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고마워.”문에 들어서자마자 냉기가 밀려왔는데, 재석의 집과는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처음 온 것도 아니었기에, 재석은 능숙하게 슬리퍼로 갈아입었다.정은은 주방으로 들어가 물 한 잔을 따라 주었다.지금 이미 오후 4시였다. 재석이 이미 식사를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은은 여전히 친절하게 물었다.“선배님, 점심 먹었어요?”“응, 먹었어.”“그럼... 과일 좀 먹을래요? 방금 깎은 건데.”말하면서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올 때, 정은은 손에 과일 쟁반을 들고 있었다.“고마워.”정은도 소파에 앉아 이쑤시개로 멜론 한 조각을 먹으면서 물었다.“언제 다 고칠 수 있는 거예요?”“수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교체할 부품이 하나 있는데, 지금 가방에 없다고 하셨어. 그냥 근처의 수리점에게 보내달라고 할 수밖에 없으니, 다 수리하려면 2~3시간 더 걸릴 거야.”“그래도 빠른 셈이네요. 조급해하지 말고 일단 여기서 쉬고 있어요. 다 수리되면 다시 돌아가요. 이런 날에 에어컨이 없으면 너무 괴롭죠...”“고마워. 넌 할 일 하러 가. 날 상관할 필요 없으니까.”“좋아요.”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침실에 들어가기 전에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재석을 바라보며 갑자기 입을 열었다.“선배님, 샤워하고 싶으면 저쪽에 가서 씻으면 돼요.”그녀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재석의 셔츠는 거의 다 젖어 몸에 달라붙어 있었고, 심지어 어깨와 등의 근육까지 은은하게 그려냈다. 차가운 실내로 들어오니 옷은 바로 차갑게 변했다.더웠다 추웠다 하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쉽게 감기에 걸릴 것이다.“에헴!”이 말이 나오자, 재석은 사레가 들렸다. 멜론 반조각이 아직 입에 있어 삼킬 수도 토할 수도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니야, 돌아가서 씻을게. 씻고 다시 돌아오면 되지.”“그래요.” 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돼요. 만약 머리가 어지럽거나 재채기, 콧물
재석이 걸어 나왔다.화장실 문은 마침 옷걸이 맞은편에 있어서 두 사람은 이렇게 딱 마주쳤다.남자는 갈아입은 옷을 품에 안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축축해서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그렇게 입고 있던 티셔츠는 어느새 젖었다. 목과 얼굴도 축축해서 물 같기도 하고 땀 같기도 했다.정은을 본 순간, 재석의 머리는 새하얘졌다.여자아이는 검은색 탱크톱을 입고 있었다. 타이트한 옷은 포만하고 아름다운 상반신 곡선을 그려냈다.탱크톱 끈이 좀 짧아서 허리가 살짝 드러났고 작은 배꼽이 똑똑히 보였다.가늘고 긴 팔, 뚜렷한 쇄골, 검은색에 비쳐 하얗게 빛나고 있는 피부.꿈속의 ‘정은’과 똑같았다.정은은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손에 티셔츠를 들고 있단 것도 깜빡 잊고 멍을 때렸다.“선, 선배님...”재석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더니 즉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며 될수록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미안, 결국 네 화장실 좀 썼어.”그러나 오직 재석 자신만이 잘 알고 있었다. 이 짧디 짧은 말 한마디 하려고 목이 얼마나 탔는지, 호흡이 또 얼마나 거칠었는지를.“두근두근.”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는데, 마치 가슴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재석은 확실히 집에 돌아가서 샤워를 하려 했다.깨끗한 옷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니, 수리기사들이 안에서 토론을 하고 있었다.구식 건물은 고정된 에어컨 실외기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에어컨 실외기는 일반적으로 바깥의 벽에 걸려 있었다.마침 재석네 실외기는 화장실 밖의 벽에 걸려 있었기에, 수리기사는 이미 안전줄을 타고 화장실 창문에 매달려 실외기를 수리하고 있었다.샤워는커녕, 지금 화장실을 제대로 쓸 수조차 없었다.그래서 재석은 정은의 집으로 갔던 것이다.원래 정은에게 말하려고 했지만, 침실 앞까지 걸어간 그는 다시 발걸음을 멈췄다.‘정은이를 방해하는 거 아니야? 지금 자고 있을 수도 있잖아? 어차피 빨리 씻으면 몇 분밖에 안 걸리니 공교롭게 마주칠 일은 없겠지?’그러나 두 사람은 뜻밖에도 이렇게
