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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작가: 십일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15 13:19:52
“가면무도회?”

“응, 호텔의 전통인데, 반년에 한 번씩 열려. 매번 주제가 달라. 지난번에는 분장쇼였고, 지난번에는 할로윈 파티였어. 이번의 주제는 나름 평범했기에, 사람들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아마 오늘 밤에 사람이 많을 거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호텔 곳곳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볼 수 있었고, 색등까지 걸려 있어 명절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수민이 말했다.

“나 방금 밖에서 들어왔는데, 웨이터들 전부 가면을 쓴 거 있지? 엄청 재미있을 거야!”

수민은 정은에게 여우 가면을 골라주었지만, 자신에게 숲의 여왕인 사자 가면을 골랐다. 그 이유도 단지 사자가 멋있기 때문이었다!

정은이 물었다.

“왜 늑대를 선택하지 않은 거야?”

“늑대?”

“네가 바로 늑대잖아?”

“야, 너 얻어맞고 싶어?!”

정은은 가면을 들고 도망쳤고, 달리면서 얼굴에 썼다.

“빨리 서둘러, 늦겠다!”

“야, 너 거기 안 서! 누가 늑대냐고?! 네가 더 늑대 같잖아!”

...

23층 연회장에서.

엘리베이터를 나서자, 정은은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사실 사람이 많은 자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얼굴에 가면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순식간에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수민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사람들을 뚫고 바에 도착했다.

“마티니 한 잔이요. 정은아, 넌 뭐 마실래?”

“난 레몬물.”

수민은 어이가 없었다.

“뭐? 다시 한번 말해 봐?”

“레몬...”

수민은 직접 그녀의 말을 끊어버리며 바텐더를 향해 말했다.

“내 친구에게는 블러디 메리 한 잔이요!”

바텐더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정은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어두운 곳에 처한 누군가 그녀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고, 시선을 떼기조차 아까웠다...

독염은 연회장 문 앞에 서 있었고, 벽에 기대며 수시로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는 유나리아 가왕의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블랙과 골든의 충돌에 불규칙한 음표까지 더하니, 차갑고 우아해 보였다.

특히 도겸은 흰 셔츠를 입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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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고, 아이스 블루의 커프스 버튼이 무척 눈에 띄었다. 옅은 색의 파텍필립은 복고풍의 느낌을 주고 있지만, 또 오늘 그의 가면인 오페라의 유령과 아주 잘 어울렸다.정은은 웃음을 머금은 남자의 눈을 마주한 순간, 바로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심현빈이었어!’“미안해요, 난 춤을 출 줄 몰라서.”현빈은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학교 백스테이지에서 까치발을 하고 춤추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거짓말이 들통나자, 정은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현빈이 말한 것은 바로 정은이 대학교 4학년 때, 졸업식에서 미처 추지 못한 그 솔로 댄스였다. 정은은 두 달 동안 연습했지만, 종아리를 다쳐 결국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나 자신조차 잊을 뻔했는데. 이 사람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이때, 무대 위의 사회자가 무슨 말을 하자, 팔로 스폿이 여러 사람들 머리 위를 비추었다.현장의 환호성도 점차 커졌다. 그 하얀 빛이 두 사람에게 떨어지자, 그들은 같은 동그라미 안에 갇혔다.현빈은 웃으며 말했다.“무도회의 규칙은 팔로 스폿이 비춘 남녀가 반드시 춤을 춰야 한다는 거야. 하나님도 내가 거절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나 봐. 그런데 넌 모두를 실망시킬 건가?”말을 하는 동시에, 그는 몸을 굽히더니 손을 내밀어 정은을 초청했다.주위 사람들도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동의해! 동의해!”“한 곡 춰! 한 곡 춰!”정은은 이를 악물고, 울며 겨자 먹기로 그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현빈은 바로 그녀를 데리고 무도장 가운데로 들어갔다. 그는 앞으로 다가간 다음 뒤로 물러서며, 회전을 한 다음 또 정은을 가볍게 안았다. 마치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오페라의 유령이 교활한 작은 여우 한 마리를 잡은 것 같았다.남자의 양복바지와 여자의 치맛자락이 뒤엉켜, 눈이 마주칠 때, 현빈은 유쾌하고 만족스럽게 웃었다.정은은 춤을 출 줄 알 뿐만 아니라 아주 잘 추었다.이는 어릴 때 정은의 어머니가 교육에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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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4화

