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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3화

Author: 십일
“강 여사? 강 여사!”

“네? 뭐라고요?”

서영숙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식사해야죠, 자리에 안 앉을 거예요?”

“아, 그래요. 앉아야죠.”

서영숙은 서둘러 세정을 데리고 자리에 앉았다.

물어보던 사람은 머리를 긁적이며 속으로 궁금해했다.

‘오늘은 왜 이 두 집안의 사모님과 아가씨들이 모두 이렇게 이상한 거지?'

...

연회가 끝나자, 사람들 하나둘씩 떠났다.

위층 휴게실에서, 현빈이 어쩔 수 없단 듯이 말했다.

“어머니, 이제 돌아가세요.”

“난 안 가! 내가 왜 가야 해?! 나와 부모 자식 간의 연을 끊겠다는 거야? 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그래요. 저도 그게 궁금했어요.”

현빈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윤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버지는 아직도 전화를 안 받으세요?”

“그래.”

마침내 이춘재와 봉수진이 방에 들어왔다.

이미숙과 그녀의 가족은 이미 떠났다.

봉수진은 문을 열고 들어서며 무표정으로 이미윤을 바라보았다.

“현빈이가 그랬어, 네가 우리를 만나고 싶다고.”

“엄마...”

“그렇게 부르지 마. 듣기 싫으니까.”

봉수진은 더 이상 체면을 차릴 필요가 없다는 듯이, 혐오하는 표정을 드러냈다.

이미윤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알겠어요.”

이제 그녀는 완전히 냉정을 되찾았다.

“앉으세요. 저와 이야기 좀 해요.”

봉수진은 궁금했다. 이제 와서 무슨 할 말이 더 있는 건지, 어떻게 이렇게 뻔뻔하게 자신들을 만나려고 하는 건지.

어르신은 자리에 앉았다.

이미윤이 말했다.

“다 아신 거죠?”

봉수진은 냉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뭘 알아? 네가 직접 말해 봐.”

이미윤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봉수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방에 CCTV가 있고, 아니면 녹음기로 저한테서 증거를 얻으시려는 건지 모르겠네요.”

“어떤 일들은 말로 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계시잖아요. 굳이 소문을 퍼뜨릴 필요는 없죠.”

두 어르신은 이미윤의 당당한 태도에 화가 나서 웃음을 터뜨렸다.

현빈도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윤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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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머리가 야구 방망이를 들고 집 맞은편에서 턱을 치켜들고는 날뛰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귀 먹었어?! 사람 말 못 알아듣는 거야?! 빨리 나오라고...”참을 수 없었던 민지는 바로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돌진했다.정은과 서준은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갈 수밖에 없었다.“뭐 하려는 거예요?” 민지는 문 앞에 서서 팔짱을 끼며 노란 머리 사내와 눈을 마주쳤다.서지강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이야, 어디서 이런 돼지가 찾아왔지? 왜? 진씨 집안을 위해 나서려는 거야?”‘돼지’라는 두 글자를 들은 민지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쪽은 살이 찌지 않아서 좋겠어요! 대나무처럼 마른 게! 영양실조인 거예요? 설마 마약하는 거 아니죠!”서지강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이때, 흰 머리 사나이가 튀어나왔다.“저 여편네 좀 봐! 주둥아리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감?! 사는 게 이제 지겨운갑제!”민지는 사투리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게 좋은 말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노란 머리와 흰 머리는 이목구비가 비슷했고, 몸매도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다.민지는 사실 꾹 참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원숭이처럼 말랐고, 다크서클에 입술 색깔이 진해서 보기 엄청 싫었다.눈 흰자위도 혼탁하며 광대뼈가 튀어나와 지금 흉악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사람에게 주는 느낌이 싸했다.“절름발이는? 눈치가 있다면 빨리 계약서에 사인을 해. 그렇지 않으면...”노란 머리는 냉소를 지으며 은근히 협박을 했다.“그렇지 않으면요? 억지로 사인하게 하려고요?!”노란 머리는 음흉하게 민지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 흰 머리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이 뚱뚱한 여편네는 정말 겁이 없는 것 같은데?”흰 머리는 손에 든 막대기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그래, 내가...”“그러기만 해봐요!” 민지는 고개를 들더니 피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슴을 쫙 폈다.“법도 모르는 거예요? 손을 대면 바로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경찰?” 노란 머리는 마치 엄청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64화