두 사람은 이미 여러 번 호흡을 맞추었기에 무척 능숙했다.재석은 채소를 씻고 다듬으며 정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정은은 채소를 썰고 볶는 것을 책임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요리 3개와 국 하나가 식탁에 놓였다.두 사람은 각자 맞은편에 앉았다. 재석은 밥 한 그릇을 담아 먼저 정은에게 건네주었다.정은은 받으면서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분위기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간 것 같았고, 전의 어색한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밥을 다 먹은 후, 재석은 예전처럼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를 도왔다.정은은 그가 건네준 접시를 받아 수건으로 닦고 옆에 놓았다.두 사람은 호흡이 잘 맞아 일사불란하게 일했다.하지만 쓰레기를 정리할 때, 정은과 재석은 동시에 허리를 굽혀 쓰레기봉투를 묶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머리를 부딪혔다.“아...”정은은 이마를 가리고 일어서더니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미안, 정말 미안해, 주의하지 않았어...”재석은 사과하며 즉시 앞으로 다가갔다.“많이 아프지?”말하면서 정은의 손을 살짝 떼어냈다.손톱만한 부위가 빨갛게 되었지만 다행히 붓지 않았다.“미안, 난 쓰레기를 들고 싶었는데, 너와 부딪힐 줄은 몰랐어.”정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괜찮아요. 이제 안 아파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소녀의 눈에 여전히 눈물이 좀 고였다. 눈시울이 빨갛게 달아오르니 무슨 괴롭힘이라도 당한 것 같았다.재석은 더욱 미안해했다.“저... 선배님, 일단 나 좀 놓아주면 안 돼요?”남자는 그제야 자신의 손이 아직도 여자의 손목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미안!”그는 뜨거운 것에 데인 것처럼 손을 거두어들였고 심지어 뒤로 물러섰다.정은은 처음에 어색했지만, 재석의 과장된 반응을 보고 참지 못하고 웃었다.재석도 따라서 입술을 구부렸다.“그렇게 웃겨?”“네!”그는 한숨을 쉬었다.“그럼 됐어.”말하면서 다시 허리를 굽히고 쓰레기봉투를 묶었다....재석의 에어컨은 마침내 수리되었는데 수리기사가 와서 문을 두드렸다.“교수님, 와서
“응.”“그럼 오늘 밤에 달리기 하러 나갈 거예요?”“응. 같이 뛸래?”“좋아요.”두 사람은 각자의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문 앞에서 만난 다음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달렸다.해가 이미 졌기에 하늘은 서서히 어둡기 시작했고, 대지는 점차 어둠에 휩싸였다.두 사람이 한 바퀴 뛰었을 때, 달빛이 점점 밝아지더니 별도 깜빡이기 시작했다.세 바퀴째 다릴 때, 정은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선... 선배님 먼저 뛰어요. 난 좀 쉴게요.”재석도 따라서 멈추었다.“괜찮아?”정은은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며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힘들진 않지만 너무 더워서 그래요.”그녀의 머리카락은 땀에 젖었고, 땀방울이 볼에서 굴러 떨어져 티셔츠 속에 스며들었다.“그럼 나도 쉴게. 같이 걸을까?”정은이 코를 만지작거리며 머쓱해했다.두 사람은 가로수길을 따라 앞으로 걸어가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비대학교의 교문 앞에 도착했다. 재석은 편의점에 가서 생수 2병을 샀고, 한 병을 연 다음 정은에게 건네주었다.“고마워요.”앞문을 지나 또 반 바퀴를 돈 다음, 두 사람은 뒷문으로 향했다.안으로 들어가면 개방된 농구장이 하나 있었다.두 사람이 지나갈 때, 농구공 하나가 마침 정은의 머리 위로 날아왔다.그녀는 이를 알아차리고 피하려 했다.그러나 재석의 반응이 더욱 빨랐다. 그는 정은의 팔을 잡아당겨 자신의 뒤로 감싼 후, 다른 한 손으로 정확하게 슛을 했다.농구장에서 바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야! 기술이 아주 좋구나!”재석은 오늘 하얀 농구복을 입었는데 언뜻 보면 정말 대학생 같았다.“우리 딱 한 사람 부족한데, 한 판 할래?”재석은 그러고 싶었지만 먼저 정은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물었다.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가요, 건배님. 난 관중석에 응원석에 앉아서 지켜볼게요.”‘선배님이 농구를 할 줄 알았다니...’자리에 앉자, 정은은 멈칫했다.‘방금 선배님은 왜 날 바라본 거지? 이런 일로 나에게 먼저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재