    현빈은 오히려 웃었다.“그건 내 마음이니까 상관하지 마. 시도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 결과를 알 수 있겠어?”정은이 물었다.“그 결과가 당신을 크게 실망시키더라도?”현빈은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럼 나도 받아들여야지.”정은은 그의 고집이 이렇게 셀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현빈은 정은의 감정을 알아채며, 말을 잇지 않고, 조용히 그녀와 함께 파도 소리를 감상했다.한밤중이 되어서야 현빈은 이곳을 떠났다.정은은 방금 그가 소리 없이 고집을 부리며, 꿋꿋이 버티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사실 현빈은 분수가 있고 또한 남들과 거리를 두는 사람이었다. 그는 정은을 강요하지 않았고, 경솔하게 움직이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될수록 그녀에게 번거로움을 안겨다 주려 하지 않았다.도겸과 전혀 달랐다. 전에는 정은의 뒤를 맹렬하게 쫓아다녔는데, 지금은 걸핏하면 성질을 부리곤 했다. 정은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 내가 남이 뭘 하려는지를 상관할 필요가 어딨겠어.’‘나 자신만 처신을 잘하면 돼.’정은이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문득 검은 그림자 하나가 소리 없이 어두운 곳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귀신이야 뭐야...’정은은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어두운 그림자가 어두운 곳에서 나오자,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고, 정은도 점차 그 사람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강도겸,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한밤중에 여기 서 있으면서 소리조차 내지 않으니, 정말 무섭단 말이야!’정은이 중도에 퇴장하자, 도겸은 무도회가 재미없다고 느꼈다.줄곧 쫓아 나왔지만, 또 줄곧 사람을 찾지 못했다.연희는 거머리처럼 매달리며, 배가 고프니까 뭐 좀 먹고 싶다고 했다. 도겸은 인내심이 순식간에 바닥나더니 짜증이 났다. 그는 웨이터를 불러 연희를 데리고 레스토랑으로 가라고 했다.호텔의 비밀유지 조치가 엄격했기 때문에, 도겸은 엄청난 시간을 들여서야, 정은의 룸 번호를 알 수 있었다.그리고 즉시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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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5화