    그러나 꾹 참은 진일 부자는 평화 대신 더욱 심해지는 모욕을 맞이했다.서씨 형제는 분풀이를 위해 한밤중에 진일 집에 몰래 들어가, 우리에 있는 닭을 훔쳤고 문을 지키는 개까지 죽였다.그리고 또 돈으로 사람을 찾아 진일 집 벽에 똥을 뿌렸다.정월 대보름날에는 더욱 한 무리의 사람들을 데리고 거들먹거리며 진일 집에 쳐들어와 그의 부모님을 두들겨 팼다.그래서 진일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어 음식을 넘기기조차 어려웠고, 도시에 가서 진찰을 받을 수도 없었다.서씨 집안은 또 마을 사람들을 협박하며, 집에 차가 있는 사람들이 전부 진일을 돕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진일의 핸드폰도 실랑이 때문에 고의로 짓밟혀 망가졌다.충돌이 발생한 날, 재운도 진일 집에 있었는데, 밀치락달치락하다가 머리를 다쳐 당시 피를 줄줄 흘렸다.서씨 형제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진일은 구급차를 부르려다가 서지강에 의해 팔이 꺾여 땅에 엎드린 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결국 재운의 부모님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서야 서씨 형제의 용서를 받아 아들을 데리고 떠날 수 있었다.그날 저녁, 재운은 마을 병원에 호송되었는데, 의사는 치료할 수 없다며 밤새 시내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졌다.재운은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다.이현이 말했다.“그 사람들은 무덤을 옮기려는 게 아니라, 우리 집 돈을 벌 수 있는 앵두나무가 탐났던 거예요. 그래서 산을 강점하려는 거라고요!”민지는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온몸을 떨었다.“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파렴치한 사람이 있지? 이, 이거 강도와 다름이 없잖아?”민지는 진일을 바라보았다.“처음에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건 그렇다 쳐요, 왜 맞았는데도 가만히 있는 거예요? 재운이는 그렇게 심하게 다쳤잖아요?!”진일은 쓴웃음을 지었다.“오빠 경찰에 신고했어요! 경찰도 왔지만 소용없었어요...”바로 이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진일은 문을 열자, 입을 떼며 말했다.“아버지.”문이 열리자, 몸을 구부리고 양쪽 귀밑머리가 희끗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63화

    진일 어머니의 상태는 확실히 좋지 않았지만, 입맛이 없고 물조차 마실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설날 전후에 일이 좀 생겨서 이렇게 된 것이었다.진일 집안의 조상은 줄곧 농사를 지었는데, 5년전, 진일의 아버지가 공사장에서 뜻밖에 부상을 입고 절름발이가 되었기에, 외지에 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남봉수는 아예 마을에 남아 밭을 심었고 또 뒤의 산을 개간하여 과수를 심었다.처음 몇 년은 아직 초보라서 남봉수는 나무를 너무 많이 심지 못했다.뒤에 점점 경험을 쌓자, 그도 해마다 재배 면적을 넓혔다.재작년에는 더욱 대풍년을 맞이했고, 시세가 좋아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그때 마을 사람들이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또한 진일네는 평소에 같은 마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아, 모두들 질투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그러나 뜻밖에도 작년에 날씨가 좋지 않아 수확이 절반으로 줄었을 뿐만 아니라, 과일의 질도 좋지 않았다.계속된 폭우로 많은 과수의 뿌리가 물에 잠겨 전부 썩어서 적지 않은 손해를 보았다.다행히 진일은 지예를 대신해서 논문을 냈기에 송지혜에게서 돈을 받았고, 걱분에 집안의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그 후 진일은 몰래 밖의 실험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꽤 많이 모았다. 그는 이 돈을 이자까지 붙여 송지혜에게 돌려주었다.뿐만 아니라 집에 돈을 좀 남겨두면서, 남봉수에게 좀 좋은 과일모종을 사게 했다.그렇게 작년에 심은 앵두나무가 올해 열매를 맺었다.남봉수의 세심한 보살핌으로, 앵두 열매는 크고 달았으며, 올해 초 수입국의 앵두 재배원은 대면적의 해충으로 앵두 가격이 보편적으로 올랐다.남봉수는 이 기회를 틈타 외지의 한 딜러와 수매계약을 맺었는데, 상대방은 모든 앵두를 도급맡았을 뿐만 아니라, 내년의 앵두까지 직접 예약했다.남봉수는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섣달 그믐날 때, 온 가족은 기쁨에 넘쳐 마침내 살림이 좋아졌다며 미래에 희망을 품었다.그러나 이튿날 바로 사고가 날 줄이야...“오빠! 물 좀 마셔요, 제가 말할게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62화

