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572화

Author: 십일
정은은 잠시 멈칫하다 그제야 도겸이 자신과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비대 근처에 맛이 좋은 한식당이 꽤 많으니, 이렇게 만나는 것도 정상이야. 생각지도 못했다고? 그건 말이 안 되지”

경혜가 계속 ‘우연’이라고 말했을 때부터 정은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우연이라고? 학교 근처의 음식점에서 동창을 만나는 게 무슨 어려운 일이야? 왜 다들 이런 말로 인사를 하려는 건데? 정말 가식적이고 징그러워.’

도겸이 물었다.

“화났어?”

정은은 영문을 몰랐다.

도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날, 네가 말한 거 말이야, 나 정말 진지하게 고려해 봤어. 우리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 네가 이미 그때의 추억 속에서 벗어난 이상, 나도 계속 제자리에 머물고 싶지 않아.”

정은은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이 헤어진 후, 그녀는 처음으로 이렇게 진지하게 도겸을 훑어보았다.

도겸은 웃으며 말했다.

“의외라고 생각해? 1년이 넘었으니 나도 이제 납득을 해야겠지. 전에는 내가 환상을 품고 네 감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폐를 끼쳤잖아, 정말 미안해.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거야.”

정은은 더욱 자세히 도겸을 관찰했다.

그러나 도겸은 알아차리지 못한 듯 솔직하고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시간은 모든 것을 치유할 거야. 전에는 이 말을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해가 되네. 네 말이 맞아. 사람은 항상 앞을 보면서 나아가야 하지.”

“너...”

정은은 눈살을 찌푸렸는데, 자꾸만 이런 도겸이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

‘듣기엔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 같지만...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자꾸만 이상한 느낌이 들어... 마치 일부러 나에게 들려준 것처럼.’

그러나 도겸의 목적이 뭔지, 어떤 속셈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정은과는 상관이 없으니까.

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니, 정말 잘됐어. 그럼 네 미래가 더욱 순조롭길 바랄게.”

도겸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정은아.”

“다시 시작하기로 했으니 앞으로 호칭을 바꾸는 게 좋을 거야.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73화

    도겸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그게 너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현빈은 어깨를 으쓱거렸다.“나랑은 상관없지만 그냥 좀 궁금해서 그래. 네 새 여자친구 말이야... 참 신기해. 마침 서비대학교 학생이고, 또 마침 정은이와 같은 전공이라니. 여자 보는 안목이 참 기가 막히네.”도겸은 냉소를 지었다.“넌 왜 남의 여자 친구에게 이렇게 관심을 갖는 거지? 남의 여자 좋아하는 버릇 아직도 못 고쳤어?”“하하...” 현빈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왜 화를 내고 그래. 그래도 친구 사이였으니 너한테 관심 좀 가지면 안 되는 거야?”도겸은 가볍게 웃으며 차갑게 말했다.“관심? 날 떠보는 건 아니고? 이건 너 자신이 더 잘 알겠지.”“아, 이미 알아차렸어?”현빈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도겸을 한 번 훑어보았다.“네 새 여자친구 말이야, 너무 빨리 찾은 것 같아. 마치 고의로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것처럼!”“허, 연기든 뭐든, 네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해. 비켜.”현빈은 눈썹을 치켜세웠고, 한동안 도겸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가 없었다.“너 지금 일부러 정은이에게 보여 주려고 그 여자 찾은 거지?”도겸은 냉소를 지으며 변명하지 않았다.“내가 말했지, 네 마음대로 생각하라고.”현빈은 눈빛이 어두워졌다.“전에 정은이를 만회하겠다고 맹세하지 않았어? 왜 갑자기 다른 여자가 생긴 건데?”“지금 날 심문하는 거야?”“궁금해서 그래.”“난 네 호기심을 만족시킬 의무가 없어.”“넌 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허... 당황한 거야? 심현빈, 너도 이런 날이 있구나! 내가 정은이를 포기하면 너에게 기회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니? 천만에! 난 단지 너보다 일찍 깨달았을 뿐이고, 또 마침 적합한 사람을 만났을 뿐이라고. 너의 그런 무의미한 질문, 이제 그만 집어치워.”“정말 포기한 거야? 그 심... 뭐였더라, 그 여자를 위해서?”도겸의 안색이 갑자기 차가워졌다.“너도 전과가 있는 사람이니, 난 너의 입에서 내 여자친구의 이름을 듣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74화

