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실험실을 만들기 시작했다.물론 정은은 진일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아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모든 문제에 다 해결할 방법이 있겠죠. 언젠가는 방법이 있을 거예요.”“그럼 성공하길 바랄게.”말이 끝나자 진일은 몸을 돌려 떠날 준비를 했다.“선배님!” 정은이 갑자기 그를 불렀다.“사람은 때로 좀 이기적이고 자신을 위해 많이 계획해야 해요. 필경 평생 다른 사람의 밑에서 일할 수가 없지 않나요? 고개도 들 수 없고, 허리를 펼 수도 없고. 안 그래요?”진일은 웃었다.“일깨워 줘서 고마워. 나한테도 다 생각이 있어.”...“뭐? 열쇠를 못 받았다니?” 송지혜는 심하게 눈살을 찌푸리고 앞에 있는 서정을 바라보았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너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한 거야?!”“소정은은 열쇠를 이미 바쳤다고 했고, 또 학교의 규정까지 내세웠단 말이에요. 뭐 규정은 이러하니 저에게 줄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럼 전 또 뭘 할 수 있겠어요? 달려들어서 빼앗아올까요?!”서정은 이미 좀 짜증이 났다.송지혜의 질문하는 말투가 그녀를 매우 불쾌하게 했다.‘이게 내 탓이야? 원래 소정은을 찾아 열쇠를 달라고 하는 일 자체가 매우 불합리하잖아. 소정은이 그랬듯이, 우리가 뭔데? 왜 우리한테 줘야 하는 건데?’송지혜는 지금 서정이 엄청난 잘못을 한 것처럼 굴었는데, 서정은 비록 총명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었다.“교수님,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왜 굳이 소정은의 열쇠를 가져가고 싶은 거죠? 그 낡은 실험실에 뭐가 있는데요?”“아, 아니다, 뭔가 있긴 하네요. 안에 CPRT가 한 대 더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희에게 이미 두 대가 있잖아요? 왜 이렇게 많은 기계를 원하시는 건데요?”서정의 말에, 송지혜는 마치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버럭했다.“넌 질문이 너무 많아! 만약 일을 처리할 때도 말주변이 이렇게 좋다면, 이렇게 사소한 일도 해내지 못할 정도는 아닐 거야!”서정은 누구인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 집 아가씨였
“이게 다 뭐야?!”...집에 돌아온 서정은 들어오자마자 소리를 쳤다.“이모님, 아이스팩 하나 좀 줘요!”서영숙이 물었다. “아이스팩은 왜? 이 추운 날에...”“엄마, 나 남한테 맞은 거 알아요?”“뭐?!” 서영숙은 이 말을 듣자 즉시 달려왔다. “누가 때렸어?! 누가 감히 내 딸을 때려?!”서정은 입을 삐죽거렸다.“소정은이요.”“그 아이는 이제 겁도 없는 거야?! 감히 사람을 때리다니?!”“나도 그냥 말 몇 마디 좀 했을 뿐인데, 직접 내 따귀를 때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흑흑...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봐요, 얼굴이 부었잖아요!”서영숙은 바로 마음이 아파서 서정의 얼굴을 살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다가갔다.“앗! 아파요!”“이 소정은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핸드폰, 내 핸드폰은?!”서영숙은 몸을 돌려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다.“기다려... 내가 그 아이 제대로 욕할 거야...”이때 가정부가 앞으로 다가왔다. “사모님, 핸드폰은 여기에 있습니다.”서영숙은 얼른 가져오더니 정은의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이 천한 것이 감히...”[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서영숙은 그제야 정은이 이미 자신을 차단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더욱 화가 났다.서영숙은 가정부를 불렀다. “핸드폰 좀 줘요.”“네.”서영숙은 가정부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는데, 이번에 마침내 연결되었다.[여보세요, 누구세요?]확실히 정은의 목소리였다.서영숙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정은, 이 뻔뻔한 계집애야! 왜 내 딸을 때리... 여보세요? 여보세요?! 소정은, 네가 감히 내 전화를 끊어?!”서영숙은 화가 나서 숨이 넘어갈 뻔했다.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차가운 안내음이 또다시 울렸다.‘또 날 차단했다니!’“어떻게 이럴 수가?! 내 번호를 차단하다니?!”서정은 눈을 부라렸다.“지금 우리 오빠 여자친구도 아니고, 우리 집에 시집오고 싶지도 않으니 이게 뭐라고요.”서영숙은 멈칫했다
