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이 안절부절못하며 망설일 때, 재석은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이럼 되겠지?”“좀 더 숙여야 할 것 같아요.”“그럼 이렇게?” 재석은 계속 몸을 굽혔다.“네, 이럼 됐어요.”정은은 재빨리 앞치마를 그의 목에 걸었다.재석은 몸을 펴며 잠깐 기다렸는데, 정은이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웃으면서 일깨워주었다.“허리끈을 좀 묶어야 할 것 같은데.”“아! 네!” 정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즉시 끈을 잡고 리본을 묶었다.“콜록콜록...” 재석은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왜 그래요?”“좀 타이트해서.”“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다시 묶을게요... 이번엔 괜찮아요?”“응.”주방을 깨끗이 정리하고 두 사람은 거실로 갔다.정은은 과일을 깎아 탁자 위에 놓았다.“선배님, 과일 먹어요.”“고마워.”정은은 사과 한 조각을 들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CBS가 이번 서비대학교와 캘테크 연합 학술회를 중계한다면서?”“응, 보고 싶어?”정은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곧 다시 풀이 죽었다.“우리 집의 텔레비전은 외국의 방송을 볼 수가 없어요. 컴퓨터로 봐도 생방송 대신 공식사이트에 가서 재생 방송을 볼 수밖에 없고요.”“볼 수 있어.”“네?!”“우리 집에 가자.”그렇게 정은은 재석을 따라 옆집으로 갔다.그녀는 처음 온 게 아니지만, 대부분 거실에 머물었고, 안방에 들어간 적이 거의 없었다.유일하게 들어간 것도 재석을 위해 온도계와 감기약을 찾아주기 위해서였다.그때 너무 다급해서 자세히 방을 살펴볼 기회가 없었다.하지만 이번엔 달랐다.재석이 프로젝터를 켜러 가자, 정은은 방에 서서 주위를 열심히 살펴보았다.두 방은 같은 배치였고, 안방의 크기도 같지만, 재석의 인테리어는 정은과 확연히 달랐다.침대와 옷장 스타일, 침대 시트와 커튼의 컬러까지 전부 달랐다...정은은 따뜻한 색조를 선택했고, 재석은 간단한 블랙과 화이트를 선택했다.이성과 통제력은 마치 뼛속에 녹아든 듯, 인테이어조차도 엄숙함과 정직함이 배어 있었
“아니에요!” 정은은 카펫에 털썩 앉더니 책상다리를 했다.“이럼 됐어요.”부드러운 긴 털 카펫을 만진 순간, 정은은 이것이 싸구려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위에 앉으니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심지어 등은 침대에 기댈 수 있었다.‘만약 간식과 음료수가 있다면 더욱 완벽할 텐데.’이렇게 생각하던 중, 재석은 견과류와 감자칩, 그리고 레몬에이드 두 병을 들고 들어왔다.‘선배님은 날 너무 잘 알아!’재석은 간식을 내려놓은 다음, 정은을 따라 카펫에 털썩 앉았고, 또 자신과 정은의 뒤에 베개 하나를 놓았다.두 사람은 이렇게 보면서 먹고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생방송이 끝날 때까지.정은은 시간을 확인했는데, 뜻밖에도 11시가 다 되어 갔다.깜짝 놀란 그녀는 바로 일어나서 작별인사를 했다.재석은 정은을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고,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쓰레기를 치울 때, 재석의 시선은 두 사람이 기대고 있던 베개에 떨어졌다.그가 기댄 베개는 이미 억눌려서 움푹 들어갔지만, 정은이 기댄 베개는 약간의 주름이 있을 뿐이었다.재석은 베개를 정리한 뒤, 침대에 놓으려 했는데, 갑자기 은은한 향기가 덮쳐왔고, 그는 제자리에 멍해졌다.통제할 수 없는 반응을 느끼자, 재석은 괴로워하며 미간을 찌푸렸다.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이 못났다고 느꼈다.그러나 재석은 또 이런 상황을 이겨낼 방법이 없었다.이번에 진정을 되찾더라도 다음에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그의 몸은 여전히 이성을 배신할 것이다.재석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어려워. 정말 너무 어려워. 전에 외국에서 P0급 과제를 했을 때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아.’...옆집, 정은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곧 달콤한 꿈나라로 들어갔다.그러나 그녀가 기댄 베개 하나 때문에 누군가는 몸을 뒤척이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토요일, 모처럼 햇빛이 쨍쨍했다.정은은 수업이 없어 공사장에 가서 공사 진도를 확인하기로 했다.그녀는 인훈