    매년 크리스마스 전야에 생물정보대학은 신입생 소개팅을 조직했다.대상은 새로 입학한 모든 미혼 대학원생이었다.처음에는 학생들이 사이좋게 지내며 학교 생활에 더욱 잘 융합되기 위한 것이었지만,매년 개최하면서 점차 공식적인 ‘소개팅’으로 변했다.솔직히 말하면,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찾기 위한 모임이었다.물론 이미 남자친구나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도 상대방을 데리고 참가할 수 있었다.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정은과 무관했다.그녀는 매일 수업을 마친 다음, 이웃 학교의 실험실에 달려가야 했기에, 밥을 먹을 때조차 실험 절차, 데이터 수집에 대해 생각했다.그러니 또 어떻게 시간을 이런 ‘소개팅'에 낭비할 수 있겠는가?그래서 초청장을 받았을 때, 정은은 영문을 몰랐다.특히 초청장에는 ‘소정은'이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이건 더욱 이상했다.이번 MT는 신청해야 참가할 수 있었는데, 정은은 신청하지 않았다. 그럼 왜 정식 초청장을 받은 것일까?정은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눈을 가늘게 떴다.고개를 돌리자, 민지가 까치발을 하고 소리 없이 실험대에서 내려와 살금살금 도망가려는 모습이 보였다.“민지야!”민지는 멈칫하더니 잠시 후 웃으며 몸을 돌렸다.“헤헤, 정은 언니, 무슨 일이세요?”“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식당이요.”“너 방금 밥 먹었잖아?”민지는 침을 삼켰다.“그 뭐지, 지금 또 배가 고파서 뭘 좀 더 먹어야겠어요.”‘그래, 간식 타임! 절대로 몰래 도망가는 게 아니야!’정은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하지만 떠나기 전에 먼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부터 설명해줄래?”그녀는 손에 든 초청장을 흔들었다.민지는 분명히 당황해지더니 눈알을 마구 굴렸다.‘정은 언니.”정은은 팔짱을 끼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애교 부리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에헴! 정은 언니, 사실 저도 진작에 언니에게 이 좋은 소식을 알려주고 싶었어요...”“그래서?”“그래서...”민지는 이를 악물고 결심을 내린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75화

    “미안, 난 춤을 출 줄 몰라서.” 정은은 완곡하게 거절했다.남자는 실망을 안고 떠났다.이게 끝인 줄 알았는데, 한 명이 가자, 다른 사람이 계속 찾아올 줄이야.연이어 다섯 명의 남자를 거절한 후, 정은은 재빨리 민지를 끌고 구석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구석인 데다가 불빛이 어두워 사람들의 주목을 그리 받지 않았다.정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드디어 조용해졌네.’“정은 언니, 어쩜 인기가 이렇게 많은 거예요? 저도 언니랑 같이 춤을 추고 싶어졌네요. 헤헤.”“그럼 한 번 고려해보지.” 정은도 미소를 지었다.민지는 갑자기 턱을 들더니 가슴을 쳤다.“그 남자들 아마도 제가 부러워 죽을 거예요!”“그게 안 좋은 일이야?”“너무 좋죠.”말을 마치자, 두 사람은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민지가 말했다.“저 먹을 거 좀 가지러 갈게요!”“그래.”정은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생수를 마셨는데, 정말 다른 사람과 소통할 마음이 없었고, 디저트와 음료에도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예 태블릿을 꺼내 논문을 보기 시작했다.이때 민지는 먹을 것 가득 들고 돌아왔다.‘어? 언니도 참. 이런 나 자신이 좀 민망한데.’위치가 너무 구석에 있어서인지, 아무도 정은 그들의 테이블에 와서 앉지 않았다.정말 나쁘지 않았다.그러나 이렇게 생각할수록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여기 사람 있어? 내가 앉아도 될까?“미안하지만, 우리...”민지는 원래 거절하려고 했다.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정은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선배님?! 선배님이 여긴 무슨 일로?”재석은 회색 양복을 입었는데, 검은색 외투를 벗은 다음 손에 들고 있었다.“내가 앉을 수 있다는 뜻이야?”정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민지는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반응했다.“교수님 안녕하세요! 교수님도 MT에 참가하러 오신 거예요?”“음.” 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니... 오늘 신입생만 초대한 거 아닌가?’얼마 지나지 않아 MT가 시작되었고, 사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76화

    재석은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진욱이 말했다.“잘 좀 봐. 초청장에 생명과학대학 신입생 MT라는 글이 적혀 있단 말이야! 학술 보고회가 아니라고!”“알아.”“알면서도 간다는 거야?”“가면 안 돼?”“헐! 너 정말 귀신에 홀렸구나... 잠깐만!”진욱은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한 듯 다시 그 초청장을 바라보았다.“생명과학대학? 정은이가 있는 곳 아니야?”기기를 조절하던 재석은 잠시 멈칫했다.진욱은 갑자기 앞으로 다가오더니 두 눈을 가늘게 떴다.“조 교수, 지금 너무 수상한데! 귀신에 홀린 것보다 더 무섭다고! 정은이한테 반한 거야? 본인은 이 사실을 알고 있어? 넌 정은이보다 나이가 더 많은데, 정은이는 그런 널 받아들일 수 있긴 한 거야?”연이은 질문에 재석은 말문이 막혔다....“교수님? 선배님!” 정은은 몇 번 소리쳤다.재석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뭐라고?”“이따 끝나고 집에 갈 거예요 아니면 실험실에 갈 거예요?”“집에.”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우리...”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커다란 그림자가 그녀의 옆에 멈춰 섰다.정은이 문득 고개를 들자, 마침 그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현빈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너도 여기에 있었어? 내가 앉아도 되지?” 말을 마치자, 현빈은 또 민지를 바라보았다.“자리 좀 옮겨줄래?”민지는 어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네.”말을 마치자, 주동적으로 옆으로 움직였다.현빈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그리고 정은의 옆에 앉았다.정은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여긴 어쩐 일로 온 거죠?”현빈은 재석을 힐끗 보더니 가볍게 웃었다.“이상해? 조 교수님도 여기에 계시잖아?”“교수님은 오프닝 하러 오셨는데, 당신은요?”현빈은 어깨를 으쓱거렸다.“난 스폰서.”학교의 많은 활동은 교외에 가서 투자를 끌어들였는데, 마침 MBA 재학 중인 재벌 2세 현빈이 학교의 돈줄이 되었다.그래서 초청장을 받았던 것이다.정은이 물었다.“심 대표님은 자신이 후원한 모든 행사에 직접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77화

