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두 사람은 차가 골목 어귀에 세워질 때까지 침묵했다.“다왔어.”“심 대표님, 공사팀을 빌려줘서 고마워요. 비용을 어떻게 결제하는지에 대해서는 우리 오빠가 설명할 거예요.”“좋아.”현빈이 돈을 받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기에, 이런 분명한 태도에 정은은 저도 모르게 한숨 돌렸다.“그럼 잘가요.”“그래, 정은아.”...인훈은 아주 빠르게 움직였는데, 이튿날에 바로 현빈이 보낸 이 두 공사팀을 만나 가격을 협상한 다음 계약을 마쳤다.그리고 3일째 되는 날에 정식으로 일을 시작했다.“그래서 현재 상의한 결과가 바로 나, 너, 심 대표가 매주 하루의 시간을 내여 공사 진도를 맞추는 거야.”정은은 눈살을 찌푸렸다.“나와 오빠가 오면 되잖아. 굳이 그 사람을 부를 필요가 있을까?”그렇다고 정말 현빈을 ‘청부업자'로 대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현빈은 엄청 바빴으니, 이런 사소한 일을 신경 쓸 시간이 없을 것이다.인훈이 말했다.“나도 그렇게 말했는데, 심 대표는 꼭 일주일에 한 번 만나겠다고 고집을 부렸어.”그 이유 역시 무척 충분했다.“내 공사팀이니 나도 당연히 책임을 져야죠. 모두 날 위해 일하는 사람이에요. 공사장의 사람들이든, 사무실의 직원이든 나에게 있어 모두 똑같고, 귀천이 없어요.”...“참, 너에게 말 한마디 전해 달라고 부탁했어.”“뭔데요?”“네가 이런 사소한 일로 자신을 찾아와서 너무 기쁘다고.”정은은 말을 하지 않았다.인훈은 코웃음을 쳤다.“이 자식 지금 너 좋아하는 거 맞지? 아주 티를 내던데. 하지만 이렇게 솔직하게 나와서 오히려 마음에 들어. 안목도 있고 담력도 있으니까. 그러나 정은아...”그는 말머리를 돌리더니 갑자기 정중하게 말했다.“남자들은 다 믿을 수 없으니까, 넌 쉽게 그 사람에게 속으면 안 돼.”정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오빠, 안심해. 그럴 리 없어.”도겸과 사귄 그 6년, 정은은 이제야 가까스로 질곡에서 벗어났으니 또 어떻게 쉽게 다시 사
음식은 금방 올라온 것 같았는데, 아직도 모락모락 김이 나고 있었다.게다가 모두 정은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그녀는 의자를 당기며 자리에 앉았다.“오래 기다렸어?”인훈이 대답했다.“나도 방금 도착했어. 심 대표님이 가장 먼저 왔고.”음식도 현빈이 먼저 주문한 것이었다.그렇다, 오늘이 바로 세 사람의 첫 ‘회의’였다.현빈은 정은의 가방을 옷걸이에 건 다음 다시 자리에 앉았다.“그럼 우리 먹으면서 얘기할까? 음식 다 식겠다.”“좋아요.”세 사람은 젓가락을 움직였다.정은과 인훈은 전에 먹은 적이 있기 때문에 아주 편하게 먹었고, 현빈도 이 집 요리에 아주 잘 적응했다.‘하긴, 공사장 근처의 음식점에서 덮밥을 먹을 수 있었으니 이런 환경에 적응되지 못할 리가 없겠지?’인훈은 속으로 현빈을 칭찬했다.“에헴.”그는 신속하게 갈비 두 조각을 먹은 후, 젓가락을 내려놓고 목을 가다듬었다.“난 먼저 이번 주의 진도를 말할게... 지반은 이미 다 닦았고, 이제 건물을 짓기 시작했어. 다음 주에 기초를 완성할 것으로 예상돼.”“이렇게 빨리요?” 예상을 했었어도 정은은 이 말에 깜짝 놀랐다.인훈은 현빈을 바라보았다.“심 대표님의 두 공사팀 덕분이지.”일을 하기 시작해서야 인훈은 공사팀의 차이를 크게 깨달았다.솔직히 말해서, 인훈 자신이 데리고 있는 그 사람들보다, 현빈의 공사팀이 더욱 훌륭했다.그러니 공사 진도도 아주 빨리 따라잡았다.현빈은 고기를 집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천만에요.”“비용 결제는...”현빈이 말했다.“참, 마침 나도 이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한달에 한 번씩 계산하는 건 너무 번거로우니, 내가 먼저 공사팀의 월급을 지불할게요.”“소 사장님은 공사가 끝난 흐로 한꺼번에 나에게 결산해 주면 돼요. 안심해요, 장부는 우리 회사 재무팀이 알아서 할 거예요. 절대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예요.”인훈은 손을 흔들었다.“이렇게 말하면 섭섭하죠. 심 대표님은 큰 회사의 대표이니 우리의 푼돈을 탐낼 리가 있겠어요?”현빈은