‘날 기다리고 있었어? 왜?’“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거예요?” 정은은 즉시 정색했다.“음. 너한텐 아마도 좋은 소식이겠지?”“도대체 무슨 일인데요?” 정은은 눈을 깜박였다.재석이 뜸을 들일수록 정은은 더욱 궁금해졌다.“그게...”재석은 어제 이웃 대학에 가서 오랜 친구를 만났고, 겸사겸사 작은 부탁을 했다.“마 교수는 이미 그들의 실험실 한 칸을 내주기로 했어. 내가 가서 한 번 봤는데, 너희들의 실험에 필요한 모든 설비는 다 갖추어져 있어. CPRT까지.”“진짜요?! 너무 잘됐네요!”정은은 기뻐서 펄쩍펄쩍 뛸 뻔했다.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 마침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니.그녀는 실험실을 찾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재석이 이미 마땅한 곳을 찾아주었다.마치 다정한 집주인이 집에서 쫓겨난 불쌍한 아이들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정은은 참지 못하고 달려가서 재석의 소매를 덥석 쥐었다.“선배님, 어쩜 이렇게도 다정한 거예요!”여자의 검은 눈동자는 마치 빛을 반짝이고 있는 것 같았다.손은 자신의 팔꿈치에 떨어졌고, 옷을 사이에 두고도 재석은 정은의 온도를 느낄 수 있었다.눈이 마주 친 순간, 재석은 미소를 지었다.정은은 그제야 자신이 너무 흥분한 것 같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선배님, 미안해요. 너무 흥분해서 그만.”급하게 사과하느라 정은은 남자의 눈빛에 실망이 스친 것을 보지 못했다.“괜찮아.”“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이따가 와서 밥 먹어요. 절대로 거절하면 안 돼요!”정은은 말을 마친 후, 재빨리 집으로 달려갔다.어두워졌던 남자의 눈빛은 순식간에 밝아졌다....정은의 집에 들어서자, 재석은 외투를 벗고 소매를 걷어올리면서 주방으로 걸어갔다.그리고 채소를 씻고, 썰고, 마늘을 까기 시작했다.정은이 입을 열지 않아도 재석은 알아서 척척이었다.너무 익숙해서 마치 이곳이 재석 자신의 집인 것 같았다.두 사람은 한두 번 호흡을 맞춘 게 아니었기에 이젠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뭘 하
정은이 안절부절못하며 망설일 때, 재석은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이럼 되겠지?”“좀 더 숙여야 할 것 같아요.”“그럼 이렇게?” 재석은 계속 몸을 굽혔다.“네, 이럼 됐어요.”정은은 재빨리 앞치마를 그의 목에 걸었다.재석은 몸을 펴며 잠깐 기다렸는데, 정은이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웃으면서 일깨워주었다.“허리끈을 좀 묶어야 할 것 같은데.”“아! 네!” 정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즉시 끈을 잡고 리본을 묶었다.“콜록콜록...” 재석은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왜 그래요?”“좀 타이트해서.”“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다시 묶을게요... 이번엔 괜찮아요?”“응.”주방을 깨끗이 정리하고 두 사람은 거실로 갔다.정은은 과일을 깎아 탁자 위에 놓았다.“선배님, 과일 먹어요.”“고마워.”정은은 사과 한 조각을 들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CBS가 이번 서비대학교와 캘테크 연합 학술회를 중계한다면서?”“응, 보고 싶어?”정은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곧 다시 풀이 죽었다.“우리 집의 텔레비전은 외국의 방송을 볼 수가 없어요. 컴퓨터로 봐도 생방송 대신 공식사이트에 가서 재생 방송을 볼 수밖에 없고요.”“볼 수 있어.”“네?!”“우리 집에 가자.”그렇게 정은은 재석을 따라 옆집으로 갔다.그녀는 처음 온 게 아니지만, 대부분 거실에 머물었고, 안방에 들어간 적이 거의 없었다.유일하게 들어간 것도 재석을 위해 온도계와 감기약을 찾아주기 위해서였다.그때 너무 다급해서 자세히 방을 살펴볼 기회가 없었다.하지만 이번엔 달랐다.재석이 프로젝터를 켜러 가자, 정은은 방에 서서 주위를 열심히 살펴보았다.두 방은 같은 배치였고, 안방의 크기도 같지만, 재석의 인테리어는 정은과 확연히 달랐다.침대와 옷장 스타일, 침대 시트와 커튼의 컬러까지 전부 달랐다...정은은 따뜻한 색조를 선택했고, 재석은 간단한 블랙과 화이트를 선택했다.이성과 통제력은 마치 뼛속에 녹아든 듯, 인테이어조차도 엄숙함과 정직함이 배어 있었
“아니에요!” 정은은 카펫에 털썩 앉더니 책상다리를 했다.“이럼 됐어요.”부드러운 긴 털 카펫을 만진 순간, 정은은 이것이 싸구려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위에 앉으니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심지어 등은 침대에 기댈 수 있었다.‘만약 간식과 음료수가 있다면 더욱 완벽할 텐데.’이렇게 생각하던 중, 재석은 견과류와 감자칩, 그리고 레몬에이드 두 병을 들고 들어왔다.‘선배님은 날 너무 잘 알아!’재석은 간식을 내려놓은 다음, 정은을 따라 카펫에 털썩 앉았고, 또 자신과 정은의 뒤에 베개 하나를 놓았다.두 사람은 이렇게 보면서 먹고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생방송이 끝날 때까지.정은은 시간을 확인했는데, 뜻밖에도 11시가 다 되어 갔다.깜짝 놀란 그녀는 바로 일어나서 작별인사를 했다.재석은 정은을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고,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쓰레기를 치울 때, 재석의 시선은 두 사람이 기대고 있던 베개에 떨어졌다.그가 기댄 베개는 이미 억눌려서 움푹 들어갔지만, 정은이 기댄 베개는 약간의 주름이 있을 뿐이었다.재석은 베개를 정리한 뒤, 침대에 놓으려 했는데, 갑자기 은은한 향기가 덮쳐왔고, 그는 제자리에 멍해졌다.통제할 수 없는 반응을 느끼자, 재석은 괴로워하며 미간을 찌푸렸다.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이 못났다고 느꼈다.그러나 재석은 또 이런 상황을 이겨낼 방법이 없었다.이번에 진정을 되찾더라도 다음에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그의 몸은 여전히 이성을 배신할 것이다.재석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어려워. 정말 너무 어려워. 전에 외국에서 P0급 과제를 했을 때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아.’...옆집, 정은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곧 달콤한 꿈나라로 들어갔다.그러나 그녀가 기댄 베개 하나 때문에 누군가는 몸을 뒤척이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토요일, 모처럼 햇빛이 쨍쨍했다.정은은 수업이 없어 공사장에 가서 공사 진도를 확인하기로 했다.그녀는 인훈