    이 말을 듣자, 도겸의 안색은 약간 누그러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정은의 목소리가 또다시 울렸다.“너도 마찬가지야.”“지금 시간도 이미 늦었으니, 만약 계속 여기서 발광을 하고 싶다면, 난 지금 바로 집사에게 연락해서 경호원을 부를 거야.”도겸은 계속 말하고 싶었다.“정은아-”“셋까지 세겠어. 하나, 둘...”정은은 핸드폰을 꺼내, 키패드를 클릭했다. 이제 1만 누르면, 집사가 바로 나타날 것이다.도겸은 달갑지 않았지만, 또 다른 방법이 없었다.“내일 다시 찾아올게.” 이 말만 남기고, 그는 성큼성큼 떠났다.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연희는 조용히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 숨겨진 그녀의 표정과 눈빛은 잘 보이지 않았다.다음 날, 날이 밝자, 수민은 마침내 돌아왔다.정은은 우유 한 잔을 마시며, 손에 빵까지 들고 있었다. 금방 먹자마자, 누군가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소리가 울렸다.수민은 이미 다른 치마로 갈아입었고, 기분이 좋은 듯 콧노래를 흥얼거렸다.탁자 위의 샌드위치를 보자, 그녀는 걸어와서 입에 넣었는데, 빵이 고소하고 바삭바삭하게 잘 구워졌기에, 수민은 또 한 입 먹었다.정은은 맞은편에 앉아 기분이 상쾌한 수민을 바라보며, 웃으며 입을 열었다.“어제 아주 즐거운 밤을 보냈구나?”“그럼. 이렇게 아름다운 남자는 정말 오랜만이었어.”어젯밤을 언급하자, 수민의 표정은 좀 이상해졌다. 감탄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또 음미하는 것 같기도 했다.“든든한 허리, 복근도 탄탄해서 정말 명품 몸매였지.”연하남은 H국의 사람이었기에, 그 얼굴은 확실히 잘생겼다. 게다가 그 나라는 헬스에 깊은 중시를 돌리고 있어, 수민은 어젯밤에 만진 복근이 단련으로 만들어진 것이란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이렇게 잘 맞는 파트너는 정말 오랜만인데.’특히 아침에 깨어났을 때, 남자는 뜻밖에도 아직 떠나지 않았다. 새하얀 피부에는 모두 수민이 남긴 키스 자국이었고, 촉촉한 눈동자는 강아지처럼 초롱초롱했다. 그 순간,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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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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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진작에 이렇게 나왔어야지...”말하면서 민지는 서준의 팔짱을 끼고 기뻐하며 학교 밖으로 돌진했다.서준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손을 빼려고 했다.민지는 바로 그를 잡아당겼다.“야, 쑥스러워하지 마. 우린 절친이잖아!”민지는 말을 마치고 종종걸음으로 뛰기 시작했다.‘팔을 못 빼겠네! 이 여잔 힘이 왜 이렇게 센 거야?’두 사람은 교문을 나서자마자 케이크를 들고 스포츠카에서 내려오는 도겸을 보았다. “어머!”민지는 눈살을 찌푸렸다.“이 사람은 왜 매번 차를 교문 앞에 세우는 건지 모르겠네. 심각한 교통 체증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서준은 잠시 침묵했다.“아마도 이런 자신이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어디가 멋있다는 거야? 포르쉐에서 내려오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으니까?”“그럴 수도?”민지는 서준을 바라보았다.“너도 이런 게 멋있다고 생각해?”서준은 고개를 저었다.“우리 집은 국산 자동차를 선호해서.”민지가 말했다.“나와 우리 아버지, 그리고 삼촌 할아버지는 모두 렉서스가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거든.”“그럼 왜 자꾸 포르쉐를 운전하는 거지?”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며 도겸을 이해하지 못했다.“하지만 들고 있는 케이크는 아주 맛있어 보이는데.”서준은 그녀가 침을 삼키는 동작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도겸은 몇 번이나 찾아오면서 정은이 늘 민지와 서준과 함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 횟수가 많아지자, 그도 두 사람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었다.도겸은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정은이는? 오늘 왜 너희들과 같이 있는 않는 거야?”민지는 사실대로 말했다.“정은 언니 오늘 학교에 안 나왔어요.”“왜?”“휴가를 냈거든요.”“왜 갑자기 휴가를 낸 거야?”“그건 저희도 잘 몰라요.”도겸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묻고 싶었다.그러나 민지는 이미 서준의 팔을 잡으며 밀크티 가게로 향했다.“저희는 아직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도겸은 허탕을 쳤다. 양복 차림을 한 사람이 미니언즈 포장의 케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72화

    “선배님, 다 됐어요?”정은이 입을 열고서야 재석은 정신을 차렸다.“응, 다 됐어.”“고마워요.”재석은 또 정은의 허리를 힐끗 쳐다보았다.다른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 그녀가 너무 말랐다고 생각했던 것이다.‘밥을 제대로 먹지 않은 게 분명해!’...도겸은 해가 지고 다음 날 날이 밝을 때까지 줄곧 화장대 앞에 앉아 있었다.그도 잠을 자고 싶었지만 아예 잠이 오지 않았다.머리는 지칠 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과거를 회상했다.두 사람이 달콤하고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고, 자신이 찌질하게 굴던 장면도 있었다.날이 밝자, 도겸은 그제야 추억의 늪에서 벗어났다.아침 8시, 직장인들은 저마다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운전을 하며 달북동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디저트 가게로 향했다.평소에는 30분밖에 걸리지 않은 거리였지만, 오늘 꼬박 한 시간이나 걸렸다.“안녕하세요, 망고 케이크 하나 주세요.”점원은 멈칫했다.“통째로 된 케이크를 원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한 조각을 원하시는 거예요?”“통째로 된 거요.”“손님, 정말 운이 좋네요. 지금 금방 하나 만들었는데 곧 자르려고 했거든요. 몇 분만 늦으셨다면 아마도 1시간 더 기다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도겸은 가볍게 응답했다.점원은 포장을 하면서 물었다.“이렇게 일찍 케이크를 사러 오셨다니,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요?”“내 여자... 전 여자친구가 좋아해서요.”이 말 한마디에 젊은 점원은 바로 예전에 본 로맨스 소설을 떠올렸다.‘누가 진정한 주인공인지 모르겠네.’도겸은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아 케이크를 받은 다음 바로 차에 올라탔다.점원은 카운터 앞에 서서 유리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이야, 스포츠카라니... 더 소설 주인공 같잖아.’...오전 두 시간의 수업이 끝나자, 하민지와 임서준은 실험실에 가려고 했다.강의동을 나오자마자 민지는 참지 못하고 입맛을 다셨다.“목이 좀 마른데.”서준은 말을 하지 않았다.이미 그의 침묵에 익숙해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71화