도겸을 본 순간, 정은은 은근히 놀랐다.도겸은 사실 학교 근처에 있는 이런 작은 식당에 오길 좋아하지 않았다. 정은을 쫓아다닐 때, 두 사람 함께 와서 먹은 적이 있는 것 외에, 정식으로 사귄 다음, 도겸은 더 이상 이런 곳에 오지 않았다.그러나 이건 상관이 없었지만, 진정으로 정은을 놀라게 만든 것은 도겸이 지금 안고 있는 여자가 바로 심경혜였던 것이다.이 다정한 행동을 보니, 아마도 연인인 것 같다.‘두 사람은 언제 사귄 거지?’정은이 전 남자친구의 감정에 궁금한 게 아니라, 정상인으로서 이런 일을 마주칠 때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이런 상황이라면, 도겸이 아닌 다른 아는 사람이었어도 정은은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결국 구경거리가 눈 앞에 있었으니, 호기심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경혜는 도겸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았다. 정은을 본 순간, 그녀는 즉시 미소를 지으며 남자를 데리고 걸어왔다.“어머, 정은아. 여기서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뭐야? 나랑 친한 사이도 아닌데. 그것도 내 이름을 부르다니?’그러나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않는다고, 정은 역시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음.”그리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경혜는 미소가 약간 굳어졌다.“소개할게. 내 남자친구 강도겸이야.”말하면서 그녀는 애교를 부리듯 남자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이 사람은 내 동창인데, 소정은이라고 해요.”‘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내가 언제 누구냐고 물었어? 왜 갑자기 소개를 하는 거야? 어이가 없네.’“저기, 안에 빈 자리가 많은데.”그 뜻은 즉 저쪽에 가서 앉아도 되니 자신의 앞에서 알짱거리지 말라는 것이었다.“풉.”현빈은 참지 못하고 웃었다.도겸이 여자를 껴안고 들어오는 것을 본 순간부터, 현빈의 눈빛은 의미심장해졌다.이 생쇼를 묵묵히 지켜보려고 꾹 참았지만, 정은의 솔직한 발언에 현빈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에헴! 정은아, 그래도 강 대표님의 새 여자친구를 난처하게 하면 안 되지. 같이 먹어도 되잖아.”
정은은 잠시 멈칫하다 그제야 도겸이 자신과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서비대 근처에 맛이 좋은 한식당이 꽤 많으니, 이렇게 만나는 것도 정상이야. 생각지도 못했다고? 그건 말이 안 되지”경혜가 계속 ‘우연’이라고 말했을 때부터 정은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우연이라고? 학교 근처의 음식점에서 동창을 만나는 게 무슨 어려운 일이야? 왜 다들 이런 말로 인사를 하려는 건데? 정말 가식적이고 징그러워.’도겸이 물었다.“화났어?”정은은 영문을 몰랐다.도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날, 네가 말한 거 말이야, 나 정말 진지하게 고려해 봤어. 우리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 네가 이미 그때의 추억 속에서 벗어난 이상, 나도 계속 제자리에 머물고 싶지 않아.”정은은 고개를 들었다.두 사람이 헤어진 후, 그녀는 처음으로 이렇게 진지하게 도겸을 훑어보았다.도겸은 웃으며 말했다.“의외라고 생각해? 1년이 넘었으니 나도 이제 납득을 해야겠지. 전에는 내가 환상을 품고 네 감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폐를 끼쳤잖아, 정말 미안해.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거야.”정은은 더욱 자세히 도겸을 관찰했다.그러나 도겸은 알아차리지 못한 듯 솔직하고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시간은 모든 것을 치유할 거야. 전에는 이 말을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해가 되네. 네 말이 맞아. 사람은 항상 앞을 보면서 나아가야 하지.”“너...”정은은 눈살을 찌푸렸는데, 자꾸만 이런 도겸이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듣기엔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 같지만...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자꾸만 이상한 느낌이 들어... 마치 일부러 나에게 들려준 것처럼.’그러나 도겸의 목적이 뭔지, 어떤 속셈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정은과는 상관이 없으니까.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니, 정말 잘됐어. 그럼 네 미래가 더욱 순조롭길 바랄게.”도겸은 미소를 지었다.“고마워. 정은아.”“다시 시작하기로 했으니 앞으로 호칭을 바꾸는 게 좋을 거야.