‘이건 유전의 법칙에 맞지 않잖아!’정은의 말투에서 인훈은 심지어 소진헌을 본 것 같았다.‘그동안 정은은 혼자 이곳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네.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면 절대로 이런 패기가 없을 거야.’‘자신의 돈으로 실험실을 지을 담력이 있다니. 그리고 인맥과 수단이 없다면, 이렇게 큰 땅을 손에 넣을 수도 없었을 텐데, 심지어 심사비준을 통과했잖아.’그녀의 여동생은 그야말로 신비한 존재였다.인훈은 그 비밀을 탐구하는 것보다 정은의 처지가 안쓰럽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어쩌면 말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은에게 가장 좋은 위로일지도 모른다.인훈은 표정이 다소 심각했다.“확실히 맞지 않아. 공사 진도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많이 느리거든.”“이유는? 찾았어?”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일손이 부족하거든.”‘난 또 무슨 큰 문제인 줄 알았는데, 그게 다야?’인훈의 회사는 이미 기초 토지 건설을 하지 않았는데, 이 일은 매일 밖에서 고생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돈도 얼마 벌지 못했다.그래서 스마트 홈웨어 사업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후, 인훈의 회사는 직접 이 작업을 포기했다.그러나 정은은 또 토지 건설까지 함께 해야 한다고 명확히 요구했다.인훈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장의 고층건물이라도 평지에서 지어진 것이기에, 토지 건설은 가장 기초적인 일이었다.남에게 맡기고 싶지 않은 것도 정상이었다.‘그냥 하자, 어차피 안 해본 것도 아니니까.’인훈은 즉시 전의 시공팀과 연락했다.“대략 20여 명의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들이야. 전의 경험에 따르면 인력은 충분할 거야.”만약 원래 계획대로, 지반을 깊이 파지 않는다면, 그의 예상은 확실히 맞았다.그러나 인훈은 더 잘 해내려고 임시로 도면을 고쳤다. 비록 3센치미터밖에 되지 고치지 않았지만, 현실에서는 적지 않은 작업량이었다.“이렇게 고치니, 인력이 부족한 거야.”정은은 잠시 생각해보 보았다.“이건 장기적인 문제야, 아니면 일시적
현빈은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해했다.“네가 사장이야 내가 사장이야?”남자는 목을 움츠리더니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익숙한 목소리에 정은은 저도 모르게 이쪽을 보았다.마침 이때 인훈이 그녀를 불렀다.“정은아, 이리 와서 앉아!”현빈은 고개를 홱 돌렸다.눈을 마주치자,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현빈은 가장 먼저 반응하더니 웃으며 정은을 향해 걸어갔고, 눈빛에 온통 놀라움과 의아함이 담겨 있었다.“네가 왜 여기에 있어?!”“공사장 좀 보러 왔어요.”“네가 무슨 공사장을?”“난 공사장에 나올 수 없는 거예요?”“아니... 이게 네 전공도 아니고, 이것으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왜 공사장을 보러 온 거야? 신기해서?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정은은 가볍게 기침했다.“여기에 땅이 하나 있어서 집을 지으려고요, 안 돼요?”“여기에 땅이 있다고?”현빈은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리더니 미간을 살며시 찌푸렸다.“그때 강도겸이 너에게 준 그 땅?”“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정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남자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두 사람의 일에 대해 내가 뭘 모르겠어?”그때 도겸이 땅을 주기 전에 심지어 현빈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현빈은 그 계약서를 볼 때,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도겸의 인색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또 그동안 고생한 정은이 안쓰러웠다.공동 창립한 회사가 지금 상장화사로 되었는데, 파트너가 딸랑 수표 한 장에 땅 하나를 주다니?‘정은이 거지야 뭐야? 어떻게 이런 제안을 생각해 낼 수가 있지!’아마도 정은만이 이런 도겸이 좋다고 용서하며 너그럽게 봐줄 것이다. 다른 창업자라면, 이런 불공평한 이익 분배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었다.아니나 다를까, 정은은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며 더 이상 주식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현빈이 이 일을 알았을 때, 질투 때문에 눈에 핏발이 섰다.‘왜? 왜 강도겸 같은 쓰레기가 이렇게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는 건데? 난 조금 늦었을 뿐인데... 대체 왜!’“심 대표님?