재석이 대답했다.“아직은 아니야.”“아! 알겠네! 아직 썸을 타고 있는 거구나?”그는 말을 하지 않았고, 몇몇 남자아이들은 재석이 인정했다고 생각했다.“알고 지낸 지 얼마 됐어?”재석은 잠시 생각했다.“1년 좀 넘었어.”“야, 1년이나 넘었는데도 아직 성공을 하지 못한 거야? 이건 말이 안 되지. 훤칠하고 잘생긴 사람이 왜 이렇게 굼뜬 거야!”재석은 말문이 막혔다.“야, 내가 제대로 가르쳐 줄게. 이건 99%의 여자도 당해낼 수 없을 거야...”재석은 처음에 개의치 않았지만, 상대방이 본론으로 들어가자 저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웠다....돌아가는 길에 정은이 물었다.“선배님, 그 슛 정말 너무 멋있었어요... 그리고 그 자세도...”그녀는 걸으면서 슛을 하는 시늉을 했다.재석은 옆에서 가끔 대답을 했는데, 줄곧 미소를 짓고 있었다.약국을 지나다가 남자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잠깐만 기다려.”그리고 안으로 들어갔다.나올 때, 재석의 손에는 소독약 한 병이 있었다.재석은 정은의 이마를 가리켰다.“여전히 좀 빨간 것 같아. 내일 멍이 들 수도 있으니까 약 좀 바르면 빨리 나아질 거야.”정은은 재석이 약국에 들어가서 자신을 위해 약을 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리 큰 상처도 아니니 내일이면 다 나을 거예요. 이렇게 번거롭게 약을 사줄 필요가 없는데.”정은은 얼른 손을 흔들었다.“얼굴에 멍 들면 보기 안 좋을 텐데. 너희 여자애들은 모두 예쁜 것을 좋아하지 않니?”“너희 여자애들?” 정은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응, 수민이도 그렇거든.”“그럼 고맙게 받을게요.”말하면서 소독약을 받으려 했다.재석은 오히려 건네주지 않고 조용히 의료용 면봉을 꺼냈다.“지금 혼자 약 바를 수 없으니 내가 도와줄게.이것 때문에 재석은 심지어 약국에서 손을 씻고 소독수로 소독을 한 다음 그제야 약을 들고 나왔다.정은은 놀란 듯 입을 쩍 벌렸다.남자는 이미 면봉에 소독약을 묻힌 다음, 한 손으로 그녀의 이마 앞의 잔머리를 가볍
“그래야만 그 여자는 네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야. 그리고 근심 따윈 완전히 버리고 네 품에 안길 수 있다고! 알았어?”재석은 그의 말에 아주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하지만 그중 하나는 그다지 인정하지 않았다.‘일부러 넘어져서 키스하는 거랑 그냥 사람을 품에 안고 뜨겁게 키스하는 거... 하나는 너무 가식적이고 위험하고, 다른 하나는 건달과 다를 게 없고.’재석은 이것이 애정표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반대로 이것은 여성을 무시하는 짓이었다.‘그래, 그건 정은이를 무시하는 거야!’그러나 꿈속의 재석은 오히려 정은을 제대로 ‘무시’했다.심지어 귀신에 홀린 것처럼 꿈속의 정은에게 물었다.“자기야, 좋아?”재석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괴로움에 머리를 움켜주었다.한참 지나서야 감정이 가라앉은 재석은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는 옷장 앞으로 가서 깨끗한 속옷을 꺼내 갈아입었다.‘다 나은 거 아니었어? 왜 또 이러는 거지?’...이튿날 아침, 전진욱은 일찍 실험실에 도착했다.어제 그는 실험 결과가 나오기 전에 가버렸는데, 오늘 특별히 일찍 와서 보충하려 했다.‘만약 재석이 이 일을 알았다면 또 끝없이 잔소리를 할 거야.’그래서 진욱은 알람시계 세 개나 맞추었고,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 차를 몰고 실험실로 달려갔다.“야! 넌 언제 온 거야?! 오늘 일요일이잖아?! 이번 주에 이틀 쉬기로 했는데, 넌 뭐 하러 왔어?!”진욱은 무척 흥분했다. 그래서 재석은 단번에 그가 도둑이 제 발 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재석은 실험대 앞에 서서 차갑게 고개를 들었다.“어제 데이터를 정리하지 않은 거야?”‘이런, 망했네!’“아니... 넌 집에서 쉬지 않고 왜 실험실에 온 거야?! 재석아, 넌 정말 너무 열심히 일을 하는 거 아니니? 남에게 숨 쉴 틈 좀 주라!”재석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난 이미 너 대신 데이터 두 조를 계산했는데, 지금 보니 그럴 필요가 없는 건가?”진욱은 멈칫하더니 즉시 웃음을
왜냐하면 지금 정은은 이미 L시로 돌아가는 고속열차에 탔기 때문이다.소씨 가문의 3형제는 할머니 진말숙의 팔순잔치를 근사하게 치르기로 결정했다.그래서 정은도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날짜는 아주 일찍 정해졌는데, 연속 3일이었다. 그러나 휴일이 아니라서 정은은 휴가를 낼 수밖에 없었다.오미선은 지금 외국의 세미나에 참가했기에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시차 때문에 정은은 전화를 하지 않고 미리 이메일을 보내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오미선은 정은이 집에 돌아가는 것을 동의했을 뿐만 아니라 축복까지 전해 달라고 했다.오후 2시, 고속열차는 역에 도착했다.이미숙은 차를 몰고 정은을 데리러 왔다.“아빠는요?” 