    도겸의 심장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났다.소진헌이 재석을 대할 때의 열정과 자신을 대할 때의 냉담함은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도겸은 계속 서 있지 않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문을 닫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는데, 재석이 정은의 집에 들어간 게 분명했다.도겸은 거절당한 선물 더미를 가지고 별장으로 돌아갔다.왕순자는 이미 청소를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이곳은 다시 정은이 금방 떠났을 때의 쓸쓸하고 적막한 곳으로 변했다.도겸은 위층으로 올라간 다음 안방으로 들어갔다.화장대는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고, 그 위에는 아직 다 쓰지 않은 스킨케어 제품이 놓여 있었지만, 그들의 주인은 이미 그들을 원하지 않았다.‘정은이 날 버린 것처럼.’도겸은 아래의 서랍을 열었다. 전에 이 안에는 수표 한 장과 토지 증여 계약서, 그리고 다이아몬드 팔찌가 들어 있었다.몇 개의 다이아몬드는 사수자리의 모양을 이루었다.이것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 팔찌였다. 정은의 22번째 생일이 되던 해에 도겸은 특별히 유명한 디자이너인 존 스미스를 청하여 그녀를 위해 디자인했고, 그녀가 자신의 삶을 비춘 별이라는 뜻이었다.정은에게 서프라이즈를 주기 위해 도겸은 고의로 그녀와 말다툼을 벌였는데, 전화도 받지 않고 톡까지 차단했다.정은의 생일날인 새벽 12시, 도겸은 이 팔찌를 들고 서비대학교 문 앞에 나타나 그녀에게 가장 큰 서프라이즈를 가져다주었다.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비록 정은이 팔찌를 받았고, 두 사람도 오해를 풀고 다시 화해했지만 도겸은 그녀가 별로 기뻐하지 않는다고 느꼈다.그 후 그도 정은이 이 팔찌를 몇 번 찬 것을 보았다.그러나 무슨 저주에라도 걸린 것처럼, 정은이 이 팔찌를 낄 때마다 두 사람은 크게 싸우곤 했다.후에 정은은 아예 팔찌를 서랍에 잠그며 다시는 끼지 않았다.“도겸아, 난 너와 다투고 싶지 않아. 정말이야. 매번 다툴 때마다 난 우리의 감정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만 같아. 나와 너의 거리도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고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70화