‘그냥 이렇게 잡게 놔두다니?!’심지어 정은은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아니, 이대로 끌려가는 거야?’현빈은 질투에 눈에 핏발이 섰다.‘아니... 저 사람은 또 누구야? 평소에 실수로 정은을 건드리기만 해도 그녀는 바로 거리를 뒀는데... 이 사람 대체 정체가 뭐야?’방금 인훈과 사장님이 인사를 나눌 때, 현빈은 하나도 듣지 않은 모양이었다.“심 대표님, 심 대표님?!” 현빈과 함께 시찰을 하러 온 프로젝트 책임자는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자, 목소리를 높여 계속 불렀다.“왜?!”차가운 눈빛이 자신에게 떨어지자, 책임자는 그저 등골이 오싹해지더니 숨이 멎는 것 같았다.“전, 전화가 울리고 있어서요.”책임자는 침을 삼키며 손으로 땀을 닦았다.현빈은 핸드폰을 꺼내 무뚝뚝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책임자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며 더욱 당황해졌다....저쪽의 남매는 이미 먹기 시작했다.인훈이 물었다.“어때, 맛있어?”정은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네, 맛있어요!”“사장님은 이 공사장에서만 장사를 하시거든.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양도 엄청 많아.”“자, 고기 많이 먹어.”인훈은 자신의 고기를 골라서 정은의 접시에 준 후에야 먹기 시작했다.“오빠, 너무 많아, 나 다 못 먹어.”“다 먹을 수 있어! 너 얼마나 말랐는지 좀 봐, 많이 먹어야 살이 찌지.”인훈의 사랑은 확실히 특별했다.“참, 방금 그 남자 딱 봐도 좋은 사람이 아니네. 너도 여자애이니 밖에 나갈 때 조심 좀 해.”“오빠가 잔소리한다고 싫어하지 마. 만일을 대비하란 말이야. 나쁜 사람의 얼굴에는 ‘내가 나쁜 사람이다'는 글자가 적혀 있지 않거든...”지금 인훈은 책임감 있는 오빠 그 자체였다.특히 소진헌과 이미숙이 곁에 없는 상황에서, 오빠인 그는 더욱 자기 여동생의 안전을 보호해야 했다.‘날라리를 조심해야지, 우리 정은이 빼앗아가지 못하게.’이와 동시, 자신이 이미 ‘날라리’로 되었단 사실을 모르는 현빈은 음식을 먹을 기분이 없었다.
어떤 곡인지, 어떻게 변주를 했는지 현빈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그리고 현장의 어두운 조명은 가장 좋은 은폐가 되어, 현빈이 거리낌 없이 부드러움과 깊은 감정을 드러낼 수 있게 해주었다.그의 시선은 통제되지 않고 정은의 하얀 손에 떨어졌다. 몇 번이나 그 손을 꽉 쥐고 영원히 놓지 않으려 했다.하지만 잠시 후, 현빈은 스스로를 억제하며 이성을 되찾았다.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조금만 참아, 이 밤만 지나면... 더 이상 급해할 필요 없어, 정은이를 놀라게 해선 안 돼...’두 시간, 어떤 사람에게는 괴로움과 시련이겠지만, 정은에게는 엄청난 시청각 향연이었다.그렇기에 공연이 끝난 후에도 정은은 입맛을 다셨다.“방금 그 ‘크로아티아 랩소디’ 들었어요? 록 요소를 추가한 거 있죠! 예상치 못한 낭만과 생동감이 넘쳤고, 특히 중간의 변주는 더욱 놀라웠어요! 심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해요?”현빈은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 대답했다. “응? 그래, 듣기에는 확실히 괜찮았지.”정은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남자의 이상한 반응을 놓쳤다.홀을 나서자, 가로등이 켜지고, 네온사인이 땅에 비추는 빛과 그림자가 쏟아져 내리며, 그때서야 정은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깨달았다. 날이 이미 어두워진 것이다.정은은 논문을 아직 끝내지 못했고, 내일 실험실에 가져갈 점심도 준비하지 않았기에 먼저 가려고 했다.하지만 입을 열기도 전에 현빈이 갑자기 말했다.“나랑 어디 좀 가줄래?”“네?”“안 돼?” 남자의 검은 눈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반짝이며 놀라울 정도로 밝았다.정은은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결국 승낙했다.하지만...“9시 전에 집에 가야 돼요.”“좋아.” 현빈은 그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정은은 자신의 차에 올라 현빈의 차를 따라 근교로 향했다.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 두 사람은 산 꼭대기에 도달했다.“정은아, 봐봐...”두 사람은 바람을 맞으며 차를 멈추자, 정은은 고개를 숙이고 패딩으로 자신을 꼭 싸맸다. 이때 현빈이 갑자기 입을 열