정은은 차에 타자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소진헌이 없는 것을 보며 그녀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이미숙은 면허가 있었지만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소에 이런 ‘막일’은 모두 소진헌이 했다.‘오늘은 왜...’이미숙은 고개를 흔들었다.“네 아빠는 시간이 없거든.”“오늘은 일요일이니 수업이 없으시잖아요.”‘그럼 뭐가 바쁘신 거지?’여기까지 말하자, 이미숙은 한숨을 참지 못했다.정은은 더욱 영문을 몰랐다.“이 일은 말하자면 길어...”팔순잔치인 데다가 진말숙이 떠들썩한 분위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비록 잔치는 모레이지만, 고향의 친척들은 모두 이틀 앞당겨 올라왔다.십여 명이 어디서 지낼지가 가장 큰 문제로 되었다.소남진과 진말숙은 지금 첫째 소진우를 따라 별장에서 지내고 있지만, 그 별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위에 2층, 지하 1층에 잠을 잘 수 있는 방이 4개 뿐이었다.게다가 소진우는 가끔 집에서 접대를 해야 했으니, 시골 친척들이 집에 드나드는 것은 너무 말이 안 됐다.진말숙이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 보거라. 어차피 진우네 집은 안 된다!”가정모임에서 진말숙은 무덤덤하게 말했다.말이 끝나자, 한 쌍의 늙은 눈은 소진호와 소진헌을 바라보았다.첫째는 안 되니, 지금은 당연히 둘째와 셋째가 나서야 했다.소수정
“그러나 제가 부끄러워도 상관이 없지만, 그 친척들이 물어볼까 봐 두려워서 그래요. 이렇게 좋은 아파트에 사는데 왜 세탁기도 없냐고 물어보시면 어떡해요? 그럼 저는 또 뭐라고 대답하겠어요.”“돈이 없다, 제 부모님은 집 살 돈을 줬으니 이미 남은 돈이 없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도 저희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잖아요... 나중에 이 친척들이 시골에 돌아가서 안 좋은 소문이라도 퍼뜨리면 어떡해요?”“저와 시율이는 상관이 없죠. 어차피 저희도 시골에 돌아갈 일이 별로 없으니까요. 하지만 어머님의 체면은요? 물론 어머님께서 이런 일 신경 쓰지 않으신다면, 저야 당연히 대환영이죠. 저는 떠들썩한 분위기를 좋아하니까요!”주덕순은 웃으며 말을 마쳤고, 진말숙이 말하기를 기다렸다.사실 마음속으로 그녀는 이미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웃기고 있네. 새로 이사간 새 집에 나 자신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는데, 그 촌놈들을 들여보내라고? 누가 좋다고 하겠어!’진말숙은 눈빛이 어두워졌다.“너도 이제 겨우 이사를 간 데다가 가구도 다 사지 않았으니 그럼 됐어. 내 생일에 친척들이 세탁기도 없는 집에서 살게 할 수는 없잖아?”“그럼요.” 주덕순은 한숨을 쉬었지만 입가의 미소는 점점 짙어졌다.“만약 부모님께서 돈을 좀만 더 주셨다면 저희도 이렇게 빠듯하게 살지 않았을 텐데... 어머, 어머님, 신경 쓰지 마세요. 저 지금 제 부모님을 말하는 거지, 어머님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진말숙은 원래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주덕순이 이렇게 말하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진말숙은 시종 주덕순에게 새 집에 보탤 돈을 주겠다고 하지 않았다.주덕순은 은근히 입을 삐죽거렸다.‘정말 인색하시다니깐!’그러나 주덕순은 확실히 말을 잘 했다.적어도 진말숙은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소진우는 중간에 앉아 줄곧 입을 열지 않았다.그는 매우 바빴는데, 만약 스케줄이 임시로 변동되지 않았다면 지금 이미 회사에 있었을 것이다.그의 아내 박나영이
항이는 신이 났다.그는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줬을 뿐만 아니라 비싼 쇼핑백에 담아서 건네줬다.“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또 오세요.”항이는 남자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히죽히죽 웃으며 카메라 앞에 서서 까불었다.“이거 좀 봐, 내가 인형을 잘 빚을 수 있다니깐. 그 손님 엄청 좋아하잖아!”[에헴! 정신 차려! 그 오빠가 좋아하는 건 그 예쁜 언니지, 네가 빚은 인형이 아니라고!][그래서, 그 오빠 혼자 몰래 달려와서 인형을 사간 거야?][아직 고백을 하지 못한 것 같은데.][어머, 형사님이세요? 눈치도 참 빠르시네요!]...정은은 물을 사고 돌아온 재석이 손에 쇼핑백 하나 들고 있는 것을 보며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건 뭐예요?”“그냥 뭐 좀 샀어.”그래서 그녀도 별다른 생각하지 않았다. 길을 건너 보행로를 따라 앞으로 가면 도심이었다.정은은 손목 시계를 보았는데, 이미 오후 4시였다.‘이제 돌아가야 하나?’그런 생각을 하기도 무섭게 재석이 입을 열었다.“며칠 후에 난 세미나를 참가하러 K시에 가야 돼. 