‘이건 유전의 법칙에 맞지 않잖아!’정은의 말투에서 인훈은 심지어 소진헌을 본 것 같았다.‘그동안 정은은 혼자 이곳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네.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면 절대로 이런 패기가 없을 거야.’‘자신의 돈으로 실험실을 지을 담력이 있다니. 그리고 인맥과 수단이 없다면, 이렇게 큰 땅을 손에 넣을 수도 없었을 텐데, 심지어 심사비준을 통과했잖아.’그녀의 여동생은 그야말로 신비한 존재였다.인훈은 그 비밀을 탐구하는 것보다 정은의 처지가 안쓰럽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어쩌면 말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은에게 가장 좋은 위로일지도 모른다.인훈은 표정이 다소 심각했다.“확실히 맞지 않아. 공사 진도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많이 느리거든.”“이유는? 찾았어?”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일손이 부족하거든.”‘난 또 무슨 큰 문제인 줄 알았는데, 그게 다야?’인훈의 회사는 이미 기초 토지 건설을 하지 않았는데, 이 일은 매일 밖에서 고생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돈도 얼마 벌지 못했다.그래서 스마트 홈웨어 사업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후, 인훈의 회사는 직접 이 작업을 포기했다.그러나 정은은 또 토지 건설까지 함께 해야 한다고 명확히 요구했다.인훈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장의 고층건물이라도 평지에서 지어진 것이기에, 토지 건설은 가장 기초적인 일이었다.남에게 맡기고 싶지 않은 것도 정상이었다.‘그냥 하자, 어차피 안 해본 것도 아니니까.’인훈은 즉시 전의 시공팀과 연락했다.“대략 20여 명의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들이야. 전의 경험에 따르면 인력은 충분할 거야.”만약 원래 계획대로, 지반을 깊이 파지 않는다면, 그의 예상은 확실히 맞았다.그러나 인훈은 더 잘 해내려고 임시로 도면을 고쳤다. 비록 3센치미터밖에 되지 고치지 않았지만, 현실에서는 적지 않은 작업량이었다.“이렇게 고치니, 인력이 부족한 거야.”정은은 잠시 생각해보 보았다.“이건 장기적인 문제야, 아니면 일시적
현빈은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해했다.“네가 사장이야 내가 사장이야?”남자는 목을 움츠리더니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익숙한 목소리에 정은은 저도 모르게 이쪽을 보았다.마침 이때 인훈이 그녀를 불렀다.“정은아, 이리 와서 앉아!”현빈은 고개를 홱 돌렸다.눈을 마주치자,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현빈은 가장 먼저 반응하더니 웃으며 정은을 향해 걸어갔고, 눈빛에 온통 놀라움과 의아함이 담겨 있었다.“네가 왜 여기에 있어?!”“공사장 좀 보러 왔어요.”“네가 무슨 공사장을?”“난 공사장에 나올 수 없는 거예요?”“아니... 이게 네 전공도 아니고, 이것으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왜 공사장을 보러 온 거야? 신기해서?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정은은 가볍게 기침했다.“여기에 땅이 하나 있어서 집을 지으려고요, 안 돼요?”“여기에 땅이 있다고?”현빈은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리더니 미간을 살며시 찌푸렸다.“그때 강도겸이 너에게 준 그 땅?”“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정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남자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두 사람의 일에 대해 내가 뭘 모르겠어?”그때 도겸이 땅을 주기 전에 심지어 현빈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현빈은 그 계약서를 볼 때,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도겸의 인색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또 그동안 고생한 정은이 안쓰러웠다.공동 창립한 회사가 지금 상장화사로 되었는데, 파트너가 딸랑 수표 한 장에 땅 하나를 주다니?‘정은이 거지야 뭐야? 어떻게 이런 제안을 생각해 낼 수가 있지!’아마도 정은만이 이런 도겸이 좋다고 용서하며 너그럽게 봐줄 것이다. 다른 창업자라면, 이런 불공평한 이익 분배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었다.아니나 다를까, 정은은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며 더 이상 주식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현빈이 이 일을 알았을 때, 질투 때문에 눈에 핏발이 섰다.‘왜? 왜 강도겸 같은 쓰레기가 이렇게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는 건데? 난 조금 늦었을 뿐인데... 대체 왜!’“심 대표님?