    언뜻 들으면 기분이 상하겠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진일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너희들 번호를 기억하지 못해서...”“그럼 재운이는 어떻게 된 거예요? 선배와 마찬가지로 핸드폰이 망가진 거예요?”재운을 언급하자, 진일의 눈빛은 어두워졌다.“재운이는 지금 병원에 있어. 아직 혼수상태에 빠져 있어서 전화할 수가 없었어...”“혼수상태요?!” 세 사람은 동시에 놀랐다.정은이 물었다.“무슨 일 생겼어요?”“말하자면 우리 두 집과 관련이 있는데...”갑자기 기침 소리가 침실에서 들려왔고, 진일은 무언가 생각난 듯 바로 몸을 돌려 주방으로 갔다.걸으면서 고개를 돌려 세 사람에게 말했다.“미안해, 너희들 먼저 앉아 있어. 이현아, 언니 오빠에게 물 좀 따라줘.”이현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더니, 낡은 그릇 세 개를 가져와 보온병으로 뜨거운 물을 따랐다.민지는 얼른 손을 흔들었다.“아니야, 이현아! 난 목마르지 않아!”이현은 듣지 않고 세 사람에게 한 그릇씩 물을 따랐다.정은이 말했다.“고마워.”“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우리 오빠 친구들이잖아요.”말하고는 구석에 있는 소파를 가리켰다.“앉으세요, 전 들어가서 살펴볼게요...”말을 마치고 이현은 주방을 향해 걸어갔다.정은은 문에 들어서자마자 한약 냄새를 맡았다.솥은 이미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진일은 수건으로 싸서 두 손을 들더니, 뜨거운 약을 세 그릇에 부었다.이것이 바로 진일 어머니가 하루 먹어야 할 양이었다.한꺼번에 달여서 세 끼니로 나눈 다음, 나머지 두 끼는 직접 데워 마시면 된다. 그럼 땔감까지 절약할 수 있었다.이어서 진일은 또 약찌꺼기를 쏟아낸 다음 솥을 깨끗이 씻었다.마지막으로 약 한 그릇을 들고 거실을 지나 그 중 한 침실로 들어갔다.“어머니, 약 다 되었으니 일어나서 마셔요.”“그래.”민지는 일어나서 따라갔지만, 그래도 입구에서 멈추며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침대에 한 어르신이 누워 있었다. 몸이 매우 마른 데다가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했으며, 두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61화