도겸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그게 너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현빈은 어깨를 으쓱거렸다.“나랑은 상관없지만 그냥 좀 궁금해서 그래. 네 새 여자친구 말이야... 참 신기해. 마침 서비대학교 학생이고, 또 마침 정은이와 같은 전공이라니. 여자 보는 안목이 참 기가 막히네.”도겸은 냉소를 지었다.“넌 왜 남의 여자 친구에게 이렇게 관심을 갖는 거지? 남의 여자 좋아하는 버릇 아직도 못 고쳤어?”“하하...” 현빈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왜 화를 내고 그래. 그래도 친구 사이였으니 너한테 관심 좀 가지면 안 되는 거야?”도겸은 가볍게 웃으며 차갑게 말했다.“관심? 날 떠보는 건 아니고? 이건 너 자신이 더 잘 알겠지.”“아, 이미 알아차렸어?”현빈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도겸을 한 번 훑어보았다.“네 새 여자친구 말이야, 너무 빨리 찾은 것 같아. 마치 고의로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것처럼!”“허, 연기든 뭐든, 네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해. 비켜.”현빈은 눈썹을 치켜세웠고, 한동안 도겸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가 없었다.“너 지금 일부러 정은이에게 보여 주려고 그 여자 찾은 거지?”도겸은 냉소를 지으며 변명하지 않았다.“내가 말했지, 네 마음대로 생각하라고.”현빈은 눈빛이 어두워졌다.“전에 정은이를 만회하겠다고 맹세하지 않았어? 왜 갑자기 다른 여자가 생긴 건데?”“지금 날 심문하는 거야?”“궁금해서 그래.”“난 네 호기심을 만족시킬 의무가 없어.”“넌 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허... 당황한 거야? 심현빈, 너도 이런 날이 있구나! 내가 정은이를 포기하면 너에게 기회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니? 천만에! 난 단지 너보다 일찍 깨달았을 뿐이고, 또 마침 적합한 사람을 만났을 뿐이라고. 너의 그런 무의미한 질문, 이제 그만 집어치워.”“정말 포기한 거야? 그 심... 뭐였더라, 그 여자를 위해서?”도겸의 안색이 갑자기 차가워졌다.“너도 전과가 있는 사람이니, 난 너의 입에서 내 여자친구의 이름을 듣
매년 크리스마스 전야에 생물정보대학은 신입생 소개팅을 조직했다.대상은 새로 입학한 모든 미혼 대학원생이었다.처음에는 학생들이 사이좋게 지내며 학교 생활에 더욱 잘 융합되기 위한 것이었지만,매년 개최하면서 점차 공식적인 ‘소개팅’으로 변했다.솔직히 말하면,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찾기 위한 모임이었다.물론 이미 남자친구나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도 상대방을 데리고 참가할 수 있었다.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정은과 무관했다.그녀는 매일 수업을 마친 다음, 이웃 학교의 실험실에 달려가야 했기에, 밥을 먹을 때조차 실험 절차, 데이터 수집에 대해 생각했다.그러니 또 어떻게 시간을 이런 ‘소개팅'에 낭비할 수 있겠는가?그래서 초청장을 받았을 때, 정은은 영문을 몰랐다.특히 초청장에는 ‘소정은'이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이건 더욱 이상했다.이번 MT는 신청해야 참가할 수 있었는데, 정은은 신청하지 않았다. 그럼 왜 정식 초청장을 받은 것일까?정은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눈을 가늘게 떴다.고개를 돌리자, 민지가 까치발을 하고 소리 없이 실험대에서 내려와 살금살금 도망가려는 모습이 보였다.“민지야!”민지는 멈칫하더니 잠시 후 웃으며 몸을 돌렸다.“헤헤, 정은 언니, 무슨 일이세요?”“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식당이요.”“너 방금 밥 먹었잖아?”민지는 침을 삼켰다.“그 뭐지, 지금 또 배가 고파서 뭘 좀 더 먹어야겠어요.”‘그래, 간식 타임! 절대로 몰래 도망가는 게 아니야!’정은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하지만 떠나기 전에 먼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부터 설명해줄래?”그녀는 손에 든 초청장을 흔들었다.민지는 분명히 당황해지더니 눈알을 마구 굴렸다.‘정은 언니.”정은은 팔짱을 끼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애교 부리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에헴! 정은 언니, 사실 저도 진작에 언니에게 이 좋은 소식을 알려주고 싶었어요...”“그래서?”“그래서...”민지는 이를 악물고 결심을 내린