‘그냥 이렇게 잡게 놔두다니?!’심지어 정은은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아니, 이대로 끌려가는 거야?’현빈은 질투에 눈에 핏발이 섰다.‘아니... 저 사람은 또 누구야? 평소에 실수로 정은을 건드리기만 해도 그녀는 바로 거리를 뒀는데... 이 사람 대체 정체가 뭐야?’방금 인훈과 사장님이 인사를 나눌 때, 현빈은 하나도 듣지 않은 모양이었다.“심 대표님, 심 대표님?!” 현빈과 함께 시찰을 하러 온 프로젝트 책임자는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자, 목소리를 높여 계속 불렀다.“왜?!”차가운 눈빛이 자신에게 떨어지자, 책임자는 그저 등골이 오싹해지더니 숨이 멎는 것 같았다.“전, 전화가 울리고 있어서요.”책임자는 침을 삼키며 손으로 땀을 닦았다.현빈은 핸드폰을 꺼내 무뚝뚝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책임자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며 더욱 당황해졌다....저쪽의 남매는 이미 먹기 시작했다.인훈이 물었다.“어때, 맛있어?”정은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네, 맛있어요!”“사장님은 이 공사장에서만 장사를 하시거든.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양도 엄청 많아.”“자, 고기 많이 먹어.”인훈은 자신의 고기를 골라서 정은의 접시에 준 후에야 먹기 시작했다.“오빠, 너무 많아, 나 다 못 먹어.”“다 먹을 수 있어! 너 얼마나 말랐는지 좀 봐, 많이 먹어야 살이 찌지.”인훈의 사랑은 확실히 특별했다.“참, 방금 그 남자 딱 봐도 좋은 사람이 아니네. 너도 여자애이니 밖에 나갈 때 조심 좀 해.”“오빠가 잔소리한다고 싫어하지 마. 만일을 대비하란 말이야. 나쁜 사람의 얼굴에는 ‘내가 나쁜 사람이다'는 글자가 적혀 있지 않거든...”지금 인훈은 책임감 있는 오빠 그 자체였다.특히 소진헌과 이미숙이 곁에 없는 상황에서, 오빠인 그는 더욱 자기 여동생의 안전을 보호해야 했다.‘날라리를 조심해야지, 우리 정은이 빼앗아가지 못하게.’이와 동시, 자신이 이미 ‘날라리’로 되었단 사실을 모르는 현빈은 음식을 먹을 기분이 없었다.
“정은아, 두 사람 아는 사이야?” 인훈이 담담하게 물었다.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응.”“당연하지!”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인훈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현빈을 한 번 훑어보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자, 그는 현빈이 더욱 싫었다.현빈은 인훈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의자를 당기며 정은 옆에 앉았다.‘흥, 네 라이벌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라고. 눈치 있으면 잽싸게 꺼져.’‘흥, 정말 날뛰는 날라리군!’“정은아, 소개해야지?” 인훈은 턱을 들어올렸다.“너랑 잘 아는 사람 같지가 않은데?”‘뭐? 내가 정은이랑 잘 아는 사이가 아니라고?! 그럼 자기는 또 뭔데?’현빈은 이 말을 듣자마자 상대방이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러나 정은은 오히려 인훈의 편을 들어주었고, 정말 소개를 하려 했다.“그래, 정은아. 이분도 너랑 잘 아는 사람 같지가 않네. 소개 좀 해줘.” 현빈은 바로 받아쳤다.인훈은 안색이 어두워졌다.눈을 마주치자, 두 남자는 소리 없이 수차례의 ‘싸움’을 벌였다.정은은 눈살을 찌푸렸는데, 분명히 수상함을 느꼈지만 잘 이해하지 못했다.‘처음 만난 두 남자가 무슨 깊은 원한이 있겠어? 왜 자꾸 서로를 도발하는 거지?’“그래요, 그럼 소개할게요. 이분은 심현빈 씨라고, 내 친구이자 투자 회사의 대표님이야. 그리고 이분은 소인훈이라고, 내 사촌오빠인데, 현재 스마트 홈웨어 회사를 경영하고 있어요. 무슨 의문이라도?’“사촌오빠?!”“투자 회사 대표님?!”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며 무척 어색해했다.“에헴!” 현빈은 가장 먼저 반응을 하더니 바로 찻잔을 들었다.“미안해요. 정은의 사촌 오빠인 줄 몰랐어요. 제가 실수를 했네요. 술 대신 차로 사죄할게요.”인훈은 현빈이 진지하고 시원시원하게 사과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의 불쾌함도 연기처럼 사라졌다.그는 찻잔을 들며 말했다. “괜한 말씀을.” “스마트 홈웨어를 하신다고요?”“그래요. 이 방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거예