    박수와 환호 소리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는 한가운데 있는 탁자 위에 멈추었고, 이어서 옆에 앉아 있는 한 쌍의 남녀를 비추었다.사회자가 감탄을 했다.“어머, 커플인 것 같은데! 두 분 자기소개 좀 해주실래요?”경혜는 일어나서 건네준 마이크를 받았다.“안녕하세요, 생물대학원의 심경혜입니다.”“옆에 있는 그 잘생긴 분은요? 자기소개 하지 않으실래요?”도겸은 움직이지 않았고, 얼굴에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경혜는 웃으며 말을 이어받았다.“제가 대신할게요. 제 남자친구 강도겸이라고 하는데,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니에요. 오늘 특별히 저와 같이 온 거예요.”“어머!” 경혜가 말을 마친 순간, 현장의 사람들은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오늘 저녁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싱글이었고, 이 기회를 틈타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를 찾으려고 했다.그러니 즉석에서 애정을 과시하는 이런 행위에 그들은 저마다 한숨을 내쉬었다.질투가 나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저 남자는 너무 좋겠다!”“경혜는 우리 대학원의 여신이기도 하잖아. 우리는 아직 고백하지도 않았는데, 바로 저 사람에게 빼앗겼다니!”“그러게! 가뜩이나 여자 학생이 적은데, 교외의 사람이 덕을 봤다니, 쯧쯧...”경혜는 평소에 말수가 적은 데다가,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아 모두들 농담을 하며 자신의 부러움을 드러냈다.도겸은 표정이 담담했는데, 토론의 중심에 있어도 여전히 태연자약했다.그러나 경혜는 잘 알고 있었다. 도겸이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좋고 나쁨을 막론하고, 그는 이런 일들을 안중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다고 느낀 것이었다.도겸의 마음은 확실히 여기에 있지 않았다. 그는 진작에 정은이 있는 그 구석을 훑어보고 있었다.정은이 민지와 함께 들어왔을 때, 남학생이 그녀에게 거절당했을 때, 재석과 현빈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정은을 찾아갔을 때...도겸은 정은의 모든 동작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다.이 순간 역시 그랬다.정은은 민지와 과자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고, 현장의 소란과 농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78화

    사회자는 즉시 현빈에게 관심을 가졌다.“그럼 제가 현장의 모든 여자아이들, 그리고 저 자신을 포함하여 한가지 질문을 해도 될까요, 대표님?”현빈은 고개를 끄덕였다.“에헴! 실례지만 지금 여자친구 있으세요?”“아직은 없어요.”“그럼 저희에게 기회가 있을까요?” 사회자도 대담하게 질문했다.“아니요.”“왜요?”“좋아하는 사람 있거든요.”말하면서 현빈은 웃음을 머금은 눈빛을 정은에게 돌렸다.재석은 안색이 어두워졌고, 손에 든 생수병은 어느새 쭈글쭈글 해졌다.민지는 고백을 하고 있는 현빈을 보다가 또 아무런 반응이 없는 정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과자를 먹기 시작했다.‘응, 맛있네...’현빈은 실망한 사람들의 탄식을 무시하고 마이크를 돌려준 다음 다시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곁눈질로 정은을 주시했다. 그녀는 지금 케이크를 먹고 있었는데, 볼이 불룩불룩한 해서 마치 작은 다람쥐와 같았다.그 자신조차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난 왜 한 여자에게 이렇게 관심을 기울이는 거지? 여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나로 하여금 이렇게 신경 쓰이게 하고, 이렇게 반하게 하고 이렇게 깊이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여자는 정은이 처음이야.’봐도 봐도 계속 보고 싶고, 어느 순간부터 현빈은 평생 정은을 그렇게 바라만 봐도 행복하다고 느꼈다.재석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심 대표님 오늘 밤 정말 흥이 많네요.”“그래요, 조 교수님도 그럭저럭인 것 같은데.”눈이 마주치자, 두 사람의 눈빛에 살기가 넘쳤다.“에헴!” 민지는 정말 참을 수 없었다.“정은 언니, 저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같이 가줄래요?”“좋아.” 정은도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그 테이블과 멀리 떨어져서야 정은은 한숨을 돌렸다.민지는 헤헤 웃으며 말했다.“정은 언니, 지금 좀 홀가분해졌어요?”“민지야, 살려줘서 고마워.”“헤헤, 천만에요!”‘언니와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졌으니, 이제 두 사람더러 싸우라고 해.’...스포트라이트 코너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79화