그곳의 날씨가 많이 따뜻해서 겨울의 양복을 입을 수 없거든. 마침 요앞이 백화점이니 날 도와 옷 한 벌 골라 주면 안 될까?”“좋아요.”지나친 요구가 아니었기에 정은은 동의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남성복은 5층에 있었고,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했다.한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정은은 소리를 내어 불렀다.“심 대표님?”현빈이 고개를 돌렸다.정은을 본 순간, 현빈은 놀라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한쪽에 있는 재석을 발견하자, 그의 눈빛은 어두워졌다.“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정은아.” 말하면서 현빈은 웃으며 재석을 바라보았다.“또 만났네요, 조 교수님. 여긴 어쩐 일이죠?”정은이 대답했다.“선배님을 위해 얇은 양복 한 벌 골라주려고요. 대표님도 쇼핑하러 왔어요?”“응. 우리 할아버지에게 구두 사드리려고...”이때 현빈은 자연스럽게 난처함을 드러냈다.“하지만 어떤 걸
“미안해요!”“미안.”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며 뒤로 물러났다.눈을 마주치자, 어색함 외에 이상한 감정이 돋아나고 있었다.“선배...”“난...”“아니면 선배님부터 말할래요?”재석은 눈을 반쯤 드리웠는데, 마치 사고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고민하는 것 같기도 했다.고개를 드는 순간, 마치 어떤 결심을 한 것 같았다.“정은아, 사실 나...”“봐요, 다 빚었잖아요?” 항이의 건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정은은 뻘쭘해서 귀와 얼굴이 빨개졌다. 이 말을 듣고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은 것처럼 얼른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벌써요?”“그래요, 난 원래 이렇게 훌륭한 예술가였어요.”말하면서 손에 든 인형을 정은의 앞으로 내밀었다.정은은 힐끗 보더니 입가를 실룩거렸다.역시 조금의 기대도 가져서는 안 됐다.전에 본 그 몇 개의 인형은 비록 이목구비가 모호했지만 적어도 이목구비가 있었다.하지만 눈앞의 이 인형은 이목구비가 없었고, 그저 두 머리를 맞댄 것밖에 알아볼 수 없었다.‘잠깐!’정은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이건...’“이, 이게 저희라고요? 전혀 알아볼 수가 없잖아요...”“그럴 리가요? 이게 딱 보이잖아요! 내가 두 사람이 뽀뽀하는 그 장면을 보고 그대로 빚은 건데! 이건 머리, 이건 목, 이건 서로 닿은 두 입술...”“앗!”정은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고, 재석은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보며 전술적으로 가볍게 기침을 했다.“아직도 못 알아보겠어요? 그럼 내가 다시 알려줄게요. 이건 머리...”“아니요!”“네?”정은은 정중하게 말했다.“이제 알겠어요.”“진짜요? 거짓말 아니죠?”“네.”“와! 나한테 인형을 만드는 재능이 있을 줄 알았어. 그동안 아무도 날 믿지 않았지!”이때, 라이브의 시청자들은 열띤 토론을 벌렸다.[저 아가씨 엄청 어색해하던데.][항이 씨, 제발 그 아가씨 내버려둬요. 곧 울 것 같은데.][나도, 정말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그 분 아마도 항이가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다고
재석은 자세히 살펴보았다. 인형이라고 하지만 사실 윤곽밖에 닮지 않았고, 심지어 그 윤곽도 좀 이상했다.이목구비, 표정, 동작과 같은 디테일도 없었다.재석은 사실대로 말했다.“너무 대충 만든 것 같아서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어.”다시 주위를 바라보니, 노점의 다른 진흙 인형도 모두 이런 스타일이었다. 아무튼 너무 못생겼다.이 노점도 정말 이상했는데, 주인이 없고 삼각대 하나밖에 없었다. 위에는 핸드폰 한 대가 놓여 있었고, 카메라로 두 사람을 찍고 있었다.정은은 잠시 침묵했다.“그렇긴 해요. 하지만 이 각도에서 보면... 사랑의 신 큐피드와 닮은 것 같은데요?”말이 끝나자마자 노점 뒤에서 갑자기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정말 말 그대로 튀어나왔는데, 마치 스프링을 장착한 것처럼 갑작스럽게 등장했다.“아가씨, 내가 만든 인형을 알아보았다니?!” 젊은 남자는 두 눈에서 빛이 났다.‘하늘이시어, 드디어 내 작품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군.’정은은 의아해했다.“정말 큐피드였어요?”“맞아요!” 남자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내 작품을 알아본 사람은 아가씨가 처음이에요. 엉엉... 정말 감동이네요!”‘이건 좀...’정은이 말했다.“비록 빚은 인형들의 모양과 이목구비는 형편없지만, 그래도 윤곽을 통해 나름 알아볼 수 있어요. 