“대충 이런 상황이에요.”“쯧.”현빈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차갑게 중얼거렸다.“부총장님은 내가 한 말을 이미 잊은 것 같군...”“네?”“아무것도 아니야. 실험실은 어느 정도 지었는데?”정은은 입술을 가볍게 깨물어싿.“무슨 어려움에 부딪친 거야? 말해봐, 내가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정은은 그가 이 말을 하길 기다렸다.“있어요!”‘당연히 있지! 너무나도 필요해!’2분 후.“그래서 지금 어려움이 바로 일손이 부족하다는 거야? 내 사람을 빌려달라고?”그것도 가장 평범한 공사팀이었다.정은은 정색했다.“안 돼요?”현빈은 고개를 저었다.“그건 아니야.”“그럼 왜 표정이...”“내 신분을 알면서도 고작 이런 부탁을 하다니, 내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정은은 말문이 막혔다.“일손이 필요하다고? 30명이면 충분한가? 아니면... 40명?”정은과 인훈은 시선을 교환했다.‘이게 바로 부자들의 세상인가?’특히 인훈은 두 눈에서 빛이 번쩍거리더니 침을 마구 삼켰다.‘내가 말을 잘못했네. 이 사람은 단순한 날라리가 아니야. 큰 회사 대표일 뿐만 아니라, 쉽게 수십 명의 사람을 지시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해.’현빈은 잠시 생각을 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그럼 두 공사팀 보낼게.”인훈은 감격에 겨웠다.‘이건 가족이 다름없어!’“문제 없지?”남매는 동시에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없어요!”...오후, 현빈은 정은을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인훈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귀찮게 그럴 필요가 없는데, 여기서 택시를 타기가 꽤 편하거든요...”현빈은 이때 이미 작업복과 안전모를 벗었고, 엘리트의 모습을 보였다.그리고 빨간 페라리 옆으로 걸어가니, 그야말로 진귀한 느낌이 물씬했다. “귀찮긴요. 가는 길에 데려다주는 것일 뿐이에요.”인훈은 제자리에 서서 차가 떠나는 것을 보며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날라리는 무슨! 아주 귀한 매제네!’그러나 오빠로서 인훈은 여전히 핸드폰으로 정은에게 문자를 보냈다.[안전
정은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두 사람은 차가 골목 어귀에 세워질 때까지 침묵했다.“다왔어.”“심 대표님, 공사팀을 빌려줘서 고마워요. 비용을 어떻게 결제하는지에 대해서는 우리 오빠가 설명할 거예요.”“좋아.”현빈이 돈을 받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기에, 이런 분명한 태도에 정은은 저도 모르게 한숨 돌렸다.“그럼 잘가요.”“그래, 정은아.”...인훈은 아주 빠르게 움직였는데, 이튿날에 바로 현빈이 보낸 이 두 공사팀을 만나 가격을 협상한 다음 계약을 마쳤다.그리고 3일째 되는 날에 정식으로 일을 시작했다.“그래서 현재 상의한 결과가 바로 나, 너, 심 대표가 매주 하루의 시간을 내여 공사 진도를 맞추는 거야.”정은은 눈살을 찌푸렸다.“나와 오빠가 오면 되잖아. 굳이 그 사람을 부를 필요가 있을까?”그렇다고 정말 현빈을 ‘청부업자'로 대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현빈은 엄청 바빴으니, 이런 사소한 일을 신경 쓸 시간이 없을 것이다.인훈이 말했다.“나도 그렇게 말했는데, 심 대표는 꼭 일주일에 한 번 만나겠다고 고집을 부렸어.”그 이유 역시 무척 충분했다.“내 공사팀이니 나도 당연히 책임을 져야죠. 모두 날 위해 일하는 사람이에요. 공사장의 사람들이든, 사무실의 직원이든 나에게 있어 모두 똑같고, 귀천이 없어요.”...“참, 너에게 말 한마디 전해 달라고 부탁했어.”“뭔데요?”“네가 이런 사소한 일로 자신을 찾아와서 너무 기쁘다고.”정은은 말을 하지 않았다.인훈은 코웃음을 쳤다.“이 자식 지금 너 좋아하는 거 맞지? 아주 티를 내던데. 하지만 이렇게 솔직하게 나와서 오히려 마음에 들어. 안목도 있고 담력도 있으니까. 그러나 정은아...”그는 말머리를 돌리더니 갑자기 정중하게 말했다.“남자들은 다 믿을 수 없으니까, 넌 쉽게 그 사람에게 속으면 안 돼.”정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오빠, 안심해. 그럴 리 없어.”도겸과 사귄 그 6년, 정은은 이제야 가까스로 질곡에서 벗어났으니 또 어떻게 쉽게 다시 사
하정남은 제자리를 맴돌며 중얼거렸다.“예전에는 남이 어떻게 말하든 넌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왜 갑자기 살을 빼겠다는 거야? 누가 널 괴롭힌 거 아니야?”민지는 사랑으로 가득 찬 가정에서 자랐기에 자신감이 넘쳤고 난관적이어서 종래로 몸매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초등학교 때 뚱뚱해서 친구들한테 왕따를 당해도 하루 종일 웃으며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지금 다이어트를 하겠다니?[민지는 착하고 마음이 넓어서 이런 일을 신경 쓰지 않았어. 그러나 이제 마음을 모질게 먹고 살을 빼다니... 대체 얼마나 큰 일에 부딪힌 거야?’하정남은 가슴이 떨렸다.민지는 하정남이 이상한 생각이라도 할까 봐 서둘러 설명했다.[뉴스에서 그러던데, 적당한 다이어트는 몸에 좋다고 했어요. 나도 이렇게 계속 뚱뚱하게 지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해보고 싶었던 거예요...]하정남은 눈살을 세게 찌푸렸다.‘뉴스에서 들었다고? 이상해! 분명히 이상해!’그는 자신의 딸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가장 큰 취미는 먹는 것이고, 그 다음은 실험실에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하는 것이었다.틱톡이 유행하는 요 몇 년 동안 민지는 영상 같은 것을 잘 보지 않았다.그런데 뉴스 하나 때문에 다이어트를 결심하다니.