    도겸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잠시 후, 도겸은 경혜를 향해 손을 내밀더니 자신과 춤을 춰달라고 초청했다.경혜는 웃으며 자신의 손을 위에 놓았다.두 사람은 나란히 무도장으로 들어갔다.민지와 화장실에서 돌아온 정은은 마침 이 장면을 보았다.선남선녀가 아름답게 춤을 추고 있는 이 장면을.‘보기 좋네.’정은은 조용히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때, 그녀의 앞에 두 손이 나타났다.하나는 왼쪽, 하나는 오른쪽.현빈과 재석이 동시에 정은을 초청했던 것이다.민지는 놀라서 뒤로 물러나더니 이곳을 빠져나왔다.‘이게 뭐야... 남자들이 한 여자를 위해서 다투고 있잖아?’현빈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정은아, 나에게 이런 영광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와 함께 춤을 추지 않을래?”재석도 웃으며 말했다.“나도 심 대표님과 같은 생각을 했는데.”현빈이 고개를 돌리자, 재석은 직시하며 피하지 않았다.살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정은은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이게 무슨 일이야? 이 두 사람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 거야? 갑자기 왜 이래?’그녀는 고개를 돌려 민지를 찾으려 했다.뒤에 있던 민지는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정은 언니, 이번에는 정말 언니를 도울 수 없을 것 같아요. 죄송해요.’처음에 사람들은 이 빛이 어둡고 구석진 곳에 많은 관심을 돌리지 않았지만, 구경꾼들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아무리 깊이 숨어도 그들은 냄새를 맡으며 찾아올 수 있었다.더군다나 이것도 숨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헐, 이게 무슨 상황이야? 조 교수님과 심 대표님?!”“지금 누굴 초청하고 있는 거지? 어디 보자, 누가 이렇게 매력적인지... 아, 소정은이구나, 그럼 하나도 이상하지 않네.”예쁘게 생긴 데다가 1학년이지만 학술지 Science가 그녀의 논문을 올렸으니 인기가 없을 리가 없었다.게다가 정은은 학생들이 뽑은 ‘7대 퀸카'중 한 명이었다.“쯧쯧, 재밌네! 정말 재밌어!”“드라마도 이렇게 못 찍겠지?”“이야, 이게 연애소설보다 더 재밌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80화

    “수아야?”태민이 몇 번이나 불렀지만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여자의 어깨에 손을 얹자, 수아는 그제야 반응했다.“방금 뭐라고 했어요?”“뭘 보고 있냐고 물었는데.”“아무것도 아니에요.”수아는 자신의 어깨에 걸쳐진 태민의 손을 뿌리쳤다.“조 교수님에게 볼 일이 좀 있어서요.”말을 마치자 수아는 재석을 향해 달려갔다.태민은 자신의 손, 그리고 수아의 다급한 뒷모습을 보며 의혹의 눈살을 찌푸렸다.그는 수아가 이런 활동에 흥미를 가질 줄은 몰랐다.그러나 그녀가 오고 싶은 이상, 태민도 같이 와준 것이다.그렇다, 태민은 재석의 실험실에 가입했을 뿐만 아니라 교내에서도 교수님으로 일하고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초청장을 보았을 때, 수아는 햇빛보다 더 찬란한 미소를 지었다.태민은 수아가 이렇게 웃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어, 바로 따라서 웃기 시작했다.‘손태민, 너 이번에 정말 잘했어!’“교수님, 잠깐만요!”재석은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렸고, 수아가 웃으며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무슨 일 있어?”“교수님.” 수아는 일부러 농담을 했다.“정은은 일 때문에 바쁘다고 떠났잖아요. 그럼 제가 교수님과 함께 춤을 추는 건 어때요?”재석은 눈빛이 어두워졌다.“아니야.”수아는 웃음이 굳어졌고, 곧 일부러 밝게 웃었다.“교수님도 참, 농담일 뿐이니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하지 마세요. 실험실의 그 노화 설비는 언제 교체할 수 있는지 묻고 싶어서 왔어요. 전 교수님은 여러 번 불평하셨잖아요.”재석은 눈살을 찌푸렸다.“이틀 전에 난 이미 단체 메일을 보냈는데, 그 안에는 노화 설비의 처리와 새로운 설비의 가격, 설치 시간 등에 대해 모두 설명을 했어.”수아는 표정이 굳어졌다.“그, 그래요? 제가 주의를 하지 않은 것 같아요... 죄송해요.”“실험실 규정 제2조, 업무와 관련된 메일을 하루에 한 번씩 체크하기.”“아, 교수님, 저는...”“연구원으로서 네가 연구에 더 많은 마음을 기울였으면 좋겠어.”수아는 눈을 드리웠다.“알

