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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화

작가: 십일
다시 고개를 돌리기엔 너무 어려웠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안의 문제를 발견했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정말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을까?

정은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시작한 지금, 혼자의 힘으로 되돌릴 수 없다면 그냥 틀린 대로 놔두며 끝까지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에게 있어서, 그들은 과학 연구에 관심이 없었다. 석사 학위를 받는 것도 단지 장래에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논문은 그들에게 있어서 학술 성과가 아니라 졸업지표였다.

만약 이때 오미선이 갑자기 전반 과제를 뒤엎는다면, 이미 졸업한 학생들은 당연히 상관이 없겠지만 곧 졸업하게 될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은 이 과제를 바탕으로 이미 각자의 논문을 준비했으니까.

오미선이 그만두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고개를 돌리면 안 됐기 때문이다.

“이것도 내 탓이야. 몸이 약해서 병원에 그렇게 오래 누워 있었으니까. 문제를 발견했을 때, 그해의 졸업생을 위해 난 뭐라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도 계속 그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거든.”

이제 문제를 바로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었는데, 그들은 너무 멀리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여전히 너희들이 자랑스럽구나. 이렇게 빨리 문제를 발견하고 관건을 찾았다니.”

정은은 침묵에 잠겼다.

이때 오미선이 뜬금없이 물었다.

“넌 민지와 서준이를 어떡해 생각하니?”

“어느 방면을 말씀하시는 거죠?”

“사고방식, 연구 재능, 성격.”

정은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종합적으로 보면 모두 훌륭한 것 같아요.”

두 사람도 모두 똑똑했기에 이 과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문제를 발견한 후, 그들은 도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검증에 나섰다. 이런 성격은 정은과 똑같았다.

검증과정에서 두 사람은 또 각기 각자의 우세를 보여주었다.

민지는 사유가 활발하고 기억력이 놀라웠다.

서준은 냉정하고 침착해서 일정한 각도에 서서 문제를 분석할 수 있었다.

오미선은 이 말을 듣고 흐뭇하게 웃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구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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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님, 선배님, 그렇게 빨리 가지 마요...”정은은 재빨리 쫓아갔다.가까스로 따라잡자, 재석은 몸을 돌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정은을 보았다.“그렇게 재밌어?”정은은 즉시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네, 재미있어요!”‘정말 너무 재밌지!’재석은 한숨을 쉬었다.“그런데 네 장갑과 목도리가 다 젖었잖아.”“괜찮아요!” 정은은 바로 입을 열었다.“15분 전에 너도 그렇게 말했는데. 또 조금만 더 놀면 집에 가겠다고 했어.”‘어?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왜, 왜 기억이 안 나지??’정은은 멍해졌다.재석이 말했다.“가자, 놀고 싶어도 돌아가서 장갑과 목도리, 그리고 신발 갈아입고 다시 놀아.”고개를 숙이자, 정은은 그제야 자신의 부츠가 이미 젖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녀 자신조차도 느끼지 못했는데, 재석이 오히려 발견했다.“그래요.” 정은은 재석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지만, 그 틈을 타서 재석의 손에서 통을 가져왔다. 그 안에는 그녀의 눈놀이 도구가 들어 있었다.“선배님, 이건 내가 들면 돼요.”재석은 할말을 잃었다.정은은 애꿎은 표정으로 입을 뗐다.“몰래 놀고 싶은 게 아니에요.”말을 마치자, 정은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재석은 더욱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녀가 이따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는 듯, 정은이 집에 돌아와 옷을 싹 바꾼 뒤, 재석은 다시 그녀의 집 문을 두드렸다.“선배님?”“성설궁에 가서 눈 구경 할래?”“지금이요?”“음.”“그런데 오늘 입장권이 없는 것 같은데...”“나와 같이 가면, 입장권은 필요 없어.”“그럼 당연히 가야죠!”두 사람은 바로 출발했다.재석은 정은을 데리고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피해 다른 한 작은 문으로 들어갔다.들어가면 바로 궁전의 뒷마당이었다.앞으로 돌아가면 앞에 우물 하나, 살구꽃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다시 앞문으로 나가면 바로 넓은 광장이었다.다음 순간, 정은은 눈앞의 아름다운 경치에 어안이 벙벙해졌다.‘어쩐지 인터넷에서 그렇게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47화