이때 하정남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너 연애라도 한 거냐?”민지는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다. 다행히 전화를 사이에 두고 있어 하정남은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아니에요, 그런 거 없어요! 난 공부를 하러 온 것이지, 사랑을 하러 온 게 아니잖아요! 아이고, 아빠, 나 아직 수업이 있는데, 곧 늦을 것 같아요. 먼저 끊을게요, 다음에 다시 연락해요.]말을 마치자 바로 전화를 끊었다.“반응이 이렇게 큰데 아직도 발뺌을 하는 거야?! 흥! 우리 딸 아직 어리니, 어느 남자가 감히 지금 내 딸을 빼앗아간다면, 난 그 자식의 다리를 부러뜨릴 거야!”민지는 아침을 사서 곧장 교실로 갔다.오늘은 재석의 수업이었다.그녀가 도착했을 때, 정은과 서준은 이
정은은 민지의 식사량을 떠올리며 또 그녀 앞에 놓인 몇 가지 음식을 훑어보았다.‘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지. 간식에 불과해. 두 시간 뒤면 배고프다고 야단을 칠 텐데.’그러나 뜻밖에도 두 시간의 수업이 끝나자, 민지는 여전히 자리에 가만히 앉아 배고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어머...’정은은 깜짝 놀랐다.‘진짜 배가 안 고픈 거야?’만약 민지가 이 말을 들었다면 틀림없이 울면서 반박했을 것이다. ‘배고파요, 곧 굶어 죽을 것 같아요. 어떻게 배가 고프지 않을 수 있겠어요?’그렇다, 지금 민지는 벌써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했고, 눈앞이 침침하며, 배에서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그리고 감자칩, 과자, 케이크, 닭발, 호떡 등 음식을 생각하고 있었다.‘아아악! 먹고 싶어 죽겠어! 참아야 돼!’정은은 그런 괴로운 민지의 마음도 모른 채, 그저 그녀가 정말 배가 고프지 않은 줄 알았다.그러나 다음날 아침, 민지가 여전히 이렇게 조금밖에 먹지 않자, 정은은 그제야 깨달았다.“민지야, 너 지금 다이어트 하는 거니?”“네! 정은 언니, 이게 왜 이렇게 힘들까요? 분명히 언니랑 저랑 똑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언니는 점심이 되어도 배가 고프지 않잖아요. 저는 30분도 버티지 못하고 배가 고픈 거 있죠. 힝, 너무 불공평해요...”“왜 갑자기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건데?”이것은 정은이 알던 민지가 아니었다.그녀가 아는 민지는 자신의 몸매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았고,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았다. 먹고 싶으면 먹고,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항상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냈다.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정은은 눈빛이 깊어졌다.“너, 지금 연애하는 거 아니야?”이 말에 앞에 앉아 있던 서준이 고개를 홱 돌렸고, 검은 눈동자는 횃불처럼 빛났다.“누구랑?”민지는 재빨리 손을 흔들었다.“그런 거 아니야! 절대로!”정은이 물었다. “그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거야?”한 여자가 갑자기 외모에 신경을 쓰지 시작했다면, 그것은 아마도 좋아하는 사람이
현빈이 대답했다.“넌 네 여자친구랑 춤추고 있었잖아? 그런데도 우리한테 신경 쓸 여력이 있는 거야?”그는 팔짱을 끼며 웃는 듯 마는 듯했다.도겸이 말했다.“그렇게 떠들썩하니 못 본 척하기가 더 어려워.”현빈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다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야. 거절당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정은이의 성격은 네가 나보다 더 잘 알 거 아니야.”도겸은 무표정하게 어두컴컴한 가로등 아래 서 있었고, 반쪽 얼굴은 그늘에 잠겼다.“내가 말했지, 너한테 기회가 없을 거라고.”현빈은 웃음을 지었다.“난 오히려 매우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너도 알잖아, 넘기 어려운 은 산일수록 나한테 승부욕이 더 생긴다는 거. 한 번 실패했다고 매번 지는 것은 아니잖아. 언젠가 난 산꼭대기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볼 거야.”도겸은 피식 웃었다.“산꼭대기에 오르기 전에 넌 이미 산 중턱에서 떨어져 죽었을 거야.”“그래도 괜찮아. 노력을 할 때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건 우습지도, 슬프지도 않아. 하지만 가장 슬픈 게 뭔지 알아?”도겸은 현빈이 무슨 듣기 좋은 말을 할 리가 없다고 직감했다.“가장 슬픈 것은 거절당할 기회도 없이 소탈한 척 연기를 해야 한다는 거야. 아쉽게도 아무리 몰입해서 연기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거든.”말을 마치고 현빈은 차 키를 꺼내 운전석에 앉았다.떠나기 전에 그는 특별히 차창을 내려 웃으며 말했다.