Latest chapter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54화

    ‘오늘 해가 서쪽에서 뜨지 않았고, 지구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자전하고 있는데!’선우는 또 다른 한쪽을 바라보더니 참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도겸은 한 잔 한 잔 이어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카드놀이도 하지 않고 공도 치지 않았으며 여자가 다가오면 더욱 멀리 피했다.다른 사람들은 혀를 찼다.“우리 도겸이 형 지금 정말 침울해진 것 같아. 보는 내 마음이 다 아프네!”“꺼져, 오글거려 죽겠네! 말 좀 똑바로 할 수 없어? 우리 도겸이는 사랑을 위해 이렇게 된 것이니, 이건 일편단심이라고!”“그래도 여자는 다 똑같지 않아? 돈만 있으면 어떤 여자를 살 수 없겠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선우는 그들이 갈수록 말을 심하게 하는 것을 듣고 즉시 호통을 쳤다.“이제 그만 좀 해. 그딴 말 좀 적게 하고. 너희들은 뭐 이런 상황이 없을 줄 알아!”그들 중에는 심지어 ‘소정은'이라는 이름을 언급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선우는 가슴이 떨렸다.그것은 절대로 도겸 앞에서 언급하면 안 되는 이름이었고, 도겸은 듣자마자 미쳐버릴 수도 있었다. 그때 가서 소란을 피우면 정말 수습하기 어려웠다.동건은 연속 몇 판 지자, 카드를 던졌다.“재미없네. 너 무슨 속임수 썼지? 어떻게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거야?”“형은 운이 나쁜 데다가 머리도 좋지 않잖아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에요?”“야! 전선우, 너 많이 컸다?”선우는 입을 삐죽거렸다.“칭찬으로 들을게요.”동건은 차갑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안 놀아.”그가 가자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고, 사람들도 자연히 흩어졌다.선우는 카드놀이를 놀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자 술을 마실 흥미도 없었다. 무대 아래는 분위기가 막 뜨거워졌기에, 춤을 춰도 재미가 없어 아예 소파 구석에 틀어박혀 핸드폰을 보았다.그렇게 선우는 현빈이 올린 사진을 보았다.“모임? 누구랑 가족 모임에 참가한 거야?” 선우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는 사진을 클릭하며 맛있는 것이 참 많다고 감탄하려 하다가, 갑자기 사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53화

    현빈은 미소가 굳어졌다.계속 사진을 뒤지니, 다음 사진이 바로 그가 방금 찍은 음식 사진이었다.그는 마음이 움직여 SNS를 클릭해 이 사진을 올렸다.[가족 모임.]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고, 일부 사람들은 댓글을 달며 소란을 피웠다.[집잔치야?][현빈이 형 또 새 애인 생겼어!][모처럼 SNS에 사진을 올렸는데, 드디어 금융 뉴스가 아니네.][우리 형님 몰래 큰일을 해냈네요][이야, 전에 같이 솔로로 지내기로 했는데, 어떻게 여자 친구 데리고 부모님을 만나러 간 거야?][쯧쯧, 이런 사진을 올리다니, 이제 결혼하려는 거야?]현빈은 사진을 클릭하며 쳐다보다가 갑자기 멈칫했다.그는 저도 모르게 사진을 확대한 뒤, 사진의 오른쪽 구석에서 정은의 반쪽 얼굴을 발견했다.비록 턱과 입술밖에 안 보이지만, 현빈의 친구들은 저마다 홈즈로 변신하여 이 실마리를 발견했다.현빈은 눈살을 찌푸리며 설명하려 했고, 생각하다 또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아무튼 모두들 농담이었으니, 만약 특별히 해석한다면 오히려 도둑이 제 발 저린 것 같았다.이때, 현빈은 갑자기 문자 한 통을 받았다.대학 동창인데 지난번에 그 샤브샤브 가게 사장님이었다.[축하한다, 친구야.][다음에 샤브샤브 먹으러 오면 무료야!]‘됐어, 답장하기 귀찮아.’...밤의 장막이 내리자, 등불이 켜졌다.전선우는 모이자며 동건과 도겸을 불렀다.동건은 처음에 퇴근한 수민을 데리러 가야 한다며 거절했다.그러나 5분 후에 동건은 다시 전화를 했다.[지금 시간 생겼어. 곧 도착할 거야.]선우는 약간 어리둥절했다.“이게 무슨 상황이에요?”[아, 수민이가 임시로 야근을 해야 한다고 했거든.]그리고 잠시 후 다시 덧붙였다.[오늘 밤을 새워야 한데.]선우는 갑자기 어이가 없었다.‘수민, 수민, 그놈의 수민... 여자친구 생겼다고 자랑은? 진짜 여친도 아닌데.’“형 진짜 조수민에게 반한 거 아니지?”맞은편은 잠시 침묵에 잠기더니 곧 버럭 했다.[꺼져! 내가 그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52화