    정은은 가장 빠른 속도로 정리한 다음, 패딩을 입고 목도리를 두르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아래층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아이들이 이미 출동하여 각자 도구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올 겨울의 첫눈이라 사람들은 유난히 기뻤다.사람들 외에, 재석은 눈이 쌓인 나무 밑에 서서 웃음을 머금으며 정은을 보고 있었다.정은은 눈앞이 환해지더니 바로 달려갔다.가까이 가서야 정은은 재석의 발 옆에 둥근 통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안에는 뜻밖에도 눈집게, 삽, 플라스틱 장난감 등이 있었다.그리고 눈집게는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가지 모양이 있었다.“이, 이건...”정은은 침을 삼켰다.“너 놀라고.”“아, 선배님,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그러나 2분 후...정은은 흥분해하며 재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선배님! 이 오리 좀 봐요! 엄청 잘 만들었죠?!”“그리고 이 아기 공룡도 너무 귀여워요!”“선배님, 이 작은 삽으로 저쪽에서 깨끗한 눈 좀 퍼 주세요. 새하얀 거요. 흙 조금이라도 있으면 안 돼요.”“선배님...”“선배님!”정은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지나가는 이웃들은 의아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어쩔 수 없었다. 정은이 자란 곳에는 겨울에 거의 눈이 내리지 않았다.오직 그녀 만이 이 큰 눈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고 있었다.정은은 아주 즐겁게 놀았다.재석은 정은이 노는 것을 지켜보며, 또 가끔 그녀의 지휘대로 움직였고, 심지어 꼬리처럼 바쁘게 정은을 따라다녔다. 그도 꽤 즐거운 모양이었다....진욱은 지금 실험실에서 머리를 잡고 있었다.“지금이 몇 시인데, 조 교수는 왜 아직도 안 온 거야? 어제 두 조의 데이터에 모두 문제가 생겨서 조 교수가 수정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태민은 은근히 놀랐다.“전 교수님, 조 교수님 기다리고 계셨어요?”“맞아, 왜 그래?”“그... 조 교수님 오늘 휴가 내셨어요.”“휴가?! 언제?! 난 왜 몰랐지?!”“교수님은 어젯밤 한밤중에 이메일로 통지를 보내셨어요. 그리고... 자신이 없는 동안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46화

    정은은 줄곧 재석이 향수를 쓰는지 안 쓰는지가 궁금했다.그러나 이 문제는 좀 예민해서 잠시 마음속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정은은 어색하게 웃었다.“고마워요, 선배님. 외출할 때 목도리 챙기는 것을 잊어버렸어요...”사실 잊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귀찮았던 것이다.쓰레기를 버리고 바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이 정도면 목도리를 안 둘러도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다.재석은 정말 정은의 속마음을 몰랐을까?다만 간파하지 않았을 뿐, 묵묵히 자신의 목도리를 그녀에게 주었다.“방금 임 교수님과 장 교수님이 왜 아이를 가지지 않으셨냐고 물었지? 원하지 않은 게 아니라 임 교수님의 몸이 좋지 않아서 그래.”그 시대의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사형을 선고받은 범인과 다름없었다.장 교수의 집안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 사람이 이혼하도록 강요했다.임 교수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더 이상 매달리고 싶지 않아 스스로 악인이 되려고 이혼을 제기했다.그러나 장 교수는 한사코 동의하지 않았다.“후에 장 교수님이 그 당시의 아내를 되찾기 위해서 집안과 관계를 끊고 임 교수님을 찾아가셨다고 들었어.”“아무튼 20년 동안 집안사람들과 왕래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가족들도 서서히 이 현실을 받아들였고, 다시 연락하기 시작한 거야. 하지만 사이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야.”임 교수는 본래 고아였다. 장 교수도 그녀를 위해 자신을 고아로 만들었다.이때부터 그들의 인생은 서로뿐이었다.정은은 이 말을 듣고 눈시울을 붉혔다.“그 시절은 정말 로맨틱한 것 같아요. 비록 발달하진 않지만, 일생동안 딱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그녀는 앞을 바라보았다. 재석은 그런 정은을 바라보았다.여자는 풍경을 보고 있었고, 동시에 다른 사람의 풍경으로 되기도 했다.정은은 한숨을 내쉬었다. 숨은 흰 안개로 되어 마치 응결된 이슬과 같았다.그녀는 중얼거렸다.“올해 눈이 올지 모르겠네...”작년은 눈송이만 조금 날렸는데, 땅에 떨어지자마자 바로 물이 되어 전혀 쌓이지 않았다.재작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45화