    여자아이는 문을 쾅 닫았고, 발소리를 들으니 상황을 살펴보러 달려간 것 같았다.민지는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우리를 이렇게 경계하다니.”서준은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느꼈다.금방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자기집 문어귀에 서서 그들 일행을 살펴보았는데, 세 사람이 남진일의 집을 향해 걸어가자, 사람들의 눈빛은 순식간에 이상해졌다.심지어 삼삼오오 모여 작은 소리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멀리 떨어져 있던 서준은 비록 알아듣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표정에서 뭔가를 알 수 있었다.의심, 의아함으로 가득 찬 따가운 시선...곧 문이 다시 열렸다.이번에 문을 연 사람은 진일이었다.그는 주방에서 동창이 자신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정은 그들을 떠올렸다.너무 놀란 진일은 그릇 하나까지 깼다.문을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정은 일행이 서 있었다.“너희들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진일의 눈에는 놀라움이 번쩍였지만, 곧 경악해졌고, 또 걱정을 내비쳤다.J시에서 마을까지 오려면 진일은 중간에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많은 길을 돌아서 와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정은 그들이 찾아오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다.‘내가 대체 뭐라고...’“괜찮아요?” 정은은 위아래로 진일을 훑어보았다.팔다리는 멀쩡했고, 정신도 나름 괜찮아 보였지만...추운 날, 진일은 뜻밖에도 얇은 외투밖에 입지 않았다. 실험을 하고, 기자재를 들고, 키보드를 두드려야 할 손이 빨갛게 얼었다.목은 심지어 목도리조차 두르지 않았다.민지는 눈을 부릅뜨더니 저도 모르게 말했다.“춥지도 않은 거예요?!”진일은 머리를 긁적였다.“습관이 되어서 안 추워.”말을 마치자 진일은 그제야 정은 그들을 집으로 초대했다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자, 진일은 불을 켰다.어쩐지 안이 어두컴컴하나 했더라니, 불을 켜지 않았던 것이다.정은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주 낡은 기와집, 거실 한 칸, 침실 세 칸, 그리고 뒤뜰이 주방과 연결되어 있었다.위층은 널빤지로 한 층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60화

    정은이 대답했다.“저희는 그 아드님을 찾으러 왔어요.”“남진일이?”“네! 그 아이를 아세요?”“아는 건 아니야. 그래도 우리 마을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합격한 아이이고, 심지어 명문대학에 붙었으니 나름 기억하고 있지.”민지가 물었다.“저희는 진일 선배와 같은 과 후배예요. 아저씨, 저희를 그곳으로 데려다 주실 수 있어요?”기사는 이상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더니 잠시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마침 돌아가는 길이니까 너희들을 남 씨 집 앞에 두면 되지.”“감사합니다!”서준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 집안의 구체적인 상황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왜 절름발이 남 씨라고 부르시는 거예요?”“절름발이 때문이겠지, 길을 걸을 때 절뚝거리기 때문에 모두가 붙여준 별명이야.”이야기를 나누면서, 세 사람은 진일의 집안 형편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만성병이 있어 일년 내내 약을 먹어야 했다.집에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곤 진일의 아버지 하나밖에 없었는데, 일찍 공사장에서 부상을 입고 한쪽 다리를 절고서야 핍박에 의해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근년에 과수를 심기 시작하면서 수확이 좋을 때도 있었다.그러나 집에 장기간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가 있는 데다가, 먼 J시에서 공부하면서 일상생활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아들이 있었기에 남 씨는 도무지 돈을 모을 수가 없었다.세 사람은 다 듣고 침묵했다.그들은 진일이 전에 송지혜에게 속고 착취당했다는 것만 알았을 뿐, 그의 가정 조건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짐작했지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곧 삼륜차가 멈추었다.“다왔어. 절름발이의 집은 바로 요 앞에 있어. 너희들 스스로 걸어가. 난 문 앞까지 바래다주지 않을게.”“네, 감사합니다.” 정은은 핸드폰으로 돈을 지불했다.눈앞에 낡아빠진 구식 시골집을 보면서 세 사람 모두 마음이 좀 복잡했다.삼륜차는 줄곧 읍내를 지나 도중에 다른 한 마을을 지났다. 멀리 바라보니 전부 몇 층 되는 스스로 지은 주택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59화