    현빈이 말했다.“이렇게 푸짐한 밥상에, 정은이는 또 이원이 처음이니 같이 사진 한 장 찍을까요?”이 제안에 두 노인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그들은 아직 손녀와 함께 사진을 찍은 적이 없었다.이춘재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확실히 기념할 만한 일이지.”“현빈아, 너 좀 잘 찍어. 나중에 프린트해서 앨범에 넣을 거야.”현빈은 미소를 지었다.“저 말고 이모님에게 찍어달라고 해야죠.”“허허, 나 좀 봐, 너도 들어와야 한단 걸 깜빡했네...”현빈은 가정부를 불었다.정은은 얌전하게 봉수진의 곁에 서서 웃으며 그녀의 팔을 껴안았고, 옆에는 현빈이 서 있었으며, 가장 왼쪽에는 이춘재였다.“준비되셨나요?” 가정부가 물었다.봉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찰칵.셔터를 누르면서 이 순간이 고정되었다.두 노인은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고, 정은은 방긋 웃고 있었으며, 현빈도 담담하게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가정부는 잘 못 찍었을까 봐 몇 장 더 찍었다.두 노인은 사진을 보고 나서 아주 만족스러웠다.가정부는 핸드폰을 현빈한테 돌려줬다.봉수진은 사진을 꼭 프린트해야 한다며 신신당부했다.“안심하세요. 저도 다 기억하고 있어요.”봉수진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현빈은 사진을 보며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이모님의 월급을 좀 올려도 될 것 같은데.’그리고 핸드폰으로 탁자 위의 음식을 몇 장 찍어서야 앉아서 밥을 먹었다....식사를 마친 후, 정은은 봉수진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았다.이춘재는 수십 년 된 이웃과 산책을 하러 나갔다.멀리서도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그래, 찾았어! L시에서, 이미 결혼을 했더군...”“무슨 일을 하고 있냐고? 아, 소설을 쓰는 작가야. 미스터리 소설... 참, 꼭 을 읽어봐. 내 딸이 쓴 거야... 들어봤다고? 그럼 잘 됐네! 꼭 봐야 돼!”“오늘 온 그 아이는 내 손녀인데 서비대학교의 대학원생이야. 학술 때문에 바빠서 아직 남자친구를 사귀지 않았어...”“하하... 그래, 하늘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51화

    현빈은 정은에게 문을 열라고 표시했다.정은은 손을 들어 손잡이에 가볍게 힘을 주었다.그는 줄곧 현빈의 품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눈에 들어온 모든 것은 여전히 정은의 상상을 초월했다.청아한 디퓨저 냄새가 전해져 왔는데, 정은이 좋아하는 박하향으로 신선하고 쾌적했다.방 배치는 전체적으로 연한 색깔이었다.벽은 베이지색이었고, 나무로 된 바닥에는 부드러운 긴 털 카펫이 깔려 있었다.밟으면 편하고 가뿐했다.아마도 자신이 책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벽쪽에 특별히 책장을 몇 개 더 추가했다. 책장 앞의 창문 옆에 의자 하나까지 있었다.부드러운 햇빛이 큰 창문을 비추며 책장에 떨어졌고, 생각만 해도 편안했다.뿐만 아니라 방에는 작은 탁자, 정교하고 나른한 작은 소파, 심지어 작은 다탁까지 있었다.커튼을 열면 바깥은 독립된 베란다였다. 멀리 바라보면 하늘, 산, 숲, 풀밭이 있어 마음이 탁 트이고 기분이 상쾌했다.“마음에 들어?”정은은 현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엄청 마음에 들어요.”말하면서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지금의 모든 것이 너무 환상적이네요. 마치...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 이야기처럼, 신데렐라는 공주가 되어 그녀만의 성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정은은 말투가 가벼웠고, 표정이 평온했다.그녀는 이 모든 것에 대해 놀라움을 느꼈지만, 결코 빠져들지 않았다.현빈은 고개를 돌려 갑자기 입을 열었다. “너는 신데렐라가 아니야.”정은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그가 계속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신데렐라는 영원히 연약하잖아. 왕자가 자신을 구하기를 기다리고 있고. 넌 아니야. 넌 자신을 그런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것이고, 주동적으로 어려움을 파헤치며 자신을 구할 거야.”현빈은 미소를 지었다.“너는 신데렐라가 아니라, 겨울 왕국의 여왕 엘사야. 용감하고 지혜롭지.”정은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오빠가 날 이렇게 높게 평가할 줄은 몰랐는데요? 눈에 콩깍지라도 씐 거예요?”남자는 웃음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50화