    “이 물건들 그냥 가져가. 우리는 친척도 친구도 아니니, 이 물건들이 비싸든 안 비싸든 우리는 받을 이유가 없어. 그리고 너와 정은이는 이미 헤어졌어. 지금은 낯선 사람과 마찬가지이니, 우리는 네 선물을 받을 이유가 더욱 없지 않겠어?”도겸과 처음이자 유일하게 만났을 때, 이미숙은 소진헌과 레스토랑에서 30분 넘게 기다렸다.도겸은 빈손으로 와서 간단히 인사를 한 후,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 먼저 말을 꺼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그때 이미숙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이 남자는 우리 정은이와 어울리지 않아.’그러나 정은은 그때 도겸에게 푹 빠졌다. 도겸이 핑계를 대고 떠난 뒤, 그녀는 열심히 그의 편을 들어주며 그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이미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마음이 아팠다.굽실거리는 딸이 안타까웠고, 남자의 존중을 받지 못해서 더욱 안쓰러웠다.두 사람의 감정이 어떻든, 적어도 도겸은 그들을 하나도 존중하지 않았다.한 남자가 자신의 부모님조차 존중하지 않는다면 또 어떻게 그 여자를 존중하겠는가?이미숙은 어머니로서 기쁨을 안고 찾아왔지만, 다시 근심과 걱정을 안고 돌아갔다.물론, 그녀도 또한 이러한 도리를 정은에게 들려줄 수 있었다. 심지어 좀 더 강경하게 두 사람은 어울리지 않으니 반드시 헤어져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이미숙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그녀는 정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끝을 보지 않는다면, 정은은 앞으로 후회할 것이고, 줄곧 이 일이 마음에 걸려 평생 행복해하지 않을 것이다.아이가 성인이 된 이상, 부모로서 그들도 이제 손을 놓아줘야 했다. 정은이 스스로 인생을 겪도록.그러나 이미숙은 정은이 이대로 공부를 포기할 줄은 몰랐다.그 대가는 너무 컸다.“다행히 모든 일이 지나갔고, 정은이도 이제 새로운 생활을 하기 시작했어. 만약 마음속으로 여전히 우리 정은이에게 미안하다면, 더 이상 찾아와서 방해하지 마.”이미숙은 다른 사람과 논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다투는 것을 더욱 좋아하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69화

    도겸은 바로 확인을 한 다음, 전화로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대리를 불렀다.“이것들 모두 종료해.”“네?” 대리는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이 프로젝트들은 모두 회사가 현재 가장 중시하는 프로젝트인데, 그중 몇 개는 곧 수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갑자기 종료를 하다니?“내가 한 말에 무슨 이의라도 있는 거야?”“아, 아닙니다.”“아니면 이해가 안 되는 거야?”“그것도 아닙니다.”“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대리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대표님, 저 이해가 좀...”“이해할 필요 없어. 그냥 내가 시킨 대로 해.”...20여개의 프로젝트를 어떻게 정리하고, 어떻게 손실을 최대한 줄이는지 모두 큰 문제였다.도겸이 회의실에서 나올 때, 이미 깊은 밤이 되었다.그는 사무실의 창문 앞에 서서 먼 곳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달빛이 휘영청 밝고 등불은 희미했다.“처음에 정은이가 전 세계와 맞선다 하더라도 의롭게 널 선택했던 거야.”“아쉽게도 넌 정은이의 마음을 저버렸어.”현빈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도겸는 쓴웃음을 지었다. 후회도 여러 가지로 나뉘었는데, 가장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이 너에게 네가 얼마나 좋은 여자를 놓쳤는지를 알려주는 것이었다.‘그런데 그 전에 그들은 분명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아. 왜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지?’도겸은 엄청난 무력감을 느꼈고, 이런 느낌은 별장에 돌아가 텅 빈 거실을 바라볼 때 절정에 달했다.‘난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심현빈은 이미 정은이의 부모님을 만났다고 했어...’이른 아침, 금빛 햇살이 대지에 쏟아졌다.정은은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했는데, 소진헌과 이미숙을 깨우지 않고 혼자 먹고 조용히 아침운동을 하러 나갔다.오전에 수업이 없어서 그녀는 아침 운동을 마치고 시장에 들렀다.그렇게 소진헌과 이미숙이 일어났을 때, 아침식사뿐만 아니라, 정은은 신선한 채소와 고기까지 사왔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68화