“미안, 난 춤을 출 줄 몰라서.” 정은은 완곡하게 거절했다.남자는 실망을 안고 떠났다.이게 끝인 줄 알았는데, 한 명이 가자, 다른 사람이 계속 찾아올 줄이야.연이어 다섯 명의 남자를 거절한 후, 정은은 재빨리 민지를 끌고 구석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구석인 데다가 불빛이 어두워 사람들의 주목을 그리 받지 않았다.정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드디어 조용해졌네.’“정은 언니, 어쩜 인기가 이렇게 많은 거예요? 저도 언니랑 같이 춤을 추고 싶어졌네요. 헤헤.”“그럼 한 번 고려해보지.” 정은도 미소를 지었다.민지는 갑자기 턱을 들더니 가슴을 쳤다.“그 남자들 아마도 제가 부러워 죽을 거예요!”“그게 안 좋은 일이야?”“너무 좋죠.”말을 마치자, 두 사람은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민지가 말했다.“저 먹을 거 좀 가지러 갈게요!”“그래.”정은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생수를 마셨는데, 정말 다른 사람과 소통할 마음이 없었고, 디저트와 음료에도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예 태블릿을 꺼내 논문을 보기 시작했다.이때 민지는 먹을 것 가득 들고 돌아왔다.‘어? 언니도 참. 이런 나 자신이 좀 민망한데.’위치가 너무 구석에 있어서인지, 아무도 정은 그들의 테이블에 와서 앉지 않았다.정말 나쁘지 않았다.그러나 이렇게 생각할수록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여기 사람 있어? 내가 앉아도 될까?“미안하지만, 우리...”민지는 원래 거절하려고 했다.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정은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선배님?! 선배님이 여긴 무슨 일로?”재석은 회색 양복을 입었는데, 검은색 외투를 벗은 다음 손에 들고 있었다.“내가 앉을 수 있다는 뜻이야?”정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민지는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반응했다.“교수님 안녕하세요! 교수님도 MT에 참가하러 오신 거예요?”“음.” 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니... 오늘 신입생만 초대한 거 아닌가?’얼마 지나지 않아 MT가 시작되었고, 사
재석은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진욱이 말했다.“잘 좀 봐. 초청장에 생명과학대학 신입생 MT라는 글이 적혀 있단 말이야! 학술 보고회가 아니라고!”“알아.”“알면서도 간다는 거야?”“가면 안 돼?”“헐! 너 정말 귀신에 홀렸구나... 잠깐만!”진욱은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한 듯 다시 그 초청장을 바라보았다.“생명과학대학? 정은이가 있는 곳 아니야?”기기를 조절하던 재석은 잠시 멈칫했다.진욱은 갑자기 앞으로 다가오더니 두 눈을 가늘게 떴다.“조 교수, 지금 너무 수상한데! 귀신에 홀린 것보다 더 무섭다고! 정은이한테 반한 거야? 본인은 이 사실을 알고 있어? 넌 정은이보다 나이가 더 많은데, 정은이는 그런 널 받아들일 수 있긴 한 거야?”연이은 질문에 재석은 말문이 막혔다....“교수님? 선배님!” 정은은 몇 번 소리쳤다.재석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뭐라고?”“이따 끝나고 집에 갈 거예요 아니면 실험실에 갈 거예요?”“집에.”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우리...”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커다란 그림자가 그녀의 옆에 멈춰 섰다.정은이 문득 고개를 들자, 마침 그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현빈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너도 여기에 있었어? 내가 앉아도 되지?” 말을 마치자, 현빈은 또 민지를 바라보았다.“자리 좀 옮겨줄래?”민지는 어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네.”말을 마치자, 주동적으로 옆으로 움직였다.현빈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그리고 정은의 옆에 앉았다.정은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여긴 어쩐 일로 온 거죠?”현빈은 재석을 힐끗 보더니 가볍게 웃었다.“이상해? 조 교수님도 여기에 계시잖아?”“교수님은 오프닝 하러 오셨는데, 당신은요?”현빈은 어깨를 으쓱거렸다.“난 스폰서.”학교의 많은 활동은 교외에 가서 투자를 끌어들였는데, 마침 MBA 재학 중인 재벌 2세 현빈이 학교의 돈줄이 되었다.그래서 초청장을 받았던 것이다.정은이 물었다.“심 대표님은 자신이 후원한 모든 행사에 직접
하정남은 제자리를 맴돌며 중얼거렸다.“예전에는 남이 어떻게 말하든 넌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왜 갑자기 살을 빼겠다는 거야? 누가 널 괴롭힌 거 아니야?”민지는 사랑으로 가득 찬 가정에서 자랐기에 자신감이 넘쳤고 난관적이어서 종래로 몸매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초등학교 때 뚱뚱해서 친구들한테 왕따를 당해도 하루 종일 웃으며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지금 다이어트를 하겠다니?[민지는 착하고 마음이 넓어서 이런 일을 신경 쓰지 않았어. 그러나 이제 마음을 모질게 먹고 살을 빼다니... 대체 얼마나 큰 일에 부딪힌 거야?’하정남은 가슴이 떨렸다.민지는 하정남이 이상한 생각이라도 할까 봐 서둘러 설명했다.[뉴스에서 그러던데, 적당한 다이어트는 몸에 좋다고 했어요. 나도 이렇게 계속 뚱뚱하게 지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해보고 싶었던 거예요...]