    “좋아요. 방금 들어왔을 때 힐끗 보았을 뿐, 아직 자세히 보지 못했거든요.”봉수진은 허리가 좋지 않아 오래 앉아 있으면 몸이 불편했기에, 정은은 원래 그녀를 모시고 정원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잘됐다 생각하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하늘은 흐렸고, 햇빛은 구름 뒤에 숨어 있다가 가끔 가느다란 빛을 비추었지만 금세 사라졌다. 겨울의 J시에서 푸른 식물을 보기 어렵고, 대개 앙상한 가지들뿐이었다. 그러나 이원의 화원은 예외였다.거대한 유리 온실에는 다양한 꽃과 식물들이 계절과 상관없이 만발했고, 겨울에 가장 선명한 색채를 이루고 있었다. 봉수진은 특별한 취미가 없어 그저 꽃과 식물을 가꾸는 것을 좋아했다. 원래 이런 일에도 흥미가 없었지만, 이춘재가 봉수진이 점차 침울해진 모습을 보고는 주의를 좀 돌리라고 권한 것이었다. 처음엔 탐탁지 않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봉수진은 장갑을 끼고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개의치 않은 채 작은 화원의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정은도 꽃가지를 다듬고 새 흙으로 덮어주는 것을 도왔다. 봉수진은 힐끗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능숙한 손놀림에 감탄했다. 식물의 습성을 잘 알고 있어, 어떤 식물은 물을 많이 주고, 어떤 식물은 적게 주어야 하는지, 어떤 식물은 아예 물을 주면 안 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딱 봐도 평소에 화초를 다듬는 사람인 게 분명했다“우리 정은이는 공부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화초 가꾸는 솜씨도 대단하구나.” 봉수진은 웃으며 말했다.요즘 젊은이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화초를 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할머니께서 너무 잘 가꾸셔서 저는 그저 거들었을 뿐이에요.”정은은 발밑에 자란 말리꽃을 바라보았다. 작은 떨기로 자라난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더 무성하게 자랄 것이었다.봉수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넌 듣기 좋은 말로 나를 달래는구나.”“아니에요, 진짜예요. 이 장미도 정말 예쁘잖아요. 그런데 모양이 조금 이상한데, 마치 배추 같아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49화

    “골치 아픈 아이라고요? 왜요?” 이미숙을 이렇게 평가하는 것을 처음 들은 정은은 호기심이 자자했다.“네 엄마는 지금 얌전하고 책 보기 좋아하지만, 어렸을 때 나무에 올라가 새를 잡거나 강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았어.”정은은 깜짝 놀랐다.“정말이에요?”“이곳의 복도에 총 68 세트의 가드레일이 있어. 원래는 없었는데, 나중에야 추가한 거야.”“저희 엄마 때문에요?”이춘재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네 엄마가 연못에 뛰어들어 물고기를 잡지 못하게.”정은은 말을 잇지 못했다“어때? 상상 안 가지?”정은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상상할 수가 없네요.”“하하... 이따가 네 엄마 어렸을 때 사진 보여줄게. 다 증거로 남아 있어.”“지금 갈까요?”정은은 두 눈에 빛이 났다.이춘재는 뜻밖에도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심지어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2층으로 올라갔다.전화를 받고 돌아온 현빈은 거실에 사람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그는 1층을 낱낱이 뒤졌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었고, 주방으로 걸어갔다.“할머니, 할아버지와 정은이는요?”“방금까지 거실에 있었는데?”“지금은 거기에 아무도 없어요.”봉수진이 말했다.“그럼 분명히 다른 데에 놀러 갔을 거야. 그냥 내버려둬. 참, 너도 오늘 야근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얼른 회사로 돌아가.”“저 안 가요. 하나도 안 바쁘단 말이에요.”‘아니, 방금 집사가 그러던데. 회사 전화가 집에까지 걸려왔다고.’현빈이 다시 찾기도 전에 이춘재는 이미 사진첩을 든 채로 정은과 함께 위층에서 내려왔다.마침 봉수진도 요리를 마치고 주방에서 나왔다.온 가족이 소파에 앉아 사진첩을 뒤적였다.“이건 네 엄마가 금방 태어났을 때야. 3kg넘는 하얗고 뚱뚱한 아기였지... 이것은 세 살 때 네 고모 할머니가 네 엄마에게 사준 생애 첫 하이힐이고... 이건...”두 노인은 딸을 아주 귀여워했는데, 이미숙이 태어날 때부터 실종될 때까지 수많은 사진을 남긴 뒤, 사진첩으로 만들어 기록했다.그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48화

    재석은 계속 입을 열었다. “이거... 옥수수 같은데요?”현빈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몇 번 먹어 봐서 딱 보면 알죠.”‘내가 언제 물어봤다고? 그냥 설명해 버리네. 정말 자기 자랑은 알아줘야 한다니까.’재석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정은이는 정말 세심하고 자상하죠. 모든 사람을 배려할 줄 아니까요.”현빈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다들 조 교수님이 과묵하다고 하던데, 말이 꽤 많으시네요?”“말 많고 적음은 상대에 따라 다르죠. 심 대표님도 평소에는 말수가 적은 편 아닌가요? 그런데 오늘은 꽤 말을 많이 하네요. 오고 가는 말이 있어야 예의 아니겠어요?”현빈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미소만 지었다.“자, 이제 가요.” 정은은 남은 샌드위치를 냉장고에 넣고 찻잔까지 깨끗이 씻은 후 나왔다.고개를 들자 마침 재석이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선배님, 오늘도 집에 있었어요?”“응.” 정은을 바라보는 재석의 눈빛이 한층 부드러워졌다.“심 대표님과 함께 외출하려고?”“네, 우리...”“얼른 가자.” 현빈은 자연스럽게 정은의 가방을 받아들었다. “골목에 차를 오랫동안 세우면 또 누가 뭐라고 할지도 모르잖아.”“아, 네! 선배님, 그럼 이만 가볼게요. 나중에 봐요.”재석은 ‘우리'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귀에 거슬렸다.그는 속으로 피어오르는 의심을 애써 누르며 대답했다. “그래.”가는 길에 정은이 물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언제 돌아오셨어요?”현빈은 앞을 똑바로 보며 짧게 대답했다. “저번 주 금요일.”“잠깐 마트에 들러서 과일 좀 살게요.”“누구에게 줄 건데?”“당연히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께 드리는 거죠.”“그럴 필요 없어. 남도 아닌 가족인데, 뭘 사? 빈손으로 가도 괜찮아.”“그래도 처음 찾아뵙는 건데 그냥 가면 좀 실례인 것 같아서요.”“그게 두 분께 더 거리감을 줄 수도 있어. 내 말 들어.”“알겠어요.”이씨 가문 본가는 유서 깊은 곳으로 호수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47화