“켁...” 정은은 놀라서 기침을 했다.밥을 잘 먹고 있다가, 갑자기 자신을 언급하다니? 정은은 기분이 좀 이상했다.“우린 사귀는 사이가 아니지만, 심 대표님에게 있어 이번 식사는 확실히 공짜와 다름없죠. 왜냐하면...”정은은 웃으며 사장을 바라보았다.“제가 사는 거니까요.”사장은 멍하니 있다가 이어서 의미심장하게 현빈을 바라보았다.‘이 녀석도 당하는 날이 있군! 잘됐어!’다 먹고 정은은 주동적으로 계산하러 갔다.사장은 현빈을 잡아당겨 목소리를 낮추었다.“야, 너도 열심히 노력 좀 해. 얼른 그 친구의 마음을 얻어야지. 다음에 올 때 성공하지 못한다면, 나 정말 널 비웃을 거야!”현빈은 한숨을 내쉬었다.“나도 그러고 싶지.” “이야, 이 세상에 드디어 너를 혼내 줄 여자가 나타났구나, 희한하다.”“야...”“그래! 이 친구가 도와줄게.”정은은 이미 계산대에 가서 결제를 하려 했다.결제한 후, 그녀는 뒤에 있는 현빈을 바라보았다.“갈까요?”“에이, 잠시만요!” 사장이 먼저 입을 열더니 웃으며 계산대로 갔다. 그리고 직원에게 물건을 건네달라고 손을 내밀었다.“네?” 직원은 어리둥절해졌다.“티켓.”“아!”사장은 받아서 현빈에게 주었다.“자, 내 여동생이 피아노 연주회 티켓 두 장을 구했는데, 음치인 내가 또 어떻게 그걸 들으러 가겠어? 자리에 앉으면 정말 쇠귀에 경 읽기가 되는 거잖아! 하하... 오늘 마침 만났으니 너한테 줄게!”현빈은 참지 못하고 눈썹을 치켜세웠다.“이건 정말 구하기 어려운 건데, 정말 나한테 줄 거야?”“그럼, 가져가!”“그래, 그럼 나도 고맙게 받을게.”두 사람은 사장의 배웅을 받고 샤브샤브 가게를 떠났다.현빈은 손에 든 티켓을 흔들며 정은에게 물었다.“맥심 피아노 연주회, 가고 싶어?”“맥심이요? 진짜예요?” 정은은 의아함을 참지 못했다.“연주회 티켓은 정말 구하기 어려운데.”“자, 직접 확인해 봐...”정은이 머리를 숙였는데 정말 맥심의 연주회였다.“내 친구가 호의로 우
현빈이 말했다.[일단 생각 좀 해볼게. 만나서 얘기하자.]“좋아요.”통화를 마치고 정은은 3분 안으로 패딩 코트를 걸치고 두꺼운 스노우부츠를 신은 뒤 가방을 들고 외출했다.소한이 지난 후, 그렇게 춥지 않은 것 같지만, 태양은 여전히 구름 뒤에 숨어 얼굴을 내밀려 하지 않았다.정은은 아래층에 도착하자마자 현빈이 골목 어귀에 서서 한정판 마이바흐 옆에 기대어 검은색 외투를 입고 자동차 열쇠를 들고 노는 것을 보았다.그녀를 본 순간 현빈은 갑자기 똑바로 섰다.정은은 웃으며 그를 향해 걸어갔다.아까까지만 해도 얼굴이 덤덤했던 남자가 순식간에 입꼬리를 들어올렸다.차에 오르자 현빈은 그녀에게 아침을 건네주었다.“두유와 만두, 뜨거울 때 먹어.”정은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심 대표님은 기사로 됐을 뿐만 아니라 특별히 아침까지 사온 거예요? 쯧쯧, 꿈도 꾸지 못한 대우를 받았네요.”현빈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왜? 넌 심지어 더 대담하게 생각할 수 있는데.”정은은 말을 받지 않고 두유만 들고 몸을 녹였다. “왜 안 먹어?”“뜨거우니까요.”“에헴! 방금 수리점에서 전화가 왔는데, 네 차 앞부분이 심하게 손상된 것은 아니니, 다시 페인트를 칠한 후에는 이미 흔적을 볼 수 없대.”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20분 후에 두 사람은 수리점에 도착했다.정은은 사인을 하고 차를 운전했고, 현빈에게 밥을 사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생각 다 했어요? 뭐 먹을래요?”“이렇게 추운 날에는 샤브샤브 먹기 딱이지.”정은은 표정이 환해졌다.샤브샤브 가게는 현빈이 골랐는데, 정은은 도착해서야 그것이 아주 유명한 가게라는 발견했다.입구에 길게 줄이 늘어졌고, 모두 젊은이들이었다.정은은 침을 삼켰다.“우리 그냥 다른 집으로 갈까요?”‘언제까지 줄을 서야 하는 거야?’그러나 현빈은 그녀를 데리고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갔다.“뭘 바꿔? 따라와.”“아니... 이렇게 정정당당하게 새치기를 하는 거예요?”그러나 종업원은 현빈을 보자 제지하기는커녕 웃으며
“정은아, 우리 카페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어? 조 교수님, 정은아! 두 사람 여기서 뭐 해? 안 올라가고?”갑자기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그것은 두 사람의 아래층에 사는 아주머니였다. 지금 그녀는 커다란 장바구니를 들고 단지 입구로 들어오며 활짝 웃었다.“이 추운 날씨에 하마터면 꽁꽁 얼 뻔했네... 할인만 아니었으면 나도 이 늦은 시간에 나올 리가 없었을 텐데!”근처 대형 마트는 밤 9시 이후부터 할인 행사를 했다.살림에 알뜰한 아주머니는 종종 늦은 저녁 장을 보러 나가곤 했다.