    그릇은 두 사람이 함께 씻었고, 주방도 두 사람이 함께 치웠다.마지막으로 함께 외출을 하며 쓰레기를 버렸다.정은은 패딩을 입고 쓰레기를 들고 나갔다.재석도 집에 가서 두 포대의 쓰레기를 들고 나왔다.“선배님, 쓰레기를 안 버린 지 얼마나 됐어요?”“이주 정도?”“선배님이 이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다행히도 모두 포장함, 비닐 봉지들이었고 남은 음식찌꺼기나 과일껍질 같은 것은 없었다.“가자.”아래층으로 내려갈 때, 두 사람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미 쓰레기를 버리고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그렇게 네 사람이 딱 마주쳤다.“조 교수랑 정은이 너도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거야?”“네.” 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정은을 바라보았다.“오늘 또 무슨 맛있는 걸 한 거야? 아래층에서도 아주 향기가 죽여주던데!”“버섯전골이요.”“어머! 조 교수가 어제 받은 그 버섯 맞지?”어제 재석이 택배를 받을 때, 마침 채소를 사서 돌아오는 할머니를 만났는데, 그녀에게 버섯을 보존하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할머니는 더욱 환하게 웃었다.“두 사람 하나는 식재료를 제공하고, 다른 하나는 음식을 책임지니 이웃이 된 것도 다 운명이지! 이렇게 친해졌으니 차라리 함께 하는 게 더 좋지 않겠어!”옛날 사람들은 시원시원하고 대담했다.정은은 처음에는 반응하지 못하다가, 재석의 기침소리를 듣고서야 갑자기 정신을 차리며 재빨리 손을 흔들었다.“아니에요, 지금 오해를...”할머니는 즉시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끊었다.“설명할 필요 없어, 그럴 필요 없어. 너희들이 좋으면 되지! 가자 영감, 집에 가야지!”“그래...” 할아버지는 웃으며 대답했다.“당신도 참, 늘 허튼소리를 하기 좋아한다니깐. 정은이 얼굴이 다 빨개졌잖아.”“내가 무슨 허튼소리를 했다는 거야? 그 당시에 우리도 하나는 위층, 하나는 아래층에서 살다가 알게 되었잖아? 그때 사회가 이렇게 개방되지 않아서, 우리는 2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44화