    정은은 멍해졌다.남자는 잘 재단된 검은색 코트를 입고 있었고, 몸에 꼭 맞는 핏이 넓은 어깨, 잘록한 허리와 탄탄한 체형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하지만...얼굴 살이 좀 빠진 것 같았다. 살짝 움푹 패여 두 눈은 더욱 깊고 가늠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자아냈다.현빈은 살짝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 뜨거운 온기가 잔을 타고 손바닥에 전해졌다.“난 차 가리지 않아. 고마워.”“먼저 좀 앉아 있어요. 안에 가서 물건 좀 챙겨야 해서야. 그리고 바로 출발해요.”“알았어.”현빈은 정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여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맑은 차를 응시했다.예전에 현빈은 농담으로 정은에게 몇 번이나 위층에서 차 한 잔을 대접해 줄 수 있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예외 없이 거절당했다.그런데 지금은 버젓이 집 안에 들어와 정은이 직접 끓인 차를 받아들고 있다니. 손 닿을 거리에서 건네받은 이 상황은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현빈이 수없이 바라왔던 장면이 현실이 되었지만, 그 이유는 두 사람의 관계가 연인이 아니라... 남매처럼 변했기 때문이었다.‘참 아이러니하네.’혀끝에 감도는 씁쓸함을 삼키며 현빈은 시선을 돌렸다.오늘은 영하 3도. 정은은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핑크색 패딩에 카키색 캐시미어 니트와 울 스커트를 매치했다. 스커트 길이와 패딩 길이가 비슷해 전체적인 실루엣이 단정하면서도 발랄했다.거기에 롱부츠까지 신으니 젊고 생기 넘치는 분위기가 한층 더해졌다.작은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 어제 충분히 쉰 덕분인지 혈색도 좋아 보였다.“다 됐어요, 오빠. 가요.”정은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현빈의 심장을 파고들어갔다.간지럽고 짜릿했다.“오빠?”현빈은 정신이 번쩍 들더니 다소 급하게 소파에서 일어섰다.“응, 가자.”말을 끝내자마자 그는 먼저 현관으로 향했다.몸을 돌리는 순간, 목이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었고, 옆에 늘어진 손은 서서히 주먹으로 쥐어졌다.현빈은 감정을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정은은 그 뒤를 따르다가 식탁 위에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46화

    정은은 전화를 받으며 약간 멍해졌다.저쪽에서는 조용히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왜 그래? 나를 ‘오빠’라고 불렀으면서, 이제 와서 만나기 망설여지는 거야? 아니면...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된 걸 받아들이기 싫은 거야? 그때 했던 말들은 전부 거짓이었어?]“알았어요, 잠깐만 기다려요. 지금 내려갈게요.” 정은은 단번에 대답했다.현빈의 말이 맞았다. 두 사람의 관계가 이렇게 됐으니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었다.그녀의 단호한 대답에 저쪽에서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에야 현빈은 다시 입을 열었다.[할아버지랑 할머니가 L시에서 돌아오셨어. 네가 최근에 프로젝트를 끝냈으니 시간 있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 너 데리고 본가에 가서 같이 식사하자고 하셨어.]이춘재와 봉수진은 L시에 머물면서 점점 그곳에 정이 들었고,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매일 딸을 볼 수 있는 데다 소진헌과 같은 자상하고 든든한 사위가 곁에서 돌봐주니 하루하루가 평온하고 만족스러웠다.그러다 이미숙은 출판사의 초청을 받아 G시에서 사인회를 열게 되었고, 이어서 S시로 날아가 독자와의 사인회에 참가해야 했다.물론 소진헌도 함께 가기로 했다. 출판사에서는 이미 이미숙 가족의 숙박, 식사, 항공권까지 전부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야말로 최상의 경험을 보장해 이미숙이 앞으로 더 많은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출판사는 이미숙을 행사에 초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정작 두 어르신은 가고 싶어 하면서도 긴 여행에 노쇠한 몸이 무리일까 걱정했다. 결국 이민이 가장 먼저 반대했다.원래 이미숙은 혼자 G시로 가고 소진헌은 집에 남아 이춘재와 봉수진을 모시기로 했었다.소진헌은 상관없다고 했지만, 두 어르신은 그가 함께 가서 이미숙을 돌봐주길 원했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엿보였다.소진헌은 꽤 흐뭇했다. 평생 강단에 서는 것 외에는 자신이 이렇게 중요하게 여겨진 적이 없었기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결국 이미숙도 두 어르신의 뜻을 꺾지 못했고, 소진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