“여자친구를 기숙사로 데려다주는 거 잊지 마. 그리고 아쉬운 척 뽀뽀도 해주고 그래. 이렇게 연기를 하기 시작한 이상,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어?”도겸은 멀어진 차가 점차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주먹을 움켜쥐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경혜가 찾아왔다.“왜 나왔어요? 안 추워요?”“맑은 공기 좀 마시고 싶어서.”“오늘 활동 이미 끝났어요. 오늘 밤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요...”“응, 가자.”경혜는 멈칫했다.“가요, 어디로요?”“기숙사로 데려다줄게.”도겸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앞장섰다.경혜는 반응하더니 입가
태민은 은근히 놀랐다.“너도 그 가게의 단골이야?”“네! 거기 케이크가 꽤 괜찮거든요.”태민은 평소에 이런 키체인을 거의 달고 다니지 않았다.한편으로는 수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서른이 넘은 자신이 이런 키체인을 하고 있다면 너무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키체인은 태민이 새 핸드폰을 살 때부터 줄곧 걸려 있었고, 눈에 띄지도 않았기에 이렇게 놔둔 것이었다. 그러나 눈 앞의 이 아가씨가 이것을 알아볼 줄이야.“몇 번 뽑았어요?”민지가 물었다.“앞뒤 합치면 아마... 세 번 정도?”민지는 이 말을 듣고 이가 깨질 뻔했다.‘왜 남들은 운이 이렇게 좋은데, 나만 재수가 없는 거지?’태민은 민지가 이를 가는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하고 웃었다.“괜찮다면 주소 하나 남겨줘. 집에 다른 하나 히든 키체인이 있거든. 너한테 줄게.”민지는 갑자기 고개를 들었고, 부드럽게 웃음을 머금은 태민의 눈빛을 마주했다. 태민의 모습은 마치 어렸을 때 그녀와 함께 놀아줬던 이웃집 오빠와 흡사했다.태민은 키가 1미터 78센티미터였고, 이목구비가 단정하며 온화하고 우아한 기질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웃을 때 눈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부드럽고 조금도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물처럼 세상 만물을 감쌀 수 있었다.민지는 멍하니 태민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열기가 솟구쳐 볼과 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심지어 말까지 더듬기 시작했다.“정, 정말... 정말 저한테 주는 거예요?”태민은 영문을 몰랐다.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왜 갑자기 말을 더듬기 시작한 거지?’태민은 이 아가씨가 아주 귀엽다고 생각하고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때, 누군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교수님, 행사가 곧 끝날 거예요. 현장에서 회수한 재료를 체크하신 다음 사인해 주세요!”“알았어, 바로 갈게.”이때 태민은 또 무언가를 떠올린 듯, 다시 돌아오더니 민지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넸다.“위에 내 번호 있으니까 나한테 주소 보내
재석은 떠나자, 수아도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저 집에 갈게요.”말을 마치자 태민을 버리고 혼자 떠났다.태민은 영문을 몰랐는데, 입을 벌리고 쫓아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싶었다. 그리고 내친 김에 수아를 집에 데려다주고 싶었다.그러나 교수님 대표로서 오늘 밤 태민에게 다른 임무가 있었으니 그는 몸을 뺄 수가 없었다.수아는 가고 싶으면 갈 수 있었고,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태민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태민은 한숨을 참지 못했다.분명히 두 사람은 이미 사귀는 사이였지만, 태민은 항상 수아가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수아의 마음을 알아본 적이 없는 것처럼.두 사람은 여태껏 사귀면서 손을 잡는 것 외에 키스조차 한 적이 없었다.그는 실의에 빠져 고개를 떨구었다.이때 누군가 갑자기 태민과 부딪쳤다.“죄송합니다! 어디 다친 데 없어요?” 민지는 한 손에 접시를 들고 있었고, 안에 과자 5개 정도 들어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에 음료수를 들고 있었는데, 방금 태민과 부딪쳤기 때문에 좀 쏟아졌다.그녀는 빨리 사과했다.태민은 얼른 손을 흔들었다.“괜찮아.”말하면서 휴지를 꺼내 건네주었다.“좀 닦아, 음료수가 다 쏟아졌네.”“앗! 감사합니다!” 민지는 얼른 받으려 했지만, 자신의 두 손에 모두 물건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갑자기 난감해했다.태민은 민지의 궁핍함을 알아차렸다.“아니면 내가 접시 들어줄까?”“어? 괜찮으세요?”“그럼.” 태민이 접시를 받았다.민지는 손을 닦았다.“방금 정말 죄송해요. 전 성격이 너무 털털해서...”“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방금 딴 생각을 한 데다가 또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니 길을 주의하지 않았어.”“제가 사과로 간식 하나 드릴게요.”태민은 그제야 접시에 망고 무스, 두리안 케이크, 나폴레옹 케이크 등 여러 가지 디저트가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좋아.” 그도 사양하지 않고 웃으며 그 두리안 케이크를 골랐다.민지는 아쉬움을 드러냈다.“왜 그