혹시 피카소가 롤모델인가요?”감격에 겨웠던 남자는 순간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날 비웃은 건가요?”정은은 말을 하지 않았고 재석이 입을 열었다.“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이 인형들은 확실히 특이하게 생겼는데.”‘아니, 어떻게 내 앞에서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할 수가 있지? 그래도 난 2백만 팔로워를 가진 진흙 조각 블로거인데. 동물이나 다른 물건은 참 생동하게 잘 빚었지만, 사람만 빚으면 실패했지.’정은은 남자를 응원했다.“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이때, 라이브의 시청자들은 이미 배를 끌어안고 웃기 시작했다.[정말 예쁘게 생기셨는데? 너무 일리가 있는 말
재석이 물었다.“점심 먹었어?”“아직이요. 선배님은요?”“잘됐네, 나도 안 먹었는데.”눈을 마주친 순간, 두 사람은 호흡이나 맞춘 듯 미소를 지었다.20분 후, 재석과 정은은 한 고깃집에 들어갔다.기름이 지글지글거리는 고급 삼겹살, 남자는 삼겹살 표면이 약간 탈 때까지 뒤집다가 신선한 상추에 싸서 여자 앞에 건넸다.정은은 고개를 숙인 채 답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재석을 보며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선배님, 나 혼자 할게요...”그러나 재석은 손을 놓지 않았고, 오히려 정은에게 입을 벌리라고 했다.정은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남자는 웃음을 금치 못했다.“답장하고 있잖아? 정말 손으로 받을 거야?”정은은 즉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손으로 받으려 했다.“답장 다 했으니까 나 혼자 먹을게요.”재석은 쌈을 접시에 담았다.“먼저 손부터 닦아.”정은은 방금 핸드폰을 들고 있던 자신의 두 손을 보았다. ‘앗, 깜박했어.’후에 정은은 열심히 먹기 시작했고, 재석은 고기 굽는 것을 책임졌다. 고기를 다 구운 후에 직접 그녀의 접시에 놓았다.“선배님, 나한테 주지만 말고 선배님도 얼른 먹어요!”“좋아.”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은의 접시는 줄곧 고기로 가득 찼다.소고기를 입에 넣자, 즙이 절로 나올 정도로 부드러웠다. 정은은 데여서 숨을 들이마셨는데, 혀끝이 따갑고 아팠다.재석은 아이스 코코넛 우유 한 병을 건네주었다.“천천히 마셔.”얼른 두 모금 마시자, 정은은 그제야 좀 나아졌다.재석은 모처럼 덤벙대는 그녀의 모습을 봐서 속으로 기분이 엄청 좋았다.“어때, 좀 괜찮아졌어?”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하지만 혀가 아직도 좀 얼얼하네요.”“입 벌려, 내가 한번 볼게.”남자의 말투가 너무 자연스러워 정은은 저도 모르게 혀를 내밀었다.십여 초가 지나서야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룸의 온도가 너무 높았는지, 아니면 불판이 너무 뜨거웠는지 볼에 홍조가 나타났다.정은은 얼른 똑바로 앉았다.재석은 시선을 거두었
정은은 농담으로 말했다.“오빠, 고작 2천만 원으로 우리 실험실의 모든 프로젝트에 투자하려고? 에이, 그럼 너무 적은데.”인훈은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겠어? 하나만 투자할게!”말을 이렇게까지 한 이상, 정은도 그저 받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인훈은 자신이 아무 핑계나 대고 준 2천만 원이 앞으로 그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을 안겨다 줄지 전혀 몰랐다....새 실험실로 이사했으니 이제 이웃대학의 임시 실험실에 갈 필요도 없었다.당초에 마정일은 호의로 실험실을 그들에게 빌려주었는데, 비록 재석의 체면을 봐주기 위해서였지만 정은은 여전히 감격했다.토요일에 그녀는 꽃과 과일을 사서 마정일을 찾아갔는데, 실험실 열쇠를 돌려주는 김에 감사한 마음을 전달했다.마정일의 사무실은 행정동 3층에 있었고, 정은은 몇 번 가본 적이 있어 이미 길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문을 두드렸다. “마 교수님, 계세요?”안에서 곧 대답이 들려왔다. “들어와.”정은은 문을 밀고 들어갔다.마정일의 사무실은 그란 사람처럼 간단하고 넓으며 질서정연했다.책상과 탁자 하나 외에 소파와 책꽂이었다.나무 다탁 위에는 다기 한 세트가 놓여 있었는데, 금방 끓여내서 방 안에 차 향기가 넘쳤다.뜻밖에도 안에 재석이 있었다.‘선배님을 위해 끓인 것 같군.’“정은이구나.”“조 교수님, 마 교수님, 안녕하세요! 두 분 점심 드셨어요?” 정은은 꽃을 잘 놓은 다음 과일을 옆의 탁자에 놓았다.“당연히 먹었지. 너도 참, 뭘 또 이렇게 사서 오는 거야?”“꽃과 과일일 뿐, 귀중한 물건이 아니에요. 실험실을 저희에게 공짜로 빌려주셨으니 저도 당연히 뭘 좀 사드려야 하지 않겠어요?”“하하...” 마정일은 크게 웃었다.“넌 말재간도 참 좋구나. 무슨 말을 해도 다 일리가 있어. 나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군.”“그럼 그냥 받으세요.” 정은은 그럴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재석아, 이 아이 좀 봐. 자신감이 넘쳐서 조금도 겸손하지 않잖아!”재석은