하정남은 눈살을 세게 찌푸렸다.‘뉴스에서 들었다고? 이상해! 분명히 이상해!’그는 자신의 딸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가장 큰 취미는 먹는 것이고, 그 다음은 실험실에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하는 것이었다.틱톡이 유행하는 요 몇 년 동안 민지는 영상 같은 것을 잘 보지 않았다.그런데 뉴스 하나 때문에 다이어트를 결심하다니.이때 하정남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너 연애라도 한 거냐?”민지는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다. 다행히 전화를 사이에 두고 있어 하정남은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아니에요, 그런 거 없어요! 난 공부를 하러 온 것이지, 사랑을 하러 온 게 아니잖아요! 아이고, 아빠, 나 아직 수업이 있는데, 곧 늦을 것 같아요. 먼저 끊을게요, 다음에 다시 연락해요.]말을 마치자 바로 전화를 끊었다.“반응이 이렇게 큰데 아직도 발뺌을 하는 거야?! 흥! 우리 딸 아직 어리니, 어느 남자가 감히 지금 내 딸을 빼앗아간다면, 난 그 자식의 다리를 부러뜨릴 거야!”민지는 아침을 사서 곧장 교실로 갔다.오늘은 재석의 수업이었다.그녀가 도착했을 때, 정은과 서준은 이
정은은 민지의 식사량을 떠올리며 또 그녀 앞에 놓인 몇 가지 음식을 훑어보았다.‘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지. 간식에 불과해. 두 시간 뒤면 배고프다고 야단을 칠 텐데.’그러나 뜻밖에도 두 시간의 수업이 끝나자, 민지는 여전히 자리에 가만히 앉아 배고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어머...’정은은 깜짝 놀랐다.‘진짜 배가 안 고픈 거야?’만약 민지가 이 말을 들었다면 틀림없이 울면서 반박했을 것이다. ‘배고파요, 곧 굶어 죽을 것 같아요. 어떻게 배가 고프지 않을 수 있겠어요?’그렇다, 지금 민지는 벌써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했고, 눈앞이 침침하며, 배에서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그리고 감자칩, 과자, 케이크, 닭발, 호떡 등 음식을 생각하고 있었다.‘아아악! 먹고 싶어 죽겠어! 참아야 돼!’정은은 그런 괴로운 민지의 마음도 모른 채, 그저 그녀가 정말 배가 고프지 않은 줄 알았다.그러나 다음날 아침, 민지가 여전히 이렇게 조금밖에 먹지 않자, 정은은 그제야 깨달았다.“민지야, 너 지금 다이어트 하는 거니?”“네! 정은 언니, 이게 왜 이렇게 힘들까요? 분명히 언니랑 저랑 똑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언니는 점심이 되어도 배가 고프지 않잖아요. 저는 30분도 버티지 못하고 배가 고픈 거 있죠. 힝, 너무 불공평해요...”“왜 갑자기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건데?”이것은 정은이 알던 민지가 아니었다.그녀가 아는 민지는 자신의 몸매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았고,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았다. 먹고 싶으면 먹고,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항상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냈다.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정은은 눈빛이 깊어졌다.“너, 지금 연애하는 거 아니야?”이 말에 앞에 앉아 있던 서준이 고개를 홱 돌렸고, 검은 눈동자는 횃불처럼 빛났다.“누구랑?”민지는 재빨리 손을 흔들었다.“그런 거 아니야! 절대로!”정은이 물었다. “그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거야?”한 여자가 갑자기 외모에 신경을 쓰지 시작했다면, 그것은 아마도 좋아하는 사람이
현빈이 대답했다.“넌 네 여자친구랑 춤추고 있었잖아? 그런데도 우리한테 신경 쓸 여력이 있는 거야?”그는 팔짱을 끼며 웃는 듯 마는 듯했다.도겸이 말했다.“그렇게 떠들썩하니 못 본 척하기가 더 어려워.”현빈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다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야. 거절당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정은이의 성격은 네가 나보다 더 잘 알 거 아니야.”도겸은 무표정하게 어두컴컴한 가로등 아래 서 있었고, 반쪽 얼굴은 그늘에 잠겼다.“내가 말했지, 너한테 기회가 없을 거라고.”현빈은 웃음을 지었다.“난 오히려 매우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너도 알잖아, 넘기 어려운 은 산일수록 나한테 승부욕이 더 생긴다는 거. 한 번 실패했다고 매번 지는 것은 아니잖아. 언젠가 난 산꼭대기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볼 거야.”도겸은 피식 웃었다.“산꼭대기에 오르기 전에 넌 이미 산 중턱에서 떨어져 죽었을 거야.”“그래도 괜찮아. 노력을 할 때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건 우습지도, 슬프지도 않아. 하지만 가장 슬픈 게 뭔지 알아?”도겸은 현빈이 무슨 듣기 좋은 말을 할 리가 없다고 직감했다.