“수아야?”태민이 몇 번이나 불렀지만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여자의 어깨에 손을 얹자, 수아는 그제야 반응했다.“방금 뭐라고 했어요?”“뭘 보고 있냐고 물었는데.”“아무것도 아니에요.”수아는 자신의 어깨에 걸쳐진 태민의 손을 뿌리쳤다.“조 교수님에게 볼 일이 좀 있어서요.”말을 마치자 수아는 재석을 향해 달려갔다.태민은 자신의 손, 그리고 수아의 다급한 뒷모습을 보며 의혹의 눈살을 찌푸렸다.그는 수아가 이런 활동에 흥미를 가질 줄은 몰랐다.그러나 그녀가 오고 싶은 이상, 태민도 같이 와준 것이다.그렇다, 태민은 재석의 실험실에 가입했을 뿐만 아니라 교내에서도 교수님으로 일하고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초청장을 보았을 때, 수아는 햇빛보다 더 찬란한 미소를 지었다.태민은 수아가 이렇게 웃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어, 바로 따라서 웃기 시작했다.‘손태민, 너 이번에 정말 잘했어!’“교수님, 잠깐만요!”재석은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렸고, 수아가 웃으며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무슨 일 있어?”“교수님.” 수아는 일부러 농담을 했다.“정은은 일 때문에 바쁘다고 떠났잖아요. 그럼 제가 교수님과 함께 춤을 추는 건 어때요?”재석은 눈빛이 어두워졌다.“아니야.”수아는 웃음이 굳어졌고, 곧 일부러 밝게 웃었다.“교수님도 참, 농담일 뿐이니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하지 마세요. 실험실의 그 노화 설비는 언제 교체할 수 있는지 묻고 싶어서 왔어요. 전 교수님은 여러 번 불평하셨잖아요.”재석은 눈살을 찌푸렸다.“이틀 전에 난 이미 단체 메일을 보냈는데, 그 안에는 노화 설비의 처리와 새로운 설비의 가격, 설치 시간 등에 대해 모두 설명을 했어.”수아는 표정이 굳어졌다.“그, 그래요? 제가 주의를 하지 않은 것 같아요... 죄송해요.”“실험실 규정 제2조, 업무와 관련된 메일을 하루에 한 번씩 체크하기.”“아, 교수님, 저는...”“연구원으로서 네가 연구에 더 많은 마음을 기울였으면 좋겠어.”수아는 눈을 드리웠다.“알
도겸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잠시 후, 도겸은 경혜를 향해 손을 내밀더니 자신과 춤을 춰달라고 초청했다.경혜는 웃으며 자신의 손을 위에 놓았다.두 사람은 나란히 무도장으로 들어갔다.민지와 화장실에서 돌아온 정은은 마침 이 장면을 보았다.선남선녀가 아름답게 춤을 추고 있는 이 장면을.‘보기 좋네.’정은은 조용히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때, 그녀의 앞에 두 손이 나타났다.하나는 왼쪽, 하나는 오른쪽.현빈과 재석이 동시에 정은을 초청했던 것이다.민지는 놀라서 뒤로 물러나더니 이곳을 빠져나왔다.‘이게 뭐야... 남자들이 한 여자를 위해서 다투고 있잖아?’현빈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정은아, 나에게 이런 영광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와 함께 춤을 추지 않을래?”재석도 웃으며 말했다.“나도 심 대표님과 같은 생각을 했는데.”현빈이 고개를 돌리자, 재석은 직시하며 피하지 않았다.살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정은은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이게 무슨 일이야? 이 두 사람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 거야? 갑자기 왜 이래?’그녀는 고개를 돌려 민지를 찾으려 했다.뒤에 있던 민지는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정은 언니, 이번에는 정말 언니를 도울 수 없을 것 같아요. 죄송해요.’처음에 사람들은 이 빛이 어둡고 구석진 곳에 많은 관심을 돌리지 않았지만, 구경꾼들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아무리 깊이 숨어도 그들은 냄새를 맡으며 찾아올 수 있었다.더군다나 이것도 숨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헐, 이게 무슨 상황이야? 조 교수님과 심 대표님?!”“지금 누굴 초청하고 있는 거지? 어디 보자, 누가 이렇게 매력적인지... 아, 소정은이구나, 그럼 하나도 이상하지 않네.”예쁘게 생긴 데다가 1학년이지만 학술지 Science가 그녀의 논문을 올렸으니 인기가 없을 리가 없었다.게다가 정은은 학생들이 뽑은 ‘7대 퀸카'중 한 명이었다.“쯧쯧, 재밌네! 정말 재밌어!”“드라마도 이렇게 못 찍겠지?”“이야, 이게 연애소설보다 더 재밌네!”