이미숙의 일을 해결하고 정은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J시로 돌아갔다.곧 기말고사가 다가왔기에 대학원은 이미 휴교하고 정식으로 복습기간에 들어섰다.이틀 동안 학교에 없었으니, 비록 수업에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실험 진도가 적지 않게 지체되었다.민지와 서준은 아직 정은이 데이터를 체크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정은은 쉬지 않고 실험실로 달려갔다.그다음 며칠도 정은은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게다가 짐을 풀지 않아 수고까지 덜었다.밀린 데이터를 처리한 후에야 정은은 인훈과 현빈에게 결산해야 할 잔금이 남았단 것을 떠올렸다.이날 저녁, 그녀는 먼저 전화를 걸어 두 사람을 불러냈다.여전히 서비대학교 밖의 그 레스토랑에서.인훈은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이미숙이 입원했다는 것을 듣고 정은에게 상황을 물었다.“다 해결됐어. 오늘 내가 오빠와 심 대표님을 불러낸 것은 주로 잔금에 관해서야... 계약서에 적힌 대로, 공사대금은 3분기로 나누어 지불해야 하잖아. 앞의 2분기는 이미 입금되었고, 오빠 쪽으로 마지막 1분기의 돈을 넣어야 할 텐데. 한번 확인해 봐. 맞다면 지금 바로 잔금 입금해줄게.”“심 대표님, 그동안 줄곧 오빠와 소통했기 때문에 나도 심 대표님의 비용을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 오빠가 계산을 끝내면 심 대표님도 한번 계산해 봐요. 오늘 모두 여기에 모인 이상, 한꺼번에 해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인훈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지만, 정은이 이렇게 엄숙한 것을 보고 그래도 진지하게 한번 체크해 보았다.“아무 문제도 없어.”“응.”다음은 인훈과 현빈이 결산할 차례였다.두 사람은 모두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서 신속하게 끝냈다.모든 일을 마치자, 세 사람은 마침내 젓가락을 들었다.그동안 인훈과 현빈의 도움을 떠올리며 정은은 차를 따른 잔을 들었다.“오빠, 심 대표님, 실험실을 순조롭게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다 두 분 덕분이에요. 쓸데없는 말 대신 그냥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네요.”인훈은 어
“사장님이 하신 그 일들은 이미 인터넷에 올라왔고, 지금 수십 명의 작가들이 연합하여 사장님을 고소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작가들은 이미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고요. 만약 정말 소송을 한다면, 저희는 절대로 이길 리가 없단 말입니다!”유보영은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누가 인터넷에 올렸는데요?! 이미숙만 날 고소했던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까지...”“합의를 거절하실 때, 이 소식이 전해지면 사장님한테 당한 다른 작가들도 다 같이 연합하여 배상을 요구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신 거예요?!”수십 명이 동시에 배상을 요구하다니, 유보영은 아무리 멍청해도 그게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 변, 지금 가서 이미숙에게 말해요. 합의서에 사인할 테니까, 원하는 만큼 배상할 거라고!”“늦었어요! 오기 전에 전 이미 피해자의 따님에게 연락했는데, 합의를 거절했어요.”“왜, 왜요? 전까지만 해도 합의를 원하지 않았어요?”오지후는 한숨을 쉬었다.“기회는 한 번 뿐이고, 놓치면 더 이상 없어요. 사장님이 원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무조건 협조하는 게 아니잖아요.”유보영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두 다리가 나른해졌다.인터넷에 폭로된 이상, 유보영의 명예는 이미 땅바닥에 떨어졌으며, 마지막에 이 일이 해결되더라도 그녀는 더 이상 이 업종을 종사할 수 없었다.그리고 거액의 배상금은 유보영의 가산을 탕진하기에 충분했다.“오 변호사, 나 좀 살려줘요... 잘못을 깨달았으니까 제발. 방법 좀 생각해 봐요...”오지후는 안타까움을 느꼈다.“죄송합니다. 저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돈을 얼마 원하든 다 괜찮으니까, 제발요. 꼭 소송에서 이겨야 돼요!”오지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이겨? 그럴 리가. 상대방이 손에 쥔 증거는 사장님을 감옥에 넣기에 충분하다고!’“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장님이 감옥에 들어가는 대신 가능한 한 적은 배상금을 내시도록 쟁취하는 것뿐이에요.”“감, 감옥?! 그