“가장 슬픈 것은 거절당할 기회도 없이 소탈한 척 연기를 해야 한다는 거야. 아쉽게도 아무리 몰입해서 연기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거든.”말을 마치고 현빈은 차 키를 꺼내 운전석에 앉았다.떠나기 전에 그는 특별히 차창을 내려 웃으며 말했다.“여자친구를 기숙사로 데려다주는 거 잊지 마. 그리고 아쉬운 척 뽀뽀도 해주고 그래. 이렇게 연기를 하기 시작한 이상,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어?”도겸은 멀어진 차가 점차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주먹을 움켜쥐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경혜가 찾아왔다.“왜 나왔어요? 안 추워요?”“맑은 공기 좀 마시고 싶어서.”“오늘 활동 이미 끝났어요. 오늘 밤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요...”“응, 가자.”경혜는 멈칫했다.“가요, 어디로요?”“기숙사로 데려다줄게.”도겸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앞장섰다.경혜는 반응하더니 입가
태민은 은근히 놀랐다.“너도 그 가게의 단골이야?”“네! 거기 케이크가 꽤 괜찮거든요.”태민은 평소에 이런 키체인을 거의 달고 다니지 않았다.한편으로는 수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서른이 넘은 자신이 이런 키체인을 하고 있다면 너무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키체인은 태민이 새 핸드폰을 살 때부터 줄곧 걸려 있었고, 눈에 띄지도 않았기에 이렇게 놔둔 것이었다. 그러나 눈 앞의 이 아가씨가 이것을 알아볼 줄이야.“몇 번 뽑았어요?”민지가 물었다.“앞뒤 합치면 아마... 세 번 정도?”민지는 이 말을 듣고 이가 깨질 뻔했다.‘왜 남들은 운이 이렇게 좋은데, 나만 재수가 없는 거지?’태민은 민지가 이를 가는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하고 웃었다.“괜찮다면 주소 하나 남겨줘. 집에 다른 하나 히든 키체인이 있거든. 너한테 줄게.”민지는 갑자기 고개를 들었고, 부드럽게 웃음을 머금은 태민의 눈빛을 마주했다. 태민의 모습은 마치 어렸을 때 그녀와 함께 놀아줬던 이웃집 오빠와 흡사했다.태민은 키가 1미터 78센티미터였고, 이목구비가 단정하며 온화하고 우아한 기질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웃을 때 눈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부드럽고 조금도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물처럼 세상 만물을 감쌀 수 있었다.민지는 멍하니 태민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열기가 솟구쳐 볼과 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심지어 말까지 더듬기 시작했다.“정, 정말... 정말 저한테 주는 거예요?”태민은 영문을 몰랐다.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왜 갑자기 말을 더듬기 시작한 거지?’태민은 이 아가씨가 아주 귀엽다고 생각하고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때, 누군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교수님, 행사가 곧 끝날 거예요. 현장에서 회수한 재료를 체크하신 다음 사인해 주세요!”“알았어, 바로 갈게.”이때 태민은 또 무언가를 떠올린 듯, 다시 돌아오더니 민지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넸다.“위에 내 번호 있으니까 나한테 주소 보내
재석은 떠나자, 수아도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저 집에 갈게요.”말을 마치자 태민을 버리고 혼자 떠났다.태민은 영문을 몰랐는데, 입을 벌리고 쫓아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싶었다. 그리고 내친 김에 수아를 집에 데려다주고 싶었다.그러나 교수님 대표로서 오늘 밤 태민에게 다른 임무가 있었으니 그는 몸을 뺄 수가 없었다.수아는 가고 싶으면 갈 수 있었고,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태민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태민은 한숨을 참지 못했다.분명히 두 사람은 이미 사귀는 사이였지만, 태민은 항상 수아가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수아의 마음을 알아본 적이 없는 것처럼.두 사람은 여태껏 사귀면서 손을 잡는 것 외에 키스조차 한 적이 없었다.그는 실의에 빠져 고개를 떨구었다.이때 누군가 갑자기 태민과 부딪쳤다.“죄송합니다! 어디 다친 데 없어요?” 민지는 한 손에 접시를 들고 있었고, 안에 과자 5개 정도 들어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에 음료수를 들고 있었는데, 방금 태민과 부딪쳤기 때문에 좀 쏟아졌다.그녀는 빨리 사과했다.태민은 얼른 손을 흔들었다.“괜찮아.”말하면서 휴지를 꺼내 건네주었다.“좀 닦아, 음료수가 다 쏟아졌네.”“앗! 감사합니다!” 민지는 얼른 받으려 했지만, 자신의 두 손에 모두 물건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갑자기 난감해했다.태민은 민지의 궁핍함을 알아차렸다.“아니면 내가 접시 들어줄까?”“어? 괜찮으세요?”“그럼.” 태민이 접시를 받았다.민지는 손을 닦았다.“방금 정말 죄송해요. 전 성격이 너무 털털해서...”“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방금 딴 생각을 한 데다가 또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니 길을 주의하지 않았어.”“제가 사과로 간식 하나 드릴게요.”태민은 그제야 접시에 망고 무스, 두리안 케이크, 나폴레옹 케이크 등 여러 가지 디저트가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좋아.” 그도 사양하지 않고 웃으며 그 두리안 케이크를 골랐다.민지는 아쉬움을 드러냈다.“왜 그