    “정은이는 사랑이 부족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도겸은 몸을 돌렸다.현빈이 또박또박 말했다.“정은이에게 한 사람을 사랑할 용기가 있고, 동시에 그 사람을 포기할 용기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아마도 이것 때문에 처음에 정은이가 전 세계와 맞선다 하더라도 의롭게 널 선택했던 거야.”“아쉽게도 넌 정은이의 마음을 저버렸어. 아마도 너와 다른 사람들은 정은이가 너한테 미쳐서 6년 동안 참아왔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난 알아. 정은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정은이는 단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전에 내린 결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리고 배신을 당했더라도 정은이는 너와 좋게 끝내고 싶었어.”현빈의 말은 도겸의 정곡을 쿡쿡 찔렀다.도겸은 몸이 비틀거리더니 눈시울을 붉혔다.“너 지금 나한테 자랑하는 거야?”“그렇게 생각해도 돼.” 현빈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더 이상 연기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가정에서 나온 아이는 감정에 대한 요구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어. 정은이는 온전하고 포용적이며 깨끗하고 순수한 사랑을 원하거든.”재삼 고민한 끝에 내린 선택이 아니라.현빈은 도겸이 정말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자신도 불합격이었다.그는 생각이 많은 여우라서, 예전 같으면 절대로 한 여자를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왜냐하면 확실히 도겸이 말한 대로, 한 여자를 좋아하는 것과 돈을 버는 것은 모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현빈은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그는 정은을 위해 제멋대로 굴고 싶었다.앞으로 두 번, 심지어 세 번, 수천수만 번 이런 일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결국 도겸은 문을 박차며 가버렸고, 그 소리는 하늘을 뒤흔들었다.선우와 동건은 문 뒤에 서 있었는데, 하마터면 놀라 죽을 뻔했다.“도겸이 형 그 눈빛 봤어요? 사람을 잡아먹을 것만 같아요.”동건이 대답했다.“야, 그 자식 정말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을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67화

    “너 설마, 나와 깨끗이 선을 그으면, 정은이는 절친이었던 우리의 사이를 개의치 않고, 네 마음을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멍청하긴!” 도겸은 현빈이 든 찻잔을 빼앗아오며 땅에 찧었다.낭랑한 소리와 함께 그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심현빈, 전에는 왜 몰랐지, 너 사랑꾼이었어? 여자 없인 못 사는 거냐고?”선우와 동건은 얼른 뒤로 물러서며, 깨진 조각에 다치지 않도록 했다.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다. 그들은 모두 도겸의 말 때문에 은근히 놀랐다.현빈은 뜻밖에도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는 방식으로 도겸과 강제로 선을 긋고 있었다.전에 두 사람은 비록 사이가 틀어졌지만, 사적으로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것에 불과했다.그러나 투자할 프로젝트는 여전히 함께 투자하며 같이 돈을 벌었다.이익 앞에서 개인적인 일은 전부 보잘것없었으니까.선우와 동건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여자 때문에 싸우더라도 장사는 계속해야 했다.하물며 현빈은 여우였다.‘그런데 이번엔 왜...’도겸이 현빈을 사랑꾼이라 욕하는 것을 듣고, 선우와 동건도 현빈이 이해되지 않아 침묵을 지켰다.현빈은 바닥에 깨진 찻잔을 바라보았다.“정말 아깝네. 멀쩡한 찻잔이 이렇게 깨졌다니. 넌 성질이 참 더러워. 그나저나, 넌 그때 정은이를 이 찻잔과 똑같이 대하지 않았니?”도겸은 매섭게 눈살을 찌푸렸다.“넌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쩨쩨하면 뭐가 어때? 유치하면 또 어때? 난 쩨쩨하고 유치해서 너와 깨끗하게 선을 그을 거야. 뭐 굳이 완벽한 이유는 없지만,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러길 원해서 그래. 왜, 안 돼?”“너...”이 말에 도겸은 화가 나서 숨이 거칠어졌고, 이를 꽉 물었다.현빈은 웃으며 도발했다.“왜? 그 프로젝트들이 아까운 거야? 그 돈이 그렇게 아까워?”“그래, 너만 잘났다. 넌 돈이 싫은 거야?!”“그건 아니지만 돈보다 정은이가 더 중요해.”선우와 동건은 닭살이 돋기 시작했다.현빈은 계속해서 말했다.“네 말대로, 내가 너와 깨끗하게 선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66화