재생 버튼을 누르자,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명한 작가와 계약한 이유가 무엇일 것 같아? 그 작가에게 유명작이 있기 때문이지! 이 책들은 대부분 출판되어서 많은 독자들을 가지고 있어.][돈을 좀 써서 이 작가와 계약을 하고, 겉으로는 상대방을 다시 대단한 작가로 만들겠다고, 꽃길을 걷자고 뻥을 치는 거야. 하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의 기존 작품 판권을 전부 자신의 손에 쥐는 거지.]유보영은 들으면 들을수록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의 직원이었다.“양심도 없는 것!” 그녀는 이를 깨물었다. “녹음은 어디서 났어요?”“피해자 따님이 제공했고, 녹음을 한 이 두 직원도 증언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심지어 증거로 삼을 수 있는 증거를 제공했기 때문에... 현재 상황은 사장님에게 매우 불리합니다.”유보영은 이미숙이 기껏해야 고의상해죄로 자신을 고소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숙을 밀치지 않았으니, 나중에 기껏해야 고의로 타인의 재물을 파손한 죄로 배상만 하면 끝날 줄 알았다.그러나 뜻밖에도 이미숙이 저작권 침해로 자신을 고소할 줄이야.“정말 양심이 없는 사람이군! 내가 그때 그렇게 많은 돈을 써서 계약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날 고소해! 오 변,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오 변호사 오지후는 그녀를 직시했다.“지금 진실을 말씀하셔야 해다. 몰래 작가들의 판권을 운영하여 본인에게 알리지 않은 상황에서 판권을 판매하신 적이 있습니까?”유보영은 눈을 깜박였다.“나도 다 계약서에 따라서...”“있다, 없다만 말씀하세요. 솔직히 말해야 저도 도울 수 있습니다.”유보영은 입술을 깨물고 상대방의 압박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있어요.” 마음속으로 이미 답을 알아맞혔음에도 불구하고 오지후는 여전히 충격을 받았다.“어떻게 이런 짓을?!”“내가 그 사람들과 계약을 했고, 그럼 그 작품들도 다 내가 운영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난 자선가가 아니니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에 따라 사장님
J시, 무한 실험실에서.정은은 실험대 앞에 서서 데이터를 세 번이나 수정했다.서준과 민지는 눈을 마주쳤다. ‘뭔가 이상해!’“정은 언니, 어젯밤에 잘 못 잤어요?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은데요?”“나도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어. 오늘 계속 마음이 불안하네.”“오늘 아침부터요?”“그래.”...점심에 정은은 낮잠을 잤는데 상황이 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가슴은 계속 두근거렸고, 마치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저녁 무렵, 가까스로 일을 마친 정은은 데이터를 대조한 후 기지개를 켰다.“후, 드디어 끝났다.”민지가 말했다.“나도 다 끝냈는데. 쮼, 너는?”“나도.”“잘됐네! 오늘 밤 드디어 밤을 새울 필요가 없어. 같이 밥 먹으러 갈까? 내가 쏠게.”정은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너희들 가, 난 쉬고 싶어.”그동안 정말 피곤했기에 정은은 지금 집에 가서 푹 자고 싶었다.민지도 뭐라 하지 않았다.“그래요, 정은 언니, 그럼 일찍 돌아가서 쉬어요.”“좋아.”도중에 정은은 택시에 앉아 하마터면 잠들 뻔했다.갑자기 핸드폰 벨이 울리자 그녀는 바로 잠에서 깨어났다“어, 아빠.”[정은아, 네 엄마 다쳤으니 얼른 집으로 와!]“네? 엄마가 다쳐요? 왜요? 어쩌다가요?!”[오늘 유보영이 집에 찾아왔다...]이미숙은 컴퓨터를 보호하기 위해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는데, 그 순간 피가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다행히 소진헌이 제때에 돌아왔고,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그런데도 세 바늘을 꿰매었는데, 의사는 가벼운 뇌진탕이라면 이틀 동안 입원하여 관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유보영 그 여자는요?”[도망갔어.]정은은 이를 갈았다.그날 저녁, 그녀는 가장 빠른 비행기표를 끊은 후, 마침내 새벽 3시에 L시에 도착했다.이튿날 아침, 정은은 자신이 만든 죽과 3시간 동안 끓인 보신탕을 가지고 병원에 찾아왔다.“정은아?!”소진헌과 이미숙은 모두 놀랐다.“언제 돌아왔어?”“왜 말 안 했어? 내가 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