    버스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 마침내 읍내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세 사람은 동시에 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모두 방금 악몽 같은 경험을 다신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이제 도착한 거죠?” 민지는 산 음료수를 몇 모금 마신 뒤에야 말문을 열었다.정은은 고개를 저었다. “여긴 읍내야. 선배네 집은 안으로 더 들어가야 해.”“네? 또 버스를 타야 한다고요?!” 민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서준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잘랐다. “마을까지 가는 버스가 없어.”민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그는 한 마디 덧붙였다. “삼륜차만 있거든.”“뭐??”...10분 후. 민지는 삼륜차의 요동에 수천 번 흔들거리다 모퉁이를 돌 때 또 양 옆으로 넘어질 뻔했다. “이게 ‘약간' 흔들리는 거라고?”서준은 창백한 얼굴로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내비 보니까 거의 다 왔어. 좀만 더 힘내자!”그도 이 길이 이토록 험난할 줄은 몰랐다. 아스팔트 대신 수리가 되지 않은 흙길이 계속 이어졌다.“너 괜찮아? 안색이...” 민지는 걱정스럽게 물었다.서준은 손을 저으며 버텼다. “괜, 찮...”“멀미 난 거 아니야?” 정은의 물음이 떨어지자마자, 서준은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토했다.정은과 민지는 할 말을 잃었다.서준은 다 토한 뒤, 진정하려는 듯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진짜 괜찮아요!”정은과 민지는 눈빛을 교환했다.‘지금 믿어주는 척이라도 해야 하나?'‘글쎄요.’민지는 가방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서준에게 건넸다. “시큼한 사탕 하나 먹어. 그럼 속이 괜찮을 거야.”“사양할게.” 서준이 거절하려는 순간, 민지는 억지로 그의 손에 쥐어줬다.“뭐가 그렇게 쑥스러워? 그냥 먹어!”“아니...”“알아, ‘괜찮다'는 말 그만 좀 해.” 서준이 마지못해 받아먹자, 민지는 정은에게 눈짓했다.‘서준이 쟤 자존심이 너무 강한 것 같아요.'정운도 눈짓으로 답했다.‘서준이 너무 놀리지 마.'‘뭐가 어때서요!'옆에 있던 서준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858화

    다음 날 아침, 세 사람은 516번 버스에 올라탔다.그런데... 차 안은 어르신들로 가득 찼다. 광주리와 바구니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안에는 갓 딴 채소와 농산물이 가득했다. 민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거죠?”세 사람은 승차하자마자 중간으로 밀려났다. 발밑에는 광주리들이, 옆에는 앉지 못하고 서 있는 노인들이 바글거렸다. 상대방이 하품만 해도 아침에 뭘 먹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정은 언니, 무서워요...” 민지는 눈물이 맺힌 채 정은을 찾았지만, 이미 뒤로 밀려난 정은 대신 서준과 눈이 마주쳤다.“너...”“쮼, 나 무서워...”서준의 마음이 약해졌다. “이...이쪽으로 와.” 그는 옆을 가리키며 자리를 비켰다.민지가 다가오자 서준이 설명했다. “아침에 채소를 팔려고 나가시는 거야.”그리고 그 노인들은 딱 봐도 시골 사람들이었다.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민지를 밀쳤고, 그녀는 앞으로 넘어졌다. 서준은 재빨리 품으로 민지를 안으며 그녀가 의자에 부딪히는 걸 막았다.“괜찮아?” 서준은 긴장해하며 민지를 살폈다.“서준아, 숨... 숨 막혀...”서준이 즉시 창문을 열자, 주변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추운데 창문을 왜 열어!”“머리 아프니까 닫아!”“빨리 닫으라고!”서준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제 친구가 숨이 막혀서 그런 것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뚱뚱하면 버스 타지 말지 그래!”“우리 노인들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민지는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떨구었다.서준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큰 소리로 말했다. “몸무게와 상관없이 표 샀으면 버스를 탈 권리가 있어요. 여러분의 광주리들도 자리 많이 차지하시던데, 광주리의 표까지 사신 거예요?”차 안이 조용해졌다. 기사도 거울로 서준을 흘끗 보았다.“요즘 애들 입만 살았네...” 누군가 중얼거렸다.서준은 태연한 표정이었다.민지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숨을 고르더니 감탄했다. “쮼, 너 방금 완전 멋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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