사회자는 즉시 현빈에게 관심을 가졌다.“그럼 제가 현장의 모든 여자아이들, 그리고 저 자신을 포함하여 한가지 질문을 해도 될까요, 대표님?”현빈은 고개를 끄덕였다.“에헴! 실례지만 지금 여자친구 있으세요?”“아직은 없어요.”“그럼 저희에게 기회가 있을까요?” 사회자도 대담하게 질문했다.“아니요.”“왜요?”“좋아하는 사람 있거든요.”말하면서 현빈은 웃음을 머금은 눈빛을 정은에게 돌렸다.재석은 안색이 어두워졌고, 손에 든 생수병은 어느새 쭈글쭈글 해졌다.민지는 고백을 하고 있는 현빈을 보다가 또 아무런 반응이 없는 정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과자를 먹기 시작했다.‘응, 맛있네...’현빈은 실망한 사람들의 탄식을 무시하고 마이크를 돌려준 다음 다시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곁눈질로 정은을 주시했다. 그녀는 지금 케이크를 먹고 있었는데, 볼이 불룩불룩한 해서 마치 작은 다람쥐와 같았다.그 자신조차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난 왜 한 여자에게 이렇게 관심을 기울이는 거지? 여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나로 하여금 이렇게 신경 쓰이게 하고, 이렇게 반하게 하고 이렇게 깊이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여자는 정은이 처음이야.’봐도 봐도 계속 보고 싶고, 어느 순간부터 현빈은 평생 정은을 그렇게 바라만 봐도 행복하다고 느꼈다.재석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심 대표님 오늘 밤 정말 흥이 많네요.”“그래요, 조 교수님도 그럭저럭인 것 같은데.”눈이 마주치자, 두 사람의 눈빛에 살기가 넘쳤다.“에헴!” 민지는 정말 참을 수 없었다.“정은 언니, 저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같이 가줄래요?”“좋아.” 정은도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그 테이블과 멀리 떨어져서야 정은은 한숨을 돌렸다.민지는 헤헤 웃으며 말했다.“정은 언니, 지금 좀 홀가분해졌어요?”“민지야, 살려줘서 고마워.”“헤헤, 천만에요!”‘언니와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졌으니, 이제 두 사람더러 싸우라고 해.’...스포트라이트 코너가
박수와 환호 소리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는 한가운데 있는 탁자 위에 멈추었고, 이어서 옆에 앉아 있는 한 쌍의 남녀를 비추었다.사회자가 감탄을 했다.“어머, 커플인 것 같은데! 두 분 자기소개 좀 해주실래요?”경혜는 일어나서 건네준 마이크를 받았다.“안녕하세요, 생물대학원의 심경혜입니다.”“옆에 있는 그 잘생긴 분은요? 자기소개 하지 않으실래요?”도겸은 움직이지 않았고, 얼굴에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경혜는 웃으며 말을 이어받았다.“제가 대신할게요. 제 남자친구 강도겸이라고 하는데,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니에요. 오늘 특별히 저와 같이 온 거예요.”“어머!” 경혜가 말을 마친 순간, 현장의 사람들은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오늘 저녁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싱글이었고, 이 기회를 틈타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를 찾으려고 했다.그러니 즉석에서 애정을 과시하는 이런 행위에 그들은 저마다 한숨을 내쉬었다.질투가 나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저 남자는 너무 좋겠다!”“경혜는 우리 대학원의 여신이기도 하잖아. 우리는 아직 고백하지도 않았는데, 바로 저 사람에게 빼앗겼다니!”“그러게! 가뜩이나 여자 학생이 적은데, 교외의 사람이 덕을 봤다니, 쯧쯧...”경혜는 평소에 말수가 적은 데다가,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아 모두들 농담을 하며 자신의 부러움을 드러냈다.도겸은 표정이 담담했는데, 토론의 중심에 있어도 여전히 태연자약했다.그러나 경혜는 잘 알고 있었다. 도겸이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좋고 나쁨을 막론하고, 그는 이런 일들을 안중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다고 느낀 것이었다.도겸의 마음은 확실히 여기에 있지 않았다. 그는 진작에 정은이 있는 그 구석을 훑어보고 있었다.정은이 민지와 함께 들어왔을 때, 남학생이 그녀에게 거절당했을 때, 재석과 현빈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정은을 찾아갔을 때...도겸은 정은의 모든 동작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다.이 순간 역시 그랬다.정은은 민지와 과자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고, 현장의 소란과 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