지금 이런 분위기에서 재석은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재석은 입가까지 올라왔던 말을 조용히 삼켰다.“같이 올라가자.” 아주머니가 따뜻하게 말했다.정은은 곧장 다가가 그녀의 장바구니를 받아 들었다.“제가 도와드릴게요.”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재석이 자연스럽게 정은의 손에서 장바구니를 넘겨받으며 앞장섰다.“내가 들게.”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행동은 다정하고 자연스러웠다.아주머니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조 교수님은 말이야, 정말 다정해! 너희 젊은이들은 그걸 뭐라고 했더라... 매너! 맞아, 매너!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정은아?”정은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이렇게 좋은 총각이면 진작에 여자친구가 있어야 하는데, 조 교수는 그저 연구와 학술밖에 모르잖아! 하루 종일 실험하고 논문 쓰느라 바쁘다니까!”“노벨상이라도 받으려는 건지 원. 그래, 남자가 일 열심히 하는 건 좋지! 그런데 연애도 좀 하고, 일도 하면 더 좋잖아?”아주머니는 한숨을 쉬더니, 갑자기 정은을 보며 말을 이었다.“정은아, 넌 몰라서 그래. 나랑 3층 왕 교수님이 조 교수한테 여자아이를 얼마나 많지 소개해 주려고 했는지 알아? 말로는 좋다고 해놓고, 막상 약속 잡으려고 하면 갑자기 사라지는 거야! 며칠씩 집에도 안 들어오고! 우리가 그걸 모를 줄 아나 봐?”앞에서 조용히 걸어가던 재석은 갑자기 움찔했다.“넌 이렇게 똑똑하고 착하니,
정은은 그런 자신을 비웃으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재석은 순간 숨이 멎을 듯했다. 왜인지 그녀의 그 미소가 왠지 모르게 가슴을 덜컥하게 만들었다.마치... 무언가 중요한 걸 놓쳐버린 것만 같았다.두 사람이 공장을 나섰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경비도 교대 시간이라, 유쾌하고 농담을 잘하던 아저씨는 퇴근했고, 대신 젊은 청년이 근무를 서고 있었다.성격이 조금 내성적인지, 청년은 말없이 열쇠를 받아 제자리에 두고는 조용히 문을 열어 두 사람을 배웅했다.밤이 완전히 찾아오기 전, 하늘가에는 어스름한 빛이 스며들었고, 길가의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황혼 속 적막함을 한층 더 짙게 만들었다.정은과 재석은 나란히 걸으며, 둘 사이에는 자연스레 고요함이 내려앉았다.재석은 입을 떼려다 망설였다. 그녀의 감정이 흔들리는 걸 느꼈지만, 그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다.결국, 조심스럽게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그러던 중, 정은은 문득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선배님이 정성껏 준비해 준 생일 선물, 정말 의미 있었어요. 덕분에 기뻤어요. 고마워요. 그럼, 나도 보답으로 저녁을 살 테니, 뭐 먹고 싶어요?”재석은 그녀가 눈을 드리우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바라보며 순간 멍해졌다.정은이 다시 입을 열기 전까지, 그는 잠시 말을 잃었다.“결정했어요?”재석은 살짝 미소 지으며 답했다.“매운 요리 어때? 괜찮겠어?”“좋아요!” 정은은 망설임 없이 답하며 밝게 웃었다.매운 걸 먹고 나오자, 정은은 입김을 불며 목도리를 꼭 맸다.재석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망설임 없이 목도리를 벗어 숄처럼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려 했다.그러나 정은은 한 발짝 물러서며 환하게 웃었다.“괜찮아요, 선배님. 안 추워요.”재석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가 곰곰이 생각하기도 전에 정은은 이미 성큼성큼 앞서 걸어갔다.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았고, 차가운 바람이 스산하게 불었다. 가로등 불빛마저 옅은 안개에 덮인 듯 흐릿하게 퍼
