 긴 털 카펫이 깔려 있었다.밟으면 편하고 가뿐했다.아마도 자신이 책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벽쪽에 특별히 책장을 몇 개 더 추가했다. 책장 앞의 창문 옆에 의자 하나까지 있었다.부드러운 햇빛이 큰 창문을 비추며 책장에 떨어졌고, 생각만 해도 편안했다.뿐만 아니라 방에는 작은 탁자, 정교하고 나른한 작은 소파, 심지어 작은 다탁까지 있었다.커튼을 열면 바깥은 독립된 베란다였다. 멀리 바라보면 하늘, 산, 숲, 풀밭이 있어 마음이 탁 트이고 기분이 상쾌했다.“마음에 들어?”정은은 현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엄청 마음에 들어요.”말하면서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지금의 모든 것이 너무 환상적이네요. 마치...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 이야기처럼, 신데렐라는 공주가 되어 그녀만의 성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정은은 말투가 가벼웠고, 표정이 평온했다.그녀는 이 모든 것에 대해 놀라움을 느꼈지만, 결코 빠져들지 않았다.현빈은 고개를 돌려 갑자기 입을 열었다. “너는 신데렐라가 아니야.”정은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그가 계속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신데렐라는 영원히 연약하잖아. 왕자가 자신을 구하기를 기다리고 있고. 넌 아니야. 넌 자신을 그런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것이고, 주동적으로 어려움을 파헤치며 자신을 구할 거야.”현빈은 미소를 지었다.“너는 신데렐라가 아니라, 겨울 왕국의 여왕 엘사야. 용감하고 지혜롭지.”정은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오빠가 날 이렇게 높게 평가할 줄은 몰랐는데요? 눈에 콩깍지라도 씐 거예요?”남자는 웃음을
“좋아요. 방금 들어왔을 때 힐끗 보았을 뿐, 아직 자세히 보지 못했거든요.”봉수진은 허리가 좋지 않아 오래 앉아 있으면 몸이 불편했기에, 정은은 원래 그녀를 모시고 정원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잘됐다 생각하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하늘은 흐렸고, 햇빛은 구름 뒤에 숨어 있다가 가끔 가느다란 빛을 비추었지만 금세 사라졌다. 겨울의 J시에서 푸른 식물을 보기 어렵고, 대개 앙상한 가지들뿐이었다. 그러나 이원의 화원은 예외였다.거대한 유리 온실에는 다양한 꽃과 식물들이 계절과 상관없이 만발했고, 겨울에 가장 선명한 색채를 이루고 있었다. 봉수진은 특별한 취미가 없어 그저 꽃과 식물을 가꾸는 것을 좋아했다. 원래 이런 일에도 흥미가 없었지만, 이춘재가 봉수진이 점차 침울해진 모습을 보고는 주의를 좀 돌리라고 권한 것이었다. 처음엔 탐탁지 않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봉수진은 장갑을 끼고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개의치 않은 채 작은 화원의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정은도 꽃가지를 다듬고 새 흙으로 덮어주는 것을 도왔다. 봉수진은 힐끗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능숙한 손놀림에 감탄했다. 식물의 습성을 잘 알고 있어, 어떤 식물은 물을 많이 주고, 어떤 식물은 적게 주어야 하는지, 어떤 식물은 아예 물을 주면 안 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딱 봐도 평소에 화초를 다듬는 사람인 게 분명했다“우리 정은이는 공부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화초 가꾸는 솜씨도 대단하구나.” 봉수진은 웃으며 말했다.요즘 젊은이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화초를 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할머니께서 너무 잘 가꾸셔서 저는 그저 거들었을 뿐이에요.”정은은 발밑에 자란 말리꽃을 바라보았다. 작은 떨기로 자라난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더 무성하게 자랄 것이었다.봉수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넌 듣기 좋은 말로 나를 달래는구나.”“아니에요, 진짜예요. 이 장미도 정말 예쁘잖아요. 그런데 모양이 조금 이상한데, 마치 배추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