“수아야?”태민이 몇 번이나 불렀지만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여자의 어깨에 손을 얹자, 수아는 그제야 반응했다.“방금 뭐라고 했어요?”“뭘 보고 있냐고 물었는데.”“아무것도 아니에요.”수아는 자신의 어깨에 걸쳐진 태민의 손을 뿌리쳤다.“조 교수님에게 볼 일이 좀 있어서요.”말을 마치자 수아는 재석을 향해 달려갔다.태민은 자신의 손, 그리고 수아의 다급한 뒷모습을 보며 의혹의 눈살을 찌푸렸다.그는 수아가 이런 활동에 흥미를 가질 줄은 몰랐다.그러나 그녀가 오고 싶은 이상, 태민도 같이 와준 것이다.그렇다, 태민은 재석의 실험실에 가입했을 뿐만 아니라 교내에서도 교수님으로 일하고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초청장을 보았을 때, 수아는 햇빛보다 더 찬란한 미소를 지었다.태민은 수아가 이렇게 웃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어, 바로 따라서 웃기 시작했다.‘손태민, 너 이번에 정말 잘했어!’“교수님, 잠깐만요!”재석은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렸고, 수아가 웃으며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무슨 일 있어?”“교수님.” 수아는 일부러 농담을 했다.“정은은 일 때문에 바쁘다고 떠났잖아요. 그럼 제가 교수님과 함께 춤을 추는 건 어때요?”재석은 눈빛이 어두워졌다.“아니야.”수아는 웃음이 굳어졌고, 곧 일부러 밝게 웃었다.“교수님도 참, 농담일 뿐이니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하지 마세요. 실험실의 그 노화 설비는 언제 교체할 수 있는지 묻고 싶어서 왔어요. 전 교수님은 여러 번 불평하셨잖아요.”재석은 눈살을 찌푸렸다.“이틀 전에 난 이미 단체 메일을 보냈는데, 그 안에는 노화 설비의 처리와 새로운 설비의 가격, 설치 시간 등에 대해 모두 설명을 했어.”수아는 표정이 굳어졌다.“그, 그래요? 제가 주의를 하지 않은 것 같아요... 죄송해요.”“실험실 규정 제2조, 업무와 관련된 메일을 하루에 한 번씩 체크하기.”“아, 교수님, 저는...”“연구원으로서 네가 연구에 더 많은 마음을 기울였으면 좋겠어.”수아는 눈을 드리웠다.“알
도겸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잠시 후, 도겸은 경혜를 향해 손을 내밀더니 자신과 춤을 춰달라고 초청했다.경혜는 웃으며 자신의 손을 위에 놓았다.두 사람은 나란히 무도장으로 들어갔다.민지와 화장실에서 돌아온 정은은 마침 이 장면을 보았다.선남선녀가 아름답게 춤을 추고 있는 이 장면을.‘보기 좋네.’정은은 조용히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때, 그녀의 앞에 두 손이 나타났다.하나는 왼쪽, 하나는 오른쪽.현빈과 재석이 동시에 정은을 초청했던 것이다.민지는 놀라서 뒤로 물러나더니 이곳을 빠져나왔다.‘이게 뭐야... 남자들이 한 여자를 위해서 다투고 있잖아?’현빈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정은아, 나에게 이런 영광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와 함께 춤을 추지 않을래?”재석도 웃으며 말했다.“나도 심 대표님과 같은 생각을 했는데.”현빈이 고개를 돌리자, 재석은 직시하며 피하지 않았다.살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정은은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이게 무슨 일이야? 이 두 사람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 거야? 갑자기 왜 이래?’그녀는 고개를 돌려 민지를 찾으려 했다.뒤에 있던 민지는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정은 언니, 이번에는 정말 언니를 도울 수 없을 것 같아요. 죄송해요.’처음에 사람들은 이 빛이 어둡고 구석진 곳에 많은 관심을 돌리지 않았지만, 구경꾼들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아무리 깊이 숨어도 그들은 냄새를 맡으며 찾아올 수 있었다.더군다나 이것도 숨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헐, 이게 무슨 상황이야? 조 교수님과 심 대표님?!”“지금 누굴 초청하고 있는 거지? 어디 보자, 누가 이렇게 매력적인지... 아, 소정은이구나, 그럼 하나도 이상하지 않네.”예쁘게 생긴 데다가 1학년이지만 학술지 Science가 그녀의 논문을 올렸으니 인기가 없을 리가 없었다.게다가 정은은 학생들이 뽑은 ‘7대 퀸카'중 한 명이었다.“쯧쯧, 재밌네! 정말 재밌어!”“드라마도 이렇게 못 찍겠지?”“이야, 이게 연애소설보다 더 재밌네!”