    “심현빈, 이게 무슨 뜻이야?” 강도겸은 다탁 앞으로 걸어왔다.“뭐가?”“왜 개발구역의 프로젝트를 중단한 거지?”현빈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협력하고 싶지 않아서 중단했어.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네가 중단하고 싶으면 다야?! 하루 지체하면 얼마나 큰 손실을 봐야 하는지 아냐고?”“아마도.”“그런데도 중단을 해?!”현빈은 차를 다 마신 다음, 아주 능숙하게 다시 끓이기 시작했다. 도겸은 찻주전자를 꾹 눌렀다.“넌 3일 동안 피해 다녔고, 지금은 한마디조차 하지 않고 있어. 계속 질질 끌면서 태도를 표명하지 않을 작정이냐?”현빈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내가 피했다고? 언제?”“네 비서가 너 출장 갔다고 했어. 그게 일부러 나 피한 거 아니야?”“허, 널 피한다고? 착각 좀 하지 마. 내가 L시 시찰을 하러 가는 일정은 이주 전에 이미 정해졌어. 내가 굳이 너를 피할 필요가 있을까?”“L시?” 도겸은 예민하게 무언가를 알아차렸다.현빈은 담담하게 웃었다.선우가 갑자기 다가와서 말했다.“현빈이 형, L시에 갔었어요? L시는 정말 좋은 곳이죠. 먹는 것도 모두 내 입맛에 맞고요... 그런데 정은 누나의 고향이 L시에 있었던 것 같은데... 왜 날 때리고 그래요!”동건은 미친 듯이 눈짓을 했지만, 선우는 좀처럼 눈치채지 못했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선우를 때렸다.선우는 그제야 반응을 하더니 즉시 입을 다물었다.도겸은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는 현빈을 보며 또박또박 물었다.“너 L시에 가서 정은이를 만난 거야?”현빈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시찰하러 갔다고 말했잖아.”“그런데...” 그는 말머리를 돌렸다.“확실히 정은이를 만났지.”“지금 뭐라고 했어?”“정은이를 만났다고.”“너 한 번만 더 말해봐?!”“정은이 만났는데.”도겸는 그의 옷깃을 덥석 잡아당겼다.“심현빈, 내가 지난번에 경고했었지?”현빈은 도겸의 손을 뿌리치며 유유히 옷깃을 정리했다.“경고? 허, 네가 무슨 자격으로 경고를 해? 전 남자친구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65화

    이미숙은 현빈이 자신의 책까지 보았을 줄은 몰랐다.“『7일담』이 내가 쓴 책이란 것을 알고 있었어?”현빈은 정은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알아요.”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이미숙도 물어보지 않았다.다만 정은은 두 똑똑한 사람의 눈빛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아이고...’“그래서 범인은 정말 그 성실한 물리 선생님인 거예요?”이미숙은 깜짝 놀랐다.“왜 그렇게 물어보는 거지?”책 속의 모든 증거는 전부 물리 선생님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지식으로 완벽한 범죄를 실시했다.명확한 증거가 있는 이상, 그가 범인인게 확실했지만, 현빈은 오히려 그 사람이 정말 범인이냐고 물었다.그를 바라보는 이미숙은 은근히 감탄했다.“책에 몇 군데 숨겨진 묘사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첫 번째, 계단 사이의 어긋난 그림자.두 번째, 알 수 없이 사라진 흉기. 결국 경찰에 의해 발견되었지만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설명되지 않았다.세 번째, 혼자 사는 딸 집에 슬리퍼 두 켤레가 나타났다. 책에서는 손님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왜 하필 남자 슬리퍼였을까?혼자 사는 여자가 자주 남자를 집에 초대할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특별히 슬리퍼를 준비했단 말인가?이것은 불합리했다.준비해도 남자가 아닌 여자 슬리퍼를 준비해야 마땅했다.“모든 숨겨진 단서는 범인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어요.물론.”현빈은 말머리를 돌렸다.“이것은 단지 제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에요.”이미숙은 웃으며 말했다.“이 질문을 했을 때, 답은 이미 네 마음속에 있을 거야.”현빈도 따라서 웃었다.“그래서 2부가 더 있는 거네요, 맞죠?”이미숙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웃으면서 말을 하지 않는 그녀의 태도는 이미 모든 것을 설명했다.현빈이 차를 골목 어귀에 세우자, 정은은 고맙다고 인사하며 부모님을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고마워, 현빈아.”“아저씨, 별말씀을요.”위층으로 올라갈 때, 소진헌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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