    “그럼 왜 매일 달리는 거예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달리다니, 마라톤에 나가려는 건가?’재석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만약 자세히 분별한다면, 재석은 약간 마음이 찔렸다.정은은 또 물었다.“요즘 실험실은 바쁘지 않은 거예요?”“응, 대부분 전 교수에게 맡겼거든.”지금도 실험실에서 낑낑거리며 열심히 일하는 진욱은 재채기를 멈추지 않았다.“에취! 에취! 조 교수, 정말 나만 괴롭히는 거야 뭐야!”재석은 정은에게 물었다.“아침 먹었어?”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먹었어요, 선배님은요?”“나도, 오늘 다른 일정 있어?”정은은 생각해 보았다.“집에 가서 몇 편의 논문 좀 봐야 하는 것 외에 다른 일 없어요.”“어제 Y시의 친구가 표고버섯 한 상자 부쳤는데, 네가 가져가서 먹어.”표고버섯은 정말 좋은 물건이었다.“왜 나에게 주는 거예요? 선배님은요?”재석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난 평소에 집에서 밥을 하지 않잖아. 버섯을 오래 두면 쉽게 상할 거야. 그러니 너에게 주는 게 가장 좋아.”“그래요, 그럼 잘 먹을게요!”두 사람은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후에 정은은 재석의 집에 갔는데, 큰 거품박스 하나가 문 뒤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열어보니 안에 각종 버섯이 있었는데, 표고버섯이며 느타리버섯, 송이버섯 등이 있었다.전국의 버섯을 모두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모든 버섯은 종류 별로 한 봉지씩 진공 포장이 되었다.그래서 장거리 운송을 거쳐 또 하루를 놔둬도 보기에 여전히 싱싱했다.정은은 그야말로 보물을 얻은 것 같았다.“선배님,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버섯인데, 정말 나에게 주는 거예요?”재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말했다.“가져가, 다 가져가.”“네. 그럼 저녁에 버섯전골 해먹어야겠네요!”말하면서 정은은 상자를 안고 만족해하며 자기 집으로 돌아갔는데, 재석에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오후 5시, 재석은 시간을 맞추며 와서 정은을 도와주었다.주방에 들어가 보니, 정은은 이미 각종 버섯을 깨끗이 씻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43화

    경혜는 자신이 승낙하면 그들의 사이가 거래 사이로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이건 아예 내가 원하는 게 아니잖아. 하지만 거절하면... 이 남자가 바로 일어나서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떠날 거야.’‘이것은 아마도 내가 이 남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 거야!’“좋아요, 그 제안, 받아들일게요.”경헤는 일부러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어차피 가짜잖아요. 게다가 나도 돈을 좀 벌 수 있고.”‘지금은 가짜겠지만, 미래의 일은 누가 알겠어? 나에게 시간만 준다면...’도겸은 눈을 반쯤 드리우고 있었고, 얼굴에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좋아, 그럼 이따 내가 비서에게 계약서를 보내라고 할 테니까, 넌 그냥 사인하면 돼.”계약서로 똑똑히 써야 분쟁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도 도겸이 서연희에게서 얻은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경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그러나 마음은 덜컹 내려앉았다.‘보아하니 정말 나와 얽히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 여자가 자신에게 매달리는 것도 아주 두려워하는 것 같아.’“그럼 이제 번호 추가해도 되는 거예요?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으니까요.”경혜는 대범하게 핸드폰을 꺼냈다.도겸은 가볍게 응답하며 그녀의 번호를 추가했다.경혜는 또 도겸의 톡을 추가했는데, 그의 프로필 사진이 한 폭의 산수화인 것을 발견했다. 파도가 일렁이는 동시에 은은한 물안개가 피어올랐고, 안개 속에서 웅장한 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마음이 통한 건가요? 당신의 프로필 사진에 물이 있고, 내 프로필 사진에 구름이 있는데.”“물과 구름이 뭐?”경혜는 멈칫했다.“다 풍경이잖아요.”도겸은 그녀를 바로잡았다.“내 프로필 사진은 물이 아니야.”“네?”“물안개야.”경혜는 어색하게 웃었다.“그렇군요... 나 방금 주의하지 않았어요...”도겸의 손끝은 가볍게 프로필 사진을 어루만졌다.“‘정겨운 산과 물이 붓 끝에 머물고, 은빛 물안개가 그림 속에 피어나네.’ 정은의 이름으로 지어진 이행시야.”경혜는 웃음이 안 나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42화