사회자는 즉시 현빈에게 관심을 가졌다.“그럼 제가 현장의 모든 여자아이들, 그리고 저 자신을 포함하여 한가지 질문을 해도 될까요, 대표님?”현빈은 고개를 끄덕였다.“에헴! 실례지만 지금 여자친구 있으세요?”“아직은 없어요.”“그럼 저희에게 기회가 있을까요?” 사회자도 대담하게 질문했다.“아니요.”“왜요?”“좋아하는 사람 있거든요.”말하면서 현빈은 웃음을 머금은 눈빛을 정은에게 돌렸다.재석은 안색이 어두워졌고, 손에 든 생수병은 어느새 쭈글쭈글 해졌다.민지는 고백을 하고 있는 현빈을 보다가 또 아무런 반응이 없는 정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과자를 먹기 시작했다.‘응, 맛있네...’현빈은 실망한 사람들의 탄식을 무시하고 마이크를 돌려준 다음 다시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곁눈질로 정은을 주시했다. 그녀는 지금 케이크를 먹고 있었는데, 볼이 불룩불룩한 해서 마치 작은 다람쥐와 같았다.그 자신조차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난 왜 한 여자에게 이렇게 관심을 기울이는 거지? 여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나로 하여금 이렇게 신경 쓰이게 하고, 이렇게 반하게 하고 이렇게 깊이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여자는 정은이 처음이야.’봐도 봐도 계속 보고 싶고, 어느 순간부터 현빈은 평생 정은을 그렇게 바라만 봐도 행복하다고 느꼈다.재석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심 대표님 오늘 밤 정말 흥이 많네요.”“그래요, 조 교수님도 그럭저럭인 것 같은데.”눈이 마주치자, 두 사람의 눈빛에 살기가 넘쳤다.“에헴!” 민지는 정말 참을 수 없었다.“정은 언니, 저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같이 가줄래요?”“좋아.” 정은도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그 테이블과 멀리 떨어져서야 정은은 한숨을 돌렸다.민지는 헤헤 웃으며 말했다.“정은 언니, 지금 좀 홀가분해졌어요?”“민지야, 살려줘서 고마워.”“헤헤, 천만에요!”‘언니와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졌으니, 이제 두 사람더러 싸우라고 해.’...스포트라이트 코너가
박수와 환호 소리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는 한가운데 있는 탁자 위에 멈추었고, 이어서 옆에 앉아 있는 한 쌍의 남녀를 비추었다.사회자가 감탄을 했다.“어머, 커플인 것 같은데! 두 분 자기소개 좀 해주실래요?”경혜는 일어나서 건네준 마이크를 받았다.“안녕하세요, 생물대학원의 심경혜입니다.”“옆에 있는 그 잘생긴 분은요? 자기소개 하지 않으실래요?”도겸은 움직이지 않았고, 얼굴에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경혜는 웃으며 말을 이어받았다.“제가 대신할게요. 제 남자친구 강도겸이라고 하는데,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니에요. 오늘 특별히 저와 같이 온 거예요.”“어머!” 경혜가 말을 마친 순간, 현장의 사람들은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오늘 저녁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싱글이었고, 이 기회를 틈타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를 찾으려고 했다.그러니 즉석에서 애정을 과시하는 이런 행위에 그들은 저마다 한숨을 내쉬었다.질투가 나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저 남자는 너무 좋겠다!”“경혜는 우리 대학원의 여신이기도 하잖아. 우리는 아직 고백하지도 않았는데, 바로 저 사람에게 빼앗겼다니!”“그러게! 가뜩이나 여자 학생이 적은데, 교외의 사람이 덕을 봤다니, 쯧쯧...”경혜는 평소에 말수가 적은 데다가,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아 모두들 농담을 하며 자신의 부러움을 드러냈다.도겸은 표정이 담담했는데, 토론의 중심에 있어도 여전히 태연자약했다.그러나 경혜는 잘 알고 있었다. 도겸이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좋고 나쁨을 막론하고, 그는 이런 일들을 안중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다고 느낀 것이었다.도겸의 마음은 확실히 여기에 있지 않았다. 그는 진작에 정은이 있는 그 구석을 훑어보고 있었다.정은이 민지와 함께 들어왔을 때, 남학생이 그녀에게 거절당했을 때, 재석과 현빈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정은을 찾아갔을 때...도겸은 정은의 모든 동작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다.이 순간 역시 그랬다.정은은 민지와 과자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고, 현장의 소란과 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