두 사람의 학술 토론이 마침내 끝나자, 수민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다음에 또 이런 얘기할 거면 나 부르지 마, 정말 지루해...”수민은 중얼거리며 손을 들어 웨이터에게 음식을 올리라고 했다.그리고 모두 정은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밥을 다 먹은 뒤, 수민은 정은과 쇼핑을 하려 했는데, 레스토랑을 나서자마자 회사의 전화를 받았다.“알았어, 알았다고! 하루조차 기다릴 수 없는 거야 뭐야?!”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수민은 전화를 끊고 급히 회사로 달려갔다.떠나기 전에 재석에게 당부했다.“오빠, 오늘 정은 생일이니까 뭐든 다 들어줘야 지!”“알았어.”“어디로 가고 싶어?” 수민을 보낸 후, 재석은 웃으며 정은을 바라보았다.“어디든 다 되는 거예요?” 정은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났다.재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면.”“그럼 그 다이아몬드를 만든 곳으로 가봐도 돼요?”“정말 가고 싶어?”“네!”“좋아.”정은은 그곳이 실험실이나 조작실 같은 곳일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재석이 자신을 공장으로 데리고 갈 줄은 몰랐다.“조 교수! 무슨 일로 또 온 거야?” 재석이 공장에 들어서자마자 경비 아저씨가 열정적으로 인사를 했다.“아저씨, 안녕하세요, 점심 드셨어요?”“그럼! 오늘 식당에서 족발을 삶았는데,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맞다. 그 다이아 목걸리 여자친구가 어땠어?”콜록콜록-재석은 좀 어색해하며 자연스럽지 않게 몇 번 기침을 했다.정은은 옆에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경비 아저씨가 그제야 재석 곁에 한 여자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설마? 이 친구가 바로 네 다이아몬드를 받은 여...”“아저씨! 7호 작업장의 열쇠 좀 주시겠어요?” 재석은 소리를 높여 경비의 말을 끊었다.“그래!” 경비는 바로 열쇠를 찾으러 고개를 돌렸다.재석은 어색하게 정은을 바라보았다.“아저씨가 워낙 농담을 좋아하셔서...”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거 같았어요.”열쇠를 받고 재석은 정은을 데리고 7호 작
“자, 내가 끼워줄게.”수민은 팔찌를 정은의 가녀린 손목에 끼워주었고, 이는 정은의 손을 더욱 하얗게 돋보이게 했다.“이럴 줄 알았어! 이 디자인과 컬러는 너와 아주 잘 어울려!”정은은 고개를 숙이며 팔찌를 바라보았고,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수민이 입을 열었다.“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응?” 정은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뭐가 더 있어?”수민은 웃으면서 말을 하지 않고 웨이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레스토랑에서 베토벤의 ‘환희의 찬가’가 울려펴졌다.잔잔한 음악소리 속에서 재석은 케이크를 밀며 두 사람을 향해 걸어왔다.핑크색 크림 위에 예쁜 인형이 하나 서 있었다. 커다란 눈, 자신감 넘치는 표정은 정은과 똑 닮았고, 주위는 핑크색 진주로 장식되었다.심플하면서도 예뻤다.“선배님?” 정은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재석은 그녀의 눈빛을 마주하며 담담하게 웃었다.음악이 점차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 레스토랑 안이 너무 따뜻해서, 남자의 미소가 너무 눈부시고, 눈빛이 너무 뜨거워서, 수많은 촛불이 흔들리는 가운데 정은은 일시에 멍해졌다.재석은 정은의 앞에 멈춰 서며 손에 든 파란 아이리스를 건넸다.“생일 축하해.”정은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고, 고마워요, 선배님. 꽃과 케이크 정말 너무 예뻐요...”파란 아이리스의 꽃말은 우아함과 생기, 꿈과 희망, 그리고 찬양과 애모였다.수민은 이 상황을 보고 웃으며 일깨워주었다.“정은아, 잘 봐봐, 정말 꽃과 케이크밖에 안 보여?”정은은 멈칫하더니 고개를 숙이며 그 파란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그 순간, 정은은 멈칫했다.은색과 핑크색으로 된 작은 선물함이 꽃다발 속에 숨겨져 있었다.수민의 주시와 재석의 기대를 감지한 정은은 그 선물함을 열었는데, 예쁜 목걸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이건...?”수민이 대답했다.“우리 오빠가 준비한 생일 선물이야.”목걸이 외곽은 둥근 호형으로, 마치 행성 궤도와 같았다. 그리고 그 ‘궤도’에는 9개의 다이아몬드가 분포