    몇 번 만났지만, 그렇다고 말을 걸 만큼 친하지 않았다.그러나 경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매우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괜찮아요? 어제... 교문 앞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앉아 있었는데. 감기에 걸리지 않았죠?”도겸은 여전히 침묵하며 말할 의욕이 없었다.경혜도 개의치 않고 혼자 계속 중얼거렸다.“그쪽도 커피 마시러 왔어요? 여기 커피 꽤 괜찮아요. 근처의 다른 커피숍에 비해 확실히 더 맛있거든요. 난 다른 맛을 시도해 보았는데...”“지금 이 가게의 간판인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시고 있는 거죠? 맛은 고소하지만 약간 씁쓸해서 케이크와 같이 먹으면 딱이에요.”도겸은 여자의 부드럽고 듣기 좋은 목소리를 듣고, 눈빛이 갑자기 흥미진진해졌다. 그리고 입가에 서서히 의미심장한 미소가 나타났다.경혜는 남자의 눈빛에 등골이 오싹했지만 여전히 미소를 유지해야 했다.“날, 날 왜 그렇게 보는 거예요? 내 얼굴에 뭐 더러운 거 묻었어요?”말하면서 경혜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이때 도겸이 입을 열었다.“너 나한테 관심 있지?”그는 많은 여자를 만나봤기에, 경혜의 이런 눈빛이 낯설지 않았다.비록 그녀는 애써 숨기며 별로 개의치 않는 척했지만, 여전히 도겸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경혜는 도겸이 이렇게 직접적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직접 자신의 비밀을 말했던 것이다.그녀는 머리가 새하얘지더니 얼굴이 빨개지는 동시에 목소리도 점점 작아졌다.“그, 그렇게 티가 났나요? 바로 알아차렸다니...”‘바로 인정을 했어!’도겸은 이런 여자를 너무 많이 봐왔다. 예쁘고, 섹시하고, 매력이 넘치는 여자들.그는 갑자기 흥미를 잃었다.도겸은 무심코 컵의 가장자리를 매만지며 얼음처럼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그럼 너도 잘 알 거야. 나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경혜는 전혀 놀라지 않고 오히려 고개를 끄덕였다.“난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일을 알고 있었어요. 소정은과 난 모두 같은 전공을 선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41화

    거리를 두고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은, 정은에게도, 도겸에게도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정은은 서류와 펜을 거두었는데, 남자가 갑자기 중얼거렸다.“하지만 난 널 여전히 친구로 생각할 거야...”정은은 바로 떠났다.도겸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냉정하게 시선을 거두었다.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씁쓸함이 혀끝에서 퍼졌지만,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엄지손가락으로 컵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시선은 맞은편 정은이 마셨던 커피에 떨어졌다.‘정은이는 줄곧 우유를 탄 커피를 좋아했기 때문에 커피가 그리 쓰지 않을 거야.’도겸은 정은의 커피를 들고 가볍게 한 입 맛보았다.아니나 다를까, 그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그들은 6일, 6개월이 아닌 6년을 함께 지냈다.‘6년을 함께 했는데, 내가 너에 대해 잘 모를 것 같아? 아니, 난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아, 다 안다고! 그렇다면...’도겸은 실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난 절대로 포기할 수 없어. 정은아, 넌 내 여자일 수밖에 없어.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다시 내 여자로 될 거야!’도겸은 남은 커피를 천천히 마셨다. 전에 그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했지만, 정은은 좋아하지 않았다. ‘이 참에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사실 하나도 안 어려워. 심현빈을 보면 알잖아. 그 자식이 왜 정은의 배척을 당하지 않았겠어? 자신을 숨길 줄 알고, 엄살 부릴 줄 아니까. 내색하지 않고, 무심한 척하며 정은의 생활에 스며드는 거지. 교활한 자식.’봄날의 비는 가늘고 잔잔해서 존재감이 없어 보이지만 토양을 미친 듯이 적시며 감정을 돋아나게 할 수 있었다.현빈은 내색하지 않고 일부러 물러서는 척을 했기에, 정은은 압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 자연히 경각성을 늦추며 그가 접근하도록 내버려둘 것이다.‘심현빈도 할 수 있다면, 난 왜 못할까?’어젯밤에 도겸은 확실히 취했다. 하지만 깨어나는 것도 한순간이었다.그 순간, 도겸은 갑자기 납득했다.정은을 다시 되찾으려면 조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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