이미숙은 계속 말했다.[정은아, 생일 축하해. 원래 나와 네 아빠는 며칠 전에 J시에 가서 너와 같이 생일을 보내려고 했는데, 출판사에서 임시로 『7일담』 재판을 하기로 한 거야. 심지어 속표지 세 상자나 부쳤고. 정말 떠날 수가 없어서 네 아빠와 상의 끝에 다음에 시간 나면 다시 널 보러 가기로 했어.]이미숙도 어쩔 수 없었다.새 책이 대박 나서, 이미 세 번째로 재판되었고, 지금 서재에는 아직도 수천 개의 속표지가 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때로는 책이 너무 잘 팔리는 것도 고민이었다.정은은 눈을 깜빡이며 다정하게 말했다.“우리 엄마가 얼마나 인기 많으신데, 좀 바쁘신 것도 다 정상이잖아요.”자랑스러운 정은의 말투에 이미숙은 웃음을 터뜨렸다.[참, 넌 몰라, 네 엄마 지금 인기가 정말 장난도 아니야! 얼마 전에 한 독자가 어디에서 네 엄마의 핸드폰 번호를 얻었는지, 전화하면서 자신에게 따로 사인을 해달라고 한 거 있지? 심지어 돈 2천만 원을 주겠다잖아.]이미숙이 전화를 받을 때, 소진헌은 마침 옆에 있었는데,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독자의 요구대로 축복의 말을 써주기만 하면 2천만 원을 받을 수 있다니?소진헌은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어?” 정은조차도 좀 놀랐다. “이런 일이 있었어요?”[그때 네 엄마는 멍해서 반응하지 못했는데, 상대방은 네 엄마가 가격에 불만이 있는 줄 알고 직접 4천만 원을 주겠다고 했어. 쯧쯧...]지금 생각해도 소진헌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그럼 엄마는 허락하셨어요?”[사인해 주겠다고 했지만, 돈은 받지 않았어. 그 사람도 J시 사람인 것 같아!]전화를 끊자, 정은은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그녀는 어렵게 침대에서 일어나 신발을 신고 커튼을 열었다.어젯밤에 또 눈이 내렸기에 창밖은 온통 새하얬다.이때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정은이 달려가서 문을 열었다.펑!리본이며 반짝이는 종이가 정은의 머리와 몸에 떨어졌다.정은은 멍해졌다.수민은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가슴 앞에 붉은색
추운 섣달, 낡은 주택 단지는 저녁 9시가 넘으면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근처의 가로등은 또 켜졌다 꺼졌다 했으니, 재석은 정은이 걱정되어 틈만 나면 시간 맞춰 아래층으로 내려가 기다렸다.비록 정은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고정되지 않았지만, 겨우 20분에서 30분 정도 차이밖에 없었는데, 오늘은 옹근 두 시간이나 늦었다.그리고 현빈의 차에서 내렸다.재석은 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추측했다.밤바람이 불자, 이따금 한기를 안겨왔고, 재석은 정은의 코가 얼어서 빨개진 것을 보았다.“가자, 밖은 너무 추우니 집에 가서 다시 이야기하자.”정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가운 손바닥에 입김을 불었고, 고개를 돌려 현빈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가로등 아래 두 사람은 나란히 걷고 있었고, 걸음걸이까지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다.복도의 음향 제어등은 층층이 켜져 있는데, 은은한 말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현빈은 제자리에 서서 두 사람이 떠나는 방향을 응시했다. 정은이 재석을 언급할 때 엄청 기뻐해하며 그란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을 보고, 현빈은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때는 나와 강도겸이 절친이었기에 정은을 놓쳤는데, 지금은 또 정은이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는 것을 지켜볼 거야?’일이 자연스럽게 성사되기를 기다리려 했지만, 이 순간, 현빈은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이러다가 무슨 이변이 생길지도 몰라.’그는 전에 망설였기에 6년이란 기다림을 바쳤고, 정은도 이제 겨우 도겸과 헤어졌다.‘같은 잘못은 절대로 다시 범하면 안 돼. 그건 바보와 다름없으니까.’몸을 돌리는 순간, 남자의 눈빛은 마치 어떤 결심을 한 것처럼 확고해졌다....이 날은 소한이었다.사람들은 소한과 대한이 가장 추운 날이라고 한다. 물론 이것은 섣달 그믐날 전의 마지막 두 번째 절기이기도 했다.그러나 정은에게 있어, 이것은 또 다른 특수한 의미가 있었는데, 바로 그녀의 생일이었다.이른 아침, 가장 먼저 축복을 보낸 사람은 정은의 아버지 소진헌이었다.정은이 아직 자고 있을 때, 그의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